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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금녀(禁女)구역/최용규 논설위원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성지인 아토스산은 ‘금녀(禁女) 구역’이다. 지금도 여성은 물론 가축이나 동물의 암컷조차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1045년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순결을 철칙으로 삼고 있는 수도사에게 여성은 수도에 방해가 된다며 이 반도를 금녀의 땅으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10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반성(半性)의 원칙이 이토록 잘 유지되는 것을 보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금녀의 벽을 깨기 위한 여성들의 도전이 멈추지 않는 한 짙푸른 에게해를 끼고 깎아지른 벼랑 위에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저 수도원도 영원히 빗장을 걸어 둘 수만은 없을 것이다. 1세기 이상 금녀의 공간이었던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클럽하우스도 한 ‘독한’ 여기자의 소송으로 철옹성이 깨졌다. 1977년 월드시리즈 취재차 뉴욕 양키스타디움에 갔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지의 여기자 멜리사 러트케는 경기 후 클럽하우스 출입을 거부당하자 성차별이라며 소송을 냈다. 클럽하우스에서 인터뷰가 안 되면 남성 기자들과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논리였다. 메이저리그 측은 경기 후 옷을 벗고 입어야 하는 선수들의 프라이버시 보호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듬해 뉴욕 법원은 러트케의 손을 들어줬다. 사회의 변화에 순응하기 위해서건 여성의 도전에 의해서건 금녀의 벽은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공군사관학교가 1997년 창군 이래 첫 여성 생도를 모집하자 1998년에는 육사가, 1999년엔 해사가 불문율을 폐지했다. 공사가 여생도를 받자 ‘여자가 하늘’이란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남자만 뽑았던 국립 한국해양대학도 개교 45년 만인 1980학년도에 금녀의 벽을 허물었다. 당시 19세인 부산사대부고 출신 김정리(해사법학과)양 등 여학생 3명이 합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메이저골프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고 있다. 대회 장소인 오거스타 내셔널 GC는 1932년 개장 이래 여성을 회원으로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마스터스 후원사인 IBM의 최고경영자에 여성인 버지니아 로메티가 임명되면서 그녀의 회원 허용 여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골프담당 여기자 캐런 크루즈가 빌리 페인 오거스타 회장에게 “버지니아 로메티를 회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물었지만 페인은 “개인적인 사안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그러자 백악관까지 나섰다. 오거스타의 금녀의 벽은 과연 허물어질까.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그때 민초들은 목숨 대신 신앙을 택했다

    19세기 중반은 세계사에서 보면 사상과 체제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서구의 문명국가들은 보호령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3세계 국가들을 식민지화했다. 일본은 외세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군국주의의 기점이 되는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고 러시아에서는 차르 체제 아래서 사회주의가 태동했다. 조선에도 개화의 물결이 다가왔다. 북에서는 러시아가 교역을 요구했고 프랑스 군대와는 전쟁을 겪었다. ‘조선이 버린 사람들’(이수광 지음, 지식의 숲 펴냄)은 이 시기 중 1866년(병인년)에 집중한다. 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당시 정치·사회 현상을 살피면서 ‘1866, 애절한 죽음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처절한 천주교 박해 사건들을 파헤친다. 책은 김아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1839년에 순교한 아가타 김아기와 다른 인물이다). 천주교도인 남편 김진은 이미 닷새 전에 양화진에서 처형됐다. 김아기는 배교(背敎)를 종용받으며 모진 고초를 당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천주교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다가 결국 참수에 처해졌다. 이 이야기가 마치 드라마처럼 펼쳐지지만 실제로 이 인물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나와 있다.”는 저자의 설명처럼 언제 세례를 받았는지 어디 출신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김아기를 시작점에 둔 것은 그가 책에서 다루려는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과 민초의 삶을 대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경제 대부분을 사대부에게 장악당하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도적이 되는 궁핍한 시기였다. 백성은 굶지 않고 고통도 없는 세상을 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세의 고통도 내세의 행복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천주교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이 천주교와 함께 빠르게 확산한 배경도 같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부터 흥선대원군의 과감한 개혁 정치와 남인과 유림의 대립, 러시아의 침략 속에서 대원군이 프랑스 신부들에게 요구했던 역할과 그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시작된 천주교 탄압 등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저자가 낸 대중 역사서가 그랬듯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장면 장면을 소설처럼 풀어내 재미를 더한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직접 천주교 성지를 찾아 역사의 흔적을 살폈다. 출판 전에는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 위해 보름 동안 카메라를 들고 곳곳을 누볐다. 그러면서 저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을 지켜내는 숭고함과 종교의 진정성을 느꼈다.”고 했다. 어쩌면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그들은 신앙을 위해 귀한 목숨까지 버렸는데 오늘날의 교회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책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1만 28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외교부 1차관 안호영 2차관 김성한

    외교부 1차관 안호영 2차관 김성한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외교통상부 제1차관에 안호영(왼쪽·56) 주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를, 외교통상부 제2차관에 김성한(오른쪽·52)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각각 내정했다. 안 내정자는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외무고시 11회로 공직에 입문해 다자통상국장,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 통상교섭본부 통상교섭조정관, 주요20개국(G20) 대사 등을 지냈다. 김 내정자는 서울 출생으로, 서울사대부고와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외교안보연구원 미주연구부장 등을 지냈다. 다른 부처(행정안전부) 출신은 있었지만 교수 출신 외교부 차관은 처음으로, CNK 사태 이후 조직 쇄신 등 차원에서 외부 인사 영입이 단행된 것이라는 평가다. 차관급인 초대 국립외교원장에는 현 정부 첫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김병국(53)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이 내정됐다. 김 내정자는 서울 출신으로, 필립스 아카데미와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신임 이사장에는 민동석 제2차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선비의 향기… ’ 펴낸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백인산

    [저자와 차 한 잔] ‘선비의 향기… ’ 펴낸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백인산

    몇 해 전부터 일기 시작한 우리 그림에 대한 열기. 간송미술관의 ‘풍속인물화대전’, 국립중앙박물관의 ‘초상화의 비밀’, 삼성미술관 리움의 ‘조선화원대전’이 빅히트를 친 지난해 기억이 새삼스럽다. 간송미술관의 ‘풍속인물화대전’은 불과 2주일간의 짧은 전시에 6만명이 다녀갔다. 전시 최종일에는 2㎞의 장사진을 쳐 간송미술관 문턱을 밟기까지 7시간 걸린 초유의 기록도 세웠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비롯해 소설이나 영화화된 우리 그림과 접해 보자는 기운이 일었어요. 우리 전통에 대한 호기심과 디지털 카메라, 인터넷 영향으로 시각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결합하면서 애호가, 연구자 등에 한정됐던 우리 그림을 향한 관심이 일반인들에게로 번진 것으로 봅니다.” 간송미술관의 백인산(45) 상임연구위원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르나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대학(서강대 사학과,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과 21년간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 지내며, 우리 그림 수천점을 보고 연구해 온 백 위원이 눈높이를 확 낮춘 우리 그림 입문서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화훼영모·사군자화’를 펴냈다. 초보자라도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는 쉬운 서술이 큰 장점이다. →우리 전통 그림에 낯선 사람이 아직 많은데. -친숙해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그림을 어렵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어릴 적부터 서양 미술에 비해 덜 접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어보지 않으면 어렵듯, 처음의 낯섦을 없애야 한다. 많이 접하다 보면 친해지고, 더 알고 싶어진다. 그림은 읽어야 한다지만 감각적으로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 →화훼영모(花卉翎毛·동식물 그림)나 사군자화가 지닌 매력은. -세월은 흘렀어도 나무와 꽃, 새와 짐승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대중과 공유하고 느꼈던 감흥을 지금도 쉬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산수나 인물화보다는 장수나 무병, 입신을 기리는 길상의 의미에 장식성까지 있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선조들이 그랬듯 우리도 그것을 아끼고 즐기며 사랑할 만한 매력이 있다. 다만 즐기며 사랑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뜻은. -우리는 지금 사물을 대할 때 사군자나 화조(花鳥) 다 마찬가지로 여기지만 옛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예컨대 대나무를 보면 옛 사람들은 지조, 절개, 충절을 떠올렸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러는가. →화훼영모가 사군자화보다 한급 아래라는 인식이 있는데. -조선시대 화원(畵員) 선발시험을 보면 분명 등급이 있었다. 대나무가 1등, 산수가 2등, 날짐승과 길짐승을 그린 영모가 3등, 화훼와 초충(草蟲) 이 4등으로 배점됐다. 왕실이나 사대부의 심미취향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그 순서대로 그림을 좋아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시대에 화훼가 낮고 대나무가 높고 하는 기준, 등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군자(四君子)란 말의 역사가 짧다고 하던데. -매란국죽(梅菊竹)을 사군자라고 하지만 조선시대의 어느 옛 문헌에도 사군자란 표현은 없다. 사군자라고 묶어 칭한 것은 일제시대부터다. 사군자는 중국에서 온 표현이긴 하지만 중국에서조차 17세기부터 나왔다. 과거에는 세한삼우(歲寒三友·추운 겨울의 세 벗)나 삼청(三淸)이라고 해서 송죽매(松竹梅)를 일컬었다. 삼청에 들었던 소나무이지만 문인들이 그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군자에선 빠지게 된다. 이런저런 연원을 알고 우리 그림을 보면 한층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방통위원장 이계철 靑정무수석 이달곤

    방통위원장 이계철 靑정무수석 이달곤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 이계철(사진 왼쪽·72) 전 정보통신부 차관을 내정했으며,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는 이달곤(오른쪽·59) 전 의원을 임명했다. 경기 평택 출신인 이 방통위원장 내정자는 서울사대부고와 고려대 법대를 나와 행시 5회로 공직에 입문, 체신부 전파관리국장과 기획관리실장, 정보통신부 차관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이 내정자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통신) 사장,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이사장, 한국전파진흥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경남 창원 출신인 이 신임 정무수석은 동아고, 서울대 공업교육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제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 행정안전부 장관, 지방분권촉진위원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사장을 지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김종훈 대구 출마 유력… 여야 FTA공방 쟁점으로

    김종훈 대구 출마 유력… 여야 FTA공방 쟁점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주도한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새누리당 입당과 함께 4·11 총선에 출마하기로 하면서 여야 간 대치전선의 핵으로 떠올랐다. ●새누리 비대위서 입당 제안 김 전 본부장은 7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능력은 없지만 당과 나라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면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출마를 결심했다.”면서 “지난달 중순쯤 연락을 받아 아직 기본적인 출마 의지만 정한 상태다. 구체적인 출마 방안은 당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김 전 본부장 영입은 조동성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인재영입분과 위원장이 직접 제의하면서 이뤄졌다고 한다. 김 전 본부장은 고향인 대구 지역에서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은 대구 남구 봉덕동이고 경북대 사대부고(중구)를 졸업했다. 처가도 대구여서 최근 이 지역을 오가며 지인들과도 출마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당 일각에서는 통상교섭 전문가인 만큼 비례대표로 영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러나 전체적인 총선 구도를 좌우할 수 있는 수도권 지역이나 비례대표 출마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당의 한 관계자는 “김 전 본부장의 경우 카리스마도 있고 애국자 이미지가 강해서 어느 지역에 나가든 승산이 있겠지만 전체 구도로 볼 때 한·미 FTA 비준안 통과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만은 더욱 커질 것”이라면서 “수도권에 비해 이슈가 적은 대구 지역에 공천하는 방법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민주 “후안무치… 자숙하라” 김 전 본부장의 총선 출마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간의 한·미 FTA 공방은 한층 첨예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이 한·미 FTA 발효 중단과 재협상 관철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어서 4·11 총선의 핵심적인 쟁점으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김현 민주당 수석부대변인은 김 전 본부장 출마에 대해 “출마는 자유지만,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굴욕적 협상을 한 사람이 후안무치하게 총선에 출마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국민을 두 번 욕보이지 말고 자숙하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이달 말로 예상되는 한·미 양국 정부의 FTA 발효를 앞두고 8일 시민단체 등과 함께 FTA 저지 기자회견을 갖고 파상 공세에 나설 방침이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성리학 장벽’ 너머 味 탐하다

    성리학의 이데올로기가 밥상까지 지배한 조선에서 탐식은 일종의 ‘죄악’이었다. 몸을 망가뜨리고, 집안 살림을 거덜내며, 사회를 병들게 하는 원흉이라며 경계했다. ‘성리학적 밥상론’ 운운하며 왕은 12첩, 공경대부는 9첩, 양반은 7첩, 중인 이하는 5~3첩 반상을 차려 먹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못하게 한다고 안 할까. 성리학의 장벽을 비집고 맛을 탐한 이들이 있었다. 허균 같은 이는 “먹는 것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라 주장하며 물산이 풍부한 고을에 부임하기 위해 로비까지 벌였다. ‘조선의 탐식가들’(김정호 지음, 따비 펴냄)은 이처럼 탐식에 몰두한 조선의 사대부와 권세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탐식가는 여럿이지만, 탐식의 이유는 다르다. 권세가들은 밥상에서 권력과 부의 맛을 찾았다. 중종의 사돈이었던 김안로는 개고기 탐식가였다. 맛있는 개고기 요리를 바친 자들을 조정 요직에 등용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누이 문정왕후를 등에 업고 전횡을 휘두른 윤원형은 상다리가 ‘골절’될 정도로 푸짐하게 차려 먹었다. 중국의 식전방장(사방 열자가량의 상에 차린 진수성찬)을 흉내낸 것. 조선 후기에도 인조 반정으로 공신에 오른 김자점, 양모 화완옹주와 함께 정조의 정적이었던 정후겸 등이 ‘갓 부화한 병아리’를 즐긴 탐식가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탐닉한 음식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개고기다. 개고기 요리를 즐기는 데는 반상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구증’(狗蒸·개고기찜) 등이 연회상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개고기는 왕실에서도 별미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여름 보양식으로도 즐겨 먹었는데, 이를 가장(家獐)이라 불렀다. 효종 때는 가장 때문에 강원 감사가 요리사를 “요리를 못한다.”며 때려 죽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선조들이 고루 개고기를 즐기긴 했으나, 애완견과 식용견은 엄격하게 구분했다. 이는 한자 표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개를 뜻하는 한자 가운데 견(犬)은 애완견, 구(狗)는 식용 개를 가리킨다. 예로부터 애완견을 애완구로 표현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조선의 미식 트렌드를 엿보는 것도 재밌다. 불교를 숭상했던 고려에서 육식을 탐하지 못했던 지배계층들은 특히 소고기에 집착했다. 우심적(소 염통구이)이나 설야멱(불고기) 등이 당시 사대부들이 즐긴 소고기 요리로, 대부분 중국의 고사와 연관된 것들이었다. 담백한 식성을 뽐낼 수 있는 두부와 순채, 중국에서 들어온 열구자탕(신선로) 등의 외국 음식도 유행했다. 책은 아울러 요리와 관련된 다채로운 풍속화를 수록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총선 지역구·비례대표 불출마”… 대선 직행하는 孫

    “총선 지역구·비례대표 불출마”… 대선 직행하는 孫

    한나라당 텃밭 출마와 불출마 사이에서 고민하던 손학규(얼굴) 민주당 전 대표가 불출마 쪽으로 뜻을 굳혔다. 손 전 대표는 지난 28일 500여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광주 무등산에 올라 “지난해 4·27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출마해 당선돼) 내가 할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4·11 총선에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 후보로도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손 전 대표는 “한나라당 초강세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이길 수 있다는 선거혁명을 보여줬다.”며 “이제는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기운을 갖고 분당 같은 곳에서 민주당의 기반을 만드는 일을 돕고 밀어주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총선에 출마해) 당선된다 하더라도 국회의원직을 몇 달 수행하지 못한다. 이는 선거구민에 대한 기본적인 도의나 예의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손 전 대표는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등장한 세종의 리더십을 언급하면서 “사대부는 특권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변화를 가로막았지만 세종은 특권층의 저지를 뚫고 백성이 제대로 대접받는, 백성이 조선사회의 한 굳건한 일원임을 보여주는 ‘국민 통합’을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총선·대선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2013년 체제에서는 사회 통합과 남북 통합, 그리고 이를 위한 정치 통합이 중요하다.”며 “‘3통’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손 전 대표는 정상 부근 쉼터에서 야권의 또 다른 유력 대선주자인 김두관 경남지사와 조우했으나 가벼운 안부 인사만 나눴다. 김 지사는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원회 초청으로 무등산에 올랐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춘천시·수공 또 ‘물값전쟁’ 벌이나

    춘천시·수공 또 ‘물값전쟁’ 벌이나

    연말 준공되는 강원 춘천시 약사천 복원사업과 관련, 하천으로 흘러드는 용수 공급을 놓고 시와 수자원공사가 벌써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은 수자원공사와 17년째 갈등을 빚는 소양강댐 먹는 물값 시비와 얽혀 제2의 물값 분쟁으로 번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춘천시는 25일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약사천 복원사업이 올해 말 마무리되면 12.5㎞ 떨어진 소양강댐 하류 소양취수장에서 물을 끌어 흘려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약사천은 갈수기에 물의 양이 매우 적다. 약사천은 2008년부터 국비와 한강수계기금 등 496억원을 들여 외환은행 뒤편~공지천 합류 지점까지 1.5㎞ 구간의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850m 구간은 복개를 걷어내 서울 청계천과 같은 친수공간으로 조성한다. 하천 폭은 25~35m이다. 현 소양취수장에서부터 정수장~두산위브~만천초교~만천리~강원사대부고~팔호광장을 잇는 12.5㎞ 거리에 지름 1m 안팎의 관로를 매설하고 있다. 약사천 용수 공급량 하루 3만t과 별도 공사를 벌이는 공지천 공급량 5만t까지 합하면 8만t에 이른다. 이는 시가 소양취수장에서 받는 하루 수돗물 7만t보다 많은 규모로 유상 공급되면 물값이 연간 1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공익 사업이고 댐의 발전 방류에 지장이 없는 만큼 무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수자원공사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유보적이다. 무상공급해도 수자원공사와 계약해야 하는데 먹는 물에 대한 계약 여부를 두고 17년간 분쟁을 겪는 껄끄러운 관계가 더 악화될까 우려된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FTA 진두지휘 ‘검투사’ 떠난다

    FTA 진두지휘 ‘검투사’ 떠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진두지휘한 김종훈(59)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직에서 물러났다. 김 본부장은 30일 청와대가 발표한 개각에서 박태호(59)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후임 본부장에 내정됨에 따라 4년 5개월 만에 집무실을 비우게 됐다. 한·미 FTA 체결 주역이자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산 증인’인 김 본부장은 ‘박수’와 ‘비난’을 함께 받을 수밖에 없는 공직자였다. 2006년 4월 한·미 FTA협상 수석 대표를 맡아 9차례의 협상을 주도한 끝에 이듬해 4월 극적인 타결을 이끌었다.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등은 그에게 ‘글래디에이터’(검투사)라는 별명을 붙이며 ‘영웅’ 대접했다. 김 본부장은 협상 당시 언쟁이나 벼랑 끝 전술을 피하지 않았고, 귀가를 포기한 채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며 마라톤협상을 벌였다. 2007년 협상 때는 남편의 갈아입을 옷을 전하기 위해 매일 찾아온 부인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아 세간에 회자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한·미 FTA가 사장될 위기에 놓이자 ‘쉼표 하나 고칠 수 없다.’고 버티다가 재협상에 나섰다. 올해 초 번역오류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책임지겠다.”며 용퇴의사를 밝혔으나, 비준안을 끝까지 마무리하라는 청와대 요청에 뜻을 굽혔다. 비준안 처리과정에서는 민주당 등 한·미 FTA 반대 진영으로부터 ‘매국노’ ‘이완용’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김 본부장은 다시 “쉬고 싶다.”는 의사를 청와대에 전달했고, 한 달여 만에 옷을 벗게 됐다. 1974년 외무고시 8회로 공직에 입문한 지 37년 만에 공직을 떠난 것이다. 김 본부장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 연세대를 졸업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캠퍼스 낭만 대신 미래희망 선택”

    “캠퍼스 낭만 대신 미래희망 선택”

    “남들은 대학에 가지만 전 함께 입사하는 109명의 친구를 새로 만나고, 미래를 먼저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학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예정보다 10명 늘어난 110명 선발 최근 고졸 채용 확대 바람을 타고 화제를 불러모았던 대우조선해양 고졸 사무기술직 공개 채용 결과가 13일 발표됐다. 당초 예정보다 10명 늘어난 110명의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최종 선발됐다. 대부분 합격자는 내신성적 1~3등급의 우등생들. 1등급 학생도 포함될 정도로 우수한 고졸 인재들이 뽑혔다. 특히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서거나 뛰어난 어학 실력을 자랑하는 학생들도 포함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문설민(18·전북사대부고 3년)군은 집 대신 전북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의 아동복지시설인 선덕보육원에서 생활한다. 중학교 2학년인 남동생과 함께 지낸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8년 전에 보육원에 오게 됐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학업에 매달린 문군은 올해 수시모집에서 전북대 경영학부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 대신 대우조선을 선택했다. 대우조선 고졸신입 교육 프로그램인 ‘중공업 사관학교’에서 대학 못잖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문군은 “보육원에서 지내는 처지라 대학 등록금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면서 “대학을 나와도 입사하기 어려운 대우조선에서 일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사회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주변의 우려가 없던 것은 아니다. 문군은 “보육원 분들이나 학교 선생님 등은 모두 축하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버지는 ‘대학에 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고 걱정하셨다.”면서 “그러나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지만 더 잘할 수 있다’고 당당히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문군의 장래 희망은 대우조선 최고의 인사담당자가 되는 것. 문군은 “면접관으로 직접 나서 나처럼 좋지 않은 환경에 처해 있어도 잠재력이나 올바른 인성을 가진 이들을 손수 발굴하는 게 꿈”이라면서 “평소 열심히 공부했던 중국어 등 어학 능력을 살려 해외영업 일선에서도 일하는 등 훌륭한 인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화(18·인천 부광고)군은 학교에서 손꼽히는 ‘영어 영재’다. 최근 토익 시험에서 900점이나 받았다. 외국인과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회화 능력도 수준급이다. 내신 1등급에 올해 수시모집에서 홍익대 경제학부에 합격했다. 그러나 이군 역시 ‘캠퍼스의 낭만’ 대신 대우조선이라는 ‘미래의 희망’을 선택했다. 이군은 “대우조선 입사를 준비한다고 하니 부모님과 친구, 선생님 등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한 해 10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 부담 없이 업무에 연관된 역량을 쌓으면서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일하고 싶다고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대우조선의 글로벌 경영의 첨병이 되는 것. 이군은 “대우조선의 경영 현장이나 업무환경 조성 등 분야에서 대졸자들을 넘어서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꾼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합격자 중 여학생 22% 달해 한편 대우조선 고졸 채용에서는 전국 총 94개 고등학교에서 합격자가 나왔고, 여학생이 22%에 달했다. 대우조선은 내년 1월 5일 중공업 사관학교 입학식을 열고 본격적인 교육에 들어간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왕실·사대부 도덕성 강조했던 조선, 여성들이 가장 큰 희생양 되었을 것”

    “왕실·사대부 도덕성 강조했던 조선, 여성들이 가장 큰 희생양 되었을 것”

    “정녕 사랑이 죄라면… 기꺼이 죄인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김별아(42) 작가의 신작 ‘채홍’(해냄 펴냄)의 주인공은 조선 시대 최고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의 며느리다. 세종의 며느리는 부덕 등을 이유로 두 명이나 쫓겨났는데 문종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봉빈이 ‘채홍’의 주인공. 제목은 세계적으로 성적 소수자를 가리키는 무지개란 뜻이다. 봉빈은 위대한 아버지 밑에서 완벽한 임금이 되고자 강박에 시달렸던 문종의 아내로 동성애, 잦은 음주 등의 잘못으로 궁에서 쫓겨난다. 신간 출간을 맞아 기자들과 만난 김 작가는 “남성과 강자, 승자 중심의 역사에서 패자와 가려진 사람을 찾아내 소설로 쓰고 있다. 여성 작가로서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며 웃었다. 등단 18년을 맞은 그는 2005년 출간한 첫 장편 역사소설 ‘미실’을 2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과 김 작가의 소설 ‘미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작가는 세종 시대에 여성 동성애가 궁에서 이뤄진 이유에 대해 “조선은 남성 중심의 유교 사회이자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대였지만 중기 이전까지는 고려적 습속을 가지고 있었다. 유교를 기반으로 건국된 나라이다 보니 왕실과 사대부는 도덕을 강조했고 그 와중에 여성들이 가장 큰 희생양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그가 역사 소설을 쓰는 데 있어 첫 번째 원칙은 팩트(사실)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최대한 정사에 가깝게 쓰지만 역사의 갈피갈피에 남아 있는 인간 감정에 대한 해석은 작가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의 첫 역사소설 주인공 ‘미실’은 권력을 위해 남자를 이용하고 자식도 버리는 여성이었다. 독자들은 이런 여성이 있을 수 있느냐며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미실’ 이후 조선 시대의 비극 가운데 하나인 단종의 역사를 그의 부인인 정순왕후를 주인공으로 그린 ‘영영이별영이별’과 ‘논개’ ‘백범’ ‘열애’ 등 역사소설을 꾸준히 내다 보니 봉빈을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이 늘었단다. 이번 소설은 인터넷에서 먼저 연재됐다. ‘19금’이란 딱지가 붙고 귀찮은 로그인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독자들은 230만번이나 소설을 읽었다. 기자가 기사를 쓰려고 책상에 잘 놓아둔 책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금기된 것에 대한 욕망은 언제나 강한 법이다. 그의 이름은 순 한글이다. 독자들 가운데는 이름만 보고 인터넷 소설을 쓰는 작가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단다. 한글 이름을 가진 작가로서 모국어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역사 소설이다 보니 순 우리말과 고어를 살려 썼다. 소설을 쓸 때면 항상 국어사전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놓을 정도로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계속 공부한다. “언어를 많이 가진 민족일수록 문화적 수준이 높습니다. 소설에 모르는 단어를 왜 이리 많이 써서 귀찮게 하느냐고 신경질을 내는 독자도 있는데 모국어의 신비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단어도 전체 문장 속에서는 그냥 읽히고 이해가 된다는 겁니다. 이게 외국어는 불가능하죠. 제 소설을 읽으며 모국어의 신비를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소설은 봉빈이 죽으면서 시작된다. 궁에서 쫓겨나 사가로 돌아온 봉빈은 오빠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역사 어디에도 궁에서 쫓겨난 세자빈들이 그 뒤 어떻게 됐다는 기록은 없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봉빈의 사랑은 시아버지인 세종의 입을 통해 죄목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아직 이슬람권에 남아 있는 여성들에 대한 명예살인이 조선에서도 충분히 일어났으리라고 본 것이다. 작가는 요즘 문학계의 화제 가운데 하나인 기자가 쓴 소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근 기자들이 수상한 문학상 심사에 김 작가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쓴 소설은 냉정한 게 맹점이에요. 작가가 작품 속 인물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신이 창조한 등장인물을 사랑하지 않죠. 물론 그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역사 속에서 비극적으로 사랑하다 간 여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온 작가는 앞으로 ‘언제나 현실을 마주하고 도망가지 않았던 여성’을 주인공으로 찾아 글을 쓰겠다고 밝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 지경 2차관 조석·중기청장 송종호씨 내정

    지경 2차관 조석·중기청장 송종호씨 내정

    이명박 대통령은 5일 지식경제부 제2차관에 조석(왼쪽·54)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을, 중소기업청장에는 송종호(오른쪽·55)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각각 내정했다. 또 황해도지사에 박연용(60) 전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을, 함남도지사에 황덕호(57) 전 송호대학 학장을 각각 선임했다. 전북 익산 출신인 조 신임 지경2차관은 전주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행정고시(25회)로 관직에 입문해 산업자원부 에너지정책기획관,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송 신임 중기청장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 계성고와 영남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기술고시(22회)에 합격한 뒤 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장과 대통령실 중소기업비서관,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박 황해지사는 황해 벽성 출신으로 서울사대부고와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해군 군수사령관과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 황해도 중앙도민회 부회장을 지냈다. 함남 흥남 출신인 황 함남지사는 대신고와 한양대 체육학과를 졸업했고 숭의여대·송호대학 학장,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장, 정신학원 이사 등을 역임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문이 만난사람]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인생을 살면서 간이 안 맞으면 섬으로 간다. 그런데 향기가 그립다면 어디로 갈까. 겨울의 언덕을 넘으려는 듯 늦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런 까닭에 쌀쌀했으나 그윽했다. 비탈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비에 젖어 고고한 사색의 향기를 뱉어냈다. 이리저리 뒹구는 그것들이 황량하게 비어 있는 마음의 곳간을 조금씩 채운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간송미술관은 간송이 33세 때 자신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1966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서화를 비롯해 자기, 불상, 전적(典籍), 와당 등 국보급 문화재 14점과 보물급 고서화 12점 등 많은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간송은 교육가이자 문화재 수집가로 평생 민족 문화재를 모으는 데 힘썼다. 또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지원·경영하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아 오늘날까지 그 뜻을 기리고 있다. 그런 이곳에서 지난달 겸재의 ‘어초문답’, 신윤복의 ‘미인도’ 등 조선시대의 풍속인물 그림을 내걸어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채워주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람객으로 전시 기간 내내 장사진을 이뤄 다시 한번 국민 미술관임을 입증했다. 이렇게 우리 문화의 지킴이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뭐니 뭐니 해도 최완수(69)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공력이 절대적이다. 지난 45년 동안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매년 두 차례 논문집 ‘간송문화’를 발간하고 이를 통해 ‘추사명품집’ ‘겸재명품집’ 등을 발표하며 미술사 연구의 산실(産室)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연구실에는 박사급 연구원만 수명이 있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층 연구실에서 만난 최 실장은 올해 우리 나이로 칠순인데도 10년은 더 젊어 보였다. 여기에 있으면 세월의 시계가 거꾸로 가느냐고 인사말을 먼저 건넸다. 그는 ‘부지노지 장지운이’(不知之 將至云爾)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걱정을 잊으며 늙음에 이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나 보다.”라며 웃는다. 청년의 미소처럼 해맑다. 전시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난 뒤여서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쁜지 물었다. “그제는 (연세대) 강의 나갔고 어제는 오랜만에 겸재 만나러 북악산과 인왕산에 다녀왔다.”고 했다. 겸재를 만나러? 궁금해하자 웃으면서 대답한다. “겸재는 장동팔경(壯洞八景)을 남겼습니다. 인왕산과 북악산에 걸친 장동(壯洞) 일대의 경승지 8곳, 그러니까 필운대, 대은암, 청풍계, 청송당, 자하동, 독락정, 수성동, 취미대 등을 그렸지요. 겸재 동호인 몇 명과 겸재를 생각하며 그림 속을 같이 답사했지요.” 그는 겸재 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1993), ‘진경시대’(1998), ‘겸재의 한양진경’(2004), ‘겸재 정선’(2009) 등을 펴내 겸재 연구의 종결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가 겸재와 인연이 된 것은 1966년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의 권유로 간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이곳에서 겸재의 작품들과 만나면서다. 그는 숙명적으로 연구에 몰입했다.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조선 왕조를 문화적 정체기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이를 뒤집기 위해 조선 문화의 절정기인 진경시대의 가치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지요. 조선 전기에는 중국을 닮아보려고 했지만 나중에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주자 성리학을 발전시켜 조선 성리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성리학이 꽃을 피웠고 이를 토대로 진경 시문학과 진경 산수화가 나왔습니다. 겸재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차원 높은 회화미로 표현한 최고의 화가이지요.” 겸재에 대한 찬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84세까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진경 산수화를 창안하고 절정에 올려놓은 뒤 추상 단계에까지 한꺼번에 통달한 말 그대로 화성(畵聖)입니다. 일부에서는 화원 출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당시에는 선비가 아니면 (진경산수를) 창안할 수가 없었지요. 그는 주역 등 사서삼경을 거의 외울 정도로 7서에도 아주 능통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주역의 음양조화, 중국 화가들도 감히 흉내조차 못 낸 남·북방 화법을 동시에 표현해 낸 겸재의 그림을 본 중국 사람들은 아주 환장을 합니다. 중국이 우리 문화에 미쳐버리는 이유도 바로 이런 확실한 종결편 때문이지요. 유라시아를 거쳐 우리나라에 흘러 들어온 문화들을 간단 명료하게 융합시키면서 종결 처리 하는 것이 우리 문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림에서는 겸재, 글씨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최 실장은 “조선 성리학 이념이 주도하던 진경시대(1675~1800)에는 우리의 문화가 세계 제일이라는 자존 의식이 아주 높았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우리 민족은 ‘요점 정리’를 하는 데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 실장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요점 정리의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모으고 있으며 간송미술관에서 이뤄지는 연구와 전시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지난달 전시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 것도 그러한 자긍심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자부했다. 전시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최 실장은 “(찾아준)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며 웃는다. “2시간 넘게 기다리면서도 어느 누구도 짜증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를 무려 7번이나 본 사람도 있어요. 올 때마다 간송미술관 도록을 가지고 가서 친척들에게 나눠 주면 그분들이 다시 간송미술관을 찾고 그랬습니다. 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왔는데 기다리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여긴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 문화를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다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도 했습니다. 관람객 대부분이 찬란했던 진경시대로 돌아가게 하는 즐거운 자리라고들 표현해 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매년 5월과 10월, 봄과 가을 딱 두 차례만 전시를 한다. 1971년 ‘겸재 정선 서화전시회’를 시작으로 그 원칙을 한번도 어기지 않았다. 특히 이를 통해 겸재와 추사에 관한 연구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의 독보적인 경지에 도달했다. 겸재와 추사만 연구하는 이른바 ‘간송학파’(30여명)까지 생겨났을 정도니 말이다. “우리 미술관은 연구 중심의 박물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를) 수집·보존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대중에게 봉사하기 위해 전시하는 것이지요. 문화의 고향에 돌아오게 하는 서비스를 하는 것입니다. 전시에 중점을 두다 보면 연구가 안 되고 산만해지고, 그러면 전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은 ‘괜히 왔나’ 하면서 다리만 아파합니다. 우선 연구에 집중한 다음 일목요연하게 전시를 해야 관람객에게 좋은 느낌을 선사할 수 있지요. 그래서 1년에 두번만 전시하는 겁니다.” 이어 요즘 세상이 쾌속과 안락 위주로 가다 보니 문화의 기반인 의식주마저 우리 것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들에게 우리의 것, 우리의 고향을 찾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했다. 다음 전시에 대해 묻자 그는 “연구 중”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요즘에는 어떤 것을 연구하는지 물었다. “조선 왕릉에는 석상, 호석 등 조선시대의 문화를 오롯이 표현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간직한 것들이지요. 진경시대의 석인들이 아주 사실적으로 조각한 덕에 시대적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에 대한 연구는 많이 진척됐습니다. 조선 초기의 석상은 명나라와 비슷하다가 점차 조선 스스로의 문화를 표현하고 있지요. 또 거기에는 의궤가 담겨 있습니다. 현장은 물론 자료 조사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걸 발표하면 (기존의 내용들이) 뒤집어질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웃음). 바로 새롭게 쓰는 조선통사거든요.” 최 실장은 겸재에 이어 내년에는 추사의 종결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뒤이어 ‘왕릉 종결편’도 개봉하겠다는 의욕을 내보였다. 사학자로 올곧게 살아온 그의 진지한 모습에서 다음 작품이 사뭇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고교 때 백아 김창현 선생 만나 조선 사대부의 한문·문화 섭렵 ●최완수 실장은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한학과 보학(譜學)의 대가였던 백아(白牙) 김창현 선생을 만나 한학에 빠져 조선 사대부의 한문과 문화를 모두 섭렵했다.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동국대 등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 오다 지금은 연세대 대학원 강의만 하고 있다. 1965~1966년 국립박물관을 거쳐 1966년부터 지금까지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추사집(1976), 금추사연구초(1976), 그림과 글씨(1978),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1993), 명찰순례 1,2,3(1994),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1998), 조선왕조 충의열전(1998),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1999), 겸재의 한양진경(2004), 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1, 2, 3(2007) 등이 있다.
  • [인사] 문화1차관 곽영진씨 내정

    [인사] 문화1차관 곽영진씨 내정

    이명박 대통령은 16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에 곽영진(54)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을 내정했다. 불교 신자인 곽 내정자는 경북 청도 출신으로 경북대 사대부고와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에 들어왔다. 옛 문화관광부 문화산업정책과장, 예술국장,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장 등을 지냈다. 곽 내정자는 실무자로서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공을 인정 받아 청와대 비서관으로 온 지 8개월 만에 차관으로 승진했다. 이 대통령은 또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에 김석붕(47)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기획비서관에는 신용출(46) 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각각 승진 발령했다. 행정자치비서관에는 윤한홍(49) 대통령실장실 선임행정관을, 위기관리비서관에는 최수용(55) 한국해양대 초빙교수를 각각 내정했다.최수용 내정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현직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들을 승진 발령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춘천시, 전국 첫 급행 통학버스 운행

    학생 등교전용 급행 시내버스가 전국 처음으로 강원 춘천에 등장한다. 춘천시는 새해부터 중·고생 등교시간에 맞춰 일부 시내버스를 아파트 등 학생 밀집지역에 투입, 해당 학교로 곧장 실어 나르는 학생전용 급행버스를 운행하겠다고 14일 밝혔다. 정규 시내버스 노선이 이곳저곳을 돌아 운행되는 탓에 학생들의 등교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막고, 학부모가 자가용으로 학생을 등교시키느라 가중되는 도심 교통난까지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아파트 단지별로 승강장을 지정해 특정시간에 학생들이 모이면 학교로 바로 등교를 시켜준다. 우선 내년 3월부터 유봉여고와 춘천여고 학생들의 75%가 살고 있는 퇴계, 석사, 신사우, 후평1·2·3동, 강남동, 동내면 등 8개 지역에 7개 노선의 버스가 투입된다. 내년 2학기부터는 춘천고, 성수고, 성수여고까지 9개 노선이, 2013년부터는 강원고, 기계공고, 춘천실고, 춘천농공고, 강원사대부고, 봉의고까지 15개 노선이 적용된다. 춘천지역 11개 모든 고교에 31개 노선이 운영되는 셈이다. 요금은 학생할인 960원,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810원을 받을 예정이다. 춘천시는 주거 밀집지역과 떨어진 지역 학생을 위해 통학택시도 함께 운행할 방침이다. 거주지역이나 학교가 같은 학생들 3~4명이 공동 이용하고 요금은 분담하도록 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택시가 오게 되며 학생들은 택시를 타고 등교한다. 이용은 별도의 홈페이지와 학교를 통해 탑승신청을 하면 콜택시 조합에 통지되고, 월 단위 요금을 선입금하는 방식이다. 지자체는 통학택시 운영에 따른 월 카드수수료를 부담하게된다. 통학택시는 내년 3월부터 강원사대부고, 봉의고, 강원고 학생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하고, 2013년부터 26개 중·고교로 전면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시는 통학택시를 위해 콜택시 1100대 중 희망을 받아 내년에 300대, 2013년 800대를 배정할 계획이다. 또 등교 시간 학생 우선 탑승을 위한 협약을 맺어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미 강원고와 유봉여고 춘천여고 춘천기계공고 4개교에 5개 노선이 운영 중인 하교버스도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이광준 춘천시장은 “등하교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안전한 통학 여건을 위해 1년 여의 준비 끝에 이 같은 운행 계획을 마련했다.”면서 “통학교통시스템이 정착되면 자가용 통학생이 80%가량 줄어 주변 교통난과 학부모들의 시간적·경제적 부담도 덜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조선 과거시험에 독도문제 출제

    조선 과거시험에 독도문제 출제

    300여년 전 조선 숙종 때 있었던 과거시험에서도 독도 관련 사안이 다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구지방변호사회 독도특별위원회는 경북 의성지역 선비였던 신덕함(1656~1730)이 남긴 문집에 있는 ‘전책’ 형식의 글에 울릉도와 독도에 관련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4일 밝혔다. 전책은 임금이 묻고, 자대부(사대부)가 답하는 형식의 과거시험을 일컫는다. 이 전책 형식의 글은 1693년 발생한 ‘울릉도쟁계’에 대한 과거 응시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으로, 실제로 전시에 출제됐다면 1696년 치러진 문과전시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문건을 분석한 한아문화연구소 유미림 박사는 “울릉도쟁계 관련 기록이 실록 등 사서에 남아 있고, 과거시험에서도 독도가 거론된 것을 보면 당시 울릉도·독도 문제가 조선·일본 관계에 매우 중대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울릉도 쟁계는 1693년 울산과 동래 어부 40여명이 울릉도에서 어로작업을 하다 일본 어부와 만나 충돌이 벌어져 일본 어부들이 안용복 등을 납치한 뒤 ‘조선 어민의 울릉도 출어금지’를 요청하는 동시에 울릉도에 대한 어업권과 영유권 분쟁을 일으킨 사건이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가을단풍처럼 화선지에 물든 선인의 삶

    가을단풍처럼 화선지에 물든 선인의 삶

    가을 단풍만큼이나 화선지를 다채롭게 물들인 조상의 숨결전이 잇따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초상화의 비밀’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지난달 27일 전시 시작 이래 9일 현재 1만 706명이 다녀갔다. 간송미술관의 ‘인물풍속대전’, 리움미술관의 ‘조선화원대전’이 그 뒤를 잇는다. 비교하자면 이렇다. 중앙박물관 작품은 선비정신을 중시하다 보니 그림에 서릿발 같은 위엄이 넘친다. 대신 정물화 같아 재미가 덜하다. 반면 간송의 작품들은 일상의 소소한 잔재미를 크로키처럼 잽싸게 잡아챘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림 속으로 뛰어들어 한데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리움의 작품들은 그림 속으로 뛰어들기보다 그림을 뒤에 배경으로 두고 운치 있게 즐기고 싶게 만든다. ●간송미술관 ‘인물풍속대전’ 한량들의 놀이 풍경을 담은 ‘연소답청’(年少踏靑)을 보면 과연 혜원 신윤복(1758~?)이다 싶다. 기어이 기생을 자기 말에 태우고 직접 끌고 다닌다. 세도가 자제 같은데 여자에 ‘미치니’ 종 노릇도 마다 않는다. 그래서 왼쪽 뒤편의 말도, 모자도 뺏긴 채 따라가는 종의 표정이 재밌다. 제 주인이 흥에 겨워 난장 놀음을 하는데 맞장구치기도 그렇고, 말리기도 그렇다. 그 난감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백인산 학예연구위원의 설명이 재미있다. “혜원의 아버지가 화원화가였던 신한평(1735~1809)인데, 이분이 일흔 넘게 사시면서 생계를 모두 해결했습니다. 그러니 신윤복은 왈자패들하고 어울려 속 편히 놀았던 것 같아요. 단원(김홍도)의 풍속화를 왕이 보는 그림이라 단정했다면, 신윤복은 자기가 먹고 놀던 모습을 그대로 그렸으니 퇴폐적이고 흥겨운 거지요.” 미인도를 비롯해 널리 알려진 신윤복의 그림들이 지금까지 화사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도 고관대작 자제들과 어울렸던 덕분에 좋은 재료를 쓸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단다. 김후신(1735~?)의 ‘통음대쾌’(痛飮大快)도 유쾌하다. 제목 그대로다. 배경을 빌딩으로 바꾸고 등장인물에게 양복만 입혀 두면 2차, 3차를 외치며 도심 뒷골목을 다니는 현대인과 같다. 겸재 정선(1676~1759)에서 시작된 진경산수화의 참맛을 내세우는 간송미술관답게 ‘어초문답’(漁樵問答)을 비교해보는 맛도 쏠쏠하다. 낚시꾼과 나무꾼의 문답이라는 ‘어초문답’은 성리학의 대의를 밝히는 내용 때문에 조선 유학자들에게 중요한 창작 모티프가 됐다. 해서 이전의 어초문답은 중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데 반해 정선의 어초문답은 인물, 배경, 옷매무새가 모두 조선풍이다. 16~30일. 무료. (02)762-0442. ●리움미술관 ‘조선화원대전’ 1층 전시장에는 왕의 행렬, 궁중 행사, 어진(임금 초상화) 등을 배치했다. 위엄을 갖춘 공식적인 모습이라는 점에서 중앙박물관 전시에 가깝다. 인물화에 있어서는 김홍도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명기(?~?)의 ‘오재순 초상’도 볼 수 있다. 지하 전시장은 간송과 같은 풍속화로 넘어간다. 전시장을 독특하게 분할하는 칸막이들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옥 마을을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관람객에게 주기 위한 설정”이란다. 간송이 민속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리움은 중국적인 냄새가 짙다. 화원화가들이 왕실과 사대부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제작한 만큼 아무래도 작은 화첩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해지기는 하지만 진경 그 자체보다 ‘그들의 취향’에 맞춘 듯한 분위기가 강하다. 전시의 가장 큰 장점은 요즘 스마트폰에 쓰이는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옛 그림을 자유자재로 확대해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가반차도’(動駕班次圖)는 가로 길이만 10m에 이른다. 김두량(1696~1763)과 김덕하(1722~1772)가 함께 그린 사계산수도(四季山水圖)는 길이가 2m에 가깝지만 폭은 8㎝가 채 안 된다. 이런 그림을 상세히 볼 수 있도록 부분 확대 또는 축소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진시황 무덤의 병마용이 똑같은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찬탄을 불러내듯 확대해서 들여다본 사람과 풍경 역시 모두 달라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3일부터 내년 1월 29일까지. 4000~7000원. (02)2014-6900. ●한국학중앙연구원 ‘영조대왕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영조대왕전’을 여는 이유는 민국의 이념 때문이다. 최근 연구 성과를 모아 보니 영조가 이미 민국의 이념을 내세웠다는 데서 시작했다. 6000점에 이르는 영조 관련 소장 자료 가운데 민국의 면모를 드러내는 300여점을 추려냈다. 영조 어진을 비롯해 숙종의 병이 나은 것을 기념해 열린 잔치 모습을 그린 ‘숭정전 진연도’ 등이 공개된다. 11월 20일까지. 무료. (031)709-811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7) ‘동의보감’ 허준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7) ‘동의보감’ 허준

    허준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모르면 간첩이라는 농담도 안 통한다. 그만큼 범국민적 인물이라는 뜻이다. 물론 친근한 것 이상으로 신비화되어 있기도 하다. 고난에 찬 삶의 역정, 라이벌들의 비방과 음모, 예진 아씨와의 지순한 사랑 등등. 물론 하나같이 소설과 드라마가 만들어낸 이미지다. 이 이미지들로 인해 허준은 400여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명의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 화려하고 강렬한 이미지들로 인해 그의 진면목은 봉쇄되어 버렸다. ●허준이 ‘허준’이 된 까닭은? 먼저, 허준의 라이벌 역할을 담당한 양예수는 실제로 허준의 스승뻘이자 당대 최고의 명의였다. 동의보감 편찬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지만 정유재란 이후 빠졌다. 다음, 많은 이들이 지적했다시피 허준의 스승으로 나오는 유의태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허구적 인물의 등장 자체야 문제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소설과 드라마의 절정에 해당하는,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은 참으로 문제적이다. 이것은 마치 한의학이 미망의 어둠을 거쳐 해부학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학적 편견을 조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예진 아씨와의 러브스토리? 택도 없는 소리다. 사랑이 이렇게 특화된 건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다. 그 이전에는 우정과 의리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였다. 20세기 이후 우정이 사라진 자리를 사랑과 연애가 채웠고, 그 결과 허준을 비롯하여 모든 사극의 주인공들은 본의 아니게(?) 사랑의 화신이 되어야 했다. 아무튼 좋다. 허준의 ‘만들어진’ 이미지 가운데 더 결정적인 결락이 하나 있다. 허준이 ‘의성’ 허준이 된 건 명의라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슨 소리? 허준이 전통의학의 아이콘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건 의사로서가 아니다. 양예수를 비롯하여, 당대 허준을 능가하는 명의들은 많았다. 하지만 허준처럼 ‘동의보감’이라는 대저서를 남긴 사람은 없었다. 아니, 조선은 물론이고 동양의학사를 다 통틀어서도 동의보감처럼 방대하고 체계적인 의서는 없다. 고로 허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 ‘허준’이 된 건 어디까지나 동의보감이라는 저서 때문이다. 허준의 생애는 의외로 드라마틱하지 않다. 양반집 서자로 태어났지만 그것 자체가 특별한 사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의원이 되는 과정도 비교적 순탄했다. 사대부 유희춘의 추천을 통해 내의원에 들어갔으며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면서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대부 관료들조차 앞다퉈 도망을 갔지만 허준은 선조의 피란길을 동행함으로써 그 신임은 더욱 두터워졌다. 이후 승승장구하여 서자 출신임에도 종1품 승록대부에까지 올랐다. 이 정도야 뭐, 소설과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너무 밋밋하지 않은가. 이런 허준을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탁월한 존재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조다. 더 구체적으론 선조가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맡기면서부터다. 그때 이후, 허준의 이 평범한 ‘성공스토리’는 비범한 삶의 여정으로 변주된다. “허준은 본성이 총민하고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경전과 역사에 박식했다. 특히 의학에 조예가 깊어서 신묘함이 깊은 데까지 이르렀다. 사람을 살린 것이 부지기수다.”(‘의림촬요’) 허준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자료다. 보다시피 그의 삶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의사 이전에 학문이다. 당대 명망 높은 사대부들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 또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많은 의서들을 편찬할 수 있었던 것 등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학문적 열정과 집념이었다. ●동의보감의 탄생-전란에서 유배까지 1596년 어느 날 선조는 어의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명한다. 허준의 나이 58세. 허준의 생애로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전란의 와중이었다. 전란 중에 잉태된 의서! -극적이라면 이런 장면이 극적이다. 허준은 그 즉시 유의 정작과 태의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과 함께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과정은 실로 험난했다. 바로 그 다음해 정유재란(1597)이 발발하면서 초기 작업은 중단되었다. 난이 수습되긴 했지만, 프로젝트팀은 해체되었다. 결국 의서의 편찬은 허준 개인의 몫이 되었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작업의 속도는 한없이 더뎠다. 그렇게 해서 무려 10여년이 지났다. 1608년 2월 1일. 허준의 생애에, 아니 동의보감 편찬의 여정에 결정적인 변곡점이 찾아왔다. 선조가 승하한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선조의 위상은 이중적이다. 선조의 등극과 더불어 조선은 훈구파의 집권이 끝나고 마침내 ‘사림의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사림 내부의 분화와 갈등이 점화되면서 ‘당쟁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당시는 특히 북인 안에서 대북파와 소북파의 분화가 심각하게 재연되는 때였다. 대북이란 선조의 후계자인 광해군을 미는 쪽이고, 소북이란 선조가 말년에 낳은 영창대군을 미는 쪽이다. 한데, 하필 선조가 승하할 당시 내의원 전체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도제조가 유영경이었는데, 이 유영경이 바로 소북파의 리더였다. 대북파에서 이 사건을 간과할 리 없다. 어의 허준에게 책임을 묻고 그 책임은 허준의 상관인 유영경에게까지 미쳤다. 허준도 이 숙청의 피바람을 피해갈 순 없었다. 하지만 광해군한테 허준은 특별한 존재였다. 왕자 시절 두창에 걸려 목숨이 오락가락할 적에 다른 어의들은 약을 썼다가 허물을 뒤집어쓸까봐 망설였지만 허준은 과감하게 약을 써서 목숨을 구해주었다. 빗발치는 상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허준을 적극 방어해 주었다. 이를테면, 허준을 위기에 빠뜨린 것도 의술이었고, 허준을 구해준 것도 의술이었던 것이다. 목숨은 건졌지만 그래도 유배만은 피할 수 없었다. 69세의 나이로 머나먼 의주땅으로 유배를 가야 했으니, 참으로 고단한 말년이었다. 하지만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다던가. 유배기간은 1년 8개월. 놀랍게도 그 기간 동안 동의보감이 완성되었다. 이때 한 작업은 전체 분량의 반에 해당한다. 유배지는 그에게 집필을 위한 완벽한 조건을 마련해준 셈이다. 대반전! 만약 이 작업이 없었다면 유배지에서의 시간은 얼마나 억울하고 쓸쓸했으랴. 허준으로 인해 동의보감이라는 비전이 열리기도 했지만, 동의보감은 무엇보다 그 편찬자인 허준의 생을 구해주었다. 이것이 바로 ‘자기구원’으로서의 공부다. 흔히 생각하듯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있었기에 고난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다. 허준과 동의보감이 바로 그런 관계였던 것. 71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돌아오자마자 허준은 후반부 작업에 박차를 가해 마침내 동의보감을 완성해서 조정에 바친다. 시작한 해로부터 따지면 무려 14년의 기나긴 여정이다. 조선으로서도 전란과 정권교체, 당쟁 등으로 이어진 초유의 시간이었고, 허준으로서도 영광과 오욕을 한꺼번에 누린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이후 내의원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역병에 관한 책을 편찬하는 등 조용한 여생을 보내다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친다.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선조는 허준에게 의서편찬을 명하면서 세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기존 의학사의 난만한 흐름을 정리하라는 것, 둘째, 질병이 아니라 수양을 중심으로 한 양생서를 쓰라는 것, 마지막으로 조선의 약재를 가난한 백성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 허준은 선조의 세 가지 당부를 훌륭하게 구현해냈다. 먼저, 동의보감에는 의학사의 양대 지존인 ‘황제내경’과 ‘상한론’을 비롯하여 손진인의 ‘천금방’, 이천의 ‘의학입문’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의학사의 최고봉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 바탕 위에서 허준은 오랜 기간 서로 갈라져 온 양생과 의술을 새로운 차원에서 통합하였다. 즉, 그는 병과 처방이 아니라, 몸과 생명을 전면에 내세웠다. 질병에서 생명으로! 그렇게 해서 구성된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로 이어지는 목차는 어떤 의서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는 분류학의 결정판이다. 아울러 처방과 약재들의 방대한 목록은 자연사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말하자면, 최고의 지적 성취와 가장 대중적인 용법을 두루 갖춘 의서가 탄생한 셈이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양생이다. 양생은 단지 임상을 넘어 존재의 우주적 ‘탈영토화’를 꿈꾸는 ‘삶의 기술’이다. 요컨대, 양생이라는 비전 위에서 몸과 우주, 질병과 자연, 생명과 존재의 근원적 일치를 기획했던 자연철학자, 그것이 허준의 진면목이다. 고미숙 감이당 연구원
  • 종로, 24일 축제 보따리가 쏟아진다

    종로, 24일 축제 보따리가 쏟아진다

    종로구가 24~28일 인사동과 대학로, 청계천 등 종로 일대에서 ‘고고(古GO)종로, 문화 페스티벌 2011’을 개최한다고 20일 밝혔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이뤄졌던 크고 작은 행사들을 통합해 구의 대표 축제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통합 축제에 따라 고궁과 인사동, 대학로 등 종로의 문화·관광 자원 활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축제 명칭도 ‘옛 고’(古)와 영어로 ‘가다’(GO)를 함께 써서 역사의 향기를 풍기는 종로에서 전통을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역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24일 오후 2시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열리는 개막행사를 시작으로 나흘에 걸쳐 인사동길에서 국악 공연과 다도체험 등 인사전통문화축제가 개최된다. 24∼25일 청계천 광통교 주변에서는 조선시대 종로에 자리 잡았던 면포전, 면주전, 지전 등 육의전 체험의 시간이 마련된다. 27∼28일에는 운현궁에서 궁중과 사대부가의 전통음식을 맛보며 만들어 보는 행사도 펼쳐진다. 페스티벌을 신호탄으로 대학로에서는 24일부터 11월 27일까지 ‘대학로로 마실가자’라는 주제로 소극장 축제가 열린다. 인도·미국 등 8개국의 해외초청작 거리공연과 지역공모 선정작이 무대를 빛낸다. 고궁과 성곽길 순례 행사도 준비됐다. 24일과 27일, 28일에는 선착순 40명씩 창덕궁에서 역사·문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부용지, 애련지, 옥류천 등을 따라 해설사와 함께 3시간을 걸으며 고궁의 숨겨진 역사와 숨결을 느끼는 시간이다. 24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는 지역에 자리한 20개 사립박물관이 참여하는 박물관 나들이도 즐길 수 있다. 민화 그리기, 열쇠패 만들기 등 체험행사도 곁들인다. 24일에는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출발해 성곽을 따라 돌며 도성 안 풍경을 감상하는 ‘순성(巡城)놀이’가 진행된다. 김영종 구청장은 “평일 3만~5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주말엔 8만~10만명이나 몰리는 종로의 모든 것을 보며 한국의 멋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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