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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백두산 오르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한 말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백두산 오르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한 말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똑같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이 대표는 지난 21일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와 인터뷰를 했다. 사회자는 이 대표에게 지난 20일 백두산 천지에 오른 소감부터 물었다. 이 대표는 “그날 평양에서는 비가 오고, 날씨가 굉장히 궂었기 때문에 사실 큰 기대를 안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백두산 중반으로 오르는데, 날이 너무 화창하고,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멋진 광경을 저희들이 보게 되었습니다”라면서 “이건 직접 가보지 않고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본 소감을 물었다. 이 대표는 “일단은 ‘샤이한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수줍은 미소 같은 것을 많이 띠고요”라면서 “우리가 예전에 생각했던 북한 지도자들과는 달리 상당히 열려있는, 예를 들어서 이번에 최현우 마술사가 같이 가지 않았습니까? 탁자 위에다가 카드를 쫙 뽑아놓고 마술을 시키는데, 하라는 대로 다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편안하게 어울리고, 소통하는 모습들도 놀라웠습니다”라고 전했다. 이 대표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9월 평양공동선언’을 놓고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자유한국당과 ‘비핵화 진전이 없다’고 평가한 바른미래당을 비판했다. 이 대표는 “저는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상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도 폭파했고, 동창리도 폐쇄 상태이고요. 이번 회담에서 아주 구체적인 다음 단계의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명시를 했습니다”라면서 “예를 들어 동창리 같은 경우에 지난번에는 와서 직접 볼 기회를 안 줬으니까 이번에는 유관국들 와서 다 보시라고, 그걸 폐쇄하는 과정들을 입증하겠다, 그리고 영변의 핵 시설도 실제로 핵 물질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는 영구 폐쇄 단계로 나가도록 하겠다, 이런 아주 구체적인 언급들을 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분들께서 남북 간의 적대적인 대립 관계가 계속 유지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면, 실제 비핵화가 진전되고 있는데, 비핵화가 안 되고 있다고 얘기를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죠”라고 덧붙였다.사회자는 이 대표에게 이재용 부회장과 나란히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이야기도 나눴는지를 물었다. 이 대표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그쪽은 경제인들하고 계속 회의를 하고, 따로 움직이셨기 때문에요”라면서도 “다만 백두산 천지에 오를 때 잠깐 교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라며 다음 일화를 소개했다. “천지 오늘 날씨가 굉장히 좋다고 (이재용 부회장이) 얘기를 하길래, 제가 3대가 업을 쌓아야 이런 날씨를 볼 수 있다고 여기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7일 이재용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와 공기업 대표 10여명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지난 20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사단은 이재용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을 증인 및 참고인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이 대표는 “기흥공장(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 얼마 전에 이산화탄소 폭발 사고로 두 명이 사망했고, 삼성 공장이 2013년 이후에 190건에 달하는 중대 재해들이 계속 발생해왔습니다. SK 경우에도 가습기 살균제 유해물질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 감사를 요구를 한 것인데요”라면서 “국민들 앞에서 이런 사고가 왜 벌어졌고, 어떤 문제가 있었고, 사후에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할 것이며,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그 기업 책임자로서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당연히 국정감사장에 나와서 국민들에게 그런 진상과 책임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이 사실을 정확하게 함께 보고를 드리는 것이고, 해결 방안을 찾아 나가기 위한 것이고요. 그래서 재벌기업들도 여기에 나와서 망신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자세로 오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별해설사와 별자리 찾아보세요…제주서 29일~10월30일 별빛 축제

    사단법인 탐라문화유산보존회는 29일부터 10월30일까지 서귀포 삼매봉 일원에서 별빛 축제를 연다. 축제기간 동안 범섬과 문섬, 새섬, 섶섬, 마라도와 가파도, 그리고 백록담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삼매봉을 배경으로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한 추억의 인증샷을 서로 뽐내보는 ‘내 마음속의 삼매봉’ 사진 콘테스트가 열린다. 관광객과 도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인증샷 콘테스트는 10월 30일까지 본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진을 올린 후 탐라문화유산보존회 인스타그램(tamna2146)에 태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조회수 상위권을 선정, 대상 30만원, 최우수상 20만원, 우수상 10만원, 장려상 5만원을 준다. 또, 가족과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29일부터 10월14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오후 6시부터 ‘별에게 기원하는 무병장수의 꿈’이라는 주제로 남성대에서 건강 힐링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는 행사로서 별해설사와 함께 가을별자리 찾기, 남극노인성에 얽힌 고전 듣기, 단전호흡 배우기, 자아를 찾아가는 명상, 달빛·별빛 벗삼아 산책하기 등이 펼쳐진다. 매주 토·일요일 오후 8시부터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문화공연인 ‘별과 시의 하모니’ 행사가 열린다. 29일에는 ‘별과 시와 음악이 흐르는 밤’이라는 주제로 ‘바람난장’의 시낭송과 공연이, 30일에는 7080을 위한 무성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가 상영된다. 영화에 둘째아들로 출연한 우대근 배우와 신양균 감독 등 원로 영화인이 참석해 옛 추억을 꺼내보며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이 밖에도, 주말마다 부대행사로 딱지치기, 제기차기, 투호놀이, 공기놀이 등 엄마 아빠가 어린 시절 즐기던 추억의 놀이를 아이와 함께 해보는 전통 민속놀이 마당이 펼쳐진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트럼프가 처음 공개한 6·25 참전 미군 유해 신원은?

    트럼프가 처음 공개한 6·25 참전 미군 유해 신원은?

    미국이 최근 북한으로부터 넘겨받은 6·25전쟁 참전 미군 유해 가운데 2명의 신원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최근 확인된 유해가 인디애나 버넌 출신의 찰스 맥대니얼(당시 32세) 육군 상사와 노스캐롤라이나 내시카운티 출신의 윌리엄 존스(당시 19세) 육군 일병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트윗 발표’ 이후 국방부도 이들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영웅이 집에 왔다”면서 “그들이 편히 잠들기를 바라고, 가족들의 고통도 끝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두 명 가운데 맥대니얼 상사는 녹슨 인식표(군번줄)가 발견돼 이미 이름이 알려진 전사자다. 그의 인식표는 지난달 두 아들에게 먼저 전달됐다. 하와이 지역매체 스타애드버타이저 등에 따르면 맥대니얼 상사는 육군 1기병사단 8기병연대 소속의 위생병으로 1950년 11월2일 북한 평안북도 운산 남서쪽에서 중공군과 교전하다 실종 신고됐다.존스 일병은 25보병사단 24보병연대 소속으로 1950년 11월26일 평안북도 구장에서 중공군과 싸우다가 역시 실종됐다. 그가 활약한 24보병연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이며, 장교들만 대부분 백인이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초 북한으로부터 55개의 유해 상자를 돌려받아 신원 확인 작업을 벌이는 동시에 아직 북한에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군 유해를 추가로 찾기 위한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켈리 맥키그 국장은 이날 북한 내 미군 전사자 발굴작업 재개의 조건을 놓고 다음달 북한과 대면 협상을 시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AP에 따르면 매키그 국장은 “북한에 대한 보상 금액 등의 조건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내년 봄 발굴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전쟁포로·실종자의 날’을 맞아 성명을 내고 “실종된 우리나라의 영웅들을 찾기 위해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6·12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약속을 받아낸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 결과 실종된 전사자 2명의 신원을 확인했고, 아직 한국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미국인들을 최대한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다시 부풀렸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토종여우, 영주 상징 캐릭터로” 소백산 일대 주민들 청원

    “토종여우, 영주 상징 캐릭터로” 소백산 일대 주민들 청원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인 토종 여우 복원 사업이 한창인 경북 영주지역에서 여우를 캐릭터로 한 상품(사업)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3일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과 경북 영주시에 따르면 2012년 10월 영주 순흥면 소백산 일대에 토종 여우 암수 한 쌍을 방사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40마리를 순차적으로 방사했다. 현재 소백산에는 현재 소백산에 19마리(암컷 13마리)의 여우가 활동 중이며, 2020년까지 최소 50여 마리가 소백산 일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복원 사업할 계획이다. 이로써 소백산은 지리산(반달가슴곰), 설악산(산양)과 함께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 복원사업 3대(大) 현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영주시는 지리산과 접해 있는 전남 구례군, 경남 하동·산청군 등과 달리 토종 여우를 활용한 상품화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구례군은 2011년 전국 처음으로 여자씨름단을 창단하면서 팀 이름을 반달곰씨름단으로 지었고, 구례농협은 반달가슴곰을 브랜드로 한 쌀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하동군에선 사단법인 ‘반달곰 친구들’과 화개면 의신마을회 회원들은 올해 처음으로 곰이 겨울잠에서 께어나는 시기(4월)에 맞춰 ‘곰깸축제’를 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반달가슴곰은 이제 지리산 ‘깃대종(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생물)’이 됐다. 양양군은 설악산 산양 산삼 명품화 사업을 추진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때문에 영주지역에서 소백산 여우를 캐릭터로 한 상품 개발 및 사업 추진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병국 소백산여우영농보합법인 대표는 “우선 토종 여우와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간직한 영주 소백산을 활용한 농산품 캐릭터가 개발될 경우 이미지 향상 뿐만 아니라 판로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이런 사업에 영주시가 적극 나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주시 관계자는 “지난해 소백산철쭉제 때 토종 여우를 마스코트로 내세운 결과, 반응이 좋았다”면서 “앞으로 사과, 인삼 등 지역 특산품 포장지 등에 소백산 여우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영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송파구, 제11기 SK러브러브봉사단 자원봉사자 모집

    서울 송파구는 오는 28일까지 ‘SK러브러브봉사단’에서 활동할 제11기 자원봉사자 100명을 모집한다고 21일 밝혔다. SK러브러브봉사단은 청소년들이 주축인 봉사단체로, 송파구와 SK프로나이츠 농구단 협업으로 2008년 결성됐다. 구 관계자는 “스포츠와 결합한 기금 마련을 통해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의 의미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고 지역 내 스포츠 문화 확산에도 기여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봉사단의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러브기금 마련 캠페인이다. SK프로나이츠 시즌경기(27회) 동안 잠실종합체육관을 찾는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안내하고 후원금을 모집한다. 후원자에겐 SK프로나이츠 매거진과 경기입장권, 상품권 등으로 교환 가능한 러브캡슐을 제공한다. 지난 2017-2018 시즌엔 32회의 러브캠페인을 실시, 약 130만원을 모금해 지역 내 저소득 중·고등학교 학생 4명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11기 봉사단의 기금모금 캠페인은 내달부터 2019년 3월까지 진행된다. 시즌 종료 후에는 어르신 정서지원을 위한 봄·가을맞이 나눔봉사와 재능나눔 밴드공연 등을 한다. 봉사단 참여 희망자는 송파구자원봉사센터 홈페이지를(www.songpavc.or.kr) 참고해 신청하면 된다.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하는 청소년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응원한다”며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SK러브러브봉사단에 많은 분들이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사설] 뉴욕·빈 북·미 대화, ‘2021년 1월’ 비핵화 탄력 붙이길

    9·19 평양선언에 대한 미국의 첫 공식 반응은 북한과의 협상 재개다. 기다렸다는 듯 나온 신속하고 아주 긍정적인 신호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현지시간 19일 성명을 발표하고 북·미 협상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갖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미국 측 대표로는 얼마 전 임명돼 한국과 중국, 일본을 순방하며 상견례와 비핵화 조율을 마친 국무부의 스티븐 비건 대북 정책 특별대표를 내세웠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와는 별도로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리용호 외무상을 초청해 고위급 회담을 하겠다고 밝혀 이례적으로 뉴욕과 빈에서 북·미 대화가 잇따라 열리게 됐다. 7월 폼페이오의 3차 방북 이후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북·미 간 비핵화·체제보장 협상에 탄력이 붙을 조건이 마련됐다. 그런 전망이 가능한 것은 북·미가 비핵화의 구체적 시한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8월 평양에 간 우리 특사단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안에 비핵화를 이루겠다고 확인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김 위원장이 약속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대통령의 임기 안에 비핵화 완성을 목표로 북·미 간 근본적 관계 전환을 위한 협상에 즉시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영변 핵시설과 동창리 미사일 시설의 영구 폐기 의사가 미국의 협상 재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2021년 1월까지는 2년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북·미가 북핵을 놓고 대결해 온 25년 세월을 놓고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비핵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관건은 북·미가 어떻게 상호 신뢰를 유지하며 비핵화와 국교 정상화 목표에 도달할 것인가다. 북한의 비핵화를 여전히 의심하는 미 조야, 그리고 미국의 체제보장 약속을 아직도 불신하는 평양이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중재자로서 큰 역할을 했지만, 당사자는 북·미다. 북·미 두 정상이 비핵화의 동력을 만들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곧 만날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우리는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리용호 회담 결과에 따라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잡힐 가능성이 있다. 비핵화와 관련한 외교 일정이 촘촘하다. 오는 24일 뉴욕에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연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대북 조치다. ‘핵사찰’까지 언급된 만큼 미국도 종전선언을 서둘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북한이 갖는 체제보장 불안을 덜어 내는 첫걸음이며, 핵이란 짐을 벗게 하는 추동력이 될 것이다.
  • 롯데건설 임직원들 봉사활동…서울 동대문구 아동센터 보수

    롯데건설은 지난 19일 임직원들이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과 전농동, 휘경동 일대 지역아동센터 3곳을 방문해 시설 개선 봉사 활동을 했다고 20일 밝혔다. 임직원 30여명은 각 지역아동센터 내 바닥과 벽 등 노후 시설을 보수·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TV와 에어컨, 김치냉장고 등 물품을 지원했다. 롯데건설은 전 임직원이 매달 ‘샤롯데 봉사기금’을 조성해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 왔다. 롯데건설 봉사단인 ‘샤롯데 봉사단’은 2011년 18개팀으로 시작해 현재 84개팀이 활동하고 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월급 300만원’ 모병제 가능할까

    [밀리터리 인사이드] ‘월급 300만원’ 모병제 가능할까

    모병제. 복무기간 단축과 더불어 군 이슈 중 ‘가장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현재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60만명이 넘는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짧은 군복무 기간으로 인한 낮은 숙련도와 병역 기피 등 각종 사회문제, 한창 공부하거나 일할 나이인 청년에 지우는 부담 등 문제점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2000년대 들어 학계를 중심으로 모병제 논쟁이 심화됐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모병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출산이 심화해 지금과 같은 대규모 병력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진데다 머릿수 대신 첨단 무기를 활용하는 ‘군 과학화’가 이슈로 부상하면서 모병제 도입 가능성도 덩달아 수면 위로 부상하는 모습입니다. ●징병제 찬성 48% 모병제 찬성 35% 국민들은 징병제와 모병제 중 어느 쪽이 낫다고 여길까. 대체로 징병제에 더 많은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병제에 대한 찬성 의견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갤럽이 2016년 전국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징병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48%, 모병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35%로 격차가 불과 13% 포인트로 좁혀졌습니다. 징병제를 찬성하는 쪽은 그 이유로 ‘국방 의무는 공평해야 한다’(24%)와 ‘국가 안보와 존립에 필요하다’(23%)는 의견을 많이 냈습니다. 반면 모병제 도입에 찬성하는 응답자들은 ‘군대는 원하는 사람만 가야 한다’(31%)를 주요 이유로 꼽았습니다. 응답자의 72%는 책임감, 자립심, 인내심, 조직생활 경험 등을 들어 군 생활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반면 20%는 시간 낭비, 경직되고 획일적인 군대문화를 이유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논쟁이 치열한 가운데 지난해 한국혁신학회지에는 ‘한국군 병역 제도의 모병제로의 전환 가능성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이동환 육군 1사단 소위와 강원석 육군사관학교 경영학 부교수가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연구는 현실적으로 우리의 예산 상황에서 모병제가 가능한지를 살폈습니다. 많은 분들은 ‘병사에게 월급을 높여주면 군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결과는 다르게 나왔습니다.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올해 61만명인 군 병력은 2022년 52만명으로 크게 줄어듭니다. 하지만 보고서가 발간될 당시에는 이런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2015년 63만 3000명인 병력을 2030년 52만 2000명으로 감축하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모병제, 경제적으로 충분히 가능” 2015년 기준으로 29대71인 간부와 병사 비율은 2030년 40대60으로 재편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육군 병사는 같은 기간 49만 8000명에서 38만 7000명으로 11만명 가량 줄어듭니다. 반면 공군(6만 5000명), 해군(4만 1000명), 해병대(2만 9000명) 병력은 변화가 없습니다. 우선 연구진은 모병제로 전환되는 병사의 월급을 계산했습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2015년 235만원, 2020년 256만원, 2025년 280만원, 2030년 305만원으로 추정됐습니다. 연봉으로는 2015년 2820만원, 2020년 3072만원, 2025년 3360만원 2030년 3660만원입니다. 일반 근로자와 비교해도 아주 적진 않은 금액입니다. 반면 지금과 같은 징병제를 유지하면 2015년 1인당 연간 유지비 500만원, 2030년 649만원으로 훨씬 적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연구진은 육군 병력을 모두 모병제로 전환한다고 가정했을 때 2015년 35만 2000명, 2030년에는 23만 2000명이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징병제보다는 인원을 적게 편성한 것입니다. 또 시나리오1은 모병제로 100% 인력을 충원하도록 가정하고 시나리오2는 90%, 시나리오3은 80%로 정했습니다. 2030년 시나리오1을 적용하면 모병제 육군 병력은 23만 2000명, 시나리오 3을 적용하면 18만 6000명이 됩니다. 분석 결과 모병제로 전환하기 위해 추가로 정부가 투입해야 하는 예산은 5조 2942억(시나리오3)~6조 9924억원(시나리오1)으로 추정됐습니다. 적지 않은 예산이고 혈세를 투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병제로 전환하지 않아도 병력 유지비가 해마다 증가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병력유지비가 매년 4.5% 늘어나도록 가정하면 2030년 육군 병사가 38만 7000명으로 줄어들어도 유비지는 2015년보다 11조 4874억원을 추가로 투입해야 합니다. 병력을 27만 9000명으로 줄여도 9조 1919억원을 더 투입해야 합니다.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면 모병제로 전환하기 위해 투입하는 비용보다 3조 8977억~5조 5737억원이 더 필요해진다는 겁니다. 연구팀은 “전체 병력규모를 35만 명까지 감축한다고 가정하면 모병제로의 전환이 경제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평가했습니다.물론 모병제 전환은 많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이 연구는 순수하게 경제적 가능성만 살핀 것일 뿐 정치적 지형이나 여론 등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30만~35만명으로 병력 규모를 대폭 줄이려면 남북 긴장관계가 완화돼야 합니다. 또 있습니다. 연구팀은 “군을 첨단 기술형 강군으로 변화시키고 군의 구조를 군단중심의 전투체제로 개편해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또 미국 등 선진국에서 운영하고 있듯이 군대는 전투에 특화하고 각종 보급 소요인 군수, 무기, 식품 등의 작전지속지원 부문은 민간군사기업(PMC)에게 이전해 일자리 창출과 전문기업 육성효과를 누리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징병제 10개국 뿐…모병제 전환 가속화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연구진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34개국 중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터키, 이스라엘, 멕시코, 그리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10개국에 불과합니다. 유럽 선진국들은 대부분 징병제 폐지를 추진하거나 검토하고 있어 주요 국가 중 이스라엘과 터키 등 극소수만 징병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세계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미국은 이미 1973년 모병제로 전환했습니다. 다만 경제력이나 인구 측면에서 우리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겁니다. 독일은 2011년 7월 뒤늦게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했습니다. 1990년 통일 뒤에도 20년이나 징병제를 유지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통일비용 부담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병역기피가 확산하고 군 병력 전문성 향상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결국 모병제로 전환했습니다. 프랑스도 비교적 최근인 2001년 모병제를 도입했습니다. 걸프전과 코소보전에서 모병제 국가인 영국과 미국에 비해 전력이 뒤쳐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모병제 전환 논의가 확산했다고 합니다. 대만은 ‘징모혼합제’ 국가입니다. 1994년 이후 출생자는 4개월만 복무하고 바로 예비군으로 편성됩니다. 대만은 올해 모병제를 전면 도입하려고 했지만 예산, 병사 부족 등의 문제로 계획이 계속 늦춰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폼페이오 “북미협상 곧바로 할 준비…오스트리아 빈서 회담”

    폼페이오 “북미협상 곧바로 할 준비…오스트리아 빈서 회담”

    미국이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축하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 내 비핵화 완성을 목표로 북미 협상을 곧바로 할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을 통해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에게 평양에서의 성공적 회담 결과에 대해 축하의 뜻을 전한다”면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북한 카운터파트 간 비핵화 협상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시작하자고 북측에 제안했다. 남북 정상의 공동기자회견 및 ‘9월 평양 공동선언’ 발표 1시간 만인 이날 오전 0시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사찰(Nuclear inspections)을 허용하는 데 합의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환영 트윗과 함께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북한과 관련해 엄청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 뒤 북미 협상을 총괄하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이 최근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재개를 공식화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미국과 IAEA 사찰단의 참관 아래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히 해체하는 것을 포함,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싱가포르 공동 성명을 재확인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김 위원장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를 향한 조치 차원에서 이미 발표한 대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을 미국과 국제적 사찰단의 참관 속에서 영구히 폐기하는 작업을 완료하겠다는 결정을 한 데 대해 환영한다”고도 덧붙였다. 이와 함께 FFVD가 김 위원장이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한 내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성명에서 “이 같은 중요한 약속들에 기반해 미국은 북미 관계를 전환하기 위한 협상에 즉각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오늘 아침 카운터파트인 리용호 외무상을 다음주 뉴욕에서 만나자고 초청했다. 나와 리 외무상 모두 이미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하기로 돼 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특히 “우리는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능한 한 빨리 만날 것을 북한의 대표자들에게 요청했다”면서 IAEA 본부가 위치한 상징성이 있는 빈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실무협상을 진행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번에 새롭게 가동될 ‘빈 채널’과 관련해 “이는 2021년 1월까지 완성될 북한의 신속한 비핵화 과정을 통해 북미 관계를 변화시키는 한편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협상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21년 1월까지 비핵화를 완성한다는 시간표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이 약속한 내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이달초 방북한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 비핵화’ 시간표를 언급했다고 특사단이 발표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날 발언은 단순히 협상이 재개되는 차원을 넘어서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을 구체화함으로써 70년간의 북미간 적대 관계 청산을 종착지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프로세스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지난달 24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불투명한 논의 진전 전망 속에서 무산됐던 이후 부침을 겪어온 북미 간 대화가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 방북과 평양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날 언급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 변화’, ‘평화체제 구축’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합의 사항인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4·27 판문점 선언 재확인 및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미 간 대화 국면 급전환과 맞물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문제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과 곧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럴 것(We will be)”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백악관은 지난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4차 친서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요청했고, 백악관은 이에 대해 조율 작업이 진행 중”이라며 2차 북미정상회담 추진을 기정사실화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미간 2차 정상회담이 10월 개최 방안을 포함, 조기에 가시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사설] 북한 영변 핵시설 폐기 빅카드, 미국은 화답하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제 이틀째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 협상의 불씨를 되살릴 중요한 합의를 내놓았다. 이날 발표된 ‘평양공동선언’에는 북한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전문가 참여하에 영구적으로 폐기하고, 미국의 상응 조치를 봐가며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쇄도 추가로 취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미사일 발사대의 폐기가 ‘미래의 핵’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영변 핵시설 폐쇄는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현재의 핵’ 포기에 해당한다. 영변 핵시설 폐쇄가 실현된다면 비핵화의 획기적인 진전이다. 공개된 내용 외에도 비핵화와 관련해 두 정상이 많은 논의를 했다니 우리 측이 미국에 전달할 북한의 구체적인 조치에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며 육성으로 ‘확약’한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북 핵개발의 심장부 폐쇄 용의 높이 평가 영변 핵시설은 북한이 2010년 미국 전문가를 불러 고농축우라늄을 추출하는 원심분리기 2000개를 보여 주고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곳이다. 영변에는 이 밖에도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재처리 시설과 핵물질 저장시설, 5㎿급 실험용 원자로도 있다. 북한 핵개발의 심장부라 할 수 있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4년 공습을 검토했다. 동창리 시험장 폐기도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지난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때 김 위원장의 약속과 달리 보도진만 참여시켜 반쪽짜리라는 논란이 됐던 만큼 이번에는 전문가 입회를 통해 뒷말을 없애고 진정성을 보여 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우리 특사단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21년 1월까지 비핵화를 하겠다는 시한을 천명한 데 이어 이번에는 영변 핵시설 영구 폐쇄라는 빅카드를 던졌다. 남북 정상이 비핵화의 진전을 담은 평양선언 합의에 이른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것은 비핵화밖에 없다는 문 대통령 설득이 주효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어제 김 위원장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반도의 비핵화가 멀지 않았다”고 전망하면서 “남북이 앞으로도 미국 등 국제사회와 비핵화의 최종 달성을 위해 긴밀히 협의하고 협력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도 핵·미사일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이상 신속한 비핵화만이 미국의 체제보장과 국교 정상화를 앞당길 유일한 방법이라는 판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19일 0시쯤 트위터에 “김 위원장이 핵 사찰을 허용하고, 전문가 참여하에 엔진 시험장 등의 폐기에 합의했다”면서 “매우 흥분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을 올렸다. 미국 조야에서 나오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대북 경고는 미국에도 적용된다. 북한이 모든 것을 내놓고 항복한 다음에 종전선언을 검토하겠다는 미국의 자세는 오만하다. 미국이 진정으로 북한과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 의지가 있다면 동창리, 영변 두 곳의 비핵화라는 김 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협상에 응해야 한다. 남·북·미 종전선언으로 교착상태 풀도록 한반도에 찾아온 비핵화의 싹을 잘라 낼 수 없다. 북·미 간 지난 30년 교섭을 돌이켜 보면 숱한 실무협상, 고위급회담은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 실패를 아는 트럼프 대통령인지라 김정은 위원장과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것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고난도 방정식인 북한의 비핵화는 실무급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적어도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 핵탄두, 핵시설, 핵과학자를 포함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초기적인 폐기나 반출이 이뤄질 때까지는 북·미 두 정상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백악관을 둘러싸고 있는 미국 내 강경파는 언제나 대북 협상을 가로막은 장벽이었다. 이들이 대북 정책을 장악하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종전이 곧 있을 것”이라고 한 발언도 지켜야 한다. 영변 핵시설의 폐쇄 조건으로 내세운 미국의 상응한 조치, 즉 종전선언 등에 대해 인색해서는 안 된다. 비핵화 정착에 북·미 정상 직접 나서야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의 여정은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 남·북·미 정상이 함께 하는 종전선언이 연내 이뤄지고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쇄를 비롯한 비핵화가 2년 안팎에 실현될 수 있도록 북·미 대화를 서둘러야 한다. 미국은 핵을 포기하고 경제 건설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한 북한을 믿고, 북한도 비핵화에 따른 번영의 미래를 약속한 미국을 믿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어렵게 뚫린 역사의 물줄기를 누구도 막아서는 안 된다. 전쟁을 끝낸 평화의 땅 한반도에서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것이야말로 비핵화의 끝에 놓인 새로운 시작이다.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30년 전 서울올림픽 열렸던 그곳… 2000년 전 한성백제의 고향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30년 전 서울올림픽 열렸던 그곳… 2000년 전 한성백제의 고향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9회 차 송파(백제의 꿈) 편이 가을이 익어가는 9월의 셋째 주말인 지난 15일 진행됐다. 이날 투어는 30년 전 우리 가슴을 뛰게 했던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행사였다. 투어 일정을 서울올림픽 개막일에 최대한 가깝게 맞췄고 마침내 ‘D-2’에 투어를 가질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서울을 전 세계에 알린 1988년 9월 17일 역사적인 개막식을 떠올리며 메인스타디움을 찬찬히 둘러봤다. 또 88올림픽기념전시관에서 상영하는 굴렁쇠 소년의 영상을 보면서 감회에 젖었다. 투어 내내 30년 전 그날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를 출발한 투어단은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메인스타디움에 들어가서 본부석과 성화대, 관중석을 걸었다. 88올림픽기념관에서 메달리스트들의 영광스런 얼굴과 유니폼을 보면서 그날의 열기를 체감했다. 입장료는 연구원이 일괄 부담했다. 한국광고박물관~삼전도비~석촌호수~석촌동 고분군 코스가 이어지는 잠실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것은 시간상 무리라고 판단해 종합운동장~잠실 구간은 지하철로 이동했다. 이지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재치 넘치는 해설로 투어를 안정감 있게 이끌었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처음 방문한 한국광고박물관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참가자들은 박물관을 둘러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답사가 좀 늦게 끝나더라도 해외광고제 수상작을 시청하길 원했다. 광고의 역사는 물론 수준 높은 외국 광고를 접할 기회였다. 희망에 따라 20분짜리 광고 영상을 시청, 이날 투어는 낮 12시 30분에 종료됐다. 추석 연휴를 맞아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는 22일(토)은 물론 26일(수), 29일(토)에도 진행될 예정이다. 30년 전 대한민국의 맥박을 뛰게 했던 서울올림픽에 관한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도시에는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올림픽 개최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 선진 시민의식의 성숙과 함께 도시공간의 뼈대를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성된 한강개발, 체육시설과 잠실아파트단지, 올림픽공원이 거대한 도시의 구조물로 남았다. 올림픽은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의 발전을 앞당긴 기폭제이자 촉매제의 역할을 해냈다. 현대도시 서울의 변혁은 한강종합개발사업과 더불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7~1970년 시행된 제1차 한강종합개발사업은 홍수 피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1차원적인 몸부림이었다. 한강변에 쌓은 제방 위에 강변북로를 만들고 공유수면 매립 사업으로 얻은 동부이촌동과 압구정동, 여의도, 잠실에서 귀중한 택지를 조성했다. 제2차 한강종합개발사업은 1981년 한강 고수부지에 체육시설을 만드는 사업으로 시작, 1986년 5월 올림픽대교 개통으로 마무리됐다. 36㎞의 수조가 정비됐고 연중 2.5m의 수심이 유지됐으며 60여만평에 체육공원이 들어서는 등 지금 한강의 얼개가 이때 완성됐다. 19세기까지 천하절경을 유지했던 구불구불한 한강물길은 사라졌지만,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현대적 의미의 한강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올림픽을 계기로 1000만 시민을 수용할 수 있는 메트로폴리스의 도시네트워크가 갖춰진 것이다.올림픽을 전후로 서울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1981년과 1989년을 비교해 보면 ‘올림픽의 힘’이 느껴진다. 1981년 867만명이던 인구는 1989년 1000만명을 돌파했다. 서울시 예산도 1조원에서 3조 5000억원으로 3배 이상 증액됐다. 지하철의 경우 9.5㎞ 1개 노선이 115㎞ 4개 노선으로, 차량은 20만대에서 77만대로 크게 불었다. 도로 총연장은 6600㎞에서 7200㎞, 시설공원은 550곳에서 943곳, 가로수는 14만 그루에서 24만 그루로 늘었다. 상수도 생산량은 9억 4000t에서 16억 2000t, 하수처리시설은 하루 36만t 처리 규모에서 300만t 처리 규모로 뛰었다. 공중화장실은 1700곳에서 8300개로 늘어났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현대화된 도시는 전무후무하다고 한다.올림픽의 성공과 잠실의 탄생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잠실지구 종합개발계획은 1970년 12월 수립됐다. 15만평의 종합경기장을 포함한 210만평 규모의 사업계획이다. 여름철이면 홍수로 범람하던 잠실섬의 강남 쪽 물길을 막아 매립한 83만평과 토지구획사업으로 얻은 127만평을 합친 땅이다. 위대한 구상이었다. 1970년 서울에서 개최키로 한 제6회 아시안게임 개최권을 반납하는 수모 끝에 절치부심해서 얻은 국제경기장 공공부지이기도 하다. 그때 우리에겐 대회를 치를 국제경기장이나 도시기반시설이 없었다. 1971년 오늘의 석촌호수로 흔적이 남은 한강 물막이공사가 잠실을 상전벽해로 변모시켰다. 조선 500년 동안 서울의 동쪽 관문과 광주를 잇던 송파나루와 삼전나루는 사라지고 뭍이 되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서울의 역사는 600년이었다. 1994년 ‘정도 600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면서 남산한옥마을에 타임캡슐을 묻었다. 서울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에 개봉하기로 했었다. 서울은 4대문을 중심으로 한 강북도시라고 배웠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잠들어 있던 한성백제의 역사가 1997년 무렵 깨어나면서 600년 설은 깨졌다. 서울의 기원은 삼국사기에 기술된 기원전 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서울의 역사는 2000년으로 수정되었다. 역사교과서는 새로 쓰였다. 2000년 전 한성백제가 처음 터를 잡은 땅은 강북이 아니라 강남이었다.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대성(大城)이자 북쪽성(北城)이었고, 방이동 올림픽공원 안 몽촌토성은 남쪽성(南城)이었다. 그리고 두 성의 배후지대인 석촌동 고분군은 왕릉이었다. 한성백제는 전형적인 강남 왕국이었다. 3세기 중반부터 4세기 중반 이전에 100만명 이상의 인력을 동원해 길이 3500m, 높이 11m, 너비 43m의 거대한 토성을 한강변 동서남북 사방에 쌓았다. 강 건너 아차산에 진을 친 고구려와 세력을 다퉜다. 현재 동벽과 북벽이 도로로 8토막이 난 채 남았다. 한강 쪽 서벽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됐다. 풍납동 대동아파트 옆 경당지구와 지금은 풍납백제문화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은 미래지구가 풍납토성 안 한성백제의 왕궁과 신전이 자리한 핵심지대로 여겨진다. 풍납토성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고적 제27호로 지정됐지만 토성 성벽만 지정해 토성 안에 민가가 들어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해방 후 1963년 사적 제11호로 지정하고, 1964년 성 안을 발굴했지만 잠들어 있던 백제혼을 깨우지 못했다. 1997년 세 줄의 깊은 해자 즉 삼중환호(三重環濠)와 여(呂)자형 집터 등 74기의 유구와 수천 점의 백제유물을 수습, 백제왕도의 단서를 찾아내기 전까지 온조가 도읍을 정한 하남 위례성이 풍납토성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몽촌토성은 서울올림픽 덕분에 개발 압력을 이기고 현 상태로나마 보전될 수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몽촌토성의 존재감이 올림픽공원의 훼손을 막았다고 보는 게 정확할지도 모른다. 올림픽공원 부지는 1960년대부터 미래의 국제경기장 부지로 지정돼 있었다. 메인스타디움을 비롯한 주요 경기장 시설이 잠실종합운동장에 먼저 건설된 탓에 올림픽공원은 단순 체육시설 부지에서 몽촌토성, 상징조형물과 올림픽회관, 야외공연장, 체육학교, 공원 등 복합 체육문화시설단지로 개발 방향이 전환됐다. 한성백제의 왕릉이라고 할 수 있는 석촌동 고분군도 200여기의 돌무덤이 5개밖에 남지 않은 상태로 무참하게 훼철됐다. 사적지 내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3호분과 4호분 사이로 35m의 차도가 뚫리기도 했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 쏠린 관심이 고분 안 민가를 이전철거하고 관통도로를 지하화하면서 모양새를 살렸다. 송파는 2000년 전 한성백제의 고향이다. 갓 깨어난 백제 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신당동(광희문 주변), 정동(대한제국을 기억하며) ●일시: 9월 22일(토) 오전 10시~낮 12시, 9월 26일(수)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7번 출구 앞, 시청역 4번 출구 앞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평양공동선언] “동창리 폐쇄 외부 전문가에 공개”… 김정은, 비핵화 진정성 과시

    [평양공동선언] “동창리 폐쇄 외부 전문가에 공개”… 김정은, 비핵화 진정성 과시

    美 질색하는 ICBM 시설 콕 집어 언급 사찰 수용해 ‘위장쇼’ 논란 피하려는 듯종전선언 등 美 상응조치 땐 영변 폐기 ‘현재 핵’까지 포기한다는 의미로 해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동창리 엔진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 영구적으로 폐기한다는 방침과 함께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가능성까지 합의한 것은 비핵화의 진정성을 구체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로 평가된다. 즉 북한이 앞서 단행한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미사일시험장 폐기 등에 대해 한·미 강경보수층을 비롯한 국제사회 일각에서 “외국 전문가들의 참관 없이 진행된 폐기작업은 위장쇼”라는 의심을 제기하자 이를 불식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진정성을 인정받고, 이를 토대로 종전선언 등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려는 승부수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지난 5일 김 위원장은 한국의 대북특사단에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 일부가 믿어 주지 않는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한 바 있다. 특히 동창리는 미국 국민이 두려워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시설이라는 점에서 영구 폐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얻고 싶어 하는 ‘선물’이다. 미국이 풍계리 폐쇄 등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선제적 조치를 요구하며 종전선언에 미적거리자 미국 안보와 직결되는 결정적 카드를 던진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은 이번 선언에서 “미국이 상응조치(종전선언 등)를 취하면 북측은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해 나갈 용의가 있다”고 합의했다. 영변에는 원자로 외에도 핵물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우라늄 농축 시설 등이 있다. 390개 이상의 핵물질 생산 건물이 밀집한 북한 핵 개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이를 폐기한다는 것은 미래 핵뿐만 아니라 ‘현재 핵’ 폐기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말로도 볼 수 있다. 청와대도 “북핵 불능화의 실천적 단계에 돌입했다”고 평가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북핵 개발의 핵심인 영변 핵시설 폐기 의지를 북한 최고지도자가 처음 공개적으로 확인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북한으로서는 동창리 시설의 영구 폐쇄로 비핵화의 진정성을 인정받아 종전선언을 유인한 뒤 영변 시설 폐쇄와 종전선언을 맞바꾸겠다는 입장을 보인 셈이다. 미국이 요구해 온 핵 리스트 제출 대신 이런 카드를 제시한 것은 ‘행동 대 행동’이라는 북한의 오랜 협상 원칙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이 반대급부를 주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무장해제될 수는 없다는 의도가 반영된 셈이다. 다만 4·27 판문점선언에 명시됐던 종전선언 문구는 이번 선언에서는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모습을 피함으로써 그의 재량권을 세워 주려는 남북 정상의 ‘배려’로 해석된다. 미국이 김 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북·미 간 후속협상에 달려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선언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은 만큼 선순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예견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북핵 해결이란 성과를 쥐어야 하기 때문에 10월 중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와 종전선언이 일사천리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남북 군사 합의…사실상 모든 무력행위 중지

    남북 군사 합의…사실상 모든 무력행위 중지

    남북이 육상, 해상, 공중을 포함한 한반도 내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 합의서에는 서해상에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 어로구역을 설정한다는 내용과 함께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 철수, 공동 유해 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DMZ의 평화지대화를 위한 방안들도 포함됐다. 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육해공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양측은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협의·해결하며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관할 구역을 침입 또는 공격하거나 점령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남북은 아울러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 훈련과 무력 증강 문제, 다양한 형태의 봉쇄 차단 및 항행 방해 문제, 상대방에 대한 정찰 행위 중지 문제 등을 협의하기로 했다. 남북은 또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 연습도 중지하기로 했다.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 내에서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해상에서는 서해의 경우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 동해의 경우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에서 포 사격 및 해상 기동 훈련을 중지하는 한편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를 하기로 합의했다. 공중에서는 군사분계선 동·서부 지역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 내에서 고정익항공기의 공대지 유도무기사격 등 실탄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을 금지하기로 했다. 고정익항공기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동부전선은 40㎞, 서부전선은 20㎞를 적용해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회전익항공기(헬기)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0㎞, 무인기는 동부지역에서 15㎞, 서부지역에서 10㎞로, 기구는 25㎞로 적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2004년 6월 4일 제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서명한 ‘서해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 관련 합의를 재확인하는 한편 서해상에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했다. 시범 공동어로구역은 남측 백령도와 북측 장산곶 사이에 설정하되 구체적인 경계선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해 확정하기로 했다. 남북은 DMZ의 평화지대화를 위한 GP 시범철수와 공동유해발굴, JSA 비무장화 등에도 합의했다. 양측은 비무장지대 내 모든 GP를 철수하기 위한 시범적 조치로 군사분계선(MDL) 1km 이내 근접해 있는 남북 GP 각각 11개를 철수하기로 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를 위해 지뢰 제거와 함께 초소 내 인원과 화력 장비를 철수하고 불필요한 감시 장비도 제거하기로 했다. DMZ 내 공동 유해 발굴은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유해 발굴 지역 내 지뢰 등은 올해 11월 30일까지 완전히 제거하고 유해 발굴을 위해 남북간 폭 12m의 도로도 개설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비무장지대 내 역사 유적에 대한 공동 조사 및 발굴과 관련한 군사적 보장 대책을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 남북은 한강 하구를 공동이용수역으로 설정하고 남북간 공동수로조사를 벌이는 한편 민간선박의 이용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공동이용수역은 남측의 김포반도 동북쪽 끝점에서 교동도 서남쪽 끝점까지, 북측의 개성시 판문군 임한리에서 황해남도 연안군 해남리까지 길이 70㎞, 면적 280㎢에 이르는 수역으로 설정됐다. 공동이용수역에 대한 현장조사는 올해 12월까지 남북 공동으로 진행하고 공동조사단은 전문가를 포함해 각각 10여명의 인원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한강 하구는 골재 채취, 관광·휴양, 생태 보전 등 다목적 사업 병행 추진이 가능한 수역”이라면서 “향후 골재 채취 등의 사업을 추진시 국제사회의 제재 틀 내에서 군사적 보장 대책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평양공동취재단·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글로벌 In&Out] 朝中의 역사에서 사라진 기념일, 조중우호월/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朝中의 역사에서 사라진 기념일, 조중우호월/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지난 9월 9일 북한 건국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리잔수가 이끄는 대표단이 방북하여 북한 고위간부들과 회담했다. 이 회담에서 북한과 중국은 양국 관계 발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9월 10일 중국대표단은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여’를 기념하는 조중우의탑(朝中友誼塔)에 헌화하였다.평양에 있는 이 우의탑은 올해 정주년(整週年)이 되는 또 하나의 사건의 상징이다. 이 사건은 1958년 9~10월에 이루어진 중공군의 완전 철수이다. 중공군의 철수는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장기간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사료 부족으로 60년이나 흘러간 오늘도 그 원인과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을 도하한 중공군의 참전은 한국전쟁의 전세를 바꿨다.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북한, 중공군의 대표가 정전협정에 서명해 전쟁은 끝났지만, 그 직후 군사분계선 이북에는 120여만명의 중공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중공 지도부에 한국전쟁 참전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웃이 자본주의 진영에 편입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의 위신과 안보를 확보하는 데도 중요했다. 1953년 9월 중공군 사령관인 펑더화이는 회의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서방 침략자가 수백년 동안 동방의 한 해안에서 대포 몇 발만 쏴도 한 나라를 점령할 수 있었던 시대는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중공군의 주둔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를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는 정전협정의 제4조 60항을 실현하기 위한 회의 소집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제네바 회의는 1954년 4월 26일부터 7월 20일까지 열렸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중국은 100만 병력의 군대를 주둔시키는 부담과 극동지역의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서 미국과 공동철수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국 공동철수는 포기하고 주둔군 규모를 조정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은 1954년 9월부터 1955년 말까지 3차례에 걸쳐 56개 사단을 철수하고 약 25만명의 병력만 남겼다. 김일성은 1953년 11월 중국을 방문해 참전에 감사하고 복구건설을 위한 원조를 요청했다. 중국은 북한과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전쟁 중 파괴된 북한 경제의 복구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규모 원조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1954년 3월부터 중공 지원군의 역할은 수리건설, 농업노동 등 경제의 복구로 바꾸었다. 1957년 11월 소련을 방문한 김일성은 마오쩌둥과 만나 중공군 철수를 논의했다. 김일성은 이후 마오쩌둥에게 편지를 보내 철수에 대한 2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북한 정부가 외국군대의 한반도 철수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후 중국정부가 이에 응답하여 철수를 진행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유엔에 공개서한을 보내 소련의 지지를 받으며 중공군 지원군이 철수하는 것이었다. 중공 정치국은 소련과 상의한 후 12월 30일 중공군 철수의 계획을 세웠고 1958년 1월 24일 마오쩌둥이 김일성의 첫째 제안을 지지한다고 김일성에게 통지하였다. 북한은 1958년 2월 5일에 성명을 발표하고 2월 7일 중국도 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그해 2월 19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김일성은 ‘연합성명’에 서명해 중공군 철수를 공식화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마지막 부대들이 북한을 떠난 1958년 10월이 북한에서 ‘조중우호월’(朝中友好月)이 되었고 1959년 10월 25일 중공군 참전 9주년과 철수 1주년을 기념으로 우의탑이 건립되었다.
  • “북한 서민들의 생활상 교과서에 실려야”

    “북한 서민들의 생활상 교과서에 실려야”

    “정권마다 대북교육 기조 ‘오락가락’ 남북학생 체육·예술 교류, 평화에 도움 특사단에 교육 인사 빠져 무척 아쉬워”“교과서에서 거창한 체제 문제 외에도 북한 서민들의 삶을 다뤘으면 해요.”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다시 손잡은 18일 한만길(65) 한국교육개발원 석좌연구위원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평화로 가는 중요한 단계”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 위원은 1990년대 초부터 통일 교육을 연구해 온 선구자다. 1990년대 초까지 반공·안보 교육 위주였던 국내 대북 교육 기조가 평화통일 교육(김대중·노무현 정권)→안보 교육(이명박·박근혜 정부)→평화통일 교육(문재인 정부)으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 현재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상임대표도 맡고 있다. 한 위원은 “지난해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정작 학생들의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학교 교과서는 거시적이고 보수적인 시각만 싣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서에서는 핵개발과 세습 독재, 식량난 등 북 체제의 부정적 모습은 물론, 북한 사람들의 의식주 등 생활상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야 학생들이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북한 사람들은 민족 자긍심이 강해 우리말 다듬어 쓰기나 한복 지키기 등에 열심이다”라고 평가했다. 한 위원은 “최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국내 중·고교생 중 통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19.8%뿐이었다. 10년 전보다 17.9%나 떨어진 수치”라면서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통일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다룬 중학교 도덕 교과서 등을 개편하거나 과한 서술을 부분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당장 어렵다면 보조 학습자료를 개발해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한 위원은 이번 평양 정상회담 특별 수행단에 교육계 인사가 포함되지 않은 점을 두고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특별 수행단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경제계 인사와 래퍼 지코 등 문화계 인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들어갔다. 그는 “남북 학생끼리 예술·스포츠 활동을 함께해 보면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돼 장기적인 평화 노선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자주 만나 대화하는 것 이상의 방법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김정은 집무실 있는 ‘심장부’… “속살 드러낸 것”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노동당 청사는 김 위원장의 집무실이 있는 북한 체제의 핵심 장소다. 방북한 남측 대통령에게는 처음으로 공개됐다. 평양 김일성광장 인근 3층짜리 화강암 건물인 노동당 청사에는 김 위원장의 집무실과 당 주요 핵심 부서가 자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매년 1월 1일 노동당 청사에서 육성 신년사를 발표한다. 당 정치국 확대회의 등 중요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도 이곳에서 열린다. 문 대통령은 이곳을 찾아 오후 3시 45분부터 5시 45분까지 2시간 동안 김 위원장과 회담을 하는 첫 정상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0년과 2007년 김대중·노무현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모두 남측 대통령이 묵는 숙소였던 백화원 영빈관에서 진행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안과 경호상의 이유로 집무실 공개를 꺼렸기 때문이다. 남측에 노동당 청사가 공개된 것은 몇 개월 되지 않았다. 지난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우리 측 특사단이 본관과 진달래관에서 회담과 만찬을 한 것이 첫 방문이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본부청사를 문 대통령에게 공개하는 것은 북한의 깊은 속살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종전과 같은 백화원이 아닌 김 위원장의 집무실에서 열리면서 더 깊이 있는 회담이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朝中 역사에서 사라진 기념일, 조중우호월(朝中友好月)

    朝中 역사에서 사라진 기념일, 조중우호월(朝中友好月)

    지난 9월 9일 북한 건국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의 리잔수가 이끄는 중국 대표단이 방북하여 북한 고위간부들과의 회담을 진행하였다. 이 회담에서 북한과 중국은 양국 관계 발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9월 10일 중국대표단은 중국인민지원군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여를 기념하는 조중우의탑(朝中友誼塔)에 헌화하였다.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위치한 이 우의탑은 올해로 정주년(整週年)인 60년이 되는 또 하나의 북·중 관계, 나아가서 한반도 정세에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가져온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1958년 9월~10월에 이루어진 중공군의 완전철수이다. 중공군의 철수는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장기간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60년이나 흘러간 오늘도 그 원인과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이다.1950년 10월 19일, 압록강 도하로 시작된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전은 전세를 역전시켰다. 1953년 7월 27일, 유엔군, 북한과 중공군의 대표들이 정전협정에 서명해 전쟁은 끝났지만, 군사분계선 이북에는 북한군 거의 3배 규모인 120여만 명의 중공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한반도는 미·소 1949년 철군 후 4년 만에 또다시 남북에 각각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상태로 돌아왔다.중국의 지도부에게 한국전쟁의 참전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웃을 자본주의 진영에 편입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신생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위신과 안보를 확보하는 데 중요했다. 1953년 9월 중공군 총사령관인 팡더화이는 회의에서 한국전쟁은 ‘서방 침략자가 수백년 동안 동방의 한 해안에서 대포 몇발만 쏴도 한 나라를 점령할 수 있었던 시대는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였다’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북한군이 극도로 약한 상태를 파악한 중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공군의 주둔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는 정전협정의 제4조 60항을 실현하기 위한 제네바 회의 소집을 기다리기로 했다.제네바 회의는 1954년 4월 26일부터 7월 20일까지 진행되었으나 첫번째 안건인 한반도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100만 병력이 넘는 군대의 외국주둔을 유지하는 경제적 부담과 극동지역의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서 미국과 제4조 60항의 공동 실현에 대한 협상을 사실상 포기했다. 미군과의 공동철수를 포기한채 북한 주둔군의 규모를 조정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은 1954년 9월부터 1955년 말까지 3차례에 걸쳐 약 25만명의 병력만 남기고 거의 100만명에 달하는 56개 사단 등을 일방적으로 철수하였다. 물론, 이 시기에 조정된 것은 중공군의 규모만이 아니었다. 1953년 11월에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은 참전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복구건설을 위한 원조를 요청했다. 중국 정부는 북한과 ‘조중경제 및 문화합작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전쟁 중 완전히 파괴된 북한 경제의 복구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4년에 걸쳐 인민폐 8만 억 원의 대규모 원조를 무상으로 제공하기 시작하였고, 1954년 3월부터 지원군의 역할도 수리건설, 농업노동 등 경제의 복구로 바뀌었다.그러던 중 1958년에 중공군은 북한과 아무런 협정이나 상호방위 조약 체결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나머지 15개 사단의 철수를 진행하였다. 북한과 중국이 북중 우호와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는 시점은 1961년 7월이다. 중국 공간사(公刊史)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1957년 11월 10월혁명 경축 행사에 참여하러 소련을 방문한 김일성이 마오쩌둥과 만나서 중공군의 철수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모스크바에서 귀국한 후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편지를 보내서 철수에 대한 2가지의 방안 제시하였다. 하나는 북한 정부가 외국군대의 한반도 철수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후 중국정부가 이에 응답하여 철수를 진행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유엔에 공개서한을 보내고 소련이 이에 대한 지지를 표시한 후 지원군이 철수하는 것이었다. 중공 정치국은 김일성 제안에 대하여 숙고하고 소련지도부와 상의한 후 12월 30일 중공군 철수의 계획을 세웠고 1958년 1월 24일 마오가 김일성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일성의 첫째 제안을 지지한다고 이 결정을 북한정부에 알렸다. 북한은 중국 정부와 합의한 대로 1958년 2월 5일에 외국군대 한반도 완전 철수를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2월 7일 중국정부가 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2월 19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김일성은 ‘연합성명’에 서명함으로써 중공군의 철수의 과정을 정식적으로 출범시켰다. 중국인민지원군의 마지막 부대들이 북한을 떠난 1958년 10월이 북한에서 “조중우호월(朝中友好月)”이 되었고 1959년 10월 25일 중공군 참전 9주년과 철수 1주년을 기념으로 우의탑이 건립되었다. 이렇게나 비정상적인 철군은 왜 이루어졌을까? 오늘날 학계에 주요 학설이 2가지 있다. 첫번째는 중국 공간사가 제시한 ‘지원군 사명의 완수’와 ‘북한 국방력의 강화’ 등으로 북한에 군대를 주둔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학설이다. 그러나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직후 유엔군의 상당부분이 철수하였지만 1954년 11월에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정식적으로 발효되고 ‘한국에 대한 군사 및 경제원조에 관한 한미 간의 합의 의사록’이 체결되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72만 명의 한국군을 육성할 수 있는 군사원조를 제공하기로 하였고, 1957년 6월 21일에 유엔군은 “한반도 밖에서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이 들어오는 것을 금지”한 휴전협정 13조 D항의 폐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1958년 1월 29일 한국에 원자무기를 들여온 사실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물론, 작전통제권은 아직도 유엔군 측에 있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철군한 행위는 중공측 입장에서 모험적인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많은 학자는 이보다 더 설득력이 강한 학설을 두 번째로 제시하고 있다. 1956년 말, 헝가리 봉기는 당시 소련의 헝가리 주둔군에 의한 유혈진압으로 끝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일성은 1956년말부터 마오쩌둥에게 철군을 계속 요구했다. 그 철군 요구는 싹트기 시작한 중·소 분쟁에서 북한을 중국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물론, 이 관점도 어디까지는 공개된 사료에 기초한 추측에 불과하다. 중공국 철군 결정에 관한 사료가 비밀 해제되면 그 이유도 꼭 밝혀질 것이다. 글: 바실리 블라디미로비치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사진제공: 바실리 블라디미로비치 레베데프
  • 북한 매체, 문 대통령 평양 방문 보도 ‘눈길’…생중계 여부도 관심

    북한 매체, 문 대통령 평양 방문 보도 ‘눈길’…생중계 여부도 관심

    북한 관영 매체들이 올해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의 첫날인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고 신속히 보도했다. 북한이 남북 정상이 만나는 장면을 생중계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 6시쯤 “역사적인 북남수뇌상봉을 위하여 18일부터 20일까지 남조선의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의 이행으로 되는 이번 평양수뇌상봉은 새로운 역사를 펼쳐가는 북남관계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하는 중대한 계기로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도 이날 1면을 통해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소식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렸다. 북한 매체는 앞서 지난 5일 남측 특사단 방북을 계기로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 일정이 확정된 다음 ‘9월 중 예정된 평양 수뇌상봉’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전날까지도 구체적인 회담 날짜를 공개하지 않다가 당일 오전에서야 공개했다. 다만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남측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이후 시차를 두고 보도한 점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의 도착을 예고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 때도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양 출발 소식을 신속하게 예고해 눈길을 끌었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북한 TV가 별도로 생중계하지 않았다.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 주요 일정을 생중계하기로 남북이 합의한 만큼, 북한도 TV로 남북 정상이 만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공개할지 관심이 쏠린다. 조선중앙TV는 통상 전날 방송 마감 시간에 다음 날 방송 순서를 예고하지만, 이날 오전 6시 현재까지 별도로 당일 방송 순서를 고지하지 않아 생중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사람 e향기] “한민족의 평화·번영에 무교인들도 앞장서겠다”

    [이사람 e향기] “한민족의 평화·번영에 무교인들도 앞장서겠다”

    민종협, 경천신명회도 민족종교로 승인… (사)대한경신연합회, 18~20일 ‘무무절·단군대제’ 봉행 무속이 마침내 민족종교의 지위를 획득함에 따라 한민족 종교사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치게 됐다. 무속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통무속인의 점치고, 굿하는 행위를 통칭하며 우리나라 민속신앙을 대표해 왔다. 이성재 민족종교 경천신명회 회장은 1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민족종교협의회(민종협)가 11일 이사회를 열고 ‘민족종교 경천신명회’의 회원가입 신청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며 “한민족의 태동과 더불어 백성들과 함께해 온 무속이 이제야 비로소 민족종교로 재탄생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회장에 따르면 민종협의 회원가입은 무속이 무교로 종교법인화 되는 등용문의 역할을 한다. 이 회장이 지난해 서울 남산에서 9월 19일을 무교의 날로 칭한 무무절(巫巫節) 선포식이 있은 지 1년 만에 이룬 쾌거다. 민종협은 민족종교 상호 간의 화합과 유대를 증진시키며 민족종교의 근본이념을 바탕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하고 민족문화의 창달과 민족정신의 선양을 목적으로 1991년 12월 18일 설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으로 대종교·천도교 등 12개 교단이 활동하고 있다. 또 민족종교 경천신명회는 사단법인 대한경신연합회에 소속된 전통무속인 회원들 가운데 종교법인화에 뜻을 모은 전통 무속인들이 주축이 돼 새롭게 조직된 단체다. 이 회장은 특히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 동안 평양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과 강원도 태백산 당골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무무절 문화대축제와 국태민안 단군대제’가 마치 누가 짜 맞춘 듯이 일정이 일치하고 있다”며 “이는 하늘이 돕고 민족이 지지한다는 징표인 만큼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아주 큰 성과를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한민족에게 안겨 줄 것인 만큼 결국은 비핵화에 성공해 한반도의 평화가 실질적으로 정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 주→무속이 마침내 민족종교의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전통무속이 무교가 되는 종교법인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유일한 전통무속인의 단체인 사단법인 대한경신연합회가 그 주인공입니다. 제가 대한경신연합회 이사장으로 추천돼 선출된 뒤 무교의 종교법인화를 위해 지난해 양력 9월 19일을 무교의 날로 정하는 무무절(巫巫節) 선포식을 서울 남산에서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내외적인 여러 사정으로 인해 잘 안 됐습니다. 우리 무속인이 무교화 되는 숙원을 성취하는데 신명을 받치고, 종교법인화를 위해 무교경전과 교헌교법을 완성하는 등 종교화 선포가 임박한 시점에서 ‘무속의 무교화’를 음해하는 세력이 준동한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전통무속인들 가운데 ‘무교화’에 찬성하는 분들로 천지신명교를 거쳐 ‘민족종교 경천신명회’를 새롭게 조직하게 됐습니다. 그 성과라고 할까요. 무교의 날로 무무절을 선포한 지 1년을 맞는 올 9월에 마침내 민종협의 정식회원이 된 겁니다. 지난 11일 민종협이 이사회를 열어 ‘민족종교 경천신명회’가 신청한 회원가입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거죠. 이에 따라 월 회비 30만원의 10년분에 해당하는 3600만원을 입회금으로 납부를 완료하고, 한국민족종교협의회가 총회를 거쳐 대외적으로 선포하면 ‘무속의 무교화’는 절차적으로 마무리됩니다. →민종협 이사회가 ‘경천신명회’를 민족종교 회원가입을 승인한 이유는 무엇으로 보시는가요. -제가 지난 11일 회의에 참석해서 무교(巫敎)는 환인·환웅·단군 할아버지로부터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함께하며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과 자연을 믿고 민중의 한을 풀어주며 아픔을 달래 온 우리 민족 유일의 자생적인 전통 민족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민족종교의 뿌리를 따지자면 무교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계의 경전을 만들기 위해 세계최초로 경전에 천부경을 우리말과 함께 영어도 넣어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역사를 따지면 무교가 가장 오래됐다고 했습니다. 민종협 이사회가 이점을 높이 평가하고 수용해 준 결과로 만장일치로 회원가입을 승인해 준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교의 경전이 있습니까. 어떤 내용들인가요. -민족의 종교로 재탄생하기 위해 천부경으로 시작하는 경전과 교헌을 만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무교의 핵심은 ‘새신무경(賽神巫經)’으로 단군왕검본풀이 초감흥 굿 등입니다. 단군왕검본풀이는 이른바 이북 굿의 원조입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는데요. 그 비밀의 빗장을 열면 바로 ‘새신’입니다. 새자는 굿할 새로서 새신이란 ‘굿하는 신’입니다. ‘굿하는 신’이 모셔진 곳이 어디냐면 개성 덕물산의 ‘새신각’입니다. 그래서 ‘만신의 조종은 덕물산이다’고 하는 겁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굿하는 비용, 굿비라고 하는데 이게 ‘새전(賽錢)’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굿하는 신, 곧 단군왕검께 바치는 돈이 새전인 겁니다. 사찰에 가면 ‘돈 넣은 곳’이 있잖습니까. 우리는 불전함으로 부르는 데 반해 일본은 이를 ‘새전소(賽錢)’라고 합니다. 우리 것을 일본이 가져다 사용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단군왕검’께 새전을 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누가 누구에게 내는 겁니까.→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무교의 교지(敎旨)강령은 무엇인가요. -신인조화·음양합덕·조상숭배·해원상생·경천애지선의 다섯 가지 법언을 수도의 요체로 삼고 경천·경신·경조의 삼률령으로 수행의 도를 삼아 윤리도덕을 숭배하고 인간개조와 정신개혁으로 포덕천하·구제중생·보국안민·지상천국 건설을 지향한다는 겁니다. →이번 무무절 기념행사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과 일정이 일치합니다. -19일이 길일인가 봅니다. 제가 여러 무교인들과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쯤 열릴 수 있겠다며 빨간색으로 미리 표시를 해 놨습니다. 그랬는데 자연스럽게 행사가 겹치게 됐습니다. 양력 9월 19일. 연결하면 919이잖습니까. 9에 1을 곱하고, 또 9를 곱하면 바로 천부경 81자의 수가 나옵니다. 그래서 9월 19일은 우리 민족의 문제를 함축한 길일 중의 길일입니다. 한반도가 새로운 역사로 나가는 변곡점입니다. 그래서 이날을 무교의 날로 정하고, 무무절 행사를 열게 됐는데요. 그때를 맞이해 또 무교가 민족종교로 새로운 역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렇다면, 회장님은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보시는가요. -제가 45년 전인 25세 때 처음 신을 모셨는데요. 단군 할아버지입니다. 그때부터 천부경을 합니다. 이점에 비춰볼 때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아주 큰 성과를 볼 겁니다. 결국은 비핵화에 성공합니다. 또 한반도의 평화가 실질적으로 정착될 겁니다. 그와 더불어 경제가 살아날 겁니다. 남북한의 백성이 한마음이 되고, 한뜻이 되는 평화통일을 하자면 환인·환웅·단군 할아버지 세 분의 주의사상인 홍익인간·이화세계·천부경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됩니다. →무교로서 북한과 교류는 어떻습니까. -단군 할아버지면 북한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세간에서 단군릉이 실체다, 아니다며 논쟁하고 있지만요. 실체가 없어도 북한이 그분(단군)을 모셨다는 것은 기(氣)를 모이게 한 겁니다. 제가 진보라서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어찌 됐든 우리는 단군을 부정하는 데 반해 북한의 위원장들은 단군 할아버지를 들고 나왔잖아요. 능을 조성도 했고요. 우리 고조선 시대서부터의 맥을 찾은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체든 아니든 상관이 없는 거예요. 우리가 각 성씨의 시조 할아버지를 봤나요. 안 봤잖아요. 그렇지만 시조 할아버지가 계시다고 믿잖아요. 환인·환웅·단군 할아버지는 어마어마하신 분이거든요. 우리는 부각하지 못하는데 북한은 하고 있잖습니까. →그럼 종교교류 차원으로 북한을 다녀오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어쩌면 이번 개천절 행사에 북한에 갈 수도 있습니다. 10월 1일부터 5일까지 ‘개천절 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의 일원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다녀올 수 있습니다. 정세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는 통일부에 ‘개천절 평양 단군릉 방북 신청서’를 접수해 놓은 상태입니다. 방북하게 되면 평양의 단군릉을 비롯해 민족종교의 역사현장을 둘러볼 계획입니다. 많이들 응원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무무절 문화대축제와 국태민안 단군대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오늘 18일부터 20일까지 강원도 태백산 당골광장 단군성전 앞에서 2박 3일의 일정으로 열립니다. 18일은 당골광장에서 천제가 봉행되고요. 19일에는 무무절 문화대축제, 20일 국태민안 단군대제가 각각 열립니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무교인들만 3000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지금 한민족은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데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한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이런 민족사적 운명을 설계하고 개척하는데 우리 무교인도 앞장설 겁니다. 감사합니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주요 프로필 · (사)대한경신연합회 이사장 · (사)국가무형문화재 서울 새남굿 보존회 회장 · 민주평통 자문회의 위원
  • [사설] 문 대통령, 김 위원장 비핵화 진전 약속받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서해 직항로를 통해 평양에 간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2007년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정상으로는 세 번째 평양 방문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 관계 개선의 문을 활짝 열었고, 2007년에는 종전선언의 실마리를 풀었다면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핵화라는 가장 난도 높은 방정식을 푸는 중재자로서 무거운 짐을 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난다. 청와대가 어제 발표한 정상회담 의제는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 북·미 대화 촉진,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협 종식 등 세 가지로 모두 다 중요한 의제이지만, 역시 핵심은 비핵화다. 오늘 오후와 내일 오전 두 차례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두 정상은 비핵화에 관한 우리의 중재안을 놓고 설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회담에서 비핵화 진전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우리 특사단과 만나 핵실험장 폐기 등 여러 비핵화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 말고는 체제보장 조치를 내놓은 것이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간단히 셈을 하더라도 아버지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못 했던 조치를 잇따라 내놓은 북한에 비해 미국의 조치가 빈약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현재의 교착된 북·미 협상을 타개하려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가 더 득세하기 전에 북한이 과감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 문 대통령이 지난주 남북 관계 원로들에게 밝힌 것처럼 미래의 핵 포기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핵을 폐기하는 절차를 밟지 않으면 북·미 협상의 진전은 물론 중재자로서 미국을 설득하기도 어렵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포인트는 김 위원장이 현재의 핵, 즉 핵물질과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시설, 핵 과학자를 포함한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이들을 폐기할 구체적인 방안을 문 대통령에게 약속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시한으로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21년 1월까지는 2년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시한에 맞추려면 비핵화 프로세스는 신속해야 한다. 미국 조야에서 “마지막 기회”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는 김 위원장 약속에 달려 있다. 문 대통령도 어제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북·미 정상이 다시 마주 앉는다면 비핵화가 빠른 속도로 진척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 등에서 핵·경제 병진노선 폐기 등 핵 포기 의지를 보여 왔다. 이런 비핵화를 관철하고 체제보장을 얻으려면 김 위원장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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