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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군2함대 거동수상자는 부대병사…음료수 자판기 다녀오다가…

    해군2함대 거동수상자는 부대병사…음료수 자판기 다녀오다가…

    지난 4일 경기 평택의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거동수상자는 부대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병사로 확인됐다. 이 병사는 근무 도중 음료수를 사먹으려 자판기에 다녀오다가 걸렸으나 두려운 마음에 그대로 달아난 것으로 조사됐다. 국방부는 “국방부 조사본부가 수사단을 편성해 현장수사를 실시하던 과정에서 오늘 오전 1시 30분 ‘거동수상자’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검거된 인물은 당시 합동 병기탄약고 초소 인접 초소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병사로 확인됐다. 조사결과 이 병사는 초소에서 동료병사와 동반근무 중 “음료수를 구매하기 위해 잠깐 자판기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소지하고 있던 소총을 초소에 내려놓고 전투모와 전투조끼를 착용한 채 경계초소를 벗어났다. 자판기는 이 초소에서 약 200m 떨어진 생활관 건물에 있다.이 병사는 경계초소로 복귀하던 중 탄약고 초소 경계병에게 목격됐고 수하(어두워서 상대편 정체를 식별하기 힘들 때 아군끼리 약속한 암호를 확인하는 일)에 불응한 채 도주했다. 국방부는 “(사건 발생) 이후 관련자와 동반 근무자는 두려운 마음에 자수하지 못하고 근무지 이탈사실을 숨기고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관련자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 후 적법하게 처리할 예정”이라며 허위 자백 관련 사항, 상급부대 보고 관련 사항 등에 대해서도 추가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지난 12일에야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특히 조사과정에서 부대 장교가 무고한 병사에게 허위자백을 제의한 사실과 함께 국방부 등 상급기관에 늑장보고를 한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논란이 됐다.이낙연 국무총리는 전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번 사건에 관련된 보고를 12일 오전에 받았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영관장교가 부하 직원들이 고생할까봐 가짜 자수를 시키는 엉터리 같은 짓을 하다 발각됐다”며 “(영관 장교가) 아주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정경두 장관 지시로 국방부조사본부 수사단 25명, 해군 2함대 헌병 6명, 육군 중앙수사단 1명 등을 이번 사건 수사에 투입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해군2함대 거동수상자 발견사건…‘허위자수’ 제의, 은폐에 늑장보고까지

    해군2함대 거동수상자 발견사건…‘허위자수’ 제의, 은폐에 늑장보고까지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해군 2함대사령부 안에서 정체불명의 거동수상자가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해 군 당국이 조사에 착수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부대 장교가 무고한 병사에게 허위 자백을 제의한 사실이 드러난데다 국방부 등 상급기관에 대한 ‘늑장보고’ 의혹까지 제기됐다. 12일 해군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10시 2분 해군 2함대사령부 탄약 창고 근처에서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거동수상자가 근무 중인 경계병에 의해 발견됐다. 합동생활관 뒤편 이면도로를 따라 병기탄약고 초소 쪽으로 달려서 이동한 이 사람은 세 차례에 걸친 초병의 암구호에 응하지 않고 도로를 따라 도주했다.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멘 상태였던 용의자는 도주 과정에서 랜턴을 2∼3회 점등하기도 했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이에 해군은 즉시 부대방호태세 1급을 발령하고 기동타격대, 5분 대기조 등을 투입해 수색에 나섰지만, 검거에 실패했다. 부대 안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에서는 이 인물을 확인할 수 없었고, 부대 울타리나 해상 등에서도 특별한 침투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해군은 ”다음날 새벽까지 최초 신고한 초병 증언과 주변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외부에서 침투한 대공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평가했다“며 ”부대원 소행으로 추정해 상황을 종결하고 수사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A병장이 당시 거동 수상자는 본인이었다고 진술했지만, 지난 9일 헌병수사 과정에서 ‘허위 자백’으로 밝혀졌다. 해군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많은 인원이 고생할 것을 염려한 직속 상급자(영관급 장교)가 부대원들에게 허위자수를 제의했고, 그 제의에 응한 A병장이 허위 자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날 오전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을 폭로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해당 부대의 ‘은폐·늑장보고’ 의혹도 제기했다. 김 의원은 관련 상황이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에게도 보고가 안됐다며 ”만약 제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해군 고위 관계자는 “처음에는 합참 주관으로 상황 관리가 진행됐지만, 대공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서 해군 2함대에서 이 사건을 관리하게 됐다”며 “중간 수사상황은 따로 국방장관, 합참의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부대 울타리 아래에서 의문의 ‘오리발’이 발견됐다는 김 의원의 의혹 제기에는 ”개인용 레저장비로, 체력단련장 관리원 소유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심승섭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송구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앞서 이날 오전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 등 25명을 현장에 급파했다. 군 당국은 도주자 행방을 계속 추적하는 한편 ‘허위자수’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포토] 북한 목선 조사하는 한국당 의원들

    [포토] 북한 목선 조사하는 한국당 의원들

    12일 오후 강원 동해시 해군 1함대 동해군항을 방문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당 ‘북한 선박 입항 은폐·조작 진상조사단’ 소속 의원들이 북한 목선에 올라 목선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2019.7.12 연합뉴스
  • 해군2함대, 늑장보고·은폐 의혹 ‘군 수뇌부도 몰랐다’

    해군2함대, 늑장보고·은폐 의혹 ‘군 수뇌부도 몰랐다’

    최근 경기도 평택의 해군 2함대사령부 안에서 정체불명의 거동 수상자가 발견된 사건과 관련해 ‘은폐·늑장보고’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12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을 공개하며 “합참의장에게 상황보고가 안됐고 해군참모총장도 (이 사건을) 자세하게 모르고 있었다”면서 “만약 나에게 제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장관에게도, 합참의장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며 “내부에서 ‘허위조작’을 해 그걸 번복하게 만든 큰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해군 고위 관계자는 “처음에는 합참 주관으로 수사가 진행됐지만, 대공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해군 2함대에서 관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이후에 밝혀진 부대 간부의 병사에 대한 ‘허위자백’ 제의 내용도 상급기관에 보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일 오후 10시 2분 해군 2함대사령부 탄약 창고 근처에서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거동 수상자가 근무 중인 경계병에 의해 발견됐다. 해군은 즉시 부대방호태세 1급을 발령하고 기동타격대, 5분 대기조 등을 투입해 수색에 나섰지만 검거에 실패했다. 조사과정에서 A병장이 당시 거동 수상자가 본인이었다고 진술했지만, 이후 헌병수사 과정에서 ‘허위 자백’으로 밝혀졌다. 해군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많은 인원이 고생할 것을 염려한 직속 상급자(영관급 장교)가 부대원들에게 허위자수를 제의했고, 그 제의에 응한 A병장이 허위 자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부대 내에서 거동 수상자가 발견돼 수사를 벌이고 대공용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함대 자체적으로 상황을 관리할 수는 있지만, 헌병수사를 통해 상급자에 의한 허위자수가 확인됐음에도 상부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전에야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파악하고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 등 8명을 현장에 급파했다. 부하 병사에게 ‘허위자수’를 제의한 간부는 이날 오후 2시부로 직무배제 조치됐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군인권센터 “투신 사망한 23사단 병사에 간부가 의자던지고 폭언”

    군인권센터 “투신 사망한 23사단 병사에 간부가 의자던지고 폭언”

    소초 투입된 이후 동료에 ‘힘들다’, ‘죽고 싶다’ 토로“업무 중 실수하자 부소초장이 사무용 자 집어던져”“목선 경계 실패 탓 사망했다는 주장은 본질 호도”최근 투신사망한 육군 23사단 A일병 사건과 관련해 시민단체 군인권센터(이하 센터)가 사건 이전부터 간부가 해당 병사에게 의자를 집어 던지는 등 부대에서 병영 부조리가 만연했다고 12일 주장했다. 육군 23사단은 북한 목선 경계에 실패했다는 논란이 있던 부대다. 센터는 “지난 5월 19일 부소초장의 질문에 A일병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자 부소초장이 욕설을 퍼부었다”면서 “6월 29일에는 A 일병이 업무 중 실수를 하자 간부가 심한 욕설을 하며 의자와 사무용 자를 집어 던졌다”고 주장했다. A 일병은 소초에 투입된 4월부터 최근까지 동료 병사들에게 ‘힘들다’, ‘상황병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다’, ‘죽고 싶다’ 등 고충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센터에 따르면 A 일병은 주로 소초 ‘전반야 근무’(오후 2시~오후 10시)를 맡는 등 근무 편성 불이익도 받았다. 개인 시간을 보장받기 어려운 전반야 근무를 반복했지만 소초장과 중대장은 이를 묵인했다. 센터는 “최근 A 일병과 선임병들과의 관계도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A 일병이 예정된 연가와 연기된 위로·포상 휴가를 2번 나간 것인데 선임병이 화를 냈다”고 말했다. 센터는 “통상 경계작전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충분한 상병, 병장이 맡는 상황병을 일병이었던 피해자가 맡은 것은 해당 소초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또 A일병의 죽음을 북한 목선 사건과 연관해 해석하는 주장에 대해 비판했다. 센터는 “북한 목선과 관련해 해당 소초가 조사를 받았지만 상황병 조사는 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이 부대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피해자가 목선 경계 실패로 인한 책임을 떠안고 사망했다는 식의 주장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센터는 “일부 언론이 이 사건을 정치 쟁점으로 몰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피해자가 겪었던 병영 부조리와 인권침해의 본질이 가려졌다”고 강조했다. 센터는 ”국방부가 사건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사망 원인이 ‘피해자 개인에게 있다’는 식의 그림을 만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방부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A 일병은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연가 및 위로 휴가를 사용했다.이어 이달 1일부터 9일까지 정기휴가를 받았다. 부대 복귀를 이틀 앞둔 8일 원효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한 A 일병은 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숨졌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영등포 ‘볼런티어 오케스트라’ 창단…봉사단 ‘100인 예술인회’의 첫 주자

    서울 영등포구가 구 자원봉사센터 운영 10주년을 맞이해 예술적 감각이 있는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이뤄진 ‘100인 예술인회’를 구성, 문화를 통한 봉사를 한다고 11일 밝혔다. 우선 구는 ‘100인 예술인회’의 첫 번째 주자로 ‘영등포 볼런티어 오케스트라’를 창단한다. 지난 3월 지역 소재 직장인을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한 결과 음악적 재능으로 봉사를 실천하며 뜻을 함께할 21명의 단원이 모였다. 단원들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정기 연습을 한다. 오케스트라 창단식은 13일 오후 2시 영등포아트홀에서 개최된다. 창단 기념 공연으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하이든 런던 심포니 1악장, 차이콥스키 멜로디, 라라랜드 등 총 5곡을 연주하고, 단원들은 이날 위촉장을 받는다. 영등포 볼런티어 오케스트라는 향후 연 2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고, 수시로 돌봄이 필요한 이웃들을 찾아다닐 예정이다. 구는 오케스트라 창단을 시작으로 올해 안에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을 적극 섭외해 ‘100인 예술인회’를 이끌며 지역 자원봉사 문화를 선도할 예정이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향후 ‘100인 예술인회’를 통해 지역 내 예술가들이 모여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동성애 금지 군형법, 군대내 성소수자 인권 침해”

    “군인 성적 지향, 복무 수행과 관계 없어” 동성애자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긴 채 육군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군 임무 수행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2017년 3월 육군중앙수사단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뒤 그의 군 생활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A씨의 성적 지향을 알아챈 수사단은 그가 과거 만났던 동성 연인에 대해 물었고 A씨가 부인하자 수사관은 소리치며 위협하거나 옛 연인에게 영상통화를 걸기도 했다. 결국 A씨가 과거 동성애 관계를 진술하자 수사관은 “어떤 체위로 관계를 가졌느냐”거나 “어디에 사정했느냐” 등 사생활을 침범하는 질문을 했다. A씨는 군형법 92조 6항을 어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소유예됐다. 국제앰네스티는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 등 국내 전·현직 군인과 예비 입영자 2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했다. 앰네스티는 이 내용 등을 정리한 보고서 ‘침묵 속의 복무- 한국 군대의 LGBTI(성소수자)’를 발간했다. 이 기관은 지난해 6~7월과 올해 5월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로젠 라이프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사무소 조사국장은 “동성 간 성적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은 수많은 성 소수자 군인들의 삶을 파괴하며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 현행 군 형법 제92조 6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라이프 국장은 “적대적인 환경이 학대와 따돌림을 조장하고 보복의 두려움으로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든다”며 “한국 군대는 군인의 성적 지향이 군 복무 수행 능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앰네스티와 인터뷰 한 성 소수자 군인 상당수는 군대에서 지휘관에 의해 아웃팅(동성애 사실을 타인에 의해 폭로당하는 것)을 당했다. 또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군대 내에서 폭행이나 성적 모욕을 당했고 정신질환 치료시설에 보내지기도 했다. 라이프 국장은 “군대 내 게이 남성의 성관계를 범죄화하는 것은 충격적인 인권 침해”라며 “한국은 성 소수자에 만연한 낙인을 해소하는 결정적 첫걸음으로 군형법 제92조 6항을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군대에서 학대와 따돌림”…앰네스티 “동성애 금지 군형법 없애야”

    “군대에서 학대와 따돌림”…앰네스티 “동성애 금지 군형법 없애야”

    국제앰네스티 ‘한국 군대의 성소수자’ 발간“성소수자 군인들 아웃팅당하고 폭행·모욕도”동성애자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긴 채 육군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군 임무 수행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2017년 3월 육군중앙수사단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뒤 그의 군 생활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A씨의 성적 지향을 알아챈 수사단은 그가 과거 만났던 동성 연인에 대해 물었고 A씨가 부인하자 수사관은 소리치며 위협하거나 옛 연인에게 영상통화를 걸기도 했다. 결국 A씨가 과거 동성애 관계를 진술하자 수사관은 “어떤 체위로 관계를 가졌느냐”거나 “어디에 사정했느냐” 등 사생활을 침범하는 질문을 했다. A씨는 군형법 92조 6항을 어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소유예됐다. 국제앰네스티는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 등 국내 전·현직 군인과 예비 입영자 2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했다. 앰네스티는 이 내용 등을 정리한 보고서 ‘침묵 속의 복무- 한국 군대의 LGBTI(성소수자)’를 발간했다. 이 기관은 지난해 6~7월과 올해 5월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로젠 라이프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사무소 조사국장은 “동성 간 성적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은 수많은 성 소수자 군인들의 삶을 파괴하며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 현행 군 형법 제92조 6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라이프 국장은 “적대적인 환경이 학대와 따돌림을 조장하고 보복의 두려움으로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든다”며 “한국 군대는 군인의 성적 지향이 군 복무 수행 능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앰네스티와 인터뷰 한 성 소수자 군인 상당수는 군대에서 지휘관에 의해 아웃팅(동성애 사실을 타인에 의해 폭로당하는 것)을 당했다. 또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군대 내에서 폭행이나 성적 모욕을 당했고 정신질환 치료시설에 보내지기도 했다. 라이프 국장은 “군대 내 게이 남성의 성관계를 범죄화하는 것은 충격적인 인권 침해”라며 “한국은 성 소수자에 만연한 낙인을 해소하는 결정적 첫걸음으로 군형법 제92조 6항을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이동구 칼럼] 지진 상처는 투표로 치유할 수 없다

    [이동구 칼럼] 지진 상처는 투표로 치유할 수 없다

    “총선이 끝나야 움직이려나? 만약 부산·경남이나 호남, 수도권 등지에서 지진 피해가 발생했어도 정부·여당이 이렇게 대응했을까?” 요즘 포항 시민들이 청와대와 국회, 광화문광장 등에서 1인시위를 벌이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2년 전 수능시험까지 연기시켰던 포항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여태껏 복구되지 못했다며 정부와 국회의 늑장 대응을 비난하고 있다. 더구나 지진 피해가 국가사업으로 인해 발생했는데도 정부가 피해 복구와 배상 등에 소홀한 것은 ‘정치적인 홀대’ 때문이라 믿으며 더욱 분개하고 있다. 분노심은 지난 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항 지진 특별법과 피해배상을 위한 포럼’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참여자들은 한결같이 “정부와 여당이 적극 나서 주지 않는다”며 피해 의식과 함께 집단적인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듯했다. 사실 포항 시민들의 바닥 정서에는 대기·환경오염, 자연재해, 지역 갈등, 정치적 홀대 등에 집단적인 피해의식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바로 포항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겪은 불신감이다. 토지 수용 당시 정부로부터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불만과 함께 수많은 환경오염에 대한 피해의식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특히 해수욕장 유실 등 해안 절경의 훼손은 시민들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 이런 이유로 대기환경이 조금 나빠져도, 홍수가 덮쳐도, 가뭄이 심해져도 가장 먼저 의심받는 곳은 포스코다. 포스코가 지역민과의 유대를 위해 수십년을 공들여 왔지만, 주민들 의식 속에 잠재된 피해의식은 좀처럼 메우지 못하고 있다. 2017년 11월 15일의 지진은 포항 시민들의 이런 피해의식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기상청 관측 사상 국내 두 번째로 강했던 규모 5.4의 지진은 발생 수개월 전부터 전조 현상이 있었다. 지진 발생 지점인 포항시 흥해읍 인근에서 시험 가동중이었던 지열발전소로 인해 무려 63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이 이어졌다. 포항지역사회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규모 5.4 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닐 수 있다며 산업통상자원부, 기상청,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에 지열발전의 위험성과 함께 정밀 조사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묵살됐다. 참다못한 시민 1821명은 감사원에 관련 기관들을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국민감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정부 조사단이 “지열발전소가 포항 지진을 촉발했다”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책임자 문책 등 사후 조치는 감감무소식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포항 지진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지열발전소에 의한 유발 지진, 즉 인재로 밝혀짐에 따라 이에 대한 배상 등 피해구제 방법과 범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진 당시 24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5만 5000여 가옥이 피해를 입었다. 한국은행 추산으로 초기 피해액은 3324억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지진 후유증으로 인한 피해는 더 컸다. 시민 200여명은 불안감 등으로 지금까지 흥해실내체육관에서 1평 남짓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전체 시민 10명 중 3명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는 줄었고 가격 또한 20%가량 폭락했다. 관광객 감소뿐 아니라 거주 인구마저 5000여명 이상이 줄어드는 등 지역 전체가 엄청난 피해와 후유증을 겪고 있다. 포항시는 유무형의 피해액이 1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자체나 지열발전소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포항 시민들은 하루빨리 중앙 정부가 나서 공식적인 사과, 진상 규명과 관련자 문책, 피해 배상, 지역 재건 사업 등을 펼쳐 주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특별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지역 여론이다. 피해 주민이 개별 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배상받을 근거를 마련하는 게 골자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즉각적인 사과와 피해 보상을 기대했던 시민들은 정부와 국회의 소극적인 대처로 현재 더 큰 상처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자유한국당 김정재 의원과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 등이 지난 4월 특별법안을 발의, 국회 상임위(산자위)에 상정돼 있으나 하세월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수가 20만명이 넘었지만 답이 없다. “포항 지진 배상 문제도 동남권 신공항 재논의 결정처럼 표 계산하느라 늦어지는 것인가”라는 시민들의 의구심이 당연해 보인다. 포항 시민의 지진 상처는 결코 총선의 표로 치유될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비쳐지고 있다.
  • 김정숙 여사 “희망은 힘이 아주 세”… 아동시설 합창단 격려

    김정숙 여사 “희망은 힘이 아주 세”… 아동시설 합창단 격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청와대 경내 소정원에서 논산시 아동 양육시설 소속 초중등 학생들로 구성된 ‘논산파랑새합창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아이들을 격려했다. 논산파랑새합창단은 지난 4월 “어린이날에 청와대에서 공연하고 싶다”며 서신을 보냈지만, 당시 이미 출연진이 확정된 터라 이날 뒤늦게 초청 공연을 하게 됐다. 합창단은 ‘내일을 향해’, ‘우리는 모두 소중해’ 등 아동권리 노래와 ‘고향의 봄’, ‘여행’ 등을 불렀다. 김 여사는 인사말에서 “저도 합창단에서 노래했지만, 내 목소리만 크게 내기보다 화음을 맞췄을 때 아름다운 게 합창”이라며 “희망은 힘이 아주 세다. 함께 어울리는 것은 세상에 고마운 마음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저앉아 울고 싶은 날도 있겠지만,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희망을 키우길 바란다”며 “이 세상에 이뤄진 모든 것은 희망이 해낸 일이라고 한다”고 언급했다. 김 여사는 일일이 합창단원 이름을 부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합창단 지도교사이자 대표인 박선미 단장은 “아이들이 협력하고 같이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을 배웠으면 한다”고 답했다. 김 여사는 합창단의 멘토이자 이날 함께 초청된 봉사단 ‘바람개비서포터즈’를 언급하며 “‘다른 사람에게 선물이 되는 삶을 살라’는 말을 기억한다. 오늘 여러분이 불러준 노래는 사람들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빨간 벽돌의 공장·창고 즐비한 골목… 수제화 역사가 숨쉰다

    빨간 벽돌의 공장·창고 즐비한 골목… 수제화 역사가 숨쉰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1회 성수동 붉은 벽돌마을’ 편이 지난 6일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뚝섬역 1번 출구에 집결한 참가자 40여명은 원조 대학서점 공씨책방을 둘러보고 성수동의 상징 붉은 벽돌마을 길을 찬찬히 걸었다. 성수아트홀~성수동 수제화거리~우란문화재단을 거쳐 서울경찰기마대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코스 중 공씨책방, 수제화거리, 서울경찰기마대가 서울미래유산이다. 이날 올 들어 가장 더운 36도를 기록, 폭염경보가 발효됐지만 한강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과 서울숲이 내주는 넉넉한 나무그늘 덕분에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투어에는 부부와 모녀가 8쌍이나 참가해 미래유산 투어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줬다. 부인과 엄마를 따라 남편과 딸이 합류한 듯했다. 해설을 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참석자들이 단순히 말을 지켜보는 투어에서 탈피, 말먹이를 주도록 당근을 사전 준비해 액티비티가 있는 투어를 제공했다.조선 최고의 관찬 백과사전 ‘증보문헌비고’에 “살곶이다리(箭橋)는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왕래하는 도성 9개 다리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서울에서 뚝섬나루를 건너 청숫골(청담동)로 가거나, 광나루를 통해 강릉 방면으로 향하거나, 송파나루를 거쳐 광주로 나가는 동남지방의 관문이었다. 살곶이다리는 조선시대에 서울에 놓인 가장 큰 돌다리이기도 했다. 이 지역을 ‘화살이 꽂힌 평야’란 뜻인 전관평(箭串坪) 또는 살곶이벌이라고 불렀다. 한강이 중랑천과 합치는 중간에 있어서 너른 퇴적평야가 형성됐다. 말을 먹이는 목장이었기에 마장동이라는 지명을 낳았다. 마장에는 군인이 주둔, 열병과 무예를 검열했다. 성수동 1가와 2가에 걸쳐 있는 진터마을이 그 흔적이다. 왕이 말과 군대사열을 지켜보던 정자가 성덕정(聖德亭)이다. 열병이 끝나면 노루사냥을 즐겼다. ‘태조실록’ 4년 8월 1일자에 매를 관리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을 뒀다는 기록이 응봉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됐다. 왕이 머문다는 사실을 알리는 큰 기를 세웠는데 이를 독기(纛旗)라고 쓰고, 둑기 혹은 뚝기라고 읽었다. 독기를 세운 땅을 뚝섬이라고 불렀다. 이 지역의 이름이 뚝섬(둑섬) 혹은 뚝도(둑도)가 된 까닭이다. 이곳이 섬이라고 불린 이유는 아차산에서 중곡동, 능동을 지나 중랑천으로 유입되는 지류와 중랑천 그리고 한강에 의해 3면이 둘러싸인 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퇴적평야 지대에는 무, 배추, 오이, 미나리 같은 채소 재배가 적합했다. 거대한 소비시장을 끼고 있었고, 노동력이 풍부했다. 말 사육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조선시대 전국목장에서 사육한 4만~5만 마리 중에서 서울로 진상된 말 중 암놈은 자마장(자양동)으로, 수놈은 마장동으로 보냈다. 왕이 친히 말떼를 구경하던 화양정은 화양리에, 말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마조단은 행당동 한양대 캠퍼스 안에 남아 있다. 뚝섬나루(성수동)와 두모포(옥수동)가 한강변 주요 나루로 쓰였다. 두 나루는 강원도에서 오는 건축용 목재와 연료용 시탄(숯)을 보관하는 천연 창고역할을 했다. 수철리(금호동)의 대장간과 뚝섬의 숯장이가 이름을 날렸다. 뚝도수원지와 기동차, 뚝섬유원지가 뚝섬의 옛 3대 명물이었다. 근대 이후 뚝섬의 변모는 1908년에 준공된 뚝도수원지가 이끌었다. 옛 경성수도양수공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시설이다. 초창기 서울시 5만 6000호 중 3분의1인 1만 8000호가 급수 혜택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뚝섬에 설치된 근대시설물 중 기동차는 추억의 기차다. 1930년 경성교외궤도주식회사가 왕십리~뚝섬 간 4.3㎞ 구간에 운행했으며 1934년 광장리(광장동)까지 지선 7.2㎞가 추가됐다. 애초 37대였던 기동차가 고장이나 노후로 말미암아 1950년대 말에는 18대로 반쪽이 됐다. 운행이 완전히 중단된 1966년까지 뚝섬 주민들은 기동차에 몸과 채소를 싣고 왕십리를 왕래했다. 1960~70년대 여름 피서철 뚝섬유원지에는 하루 평균 10만명의 인파가 몰렸고, 20만명 입장신기록도 세웠다. 당시 뚝섬유원지에는 70척의 놀잇배가 운행됐고, 20여개의 텐트가 난립했으며, 여학생 전용 수영장도 있었다. 사건·사고가 다반사인 서울 최대의 행락지였다. 뚝섬 일대는 1949년 서울시 성동구에 편입됐다. 성수동이라는 지명은 족보에 없는 새 이름이다. 성덕정에서 성(聖)자를 따고, 뚝도수원지에서 수(水)자를 따서 성수동이라고 융합 작명한 산물이다. 1954년 뚝섬경마장이 이전해오면서 성수동의 장소 관성을 깨웠다. 1928년부터 신설동에 있던 경성경마장이 한국전쟁 때 파괴되자 서울경마장이라고 이름을 바꾼 뒤 이전한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승마경기를 치를 국제경기장이 필요해지자 과천경마장으로 옮겼다. 장소성은 경찰기마대가 이어받았다. 오늘의 붉은 벽돌마을을 남긴 성수동 공단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서울의 근교농업지대에서 공단으로의 변화는 1950년대 말 청계천 재개발과정에서 봉제, 섬유, 염색, 금속, 기계 공장들이 성수동으로 이전하면서 가속화됐다. 도심과 가깝고, 땅값이 싸고, 한강변 성수천을 끼고 있어 최고의 입지를 자랑했다. 1970년대를 전후 모토로라코리아, 아남산업, 대동화학, 금강제화, 오리엔트시계, 강원산업, 한일약품, 신도리코 등 종업원 300명 이상 대기업 15개 업체가 옮겨왔다. 100인 이상 업체도 73개였다. 빨간 벽돌로 지은 2~3층 공장과 창고, 연립주택이 성수천을 따라 바둑판 형태로 늘어서면서 공장지대로 면모를 갖췄다. 1971년 말 성수동 공단을 중심으로 한 성동구의 제조업체 총수는 671개로 서울 전체의 20%를 웃돌았다. 지하철2호선 순환선이 놓인 뒤 경마장 부근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공장지대나 전철역 주변을 중심으로 주거기능이 강화됐다. 특히 성수동 한복판을 가로지르던 성수천의 중금속 오염이 문제였다. 성수천은 1977년 복개공사로 덮었지만 공해 유발 업체는 쫓겨나고, 공장 신설도 금지됐다. 1983년 당시 성수동 공단에는 1273개 업체에 5만 2000명 이상이 종사하고 있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형 공장이 지어진 성수동은 대표적인 주택과 공장 혼합지역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의 여파를 겪으면서 1997년 800여개의 공장 중 폐업한 공장이 300개를 넘었다.도시형 전통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수제화, 인쇄, 자동차정비업종이 스며들었다. 성수동의 새 3대 명물이다. 노동집약적 산업 대신 생활밀착형 산업을 앞세워 활로를 모색했다. 한국의 신발산업은 부산이 전략적 기지였으나 부산이 고무제품 중심이었다면, 서울은 가죽 제화산업의 중심이었다. 제화산업은 낮은 자본집약도와 상대적으로 낮은 단계의 기술투입, 높은 숙련인력 의존도, 높은 노동집약도가 필요했다. 해방 이후 서울의 수제화 산업은 염천교와 명동의 살롱화에서 싹텄다. 성수동은 수제화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다양한 신발공장과 수선에 필요한 부자재와 소재가 뒷받침했다. 강남과 도심 근접의 이점이 빛을 발했다.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수제화 생산업체 400여개와 중간 가공 및 원부자재 유통 100여개 등 500여개의 업체가 모인 국내 최대의 수제화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은 떠났지만 영세, 중소하청 업체들은 남아 수제화 산업 생태계를 복원한 게 더 값지다. 성수동은 한국 수제화 산업의 시간적 변천과 공간적 변천을 온몸으로 말한다. 지금 성수동은 ‘북촌=한옥’처럼 ‘성수동=붉은 벽돌마을’의 등식 성립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2회 불광동과 은평 한옥마을 ■일시 및 집결장소: 7월 13일(토) 오전 10시 불광역 7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 (www.suci.kr)
  • 윤석열은 왜 후배 윤대진을 감쌌나

    윤석열은 왜 후배 윤대진을 감쌌나

    소윤, 7년 전 경기경찰청장 구속기소 검경갈등 속 친형문제까지 덮쳐 곤혹 尹, 소윤 보호하려 방패막이 자처 논란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사실상 거짓말을 한 것을 두고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명이 나오면서 윤 후보자와 윤 국장의 관계에 관심이 쏠린다. 단순한 선후배 관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친밀하지만, 무리 없이 청문회를 통과하리라 예상했던 윤 후보자가 윤 국장 문제로 위기에 처하자 검찰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10일 검찰에 따르면 윤 후보자는 윤 국장의 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수수 사건에 검찰 후배인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해 줬는지를 두고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 처음에는 “소개해 준 적이 없다”고 답변했지만, 녹취파일이 공개되자 “선임시켜 준 적은 없다”고 했다. 결국 이 변호사는 2012년 경찰 수사 당시에는 선임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1년가량 지난 2013년 8월 이후 검찰 수사 단계에서 선임된 것으로 확인됐다. 윤 후보자는 “윤 국장의 형이 경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윤 국장에게 불필요한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설명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윤 국장도 “윤 후보자가 나를 드러내지 않고 보호하기 위해 그런 것이고, 변호사 소개는 내가 했다”고 말했다. 둘의 해명을 종합하면 윤 후보자가 윤 국장을 보호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 동문으로 나이는 네 살 차, 사업연수원 2기수 차이인 윤 후보자와 윤 국장은 검찰 내에서 ‘대윤’(大尹), ‘소윤’(小尹)이라 불릴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윤 국장은 2012년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에서 이철규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대검 중수부에 같이 근무했고 아끼는 후배인 윤 국장이 고위 경찰을 구속하는 바람에 가족들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어 윤 후보자가 감쌌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서장이 수사를 받던 시기에 우울증이나 모친 병환 등 가족에게 좋지 않은 일이 겹쳤는데 이런 부분을 밝히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다.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윤 후보자가 무난히 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라 예상했던 검찰은 돌발 변수에 적극 해명에 나서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차기 서울중앙지검장 하마평에 오를 정도인 윤 국장 문제로 윤 후보자가 도덕성에 타격을 입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신세경·윤보미 숙소에 몰카 설치한 스태프 집행유예

    신세경·윤보미 숙소에 몰카 설치한 스태프 집행유예

    해외 촬영지 숙소에 몰래 카메라 설치재판부 “촬영팀 지위 이용해 범행…책임 무거워”케이블TV 예능 프로그램의 해외 촬영지에서 여자 연예인 숙소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비업체 직원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4단독 권영혜 판사는 10일 방실침입,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김모(30)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 법원은 40시간의 성폭력치료강의 수강과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사생활이 가장 존중돼야 할 숙소에 카메라를 설치해 범행 수단과 방법이 좋지 않다”면서 “특히 피해자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해외 촬영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방송 촬영팀의 지위를 이용해 범행에 이른 만큼 책임이 무겁다”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수사단계부터 사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카메라 등이 압수돼 촬영물이 외부로 유포되는 등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앞으로 3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에 취업이 제한되며,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관할 기관에 신상정보를 등록하고 15년간 보관된다. 앞서 방송 외주장비업체 카메라 장비 담당 직원이던 김씨는 지난해 9월 케이블 방송사 올리브TV의 프로그램 ‘국경 없는 포차’ 해외 촬영 당시 배우 신세경과 가수 에이핑크 윤보미 숙소에 들어가 휴대용 보조배터리로 위장한 촬영 장비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남겨졌다. 당시 이상한 낌새를 느낀 신세경이 카메라를 직접 발견했으며 방송사 측이 김씨를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가 될 만한 영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글로벌 In&Out] 한국사가 잊어버린 한인 영웅들/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한국사가 잊어버린 한인 영웅들/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1941년 6월 22일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바꾼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유럽 대륙을 정복하고 새로운 ‘생활권’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동맹국 독일이 소련의 자원을 빼앗고 ‘불필요한 인구를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독일 침략에 맞서 싸운 소련의 붉은 군대는 4년 동안 피를 흘려 가면서 나치독일 침략자들을 패배시켰으며, 미국의 요청으로 1945년 8월 대일전쟁에 참여해 한반도 북부를 해방했다. 전 세계를 나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전쟁에 소련에 거주하던 한국인들도 참전해 불멸의 공로를 세웠다. 2011년에 신 드미트리, 박 보리스, 최 발렌틴 등 연구자들이 방대한 분량의 사료를 분석한 ‘1941~1945년 위대한 소련 조국전쟁 고려인들의 참전록’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독소전쟁 한인 참전자 372명과 관련된 사료, 회고록, 신문기사 등이 수록됐다. 소련에서 나치독일과 싸워 유럽과 아시아 해방에 크게 기여한 한국인들의 참여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자료는 ‘붉은 군대 훈장수여증명서’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제116사단 제246반전차대대 부대장 지(池 또는 智) 대위가 1942년 4월 22일 오전 5시에 예정된 아군 보병부대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용감성을 발휘해 최전방 정찰부대가 위치한 곳에 44㎜ 대포를 설치했다. 새벽이 되자 측면사격으로 적군 중기관총 5대와 토목화점 2개를 파괴한 것으로 ‘용맹’ 훈장을 수여받았다. 제4돌격군 소속 함 니콜라이는 1943년 8월 6일 독일군 방어선을 공격할 때 돌파구에서 분산된 부대들을 통합해 지휘관으로서 전투를 계속했다. 198.5 고지 전투에서 함 대위는 전차들을 위해 교량과 도로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고지에 돌격해 독일군 장병 3명을 직접 제거했다. 함 대위는 1944년 1월 6일 벨라루스를 해방하면서 영웅적으로 전사했다. 유럽 해방에 공로를 세운 한인도 있다. 예컨대 제233 붉은 깃발 사단에 속한 김 니콜라이 중좌는 전쟁 첫날부터 제3우크라이나 전선의 일원으로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 공세작전에 참전해 1급 조국전쟁 훈장을 수여받았다. 살벌한 방어전을 치른 후 김 중좌가 지휘한 연대는 1945년 3월 20일 공격을 개시해 적군을 격파하고 시몬토르냐라는 마을을 점령했고 카포시 수로를 건너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3월 23일에 김 중좌의 정확하고 능숙한 지도로 적을 패주시켜 약 500명의 독일군 장병을 제거했다. ‘소련의 영웅’이라는 최상위의 칭호이자 가장 높은 훈격을 수여받은 한인 민 알렉산드르도 있다. 만 26세의 청년인 그는 1941년에 입대해 가장 어려운 전투를 감당한 전선군 중 하나인 브랸스크 전선군에 파견됐으며 대위 계급을 수여받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1944년 7월 9일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 훈장수여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볼린 주 전투에서 민 동무는 그 부대의 전장으로 가서 직접 대대를 지휘하면서 적군 5개의 반격을 퇴치하고 전진할 수 있었다. 스타리예 코샤르 마을 전투에서 민 동무와 그 대대는 용감하게 우회작전을 실시해 마을을 해방했다. 육박전이 된 이 전투에서 민 동무는 직접 그 대대를 지휘했다. 그 후 파로두브 마을 전투 때에도 민 동무는 전장에 직접 섰으며 부대를 지휘하다가 영웅적으로 전사했다. 용감성과 영웅의 기질을 발휘한 민 동무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독소전쟁의 거의 모든 큰 전투에 한인들이 참여했다고 확인됐다. 모스크바 전투에 적어도 2명, 레닌그라드 방어전에 21명,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16명, 쿠르스크 전투에는 8명, 베를린 공세작전에 11명 그리고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첫 승리 퍼레이드에는 한인 2명이 참가했다.
  • 예보, 6500억원 걸린 캄보디아 ‘캄코시티 소송’ 패소

    예금자·투자자 등 3만 8000명이 피해 예보 “판결문 받는 즉시 대법에 상고” 예금보험공사가 부산저축은행 채권 6500억원이 걸린 ‘캄코시티’ 관련 캄보디아 소송에서 패소했다. 부산저축은행 파산 피해자 3만 8000여명을 구제하기 위한 채권 회수 작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9일 예보에 따르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열린 지분반환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시행사 ‘월드시티’의 손을 들어 줬다. 캄보디아 현지 개발사 월드시티의 이상호 전 대표는 부산저축은행그룹에서 대출을 받아 프놈펜에 신도시를 세우는 캄코시티를 진행했지만 저조한 분양 실적으로 사업이 중단됐다. 그리고 이씨는 부산저축은행이 파산하자 예보 몫(월드시티 지분 60%)이 된 사업 지분을 돌려달라고 2014년 2월 소송을 냈다. 예보는 1, 2심에서 패소한 뒤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돼 2심이 다시 열렸지만 또다시 패소한 것이다. 예보는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예보는 “판결문을 받는 즉시 2심 재판부의 판결 사유를 면밀히 분석해 반박할 수 있는 주장과 법리를 명료하게 밝혀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면서 “캄코시티 사업 정상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대검찰청 해외 불법재산환수 합동조사단 등과 협조해 인터폴 적색 수배자인 이씨의 국내 송환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부산저축은행은 캄코시티를 포함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과도하게 투자했다가 문을 닫아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 등 3만 8000명이 피해를 봤다. 부산저축은행이 캄코시티 프로젝트에 대출해준 금액은 총 2369억원이다. 이자를 합하면 현재 6500억원에 육박한다. 채권을 회수하면 88%는 예보 몫이 되고, 나머지 12%는 3만 8000여명이 나눠서 배당받는다. 예보는 부산저축은행 대신 예금자들에게 예금자보호 한도인 1인당 5000만원을 먼저 지급했다. 예보는 이번 소송으로 6500억원 대출채권 시효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예보 관계자는 “시행사 월드시티 지분 60%를 보유하면 채권 회수가 더 수월할 수 있겠지만 재판에 진다고 해서 꼭 채권을 못 받게 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예보는 2016년 대법원 대여금 청구 소송과 2017년 대한상사 중재 판정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 대출채권 집행권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동영상 속 김학의 前 차관 재확인…“檢 윤중천 죽이기” 혐의 전면 부인

    동영상 속 김학의 前 차관 재확인…“檢 윤중천 죽이기” 혐의 전면 부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게 성접대를 하고 지인들에게 사기를 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설업자 윤중천씨 측이 첫 재판에서 “검찰이 ‘윤중천 죽이기’에 집중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별장 성접대’ 동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면서도 윤씨가 표적이 됐다며 검찰 수사를 비난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손동환) 심리로 9일 열린 첫 공판에서 윤씨의 변호인은 “성폭력 혐의 기소는 법령상 근거 없는 대통령 지시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수사 권고로 수사단에서 성과를 위한 과욕에서 무차별적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9건의 기소는 과거사위 수사 권고 사항 및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실체적 진실이나 절차적 정의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윤씨 변호인은 구체적인 의견을 밝히기 전 “이미 2013년 7월 검찰 조사에서 동영상의 주인공이 김학의이고 여성을 소개해 줬다고 밝혔는데 왜 윤씨가 6년 동안 대한민국을 혼란에 몰아넣은 가장 큰 원흉이 돼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17일부터 사립대 종합감사 연세대 시작… 16개교 실시

    연세대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사립대학 ‘감사 태풍’이 몰아친다. 연세대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교육부의 종합감사를 받는다. 교육부는 9일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를 열고 오는 17일부터 2주 동안 연세대에 대한 종합감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교육부는 개교 이래 한 번도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사립대 중 학생수 6000명 이상인 대규모 학교 16곳을 2021년까지 종합감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연세대는 종합감사 대상인 대학 중 재학생이 3만 6000여명으로 규모가 가장 크며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241억원을 지원받았다. 회계사 등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합동감사단 총 25명이 투입되며 시민감사관도 참여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北목선’ 23사단 사병 투신… 軍 “조사대상 아니었다”

    ‘북한 목선’ 사건으로 경계실패 비판을 받고 있는 육군 23사단 소속 사병이 휴가 중 한강에 투신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육군은 9일 “23사단 예하 소초에서 상황병으로 근무하던 A(21) 일병이 휴가 중이던 지난 8일 오후 원효대교에서 투신했다”고 밝혔다. A 일병은 경계작전 중 발생하는 상황을 상황일지에 기록하는 업무를 했으며 사건 당일인 지난달 15일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근무했다. 국방부는 “병사에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는 데다 사건 발생 시점인 15일 오전 6시 20분쯤엔 A 일병이 경계근무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조사 대상도 아니었다”고 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A 일병의 휴대폰에 작성된 유서에는 “군대 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등의 자괴감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육군 관계자는 “지난 4월 A 일병이 소초에 투입된 이후 업무 미숙으로 간부의 질책이 있었던 게 헌병 조사에서 확인됐다”며 “사망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A 일병이 ‘북한 목선 조사 과정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아 투신했다’는 내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데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북한 선박 국정조사를 통해 함께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한국사가 잊어버린 독소전쟁의 한인 영웅들

    한국사가 잊어버린 독소전쟁의 한인 영웅들

    한국에서 6월말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6·25남침이라는 대답이 들릴 것이다. 그것은 물론 사실이다. 한국전쟁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이며 그 상처들은 아직도 완치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9년 3일 전인 1941년 6월 22일에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바꿀 또 한 가지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바로 나치 독일이 선전포고도 없이 소련을 침략한 것이다.유럽 대륙을 정복하고 새로운 ‘생활권’(Lebenstraum)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동맹국 독일이 유발한 이 전쟁은 소련의 자원을 빼앗고 ‘불필요한 인구’를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만약 독일이 성공했다면 전 세계가 몇 개의 민족들이 강제 지배하는 암흑시대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의 해방도 없었을 것이고 한국 문화가 일제에 의해 완전히 말살되었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1941년 6월 22일 독일 침략에 맞서 싸운 소련의 붉은 군대는 4년동안 피를 흘려 가면서 나치독일 침략자들을 패배시켰으며, 1945년 8월에 미국의 요청으로 대일전쟁에 참여하였고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북부를 해방하였다. 물론 이 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인들과 독일인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족을 비롯한 소련의 모든 민족들이 참여한 전쟁이었으며, 그 중 침략 당시에 소련에 거주한 한인, 소위 ‘고려인’들도 있었다. 이 기사에서 유럽, 나아가 전 세계를 나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전쟁에서 불멸의 공로를 세운 한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문서보관소의 폐쇄 등으로 제2차 세계대전 한인 참가의 연구는 오랫동안 큰 제약을 받고 있었으나 1990년대 이후 러시아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되면서 일반 연구자들도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2011년에 신 드미트리, 박 보리스, 최 발렌틴 등 연구자들이 방대한 분량의 사료를 분석한 ‘1941년~1945년 위대한 소련 조국전쟁 고려인들의 참전록’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독소전쟁 한인 참전자 372명과 관련된 사료, 회고록, 신문기사 등이 수록되었다.1941년 당시 소련에 거주하는 한인에게 붉은 군대에 입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37년 국가안보의 이유로 극동지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소련의 한인들은 신뢰할 수 없는 민족으로 간주되어 붉은 군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전문군인들도 강제 전역되었다. 1937~1938년 대숙청이 끝난 후 그 일부는 군대에 복귀되었지만, 많은 한인에게 붉은 군대 입대권은 여전히 거부되고 있었다. 하지만 1941년 6월 22일, 독일 침략의 소식이 알려지자 각각 도시와 농촌의 군사동원부 앞에서 사회주의 조국을 지키고 나치즘이라는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 붉은 군대에 지원하려는, 애국열과 투쟁열에 불타오르는 소련 모든 민족 젊은이들의 기나긴 줄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한인들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당시 군대에 입대하면 전선에서 나치침략자들과 싸우는 전선군대와 후방에서 전선부대들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된 노동군대 등 2가지의 길이 있었다. 물론, 입대에 성공한 많은 한인은 전선에 가지 못해 노동군대에 파견되어 무기생산이나 방어시설 건설 등에 전선부대들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역사 앞에서의 책임을 자각하는 많은 한인 젊은이들은 전선에 가는 것을 꿈꾸고 이를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였다. 입대지원서에 출신지, 민족에 대하여 위조한 사실을 신고하고 입대하는 경우가 제일 많았고 이름을 바꾸고 입대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보다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41년 노동군대에 동원된 차가이 씨가 전선에 가기 위해 3번이나 탈영 시도했고 결국 성공하여 고리키 시에 도착하고 노동자로 일하다가 다시 동원되어 전선에 파견되었다. 1941년 8월 노동군대에 동원된 황동국은 스탈린에게 “소비에트 조국의 원수들과 직접 싸우게 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 1942년 9월에 입대했으며 중사라는 계급을 수여받고 대전차포의 지휘성원으로 베를린 공세작전에서 참여하였다.우리에게 나치독일과 싸워 유럽과 아시아 해방에 크게 기여한 한인들의 참여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지는 자료는 그 공로의 기록이 나오는 붉은 군대 훈장수여증명서이다. 러시아국방부중앙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훈장수여 관련 자료는 너무 방대해서 연구가 완료되어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자료 중 대표적인 예들을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제116사단 제246 반전차대대 부대장 지(池 혹은 智) 대위가 1942년 4월 22일 오전 5시에 예정된 아군 보병부대의 공격을 지원하지 위해 용감성을 발휘하여 최전방 정찰부대가 위치한 곳에 44㎜ 대포를 설치하였다. 새벽이 되자 측면사격으로 적군 중기관총 5대와 토목화점 2개 파괴한 것으로 ‘용맹’ 훈장을 수여받았다. 제4돌격군 소속 함 니콜라이는 1943년 8월 6일 독일군 방어선을 공격할 때 돌파구에서 분산된 부대들을 통합시킨 후 그 지휘관으로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198,5 고지 전투에서 함 대위는 전차들을 위해 교량과 도로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고지에 돌격하여 독일군 장병 3명을 직접 제거하였다. 함 대위는 1944년 1월 6일 벨라루스를 해방하면서 영웅적으로 전사하였다.유럽 해방에 공로를 세운 한인도 있다. 예컨대, 제233 붉은깃발사단에 속한 김 니콜라이 중좌는 전쟁 첫날부터 참전하였으며 제3우크라이나전선의 일원으로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 공세작전에 참여하여 1급 조국전쟁 훈장을 수여받았다. 살벌한 방어전 후 김 중좌가 지휘한 연대는 1945년 3월 20일 공격을 개시하여 적군 부대들을 격파시키면서 시몬토르냐라는 마을을 점령하였으며 카포시 수로를 건너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3월 23일, 김 중좌의 정확하고 능숙한 지도 하의 그 연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패주시켜 약 500명의 독일군 장병을 제거하였다. 소련의 영웅이라는 최상위의 칭호이자 가장 높은 훈격을 수여받은 한인 민 알렉산드르도 있다. 만 26세의 청년인 그는 1941년에 입대해 가장 어려운 전투를 감당한 전선군 중에 하나인 브랸스크 전선군에 파견되었으며 대위 계급을 수여받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1944녀 7월 9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러시아문서보관소에서 보관되어 있는 그의 훈장수여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볼린 주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투에서 민 동무는 그 부대의 전장으로 가서 직접 대대를 지휘하면서 적군 5개 반공격을 퇴치하고 전진할 수 있었다. 스타리예 코샤르 마을 전투에서 민 동무와 그 대대는 용감하게 우회작전을 실시하여 마을을 해방하였다. 육박전이 된 이 전투에서 민 동무는 직접 그 대대를 지휘하였다. 그 후 파로두브 마을 전투 때에도 민 동무는 전장에 직접 섰으며 부대를 지휘하다가 영웅적으로 전사하였다. 용감성과 영웅의 기질을 발휘한 민 동무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독소전쟁의 거의 모든 큰 전투에 한인들이 참여했다. 모스크바 전투에 적어도 2명, 레닌그라드 방어전에는 21명, 스탈린그라드 전투에는 16명, 쿠르스크 전투에는 8명, 베를린 공세작전에는 11명, 그리고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첫 승리 퍼레이드에는 한인 2명이 참가했다. 전선에 나가 파시즘과 싸운 한인 중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은 소련의 다른 민족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나치 독일을 막음으로써 그 희생과 공훈이 한국 해방으로의 길을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사람들을 기념하는 한국 영화는 아직 한 편도 없다. 최근에 나온 영화 중에 독소전쟁과 관련이 있는 유일한 것은 ‘마이웨이’이라는 영화이지만, 그는 냉전 시대에 할리우드로부터 들어온 선입견에 사로잡혀 독소전쟁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 풍자화를 그리고 있다. 1941년에 발발하고 1945년 5월 9일에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식된 이 전쟁은 한민족을 비롯한 그 전쟁에 참여한 모든 민족들의 공동 공로이며, 한인들의 독소전쟁 참전 역사를 연구하고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 영원토록 남게 하는 것은 우리 역사가들의 중요한 과제이며 거룩한 임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숨진 23사단 병사 유서 발견…군 당국 “4월부터 업무 질책받아”

    숨진 23사단 병사 유서 발견…군 당국 “4월부터 업무 질책받아”

    스마트폰에 ‘유서’ 제목으로 된 메모 발견군 적응 어려움 호소…경계 관련 언급 없어군 당국 “소초 배치 후 업무 관련 질책받아”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당시 경계 근무 부실 지적을 받은 육군 23사단에 소속돼 복무 중이던 A 일병(21)이 한강에서 투신해 숨진 가운데, 이 병사의 휴대전화에서 ‘유서’라는 제목의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9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35분쯤 서울 원효대교에서 육군 23사단 소속 A(22) 일병이 투신했다. 신고자는 112에 “원효대교를 지나는데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 내려다 보니 사람이 허우적거린다”고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당국은 구조대를 급파, A 일병을 구조한 뒤 인근에 있는 여의도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 하고 숨졌다. A 일병의 스마트폰 메모장에서 3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라는 제목의 이 메모에 “부모를 떠나 군대 생활을 하는데 적응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북한 목선 경계실패 논란이 언급됐는지 여부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초소 경계 업무와 관련한 사항은 적혀 있지 않았다”면서 “유서에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가혹행위 등을 당했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A 일병의 신원을 확인한 뒤 즉시 군 당국에 통보했다. 한편 군 당국은 A 일병이 목선 입항 사건과 별개로 업무와 관련해 부대 간부의 질책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군 당국자는 “A 일병이 근무하는 부대는 지난 4월 소초에 투입됐다. A 일병이 (그때부터) 간부로부터 업무 관련 질책을 받아온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A 일병의 사망과 간부의 질책과의 연관성을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이 당국자는 덧붙였다. A 일병에 대한 폭행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폭행 여부를 포함해 또 다른 형태의 가혹 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군 수사당국은 면밀한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자는 북한 목선 사건 발생 이후에도 A 일병에 대한 질책이 있었는지에 대해 “(업무 관련 질책이) 4월 이후부터 계속 있었기 때문에 있었을 수 있다”면서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북한 목선 사건을 계기로 부대 분위기가 악화하고 소속 부대원들의 스트레스가 심해졌다는 관측이 나오는 데 대해서는 “모든 개연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대답했다. ‘북 목선 입항’ 15일 오후 소초 상황병 근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합동조사 땐 휴가 떠나군 “병사에 책임 묻지 않아…경위 조사 중”2명이 근무하는 일반 초소보다 큰 규모로 감시장비 등을 갖추고 운영되는 소초의 상황병이었던 A 일병은 지난달 15일 오전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입항할 당시 오후 근무조에 편성돼 근무를 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병은 경계 시 발생한 특이사항, 소초 출입자 등 모든 상황을 전파하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는다. 다만 당시 북한 목선이 오전에 입항하면서 불거진 경계 부실 문제와 A 일병의 근무 시각이 달라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아니었고 조사를 받은 바도 없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A 일병은 6월 15일 오후에 초소 근무를 섰다”면서 “합동조사단 조사(6월 24일) 당시에는 휴가를 갔다”고 전했다. 군에 따르면 A 일병은 지난달 15일 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를 섰고,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연가 및 위로 휴가를 사용했다. 지난 1일부터 9일까지는 정기휴가를 받았다. 군 관계자는 “북한 목선 사건과 관련해서는 병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육군은 “사망자가 ‘북한 소형 목선 상황’과 관련해 조사받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 투신했다‘는 내용이 SNS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데, 이는 확인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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