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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군제56사단/“청결운동 생활화”…앞서가는 환경부대(산하 파수꾼)

    ◎쓰레기 분리·활용… 4백만원 벌어 휴게실 마련/음식찌꺼기 비료로 재생… 「1산1하천 가꾸기」도 『지금 우리는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생각에서 삶의 터전을 오염시켜 건강하고 쾌적한 터전을 잃고 있다.이같은 현실에서 우리 부대의 전장병들과 그 가족들은 모두 환경보전의 파수꾼임을 명심하고 잠시 빌린 이 땅을 아름답게 가꿔 후손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에 동참한 육군 보병 제56사단(사단장 강롱부)은 「환경보전 생활수칙」을 마련,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는 환경모범 부대다. 수도권 지역에 위치한 이 부대에 들어서면 티끌 하나 발견할 수가 없다.부대와 연결돼 있는 군인아파트의 가족과 함께 오래 전부터 청결운동을 생활화 해온 이들은 쓰레기 분리수거와 폐식용유 재활용으로 지난 한해 4백40만원을 벌어들여 옥내외 사병 휴게실 마련 등 장병 복지향상에 모두 투자했다.그러니 부대 주변은 자연 깨끗해 졌고 장병들의 사기 또한 높이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군부대는 생활오수와 음식물찌꺼기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인식돼 왔다.그러나 보병 제56사단은 그같은 인식을 말끔히 씻어 주는데 손색이 없다. 앞서가는 환경부대로 널리 알려지자 국립환경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아파트 공터에 8억8천만원을 들여 오폐수 처리시설을 설치,4년 기한으로 시험가동을 하고 있어 정화된 맑은물을 하천으로 흘려 보내고 있다.또 아파트 복지기금에서 7백만원을 떼내 지난 6일 음식물 고속발효기를 갖춰 부대와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하루 2백여㎏의 음식물 찌꺼기를 초고속 발효시켜 사료나 비료로 만들어 고양시 신도농협에 공급하고 있다. 이밖에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처리를 위해 자체적으로 소각기를 제작해 모두 태우고 있다.이같이 철저하게 환경보호운동을 하고 있어 한방울의 오폐수나 한점의 쓰레기가 자연을 더럽힐 리 없다. 그뿐 아니라 주변가꾸기 활동에도 대단한 열의를 쏟고 있다.지난 93년부터 1부대 1산 1하천 가꾸기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매월 첫째 토요일 전 장병을 동원 북한산 창릉천 살리기를 비롯해 한강 서울시가지 등 불결한 지역을 찾아 17회에 걸쳐 연인원 6만여명을 투입 3백여t의 쓰레기를 수거했으며 매주 1회씩 환경보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 군부재자 투표 부정폭로/이지문씨 파면 부당 판결/대법

    지난 92년 14대총선 당시 군부재자투표과정의 부정을 폭로했던 이지문(당시 중위·27)씨에 대한 군당국의 파면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신성택 대법관)는 3일 이씨가 보병 제9사단장을 상대로 낸 파면처분취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원고승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국방부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일단 이씨의 군인신분과 계급을 원상 회복시킨뒤 다시 징계위원회를 열어 급여지급 등 추후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쿠데타계획」 입증어려워 “답보”/「5·18」수사 어떻게 돼가나

    ◎피고소·고발인 58명중 21명 조사/신군부측 의원4명은 소환불응 「5·18」고소·고발 사건의 검찰수사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전망이다. 고소·고발인들이 주장하는 내란죄 등과 관련,신군부의 79년 12·12∼80년 5·18∼80년 8월16일 최규하 전대통령 하야로 이어지는 이른바 「다단계 쿠데타 계획」을 입증하기 어려운데다 피고소·고발인 또한 수사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이다. 「5·18」관련 고소·고발사건은 크게 3부류로 나뉘어 진다. 정동년씨 등 이 사건 피해자 3백22명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35명을 상대로 낸 사건 ▲한완상·김상현씨 등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22명이 전·노 전대통령 등 10명을 상대로 낸 사건 ▲이부영의원 등 민주당 「민주개혁정치모임」소속 29명이 국보위 위원 23명을 상대로 낸 사건 등이다. 이 3가지 사건의 총 피고소·고발인은 58명에 이르고 있다.이들 가운데 29일 현재 검찰에서 조사를 마친 사람은 21명.피고소·고발인중 12명의 현역 군인은 국방부에서 자체조사가 진행중이다. 이와 관련,검찰수사 관계자는 『사건 당시 광주에 투입된 3·7·11여단장을 비롯,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씨 등 21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면서 『정동년씨와 신현확 전국무총리 등 9명도 고발인과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5·18」 당시 광주에서의 상황 등에 대한 보완조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수사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 수사관계자는 『고소·고발인들의 주장대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수경사령관,정호용(정호용) 특전사령관을 비롯,박준병(박준병) 20사단장 등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최전대통령을 협박,전국에 계엄을 확대시켜 광주사태를 일으키고 최전대통령을 하야시켰는지 여부는 당사자들의 진술과 함께 물증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해 이를 암시했다. 검찰은 5·18이후의 사건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당시 국무총리를 역임한 신현확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비상계엄확대를 결의한 국무회의와 2월부터 시작된 충정훈련 등 신군부측의 동향을 파악하려 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신군부측의실세로 통했던 정 전특전사령관 등 국회의원 4명을 소환하려 했으나 이들이 2월초 열리는 전당대회 등을 이유로 소환시기를 미루고 있어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이번 사건 역시 최대의 관심사는 피고소·고발인격인 전·노 전대통령과 참고인격인 최 전대통령에 대한 소환시기 및 조사방법이다. 특히 최 전대통령은 12·12사건과는 달리 이번 사건의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는 「핵심」참고인이어서 서면조사 대신 검사가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최 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 무렵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해자들은 김씨가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81년 1월을 기준으로 96년 1월을 꼽고 있고 민주당 개혁모임측은 국보위가 해산된 81년 4월을 기준으로 96년 4월 공소시효가 완성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은 최 전대통령의 하야시점을 기산점으로 잡고 있는 것이다.
  • 미군의 한반도 진주(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

    ◎「소군 남진」에 당황 “38이남 접수” 명령/하지 24군단장에 “군정기구 창설” 임무/남한정보 부족속 오키나와서 「골격」 완성/선발대 B25 2대로 9월6일 김포공항에 전세계가 일본의 태평양전쟁 항복소식에 숨을 죽인 1945년8월15일.그 지루한 대전이 끝나던 여름날,오키나와에 있는 미 제24군단에 한통의 특별지시가 떨어졌다.필리핀 마닐라의 태평양사령부로부터 날아온 특별지시 제14호였다.미국의 한반도점령지가 북위 38도선 남쪽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이 문서는 24군단으로 하여금 작전에 필요한 계획을 세우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이날 저녁 오키나와에는 천황의 항복조칙이 발효되었음에도 폭탄을 실은 일본전투기가 날아들었다.또 다른 가미카제(신풍)들은 일본 본토주위를 순항중인 미 제3함대 순양함을 공격했다.그러나 미국은 그까짓 산발적 저항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었다.다만 신경을 써야 했던 지역은 오키나와에서 자그마치 1천6백9㎞나 떨어진 한반도였다.전쟁이 끝난 마당에 한반도를 더이상 「힘의 공백지대」로 방치해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련의 남진소식은 미국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소련이 인천을 점령한 데 이어 해군을 서울에 보냈고,8월15일에는 서울정부를 세운다는 보고가 들어온 터였으니까….하지만 소련군의 남진은 많은 부분 과장되었다는 것이 보편적 견해다.소련군은 8월25일이 지나서 38도선을 남쪽으로 약간 비켜선 개성까지 왔었다는 것이다.소수의 소련군이 서울까지 정찰했다는 설이 있기는 하다. 미 제24군단에 북위 38도선 이남을 대상으로 한 점령계획수립명령이 떨어졌을 때 소련군의 한반도작전을 살펴보자.소련군 작전은 극동전선 왼쪽을 맡은 제25군사령관 I·M 치스차코프대장 등이 쓴 회고록의 한 부분 「제25군 전투행로」에 잘 나타난다.이 회고록에 따르면 8월15일에 함북 나진항구와 시내를 완전장악하는 한편 청진항에도 일부병력이 상륙한 것으로 되어 있다.8월12일 새벽 제358해병대대의 상륙으로 시작된 나진전투는 2일동안 끌었다. 이에 앞서 소련군은 8월9일 대일전에 뛰어든 즉시 제10급강하폭격기사단등의 비행부대들이 웅기·나진·청진을 폭격한 바 있다.대일전에 참가했던 해군대장 S·E 자하로프는 뒷날 회고록 「조선해방을 위한 투쟁에서의 태평양함대」를 통해 10일까지 6백16회의 비행기록을 남겼다고 적었다.이 출격에서 일본 수송선 격침 11척,파괴 11척의 전과를 올렸다는 것이다. 이때의 프라우다는 「함정들이 웅기를 향하는 도중 관측자들의 눈에는 붉게 타오르는 하늘이 보였다.우리 비행사들의 폭격을 받아 타고 있는 군사목표물이었다」고 보도했다.어떻든 속도전으로 한반도 북단을 몰아붙인 소련군은 8월16일 웅기에서 열린 환영집회에 참석한 정도였다.한반도북단을 점령한 소련은 프라우다 등을 통해 전쟁영웅과 주민 사이에 얽힌 미담들을 만들어냈다.정치성 공작이 재빨리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제 오키나와로 다시 돌아올 차례가 되었다.미 제24군단이 제10군단으로부터 한국점령임무를 물려받은 것은 한반도 38도선이남 점령계획수립명령이 떨어지기 3일 전인 8월12일.그리고 군단장 J·R 하지중장에게 주한미군(USAFIK)사령관이라는 새로운 지휘권이 8월19일에 부여되었다.또 38도선 남쪽 일본 육·해·공군과 예비군 항복을 접수할 때 태평양사령부를 대신하는 임무도 통보받았다. 그러나 제24군단 참모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에 관한 지식은 전무한 상태였다.1945년4월에 간행한 「제니스 75」라고 부른 한국에 대한 육·해군합동정보처의 보고서가 고작이었다.이 자료 역시 점령작전을 위한 전술공격용일 뿐 정치·경제·사회분야를 다룬 정보는 거의 없었다.심지어는 오키나와에서 붙잡힌 일본군 소속 한국인 포로를 통해 정보를 얻어내려 했으나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의 전력파악도 미진했다.그래서 한국은 자칫 위험하기 짝이 없는 특공대훈련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한국주둔 일본군 전투력을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으로 평가한 기록도 여러군데에 나온다.일본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종전당시 남한의 일본군병력은 3백15개의 각급부대에 23만2백58명이 배속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이는 미 합동전쟁기획위원회(JWPC)가 밝힌 27만명에 비해 3만여명이 모자라는 숫자다. 미국으로서는 시간은 부족하고 정보는 더욱 모자랐다.하지장군은 미군에게 한국군정임무 부여에 따라 추진되었던 이른바 「블랙리스트」계획에 참여했던 10군단 소속의 장교들을 차출해 급히 불러들였다.10군단 행정처(G­1)의 프레스코대령과 에스테즈소령이 그들이다.이들에게 군정조직 완성임무를 주었는데,프레스코대령은 뒤에 미군정청(USIK,MG)의 민정장관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 군정을 실시하지 않고,기존의 일본정부기구를 활용키로 한 태평양사령부는 8월29일 지령을 내렸다.이 지령은 한국에서 항복조건 실행을 위해서라면 일본정부(조선총독부)를 잡아두라는 내용이었다.미군정이 일본관리들을 많이 쓰게 된 빌미가 바로 이 지령이었다는 것이 전사가들의 비판이다.제24군단은 마침내 9월1일 초기 한국정책의 지침이 된 부속서류를「군단 야전명령 제55호」에 포함시켜 발표하기에 이른다. 한국을 통치할 미군정기구는 이보다 앞서 8월29일 한 부대가 어떤 편제에 의해 창설되듯 오키나와에서 골격을 갖추었다.이에 따라 24군단에게는 주한미군의 참모기능이 돌아간 가운데 군단사령부와 본부중대,제10군단 대공포대는 군정임무를 맡게 되었다.그리고 8월29일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조선총독부에게 특별명령을 하달한다.9월7일 미군이 한국에 상륙한다는 것과 일본군사령관은 8월31일 하오6시(토쿄시간)에 미 24군단과 무선접촉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한편 24군단은 모든 무선부호를 동원,서울과의 통신을 시도한 끝에 9월1일 서울을 지칭하는 말 『여기는 경성(게이조)』이라는 응답을 받아냈다.24군단은 당시 경성방송국을 통해 한국주둔 일본군 제17지역 사령관 우에츠키(상월양부)와의 교신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우에츠키는 몇 차례의 통화에서 질서를 방해하는 독립운동가들과 급료인상을 요구하는 인천항 노동자들을 미군 상륙의 위협적 존재로 떠올렸다. 그래서 24군단은 두 가지 종류의 전단을 서둘러 준비했다.미군의 한국도착이 임박했으니 질서를 유지하라는 것과 미군이 한국의 정부수립을 위해 진주한다는 내용이었다. 첫번째 전단 15만부는 9월1일 제380폭격단 B­24폭격기가 실어다 부산·서울·인천에 뿌렸다.9월5일에는 두번째 전단이 같은 방법으로 살포되었다.한·소국경을 넘은 8월9일부터 소련군이 북한지역에 전단을 뿌린 사실을 상기하면 초보적 선무공작도 미군이 5주나 뒤졌다. 한국을 향한 8대의 B­25가 9월4일 오키나와를 이륙했다.C·S 해리스준장이 지휘하는 선발대가 탄 이들 비행기 가운데 2대가 이날 하오 김포에 내렸다.나머지 6대는 기상이 나빠 회황했다가 9월6일 김포에 닿았다.그리고 나서 구축함과 항공모함의 호위를 받은 다섯줄 밀집종대의 전함들이 남중국해 파도를 가르기 시작했다.첫 호위함이 인천항에 닻을 내린 것은 소련군의 한반도점령보다 한달이 늦은 9월8일 아침이었다. ◎“한국 문외한… 「군정사령관」 부적” 평가/하지 그는 누구인가/“정글전의 권위자”… 군인으로는 상당한 명성 태평양전쟁 마지막을 오키나와에서 보낸 미 제24군단장 J R 하지중장.그 이후 주한미군 사령관 자격으로 24군단을 이끌고 한국에 왔던 일리노이주 골콘다 출생(1893년6월12일)의 그를 깊이 아는 사람들은 지금 썩 흔치 않을 것이다.그러나 한국현대사 속의 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태평양전쟁에서 「군인 중의 군인」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육군사관학교 출신은 아니다.1917년 일리노이대학 재학중 보병예비대 소위로 임관했다.그해 같은 계급으로 육군에 정식편입되어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뮤즈 아르곤 전투 등 유럽전선에 참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육군대학,참모학교,보병학교,화학학교 등을 졸업한 그는 육군내에 몇 안되는 항공전술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제2차대전 중인 1942년11월 과다카날에서 일본군을 격퇴시켰을 때 제25사단 부사단장이었고,보겐빌작전에서는 아메리칸사단을 지휘했다. 그의 능력은 43사단에서 발휘되었다.부대를 전투단위로 조직,전투력을 향상시킨 야전 지휘관의 작전능력을 인정받았던 것이다.특히 솔로몬군도 전투에서 받은 전시공로훈장,훈공장 등은 빛나는 전공의 논공행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944년4월1일자로 24군단에 전입되었다.24군단은 일본이 장악한 태평양상의 여러 섬을 수륙양용으로 공격하기 위해 그 해에 창설한 부대.호전적 부대로 알려진 24군단은 팔리우섬에서 시작하여 필리핀의 레이테 침공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투에 참가했다. 미 육군성 전사실 소장의 하지 중장의 기록철을 보면 「자신의 부대에 대한 접근 방법이 독특할 뿐 아니라 간결한 비방록으로 유명하다」고 적었다.그리고 「정글전의 권위자」로 평가해놓았다.그러나 1945년 가을에 작성한 「루스 메시지」의 한 파일은 「아시아문제에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하지를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비판기록을 남기고 있다. 1963년11월12일 70살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 조사부 〃
  • 군내무반에 수류탄 투척/구타불만 사병이… 6명 중상

    지난 18일 새벽 5시45분쯤 강원도 고성군 소재 육군 제22사단(사단장 김일갑소장·육사24기)55연대에서 보초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용구이병(21)이 상급자들의 구타에 불만을 품고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져 잠자던 김상범일병(21)등 동료사병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내무반에는 김일병등 14명이 잠을 자고 있었으나 수류탄이 침상에 떨어지면서 폭발,파편이 위로 날아가는 바람에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그러나 김일병과 신동석일병(22)등 2명은 각각 머리와 허벅지를 크게 다쳐 군헬기편으로 서울수도통합병원에 후송됐다. 육군에 따르면 김이병은 평소 김일병등 상급자 4명이 『동작이 느리다』 『군기가 빠졌다』면서 걸핏하면 구타하는등 괴롭히자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육군조사결과 김이병은 이날 새벽 야간경계근무를 위해 지급받았던 수류탄 1발을 방한장갑에 숨겨 내무반에 들여온뒤 침상위로 던진 것으로 밝혀졌다.이 수류탄은 잠자던 김일병과 신일병 틈새 마루바닥에 떨어진뒤 폭발했다.
  • 3군사령관 도일규대장/수방사령관 한승의중장

    정부는 24일 육군 3군 사령관에 수방사령관 도일규 중장(육사20기)을 대장으로 승진시켜 임명했다. 정부는 수도방위사령관에는 한승의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육사22기)을 중장으로 승진시켜 임명했다. ◇도3군사령관 약력=▲서울(54) ▲합참 군사전략과장 ▲사단장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수방사령관 ◇한수방사령관 약력=▲경남 산청(52) ▲미국 인디애나대 응용언어학석사 ▲미 지휘참모대 ▲미 육군대학원 ▲합참의장 보좌관 ▲연합사 작전처장 ▲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 쌍용 “북한에 컨벤션센터 건립”/나진·선봉

    ◎금융·레저등 편의시설 세워 쌍용그룹은 북한의 나진·선봉지역에 컨벤션센터 건립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쌍용그룹의 이주범부회장(북한투자조사단장)은 2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빠르면 2∼3년안에 완공될 전망이다. 이부회장은 『국내 기업들과 공동으로 컨벤션센터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컨벤션센터에는 금융기관·레저시설·외국인들의 숙소·통신시설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이부회장은 또 『내년 2월15일 중국 북경에서 북한의 시멘트 반입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하겠다』며 『김석원그룹회장은 내년 봄쯤(시멘트)정식계약을 맺은뒤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부회장은 지난 13일 북한을 방문,지난 19일 귀국했다.
  • 신현확씨 소환조사/5·18고소고발

    「5·18」고소 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부장검사)는 19일 80년 당시 20사단 62연대 1대대장 오성윤씨를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오씨를 상대로 당시 20사단 사단장이었던 박준병민자당의원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광주에 투입된 경위,시위대에 대한 발포 상황과 명령계통 등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24일에는 11공수여단장 최세창씨와 11공수여단장 최웅씨를 소환할 예정이다. 한편 검찰은 17일 하오 당시 국무총리를 지낸 신현확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계엄확대선포를 하게 된 경위 등을 조사했다.
  • 정웅씨 소환조사/5·18고발 수사

    5·18 관련 고소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부장검사)는 5일 80년 당시 31사단장이자 전남지역 계엄분소장이었던 정웅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 서일병,17발 난사… 사대 곳곳 핏자국/「총기난사」 현장조사 주변

    ◎범인 형도 군복무중 자살 밝혀져 ○…1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덕도리 육군 기계화사단내 사격장에서 실시된 총기난사 현장조사는 국회 국방위소속 민주당의원들이 사고원인과 대책을 묻고 군관계자들이 답변한후 현장검증을 하는 식으로 약 1시간40분가량 차분하게 진행. 이날 현장조사에는 정대철·임복진의원등 국회 국방위 민주당소속 의원 5명이 참석했으며 군에서는 26사단 박노숙사단장등 20여명이 배석. ○…사건 현장에는 사고 발생 이틀이 됐으나 여기 저기 핏자국이 선명해 당시의 참상을 짐작케 했다. 사대 앞 간이 탄약대를 중심으로 5m 반경내에는 숨진 중대장 김수영대위와 소대장 황재호중위 등 사상자와 자살한 서문석일병이 흘린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부하 사병의 총격으로 숨진 김대위는 외동아들 방환군의 돌잔치를 하루 앞두고 참변을 당해 주위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특히 김대위는 사고 5일전 장교의 최고 영예인 「강재구소령상」을 수상했으며 평소 모범적인 군생활로 상사와 부하들로부터 촉망받는 장교였다.김대위와 같은 대대에서 복무하다 지난 3월 제대해 TV를 통해 사망소식을 듣고 이날 김대위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덕계리 국군덕정병원에 조문온 김태환씨(26)은 『대대에서 후배를 가장 아끼는 장교로 소문나 있었으며 인내심이 부족한 사병들에게 몸소 군인정신을 실천한 군인의 표상이었다』며 울먹거렸다. ○…서일병이 자신이 지니고 있던 자동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군 발표와 관련,K­2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으나 일선 군관계자들은 K­2소총이 한국인 체형에 맞게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자살할 수 있다고 해명. K­2 소총은 총구에서 개머리판까지의 전장이 98㎝에 이르나 개머리판을 접고나면 총구에서 방아쇠까지의 길이가 60여㎝에 불과하다는 것. ○…서일병이 난사한 총탄은 모두 17발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 관계자는 『서일병이 소대장 2명에게 발사하자 사병들이 모두 엎드렸으나 서일병과 16m간격을 두고 사로에 서있던 김대위가 몸을 피하지 않은 채 서일병을 바라보다가 조준사격을 당해 후송도중 숨졌다』고 말했다. ○…서일병의 친형인 광석씨도 91년 군복무중 자살한 것으로 군 조사결과 밝혀졌다.부대 관계자에 따르면 서일병의 둘째 형인 광석씨는 91년 3월 21일 ○○사단에서 사병으로 복무하던 중 신체 허약 및 유격훈련을 앞둔 두려움에 청산가리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으로 숨진 김대위와 황중위의 영결식은 2일 이들의 사체가 안치돼 있는 국군 덕정병원에서 여단장 주관으로 치러질 예정.
  • “다신 그런 불상사 없어야”/12·12 수사발표 각계반응

    ◎현대사 올바른 서술근거 제시/“단죄 마땅” 기소유예 비판론 우세/일부선 “반목·갈등 매듭 바람직” 검찰이 12·12사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수사결과를 발표한 29일 각계 인사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같은 불상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상당수 인사들은 『범법사실이 확인되었으면 마땅히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국민 정서」를 중시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사건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규정된만큼 단죄할 경우 예상되는 엄청난 사회적인 혼란과 갈등을 피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서경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사무총장=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군대질서를 문란시키는등 하극상을 일으킨 범법자들에 대해 검찰이 책임을 묻지않은 것은 기소편의주의를 남용한 것으로 본다. 과거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는 철저히 당사자들의 반성을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당사자들이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속에서 이루어진 이번 결정을 볼 때 애당초 검찰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이번 문제는 정부에서 특별검사제도를 도입해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했다. ◇정진위 연세대부총장=과거에 대한 잘잘못을 무조건 덮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정의실천이라는 법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분열을 가져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 우리사회에는 해결해야 할 총체적 문제가 산재해 있고 국제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분열보다는 앞으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검찰이 결론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안경환 서울대법대교수=검찰의 이번 기소유예처분은 순수법리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국가에 공을 세운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반란을 일으킨 후에 세운 것이므로 법적으로 엄정히 처분해야 마땅하다.또 국가에 대한 공은 역사와 후세가 판단할 일이지 검찰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일도 아니다.과거 대통령에 대한 예우문제도 국민적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 ◇정수암 예비역육군소장=검찰이 과거지사를 놓고 갈등과 반목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관련자를 기소유예한 데 대해 일면 수긍이 간다.그러나 12·12는 반란이었고 전형적인 후진국형 문제였기 때문에 선진국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박찬운변호사=반란행위는 국가와 군의 기강을 흐리는 중대범죄인데도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에 그친 것은 법률적 판단보다는 정치적인 고려를 우선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공소시효를 40여일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항고·재항고·헌법소원 등 나머지 수단까지 봉쇄하려는 의도가 있지않느냐는 지적을 받을 것이다. ◇김성영목사(성결교신학대교수)=검찰이 12·12사태의 성격을 군사반란으로 규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사태의 주역들이 자기합리화 논리만을 끈질기게 주장함으로써 자칫 호도될뻔한 12·12성격이 명백히 밝혀졌다.특히 현대사가 사태의 진실을 올바로 서술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물론 국민들이나 12·12사태의 피해당사자들이 보면 검찰의 처분이 불만족스런 부분이 있을 법하다.그러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정승환 한성대교수(사망한 정병주 전특전사령관 장남)=반란을 막으려다 죄인으로 몰린 나머지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까지 택한 아버님의 한은 아직도 우리 가족들의 가슴에 남아있다.이번 검찰의 결정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결정에 불과하며 역사적으로 완전히 정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또다시 우리가족 같은 역사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란에 대한 단죄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12·12수사/생소한 죄목들/반란수괴/부하의 상관살해 혐의 포함/부화뇌동/단순가담자… 정호영씨 해당/불법진퇴/병력 움직인 지휘관에 적용 12·12사건으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관련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죄목이 적용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이 사건의 핵심 주모자격인 전두환전대통령의 경우 사형에 처해지는 군형법 제5조 1항의 「반란수괴죄」가 적용됐다.여기서 수괴란 우두머리를 말한다.이에 따라 전전대통령은 반란 가담자들이 저지른 상관살해의 공범으로 간주돼 상관살해죄도 적용받았다. 노태우 전대통령 등 반란 적극가담자들에게는 사형·무기 또는 7년이상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지는 「반란모의참여및 중요임무종사죄」가 적용됐다. 사정을 모르고 뒤늦게 반란에 가담한 사람들에게는 「반란부화뇌동죄」가 적용됐으나 이 조항은 7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미 공소시효(5년)가 지난 상태이다.정호용 당시 50사단장은 애초부터 반란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거사가 끝난 다음날인 79년 12월 13일 새벽 대구에서 올라와 갑자기 합류한 사실이 드러나 군인으로서는 다소 치욕스런(?) 이 조항을 적용받게 됐다. 또 전시·사변 또는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해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함선 또는 항공기를 진퇴시킨 경우에 적용되는 불법진퇴죄는 사형·무기 또는 7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진다. 이밖에 지휘관계엄지역의 수소 이탈은 사형·무기 또는 5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지며 상관살해는 사형,초병살해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상관살해미수는 상관을 직접 살해한 기수범의 형량보다는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
  • 「총장연행」 한남동공관서 “재현 검증”/「1년5개월 수사」 뒷얘기

    ◎국감 회의록·월간지 기사 샅샅이 뒤져 참조/검사 사건 시·분·초까지 정확히 꿰뚫어 “깜짝” ○…지난해 9월 서울지검 공안1부장으로 있을 당시 12·12 고소·고발에 대한 1차 고소인조사를 직접 담당했던 조차장검사는 울산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달 1차장으로 복귀,12·12사건의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하게돼 12·12와는 묘한 인연. 그는 이번 검찰수사와 관련,『검찰로서는 한점 후회나 아쉬움이 없다』면서 『일부 비난의 소리는 결국 후세의 사가가 검찰의 판단을 정당화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자신감을 표명. ○…이 사건 수사를 전담해온 서울지검 공안1부는 지난해 5월12일 전두환·노태우 두전직 대통령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된 이래 『1년5개월 동안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을 비롯,참고인으로 90명을 조사,더이상 만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 조사했다』며 공안검사들의 「끈기」를 은근히 자랑. 특히 용산구 한남동 육군 참모총장 공관의 현장확인과 함께 실제 상황을 재현하는 조사까지 벌였으며 국회 광주특위 회의록,12·12사건 국정감사 회의록,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및 정승화 총장의 내란방조사건 조사·재판 기록등은 물론 월간지의 기사까지 샅샅이 뒤졌다고 전언. ○…검찰은 이번 사건의 발표문에 고소인측도 생각하지 못한 사실까지도 들어있다며 수사의 공정성을 자신하는 눈치. 검찰은 정승화전총장을 연행하러 갔던 우경윤대령의 피격과 관련,『12·12는 정전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이라는 전두환 전대통령측의 주장에 대해 『먼저 총을 쏜 것은 정총장측이 아닌 보안사측』이라고 일축. 검찰측은 피격된 우대령의 부상정도를 검안한 기록은 물론 탄알에 대한 검사와 당시 상황을 재현해 이같은 사실을 규명해 냈다고 귀띔. ○…이번 사건의 주임검사인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은 사건 당시의 상황을 시·분·초까지 거의 정확하게 꿰고 있어 김도언 검찰총장과 송종의 대검차장,안강민 대검공안부장등 검찰수뇌부는 물론 수사에 함께 참여했던 서울지검 공안1부 소속 후배검사들도 장부장의 기억력과 꼼꼼함에 혀를 내두르기도. 검찰내 일꾼으로 특히 기획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장부장은 이번 사건을 훌륭히 마무리지었다는 평까지 얻어 앞으로 승승장구가 예상. ○…정승화 전총장등 고소인들은 검찰의 기소유예방침에 강한 불만을 내보이면서도 『항고를 하더라도 사실상 효과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다』,『검찰이 진실을 밝히는데 애를 많이 썼다』고 말하는등 한편으로는 검찰수사결과를 어느정도 인정하는 분위기. 정 전총장은 『검찰이 「정치적 입김」을 받았다고 생각하느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는 민감한 사안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당연히 기소됐어야 하는데…』라며 여운. 특히 12·12의 성격을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짓고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는 지난해 5월의 청와대 발표와 연관지어 취재진들이 「정치적 입김」에 대해 재차 질문을 던지자 정 전총장은 『청와대의 발표내용을 몰라 답변을 못하겠다』는 식으로 응수. ○…다른 고소인들보다 회견장에 1시간정도 늦게 도착한 장태완 전수도경비사령관은 『군사반란을 막지못한 책임과 국민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지난 15년동안 하루도 편하게 살지 못했다』며 그동안의 고충을 토로한 뒤 『검찰의 이번 수사는 객관적으로 볼때 엄정하게 이뤄졌다고 보며 수사결과도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를 내려 주목. 장 전사령관은 그러나 『탈영장교는 중형으로 처벌하면서도 군사반란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기소조차 하지 않으면 앞으로 군사반란을 꾀하거나 군기를 흩뜨리는 군인들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느냐』고 뼈있는 한마디. 그는 다만 『국가존립 차원에서 법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무사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항고등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역설. ○「12·12」 고소·고발사건 일지 ▲93·7·19=정승화씨등 22명,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등 신군부측 핵심인사 38명을 군형법상 반란및 형법상의 내란혐의 등으로 대검에 고소.서울지검 공안1부에 배당 ▲〃 8·16=정 전육참총장 소환,조사 ▲〃 11·8=당시 3군사령관 이건영씨에 대한 조사를 끝으로 22명의 고소인 조사 마무리 ▲〃 12·11=당시 수경사 작전참모였던 박동원씨(예비역 소장)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하는 등 3월중순까지 1백여명의 참고인 조사 ▲94·3·23=정승화씨를 연행한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씨 소환,조사.7월말까지 유학성·차규헌·황영시·박희도·최세창·박준병·장세동·김진영·이학봉씨등 피고소인 35명(71방위사단장 백운택씨는 사망으로 제외)소환,조사 ▲〃 8·12=피고소인인 전·노 두 전직대통령과 최규하전대통령(참고인 자격)에게 서면질의서 보냄.박희도·최세창씨 등 8명은 장태완·김진기씨 등 고소인 2명을 내란 및 반란혐의로 맞고소 ▲〃 9·3=노 전대통령,『12·12사태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수사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일뿐 계획된 쿠데타가 아니다』는 취지의 답변서 제출 ▲〃 9·15=전 전대통령,노 전대통령과 같은 취지의 답변서 제출 ▲〃 9·27=최 전대통령이 참고인 조사에 불응하겠다고 검찰에 통보
  • 「12·12」 수사 장윤석 공안1부장 일문일답

    ◎“기소유예는 국가공헌 고려한 결론”/군권장악에 그쳐 내란죄는 적용안해/1백50명 진술 청취… 자료부족 애먹어 12·12 고소·고발사건의 수사 주임검사인 장윤석서울지검 공안1부장과의 일문일답.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에 대해 기소유예결정을 내린 이유는.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를 종합해 결정했다.결정 과정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다.결정은 수사결과에 따른 것이다.두 전직 대통령의 국가에 대한 공헌은 물론 법률적·정치적·사회적 요소들을 신중히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다. ­일부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전직대통령과 박준병 당시 20사단장등 피고소인에 대한 기소유예가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말도 나오는데. ▲국민들이 생각한 바와 같이 결정됐다면 국민 정서에 맞게 최대 공약수를 찾은게 아닌가.앞서한 말중에 「정치적 고려」는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12·12사건은 결국 5·18과 제5공화국 탄생등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내란죄에 해당하는 국헌문란이 아닌가. ▲이번 검찰 수사는 12·12사건에 국한된 것이다.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한 내란죄에 대한 결론을 내린 바가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둔다.12·12사건의 전후 결과에 대해 연관지울 수 없다.국헌문란의 목적은 정권탈취등의 목적이어야 하지만 국헌 질서와 제도를 일부 거역했다고 해서 모두 내란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궁국적으로는 정권을 잡지 않았는가.「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면죄부는 아닌가. ▲모의 과정·행위·실행범위등 모든 관련성에 대해 조사를 했다.그러나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범위를 넘지 않았다는 판단을 했다.즉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군의 주도권을 잡자 입지가 곤란해진 소장파들이 자신들의 몰락을 우려해 일으킨 것이다.예를 들어 병아리를 훔쳤다고 해서 병아리를 팔아 돼지를 사고 또 소를 사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할수 있겠는가. ­최규하전대통령은 조사하지 못했는데. ▲최전대통령의 조사거부로 당시 재가문제나 총리실 상황에 대해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그러나 당시 총리실 공관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진술을 들었기 때문에 진상규명에는 전혀 하자가 없었다. ­당시 12월13일 최전대통령이 사후재가 할 당시 전두환합수본부장이 권총을 찬 채로 있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강압에 의한 재가를 입증하는게 아닌가. ▲대통령에게 강요와 협박을 했다는 점은 없다.전두환 합수본부장이 계엄하에서 전투복 차림에 권총을 지닌 것은 사실이나 접견실에서 권총을 차고 있었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정승화육군참모총장 연행을 담당했던 우경윤대령이 총에 피격됐는데 누가 쏜 총에 맞은 것인지 확인했는가. ▲구체적으로 누구의 총인지는 모르나 당시 경비병·당번병·가족등 정총장측 사람으로부터 총격을 받지 않았음은 명백하다. 이 부분은 「12·12가 정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인 충돌」이라는 합수부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피고소인에 대한 죄명에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수본부장은 형법상 「반란수괴」라는 용어가 사용됐는데. ▲「수괴」라는 용어는 법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전두환대통령등 피고소인측이 항고나 재항고등을 한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12·12사건의 공소시효가 오는 12월 12일까지이기 때문에 충분하다. ­수사를 시작할 때 각오는. ▲12·12사건의 진상규명에 선입견을 갖지 않고 철저히 밝힐 수 있는데까지 밝히려 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며 어렵거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나름대로 조사할 것은 다했다고 생각한다.고소인과 피고소인을 포함,1백50여명의 진술을 들었다.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시간이 너무 흘러 당사자들의 기억이 부정확한데다 또 이들이 관련자료를 잃어버리거나 아예 버린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수사팀은 당사자나 참고인·자료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하고 검토했다.
  • 새로 밝혀진 「12·12」 6가지 사실

    ◎신군부가 13일새벽 노국방 “체포”/11월 중순께 핵심들 사전계획/최대통령,총장연행 재가 거부/우경윤대령은 합수부팀 총격에 부상/1공수단등 신군부 병력 먼저 출동/전군통신 감청… 육본측 동태파악 검찰의 수사결과에서 새로 밝혀지거나 확인된 12·12 사건관련 사실들을 간추린다. ○우씨 누가 쐈나 ◇우경윤씨는 합수부 수사관의 총에 맞았다=12월12일 당시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우경윤 범죄수사단장은 보안사 수사관들의 오인사격에 의해 피격됐다. 정씨를 연행한 합수부측은 우씨가 총장공관 경비병에 의해 선제공격을 당해 총격을 입었으며 만약 그같은 불상사가 없었다면 무력충돌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검찰은 그동안 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우씨,최석립33헌병대장 등을 상대로 정총장 연행과정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씨가 피격된 경위에 대해서도 자세히 조사했다. 조사결과 정총장측 군인들중 유일하게 무장을 했던 총장경호장교 김인선대위는 보안사 수사관에 의해 이미 척추등에 중상을 입고 쓰러져신음하고 있었다.또한 최헌병대장은 자신이 이끌고 온 합수부측 병력을 지휘,총장공관 외부를 경비하던 경비병들을 무장해제시켜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M16 소총으로 감시했다.공관현관앞 경비병들도 합수부측 병력으로 교체시켜 정총장 연행당시 공관외부도 합수부측에 의해 장악돼 있었다. 검찰은 『당시 공관 관리장교와 당번병 2명이 응접실로 들어와 정총장 연행을 제지하다가 부관실쪽에서 총성이 들리자 관리장교 등이 밖으로 뛰어 나가고 우대령이 이들을 뒤따라 나와 복도끝에서 총을 쏘다가 보안사 수사관의 오인사격에 의해 피격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연행재가 여부 ◇최규하대통령은 정총장 연행을 사전에 재가하지 않았다=최대통령은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사전재가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12·12 당일 하오6시43분쯤 전합수본부장은 이학봉중령을 데리고 보안사를 출발,총리공관에 도착한 뒤 접견실에서 최대통령에게 정총장이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는 등 10·26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발견돼 정총장을 연행조사하겠다고 보고했다. 최대통령은 『현직 계엄사령관을 연행,조사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므로 국방부장관의 보고와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처리할 사항이라는 이유로 국방부 장관과 같이 와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전두환합수본부장은 박정희대통령 재임시 보안사령관이 바로 대통령에게 보고한 전례를 들며 재가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은 끝내 재가를 거부했다. 전합수본부장은 자파계열의 장성들이 집결해 있는 경복궁 30경비단장실로 돌아가 장성들에게 대통령의 재가거부를 설명했고 집단으로 재차 대통령 재가를 요청,다시 거부당하자 무력으로 군지휘계통을 제압하고 정총장을 강제연행했다. 이후 노재현국방장관마저 강제연행한 합수부측은 13일 하오 3시쯤 노장관과 신현확국무총리,최광수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요청,『사태가 더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재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노장관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통령은 정총장연행 보고문서에 서명했다. 따라서 사태를 수습하는 의미에서 정총장 연행을 재가했더라도 이미 형성된 형사상 또는 행정상의 위법이 소급해 치유될 수 없다. ○반란계획 시점 ◇12·12사건은 11월중순 계획됐다=당시 정총장은 군의 정치불개입을 천명,비정규육사 출신장성을 중용했다.특히 전두환보안사령관은 10·26사건과 관련,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된 이재전경호실차장의 석방과 이후락전중앙정보부장 출국허가문제 등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고 있었으며 자신이 한직으로 좌천될 것이라는 설이 유포돼 있었다. 이에따라 전사령관은 11월중순쯤 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황영시1군단장·차규헌수도군단장·노태우 9사단장 등과 접촉해 정총장에 대한 군내 여론을 탐문,정총장 연행·조사문제를 협의해 긍정적인 협의를 받아냈다.이어 12월7일 노사단장과 만나 김재규에 대한 1심재판이 12월 중순쯤 종결될 예정임을 고려,거사일을 12일로 결정했다. ○병력동원 선후 ◇12일 밤 군병력은 신군부측이 먼저 동원했다=전두환합수본부장등 신군부측은 최대통령이 노국방장관을 불러오라며 정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거부하자 12일 하오 9시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병력을 동원,육군 정식계통을 제압키로 했다. 이에따라 12일 하오 9시10분쯤 박희도1공수여단장은 이기용부여단장에게 병력출동 준비를 지시,9시45분쯤 1대대병력이 신월동 삼거리에 집결했다.당시 육본 수뇌부측은 신군부측의 이같은 군병력 동원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9공수여단 병력출동을 준비했다. ○노국방의 신병 ◇노재현국방장관은 신군부측에 의해 연행됐다=신군부측은 13일 새벽 2시40분쯤 국방부청사를 장악,청사내부를 수색,3시50분쯤 국방부 지하 상황실입구에서 노국방장관을 발견,체포한뒤 장관실로 연행했다. 연행된 노장관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장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국무총리등과 함께 국무총리 승용차를 타고 총리공관으로 출발했다.그러나 새벽 4시10분쯤 보안사령부 정문에서 무장병력에 의해 강제 하차당했다. 노장관은 보안사령관실에서 전두환합수본부장등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조사보고문서에 결재하라는 요구를 받고 사후 결재를 하더라도 그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문서에 서명한 후 새벽 5시10분쯤 총리공관에 도착,신총리·최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대통령에게 사태가 더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는 재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대통령이 서명했다. ○통신체계 장악 ◇신군부측은 12일 전군의 통신내용을 감청했다=12일 보안사 임시상황실은 감청활동을 강화,육본수뇌부의 수경사이동·육군참모차장과 특전사령관의 9공수여단 병력출동지시·수경사령관의 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30사단 병력출동요청·김진기육본헌병감의 합수본부장 체포가능 여부타진 등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움직임을 자세히 파악해 대응함으로써 상황을 장악할 수 있었다.
  • “12·12는 군사반란”/검찰 수사결과 발표

    ◎전·노 전대통령등 34명 기소유예/전씨 좌천 막기위해 사전계획/대통령 재가없이 정총장 연행 79년 12월 12일에 발생한 12·12사건은 당시 군부의 일부 소장파 세력이 사전 모의에 따라 실행한 군형법상 군사반란사건으로 최종 규정됐다. 「12·12사건」고소·고발사건을 조사해온 서울지검은 29일 수사결과발표를 통해 이사건의 피고소·고발인 38명 가운데 사건을 직접 모의했거나 적극 가담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등 34명을 군형법상 반란수괴및 불법진퇴 등 혐의를 적용,기소유예 처분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또 피고소인중 반란부화뇌동에 해당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당시 정호용 50사단장과 신우식특전사 작전차장,김진선수경사 작전처보좌관등 3명과 82년 사망한 백운택 71방위사단장 등 4명에 대해서도 「공소권 없음」을 결정,역시 불기소 처분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사건발생후 15년동안 정치·사회적으로 국론소모와 분열의 원인을 제공해온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사법적 처리가 최종 마무리됐다. 서울지검조준웅 제1차장은 이날 수사결과발표문에서『12·12사건은 유신체제 붕괴로 사회전반에 민주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소장 군부세력의 리더였던 당시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10·26사건 관련 혐의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제거,군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합수본부장 본인에 대한 좌천 인사조치를 사전 차단하고 소장 군부세력의 군내 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 사전 계획하에 실행한 군사반란사건임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피고소인측은 12·12가 「10·26사건 관련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정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 충돌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10·26조사와 직무상 전혀 관련이 없는 국방부군수차관보와 수도권부대 주요 지휘관들이 총장 연행문제를 협의한점 ▲거사 직전 특전사령관등 육본 직할부대장들을 연희동요정으로 유인한 점 ▲일부 장군들이 집단으로 대통령에게 총장 연행재가를 요청한 점 ▲병력동원,핵심 지휘관 체포,국방부·육본 등의 점령 등에 대해 사전 모의,결정한 점 등에 비춰 전전대통령등 신군부측의 군권 장악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따라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군형법상의 반란수괴 및 불법진퇴,상관살해 및 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 등의 혐의를,노태우 전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최세창·장기오·장세동·김진영·허화평·이학봉·허삼수등 14명에 대해 군형법상 반란모의참여와 중요임무종사등 혐의를,권정달,조홍등에게는 반란중요임무행사 등의 혐의를 각각 적용했다. 검찰은 이들이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을 꾀함으로써 헌정사를 후퇴시킨 점등이 인정되나 이들을 기소할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재론되는등 법적 논쟁이 계속돼 국가분열과 대립양상이 재연됨으로써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으며 이들이 이미 5공청문회와 대선 등을 통해 국민적 심판을 받은 것으로 판단돼 불기소처분하게 됐다고 밝혔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전두환 전대통령은 79년 11월 중순부터 정승화계엄사령관이 자신을 합수본부장에서 한직으로 좌천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군내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 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차규헌 수도군단장,노태우 9사단장등과 접촉해 정승화 총장을 연행·조사하는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 이어 12월7일 노태우 9사단장과 회동,12월12일을 최종 거사일로 확정하고 박준병 20사단장,박희도 1공수여단장,최세창 3공수여단장,장기오 5공수여단장 등과 공모하는 한편 이학봉 합수부 수사1국장,허삼수 보안사인사처장,우경윤 육본범죄수사단장 등에게 정총장 연행계획을 수립토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또 정총장 연행시에 대비,허화평 보안사령관비서실장,조홍 수경사헌병단장에게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김진기 육본헌병감등 육본직할부대장들을 신군부 핵심인물의 집결시간인 12월 12일 하오 연희동 소재의 요정으로 유인토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대통령측은 거사 당일 하오 7시10분쯤 허삼수,우경윤,성환옥과 보안사 수사관 7명,수경사 33헌병대 병력 60여명을 한남동 총장공관으로 보내 「대통령 재가하에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에 대한 진술을 받아야 한다」며 정총장에게 동행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M16 소총으로 위협,강제 연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대통령은 같은날 하오 삼청동 총리공관에 머물고 있던 최규하대통령에게 찾아가 정총장의 연행 재가를 요청하다 거절당했으며 재차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등 장군들과 함께 총리공관으로 몰려가 집단으로 재가를 요청하는등 2차례에 걸쳐 재가를 요청했다.이들은 결국 다음날인 13일 상오 5시10분쯤 노재현 국방장관을 위협,신현확 총리서리가 배석한 자리에서 대신 재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위헌소지… 결과 승복못해”/전·노씨/“기소유예 부당… 새달 항고”/고소인측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29일 변호인단 발표문을 통해 「12·12사태」와 관련,자신들에게 군형법상의 반란 혐의를 인정한 검찰의 수사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전전대통령쪽은 검찰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적절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전직 대통령쪽에서는 『정승화씨의 10·26 내란방조 혐의에 대해 80년3월 확정판결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검찰이 확정판결의 내용을 뒤집은 것은 월권이며 헌법위반의 소지가 있다』면서 『당시 합동수사본부가 정씨를 연행·수사한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 행위이며 군통수권자인 최규하 대통령에게 사전보고와 사후재가 절차를 모두 밟았다』고 주장했다. ◎정승화씨 등 21명 회동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등 12·12사태 관련 고소인 21명은 29일 상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모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검찰의 수사결과에 불복,내달 2일 서울고검에 항고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전총장은 이날 『군사반란죄가 인정된다면 당연히 기소를 해서 법원의 판결을 받게해야 마땅했다』며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해 내달 2일 항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12·12당시 3군사령관이었던 이건영씨를 제외한 고소인 21명이 모두 참석했다.
  • 중­소장 37명 승진·전보/「하나회」 출신 전원 배재

    국방부는 17일 중장 2명,소장 26명등 진급자 28명,중소장 보직이동자 9명등 모두 37명의 군고위장성에 대한 하반기 정기인사를 단행,발표했다.이번 인사에서 육군의 경우 국방부 전력계획관 길형보소장(육사22기)과 육본 작전참모부장 이호승소장(〃)등 2명이 각각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군단장으로 진출했다. 김동신수도군단장(육사21기·중장)은 공석중인 합참 작전본부장에,서태석합참북한정보부장(육사21기·소장)은 임기가 만료되는 권진호정보사령관(육사20기·중장)의 후임으로 내정되는등 육군 중장 2명과 소장 3명등 5명은 보직이 조정됐다.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 박노숙준장(육사24기)등 육사 24기 6명,3군사령부 동원처장 이상신준장(갑종1백97기)등 갑종출신 2명,1군사령부 포병참모 박성익준장(학군4기)등 학군출신 1명등 모두 9명이 소장으로 진급,사단장에 보임됐다.이밖에 사단장이 된 장성은 임창호(갑종1백90기·수도군단 참모장)·유홍모(육사24기·합참의장 비서실장)·이종간(〃·2군 인사처장)·안경선(〃·3군 인사처장)·조지연(〃·교육사교리부장)·하재평(〃·연합사작전처장)등이다 또 국방부 조달본부 시설부장 임영규준장(육사22기)등 10명이 소장으로 직위진급과 동시에 공병감을 비롯한 5개 병과장등에 보임됐다.이번 인사에서도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출신은 한명도 진급하지 못했으며 장교무장탈영사건이 발생한 육군 53사단장 이원락소장(육사23기)은 보직해임이 되지 않았으나 곧 해임될 것으로 알려졌다. ◎해설/군안정­인사적체 해소 역점/육사24기 사단장시대 열어 올 하반기 중·소장급 정기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군의 안정과 인사적체해소를 겨냥했다는 것이다.또 12월1일부로 한군군으로 환수되는 평시작전통제권과 관련,합참작전본부장에 중장을 앉히고 합참정보본부장(중장)아래 중장급이 맡아오던 정보사령관을 소장급으로 한단계 낮추는등 합참조직운영의 효율성을 꾀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군단장의 경우 재임기간이 통상적인 2년이 채 안된 상황에서 1차진급대상인 육사 22기로 일부교체한 것은 고위장성 인사적체를 해소,군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지휘관의 꽃」으로 불리는 사단장에는 지난해 8명에 이어 육사 24기 6명이 또 배출됨으로써 육사 24기의 본격 사단장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육사 24기 6∼7명은 지난 11일의 준장진급인사 때처럼 한명도 진급하지 못해 사조직에 대한 군내 정서를 반영했다.육사출신 외에 갑종출신 2명과 학군(ROTC)출신 1명등 비육사출신 3명이 사단장으로 진출,비육사출신의 구성비가 지난해 27%에서 33%로 높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합참작전본부장은 합참조직개편차원에서 한때 소장급으로 한단계 낮추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그대로 중장급이 보임된 것은 평시작전권환수와 관련,한국군의 작전분야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사단장 보직해임 방침/장교탈영 문책/연대장은 징계위에 회부

    육군은 6일 53사단 장교무장탈영사건에 대한 지휘책임을 물어 이 부대 제127연대장 신영순대령(43·육사30기)을 군단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등 모두 38명에 대해 관련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조치내용을 보면 탈영 3명,직무유기 3명(중령 1명,대위 2명),상관집단폭행 4명(병장 2명,상병 2명),상관모욕및 상습도박 19명(사병)등 모두 29명이 구속됐으며 신대령과 사건당시 보초를 섰던 방위병(일병)2명등 7명이 징계위에 회부됐다. 나머지 두명은 방위병과 상병으로 이번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각각 불구속및 무혐의처리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이원락사단장(52·육사23기)은 보직해임이상의 조치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그러나 연대장이상의 지휘관에 대해서는 사건의 진상을 사전에 보고받지 못한 점을 확인,구속수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육군본부 인사·법무·감찰·헌병·기무등 5부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의 중간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부대 해안 독립초소의 사병들은 결례,지시불이행,면전모욕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소대장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특히 고참사병은 음주·화투놀이를 하는등 군기가 해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분대장,선임하사,소대장등 초급간부들은 현실적응력이 부족하고 연대장과대대장등 중견간부들은 소대장의 어려움이나 건의내용을 미온적으로 처리하는등 예하부대에 대한 진단노력이 미흡했던 것으로 지적됐다. 육군합조단은 『신임소대장의 지휘권 확립과 소대 선임병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갈등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하로부터 고립된 소·분대장의 내재된 불만이 탈영사건을 촉발시켰다』고 잠정결론지었다. 육군은 합조단이 7∼8일 이틀간 53사단에 대한 재조사를 마치는대로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 대대장·중대장 등 29명 구속/육군,장교탈영 수사

    ◎사단장·연대장도 문책 방침/「소대장 길들이기」 하극상 전군 실태조사 육군은 지난달 27일 발생한 장교 무장탈영사건과 관련,지휘책임을 물어 대대장(중령)과 중대장(대위)2명등 지휘관 3명을 구속하는등 모두 29명을 구속수사중인 것으로 5일 밝혀졌다. 사건발생부대인 육군53사단 관할헌병대는 탈영사건 직후인 지난달 28∼29일 탈영자인 김특중(22·육사50기)·조한섭(24·학군32기)소위 외에 이 부대 제4대대 대대장 장두혁중령(41)과 13중대장 김기환(3사 31기)·14중대장 김헌중대위(27·학군28기)등 지휘관 3명을 직무유기혐의로 구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중대 이모소위(24)를 집단구타한 신원석병장(22)등 사병 4명과 탈영당시 위병소를 지켰던 이정부(22)·김현호(24) 두 방위병도 상관폭행및 직무유기 혐의등으로 구속됐다. 육군은 또 수사과정에서 신병장등과 함께 이른바 「소대장 길들이기」를 주도했거나 적극 가담한 것으로 드러난 사병 17명(병장∼이병)을 지난 1∼2일 상관면전모욕혐의로 추가구속했다. 이로써 이번사건 관련 구속자는 지휘관 3명,황정희하사(23)를 포함한 탈영자 3명,상관폭행및 모욕 사병 21명,위병 2명등 모두 29명이 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구속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않으며 해당부대 사단장과 연대장도 지휘책임을 묻게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군수사당국에 따르면 구속된 신병장등은 평소 소대장 방에서 화투놀이를 하는등 「신임소대장 길들이기」로 지휘체계를 문란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장교탈영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병들이 상관면전에서 모욕행위를 저지르는등 군기를 문란케 한 사실이 드러나 관련사병등을 구속했다』면서 『당초 조사가 끝난 뒤 발표할 예정이어서 구속사실을 대외비로 해왔다』고 밝혔다. 한편 국방부는 군특명검열단으로 하여금 이와는 별도로 오는 10일부터 군기위반실태에 대한 특감을 벌이도록 하고 전군에 대해서도 군기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 「장교탈영」 공방전 편 국방위(국감초점)

    ◎군인사관리 「구조적 결함」 질타/“전력 증강에만 치중,내면 개혁엔 소홀”/육사·비육사출신 진급불균형 시정촉구 군은 진정한 「내면개혁」을 해낼 대책이 있는가.4일 계룡대에서 있은 국회 국방위의 육군본부 감사에서는 장교탈영사건을 계기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이같은 주제를 놓고 열띤 공방이 펼쳐졌다. 의원들의 질의는 이번 사건이 단편적이고 일과성이 아니라 군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결함」에서 비롯됐다는데 초점이 모아졌다.그 결함의 본질은 군의 사기,군기및 인사등 총체적인 군의 복지부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종합적인 개혁청사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었다. 먼저 그동안 군이 추진해온 개혁의 허구성을 따지는 의원들의 질의가 잇따랐다.외형적인 전력증강의 하드웨어에만 치중한 나머지 군의 내부문제,즉 군인력관리의 소프트웨어에는 대처가 미흡하거나 아예 잘못됐다는 질타였다.정대철의원(민주)은 『문민정부의 개혁은 과거 군비리에 대한 청산위주의 깜짝쇼만 있었을뿐 미래지향적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강창성·나병선의원(민주)등은 『하나회를 척결한뒤 이른바 「PK(부산경남)인맥」 혹은 「1·5인맥(김동진육참총장의 1군단장,5사단장 시절 인맥)」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군내 사조직이 태동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권익현의원(민자)은 『육사졸업 5년차인 44기출신 장교 2백86명가운데 40명,45기 2백78명 가운데 56명이 전역했다』고 직업군인의 정착이 제대로 되지않고 있음을 걱정했다.정석모의원(민자)은 『92년부터 지난 8월까지 군병원에 입원했다가 의병전역한 인원이 1만1천6백23명에 이른다』고 안전사고 증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의원들의 처방은 다양했다.먼저 공정한 인사원칙의 정착이 첫 해결과제라는데 거의 모든 의원들이 공감했다.권익현의원(민자)은 『미국처럼 해마다 진급순위를 발표하는 식의 획기적인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면서 사전예고 보직관리제도의 도입을 제의했다.김복동의원(신민)은 『부산경남 출신 장성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군인사는 확고한원칙아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강창성의원은 『고급장교 진급률에서 육사및 비육사출신의 불균형현상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정대철의원은 『이번 사건은 장교들의 진급만을 위한 무사안일주의에서 비롯됐다』면서 경직된 신상필벌원칙의 개선을 요구했다. 정석모의원은 『하사관의 전역희망률이 83%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하사관의 장교특별채용 필요성을 제기했다.정대철의원은 『육군총장이 사건을 저지른 소대장이었다면 어떻게 임무수행을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탈영장교에 대한 선처를 촉구했다.장준익의원(민주)은 『개편된 육사의 교과과정은 초급장교와 미래지향적 정예간부 육성이라는 목적에 부적합하다』고 교양교육의 강화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육참총장은 『이번 사고가 육군이 환골탈태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군기강 쇄신을 군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총장은 이어 이른바 「1·5인맥설」에 대해 『1사단장과 5군단장 재직 때 함께 근무했던 예하지휘관및 참모 가운데 10명이 본인이 참모총장 재직 때 장성으로 진급했으나 이는 육군 평균 장성진급률 8.2%와 대등한 수준으로 개인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해명.
  • “군하극상·항명 대책 뭔가”(국감중계)

    ◎특례법 53개… 절반은 목적 불분명/철도청장 위증 시비… 정회 소동/“통일장관회의 단 한번밖에 안열렸다” ▷외무통일위◁ ○…통일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의 법적근거와 통일관계장관회의의 예산전용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여야는 이날 회의에서 통일원의 업무보고만 받기로 합의했으나 기획관리실 보고 과정에서 통일관계장관회의의 예산 4백64만8천원을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비용으로 끌어다 쓴 사실이 적발돼 야당의원은 물론 여당의원의 호통이 이어졌다. 민주당의 김원기의원은 『달마다 개최하도록 법률로 규정된 통일관계장관회의는 지금까지 단 한번 밖에 열지 않은채 대통령 임의로 만든 회의만 여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대통령이나 장관이 정책을 집행하면서 법을 휴지처럼 보는 것 아니냐』고 공박. 또 민자당의 이만섭의원은 『통일관계장관회의 예산을 다른 곳에 전용한다면 내년 예산에는 통일관계장관회의와 관련한 예산을 배정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고 반문하고 『차라리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대신 통일관계장관회의를 정례적으로 열고 필요한 사람을 배석하도록 하라』고 제안. 이에 대해 이홍구통일원장관은 『통일안보정책과 관련된 여러가지 회의가 어수선하게 산재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러한 회의체들이 법에 의해 조정될 시점에 왔다』고 문제점을 시인. ▷국방위◁ ○…국방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장교탈영사건과 관련해 이병대국방부장관과 김동진육군참모총장,이원락53사단장을 출석시킨 가운데 군기강문제와 사건경위등을 집중 추궁. 이날 회의에서는 초반부터 민주당의 나병선의원이 김육참총장과 이사단장에 대한 증인채택을 요구,논란이 벌어진 끝에 황명수위원장의 중재로 여야 간사회의를 갖고 김총장등이 자진출두 형식으로 답변하도록 합의. 임복진의원(민주)은 『이번 사건의 일차적인 동기는 군기강을 무너뜨리는 하극상』이라고 규정하고 『90년대 들어 증가하고 있는 하극상과 항명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 정대철의원(민주)은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장관은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이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장관은 이에 대해 『아무리 정당하고 좋은 목적으로 이뤄진 행동도 과정이 비합법적이면 중벌을 면하기 어렵다는 원칙을 준수할 것』이라면서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대로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하겠다』고 답변. ▷법사위◁ ○…법제처와 헌법재판소에 대한 감사에서 민자당의원들은 문턱 높은 국선변호사문제를,민주당의원들은 위헌적 법률의 조속한 개폐를 집중 거론했지만 각종 특례법의 남발과 헌법재판소의 변형결정및 심리지연에 대해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질타. 민자당의 이인제·김영일·박헌기·함석재의원은 『93년도에 헌재의 심판사건과 관련,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어 국선대리인을 신청한 건수는 1백12건이나 이 가운데 68.8%인 77건이나 기각되고 올들어 기각률은 72.3%로 더욱 높아졌다』면서 『헌재의 자의적 판단으로 국민의 권리를 봉쇄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요구.조순형·장석화의원은 『5·16,유신,12·12,5·17등 국회가 해산된 상태에서 위법적인 비상입법기구에서 제정된 법률 5백15건 가운데 아직도 63.1%인 3백24개의 법률이 남아 있다』면서 조속한 개폐를 요구.조순형의원과 이인제의원은 『우리나라 전체법률 8백99개 가운데 5.3%에 이르는 53개가 특례법이고 이 가운데 무려 11.3%에 이르는 6개가 위헌판결을 받았다』고 지적한뒤 『특례법 가운데 50·9%는 목적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 특례법의 남발을 비판. ▷교통위◁ ○…철도청의 업무보고 과정에서 수도권전철 분당선 선릉∼수서구간의 착공시기에 대한 김인호철도청장의 발언이 위증이냐를 놓고 여야가 대립해 2시간 남짓 정회되는등 진통. 김청장은 이날 감사에서 『97년 완공을 목표로 분당선 2단계공사인 선릉∼수서간 6.6㎞구간에 대한 공사가 이달에 착공됐다』고 보고. 그러나 민주당의 이윤수의원은 『현장확인결과 전혀 착공되지 않았다』면서 김청장의 보고는 위증이라고 주장. 이에 맞서 민자당의원들은 『시공업체인 현대건설이 조달청에 제출한 착공계에는 6월∼7월 사이에 착공할 계획인 것으로 돼있다』면서 『따라서 건설업계의 관행을 감안할 때 선릉∼수서구간은 이미 착공에 들어간 것』이라고 반박. 여야의 이같은 대립으로 이날 감사는 상오 11시50분 정회돼 하오 4시까지 공전을 거듭하다 양당 간사의 합의에 따라 결국 『자료준비가 미흡해 죄송하다』는 김청장의 사과를 받고 재개. ▷상공자원위◁ ○…대한석탄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석공의 한보그룹 인수문제가 집중거론됐다. 유인학의원(민주)은 『상공자원부가 한보로의 인수를 내정한 상태』라며 『한보는 평당 5백17원에 불과한 석공소유의 부동산 6천8백만평을 레저타운으로 개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 박광태의원(민주)도 『한보의 속마음은 속공의 엄청난 부동산에 있다』면서 『한보가 석공이 부동산을 탐내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석공회생의 청신호이며,석공이 회생을 위해 폐광지를 종합레저단지로 조성하는 등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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