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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L 운항관리 상태 광범위한 조사/내한 미 NTSB조사단 활동

    ◎박 기장 등 성품·경력·훈련상황 탐문 대한항공 추락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에 온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조사단 3명은 11일 상오 9시 대한항공의 운항부 이경균전무와 서울지방항공청 운항전문가 등 관계자들과 회의를 가졌다. 폴 미센식 조사단장 등 3명은 이 자리에서 대한항공측에 사고항공기의 박용철기장을 비롯,부기장,항공기관사의 경력과 근무일지,훈련상황,사고항공기의 운항일지 등을 요구했다. 회의에서 대한항공 운항본부측은 1차로 조직과 근무여건 등을 설명했으며 미 조사단의 자료요청에 해당부서에서 자료를 제공하며 관계자의 설명을 덧붙혔다. 조사단은 이날 상오 운항 승무원의 연구실을 둘러봤으며 승무원에게 제공되는 각종 유인물 등을 일일이 확인하는 등 운항 관리상태에 대해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하오에는 승무원 교육절차와 내용 등을 조사했으며 특히 박용철기장과 함께 운항했던 경험이 있는 승무원들과 개인면담을 하며 박기장의 성품과 기량 등에 대해 물었다. 이 과정에서 동료들은 ‘공군조종사 출신으로 차분한 성격에 매우 우수한 기량을 지녔다’고 평했으며 한 후배 기장은 “박기장을 존경해 평소 박기장같은 조종사가 되기를 원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단은 방한기간중 제공받은 자료에 대해 곧바로 분석하지는 않으며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뒤 워싱턴 본부로 가져가 본격적인 분석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조사단은 12일 건설교통부 등을 방문한 뒤 2∼3일안에 출국할 예정이다.
  • “조종사 과실” 하루뒤 “아니다”/NTSB 갈팡질팡

    ◎한국 항의·미 정부 질책에 한발짝 후퇴 대한항공기 추락사고가 조종사의 실수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했던 미국의 사고조사단이 하루만에 이를 번복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조지 블랙 조사단장은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비행기는 누군가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과 현지 언론이 자국 이익을 위해 공항 관제사의 실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사고원인을 조종사의 실수쪽으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사고조사 책임자의 발표는 조종사의 잘못으로 사실상 결론을 것으로도 여겨졌다. 그러나 다음날인 9일 그는 “다양한 원인을 조사 중이며 아직 말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전날 발표를 번복하고 “인적 요소의 결함,비행기 구조,기상 등 6개 부문에 걸쳐 조사하고 있다”고 후퇴했다. ‘사람의 실수’(Human Failure)라는 언급 부분에 대해서는 ‘인적 요소(Human Factor)의 실수도 사고 원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와전됐다고 얼버무렸다. 이와 함께 그는 “미국의 NBC방송이 NTSB 관계자의 말을 인용,‘이번 추락사고는 조종사의 실수로 일어났다’고 보도한데 대해 사과한다”고 괌주재 총영사관에 사과전화를 걸기도 했다. 이같은 NTSB측의 태도 돌변에는 우리 정부와 총영사관의 강력한 항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9일 현지를 방문,NTSB측과 사고수습과 공정한 조사방안에 대해 논의한 이환균 건설교통부장관은 우리 정부의 뜻과 국내의 반발 여론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교부 관계자는 “NTSB측이 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들의 입장이 와전된데 대해 당혹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아직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한국 국민의 대미감정이 악화될 것을 우려,미국 정부가 발표를 번복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
  • KAL기 추락 참사­블랙 NTSB 조사단장 문답

    ◎“앤더슨기지 관제탑 레이더의 오류/MSAW 55∼54마일 대역에서만 작동/사고관련 여부 추가조사 통해 밝혀야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의 원인을 조사중인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조지 블랙 위원은 10일 하오 기자회견에서 “괌공항의 여객기 진입을 통제하는 앤더슨공군기지 관제탑의 최저안전고도경보시스템(MSAW)이 사고 당시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괌공항 관제시스템의 오류가 발견됐다.앤더슨공군기지 관제탑 레이더의 MSAW가 여객기가 제한고도 밑으로 내려가기 전에 아가냐공항 관제탑에 경보를 보내야 하는데 보내지 않았다. ­MSAW는 어떻게 작동하나. ▲활주로 55마일 밖에서부터 여객기를 모니터하고 진입각도를 계산해서 여객기가 제한고도 밑으로 떨어지기 15초 전에 아가냐공항 관제탑에 경보를 보낸다.그리고 경보를 받은 아가냐공항 관제탑은 여객기 조종사에게 그같은 사실을 통보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오류가 있었나. ▲MSAW가 55∼54마일 사이 1마일 대역(BAND)에서만 작동했다.그 다음부터는작동하지 않았다. ­MSAW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사고가 없었을 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MSAW가 사고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추가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여객기의 안전한 착륙을 위한 장치에는 MSAW 말고도 활주로 진입방향 조절기(LOCALIZER),활공각 유도장치(GLIDE SLOPE),레이더 고도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MSAW는 누가 관리하나. ▲연방항공국(FAA)이 개발하고 도입했으며 정비와 유지 책임도 FAA에 있다. ­언제부터 앤더슨공군기지의 MSAW에 오류가 발생했나.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시신은.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40여구로 알고 있다. ­생존자가 많았던 좌석은. ▲앞좌석 및 뒷좌석 일부에 생존자가 있었고 창가에도 생존자가 많았다.특히 비행기 진행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앉는 자리,즉 승무원석의 생존률이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 KAL기 추락원인 논란 가열

    ◎미 조사단 “인재 잠정 결론” 대한항공 “기상변화 탓”/신원확인된 시신 15∼20구 오늘밤부터 서울로 대한항공 801편 여객기 추락사고의 원인을 조사중인 미국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조지 블랙 조사단장은 8일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사고는 항공기 자체 결함때문이 아니라 괌 사고여객기 조종사나 아가냐 국제공항 관제탑 항공기 유도요원의 실수에 의한 것이라는게 잠정 결론”이라고 밝혔다. 블랙 조사단장은 그러나 “사고여객기 박용철 기장의 항공경력을 조사한 결과 비행 경력이 8천900시간이나 되고 가정생활에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항 관제탑의 착륙 유도요원과 박기장 간의 교신내용을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박기장의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해 박기장이 공항 관제탑과 충분한 교신을 갖고 정상적인 착륙을 시도했음을 시사했다. 특히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고기와 관제탑과의 교신에서 ‘뭔가 잘못됐다(Something wrong)’라는 대화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1차조사에서 확인됐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사고기는 활주로에서 5.3∼4.8㎞ 떨어진 최종접근 지점에서 정상고도의 절반 수준인 200∼300m로 고도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산 봉우리에 랜딩기어가 걸리며 추락했다”면서 “이는 급하강 기류(Micro Burst)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 이기웅 비행교관팀장은 “사고기 기장과 부기장 등이 모두 비행경험이 많은 베테랑이기 때문에 조종사의 실수에 따른 사고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공항의 착륙유도장치가 고장난 상태에서 급작스런 기상변화로 사고가 났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지는 이날 괌 현지 NTSB 관계자의 말을 인용,“사고기가 충돌 직전 정상적으로 착륙을 시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가동 중단된 아가냐공항의 착륙유도장치에 대한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한국과 미국의 합동조사반은 오는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사고기의 블랙박스 해독작업에 착수하지만 사고 원인에 대한 이같은 시각 차이로 최종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블랙박스의 음성정보입력기(CVR)에는 승무원들의 대화,항공기와 관제탑간의 교신,기내방송,엔진소음 등 사고전 30분동안의 음성기록이 담겨 있으며 빠르면 오는 13일쯤 1차 해독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CVR 해독작업에는 우리측에서 최흥옥 건교부 항공사무관,변순철씨(블랙박스 해독전문가),대한항공 직원 2명 등 모두 4명이 참여한다. 블랙박스중 사고기의 비행정보를 담고 있는 비행정보입력기(FDR)에 대해서는 다음주에나 분석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합동조사단은 사고 발생 사흘째인 이날 현장에서 사체 발굴작업을 계속하면서 사고원인을 조사했다. 사고현장에서는 30여구의 사체가 추가로 수습돼 발굴 사체는 1백30여구로 잠정 집계됐다. 한편 사고 여객기의 생존자 29명 가운데 8명이 8일 새벽 서울에 도착한데 이어 12명도 이날 하오 6시24분(한국시간) 미 공군기편으로 괌을 출발,9일 상오 2시쯤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또 생존자 가운데 부상 정도가 매우 심한 주세진(30·여)·한규희(30·여·승무원)·정영학씨(40)씨 등 3명은 한국과 미국간 합의에 따라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화상전문치료기관인 브룩스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8일 하오 괌을 떠났다. 사고현장에서 수습된 시신 가운데 지문 등 신체특징이 비교적 명확해 신원이 확인된 15∼20구는 개인신상카드 작성이 끝나는 9일 밤부터 서울로 운구될 것으로 알려졌다.
  • 한­미 사고원인 규명 신경전

    ◎한­관제장비 고장 계기비행 불가능·악천후 탓/미­조종사 실수·무리한 747기종 취항에 무게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대한항공과 미국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블랙 박스가 해독되면 책임 소재가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을 놓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마틴 젠잭 괌 주둔 미군기지 사령관과 클리포드 구스몬 괌 정부 대변인,미 연방교통안정위원회(NTSB)의 조지 블랙 조사단장은 7일 하오 사고 현장인 니미츠 힐 부근의 미디어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고 원인을 조종사의 실수와 대한항공의 무리한 취항으로 돌렸다. 이들은 사고기가 착륙을 시도할 당시 ‘활공각 유도장치(Glidslope)’가 작동하지 않은 것과 관련,“정규 보수 기간이어서 유도장치가 꺼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종사는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그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젠잭사령관은 “활주로에 설치된 착륙 지시 등이 고장났다는 설도 있다”고 지적하자 “착륙 당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사고가 난 뒤 1시간30분이지난 6일 상오 3시에는 작동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서울∼괌 노선에 통상 운항 기종인 에어버스가 아닌 747을 투입한 이유에 대해서도 “대한항공이 승객을 괌에 내려놓은뒤 괌 선수단을 싣고 이번주 남태평양대회가 열리는 사모아로 갈 요량으로 전세기를 투입했다”고 주장했다. 사고기 제작사인 보잉도 747 기종의 사고 확률이 1백만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사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등 사고가 기체 결함과 무관하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박용철 기장은 지난달 4일에도 서울∼괌 노선을 운항한 적이 있으며,지난 4월 이후 747을 15차례나 괌 노선에 투입했다”며 조종사의 실수와 잘못된 기종 선택이 화를 불렀다는 미국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사고기가 괌에서 서울로 곧바로 돌아오지 않고 사모아로 갈 예정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예약 승객을 싣고 서울로 올 예정이었다”면서 “말도 안되는 엉뚱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대한항공은 착륙 당시 ‘활공각 유도장치’가 고장나계기비행이 불가능한데다 사고 당시 공항 부근의 기상조건이 극히 나빴다는 점을 강조했다.조종사의 위기 대처능력 보다는 불가항력적 측면이 훨씬 강했다는 설명이었다. NTSB 블랙 조사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이틀 뒤면 비행경로기록장치(FDR)의 일부 기록을 파악할 수 있을뿐 아니라 1주일 정도면 비행지도도 작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따라서 이같은 공방은 블랙박스가 어느 정도 해독되는 다음주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사고가 괌 공항의 기체 및 착륙유도장치 결함과 기상조건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면 한국측에 유리하다.하지만 조종사 실수와 무리한 운항 등에 따른 것이라면 상황은 뒤바뀐다.
  • 머드게임 전사의 맹세/7개 캐릭터중 하나 선택

    ◎불량배 소탕 등 100개 임무 수행/레벨 올라갈수록 파워 ‘쑥쑥’ ‘전사의 맹세’는 (주)익성텔레콤(02­573­2893)에서 개발한 머드(MUD)게임.순수 국산 게임 엔진과 원작 시나리오로 만든 새로운 개념의 게임이다. 7개 지역에 1만5천여개의 방과 다양한 이벤트를 갖고 있다. 게임은 인포샵 01410이나 01411 접속후 초기 화면에서 CCITY를 입력하고 21번 ‘전사의 맹세’를 선택하거나 하이텔 접속후 초기 화면에서 GO JMH 하면 즐길수 있다.다음달초부터는 천리안에서도 서비스한다. 게이머는 접속한 뒤 오로라성 궁정기사단장,사막의 별 전사,항성간 폐기물 운반선장,B612성 제사장 후계자,제다성 출신 컴퓨터 자유주의자,시리우스성의 전문용병,알데바란성 격투기 챔피온 등 7명의 캐릭터중 하나를 선택한다.캐릭터마다 생명력,공격력,방어력,마법력,민첩력,힘등 저마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이 능력에는 각각 레벨이 있는데 경험치라 불리는 점수가 올라가면 레벨도 따라 올라간다.레벨이 상승할 때마다 능력이 세어지고,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 레벨 상승과 또 하나의 묘미는 ‘임무’.한 편의 장편소설에 해당하는 분량인 100여개의 임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처음 접속하는 경우,여왕들쥐 사냥,재규어 박쥐 사냥 등으로 게임의 분위기를 맛본뒤 어느 정도 경험치가 쌓이면 소매치기 잡기,불량배 소탕,탈옥수 체포 등 본격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외국 엔진을 단순 번역하여 사용자수나 아이템이 제한되는 기존 머드엔진의 한계를 없애고 화려한 그래픽 전투화면으로 텍스트 게임의 단조로움을 극복한 것이 특징이다. 완전한 리얼타임을 적용,게임에 접속하지 않아도 사용자의 ID는 나이를 먹으며 성장하는 점도 기존의 머드게임과 다른 점이다.
  • 모범용사 광주박물관 관람/서울신문사 초대 4일째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제34회 국군 모범용사 초대」행사 4일째인 26일 모범용사 61명과 배우자 59명 등 120명은 광주시립민속박물관과 OB맥주 광주공장 등을 차례로 둘러본 뒤 시내 관광을 즐겼다. 모범용사 일행은 이에 앞서 송언종 광주시장이 마련한 오찬에 참석했다. 오찬에는 송재구 광주시행정부시장 김재균 광주시의회 부의장 향토사단 행정 및 작전 부사단장 공군 제1전투비행단 부단장 등이 함께 했다. 송 부시장은 오찬에서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모범용사와 가족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후방에서 일상업무에 종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여러분의 덕택』이라고 말했다.저녁에는 허경만 전남지사가 베푼 만찬에 참석했다. 27일에는 대구시청을 방문,문희갑 시장이 초대한 오찬에 참석한뒤 대구 동화사와 포항제철을 차례로 둘러본다.
  • 모범용사 독립기념관 관람/서울신문사 초대 사흘째

    ◎대전엑스피아월드도 돌아봐 서울신문사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마련한 「제34회 국군모범용사 초대」행사 3일째인 25일 모범용사 61명과 배우자 59명 등 120명은 천안시 목천면 독립기념관을 관람한뒤 박유철 관장이 마련한 오찬에 참석했다. 하오에는 「93 대전엑스포」 현장인 엑스피아월드를 둘러본뒤 홍선기 대전시장이 초대한 만찬에 참석,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남용호 대전시의회의장 육군 제32사단장 국군 607기무부대장 505여단장 등이 참석한 만찬에서 홍 시장은 『국토방위를 위해 진력하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며 『식량난 등으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은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이 국군 장병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26일에는 광주시립박물관과 OB 광주공장 등을 견학한 뒤 송언종 광주시장과 허경만 전남지사가 마련한 오찬과 만찬에 참석한다.
  • “황소개구리 잡아라” 전국서 소탕작전/서울신문사 후원

    ◎안성천 등 30곳서 1만여명 참가/낚시·그물·뜰채 등 동원 600㎏ 포획 「황소개구리를 없애 우리 고유의 생태계를 보전하자」 24일 경기도 안성군 안성천 등 전국 30여곳에서 「황소개구리 잡기대회」가 민·관·군 합동으로 일제히 펼쳐졌다. 환경부가 주관하고 서울신문과 내무부·교육부·국방부가 후원한 이 행사에는 중·고교생 및 국군장병,민간환경단체 회원,시·군·구 공무원,기업체 사원,자원봉사자 등 1만2천여명이 참가,황소개구리 800여마리(무게 219㎏)와 올챙이 1만5천여마리(367㎏)를 잡았다. 특히 참가자들은 황소개구리의 뱃속에 뱀·붕어·게·곤충 등이 들어있는 표본을 보면서 생태계 보호 필요성을 공감했다. 이날 상오 10시부터 3시간 동안 경기도 안성천에서 열린 행사에는 강현욱 환경부장관을 비롯,신한국당 이해귀의원,자민련 이긍규의원,국민회의 방용석의원,오향균 제55보병사단장,한국녹색회원,그린패밀리,안성중학교,평택 소사벌초등학교 학생 등 민·관·군 1천2백여명이 참가,황소개구리 70마리와 올챙이 1만여마리(무게 250㎏)을 잡았다. 강장관은 개회사에서 『생태계 파괴의 주범인 황소개구리를 잡는데 그치지말고 이번 행사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산 교육장으로 승화시키자』고 말했다. 본격 행사에 앞서 한국잠수협회·한국낚시협회 회원 등 황소개구리 전문포획단 40여명이 낚시·그물·뜰채·포획망으로 개구리를 잡는 시범을 보였다. 안성중학교·평택 소사벌초등학교 학생 200여명은 미리 준비한 낚시와 뜰채 포획망 등을 이용해 안성천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황소개구리·올챙이를 잡았다. 또 제55보병사단 장병 300여명도 양수기와 그물을 이용해 황소개구리를 잡았다. 이보람양(12·여·평택 소사벌초등학교 5년)은 『TV를 통해 황소개구리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을 알고 대회에 참가했다』면서 『낚시로 올챙이 4마리를 잡아 기쁘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날 전국황소개구리퇴치운동본부 회원인 김영길씨(52·전남 광주 동구 서초동)와 한국수산개발에 개인과 단체부문의 최우수 포획상을 수여했다. ◎생태계 파괴 황소개구리/70년대 일본서 식요으로 들여와/몸길이 40∼50㎝… 뱀까지 잡아먹어 미국이 원산지인 황소개구리는 지난 70년대 일본에서 식용 자원으로 들여 왔으나 우리나라의 뱀·물고기·개구리 등을 마구 잡아 먹어 생태계를 해치고 있다.몸 전체 길이 40∼50㎝로 참개구리의 2배가 넘고 몸무게도 100∼200g이나 된다. 주로 중부 이남의 저수지·호수·댐·하천·늪지대 등의 유속이 느리고 수초가 많은 곳에 서식한다.평균 서식 밀도는 전남이 ㏊당 86.6마리로 가장 많다.
  • 군기밀 누출사건 관련 국방부 군수국장 해임

    ◎후임에 정중민 8사단장 국방부는 30일 군기밀누출사건과 관련,이풍길 국방부 군수국장을 보직해임해 육군본부로 전보발령하고 후임에 정중민 8사단장을 임명했다.김범식 장비과장도 보직해임됐다.
  • 육사24기 군단장시대 열려/군장성 인사의 특징

    15일 단행된 군 장성급 정기인사의 특징은 소장이 맡아온 국방부 조달본부장과 제3사관학교장을 중장으로 직위 진급시킨 점이다.이와함께 지난해 10월 김인종 수방사령관과 김희상 수도군단장이 합류한 군단장 대열에 육사 24기 3명이 추가 진입함으로써 「육사 24기군단장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또 지난해 4월 첫 사단장에 진출한 육사 26기가 이번에 6명을 추가 배출함으로써 사단장은 「육사 26기」가 주도권을 장악했다. 국방부조달본부장의 중장진급은 지난 93년 국방부 포탄사기사건으로 조달관련 비리가 터져나오자 계급을 소장으로 하향 조정했으나 무기체계를 선정하는 합참과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한데다 연간 5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주무르는 중요성이 고려됐다는 설명이다.또 3사관학교장은 초급간부의 60%를 배출하는 3사관학교장의 계급을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군내 의견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이번에 진급한 중장 6명의 출신지역은 경남 2명,충남,경기,충북,함북 각 1명이다. 한편 이번 군인사에서는 국군기무사령부 박호순 참모장(육사 26기)이 준장에서 소장으로 직위진급,문민정부 출범이후 각각 소장과 준장으로 한계급씩 낮춰졌던 기무사령관과 참모장의 계급이 중장과 소장으로 환원됐다.임재문 기무사령관이 지난 95년 인사때 소장에서 중장으로 직위진급했고 이어 참모장도 원래의 계급을 되찾았다.
  • 3군장성 승진·전보인사

    국방부는 15일 중장 승진 6명,소장 승진 10명 등 육·해·공군 장성급 승진및 전보인사를 단행했다. 이날 인사에서는 소장인 권영효 국방부조달본부장(육사 23기)과 강종필 제3사관학교교장(육사 23기) 등 2명을 현직위에서 중장으로 진급시키고,이종옥 교육사교육훈련부장(육사 24기)·김판규 육군대학총장(육사 24기)·오남영 육본관리참모부장(육사 24기)·노연웅 학생중앙군사학교장(학군 5기) 등 4명을 중장 진급과 동시에 군단장으로 보임했다. 이와함께 강광석 준장(학군 5기)등 8명을 각각 소장으로 진급시키면서 동시에 사단장으로 보임하고,이강수 2군수지원사령관(학군 5기)과 박호순 기무사참모장(육사 26기)을 현직에서 소장으로 진급시켰다. 국방부는 또 육군중장인 한승의 합참인사군수부장(육사 22기)을 육사교장,이호승 1군부사령관(육사 22기)을 국방대학원장,정영무 특전사령관(육사 22기)을 합참작전부장,박용득 11군단장(육사 22기)을 교육사령관,최돈걸 교육사령관(육사 21기)을 합참전력평가본부장으로 각각 전보 발령했다. 국방부는 이와함께 해군의 최낙성 소장(해사 20기)을 군수사령관으로,한광수 소장(해사 24기)·오승렬 소장(해사 24기)을 각각 함대사령관에 전보키로 내정했다.
  • 「음식쓰레기 줄이기」 주부들 나섰다/환경봉사단

    ◎광화문 등서 실천촉구 가두홍보/음식점 돌며 「좋은식단제」 실시 호소도 주부환경봉사단협의회(회장 박정애) 회원 150여명은 15일 하오 1시부터 3시까지 2시간 동안 광화문·무교동 일대에서 시민과 음식점을 대상으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범시민실천운동」 가두캠페인을 벌였다. 92년 발족한 주부환경봉사단협의회는 환경보호에 관심이 있는 서울지역 주부들로 구성된 시민단체로 8천8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회원들은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 참여를 호소하는 전단과 팸플릿 등을 배포했다.도로와 맞닿은 뒷골목의 음식점 등에는 「음식물쓰레기 줄이기는 음식점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 「좋은 식단제」 정착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협의회는 앞으로 서울시 자치구 주부환경봉사단 주관으로 가정과 음식점 등에 대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서초구 주부환경봉사단장 박성희(66)는 『시민들과 음식점 등이 의외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에 대한 인식이 높은 것을 확인했다』면서 『인식을 실천으로 옮기고 또 효과적으로 지속시킬수 있는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육군 오늘 장성인사/군단장 3∼4명 교체

    육군의 군단장과 사단장급 등 소장 이상 장성인사가 17일 단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14일 『이번 인사는 도일규 육군참모총장이 지난해 10월 부임한 이후 단행된 군사령관 인사에 이은 정례인사』라고 밝혔다. 이번에 임기 만료로 교체되는 군단장급(중장)은 특전사령관 등을 포함해 3∼4명,사단장은 7명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단장 진급대상자 가운데 2∼3자리는 육사 24기,한자리는 학군 4∼5기에서,사단장은 육사 26기에서 배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의 군단장급 인사에는 임기가 만료되는 육사교장과 합참에 신설된 전력평가본부장 등에 대한 보직이동도 포함될 전망이다.
  • 12·12사건 재판 계류 유학성씨 별세

    12·12 및 5·18사건으로 기소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둔 전 국회의원 유학성씨(70)가 3일 낮 12시35분쯤 서울 서초구 방배본동 1의11 자택에서 지병인 십이지장암으로 숨졌다. 유씨는 지난해 12월 구속집행 정지로 풀려난 뒤 서울대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암이 4기까지 진행돼 수술을 포기하고 지난 2월부터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받아왔다. 유씨는 12·12 및 5·18사건으로 지난해 1월 17일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년,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었다. 대법원은 유씨가 사망함에 따라 유·무죄를 따지지 않고 공소기각 결정을 내리게 된다. 국방부는 「형 확정판결 전에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4성장군 출신의 유씨를 국립묘지 장군 묘역에 안장토록 허가해주기로 했다. 유씨는 육사를 졸업한 뒤 26사단장,2군단장,3군사령관,국가안전기획부장,12·13·14대 의원을 지냈다.특히 육군 중장으로 국방부 군수차관보를 맡았던 12·12사건 당시 「경복궁 모임」인 수경사 30경비단 회합에 참석한 핵심인물로 전두환보안사령관 등과 함께 군사반란을 주도했다.그러나 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공직자 재산공개때 부동산투기 등으로 치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 구민의 알찬 환경운동 솔선/「녹색 동작구 환경봉사단」지난달 출범

    ◎한강 정화·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앞장 「녹색 동작구 환경봉사단」이 지역 환경보전을 위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녹색 동작구 환경봉사단은 지난달 주부환경봉사단,녹색구민 실천위원회,환경보전 자문위원회 등 크고 작은 동작구의 민간 환경보전운동단체들이 보다 효율인 활동을 위해 통합한 단체이다. 이 봉사단은 4월부터 서울신문사가 벌이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 50% 줄이기운동에도 적극 동참하는 한편 재활용품 분리수거의 생활화운동을 벌이며 쓰레기 무단투기 행위를 감시하는 등 환경정화활동 및 환경오염 방지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기옥 동작구청장은 『우리구에는 새마을단체 등 기능과 활동이 퇴색한 민간단체들이 뜻밖에 많았다』고 밝히고 『이들 단체의 활성화를 위해 고심하다 엇비슷한 환경단체들을 한데 묶어 번듯한 환경단체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아 이 봉사단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봉사단은 지난 달 19일 봉사단원 1천명과 공무원 200명,군인 200여명,지역주민 등 2천명이 한강지천인 반포천 둔치에서 환경정화운동을벌여 갖가지 쓰레기 10톤가량을 수거하는 성과도 올렸다. 한길전 환경봉사단 단장은 『우리 동작구에 통합 환경운동단체가 생김으로써 이제부터 환경정화 운동을 알차고 지속적으로 벌이게 됐다』면서 『쾌적한 동작구를 만들기 위해 반포천을 깨끗한 지천으로 되살리는데 앞장서고 수질오염 예방을 위한 주민홍보,여름철 방역활동 등도 꾸준히 벌이겠다』고 말했다.
  • “평화수호활동 최선 다할터“/안충준 PKO단장 인터뷰

    ◎“국군긍지 살려 다국적군 효율지휘” 『유엔 사무총장의 지시를 받아 다국적군을 지휘하는 만큼 유엔군이라는생각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한국군으로는 처음 인도·파키스탄 분쟁지역인 카슈미르 지역에서 두나라의 정전협정준수를 감시하는 유엔 PKO(평화유지활동) 단장으로 임명된 안충준 육군소장(53·육사25기).안단장은 『백제의 나당연합군,고려의 여몽연합군 조선의 선명연합군,현재의 한미연합 등 역사적으로 볼때 우리 민족이 외국군과 연합한 적은 있으나 외국군을 직접 지휘하기는 처음』일 것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PKO 단장은 UNMOGIP(인도·파키스탄 군 감시단) 대표로서 예하 군 옵서버 및 요원을 지휘, 통제하고 인도와 파키스탄내 외교관들에게 정기적으로 상황을 브리핑하는 한편 UNMOGIP의 활동상을 홍보하는 중책. 지난 49년 1월부터 임무를 시작한 UNMOGIP는 군 옵서버,유엔 참모요원 등 8개국 270명의 인원과 차량 87대,9인승 경비행기,첨단 통신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한해 예산만 1천300만달러. 안단장이 전방 사단장 임기를 채우지못하고 유엔 사무차장보급의 고위직인 PKO 단장직에 발탁된 배경은 그의 경력때문.71년 특공대 소대장으로 월남전 참전, 94년 한미연합사 작전처장 역임 등 외국군과의 합동근무경험외에도 80년 미국에서 교육행정학 석사학위를 따는 등 어학에도 능통하다.
  • 3·5개각 장관·장관급 프로필

    ◎강운태 내무장관/화술·뛰어난 재사형 작은 키에 치밀한 성격,논리정연한 화술이 돋보이는 재사타입.작은 일도 놓치는 경우가 없는 꼼꼼한 성격으로 일벌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지난 해에는 농림부 장관을 맡아 사상최대의 쌀 대풍작을 이뤘지만 재임 1년만에 교체돼 다른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대학재학중 행시에 합격한후 72년 내무관료로 출발,내무부에서만 24년을 보낸 정통내무관료.청와대 내무행정비서관과 광주시장을 지내 정책과 일선 지방행정에 모두 밝다. 부인 이덕희씨(42)와 사이에 2남. ◎최상엽 법무장관/검찰요직 두루 거쳐 법 이론에 정통하고 사심이 없어 선비형이라는 평.대검 형사2부장,공안부장,대검 차장 등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일선 검사장은 한번도 하지 못한게 흠.검찰 내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분류된다.93년 문민정부 출범 직후 법제처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가 장관으로 복귀. 안우만 전 장관과 생년월일(37년2월14일)이 같고 서울대 법대,고시동기(고시 사법과 13회)로 안장관이 추천했다는 후문.대검 공안부장 재직때인 86년 49세의 나이로 중앙대 생물학과 최경희 교수(49)와 결혼,5살난 딸을 두고 있다.취미는 테니스. ◎송태호 문체장관/꼼꼼한 일처리 정평 온화한 성품에 뛰어난 균형감각을 갖춘 언론인 출신.경향신문 외신부장 시절인 86년 대통령 공보비서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뒤 청와대와 총리실을 번갈아가며 경력을 쌓았다. 총리 비서실장으로 이홍구·이수성 두 총리의 「이미지 메이킹」에 그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고,상하 모두에게 신망이 두텁다.매사에 신중하면서도 한번 결정된 일은 과감히 밀어부치는 추진력을 갖추었다는 평. 부인 서인자씨(52)와의 사이에 1남 1녀. ◎임창렬 통상장관/3개부처차관 역임 뱃심있는 추진력에 업무능력을 겸비한 정통 재무관료.행시7회로 문민정부들어 조달청장과 과학기술처,해양수산부,재정경제원 등 3개 부처의 차관을 지내고 마침내 장관에 기용됐다.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우루과이라운드 금융협상 타결과 한미 금융협상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국제금융통이기도 하다.재경원차관으로 자리를 옮긴지 1개월만에 한보사건이 터지자 현장에 달려가 수습하는 등 위기대처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경제부처내 경기고 출신 인맥의 리더격이다.AIDS전문가로 용산보건소장을 지낸 부인 주혜란씨(48)와 사이에 2녀. ◎이환균 건교장관/정통 경제관료출신 초면에도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근사근한 화술이 돋보인다.대인관계가 원만해 적이 없다. 일처리가 합리적이고 매사에 무리를 하지 않는다.재정경제원 차관과 총리 행정조정실장을 거치면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경제부처간에 마찰을 무리 없이 조정했다는 평. 경남고·서울법대를 나온 「PK」.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경제관료.재무부 1·2차관보와 관세청장을 지냈다. 부인 성정숙씨(52)와 사이에 2남. ◎권숙일 과기장관/30년간 서울대재직 교육과 사회활동 모두에 열성적인 활동파.두주불사의 활달한 성격에 실험실에서는 학생들을 「들볶는」 꼼꼼한 면도 있다.서울대 물리학과와 대학원 졸업후 미국 유타대학에서 고체물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30년간 서울대에 재직하면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한국물리학회장,국립대학교 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장,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장 등을 맡아 리더쉽과 행정 능력을 발휘했다.95·96년 연달아 서울대 총장 후보로 출마했을 정도로 뚝심도 있다.교개위 위원,과학기술한림원 회원 활동을 통해 지론인 기초과학 육성을 정책화하는 데 노력해왔다.부인 최계자 여사(54)와의 사이에 1남1녀. ◎박상범 보호처장/청와대경호 산증인 지난 71년 청와대 경호실에 발을 들여놓은 뒤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을 경호한 경호맨.94년 12월 경호실장에서 물러난 뒤 민주평통 사무총장을 맡아왔다.치밀하면서도 전면에 잘 나서지 않는 업무처리로 유명하다.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당시 총성과 함께 연단 뒤에서 뛰어나와 박대통령을 몸으로 막아낸 인물.79년 10·26때는 수행계장으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부하들로부터 4발의 총격을 받았으며 버마 아웅산테러때도 살아남았다.부인 정명희씨(51)와 2남1녀. ◎정호근 평통총장/최장 군복무로 유명 지난 91년 12월 합참의장을 마지막으로 군문을 떠난 4성장군 출신.경복고에 재학중이던 51년 갑종 5기로 임관,6·25전쟁에 참가한 이후 사단장,군단장,군사령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40년 1개월이라는 창군이래 최장기 복무기록을 세웠다.강직하고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군내 신망도 두터웠다.야인으로 있을때 국영기업체 사장등 영입제의가 여러차례 있었으나 국방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는 후문.부인 김재순씨(60)와 2남1녀. ▲경기 안성·64세 ▲5사단장 ▲7군단장 ▲1군사령관 ▲합참의장. ◎전윤철 공정위장/원칙 준수하는 「대쪽」 공정거래정책의 산증인.79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총괄과장으로 시작해 공정거래법 제정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외모대로 잘못된 일은 보지 못하는 대쪽같은 성품의 원칙주의자.공정위 부위원장시절 다른 부처 관련법에 들어있는 불공정한 조항들을 추려내 메스를 가한 일로 유명하다.김정자 여사(53)와 사이에 1남1녀. ▲전남 목포·56세 ▲서울 법대졸 ▲행시4회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기획관리실장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수산청장
  • 국방연구원장 김형선씨

    국방부는 5일 한국국방연구원장에 김형선 예비역 육군중장(58·육사 19기)을 임명했다. 신임 김원장은 경북 김천출신으로 사단장,특전사령관,육군참모차장을 지냈다.
  • 150㎝ 단구로 버틴 「개혁세월」 73년/등소평이 걸어온 길

    ◎20세 파리유학때 중 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혁명 1세대”/33년 첫 좌절후 3전4기… 78년 개방기치로 전권장악/사회주의 몰락 국제풍파속 말년엔 체제독려 지방순회 신장 150㎝정도의 땅딸막한 등소평은 외무부터가 오뚝이 같았다.부도옹이라는 그이 별명은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오뚝 일어섰울 뿐 아니라 마침내는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한손에 틀어쥔 탁월한 정치력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실용주의노선으로 12억 중국인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키고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최고직책을 가져보지 않은채 중국을 15년 넘게 통치해온 등소평.하지만 그 역시 같은 세대의 거의모든 중국지도층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시적 삶을 살아왔다. ○맏아들로 본명 등희현 1904년8월22일 사천성 광안현에서 비교적 부유한 불교도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본명은 등희현.광안중학시절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성격은 온순 참착했다.겉으로는 매우 산박했으나 「마음은 겨자처럼 맵다」는 평을 들을 만큼 결단력에 냉혹성까지 갖추며 자라났다.16세 되던 20년 10월 은등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간후 24년에는 주은래·이입삼·조세염 등과 파리에서 주국공산단 유럽지부를 창설함으로써 일찍부터 혁명에 가담했다.이 시절 르노자동차회사의 조립공으로부터 기차화부,식당보이 등 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스런 시절을 보냈다.뒷날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졌다고 한다.그는 당면에 따라 26년초 파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여기서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공산주의학습을 시키던 중산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산주의이론을 학습하고 군사훈련까지 받은뒤 그해 연말 귀국했다. 귀국후 그는 곧바로 서안의 중산군사학교에 배치돼 이 곳에서 정치처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중국혁명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인 27년 국공합작이 실패로 돌아간뒤 그는 중국공상당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을 등소평으로 개명했다.그해 겨울 중공중앙이 상해로 옮겨가자 함게 따라가 당비서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서 최초의 부인 장서원과 결혼한다.하지만이장씨부인은 멀지않아 난산으로 사망하게 된다.등은 28년 당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부턴 광서지역에 들어가 본격적인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31년에 들어서자 주덕이 이끄는 홍군제1군단에서 정치부주임을 맡게 되고 동시에 홍군총정치부부주임을 맡아 활동하던중 두번째 부인 김유영과 결혼한다.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큰 좌절은 33년에 찾아온다.강서성 위원회 서기로 취임하지만 그가 모택동파라는 이유만으로 곧 해임되고 「엄중경고」처분을 받는다.당시까지만해도 모가 전권을 잡지 못하던 시절이다.이것이 그이 첫번째 실각으로 기록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그의 처 김유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그녀는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던 이유한과 재혼해서 현재의 경제체제개혁위주임인 이철영을 낳았다. 34년10월 중국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끈질긴 소탕전에 견디다 못해 대장정에 나섰다.물론 등은 참여했다.이 장정도중 모는 준의회의에서 중공당 최고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당시 홍군기관지 「홍성보」 편집장 자격으로이 회의에 참석했던 은등 당중앙비서장(당사무총장격)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모파의 유력한 간부지위에 올랐다. 약 1년간의 대장정이후 계속된 붉은 공산혁명과 항일운동을 거치면서 등은 계속 모의 신임을 쌓아 가다가 38년8월에는 팔로군의 제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사단장인 류백승과 함께 유등대군(제2야전군)의 기반을 닦아간다.그후 45년에는 군부내에서 주덕·팽덕회 다음으로 3번째의 지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군부내 기반과 인맥을 형성해나갔다. 그는 이에 앞서 39년9월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탁림과 결혼,지금까지 2남3녀를 둔채 반백년도 넘게 해로해왔다. 50년대말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극심한 가뭄등으로 수백만명이 굻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론」(흑묘백묘론)을 내놓았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사상이야 어떻든)쥐만 잘 잡으면(생산만 많이 하면)좋은 고양이(인민)다』는 의미의 이 주장으로 그는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이른바 주자파로 주목받게 된다. 60년대 중반부터문화대혁명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그의 주변에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홍위병들로부터 주자파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는 류소기 국가주석과 함께 67년8월 모든 공직에서 해임,강서성 신건현에 유배돼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2차 실각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73년3월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복권,오뚝이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남쪽 언덕이든 북쪽 언덕이든 꼭대기에만 오르면 된다』는 의미의 「남파북파논」을 내놓아 골수 공산주의자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76년4월 주은래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난동사건(일명 4·5사건)때 사인방(모택동을 등에 업은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등 강경파)으로부터 「난동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다시 실각했다.3차 실각이었다.주추모집회에서 은등 추도사를 읽었었다. 이윽고 모사망과 사인방 실각 이듬해인 77년 그는 다시 부활,실각 당시의 모든 직책을 회복했다.이때 그의 재기용여부를 놓고 중앙공작회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그런데등이 스스로의 과오를 시인,이미 당주석과 중앙군사위주석이었던 화국봉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지를 씀으로써 부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때 화는 의등 부활에 반대했었다. ○강경책 내며 위기극복 이렇게 되살아난 등은 78년12월 당11기3차중앙위전체회의에서 향후 20년간에 걸친 「4개(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계획」선포를 주도함으로써 당의 최고 실권자임을 과시했다.이때부터 중국이 야심찬 개혁개방시대로 들어선 것이다.이는 곧 실사구시를 중심으로한 실용주의 「등시대」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최고실권자였음에도 당주석이나 국가주석과 같은 최고 자리에 오르지 않는채 호요방(당)과 조자양(정부)을 앞세워 화에 대한 문책과 강등에 착수,마침내 82년9월 화를 당중앙 위원이외의 일체의 요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권력투쟁에서의 기나긴 「장정」을 매듭지었다. 89년4월 전총서기 호요방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험이었다.그러나 그는 이 시험문제를 시위대군중에 대한무자비한 발포와 함께 시위대의 추앙을 받던 총서기 조자양을 「폭란의 배후책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법으로 풀었다.13년전의 천안문폭동때 자신이 당했던 방법을 이번에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조에게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어쨌든 이로써 사회주의체제를 전복시켰을지도 모를 자유화물결을 일단 잠재울 수 있었다. 등은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로 호요방과 조자양을 잇따라 내세워 봤지만 「홀로세우기」에 실패했다.그 뒤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고 꼽은 인물이 강택민.강은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고 그동안 의등 개혁개방노선을 가장 능숙하게 실천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강택민 지목한 뒤 은퇴 강을 후계자로 내세운 그는 89년 11월9일 당중앙위의 허락을 받아 당중앙군사위주석직에서 퇴임함에 따라 공직에서 은퇴,평민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에도 배후에서 한동안 강체제를 지원하고 후견인역할을 해와서 최근까지도 「최고지도자」또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동구공산체제가붕괴된데 이어 소련마저 무너져 중국이 망당망국의 위기의식에 휩싸이자 심천 주해 등 남부 개혁개방지역을 돌며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화할 것으로 주창함으로써 사회주이체제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중국대륙에 밀어닥치지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모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당노선으로 채택케함으로써 중국이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중국경제가 이같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힘입어 연10%가 넘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전진을 계속하자 그는 『기회를 잃지 말고 성장을 계속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등소평 연보 ▲1904.8.22=사천성 광안현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출생 ▲1918=중경에서 프랑스유학을 위한 예비학교 입교 ▲1920=프랑스 유학 떠남 ▲1924=파리에서 주은래와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1926=모스크바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뒤 연말에 귀국 ▲1927=광서성에서 공산당 게릴라 조직.첫부인 장서원과 결혼 ▲1931=홍군제1군단 정치부주임.두번째부인 김유영과 결혼 ▲1933=강서성위서기로 취임직후 모택동파라는 이유로 해임.1차실각 ▲1934∼35=대장정 참가,준의회의에서 당중앙 비서장으로 선임 ▲1938=국공합작으로 홍군이 팔노군으로 개편될때 129사정치위원이 됨 ▲1939=세번째부인 탁림과 결혼 ▲1945=제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 ▲1952.8=국무원 부총리에 임명 ▲1954=당중앙위원회 비서장,국무원 부총리,국방위원회 부주석에 선출 ▲1956=정치국상무위원겸 당총서기 선임 ▲1966=문화대혁염 시기 홍위병으로 부르주아 반동파로 비판받음 ▲1967.7=모든 당·정 직무에서 해임.2차 실각.남창으로 하양 막노동 ▲1973.3=주은래 천거로 국무원 부총리에 복직 ▲1974=당정치국원 승진.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중국대표 단장으로 참석 ▲1975.1=당중앙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국무원 제1부총리,중공군 총참모장 등에 선임 ▲1976.4=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4인방에 의해 배후조종자로 지목,모택동의 제의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남.3차실각 ▲1977.7=중공당 10기3중전회에서 당중앙정치국상무위원,당중앙부주석,군총참모자 등으로 복직 ▲1978.12=당11기3중전회에서 당최고영도자 지위 획득,향후 20년간 4개 현대화 추진계획 선포 ▲1979=핑퐁외교로 미국과 국교수립후 공식 방미,개혁·개방정책을 당지도노선으로 정식 출범시킴 ▲1980=경제특구제 시행 결정,호요방·조자양체제 출범토록 지원 ▲1981.6=당중앙군사위우너회 주석으로 권권장악 ▲1987.10=당정치국원,정치국상무위원직 사임 ▲1989.6=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지시 ▲1989.11=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정치일선에서 은퇴 ▲1992.1=남부개방지역 순시중 담화(남순강화)로 개혁·개방 가속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역설 ▲1992.10=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강택민체제 구축토록 지원 ▲1993.8=막내딸 용등,「나의 아버지 등소평」전기 출간 ▲1993.11=「등소평문선 제3집」 발간 ▲1993.12=북경시 순시중 「기회를 잃지말고 계속 성장추진」역설 ▲1997=92세를 일기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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