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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량리 민자역사 이달말 착공

    청량리 역사가 오는 2008년까지 복합 상업시설을 갖춘 대규모 민자역사로 바뀐다. 서울시는 5개 부도심 가운데 한 곳에 위치한 청량리역사를 대규모 민자역사로 개발하는 건축허가를 내리고 이달 말 착공한다고 23일 밝혔다. 철도청과 한화역사㈜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청량리 민자역사 개발사업에는 모두 2880억원이 투입돼 지하 4층·지상 9층,연면적 5만 2225평 규모로 개발된다.여기에는 5300평 규모의 역무시설을 비롯해 2만 6000평의 롯데백화점,3000평 규모의 대형할인점,모두 2200석을 갖춘 상영관 8개의 멀티플렉스 극장,식당 등이 들어선다.또 민자역사내 환승주차장이 들어서면 인접 재개발 구역과 연계해 속칭 청량리 588일대 윤락가도 도심재개발 추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와 함께 중앙선 철도 건설로 단절된 망우로와 배봉로에는 폭 18m,길이 771m의 고가도로가 건설된다.두 도로 사이에는 철로가 놓이면서 도로가 끊겨 교통불편 등의 이유로 개발이 부진했다. 시 관계자는 “청량리 부도심 균형발전촉진지구 사업과 뉴타운 중심에 위치한 입지 조건 등이 맞물려 이 일대는 핵심 상업시설로 부상할 것”이라면서 “청량리역이 철도와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의 요충지로 기능이 한층 강화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고 말했다. 이로써 시가 추진 중인 민자역사는 모두 6곳으로 오는 12월까지 용산역이 완공되며 창동역과 왕십리역,노량진역은 2007년 초까지 개발이 완료된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최강 커플’ 최강희·박광현

    워낙 기복이 심한 연예계라지만,한창 인기있던 스타가 안방극장에서 사라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하지만 각각 ‘맹가네 전성시대’와 ‘내 인생의 콩깍지’로 주가를 올리던 최강희와 박광현은 그 뒤 캐스팅이 밀렸을만도 한데 종적을 감췄다.77년생 동갑내기인 둘,1년여동안 뭘하며 살았을까.새달 4일 첫 방송되는 MBC ‘단팥빵’(연출 이재동,극본 이숙진)에선 둘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나이트클럽의 반짝거리는 조명 아래에서 촬영 중인 둘에게 오랜만에 말을 걸었다. #강희 “빈둥빈둥 놀면서 지냈어요.” 최강희는 여느 연예인처럼 “재충전의 계기로 삼았다.”는 입에 발린 소리는 하지 않았다.신세대다운 솔직함일까.그냥 아무 생각없이 놀고 싶었단다.“늦잠자고 친구 만나고 하며 보냈어요.각오 같은 거 다진 것 없어요.” “야망은 요만큼도 없다.”는 그녀는 그 사이 많은 캐스팅 기회를 미련없이 보내버렸다.다시 돌아온 이유는 그저 “연기가 고파서”이고,이 드라마를 택한 건 “햇빛 쨍쨍 구름 동동 뜬 날처럼 맑고 밝아서”란다.그녀가 맡은 초등학교 교사 가란은 호탕한 성격이지만,첫사랑인 남자가 신부가 돼 사랑에 실패한 아픔을 갖고 있는 역.“스테레오 타입 같은 건 버리려고요.주변의 가까운 사람의 캐릭터를 합쳤어요.” 96년 데뷔한 뒤 영화 ‘여고괴담’,드라마 ‘나’‘학교’‘술의 나라’등 정신없이 달려왔다.연기가 돈 버는 수단이 되는 게 싫어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는 그녀.하지만 연기가 좋아지면서 저절로 극복했다.“연기만큼은 욕심은 난다.”는 그녀에게 이제 연기는 천직인 듯했다. #광현 “일 부담 안 가지려고요.” 극중에서는 어딘지 껄렁해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진중한 박광현.그는 겨울 시즌 두달동안 가수로 활동했고,나머지는 골프를 치면서 쉬었다. ‘우리가 남인가요’‘메디컬센터’‘나쁜여자들’등 드라마에서 승승장구했지만 2002년 영화 ‘뚫어야 산다’로 흥행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했던 그다.그때 한풀 꺾여서인지 연기관을 바꿨다.“위로만 올라갈 때는 미니시리즈 아니면 안하기도 했죠.하지만 요새는 부담이 없어요.만약 미니시리즈를 했는데 시청률이 안 좋으면 힘만 더 들 뿐이잖아요.이젠 하고 싶은 배역을 할 거예요.” 이번에 맡은 남준은 가란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현재는 건설회사 사내변호사.머리는 비상하지만 뺀질거리고 게으르다.“기존 작품보다 코믹적인 요소는 없어요.저로서는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서 더 좋고요.” 이제야 그는 나이에 맡는 역을 제대로 골랐다. #‘티격태격’ 우리는 초등학교 동창 어릴 때부터 가란과 남준은 늘 티격태격 다툰다.“제가 발로 차면 잡고 다시 차고 뭐 애들처럼 싸우는 게 재밌어요.”(최) “그러다가 엎어져서 촬영 내내 땅과 친해졌죠.”(박) 함께 연기하는 건 처음이다.최강희가 “둘다 1년을 쉬어서 같이 삐거덕거릴 것 같아 편하다.”고 말하자 박광현은 “촬영해보면 혼자 너무 잘한다.”며 상대를 치켜세웠다.싸우다가 사랑에 빠지는 역할 아니냐고 묻자 “어머,아닌데….웬수예요.”라는 최강희.욕심이 없다더니 시놉 파악도 안 할걸까.‘남준은 동창인 혜란을 사랑하지만 그녀가 떠나버리자 가란에게 100일 동안의 계약연애를 제안한다.’고 분명 시놉에 나와있다.뒤늦게서야 “맞다,맞다.”고 맞장구를 치는 모습이 솔직해보여 밉지만은 않다.‘1%의 어떤 것’이후 ‘일요로맨스극장’이라는 타이틀로 부활하는 24부작 ‘단팥빵’은 둘 외에도 영화 ‘로드무비’로 강한 인상을 남긴 정찬이 남준의 직장 상사로,‘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사랑한 비운의 여인을 연기한 정소영이 혜란역으로 출연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사회플러스] ‘자막사고’ SBS, 보도본부장등 징계

    SBS는 지난 20일 밤 주말 드라마 방송 도중 발생한 자막 방송사고의 원인을 “문자발생기 담당자의 부주의로 인한 실수”로 결론 짓고,관련자들을 징계 조치했다. SBS는 22일 사내 인사위원회를 열고 문자발생기(Character Generator:CG)담당 직원과 뉴스진행 담당 기자에게 관리소홀 책임을 물어 7일간 근신 조치했다.또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편집부장과 보도국장에게 각각 감봉 1개월,보도본부장에게는 감봉 2개월의 징계 조치를 내렸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0)남해 노도(櫓島)의 파도소리

    국문소설 ‘구운몽(九雲夢)’의 작가이자 조선 후기 이름 난 문신(文臣)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양오리 백연 마을 건너 노도(櫓島)에서 56세 일기로 생을 마쳤다.그는 서울 태생인 데다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다.그런 그가 한반도의 끝 남해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한 작은 무인도에서 숨을 거둔 이유는 정치범이라는 죄를 덮어 쓰고 이곳으로 유배되었기 때문이다. ●역모죄로 유배… 천연의 무인도 특별감옥 노도는 유배지였다.그러나 김만중 이전,또는 이후에 이곳으로 유배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노도는 김만중 한 사람을 유형시키기 위해 선택된 특별감옥이었던 셈이다. 그의 죄목은 역모와 관련되었다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숙종 임금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다툼에서 서인이 패배하게 되자 관직을 빼앗기고 죄인이 되었다.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무거웠다.사람이 살 수 없는 변방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남해(南海)에 위리안치(圍籬安置),즉 사방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 안에 감금하는 형벌이었다. 이같은 조건을 잘 갖춘 곳이 노도다.섬의 동남쪽은 가파른 경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일부러 울타리를 칠 필요가 없다.서쪽도 급경사지여서 탈출이 불가능하다.북쪽으로 난 밋밋한 한 자락만이 간신히 바다에 이르는 길로 이용할 수 있는데,이곳에서 맞은편 남해까지 사이에는 급류가 흐르고 있어 이 또한 천혜의 장애물이다.감옥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노도에다 김만중을 혼자 몰아 넣어 놓고 숙종은 장희빈과 쾌락의 나날을 보냈고,남인 권력자들의 끝없는 욕망은 조선시대를 비탈로 끌어내렸다. 그리움의 정서가 자주 표출되는 그의 시편들은 그의 생애가 잘 투영된 것들이다.또한 많은 인물 대부분이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는 소설과 시들은 그의 낭만주의 정감을 엿보게 한다.실제로 노도에 유배당한 김만중은 유배지로 찾아온 어머니와 아내와의 피맺힌 해후를 통하여 한글소설 ‘구운몽’을 탄생시켰다. 그가 53세 되던 1689년에 끌려와서 3년 뒤인 1692년 타계할 때까지 홀로 꿈꾸고 절규했던 적소(謫所),노도로 가기 위해 백연 마을 포구에서 고깃배를 빌려 탔다.불과 5분 남짓이면 노도에 닿는 거리다.그러나 노도와 백연마을 사이를 왕래하는 정기 여객선 같은 것은 있었던 적이 없었다.포구의 방파제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의 패악질로 곳곳이 무너진 채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작은 고깃배를 몰고 가는 초로의 남자가 전해 준 말에 따르면 백연마을이나 노도는 1985년까지도 등잔불을 켜고 살았단다.십여 년 전부터 노도를 찾아오는 이들이 가끔 있어서 기름값이나 받고 손님을 실어다 주기도 한다는데,그 손님들 대부분이 어떻게 노도에서 혼자 3년 동안이나 지낼 수 있었는지 끔찍하다며 말을 잃곤 하더란다. 노도에는 그가 귀양살이 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북쪽 산비탈에 울창한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숲에서 산새 몇 마리가 가는 소리로 울고 있다.김만중의 외로운 넋이런가 싶다.이 섬에서 북쪽 동백나무 숲 아래의 다소 밋밋한 언덕배기가 배를 접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피눈물로 얼룩진 어머니·아내와의 해후 필자는 배가 닿았던 지점에서 맞은편 백연마을 포구를 바라본다.소리치면 건너편 포구까지 닿을 듯도 싶다.큰소리로 외쳐본다.바람이 그다지 불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지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마을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그때 필자는 김만중이 유배생활 중에 겪었던 피눈물로 얼룩진 사건을 떠올렸다.어쩌면 바로 이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그가 노도로 유배 온 이듬해 늦은 봄이었다.움막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애절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붓을 놓고 귀를 귀울였다.분명 사람 목소리였다.움막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그의 눈길이 노도 맞은편 백연마을 언덕으로 가 닿는다.세 사람이 언덕 위에 서서 노도 쪽을 바라보고 있다.두 사람은 여인이고 한 명은 남자였다.그 남자가 다시 고함을 쳤다.저쪽 사내는 김만중을 찾고 있었다.놀랍고 반가웠다.되도록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다가섰다.바람이 불고 있었다.저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바람에 파묻혔다가 토막난 채 들려온다.김만중 자신을 찾는 것이 분명했다.그렇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저쪽의 여자 한 사람이 절규한다.김만중의 아내였다.그 옆의 여인은 어머니였다.남자는 김만중의 집일을 도맡고 있는 주석아범이었다. 죄수가 유형생활하는 유배지에 가족이 찾아오는 것은 법으로 엄금했다.그리하여 주변을 지키는 포졸들에게 뇌물을 주고 잠시만 만나기도 했다.노도에 있는 김만중을 만나려면 특별하게 마련된 배가 필요했다.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주석아범은 백방으로 손을 써봤지만 배를 구할 수 없었고,그렇게 먼발치에서라도 소리쳐 이름 불러볼 수 있게 된 것도 여간 공들인 것이 아님을 알렸다.어머니는 자식이 하도 보고 싶어 서울에서 남해까지 왔지만 자식의 적소까지는 다가설 수 없어서 애를 태웠다.김만중은 울음을 참으면서 소리 질러 집안 안부를 물었고 어머니는 주석아범 목소리를 빌려서 부디 몸조심하라 신신당부했다. 늦은 봄날 하루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마침내 어머니가 혼절했다.주석아범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아내는 나귀를 몰고 돌아섰다.아내가 가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세 사람 모습이 사라진 뒤 김만중은 바닷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래오래 울었다.늦은 봄밤이 깊어와 파도소리도 따라 울었다. ●소설 못보고 어머니 눈감자 그도 앓다 숨져 그날 이후 김만중은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어머니께 보내드리기 위해서였다.그는 어머니께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다.지난날 그가 중국 사신으로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중국 소설책 몇 권을 구해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사신의 임무가 너무 막중하고 분주하여 어머니의 부탁을 그만 잊어버렸던 것이다.그 뒤로 다시는 중국 여행길이 마련되지 않아 늘 어머니께 송구한 마음이었다.김만중은 노도에서 그렇게 어머니와 이별한 뒤로 지키지 못한 어머니와의 약속을 다시 떠올렸다.언제 풀려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절해고도에 갇힌 몸이라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초조함이 더했다. ‘구운몽’은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인생을 특정한 사상의 틀 안에 넣어서 보지 않고 모든 틀을 깨고 나와서 자유롭게 관조한다는 주제로 씌어진 소설이다.그래서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인 금강경의 공(空)을 소설화했다고도 볼 수 있는 소설이다.김만중 자신의 육신이 절해고도에 감금당하고 자신의 삶이 철저한 불행 속에 놓여진 뒤에야 깨닫게 된 정신세계의 변화였다. 세속의 상식으로 볼 때 그의 인생은 끝장난 것이다.남은 것은 외로움에 찢겨 피흘리다 파도소리에 젖은 채 죽는 일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때 그는 역설의 묘법을 눈치챈 것이다.명예,권력,소유의 욕망을 놓아버리면 한없이 자유로운 자연이 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마침내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구운몽’을 쓴 셈이다. 소설이 완성되었지만 보낼 길이 막연했다.어머니는 그렇게 다녀가신 그 해 가을에 눈을 감았다.소식을 갖고 온 조카에게 완성된 ‘구운몽’을 들려보내면서 장례에도 못 가는 불효자식을 대신하여 구운몽을 어머니 영전에 올려달라며 피울음을 울었다.자식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로해드리기 위해 쓴 소설이지만 정작 그 소설을 보지도 못한 채 눈 감은 어머니를 부르며 바닷가를 거닐었다.어머니라는 등불이 꺼지고나자 자신의 삶은 더욱 작고 초라했다. 어머니와 아내가 서 있던 언덕의 느티나무 잎이 지고 파도가 흰 갈기를 세우며 세상을 질타하는 겨울 내내 김만중은 병을 앓았다.그리움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김만중은 그렇게 앓으며 파도소리에 갇힌 채 유배지 불 꺼진 방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육신을 벗어버림으로써 더는 갇힐 것 없는 무애의 빛이 되었을까.구운몽 책갈피가 파도소리에 젖는다. 우리말과 글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로 글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내는 것과 같다면서 국문가사예찬론을 폈던 서포 김만중의 목소리가 이 여름 노도를 씻어가는 파도소리로 다가온다.˝
  • 이통업계 “이젠 기업 모바일시장”

    “기업시장을 뚫어라.” 개인고객 유치에 치중했던 이동통신 3사가 최근 ‘모바일 기업시장’에 눈을 돌려 적극 공략에 나서고 있다.이 시장은 한번 계약이 이뤄지면 규모가 커 ‘법인영업’으로 불린다. 휴대전화 음성시장의 포화가 영향을 줬지만 번호이동성제 시행으로 업체를 바꾸기 쉬워지면서 ‘군침을 흘리는’ 분야다. 예컨대 콜택시를 예약하면 택시회사가 차량 이동기기로 한꺼번에 메시지방송을 보내고 가까이 있는 운전사가 손님을 맞이하는 KTF의 ‘K-택시’가 그 것이다.업체나 직원은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눈 뜬’ 모바일오피스 시장 모바일 기업시장은 차량 길안내 서비스인 텔레매틱스는 물론 PDA 등을 이용한 가스 원격검침,대교 등에서 활용하는 가정방문학습 등 다양하다. 최근 영역을 넓히는 모바일 뱅킹도 여기에 속한다.넓게 보면 이동전화로 사내 인터넷에 접속,업무를 처리하는 ‘모바일 사무실’인 셈이다. 하지만 시장은 초기단계다.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특히 중소업체에서 이 서비스에 눈을 뜨면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 규모는 이통 3사당 2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2001년 법인영업을 시작한 KTF는 이듬해 520여억원,지난해 800여억원으로 매년 50% 성장세를 보였다.법인영업의 올해 목표를 1200억원으로 잡고 있다. ●어떤 서비스 있나 KTF의 ‘K-택시’는 고객이 콜 택시를 예약하면 회사에서 고객 근처(Cell로 구분) 기사들의 휴대전화에 공동 메시지 방송을 하고,선택된 기사의 휴대전화에는 승객의 위치와 전화번호가 전송돼 손님을 맞는다.‘($)-존’이란 첨단 모바일 사무실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기업고객은 휴대전화 한 대로 구내전화와 이동전화를 이용할 수 있다.KAIST(한국과학기술원) 등 50여개 대학과 기업이 이용하고 있다.가입자는 10만명에 이른다.번호이동성으로 가입자를 늘리는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SK텔레콤은 ‘BCP(Biz Common Platform)’ 서비스를 기업용 모바일 상품으로 내놓고 기업 고객을 모집 중이다.가입자에게는 모바일 서비스,단말기,고객 서비스를 제공한다.사용자는 통화료에 사용료만 부담하면 된다.관계자는 “초기 투자비가 없어 쉽게 도입 가능하고 모바일 업무 효과가 상당한 것이 장점”이라고 밝혔다. LG텔레콤은 현대·기아차와 제휴해 ‘모젠’이란 이름의 모바일 차량정보서비스(텔레매틱스)를 하고 있다.차량에 달린 단말기를 통해 운전자가 가는 길을 알 수 있고,예금 입·출금,호텔예약,팩스 송·수신이 가능하다. 최대 학습지 교육업체인 ㈜대교와도 ‘모바일 교육’을 접목시켰다.1만 5000여명의 대교 ‘눈높이 교사’가 PDA를 통해 ‘모바일 교무실’ 역할을 하고 있다.LG텔레콤은 한국전력과 고압전력을 사용하는 대형 건물,기업 전력 사용량을 멀리서 검침하는 서비스 제휴를 하고 있다.물론 한전이 가입한 PDA가 현장에 지급돼 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0)남해 노도(櫓島)의 파도소리

    국문소설 ‘구운몽(九雲夢)’의 작가이자 조선 후기 이름 난 문신(文臣)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양오리 백연 마을 건너 노도(櫓島)에서 56세 일기로 생을 마쳤다.그는 서울 태생인 데다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다.그런 그가 한반도의 끝 남해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한 작은 무인도에서 숨을 거둔 이유는 정치범이라는 죄를 덮어 쓰고 이곳으로 유배되었기 때문이다. ●역모죄로 유배… 천연의 무인도 특별감옥 노도는 유배지였다.그러나 김만중 이전,또는 이후에 이곳으로 유배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노도는 김만중 한 사람을 유형시키기 위해 선택된 특별감옥이었던 셈이다. 그의 죄목은 역모와 관련되었다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숙종 임금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다툼에서 서인이 패배하게 되자 관직을 빼앗기고 죄인이 되었다.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무거웠다.사람이 살 수 없는 변방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남해(南海)에 위리안치(圍籬安置),즉 사방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 안에 감금하는 형벌이었다. 이같은 조건을 잘 갖춘 곳이 노도다.섬의 동남쪽은 가파른 경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일부러 울타리를 칠 필요가 없다.서쪽도 급경사지여서 탈출이 불가능하다.북쪽으로 난 밋밋한 한 자락만이 간신히 바다에 이르는 길로 이용할 수 있는데,이곳에서 맞은편 남해까지 사이에는 급류가 흐르고 있어 이 또한 천혜의 장애물이다.감옥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노도에다 김만중을 혼자 몰아 넣어 놓고 숙종은 장희빈과 쾌락의 나날을 보냈고,남인 권력자들의 끝없는 욕망은 조선시대를 비탈로 끌어내렸다. 그리움의 정서가 자주 표출되는 그의 시편들은 그의 생애가 잘 투영된 것들이다.또한 많은 인물 대부분이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는 소설과 시들은 그의 낭만주의 정감을 엿보게 한다.실제로 노도에 유배당한 김만중은 유배지로 찾아온 어머니와 아내와의 피맺힌 해후를 통하여 한글소설 ‘구운몽’을 탄생시켰다. 그가 53세 되던 1689년에 끌려와서 3년 뒤인 1692년 타계할 때까지 홀로 꿈꾸고 절규했던 적소(謫所),노도로 가기 위해 백연 마을 포구에서 고깃배를 빌려 탔다.불과 5분 남짓이면 노도에 닿는 거리다.그러나 노도와 백연마을 사이를 왕래하는 정기 여객선 같은 것은 있었던 적이 없었다.포구의 방파제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의 패악질로 곳곳이 무너진 채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작은 고깃배를 몰고 가는 초로의 남자가 전해 준 말에 따르면 백연마을이나 노도는 1985년까지도 등잔불을 켜고 살았단다.십여 년 전부터 노도를 찾아오는 이들이 가끔 있어서 기름값이나 받고 손님을 실어다 주기도 한다는데,그 손님들 대부분이 어떻게 노도에서 혼자 3년 동안이나 지낼 수 있었는지 끔찍하다며 말을 잃곤 하더란다. 노도에는 그가 귀양살이 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북쪽 산비탈에 울창한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숲에서 산새 몇 마리가 가는 소리로 울고 있다.김만중의 외로운 넋이런가 싶다.이 섬에서 북쪽 동백나무 숲 아래의 다소 밋밋한 언덕배기가 배를 접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피눈물로 얼룩진 어머니·아내와의 해후 필자는 배가 닿았던 지점에서 맞은편 백연마을 포구를 바라본다.소리치면 건너편 포구까지 닿을 듯도 싶다.큰소리로 외쳐본다.바람이 그다지 불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지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마을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그때 필자는 김만중이 유배생활 중에 겪었던 피눈물로 얼룩진 사건을 떠올렸다.어쩌면 바로 이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그가 노도로 유배 온 이듬해 늦은 봄이었다.움막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애절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붓을 놓고 귀를 귀울였다.분명 사람 목소리였다.움막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그의 눈길이 노도 맞은편 백연마을 언덕으로 가 닿는다.세 사람이 언덕 위에 서서 노도 쪽을 바라보고 있다.두 사람은 여인이고 한 명은 남자였다.그 남자가 다시 고함을 쳤다.저쪽 사내는 김만중을 찾고 있었다.놀랍고 반가웠다.되도록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다가섰다.바람이 불고 있었다.저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바람에 파묻혔다가 토막난 채 들려온다.김만중 자신을 찾는 것이 분명했다.그렇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저쪽의 여자 한 사람이 절규한다.김만중의 아내였다.그 옆의 여인은 어머니였다.남자는 김만중의 집일을 도맡고 있는 주석아범이었다. 죄수가 유형생활하는 유배지에 가족이 찾아오는 것은 법으로 엄금했다.그리하여 주변을 지키는 포졸들에게 뇌물을 주고 잠시만 만나기도 했다.노도에 있는 김만중을 만나려면 특별하게 마련된 배가 필요했다.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주석아범은 백방으로 손을 써봤지만 배를 구할 수 없었고,그렇게 먼발치에서라도 소리쳐 이름 불러볼 수 있게 된 것도 여간 공들인 것이 아님을 알렸다.어머니는 자식이 하도 보고 싶어 서울에서 남해까지 왔지만 자식의 적소까지는 다가설 수 없어서 애를 태웠다.김만중은 울음을 참으면서 소리 질러 집안 안부를 물었고 어머니는 주석아범 목소리를 빌려서 부디 몸조심하라 신신당부했다. 늦은 봄날 하루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마침내 어머니가 혼절했다.주석아범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아내는 나귀를 몰고 돌아섰다.아내가 가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세 사람 모습이 사라진 뒤 김만중은 바닷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래오래 울었다.늦은 봄밤이 깊어와 파도소리도 따라 울었다. ●소설 못보고 어머니 눈감자 그도 앓다 숨져 그날 이후 김만중은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어머니께 보내드리기 위해서였다.그는 어머니께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다.지난날 그가 중국 사신으로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중국 소설책 몇 권을 구해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사신의 임무가 너무 막중하고 분주하여 어머니의 부탁을 그만 잊어버렸던 것이다.그 뒤로 다시는 중국 여행길이 마련되지 않아 늘 어머니께 송구한 마음이었다.김만중은 노도에서 그렇게 어머니와 이별한 뒤로 지키지 못한 어머니와의 약속을 다시 떠올렸다.언제 풀려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절해고도에 갇힌 몸이라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초조함이 더했다. ‘구운몽’은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인생을 특정한 사상의 틀 안에 넣어서 보지 않고 모든 틀을 깨고 나와서 자유롭게 관조한다는 주제로 씌어진 소설이다.그래서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인 금강경의 공(空)을 소설화했다고도 볼 수 있는 소설이다.김만중 자신의 육신이 절해고도에 감금당하고 자신의 삶이 철저한 불행 속에 놓여진 뒤에야 깨닫게 된 정신세계의 변화였다. 세속의 상식으로 볼 때 그의 인생은 끝장난 것이다.남은 것은 외로움에 찢겨 피흘리다 파도소리에 젖은 채 죽는 일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때 그는 역설의 묘법을 눈치챈 것이다.명예,권력,소유의 욕망을 놓아버리면 한없이 자유로운 자연이 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마침내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구운몽’을 쓴 셈이다. 소설이 완성되었지만 보낼 길이 막연했다.어머니는 그렇게 다녀가신 그 해 가을에 눈을 감았다.소식을 갖고 온 조카에게 완성된 ‘구운몽’을 들려보내면서 장례에도 못 가는 불효자식을 대신하여 구운몽을 어머니 영전에 올려달라며 피울음을 울었다.자식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로해드리기 위해 쓴 소설이지만 정작 그 소설을 보지도 못한 채 눈 감은 어머니를 부르며 바닷가를 거닐었다.어머니라는 등불이 꺼지고나자 자신의 삶은 더욱 작고 초라했다. 어머니와 아내가 서 있던 언덕의 느티나무 잎이 지고 파도가 흰 갈기를 세우며 세상을 질타하는 겨울 내내 김만중은 병을 앓았다.그리움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김만중은 그렇게 앓으며 파도소리에 갇힌 채 유배지 불 꺼진 방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육신을 벗어버림으로써 더는 갇힐 것 없는 무애의 빛이 되었을까.구운몽 책갈피가 파도소리에 젖는다. 우리말과 글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로 글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내는 것과 같다면서 국문가사예찬론을 폈던 서포 김만중의 목소리가 이 여름 노도를 씻어가는 파도소리로 다가온다.
  • 세계 투자은행들 M&A 재시동

    인수합병(M&A) 시장이 되살아나면서 세계적 투자은행들이 M&A팀을 재구성하고 있다.2000년 정보기술(IT) 붐 붕괴 이후 투자은행들은 M&A팀을 해체 또는 축소했었다. M&A 주간사가 되면,규모가 클수록 유명세도 얻고 수수료도 만만치 않다.또 M&A는 관련 산업 지식,세금 등 계약진행에 대한 특정지식 등이 필요해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높다.따라서 규모가 커지는 M&A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려고 투자은행들이 노력하고 있다. 선두는 크레디트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이다.지난 3월 120명의 M&A팀을 만들었다.뉴욕팀은 맨해튼 본사 22층에 자리를 잡았고 런던팀은 런던 교외의 커네리워프에 새 사무실을 마련했다.총 지휘는 마크 그라네츠가 맡는다.그는 지난해 제너럴 일렉트릭(GE)과 비방디유니버설 방송미디어부문의 합작 등 미디어와 통신업체간 M&A를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이같은 공격적 행보는 최근 진행된 일련의 규모가 큰 거래들에서 CSFB가 철저히 소외됐기 때문이다.조사전문기관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CSFB는 기업금융부문에서 7억 45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려 골드만삭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그러나 올 들어 대규모 M&A에서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올 1·4분기에만 AT&T와이어리스가 410억달러에 싱귤러와이어리스에 팔렸고,뱅크원은 JP모건체이스에 580억달러에 인수되는 등 전년 같은 기간보다 M&A시장이 131.77%,미국의 경우 257%나 급성장했다.이 과정에서 주간사로 선정돼 수입을 올린 순위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JP모건체이스 메릴린치 등 순이다. CSFB에 이어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도 M&A팀을 만들고 있다.씨티그룹은 CSFB처럼 미국과 유럽,두 팀을 운영할 계획이다.골드만삭스는 2∼3달 안에 M&A팀을 발족할 예정이다.2000년 주가폭락 이후에도 M&A팀을 해체하지 않고 유지해온 모건스탠리 리먼브러더스 등은 팀을 보완할 예정이다. M&A팀의 부활을 보는 시각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최고’만을 모으다 보니 사내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산업분석쪽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M&A 주도권을 이들에게 빼앗길까 경계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광고공사 ‘여성국장 1호’ 오현숙 공익사업국장

    “우리 사회의 개혁 분야를 찾아내 국민들이 공감하고,사랑하는 공익광고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23년 역사에서 ‘여성국장 1호’로 기록된 오현숙(55) 공익사업국장의 당찬 포부다.그는 구체적인 ‘개혁 분야’를 묻자 “여론을 수렴해 우선 순위를 정하겠다.”며 신중히 결정할 것임을 내비쳤다. 오 국장은 이어 “공익광고 노출매체를 확대,다변화하겠다.”면서 “한국과 일본이 함께 제작해 두 나라에서 동시에 방영되는 공익공고가 올 하반기에 선보일 것”이라고 소개했다.특히 한·일 공동 공익광고 제작은 일본공공광고기구(JAC)와 7월쯤 실행위원회를 구성,양국의 공동 의제를 선정해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오 국장은 (여성으로서의) 조직관리 노하우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우선 진실되게 대하고,여성의 장점을 살려 때로는 친구·누나·엄마 같은 역할로 조직을 융합해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또한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성이라는 생각 때문에 위축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오 국장은 그러나 “여성으로서 어려운 점이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그는 “과거에는 여자가 결혼을 하면 직장을 떠나는 것이 다반사였다.”면서 “결혼을 하고도 계속해서 회사를 다녀 눈총을 많이 받았다.”고 소개했다.또 “현재 공사내 최고참 여직원보다 (자신의 나이가) 15살가량이나 많다.”는 말로 그동안의 어려움을 대신했다.그는 이어 “1983년부터 직원을 공채로 뽑으면서 회사 내에서도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차별도 점차 없어졌다.”면서 “참고 견딘 결과 참여정부의 여성 중용정책의 수혜자가 됐다.”고 겸손해했다. 오 국장은 ‘여성 1호 국장’이 된 소감에 대해 “여직원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맛볼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자긍심을 느낀다.”며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노력 하겠다.”고 다짐했다. 오 국장은 1981년 한국방송광고공사 창사 멤버로 입사,23년 만인 지난 4일 국장의 자리에 올랐다.처음 문화방송 광고분야에서 일하다 방송광고파트가 코바코로 통합되면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최근 9년 동안 전주와 대전에서 광고영업파트 일을 했다. 공익사업국은 ‘한국방송광고공사’라는 이름으로 TV와 신문용 공익광고를 제작,공급하는 곳이다.최근 TV에 방영되는 ‘환경보전(재활용) 병들의 합창’편은 인기광고 순위 최상위에 랭크돼 있다. 강동형기자 yunbin@seoul.co.kr˝
  • 현대차 임협 결렬 ‘夏鬪’

    병원노조와 금호타이어가 파업에 들어간 데 이어 민주노총 산하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 노조가 임금협상 결렬을 선언,하투(夏鬪)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은 13일 화물연대,16일 택시·금속노조의 파업에 이어 29일 민주노총 전 조직이 총력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이어서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차 노조는 10일 오후 전천수 사장과 이상욱 노조 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0차 본교섭에서 “사측이 불성실한 교섭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상태에서 더이상의 교섭은 의미가 없다.”며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14일 확대 간부회의 및 대의원 대회를 소집,쟁의발생을 결의하기로 했다.이후 울산지방노동사무소에 쟁의조정을 신청,10일간의 조정기간을 거쳐 쟁의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조합원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해 단체행동을 위한 수순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월 임금 12만 7171원(기본급 대비 10.48%) 인상 및 당기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또 임금 삭감이 없는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을 통한 심야근무제 폐지와 금속연맹 산하 자동차 사업장 노조의 공동 요구안인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 조성 및 사내 하청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정규직 통상임금의 80% 이상 지급) 등을 촉구해 왔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어려운 대내외 환경과 다른 대기업의 임금동결 분위기 확산 등을 들어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하며 사회공헌기금 조성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GM대우차 및 대우인천차 생산직으로 구성된 대우차 노조도 지난 3일 쟁의발생을 결의한 상태이며 기아차와 쌍용차 노조도 14일과 16일 잇따라 대의원 대회를 개최,쟁의발생을 결의할 예정이다. 한편 경영자총연합회는 11일 사무국내 태스크포스(TF) 형태의 비상대책반 가동에 들어갔다.상황이 심각해질 경우 매월 말 열리는 주요 그룹 노무담당 임원회의를 이달 중순에 개최,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공정위, MS지사 현장조사

    공정거래위원회가 MSN메신저 끼워팔기 사건과 관련,10일 마이크로소프트(MS) 한국지사에 대해 기습적으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이번 조사는 최근 유럽연합(EU)이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MS사에 4억 9700만유로의 벌금을 부과한 데 이어 일본 공정위가 MS사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어서 관심거리다. 공정위는 이날 서울 대치동 MS 한국지사에 조사요원을 보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이번 현장조사는 오는 16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공정위 관계자는 “메신저 끼워팔기 사건과 관련해 혐의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라며 “구체적인 조사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MS 한국지사에 대한 공정위의 현장조사는 실무부서를 중심으로 검토해온 자료를 토대로 혐의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조사결과에 따라 MSN메신저 끼워팔기 사건의 처리가 급진전될 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이구택 포스코 회장 “회사이익보다 기업윤리 우선”

    “회사이익과 기업윤리가 상충될 때 기업윤리를 우선시하겠습니다.” 포스코 이구택 회장이 최근 윤리경영 선포 1주년을 맞아 고강도의 ‘윤리경영’ 의지를 거듭 밝히고 나서 화제다.무려 2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순이익을 내고도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임금동결을 선언하고 나선 포스코이기에 이 회장의 ‘윤리경영’ 발언은 재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최근 사내운영회의에서 “임직원의 윤리적 행동은 포스코의 장래를 보장하는 토대”라면서 “회사이익보다 기업윤리를 우선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1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면서 “부정·부패의 타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윗사람들의 솔선수범과 교육”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깨끗하지 않고 의혹이 있는 사람들과는 같이 갈 수 없다.”며 “회사는 계좌추적권 등 수사권은 없지만 실천하지 않은 사람들을 일벌백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회장이 ‘윤리경영’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민영화 이후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해왔지만 향후 글로벌 기업으로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윤리적 우위성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나아가 이 회장의 ‘화두’인 ‘지속가능 경영’을 위해서도 더 투명하고 깨끗한 내부 문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윤리경영의 문제는 윤리규범을 실천하는 기업문화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비리에 연루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글로벌 한국차 ④ 日 도요타서 배운다] ‘글로벌경영·노사신뢰’가 성공열쇠

    |도요타(일본 아이치현) 이춘규특파원|도요타자동차의 초고속 질주가 멈추지 않고 있다.2003회계연도(2003년 4월∼2004년 3월) 결산에서 1조 1000억엔(약 11조원) 이상의 순익을 거둬 제조업체로는 세계 최고를 기록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도요타가 일본을 넘어 26개국에 46개 자회사를 거느린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하는 비결은 밖으로는 ‘글로벌 경영에 따른 수익선 다변화’,안으로는 ‘노사간 상호신뢰·책임’이란 독특한 사내 문화가 비결로 꼽히고 있다. 아울러 수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도요타 따라 배우기’ 열풍은 조금도 식지 않고 있다.4일 찾아간 아이치현 도요타시의 도요타자동차 본사와 쓰쓰미 공장엔 세계 각지에서 견학온 손님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다 수년간 글로벌화 경영을 이끌어온 조 후지오(67) 도요타 사장은 “글로벌 전략이 결실기에 접어들고 현지법인들의 순익이 좋아져,도요타의 성장엔진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도요타만의 성공 신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는가.도요타 사람들은 주저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기술’을 기초로 한 글로벌 경영과 마케팅을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글로벌 경영을 통해 일본이 불경기였던 시절에 경기가 좋았던 미국에서 판매와 수익을 대폭 늘리는 등 수익선 다변화를 꾀했고,위험도 분산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엔화 가치 급등 등 환율 급변에 대한 위험분산 효과도 꼽혔다.자동차산업은 환율 영향이 엄청난 산업.1엔만 변동되어도 수백억엔의 수입이 좌우될 정도다.해외생산·판매를 늘려 지난해 엔화 환율 급등의 영향을 비켜갔다. 글로벌화 추진의 계기는 1990년 250만대를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일본 내 자동차 수요의 위기였다.해외로 눈을 돌려 본격적으로 글로벌화를 통해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글로벌화의 의미에 대해 해외홍보실 후지이 히데키 계장은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도요타자동차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10년”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산업 전망은 밝다 도요타는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전년 대비 6% 늘어난 210만대를 팔았다.유럽에서 83만대,중국에서 10만대 등 세계시장에서 450여만대를 팔아 국내시장 170만대와 대조를 보였다.특히 북미 시장에서 약진,점유율이 10%를 넘어섰다. 도요타는 2010년대에는 시장점유율을 15%까지 끌어올려 현재의 세계 2위에서,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2개인 미국 내 공장을 향후 5년여 동안 7개로 늘린다. 자동차산업 전망에 대해서도 오쿠다 히로시 회장은 “자동차산업이 포화상태에 달했다는 말도 있지만 시야를 지구로 돌리면 아직도 자동차의 혜택을 못받고 있는 사람이 엄청나다.”면서 “중국은 물론 인도,중·동유럽,러시아 등이 이제야 본격적인 자동차시대를 맞고 있다.”고 낙관했다. ●글로벌화는 지금도 급속 진행 도요타자동차는 나카이 부장,하야카와 해외홍보실장,마쓰모토 그룹장 등 홍보실 직원 100여명이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세계 각국에서 사업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직원들은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행 중임을 실감한다.”고 즐거운 비명이다. 도요타의 글로벌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은 30여명의 해외홍보 직원 중에서 미국인,중국인,벨기에인 등 외국인들도 활동한다는 점이다. 각국의 유능한 디자이너들도 활동 중이다.후지이 계장은 “도요타를 환영하는 나라에는 도요타가 생산하고,팔고 현지에서 고용으로 보답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화의 방향과 의미에 대해 오쿠다 회장은 “치열한 자동차 시장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열쇠는 기술과 경영혁신에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도요타는 차세대를 담당하는 선진생산기술,그리고 개발·조달·생산에서부터 판매와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각 영역의 글로벌화를 확고히 해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아울러 ‘환경 문제에 대처할 기술력 확보’가 자동차시장의 최후 승자가 될 수 있는 관건이라고 진단한다.따라서 현재 ‘프리우스2’ 등 하이브리드차 부분에서 경쟁력이 앞서 있다고 보지만,수소차 등 미래형 자동차 경쟁은 뜨거워지고 있다고 진단해 수조엔에 이르는 개발비를 투입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농협 이사 사내 20명·사외 7명 선출

    농협중앙회는 9일 대의원 대회를 열고 사내이사 20명과 사외이사 7명을 선출했다.이번 이사 선출은 전임 이사들의 임기가 종료된 데 따른 것으로 사내외 이사들은 회장 및 축산·농업·신용경제 대표 등과 함께 중앙회의 의결기구인 이사회를 구성한다.다음은 사내외 이사 명단.(사내이사)▲이성희(경기 성남낙생농협 조합장)▲김영준(강원 양구대암〃)▲정인걸(충북 음성금왕〃)▲이주선(충남 아산송악〃)▲유남영(전북 정읍〃)▲김병원(전남 나주남평〃)▲이정문(경북 서상주〃)▲최덕규(경남 합천가야〃)▲한영택(북제주 조천〃)▲박성흠(울산병영〃)▲강일(경남 진주원예〃)▲복영모(전북 전주원예〃)▲김의영(대전 원예〃)▲홍병천(강원 홍천축협〃)▲안명수(광주〃)▲배진수(전북 진안무주〃) ▲백영주(충남 공주낙협 〃)▲한영섭(경남 부경양돈농협〃)▲조상균(서울 한국양봉〃)▲박용순(경기 김포인삼〃)(사외이사)▲강광하(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윤병철(전 우리금융지주 회사 대표이사)▲김천주(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조영기(현 농협이사)▲홍행남(전 농민신문사 전무)▲김남룡(전 한국낙농육우협회 회장)▲김석중(현 농협이사)
  • [10일 TV 하이라이트]

    ●즐거운 문화읽기(오전 11시) 장년의 독자를 찾아나선 ‘꽃을 든 남자’의 만화가 김동화를 만나본다.명랑만화에서 순정만화,성인만화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 오는 김동화.최근엔 결혼 때문에 만화가의 꿈을 접은 아줌마들을 위해 ‘주부만화 예술대학’을 열고 교장 선생님이 됐다. ●생방송 쟁점토론(오후 3시10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논란,그 배경과 바람직한 주택공급 방향은 어떤 것인지 토론해 본다.분양원가 공개 문제가 시민단체와 건설업계의 대립 양상으로 번지고,여야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고철 주택산업연구원장이 패널로 참석한다. ●문화센터(오전 11시) 흰색의 접시들,시간이 지나면 싫증이 날 때가 있다.이런 때 접시에 새로운 옷을 입혀보자.접시의 가장자리를 군청색으로 색칠하고 안에도 초록과 노란색을 스펀지로 칠해준다.나뭇잎 모양으로 자른 필름지나 종이를 이용해 나뭇잎을 그려 넣고 금색 라이너를 이용해 장식하는 법을 배워본다. ●1050 정면승부(오후 10시50분) 최국,전진우가 경기도 성남을 소개한다.비행기없이 날아간 성남 속 사막.전세계 희귀 선인장이 모두 모여있다는 애리조나 파크를 찾아간다.그리고 섬뜩한 공룡이 등골을 오싹하게 해주는 자연사 박물관 체험 후 국내 최대 규모의 5일장인 모란장에서의 이색체험 데이트도 즐긴다. ●한밤의 TV연예(오후 11시5분) 지금의 스타 자리를 만들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던 장혁 송승헌 김하늘 조인성 류승범 등 스타들의 ‘스타의 힘겨웠던 과거 이야기’를 전격 공개한다.‘조영구가 만난 사람’에서는 사생활에 대해 평소 잘 이야기하지 않던 송윤아의 솔직담백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4월의 키스(오후 9시50분) 회사내에는 어느새 재섭의 비리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그 말을 들은 채원과 진아는 놀란다.채원은 재섭의 힘으로 부정 합격된 사원이라는 소문 때문에 힘들어 하던 중 자신을 떨어뜨렸던 사람이 정우라는 것을 알게 되고,승민에게서 재섭이 비리를 저지른 이유에 대해 듣게 된다. ●금쪽같은 내 새끼(오후 8시25분) 재민과 지혜의 결혼을 축하하러 동생 성애 집에 정애 식구들까지 모인다.한편,진국이 무관심한 틈을 타 덕배에게서 모든 재산에 대한 관리권을 위임받는데 성공한 영실은 덕배와 함께 대출보증 담보로 잡혀 있는 집을 보러 간다.두 사람이 와서 선 곳은 다름아닌 희수의 집 앞인데…. ˝
  • [삷과 경영이야기] (13) ‘마라톤 CEO’ 구자준 LG화재 사장

    지난 4일 오전 서울 다동 LG화재 본사 사장실.인터뷰 도중 구자준 사장의 휴대전화에서 ‘띠리링∼’ 문자메시지 도착음이 울렸다.‘5월 손익 ○○억원 초과 달성.목표치 상회.상세보고 예정-권중원 드림’경영기획본부장의 보고를 받은 구 사장이 노란색 최신형 카메라폰 위로 잰 손놀림을 이어간다.‘수고했음.오후에 상세보고 바람-구자준’ 분당 200타는 됨직한 능숙한 문자입력 솜씨.“허리춤에 전화기 차고 다니면 아저씨 취급 받는다지만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구 사장에게서 대기업 오너라는 딱딱한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다.아침에 직원들과 달리기로 땀을 낸 뒤 설렁탕 한 그릇 하는 걸 최고로 친다는 그 스타일 그대로다.미사일공학 엔지니어에서 보험업계 대표 경영인으로 연착륙하기까지의 경험과 철학을 들어봤다. ●미사일공학 엔지니어가 보험CEO로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창업자 가족치고는 너무 늦게 최고경영자(CEO)가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하지만 나는 그런 대접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집안 전통이기도 하다.대학 졸업하고 금성사(현 LG전자)에 말단으로 들어가 남들과 똑같은 과정 밟아 입사 13년 만인 1986년에야 처음 임원이 됐다.우리 연배의 경우 사원에서 임원까지 평균이 15년이 걸렸으니까 2년 정도 혜택 본 것 아니냐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만일 위에서 배려해 주었더라도 내가 거부했을 것이다.폼잡는 데 익숙해지 있지 않다.어려서부터 부잣집 아들이란 소리 신물나게 들었지만,남들 다 걸어가는데 나 혼자 차 타고 편하게 갈 성격이 아니다. -원래 나는 서울대가 목표였다.그러나 68년 초 대학입시를 얼마 안 남기고 급성맹장염에 걸려 시험을 제때 보지 못했다.그래서 잠시 미국행(캔자스대,미주리대)을 하기도 했지만 70년 다시 돌아와 한양대에 들어갔다.다른 건 몰라도 수학만큼은 천재소리를 들었던 나는 공과대학을 택했고 74년 금성사에 입사했다. -현장에서 직원들과 같이 생활했는데 동료들은 ‘저 사람은 사주집안 자식이니까 곧 경영진이 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하지만 내 스타일을 알게 된 뒤 금세 친구가 됐다.얼마 후 방위산업 부문이 금성정밀로 분사됐고,나는 이곳에서 대학 전공을 살려 미사일 개발 분야를 맡았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미사일 연구를 가장 많이 한 축에 내가 끼지 않을까 싶다.그때 우리 팀에서 해낸 일이 미국산 호크 미사일의 재(再)장착 작업 국산화였다.미사일은 실전배치된 뒤 몇년 지나면 정기적으로 내부 전자장비 등을 개보수해 재장착을 해야 한다.그때까지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없어 재장착을 하려면 일일이 미사일을 미국으로 보내야 했다.미사일 기술 국산화는 지금도 나에게 커다란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마침 이번에 그 회사(현 LG이노텍내 방산부문)가 LG화재에 인수돼 ‘넥스원 퓨처’라는 계열사로 다음달 1일 출범한다. -99년 LG그룹 계열분리로 나는 생전 몰랐던 보험업계에 발을 들였다.용어부터 낯선 보험업계는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농사꾼이 사무실에 넥타이 매고 앉은 격이었다.“어이쿠,바로 일에 뛰어들었다가는 괜히 회사에 방해만 되겠다.” -2000년 1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보험전문대학원 TCI에 입학했다.우리 나이로 50줄에 접어든 때였지만 여유 부릴 계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해 여름 LG화재의 자회사였던 럭키생명이 최악의 경영난에 직면했다.서둘러 귀국했다. ●퇴출위기 회사맡아 ‘마라톤경영’ 시작 -럭키생명 사장은 CEO로서 첫자리치고는 너무나 여건이 가혹했다.직원 월급 주기도 빠듯한 퇴출 직전의 회사였다.사장 한달 접대비가 고작 200만원.마냥 고민할 만큼의 여유도 나에겐 없었다.더욱이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원들 앞에서 나까지 힘든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골프를 끊었다.당시 내 골프실력은 핸디3에 이를 만큼 수준급이었다.“많지 않은 돈으로 직원들을 다독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마라톤이었다.새벽이나 휴일에 직원들을 불러모았다.1시간 정도 뛰고 나서 설렁탕 한 그릇 같이 먹으면 50명이 모여도 20만원이면 족했다.가장 힘들다는 영업소의 소장들을 선발해 함께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나는 매번 꼴찌였다.맨 뒤에 처져 있는 소장들을 도착점까지 이끌어야 했다.1년여 전 시작한 달리기는 많은 힘이 돼 주었다. -자연스럽게 사내 술자리가 줄었다.어려운 회사일수록 술자리가 잦다.쓰린 마음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고,다음날 컨디션이 안 좋으니 열심히 일을 안 하고,그러다 보니 실적 안 오르고,또 술을 찾게 되는 ‘술의 악순환’ 고리가 끊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마라톤 경영’이라고 명명한 경영기법은 여기에서 비롯됐다.마라톤과 보험업은 비슷한 점이 많다.둘다 한번 경쟁에서 처지면 선두를 따라잡기 힘들다.제조업은 한번 대박이 터지면 수직상승을 하지만 10원,10원씩 꾸준히 돈이 쌓이는 보험은 그게 불가능하다. -보험과 마라톤에는 철저한 준비와 기초체력이 필요하다.순간적인 재치나 순발력,기술만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지구력도 마찬가지다.보험의 ‘보’자만 들어도 고개를 돌리는 게 사람들 심리다.그때마다 지쳐 포기한다면 레이스는 그걸로 끝이다.적응력과 순발력도 보험과 마라톤의 공통점이다.마라톤 코스에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보험업도 순간순간 바뀌는 영업환경에 적응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마지막으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란 점이 똑같다.통상 42㎞ 구간 중 35㎞ 지점이 되면 도저히 못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러나 거기에서 포기하면 35㎞까지의 고생과 노력도 말짱 헛일이 된다. -흔히 쓰는 말 중에 ‘못 먹어도 고’란 게 있다.왜 먹을 수가 없는데 ‘고’를 하나.당연히 ‘스톱’이어야 한다.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접어야 한다.대신 확실하게 판단을 내려 게임에 뛰어들었으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우리 LG화재 경영의 1차 목표는 ‘이기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단지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자기 마라톤 기록을 2시간30분에서 2시간으로 단축시킨다 한들 남들이 1시간30분에 들어왔다면 자기 자신한테는 이겼을지 몰라도 다른 선수에게 이긴 것은 될 수가 없다. -LG화재는 ‘비전 2010’이라는 경영목표를 갖고 있다.지금은 업계 3∼4위이지만 2010년에는 확고한 2위를 차지해 1위 도약의 발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그 핵심수단이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기본기,지구력,순발력 등 모든 조직역량을 총동원하는 ‘마라톤 경영’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뷰로크라시’(관료주의)다.금성사에 있을 때부터 뷰로크라시를 없애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회사내 상관은 휴일에 등산 가서도 상관이고,골프를 칠 때도 상관일 때가 많다.그러면 그 회사는 경직돼 있는 것이다.윗사람에게 문제점을 제대로 건의하지 못한다는 말도 된다.내가 보고를 휴대전화나 문자메시지로 받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왜 다들 바쁜데 사장실 앞에 서류철 들고 죽 늘어서서 기다리나. ●‘이기는 회사’ 목표 줄서기부터 없애 -사장실 앞 줄서기는 내부 줄서기와 무관치 않을 수 없다.직원의 업무능력이 인사 고과평가의 90% 이상이 돼야 하는 데 줄서기가 만연하면 그게 어렵게 된다.직원들의 신뢰가 깨지면 인사고과의 공정성이 사라지고 투명한 인사로 평가받지 못한다.줄서기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이기는 회사’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인사청탁은 있을 수 없다.정기인사때 일정 직급 이상 직원의 인사파일을 모두 내가 외우듯이 들여다보는 이유다. -우리 사회 전반에 비효율이 너무 많다.예를 들어 해외에서 쓸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려면 미국에서는 단돈 10달러와 자국 면허증만 있으면 되는데,우리나라에서는 반드시 여권 사본을 내야 한다.여권없이 해외 나가는 사람도 있나.어차피 출국할 때 없으면 안되는 서류를 왜 번거롭게 중복해서 한번 더 제출하게 하나.대입 수능시험도 그렇다.해마다 한번씩 직장인 출근시간을 늦추고,경찰들이 수험생을 실어나르기 위해 오토바이 비상대기를 한다.차가 막혀 도착하지 못한 수험생이 울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시험시간을 몇 시간 늦추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 아닌가.인감증명은 일제시대 잔재인데 정작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다. -어른들을 위해 한마디.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자녀에게 직접 사랑을 표현해 보라.어색하지도 번거롭지도 않고 즉석에서 바로바로 답장이 날아온다.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를 늘리는 데 이것만한 게 없을 것 같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구자준 사장은 구자준(具滋俊·53) LG화재 사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동생 고 구철회 회장의 4남4녀 중 막내다.반도상사(현 LG상사)와 락희화학공업(LG화학) 등의 사장을 지낸 구철회 회장은 창업주와 동고동락하며 그룹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구 사장은 LG전자·LG상사 등을 거쳐 1999년 LG화재가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올 때 부사장으로 취임했다.‘마라톤 경영’을 주창해온 그는 국내 2회,해외 3회 등 5차례의 완주경험(최고기록 4시간28분)을 갖고 있다. 해발 8611m의 세계 2위봉인 K2원정대(2001년)와 남극원정대(2003년)의 원정대장으로 현지에 동행,강철 같은 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지난해 11월에는 개인홈페이지 ‘준스 스토리’(Joon’s Story)를 개설해 직원들과 수시로 대화하고 보고의 상당부분을 휴대전화로 해결하는 능률 위주의 전문경영인이다.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그의 좌우명이다. ˝
  • 해외연수 ‘내 맘대로’

    “은행 장사의 밑천은 사람”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최근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경영 자문을 받지 않는 대신 우리은행 직원을 해외에 보내서 선진 사례를 배워오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비싼 돈을 주고 ‘경영과외’를 받느니,내부 직원들에게 선진 사례를 직접 익혀오게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다음달부터 전략기획팀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팀이 구성될 때마다 직원이 프로그램을 직접 짜서 해외 기관을 둘러보게 할 예정이다.우리은행 관계자는 7일 “자체 인력의 질도 높아질 뿐 아니라 동시에 비용 절감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각 은행이 9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매킨지컨설팅,보스턴컨설팅 그룹 등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지불한 비용은 100억∼900억원대나 된다. 우리은행은 또 직군을 전문영업·일반영업 전문관리·일반관리 등 4개로 나누고 각 직군에 속한 직원들은 직군 내에서만 이동이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여러 분야를 두루 거치면서 행장 수업을 받은 사람들은 많아도 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인물은 의외로 적다는 판단에서다.우리은행은 상당기간 한 직종에서 근무하고 임원이 된 뒤 전문성을 다각적으로 넓히는 ‘T’자형 인재 양성 시스템을 운용할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김정태 행장의 지시로 지난해 말부터 상위 20위권의 해외 경영대학원(MBA)에서 입학허가를 받은 직원들에게 유학을 보내주고 있다.은행이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또 인사·연봉의 불이익 없이 매년 200명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직원이 직접 연수 계획서를 짜서 제출하면 비용의 절반이상을 지원해주는 ‘리프레시(refresh)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국민은행 김근덕 과장은 “1인당 연간 연수비용을 GE 등 해외 선진 기업 수준인 1000달러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외부 인력 영입에 그치지 않고 내부 직원을 발탁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외환은행은 국내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사내 스카우트’ 제도를 이번달 말부터 실시한다. 외환은행 김형민 상무는 “해당 사업 부서에서 적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대폭 확대했다.”면서 “높은 수준의 인센티브제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오늘의 눈] “무가지·경품 받지마세요”/김미경 경제부기자

    “무가지·경품 절대 받지마세요.” 3일 오전 8시 과천 정부종합청사 정문.어깨에 ‘신문판매시장 정상화’라는 문구가 새겨진 띠를 두른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이 출근하는 공무원들을 상대로 ‘무가지·경품 안받기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이들은 ‘무가지·경품을 받으면 독자로서 당당한 신문 선택이 어렵다.’는 내용의 홍보용 전단과 차량용 스티커를 나눠주면서 캠페인 참여를 호소했다.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홍보물 배포에 가세한 뒤 청사내 모든 부처 장·차관 차량에는 스티커가 동시에 붙여졌다. 출근길에 캠페인을 접한 공무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공정위 동료를 만난 한 공무원은 “공정위에서 이런 일도 해야 하냐?”고 물었고,다른 공무원은 “캠페인 좋지….근데 무가지를 받고 싶어서 받나.”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일부 공무원들은 캠페인 내용에 관심 없다는 듯 전단을 받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특히 캠페인 동참이 예정된 소비자·민간단체 관계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아 6만부나 찍어낸 전단과 스티커가 시민들에게 전달돼 이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공정위는 이날만 자체 캠페인을 벌인 뒤 앞으로는 시민단체를 통해 캠페인을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공정위의 신문시장 대책이 실효성을 결여했다며 단속 강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부 참여’의사를 밝힌 상태다. ‘무가지·경품 거부 캠페인’이 신문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려면 공정위가 신문시장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갖고,‘신고포상금제’ 등 시민단체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이럴 때만이 정부와 시민단체,신문 소비자들이 뜻을 모아 신문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고,신문을 질로 선택하는 당당한 권리를 누리게 될 것이다. 김미경 경제부기자 chaplin7@seoul.co.kr˝
  • [조성원의 생생러브]쿨~ 하게

    3∼4년 전 만해도 남성 어른들의 모임이라는 게 이랬다.5분 정도 간단하게 용건을 얘기하고 내쳐 술을 먹거나,술 먹으면서 안주처럼 곁들여 용건 얘기하거나,아니면 아예 술만 마셨다.필자처럼 술을 못 먹는 남자들에게는 어른 남자들끼리 술잔도 없이 얼굴 마주하고 오래 이야기를 나눌 경우 동성애 성향이 있거나 약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인양 취급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 어떻게든 주량을 늘려보려고 노력도 해보았다.매일 술 한두잔씩을 반주 삼아 마시기도 했으며,오기에 받혀 악을 쓰며 토해 가면서 마셔도 봤지만 그럴수록 나는 술과 친해질 수 없다는 확인만을 거듭할 뿐 술이 느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고 사이버상에서 ‘동호회’ 개념이 보편화된 이후부터는 반드시 술이 아니더라도 남자들끼리도 같은 목적과 취미를 갖고 말짱한 정신으로 놀며 즐기는 문화가 급속히,그리고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보드게임 까페에서 뿅망치를 들고 노는 대학생들도 많고,PC방으로 몰려가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물론 그 중에는 게임성적으로 술 사내기를 하는 주당들도 있지만,전체적으로 노는 문화가 늘어난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 성인들이 목말라 하는 부분이 있다.바로 ‘고급문화에 대한 갈증’이 그것이다.‘웰빙’으로 의식주를 도배한다고 해도 보다 건전하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지 못하면 항상 마음 한 켠이 서늘한 것이 요즘 성인들의 정서다.뭔가 좀 더 품격있게 나를 가다듬어 주고 곱씹을수록 나를 격조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바로 그런 문화를 누려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남녀간의 연애와 사랑도 항상 그렇다.항상 비슷한 스토리가 아니라 더욱 다양한 모습,다양한 내용으로 남녀관계가 유지되고 있다.처음 만나 한동안 서로가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만 보이면서 조금씩 진전(?)되다가 이윽고 책임질 시기에 이르러 도리없이 결혼하고,애절한 사랑이 없는데도 부부라는 틀 안에서 안주해야 하는 그런 남녀관계는 싫다는 것이다.애절한 사랑만 느껴진다면 첫날부터 만리장성을 쌓을 수도 있고,아무리 오래 산 부부라도 어느날 사랑이 없다고 느끼면 조용히 관계를 청산하기도 한다.‘쿨’한 세대의 ‘쿨’한 사랑법이라고나 할까. 그런 문화적 코드는 삶의 다양성이나 즐거움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보여진다.이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것은 물론 파트너에게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술이 아닌 다른 문화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명동이윤수비뇨기과 공동원장˝
  • 儒林(106)-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06)-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조광조를 동방사현이라고 불렀던 이율곡은 평생 조광조를 존경하여 자신이 세운 은병정사내의 주자사(朱子祠)에 조광조의 석상을 세워놓았을 정도였다.그는 또한 조광조의 묘지명을 직접 썼으며 그 묘지명에서 이율곡은 ‘저 울창한 용인땅 산 서리고,물굽이 긴대,빛나는 그 덕업 영원토록 잊지 못하리’라는 감탄사로 조광조를 기리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선조 원년에는 당시 백인걸을 비롯하여 태학생 홍인헌 등은 조광조를 문묘에 배향할 것을,부제학이던 박대립은 관작을 증수하고 시호를 내릴 것을 주장하자,선조는 경연에서 퇴계 이황에게 조광조의 학문과 행적에 관해 물었다.이에 이황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는 성품이 빼어났으며 일찍 학문에 뜻을 두어 집에서는 효도와 우애를 조정에서는 충직을 다하였으며,동시 여러 사람과 협력하고 옳은 정치를 다하였습니다만 그를 둘러싼 젊은 사람들이 너무 과격하여 남곤·심정 등을 모함하고 구신들을 물리치려함으로써 화를 입게 된 것입니다.” 조광조에 대한 수많은 평가 중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인 이퇴계가 내린 조광조에 대한 평가야말로 단연 최고봉일 것이다.이퇴계는 자신이 직접 조광조의 행장기(行狀記)를 썼으며,이 행장기에서도 이퇴계는 조광조의 실수를 다음과 같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공의 뜻이 너무 속히 하고자 하는 데에 잘못됨을 면치 못하여 무릇 건의하고 시행하는데 조급하게 굴어서 장황하고 과격하며 또는 나아가 젊고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유행에 뜻이 맞아 함부로 날뛰는 자가 그 사이에 많이 끼어 있었고,늙은 신하들이 새 시의(時議)에 배척당하여 이에 따라 공박(攻駁)을 당한 자의 원망이 골수에 사무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퇴계는 자신이 조광조의 행장기를 짓는 이유를 ‘황(滉)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비록 선생의 문하에 공경히 배우지는 못하였으나 선생으로부터 받은 것이 적지 않게 많은데,이미 비명(碑銘)을 사양한 데다가 또 행장마저 짓지 않으면 더 어찌 정(情)이 지극하니 일(事)이 따른다고 하겠는가.’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조광조에게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조광조의 무덤 쪽으로 걸어갔다.원래는 깊은 심산유곡이었는데 산기슭까지 아파트 단지들이 건설되고 중턱으로는 도시고속도로가 건설되어 묘역은 야산으로 변해있었다. 묘역으로 들어간 산자락에는 소나무와 잡목으로 이루어진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그 나뭇가지에도 용인 땅의 수원편입을 결사반대한다는 붉은 페인트로 칠해진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언덕으로 오르는 가장자리에는 거대한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그 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漢陽趙公靜菴趙光祖先生墓域” 그 표석을 보자 나는 마침내 조광조의 무덤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던가. “이승은 짧다.무덤은 기다린다.무덤은 배고프다.” 배고픈 무덤.보들레르의 절창처럼 누군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배고픈 조광조의 무덤.옛말에 무덤을 ‘백골청태(白骨靑苔)’라 하였다.죽은 후 500년이 흘렀으므로 이미 흰 뼈와 푸른 이끼로만 남아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지러운 난세를 살고 있는 우리를 기다리는 조광조의 무덤을 마침내 오늘 내가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 유병창 포스데이타 부사장

    “2년간의 ‘야인 생활’을 접고 낯선 분야에 적응하다 보니 두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병창(54) 포스코 전 전무가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데이타 부사장으로 복귀해 부활의 날개를 펴고 있다.취임 2개월 동안 업무 파악에 매달린 그는 포스데이타에 신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SI(시스템 통합)업계는 제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복잡한 데다 모르는 용어도 많지만 영화에서 볼 만한 것들이 현실 세계에서 하나 둘씩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절로 흥이 납니다.” 그는 지난 2개월간 부족한 부문을 채우기 위해 틈나는 대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경영과 소프트웨어 관련 서적은 물론 정보기술(IT) 업계의 동향 파악에도 주력했다.그는 “조직 관리보다 IT 관련 용어들을 암기하는 것이 더 힘들다.”면서 “아직 배우는 과정인 만큼 실수도 많을 것”이라며 겸손해했다. 유 부사장은 또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부서원들과의 스킨십에 적극 나서 이제는 확실한 ‘조직원’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너털 웃음을 짓는다.지난 ‘2년 공백’이 그를 더욱 활기차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꿔놓은 듯했다. 유 부사장은 포스코의 해외 현지법인인 미국과 홍콩에서 13년간 근무할 정도로 해외 업무에 밝다. 1998년 귀국한 이후에는 줄곧 홍보 임원을 맡았다.그는 합리적이고 깔끔한 이미지,뛰어난 영어구사 능력,화려한 말솜씨로 사내에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타이거풀스 지분 매입 과정에서 빚어진 ‘설화(舌禍)’로 2002년 물러났다. 그는 “다시 일을 하다 보니 전처럼 큰 욕심이 없어요.남은 기간 동안 조직과 회사 발전에 조그만 밀알이 되는 것 뿐이죠.”라며 밝게 웃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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