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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레일 구조개혁 속도조절?

    코레일 구조개혁 속도조절?

    강경호 사장 체제의 코레일이 예상과 달리 차분함을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 취임할 때만 해도 철도 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며 구성원 사이에 긴장감이 돌았었다. 서울메트로 사장 당시 2002년 3638억원에 달하던 적자 규모를 3년 만에 817억원으로 줄인 장본인이어서다. 하지만 취임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조용하다. 강 사장은 사내방송인 코레일TV와 인터뷰에서 “여객·화물·광역철도, 유지보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야 시너지가 발생한다.”면서 “구조조정은 철도를 가장 효율적으로 경영하는 것으로 코레일맨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간산업인 철도의 완전 민영화 및 조직 분산을 통한 효율화는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강 사장이 강조하는 해외 철도사업 진출 등 글로벌화 역시 일정 규모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강 사장은 보고와 현장 방문 등 업무 파악에 주력하며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향후 이뤄질 인사와 조직개편이 방향타가 될 듯하다. 반면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사장 취임 반대 의사를 밝혔던 철도노조는 지난 23∼25일 광우병 쇠고기 전면 재협상 및 철도 민영화계획 완전철회를 위한 총파업을 포함한 찬반투표를 가결했다. 정치 파업이라는 부담 속에서도 철도노조는 다음달 15일 이전 총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레일 관계자는 “민영화 및 구조개혁에 대한 입장은 밝힌 상태”라며 “조만간 강 사장이 노조를 방문해 상호 의견을 나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26) 활쏘기를 연습하는 사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26) 활쏘기를 연습하는 사연

    조선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 속에서 활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활쏘기는 출셋길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정에서 활을 쏘는 사람을 한량이라 한다. 활쏘기를 연습하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무과에 응시하기 위해서다. 김홍도의 ‘활쏘기’는 활쏘기를 연습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왼쪽에는 한 무관이 시위를 당기고 있는 사내의 자세를 잡아주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 사내는 한쪽 눈을 감고 화살이 굽어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앞에 놓인 것은 화살을 넣는 전동이다. 화살에는 종류가 퍽 많지만, 대개 연습용 화살은 유엽전이란 화살을 많이 쓴다. 유엽전은 화살촉이 버드나무 잎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아래의 사내는 쪼그리고 앉아 활에 힘을 주어 교정을 하고 있다. 활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시위를 얹지 않고 풀어두고, 사용할 때 시위를 건다. 이때 힘을 주어 자신이 쓰기에 알맞게 형태를 잡아 주는 것이다. 강희언의 ‘활쏘기’는 활 쏘는 장면에 집중하고 있을 뿐 김홍도의 그림과 대동소이하다. 그림 속의 활을 쏘는 장소는 활터, 한자말로 하자면 사정(射亭)으로 아마도 조선시대 서울 곳곳에 있던 사정 중 하나일 것이다. 땅값이 금값이 된 지금 누가 활을 쏠 너른 터를 그냥 두겠는가. 근대 이후 서울의 사정은 멸종을 하고 말았다. 겨우 남아 있는 것이 인왕산 기슭의 황학정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산보 삼아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황학정은 고종의 명으로 경희궁 안에 지어진 것인데,1922년 일제가 경희궁을 헐 때 지금 장소로 옮긴 것이다. ●활쏘기는 무과 급제의 제1덕목 서울에는 사정이 많았다. 나라에서 세운 사정은 대개 군사 훈련용이다. 동대문 운동장은 조선시대에 군사를 훈련하던 훈련원 터다. 따라서 당연히 사정이 있었다. 또 충융청과 같은 군영에도 자체 사정이 있었다. 창경궁 후원의 춘당대도 사정이다. 하지만 사정은 민간에 더 많았다. 서울은 인왕산 기슭의 서촌(우대), 지금의 동대문 운동장 일대를 하촌(아래대)라 하는데, 전자에는 풍소정·등룡정·등과정·운룡정·대송정의 오정이 가장 유명하였고, 아래대에는 석호정·좌룡정·화룡정·이화정 등이 있었다. 이 외에도 곳곳에 사정이 있었다. 황학정은 등과정이 있던 터에 세운 것이다. 이들 사정 사이에는 서로 시합을 하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편사놀음’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메달이 걸린 활쏘기 시합이란 양궁 일색이다. 전통적 활인 국궁은 일반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불과 일백 수십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활은 국궁이고, 조선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 속에서 활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활쏘기는 출셋길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정에서 활을 쏘는 사람을 한량이라 한다. 소과에 응시하는 자를 유학이라 한다. 문인으로 벼슬하지 아니한 사람, 소과에 합격하지 않은 사람을 유학이라 하듯, 무반 쪽으로 무과를 준비하는 사람, 무과에 합격하지 않은 사람을 한량이라 하였다. 활쏘기를 연습하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무과에 응시하기 위해서다. 무과의 과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활쏘기였기 때문이다. 무과 초시의 시험과목은 ‘경국대전’에 의하면, 목전(木箭)·철전(鐵箭)·편전(片箭)·기사(騎射)·기창(騎槍)·격구(擊毬)였다(영조 때 만들어진 ‘속대전’에 오면, 기사·기창·격구가 기추(騎芻)·유엽전(柳葉錢)·조총·편추(鞭芻)로 바뀐다). 복시도 목전·철전·편전·기사·기창까지는 동일하고 격구가 병서(兵書)를 잘 알고 있는가를 테스트하는 강서(講書)로 바뀔 뿐이다. 마지막의 전시는 기격구(騎擊毬)와 보격구(步擊毬)가 시험 과목이 된다. 일별하여 ‘전(箭)’ 자 그리고 ‘사(射)’ 자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활쏘기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과목이었다. 무과는 문과처럼 간지에 자·오·묘·유가 들어가는 해, 즉 식년에 치르는 정기시험인 식년시가 있고, 문과처럼 증광시·별시·알성시 등의 비정기시험이 있다. 식년시를 중심으로 무과를 간단히 개괄해 보자. 무과도 문과처럼 초시·복시·전시가 있다. 초시는 식년 한 해 전에 서울의 훈련원과 각 도의 병마절도사 관할 하에 치른다. 훈련원에서 70명, 각 도에서 모두 120명을 선발한다. 이 190명을 그 이듬해 서울의 병조와 훈련원에서 병서와 무예 시험을 보여 28명을 선발한다. 이것이 무과 복시다. 그리고 28명을 다시 등수를 정한다. ●숙종때 만명씩 선발… 조선 붕괴 빌미 하지만 이것은 법률상의 원칙일 뿐이다. 무과는 훨씬 많은 사람을 선발했다. 오죽 했으면 무과를 만 명을 뽑는다 하여 만과(萬科)라고 했을까. 무과가 무질서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이란 미증유의 전쟁 때문이다. 광해군 12년에 처음으로 무과 만과를 베풀었다. 내용은 자세하지 않으나,‘변경 방어’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만과는 적지 않은 문제를 낳았다. 시험장에 가지 않았는데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경우가 있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합격자에게 어사화와 합격증서인 홍패지(紅牌紙)를 마련하게 하는가 하면, 차사(借射) 대사(代射)로 부정을 한 사람이 많아 처벌 대신 무명 100필씩을 받기도 하였던 것이다. 만과는 한마디로 조선의 국가제도가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였다. 숙종 1년 10월19일조의 ‘실록’을 보면 환관이 무과에 응시한 것을 계기로 하여, 모의장(毛衣匠) 등의 공장(工匠)도 무과 응시를 요구하였다. 숙종 2년에 윤휴 등의 건의로 만과를 베풀었는데, 응시자가 너무 많아 서울에서 치지 못하고 중신을 각도에 보내어 선발하게 하였다.2만명에 가까운 합격자가 나오자 발령 낼 자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합격자는 모두 서울에 몰려들어 벼슬을 바라지만 벼슬자리 자체가 모자라니, 원망이 없을 수 없다. 서울의 쌀값도 이들 때문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들을 군대에 졸병으로 집어넣자 아니나 다를까 반발했고 그로 인해 민심까지 흉흉해졌다. 북벌을 외쳤던 이완 대장은 당시 만과를 이렇게 비판했다.“우리나라는 조총이 장기인데, 만일 만과를 베풀면 사람들이 모두 총을 버리고 활을 택할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총의 위력을 경험했으면서도, 조선조 말까지 조총이 별달리 개량되지 않았고, 군대가 총포를 위주로 편성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무과가 활쏘기란 시험과목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선후기 과거의 문란에 대해서는 알려질 만큼 알려졌지만, 대개는 문과에 대한 것이지 무과에 관한 것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무과는 문과보다 더 타락했다. 숙종조의 명상 남구만은 이렇게 말한다.“문과는 3년 동안 33명이 합격하는데 이것은 단지 먼 시골의 글을 못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도구일 뿐이다. 무과는 화살 한두 발이면 합격하여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자가 전후로 이어져 그 끝을 모를 정도다.” 문과 무과 모두 비판한 것이지만, 사실상 무과가 더 심했던 것이다. ●도심 유흥계도 장악… 한량 노는 것 연상 이것은 조선후기 내내 그러하였다. 조선시대 전체를 통계하면 무과 합격자는 문과 합격자의 10배나 되었다. 하지만 관직의 수는 무과가 문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였다. 숙종조의 재상 최석정은, 현재 무신 당상관의 자리는 300개인데, 전직 당하관이 약 1000명에 가깝고, 무과에 합격해 아직 벼슬길에 들어서지 아니한 사람이 수천 명이나 된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람들의 원망이 어찌 없겠느냐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대책은 서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정조의 치세를 보자.1784년에 세자 책봉을 경축하는 경과(慶科)를 쳤는데, 합격한 무사가 무려 2676명이었다. 정조는 이들 중 선전관으로 발령을 낼 사람을 지방 사람이라 차별하지 말고 골고루 지시한다(‘정조실록’ 8년 11월18일). 선전관은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며 호위하고 임금의 명을 전하는 등의 임무를 맡는 무반의 요직이다. 선전관을 거쳐야만 무신으로 출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전관청의 정식 선전관은 20명, 겸직 선전관이 50명이니, 그 많은 합격자 중 극소수만 무반으로 출셋길을 잡을 뿐 나머지는 모두 합격증만 안고 살아야 할 뿐이다. 무과를 준비하는 사람을 한량이라 부른다. 그런데 19세기 자료에 의하면 “아무런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을 무한량(武閑良)”이라 하였다(조재삼의 ‘송남잡지’). 사정에 활을 쏘러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은 정말 하는 일 없이 놀러 다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가? 이들은 서울 시내의 유흥계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였다. 한량이라 하면 노는 것을 연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62세 할머니의 바람을 잡아주오”

    “62세 할머니의 바람을 잡아주오”

    환갑 진갑 다 지난 할머니가 바람나자 40년을 함께 산 할아버지는 타이르고 애원하고 갖은 수단을 다 썼단다. 하지만 「소귀에 경읽기」더라는 것 - 참다못해 경찰에 고소장을 들고 왔는데…. 궁합도 잘맞던 원앙부부 슬하엔 아들넷이 주루룩 최덕겸(崔德兼)노인(가명·70·서울 영등포구 상도동)이 김덕남(金德男)노파(가명·62)와 『여보』사이가 된것은 만 39년전. 그러니까 최노인이 31세, 김노파가 23세때. 이보다 먼저 최노인은 18세때 자기보다 5세 아래인 정(鄭)모여인과 정식 결혼, 딸을 하나 얻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해 별거생활을 하고 있었던것. 김노파 역시 결혼은 일찍했으나 남편이 돈벌러간다고 일본으로 건너간뒤 소식이 끊어져 죽은것으로 단정해버리고 마땅한 자리가 나면 개가를 할 속셈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최노인의 따분한 처지를 잘알고 있던 이웃집 노파가 어느날 최씨집에 들러 김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건네자 즉석에서 중매를 서줄것을 부탁받게 됐던 것. 며칠이 지나자 최씨와 김여인이 한자리에 앉게 되었고 한평생을 함께 할 약속이 쉽게 이뤄졌다. 그래서 김여인은 최씨집 안방에 들어앉게 되었다. 『그 사람이 젊을때부터 색을 좋아하기는 했읍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지 얼굴에 홍조까지 띠며 옛날얘기를 했다. 둘사이엔 용케 궁합이 맞았던지 바라던대로 사내아이만 넷을 얻었다. 지금은 다 자라 올해 32세된 큰아들은 서울에 살고 있고, 막내아들은 군에 복무중. 최노인은 원래 서울 토박이였으나 일제때 전남 장흥으로 피난갔다가 거기서 기반을 잡아 살게되었다. 영감님 중풍들자 찬바람 세든 40대 장년과 드디어 거기서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양복점과 양화점을 직접 경영하게 되었고, 새살림을 차린뒤에도 사업은 날로 번창해 생활은 넉넉했다고 한다. 또 나이도 비교적 젊은때라 그런대로 잠자리의 만족을 줄수 있었다는 것. 68년봄. 나이를 먹고보니 아들도 자라 가정도 가져야할 처지에 놓였고 자신도 고향으로 돌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로 가산을 정리해 서울 정릉으로 이사를 했다.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최노인에게 비극의 서장이 올려진것은 서울로 이사한 이듬해 여름. 어느날 비탈길을 걸어가다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뒤 다친 상처가 점점 악화되어 결국 중풍이 되었고, 오른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못하는 불구가 되면서 부터. 그날로부터 몸이 말을 듣지않게 되었다. 찰떡같은 부부사이가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부부간의 잠자리가 이루어 지지않게되니 있을법도 한 일이라고 이해를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날이 갈수록 바가지의 도는 더해 가기만했다. 생각다 못한 최노인은 『피차 늙은 몸이니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겠소』하며 타이르고 분위기를 바꿔볼 생각으로 지난해 봄 공기도 맑고 조용한 상도동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 그러나 이것이 파탄의 결정적인 화근이 될줄이야. 집도 넓고 너무 적적한것 같아 아랫방에다 세를 주었다. 고물상을 한다는 김(金)모씨(42)가 들었다. 김씨는 15년전 결혼했다가 5년전 아내를 병으로 잃고 13세된 딸 하나와 사는 홀아비였다. 김씨가 최노인집에 들어온 뒤인 지난해 가을이었다. 하루는 최노인이 바람쐬러 밖에 나갔다가 밤11시쯤 들어왔더니 아내가 김씨방에서 황급히 옷자락을 여미며 나오더라는 것. 얼핏 보기에도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만 『아들같은 사람에게 설마 그럴리가…』하는 생각으로 덮어두었다. 그런일이 있은 뒤 김노파는 거의 매일 저녁 김씨방으로 들어갔다. 어떤날은 아예 김씨방에서 자고 새벽에 돌아오기도했다. 어느날 아침 최노인은 피로한 안색을 한채 아침에야 방으로 돌아온 김노파에게 『어디에서 무엇하고 이제 돌아오는거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러나 너무나 엉뚱한 대답-.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 찾아가는게 뭐가 나빠요” 『당신은 병든 몸이지만 김씨는 정력이 넘치는 사람이오.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 찾아가는 것이 잘못이오?』 최노인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최노인은 할 말조차 잃었다. 완전히 미쳐버렸구나 하는 생각이든 최노인은 그날부터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설득을 시키고 다시 마음을 돌릴것을 하소연했다는 것. 그러나 최씨의 간곡한 하소연도 쓸데 없는 말이었다. 김노파의 아랫방 출입은 날이갈수록 뜨거워져 가기만했다. 최노인은 마누라에게 만류를 해도 듣지 않자 비장한 각오를하고 타협점을 찾기로했다. 『초저녁엔 가지말고 새벽에 가서 일만 치르고 오던지 해달라』고 - 제의를 했다는 것. 김노파는 새벽에만 가기로 약속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얼마가지않아 다시 초저녁부터 가고있다는 것이었다. 『막내며느리가 한집에 살았지요. 남편이 제대할때까지 우리들 뒷바라지 해주기로하고. 그렇지만 눈치를 챈 며느리마저 동네가 부끄럽다고 친정엘 가버렸읍니다』라며 최노인은 한숨을 짓는다. 『지금 생각하니 본처가 좋았읍니다. 말없고 얌전하고. 단지 그게 사내를 낳지못한것이 흠이었단 말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처량하지는 않을텐데 말입니다. 아마 내가 벌을 받은 모양이지요』본처가 그리운 모양이다. <유창하(柳昌夏)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9월 19일호 제4권 37호 통권 제 154호]
  • 도로 구멍에 낀 ‘불운한 사내’의 사진 화제

    길을 걷다 도로에 난 구멍에 빠져 끼어버린 한 영국 남자의 사진이 화제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술에 취한 한 남자가 가로등 설치를 위해 만들어놓은 구멍에 빠져 두 시간 만에 구출됐다.” 고 27일 보도했다. 남자는 “술에 취해 길을 걷다 도로에 난 구멍 속으로 라이터를 빠뜨렸고 이를 주우려다 구멍 속에 빠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구멍의 지름이 40cm 밖에 안돼 구멍에 남자의 몸이 꼭 끼어버린 것. 아스팔트 위에 상반신만 내놓고 있는 남자를 보고 100여명의 구경꾼이 모여들었고 몇몇은 남자를 꺼내려고 시도했지만 구멍에 너무 꽉 끼어있어 쉽게 빠지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봤던 행인 가레스 휴는 “남자를 꺼내보려 시도했지만 너무 꼭 끼어있어 더 잡아당기면 팔이 빠질 것 같았다.”며 “도대체 지름이 40cm도 안되는 구멍에 어떻게 빠져 있었던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문은 “남자는 결국 두 시간 만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큰 부상 없이 구출됐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신동식씨 여성 지위향상 최고상

    여성부는 제13회 여성주간(7월1∼7일)을 맞아 여성의 지위를 높인 유공자로 신동식 한국여성언론인연합 대표 등 16명을 선정, 포상한다고 26일 밝혔다. 신 대표는 서울신문 재직 당시 사회부 기자로서 여성 폭력과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복지제도 개선, 사내 성차별 관행 개선 등 여성의 권익증진을 위해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 지위향상 및 양성평등의식 확산’ 부문 최고상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다. 시상식은 새달 3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강화 모녀실종 종교인 개입”

    지난 17일 인천 강화도에서 실종된 윤씨(47) 모녀에 대한 경찰 수사가 기초 수사도 외면한 채 엉터리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윤씨가 특정 종교에 심취해 있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종교 문제와 연관돼 스스로 종적을 감췄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펴왔다. 윤씨는 30년 가까이 무속신앙에 몸담았다가 얼마전 특정 종교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교단 측에 윤씨 모녀의 소재 파악을 의뢰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경찰도 교단을 상대로 소재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25일 현재까지 교단 측에 윤씨의 소재 파악과 관련한 협조를 의뢰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경찰청 간부는 “연결 고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가능성만 가지고 교단에 협조를 의뢰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경찰은 윤씨 주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윤씨가 이 종교에 깊이 관여해온 정황과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그런데도 경찰은 ‘실마리’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를 방안을 외면한 채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해 윤씨의 차량이 발견된 내가면과 휴대전화가 끊긴 송해면 일대 주거지와 야산 등을 집중 수색하는데 주력했다. 다른 경찰관은 “종교단체는 워낙 민감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며 수사협조를 요구하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음을 시사했다. 결국 종교단체의 반발을 우려해 극히 기본적인 수사절차조차 이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편 경찰은 윤씨가 은행에서 현금 1억원을 인출한 뒤 실종된 과정에 특정 종교와 관련된 50대 남자가 개입된 정황을 찾아내고 이 남자가 사건에 개입됐는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천경찰청은 “윤씨의 집 근처에 사는 이 남자는 윤씨가 돈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윤씨와 친밀한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으나 더 이상의 수사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윤씨 차량에서 발견된 혈흔들이 윤씨의 것으로 확인됐으나 납치와의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3방울인 혈흔이 오래된 데다 크지 않아 실종과 무관하게 생활 도중 생긴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정확한 것은 국과수의 분석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KBS 조합원 IP추적 PD 고소

    KBS 노동조합은 최근 일부 조합원들의 IP주소(인터넷에 접속한 위치)를 추적했다는 글을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최모 PD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24일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KBS 노조는 “IP주소 추적이 사실이라면 사생활을 침해하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며, 회사 개입 가능성도 높아 고소하게 됐다.”고 밝혔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Seoul Law] 기업사냥 저지 등 경영권 방어에 도움 M&A시장 위축… 탄력적인 법 해석을

    [Seoul Law] 기업사냥 저지 등 경영권 방어에 도움 M&A시장 위축… 탄력적인 법 해석을

    “투기자본의 기업사냥 저지 등 경영권 방어에 도움이 될 것이다.”“M&A시장이 위축될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한 변호사업계와 재계의 엇갈린 반응들이다. ●마구잡이식 기업인수 제동, 환영 법무법인 광장의 김상곤 변호사는 “남의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아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을 넓게 인정한다면 불순한 자금을 대거 끌어와 우량기업을 마구잡이식으로 인수할 수 있는 폐해를 낳을 수 있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주태 전경련 기업정책팀 선임조사역은 “LBO방식은 외환위기 직후처럼 주로 회사 자산이 그 잠재능력에 비해 저평가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많이 이용한다.”면서 “관련 규제를 지나치게 풀어버리면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기업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인수합병에서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균등하게 주는 게 대안이라고 본다.”면서 “현재는 공격수단은 많고 방어수단이 없어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이병기 변호사는 “외상으로 주주가 돼서 회사를 인수한다고 가정해 보면 주식 60%를 가진 사람이 회사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면 나머지 40% 주주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영 판단에 따른 경영 행위 제한 우려도 부정적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세종의 이상현 변호사는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를 엄격히 규제하면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경영행위가 제한된다.”면서 탄력적인 법 해석을 요구했다. 이 변호사는 “법 형식 논리로 보면 담보제공회사와 대출금을 받는 회사가 분리되면 배임죄가 성립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새 투자자를 물색해서 회사를 회생시키는 방식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대출받는 회사와 담보제공회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배임이라고 하는 것은 법 형식 논리에 빠져 엄격한 법 해석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원에서 기업사건을 담당하다 개업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기업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는 M&A시장이 위축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 대기업 사내변호사도 “일반인들이 보기에 자기 돈 안 들이고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LBO 방식이 기업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고도의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투기세력이 정보 비대칭을 이용해 ‘장난’ 혹은 ‘농간’을 부리면 선량한 피해자가 다수 생길 우려가 높다.”고 덧붙였다. 오이석 강국진기자 hot@seoul.co.kr ■용어클릭 ●기업 인수합병(M&A) 인수합병(Mergers and Acquisitions)은 인수와 합병을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인수’는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경영권을 얻는 것이고,‘합병’은 둘 이상의 기업들이 하나의 기업으로 합쳐지는 것이다. 인수합병은 성격에 따라 상대 기업의 동의를 얻어 경영권을 얻는 우호적 인수합병과 상대기업의 동의 없이 경영권을 얻는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구분된다. ●차입매수(LBO;Leveraged Buyout) 피인수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투자자금을 빌려(leveraged) 저가로 회사를 사들인 다음(buy out), 대대적인 투자로 기업가치를 올린 뒤 여러 배의 차익을 남기는 기업 인수합병 기법이다. ●경영자매수(MBO;Management Buyout) 기업의 전부 또는 일부 사업부나 계열사를 해당 사업부나 회사 내에 근무하는 경영진과 임직원이 중심이 되어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매각사업부 임직원들은 우리사주 담보대출이나 회사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인수하게 되며 임직원들의 퇴직금을 인수자금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 “영영사전 예문 외우다 보면 막힌 입 트여요”

    “영영사전 예문 외우다 보면 막힌 입 트여요”

    “평생 가야 한두 번 쓸까말까하는 어려운 단어를 외우느라 시간낭비하지 마세요. 그보다는 영영사전을 자주 보고 거기 나오는 예문을 많이 외워두세요.”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 통신연구소 표준연구팀의 임형규(37) 책임연구원. 그는 영어실력의 첫번째 비법으로 주저없이 영영사전을 꼽았다. “말하기를 잘 하려면 영영사전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합니다. 영한사전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기는 하지만…. 저는 통신관련 전문용어를 풀어서 설명할 일이 많은데, 어려운 단어의 뜻을 쉽게 풀어 쓴 영영사전이 딱 제격이죠. 롱맨출판사의 ‘컨템퍼러리 잉글리시’ 사전을 많이 보는데, 영국식 발음까지 함께 익힐 수 있어요. 그림도 많으니까 심심하면 지금도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 들고 예문이나 파생단어까지 찾아보고는 하죠.” ●논문 발표 때 예상 질문·답변 만들어 암기 공학박사인 임 연구원은 원래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다. 그 덕에 석·박사 과정도 국내 대학에서 했고, 외국연수 한번 안 갔다 왔지만 사내에서 영어실력을 인정받게 됐다. “대학 때는 그냥 취미로 영어소설을 읽는 정도였어요. 전공 원서를 보다가 지겨워지면 존 그리샴 유의 가벼운 ‘페이퍼북’을 읽었죠. 토익·토플책도 따로 본 적이 없어요.” 토익은 2003년에 처음 봤는데 기출문제만 세 번 풀고 시험장에 가서 950점을 맞았다. 그간 알게 모르게 ‘내공’이 쌓인 덕이다. 본격적으로 영어말하기 공부에 속도를 붙인 것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다. 해외학회에서 영어로 발표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발표할 논문을 전부 외우고,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들어 암기하는 식이었다. ●외국방송 통해 유럽·인도식 영어 익혀 이런 방법으로 공부해 나름대로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한번은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1997년인가 학회에서 발표를 끝내고 질의·응답시간이 이어졌죠. 프랑스 사람이 영어로 질문을 했죠. 그런데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했는데도, 정말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더군요. 발음도 이상하고…. 결국 옆에 앉아 있던 교수님이 영어로 다시 통역을 해주고 나서야 간신히 위기를 넘겼죠. 미국식 영어가 전부가 아니란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는 이후 BBC방송 등을 통해 유럽식·인도식 영어까지 찾아다니며 들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다양한 발음의 영어도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경험이 지금 회사에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영어로 콘퍼런스 콜(전화회의)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회의에서는 통신 관련 국제표준에 관해 논의하는데, 서로 자기 회사의 기술을 채택시키기 위해 논쟁도 자주 벌인다. “나름대로 영어를 한다고 생각했는데,(콘퍼런스 콜은)어렵더군요. 언제 말을 자르고 끼어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소리가 잘려서 안 들리기도 하고. 그나마 여러번 반복해서 참석하고 토론의 요령을 터득하니까 그때부터 어려움이 사라지더군요.” ●출퇴근 시간 오디오북 들으며 발음 연습 임 연구원은 지금도 영어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서울에서 수원 회사까지 출퇴근할 때는 하루 1시간30분 정도 mp3플레이어로 영어오디오북을 듣고 발음을 따라 한다. 해외출장 갈때는 파일을 챙겨 노트북으로 ‘미드(미국드라마)’를 즐겨 본다. 요즘은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소리는 영어로 듣고, 자막은 중국어로 된 영화를 본다. 그는 영어 말하기에 숙달하려면 ‘섀도잉(듣고 따라하기)’을 자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이디엄(숙어)을 많이 외우라고 하지만 말할 때는 별 도움이 안 돼요. 하지만 섀도잉은 많이 하면 할수록 자기도 모르게 말할 때 외웠던 단어나 문구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죠. 문장을 말할 때 틀은 갖춰져 있고 빈 칸에 새로운 단어만 채워 넣는 식이니까,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간이 자연히 줄어들더군요.” 임 연구원은 “공학을 전공했지만 재미있으니까 지금껏 영어공부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면서 “앞으로 기술마케팅 등 대외업무쪽 일을 맡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글 김성수·사진 정연호기자 sskim@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5) 길 떠나는 상단(商團)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5) 길 떠나는 상단(商團)

    김홍도의 작품 ‘길 떠나는 상단(商團)’이다. 먼저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복색을 보자. 차림새를 보아하니, 모두 양반은 아니다.9명의 사내가 등장하는데, 맨 오른 쪽의 사내만 대우가 작은 갓을 썼을 뿐, 나머지 8명 중 두 사람은 방갓을 썼고, 두 사람은 건을 썼다. 네 사람은 맨머리다. 맨머리의 사내는 상투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오른 쪽 부분의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맨머리의 총각은 어린 기색이 완연하다. 행색으로 보아 이들은 양반이 아니다. 맨 오른쪽 갓을 쓴 사람도 나이가 들었다 뿐이지 짧은 곰방대를 가진 품이나, 복색이 도포가 아닌 점으로 미루어 보나 양반은 분명 아니다. ●말·소 등에는 모두 ‘길마´가 얹혀 있어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은 ‘장터길’이다. 내가 정한 것이 아니고, 그렇게 전해져 온 것이다. 단원이 원래 취한 제재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장터와 상관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닐 터이다. 이들은 한 패거리이거나 아니면 두 세 패거리로 짐작이 된다. 먼저 오른쪽의 네 사람을 보자. 네 사람이 네 필의 말을 타고 있다. 중간의 머리를 천으로 싸맨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곰방대를 물고 있다. 갓을 쓴 사내는 한창 곰방대를 손으로 누르는 참이다. 담뱃불을 세게 댕기려 압력을 가하고 있는 참이다. 아래의 더벅머리 총각은 이제 막 담배를 배우는 것인지 얌전하게 담배를 빨고 있다. 그 왼쪽의 돌아보는 자세의 사내는 담뱃불을 댕기려고 부싯돌을 치고 있다. 이 네 사람이 한 패로 보인다. 왼쪽의 세 사람은 세 필의 말을 타고 한 필은 끌고 간다. 상호간 거리가 좁은 것으로 보아 이들 역시 한 패로 보인다. 그리고 왼쪽 위의 언덕 건너편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더벅머리 총각으로 말을 타고 있고, 뒤를 따르는 사내는 걸어서 소를 몰고 가고 있다. 이들이 모두 한 패인지, 아니면 세 패인지는 단원이 다시 살아나거나 그림 속의 누가 그림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들이 같은 목적으로 같은 길을 가고 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무엇으로 아느냐고? 이 그림에는 말이 9마리, 소가 1마리 등장한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맨 오른쪽 갓 쓴 사내가 타고 있는 말만 제외하면, 나머지 말과 소의 등에는 모두 길마가 얹혀 있다.(길마 아래 얹은 것이 언치다). 길마는 안장이 아니다. 안장이란 사람이 말에 올라탔을 때 쾌적함을 누리기 위해 만든 장치다. 한데 위에 등장하는 것은 원래 말에 얹는 안장이 아니라, 주로 소 등에 얹는 길마다. 길마의 용도는 물건을 나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위의 말들은 사람이 타는 승용마가 아니라, 물건을 나르기 위한 말인 것이다. 더욱이 승용의 말은 오직 양반만이 타는 것이었다. 따라서 위에 등장하는 양반 아닌 상것들이 말을 타고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맨 왼쪽의 더벅머리 총각을 보자.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채찍이다. 채찍은 말을 몰고 가는 데 쓰이는 것이다. 이 총각은 원래 말을 몰고 가는 사람이다. 사람이 타는 승용마의 경우 양반네를 태우고 앞에서 말을 끌고 간다. 이 경우 그는 말구종이 된다. 말구종은 한자로 쓰면 견마부(牽馬夫)가 되고 ‘견마’가 입에 익으면 ‘경마’가 된다.‘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은 사실 말을 타면, 말을 끌고 가는 견마잡이를 두고 싶다는 말이다. 그림의 견마잡이는 물건을 싣지 않은 말을 타고 가는 참인 것이다. 또 그림 중간의 사람을 태우지 않은 말을 끌고 가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승용마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짐을 싣기 위한 빈 말을 타고 가는 중이다. 즉 어딘가로 짐을 싣기 위해 가고 있는 것이며, 아직 짐을 싣기 전이기 때문에 길마를 얹은 빈 말을 임시로 타고 있는 것이다. 이 길마를 얹은 8마리의 말과 한 마리의 소가 짐을 싣기 위한 운반용이라는 것은, 담배에 불을 댕기려고 부시를 치는 사내가 앉은 길마에 밧줄이 묶여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 밧줄은 길마에 짐을 싣고 동여매기 위한 것이다. ●더벅머리 총각들은 견마부로 보여 등장인물 9명 중 더벅머리 어린 총각이 4명이다. 총각들은 모두 견마부로 보이고, 나머지 다섯 사람은 어른이다. 어른들 중 맨 오른쪽의 갓을 쓴 사내가 아마도 이 패의 우두머리로 보인다. 갓을 차려 쓴 것이라든지 또 이 사내만은 길마 위에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건대(사내가 타고 있는 것은 길마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안장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안장이라면 앞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단지 언치를 얹고 그 위에 앉기 편한 무엇, 예컨대 덕석 같은 것을 놓은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이 패거리 중에서는 제법 행세를 하는 사람인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시장을 오가는 상인일 것이며, 이 사내는 상단(商團)의 행수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장터길이라는 제목도 썩 불합한 것은 아니다. 물론 상단이 아니라, 어떤 시골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시장에 가는 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조선후기에 말이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한다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시골 농민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상단을 그린 그림은 이형록(1808∼?)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눈길을 걷는 상단’도 있다. 소를 앞세우고, 말에 짐을 지우고, 아니면 어깨에 지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 역시 상단을 그린 귀중한 그림이다. 조선이란 나라는 유교가 국가의 이데올로기다. 유교는 상업을 원래 가장 낮은 직업으로 본다. 사·농·공·상! 즉 지식인, 농민, 수공업자, 상인의 순서다.‘맹자-등문공’에 농가(農家)인 허자(許子)의 제자 진상(陳相)과 맹자의 논변이 나온다. 진상이 전하는 허자의 논리는 이렇다. 유가들은 왜 노동을 하지 않고 정치를 한다고 들면서 호의호식하는가. 이것이 허자의 문제 제기다. 이 말에 맹자는 허자가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쇠쟁기는 허자가 직접 만든 것인가, 허자가 쓰는 그릇은 허자가 직접 만든 것인가. 이에 진상은 이렇게 답한다. 아니다. 허자가 생산한 곡식과 바꾼 것이다. 그렇다. 허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생산할 수 없다. 이 사회에는 사람마다 각각 역할이 있다. 곧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회적 분업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자신의 역할을 정치라고 말하고, 허자가 대장장이 일을 농사짓는 일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정치 역시 다른 일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허자는 맹자의 사회적 분업을 말하는 논리에 패배하고 만다. 맹자의 논리가 맞는 것이라면, 상업이야말로 교환을 가능케 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 아닌가. 하지만 맹자는 ‘공손추’에서 지역에 따른 가격차를 이용하여 이익을 보는 상인을 통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맹자의 눈에는 상인의 활동이야말로 구체적 생산물을 생산하지 않는 무용한 행위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허자에게 말한 교환이란 이익이 없는 단순한 교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황당한 생각임은 여기서 굳이 변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맹자의 말이 전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 상업은 자본의 축적을 가져오고, 자본의 축적 규모가 커진다면, 그 자본은 필연적으로 생산자를 구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금융자본의 위력을 직접 경험하고 있지 아니한가. ●조선 후기 私商 활동 부쩍 활발해져 유가의 상인에 대한 이런 정의 때문에 유교를 국가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은 상업과 상인을 적극 장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이 없을 수는 없다. 조선을 세우고 수도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뒤, 궁궐과 종묘, 관청을 지었다. 아울러 지은 것이 관영 시장인 시전(市廛)이었다. 조선후기가 되면, 이 관영 시장의 상인 외에 개성상인을 위시한 사상(私商)의 활동이 부쩍 활발해진다. 이들은 국가의 감시를 뚫고 밀무역 루트까지 뚫는다. 이익이 나는 곳에 상인이 있었던 것이다. 또 역관이 주축이 된 북경과 한양, 동래와 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이 제법 발달한다. 이번에 소개한 그림들은 아마도 이런 상업의 발달과 유관한 상단(商團)을 그린 것이 아닐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행복을 담보로 청부했던 계약득남(契約得男)

    행복을 담보로 청부했던 계약득남(契約得男)

    『자식만 낳아주면 일생을 함께 살겠다』는 철석같은 약속으로 청부임신, 자식을 낳자 그 사내는 본부인과 함께 핏줄을 훔쳐 줄행랑. 여자팔자는 뒤웅박팔자라지만 아무리 떼굴 떼굴 굴러봐야 진수렁길을 벗어나지 못한 전순희(全順姬)여인(36·가명·춘천시 조양동 237)의 씨받이 인생전말. 때늦은 후회에 가슴을 쳐 가난해도 행복했던 초혼 『차라리 자식을 데리고 가난한 대로 행상이나하며 살것을 공연히 가슴에 커다란 상처만 남겼다』면서도 달아난 임을 원망할 수 만도 없다고 그리움에 사무친 정을 주체못하는 전(全)여인은 오늘도 『내사랑 어디에』를 되뇌이며 방황하고 있다. 첫 남편은 가난과 2남1녀를 큰 재산이나 되는것처럼 유산으로 남겼고, 비록 첩살이지만 큰마누라의 공인과 협조아래 함께살던 두번째 남편은 깊은 상처를 가슴에 새겨주고 사랑의 씨앗인 자식마저 훔쳐 달아나 버려 이제는 솜처럼 나른한 심정만이 낙엽처럼 뒹굴고 있다. 첩살이란 대부분이 본처의 증오의 대상. 그러나 청부임신을 맡고 들어간 전여인의 첩살이는 떳떳했다. 전여인은 지난 67년 까지만해도 춘천 명동거리에서 「라이터」「배터리」등 행상을 하던 남편 성(成)태민씨의 아내로 가난한 셋방살이를 보금자리삼아 2남1녀를 키워오던 알뜰한 주부였다. 그러던 지난 67년 초겨울, 하늘같이 믿던 남편이 연탄「개스」중독으로 어처구니 없이 죽었다. 이때부터 전여인의 기구한 인생이 시작됐다. 남편의 죽음이 이렇게 커다란 비극을 안겨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하루 1~2천원 벌이로 집마련 3개년계획등 오붓하게 키워오던 꿈이 덧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행상 한달만에 몽땅 거덜 끈질긴 통사정에 넘어가 남편을 잃자 눈앞이 캄캄했으나 현실은 비정한 것-전여인은 식구들의 생활을 위해서 뛰기 시작했다. 남편의 행상「라이카」를 떠맡아 4식구의 여가장이 됐다. 그러나 삶이란 노력과 성실만으로 되는것이 아니었다. 기술이 없어 「라이터」기름조차 제대로 넣을줄 모르는 전여인의 「라이터」행상은 찾는 손님이 줄어들었다. 『제가 맹초 였어요. 얼른 처분하고 다른짓을 해야하는건데』 1개월만에 거덜이 났다. 명실공히 빈주먹이 되었다. 채소행상을 했다. 춘성군 신북면 고탄리등 40~50리나 되는 깊은 산중에 찾아가 산나물을 뜯어다 삶아 팔고하여 겨우 연명했다. 전여인의 부지런함은 시장바닥에 다 알려졌다. 이웃에서 제법 큰 어물상을 하던 오명식(吳明植)씨(42·가명)가 눈독을 들였다. 69년 1월 전여인의 딱한 사연을 동정이나 하듯 단골손님이었던 춘천시 효자동2구 강(康)정례여인(53)이 재가를 하라고 권유했다. 『새파란 청상과부가 어린자식들을 데리고 살아봤자 자식덕 볼 수 있느냐. 그래도 남편하나 잘 얻어 호강하고 자식들을 가르쳐야 할것 아니냐』- 좋은 혼처가 있다고 재혼을 끈질기게 권유했다. 전여인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비없는 자식 기르는 것도 안타깝지만 의붓아비밑에서 자식들을 키우는 일은 더욱 못할짓 같았다.강여인은 찰거머리 처럼 끈질겼다. 할수없이 만나나 보기로 했다. 막상 만나보니 얘기는 더 엉뚱했다. 상대는 바로 이웃상점 주인인 오씨였다. 건장한 체구에 호남으로 인상이 괜찮던 남자다. 거기다 술담배도 못하는 성실한 가장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본처의 양해아래 함께 살며 자식만 낳아달라는 것. 『처음에는 어처구니 없어 말도 안나오더군요. 아무리 팔자가 세기로서니 남의 철삽이를 하라고 하는데는 너무 얕잡아 보는것 같아 눈물조차 안나왔어요』 딱잘라 거절했으나 상대편도 꽤나 질겼다. “짐승 짓” 같았으나 욕심도 핏줄 앗기자 괘씸해 고발 나중에는 본부인과 함께 찾아와 애원을 하다시피 했다. 『자식만 낳아주면 평생을 함께 살겠으니 제발 적선하는 셈치고 함께 삽시다』 전남편의 자식들도 책임지겠다고 했다. 『씨받이라는 소리가 꼭 짐승들 하는짓 같아 어처구니 없었지만 사실이 그런걸 어쩌겠어요. 보통 첩이라면 본처를 두고 눈이 맞아 사는 것이지만 제 경우는 좀 떳떳하다고 생각했지요』 『어차피 행복하고는 담쌓은 인생』자식들이나 배곯리지 않고 키우기 위해 첩살이를 결심했다. 지난 69년2월 오씨와, 본부인 박애자(朴愛子)여인(37·가명) 그리고 전여인이 모여 3자회담을 했다. 박여인은 『내가 애를 못낳는 죄로 남편보기도 떳떳하지 못하고 혹시 남편이 변심할지도 모르니 꼭 자식을 낳아달라』고 매달렸다. 평생을 동서지간의 정을 변치 않고 보살펴 주마고도 했다. 청부임신을 결심했다. 이웃보기가 쑥스러워 그때까지 살아오던 효자동을 버리고 조양동으로 이사했다. 오씨는 1주일에 3일은 큰집에 4일은 작은집에서 머무르기로 협정도 맺었다. 오씨는 귀가때 마다 데리고 들어온 자식들을 친자식 보살피듯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전여인은 동거 2개월만에 태기가 있었다. 오씨부부는 전여인을 보물단지나 되는것 처럼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10년보다도 더 긴 10개월이 흘렀고, 전여인은 70년 2월 달같이 훤한 옥동자를 분만했다. 정말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후 생활은 꿈같았어요』 그이는 물론 하루도 거르지않고 찾아왔고 본부인 박여인은 남편이 이쪽만 편애해도 조금도 언짢은 기색없이 흐뭇해했다. 아기도 무럭무럭 자랐다. 박여인은 젖을 빨리 떼어 양쪽집에서 왔다 갔다 하며 기르자고 했다. 『그때만 해도 무척 자랑스러웠어요. 남의 대를 이어주고 또 그렇게 좋아 하는것을 볼때마다 보람을 느꼈어요』 그러면서도 행여 아주 뺏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안되는 것도 아니었단다. 오씨는 어린애를 입적시켰다. 그저 입적시킨다니 그런가보다 했단다. 그런데 오씨부부는 지난 8월20일께 아이를 빼내 어디론가 행방을 감춰버렸다. 통사정에 못이겨 첩살이를 했고 아이까지 낳아준 전여인은 끝내 씨받이로 끝나고 말았다. 오씨부부는 어느새 가산을 정리하고 이사를 해버린 것이다. 『이왕 버린 몸이니 나야 별문제지만 내 핏줄을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뺏겼으니 보고싶은 마음이야 금할수 있겠느냐』는 것이 전여인의 자식 뺏긴 슬픈 독백. 전여인은 지난 28일 춘천경찰서를 찾아 자식뺏긴 모정을 호소한후 매일 경찰을 찾아오느라 남은 자식들과의 살길조차 막연한 실정이다. <춘천(春川)=김선중(金瑄中)기자> [선데이서울 71년 9월 12일호 제4권 36호 통권 제 153호]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유해발굴감식단장 박신한 대령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유해발굴감식단장 박신한 대령

    경외에 찬 ‘그 독백’은 전 세계인의 심금을 참으로 건드렸다. 톨스토이 소설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주인공 안드레이 청년이다. 격전의 전장에서 중상을 입고 쓰러진다. 의식을 가까스로 되찾았을 때 푸른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 하늘이었다. 청년은 중얼거린다. “어째서 지금까지 이 높은 하늘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겨우 이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하다. 그렇고 말고!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모든 것이 기만이다. 이 하늘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푸른 하늘은 ‘영원’한데 지상의 ‘영광과 욕망’은 사소하고 부질없음을 처음 깨닫게 되는 장면으로 ‘전쟁과 평화’의 명문구로 꼽힌다. 이 말이 새삼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일까.6·25전쟁 발발 58주년을 며칠 앞둔 지난 주,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사무실에 들어섰다. 오전 10시가 채 안된 이른 시간인데도 6·25때 전사한 유해를 찾아달라는 유가족들의 애끓는 전화가 쇄도했다. 경남 마산에 거주하는 전이길(69)씨.“우리 큰형님이 6·25때 입대했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어요. 전사통보도 못 받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에 계시는지 시신만이라도 꼭 확인하고 싶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렇게 전화를 합니다.” 대구광역시에 사는 김두남(62)씨.“어머니께서 위독해 돌아가시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6·25때 전사한 아버지(김봉곤)의 유해를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해 드리고 싶어요.” 이처럼 아버님과 형님을 찾는 전화가 많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지난 6일 현충일때 채혈행사를 가진 이후 이런 문의전화는 최근들어 더욱 많아졌다. 유가족의 채혈을 통해 유해를 보다 빨리 찾을 수 있는 희망의 방법이 하나 더 생겼기 때문. 실제로 지난 3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고(故) 강태수 일병의 경우 생존해 있는 아들(62)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우연히 국군수도통합병원에 들러 채혈을 했다가 극적으로 아버지 유해를 찾은 케이스. 신혼초에 신랑은 귀여운 아들을 하나 낳고 전장으로 떠났고 82세된 신부는 58년 만에야 신랑의 유해와 만나는 눈물겨운 광경을 연출했다.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3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유해발굴 사업은 올해로 8년째. 처음에는 증언과 유품 등을 통한 신원확인에 의존했으나 2003년부터는 유해와 유가족의 DNA검사를 추가해 정밀도를 높였다. 특히 지난해 1월 관련법 제정에 의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되면서 조사와 발굴, 감식 등 전 분야에 걸쳐 독자적인 수행능력을 확보했다. 또한 올해 12월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내에 3층규모의 현대식 건물이 완공되면 감식실과 유해보존실을 갖추는 것은 물론 유전자 은행 설치 등으로 세계적 수준에 올라서게 된다. 지금까지 유가족 혈액의 경우 4973건을 채취했으며 발굴된 유해 1892구 중 72구가 신원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42구가 유가족 품에 안겼다. 국방부 기록에 의하면 6·25때 국군 전사자는 약 13만 7000명, 실종자는 2만여명이다. 국립현충원에 2만 7000여기가 안장돼 있으니 현재 13만명가량이 어디엔가 쓸쓸히 묻혀 있다는 것이다.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유해발굴감식단 단장 박신한(51) 대령을 만났다. 집무실에는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반세기 만의 귀향’ 등의 문구와 발굴현장 모습의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는 6·25전쟁이 몇년도에 일어났는지 모르는 젊은 대학생들이 3분의1이나 된다는 조사내용을 언급하면서 결코 잊혀진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호국의 달이자 장마철입니다. 발굴사업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겠지요. “이달에만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안동(27일까지)과 강원도의 진부(7월11일까지), 인제(27일까지) 등에서 진행되고 있지요. 한 지역당 100곳정도 굴토하면서 유품이나 유골 등의 흔적이 나오면 전문요원 8명이 투입돼 정밀 감식을 하게 됩니다.1년중 동·하절기를 제외한 8개월 동안 계속 진행되지요.” ▶감식단 요원들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됐습니까. “군인과 군무원, 그리고 형질인류학과 법의학을 전공한 민간 감식전문요원 등 모두 134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89명의 발굴병인 경우 대학의 고고학이나 인류학과 출신의 지원자들로 모집·충원하고 있습니다. 또 이들은 비록 6·25의 3세대에 해당되지만 58년 동안 차가운 땅속에 묻힌 호국의 얼을 거둔다는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인골탐지기도 없이 산간 고지대에서 주먹밥을 먹어가며 고생도 많지만 평생에 남을 보람으로 여기며 열심히 일하고 있지요.” ▶발굴사업에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것인가요. “유해는 전투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마을 주변에 널부러져 있다가 마을 주민들이 수습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58년이 지났고, 지역개발도 많이 했고, 전사자 유해에 대한 자료조차 없습니다. 어디쯤에서 전사했다는 막연한 제보와 현장에서 당시 전술적 상황분석을 통해 진행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지요.” ▶제보가 들어오면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제보내용과 현장상황 등을 여러가지를 종합 판단해 주요 포인트를 정하게 됩니다. 대개 70∼80%는 참호나 교통호,20∼30%는 논이나 밭 등이 대상입니다. 그 다음 전문요원들이 문화재 발굴처럼 기록과 수습을 하면서 진행되는데 소중한 유해인 관계로 중장비 없이 호미 등으로 조심스럽게 굴토합니다. 그러다가 유해가 발굴되면 먼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구분하지요. 유품과 기록 등으로 피아를 구분한 뒤 아군인 경우 시료를 채취하고 또 유가족으로부터 채혈을 통해 얻은 DNA 등을 대조합니다. 신원이 확인되면 현충원 정식묘역에 안장되고 미확인되면 일단 무명용사탑에 있다가 나중에 확인되면 다시 모셔집니다.” ▶적군의 유해는 어떻게 하는지요. “지금까지 북한군 384구, 중공군 177구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이 가운데 북한군 352구, 중공군 84구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에 인도적 차원에서 매장해 놓고 있지요. 저희는 매년 군사정전위를 통해 송환의사를 타진하지만 아직까지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측에서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발굴사업이 좀 늦었지요. “원래 이 사업은 2000년 6·25 50주년기념사업으로 처음에는 한시적으로 3년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유해가 발굴됐고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 국가영구사업으로 전환시켰지요. 국가가 국방의무만 부과시켜 놓고 책임에는 소홀했다는 점에서 발굴사업이 다소 늦었다고 봅니다. 전후복구와 경제개발 등 국가가 먹고 사는데 전력하다 보니 국가적 여유가 없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난 8년 동안 말 그대로 ‘무에서 유’의 발굴사업을 진행해 오면서 벌에 쏘이는 등 단 한 건의 사고가 없었다는 그는 “아마 땅에 묻힌 영령들이 도와주는 것 같다.”고 했다. 또 “6·25세대들이 하루에 1만명정도 돌아가시고, 또 국토는 계속 개발되고 있어 유해발굴사업은 향후 5년이 매우 중요한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아직도 이 땅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13만여의 호국용사들이 이름모를 산야에 묻혀 있습니다. 이들의 유해는 단순한 뼛조각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버팀목입니다. 마지막 한 분까지 찾아 부모형제, 조국의 품으로 모시는 일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영원한 책무입니다.” ■ 그가 걸어온 길 ▲1957년 목포 출생. ▲75년 광성고 졸업. ▲80년 성균관대 졸업, 학군 18기 임관. ▲92∼95년 31사단 96연대 1대대장. ▲98∼2000년 동국대 행정대학원. ▲99∼2002년 육본 인사운영실 대령보직장교. ▲02∼03년 9공수여단 참모장. ▲03∼04년 36사단 107연대장. ▲05∼06년 육본 인사참모부 전사자 유해발굴과장. ▲07∼현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유해발굴 주요 실적(2008년 6월 현재 누계) 아군 1892구, 북한군 384구, 중공군 177구. 유품 32종 5만 7995점(실탄, 장구류, 개인소품 등).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靑수석 전면 교체] ‘기획수석 쟁탈전’ 곽승준 가고 박재완 남고

    20일 뚜껑을 연 청와대 수석 인사는 발표 직전까지 극소수 인사만이 일부 내용을 알 정도로 철저한 보안 속에 이뤄졌다. 한 자리를 놓고 두 수석이 마타도어까지 흘려가며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기도 했다. 청와대 인선이 철저한 베일 속에 가려진 이유는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수석 전원이 교체 대상에 오른 처지로, 인선작업에 깊숙이 참여할 수 없었던데다 이 대통령이 철저한 보안을 지시한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곽승준 국정기획수석과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은 19일 밤에서야 교체되는 자신의 ‘운명’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18일 밤 청와대 모 수석에게 인사내용을 귀띔해달라고 요청했으나,“지금 제 운명도 모릅니다.”라는 답변만 듣고 전화를 끊어야 했다. ●인사 철통보안… “내운명 나도몰라” 인선 작업에 가장 큰 진통을 겪은 자리는 대통령실장이다. 류우익 실장을 교체하는 문제부터 논란이었다. 국정쇄신 차원에서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거세게 터져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그에 대한 두터운 신임 때문에 고심을 거듭했다. 한때 후임 부재론이 제기되면서 유임설이 힘을 얻기도 했다. 교체가 확정된 것은 불과 사흘 전인 지난 17일. 후임 인선작업도 난항을 거듭했다. 윤진식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과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명됐으나 윤 회장은 개인 사정을 이유로 거듭 실장직을 고사했고, 윤 전 의원은 이 대통령과의 국정철학 차이가 걸림돌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 김덕룡 전 한나라당 의원과 민주당 김종인 의원, 이재명 전 민자당 의원, 전윤철 감사원장 등이 한나라당 주변에서 거명되기도 했다. ●MB, 정총장 청와대로 불러 설득 이 대통령이 정정길 울산대 총장을 대통령실장으로 낙점한 데는 6·3동지회 멤버로,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쌓아온 두 사람의 개인적 친분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정 총장과 류 실장은 또 정 총장의 딸이 류 실장의 제자(서울대 지리학과)인데다 서로 서울대 교수로 같이 지내면서 두터운 교분을 쌓은 사이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가 류 실장 교체를 공식화한 17일 정 총장을 후임으로 낙점한 뒤 18일 그를 청와대로 불러 대통령실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정 총장이 거듭 난색을 보이면서 고사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이 대통령의 계속된 설득 끝에 결국 정 총장이 실장직을 수용했고,20일 오전 울산대 학장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대학 측에 청와대행을 통보했다. 수석 자리를 둘러싼 신경전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특히 국정기획수석 자리를 놓고 곽승준 수석과 박재완 정무수석 간에는 유임설과 전보설, 교체설을 끊임없이 외부에 흘리며 입지를 다지는 생존싸움이 펼쳐졌다. 국정기획수석실에서는 곽승준 유임설을, 정무수석실에서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설을 생산·유포했다. ●‘복심´ 류실장 거취 막판까지 진통 결국 이들 신·구 측근간 생존경쟁은 대통령직인수위 입성 이후 이 대통령의 신임을 쌓은 박 수석의 승리로 마감됐다. 이 과정에서 민정수석실도 서바이벌 게임에 가세, 국정 난맥의 책임을 둘러싸고 한동안 국정기획수석실·정무수석실 등과 볼썽사나운 네탓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의 경우 막판까지 ‘유일한 생존자’가 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한나라당측에서 줄기차게 제기된 교체 주장의 파도를 넘지 못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20 & 30]“난 이럴때 핑계”… 직장인들 ‘거짓말 백태’

    [20 & 30]“난 이럴때 핑계”… 직장인들 ‘거짓말 백태’

    누구나 한번쯤은 직장에서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핑계’를 댔다가 곤란한 적이 있을 것이다.“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혹은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눈치 빠른 상사들은 알면서 속아주는 때도 있고, 가당치 않은 핑계를 대면 면박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내 한몸 불살라’ 열심히 일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뺀질거림의 달인’들은 오늘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려고 궁리한다.2030 직장인들에게 어설픈 핑계를 댔다가 들통나서 생긴 ‘떠올리기 싫은 순간들’을 들어봤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는 노총각 최모(35)씨는 한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주말 잠실 3연전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본사 회장이 회식 자리에 특별히 참석한다는 것이다. 전 직원이 비상상황에서 회장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최씨의 마음은 이미 야구장에 있었다. 최씨는 금요일 저녁 ‘선약’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야구장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경기 내내 끌려가던 롯데 자이언츠는 9회 초 뒤집기에 성공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맥주를 마시며 ‘부산 갈매기’를 불러댔다. 그러나 최씨는 다음날 출근과 동시에 상무에게 불려갔다. 상무의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선본 아가씨랑 야구장 갔어?중계방송에 최 대리가 나왔더라고. 오징어 씹으면서 ‘부산갈매기’를 목청껏 부르더라고….” 섣부른 핑계는 ‘연애사’를 꼬이게 하기도 한다. 직장인 박모(28·여)씨는 몇 달 전부터 직장 상사 A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훤칠한 키에 업무능력도 훌륭한 상사는 박씨의 이상형이었다. 박씨는 그 상사 앞에만 서면 얼굴이 붉어져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했다. 그런 박씨를 본 동료들이 혹시 A씨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며 박씨를 놀리기 시작했다.‘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고 박씨는 직장동료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A씨를 좋아할 바엔 B씨를 좋아하겠다.”고 맘에 없는 말을 해버렸다. 회사에서는 박씨가 B씨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하루는 A씨마저 박씨에게 “B씨를 좋아한다며?내가 봐도 진국이지. 잘해봐요.”라며 응원을 해줬다.“이건 정말 아니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한 말인데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요.” ●회식자리 피하기 가장 좋은 메뉴는 “집안에 제사가 있어서…” 전모(27)씨는 여자친구에게 조건부 결별을 통보받았다. 여자친구는 “금요일 저녁에 친구가 나오는 연극을 함께 보러 가지 않으면 헤어지자.”고 말했다. 전씨도 금요일이면 노총각 회사 선배들이 막내인 자신을 끌고 다니면서 새벽까지 술을 퍼먹이는 행태가 싫지만 내색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데드라인으로 내건 금요일에는 개발부 전체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전씨는 문제의 금요일에 기독교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제사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여자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여자친구와 연극도 보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와인도 한 잔 했다. 여자친구를 집에 바래다 주는 길에 멀리서 낯익은 모습들이 보였다. 회사 선배들이 한껏 술이 취한 상태에서 비틀거리며 시끌벅적하게 다가왔다. 전씨가 피해가려는 순간 눈치 빠른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내가 잘못봤나? 제사 지내러 간 전 대리가 있네?” 박모(33)씨도 제사 핑계를 대고 회식에 빠졌다가 곤란한 적이 있었다. 박씨는 신촌에서 회식이 있는 날 애인과 함께 청담동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동료들이 청담동으로 2차를 온 것이다. 박씨는 다음날 과장에게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오히려 과장님이 이해를 해주셔서 다행이었지요. 하지만 진짜 사정이 있어서 회식에 빠지려고 하면 동료들이 두 번째 애인이 생겼냐고 놀려대서 민망합니다.” ●야근하기 싫어 핑계 대는 ‘뺀질거리기’의 달인들 이모(32)씨는 스스로 ‘뺀질거리기의 대마왕’이라 칭할 정도로 잘 둘러댄다. 연일 밤을 새는 대기업 직장생활이 어언 4년째. 조직에 충성하다간 제 몸 하나 간수 못할 것 같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나서 잔꾀 부리기는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씨는 어떻게 하면 야근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프로젝트에서 빠질 수 있을까를 자주 고민한다. 한 번은 몸이 좋지 않아 어머니 생신이라고 회사에 둘러대고 일찍 퇴근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여자친구가 보고싶었던 영화가 있다며 졸라대기 시작했다. 결국 이씨는 여자친구와 영화 한편만 보고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영화관에서 팝콘을 사러 갔을 때였다. 팝콘을 사고 영화관으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뒷줄에서 누가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평소 이씨와 앙숙이었던 직장동료 박씨였다. 동료 박씨는 이튿날 회사에 이씨의 만행(?)을 모조리 다 소문내 버렸다. “그날 이후로 정말 회사에서 찍혀버렸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계속된 거짓말로 인해 진짜 몸이 아픈 날이나 야근을 할 수 없는 날마저도 이젠 사람들이 믿으려 들지 않아요. 자업자득인 거죠.”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1)씨는 ‘뺀돌이’로 통한다. 일을 다른 동료에게 자꾸 미뤄서 생긴 별명이다. 지난해 8월 어느날 그는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동료와 야근까지 바꾸었다. 그런데 부장이 갑자기 야근을 요구했다. 김씨는 맡은 일이 중요해 담당자인 자신이 빠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부장에게 동료가 대신해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야근을 할 동료에게는 부장이 자신의 일을 그에게 대신 시켰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음날 회의시간에 부장이 동료에게 일을 대신해 준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칭찬했고 동료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 순간 정말 민망해서 책상 밑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동료에게 사과하고 이후에 대신 야근을 두 번이나 해주었죠.” ●아프다는 핑계 잘못 댔다 곤란했던 ‘아픈 추억’ 1년차 직장인 김모(28)씨는 아직도 신입사원 때의 ‘대소동’을 잊지 못한다. 입사한 지 3개월째 됐을 무렵, 고교동창 모임이 있었다. 김씨는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밤 늦도록 술을 마셨다. 처음엔 다음날 출근이 걱정돼 적당히 마시려 했다. 하지만 한 번 술이 들어가자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라는 배짱이 생겼다. 김씨는 이튿날 깜짝 놀랐다. 눈을 떠보니 시곗바늘이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전화에는 회사와 팀 선후배들의 전화번호가 수십 개나 찍혀 있었다. 더구나 오전에는 협력 업체와 미팅도 잡혀 있었다. 김씨는 심호흡을 한 뒤 부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던 중 갑자기 심하게 열이 나고, 온몸이 쑤시고 아파 응급실에 실려 왔다.”고 둘러댔다. 문제는 그날 저녁에 불거졌다. 팀원들이 문병을 오겠다고 한 것. 김씨는 “퇴원해서 지금은 집에 있다. 괜찮으니 애써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팀원들은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며 집으로 몰려왔다. 김씨는 병자 아닌 병자가 돼야 했다.“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부장과 팀원들에게 미안해요.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꾀병을 부렸는데, 그분들은 위로도 모자라 문병까지 와줬으니까요. 그날 이후로는 절대 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요.” 회사원 이모(29·여)씨도 ‘핑계’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다. 회사에서 단합대회 삼아 계획한 산행이 너무 싫어 다리를 다쳤다고 핑계를 대며 며칠 전부터 일부러 절뚝절뚝 다리를 저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여줬다. 심지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예약전화를 거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행 전날, 이씨는 그만 커피 물을 끓이다 커피포트를 넘어뜨려 다리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붕대를 감고 덴 곳을 소독해야 하는 자신을 보며 이씨는 ‘거짓말이 준 천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 잘못 처리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한 ‘굴욕’의 순간들 회식이나 사내 행사에서 빠지기 위한 핑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업무 실수를 핑계로 둘러대다간 자칫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다. 의류업계에 종사하는 하모(39·여) 과장은 최근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하 과장은 홍보부 소속으로 브로슈어, 카탈로그, 사보 등을 총괄한다. 이 업무들은 대개 외주를 주기 때문에 홍보대행사 등 하청업체와 함께 일하는 때가 많다. 지난달 중순 부서장에게서 “패션 카탈로그를 15일 이내에 제작해 달라. 이달 말 열리는 패션 전시회에 사용해야 하니 일정을 꼭 맞춰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하 과장은 당시 다른 업무가 밀려 있어 부서장의 지시사항을 깜빡 잊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서장이 독촉해오자 하 과장은 그때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하 과장은 “하청업체 담당 직원이 몸이 아파 며칠째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곧 출근해서 작업한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순간을 모면했다.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다른 일로 하청업체를 찾은 부서장이 업체 사장에게 아픈 직원의 안부를 물었던 것. 하 과장의 핑계는 들통이 나고 말았다.“쥐구멍에라도 찾아들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어요. 하청업체에 부서장이 직접 방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죠. 그날 이후 부서장의 신뢰를 회복하느라 애먹었습니다.” 포털사이트 업체에서 근무하는 신모(30) 대리는 접대비 명목으로 나온 회사 돈을 잘못 썼다가 상사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신 대리는 회사와 거래관계가 돈독한 B업체에 주로 접대를 해왔다. 신 대리는 한 달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B업체와 식사를 했는데, 그날은 분위기가 너무 좋다 보니 유흥주점까지 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평소 접대비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나왔다. 결국 신 대리는 나머지 금액에 대한 핑계를 대야 했다. 신 대리는 상사에게 여의도에 위치한 A업체와 식사를 한번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상사는 “여의도에서 여기까지 오기는 좀 멀지 않냐.”며 신 대리를 추궁했고 결국 거짓말이 들통나고 말았다.“그날 상사가 회사에서 돈 관리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며 엄청 혼냈죠.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더라고요. 한번만 봐달라고 싹싹 빌어서 겨우겨우 넘어갔죠. 생각도 하기 싫어요.” 사건팀 stylist@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4) 담배 가게와 담배 피우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4) 담배 가게와 담배 피우기

    김홍도의 ‘담배 써는 가게’다. 이 그림에는 남자 넷이 등장하는데, 각각 하는 일이 다르다. 먼저 아래쪽을 보자. 아래의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넓은 잎사귀를 펼쳐서 다루고 있다. 그 아래에 차곡차곡 쌓인 것은 담뱃잎이다. 필자는 담배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지만, 위 그림이 담뱃잎을 가공하고 있는 것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위쪽을 보자. 위쪽 왼편의 사내는 작두로 장방형으로 생긴 물건을 가늘게 썰고 있다. 오른편의 사내는 작두질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이 사내가 오른팔을 기대고 있는 커다란 나무 상자는 돈궤로 보인다. 물론 돈 이외의 다른 것을 넣기도 할 것이다. 작두 앞에는 둥근 물건과 삼각형 물건이 있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다. 작두로 썰고 있는 물건도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왼손으로 꽉 누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흔들리면 안 되는 물건이다. 추측건대 그림 아래쪽의 웃통을 벗은 사내가 차곡차곡 쌓은 담배를 작두로 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래쪽 왼편에 있는 탕건을 쓴 사내는 부채질을 하면서 책을 읽고 있다. 아마 소설 따위의 가벼운 책일 것이다. ●18세기 엽초전·절초전 상권 분쟁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은애전(恩愛傳)’에 참고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강진현의 처녀 은애는 자신이 정조를 잃었다고 헛소문을 낸 노파를 죽인다. 이 사건을 보고 받은 정조는 은애를 정녀(貞女)라고 하면서 살려주고 이덕무에게 ‘은애전’을 짓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애가 아니고, 정조의 말이다. 옛날 어떤 사내가 종로 거리의 담배 가게에서 패사(稗史)를 읽는 것을 듣고 있다가 이야기가 영웅이 실의하는 곳에 이르자, 홀연 눈초리가 찢어지도록 눈을 크게 뜨고 입에서 거품을 내뿜다가 담배 써는 칼을 집어 들고 패사를 읽는 사람을 찔러 그 자리에서 죽이고 말았다. 패사는 곧 역사소설이다. 영웅인 주인공이 좌절하는 대목에 이르러 소설에 빠진 사내가 흥분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칼을 들어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 만 것이다. 정조는 아마도 이 사건을 심리했거나 아니면 관계되는 문서를 읽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담배 가게에서 소설을 읽었다는 것이다. 담배 가게는 약국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조선후기 서울 시민의 카페와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고담(古談)을 하기도 하고 또 소설책을 읽기도 했다. 그림 위쪽의 돈궤에 기대어 있는 사내나 책을 읽고 있는 사내는 아마도 놀러 온 사람일 터이다. 담배를 썰어서 파는 곳을 절초전(切草廛)이라 한다. 조선 후기에 와서 담배가 널리 퍼지자, 조정에서는 담배 판매의 독점권을 갖는 엽초전의 개설을 허락하였다. 그 뒤 담뱃잎을 그냥 팔거나 큼직하게 잘라 파는 엽초전에서 담뱃잎을 사다가 피우기 좋도록 가늘게 썰어서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것은 엽초전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18세기 이래 엽초전과 절초전 사이에 상권을 둘러싼 분쟁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절초전도 국역(國役)을 담당하기로 하고 절초의 독점판매권을 얻었다. 하지만 뒤에 절초전의 절초 독점 판매권은 더 영세한 상인들이 절초를 파는 것을 막는다는 문제를 야기해 1742년 폐지된다. 그러다 1791년 육의전(六矣廛) 이외 모든 시전의 금난전권(禁亂廛權)을 없앤 신해통공으로 인하여 다시 담배를 썰어 파는 가게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위 그림은 아마도 신해통공 이후의 사정을 반영한 것일 터이다. ●송시열은 금연론자… 정조·정약용은 골초 담배는 17세기 초에 들어온 것이다.‘인조실록’ 16년(1638) 8월 4일조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몰래 담배를 심양에 보냈다가 청나라 장수에게 발각되어 크게 힐책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는 병자호란(1636)으로부터 불과 2년 뒤이고, 소현세자를 비롯한 많은 조선 사람들이 심양에 억류되어 있을 때였다. 이 당시 심양의 청나라 사람도 담배를 좋아해 뇌물로 가져갔던 것인데, 청 태종이 담배의 중독성에 주목해 금지하였으므로 담배를 가지고 간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날의 기사를 보자. 이 풀은 병진년(1616)·정사년(1617) 어림에 바다를 건너 들어왔다. 피우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리 성행한 것은 아니었는데, 신유년(1621)·임술년(1622) 이래로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위의 기록에서 보듯 담배는 1616년에서 1617년 사이에 처음 전래되었고, 불과 5년 뒤인 1621·1622년간이면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졌던 것이다.‘인조실록’ 6년(1628) 8월19일조에 광주(廣州)의 선비 이오(李晤)의 응지 상소를 보면 정묘호란 이후 조정에서는 청나라의 공격에 대한 대비책은 세우지 않고 “여러 신하들이 비변사에 모여 농담이나 지껄이고 담배만 피울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바,1628년이면 이미 담배가 조정의 관료들 사이에도 널리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담배에 관한 문헌은 무수하게 많다. 그 문헌들은 대개 두 가지로 갈린다. 담배 유해론과 담배 유익론이다. 담배가 유해하다는 것은 그것의 중독성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명인들 역시 담배에 관해 서로 의견이 갈린다. 대동법을 만들었던 명재상 김육, 고문의 명인이었던 이식, 그리고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인 송시열은 모두 담배를 싫어한 금연론자였고, 역시 고문의 대가였던 장유,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 군주인 정조, 그리고 정조를 능가하는 학문의 태두 정약용은 담배 유익론자이자 골초였다. 이들이 남긴 담배에 관한 글을 읽어보면 요즘과 다를 바 없다. 건강에 나쁘고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것이 담배 유해론자의 견해이고, 그럴 수도 있지만 심화(心火), 곧 스트레스를 다스리기에 담배가 인간에게 이롭다는 것이 담배 유익론자의 견해다. ●흡연도구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까지 담배의 해로움이 널리 퍼지고, 또 조정에서 이따금 담배 금지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담배는 17세기 이래 일상에서 없앨 수 없는 필수적 기호품이 되었다. 서울 시전에는 절초전만 생긴 것이 아니라, 흡연도구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까지 등장했던 것이다.‘동국여지비고’란 책을 보면, 군기시와 약현의 연죽전(煙竹廛)에서는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인 담뱃대와 담배통을 팔았고, 종로의 도자전(刀子廛)에서는 장도, 은비녀, 부인네의 패물, 금은 가락지와 함께 담배통을 팔았다고 한다. 이교익(1807∼?)의 작품 ‘쉴 때 피우는 담배 한 모금’에서처럼 심심하면 손이 가는 것이 담배다. 담배 역시 일종의 ‘마약’이다. 담배의 중독을 이덕무는 ‘한죽당섭필’에서 아주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우연히 여러 사람과 각각 좋아하는 것을 말하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담배·술·고기 셋이지요.“ 내가 물었다. “만약 다 갖추지 못한다면 어떤 것을 빼겠는가?” “먼저 술을 빼고, 다음에 고기를 뺄 겁니다.” 내가 그 다음 뺄 것을 묻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담배를 뺀다면 산들 무슨 재미가 있겠소.” 담배가 없다면 살아 있어도 재미가 없다는 말은, 사실 흡연이 쾌락을 유발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담배의 중독 상태를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필자는 건강상 문제로 담배를 끊었지만, 몇 년 전까지는 골초 중의 골초였다.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 한 갑,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 갑, 그리고 오후 6시부터 잠들 때까지 한 갑, 이렇게 하루에 세 갑을 피웠다. 집에도, 연구실에도, 들고 다니는 가방에도 여러 종류의 담배가 늘 구비(?)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문헌을 읽다가도 담배에 관한 기록이 나오면 모아 두었다. 만약 건강이 허락된다면 다시 그 향기를 맡아보고 싶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기로에 선 화물파업] 기간산업 2차피해 확산

    화물연대의 총파업 3일째인 15일 부산항과 평택항,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 등 주요 물류지역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들어갔다. 물류 기능의 중단으로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 기간산업에 대한 2차 피해도 가시권에 진입했다. ●부산 포화… 신항으로 입항 변경 부산항의 컨테이너 장치율은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컨테이너 반출입 물량은 평소(3만 4288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의 29.3% 수준(1만 53TEU 기준)에 그쳤다. 일부 컨테이너 부두는 장치율이 90%를 훌쩍 넘어서 사실상 부두 운영이 마비된 상태다. 감만 BGCT(대한통운+허치슨)의 장치율는 97.2%에 도달, 더 이상의 컨테이너 하역 및 반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감만 BICT(한진+세방)와 신감만 부두도 장치율이 각각 94.5%와 92%로 포화 상태다. 장치 능력이 5만 5000TEU로 부산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신선대부두도 장치율이 86.9%를 기록해 컨테이너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천항도 컨테이너 장치율이 71.4%로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다만 광양항과 평택항은 컨테이너 장치율이 각각 31.4%,45%로 다소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 “8일밖에 못버틴다” 경북 포항에서는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업체들의 제품 출하가 전면 중단됐다. 화물연대 포항지부 소속 800여대와 비조합원 차량 2500여대는 운행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이날부터 포스코의 하루 2만 5000t에 이르는 육상운송용 제품 출하가 중단됐다. 포스코는 10곳의 비상 야적장(5일분 13만t)과 회사내 빈창고(3일분 7만t) 등으로 8일정도 버틸 수 있으나 파업이 장기화되면 조업 단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대제철 포항공장도 지난 13일부터 철근,H빔 등 제품 출하가 중단되고 있다. 하루 출하량이 9000t에 이르는 현대제철은 사내 야적장 3곳에 제품을 쌓아놓고 있으나 4일 정도밖에 버틸 수 없다. 강원도에 몰려있는 시멘트 업체도 물류난 가시권에 접어들었다. 삼척 동양시멘트는 하루 1000t을 수송했으나 이 날은 시멘트운송트레일러(BCT) 운행이 중단됐다. 현대시멘트와 쌍용양회 영월공장도 평소 각각 BCT 250여대와 200여대가 운행됐지만 이날 10대와 4대만이 각각 가동됐다. LG화학 등이 자리잡은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도 재료 공급과 제품 출하에 차질을 빚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 출하가 중단되면 식품포장용 필름가공업체의 생산이 중단되고, 이어 식품업체의 완제품 생산이 차질을 빚는 등 연쇄 피해가 발생한다 전국종합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토요영화] 밤은 부드러워

    ●밤은 부드러워 (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25분) 딕 다이버(제이슨 로바스)는 정신질환에 걸린 니콜 워런(조안 폰테인)을 치료하다 그녀에게 매력을 느껴 결혼까지 하게 된다. 부부로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던 이들은 로즈마리가 나타나면서 위기를 맞는다. 딕이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배우 로즈마리(제니퍼 존스)와 사랑에 빠지고마는 것. 로즈마리와 점점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된 딕은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고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그를 찾아온 것은 원망과 질책이 아니라 충격적인 이별 통고였다. 어느새 건강을 되찾은 부인 니콜은 그에게 “토미(세자르 다노바)를 사랑하며 그와 재혼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헨리 킹 감독의 영화 ‘밤은 부드러워’(1962년)는 원작소설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의 정신질환이 악화되고 자신의 건강도 나빠지자, 힘겨운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7년 만에 완성한 소설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기성가치가 무너져 가는 역사적 전환기 속에서 한 남자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 방황이 절묘하게 묘사돼 있다. ‘위대한 개츠비’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는 피츠제럴드의 영혼과 신념이 잘 녹아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감독은 임종 직전의 피츠제럴드를 영화로 옮긴 ‘사랑의 흔적’을 만들었을 만큼 작가의 생애에 관심이 많았다. 원작소설을 최대한 충실히 영화에 옮긴 것도 그런 까닭에서이다. 헨리 킹 감독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도제 시스템을 통해 연출가로 성장한 덕분에 착실히 시대의 흐름에 보조를 맞추는 작품세계를 구사해 왔다.‘정오의 격전’‘건파이터’ 같은 서부극을 비롯해 전쟁영화, 누아르 액션 영화에 이르기까지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작품을 내며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온 감독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특히 두각을 나타낸 장르는 멜로극. 이 영화는 물론이고 ‘킬리만자로의 눈’‘태양은 또 떠오른다’‘사랑의 흔적’ 등에서 그는 멜로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선보였다.‘밤은 부드러워’는 일련의 작품군에서도 두고두고 대표작으로 꼽히는 멜로물이다. 원제 ‘Tender is the Night’,142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노후 준비하셨습니까} (하) 대안으로 떠오른 퇴직연금

    [노후 준비하셨습니까} (하) 대안으로 떠오른 퇴직연금

    2005년 12월 도입된 퇴직연금의 가입 비중은 가입 대상자의 10%에도 못 미친다. 가입한 기업 대부분은 중소기업이다. 2010년을 기점으로 퇴직연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다양한 제도개선이 절실하다. ●퇴직연금, 고를 수 있다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회사 내부가 아닌 외부 금융사가 운용, 퇴직 후 일괄지급이나 연금 형태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퇴직금 제도를 완전 대체하는 것은 아니며 노사 합의로 도입하도록 했다. 회사가 어려워지더라도 일정 수준의 퇴직금을 보장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뉜다. 이외에 개인퇴직계좌(IRA)가 있다. DB는 퇴직때 받을 돈을 미리 정하는 방식으로, 현행 퇴직금과 비슷하다. 퇴직급여의 60% 이상을 반드시 금융회사에 적립해야 한다.DC형은 내야 할 돈이 정해지고, 퇴직금은 운용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기업이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1 이상을 1년에 한번 근로자의 개인계좌에 내면 그 금액을 근로자 자신이 금융상품을 골라서 운용하는 것이다. 근로자가 알아서 운영하는 것이다. 지난 4월말 현재 퇴직연금 가입자의 50.7%가 DB형,39.8%가 DC형을 골랐다. 적립금 기준으로 보면 DB형이 65.7%로 DB 선호도가 높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신세라 선임연구원은 “기업규모가 크고, 노조가 있을수록 DB형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지원책 마련을” 도입 대상인 5인 이상 사업장(50만 4210개) 중 퇴직연금을 도입한 곳은 3만 6017개로 7.1%다. 이중 500인 미만 사업장이 3만 5851개로 99.5%다. 근로자를 기준으로 할 경우는 9.4%다. 적립금 규모는 3조 3772억원이다. 도입 당시 예상치 10조∼30조원을 훨씬 밑돈다. 미국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인구프로젝트 책임자인 리처드 잭슨 연구원은 “퇴직연금이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되고는 있으나 진행속도가 느리다.”고 지적했다. 잭슨 연구원은 지난해 ‘한국의 고령화’라는 보고서를 출간한 바 있다. 진행 속도가 느린 원인은 세제혜택이 적고 수급권 보호장치가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현재 퇴직연금의 혜택은 개인연금을 포함해 월 300만원까지의 소득공제다. 납부금액에 대해 평균 세율의 3분의1 정도를 부과하는 호주와 비교하면 턱없이 미흡하다. DB형을 선택할 경우 책임자인 기업이,DC형에서는 금융사가 각각 망했을 경우 가입자는 퇴직연금을 받기가 어렵게 된다. 퇴직연금은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다. 즉 퇴직연금을 지급할 금융사가 사업을 중단하거나 파산하면 가입자들이 돈을 떼일 수 있다. 기업이 망할 경우는 임금보장채권기금에 의해 3년치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전부다. 보험연구원 류건식 선임연구위원은 “DB형에 대해서는 미국의 연금지급급부공사(PBGC)와 같은 지급보증기관,DC형에 대해서는 예금자보호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10년이면 22조원가량의 퇴직보험·신탁적립금 제도가 없어진다. 퇴직금을 사내 적립할 경우 ‘손실 및 비용’(손비)으로 인정해주는 손비처리 비율이 지난해 35%로 줄어든 뒤 2009년부터는 30%로 줄어든다. 반면 퇴직연금은 100% 손비로 인정된다. 전문가들은 이에 앞서 다양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CEO칼럼] 떠오르고 있습니까, 가라앉고 있습니까/김진수 CJ제일제당 사장

    [CEO칼럼] 떠오르고 있습니까, 가라앉고 있습니까/김진수 CJ제일제당 사장

    1965년 국내 기업 중 1위는 어디였을까. 요즘 세대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동명목재이다. 오늘날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다. 기업에는 부침(浮沈)이 있게 마련이다. 스타벅스나 GM,e베이는 지금 가라앉고 있다. 소니도 화려한 과거보다는 가라앉는 추세이다. 반면 구글은 떠오르고 있다. 애플은 심각하게 가라앉았다가 최근 크게 떠올랐다. 정보가 투명해지고 빠르게 공유되면서 부침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결국 기업도 되는 기업은 더 잘되고 가라앉는 기업은 더욱 빨리 쇠퇴해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떠오르는 기업과 가라앉는 기업은 공통된 몇가지 속성이 있다. 우선 떠오르는 기업은 ‘고객’에게 잘 보이려 일한다. 고객이 무엇보다 최우선 고려사항이다. 지금하고 있는 일 하나하나가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과 직결돼 있다. 반면 가라앉는 기업은 ‘상사’에게 잘보이려 한다. 상사를 만족시키려는 마음이 우선시되는 사람이 조직에 많다. 떠오르는 기업은 ‘현장’ 중심인데 가라앉는 기업은 ‘서류’ 중심이다. 회사의 많은 리더들이 현장에 가까이 가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 기업은 스피드가 붙게 되고, 실시간(리얼 타임) 경영을 하게 된다. 반면 회사의 리더들이 올라오는 서류를 기다리는 회사는 느릴 수밖에 없다. 현장을 멀리 두고 서류로 판단하려하니 서류는 많아지고 고객의 소리는 멀어지게 된다. 또 떠오르는 기업은 모든 분야에서 실행과 새로운 시도가 부단히 이뤄진다. 반면 가라앉는 기업은 지식습득과 분석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요즘 대기업들은 직원들의 학습과 지식 습득에 많은 투자를 한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은 지식습득이나 분석을 하면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는 우(憂)를 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실행과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오직 가라앉을 뿐이다. 떠오르는 기업일수록 미흡하거나 잘 안되는 것에 대한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많다. 고객불만, 인재 이탈, 경쟁사 대비 부족한 점 등을 상·하간에 고민하며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눈에 띈다. 새로운 기회 포착과 더 큰 성취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가 늘 조직의 고민거리다. 반면 가라앉는 기업은 조직 상·하간에 자기들이 잘한 성공담을 자랑하거나 경쟁사가 못하는 점에 대해 주로 얘기한다. 경영환경 변화가 주는 기회보다는 위협에 초점을 맞춘다. 현재에 대한 충족감 때문에 가진 것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관념이 많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기업의 행동 특성에서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몰입’이다. 몰입하고 있는 조직이나 사람은 틀림없이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올바른 가치의 추구는 조직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몰입은 성취에 대한 집착이며 치열한 실행이다. 보통 사람이 웬만한 노력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어주는 것이 몰입이다. 몰입은 또한 높은 수준의 열정이다. 사실 조직에서 열정은 전염된다. 특히 리더의 열정은 전염이 잘된다. 그래서 리더의 열정이 중요하다. 지식이 다소 약한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있어도 열정이 없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 만일 열정이 많은 리더가 많다면 그 회사는 틀림없이 떠오를 것이다.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는 어떤가요. 떠오르고 있습니까. 가라앉고 있습니까? 김진수 CJ제일제당 사장
  • 신경영 15주년… 새출발 삼성

    신경영 15주년… 새출발 삼성

    “전세계가 글로벌 시대로 가는 이때에 삼성이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 아니 2.5류가 된다. 지금 안 변하면 절대, 내가 여간해서는 ‘절대’라는 말을 안 쓰는데 지금 변하지 않으면 절대 1류가 못 된다.” 2008년 6월5일 오전 8시 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사. 하얀 와이셔츠 탓인지 유난히 까만 머리색의 ‘젊은’ 이건희 회장은 TV화면 속에서 카랑카랑 외치고 있었다. 시계는 15년을 거슬러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 사내방송팀이 제작한 ‘신경영 15주년 특집 프로그램’을 지켜본 삼성맨들의 얼굴에는 자긍심과 착잡함이 교차했다. 특히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15만대의 불량 휴대전화를 스스로 불태우는 화형식 장면에서는 울컥하는 직원도 있었다. 방송이 끝나자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삼성맨)에게 필요한 것은 자부심이다. 저때만 해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 세계 최고가 됐다는 자부심이 넘쳤는데 지금은 다들 주눅들어 있다. 가장이 그러니까 가족들도 덩달아 어깨가 처져 있다.” 신경영을 계기로 삼성은 양(量) 경영에서 질(質) 경영으로, 국민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했다. 전 사원 연봉제,7·4제(7시 출근 4시 퇴근),S급인재 영입 등 크고 작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삼성은 기업문화 변화를 선도했다. 그러나 이날은 자축보다는 자성의 분위기가 강했다. 특집방송을 내보낸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기념행사도 없었다. 조용히 ‘뉴삼성’의 출발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특검’ 이후 내놓은 경영 쇄신안에 따라 이건희 회장 퇴진, 이재용(이 회장의 외아들) 전무 해외출국, 전략기획실 해체 등이 진행 중이다. 다음달 1일부터는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로 새 출발한다는 각오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내보낸 ‘6월 월례사’에서 “최근 몇 개월간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어렵고 힘든 시련을 겪었지만 신경영 정신을 이어받아 남보다 앞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경영을 실천하자.”고 각별히 당부했다. 이어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빠른 추격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실추된 기업 이미지 회복에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어려움을 겪는 양계 농가를 돕기 위해 이날부터 ‘닭 50만마리 먹기’ 캠페인에 들어갔다. 다음달까지 전국 97개 구내식당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삼계탕, 닭볶음탕 등 닭요리를 무료로 제공한다.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에 이어 임직원 여름휴가도 기름 피해를 입은 충남 태안으로 가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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