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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주부 우울증] ‘마음의 감기’로 여기고 적극적 자세면 극복할 수 있다

    [커버스토리-주부 우울증] ‘마음의 감기’로 여기고 적극적 자세면 극복할 수 있다

    ’주부 우울증’은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만 곁들인다면 빠른 시일 안에 완치가 가능하다. 우울증에 대한 인식 개선도 시급하다. 우울증 환자를 특별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도 사라져야 한다. 주부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감기’ 정도로 여기고,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한다면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시·군·구 등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정신건강센터는 주부 우울증 환자의 상담과 치료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광주 서구에 사는 30대 주부 김모씨는 2009년 첫째 아이를 낳은 이후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최근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우울증은 더욱 깊어졌다. 김씨는 “배 속의 둘째 아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첫째 아이를 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자신의 이 같은 생각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김씨는 서구보건소가 운영하는 상무금호 보건지소에 전화를 걸었다. 보건지소 정신보건팀은 곧바로 김씨를 만나 상담을 했다. 호르몬 변화, 외로움, 육아 부담 등에 따른 스트레스가 우울증의 원인으로 꼽혔다. 전문 상담 요원들은 김씨가 현재 임신한 상태라서 약물치료 대신 적극적인 상담 서비스를 펴고 있다. 박상하 팀장은 “상담을 거듭할수록 김씨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보건지소는 또 최근 남편의 사망 이후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으로 두 차례 자살을 시도한 서모(51)씨를 상담과 병원 입원치료를 통해 거의 회복 단계로 끌어올렸다. 박현희 소장은 “서씨를 상담한 결과 그가 두 자녀와 물에 빠져 죽으려고 맘먹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며 “약물치료와 가정 방문, 전화 상담 등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보건지소는 이들처럼 우울증을 겪고 있는 환자 300여명을 등록해 지속적인 상담과 보호 관찰 활동을 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전업주부이거나 이혼해 자녀들과 살림을 꾸려 가는 여성들이다. 주부들은 특히 출산과 육아·경제적 궁핍·가정불화·외로움 등으로 우울증에 자주 노출된다. 주부 우울증은 자칫 자녀와 동반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는 만큼 예방대책 마련도 절실한 실정이다. 선제적 예방책이 없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사례도 수두룩하다. 울산 남구에 거주하는 A(41)씨는 지난해 11월 둘째 아이를 출산한 이후 육아와 가사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었다. A씨는 육아 스트레스가 산후 우울증으로 이어져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했을 뿐 아니라 시도까지 했다. 그러던 중 A씨는 지난 2월 초 남구보건소 모자보건실에서 산모를 대상으로 한 산후 우울증 선별검사에서 수치가 높게 나와 같은 달 13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남구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 치료 당시 A씨는 남편과 함께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A씨에게 스트레스 및 우울증 관리 방법을 상담·치료했고, 남편에게는 산후 우울증의 심각성을 알리고 육아·가사를 함께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이 센터 이경진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육아와 가사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산후 우울증으로 이어져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면서 “반면 남편 등 가족은 여성의 산후 우울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본인 치료와 주변 가족의 도움을 병행하는 치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50대 주부 김모씨도 구가 운영하는 정신보건센터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김씨는 어릴 적부터 부모의 무관심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결혼을 했지만 남편의 경제적 무능, 폭언, 술 주정, 또 시댁과의 갈등으로 우울증을 앓게 됐다. 이후 약물 치료를 받으며 증세가 약간 호전됐으나 남편의 알코올 중독 문제가 재발하고 생활고까지 겹치면서 우울증도 재발했다. 자살까지 시도했던 김씨는 자살 사고 이후 동 주민센터를 통해 사례 관리 대상으로 지정되면서 동 주민센터와 정신보건센터, 이웃 등의 폭넓은 관리를 받고 있다. 김씨는 정신병 증상에 대한 주기적 모니터링을 받고 스트레스 대처 능력 향상 교육, 분노 조절 프로그램, 자조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또 김씨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인 남편은 같은 센터 알코올 사례 관리팀에서 치료와 관리를 받고 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에 사는 김모(35)씨 역시 3살과 5살짜리 사내아이를 두고 있는 전업주부다. 청소와 빨래 등 집안 살림을 하면서 개구쟁이 아이를 돌보다 보니 저녁에는 파김치 되기 일쑤였다. 남편도 업무상 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은 데다 주변에 터놓고 대화할 친구도 없어 하루 종일 혼자 지낼 때가 많았다. 이웃과 단절된 공간 속에서 스트레스가 쌓여 가면서 잠을 못 잘 정도로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파트 20층에 살고 있는 김씨는 어느 날 “한 마리 새가 되어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고 판단한 김씨는 병원을 찾았는데 주부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3개월에 걸친 약물치료와 함께 남편의 도움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편은 가급적 저녁 약속을 잡지 않고 일찍 귀가해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단지 내 공원을 함께 산책하고 주말에는 골프 등 스포츠를 즐기도록 아이 돌보는 일을 도맡았다. 집안 청소도 남편 몫이었다.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말도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처럼 우울증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사례로 점증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반드시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는 주부 우울증 관련 자살이나 각종 범죄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고쳐야 하고, 고칠 수 있는 ‘질병’으로 보기보다는 개인의 ‘성격’ 문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 역시 전문가의 상담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큰 것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조사 결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일반인의 67%가 스스로 우울증을 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국민보건증진 차원에서 일부 지자체와 광역정신보건센터를 시범사업으로 운영하며 우울증 환자 등의 자살 예방과 상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홍보 부족 등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아는 주민들은 많지 않다. 김명권 광주서구보건소장은 “정신건강센터로 연락만 하면 전화·방문 상담 등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우울증 등으로 판단되면 관내 정신의료기관과 협진 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도 우울증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5월 직장 정기 건강검진 항목에 우울증 등 정신질환 검사를 포함하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노동안전위생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이 같은 종합대책을 마련한 것은 일본 자살자 수가 연간 3만명을 넘기는 등 자살 및 우울증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1998년 청소년과 청년층을 대상으로 국가 차원의 자살방지 프로그램을 제정·선포한 이후 우울증 등을 국민건강 우선과제로 삼고 자살과 우울증에 대처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오고 있다. 유성은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울증 환자를 특별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 탓에 많은 환자가 병원에 잘 가지 않는데 가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면서 “병원 말고도 우울증을 상담하는 정신보건센터 등이 속속 문을 열고 있는데도 이런 정보를 알리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산후 우울증은 남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가사와 육아를 돕고 아내와 함께 동반 대처하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윤여철 현대차 전 부회장 복귀…노조 주말특근거부 등 맡을 듯

    지난해 1월 울산공장 노조원 분신 사망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고문으로 물러났던 윤여철 현대차 전 부회장이 전격 복귀한다. 정규직 노조의 주말 특근 거부와 사내하청 노조의 8500여명 전원 정규직화 요구 등 사면초가에 빠진 현대차를 구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24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윤 전 현대차 부회장이 이달 중으로 노무담당 부회장으로 회사로 복귀한다. 윤 부회장은 현재 출근 중이다. 현대차는 노조가 주말 특근을 7주 연속 거부하면서 4만 8000여대 규모의 생산차질을 빚고 있다. 또 사내하도급 인력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는 사내하도급 노조도 이날부터 부분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히든카드’로 윤 전 부회장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아니 술어미… 우선 행리부터 풀고 봅시다. 나귀들도 작도간(斫刀間)에 들여 매야지요.” “나귀들 수발이야 수하 행중이나 차인꾼 들이 잘 돌보지 않겠습니까. 걱정 붙들어매시고 여기 앉아보시지요.” “시생이 본래부터 물색에는 뜻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소매를 당기는 게 아닙니다. 어디 켕기는 구석이 있소?” 봉당 쪽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행수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평소 거동에 흐트러짐이 없었던 월천댁이 조급하게 구는 것이 적잖이 의아했다. “그날 병구완했던 사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행중 사람이 되돌아와서 말래 숫막촌까지 업어간다기에 그냥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만.” “지금 말래 도방에서 구완을 받고 있소. 다리가 부러져서 온전히 걷자면 달포는 꼼짝 못 하고 구완을 받아야 할 것이오.” “그런데 그 사람의 행방을 눈이 시뻘게져서 수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 월천댁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지 상반신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군불을 때다가 별안간 밖으로 뛰어나온 것을 깨닫고 다시 정주간으로 달려가서 잉걸불을 수습하고 나왔다. 소생인 구월이나 늙은 중노미는 이웃에 방아품을 팔러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누구였소?” 곁에서 누가 엿듣는 사람도 없건만 월천댁은 행수에게 귀엣말을 하였다. 행수가 더욱 의아하여 되물었다. “탁발하는 운수였단 말이오? 나물 먹고 푸른 똥 싸는 절간 중놈이 비석거리에는 무슨 소간사가 있어 나타났단 말이오?” 월천댁이 소스라쳐 행수 정한조의 무릎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에그… 그 목소리 좀 낮추시오. 누가 듣겠습니다.” “행색이 어땠소? 주모더러 살보시하라고 눈알을 부라립디까?” “에그머니나… 그런 음탕한 소리 그만둬요…. 스님이란 사람이 목자가 온화하지 못했지요. 목탁은 두드리고 있었지만, 힐끗 보아도 두 눈이 얼음에 자빠진 쇠눈깔처럼 번들거려서 소름이 끼칩디다. 염불을 외우면서도 눈자위를 가만두지 않고 정주간이며 봉노를 서캐 잡듯 뒤집디다. 누굴 찾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소매를 내저으면서도 집 앞뒤를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요. 쇤네가 도대체 누굴 찾느냐고 파고들었더니 그제사 요지간에 벼랑길에서 실족한 사내가 혹시 이 숫막에서 묵어간 적이 있느냐고 묻습디다. 나이가 이팔인 딸 소생을 둔 어미 심정이 어떠한지 짐작하시겠지요? 중이든 속이든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가슴부터 두근거린답니다.” “그래서?”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만, 스님의 목자가 하도 불량해 보이고 제가 안다 하고 섣불리 입을 나불댔다간 큰 동티라도 입을 것 같아 우리집에서는 잔술이나 팔지 객주는 치지 않는다하고 둘러대며 모르쇠로 딱 잡아떼고 말았지요. 정말 모르느냐고 되반들거리는 낯짝을 모잽이로 쳐들고 하냥다짐을 하는데, 데면데면하게 굴었다간 당장 이웃을 불러 무릎맞춤이라도 할 것 같아 쇤네 등골이 오싹합디다. 그 유들유들한 스님이 내 속내를 속속들이 꿰고 있을 것 같아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디다. 외정도 없는 집에 계집사람 혼자서 과년한 여식을 두고 숫막을 경영한답시고 천방지축 요량없이 날뛰다가 언제 된불을 맞게 될지 조마조마하답니다. 언제 어떤 곡경을 치를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이웃에 방아 품앗이 간다고 핑계대고 다른 데로 가보라고 방색하고 말았습니다만, 다시 찾아와서 지분거리면 그땐 또 뭐라고 둘러댈지 생각이 올지갈지 하답니다.” “봄 얼음 건너듯 언행에 조심만 한다면 별 탈 있을라구…. 그 땡추는 어디로 갔을까?” “방색하고 나서 힐끗힐끗 훔쳐보았더니 저진터재 쪽으로 휑하니 되돌아갑디다.” “저진터재라면 내성 쪽이 아니오?” “그야 알 수 없지요.” “바랑은 지고 있었소?” “이제 보니 그렇네요. 탁발한다는 스님이 짊어진 바랑도 보이지 않습디다.” “속담에… 배를 타는 손님 중에 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십중팔구 무뢰배라 했습니다. 궐자가 중의 가사를 입고 있었으나 본색은 부랑배였을 거요.” 정한조는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
  • 현대차 사내하청노조 “총파업”… 생산 ‘휘청’

    엔저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조(비정규직노조)의 부분 파업 돌입, 정규직 노조의 주말 특근 거부 등으로 삼중고를 겪고 있다. 부분 파업과 특근거부에 따른 생산차질만 1조원에 달하고 있다. 엔저 등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는 24일부터 사내하청 직원 8500여명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부분 파업에 돌입하고, 오는 26일부터는 울산과 아산, 전주 등에서 총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앞서 현대차는 3500명의 비정규 직원을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조는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불법 파견 관련 법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정규직 전환은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사내도급 제도는 자동차뿐 아니라 조선과 철강, 전자 등 주요 기간산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노동부가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0년 사내하도급 현황’에 따르면 1939개 사업장의 근로자 132만명 가운데 24.6%인 32만여명이 사내 수급업체 소속 근로자이다. 특히 조선과 철강업계는 사내수급업체 소속 근로자의 비중이 각각 61.3%와 43.7%로 높게 나타났다. 자동차 업계는 16.3%, 전자와 화학산업은 각각 14.1%, 28.8%에 이른다. 산업계도 회사가 어려울 때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는 현재 노동시장에서 무리한 정규직화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총 관계자는 “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내하도급은 세계 각국의 보편적 생산방식(300인 이상 기업 41.2%가 사내하도급 활용, 일본 500인 이상 제조업체 59.9% 사내하도급 활용)”이라면서 “하도급 직원의 전원 정규직화는 기업을 공멸의 길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노사가 합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본사는 물론 1, 2차 하청업체에까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노조의 주말 특근 거부로 4만 8000여대의 차량을 제때 만들지 못해 9500억원의 생산차질액이 발생했다. 여기에 비정규직 노조의 부분 파업까지 더해진다면 생산차질에 따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수만 명에 달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작업 거부 때문에 생계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조 관계자는 “같은 일을 하면서 사내하청이란 이름표를 달고 계속해서 저임금에 시달리며 살 수는 없다”면서 “현대차의 통큰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노조가 공장은 가동하면서 회사와 협상하는 것이 순리”라며 “현대차도 이에 적극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사내하도급법 여야 진통 예상… 통과 불투명

    ‘정년 60세 법제화’와 달리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고용을 보호하기 위한 ‘하도급법’은 진통을 거듭했다. 여야 이견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계와 경영계의 반론도 거센 상황이다.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2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근로자에게 차별 시정 신청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놓고 1시간가량 격론을 펼쳤지만 견해 차이를 줄이지 못하고 합의에 실패했다. 새누리당은 “근무 환경이 열악한 파견근로자 등 하도급 근로자들의 근로 조건을 개선하고 사내하도급을 노동법 영역으로 끌어들여 법적인 보호를 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입법을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노동계 등에서는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면 간접고용 형태를 용인·합법화하는 것이며, 불법 파견자에게도 면죄부를 주게 된다”며 반대했다. 그러면서 사내하도급보다 직접 고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요구했다. 사측 입장도 팽팽하다. 사내하도급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마련한 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면 기업에도 적잖은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한 기업 관계자는 “사내하도급 역시 서로 다른 회사 근로자이기 때문에 ‘차별’이 아니라 ‘대우가 다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환노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성태 의원은 “하도급법은 여야 이견이 극심해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환노위 구성이 7대8로 여소야대인 데다 새누리당 총선 1호 공약이라는 점, 이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보니 민주당 측의 신경전이 만만찮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한진 막내딸 조현민 진에어 상무 사내이사 등기

    진에어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딸인 조현민 전무를 자사 사내이사로 등기했다고 19일 밝혔다. 진에어는 대한항공이 출자해 설립한 저비용 항공사(LCC)다. 조 전무가 미국 국적이기 때문에 공시에는 미국 이름인 조 에밀리로 올라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진에어의 마케팅 부서장을 맡아온 조 전무는 올해 1월 대한항공 커뮤니케이션팀 상무도 겸하고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기아차 노조의 ‘꼼수 파업’?… 세습채용 논란 일자 “비정규직 돕겠다” 돌연 총파업 선언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가 사내 하청 분회 조합원의 분신 사태와 관련, 17~18일 부분 파업을 벌인 데 이어 19일 총파업에 나서기로 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노조 측의 강경한 대응은 그동안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제기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특히 최근 불거진 장기근속(25년 이상) 조합원 자녀의 ‘세습 채용’ 시비를 희석시키기 위해 ‘강수’를 선택했다는 의문이 일면서 ‘꼼수 파업’이 아니냐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18일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특별교섭을 사측에 요구했다”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그동안 꾸준히 이를 촉구했으나 사측이 거부하면서 최근의 근로자 분신 사태가 빚어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공문으로 접수된 특별교섭 수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현대·기아차 자본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며 “생산 현장의 사내협력사 제도는 기업의 이윤만 추구하겠다는 반근대적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17일 오후 2시 40분과 18일 0시 20분에 1시간씩 부분 파업을 벌였다. 노조는 또 사측의 모든 교육과 부서 협의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노사는 지난 두달여 동안 노사대책위원회를 통해 62만대 증산과 관련해 생산과 설비, 인력배치, 복지 등 일정 및 현안을 협의해 왔다. 그러나 최근 사내하청 근로자의 분신 사태로 증산체제 추진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증산이 합의되면 광주2공장 생산량은 현행 46.1UPH(시간당 생산대수)에서 66UPH로, 3공장 생산량은 23.1UPH에서 26UPH로 늘어나 연간 생산량은 50만대에서 62만대로 증가하게 된다. 노조는 또 노조, 지부, 지회, 비정규직 분회 등이 참여하는 분신 대책위를 구성할 방침이다. 현재 기아차 광주공장에는 6700여명의 정규직 사원과 430여명의 비정규직 사원이 근무하고 있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도색, 검차 등 독립된 생산공정에서 일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치며 지난 16일 분신한 김모(37)씨는 현재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지난 12일 생산직 신규채용 때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직계 자녀에게 파격적 특혜를 주기로 사측과 합의하면서 ‘생산직 대물림’과 불공정 논란을 빚었다. 노사는 이번 합의를 통해 1차 서류전형에서는 전체 합격자 가운데 장기근속자 등의 직계 자녀 숫자를 25%로 할당하기로 했다. 또 2차 전형(면접) 때 본인이 취득한 면접 점수의 5%(3.5점)를 가산해 주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사내 하청업체 비정규직 근로자인 김씨가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분신을 시도했고, ‘제 밥그릇 챙기기’란 비판에 직면한 노조가 이를 계기로 사측과의 모든 협의 중단과 ‘파업 예고’란 강수를 들고나온 것으로 보인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기아차 노조의 ‘꼼수 파업’?… 세습채용 논란 일자 “비정규직 돕겠다” 돌연 총파업 선언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가 사내 하청 분회 조합원의 분신 사태와 관련, 17~18일 부분 파업을 벌인 데 이어 19일 총파업에 나서기로 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노조 측의 강경한 대응은 그동안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제기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특히 최근 불거진 장기근속(25년 이상) 조합원 자녀의 ‘세습 채용’ 시비를 희석시키기 위해 ‘강수’를 선택했다는 의문이 일면서 ‘꼼수 파업’이 아니냐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18일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특별교섭을 사측에 요구했다”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그동안 꾸준히 이를 촉구했으나 사측이 거부하면서 최근의 근로자 분신 사태가 빚어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공문으로 접수된 특별교섭 수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현대·기아차 자본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며 “생산 현장의 사내협력사 제도는 기업의 이윤만 추구하겠다는 반근대적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17일 오후 2시 40분과 18일 0시 20분에 1시간씩 부분 파업을 벌였다. 노조는 또 사측의 모든 교육과 부서 협의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노사는 지난 두달여 동안 노사대책위원회를 통해 62만대 증산과 관련해 생산과 설비, 인력배치, 복지 등 일정 및 현안을 협의해 왔다. 그러나 최근 사내하청 근로자의 분신 사태로 증산체제 추진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증산이 합의되면 광주2공장 생산량은 현행 46.1UPH(시간당 생산대수)에서 66UPH로, 3공장 생산량은 23.1UPH에서 26UPH로 늘어나 연간 생산량은 50만대에서 62만대로 증가하게 된다. 노조는 또 노조, 지부, 지회, 비정규직 분회 등이 참여하는 분신 대책위를 구성할 방침이다. 현재 기아차 광주공장에는 6700여명의 정규직 사원과 430여명의 비정규직 사원이 근무하고 있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도색, 검차 등 독립된 생산공정에서 일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치며 지난 16일 분신한 김모(37)씨는 현재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지난 12일 생산직 신규채용 때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직계 자녀에게 파격적 특혜를 주기로 사측과 합의하면서 ‘생산직 대물림’과 불공정 논란을 빚었다. 노사는 이번 합의를 통해 1차 서류전형에서는 전체 합격자 가운데 장기근속자 등의 직계 자녀 숫자를 25%로 할당하기로 했다. 또 2차 전형(면접) 때 본인이 취득한 면접 점수의 5%(3.5점)를 가산해 주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사내 하청업체 비정규직 근로자인 김씨가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분신을 시도했고, ‘제 밥그릇 챙기기’란 비판에 직면한 노조가 이를 계기로 사측과의 모든 협의 중단과 ‘파업 예고’란 강수를 들고나온 것으로 보인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는 줄곧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하였다. 말래 도방 거리에 당도해 보았자, 호들갑스럽게 맞이해줄 호박 갈보가 있다거나 갈롱을 떨며 육허기를 채워줄 동자치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뜨끈뜨끈하게 군불을 지핀 구들장에 허리를 굽고 한잠 늘어지게 자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더라고, 10냥짜리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얻게 된 것도 걸음을 빨리하게 만들었다. 그가 향도하는 행중 식구들은 흉·풍년에 따라서 들쭉날쭉하였지만 대개 4, 50여 명을 헤아렸다. 그 동사하는 식구들을 탈없이 영솔하기 위해선 어떤 경난에도 자신을 지체없이 던지는 희생이 필요했다. 소년 시절부터 행상들에게 익히 보아온 범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시에서 억매흥정으로 뜸베질하는 떠돌이 행상을 부상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징치하고, 신표 없이 부상 행세를 하며 눈먼 돈을 노리는 자들을 찾아내 장시에서 내쫓는 일도 모두 그가 앞장서서 해온 일이었다. 그랬기에 언문밖에 모르는 그가 내성 행상에서 도감의 직책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날씨는 차가워 콧날이 시큰거릴 정도였으나 저녁거미가 내려올 무렵 그는 장대 끝에 내걸린 용수들이 바람에 시달리는 말래 숫막거리에 당도하였다. 거느린 식솔도 없고 정처도 없는 부상들이 묵을 처소라면 조선 팔도 어디서나 숫막뿐이었다. 이토록 스산하게 해질 무렵에는 필경 객회가 쓸쓸하기로, 가랑이 벌리고 앉아 지분이나 다스리는 동자치라도 있다면 먼발치에서 힐끗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심란함을 달랠 수 있으련만, 도방 봉노에는 고린내 등천하는 사내들만 우글거리고 있었다. 마침 문틈으로 조용조용 읊조리는 배고령(裵高靈)의 신세타령이 가만가만 새어나왔다. 주인 주인 나오소 좌사 손님 들어가오 서해안에 사는 사람 서로서로 형제인데 고을 백민끼리 남남 보듯 할 수 있소 산토끼가 죽어가면 여우도 슬퍼하네 금수도 그러한데 한심하다 우리 세상 무거운 등짐 지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아침에는 동녘 하늘 저녁에는 서녘 땅 어쩌다 병이 나면 구완할 이 전혀 없네 사람에게 짓밟히고 텃세한테 괄시 받고 언제나 숨겨두면 까마귀의 밥이 되고 슬프다 우리 인생 이럴 수가 어찌 있소 우리네 산다 한들 몇만 년을 살 것이오 한데 묶어 단결하고 기율로써 다스리면 형도 좋고 아우 좋고 서로서로 도울제면 동네방네 좋을시고 우리 고을 좋을시고…… 문 닫은 봉노에서 살담배들을 어찌나 피워댔는지 매캐한 연기가 샛재 잔허리에 아침 안개 끼듯 하였다. 봉노 한쪽에는 저녁거미 내리는 것을 보고 켜둔 산초 기름등잔이 타고 있었으나 담배 연기 때문에 사람들 얼굴도 분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행수가 들어서자, 호박고누를 두고 있던 축들이나 술푼주를 가운데 놓고 추렴을 하던 동배간들이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두었던 술푼주와 섞박지 그릇을 치우고 윗목으로 썩 비켜 앉았다. 어슥버슥 누웠던 동무들도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고 앉았다. 봉노 안에는 쉰내와 고린내가 등천하여 코를 들이댈 수 없을 정도였으나 그것을 가지고 고약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무 하나가 벌떡 일어나 시렁에서 목침을 내려 행수에게 건넸다. 내왕 길목에 있는 숫막에는 행수만 차지하는 목침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제법 결기가 있다는 길손도 얼떨결에 행수의 목침을 범접했다간 귀싸대기를 얻어맞는 봉변을 당할 수 있었다. “포주인은 만나보았습니까?” “몇십 년째 염막에 틀어박혀 울 밖 출입도 않는 사람이 어딜 가겠나.” “흥정은 아퀴를 지었습니까?” “소문이 자자한 자린고비가 값을 눅게 잡아줄 리가 없지… 대신 소금 두 섬을 덧거리로 얻었네.”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임자들 요기는 하였나?” “장떡에 술국으로 얼요기를 하였습니다.” “만기는 어디 갔나?” “아침 선반머리에 곁꾼 둘을 데리고 샛재로 되짚어 갔습니다. 얼추 올 때가 되었는데요……” “그 숫막에 눕혀 두어도 월천댁이 아금받게 구완을 해줄 텐데?” “만기가 의원이 가까운 말래로 업어 와야 하겠다고 아득바득 우기는 통에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구억터 소동에서 나귀조차 놓아버리는 실수에 미련하게 굴었던 것이 제깐엔 부담이 되었던가 봅니다.” “국에 덴 놈 물 보고 분다더니… 그럴 테지…” “위인이 뉘집 행랑것이나 장물림 같아 보였지만, 얼추 기신을 차리고 나면 그만한 허우대도 찾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인즉슨 언중유골이었으나 행수는 귀여겨듣지 않고 슬쩍 넘겼다. “경황중이라 난 간색도 해보지 못했다네.”
  • [‘창조산업’ 공기업이 뛴다] 한국수력원자력(주)

    [‘창조산업’ 공기업이 뛴다] 한국수력원자력(주)

    한국수력원자력이 인사 제도와 조직 문화의 혁신에 힘을 쏟고 있다. 그동안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에 나선 것이다. 먼저 사내·외 공모로 고위급 간부를 선발해 ‘인사 순혈주의’를 없앴다. 지난해부터 기획지역협력본부장과 법무실장, 경영혁신실장 등을 외부 전문가로 채웠고 올 2월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역 원전본부장에도 외부 인사를 발탁했다. 승진 관련 제도도 많이 뜯어고쳤다. 공기업 최초로 일정 비율 이상의 외부 전문가를 직원 승진 심사에 참여토록 하는 ‘개방형 승격심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 인사 청탁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성과 중심의 인사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객관적 성과와 역량을 점수화하고 평가하는 승진 시스템도 도입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그동안 인사철마다 되풀이되던 승진을 위한 ‘줄 서기와 청탁’ 문화가 최근 인사에서는 사라졌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없애는 데도 적극적이다. 간부들이 방에 있는지를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도록 한 ‘재실등’을 없앴다. 또 전자결재나 메일,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면 보고를 줄임으로써 결재를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문화를 없애기도 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상반기 처리 가능 법안 50여개… 각 상임위 “무력화 됐다” 반발

    상반기 처리 가능 법안 50여개… 각 상임위 “무력화 됐다” 반발

    여야 6인 협의체가 공통 의제로 추린 총 83개의 법안 중 상반기 임시국회에서 처리 가능한 것으로 분류한 법안은 50여개지만, 실제로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처리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처리 법안 대상을 놓고도 여야 지도부와 해당 상임위 간 입장차가 뚜렷하거나 여야 간, 정치권과 정부·관련업계 간 이견이 큰 법안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 법안 통과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돼 추후 해당 상임위별 조율 여부가 주목된다. 각 상임위에는 17일 “여야 6인 협의체가 상임위별 법안 논의 기류, 우선순위 등을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논의 법안을 정해 버리는 바람에 상임위가 무력화됐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이런 대표적인 상임위가 환경노동위와 정무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다. 환노위 차원의 현안 과제는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이다. 그러나 여야 6인 협의체는 채용 시 학력차별 금지, 공공기관 지방인재의무고용제 도입 등을 우선 요구하면서 환노위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현안 법안들도 여야 간 의견차가 커서 쉽게 결론을 내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은 민주통합당이 반대하고 있다. 사내하도급 계약 때 적법 도급과 불법 파견의 구분 기준이 불분명해지는 등 불법 파견을 합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환노위 관계자는 “정년 연장 및 근로시간 단축,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은 모두 대선 공약이지만 상임위 자율에 맡겨야 한다”면서 “당 지도부에서 대통령 취임 100일인 6월 4일까지 입법화를 못 박은 것은 상임위를 거수기 취급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휴일 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고 경영상 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정도가 그나마 상반기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미래위에서는 ‘방송법’과 ‘방송통신위원회 설치·운영법’이 최대 이슈지만 여야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핵심은 공영방송사 이사·사장 선임제도다. 민주당이 사장 선임 등에서 3분의2 이상 동의를 필요로 하는 특별 다수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반대 입장이 분명하다. 정무위 소속 법안들은 경제민주화 추진을 놓고 청와대 기류를 살피는 여당 지도부와 야당 지도부 간 입장이 첨예하다. 새누리당 위원들 내에서도 경제민주화 강경파와 보다 친기업적인 온건파가 갈린다. 청와대가 수위조절론을 제기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등 논의가 험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산업자본 소유지분 한도를 9%에서 4%로 축소하는 ‘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등도 법안소위에 회부된 상태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는 이날까지 법안소위를 통과한 법안이 취업후상환학자금대출(ICL) 학생의 군복무 기간 이자를 공제하는 ‘취업후학자금상환특별법’ 하나뿐이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 확대안’은 여야 지도부가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상임위 내에서 여야 간 의견차가 크다. 새누리당이 예산만 지원되는 ‘무상교육’을, 민주당은 예산지원에 의무화를 더한 ‘무상의무교육’을 주장하는 탓이다. 이미 한 차례 부결된 ‘대중교통 이용촉진법’도 6인 협의체가 국토위 중점 법안으로 올려놨지만 4월 내 처리 전망은 부정적이다.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이 법률과 관련해 여당 간사인 강석호 의원은 “택시업계 지원금 및 규제 추가를 놓고 정부와 업계 간 조율이 안 돼 당분간 상임위 처리는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대선 공약으로 언급된 일부 복지 공약은 4월 국회 통과가 긍정적이다. 맞벌이 부부에 대해 우선적으로 아이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돌봄지원법 개정안’,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의무 규정을 명문화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 시설 미이용 영유아에 대해 일시 보육 서비스를 지원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등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대통합 공약으로 제안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도 전망이 밝다.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자녀 육아휴직 신청가능 연령을 만 8세 이하로 상향 조정하는 ‘남녀고용평등법’ 등도 상반기 내에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세습 채용’ 논란 기아차 비정규직 분신

    기아자동차가 최근 장기근속 노조원 자녀 채용 시 가산점을 부여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 회사 광주공장 사내하청 노조원이 분신을 기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6일 오후 3시 5분쯤 광주 서구 내방동 기아자동차 2공장 동문 앞 사내하청분회 천막 앞에서 사내하청분회 조직부장 김모(37)씨가 휘발유를 몸에 뿌린 뒤 분신을 시도했다. 김씨는 어깨와 목 등에 3도 화상을 입고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 노조원은 “김씨가 갑자기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하자 곧바로 불을 끈 뒤 병원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유서를 쓰거나 동료들과도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노조 관계자는 “김씨가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할 것을 요구했으나 사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신규채용 절차를 진행한 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며 “이 때문에 최근까지 두달여 동안 천막농성을 벌여 왔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와 비정규직 하청 노조원들을 상대로 정확한 분신 이유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기아차는 최근 장기근속자 자녀에 대한 가산점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 ‘세습채용’ 논란이 일고 있다.기아차 노사는 최근 생산직 정규직원 채용 과정에서 정년퇴직자와 장기근속자 등의 직계 자녀 숫자를 25%로 할당하고, 이들에게 2차 전형(면접) 때 본인이 취득한 면접 점수의 5%(3.5점)를 추가로 주는 방안을 확정하면서 불공정 논란과 함께 ‘노조원 자녀 대물림’ 채용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이번 채용에서는 3만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으나 대부분이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기아차 광주공장의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아차 노조는 소수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회균등의 원칙마저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다. 무작정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동백섬이 선연하게 보이는 해운대는 싫었다. 대신 자갈치 아지매가 손짓하는 ‘남포동’과 부산 속 작은 섬인 ‘영도’를 단 하루 만에 돌았다. 화통한 남포동 꼬불꼬불 미로엔 ‘없는 게 없다’ 부산에 몇 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눈을 감고도 ‘부산 가이드북’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종종 허풍을 떤다. 그건 부산을 아끼고 좋아하는 내 마음의 표현법이었다. 누군가 부산 여행을 도와 달라 손을 내밀기라도 하면, 나는 넓은 오지랖을 쫙 펴곤 여행 멘토를 자처했다. 부산 초보자의 단골 질문 중 하나는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멀어?”다. 멀다.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지하철을 타면 최소 45분이 걸린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해운대에선 맨얼굴의 부산을 느낄 수 없다. ‘짠’하고 ‘찐’한 부산을 만나고 싶다면, 부산역에서 신평행 1호선 지하철을 타면 된다. 부산역에서 지하철로 5분이면 남포역과 자갈치역에 도착한다. 큰 도로를 중앙에 끼고 왼쪽이 자갈치시장, 오른쪽이 남포동이니 두 역 중 어디에 내려도 무관하다. 그곳엔 “어서 오이소” 하고 두 팔을 내젓는 부산이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정신없이 돌아가는 남포동엔 없는 게 없다. 먹을 것도 ‘천지 삐까리매우 많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입을 것도 ‘천지 삐까리’, 볼 것도 ‘천지 삐까리’. 남포동의 초입은 대영시네마와 메가박스 부산극장이 마주 보고 서 있는 ‘BIFF부산국제영화제’ 광장. 광장에는 현재 영화인 48명의 손이 박제돼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베니스영화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과 배우 이자벨 위페르, 홍콩의 욘판 감독도 핸드 프린팅 대열에 합류했다. 남포동 인근의 낡은 극장에서 시작된 ‘작은 영화제’ 앞에는 이제 ‘국제’라는 호칭이 붙는다. 보물찾기 게임을 하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영화인의 손도장을 찾다 정신을 차리니 구불구불한 골목 안이었다. 얼키설키 뒤엉킨 골목은 거대한 미로 같았다. 지하철역을 등지고 남포동 BIFF광장에 서면, 앞으로 창선동 먹자골목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부평동 족발골목, 오른쪽으로 광복동 패션거리가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릇노릇한 씨앗호떡과 굵직한 부산 떡볶이가 차려진 노점상을 비집고 쭉 직진하면 ‘아리랑거리’다.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의자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분주하게 비빔당면, 국수 등을 흡입하고 있다. ‘도떼기시장, 깡통시장’ 등 다양한 별명을 자랑하는 국제시장도 아리랑거리와 멀지 않다. 1945년 해방 이후 각종 군수 물자가 시장을 통해 풀렸는데, 지금도 국제시장에선 일제, 미제 등 각종 수입품이 팔리고 있다. 왁자지껄 수다스러운 남포동을 떠나 자갈치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니, 찾아가기 참 쉽다. 오랜만에 찾은 자갈치 시장엔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최민식 사진작가가 그리워졌다. ‘날 것의 사진’을 고집한 그가 왜 그토록 자갈치 시장을 사랑했는지, 시장 주변을 한 바퀴만 돌면 알 수 있다. 자갈치 시장은 펄떡이는 물고기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언제나 역동적이다. “회 한 접시 먹으소.” 권하는 호객행위도 여기선 거추장스럽지 않고 정겹다. 자갈치 시장 뒤편에선 영도다리가 훤히 보였다. 1 자갈치시장에선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장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길이 분주하다 2 신신한 해산물이 가득한 시장 남포동 길거리 음식 트로이카 씨앗호떡 BIFF광장엔 긴 줄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는 단 하나. 씨앗호떡을 먹기 위해서다. 기름이 흥건하게 둘린 판 위에 찹쌀 반죽을 떨어뜨리면 금세 오동통하게 부풀어 오른다. 호떡의 가운데를 가위로 쭉! 그 속으로 땅콩, 해바라기 씨 등의 견과류가 두둑하게 들어간다. 뜨끈뜨끈한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한 찹쌀이 입 안에 엉겨 붙고 견과류가 오도독 씹힌다. 위치 부산시 중구 남포동 5가 BIFF광장 일대 가격 900~1,000원 비빔당면 국수만 비벼 먹는 건 아니다. 새하얀 당면도 부산에서는 새빨간 양념 옷을 입는다. 들어가는 내용물은 거창하지 않다. 면과 양념장을 분주하게 섞은 뒤 토핑으로 올라온 김치, 시금치를 곁들여 젓가락질 하면 된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2,000원 충무김밥 속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김밥’과 함께 부추 김치, 무 김치, 오징어 무침이 반찬으로 나란히 따라 나온다. 하얀 종이가 깔린 쟁반 위로 검정, 빨강의 조화는 참 곱다. 정신없이 김밥 하나, 반찬 하나를 떠 먹는 동안, 할머니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징어는 남기지 말고 다 챙겨 무래이, 안 그럼 혼낸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3,000원 영도등대는 태종대 여행의 메인요리다 ©나명선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수줍은 영도 한 맺힌 다리 너머, 외로운 섬 가수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화자는 영도다리를 서성이는 어느 사내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흥남부두에서 누이 금순이의 손을 놓친 오라비는 영도다리 난간 위에 걸린 외로운 초승달을 보며 흐느꼈을 것이다. 어디 금순이와 금순이의 오라비만 헤어졌을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피란민들은 하나같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간절한 주문을 외웠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잔인한 약속은 마음의 덫이었다. 희망고문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영도다리를 서성거렸다. 오늘은 오려나, 내일은 오려나…. 자갈치 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피란민의 애끓는 애환이 덕지덕지 붙은 영도다리를 건넜다. 그림자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말절영도·絶影島이 살았다는 섬이 바로 영도다. 실제 신라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도에선 말이 자랐다고 한다. 신석기 사람들에게도 영도는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신석기 유적인 ‘동삼동 패총’은 영도의 역사를 말해 준다. 국립 해양대학교 입구에 들어선 동삼동 패총 박물관에 바로 그 ‘패총’이 잠들어 있다. 먼 길을 온 여행자가 영도까지 찾아드는 이유는 뻔하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활을 쏘곤 했다는 ‘태종대’가 영도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던 버스가 태종대에서 멈췄다. 나는 태종대와 무려 세 번이나 만났다. 자갈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직접 싼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 태종대 축제에서 반딧불이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太宗臺태종대’라 쓰여 있는 묵직한 대형 돌덩이도 그대로였고, ‘다누비’ 열차도 여전히 손님을 태우고 씽씽 달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경사를 따라 쭉쭉 뻗은 나무가 조성돼 있고 그 사이사이로 살짝살짝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여줄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던 바다는 남항 조망지에서 인심을 썼다. 부산의 대표 항구인 남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항 조망지’는 야경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남항 조망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 조금만 발길을 옮기면, 태종대 최고의 명당인 전망대와 영도등대가 나오니까. 전망대엔 두 아이를 끌어안은 모자상이 세워져 있다. 전망대로 나가면 모자상의 비밀이 풀린다. 고개를 빼꼼 내밀자 신선이 노닌다는 신선바위와 자살바위가 양쪽으로 보였다. 모자상을 세운 건 다 자살바위 때문이다. 한때 한 해 평균 30명이 자살바위 인근에서 목숨을 끊었는데, 신기하게도 모자상을 세운 뒤로는 자살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주전자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주전자섬’은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내 눈을 따라다녔다. 어느 지점에서 보든 바다 위에는 주전자섬이 떠 있었다. 전망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다의 정중앙엔 주전자섬, 그 뒤로 대마도, 거제도가 나란히 서 있다. 물론 대마도와 거제도는 날씨가 쾌청한 날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손님이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마음이 급하겠지만 영도등대는 놓쳐선 안 된다. 영도등대를 봐야 태종대를 다녀갔다고 ‘인증’할 수 있다. 1906년 설립된 영도등대는 벌써 100살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당당했다. 태종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불투명해졌다. 어느덧 기차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도등대 위에 자리한 태종사는 끝내 오르지 못하고, 다시 뭍으로 나가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버스를 타고 영도다리를 지나던 순간, 신기하게도 배 멀미를 느꼈다. 1 영도등대 일대는 예술이 꽃피는 문화공간이다 2 바다가 펼쳐지는 태종대 산책로에선 봄을 만끽할 수 있다 3 여행객을 태우고 씽씽 달리는 다누비 열차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한국관광협회중앙회 www.koreatravel.or.kr 태종대 짬뽕 태종대에 도착하면 범상치 않은 중화 요릿집이 하나 버티고 있다. 이름부터 정직한 ‘태종대 짬뽕’. 문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손님이 많은 걸 보니, ‘맛집’이 분명하다. 짬뽕을 주문하면 종업원의 질문이 되돌아온다. “태종대 짬뽕 맞지예?” ‘태종대’ 세 글자에 유독 힘을 싣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살이 오른 꽃게, 입을 살짝 벌린 홍합, 도톰한 오징어 등…. 국물을 한 입 떠 먹으면 “살아있네.”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주말에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3시에도 손님이 줄어들지 않는다. 빨리 후루룩 먹고 일어나는 건 암묵적인 예의다. 찾기도 쉽다. 버스 정류장에서 태종대 입구 쪽으로 걸어가면 왼편으로 식당이 보인다. 주소 부산시 영도구 동삼 2동 986-9 문의 051-405-2992 대표메뉴 일반 짬뽕 4,500원, 태종대 짬뽕 6,000원, 태종대 짜장 5,500원, 하얀 짬뽕 6,000원 ▶travie info 추천 여행사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면 약 3시간. 비싼 기차 비용을 들여서 내려갔건만, 초행길이라 헤매면 곤란하다. 더구나 주말이면 부산행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도권 거주자라면 열차 티켓부터 현지 이동까지 도와주는 여행사의 힘을 빌려도 좋다. 기차 상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홍익여행사는 다양한 부산 여행 상품을 갖추고 있다. 상품가격도 KTX 왕복 비용과 크게 차이나지 않아 저렴한 편이다. 문의 홍익여행사 www.ktxtour.co.kr 02-717-1002 태종대 탐방 코스 태종대를 돌아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걷기, 다누비 탑승, 유람선 탑승. 이중에서 4.3km의 순환도로를 운행하는 열차 ‘다누비’를 타면 태종대 관광은 훨씬 편하다. 단, 주말이면 탑승객이 워낙 많아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다. 주요 코스 광장 승차장→태원자갈마당→구명사→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정문 입구 하차장 탑승료 1,500원 부산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9번 출구, 시내버스 88번, 101번 남포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6번 출구, 시내버스 8번, 30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당·정·청 이달 임시국회 처리 민생법안 63건 최종 확정

    당·정·청 이달 임시국회 처리 민생법안 63건 최종 확정

    새누리당이 정년을 단계적으로 60세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본격 추진한다. 매년 15만명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러시가 이어지고 있어 처리가 시급한 현안이라는 이유에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새누리당의 지난해 총선 공약인 정년 연장 방안에 동의, 심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관련 법률안의 실시 방식과 시기를 놓고 여야 이견 차이가 극심해 ‘무사 통과’를 속단하기 이르다는 관측이다. 16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새누리당의 ‘4월 임시국회 중점법안’에 따르면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민생 법안 63건을 최종 확정했다. 법안은 지난해 총선과 대선 공약, 여야 6인협의체 논의안, 4·1 부동산 대책안, 새누리당 주요정책 및 긴급현안 등으로 구성됐다. 이는 지난달 30일 고위 당·정·청 워크숍을 시작으로 ‘3각 논의’를 벌인 결과다. 총·대선 공약이자 6인협의체 논의안에도 포함된 주요 법안은 경제민주화·일자리와 관련된 게 대부분이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60세 정년 의무화를 담은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비롯해 기업 채용 평가 요소에서 ‘학력’을 배제한다는 내용의 ‘고용정책 기본법’ 개정안도 제출됐다. 이른바 ‘스펙초월 채용시스템’ 도입안이다. 학벌이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조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채택됐다. 사내 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 시정 신청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사내 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도 중점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 야당에서는 입법 취지에 큰 틀에서 동의를 나타냈다. 그러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이견이 적지 않다. 정년 연장안과 관련, 새누리당은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60세로 연장을 주장하는 한편, 민주통합당은 조건없는 60세로 하자는 입장이다. ‘사내 하도급법’에서는 저항이 더 크다. 민주당과 노동계에서는 새누리당의 추진안과 관련해 “불법이 만연한 사내 하도급 시장에 합법적인 사내 하도급 사용의 길을 열어주는 면죄부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북한인권법’은 민주당의 반대가 가장 표면화된 법안 가운데 하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민주당 측이 대부분의 안에 대해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논의해보자고 했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생각지도 못한 세부적인 부분에서 이견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는 마침 내성 장시에 들렀다가 회정해서 찾아온 행수를 맞이하며 앉은자리에서 굽도 떼지 않고 엉덩이를 들썩하는 시늉만 하였다. 정한조가 내성 장시 일대를 휘어잡고 있을 정도로 면목이 단단하고 배짱이 드센 위인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나마 예의를 차린다는 것이 그 모양이었다. 그는 우선 시절부터 물었다. “시절은 봄이라 하는데… 십이령길은 아직도 한절이나 다름없을 테지?” “아닙니다. 회정하는 샛재길에서 눈밭을 헤적여 보았더니… 눈밭 속에 노란 복수초가 빼식하게 웃으며 꽃잎을 틔우고 있었지요.” 침울하던 안색이 갑자기 밝아진 송석호가 혼잣소리로 푸념하였다. “평생을 젓국내만 등천하는 포구에만 틀어박혀 엉덩이에 두께살이 앉다 보니, 시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가늠할 방도가 없다네.” “만에 하나 누가 염전을 떠메고 줄행랑을 놓을까 심기가 불편한 게지요?” 반은 농인 것을 알아차린 포주인은 배시시 웃음 띠고 나서 말했다. 그 나이에 볼따구니에 가뭇가뭇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평소 섭생을 소홀히 한 탓이었다. 정한조가 해야 할 흥정은 않고 객담부터 늘어놓았다. “적잖이 식산하였는데… 출타를 삼가시니 입성을 고쳐 가지는 것은 내키지 않더라도 섭생이나 제대로 하시지요. 이제 그만하시면, 냉골을 지키고 앉아 기한에 떨고 누추한 입성으로 신산을 겪지 않아도 될성부른데요.” “홀몸으로 살아가자니, 그게 어디 손쉬운가.” “그 연세에 걸맞은 수절 과수댁이라도 얻어 살면, 얼굴에 검버섯 피는 것은 모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홀아비로 사는 게 여간 골몰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 하였네. 임자 알다시피 이 나이에 섣불리 계집 얻어 살송곳 박아보겠다고 진땀 흘려가며 몸부림치다가 일만 그르치고 불알에 똥칠만 할 게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성깔 사나운 계집에게 귀싸대기나 얻어맞는 환난을 겪게 될 게야.” 온당한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못 들은 척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찾아보면 용모도 가무잡잡하고 삭신도 노골노골한 까막과부도 없지 않습니다. 아무리 콧등이 센 계집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내 행세 서툴다 해서 언감생심 하늘 같은 남편에게 손찌검을 하겠습니까.” “여색을 멀리한 지 오래되었다네. 뿐만 아니라, 숨이 턱에 와닿은 내 나이를 몰라서 그러나? 삶은 팥에서 싹이 날 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도깨비 방귀를 잡겠다고 설치는 것과 다름 아닐세.” “여색을 밝히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남정네란 가솔을 갖추고 살아야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지요. 길고 긴 겨울밤에 질화로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 조근조근 얘기할 상대라도 있어야 일찍 늙지 않습니다.” “그 말 듣고 보니 눈물이 나려 하네…. 그러나 임자 하는 말을 다시 씹어 보면 내가 측은해서 하는 말인지 임자 스스로 심기를 달래려는 말인지 분간을 못 하겠네. 내 걱정은 말고 임자 오지랖이나 챙기게.” “혹시 이 말은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그게 뭔데?” “털은 있고 이빨은 없으되 곶감 씨를 빼물고 있는 짐승이 있는데 그게 무슨 짐승인지 아십니까?” 또 무슨 흰소리인가 해서 귀를 기울였던 포주인은 안색이 돌변하며 이죽거렸다. “예끼 이 사람, 버르장머리하구선. 묵어서 쉰내나는 그 소리 벌써 몇번째인가. 고얀 사람. 임자 오지랖부터 챙기라니깐 농지거리가 기탄이 없네 그려.”
  • 전주에 핀 영화꽃 190송이… 대중성·예술성 뿌리 찾을까

    전주에 핀 영화꽃 190송이… 대중성·예술성 뿌리 찾을까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내홍을 겪었다. 지역언론과 갈등을 빚은 프로그래머의 부당 해임 논란, 고석만 신임 집행위원장과의 의견 충돌에 따른 스태프의 집단사표가 이어졌다. 우려를 딛고 JIFF는 심기일전했다. 오는 25일부터 새달 3일까지 열리는 제14회 JIFF는 프로그램을 정리했다. 6개 메인 섹션과 19개의 하위 섹션 프로그램으로 꾸려졌던 지난해와 달리 하위 섹션을 11개로 줄였다. 반찬 가짓수만 많았던 한정식 상차림을 간소하게 한 셈. 대신 재료의 선도는 한껏 끌어올렸다. 지난해 상영작 중 세계 첫 상영(월드 프리미어)은 36편, 제작국을 제외한 최초 상영(인터내셔널프리미어)은 1편이었지만, 올해에는 각각 45편과 18편으로 늘어났다. 총 190편의 상영작 가운데 김영진(왼쪽)·이상용(오른쪽) 프로그래머가 추린 추천작 7편을 소개한다. 마테호른 판권·배급사업을 병행하는 JIFF가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구매했다. 올 로테르담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디데릭 에빙어 감독의 작품.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사는 프레드는 정신이 나간 듯 보이는 레오를 도와주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살며 마을 사람들의 눈총을 산다. 하지만 프레드는 레오에게 집안일을 알려주는 등 점점 마음을 쓰게 된다. →김영진의 추천평:아내를 떠나보낸 후 혼자 사는 중년 남성이 낯선 노숙자를 보살피면서 우정을 확인한다.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과 놀라운 반전까지 선사해줄 아름다운 삶의 찬가다. 마스터 ‘부기나이트’ ‘매그놀리아’ ‘데어 윌 비 블러드’로 유명한 폴 토머스 앤더슨의 최근작.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와 경합 끝에 은사자상과 공동남우주연상(필립 세이모어 호프먼·호아킨 피닉스)을 쓸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후 사회 부적응자로 살아가던 사내가 신흥종교 교주를 만나 포교에 동참하지만, 더 큰 폭력으로 또 다른 상처가 생긴다. →김영진의 추천평:구원 대신 맹목적인 믿음을 추구하는 인간이 견인하는 광기의 드라마다. 앤더슨의 절도 있는 연출 아래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과 65㎜ 촬영이 만나 영화예술이 이를 수 있는 절경을 유감없이 펼친다. 센트로 히스토리코 마뇰 드 올리베이라와 페드로 코스타 등 포르투갈의 두 거장과 빅토르 에리세(스페인), 아키 카우리스마키(핀란드)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네 감독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기마랑이스를 배경으로 풀어낸 옴니버스 영화다. 세계 영화계를 통틀어 최고령인 올리베이라(105) 감독의 신작을 볼 수 있는 건 영화팬에겐 축복이다. →김영진의 한마디:손님 없는 식당의 외로운 주인(카우리스마키), 혁명에 실패한 후 미쳐버린 대위(코스타), 과거의 명성이 퇴색한 폐허 같은 공장(에리세), 기마랑이스의 관광 가이드(올리베이라)의 시선을 따라가며 유럽의 근대사를 관통한다. 디지털 삼인삼색 2013:이방인 중 풍경 ‘숏!숏!숏!’과 더불어 JIFF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디지털 삼인삼색’(영화제 측이 3명의 감독에게 화두를 던지고 제작비를 지원, 30분 내외의 디지털 영화를 의뢰)의 올해 주제는 ‘이방인’이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영화작가 장률은 서울에 사는 이방인의 풍경을 다룬다. 사람과 도시를 바라보며 “누군들 이방인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김영진의 한마디:많은 시간, 사람들은 서로에게 풍경으로 존재한다. 이 생경함은 때론 당신에게 어떤 감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풍경은 여전하나 감동은 서서히 변한다. 경계에 선 인간을 지속적으로 조명해 왔던 장률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아메리카 ‘심판’ ‘성’과 더불어 프란츠 카프카의 3부작으로 불리는 ‘아메리카’는 끊임없이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JIFF는 카프카 탄생 130주년을 맞아 ‘카프카, 영화를 만나다:카프카 특별전’을 마련했다. 블라디미르 미차렉이란 낯선 감독은 원작에 대한 뛰어난 해석과 스타일리시한 화면 구성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상용의 한마디:수많은 버전의 ‘아메리카’가 있지만, 더 스타일 넘치는 화면으로 미국에 대한 풍요로운 상상력을 제공하는 영화다. 물론 그 이면에는 카프카라는 20세기 예술가의 비전이 스며 있다. 돌아올 거야 오빠와 소녀 크리스가 한적한 도로 위에 남겨진다. 부모는 돌아오지 않고 오빠는 방법을 찾겠다며 크리스를 남겨둔 채 떠나가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크리스는 근처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시간을 보내며 가족을 찾게 된다. 하지만 며칠 동안 세상은 조금 변해 있다. 브라질 감독 마르셀로 로르델로의 성장영화다. →이상용의 한마디:길 위에서 떠나버린 부모와 오빠를 기다리던 소녀의 성장담을 깔고 있으면서도, 남미의 풍경과 소녀의 마음이 흥미롭게 겹쳐지는 아름다운 영화다. 세상은 자신도 모르게 변하고, 그 속에서 주인공은 성장을 경험한다. 지젝의 기묘한 이데올로기 강의 슬로베니아의 석학 슬라보이 지제크와 함께 2006년 ‘지젝의 기묘한 영화 강의’를 내놓았던 소피 피엔스 감독의 후속 다큐멘터리. 이번에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룬다. 그가 다루는 핵심은, 우리가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간극과 시차다. 시청각 지제크 개론서라 부를 만하다. →이상용의 한마디:지제크이다. 언변과 재기 넘치는 예시만으로도 눈과 귀가 즐거워진다. 이데올로기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뛰어난 논증, 사색이 담겨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백기완(80)은 거리에 있었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투쟁 때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도 그는 늘 대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도 거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철거할 때도 백발의 백기완은 새벽같이 나와 천막을 지켰다.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는 곳이 나의 삶터”라고 말하는 백기완.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호통치고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 그는 여전히 젊다. 백기완의 삶과 예술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백기완을 거리로 이끈 것은 가난과 분단이었다. 1933년 황해도 은율 산자락에서 태어났다. 땅 한 뼘 갖지 못한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돼지기름 덩어리 한 조박(조각의 황해도 사투리)을 날로 먹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일제의 잔학한 수탈이 계속되던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왜놈들이 집에 와서 놋그릇을 뺏어갔어요. 쌀도 뺏고 밥그릇도 뺏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런데 엄마가 그만 울래요. ‘사내 새끼가 자꾸 울면 키가 안 큰다. 어서 커서 엄마 원수를 꼭 갚아 달라’고. 그때부터 민족의식이 싹 텄던 것 같아요.” 1946년 백기완은 아버지를 따라 맨발로 서울에 왔다. 도시는 냉정했다. 설렁탕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식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에게 서울은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진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항심리가 그에게 민중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학교는 꿈도 못 꿨다. 충무로 책방에서 주인 몰래 영어 사전을 외우다 쫓겨나기를 거듭했다. 그의 할아버지(백태주)에게서 항일투쟁 때 도움을 받았던 백범 김구(1876~1949)와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1887~1958) 선생이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마다했다. 아버지는 “백범에게 밥을 얻어먹으면 백범 같은 사람밖에 안 된다. 깡패가 되든 거지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혼자서 크라”고 했다. 1950년 전쟁으로 나라가 찢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은율에 있었다. 남쪽에서 참전한 작은형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니를 겨냥해서는 단 한 방도 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만 빵빵 쏜다”는 편지를 남기고 전장에서 숨졌다. 형의 유해를 찾으러 강원도에 갔다가 사격을 당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뛰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나라의 허리를 내 손으로 잇겠다고. 전쟁이 끝났다. 국토는 폐허였다. 백기완은 ‘나라가 온통 퇴폐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여겼다. “우리 생명을 심자”며 젊은 날을 나무심기와 농민운동에 바치기로 했다. 1953년부터 꼬박 7년. 그때는 불덩어리 같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뜨거운 청춘이 되살아나는 듯 백기완은 인터뷰를 멈추고 거친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바라보라 붉은 산 햇빛에 탄다/ 저 산을 푸르게 마음도 푸르게/ 저 산을 푸르게 조국도 푸르게/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우리는 선봉이다 자진녹화대” 100만 그루의 나무는 이 땅에 생명이 되었을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승만 독재가 강화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반 세기 넘게 이어졌다. 그는 ‘가대기 형(兄)’ 이야기를 했다. “가대기 형은 서울역에서 막일하던 지게꾼이었어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가대기 형이라고 불렀어요. 싸움을 잘했지만 주먹쟁이는 아니었어요. 내가 가난한 친구들이랑 주먹다짐을 하고 나면 이렇게 얘기했죠. ‘싸움은 있는 놈, 나쁜 놈들이랑 하는 거야. 없는 놈들끼리 싸워봤자 서로 코만 터져’ 그 말이 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백기완에게 ‘나라를 반으로 가른 미국의 앞잡이’였다. 정권을 바꿔가며 30년 넘게 이어진 독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새 길을 내자”며 4·19 혁명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 반란이 터졌다. 그가 “독재자의 야욕과 자본주의의 폭악이 결합된 극악한 체제”라고 부르는 ‘박정희 18년’의 시작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나왔다. 1974년 1월에는 긴급조치 1호가 나왔다.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던 백기완과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 풀려났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그때를 꼽았다. 유신은 그에게 ‘반통일, 반평화, 반균등, 반자유, 반문화, 반예술, 반역사, 반진보’였다. “유신 타파 운동을 하다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어요. 탕탕탕, 누가 현관문을 부수고 구둣발로 들어와 이불을 확 베끼더라고. ‘너희 집 안방에 강도가 구두를 신고 들어와서 이불을 벗기면 좋겠어. 빗자루로 쓸어 이 새끼야’ 그랬더니 나를 짓이기며 질질 끌고 가요. 기가 막혔습니다. 내 생각대로 목숨을 걸고 떳떳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끌고 가면 되겠어요. 온몸이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아내에게 “여보, 나 기다리지 마. 훗날 내 무덤에 이름 모를 꽃이 피면 그게 해방 통일의 꽃일 거야”라고 외쳤다. “지금 들으면 어쭙잖은 얘기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때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였으니 진지했어요. 거의 반 죽어서 감옥에 있는데 아내에게 편지가 왔어요. 새벽녘 추위가 더 매서운 법이니 견디어 내시라고.” 그러나 1975년 기다리던 아침이 오는 대신 믿고 따르던 장준하가 죽었다. 장준하는 그에게 “모든 통일은 좋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틀을 뒤집는 첫 걸음이 통일이다”고 알려준 스승이었다. 그는 “야비한 학살”이라고 했다. 여섯 달을 내리 울었다. 지난달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숨졌다”는 사인을 발표할 때 백기완은 다시 울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또 다른 군사 정권이었다. ‘반동분자’ 백기완은 다시 끌려갔다. 모질게 맞았다. 손톱이 뽑혔다. 정신을 잃으면 물바가지가 날아왔다. 독재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기 살기로 시를 쓰며 버텼다. 그때 쓴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작곡돼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중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추대됐다. 야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백기완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눈앞의 신기루였다. 백기완이 선거 이틀 전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를 포기했지만 ‘양김’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갔다.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민중을 위해 싸운 100여년을 승리로 매듭지을 기회를 날렸다.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1992년 말 다시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의 간판을 내걸고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총칼을 앞세운 독재는 사라졌지만 백기완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사이 독재의 폭력은 신자유주의로 횡포로 바뀌고 있었다. 노동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본의 낯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가장 극악하게 노동을 탄압한 정권”이라고 했다. 정도는 달랐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환산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민중이 해방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여름 한때 없이 떨어지는 가랑잎을 ‘개죽’이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뜨릴 생각은 않고 그 속에서 출세, 돈벌이, 명예, 행복만 좇다가 개죽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여, 개죽이 되지는 마시오. 개죽으로 사느니 마음껏 자라다가 거름이라도 되는 게 나아요.” 그가 이번 정부에 가장 우선해 요구하는 것이 노동 문제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최강서라는 젊은이가 서른넷에 목숨을 끊었어요. 유서에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5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적었어요.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었어요. 장례식에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아빠 왜 안 오냐’면서 사탕을 먹고 있어요.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이 안 보입디다. 하지만 나는 앞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는 않아요. 그대로 주저앉는 건 자본주의에 져서 인간성을 포기하는 겁니다.” 백기완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유신 잔재’라는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한마디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다시 ‘장산곶매’ 이야기를 했다. “장산곶매는 일찍이 애미 애비를 잃고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올빼미와 까마귀를 찾아가 밥 한 술을 빌다가 부리와 발톱을 빼앗겼죠. 땅 속으로 가면 쥐들이 쫓아오고, 바깥으로 가면 사람들이 보약이라며 달려들고. 그렇게 벼랑까지 쫓기다 보니 앞에는 끝도 없는 바다, 뒤에는 사람과 쥐새끼예요. 장산곶매는 벼랑 끝에서 넓은 바다와 하늘을 보며 깨친 바가 있어 힘이 약한 짐승은 잡아먹지 않고 일년에 두 번 나쁜 놈 하고만 싸우기로 합니다. 장산곶매가 싸움을 떠나는 날 밤이면 숲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요. 부리질로 제 둥지를 ‘딱, 딱’ 까부수는 소리. 집에 집착하면 온몸으로 싸울 수가 없어요. 싸움을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돼요.” 2009년 백기완은 “한평생 하는 일들이 죄다 실패였다. 다시 실패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 뛰어드는 그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백기완은 둥지가 없다. 백기완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하편에 계속).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2002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월드컵대표팀에게 강연, 히딩크 감독과 인연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 [사설] 희망버스 아닌 노사 협력이 되살린 한진重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문을 닫을 지경이었던 한진중공업이 노사 화합에 힘입어 5년 만에 선박을 수주할 기회를 잡았다. 근로자들에겐 드디어 일거리가 생길 것이고 회사는 회생의 희망을 갖게 됐다. 3년 전 일감이 떨어지자 회사는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노조의 파업·농성, 새 노조 지도부 출범 등으로 불화를 겪은 터라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한진중에 모처럼 생기가 돌면서 부산 영도의 경제계와 주민들도 덩달아 기뻐하고 있다. 한진중 사례는 노사가 한마음일 때 일자리를 지키고 회사도 발전한다는 교훈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돌이켜 보면 한진중이 극적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기까지 회사와 근로자 모두 마음 아픈 일이 참 많았다. 2010년 외국 선사와 맺은 컨테이너선 4척에 대한 건조의향서는 노조의 파업으로 본계약이 무산됐다. 이로 인해 감원이 이루어졌고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씨는 300일 넘도록 크레인 농성을 벌였다. 이 기간 중 야당과 노동단체 등 외부세력이 끼어들어 ‘희망버스’를 5차례나 동원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국회의 권고로 정리해고자 전원 재고용이 이루어졌지만 일거리 자체가 없었다. 사내 강경 노조인 금속노조 한진중 지회는 올해 초 동료의 시신까지 농성에 이용하는 등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한진중은 최근 벌크선 3척과 해양지원선 2척 등 5000억원 규모의 건조의향서를 체결하고 본계약만 남겨 두고 있다. 지난해 초 새로 출범한 온건 노조는 수주를 위해 발주처에 탄원서를 보내며 호소했다고 한다. 본계약이 성사되면 휴직 중인 근로자 300명도 일거리가 생긴다고 한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 이렇게 노사가 합심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데 믿고 일감을 주지 않을 고객이 어디 있겠는가.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 시위, 시신 농성으로 갈등을 키운 사람들은 이런 놀라운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직도 산업현장에는 생산성은 낮은데도 돈은 더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노조가 있다. 바로 ‘귀족노조’로 불리는 현대자동차 노조다. 현대차는 노사가 주말 특근수당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여 6주째 주말 가동을 못 하고 있다. 생산라인의 가동률을 높이려고 1000명을 더 뽑으려 해도 노조가 막는다니 어이가 없다. 조업 차질로 회사는 벌써 700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현대차 노조는 한진중 노조를 보면서 아무런 느낌도 없는가.
  • KBS ‘정권 편향 다큐 기획’ 싸고 노사 대립 팽팽

    KBS ‘정권 편향 다큐 기획’ 싸고 노사 대립 팽팽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통폐합이 노사 갈등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KBS는 18개월 만의 대대적인 봄 개편에서 기존의 ‘역사스페셜’ ‘환경스페셜’ ‘과학스페셜’ ‘스페셜’ 등 4개의 다큐 프로그램을 없앴다. 대신 지난 4일 ‘KBS 파노라마’와 ‘다큐극장’ 신설을 발표했다. KBS PD들은 신설될 ‘다큐극장’의 정치 성향을 놓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에 사측은 재협상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신설된 ‘다큐극장’의 기획 의도는 6·25전쟁 이후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밤 8시에 방영될 프로그램의 제작은 KBS 내부의 다큐국이 아닌 외주 제작사들에서 맡았다. KBS의 한 다큐국 PD는 “담당 본부장이 ‘KBS PD들을 못 믿겠다’는 사내 최고위층의 발언을 전했는데 그것이 제작 능력인지, 사상적인 부분을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공개한 한 외주 제작사의 초기 기획안에는 ‘10월 유신’ ‘새마을운동’ ‘육영수 여사 피습’ 등의 아이템이 포함돼 있었으나 이후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KBS PD들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KBS가 ‘청와대 맞춤형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KBS 측은 “외주 제작사를 선별할 때부터 공정한 평가를 거쳤고 걱정할 만한 내용을 다루지도 않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다큐극장’에 참여한 외주 제작사들에 대한 선정 시비도 불거졌다. KBS 노조에 따르면 최종 선정된 두 곳의 외주사 가운데 한 곳은 2005년 KBS ‘수요기획’에서 허위 내용 방송과 관련해 퇴출된 외주사를 운영했던 전모씨가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논란이 일자 전씨는 KBS에 글을 보내 “자진 하차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KBS는 해당 외주사에게 ‘다큐극장’ 1, 3편의 제작을 그대로 맡겼다. KBS의 한 PD는 “‘다큐극장’의 애초 기획안에 담긴 ‘유신’ 관련 부분에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강압적인 자원 분배가 필요했고 철권이 요구됐다’는 식의 표현이 들어 있다”면서 “이런 프로그램이 어떻게 비정치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다큐극장’ 신설은 물론 기획과 편성, 아이템 선정까지 국장과 부장 등 간부들이 실무진을 배제하고 결정해 정권 편향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KBS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백선엽 장군과 이승만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친일파, 독재자 미화 논란에 휩싸인 전력이 있다. KBS PD협회는 비대위를 구성해 사측과 협의해 왔다. ▲‘다큐극장’의 제작 주체를 KBS 다큐국으로 변경하고 ▲방송 시점을 6월 이후로 늦추며 ▲형식 등을 바꿀 수 있다는 6개 안에 대해 의견 접근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 4일 봄 개편 설명회 직전 ‘애초 안대로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내부의 반발 기류가 완강하자 사측은 다시 재협상 카드를 내밀었다. 홍진표 KBS PD협회장은 “다큐국이 참여해 외주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인하우스’ 방식을 논의 중”이라며 “사측이 앞서 합의를 번복했던 만큼 성사를 단정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큐를 둘러싼 KBS 노사 간 갈등은 지난 1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 초 대표적인 4대 다큐멘터리 코너가 통폐합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15년차 이상의 다큐국 중견 PD 20여명은 1월 말 경기 수원의 연수원에서 워크숍을 열고 ‘다큐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했다. 과학다큐를 맡았던 김현기 PD는 “당시 논의에서 ‘‘역사스페셜’을 강화하되 현대사는 다루지 않는다’, ‘한정된 예산을 배분해 통합과 분화의 투트랙을 추구한다’, ‘기존 4대 다큐의 브랜드를 강화하되 중장기 프로그램도 내놓는다’는 의견이 도출됐다”고 설명했다. 외주 제작을 담당하는 김성수 KBS 국장은 “‘다큐극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통해 나타난 현상 가운데 하나인 세대 간 소통 부재와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비롯됐다”며 “‘그때 그 시절을 아십니까?’ ‘시간의 징검다리’ 같은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 정파를 비호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세대 간 갈등을 푸는 것은 KBS의 공적 책무”라고 덧붙였다. KBS ‘다큐극장’은 오는 27일 ‘88서울올림픽’, 다음 달 4일 ‘파독 광부, 간호사 50년’ 등을 다룬다. 다음 달 18일에는 ‘서울의 봄, 5·18’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한편, KBS는 앞서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고성국 정치평론가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의원의 처남인 최양오씨를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내정했다가 라디오 PD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모두 아나운서로 진행자를 교체한 상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장영남 “존재감 있는 배우라면 충분해요”

    장영남 “존재감 있는 배우라면 충분해요”

    이름은 생소해도 얼굴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배우 장영남(40). 그동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그는 생애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공정사회’(18일 개봉)로 어바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꿰찼다. 최근 동대문의 한 극장에서 만난 그에게 불혹의 나이에 연기 인생의 꽃을 피운 소감을 묻자 얼굴에 한가득 미소가 번졌다. “그동안 국내에서 조연상 후보에만 다섯 번 올랐는데 규모는 작지만 해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타니까 ‘정말 내가 받은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에 교훈을 하나 얻었어요.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실망이 큰 법인데 기대도 안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어요.” ‘공정사회’는 딸의 성폭행범을 40일 만에 잡은 한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2003년 발생한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영문 제목은 ‘아줌마’(AZOOMA)로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 역시 ‘아줌마’다. 그는 해외 언론에서 “장영남의 연기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서 최면에 걸린 듯한 모습을 선보여 더 큰 공포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아줌마라는 말에 비하적인 의도가 담겨있는데 저는 반대로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면모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하고 인내하잖아요. 이 영화는 ‘엄마는 참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딸이 성폭행을 당했고 눈앞에 범인이 있는데도 ‘순서’와 ‘절차’를 강조하는 무능력한 공권력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현실을 꼬집는다. 아줌마는 이런 불의한 현실 속에서 직접 정면 승부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장영남은 자신도 영화처럼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몇년 전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경찰들이 몰려와 조사도 하고 지문을 채취했어요. 이틀 뒤 좀도둑이니 그냥 잊어버리라며 범인을 잡을 생각도 하지 않더군요. 여의도에서 차를 도난당했을 때도 경찰서에서 절차를 따지면서 조서를 쓰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려 분통이 터진 일도 있어요. 시민들에게 합리적인 것이 공정한 사회이고 보편적인 것인데 늘 평범한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연때는 현장에서 종종 손님처럼 느껴졌다는 그는 “주연을 맡아 하나의 작품을 책임지고 감정선을 끝까지 갖고 갈 수 있어서 배운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5년 극단 목화의 단원으로 데뷔한 그는 한눈 팔지 않고 8년동안 연극에만 몰두했다. 2003년 영화로 데뷔한 이후에도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연기에 임했다. 최근 안방극장에서 그는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과 ‘7급 공무원’ 등에 출연했고 현재 SBS ‘가족의 탄생’에서 인간적인 성격의 프리랜서 기자 마진희 역으로 열연 중이다. SBS 수목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도 옥정(김태희)의 궁중 멘토 천상궁 역에 캐스팅되며 명품 연기를 인정받고 있다. “극단 생활을 하면서 31살까지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연극 작업에 매진한 것이 저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저는 타고난 배우는 아니지만 계산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바탕으로 즉발적으로 느낌이 가는 대로 연기하는 편입니다. 앞으로도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임팩트 있는 역할을 다양하게 해보고 싶어요.” 장영남은 늘 당당하고 똑부러져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학창시절 끼도 없고 떨려서 발표도 잘하지 않던 아이였다. 중3때 계원예고 연극영화과 진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저 주황색 스쿨버스 안에 공기가 다를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엉뚱한(?) 동경은 평생 직업이 되었고 그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김해숙, 윤여정, 고두심 선생님처럼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섯 째 중의 막내로 아들을 바랬던 부모님이 이름에 사내 남(男)자를 넣었다는 그는 2년 전 7살 연하의 대학 강사와 결혼했다. 그는 빨리 진짜 ‘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사진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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