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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인사이드] 팔각의 철창서 유혈 맞짱…종합격투기에 열광하는 심리는

    [주말 인사이드] 팔각의 철창서 유혈 맞짱…종합격투기에 열광하는 심리는

    괴물 같은 사내들이 팔각의 철창 안에서 싸운다. 주먹이 날고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쏟아진다. 몇 차례 격렬한 충돌 끝에 한 사내가 넘어진다. 그 위로 다른 사내가 올라탄다. 주먹이 쓰러진 사내의 온 몸을 강타한다. 쓰러진 사내가 정신을 잃자 심판이 급히 경기를 멈춘다. 승자는 철창 위에 뛰어올라 포효한다. 경기장을 울리는 관중들의 환호, 정신없이 번쩍이는 수백 대의 카메라 플래시, 고액의 대전료까지 영광은 모두 승자의 몫이다. 패자는 홀로 누워 있다. 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 종합격투기는 마치 정글같다. 종합격투기란 각 종목에 걸쳐 다양한 무술을 수련한 고수들이 ‘최소한의’ 규칙 아래 실력을 겨루는 경기다. 종합격투기의 역사는 제법 길다. 고대 그리스에는 복싱과 레슬링이 결합된 ‘판크라티온’이 있었다. 판크라티온은 물어뜯기, 손가락으로 눈 찌르기를 제외한 모든 공격을 허용했다. 한 사람이 항복할 때까지 경기는 계속됐다. 현대 종합격투기는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규칙을 만들었다. 박치기, 성기·후두부 가격 등을 엄격히 금지한다. 5분 3라운드 1분 휴식, 혹은 5분 5라운드 1분 휴식 등 라운드 제도도 도입했다. 정해진 라운드 안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판정으로 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격투기는 여전히 누군가에겐 너무 과격하고 때로는 잔인한 스포츠다. 그런데 이런 거친 종합격투기가 요즘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8월 4일 미국 최대이자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인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에서 활약 중인 ‘코리안 좀비’ 정찬성(26)이 ‘폭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주제 알도(27·브라질)와 페더급 타이틀 매치를 벌였다. UFC 한국 방영권을 갖고 있는 슈퍼액션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HSBC아레나에서 끝난 이 경기를 중계했다. 그런데 당시 시청률은 평균 2.1%, 최고 4.9%(닐슨미디어리서치, 케이블 가입가구 기준)에 달했다. 102만명 이상이 이날 UFC 경기를 1분 이상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경기에서 정찬성은 탈골된 어깨를 끼워 맞추다가 알도에게 일격을 허용, 분패했다. 국내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 로드FC도 인기몰이 중이다. 2010년 10월 23일 서울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열린 첫 경기 관객은 80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10월 12일 경북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13회 경기 관객은 5000명을 넘어섰다. 3년 만에 관객 수가 6배 넘게 는 것이다. 로드FC 관계자는 “내년 10회 이상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1만명 이상 관람할 수 있는 경기도 열 것”이라며 국내 종합격투기 시장의 성장을 낙관했다. 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종합격투기에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수컷의 본능이죠.” 한국인 최초 UFC 9승의 기록을 세운 김동현(32)은 종합격투기의 매력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김동현은 “많은 무도가 있지만 종합격투기야말로 진짜예요. 거의 실전에 가깝습니다”라며 “종합격투기는 강함에 대한 남자들의 동경을 충족시켜 줘요. 남자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슈퍼액션에서 UFC 경기를 중계하는 김대환(35) 해설위원은 ‘순수함’이 대중의 마음을 끈다고 보고 있다. 김 해설위원은 “종합격투기 링 안에서는 자기 자신 외에는 기댈 곳이 없어요. 선수 자신의 실력 외에 잔기술은 통하지 않습니다. 순수하죠”라며 종합격투기의 매력을 풀어놨다. 김 해설위원은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건 도장도 운영하고 있다. ‘폭력의 심리학’의 저자인 김상균(52·백석대학교 법정경찰학부) 교수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종합격투기 인기의 비결로 지목했다. 김 교수는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복싱 정도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충분했어요. 요즘엔 달라요.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학업과 취업에 치입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훨씬 높죠. 더 격렬하고 폭력적인 것, 이를테면 종합격투기 같은 걸 봐야 스트레스가 풀려요”라고 분석했다. 10년째 종합격투기 마니아를 자칭하는 홍운기(32)씨는 “제일 센 무술이 뭘까 하는 호기심에서 종합격투기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태권도 고수랑 쿵푸 고수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궁금증이요. 왜 어릴 때는 친구들끼리 많이 싸우잖아요. ‘이소룡이 세다’ ‘아니다, 성룡이 더 세다’ 하면서요”라면서 “그러고 보면 남자들은 참 철이 안 드는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종합격투기를 좋아하는 건 대부분 남성이지만 여성 팬도 적지 않다. 직장인 김모(33·여)씨는 “너무 지쳐서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선수들이 한계를 깨고 그 너머의 무언가를 보여줄 때 정말 멋져요. 그 맛에 종합격투기를 봐요. 격투기 선수들 섹시해요”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렇다면 부작용은 없을까. 김 교수는 “종합격투기를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자기 정화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해요. 그러나 폭력적인 경기를 자주 보게 되면 폭력에 대해 둔감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더 폭력적인 것을 찾게 돼요.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성이 더 강해질 수 있는 거예요”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반론도 있다. 김동현은 “종합격투기가 폭력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그런데 폭력적인 게 비단 종합격투기뿐입니까. 영화는, 소설은 어떻습니까. 종합격투기만 비난할 게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항변했다. 김 해설위원 역시 “종합격투기는 지독한 수련을 거친 프로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엄연한 스포츠입니다. 축구나 농구와 다를 바 없어요. 색안경을 벗고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당부했다. 다시 처음의 팔각 철창 안으로 들어가 보자. 승자의 환희와 패자의 절망이 철창의 전부는 아니다. 승리를 만끽한 승자가 철창에서 내려와 겨우 정신을 차린 패자를 향해 걸어간다. 승자는 패자의 귀에 위로의 말을 건넨다.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한다. 둘은 포옹한다. 서로 격려한다. 어쩌면 그것은 온 힘을 다해 싸운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종합격투기를 즐기든, 혹은 외면하든 결국 선택은 개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미처 알기도 전에 편견부터 가질 필요는 없다. 종합격투기의 세계가 마치 정글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의 삶은 진짜 정글이다. 철창 안에서 죽을 것처럼 싸운다고 해도 실제로 죽지는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팔각의 철창보다 훨씬 살벌하다. 매일의 삶에 비하면 종합격투기는 그저 하나의 오락일 뿐이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금융CEO 순익 줄어도 ‘돈잔치’… 前 메리츠금융 회장 136억 챙겨

    금융CEO 순익 줄어도 ‘돈잔치’… 前 메리츠금융 회장 136억 챙겨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조정호 전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등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은 회사 순이익이 줄어도 10억원이 훌쩍 넘는 성과보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당국은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판단, 시정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지주사, 은행, 보험, 금융투자사 등 65개 금융사의 성과보수 체계를 점검한 결과 지난해 금융업종별 CEO의 평균 연봉은 금융지주사 15억원, 은행 10억원, 금융투자사 11억원, 보험사 10억원이었다고 13일 밝혔다. 연봉이 10억원을 넘는 고액 연봉 금융사만 따로 추리면 금융지주사 21억원, 보험사 20억원, 은행 18억원, 금융투자사 16억원이다. 이는 일반 금융사 직원 연봉의 20~26배에 달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조정호 전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금융지주사뿐만 아니라 증권사와 보험사 등 자회사로부터 89억원의 보수를 받고 47억원의 배당금도 받았다. 총 136억원이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과 김종열 전 하나금융 사장은 지난해 퇴직할 때 각각 35억원과 20억원을 특별퇴직금으로 받았다. 박종원 코리안리 부회장은 올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173억원을 특별퇴직금으로 받았다.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은 통상(재직기간) 1년당 1개월치(월급)’로 정해졌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박 부회장은 또 지난해 영업실적과 무관하게 27억원 전액을 고정급으로 받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현대증권 사내이사로 영업 실적과 관계없이 17억원 전액을 고정급으로 받았다. 이처럼 금융사 CEO들이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은 이들의 연봉이 주먹구구식으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2010년 금융회사 임원의 보상 내역 공개를 강화하도록 금융업권별 ‘성과보상체계 모범규준’을 마련했지만 강제성이 없다. 금융사 경영진의 연봉(성과보수)은 정기적으로 정액 지급되는 ‘고정급’과 1년간의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으로 구성된다. 금융지주사와 은행은 고정급과 성과급 비율이 4대6으로 성과급 비중이 높지만 금융투자사와 보험사는 6대4로 고정급 비중이 더 높다. 성과급이 연봉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를 책정할 때 ‘편법’이 자주 쓰인다. 총자산순이익률(ROA) 등 숫자가 분명한 계량지표는 성과 목표를 전년도 실적보다 낮게 설정하고, 주관적 평가가 가능한 비계량지표는 거의 만점을 부여하는 등 관대하게 평가하는 방식이다. 결국 실제 실적과 맞지 않는 과도한 성과급이 종종 지급된다. 연봉을 정하는 보상위원회의 독립성도 미흡하다. CEO가 보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보상위원회가 정당한 사유 없이 CEO 평가 등급을 상향 조정해 성과급을 올려 주는 경우도 있었다. 박세춘 금감원 은행·중소서민검사 담당 부원장보는 “성과보수 체계는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면서도 “권역별로 태스크포스(TF)나 모임을 통해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개선 방안을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합리적으로 고쳐나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내년부터 각 금융사가 성과보수 체계를 개선했는지 종합검사 등을 통해 실태를 점검하고 금융위와 함께 모범규준 개선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충남 태안 게국지와 내포 우거지김치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충남 태안 게국지와 내포 우거지김치

    간밤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농부들 맘은 조급해졌다. 뒤란에 와르르 쏟아진 은행은 물론이고 콩이며 감 등 남은 곡식을 거둬들여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속이 꽉 찬 김장배추를 얻으려면 날 잡아 짚으로 묶어주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는 단맛을 채우면서 굵어가고 아낙들은 포구를 어슬렁거리며 젓갈준비를 한다. 황석어를 달여 놓고, 까나리액젓, 새우젓, 조개젓이 집안 물림대로 준비된다. 서리 두어 번만 더 내리면 김장을 해 부칠 참이다. 한데 태안 아낙들은 1년 내내 ‘겟국’을 모으며 ‘김장 그 후’를 기다렸다. ‘그 후’라는 것이 허접한 시래기뿐일 텐데 왜 사내들은 막걸리 잔을 상상하며 빈 밭에서 갈배추를 줍고 아낙들은 연중 겟국을 모을까. 태안이 감춰 둔 그 맛이 무엇일까. 그들에게 게국지는 과거부터 내려온 어머니의 향수이자 냄새로도 구별되는 유전자 같은 음식이다. 태안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사철 해산물이 풍부하다. 싱싱한 갯것을 즉석에서 굽거나 끓여 먹기도 하지만 냉장고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천일염을 툭툭 뿌려 말리거나 염장을 했다. 그래서 태안에서 흔한 꽃게나 박하지, 능쟁이, 농게를 소금물에 담가 먹는 일은 흔한 일상이다. 살펴보면 이렇다. 본래 태안에서의 꽃게 장은 간장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체로 고춧가루를 빨갛게 이겨 즉석에서 담근 ‘무젓’을 즐긴다. 재료가 싱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꽃게는 간장게장 맛만 한 것이 없다. 하지만 양조간장이 나오기 전, 집 간장은 귀했다. 미역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무칠 때 아껴 넣을지언정 헤프게 게장을 담가 먹지는 못했다. 해서 태안에서는 천일염으로 소금 장을 만들었다. 짭조름하게 간을 맞춘 소금물을 설설 살아 움직이는 꽃게에 부었다. 사나흘 지난 후 게에 간이 배면 소금장을 따라내 와르르 끓였다. 완전히 식혀 다시 꽃게에 붓는다. 두어 번 반복하면 게장은 맛이 든다. 지금 간장게장에 비하면 짜고 비린 듯하지만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꽃게를 담갔던 소금장은 버리지 않고 다시 게장을 담글 때마다 소금 한 줌을 넣고 끓이기를 반복, 연중 사용했다. 그러니 10월 가을 꽃게 때부터 시작된 이 소금장은 달여서 다음 해 5월, 장이 노랗게 밴 암꽃게에도 부어졌다. 여름이면 꽃게 금어기다. 이때는 갯벌에서 잡은 황발이, 즉 농게에 이 겟국을 부었다. 밥맛이 없는 여름철 최고의 반찬이었다. 게 맛을 아는 태안 사람들에게 농게는 일품이다. 능쟁이, 칠게가 이품이면 꽃게는 미안하게도 삼품이다. 이렇게 달여 붓기를 반복하는 동안 소금장은 색이 검게 되며 게에서 빠져나온 온갖 미네랄과 칼슘, 아미노산이 소금장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늦가을. 모양 좋은 배추는 포기김치를 담그고 우거지와 밭에 뒹구는 갈배추를 거둬들일 차례다. 갈배추는 머리만 툭툭 쳐서 함지박에 넣고, 노랗게 익은 호박을 착착 썰고, 덜 익은 끝물 고추와 마늘, 생강을 이겨 게국지로 간을 한다. 새우젓을 더 넣는 경우도 있으나 이렇게 허드레 배추와 겟국을 넣고 아무렇게나, 막 버무린 김치가 본래의 태안 게국지다. 사나흘 지나 간이 배면 냄비에 담아 보글보글 지져 먹는다. 짭조름한 게국지의 묵은 맛과 호박의 들큼함, 배추의 달게 씹히는 맛이 어우러져 기막힌 시절김치가 된다. 금방 먹어야 질기지 않으나 좀 짜게 담가 늦봄에 삭았을 때 지져 먹는 맛 또한 특별하다. 게국지는 냄비에 김치와 쌀뜨물을 부어 아궁이 잔불로 자글자글 끓이기도 하지만 향수를 떠올리는 옛사람들은 가마솥에 찐 게국지가 으뜸이라고 말한다. 밥이 우르르 끓으면 양재기에 이 김치를 담고 솥 귀퉁이에 넣어둔다. 그러면 밥물이 적당히 들어가 부드럽고 간이 잘 맞는 게국지가 된다. 밥 한 술 떠서 시래기를 쭉쭉 찢어 숟가락에 얹으면 천상의 음식이 부럽지 않다. 이 게국지와 비슷한 것이 내포 쪽 ‘우거지김치’다. 김장을 한 함지박에 시래기를 넣고 남은 양념으로 그릇을 씻어내듯 버무려 항아리에 넣어 둔 김치다. 좀 짜게 담가 봄에 먹는다. 봄볕이 들면 시래기는 하얗게 꽃가지가 핀다. 그런데 이 곰팡이 냄새가 지독한 시래기를 지져 먹는 맛이라니. 항아리 위쪽의 두어 포기를 걷어내고 폭 삭은 김치를 보시기에 꺼내면 이 ‘군둥내’로 온 동네가 소란스러웠다. 이 우거지김치는 사람 손이 닿으면 금방 삭아서 항아리를 여는 즉시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요즘 주거환경에서는 냄새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지만 옛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건강한 발효식품이다. 어떤 음식이든 방송을 타면 소란스러워진다. 게국지도 마찬가지여서 태안, 안면도 권을 여행하다 보면 식당마다 게국지 간판이다. 김치에 꽃게나 대하를 넣어 김치찌개처럼 끓이거나 해물탕처럼 내놓는 ‘유사 게국지’가 많다. 1년 삭힌 게국을 구하기 힘들 뿐더러 요즘 사람들이 맛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가 생기면서 김장이 빨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서리 먹은 무와 배추가 달고, 김장은 추울 때 해야 제맛이다. 단맛이 밴 무를 채로 쳐서 그 해 해팥을 삶아 무시루떡을 하던 김장하는 날. 그리고 그 김장의 편린 태안 게국지. 삭혀 군둥내 나는 과거의 힐링 음식들이 식탁에서 사라져가니 아쉽고 그립다. 심하게 편두통을 앓던 어느 겨울날. 뜨끈하게 끓여낸, 짜디짠 할머니의 게국지 한 사발로 힘을 얻었던 적이 있다. 바닷바람이 허름한 천막을 들추며 솨솨 거리면서 들어왔고, 등이 굽은 할머니가 비척거리며 끓여 주던 영혼의 음식. 그 오랜 기억 속의 게국지가 그리운 만추다. 천일염과 가을 바람 태안의 우럭과 만나 시원한 젓국이 되니 우럭은 보리누름이 최고라는 말이 있다. 4~6월 산란기 때 살이 올라 달고 기름이 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닷가 사람들은 봄과 가을 두 철이라고 말한다. 교미기간인 가을 또한 영양분이 올라 살이 단단하고 달다. 게다가 갓 잡은 우럭을 찬바람에 두어 날 말리면 배때기에 기름이 노랗게 올라 찌거나 탕을 끓였을 때 감칠맛이 빼어나다. 생선은 갓 잡아 신선한 것도 좋지만 천일염을 뿌려 두어 날 바람에 말린 것이 가장 맛있다. 태안에서는 연중 우럭이 올라온다. 과거 우럭을 잡는 토속적인 방법은 독살이다. 바닷가에 오목하게 함정을 파놓고 돌로 담을 쳐 놓아 밀물 때 들어온 생선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전통 어로방식이다. 지금도 남면 등 해안가에 독살이 남아있다. 독살에서 우럭이 많이 잡히면 “진미 났다” “꽃이 난다”고 외치며 동네 사람들과 나눠먹었다. 이렇게 흔하니 태안의 제사상에는 우럭포가 올라간다. 포를 쪄 상에 올렸다가 음복 후 술안주로 살을 발라 먹는다. 이때 남은 머리와 뼈를 쌀뜨물에 넣고 팔팔 끓여내면 국물이 뽀얗게 올라온다. 제사상에 올렸던 두부부침을 넣기도 했는데, 다진마늘 정도만 곁들였다. 새우젓이나 천일염으로 간을 한다. 이렇듯 가을에 잘 말린 우럭포로 젓국을 끓이면 비리지도 않고 담백하여 그 시원한 맛이 속풀이로 일품이다. 태안 미식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침상 차림은 역시 우럭젓국이다. 글 사진 음식평론가 손현주 marrian@naver.com ●여행수첩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나들목으로 빠지면 철새들의 은신처인 서산AB지구를 지나 태안북부와 안면도로 빠지는 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어느 쪽으로 빠지든 태안여행은 바다와 소나무 숲을 낀 느린 성찰이 가능하다. 무작정 아무 포구나 숨어들어도 해산물이 풍부하여 식도락의 즐거움은 크다. 요즘 꽃게, 대하, 굴이 많다. 근래 저녁놀이 곱다. →제철 맛집(041) 솔밭가든(안면도 673-2034, 게국지, 우럭젓국 정식), 곰섬나루(남면 675-5527, 점심 예약제), 토담집(태안시내 674-4561, 우럭젓국, 간장게장), 향토꽃게장(태안시내 674-5591, 우럭젓국, 간장게장), 진국집(서산시내 665-7091, 게국지 백반)
  • 김학의 성접대 강요 주장 여성, 박근혜 대통령에 편지

    김학의 성접대 강요 주장 여성, 박근혜 대통령에 편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52)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은 직후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는 여성 A씨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 탄원서를 보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A씨는 탄원서에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죽음의 길을 선택하기 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제 한을 풀고 싶어 이렇게 각하께 올립니다”라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어머니는 그 당시 윤중천의 협박과 무시무시한 힘자랑에 딸의 억울함을 하소연도 한번 못하시고 저와 인연을 끊었다”면서 “윤중천은 제 동생에게 협박성 섹스 스캔들 사진들을 보내 세상에 얼굴을 들 수 없게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윤중천이 협박한 녹취된 음성파일과 날 캡처한 사진들을 결혼할 사람이 듣고 모든 걸 알게 되었다”면서 “충격으로 전 유산하고 대인기피증에 조울증, 공황장애, 심장병까지 앓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A씨는 “피의자인 저들은(김학의) 절 경찰조사 중에 저와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시켜 절 돈으로 도와주겠다며 연락을 했다”면서 김학의 측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을 매수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각하, 이 나라의 머리이시기 전에 여자이십니다. 불쌍한 제 한을 풀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탄원서 전문. 대통령 각하께 각하께서도 절 아실지 모르겠네요.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 윤중천·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의 피해자 여성입니다. 제가 이렇게 신문고를 두드리는 이유는 너무도 억울하고 제가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죽음의 길을 선택하기 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제 한을 풀고싶어 이렇게 각하께 올립니다. 전 이 사건이 터지기 전 8년 전부터 제 가슴에, 제 마음에 짐으로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각하 이 사건은 제가 억울하게 윤중천에게 이용을 당한 그때, 2008년 전 이 사건을 제가 먼저 고소하려고 하였으나 힘없고 빽 없는 전 권력에 힘, 김학의와.. 절 개처럼 부린 윤중천에 힘으로 어디 하소연 한번 못하고 전 이렇게 숨어살다 지금에 세상이 떠들썩해지며 제가 숨겨진 채로 피해자로 등장하였습니다. 전 이들의 그 개같은 행위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어머니는 그 당시 윤중천에 협박과 무시무시한 힘자랑에 딸의 억울함을 하소연도 한번 못하시고 그 추잡함을 알아버리시고 저와 인연을 끊으셨습니다. 윤중천은 제 동생에게 협박성 섹스 스캔들 사진들을 보내 세상에 얼굴을 들 수 없게 하고. 제가 재판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렇게 먼저 각하께 억울함을 올리는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던 아버지가 아셨습니다. 지병이 계신 아버지는 저 때문에 화로인해 당뇨합병으로 녹내장이 오시고…하루하루가 약이 오르고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전 이번 사건으로 제 악몽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개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용기있는 형사님들의 응원과 제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믿음을 주시고 꼭 제 억울함과 한을 풀어주신다는 말씀에 전 용기를 내어 수사에 참여했고 이 사건은 7월에 검찰로 넘어가고 저 역시 검찰조사를 마친 지 4개월입니다. 제가 알기론 윤중천·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아는 것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고 조사를 받을 사람은 다 받고 검찰에서는 김학의 소환 계획도 없다고 기사도 나오고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만이 조사를 안 받은 것으로 압니다. 참 어이가 없습니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아시는 김학의 전 차관님은 너무 유치합니다. 지금 국민들이 알고 있는 기사내용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윤중천과 둘은 잘 알고 있으면서 병원에 입원을 하시고 지금, 아니 전 매일매일 지금 이시간 이순간까지 하루 한 시간 잊고 살 수가 없어 대인기피증에 조울증, 공황장애, 심장병까지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전 병원 갈 돈이 없어 약이 언제 떨어질까 아껴먹는다면 믿으십니까? 제가 지금 떠들어 대는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죽음을 몇 번씩 생각하고 결혼을 약속한 남자에게 버림받고…2008년 윤중천이 협박한 녹취된 음성파일과 절 캡처한 사진들을 결혼할 사람이 듣고 모든 걸 알게 되었습니다. 충격으로 전 유산하였고 전 윤중천이 얼마나 흉악하고 악질이며 무서운 사람인걸 알기 때문에 그 자료들을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유일하게 그들을 벗어날 수 있는 행복, 결혼이 파혼되면서…모든 걸 잊고 살겠다고 전 윤중천·김학의 물건들 자료들을 소각시키고 시골에 와 살고 있습니다. 역시나 윤중천·김학의는 결국 이렇게 절 또 다시 죽음의 길로 인도를 합니다. 그 물건을 버린 것을 후회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완전하진 않더군요. 협박 그리고 사진들을 속기를 할 때 속기하시는 그분이 모든 걸 기억해주시더군요. 각하…이런 절…피의자인 저들은(김학의) 절 경찰조사 중에 저와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시켜 절 돈으로 도와주겠다며 연락을 하더군요. 역시 법을 잘 아시는 분이라 행동도 빠르시더군요. 전 죗값을 받으라고 했죠. 절 노리개 가지고 놀 듯 윤중천과 가지고 노신…. 각하 이 나라의 머리이시기 전에 여자이십니다. 불쌍한 제 한을 풀어주세요. 각하 살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새벽기도 다니시며 기도하시는 부모님께 다시 사랑한다고 떳떳하게 말하고 싶고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각하 살고 싶습니다. 제가 다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주세요. 김학의 전 차관을 덮으신다면 윤중천까지 죗값을 받지 않을 것이며…각하 이 두 사람의 내용의 기사는 대한민국을 뒤집습니다. 국민들이 모르는 신세계가 있으니까요. 그들, 그들의 가정을 지키고 그들의 면상을 지키기 위해 그리 숨어있을 때 피해자인 전 제 가족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더 이상 내 식구 감싸기라는 검찰기사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억울함에 더 많은 진실을 국민들 앞에 하소연하며 한을 풀기 전에 스스로들 국민들 앞에 나와 심판받길 원합니다. 각하 전 담당 검사님께 간절한 제 마음을 편지로 보냈습니다. 부디 그 편지가 쓰레기통으로 가지 않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매일 밤 삶과 죽음길에서 밤을 새웁니다. 전 윤중천의 협박과 폭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님의 권력이 무서웠습니다. 윤중천은 경찰 대질에서까지 저에게 협박을 하며 겁을 주었습니다. 각하, 범죄 앞에선 협박도 폭력도 권력도 용서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들 앞에 보여주세요. 제가 용기 내어 잘 버티고 잘 했다고 해주세요. 국민들이 지금 각하께 하는 쓴소리를 솔로몬의 지혜로움으로 이 사건을 해결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각하 제 입으로 더 이상 이 사건의 내용을 떠올리며 힘들어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렇게 국민을 우롱하며 뒤에 숨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전 계속 싸울 것입니다. 몇 번의 죽음을 넘기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책임자로서 각하의 지혜로우신 중심을 믿겠습니다. 2013. 11.13 피해여성 A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시회 여는 68살 동갑내기 화가 박대성 & 임동식, 그들의 이야기

    전시회 여는 68살 동갑내기 화가 박대성 & 임동식, 그들의 이야기

    68세 동갑내기인 두 화가는 너무나 닮았다. 자아와 피아, 종교의 두터운 장벽을 넘어 예술혼을 불태우는 동양화가 박대성은 자신의 삶에 장애를 안기고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조차 용서했다고 말했다. 서양화가 임동식은 평생 독신으로 예술의 길에 천착하고 있다. 각각 경북 경주와 충남 공주 원골에 정착해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닮았다. ■ 용서하니 나를 찾고 수묵화로 삶을 얻다 “그 사람들은 벌써 다 용서했지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저를 예술가라 부르겠어요. 민족의 아픔이고 역사의 탓이죠.” 작가의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혔다. 6·25전쟁 직전 경북 청도의 한약방에 출몰한 공비들에 의해 왼쪽 팔을 잘린 후, 40여년간 누구나 상상이 가능한 삶을 살아온 동양화가 박대성(68)의 이야기다. 당시 세 살이던 아이의 아버지는 공비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작가는 “신체 장애를 다룬 기사는 많이 나왔다”면서 화제를 돌렸다. 커피 한 잔을 놓고 시작한 작가와의 대화는 그렇게 한 시간가량 무르익었다. ‘외팔이’ 소년은 병풍 그림으로 소일하며 자랐다. 묵화부터 고서에 이르기까지 독학으로 연습을 거듭했다. 정규 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수묵화가 외면당하는 한국 화단에서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9년부터 잇따라 여덟 번이나 국전에 입선했고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선 대상을 받았다. 아픔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열아홉 살 때인가, 그림을 공부하는데 앞날이 너무 막막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어요. 그런데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관상을 봐 주던 노인이 서른 살을 넘기면 운이 좋아진다고 해서 잠시 미뤘죠. 스물세 살 때 독학으로 국전에서 입선했습니다(웃음).” 수묵화로 한평생을 바친 작가에게는 지금 ‘대가’라는 호칭이 따른다. 내년 가을에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 그의 이름을 내건 시립미술관이 문을 연다. 작가는 1989년부터 경주로 내려가 칩거하며 산사의 풍경 등을 화폭에 담고 있다. 오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이어 가는 ‘원융’(圓融)전에도 가로 8m의 대작 ‘불국설경’ ‘부처바위’ 외에 도자기와 글씨를 그린 ‘고미’ 등 수묵화 50여점이 내걸렸다. 성철 스님의 장삼과 500나한을 그릴 만큼 불심이 깊지만 그는 가톨릭 신자다. 마지막 과업은 화단에서 찬밥이 돼 버린 한국화를 되살리는 일이다. 작가는 “수묵화를 그리니 대낮이 가장 어둡고 칠흙 같은 밤이 가장 밝다는 역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시골가니 나를 찾고 자연에서 붓을 잡다 “옆집 우 사장이 권해서 그렸는데 역시 토박이라 남다른 풍광을 알고 있더군요. 다른 사람 눈이 훨씬 뛰어납디다.” 10여년간 외국에 머무르다 귀국해 충남 공주의 원골마을에 정착한 ‘귀농 화가’ 임동식(68)은 팔랑귀란 소리를 듣는다. 수채화같이 맑은 색감을 강조하는 화가는 애초 그림을 접을 뻔했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 가 설치미술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러다 문득 시골 고향이 생각났다. 1990년대 초 원골마을로 들어왔다. 농사나 지으며 살려다가 그림을 그려 보라는 주위의 권유에 다시 붓을 잡았다. 밥집 사장이자 친구인 ‘우 사장’의 아들 결혼식 선물로 내놓은 그림에 반응들이 좋았던 덕분이다. 이후 작가는 우 사장이 알려주는 동네 곳곳을 돌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풍경화 연작 시리즈 ‘친구가 권유한~’이 나왔다. 그림에선 저 멀리 강이 흐르는 풍경과 바람 부는 들판의 경치가 맑게 펼쳐진다. 오래된 벽화처럼 바스러질 듯하지만 그림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수채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작가는 “타인의 시각을 표현한 작업이 흥미로웠다”면서 “나 혼자였다면 절대 못 그렸을 작품들”이라며 겸손해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작가가 원골마을에 처음 정착했을 때 주변에선 신흥 종교의 교주 정도로 치부했다. 말수도 없이 덥수룩한 수염을 지닌 사내가 홀로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지미술을 한다며 몸을 부대끼자 동네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우 사장은 아예 자신의 트럭에 화구를 싣고 다니며 작가에게 산골 풍경 곳곳을 그리게 했다. “넥타이도 혼자서 못 고른다”던 화가는 원골 주변의 풍경을 나름의 맑은 색감으로 풀어놨다. 자연을 벗 삼아 그린 그림 20여점은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 ‘사유의 경치Ⅱ’전에서 펼쳐진다. 유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인데도 은은한 느낌이 나는 건 물감에 기름을 섞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안 써 본 색깔이 많다”면서 “앞으로 그 미지의 색을 찾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KT 비상경영… 표현명 대행 체제로

    KT 비상경영… 표현명 대행 체제로

    12일 열린 KT 이사회에서 이석채 회장의 사표가 공식 수리됐다. KT는 표현명 T&C(텔레콤&컨버전스)부문장을 직무대행으로 한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후임 최고경영자(CEO)를 뽑는 CEO추천위원회는 내주 초 다시 이사회를 열어 구성키로 했다. 후임은 외부 인사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사회는 이날 오후 2시쯤 서울 서초사옥에서 시작돼 오후 늦게까지 진행됐다. 이 회장은 오후 1시 50분쯤 사옥에 도착, 이사회에 사표를 제출한 뒤 오후 2시 50분쯤 먼저 퇴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이사진과 임직원, 노조, 고객, 주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KT 임직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을 제 인생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잊지 않겠다”는 내용의 퇴임 소감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는 후임 회장이 취임할 때까지의 경영은 표 사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서열상 이 회장 다음은 김일영 코퍼레이트센터장이지만 김 사장 역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조직 안정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CEO추천위원회도 이날 구성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이사회 결정에 따라 다음 주로 미뤄졌다. KT 관계자는 “본래 사표 수리 이후 2주 이내에 위원회를 구성토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추천위원회에는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김응한 의장 등 사외이사 7명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다. 이 회장이 공식 사임하면서 그가 언급한 ‘임원 20% 감축’ 등은 후임 회장의 과제로 넘어가게 됐다. KT 관계자는 “사퇴 표명 이후 짐을 싼 임원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자연스럽게 신임 회장이 구조조정을 포함한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상 경영체제에서 KT는 신규 사업보다는 눈앞에 맞닥뜨린 검찰 수사와 무궁화 위성 관련 논란을 해결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후임 자리는 외부 출신 인사가 차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내부 사장급 중에는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김 사장과 김홍진 G&E부문장을 제외하면 표 사장 정도가 언급된다. 하지만 표 사장이 맡은 무선통신 부문 실적 악화가 이 회장 퇴진의 명목 중 하나였던 만큼 표 사장이 뒤를 잇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도 실적이 좋았더라면 어느 정도 버틸 동력이 있었을 텐데 퇴진 압박에 실적까지 나빠 밀려난 것 아니냐”며 “내부 평가와 별개로 실적 부진 탓에 표 사장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형태근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주요 후보군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KT 내부에서는 ‘낙하산’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며 회의적인 시각이다. KT 관계자는 “일부 인물은 본인이 정치권을 다니며 자가발전을 한다는 소문까지 있다”며 “이런 인물이 선임되면 악몽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정치권에서는 홍원표 삼성전자 사장, 이상훈 전 KT G&E부문장 등이 언급된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불법 도박혐의’ 토니안, 외식업계 대표이사 사임 “개인 사유로…”

    ‘불법 도박혐의’ 토니안, 외식업계 대표이사 사임 “개인 사유로…”

    이수근, 탁재훈에 이어 불법 인터넷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토니안이 외식사업에서도 손을 뗐다. 요식업 프랜차이즈 ‘스쿨스토어’ 측은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토니안이 대표이사, 사내이사로 몸 담았던 스쿨스토어에서 사내이사직을 사임하고 본인 소유지분까지 정리가 끝났다”고 밝혔다. 스쿨스토어 측은 토니안의 이사 사임에 대해 “후배양성 등 본연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로 지속적으로 참여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것으로 판단, 이미 지난 달 절차를 밟고 스쿨스토어 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떼게 됐다”고 설명했다. 토니안 측도 “본인의 개인사유로 사업에서 하차했을 뿐, 스쿨스토어에 보여 주신 관심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잘 운영되었으면 한다. 앞으로는 오직 후배양성에만 전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니안은 최근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 혜리와 8개월 만에 결별한 것이 알려졌고, 불법 인터넷 도박 혐의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집 고치는 태광

    집 고치는 태광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의 어느 한부모가정에서 태광산업 임원들이 대문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태광은 지난 2월 사내에 사회공헌본부를 발족하고, 이날 심재혁 부회장 등 임원 20여명이 소외계층 가정을 방문해 노후시설 철거, 폐기물 정리, 전기·목공·도배·창호 교체 등 집수리 봉사를 했다. 태광산업 제공
  • “고3처럼 공부” 외환은행 ‘외환의 달인’ 안산지점 이윤정 대리

    “고3처럼 공부” 외환은행 ‘외환의 달인’ 안산지점 이윤정 대리

    외환은행이 외국환 전문가를 선발하는 ‘KEB 외환골든벨’ 대회에서 경기 안산지점에 근무하는 이윤정(30) 대리가 외환의 달인으로 선정됐다. 외환은행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을지로 본점 대강당에서 대회를 열었다고 10일 밝혔다. 전국 350개 부서·지점에서 직원 4100명이 예선을 거친 뒤 210명만 결선에 참여했다. KEB 외환골든벨 대회는 외국환 전문은행의 위상을 알리고, 직원들의 외국환 업무 지식과 마케팅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년 여는 행사다. 1위는 이윤정 대리, 2위는 논현동지점 김현수 과장, 3위는 서초동지점 안유진 계장이 차지했다. 수상자는 외환골든벨 달인패와 기프트카드를 받으며 외환관리 전문가 집단인 외화송금사후관리반(RASS) 등 외환 관련 전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 1위를 차지한 이 대리는 지난해 대회에서 5위로 아쉽게 포상권에 들지 못했지만 1년간 절치부심했다. 교재가 따로 있지 않아 은행연합회나 사내망에서 관련 정보를 출력해 제본으로 만든 책만 4권에 달한다. 이 대리는 “최근 3개월 동안 점심은 김밥 한 줄로 대신하며 공부했고, 주말에도 공부만 하는 등 ‘고3 수험생’처럼 살았다”면서 “내가 만든 교재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외우고 또 외웠다”고 말했다. 2007년 입사한 뒤 예금, 외환, 여신 업무를 두루 거친 이 대리는 외국환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다. 이 대리는 “국내 최고의 외국환 전문은행인 외환은행에서 외국환 부문 최고의 업무지식을 가진 직원으로 뽑혀 너무나 영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해외 증권이나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고객들을 상담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서 “본점 외환 부서에서 상품을 개발하거나 기획하는 업무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포스코, 자사주 4만 3286주 처분키로

    포스코는 8일 정기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4만 3286주를 처분하기로 결의했다. 이 자리에서 정준양 회장의 거취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포스코 관계자는 “안건대로 3분기 경영 성과와 4분기 경영 전략을 논의했고, 일본 요도가와 제강과의 상호 주식 매입 협약에 따라 자사주 처분을 결정했다”면서 “정 회장의 거취 문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이사회에는 정 회장을 비롯해 사내 이사 5명과 사외 이사 6명 등 11명 전원이 참석했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의 퇴임 문제는 다음 달 20일 이사회나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 등에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풍수 (하)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풍수 (하)

    >>> 치산치수·종묘사직 보전 위해… 풍수도 성형 인공산·연못 만들고 돌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통제 풍수학의 고전 ‘청오경’에 “명당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도 있고 인위적으로 조성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완벽하지 않은 땅을 사람과 환경이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비보(裨輔)라고 한다. 장승을 마을 어귀에 세우거나 물새를 앉힌 솟대를 물가에 꽂거나 물길이 흘러 나가면서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돌탑을 쌓거나 마을이 외부로 훤히 트여 있으면 나무를 심는 당숲 등이 우리가 흔히 보는 신앙 비보 사례다. 물에 관련된 수구(水口) 비보와 연못을 파거나 해태상, 돌거북을 설치해 불길을 누르는 화기(火氣) 비보, 땅의 힘이 부족하거나 훼손되기 쉬운 곳을 가다듬는 산천(山川) 비보, 이름을 바꾸는 지명(地名) 비보 등을 통틀어 비보풍수(裨輔風水)라 이른다. 한국의 비보풍수는 도선 국사(827~898)에게서 비롯됐다. 고려는 산천비보도감, 조선은 관상감이라는 관청을 두고 국가 차원에서 운영했다. 우석대 김두규 교수는 “비보풍수는 국토의 지형 지세를 살펴서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자 하는 일종의 국역 조경”이라고 평가했다. 한양은 풍수지리학상 완벽한 도읍이 아니었다. 결점을 보완하고자 나무를 심고 인공산(가산)을 쌓고 연못을 팠다. 한양은 중세 세계 최대 도시 중 하나였다. 인구가 개국 초기 10만명에서 후기 20만명까지 늘어나면서 주택 공급, 생활 하수 처리, 산림 녹지가 급선무였다. 그래서 풍수는 승려나 풍수학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왕과 성리학자들이 풍수서를 읽고 연구했다. 가장 중요한 국가정책인 치산치수와 종묘사직의 보전이 곧 비보풍수였기 때문이다. 사산금표도(四山禁標圖)란 소나무를 베거나 돌을 캐거나 무덤을 쓰거나 사찰을 짓는 행위를 금한 영역표시 지도이다. 문을 폐쇄하고 소나무를 심고 민가나 사찰을 철거했다. 지맥과 수맥을 보호하기 위해 법제화한 강력한 통제책이었다. 현대적 시각에서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라고 볼 수 있지만 훨씬 적극적인 개념이다. 금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철거하거나 공사를 해 보존했다. 삼각산(백운대, 만경봉, 인수봉)~보현봉~백악(북악)으로 이어지는 주맥(主脈)을 보호하는 데 힘을 쏟았다. 숙종과 영조에 이어 정조 때도 보현봉에 흙을 쌓았다. 김정호는 ‘수선전도’에서 보현봉 아래를 ‘보토소’라고 표기했다. 북한산 여러 봉우리 중에서 구준봉(구봉) 뒤쪽의 잘록한 고개를 보토고개(보토현)라고 부르는데 이곳이 삼각산~보현봉~백악을 잇는 급소라 하여 중점적으로 관리한 것이다. 사산금표도를 보면 한양의 행정구역이 보인다. 금표 지역과 사대문 밖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이 거의 일치한다. 성저십리는 도성으로부터 정확하게 10리는 아니었다. 5리도 있고 10리가 넘는 지역도 있었다. 대개 우이동~장위동~석관동~중랑천~전농동~살곶이다리~옥수동~용산~마포~망원동~성산동~역촌동을 잇는 선이다. 남쪽은 한강, 북쪽은 북한산이 경계다. 행정구역상 한강 이북의 6분의5에 해당하며 강남 개발 이전의 서울 면적과 비슷하다. 금산과 금표는 조선 전기 엄격했고 연산군대에 최고조에 오른 이후 느슨해졌다. 왕권과 신권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영향을 미쳤다. 성종실록에는 임금과 신하 간 풍수 기 싸움에서 임금이 패한 이색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성종 12년 창덕궁 뒤편 응봉산 남쪽 기슭에 세도가의 가옥 100여채가 들어서 궁궐을 억누르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왕이 철거를 명했으나 신하들의 반대가 빗발치자 흐지부지됐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혜화동쯤인데 이 지역에 사는 권신과 유생들의 조직적 반대에 왕이 한걸음 물러난 것을 의미한다. 서울의 관문에 얽힌 풍수 이야기도 흥미롭다. 서울성곽을 축조할 때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두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새 통로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 물자와 사람이 가장 많이 오가는 한강나루(한남동)에서 도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남산을 빙 돌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세조 3년 숭례문(남대문)과 광희문 사이에 남소문(南小門)이라는 길을 열었다. 장충단길 국립극장과 반얀트리호텔(옛 타워호텔) 사이쯤이다. 13년 후인 예종 1년에 남소문 폐쇄론이 제기됐다. 황천살(黃泉殺)이 열려 세자가 요절하고 임금도 시름시름 앓는다는 풍수설이었다. 그 후 200여년간 폐쇄된 남소문이 당쟁의 대상이 됐다. 남소문을 열면 남인이 득세하고 닫으면 서인이 권세를 잡는다며 개문파와 폐문파로 나뉘어 다퉜다. 태종 13년 돈의문(서대문)을 경희궁이 있던 남쪽 언덕으로 옮기면서 이름을 서전문(西箭門)이라고 고쳤다. 풍수 최양선이 경복궁의 지맥 보전에 필요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세종 4년 백성의 통행 불편에 대한 원성이 잇따르자 본래 자리로 옮기고 이름도 되돌렸다.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앞이다. 최양선은 도성의 북쪽 큰 문인 숙정문(숙청문)과 작은 문인 창의문(장의문, 자하문)도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지맥 보호를 위해 폐쇄할 것을 건의해 관철했다. 숙정문은 원주 가는 길이지만 산이 높고 길이 험해서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주로 혜화문을 통했다. 숙정문을 폐쇄한 이설(異說)이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전해진다. “이 문을 열어두면 성 안에 음풍(桑中河間之風)이 불어댄다 하여 폐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한양의 세시풍속에 ‘정월 보름 이전에 부녀자들이 숙정문을 세 번 다녀오면 액운이 없어진다’고 하여 부녀자들의 북문 나들이가 성황을 이루자 남자들이 모여들었고 급기야 ‘사내 못난 것 북문에서 호강받는다’는 속담이 생겼다는 것이다. 풍기 문란 탓에 북문을 걸어 잠그게 됐다는 얘기다. >>> 물 확보 위해 ‘공사다망’ 했던 조선의 왕들 광화문 해태상·숭례문 세로현판으로 불기운 막아 조선의 역대 왕들은 물을 얻으려고 끊임없이 공사를 일으켰다. 풍수학의 고전 ‘금낭경’에서 ‘풍수지법(風水之法) 득수위상(得水爲上) 장풍차지(藏風次之)’라 하여 장풍보다 득수를 중시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경복궁에 물이 부족한 것이 흠이므로 도랑을 파서 물을 끌어들이고(태종), 소격서 골짜기에 못을 조성하고(세종), 숭례문 밖에 못을 파고(세조), 흥인지문 안에 인공산 3개를 조성하고(성종), 동지를 파고 인공산을 쌓고(명종), 관왕묘를 흥인지문 밖에 짓고(선조), 흥인지문 밖에 못을 파고(광해군), 두모포(옥수동)의 채석을 금지(인종)했다. 특히 동지(연지동), 서지(천연동), 남지(숭례문), 북지(삼청동 소격전) 등 4개의 큰 연못을 조성했다. 동지(東池)와 서지(西池), 남지(南池)는 물론 경회루와 성균관 연못, 광화문 앞 해태상, 숭례문의 세로 현판이 모두 불을 막기 위한 풍수 장치였다. 숭례문 밖 남지에 대한 기록은 1629년 이기룡이 그린 ‘남지기로회도’에 잘 나타나 있다. 연못에는 연꽃이 무성했고 버드나무가 보인다. 남지는 지금의 서울역 광장과 대우빌딩 자리쯤으로 어림된다. 1899년 일제가 서울역을 확장하면서 메워 버렸다. 동지는 흥인문 밖과 경모궁 밖에 있는데 두 곳 다 연꽃을 심었다고 ‘동국여지비고’에 기록돼 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는 경모궁 앞, 연동 앞, 흥인문 앞 등 3곳에 연못이 그려져 있다. 돈의문 밖 지금의 영천시장 자리에 서지가 있었다. 태종 및 세종실록에는 ‘길이가 100m, 폭 122m의 네모진 못에 낮은 담을 쌓고 버드나무를 심었다’라고 적혀 있다. ‘한경지략’에는 ‘돈의문 밖 서지가에 천연정이 있는데 꽃이 무성해서 여름철 성안 사람들이 연꽃 구경하는 곳으로 제일’이라고 적었다. 경복궁의 명당수 역할을 위한 삼청동 북지(北池)를 제외한 동·서·남지가 백성의 출입이 잦은 큰 문 앞에 자리한 것은 화재 방지용 방화수는 물론 경관 조성을 통한 유희용 등으로 두루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풍수 개념상 내(內) 명당수인 개천(청계천)을 둘러싼 풍수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명당수냐 아니면 도시의 배수구냐의 다툼이었다. 세종 26년 집현전 수찬 이선로가 “개천물에는 더럽고 냄새나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게 하여 물이 늘 깨끗하도록 해야 하겠나이다”라는 상소를 올렸다. 세종은 중신들과 논의한 끝에 한성부(서울시)가 나서서 개천에 오물을 버리지 못하도록 하고 어기는 자는 사헌부로 하여금 엄벌토록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집현전 교리 어효첨이 개천의 오염은 지리적인 특성과 도시 생활 하수 배출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풍수 논리를 잘못 적용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세종은 하수구를 잃게 된 백성의 원성을 대변한 어효첨의 손을 들어 줬다. 세종은 “풍수서라는 것은 다 믿을 것이 못 되나 옛 사람들이 다 풍수서를 알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에게는 풍수설을 자문할 것이고 어효첨 같은 자는 마음으로 풍수설을 그르게 여기니 그것에는 일하지 말게 하라”는 명을 내렸다. ‘풍수대왕’ 세종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눈물을 머금고 태조가 정한 명당수를 하수구로 판정한 것이다. 항상 열려 있어야 할 개천(開川)이 복개와 복원을 반복한 통한의 과거사를 상기시키는 문답이다. joo@seoul.co.kr
  • [기고] 일상에서 채워가는 힐링의 시간/이재갑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기고] 일상에서 채워가는 힐링의 시간/이재갑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하지만 직업을 구함에 있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보다는 개개인의 형편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직장 생활 외에 다른 좋아하는 일을 찾으며 힐링의 시간을 보낸다. 다양한 생활체육을 즐기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취미 생활에 깊이가 더해지면서 나중에는 전문가 수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매년 ‘근로자문화예술제’를 열어 근로자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벌써 서른네 번째다. 지금까지 참여한 근로자 수는 13만명에 이른다. 가요제, 연극제, 미술제, 문학제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예술제를 통해 근로자들은 평소에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인다. 정말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보이는 참여자도 적지 않다. 취미로 시작했던 일에서 보다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뤄지면서 얻은 결실일 게다. 4개 부문 중 첫 번째로 지난 4월 가요제가 열렸다. 참가자 중에는 어릴 적 가수를 꿈꾸며 무대에 오르기를 열망했던 분, 노래가 좋아 사무실에 연습실을 따로 만들어 놓으신 분도 있었다. 젊었을 때 홍대에서 밴드 활동을 했거나 직접 사내 동아리 분들과 자작곡을 만들어서 참여한 팀도 있다. 그분들은 상을 받기보다는 무대에 서는 것에 만족하면서 함께 한 시간을 즐겼다. 연극제에는 37개 팀이 참가했다. 회비를 걷어 연습할 공간을 마련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 호흡을 맞췄을 것이다. 그분들은 오로지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로 모였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자잘한 소품에서 대도구까지 직접 단원들이 만들어 가면서 내면의 끼를 열정적으로 표출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분들이다. 얼마 전에는 미술제와 문학제의 수상자를 발표했다. 미술제 수상작 중에는 장애를 입은 산재근로자의 작품도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다리를 잃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장애를 극복한 의지가 느껴진다. 문학제의 작품들은 근로자들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녹아 들어간 작품들이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경험과 현실에 대한 문제를 끄집어낸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예술제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80년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제는 근로자를 위한 최고의 문화 축전으로 견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로 예술제 수상자들은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 매년 발표회를 갖고 활동을 계속 이어간다. 예술제에 참여한 작품에는 근로자의 현장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또 우리 주변의 일상을 편하게 그려낸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더 쉽게 다가가고 공감을 이끌어 낸다. 바쁜 일상에서 놓친 것들을 스스로 채워가는 노력은 지친 삶을 굳건히 지켜주는 새로운 에너지가 될 것이다. 장년을 바라보는 근로자문화예술제가 우리의 생활에 활력을 주고 지친 일상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 해외여행 | nevada-두근두근 네바다

    해외여행 | nevada-두근두근 네바다

    가장 대단한 여행지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만으로도 두근거리는 걸 보면 네바다의 작은 소도시들은 충분한 매력을 가진 게 틀림없다. 상징은 익숙한 기호다. 누가 나에게 에펠탑을 보여준다면 저절로 프랑스를 떠올릴 게 뻔하고 피라미드는 이집트, 캥거루는 호주, 맥주는 독일을 연상시킬 거다. 이쯤 되면 머릿속이 단순한 회로로 이루어진 것 같고 상상력의 빈곤함을 자책하기도 한다. 그만큼 강력한 상징의 힘. 상징은 때로 전체를 대변하고 전부를 가리킨다. 하지만 유독 여행에 있어서 그 상징들의 힘은 미약하다. 에펠탑만으로 프랑스에서 보고 느낀 감정을 설명할 순 없었고 캥거루보다는 대자연, 사람들의 친절함이 호주 여행의 잔상으로 남았으니. 여행이란 압도적인 상징보다는 소소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또는 그런 재미라고 나만의 정의를 내려도 무방할 듯하다. 네바다의 상징은 라스베이거스다. 사막 위에 드라마틱하게 등장하는 이 도시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탐닉한다. 이번 네바다 여행에서도 라스베이거스는 그 위압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나는 이를 기꺼이 즐겼지만 라스베이거스는 이 여행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네바다=라스베이거스 공식은 참이 아니라는 증거들을 네바다 곳곳에서 발견하고 돌아왔으니. 이제 네바다의 상징은 사막, 카지노와 같은 이미지가 모두 휘발되고 난 후 고요함, 익살스러움, 따뜻함이 모인 그 무언가다. 미국의 조용한 마을 리노, 타호, 버지니아시티를 여행하며 내가 바랐던 네바다에 더욱 밀착된 느낌이다. ●Reno 리노 세상에서 가장 큰 소도시 미국은 동네, 도시, 나라에 대한 나의 공간감을 뒤흔든다. 내게 동네는 발로 타박타박 거닐 수 있는 범위, 도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1~2시간 내 닿는 거리. 우리나라는 서울부터 부산까지 초고속열차를 타면 몇 시간 내 닿는 땅이거늘.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찌된 게 오밀조밀한 나의 공간감을 풍선껌 불듯 주욱 늘려놓을 기세다. 대평원에 드문드문 박힌 생활공간들.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그들의 선조들이 앞으로앞으로 나갔던 탓이겠지만 두 발보다 자동차가 더 익숙한 이동수단인 데는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서 리노Reno가 더 좋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비행기로 40분가량 떨어진 리노는 구석구석을 걸어 다닐 수 있는 작은 마을 같다. 모든 게 글래머러스한 라스베이거스에 익숙해진 눈에 리노는 작은 미니어처로 보인다. 웅장한 호텔이 압도했던 라스베이거스와는 달리 한산한 시내 중심가 거리는 보안관이 맥주 한잔을 주문할 법한 작은 펍들이 군데군데 자리한다. 버지니아거리와 커머셜로우의 교차점에 자리한 리노의 상징인 아치Arch로 걸음을 옮긴다. 네온사인 간판인 리노 아치는 1926년부터 리노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설령 심심한 동네일 것이라 예단하는 여행자는 이 아치를 보고 리노를 한번 믿어 보기로 한다. ‘The biggest little city in the world’ 반대관계를 동반한 리노의 정의다. 그만큼 리노의 규모보다는 꽉 찬 속내를 즐기라는 뜻이겠다. 여름내 네바다주 남부는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됐는데 북부에 위치한 리노는 한낮에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버석버석한 공기에 땀이 쏘옥 흡수되니 움직임도 가볍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에 걸쳐 있는 시에라 산맥 구석구석의 눈이 녹아 트러키강Truckee River의 물줄기를 이룬다. 티 없는 햇볕 아래 맑은 강물을 벗 삼아 아저씨들은 낚시를 즐기고, 아이들은 물놀이에 여념 없고, 남녀는 자신들만의 작은 결혼식을 연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라 한가롭기만 한 리노는 1920대만 해도 북적거리는 외부인들로 지금의 분위기와는 영 딴판이었다고 한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사람들이 모두 네바다로 향했던 탓이다. 전국적으로 음주 금지령이 내려졌을 때도 네바다는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는 해방구였고 거의 모든 주에서 불법행위였던 매춘을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는 지역이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이혼율이 높은 나라에 사는 미국인들은 이혼시 법의 처벌을 받던 까마득한 그 시절을 기억이나 할까. 파국을 맞은 부부들은 유일하게 이혼이 가능했던 네바다로 날아와 부득부득 절차를 밟았다. 네바다 거주민에게만 허용된 법이라 한 달 이상 네바다에 머물며 주민권을 획득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도 리노의 술집들은 2, 3층에 여관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 많다. 이혼의 기쁨을 쟁취한 뒤 바로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진 걸까. 거리 곳곳에 즉석 결혼식을 치를 수 있는 웨딩채플이 눈에 띈다. 팍팍한 프로테스탄트의 삶 가운데 그 시절 리노는 ‘자유의 땅’과 동의어였을 게 분명하다. 이 땅의 자유로움에 매료된 사내가 있었다. 자본가 가문인 하라를 일으킨 빌 하라Bill Harrah. 지금도 리노를 비롯한 네바다 전역에서 그의 가족들은 하라스Harrahs 클럽, 호텔,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단지 부를 축적하는 데 그쳤다면 아직까지 그를 추억할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 참정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던 때 호텔과 카지노에 여성을 고용하고 인종차별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던 때에도 빌은 흑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를 운영했다. 호방한 사내였던 빌이 특히나 집착했던 것은 여자와 차. 8살때부터 운전을 시작한 빌은 325대의 자동차를 비롯해 총 1,400대에 이르는 이동수단을 수집했다. 그의 소장품은 리노 내셔널 자동차 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내셔널 자동차 박물관National Automobile Museum 빌 하라의 소장품이 전시된 박물관. 자동차에 관심이 큰 남성들과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박물관 안에서는 여러 소품들을 활용해 18~19세기 신사 숙녀로 변신해 볼 수도 있다. 주소 10 S Lake Street Reno, NV 89501 운영시간 월~토요일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입장료 $10 홈페이지 www.automuseum.org 엘도라도 호텔Eldorado Hotel Casino 리노 중심가에 위치한 5성급 시설을 자랑하는 호텔. 특히 조식이 유명하다. $10대 가격에 비해 풍성한 만찬을 즐길 수 있다. 리노 아치 맞은편에 있어 위치도 탁월하다. 주소 345 N Virginia St, Reno, NV 홈페이지 www.eldoradoreno.com●Virginia City 버지니아시티 19세기로 향하는 타임머신 1800년대로 시간의 축이 옮겨진다. 시에라 산 중턱에 자리잡은 버지니아시티는 마을 전체가 광산 산업으로 번성했던 시절을 그대로 간직한 테마파크 같다. 1859년 엄청난 은광석 광맥이 발견되면서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내들로 깊은 골짜기 작은 마을, 버지니아시티는 일대 가장 붐비는 도시가 됐다. 사람이 모이자 집이 들어서고, 고된 노동을 뒷받침할 음식점과 술집이 생겼다. 곡괭이만 갖다 대면 쏟아져 나오는 은을 항구로 옮기기 위해 철도가 들어섰다. 버지니아시티의 채굴량이 엄청났던지 샌프란시스코가 세워진 이유도 버지니아시티의 은을 태평양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있다. 버지니아시티로 이주했던 젊은이는 지역 신문 기자로 일하며 자신의 글을 집필했는데 그가 바로 <왕자와 거지>,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쓴 미국의 국민 작가 마크 트웨인이다. 그러나 버지니아시티의 번영은 채 한 세기도 가지 않았다. 1922년에는 지하 채광이 완전히 멈춰졌던 것. 을씨년스럽게 변해 가는 도시는 말 그대로 유령도시로 머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버지니아시티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가족을 위해 고향을 등지고 이곳으로 향한 아버지들을 기억한다. 그 시절 그대로 모습을 유지하면서 버지니아시티를 미국에서 가장 큰 국립 사적지로 만드는 과정 중에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후손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지금도 19세기 경찰과 신문기자, 시민들로 분장하고 버지니아시티의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그들은 연기자가 아니라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덕분에 관광객들은 공짜로 타임머신을 탄 듯하다. 슬롯머신 몇 대가 놓인 작은 술집, 내 이름이 들어간 신문 호외를 발행하는 인쇄소, 배고픈 광부들의 배를 불렸던 음식점까지 시 스트리트C street를 죽 걸으며 버지니아시티의 매력에 담뿍 취한다. 대도시나 대자연에서는 느껴 보지 못한 ‘미국적 향수’가 어린 곳이라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을 나온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다. 아빠 무등을 타고 거리를 구경하던 아이는 강도와 보안관 사이에 총격전 연극이 벌어지자 깜짝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는 아빠의 손길에 눈물을 멈추고 번쩍 손을 들어 올린 보안관과의 하이파이브! 순간 길거리를 거니는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핀다. 압도적인 경관이나 신비로운 모험도 좋지만 여행 후에 남는 건 언제나 순간의 기억들. 그래서 나에게 네바다의 상징은 광활한 사막도 라스베이거스의 마천루도 아닌 두근두근한 따뜻함일 것이다. 버지니아시티 트롤리 Virginia City Trolley 20분간 트롤리를 타고 버지니아시티 주요 명소를 돌아볼 수 있다. 시 스트리트의 델타 살롱 앞에서 출발한다. 요금 어른 $4, 어린이 $1.5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도시간 이동은 렌터카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네바다 알라모 렌터카 지점┃라스베이거스 국제공항Las Vegas Intl Airport 주소 7135 Gilespie St, Las Vegas, NV 전화번호 (702) 263-8411 영업시간 24시간 예약 및 문의 알라모 렌터카 한국사무소 www.alamo.co.kr ●Lake Tahoe 타호 호수 명징한 푸른빛을 머금다 과연 어디로 떠날 것인가, 여행은 늘 행복한 고민을 수반한다. 화려한 도시를 갈망하지만 평화로운 휴식도 포기할 수 없다. 그렇기에 리노를 떠나 타호 호수로 향한다. 바다가 없는 네바다에 바다보다 넓다는 푸른 호수를 만나러 간다. 타호는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의 경계선을 품고 있으며 호수의 경계를 죽 이은 선만도 116km가 넘고 수심은 500m 이상이라는 설명서를 읽었다. 물론 타호를 보지 못했다는 가정 하에 객관적인 수치는 타호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러나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는 수치는 내게 죽은 정보나 다름없었다. 다만 빛에 따라 시시각각 호수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 호수의 물은 사람이 마셔도 무방할 만큼 건강하고 청정하다는 묘사에 마음이 설렌다. 리노부터 타호까지 한 시간 못 되는 거리를 차로 달리면서 바짝 마른 창밖의 풍경 탓에 정말 푸른 호수가 등장하긴 하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황톳빛 황무지를 부지런히 달구는 태양은 분명 모든 수분을 말려 버릴 작정을 한 모양이다. 마음껏 물을 마시고 자란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 아래 선 순간 타호에 다다랐음을 직감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깊은 타호 호수는 소란스러움이 없다. 고요하고 잔잔한 수면에 검푸른 색을 담았다. 탄성이 나오는 비경이다. 네바다에서 집필 활동을 한 작가 마크 트웨인은 타호를 두고 ‘지구상의 가장 멋진 풍경’이라 칭송했고 호수의 끝이라는 의미를 담아 ‘Dao w a ga’로 칭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하늘을 담은 호수라 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짠 내음은 묻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호숫가 주변은 영락없는 해변이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은 시원한 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적절히 조합해 꿈같은 태닝을 즐기고 있고 밀려드는 파도를 껑충 뛰어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나도 그 분위기에 취해 신발을 벗어던진다. 차가운 빙하물에 발을 담갔더니 정신이 번쩍 날 정도다.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어 물을 채우고 입가로 가져가 한 모금 호로록 들이킨다. 온몸에 퍼지는 청량감. 채도 높은 옥빛 물이 일렁이는 사이 이리저리 쓸리는 고운 모래가 뒤꿈치를 간지럽힌다. 타호에서는 한량처럼 시간을 보내도 절로 즐겁다. 타호 여행의 백미는 크루즈 투어. 호수 남쪽에서 출발해 에메랄드 베이를 휘감고 돌아오는 일정이다. 화산이 폭발한 자리에 빙하물이 녹아 들어와 만들어진 타호는 최대 수심 40m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 빛의 굴절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온갖 물빛을 감상하면서 유유히 배를 타고 호수 위를 누빈다. 선상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와인 한잔을 곁들였다. 더 완벽할 수 없는 하루가 마무리된다. 크루즈 투어 M.S. Dixie2 Cruise 선데이 브런치 크루즈, 디너 크루즈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이 가능하다. 요금 에메랄드 베이 크루즈 성인 $47, 어린이(3~11세) $10 홈페이지 www.zephyrcove.com 하얏트 레이크 타호 Hyatt Regency Lake Tahoe Resort, Spa and Casino 예약이 힘들 정도로 인기 있는 호텔. 타호 호수를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다. 주소 111 Country Club Drive, Incline Village, NV 홈페이지 laketahoe.hyatt.com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네바다주관광청 www.travelnevada.co.kr, 02-775-3232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interview 브라이언 크롤릭키Brian K. Krolicki 네바다주 부지사 “150번째 생일을 맞는 네바다, 반전의 매력이 있죠” 네바다는 한 번으로 부족한 여행지입니다. 또 라스베이거스만 보고 가기에는 아쉬울 만큼 멋진 곳들이 많죠. 저는 타호 호수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사무실과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늘 곁에 두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네바다의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타호 호수는 결코 어는 법이 없습니다. 얼어 버리기엔 타호가 너무 깊고 넓은 호수이기 때문입니다. 호수 주변의 시에라 산맥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면 투명한 호수에 빠질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막인 줄 알았던 네바다에 웬 스키냐고요? 네바다는 4월까지 최상의 설질을 즐길 수 있는 스키 여행지입니다. 사막과 빙하가 공존하는 네바다에서 모험과 어드벤처를 만나시길 바랍니다. 오는 10월31일이면 네바다주가 150번째 생일을 맞이합니다. 올해 말까지 다채로운 축제와 행사가 네바다 전역에서 끊이지 않을 예정이니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 박삼구 회장, 금호산업 등기이사 복귀

    박삼구 회장, 금호산업 등기이사 복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산업 등기이사로 재선임됐다. 2010년 1월 금호산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개시에 따라 이사직에서 물러난 지 3년 8개월 만에 경영일선에 공식 복귀한 것이다. 금호산업은 5일 서울 우면동 교총회관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박 회장을 사내이사(등기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박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은 앞으로 경영 정상화에 실패할 경우 등기이사로 져야 할 책임을 묻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박 회장은 채권단에게 경영정상화에 실패할 경우 금호산업 지분을 모두 내놓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금호산업 관계자는 “박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은 채권단의 경영정상화 계획에 포함돼 있던 방안”이라면서 “등기이사로 재선임해 책임 경영을 더욱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인수 등에 따른 재무 부담으로 2009년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워크아웃 기간 동안 채권단은 박 회장이 경영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금호산업을 비롯해 금호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인정해줬다. 박 회장은 이번에 금호산업 사내이사에 등재됨으로써 공식적으로 금호그룹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단독] 세종청사 경내에 대규모 복합센터 신설 추진

    [단독] 세종청사 경내에 대규모 복합센터 신설 추진

    잘못된 설계로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세종청사에, 추가 설계를 통해 편의시설과 민원실 등을 포함한 복합센터가 들어선다. 당초 계획돼 있지 않았던 시설로, 청사 사이의 빈터에 지어진다. 주차장, 식당 등을 비롯한 주요 편의시설이 없어 원성이 높아지자 새로운 설계 용역을 통해 청사 지역의 불편과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시도이지만, 당초 설계 잘못에 대해 임기응변식으로 덧대기식 보완을 거듭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4일 기획재정부와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정부는 세종청사 구역내에 민원센터와 식당, 주차장, 실내 체육시설, 영화관 등 문화시설과 수영장, 병원 등을 포함하는 복합 편의시설을 세우기로 하고 2014년도 1차 설계용역비 20억원을 예산에 반영했다. 정부는 시설 종류와 형태를 결정하는 개념 설계를 마친 뒤 구체적인 세부 설계에 들어가 내년 말쯤 관련 시설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정부재정에 상응하는 민자를 끌어들여 사업을 진행하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복합센터를 짓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2000억원 규모의 공사를 예상하고 있다. 대단위 주차공간은 복합센터의 주요 시설로 당장 ‘발등의 불‘인 세종청사 및 주변지역의 주차난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중교통 분담률 70%, 차를 갖고 다니지 않는 도시를 만들겠다”며 지하 1층까지만 주차시설을 만들어 놓으면서 세종청사는 주차장이 크게 부족하다. 1만명이 넘게 상주할 세종청사내 주차장은 3386면. 주변 공터를 파헤쳐 옥외주차장 7곳에 1611면을 임시로 만들어 급증하는 차량 수요에 간신히 대처하고 있다. 세종청사를 찾는 민원인들도 관련 부처를 찾고 민원을 접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새로운 복합센터 조성은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민원인들은 청사를 출입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주변에 편의시설도 없어 곤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 관계자는 “정확한 위치를 개념 설계 등을 통해 정하겠지만 여러 부처들에서 접근성이 좋은 중간 지점의 빈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1단계 5~6동 건물인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옆에서 2단계 청사의 고용노동부 건물 사이에 이르는 공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역은 공간적으로 가장 여유가 있으면서 또 청사의 중간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이곳에 대단위 시설이 들어서면 첫마을 내에 조성하기로 한 중심 상업지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시설 중복이나 경합 효과를 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한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안전행정부 등은 최근 ‘주차시설 종합대책을 위한 용역’ 등 각종 용역을 발주하고 있다. 당초 잘못된 설계로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정부세종청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성의 없이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워놓은 뒤 문제가 커지니까 국민의 세금만 퍼붓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세종청사는 지난해 말 1단계 시설이 완공돼 국무조정실, 기재부 등 6개 부처가 들어왔고, 올해 말 까지 2단계 시설이 완공돼 교육부, 보건복지부, 고용부 등 6개 부처 5000명이 새로 들어올 예정이다. 세종시 지역의 활성화와 함께 교통대란과 주차란 등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사설] KT에 필요한 건 새 낙하산 아닌 유능한 CEO

    이석채 KT 회장이 엊그제 사의를 표명했다. 사퇴 외압설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출장가는 등 건재를 과시했지만 검찰이 수사 강도를 높이며 옥죄어 오자 결국 두 손을 든 셈이다. 평가받는 경영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회장은 회사 안팎에서 퇴진 압력을 받아왔다. 직원 8명이 자살한 무리한 노무관리로 노조의 공격을 받았고 그러면서도 영업실적은 월간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보은 인사’의 전횡과 독단적인 경영도 비판을 받았다. 보수·진보, 사내·외를 막론하고 퇴진 요구를 받는 이 회장의 사의를 안타깝게 생각할 사람은 적다. 퇴진과 관계없이 엄정한 수사를 받는 것도 마땅하다. 그러나 외부의 영향력이 작용한 점은 문제다. 5년 전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당시 남중수 KT 사장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구속됐고 이 회장이 낙하산으로 후임 CEO 자리에 올랐다. KT는 과거 공기업이었지만 민영화돼 정부 주식은 한 주도 없는 민간기업이다. 정부의 인사와 경영 개입은 월권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CEO 퇴임을 둘러싼 악순환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정권과 친한 인사들을 중용한 인사상 오점은 이 회장이 낙하산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고액 연봉 값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경영 능력도 애초에 검증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결과는 KT 회장을 대선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초래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포스코나 KB국민은행도 KT와 사정이 똑같다. 정권만 바뀌면 멀쩡한 사람을 몰아내고 자기 사람을 앉히려는 그릇된 생각이 기업을 멍들게 만들었다. 과거에 공기업이었다는 이유로 정부가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경쟁력을 갉아먹는 행위다. KT 회장에 새 낙하산을 선임한다면 5년 후 또 다른 무능 경영자의 말로를 볼 수 있다. 주인 없는 회사라고 간섭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리기 바란다. 유능한 경영자를 선임하고 평가하는 것은 주주나 이사회에 맡겨야 한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은 KT처럼 오너는 없지만 CEO 경쟁프로그램을 통해 후임자를 결정해 135년 동안 초일류 기업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민영화된 옛 공기업들의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할 때다.
  • [단독]세종청사 경내에 대규모 복합센터 신설 추진

    [단독]세종청사 경내에 대규모 복합센터 신설 추진

    잘못된 설계로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세종청사에, 추가 설계를 통해 편의시설과 민원실 등을 포함한 복합센터가 들어선다. 당초 계획돼 있지 않았던 시설로, 청사 사이의 빈터에 지어진다. 주차장, 식당 등을 비롯한 주요 편의시설이 없어 원성이 높아지자 새로운 설계 용역을 통해 청사 지역의 불편과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시도이지만, 당초 설계 잘못에 대해 임기응변식으로 덧대기식 보완을 거듭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4일 기획재정부와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정부는 세종청사 구역내에 민원센터와 식당, 주차장, 실내 체육시설, 영화관 등 문화시설과 수영장, 병원 등을 포함하는 복합 편의시설을 세우기로 하고 2014년도 1차 설계용역비 20억원을 예산에 반영했다. 정부는 시설 종류와 형태를 결정하는 개념 설계를 마친 뒤 구체적인 세부 설계에 들어가 내년 말쯤 관련 시설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정부재정에 상응하는 민자를 끌어들여 사업을 진행하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복합센터를 짓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2000억원 규모의 공사를 예상하고 있다. 대단위 주차공간은 복합센터의 주요 시설로 당장 ‘발등의 불‘인 세종청사 및 주변지역의 주차난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중교통 분담률 70%, 차를 갖고 다니지 않는 도시를 만들겠다”며 지하 1층까지만 주차시설을 만들어 놓으면서 세종청사는 주차장이 크게 부족하다. 1만명이 넘게 상주할 세종청사내 주차장은 3386면. 주변 공터를 파헤쳐 옥외주차장 7곳에 1611면을 임시로 만들어 급증하는 차량 수요에 간신히 대처하고 있다. 세종청사를 찾는 민원인들도 관련 부처를 찾고 민원을 접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새로운 복합센터 조성은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민원인들은 청사를 출입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주변에 편의시설도 없어 곤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 관계자는 “정확한 위치를 개념 설계 등을 통해 정하겠지만 여러 부처들에서 접근성이 좋은 중간 지점의 빈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1단계 5~6동 건물인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옆에서 2단계 청사의 고용노동부 건물 사이에 이르는 공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역은 공간적으로 가장 여유가 있으면서 또 청사의 중간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이곳에 대단위 시설이 들어서면 첫마을 내에 조성하기로 한 중심 상업지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시설 중복이나 경합 효과를 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한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안전행정부 등은 최근 ‘주차시설 종합대책을 위한 용역’ 등 각종 용역을 발주하고 있다. 당초 잘못된 설계로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정부세종청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성의 없이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워놓은 뒤 문제가 커지니까 국민의 세금만 퍼붓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세종청사는 지난해 말 1단계 시설이 완공돼 국무조정실, 기재부 등 6개 부처가 들어왔고, 올해 말 까지 2단계 시설이 완공돼 교육부, 보건복지부, 고용부 등 6개 부처 5000명이 새로 들어올 예정이다. 세종시 지역의 활성화와 함께 교통대란과 주차란 등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버티던 이석채 전격 사의… 공공기관장 인선 속도 내나

    버티던 이석채 전격 사의… 공공기관장 인선 속도 내나

    이석채(68) KT 회장이 르완다 출장에서 돌아온 지 하루 만인 3일 이사회에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이 회장의 사퇴에 따라 검찰은 이 회장을 포함한 KT 임직원에 대한 소환조사를 곧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날 오후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나로 인해 (KT에) 더 이상 피해가 가면 안 된다. 빠른 시일 내에 신임 최고경영자(CEO)를 임명해 달라”면서 “새 CEO가 올 때까지 잘 마무리해 넘겨주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회사 부동산을 헐값으로 매각하는 등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 왔으며, 최근 비자금 수사로까지 확대되자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이 회장이 회사에 누를 끼칠까 부담을 느껴 사퇴한 것으로 안다”면서 “그렇다고 사퇴가 혐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KT 이사회는 이 회장의 퇴임 2주 이내에 사내외 이사 8명으로 이뤄진 CEO추천위원회를 구성, 후임 CEO 선임 절차에 착수한다. 이 회장의 사퇴는 두 차례에 걸친 검찰의 압수수색이 결정적이었다. 정권이 새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민영화된 KT의 최고 수장을 함부로 바꾸는 것은 공권력 남용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한때 이 회장이 회장직을 이어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흘러나왔지만 검찰이 이 회장 출장 중인 지난달 31일 KT 임직원 자택 등에 대한 2차 압수수색에 나서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회장직을 던졌다. 이 회장의 사퇴로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공기업에 대한 인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퇴임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포스코 정준양 회장의 거취도 주목되고 있다. 정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6월 중국 방문과 9월 베트남 방문의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잇따라 제외됐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사설] 공기업 ‘돈잔치 근절’ 미봉책으론 안 된다

    해묵은 공기업 방만경영 문제에 대해 정부가 다시 칼을 들이댈 모양이다. 부채가 급증하는 등 경영 효율화에 실패한 공기업에 대해서는 성과급과 업무추진비 등을 좀 더 제한할 것으로 전해졌다. 수당 등 복리후생 항목도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게 고칠 전망이다. 하지만 ‘정책이 있으면 대책이 있다’는 냉소는 공공기관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다. 대통령의 ‘발본색원’ 한마디에 포장만 그럴듯한 미봉책을 내놓았다가는 이를 비웃듯 빠져나가는 공공기관에 또다시 뒤통수를 내주게 될지 모른다. 공공기관 평가에서 꼴찌나 다름없는 D등급을 받은 한국거래소만 하더라도 임금 인상이 어려워지자 2010년부터 2012년 8월까지 사내근로복지기금에서 직원 1인당 233만원씩 총 30억원을 지급했다. 성완종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거래소가 이런 식으로 편법 지급한 복지 혜택이 3년간 72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한국거래소는 공공기관 지정 해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다른 공기업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비리 화수분’으로 불리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약 25조원의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퇴직자 497명에게 총 10억원의 상품권을 지급했다. 한국도로공사는 빚이 많아 하루에 32억원씩 이자를 물면서도 최근 4년간 직원들에게 2389억원의 성과급을 줬다. 이렇듯 정부가 아무리 불이익을 줘도 내부 기준 등을 이용해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공기업의 이런 행태가 난타당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는 국감에서 똑같은 지적이 반복되지 않도록 획기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그동안 국감과 언론 등에서 지적된 공기업의 예산 낭비와 편법 돈잔치 사례를 조목조목 살펴 빠져나갈 구멍을 최대한 차단해야 할 것이다. 연봉이나 업무추진비 자체가 워낙 높게 책정된 공기업은 성과급 제한만으로는 제재 실효성이 떨어지는 만큼 확실한 불이익 수단도 강구해야 한다. 대형 비리가 터진 곳 등은 총인건비를 감액하는 강수도 고려할 만하다. 1983년 도입된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의 근본적인 수술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시행 30년이 됐는데도 고질적 병폐가 반복된다면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 [단독] 산재 은폐·미신고 많아… 부당수급 환수액만 올 539억

    [단독] 산재 은폐·미신고 많아… 부당수급 환수액만 올 539억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이 사실을 일부러 숨기거나 관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건강보험 급여로 치료를 받도록 하는 바람에 건강보험재정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한 정부 감시로 인해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산재보험료를 전 국민이 건보료로 대신 납부해 주는 셈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3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산재 은폐·미신고로 인해 발생하는 건보재정 손실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2991억원이나 됐으며, 올 들어서도 9월까지 부당수급 환수결정액이 539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어 “이 액수는 건보공단 등에서 적발한 액수일 뿐”이라면서 “전문가들은 산재 은폐·미신고로 인한 건보재정 손실 규모가 실제로는 해마다 수조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산재 은폐·미신고로 인해 발생하는 건보재정 손실 규모에 대해 심 의원은 기존 연구를 인용해 2014년 기준으로 최소 2646억원에서 최대 7723억원으로 추정했다. 또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손실규모는 최소 1조 4620억원, 최대 4조 2673억원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건보 총수입액은 41조 8192억원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하는 공식 산재 피해 근로자는 연간 9만여명이다. 임준 가천의대 교수는 2011년 기준으로 산재 은폐·미신고 규모를 100만명으로 추정한 바 있다. 지난 3월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는 2주 동안 울산 동구 지역 정형외과를 대상으로 한 자체 조사만으로 산재 은폐 사례를 106건이나 찾아냈다. 대한전문건설협회나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등에서 조사한 건설업 부문 연구도 치료비를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은 경우가 최소 41.2%에서 최대 83.1%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심 의원은 “실제 산재 피해자는 공식통계보다 최소 10배가 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만인율(산재 가입 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수)은 1.20명이다. 200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0.48명보다 두 배 이상 높다. 하지만 사망사고가 아니라 산재보험료를 받은 업무상 사고 혹은 직업적 손상률을 보면 한국은 OECD 평균 대비 5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심 의원은 사망자수에 비해 산재보험료 대상인 업무상 사고 등의 비율이 턱없이 낮다는 것도 산재보험료 대신 건보료로 납부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고용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치료비를 건보에서 부담하는 게 산재보험의 흑자 유지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산재 은폐 적발에 소극적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면서 “고용부가 운영하는 산재은폐신고센터는 지난 5년간 4건을 적발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건보공단에 대해서도 “건보재정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걸 알면서도 조사인력 확충이나 조사권한 확보 등 실질적인 제도개선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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