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과 편지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 키움증권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 양보 자제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 히로시마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 시간강사
    2026-09-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89
  • ‘9월 결혼’ 손동운, 팬들에 사과 “죄송스러운 마음… 잘하겠다”

    ‘9월 결혼’ 손동운, 팬들에 사과 “죄송스러운 마음… 잘하겠다”

    최근 결혼을 발표한 그룹 하이라이트 멤버 손동운(32)이 일부 팬들의 비난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손동운은 지난 6일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어떤 모습으로 여러분을 만나야 할지 많이 고민하다가 라이브 방송을 켰다”며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 보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하이라이트) 멤버들과 회사에 어려운 짐을 나눠 드리게 됐다. 그 부분에 대해 먼저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잘하겠다. 다른 것보다 계속해서 올해 여러분을 만날 수 있도록 애쓰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손동운은 지난달 27일 자필 편지를 통해 팬들에게 결혼 소식을 전했다. 그는 당시 “갑작스러운 소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이 놀라시고 또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드실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지금도 참 많이 떨리고 조심스럽다”며 “감사하게도 저를 많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는 분을 만나게 되어 어느 순간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오는 9월 식을 올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해당 소식을 접한 일부 팬들은 손동운이 결혼으로 팀 활동에 지장을 주는 것 아니냐 등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손동운은 이날 라이브 방송에서 팬들에게 “너무 무겁게 얘기를 드린 것 같은데, 무거운 분위기 만들어서 죄송하다”며 “다음번에는 조금 더 괜찮은 이야기를 갖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 콜로세움에 이름 새긴 그, 로마 시장에 편지 “오래된 유적인 줄 몰랐다”

    콜로세움에 이름 새긴 그, 로마 시장에 편지 “오래된 유적인 줄 몰랐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2000년 된 유적 콜로세움의 벽면에 자신과 여자친구의 이름을 새겨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의 분노를 일으킨 영국인 관광객이 오래된 유적인 줄 몰랐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 ‘일 메사제로’에 따르면 영국 서부 항구도시 브리스틀에 거주하는 31세의 피트니스 강사인 이반 디미트로프는 로베르토 구알티에리 로마 시장과 시청, 로마 검찰에 전날자로 사과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심각성을 이제야 깨달았다면서 “전 인류의 유산에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이탈리아 국민과 전 세계에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가리아 출신으로 알려진 디미트로프는 무거운 벌금과 징역형을 모면하기 위해서인 듯 “유감스럽게도 이 일이 일어난 후에야 그 유적(콜로세움)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게 된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콜로세움의 연혁을 모르고 저지른 일인 만큼 선처해달라는 것이다. 콜로세움은 서기 80년에 건립된 지상 4층, 5만명 수용 규모의 원형경기장으로 과거 로마제국은 물론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손꼽힌다. 이 소식을 전한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이름을 새긴 벽돌이 사실은 19세기 중반에 보수된 벽의 일부란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그의 행동이 문화재 파괴 행위임에는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연간 6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콜로세움은 그 상징성만큼이나 관광객의 훼손 행위에 대한 처벌도 무거운 것으로 유명하다. 문화유산 훼손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디미트로프의 유죄가 확정되면 적어도 1만 5000유로(약 2150만원)의 벌금과 최대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연상의 여자친구이며 영국인인 헤일리는 ‘공범’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수사를 받고 있지는 않다고 이탈리아 언론들은 보도했다. 디미트로프의 변호사 알렉산드로 마리아 티렐리는 ‘일 메사제로’에 “이 남성은 자국에서는 엄벌에 처할 수 있는 행위도 이탈리아에서는 무엇이든 허용된다고 경솔하게 믿는 외국인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은 디미트로프가 유죄 양형 거래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달 23일 콜로세움 벽면에 열쇠를 이용해 ‘이반+헤일리 23’이라고새기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돼 공분을 샀다. 그는 지나가던 사람이 이 황당한 상황을 카메라에 담자 얼굴을 돌리고 미소를 짓는 여유까지 부렸다. 이탈리아인들의 분노가 커지자 문화부 장관까지 나서 엄벌을 약속했고, 이탈리아 경찰은 추적 닷새 만에 이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 초등 때 성폭행하고 “귀여워서 그랬다” 부인한 계부, 결국 징역 10년

    초등 때 성폭행하고 “귀여워서 그랬다” 부인한 계부, 결국 징역 10년

    초등학생 때 성폭행을 당한 의붓딸이 성인이 돼 사과를 요구하자 “귀여워서 그랬다”고 했던 50대가 항소심에서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송석봉)는 23일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57)의 항소심을 열고 “피해자의 진술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상세하고 금전 보상이 아닌 사과를 요구한 점을 고려했다”며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20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등 관련기관 취업제한 10년을 명령받았다. A씨는 2008년 의붓딸 B(당시 9세)씨를 수차례 추행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검·경조사 결과 A씨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B씨의 친모와 재혼해 한 집에 살면서 아내가 잠들거나 관심이 소홀한 틈을 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A씨의 성폭력은 B씨의 친모가 사망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B씨는 성인이 된 뒤에야 A씨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귀여워서 그랬다”는 말을 듣고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가 고소하자 A씨는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수사가 시작되자 혐의를 전면 부인하기 시작했다. A씨는 줄곧 “잠든 피해자를 추행한 혐의는 미수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의붓딸, 계부에 편지“나는 당신을 안 죽였고, 사과 기회도 줬다” 하지만 B씨는 재판 과정에서 “15년간 지옥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 것 같다. 나는 당신(A씨)을 살인하지 않았고, 사과할 기회도 줬다”는 내용의 편지를 재판부를 통해 A씨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안식처가 돼야 할 가정이 의붓딸 B에겐 위협적이고 힘겹게 싸워 생존해야 할 범죄 장소가 됐다”며 “A씨는 범행을 부인하고, B씨는 엄벌을 탄원한다”고 중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B씨의 진술이 피고인 A씨와 통화한 내용과 일치하는 점을 볼 때 A씨의 변명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항소를 기각했다.
  • 21년 전 ‘백 경사 피살사건’ 진범, 대전 은행강도범 이정학이었다

    21년 전 ‘백 경사 피살사건’ 진범, 대전 은행강도범 이정학이었다

    21년 전 전북 전주에서 발생한 백선기 경사 피살사건의 범인이 대전 은행강도 살인 사건 공범인 이정학(52)으로 밝혀졌다. 이후신 전북경찰청 형사과장은 22일 “수사를 통해 확보한 정황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이정학 단독 범행임을 확인하고 살인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은행강도 공범이 결정적 제보 이정학은 2002년 9월 20일 0시 44분쯤 전주북부경찰서 금암2파출소에서 근무하던 백 경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전된 백 경사의 38구경 권총을 훔친 혐의도 받는다. 당시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나섰지만 사라진 권총을 찾지 못했고 범인 검거에도 실패했다. 용의자였던 20대 3명을 검거해 자백을 받았으나, 이들은 “경찰의 구타로 허위 자백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후 수사본부는 해체되고 장기 미제로 남았다. ●훔친 38구경 권총 여관서 발견 경찰은 지난 2월 13일 대전 은행강도 공범 중 한 명인 이승만(53)으로부터 ‘사라진 백 경사 총기의 소재를 안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받고 백 경사 피살사건 수사를 시작했다. 이후 이승만이 지목한 울산 모 여관방의 천장에 숨겨진 38구경 권총도 찾아냈다. 당시 현장 목격자를 참고인으로 불러 최근 법최면 수사도 진행해 구체적인 당시 상황 진술 역시 확보했다. ●단독범행 결론… 이정학은 부인 경찰은 이승만과 이정학의 공동범행이 아닌 이정학 단독범행으로 보고 있다. 사건 당시 현장 상황과 제보자의 진술이 일치하는 등 이승만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정학은 현재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21년만에 드러난 경찰관 피살 사건, 범인은 2001년 대전 은행강도 살인 공범 그놈이었나

    21년만에 드러난 경찰관 피살 사건, 범인은 2001년 대전 은행강도 살인 공범 그놈이었나

    21년전 경찰관 피살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다. 전북경찰은 지난 2002년 발생한 백선기 경사 살해 및 총기탈취(강도살인) 사건 피의자를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그는 2001년 대전 은행강도 살인 사건 공범 중 한 명인 이정학(52)이다. 현재 이정학은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한통의 편지로 시작된 장기 미제 수사 수십년간 베일에 쌓였던 백 경사 피살사건은 올해 초 전북경찰청에 배달된 편지 한장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지난 2월 13일 전북경찰청 미제수사팀 제보 하나가 접수됐다. 21년 전 발생한 ‘백선기 경사 피살사건’의 범인을 안다는 것이다. 또 백 경사 권총의 행방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편지 내용에 따르면 백 경사를 살해한 범인은 국민은행 권총강도 사건으로 수감된 이정학이었다. 제보자는 놀랍게도 공범인 이승만(53)이었다. 이들은 현재 대전교도소에 함께 수감 중이다. 이승만은 제보하면서 “범인이 권총을 부탁해 대신 숨겨줬다”고 했다. 경찰은 지난 3월 이승만이 지목한 울산시 모 여관방을 압수수색해 천장에 숨겨진 녹슨 38구경 권총을 찾아냈다. 총기번호를 조회한 결과 2002년 전주 금암2파출소에서 사라졌던 바로 그 총기였다. 21년전 그날 무슨일이 있었나 백 경사는 2002년 9월 20일 0시 50분쯤 전주시 덕진구 금암2파출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백 경사는 혼자 근무 중이었다. 순찰을 마친 직원들이 도착했을 때 그는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흉기로 목과 가슴 등이 찔린 상태였다. 당시 54세였다. 백 경사가 갖고 있던 38구경 권총과 실탄 4발·공포탄 1발도 사라졌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사라진 권총을 찾지 못했고 범인 검거도 실패했다. 사건 현장에서 2개의 족적이 발견됐지만 확인이 어려웠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20대 3명을 검거해 자백을 받았으나, 이들은 “경찰의 구타로 허위 자백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후 수사본부는 해체되고 장기 미제로 남았다. 공동범행이 아닌 단독범행? 전북경찰청은 사건의 진모를 밝혀내기 위해 전문 수사 인력 47명으로 구성된 특별 수사팀을 편성하고 수사에 돌입했다. 지난 4월에는 수사관 10명을 대전교도소로 보내 이승만과 이정학을 상대로 대질 신문을 진행하는 등 수차례 조사를 마쳤다. 당시 현장 목격자를 참고인으로 불러 최근 법최면 수사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당시 상황 진술을 확보했다.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이승만과 이정학의 공동범행이거나 적어도 둘 중 한명의 단독 범행일 것으로 판단했다. 최소한 이정학이 범행과 연관된 것으로 파악했다. 숨진 백 경사 몸에서 발견된 상처를 토대로 범행 당시 사용된 흉기가 식칼이나 과도 등이 아닌 회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이정학은 지난 2004년 7월 대전에서 유흥주점 업주를 상대로 강도 행각을 계획하던 중 검거됐고, 당시 회칼과 노끈 등을 소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정학이 이승만과 함께 대전·전주를 오가며 음반 테이프 유통사업을 하고도 “전주에 온 적 없다”고 거짓 진술을 한 점도 이정학을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관계자는 “국민은행 강도 사건 관련자들을 비롯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했다”면서 “유의미한 정황 증거와 진술을 추가로 확보해 이정학 단독 범행으로 보고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친형제보다 가까웠던 이승만과 이정학, 틀어진 계기는 이들은 20여 차례에 걸쳐 범행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국민은행 범행 차량 그랜저XG에 있던 마스크와 손수건에서 검출된 DNA가 충북 불법 게임장에 남긴 이정학의 담배꽁초 검출 DNA와 일치하면서 사건 발생 7553일 만에 검거됐다. 이승만과 이정학은 국민은행 강도살인 재판과정에서도 ‘권총 격발자 떠넘기기’를 벌였다. 이정학 측 은 권총 발사는 ‘이승만’, 현금가방 탈취는 ‘이정학’이라고 했다. 이승만은 재판 내내 “권총은 이정학이 쏘았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 이승만에게 무기징역, 이정학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이승만은 이정학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꼈고 두 사람이 틀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정학 때문에 검거되고 재판 때 반격까지 당하자 이승만이 공범에 대한 분노로 제보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범행 부인하는 이정학, 수사 변수는 이정학은 백선기 경사를 살해하고 권총을 탈취한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21일 대전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도 이정학은 본인이 ‘백 경사 피살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것과 관련해 “이승만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양형상 이득을 얻기 위해 제보한 것”이라며 “제가 총을 쏘지 않았다는 것은 거기서(전북에서) 밝혀내겠다”고 주장했다. 추가 증거나 증언이 나올경우 상황이 뒤바뀔 가능성은 남아 있다. 전북경찰청 이후신 형사과장은 “송치 이후에도 검찰과 긴밀히 협력해 원활한 공소유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강수사를 계속할 것”이라면서 “어떤 미제사건이라도 끝까지 수사해 반드시 검거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 인스타에 사진 올리면 26억…메시·사우디의 은밀한 계약

    인스타에 사진 올리면 26억…메시·사우디의 은밀한 계약

    살아있는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35·아르헨티나)가 지난해 5월 인스타그램에 올린 관광 사진은 때아닌 논란을 일으켰다. 홍해 위 요트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이 사진은 사우디 관광 홍보 목적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게시물에 달린 ‘#비지트사우디’라는 해시태그는 사우디 관광청 브랜드다. 팔로워만 4억 7000만 명에 달하는 슈퍼스타 메시가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은 사우디 정부의 홍보대사로 나섰다는 점에서 ‘스포츠워싱’(스포츠를 이용해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나쁜 평판을 덮고 이미지를 세탁하는 일)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메시의 관광은 첫 사우디 방문이었지만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는 아흐메드 알카티브 사우디 관광부 장관의 언급은 빈말이 아니었다. 1년 만인 올해 5월에도 구단(파리 생제르맹) 허락 없이 시즌 중 사우디를 찾아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렸다. 구단의 징계도 불사한 메시의 홍보 활동은 사우디 관광부와의 계약에 담긴 의무 조항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NYT)가 입수해 18일(현지시간) 공개한 양측의 계약서에 따르면 메시는 매년 최소 한 번 이상 사우디에 5일 이상의 가족여행을 가야 한다. 이러한 ‘의무 휴가’로 메시가 받는 돈은 약 200만 달러(약 25억 6000만원)에 이른다. 메시의 가족 관광 비용과 5성 호텔 숙박료는 전액 사우디 정부가 지급한다. 메시는 가족과 친구를 최대 20명 동반할 수 있다. 메시가 사우디 관광부와의 계약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3년간 최대 2500만 달러(약 320억원)에 달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전액 비용을 부담하는 가족 관광과 소셜미디어 게시, 광고 촬영, 홍보캠페인 참여 등 몇 가지 일만 하면 손쉽게 이 금액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사우디를 홍보하는 게시물을 연 10회 올리면 200만 달러를, 연례 관광 캠페인 행사에 참여하면 200만 달러를, 기타 자선 사업에 참여하면 200만 달러를 각각 추가로 받는 식이다. 단, 메시는 사우디의 평판을 훼손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되고, 사우디 정부가 허락한 해시태그를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달아야 한다. 지난 2021년 초 사우디 정부와 관광 홍보 계약을 체결한 메시가 그 직후 방문 일정을 취소한 뒤 이례적으로 저자세를 보이며 사과 편지를 쓴 사실도 드러났다. NYT가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메시는 알카티브 장관에게 “각하”(Your Excellency)라는 극존칭을 사용하며 당시 사우디 방문을 연기한 사실에 대해 “가장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사우디가 스포츠워싱에 이용한 것은 메시뿐만이 아니다. 라이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프랑스의 축구 스타 카림 벤제마 등을 거액으로 유혹해 자국 리그로 데려온 것은 물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구단 인수와 자동차 경주, 골프 대회까지도 손을 뻗치고 있다. 메시와 사우디 정부 간 계약에 관여한 전직 축구선수 라이코 가르시아 카브레라는 NYT에 호날두와 벤제마의 연봉에 비하면 메시가 받는 돈은 “소액에 불과하다”면서 “메시가 엄청난 금액을 요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 “당신을 깊이 원해”…톱 여배우, 내연남에 보낸 편지 공개됐다

    “당신을 깊이 원해”…톱 여배우, 내연남에 보낸 편지 공개됐다

    일본 톱 여배우 히로스에 료코(42)가 불륜을 인정한 가운데 내연남에게 보낸 러브레터가 공개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일본 주간 슈칸분슌(週刊文春·주간문춘)은 내연남인 유명 셰프 A씨(45)와 주고받은 러브레터와 두 사람의 교환 일기 일부를 공개했다. 히로스에는 고급 호텔의 엽서에 자필로 “이런 식으로 정말 부딪히고 서로 요구하고,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은 처음일지도 모른다”, “당신을 매우 좋아한다”, “당신을 진심으로 깊게 원하고 있다” 등의 글을 남겼다. A씨도 히로스에를 향해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함께 하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 등의 글을 통해 애정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불륜은 히로스에가 미슐랭 1스타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 A씨와 불륜 관계라고 ‘슈칸분슌’이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기혼자인 두 사람은 불륜설을 부인했다가 지난 14일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히로스에는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불편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 보도된 내용은 대체로 맞다”며 고개를 숙였다. A씨는 “나의 경솔한 행동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정말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히로스에 소속사 측은 “사태의 무게를 감안해 히로스에를 무기한 근신 처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히로스에 료코는 2003년 모델 오카자와 다카히로와 결혼해 첫 아이를 출산했으나, 2008년 이혼했다. 2010년 10월 캔들 준과 재혼해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는 지난 2014년에도 9세 연하 배우 사토 타케루와 불륜으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 “실컷 기어다니라고 해주세요” 층간소음 사과에 10살 답장

    “실컷 기어다니라고 해주세요” 층간소음 사과에 10살 답장

    아파트 층간 소음에 대해 아랫집에 미리 양해를 구해온 윗집에 손 편지와 함께 깜찍한 선물까지 보낸 10살 초등학생의 사연이 온라인에서 전해져 훈훈함을 자아내고 있다. 최근 한 트위터 이용자 A씨는 “새로 이사한 지인 아들이 이제 8개월이라 보행기 소리가 거슬릴까 봐 아랫집에 쪽지와 함께 빵을 보냈는데 이런 귀여운 답장이 붙었다”면서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란 글을 올렸다. A씨가 글과 함께 올린 사진에는 초등학생이 직접 쓴 편지와 선물이 함께 있었다. 아이는 자신을 “OOO호에 사는 10살 아이”라고 소개한 뒤 “저희 윗집으로 이사 오신 것을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 선물 정말 감사하다. 8개월 아기가 한창 걸어 다닐 나이가 돼서 실컷 뛰고, 걷고, 기어 다니라고 해주시라”며 “저희 집은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아이는 윗집 어른이 준 빵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무드등을 선물로 준비하는 센스까지 보여줬다. 아이는 “저희도 선물 감사해서 아기가 잘 때 무섭지 않도록 하트 모양등을 선물하겠다”며 뒷면의 스위치 위치까지 친절하게 안내했다. 해당 글을 본 누리꾼들은 “10살 아이가 저렇게 감동을 주네, 너무 귀엽다.” “그래도 아직은 타인을 배려해 주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 20대男, 12살 초등생과 성관계…출산까지 시켰다

    20대男, 12살 초등생과 성관계…출산까지 시켰다

    10대 여학생과 성관계를 갖고 출산까지 시킨 20대 남성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31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 명재권)는 최근 미성년자 의제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20)씨에게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했다. 또 신상 등록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A씨는 2021년 12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당시 12살이었던 B양을 알게 됐고, 3차례의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 A씨는 임신을 한 B양에게 아이까지 출산시켰다. 출산한 아이는 입양기관에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판결 후 피해자 측은 “A씨 측으로부터 사과 편지 한 통조차 받지 못했다”며 반발했다. 재판부는 “건전한 성적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해야할 시기의 12세 어린 피해자를 간음했다는 점에서 피고인이 재질이 불량하다”며 “피해자는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해야했다”고 밝혔다. 다만 “범행 당시 피고인도 18살이었다”면서 “수사에 협조한 점, 범행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잘못을 반성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앞서 검찰은 A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피고인 측은 선고 직후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신예은, 팬 선물 잃어버려 거듭 사과

    신예은, 팬 선물 잃어버려 거듭 사과

    배우 신예은이 팬이 준 선물을 잃어버려 사과했다. 18일 신예은은 팬 소통 어플을 통해 “한 친구에게 하는 말”이라고 말문을 열며 “정말 미안해. 예전에 나한테 선물해줬던 제작된 에어팟을 내가 잃어버린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신예은은 “하와이 다녀와서 계속 찾고 매일 찾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 물어보고 집 계속 청소하면서도 보고 본가에 두고 온 건가 물어보기도 했는데 결국 못 찾았어”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찾을 거야. 근데 만약 다음에 얼굴 볼 일이 생겼는데 에어팟 잘 쓰고 있냐는 질문 받으면 거짓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도 너무 미안하고, 어떻게 하지 하다가 여기다 남겨”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집 강아지까지 그려주고 축구공도 그려줘서 내가 진짜 여기저기 자랑하고 엄청 소중히 여겼는데 왜 없어진 건지 모르겠어”라면서 “내 잘못인데 너무 미안해. 너무 속상하고 기분이 안 좋은데 나보다 선물해준 친구가 더 상처받았을 거 같아서 너무 조심스럽고 미안해. 다 나의 불찰이야”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편지에도 꼭 잘 써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못 지켜서 미안해. 상처받았거나 기분 나쁘면 말해 꼭. 내가 어떻게든 계속 찾아낼게. 정말 미안해”라고 말을 맺었다. 이를 본 팬들은 “진심이 느껴진다”, “팬이 준 선물을 정말 소중히 여기나 보네”, “더욱더 감동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해당 선물을 보내준 팬도 “언니가 얼마나 소중히 여겨줬는지 안다. 고맙다. 신예은 평생 사랑해”라며 신예은이 에어팟을 착용한 사진을 올리며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신예은은 최근 넷플릭스 ‘더 글로리’와 SBS ‘꽃선비 열애사’ 등에 출연했다.
  • 눈물로 쓴 메시지, 쌓여가는 카톡 ‘1’… 우리가 세상을 바꿀게

    눈물로 쓴 메시지, 쌓여가는 카톡 ‘1’… 우리가 세상을 바꿀게

    16일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200일이 됐다. 벌써 두 계절을 보냈지만 유가족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그날 이태원 골목으로 돌아가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하지만 유가족들은 매일 영정 사진 속 희생자들에게 ‘잊을 수 없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메신저 속 상대방이 아직 읽지 않았다는 표시인 ‘1’은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200일간 유가족들이 멈추지 않고 꾸준히 쌓아 온 ‘1’의 기록을 서울신문이 담았다.2022년 12월 5일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네가 있는 장례식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긴 시간 만에 낯익지만 차갑게 식어 있는 너의 얼굴을 봤다. 꿈일 거야, 꿈이기를…사랑하는 우리 딸 은지야. 운명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차라리 엄마·아빠가 그곳에 있을게.” 고 송은지씨의 아버지 송후봉(62)씨는 지난해 12월 5일 은지씨를 찾던 당일 상황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태원 참사 이후 38일째가 되는 날이었지만 송씨가 적어 내려간 메시지에는 그날 보았던 은지씨의 모습과 느꼈던 감정이 생생했다. 참사 당일 딸 은지씨의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이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송씨는 지금도 은지씨의 납골당에 친구들이 찾아올 때면 누가 보러 왔는지 은지씨에게 연락을 남긴다. 2023년 2월 5일 “주영아, 힘든 하루를 보냈단다. 어제 100일 추모제로 녹사평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면서 광화문에서 추모제를 지내려 했지만 정부가 광화문을 봉쇄해 시청 앞에 분향소를 차렸단다. 그 과정에서 몸싸움도 있었다.” 고 이주영씨의 어머니 최진희(61)씨는 휴대전화의 달력 애플리케이션(앱)에 딸 주영씨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썼다. 지난 200일간 정부, 국회, 서울시와 충돌하던 기록도 꼼꼼히 담았다. 지난 2월 서울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무력 충돌을 했던 경험도, 그 당시 분향소를 설치하다 쓰러지는 아들을 보고 눈앞이 깜깜해졌던 기억도 달력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2023년 5월 6일 “딸, 안녕! 잘 있지. 오늘은 아빠랑 추모공원에 갔다 왔어. 남한테 나쁜 소리 못 하고 착하게 산 너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너희를 그렇게 만든 어른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한솔아,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꿈에서라도 한번 만나자.” 고 이한솔씨의 어머니 박미영(49)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한솔씨에게 메시지나 손편지를 쓴다. 박씨는 한솔씨가 하늘에서 속상해할까 봐 유가족협의회 활동이나 정부와 싸우는 이야기를 잘 보내지 않는다. 대신 맏딸이라 철이 일찍 들었던 한솔씨가 게임이라도 하며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게임 초대 메시지와 생전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연이어 보낸다고 했다. 박씨는 “참사에 책임 있는 사람이 아이들 영정 사진에 진심 어린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고, 대통령과 서울시장 등 책임자들이 유가족과의 소통에 나서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배성중) 심리로 열린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4명에 대한 첫 공판에서 ‘이태원 참사’ 당시 당직사령으로 근무한 조모 주무관은 증인으로 출석해 “용산구 안전관리계획을 교육받거나 핼러윈 기간 당직 중 특별사항을 지시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 사라지지 않은 1, 지지 않은 200일···이태원 참사 엄마아빠는 오늘도 하늘로 문자를 보낸다

    사라지지 않은 1, 지지 않은 200일···이태원 참사 엄마아빠는 오늘도 하늘로 문자를 보낸다

    16일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200일이 됐다. 벌써 두 계절을 보냈지만 유가족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그날 이태원 골목으로 돌아가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하지만 유가족들은 매일 영정 사진 속 희생자들에게 ‘잊을 수 없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메신저 속 상대방이 아직 읽지 않았다는 표시인 ‘1’은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200일간 유가족들이 멈추지 않고 꾸준히 쌓아 온 ‘1’의 기록을 서울신문이 담았다. 2022년 12월 5일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네가 있는 장례식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긴 시간 만에 낯익지만 차갑게 식어 있는 너의 얼굴을 봤다. 꿈일 거야, 꿈이기를…사랑하는 우리 딸 은지야. 운명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차라리 엄마·아빠가 그곳에 있을게.” 고 송은지씨의 아버지 송후봉(62)씨는 지난해 12월 5일 은지씨를 찾던 당일 상황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태원 참사 이후 38일째가 되는 날이었지만 송씨가 적어 내려간 메시지에는 그날 보았던 은지씨의 모습과 느꼈던 감정이 생생했다. 참사 당일 딸 은지씨의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이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송씨는 지금도 은지씨의 납골당에 친구들이 찾아올 때면 누가 보러 왔는지 은지씨에게 연락을 남긴다. 2023년 2월 5일 “주영아, 힘든 하루를 보냈단다. 어제 100일 추모제로 녹사평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면서 광화문에서 추모제를 지내려 했지만 정부가 광화문을 봉쇄해 시청 앞에 분향소를 차렸단다. 그 과정에서 몸싸움도 있었다.” 고 이주영씨의 어머니 최진희(61)씨는 휴대전화의 달력 애플리케이션(앱)에 주영씨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썼다. 지난 200일간 정부, 국회, 서울시와 충돌하던 기록도 꼼꼼히 담았다. 지난 2월 서울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무력 충돌을 했던 경험도, 그 당시 분향소를 설치하다 쓰러지는 아들을 보고 눈앞이 깜깜해졌던 기억도 달력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23년 5월 6일 “딸, 안녕! 잘 있지. 오늘은 아빠랑 추모공원에 갔다 왔어. 남한테 나쁜 소리 못 하고 착하게 산 너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너희를 그렇게 만든 어른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한솔아,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꿈에서라도 한번 만나자.” 고 이한솔씨의 어머니 박미영(49)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한솔씨에게 메시지나 손편지를 쓴다. 박씨는 한솔씨가 하늘에서 속상해할까 봐 유가족협의회 활동이나 정부와 싸우는 이야기를 잘 보내지 않는다. 대신 맏딸이라 철이 일찍 들었던 한솔씨가 게임이라도 하며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게임 초대 메시지와 생전 못 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연이어 보낸다고 했다. 박씨는 “참사에 책임 있는 사람이 아이들 영정 사진에 진심 어린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고, 대통령과 서울시장 등 책임자들이 유가족과의 소통에 나서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배성중) 심리로 열린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4명에 대한 첫 공판에서 ‘이태원 참사’ 당시 당직사령으로 근무한 조모 주무관은 증인으로 출석해 “용산구 안전관리계획을 교육받거나 핼러윈 기간 당직 중 특별사항을 지시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 사라지지 않은 1, 지지 않은 200일···이태원 참사 엄마아빠는 오늘도 하늘로 문자를 보낸다

    사라지지 않은 1, 지지 않은 200일···이태원 참사 엄마아빠는 오늘도 하늘로 문자를 보낸다

    16일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200일이 됐다. 벌써 두 계절을 보냈지만 유가족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그날 이태원 골목으로 돌아가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하지만 유가족들은 매일 영정 사진 속 희생자들에게 ‘잊을 수 없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메신저 속 상대방이 아직 읽지 않았다는 표시인 ‘1’은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200일간 유가족들이 멈추지 않고 꾸준히 쌓아온 ‘1’의 기록을 서울신문이 담았다. ●2022년 12월 5일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네가 있는 장례식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긴 시간 만에 낯익지만 차갑게 식어있는 너의 얼굴을 봤다. 꿈일 거야, 꿈이기를.. 사랑하는 우리 딸 은지야. 운명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차라리 엄마·아빠가 그곳에 있을게.” 고 송은지씨의 아버지 송후봉(62)씨는 지난해 12월 5일 은지씨를 찾던 당일 상황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태원 참사 이후 38일째가 되는 날이었지만 송씨가 적어 내려간 메시지에는 그날 보았던 은지씨의 모습과 느꼈던 감정이 생생했다. 참사 당일 딸 은지씨의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이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송씨는 지금도 은지씨의 납골당에 친구들이 찾아올 때면 누가 보러왔는지 은지씨에게 연락을 남긴다. ●2023년 2월 5일 “주영아, 힘든 하루를 보냈단다. 어제 100일 추모제로 녹사평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면서 광화문에서 추모제를 지내려 했지만 정부가 광화문을 봉쇄해 시청 앞에 분향소를 차렸단다. 그 과정에서 몸싸움도 있었다.” 고 이주영씨의 어머니 채진희(61)씨는 휴대전화의 달력 애플리케이션(앱)에 주영씨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썼다. 지난 200일간 정부, 국회, 서울시와 충돌하던 기록도 꼼꼼히 담았다. 지난 2월 서울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무력 충돌을 했던 경험도, 그 당시 분향소를 설치하다 쓰러지는 아들을 보고 눈앞이 깜깜해졌던 기억도 달력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23년 5월 6일 “딸, 안녕! 잘 있지. 오늘은 아빠랑 추모공원에 갔다 왔어. 남한테 나쁜 소리 못하고 착하게 산 너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너희를 그렇게 만든 어른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한솔아,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꿈에서라도 한번 만나자.” 고 이한솔씨의 어머니 박미영(49)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한솔씨에게 메시지나 손편지를 쓴다. 박씨는 한솔씨가 하늘에서 속상해할까 봐 유가족협의회 활동이나 정부와 싸우는 이야기를 잘 보내지 않는다. 대신 맏딸이라 철이 일찍 들었던 한솔씨가 게임이라도 하며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게임 초대 메시지와 생전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연이어 보낸다고 했다. 박씨는 “참사에 책임 있는 사람이 아이들 영정 사진에 진심 어린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며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고, 대통령과 서울시장 등 책임자들이 유가족과의 소통에 나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한편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배성중) 심리로 열린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4명에 대한 첫 공판에서 ‘이태원 참사’ 당시 당직사령으로 근무한 조모 주무관은 증인으로 출석해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 규탄 집회) 전단지 제거를 요청하자 ‘새벽에 상황을 보고하겠다’고 거절했으나, 비서실장이 구청장 지시라며 재차 요청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 [문화마당] 소설가 구보씨와 그레이엄 할아버지/이은선 소설가

    [문화마당] 소설가 구보씨와 그레이엄 할아버지/이은선 소설가

    “세계가 현저히 변화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그는 생각하는 편인가 보다. 변하는 것은 변함없이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 또한 변함없이 변하지 않는다. 즉 변함없음이 본질이다. 변하는 것이 주도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명멸할 뿐이다. (중략) 질 줄 알면서도 하는 싸움이 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이 최후의 모습이다.”(주인석, ‘마지막 소설가, 구보씨의 10년 후’ 중) 이 땅에 나타난 첫 번째 구보씨는 소설가 박태원이었다. 최인훈 작가가 ‘구보씨’의 업을 받고, 주인석 작가가 ‘10년 후’로 이었다. 그 세 번째 구보씨가 하늘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지 꼬박 일 년이 됐다. 파주와 청계천, 종로와 관악 일대를 거쳐 경기도 어디쯤을 줄기차게 걷던 그가 피차 뻔해지는 긴 악수 같은 건 생략하고 말없이 떠났는데, 하늘이 얼마나 멀고 좋은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 훌쩍 떠나 버린 마지막도 과연 평소의 구보씨 성정다웠다. 크리스틴 에번스의 ‘그레이엄 할아버지께’는 여덟 살 소년 잭슨이 옆집의 장미가 가득 핀 정원으로 축구공을 날리며 시작된 이야기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잭슨이 고민 끝에 쓴 편지와 엄마의 스콘을 장미 주인에게 전한다. 고요한 노인의 일상에 축구공처럼 튕겨 온 잭슨과의 우정은 만발한 장미꽃처럼 벙그러지지만 쇠약해진 할아버지가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어린 잭슨은 할아버지와 함께 가꾸던 장미들을 그의 아들이 함부로 짓밟고 들어와 ‘팝니다’ 팻말을 세우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고, 나무들이 갑자기 아무 꽃도 피워 올리지 못하는 것이 마치 자신의 탓인 것처럼 슬프다. 이 소식에 대한 할아버지의 답장을 읽은 잭슨은 자신의 침대 위에서 하염없이 운다. “장미들도 겨울잠을 잔단다. 봄이 오면 다시 꽃이 필 거야. 이 할애비가 일러준 장미 돌보는 법을 잊지 말아 다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장미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단다. 뭐든 열심히 하고, 골도 많이 넣고, 엄마를 잘 도와드려라. 잘 지내렴, 아가.” 잭슨은 자신의 정원으로 할아버지의 장미 나무들을 옮겨 심고, 거기서 피어난 장미꽃을 요양원에 보낸다. 스콘과 함께 사과 편지를 썼던 때처럼, 아니 그때는 알지 못했던 어떤 마음들을 꽃송이에 얹어. 할아버지는 장미에서 옛집의 정원 냄새가 난다며 매우 기쁜 답장을 보내왔다. 잭슨은 매년 새롭게 필 장미들을 계속 할아버지에게 보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을까. 할아버지는 그때에도 잭슨에게 편지를 써 줄 수 있을까. 바라건대 그들의 편지가 계속됐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라도. 구보씨와 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 같은 건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들이 우리 곁에 남았으니까. 그의 무수한 가르침들이 내 도처에 발자국을 찍고 있으니. 딸아이에게 하늘의 어디쯤을 가리키며 ‘그때 벚꽃 밑에서 만났던 할아버지가 저기 계실 거야!’ 알려주는 일도 몇 번쯤 했다. 그것은 나만의 작별 인사였을까. 20년을 스승으로 알던 이의 죽음은 아직도 내게 낯설기만 한데, 이제는 비로소 말을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서는 편안하신가요? 학교와 학생들도 잘 있어요. 다인이 많이 컸어요. 부디 편히 쉬세요. 참 많은 것들이 감사했어요, 선생님. 너무 뵙고 싶어요. 물론 구보씨답게 영영 답은 안 해줄 것이지만.
  • “안 죽였고, 사과 기회도 줬다”…초등 때 성폭행한 계부에 편지 보낸 딸

    “안 죽였고, 사과 기회도 줬다”…초등 때 성폭행한 계부에 편지 보낸 딸

    초등학생 때 성폭행을 당한 의붓딸이 사과를 요구하자 “귀여워서 그랬다”고 했던 50대가 고소를 당해 재판이 시작되자 혐의를 부인하고 나섰다.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A(57)씨는 26일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송석봉) 심리로 열린 첫 항소심 재판에서 “잠든 의붓딸을 추행했다는 혐의는 미수에 그친 것”이라고 1심 때와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다. A씨는 2008년 의붓딸 B(당시 9세)씨를 수차례 추행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경조사 결과 A씨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B씨의 친모와 재혼해 한 집에 살면서 아내가 잠들거나 관심이 소홀한 틈을 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A씨의 성폭력은 B씨의 친모가 사망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B씨는 성인이 된 뒤에야 사과를 요구했지만 A씨가 “귀여워서 그랬다”고 말하자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가 고소하자 A씨는 처음에 B씨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수사가 시작되자 혐의를 전면 부인하기 시작했다. “귀여워서 그랬다” 더니 혐의 부인한 계부 B씨는 A씨가 구속된 뒤 “나는 15년 동안 지옥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 것 같다.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았으며, 사과할 기회도 줬다”고 A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재판부를 통해 전달했다. 1심 재판부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안식처가 돼야 할 가정이 의붓딸 B에겐 위협적이고 힘겹게 싸워 생존해야 할 범죄 장소가 됐다”며 “A씨는 범행을 부인하고, B씨는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200시간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 등을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추가 증거 및 변경 사정이 없는 만큼 A씨 측의 성폭력 미수 주장 등에 대한 법리검토를 마치면 곧바로 재판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다음 재판은 다음달 31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 “음해 마음아파”…제자가 기억하는 1998년 ‘교생 김건희’

    “음해 마음아파”…제자가 기억하는 1998년 ‘교생 김건희’

    김건희 여사의 교생 시절 제자가 대통령실로 옛 사진과 감사의 편지를 부쳤다. 10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김 여사의 제자는 편지에서 각종 음해에 시달리는 김 여사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김 여사의 제자 A씨는 1998년 서울 광남중학교 재학 당시 교생이던 김 여사와 처음 만났다. 경기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김 여사는 숙명여자대학교 미술교육 석사과정 중 그 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다. 제자 A씨는 편지에서 김 여사가 방과 후에도 별도로 시간을 내서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담임 교사 이상으로 정성을 쏟았다고 회상했다. A씨에 따르면 김 여사는 전교 합창대회 연습시간에 참여해 학생들을 격려하고 소통하기도 했다. 1998년 4월 어린이대공원 사생대회 때는 김 여사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가 학생들 사진을 찍어줬다. 교생 실습 마지막 날에는 학생 전원에게 사생대회 사진에 직접 쓴 편지를 선물로 전달했다. 사진을 받은 학생들은 김 여사와의 이별을 아쉬워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A씨가 보낸 사진 뒷면에는 김 여사가 제자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김 여사는 1998년 5월 1일 써내려간 편지에서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와서 선생님은 너무도 아쉽다”며 “이제야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 온 것 같은데”라고 했다. 편지 말미에는 ‘김명신’이라는 김 여사의 개명 전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자 A씨는 김 여사가 각종 음해성 구설에 올라 마음이 아팠다는 뜻을 전하고 싶어 사진과 편지를 부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편지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시던 교생 선생님을 같은 반 친구들 상당수가 현재까지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대선과정 중 교생 선생님이 각종 음해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고도 적었다.
  • ‘JMS 논란’ 아이돌, 정신적 피해 호소 “선처 없다”

    ‘JMS 논란’ 아이돌, 정신적 피해 호소 “선처 없다”

    그룹 ‘DKZ’ 측이 온라인상의 무분별한 악성 댓글과 루머 유포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DKZ 소속사 동요엔터테인먼트는 6일 공식 팬카페를 통해 악성 댓글에 법적대응한다는 내용을 공지했다. 소속사는 “최근 온라인 상에서 지속적으로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 성희롱, 허위사실 유포, 악의적 비방 등을 포함하는 무분별한 악성 게시글과 댓글이 발생함에 따라 소속 아티스트는 물론 해당 아티스트를 아끼고 응원하는 팬분들까지도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대한 자체 모니터링 및 팬분들의 제보를 토대로 다수의 증거를 확보하였고, 지난해 소속 아티스트에 관한 근거 없는 루머 유포 및 악성 비방 게시글 작성자에 대하여 법무법인에 의뢰하여 형사고소 조치도 진행 중에 있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소속 아티스트의 보호를 위해 악성 게시글, 허위사실 유포 및 악의적 비방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제반 법적 조치도 진행할 예정이며, 어떠한 선처나 합의 없이 강경하게 대응할 것임을 알려드린다”고 했다. 앞서 DKZ 멤버 경윤은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를 통해 재조명된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신자라는 의혹에 휘말렸다. 이에 경윤은 자필 편지로 탈교 및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
  • 스위스 쿠어 묘지에 있는 나치 기념비 어떻게 해야 할까

    스위스 쿠어 묘지에 있는 나치 기념비 어떻게 해야 할까

    스위스 중동부 쿠어(Chur)란 도시가 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2015년 4월 취리히에서 열차로 쿠어 역에 이르러 체르마트로 떠나는 열차를 갈아 탄 일이 있다. 이 도시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우리에게 낯익은 다보스와 동계올림픽 개최지 생모리츠에 이르고, 남서쪽으로 향하면 알프스 굽이굽이를 돌아 체르마트에 이르게 된다. 쿠어 묘지 한가운데 수십년 자리를 차지한 커다란 화강암 기념물을 어떻게 할지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고 영국 BBC가 2일 보도했다. 행인들은 무심코 지나치며 누구도 어떤 물건인지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근처 다른 묘비들을 왜소하게 보이게 만드는 이 거대한 13t의 석조 기념물은 왜 이곳에 놓여 있는 것일까? 현지 기자의 연구에 따르면 나치 독일과 관련 있으며 중립국 스위스와 제2차 세계대전 때 이웃 나라와의 어색한 관계를 상징한다. 라디오방송 기자 스테파니 하블뤼첼 같은 이들은 매일 출근할 때나 쇼핑을 하러 갈 때 그것을 지나친다. 요즘 이 기념물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이끼로 덮여 있다. 새겨진 글씨는 식별하기가 어렵다. 스테파니는 “언뜻 보기에 전쟁 기념물로 보인다”며 희미한 글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1914~1918; Hier ruhen deutsche Soldaten...여기 독일 병사들이 잠들다”라고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독일군 병사들이 이곳에 묻히게 됐을까? 사실, 독일인뿐만 아니라 프랑스인과 영국인, 수천명의 부상한 전쟁포로들이 1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에서 치료를 받으며 억류돼 있었는데 일부는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다른 일부는 1918년 스페인독감에 감염돼 세상을 등졌다. 그러나 쿠어의 기념비는 이들이 숨진 지 20년 뒤인 1938년에야 들어선 것이라고 스테파니는 말한다. “이 숨진 병사들을 애도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선전을 위해, 나치 정권을 위해 지어졌다.”스위스의 역사학자 마르틴 부허의 설명에 따르면, 나치가 독일에서 세력을 키워 나가면서 나치의 선전에는 전사자를 숭배하는 컬트적인 숭배도 포함됐다. 1930년대 독일 전쟁묘역위원회는 히틀러의 선전기계 일부가 됐다. 그 임무는 독일의 이웃 국가와 국내에서 나치 권력의 가시적인 상징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당시 스위스에는 수천명의 독일인이 살고 있었고 마르틴은 그들이 조직돼 있었다고 말한다. “스위스에는 독일에서 온 모든 조직이 존재했다. 국가사회당, 독일노동전선, 히틀러소년단. 그들은 모두 여기에 있었지만 스위스 사람들이 아니라 독일인만을 위한 것이었다.” 독일 전쟁묘역위원회는 스위스의 장크트 갈렌(St Gallen) 마을에 광대한 영묘를 건설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제출했는데 스위스 당국에 의해 거부됐다. 하지만 쿠어의 기념비는 승인됐다. 나치가 가장 좋아하는 프락투르(Fraktur) 글꼴을 사용해 뮌헨에서 광택나게 새겨진 이 글꼴의 기념비는 2차 대전 발발 직전에 쿠어에로 옮겨졌다. 마르틴은 당시 쿠어 주민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나치 경축일에 그들은 이 기념비에 스바스티카를 넣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나치 기념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일부는 분명히 좋아하지 않았다. 스테파니는 1938년 현지 일간지에 “왜 우리 묘지에 나치 기념석이 있느냐”고 따져 물으며 분개하는 편지가 실린 것을 확인했다. 반면 일부는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다. 나치 독일에 부역한 스위스 동조자 얘기는 쿠어가 수도인 그라우뷘덴(Graubünden)주 역사에 잘 기록돼 있다. 그러나 자생한 스위스 파시스트 정당은 1935년 스위스 의회에서 단 2석만 얻었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스위스에는 아직 홀로코스트에 대한 공식 기념관이 없지만 의회는 지난해 5월 한 군데 기념관 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50개 가량의 비공식 기념물이 있다. 전쟁 내내 스위스의 독일인들은 나치 당에 계속 몸담고 활동했으며 나치에 대한 동감을 계속 표시했다. 스위스는 여느 때처럼 싸움에서 비껴나 있길 바라며 베를린과 타협해 나치의 황금을 은행에 예치하고 유대인 난민들을 송환해 버렸다. 그런데 종전 하루 만에 중립국 스위스는 울타리를 없애버렸다. 마르틴은 “엄청난 숙청이 있었다”면서 “스위스 정부는 스위스 나치들을 처벌하려고 노력했고 재판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독일 나치는 축출됐다. 마르틴은 “그 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끝났고 나치는 사라졌고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이 기념비를 잊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이 집단적 기억 상실증은 너무 완벽해 전쟁 수십년 뒤에 태어난 스테파니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념비의 기원과 스위스에서의 나치 존재는 계시처럼 아득한 일이 됐다. 스테파니는 “난 이곳 쿠어에서 자랐는데 1930년대 얼마나 많은 나치 조직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지역구 의원인 욘 풀트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스위스에도 나치가 없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기념비에 대해 몰랐다. 묘지에서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제야 명확히 알게 됐다. 이제 보인다.” 그래서 이제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할까? 당혹해 하면서도 기념비를 철거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더 적은 숫자의 사람들은 그대로 둬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대신 스위스가 전쟁 중 유대인 난민에 대한 대우를 재검토하고 사과해야 했던 것처럼 스위스 역사에서 그 시기를 재검토하고 공개하자는 제안에 대한 합의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했다. 마르틴은 “그것이 쿠어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그것이 왜 거기 있는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2차 세계대전에서 스러진 모든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될 수 있다.” 풀트는 스위스가 “나치의 끔찍한 범죄를 기억하기 위해”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예를 찾아 볼 수 있듯 파시스트 이데올로기,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위험이 항상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에 대한 지식의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고 했다.
  •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서 4·3 추념행사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서 4·3 추념행사

    제주4·3 범국민위원회는 지난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제주4·3 추념행사를 개최했다고 2일 밝혔다. 추념행사는 제주4·3 범국민위원회와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노무현재단 제주위원회, 보리아트연구소 등이 공동주최했다. 제주4·3 범국민위원회 등은 노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제주4·3에 대해 사과하고 진실을 밝혀준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추념행사를 열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31일 제주도를 방문해 제주도민과 유족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써 과거 국가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어 2006년 58주기 추념식에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 으로 참석했다.추념행사에는 제주4·3 희생자 유족, 여순10·19 사건 희생자 유가족, 대전 산내 골령골 사건 희생자 유가족, 경산 코발트 광산 희생자 유가족 등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로 희생된 민간인 유족과 1987년 10월 항쟁 유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추념행사는 노 전 대통령 묘역에 헌화·분향, 4·3 진실을 밝히는 책과 보고서 헌정식, 4·3 진실 규명 과정 기록 및 작품 전시·관람, 제주4·3과 여순 10·19 강의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젊은 시절 경찰이 쏜 총에 턱을 잃은 한 여성의 삶을 엮은 ‘무명천 할머니’, 제주 4·3 사건 진실규명 과정을 기록한 ‘4·3의 진실을 찾아서’, 노 전 대통령 사과이후 발간된 ‘제주4·3 사건 추가진상조사 보고서’, 4·3역사를 작품화 한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노력으로 바뀐 중학교·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개정판 등을 노 전 대통령이 잠든 너럭바위에 바쳤다.이상언 제주4·3 희생자 유족회 상임부회장이 ‘제주 4·3’ 3만 희생자와 6만 유가족을 대표해 노무현 전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했다. 이 부회장은 “노 전 대통령 재임 때 만들어진 제주 4·3 진상조사 보고서, 위원회 건의 사항은 4·3 해결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법의 판단 기준이 됐다”며 “유족들은 노 전 대통령이 유족들 가슴에 맺혀 있던 한과 아픔을 쓸어주고 4·3 평화공원 조성, 희생자 명예 회복 추모사업, 유해 발굴 등 아낌없는 지원을 해 준 것을 기억하고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묘역 옆 깨어있는 시민문화체험전시관(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에서 4·3 추념행사를 했다. 추념행사에 이어 주철희 박사(여순사건위원회 소위원장)가 ‘제주 4·3사건, 여순 10·19 사건’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 서울대에 정순신 아들 비판 대자보…“평생 후회하며 살길”

    서울대에 정순신 아들 비판 대자보…“평생 후회하며 살길”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진상조사를 위한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서울대에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또 다시 올라왔다. 23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는 ‘죄인이 한때의 형제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편지 형식의 글이 게시됐다. 민족사관고 22기 출신 경영대생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학교를 함께 다닌 정 변호사의 아들에게 “지금이라도 너가 행한 일들을 진심으로 뉘우쳐라”고 비판했다. 그는 “작은 기숙학교에서 함께 지낸 우리들은 소중한 친구였고, 맞서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가족이었다”면서 “너와 그 친구 사이의 문제가 밝혀졌을 때 믿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철없다는 말로 넘어가기에 너무나 잔혹한 행동에 시달리던 친구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몰렸다”면서 “사건이 일차적으로 해결된 뒤에도 학교에서 끔찍한 일들이 자꾸 생각난다며 결국 학교를 떠나 연락이 닿지 않게 됐다”고 했다. 그는 “죄책감이 있으리라 믿었지만 너는 스스로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1년 넘게 학교와 실랑이 하며 시간을 끌었다”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 잘못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고, 너는 학교를 떠나게 된 순간까지도 오해가 있었을 거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이나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친형제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는 다른 형제의 등에 비수를 꽂는 괴물이 됐다”면서 “네 죄의 무게를 지금이라도 깨닫고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가라”고 했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민사고 재학 당시 동급생에게 언어 폭력 등을 가해 2018년 강제 전학 처분을 받은 뒤 1년 뒤에야 서울 반포고로 전학했고 2020년 서울대에 정시로 입학했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 변호사는 이러한 아들의 학교폭력과 이후 대응 과정이 알려지면서 하루 만에 낙마했다.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을 둘러싼 국회 교육위원회 청문회는 오는 31일 열릴 예정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