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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산1호 地對空미사일‘천마’새달 실전배치

    국방과학연구소(소장 최동환)는 15일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한 지대공 미사일 ‘천마’를 12월1일부터 수도권 부대에 실전 배치한다고 밝혔다. 천마는 유도탄 8발(좌·우 4발씩)과 탐지·추적·사격통제 장치를 궤도차량에 장착해 운용하며,최대 탐지거리와 사정거리는 각각 20㎞,10㎞로 주야간전천후 사격이 가능하다. 적 항공기가 20㎞ 이내에 접근하면 탐지레이더가 작동하고 16㎞부터는 추적레이더가 작동,자동적으로 추적한다.적 항공기를 4대까지 동시 추적할 수 있다.4명 1개조로 운용되며 초당 발사속도는 1㎞ 이상,유도탄 1발 가격은 2억8,000만원이다. 천마의 개발에는 대우중공업·LG정밀·삼성전자 등 13개 국내 업체와 1개해외 업체가 참여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설계에서 제작까지 순수 한국 기술로 이뤄졌기 때문에수출도 가능하다”면서 “2000년 초까지 수도권의 주요 시설과 인구 밀집지역 등에 실전 배치한 뒤 수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마는 지난 87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지난 97년 10월27일 서해안 시험장에서 시험발사에 성공했다.우득정기자 djwootk@
  • [돋보기] 미래 내다보는 체육정책을

    한국은 내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금 12개로 10위권 입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체육당국은 마라톤과 사격 핸드볼 유도 등 이른바 전략종목에 모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그래서인지 요즘 대한체육회 산하각 경기단체들을 둘러 보면 흡사 대학입시를 앞두고 우열반을 편성해 놓은고교 입시교실을 방불케 한다. 각 경기단체별로 내년 예산편성 작업이 한창이지만 다행히 출전이 확정돼금메달이라도 기대되는 종목의 단체들은 제법 활기가 넘치는데 반해 비인기종목,특히 출전이 좌절된 경기단체는 그 어느해보다 썰렁한 겨울을 맞고 있다.“지원금은 한정돼 있는데 그나마도 출전종목에 대부분 할애될 것이 뻔해겨우 명맥이나 이어 나가야 할 판”이라고 볼멘 소리다. 시드니올림픽에는 28개 종목에 총 300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현재 한국은18개 종목에서 출전권을 따내 모두 67개 금메달에 도전한다. 핸드볼 등 남은예선경기를 감안할 때 대략 70개 안팎의 종목별 출전이 가능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도 역시 출전종목은 큰 변함이 없어 보인다.어찌보면우리 올림픽 출전종목은 이미 판에 박힌 듯 정해져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게다가 메달도 같은 종목에서 나오고 정부지원 또한 거의 올림픽 성적순에따라이뤄지는 게 관행화 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올림픽 비출전 종목이나 비인기종목은 늘 관심권 밖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어쩌다 유망주가 발굴된다해도 선수육성에 필요한 지원을 받기까지는 대개 2∼4년을 기다려야 한다.그것도 국제대회 입상 등 두각을 보여야 다음 대회를위한 선수촌 입촌 여부를 판가름 한다. 때문에 체육계 안팎에서는 이같은 정부의 왜곡된 엘리트체육 정책이 생활체육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체조와 육상 등 기본종목은 여전히 세계의 벽이 높은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예선을 통과하면 밀어준다는 식이면 꿈나무 육성과 메달획득은 백년하청일 수 밖에 없다.최소한 4년후라도 내다보는 체육정책이 나와야 한다.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박성수 체육팀기자/sonsu@]
  • [대한광장] 기록과 국가

    지난 9월말께 미국 AP통신사는 추적취재를 통해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6일 미군이 무차별 포격과 사격으로 500명 가량의 양민을 학살한 이른바‘노근리사건’의 사실성을 확인해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렀다.이 사건은 그간 피해자 가족들이 한국과 미국 정부에 여러차례 진상조사를 확인했으나 사실적 근거가 없다고 하여 묵살돼 왔던 터라 AP의 기사는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 보도가 있자 국내의 언론이나 일반의 반응은 여러가지로 나타났다.‘군사작전 지휘권’이 미국에 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되새기면서 ‘반미구호이유있다’는 독자투고가 있었는가 하면,이미 사건이 벌어진 직후부터 이제까지 꾸준히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통신사가 보도하니까 대서특필하는 국내 언론의 ‘사대주의’를 꼬집는 한 언론인의 자기반성이 있었고,도대체 반세기가 다 되도록 억울하게 숨져간 원혼들을 위로하려는 마음의 자세조차 보여주지 못한 정부를 과연 정부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주위의 탄식도 있었다. 필자가 보도를 접하면서 받은 감상은 역시 미국은 세계를 지배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이었다.AP통신사가 입수해 공개한 문서는 한국전 당시 미1기갑사단의 명령서와 25보병사단의 명령서,미8군 본부의명령서 등 4가지다. 1기갑사단은 양민학살 당시 현장에 배치돼 있었고,25보병사단은 1기갑사단의 오른쪽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으며,8군은 한반도에 투입된 모든 부대를 관할하고 있었다.특히 1기갑사단 휘하 8연대의 통신문은 사건이 있기 이틀 전에 7연대 2대대가 발포명령을 받고 있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중요한 것은놀랍게도 이 모든 문서를 미군이 급격하게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간수해 이제까지 보관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같으면 ‘전통’으로 처리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것을 왜 미국은 자신에게도 불리한 이 문건들을 다른 엄청난 규모의 전사자료와 함께문서고에 유지해온 것일까.이는 기록의 작성과 유지가 연속성을 보장하고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하며 근본적으로는 역사의식을 확보해주는 가장 확실한 장치이기 때문이다.그러기에 근대국가만이 아니라 왕조국가에서도 나라다운 나라가 서게 되면 통치자는 기록을 남기고 보관하려고 노력했다.주권자의속성에 따라 기록작성 의도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그것은 나라를 주체적으로 꾸며보겠다는 의지의 한 강렬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도 그러했다.국왕은 사관이 입석하지 않은 채 신하를 독대할수 없었으며,사관은 국왕의 일거수 일투족만이 아니라 국사와 관련한 모든자료를 사초에 기록해 실록에 전했다.왕실은 ‘규장각’을 만들어 문서고로서 기능하게 했다.조선왕조의 이런 행위가 프랑스혁명 직후 의사록 작성과국립문서고 설치를 결정한 혁명의회의 조치와 일정한 차이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문화적 자존과 역사적 주체의식이 양자에 공통된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현재의 우리가 부끄럽게도 조상들이 지녔던 기록문화를 발전시키기는커녕 복원하는 데도 이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최근 정부문서기록보관소가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중요한 사항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반문화가 건재하고 있다.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하면 재임시에 지녔던 문건들은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양 함부로 가져 나오거나 없애는 일이 아직도 다반사인 듯하며,국회나 지방의회에서만 속기록이 작성될 뿐 정작 중요한 국무회의는 간단한 회의록만을 남기고 있다. 모든 중요한 공적 회의에서는 속기록이 작성돼야 한다.자신의 모든 언행이남김없이 기록돼 진정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어찌 “기억이 나지않는다”고 둘러댈 것이며,‘역사’ 운운하며 진실을 호도할 수 있겠는가.속기록이 작성되는 회의에서 발언의 무게가 어떨 것인지 우리는 쉽게 상상할수 있다. 우리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후 아직도 나라를 주체적으로 꾸렸던 역사적경험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다.기록문화의 복원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관건인 것이다. [崔甲壽 서울대교수·서양사]
  • ‘노근리 학살 사건’피해자 사망·부상자 151명 신고

    충북 영동군은 10일 6·25 당시 미군의 무차별 사격에 의한‘노근리 양민학살사건’과 관련,신고된 피해자는 현재까지 남자 73명과 여자 78명 등 151명이라고 밝혔다. 신고 유형별로는 사망자 122명(남 57,여 65명),부상자 25명(남 12,여 13명),행방불명자 4명(남)이다.정부는 지난달 22일부터 군청 대회의실에‘노근리사건’피해자 신고 접수처를 공식 설치,운영하고 있다. 영동 김동진기자 kdj@
  • 은행연합회장 후보2명 막판 경합

    오는 12일 치러지는 제6대 은행연합회장 선출을 앞두고 막판 경합이 치열하다.당초 전·현직 은행장 등 10여명이 자천타천 거론됐으나 류시열(柳時烈)제일은행장과 배찬병(裴贊柄) 전 상업은행장으로 좁혀진 상태다. 이 중 류 행장이 단연 급부상하고 있다.본인은 “별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은행 안팎에서 ‘추대’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모 시중은행장은 “은행권에서는 류 행장을 추대하기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라며 “여러 모로 자질이 검증된 만큼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재정경제부도 류 행장을 ‘선호’한다는 얘기가 나돈다.그동안 기아·한보사태 등의 주채권은행장으로서 깔끔한 일처리 솜씨를 보인데다 지도력과 추진력을 구비한 점을 높이 사고 있다.내년부터 불거질 2차 은행 구조조정과정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이다. 배찬병 전 상업은행장의 ‘기세’도 만만찮다.금융감독위원회 등 주로 은행 외곽에서 지원사격이 쏟아지고 있다.은행 구조조정의 최대 성과로 꼽히는상업·한일은행간 합병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게 이유다.이헌재(李憲宰)금감위장이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나돈다.한때 대한생명 회장으로 거론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장은 형식상으론 신용보증기금 등을 포함한 25개 은행장들의 ‘과반수 이상 투표,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선출된다. 박은호기자 unopark@
  • 여권 “선동정치 이제 그만”

    여권은 9일 한나라당의 수원 장외집회에 ‘단독국회 카드’로 맞섰다.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정기국회 등원을 계속 거부한다면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열겠다고 재천명했다.자민련측 의견을 참작,간담회로 바뀌었지만 이날 여당만으로 정무위를 소집한 것은 이런 의지의 반영이다. 국민회의 고위당직자회의에서는 “시대착오적 정치수법”이라고 한나라당을성토했다. “당리당략적인 대중선동에 매달리고 있다”고 개탄하며 장외집회중단과 국회 복귀를 거듭 촉구했다. 회의에서는 또 한나라당의 장외집회 의도를 놓고 논의가 이뤄졌다.‘내년총선 전략’과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대선운동 일환’으로 분석했다.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을 내년까지 몰고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은 “야당은 언제까지 국회를 버리고 밖으로 돌아다닐 것이냐”며 “국민들은 일하는 당,일하는 국회에 지지를 보낼 것이며밖에서 집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야당은 내년도 예산,민생법안,개혁법안의 심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은 성명에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선동정치의 전형이며 자가당착의 정치행위”라면서 “우리는 정치집단으로서 한나라당의정체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격했다. 이어 “정부의언론말살 운운하는 한나라당의 주장 또한 가당치 않다”고 일축했다. 부대변인들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이신범(李信範)의원을 압박하며 지원사격에 나섰다.박홍엽(朴洪燁)부대변인은 “이의원이 문일현(文日鉉)기자의 통화내역 자료를 불법 입수했고,불법 유포했음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나오고 있다”고 가세했다.김현미(金賢美)부대변인은 “정의원이 검찰에 출두해사실을 밝힐 차례”라고 강조했다. 자민련 이양희(李良熙)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언론문건 파문 당사자임에도불구하고 부산에 이어 수도권에서 장외투쟁을 벌이는 것은 국회를 정상화하고 민생을 돌보려는 의지가 추호도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조속한 국회복귀를 촉구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집중취재] 居昌 등 양민학살 10여건 진상규명 본격화

    *노근리사건 계기로‘한국전쟁 의문사’관심 고조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노근리사건’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정은용(鄭殷溶·76)노근리사건대책위원장이 지난 94년 사건의 진상을 실화소설로 엮은 책의 제목이다.책 제목대로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아픔’을 얼마나 절감해 왔는가.피해자의 역사는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빚어진 동족상잔의 ‘상처’ 가운데 하나인 ‘노근리사건’에 반세기만에 ‘진실의 햇살’이 내리쬐고있다.지난 9월말 미국 AP통신은 1년여에 걸친 현장취재와 문헌조사,관계자들의 증언청취를 토대로 ‘노근리사건’은 피난민 400여 명이 미군의 무차별폭격과 사격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이라고 보도하였다.AP통신의 보도는 기존국내언론의 보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가해자인 미군병사들의 증언과 관련자료를 추가로 발굴했다는 점에서 노근리사건의 진상규명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이 보도는 한국과 미국에서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특히 지난 4일에는 당시양민학살에 가담했던 미군병사 한 사람이 노근리를 사죄방문한 바 있다. 아울러 노근리사건을 계기로 한국전쟁 전후·전쟁중 공권력(군·경찰)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문제를 종합적으로 재점검,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이들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과 논쟁이 예상된다. 우선 ‘노근리사건’을 보는 시각차 문제다.유족측은 이 사건이 ‘무고한양민에 대한 무차별학살’임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미국측은 ‘전쟁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는 보상문제를 가름하는 중요한 관건이다.따라서 노근리사건에 대한 피해자 보상문제는 미국측의각별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미국은 민간인 504명이 미군에게 학살당한,월남전 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인 ‘밀라이사건’을 처리하면서 당시 학살에 가담했던 육군중위 1명을 기소했을 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하지 않았다.이는미국이 이 사건이‘전쟁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과 관련,의외로 장시간이소요될 가능성도 있다.미국측은 정확한진상조사를 내세워 방대한 자료검토와 관련자 증언청취를 주장하고 있다.다만 미국측이 이 사건의 처리를 군 수사기관격인 육군성내 감찰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해자조사 문제는 상당한 수준까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근리사건을 계기로 한국전쟁 전후에 다른지역에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도 ‘관심’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지난 96년 특별법이 제정돼 현재 명예회복·위령사업 등이 진행중인 ‘거창사건’을 비롯해‘함평사건’‘문경사건’‘고양사건’‘여순사건’ 등이 모두 10여 건의 ‘양민학살’이 당국의 진상규명·보상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피해자들은 대개 한국전쟁 전후에 ‘통비(通匪)분자·좌익분자 소탕작전’이라는 명목하에 군이나 경찰들에게 학살당한 양민들이다.그동안 피해자나 유족들은 유족회등을 구성,수집한 자료나 증언을 바탕으로 반세기 가까이 관계당국에 진상규명을 호소해 왔다.‘함평사건’의 경우 60년 국회에서 특위를 구성,진상조사보고서까지 작성했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함평군청에서 이 사건을담당해온 전인균씨(법무통계 담당)는 “군 당국이 작전일지·전투상보 등은기밀자료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핵심자료에 접근이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국방군사연구소 나종삼 전사부장은 “한국군에서 작전일지·전투상보 등을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50년 12월경부터이며 ‘양민학살’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대개의 양민학살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증언 이외에 확보된 자료가 거의 없어 진상규명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이미 관련자료가 미국 등에서 확보된 사건의 경우 진상규명에 ‘서광의 빛’이 보이는 측면도 있다.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노근리사건이 마무리 되면 다른 지역의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20세기에 발생한 불행한 일은 20세기에 해결하고넘어가는 것이 역사의 정의”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차영구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문답 ‘노근리사건’이 군의 주요현안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올 정기국회 국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고 국방부는 진상규명 등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다음은 국방부 차영구(52·육군소장) 정책기획국장과의 일문일답. ■‘노근리사건’ 해결과 관련,국방부의 입장은. 우선 정확한 진상조사가 급선무라고 본다.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관련자료 검토,현장조사 등이 치밀하고도 조직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국방부 내에 별도의 조사기구 같은 것이 구성돼 있나. 현재 정부차원에서총리실 산하에 국무조정실장이 반장으로 있는 대책반이 구성돼 있으며 국방부 조사반은 그 산하에 포함돼 있다.국방부 자체 조사반은 국방부 정책보좌관이 반장,국방군사연구소장이 실무반장을 맡고 있으며,역사학 교수,6·25참전군인,유족 등으로 구성된 외부자문위원단을 현재 구성중이다. ■‘노근리사건’은 미국측의 반응·협력이 중요한데. 미 육군성 에커먼 감찰관(중장)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이 사건을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다루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현재 미국은 이 사건과 관련,트럭 1대분 분량의자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미국측 역시 피해자들의 증언내용과 이 자료들을 토대로 광범위한 조사작업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보상문제는 어떻게 됐나. 아직 거론된 바 없다.미국측은 ‘선조사 후처리’방침을 밝힌 바 있는데 결과에 따라 ‘처리’할 것으로 본다.한가지 덧붙일 것은 이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한미군사동맹체제가 위협받아선 곤란하다는점이다.억울한 개인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국가안보 역시 중요한 문제다.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사건과 관련,국방부가 관련자료 공개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데. 소관사항이 아니라 단언할 수 없다.다만 진상규명에필요한 자료라면 관계규정에 의거,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운현기자 * 49년만에 訪韓‘노근리 사격’美 데일리씨 한국민들에게 엄청난 분노와 회한을 안겨준 노근리 기관총 난사사건의 장본인으로 미 NBC방송 주선으로 지난 1일부터 닷새간 방한, 노근리 현장과 유가족들을 찾아보고 돌아온 에드워드 데일리씨는 5일 출국직전 기자와 만나 이번 방문을 “화해로의 여행”이라고 말하고 “이제야 원죄같은 악몽에서 조금은 벗어날 것같다”고 말했다. 한국전 개전 직후인 50년 7월26일 저녁 노근리에서 미 제1기갑사단 7연대소속 중사로 수백명의 피란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던 그의 노근리 방문은 49년여를 한(恨)속에 살아온 피해자들과의 화해인 동시에 자신의 ‘과거’와의 화해였다.19살의 나이에 ‘전쟁’의 이름으로,‘명령’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부녀자들을 향해 총을 쏘았고 이제 68세의 노인이 돼 그 피해자들을다시 찾아 사죄하고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던 것이다. ■유가족들과는 나눈 이야기는. 유가족들을 만나기로 한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나는 노근리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대전에서 그들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심장마비를 일으킬 것같은 기분이었다.유가족들이 당시 상황에 대해 많은 질문을했고 나는 기억하는 대로 솔직히 대답하고 그분들에게 사과했다. ■피란민들을 왜 쏘았나. 7월25일 오후 늦게 우리 부대는 영동에 있는 제8연대로 합류하라는 명령을받았다.대전은 이미 함락됐다고 들었다.우리 부대는 26일 오후 노근리 인근철교에 도착했다.주민들은 이날 새벽부터 폭격을 피해 굴다리밑에 숨어있었다.오후 늦게 중대장인 맬번 챈들러 대위로부터 기관총을 굴다리 양쪽에 설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피란민들이 밖으로 나오면 무조건 사살하라고 했다. ■터널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만 쏘았나.아니면 터널 안으로도 쏘았나. 터널 안으로도 쏘았다.우리도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빠져 있었다. ■피란민들 쪽에서 응사가 있었는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때였다.터널안쪽에서 나오는 서너번의 총구 불길을내눈으로 보았다.기관총은 우군끼리 겨냥하지 않도록 예각을 이루어 배치됐다.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반대편쪽 우리편에서 날아온 총탄이었을 가능성도배제할 수는 없다. ■왜 피란민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보는가. 북한군 게릴라들이 피란민 대열에 숨어있다는 풍문이 무성했고 병사들은 극도의 공포에 떨었다.죽은 피란민 사이에 북한군 복장을 한 시체들과 북한군무기들이 나왔다는 말도 들었다. ■왜 이제 와 사실을 털어놓을 생각을 하게됐나. 전우들과는 정기적으로 만나지만 누구도 노근리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부녀자와 어린이들을 죽인 일을 누가 입에 담고 싶어하겠는가.2년전 노근리 사건을 취재하던 AP통신 기자가 국방부 사료를 뒤지다가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찾아왔다.내게 ‘진실을 말해주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그에게서 생존자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노근리 사건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노근리에서 남하하다 그해 8월12일 고령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 제10사단25연대에 포로로 잡혔다.그뒤 북한군의 선전용 겸 방패막이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됐다가 9월12일 왜관에서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부대로 복귀했다.한국전과 노근리 사건은 내 인생에 최대의 악몽이다.정신과 치료도 몇번 받았다. ■한미 양국에서 진상조사가 시작됐다.끝까지 진실을 말해주겠나. 조사단에게 진실을 말하겠다.유가족들의 고통을 더 이상은 외면하지 않겠다. 이기동기자 yeekd@
  • [기고] 양민학살 규명과 역사 재정립

    지난 9월말 AP통신에서 미군이 50년 7월 25일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비전투원인 민간인 300∼400여명을 무차별 사격하여 학살하였다고 보도하여 전세계에 알려졌고,이제 한·미 양국에 의하여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노근리 주민들의 처절한 투쟁이 세계의 양심을 움직여 겨우 결실을 맺고 있다고 하겠다.정부도 마지못해 이에 응하는 꼴이 되기는 하였지만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기대하여 마지 않는다. 이전에 이미 거창양민학살사건,제주4·3사건,여·순양민학살사건,함평양민학살사건,보도연맹사건 등에 대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터이지만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전쟁기에 도처에서 자행된 미군이나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의 사실이 하나둘씩 증언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경남 사천,충북 단양,경남 의령,경북 의성,낙동강 왜관교와 덕숭교 폭파사건 등이 그것이고 앞으로 더욱 밝혀질 것이다. 전쟁과 냉전의 와중에서 죄없는 민간인이 공권력에 희생되는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엄청나게 자행되었다. 가까운 동아시아 지역만 하더라도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면서 15만여명의 민간인이 총알받이로 희생되었다.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원폭 투하로 수십만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이에 대하여 패전국인일본정부는 원호법으로 배상조치를 취하였다. 대만에서는 47년 대만을 점령한 국민당군에 의하여 2만여명의 양민이 ‘빨갱이’로 몰려 희생당하는 이른바 ‘2·28사건’이 발생하였다.50년대에는백색테러가 자행되어,5,000여명이 총살당하였다.그러나 92년 대만정부는 ‘2·28사건’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고 진상규명과 배상조치를 취하여 명예를 회복시켰으며,백색테러에 대해서도 최근 배상과 명예회복 조치를취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발생한 수많은 양민학살사건에 대해 아직까지 진상조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오히려 그 진상을 규명하려고 하면 불온시하여 탄압을 해왔던 것이 실상이다.범죄자의 자기방어행위인가. 제주4·3사건은 비전시기에 무려 3만여명이상의 양민이 학살된,동아시아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이다.그리고 그것은 미군정기에(47년 3·1절사건) 시작하여 한국전쟁 때까지 지속된,장시간에 걸친 사건으로 이는 미군이 한국의경찰력과 군사력을 완전히 장악한 가운데 자행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반세기가 지났으나 아직도 명예회복이나 보상조치는커녕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한국에서는 어찌하여 지금까지 이러한 사실을 은폐 또는 왜곡시켜 왔는가.국민을 보호할 책무를 갖고 있는 정부가 어찌하여 반국민적인 입장에서 과거사를 취급하여 왔는가.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는 학계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는가.한국의 언론은 미국의 AP통신의보도에 접하고서야 겨우 이를 문제로 삼는 것인가.우리의 인권관과 역사의식은 과연 어떠한 수준인가.이 나라가 야만의 땅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국제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집단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제노사이드협약,48년 9월)과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49년 8월) 등을 통하여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민간인 집단학살과 비전투원인 민간인에대한 살상행위를 금지하고 있다.이를 반인륜적인 행위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죄를 지을 수도 있다.그러나 그것은 그 죄를 대상화하여 철저히 반성할 때 사죄받을 수 있다.과거의 잘못을 밝히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노근리 학살에 가담했던 미국인 병사는 고백과 사죄를 통해 ‘자기해방’을 실천하고 있다.미국정부도 노근리사건의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해 전향적으로 진상규명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적 정의의 실현인가,아니면 정치적인 쇼인가.아직 단정하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어쨌든 우리로서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는 지경이다.우리정부도 역사 재정립 차원에서 하루빨리 전문가들로 양민학살진상규명위원회를구성,진상규명과 역사바로잡기에 나서기를 바란다. 강창일 배재대교수,제주4·3연구소장
  • 美軍 노근리 양민학살…49년만의‘화해악수’

    충북 영동군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49년 만에 만나 화해했다.그러나 주장은 엇갈렸다. 이들의 만남은 미국 NBC-TV 주선으로 4일 오전 11시부터 저녁까지 대전시유성구 도룡동 롯데대덕호텔에서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당시 미군 제1기갑사단 7연대 2대대 중화기중대 상병(기관총사수)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했던 에드워드 데일리(68·테네시주 거주)씨와‘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주민대책위원장’ 정은용(鄭殷溶·76)씨를 비롯한 유가족 6명이 참석했다. 데일리씨는 “피란민 속에 인민군이 섞여 있으니 동태를 잘 감시하고 어린이와 부녀자가 있을 때는 적인지 잘 판단하라는 상부 지시가 내려와 노근리의 경우 사격 여부를 상부에 문의한 결과 주민을 모두 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데일리씨는 1950년 7월26일 저녁부터 시작된 피란민에 대한사격에 앞서 피란민쪽에서 총탄 3∼4발이 날아와 사격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위원장은 “피란민들은 모두 총이 없는 양민이었다”며 “인민군은 미군의 학살 후인 29일 저녁에야 마을에 처음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화해는 이뤄졌다. 데일리씨는 “미국의 군사기록이 부실해 노근리사건의 진실 규명이 늦어진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당시 군인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사과했다. 데일리씨는 6명의 피해자 및 유가족과 첫 대면하는 순간 일일이 두손을 붙잡고 고개숙여 사과의 뜻을 전했다.점심을 먹기 전 유가족과 포옹하며 “여러분들의 말이 맞는 것같다”고 사실을 시인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는 “18개월 전 AP통신으로부터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생존자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여러분이)고통 속에서 살아왔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아프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美NBC취재팀과 인터뷰

    [로스앤젤레스 연합]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현장에 있었던 한국전 참전 미군이 이달 말 한국을 방문,피해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50년 7월에 발생한 사건 당시 미 육군 제1기갑사단 제7연대 2대대 중화기중대 소속 기관총 사수(상병)였던 에드워드 L.데일리(68·테네시주 클라크스빌 거주)씨는 26일(이하 미국시간)“NBC방송의 주선으로 오는 31일부터 1주일간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데일리씨는“NBC-TV의 유명 앵커인 톰 브로코와 함께 방한할 예정”이라면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사건 현장에서 당시 상황 등에 관해 NBC팀과인터뷰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데일리씨는 당시 상황과 관련,“여자와 어린이가 있었기 때문에 사격명령이 확실하냐고 상관에게 반문했으나 변함이 없었다”며“피란민들을 향해 정조준하지 않고 노근리 굴다리 큰크리트벽을 향해 총을 쐈다”고 말했다. 데일리씨는 다음달 8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소재 미국교회협의회(NCC)본부에서도 노근리사건 피해자 및 유가족 대표단을 만나 증언과 함께 화해를 모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경기도, 한·미행정협정 개정촉구 서한

    경기도는 21일 주한 미군이 일으키는 환경오염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한·미 행정협정(SOFA)의 개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건의서를 환경부와 외교통상부에 제출했다. 도는 건의를 통해 ▲의왕 백운산 메디슨기지 기름 유출 사고 ▲평택 K-6 미군기지 기름 유출 ▲동두천 미2사단 건축폐기물 매립 ▲화성 매향리 미군사격장 소음공해 등 주한 미군에 의해 발생한 환경오염 문제가 장기간 해결되지 않은 채 인근 주민들의 집단민원 대상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군 당국은 한·미 행협 규정을 내세워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지역 주민과 갈등만 심화되고 있다고 경기도는 지적했다. 경기도는 이에 따라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면 원인자 부담원칙을 적용해 해결할 수 있도록 관련규정을 개정해 주도록 촉구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 고령 ‘득성교 폭파’ 참가 美장병 인터뷰

    [뉴욕연합] “미안할 뿐이다.그러나 당시는 전쟁상황이었고 어쩔 수가 없었다” 미 제14전투공병대대 출신으로 지난 50년 8월3일 경북 고령군의 득성교 폭파에 참가했던 캐럴 킨즈먼(71·미시시피주 고티어시)씨는 14일 전화회견에서 폭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득성교 폭파 당시의 상황은. 미 21사단으로 생각되는데 폭파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미군 병력이 다리를건너기를 기다렸다.다리 위에 많은 피란민 행렬이 있었지만 미군 병력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폭파명령이 내려졌다. ■누가 명령을 내렸는가. 당시 현장에 대령이 나와 있었다.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순간까지기다리다 폭파명령을 내렸다. ■득성교 위에는 얼마나 많은 피란민이 있었는가. 나는 250여명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다리 위가 꽉 찬 것으로 보였으며 500∼1,000명까지 추정하는 동료도 있었다.다리를 폭파한 뒤 곧바로 트럭을 타고 현장을 떠났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란민이 죽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다리 위에 있던 피란민들이 모두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리를 폭파한 것이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하는가.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한다.적의 진격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폭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다리 폭파 직전에는 멀리서 북한군의 T-34 탱크 굉음이 들렸었다.한국어 통역을 통해 ‘다리가 곧 폭파되니 뒤로 물러서라’고피란민들에게 경고하고 머리 위로 위협사격을 했지만 필사적으로 다리를 건너려 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당시 나이와 계급은. 21세였으며 상병이었다.한국전에는 50년 7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11개월간참전했다. ■이 사건과 한국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좋지 못한 일이지만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미군 부대 PX에 일하던 한한국여성으로부터 “우리나라를 구해줘 고맙다”는 참전에 대한 감사의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전쟁이었고 적이 한국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했으며 우리는 한국을 돕기 위해 그곳에 갔다.
  • 6·25참전 美軍증언

    [워싱턴 AP 연합] 1950년 8월 3일 미군은 왜관교와 고령교를 폭파하면서 수백명의 양민도 함께 숨지게 했으며,이 일이 있기 전에도 피란민들에게 총격과 포격을 가해 숨지게 했었다고 미 참전병사들은 증언했다. 제대군인인 에드워드 L.데일리는 왜관교의 경우 북한 인민군의 남진으로 밀려드는 피란민들을 저지하기 위해 피란민 머리 위로 경고 사격을 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피란민의 남하를 저지하는데 실패한 미 1기갑사단 사령관 호바트 게이 소장의 지시로 왜관교에 장전한 폭약을 터뜨렸으며,폭발과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고 교량 지지대들이 산산조각났다고 데일리 등 다른 병사들이 전했다. 왜관교에서 40㎞ 하류에 위치한 길이 195m의 고령교 폭파도 이보다 약간 앞서 일어났으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 육군 공병이었던 조지프 이포크는 “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외쳤지만 다른 병사들이 ‘폭파해야 한다.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제14 전투공병대 병장 출신의 캐럴 킨즈먼은 “제 14 공병대가 이틀간에 걸쳐 3,000㎏의 폭약을 설치한 뒤 당일 오전 7시 1분에 폭파 명령이 떨어졌으며 이어 폭발과 함께 다리가 산산조각났다.당시 다리에는 피란민들이가득했다”고 말했다. 앞서 1기갑사단 병사들은 다리 폭파가 있기 하루 전인 2일 수십명의 다른군인들과 함께 낙동강으로 퇴각중이었으며,이들 뒤를 80명 가량의 흰옷 입은 한국인 피란민들이 뒤따르고 있었다고 참전병사들은 전했다.그런데 오후 민간인으로 가장한 5명의 인민군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당시 상황을 에드워드 데일리는 “북한군이 발포하자 즉각 사살했다”고 말한 반면,유진 헤슬먼은 “인민군들이 항복해 끌려갔다”고 엇갈린 증언을 했다.헤슬먼은 “인민군들이 피란민 사이에서 나왔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우리는 피란민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대부분 사살했다”고 말했다. 이보다 1주일 전쯤에도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160㎞ 떨어진 철길을 따라 걷던 피란민 수백명에 대해 미군의 박격포 공격이 이뤄졌다고 1기갑사단 재향군인들은 회상했다. 제임스 맥리어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대령이 포대에 무전을 보내 그들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죽이라고 지시했다”면서 “포탄이 떨어진 뒤 팔다리,몸뚱이가 어지럽게 널렸다”고 덧붙였다.
  • 美軍, 왜관·고령교 폭파 왜했나

    [워싱턴 AP 연합] 1950년 8월초,당시 미 제1기갑사단장으로 부임한지 불과며칠밖에 안된 호바트 게이 장군은 민간인으로 위장한 북한군 게릴라들의 격퇴 방안을 고심하던 중 3일 저녁 15마일 서쪽에 북한군 집결 보고를 받고 미리 폭약을 설치한 왜관교 폭파를 지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미군은 경고사격을 통해 한국인 피란민들에게 되돌아갈 것을 요구했으나 피란민 행렬은 계속 왜관교를 통해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바람에 희생자가 많았다고 참전용사들은 전했다.지난 83년 작고한 게이 장군은 훗날 미군 전사에 기록된 글을통해 “그 다리엔 수백명의 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폭파명령을 내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결단이었다”고 술회,희생자가 많았음을 시사했다. 제1기갑사단의 지난 50년 전황일지에는 희생자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지난60년 발간된 미군 전사에는 게이 장군의 말을 인용,왜관교 희생자들에 대한기록이 남아 있다. 또 제14전투공병대대 하사관 출신의 캐럴 킨즈먼은 고령교 폭파와 관련,“미군이 밀려드는 피란민 머리 위로 총격을 가해 다리가 폭파될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하려 했으나 피란 물결은 그칠줄 모르고 계속됐다”면서 “그런 와중에 당일 오전 7시1분 상부에서 폭파 명령이 내려왔다”고 말했다.고령교폭파로 인한 희생자 발생에 관한 보도는 최초로 나온 것이다. 킨즈먼과 루돌프 지아넬리 등 일부 참전병사들은 고령교 폭파 희생자가 수백명에 달한다고 증언한 반면,이포크 등은 30∼40명의 난민을 목격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재향군인들은 그러나 고령교 폭파 지시를 내린 지휘관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밝혔으며,제14공병대 기록에는 고령교 폭파와 관련,‘작전,멋지게 완료’라고 적혀 있다. 유진 헤슬먼과 로버트 러셀은 “난민들을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들을전멸시켰으며,미군은 모험할 처지가 아니었다”면서 “사망자들 중에는 위장한 북한군 10명 정도가 끼여 있었다”고 말했다.
  • 국감 이모저모

    ■14일 보건복지위의 식품의약품안전청 감사에서는 여야가 한 목소리로 개고기양성화를 주장했다.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은 “개고기 식용에 대한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 80%이상이 찬성했고 주한 외국대사도 70% 이상 지지를 보냈다”고 주장했다.국민회의 조성준(趙誠俊)의원도 “정부차원에서 양성화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논란을 빚을 수 있으니 자치단체 차원에서 개고기 유통에 대한 조례를제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지원사격을 했다. ■농림해양위의 농림부 국감에서는 일부 여야 의원과 ‘옥수수 박사’ 경북대 김순권(金順權)교수가 대북 지원용 슈퍼옥수수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열띤설전을 벌였다. 야당은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교수를 상대로 “슈퍼옥수수 사업이 ‘불순한’ 의도로 정부 고위층과 합작한 사기극”이라며 개발사업의 경위와 배경에의혹을 제기했다.한나라당 주진우(朱鎭旴)이강두(李康斗)의원은 “북풍사건관련자인 장석중(張錫重)씨와 사업을 추진,옥수수사업이 대선용이었다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고 주장했다. 김교수가“답변할 가치도 없다.이상하게 질문을 거꾸로 몰고 간다”고 이의를 제기하자 한나라당 신경식(辛卿植)의원이 “농학박사로서 품위가 의심스런 답변”이라고 물고 늘어졌다.그러자 국민회의 이길재(李吉載)의원은 “남북간 민간차원 교류와 협력에 흠집을 내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틀째 분규중인 사학(私學)재단을 상대로 감사를 벌인 교육위는 핵심증인들의 불참으로 파행을 겪었다.교육위는 경원대 재단이사장인 이길녀(李吉女)길병원 원장등 불참 증인들을 고발 조치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임태순 주현진기자 stslim@
  • 인니군-다국적군 첫 교전

    [딜리 AFP AP 연합] 동티모르에 다국적 평화유지군(INTERFET)이 배치된 이후 처음으로 10일 평화유지군과 인도네시아 군이 동·서 티모르 접경에서 전투를 벌였다. 인도네시아 보안군은 호주 병사들이 국경을 넘어와 경찰초소에 사격을 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경찰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국경 마을 모타인 인근에서 발생한 이번 충돌은 평화유지군이 동티모르에파견된 이후 3번째 전투이지만 민병대가 아닌 인도네시아 정부 병력과,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동·서 티모르 접경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터 코스그로브 평화유지군 사령관과 인도네시아의 시토루스 여단장은 11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고 전투지역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교전 사태는 동티모르의 현지 무장세력이 1만 2,000명을 동원,다국적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이겠다고 경고한 가운데 발생한 것으로 존 하워드호주 총리는 다국적군과 민병대간의 충돌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국적군도 동티모르 서부 지역에 다국적병력 2,000명을 추가 투입한다고10일 발표했다.동티모르 서부 지역에 배치되는 다국적군은 이번 병력 증파로전체 병력 6,500명의 거의 절반인 3,000명선으로 늘어나게 됐다. 한편 다국적군과 민병대는 지난 4일 동티모르 서부 지역에서 처음으로 교전을벌여 민병대원 2명이 사망하고 호주 병사 2명이 부상했으며 9일에는 동티모르 주도딜리에서 남서쪽으로 110㎞ 떨어진 알토 레바스 마을에서 전투가발생,민병대원 1명이 사살됐다.
  • 전국체전, 여자역도 신영주·최명식 3관왕

    여자 역도의 신영주(24·양구군청)가 첫 한국신기록과 첫 3관왕의 영예를한꺼번에 움켜 쥐었다. 신영주는 11일 16개 시·도 및 12개 해외동포팀 등 2만1,414명의 선수단이참가한 가운데 화려한 개회식을 갖고 7일동안의 열전에 들어간 제80회 전국체육대회 첫날 여자 역도 48㎏급 인상(75.5㎏)과 용상(95.5㎏)에서 자신의종전 한국기록을 0.5㎏씩 경신한 2개의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대회 첫 금메달리스트가 됐다.신영주는 합계(170㎏)에서도 1위에 올라 첫 3관왕이 됐다. ‘주부역사’ 최명식(제주도청)도 여자 53kg급 인상과 용상에서 각각 77.5kg과 97.5kg을 들어 올리고 합계 175kg을 기록,역시 3관왕이 돼 건재를 과시했다. 태권도 남자 고등부 핀급에서는 강원 고석화(강원체고)가 전북 박성철(전북체고)을 꺾고 결승에 진출,서울의 김영철(한성고)과 우승을 다툰다.시립코트에서 열린 테니스 남자일반부 1회전에서는 부산의 삼성증권이 전북선발을 2-0으로 이겨 첫 승을 거뒀다. 전날 사전경기로 치러진 사격 스포츠소총 3자세에서는 인천대표 오현정(한체대)이 합계 673.1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김하연(김포시청)은 스키트에서 144점으로 우승,2년연속 정상을 밟았다. 한편 이날 하오 3시부터 메인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회식에서 김운용 대한체육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전국체전은 민족화합과 대동단결의 구심점이 돼왔다”며 “이번 체전에서도 평화와 화합의 스포츠정신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인천 특별취재반
  • “1일 병영체험 신고합니다”

    도봉구(구청장 林翼根)는 민방위대 창설 24주년을 맞아 11일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소재 육군 모부대에서 주부 2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일 병영체험 훈련’을 실시했다. 이날 훈련은 관내 새마을부녀회,대한적십자사 도봉지부,주부환경 도봉구연 합회 등 11개 여성단체 회원들의 요청으로 구가 군부대와 협의,마련했다. 이날 훈련에서 주부들은 태권도시범 참관,방독면 착용법 숙지,사격훈련,시 가지 전투 등 군인들이 훈련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했다. 훈련에 앞서 주부들은 미리 준비해간 떡 과일 등 위문품을 군부대에 전달, 장병들을 격려했다. 훈련에 참가한 도봉구 새마을문고회 최점례(53)씨는 “훈련이 몹시 힘들었 지만 극기정신을 기를 수 있었고 국토방위의 중요성과 애국심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 CBS “노근리外 학살 더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CBS방송은 노근리사건을 포함,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한국 양민학살사건은 적어도 3건이며 미군 당국이 이에 대해 함구령을내렸었다고 보도했다. CBS방송은 8일 뉴스프로에서 노근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양민학살에 가담한 레스터 토드 이병의 말을 인용,병사들의 사격에 의한 학살과 미 공군기에 의한 사살사건 등이 있었음을 보도했다. 최전선에서 싸웠던 레스터 토드 이병은 “사살작전이 개시돼 적을 향해 진격하면서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이들을 사살했다”면서 “걷고 있는 모든 사람을 사살했다”고 증언했다.이 방송은 그러나 미 육군이 그에게 이에 대해 말하지 말 것을 지시해 그가 지금까지 언급을 하지않았다고 지적했다. CBS방송은 53년에 작성된 메모를 찾아냈는데 여기엔 “미국에 매우 당혹스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폭로했다. 이 방송은 토드가 밝힌 이 사건은 최근 재조명된 3건의 미군 학살사건의 하나이며 이외 미군 공군기가 양민을 향해 발포한 것과 한 사찰에서민간인 83명이 학살된 사례도 있다고 보도 했다. hay@
  • [외언내언]‘노근리’에는 왜 갔나

    6·25동란때 미군에 의해 양민이 대량학살된 충북 영동 ‘노근리사건’을조사하기 위해 지난 5일 현장을 방문한 국회의원들의 행태가 그곳 주민들은물론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노근리 양민 대학살사건 대책위’정은용위원장이 국회의원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데 국회의원중 누군가가 “미군이 오인사격(誤認射擊)을 한 건 아니냐?”고 질문을 했다.정위원장이 “절대 아니다”고 답변하는 순간 의원들 가운데 누군가가 “에이…그럴리가 없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별거 아닌데 그만 가지”라는 말도 이어졌다. 놀란 유족들이 발언자를 살폈으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확인되지 않았다.이뿐 아니다.자민련 박신원(朴信遠)의원은 “우리 고향에서는 2,000명이 미군에게 죽었다”고 했다.유족들이 ‘그정도 가지고…’라는 뉘앙스로 듣고 항의하자 박의원은 “유사 사건이 9건이나 있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유족들이 “그동안 정부가 진상규명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국회의원들까지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그러나 의원들의 반응은 엉뚱했다.“농담삼아 던진 이야기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느니,“의원들끼리 한 이야기인데(유족들이)쌓인 게 많아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는 식이었다. 국회 행자위 2반 소속 이들 국회의원들이 이날 보인 행태는 민족의 상처를뒤늦게나마 씻어주겠다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아니라 제3국 국회의원들의그것이었다.제3국 의원들이라고 무고한 양민이 대량학살당한 현장에서 그런태도를 보였겠는가.그렇다면 국민들은 “노근리에는 왜 갔는가?”그들에게묻지 않을 수 없다.AP통신이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던 때 국내신문도 보지 않았다는 말인가.“그들(피란민들)을 적군으로 대하라-Treat them(refugees) as enemy”라는 비밀해제된 당시 군 작전명령의 원문(原文)까지 나와 있었다.‘오인사격’은 무슨 얼어죽을 ‘오인사격’인가.게다가 ‘의원들끼리 던진 농담’이라는 말은 또 무슨 소리인가.거액의 출장비를 받고 농담이나 하려고 노근리에 갔다는 말인가.아녀자까지 포함된 무고한 주민 200여명이 학살당한 노근리사건이 ‘별것’아니라면,얼마나 많은 양민들이 떼죽음을 당해야 ‘별것’이 된다는 말인가.“나라가 참으로 큰일이다”라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장윤환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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