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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국내유일 저격수 전도사 황광한 예비역 준장

    “스나이퍼(저격수)는 정규전에서 킬링머신이 아닌 수호천사 역할을 합니다.적의 저격수와 핵심요원을 제거하면 싸움은 백전백승입니다.이순신 장군과 넬슨 제독도 결국 스나이퍼한테 당한 셈이지요.” 전쟁영화에서나 봤던 스나이퍼가 우리 군에도 등장한다.황광한(67·육사17기)예비역준장은 국내 유일의 ‘스나이퍼 전도사’로 알려져 있다.최근에는 스나이퍼를 양성·교육하는 교관역할까지 맡고 있다. 해병대교육훈련단은 건군 이후 처음으로 지난 12일부터 2주 동안 스나이퍼 희망자 41명을 상대로 저격수 교육훈련을 실시 중이다.황 장군은 최근 이들을 상대로 ‘진정한 스나이퍼’를 위한 특별교육을 했다. 또 이라크 파병을 앞둔 자이툰부대 역시 황 장군의 권유로 24명의 스나이퍼 요원을 최근에 선발,훈련 중이라고 그는 밝혔다.이라크 주둔 미군부대에는 대대별로 8명의 스나이퍼 요원을 두고 있다는 그는 오는 18,19일 이틀간 자이툰부대를 방문,교육할 예정이다. 그는 “저격수는 당연히 특등사수로 구성되지만 특등사수가 곧 저격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격술 외에도 전장의 첩보수집을 위한 지역수색 능력과 엄폐와 은폐,개인 위장능력,고도의 인내심 등이 완벽하게 갖춰져야 한다.”면서 “양쪽 시력이 2.0 이상인 사람 중에서 금연·금주,정신자세,지적수준,유도능력,독도법 등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스나이퍼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나이퍼의 중요성에 대해 “예를 들어 1명의 적을 사살할 경우 1차대전 때는 소총탄환 7000발,2차대전에서는 2만 5000발,월남전에서는 무려 5만발이 소요됐다.”면서 반면 월남전 저격수 요원들의 경우 단 1.7발에 불과했다고 비유했다.저격수는 7.62㎜ 저격용 소총으로 1000m,12.7㎜ 소총으로 2500m의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단다. 원래 스나이퍼(sniper)는 도요새(snipe)의 사냥꾼이라는 뜻으로 1차대전 말 영국군에서 처음 공식 편제화했다.다음은 황 장군이 전하는 주요 사례들.1700년대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이 개조한 소총으로 적병을 저격했다.1777년 미국의 독립전쟁시 영국의 프레이저 장군은 300야드 떨어진 말 위에서 저격당했다.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은 저격작전을 구사해 우리측 젊은 소대장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월남전 당시 최고의 저격수인 카를로스 미해병 상사가 베트콩 사단장을 저격한 일은 스나이퍼의 전설로 전해오고 있다. “북한은 1개분대에 1명의 저격수 요원을 두고 있습니다.” 원래 유격전문가인 황 장군은 전역후 지난 95년 미 조지아주의 ‘스나이퍼 학교’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나이퍼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해병대가 스나이퍼 양성훈련을 시작한 것도 3년전 그가 김명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교육훈련의 필요성을 제기한 데서 비롯됐다.그는 현재 국방부 군사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순경의 모든것] 대부분 공채… 올 1448명 선발

    순경이 되는 길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것이 공채를 통한 것이다.올해는 지난 2∼3월 남자 615명과 여자 109명을 선발했고,8∼9월에 같은 규모의 인원을 추가 선발해 모두 1448명을 뽑게 된다. ●순경공채 경쟁률 갈수록 높아져 순경 공채시험의 경쟁률은 지난 94년 9.4대 1에서 98년 16.4대 1,2000년 18.0대 1,2002년 24.9대 1,지난해 26.1대 1,올 전반기에 28.2대 1로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김진표 경찰청 고시계장은 “경찰에 관한 인식이 개선됐고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반영됐다.”고 풀이했다.올해 공채 합격자의 83.6%가 전문대 재학 이상으로 학력도 높아졌다. 특채를 통해 순경이 되는 길도 있다.각 대학의 경찰행정학과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경찰행정학과 특채,전술·폭발물처리·탐지견 등과 관련된 자격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경찰특공대 특채 등이 있다. 시험에 합격하면 충북 충주의 중앙경찰학교에서 24주간 합숙교육을 받는다.경찰윤리 등 소양교육과 법학 과목,실무 교육,무도·체육·사격 등을 소화해야 한다.6주 동안 일선 순찰지구대에 배치돼 현장실습도 받는다.중앙경찰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시보’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순경이 된다.공채 출신 순경은 남녀 구분없이 모두 순찰지구대에서 첫 임무를 수행한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영등포경찰서 서부지구대에 지난 1월 배치된 이동석(28) 순경은 공채 161기.인하대를 졸업한 이 순경은 지난해 3월 첫 시험에서 떨어지고 8월 두번째 시험에 합격했다.경북 김천이 고향인 이 순경은 대구의 경찰전문학원을 다니며 매일 8시간씩 공부했다. 당락을 좌우하는 영어는 매일,형법·경찰학 개론·형사소송법·수사는 이틀에 하루 꼴로 공부했다.그는 “형법·형소법은 7급 공무원시험 문제를 공부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한해 두세번 있는 순경 공채시험의 첫 관문은 필기.경찰학개론·수사·형법·형사소송법·영어 등 5개 과목이며,과목당 20문제이다.한 과목이라도 40점 미만이면 불합격이다. 순경 시험은 필기 75%,적성검사 5%,면접 10%,체력검사 5%,자격증 등 가산점 5%로 이뤄진다. 서울 대일경찰학원 이장용 강사와 남부경찰학원 오수평 강사 등은 ▲‘영어’의 어휘와 독해는 지문을 많이 읽고 기출문제를 많이 풀어볼 것 ▲‘경찰학개론’에서는 최근 개정된 경찰 관련 법령을 반드시 알아둘 것 ▲‘형법’·‘형사소송법’은 기본서를 위주로 하되 판례와 학설을 합친 문제를 많이 다룰 것 등을 권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김일환 亞사격연맹 부회장“고산지대 적응해야 아테네서 금빛사냥”

    “아테네의 고지 사격장에 대한 대비 없이는 8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 사냥이 무산될 수도 있습니다.” 아시아사격연맹(ASC) 부회장이자 국민은행 사격팀을 맡고 있는 김일환(49) 감독이 지난 16일부터 3일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ASC 집행위원회와 세계사격연맹(ISSF) 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와 전한 ‘제1보’다. 오는 8월 아테네올림픽 사격 경기가 열리는 아테네 인근 마르코풀로 사격장을 미리 둘러본 김 감독은 사격장이 고산지대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 기록의 중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통 평지에 있는 일반 사격장과는 달리 해발 1000m 가까운 지대에 위치해 있다.”면서 “호흡곤란등에 대비, 국가대표 선수들이 남은 기간이라도 해발 1330m의 강원도 정선 태릉선수촌 태백분촌에서 고지적응 훈련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또 한국 등 아시아 지역 국가의 공기소총 기량 향상을 위해 해마다 열리는 아시아공기총선수권대회를 창설,내년 8월 카자흐스탄에서 원년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지난 2월의 ‘총기회수 사건’이 오해로 밝혀진 뒤 이번 총회에 다녀온 김 감독은 “공기소총에서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했다.”면서 “6월 밀라노 월드컵 등에서 국제대회 경험만 쌓는다면 올림픽에서도 선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두걸기자 douzirl@˝
  • 매향리사격장 54년만에 폐쇄

    폭격기와 전투기 등의 포탄투하와 사격으로 주민들의 집단반발을 사온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의 미 공군 쿠니사격장(일명 매향리 사격장)이 54년 만인 내년 8월 완전 폐쇄된다. 국방부는 매향리사격장을 폐쇄하기로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측과 합의한 데 따라 후속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미국측과 지난 2월 ‘매향리 사격장 관리임무 전환 및 폐쇄’에 관한 이행계획서를 체결한 데 이어 사격장 인수 양해각서(MOU)도 금명간 체결할 계획이다.국방부는 농섬과 매향리 육상(53만평)과 인근 해상(666만평) 등 719만평에 조성된 매향리 사격장의 관할권을 내년 8월까지 주한 미공군으로부터 넘겨 받아 폐쇄할 방침이다.이로써 6·25 전쟁기간인 1951년 사격훈련이 실시돼 1954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공식조성된 쿠니사격장에서 50여년 동안 계속된 포성이 완전히 멎게 된다. 매향리 주민들은 그동안 사격장 피해대책을 끊임없이 제기했으나,안보논리에 밀려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다 2000년 5월 실전용 MK-82폭탄 6발이 투하되면서 주민들이 다치고 가옥이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문경새재 대축제 ‘맨발로 고개넘어 전통차 한잔’

    다음달 1일부터 9일까지 경북 문경시 일원에서 큰 잔치가 열린다.‘제1회 문경새재 대축제’다.그동안 문경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열렸던 각종 축제가 이 기간에 집중 개최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전통찻사발 축전’.전통찻사발 전시회를 비롯해 문경수석 명품전,전통다례 시연,선조 도공 추모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문경읍 도자기 전시관 일대에서 펼쳐진다.도자기 코너와 장승깎기 체험코너 등도 마련돼 참석자들이 직접 도자기와 장승을 만들 수 있다.전통찻사발과 도자기 명품을 할인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도예명장 3명의 작업장을 방문,장작불로 도자기를 굽는 과정도 볼 수 있다. 산악스포츠 행사로 구성된 ‘산악체전’도 열린다.‘문경새재 맨발로 걷기대회’ ‘새재기 등산대회’ ‘전국 클레이 사격대회’ ‘패러글라이딩 대회’ ‘산악자전거 대회’ 등이 개최되고 다양한 산악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산악영화제’가 계획돼 있다. ‘한시백일장’ ‘관광마라톤대회’ ‘씨름대회’가 개최되고 고려대 등 전국 16개 대학 응원단이 힘찬 율동으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대학응원단 경연대회’가 펼쳐진다. 진남휴게소에서 고모산성까지 4㎞에 이르는 옛길을 걸어보는 ‘영남대로 옛길 문화탐방’과 ‘명승사진전’ ‘수석사진전’ ‘야생화전’ 등이 열리고 ‘향토음식 맛자랑대회’에서는 백두대간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문경시 관계자는 “관광객 체험 프로그램을 크게 늘린 것이 이번 축제의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문경 한찬규기자 cghan@˝
  • [사회플러스] 매향리 주민에 1억9400만원 지급

    서울고검은 13일 매향리 미 공군사격장 소음피해 소송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1억 9400만원의 배상금을 주민들에게 지급했다고 밝혔다.배상액은 승소금액 1억 4000만원에 지난 98년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한 이후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6년에 걸친 연 20%의 지연 이자 5400만원을 합친 금액이다.전만규 주민대책위원장은 “배상금 전액을 공동기금으로 적립,추가 소송 결과에 따라 받게 될 배상금 일부와 합쳐 ‘매향리 평화박물관’(가칭) 건립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사설] 민가로 날아든 미군 실탄

    주한미군 사격장이 또 도마에 올랐다.이번엔 유탄(流彈)사고다.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남산리 주민 권모씨에 따르면 지난 9일 권씨 집에 미 군용 권총(구경 9㎜)실탄이 날아들었다.실탄은 4층 베란다 창문을 뚫고 벽에 부딪친 뒤 베란다 바닥으로 떨어졌다.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백주 대낮에 집안에 총알이 날아든 사실만도 가슴 철렁한 일이다. 게다가 미군측은 조사를 나와 별다른 해명없이 유리창 값으로 권씨에게 단돈 4만원을 주고 갔다니 안이하고 무책임한 대응에 말문이 막힌다.이러니 주한미군이 지난 50년간 전쟁억제력으로 막중한 역할을 수행해온 공로에도 불구하고 최근 비판적인 여론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미군측은 일단 사격장 사용을 중단함으로써 급한 불을 껐다.다음은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유사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취하는 것이다.미군기지내 사격장에서 25m 이내 표적을 쏘는 권총사격훈련 중 실탄이 민가로 날아갔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더구나 실탄이 돌 등 지장물을 맞고 굴절된 상태에서 500m나 날아가 유리창을 관통했다니 충분한 경위 설명이 요구된다. 우리는 특히 이번 사고가 발생한 K-6(캠프 험프리) 미군기지 주변이 바로 용산 미군기지 이전 대상지로 꼽히고 있음을 우리 정부나 주한미군측이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한다.벌써부터 해당지역 주민들은 기존 미군기지 주둔에 따른 피해 보상을 주장하며,기지 확장에 반대하고 있다.주한미군측은 이번 사건이 불난데 기름 붓는 격이 되지 않도록 원인 규명과 사과 등 필요한 조치를 서둘러 취하기 바란다.˝
  • KCC 경영권분쟁 ‘호된 대가’

    “경영권 분쟁은 끝났지만 뒤처리는 쉽지 않네요.” 현대그룹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에 대한 KCC측의 공개매수 청구 접수가 13일 마감됐다. 공개매수를 청구한 주식은 매수계획물량의 4배 수준인 200만주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집계는 14일 마무리된다. 공개매수 청구 접수가 마감됨에 따라 KCC는 약속대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57만 1500주(8.01%)를 주당 7만원에 매입해야 한다. 매수청구 주식이 계획물량을 초과함에 따라 신청 주식의 4분의1만 사주게 된다. KCC는 이번 공개매수를 통해 주당 2만 8950원씩 모두 165억 4490만원 가량의 손실을 입게 됐다.하지만 KCC는 지난달 31일 경영권 분쟁에서 패배한후 보유주식을 팔기로 한만큼 이들 주식을 다시 시장에 내다팔 예정이다. 하지만 파는 과정에서 주가가 내려가면 또다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값비싼 경영권 분쟁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KCC와 정상영 명예회장은 그러나 “약속은 약속인 만큼 주식을 모두 사들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가슴 철렁 내려앉은 값 4만원?

    경기도 평택의 미군기지 사격장에서 실탄이 날아와 가정집 창문을 관통하는 사고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2일 평택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9일 오전 10시쯤 평택시 팽성읍 남산리 주민 권모(49)씨 집 4층 베란다 창문(가로 120㎝,세로 50㎝)을 38구경 권총 실탄이 뚫고 벽에 맞은 뒤 베란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베란다 창문은 손바닥 크기로 둥글게 깨졌고,베란다 안쪽 벽에는 실탄에 맞은 자국이 있었다. 실탄은 권씨 집에서 직선거리로 500m가량 떨어진 K-6(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 내 사격장에서 권총사격 연습 중에 잘못 날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권씨는 “집 뒷마당에 서 있는데 ‘쨍’하는 소리가 들려 올라가 보니 베란다 창문이 깨져 있었고 실탄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며 “경찰에 신고했더니 미군이 조사를 나와 별다른 해명 없이 깨진 유리창 값으로 4만원을 주고 갔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기지 내 사격장(사거리 25m)에서 권총사격 연습을 하다 실탄이 돌 등 지장물에 맞고 굴절돼 가정집으로 날아간 것이라고 미군이 해명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군측은 사고원인 규명과 피해방지책을 마련할 때까지 사격장을 잠정폐쇄하기로 했다. 평택 김병철기자 kbchul@˝
  • “4조 2교대로 일자리 창출”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사람입국(立國) 신경쟁력 특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신설했다.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11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신봉호 전 청와대 정책관리비서관을 간사격으로 하는 사람입국 신경쟁력 특위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특위의 위원은 15명이다.지난주 특위가 구성돼 본격 활동에 들어갔으며 1주일에 1∼2회 회의를 갖기로 했다.유한킴벌리의 ‘일자리 나누기(work-sharing)’ 모델을 국내 기업에 확산시키기 위해서 특위를 구성하게 됐다.고위관계자는 “특위는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유한킴벌리의 4조2교대 근무체제를 기업들에 확산시키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특위는 우선 한달에 1∼2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유한킴벌리 모델을 알리는 강연에 나설 계획이다.포스코,제일제당 등 일부 기업은 유한킴벌리의 4조2교대 모델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곽태헌기자 tiger@˝
  • [오늘의 경기]

    ■ 야구 대학봄철리그(낮 12시 동대문구장등) ■ 역도 올림픽대표선발전(오전 9시 올림픽역도장) ■ 사격 올림픽4차선발전 겸 봉황기대회(오전 9시 창원) ■ 유도 봄철대학대회 첫날(오전 10시 제주성산생활체)
  • [사설] 미군 매향리 배상금 못낸다니

    주한미군사령부가 매향리 사격장 소음피해 배상금을 한푼도 분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23조5항 청구권 조항은 미군이 공무집행중 우리측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혀 발생한 배상금에 대해 75%는 미군이 부담하고 나머지 25%는 한국측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한국측은 아무런 책임이 없어도 무조건 배상액의 25%를 분담해야 한다는 이 조항은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으로서 개정돼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그런데 미군측은 이 조항에 규정된 75%의 분담금마저도 한국 측에 떠넘기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미군측은 ‘미국은 한국 정부가 제공한 시설과 구역 등을 사용한 것과 관련해 제3자가 제기할 수 있는 청구권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SOFA 5조2항을 근거로 들고 나왔다.이 조항은 청구권에 대한 면제를 언급하고는 있다.그러나 면제의 대상은 모든 형태의 청구권이 아니라 제공된 시설과 구역의 반환에 대한 청구권에 국한된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5조2항 자체가 ‘제공된 시설과 구역의 유지’에 대한 조항이기 때문이다. 이번 매향리 배상액은 1억 4000만원에 불과하지만 460억원에 이르는 추가소송 등 유사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미군으로선 부담스런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SOFA규정을 왜곡해석하면서까지 주둔지 민간인들에게 준 피해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미군측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미군은 상호존중의 정신 아래 분담금 협상에 성실히 임해야 할 것이다.정부 역시 보다 치밀하고 당당한 협상 자세를 보여야 한다.이번 협상은 주권국의 체통이 걸려있는 사안이다.
  • SOFA 개정여론 다시 커질듯

    주한미군은 8일 매향리 사격장 소음피해에 따른 배상 문제와 관련,“미국은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도록 돼 있다.”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을 근거로 사실상 배상금 분담 거부의사를 밝혔다.매향리 배상판결에 대한 주한미군측의 첫 공식 입장이다. 정부는 매향리 주민들의 배상금 지급 신청에 따라 곧 미국측과 분담 문제를 협의한다는 방침이어서 앞으로 미측과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SOFA 개정 여론도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은 연합뉴스의 질의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보낸 이메일에서 “주한미군은 매향리 훈련장에서 정규적인 훈련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SOFA 5조 2항에 근거해 미국은 이러한 경우에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도록 돼 있다.”고 강조했다. SOFA 5조 2항은 ‘대한민국 정부가 제공한 시설과 구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사용을 보장하고,또한 미국 정부 및 그 기관과 직원이 이러한 사용과 관련하여 제기할 수 있는 제3자의 청구권으로부터 침해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주한미군측은 지난해 5월 도쿄 부근에 있는 요코타 미군 공군기지 군용기 이착륙 소음에 대한 1심 소송에서 1억 6000만엔(약 16억원) 배상판결이 난 일본에도 이같은 입장을 동일하게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매향리 주민 14명은 98년 매향리 미 공군 사격장 소음피해에 대해 국가배상 소송을 내고 지난 3월 대법원에서 1인당 평균 1000만원씩 총 1억 4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확정 판결이 나자,지난 6일 정부에 배상금 지급 신청을 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세상에 이런일이

    ●내놔라 내사랑 “왜 내 젊은 애인을 빼앗아 가려는 거야?” 애인을 가로채려 한다는 의심 탓에 주먹을 휘두르며 싸운 60대와 40대 여성이 경찰 신세를 지게 됐다. 웃지 못할 사건의 주인공은 곽모(64)씨와 김모(47)씨.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한동네에서 살며 ‘언니’‘동생’으로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식당을 하는 곽씨는 젊어서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 다섯을 키우다 3년 전 건축업을 하는 L(50)씨를 만났다.서로 외로운 처지여서 어느덧 사귀는 사이로 발전했고,곽씨는 김씨에게도 그를 자연스럽게 소개해 줬다. 사건은 지난달 29일 밤 일어났다.김씨가 곽씨의 가게에 놀러와 술을 마시던 중 L씨가 김씨에게 휴대전화를 걸어왔다.‘형부’‘처제’ 하며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듣던 곽씨는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결국 폭발시켰다.L씨가 김씨에게 “술을 깨려거든 나와 함께 노래방에 가자.”고 말하는 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것. 곽씨는 두 사람이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오늘 밤 여기서 나와 함께 지내자.”며 김씨를 붙잡았으나 김씨는 “L씨가 기다리니 가야 한다.”며 뿌리쳤다.실랑이는 싸움으로 이어져 곽씨는 김씨를 주먹과 발로 몇 차례 때렸고,김씨도 맞받아쳤다.서울 노원경찰서는 두 사람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유영규기자 whoami@ ●가만둬 내사랑 경남 통영경찰서는 동거녀가 손님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에 격분,불을 지른 정모(44)씨를 현주건조물 방화 혐의로 지난달 27일 입건했다. 정씨는 전날 새벽 동거녀 강모(38)씨가 운영하는 소주방 주방에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인 뒤 음식물이 담긴 냄비를 올려놓는 방법으로 불을 질러 소주방과 인근 점포 등 7곳을 태워 1억여원의 재산피해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동거녀인 강씨가 영업 중 남자 손님들과 술을 마시고 농담한다며 말다툼을 벌인 뒤 화풀이로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철’든 고물상 광주 북부경찰서는 지난달 29일 철거대상 아파트에서 철근 등을 훔친 고물수집상 이모(54)씨를 입건했다. 이씨는 지난 2월25일 새벽 2시쯤 철거 예정인 광주 용봉동 모 아파트에 들어가 싱크대와 창틀을 훔쳐 가는 등 최근까지 3차례에 걸쳐 6만원어치의 철근과 알루미늄 새시 등을 훔친 혐의다.이씨는 이 아파트 출입문에 있는 알루미늄 새시를 뜯다가 주민 신고로 붙잡혔다. ●다시 부쳐온 ‘살인의 추억’ 미국 중부 캔자스주 위치타시 주민들이 25년 만에 돌아온 연쇄살인범 때문에 떨고 있다.얼마 전 위치타시에서 발간되는 일간 위치타 이글에 배달된 한통의 편지는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을 180도 바꿔놓았다.주민들은 앞다퉈 사격연습장으로 달려가고 있다.외부인 침입흔적과 전화선이 연결돼 있는지 확인한 뒤에야 잠자리에 든다. 35만명 위치타시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장본인은 자신을 빌 토머스 킬먼이라고 주장하는 얼굴없는 남자다.그는 신문사로 보낸 3월17일 소인이 찍힌 편지에 1986년 9월 목졸려 살해된 한 여성의 운전면허증과 TV앞에 죽어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 3장의 복사본을 동봉했다.10년 전 위치타시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과 범행수법이 비슷해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은 됐지만 범인 검거에는 실패했다.그런데 느닷없이 자신이 이 사건의 범인이라며 수사당국에 도전장을 보낸 것이다. 경찰은 편지 겉봉에 적힌 발신인이 유령 인물임을 확인했다.그러나 이름의 이니셜이 30년 전 미궁으로 빠진 7건의 연쇄살인범이 사용해온 B.T.K를 의미하자 신문사와 경찰당국은 바짝 긴장했다.B.T.K는 1974∼1979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7건의 범인이 피해자를 묶어놓고 신체적으로 온갖 위해를 가한 뒤 서서히 목졸라 죽인 수법을 빗대 스스로 붙인 별명이다. 김균미기자 kmkim@ ˝
  • 매향리 ‘소음 배상금’ 지급신청 정부·미군 분담액 진통 겪을듯

    매향리 미군 사격장 주민대책위원회는 6일 미 공군기의 사격훈련에 따른 소음피해에 대해 대법원이 확정판결한 배상금을 지급해달라며 서울고검에 국가배상청구서를 접수했다. 이는 매향리 사격장 인근 주민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달 12일 1인당 평균 1000만원씩 모두 1억 4000만원을 국가가 지급하라며 최종 승소판결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민들에게 즉시 배상금을 지급하고,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23조 등에 따라 미국측과 분담액 조정 협상에 들어갈 방침이다. 그러나 미군측과의 협상은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매향리 주민들이 지난 2001년 낸 460억원대의 추가 소송에 대한 확정판결을 앞두고 이를 염두에 둔 미군측이 배상금 분담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재천기자 patrick@˝
  • 현대 경영권 현정은 회장 ‘완승’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KCC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완승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30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총에서 현 회장의 신임이사 선임안을 찬성 77.8%(250만 3568주),반대 22.2%(71만 4141주)로 통과시켰다.최용묵 사장도 연임됐다.현 회장은 현대아산·현대상선에 이어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이사로 선임됨으로써 명실상부한 그룹 총수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KCC는 주총 이후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면서 “보유주식에 대한 현대측의 장외매수 제안에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현 회장의 승리는 전날인 29일 법원이 KCC의 주식 53만 9046주(지분 7.5%)에 대해 의결권 제한 결정을 내린 데다 현대백화점과 현대중공업이 불참을 통해 중립의사 표명을 한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 수순에 돌입했지만 양측의 손실은 만만치 않다.KCC는 이번 패배로 명분과 함께 실리를 잃는 상처를 입었다.‘시삼촌이 조카며느리의 기업을 탐냈다.’는 도덕적 비난과 함께 향후 보유 주식매각 과정에서의 금전적 손실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에서 이긴 현대 역시 손실이 적지 않다.고 정몽헌 회장 타계이후 8개월여 동안 경영권 분쟁에 시달리면서 구조조정과 그룹의 재도약 방안 마련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현 회장도 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외국인 지분 대림산업 65%·현대산업개발 62% “혹시 M&A” 불안한 동거

    외국인들이 국내 주요 건설업체의 지분공략에 나서면서 건설업계가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최근 들어 외국인 지분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SK㈜ 사태’를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게 된 것이다.특히 상당수의 건설업체는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어 적대적 M&A(인수합병)의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주요 건설업체 경영권 방어 비상 지난 19일 현재 현대산업개발의 외국인 지분은 62.04%.반면에 대주주 지분은 정몽규 회장 9.07%,정세영 회장 7.20%,KCC 4.72%,기타 특수관계인 0.12% 등을 합쳐 21.74%에 불과하다. 외국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경영진도 갈아치울 수 있는 상황이다.외국인 가운데 템플턴이 19.59%로 최대주주이다.또 캐피털그룹의 CGI펀드가 11.04%,같은 캐피털 계열의 CRM펀드가 7.23%,헤르메스는 5.38% 지분을 갖고 있다. 대림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대림산업도 외국인 지분이 65.82%나 된다.2002년 말까지만 해도 외국인 지분은 40.64%에 불과했다.반면 이준용 회장 등 대주주의 우호지분은 23.34%에 지나지 않는다.외국인 등의 적대적 M&A에 취약한 지분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삼성물산도 올 3월8일 현재 외국인 지분이 43.5%에 달한다.이에 비해 이건희 회장 등 대주주 우호지분은 14.9%에 불과하다.금호산업(금호건설산업)은 최근 외국인 지분이 13.28%로 늘어났다.지난달 말 9.38%에서 3.9%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 ●투자목적인가,M&A 포석인가 외국인들은 대부분 투자목적의 지분매입이라고 설명한다.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에 별다른 요구도 하지 않고 있다.이같은 현상이 기업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겉으로는 기업내용이 좋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혹시나’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주식 3.97%,제일기획 주식 12.64%,삼성SDS주식 17.96%,삼성네트웍스 주식 19.47%를 보유하는 등 그룹의 우량주식을 많이 갖고 있다.따라서 외국인들이 삼성물산 지분을 늘리는 것은 M&A보다 미래의 주식가치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가진다. 또 금호산업도 대주주 우호지분이 40%를 웃돌고 있어 아직 경영권에 대한 걱정을 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현대산업개발이나 대림산업은 지분구조가 취약하다는 점 때문에 적잖이 고민을 하고 있다.외국인들 동향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펀드 등이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크게 우려할 바는 아니지만 취약한 지분구조를 틈타 소버린처럼 다른 투자펀드가 공략을 할 수 있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관투자가 적극 유치해야 대주주들은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고민 중이다. 현대산업개발의 경우 정몽규 회장이 경영권 방어차원에서 13.05% 지분에 해당하는 BW(주식전환사채)를 발행했다가 편법증여 의혹을 받자 이를 소각하기도 했다.현대산업개발은 다른 대응책을 찾고 있다. 대림산업도 지분구조가 갈수록 취약해지자 대책을 세워놓았지만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국내 건설업체들의 기업 전망을 좋게 보고 외국인들이 지분을 매입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지분구조가 취약한 기업은 국내 기관투자가를 적극 유치하는 등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근대기상 100년 어제와 25일

    25일은 우리나라에서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지 100년이 되는 날.1904년 3월 일본에 의해 부산과 목포 인천 용암포 원산 등 5곳에 관측소가 설치됐고,같은달 25일 목포관측소가 처음으로 기상관측을 실시한 것이 우리나라 근대 기상의 첫기록으로 남아 있다. 1907년 2월1일 대한제국이 농상공부 소관으로 측후소 관제를 제정·공포했으나,1910년 8월 대한제국의 기상업무는 막을 내리고 조선총독부관측소로 옮겨진다.일제시대에는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한 항공기용 상층기류 관측이 주요 업무였다. 해방 직후인 45년 9월 군정청 문교부 기상국장 겸 국립중앙관상대가 설립됐고 이듬해에 국제기상전보식에 따라 독자적인 기상업무가 개시됐다.한국전쟁 직후 90일간 국립중앙관상대 본대의 업무가 중지된 데 이어 인천상륙작전 때는 연합군의 함포사격으로 국립중앙관상대가 전소돼 각종 기상 통계자료가 소실됐다. 민간항공에 대한 기상지원 업무는 59년 11월 김포국제공항관측소의 신설로 시작됐다.정부 출범 당시 문교부 산하였던 국립중앙관상대는 62년 7월 교통부,67년 7월 과학기술처로 소속이 바뀐다.명칭도 국립 중앙관상대에서 63년 2월 중앙관상대로 개칭됐다. 1939년 9월부터는 기상관측자료를 전보로 송수신하기 시작했고,77년 한국전기통신공사의 회선을 전용으로 대여받아 직통전화망을 구성했다. 82년 1월1일자로 중앙관상대가 중앙기상대로 이름을 바꿨다.80년 최초로 정지기상위성(GMS) 수신장비를 도입해 기상장비 현대화를 추진했고,예보분야에서는 광역위주에서 벗어나 시·군 단위의 71개 구역으로 세분한 육상국지 예보를 실시했다. 중앙기상대는 90년 12월 기상청으로 승격했다.94년에는 전국 400곳에 집중호우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96년에는 기상정보의 인터넷서비스가 시작됐고,99년에는 슈퍼컴 NEC SX-5가 도입돼 예보의 정확도가 크게 향상됐다. 2002년 3월 최악의 황사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황사특보업무가 기상청으로 일원화했다.안명환 기상청장은 “10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라면서 “근대 기상 100주년을 맞아 국민에게 한발 더 가까이 가는 기상서비스를 실천,국민이 만족하는 예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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