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이후의 북한」세미나/김학준씨 발표 요지
◎“남ㆍ북한 교류물꼬 2∼3년내 트인다”김일성 생존말기 「제한된 교역ㆍ협력」시도 예상/대미관계등 개선… 동독식 온건개혁 추구할 듯
「김일성이후의 북한」을 주제로한 세미나가 한국지역사회연구소(이사장 장성만)주최로 23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에서 김학준박사(대통령사회담당보좌역)는 주제발표를 통해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사후가 아니라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며 이미 그 변화의 조짐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수년내에 북한은 대한민국의 실체를 인정,대화를 통해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박사는 또 2∼3년내에 북한은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남북한간 교류와 교역,협력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우리는 「건강한 민주복지국가」를 발전시켜 이 시기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박사의 발표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시간은 항상 사회과학자들을 망신시켜 왔다』는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교수의 말처럼 어떤 사회의 변화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이후 전개된 소련을 중심으로한 공산권의 변화는 한마디로 「혁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공산권의 변화를 예측한 사회과학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특히 정보가 극히 통제돼 있는 페쇄체제인 북한에 대해 그 미래를 전망하기란 매우 어렵다.
공산권의 변화이후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북한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이 2∼3년 또는 3∼4년안에 변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북한은 소련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동유럽국가들과 달리 중국이라는 또하나의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동유럽국가들은 지리적으로 소련에 인접,개혁과 개방의 도미노현상을 피할 수 없었으나 북한은 그 진원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셋째,유고와 알바니아를 제외한 동유럽의 국가들이 대부분 2차세계대전후 소련군에 의해 권력이 창출됐고 그 이후에도 소련군에 의해권력이 유지돼 대소의존도가 매우 컸지만 북한은 소련군에 의해 정권을 수립한후 곧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를 확립,자주노선을 밟아옴으로써 소련의 압력을 피할 수 있는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변화에 대한 또다른 견해는 북한도 1∼2년,적어도 2∼3년내에 반드시 변화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현재 공산권에서 전개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세계사적이며 문명사적인 조류로써 「인류사에 일대 획을 긋는 피할 수 없는 전환」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자그대로 「혁명적 변화」라고 일컬어지는 이 물결을 북한이 끝까지 거부할수 있겠느냐하는 물음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논거로는 첫째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소련의 대북압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린 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던 고르바초프의 한 군사담당보좌관은 『북한에 대해 동유럽에 대한 것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 발언을 전후해 김일성을 비난하거나 북한의 실정을 폭로하는 기사들이 소련언론에 계속 게재되기 시작했다.
특히 6.25의 남침설이 소련학자에 의해 입증되고 있으며 김일성일인 지배체제 확립의 핵심기둥이 되어온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신화를 파괴하는 내용마저 공개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서정상회담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발표된 직후 『이는 고르바초프가 대낮에 많은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김일성의 뺨을 때린 것과 같다』는 외신의 보도처럼 소련의 대북개방압력은 매우 크며 북한이 이를 거부할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최근 북한내부에서도 조직화되고 정치세력화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김일성의 지도노선 또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으며 이는 북한의 변화를 예측하는 주요한 지표가 될수 있다는 지적이다.
셋째,테크노크랫의 부상도 북한의 변화와 관련지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수 있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실용주의노선을 추구하는 테크노크랫의 부상은 변화의 조짐을 예고하는 것으로 그 폭이 넓어질수록 변화의 속도는더욱 빨라질 것이다.
나는 북한의 변화가 멀지 않았다는 후자의 주장에 동조한다. 다만 북한은 「김일성 개인의 국가」이기때문에 김일성사후가 아닌 김일성이 살아있을때 그 자신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올해 78세인 김일성은 지난해만도 2차례 심근경색을 겪었을만큼 건강이 좋지않으며 곧 무력화될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은 정치적 카리스마를 지니지 못한 김정일의 세습기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변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대남민족해방전략을 고집해온 김일성이 대남관계의 물꼬를 트지않은 상태에서 사망,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했을때 김정일이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정책의 전환을 시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북한변화의 길도 김일성 스스로가 닦아 놓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북한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고르바초프와 같은 권력자나 공산당이 주체적으로 개혁하는 소련식의 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서방세계로부터의 계속된 지원을 바탕으로 반체제세력이 집권을 하는 헝가리식의 변화도 겨우 불만이 노출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일반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정권에 도전해 협상과정을 거쳐 집권에 이른 폴란드식도 근로자들의 정치적 조직화가 전혀 돼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네커체제의 붕괴후 들어선 크렌츠가 물러나고 또다른 세력이 집권,보다 온건한 개혁노선을 추구해온 동독식의 변화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된다. 루마니아식의 혁명적인 변화도 배제할수는 없으나 조직화된 반체제정부세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은 김일성 생존말기에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변화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보다 완만하고 단계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한소정상회담이후 가시화되고 있는 미ㆍ일과의 관계개선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남북한전면개방과 인적교류」를 선언한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를 일단 거부한다고 선언했으나 결국은 수용할 것으로 생각한다.또 앞으로 몇년내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남북한간의 교류ㆍ교역ㆍ협력이 시작될 것이며 우리는 북한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대비책은 바로 우리 스스로 건강한 민주복지국가를 발전시키는 길이며 이를 바탕으로 북한을 개방의 길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