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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가는 여대생

    가출 여교생 유혹 성매매 서울 중부경찰서는 10일 가출 청소년에게 성매매를 시키고 돈을 가로챈 명문 미술대학 학생 박모(20·여)씨를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학교를 휴학 중인 박씨는 지난해 12월쯤 가출한 여고생 A(17)양을 올 1월 초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났다.A양에게 재워주고 먹여주겠다며 유인, 노원구 상계동 자기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남성들과 성매매를 10∼15차례 주선했다. 박씨는 A양과 함께 서울 강북지역 PC방을 전전하며 성매매 대상을 찾았으며 성인인증이 필요해 A양이 가입할 수 없는 인터넷 사이트에 대신 접속했다. 박씨는 경찰에서 “최신 휴대전화나 옷가지 등을 사는 데 돈이 필요했으나 직접 성매매를 하기는 싫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박씨가 학생으로 도주 우려가 없는 데다 초범이어서 불구속했다고 설명했다.A양은 청소년 쉼터로 인계됐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신입생 환영회 만취폭행 서울 성북경찰서는 10일 신입생 환영회에 멋대로 남자친구를 데려왔다며 신입생 임모(19)씨를 때린 모 여자대학교 2학년 정모(21)씨를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는 지난 9일 오후 11시쯤 학교 주변 술집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중 임씨가 함께 있던 남자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자 따로 불러내 손바닥으로 여러 차례 뺨을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경찰에서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져 상심해 있는데 신입생이 자기 맘대로 남자친구를 데려와 못마땅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신입생 환영회에서 맥주와 소주를 한데 섞어 여러 잔을 마신 것으로 밝혀졌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영화 ‘손님은 왕이시다’서 첫 주연맡은 성지루

    영화 ‘손님은 왕이시다’서 첫 주연맡은 성지루

    #제목? ‘손님은 왕이다’ #주연? 첫 주연 맡은 성지루 #역할? 순박한 이발사 안창진. 이 정도만 나열하면 어째 뻔하다 싶다. 성지루와 영화를 조합하면 대개 코미디, 조폭, 촌놈 같은 단어가 떠올라서다. 그런데 실제 영화는 이런 예상을 뒤엎는다. 개성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기가 눈을 즐겁게 한다.‘성지루가 드디어 주연했네.’로 끝날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성지루도 코믹배우의 이미지가 부담이었던 모양이다.20여년 넘게 연극무대에서 연기 내공을 쌓아온 배우에게 ‘조폭’‘코미디’라는 단어는 누구보다 답답했을 듯하다. 또박또박 힘주어 강조한다.“이건 정말, 드라마거든요.”‘정말’과 ‘드라마’ 사이에 놓인 쉼표가 제법 긴 호흡이다. 그래서인지 성지루는 이번 영화에 애착이 많다.“사실 이 영화는 10대 소녀들이 ‘오빠, 나 이 영화 볼래.’할 만한 영화는 아니죠. 저 개인적으로는 ‘아∼ 저런 가능성이 있는 배우구나.’라는 평가를 받는 게 바람입니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이제 조폭이나 촌놈 역할은 그만 들어왔으면 싶다는 기대까지 슬쩍 내비친다. 그러니 공 들이지 않은 장면이 없다. 모든 장면마다 왜 그 행동과 말이 필요한지 고심한 흔적이 묻어난다. 예를 들자면 안창진이 이발소에서 협박자 김양길(명계남)에게 뺨을 맞는 장면. 그냥 때리지 말고 수십대를 때리되 속도와 강도를 점차 높이자고, 그래서 제대로 맞겠다고 먼저 나섰다. 그것도 안창진의 얼굴만 찍는 원신 원테이크로.“연극에서도요, 처음에 한두 대 맞으면 막 웃어요. 어눌한 사람이 맞으면 재밌거든요. 그런데 이게 열대 스무대가 넘어가면 공포가 돼요. 객석이 조용해지죠. 그러면서 그 인물이 관객들 눈앞으로 화∼악 당겨지거든요.”‘협박자에게 굴복하는 소심한 이발사’는 이 단 한 장면으로 완성된다. 여기에다 영화 ‘초록물고기’의 ‘셰퍼드론’을 살짝 비튼 김양길의 대사도 맛깔난다. 원조교제하려고 여관을 찾았을 때도 그렇다. 안창진이 부스럭대며 ‘∼했삼’ ‘∼하셈’ 같은 인터넷 언어가 담긴 종이를 꺼내들어 말투를 흉내낸다. 그런데 정작 대사의 내용은 ‘부모님은 니가 이러는 거 아느냐.’는 식의,‘진상’스러운 것들이다. 이것도 그의 아이디어. 원조교제를 ‘즐기는’ 안창진이 아니라 아내 전연옥(성현아)에게 눌려 지내는 안창진이 하나의 탈출구로서의 원조교제를 택했고, 그래서 어린 소녀에게도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섰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여러 모로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지만 고민도 있다. 아무래도 주연에게는 흥행의 책임도 따르는 법.“영화는 시간 순으로 편집됐는데, 원래 시나리오는 시간 순을 꼬아 놔서 정말 기묘한 긴장의 연속이었거든요. 그래서 딱 마음에 들었는데 대중적일까 하는 고민은 있었죠. 그래서 그땐 100만 관객 예상했어요. 그런데 실제 촬영하면서 200만, 만들어진 거보니까 300만명은 가능하겠던데요. 입소문 나면 400만명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미스·경희대 백상은(白相恩)양 - 5분 데이트(37)

    미스·경희대 백상은(白相恩)양 - 5분 데이트(37)

    미술을 전공하는 발랄해 뵈던 아가씨가 「데이트」를 하려들자 너무나 수줍어 한다. 귀 밑부리로 보송하게 솜털이 난 뺨을 붉히고 알맞게 통통한 손을 올려 얼굴을 감싸면서…. 경희대 사대 미술교육학과 4년 백상은(白相恩)양. 「미스·경희대」. 『아버지가 늘 얘기 하셔서 가훈처럼 들어오는 말이 있어요. 결혼 후에는 「남편 제일주의」여야 한다는 거죠』 東과 西의 미덕을 한 몸에 지닌, 남성이 바라는 이상적인 여성을 보는 듯해서 흐뭇하다. 게다가 듣기 힘들어진 가훈도 지킬 참이라니…. 『여태까진 「스테디」한 사람이 없었지만 졸업반이 되고 보니 결혼을 염두에 두고 「데이트」하게 되는군요』 수줍음이 가득한 눈길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하고 싶고, 해야 할얘기는 빠뜨림이 없이 들려준다. 취미이며 전공분야이기도 한 실내장식 솜씨는 결혼을 해서 집안을 자기 손으로 훌륭히 꾸밀 수 있는 정도라고. 한가한 시간에 펴드는 책은 『부활(復活)』을 비롯한 이 작가의 작품들. 35-23-35의 알맞은 몸매에 1백62cm, 46kg의 균형잡힌 체격이 보기 드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겨울에는 「스케이팅」, 여름에는 수영으로 적당한 운동을 틈틈이 즐기면서 단련한 체격이란다. [ 선데이서울 69년 6/15 제2권 24호 통권 제38호 ]
  • 부문별 올 경제기상도

    부문별 올 경제기상도

    새해들어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주식시장이 불안하고, 환율은 수급 불균형으로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안정을 찾지 못한다. 우리 경제의 최대 ‘복병’으로 지목받던 국제유가는 다시 들썩이고, 참여정부가 ‘배수의 진’을 쳤던 ‘8·31 부동산 대책’의 효과도 불투명하다. 정부는 구조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자신한다. 부동산 대책이 본격 가동되면 집 값은 안정될 것으로 내다본다. 증시나 외환시장 역시 일시적인 ‘난기류’에 빠진 것으로 진단한다. 다만 유가의 상승 속도가 빨라진 점에 유의하는 정도다. 반면 시장의 ‘체감온도’는 다소 낮다. 증시나 유가에 대한 인식은 정부와 비슷하지만 부동산이나 원·달러 환율의 전망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부동산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양도소득세 전면 실가과세가 1년 유예되고 아직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지 못해 시장에선 8·31 대책의 무서움을 실감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114의 김규정 과장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못하다.”면서 “세금이 부과되더라도 집값에 얹어서 팔려는 생각 때문에 집값이 크게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매물이 없다는 게 문제이며 따라서 집값이 오르는 지역에 대한 차별화 정책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RE멤버스 고종완 사장은 “지난해 11월 이후 부동산 값이 오름세로 돌아섰으나 서울 전체나 지방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면서 “다만 재건축은 억제되고 송파 신도시 등 공급대책이 늦어지는 데 따른 수급상의 불균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율 재경부 관계자는 “소나기가 지나가면 괜찮을 것”이라고 최근 환율시장을 빗댔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면서 외환시장에서의 달러화 매도가 지난 3일 17억달러에 달하는 등 일시적 불안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전체적으로 자본자유화와 외국기업의 배당금 송금, 무역 흑자폭의 둔화 가능성을 감안할 때 환율은 안정되거나 다시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연구위원은 올해에도 달러화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 중단과 쌍둥이 적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날 원·달러 환율이 연 평균 960원이 될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는 정부가 올해 경제운용계획을 짜면서 전제로 한 1010원보다 50원 낮은 수준이다. ●유가 정부가 더 불안해 하고 있는 부문은 국제유가 움직임이다. 지난해 유가 상승률(46%)보다는 낮아지겠지만 최근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본다. 두바이유의 경우 올해 평균 배럴당 54달러로 예측했다. 연말쯤 60달러로 전제한 것이다. 그러나 1월 중 60달러를 돌파함에 따라 정부는 하반기 유가 급등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구자권 해외조사팀장은 “이란 핵문제와 나이지리아 공급 차질의 여파 속에 투기자본이 개입한 흔적이 있다.”면서 “석유공급 능력이 고갈되면서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문재 연구위원은 “원유 생산량을 결정할 이달 말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와 이란 핵문제를 다룰 2월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시 정부는 주식시장은 단기조정 과정으로 시장 수급상황에는 이상이 없다고 말한다.‘울고 싶은 데 뺨 때린’ 형국으로 비유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수를 늘리는 것은 우리 증시를 믿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부총리는 또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증권선물시장 개장 50주년 행사’에 참석,“증권거래 비용을 낮출 수 있도록 수수료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대신증권 양경식 투자전략팀장은 “최근의 급등락은 너무 오르니까 떨어지고 너무 떨어지니까 다시 오르는 기술적 반등현상”이라고 정부의 시각에 동조했다. 하지만 지난해처럼 본격적인 상승추세로 돌아갈 가능성은 별로 없으며 오히려 추가 하락 가능성을 경고했다. 백문일 장택동 이영표기자 mip@seoul.co.kr
  • [03일 TV 하이라이트]

    ●대발견 아이Q(EBS 오후 8시5분) ‘알쏭달쏭 육아극장’에서는 건강 경쟁력을 위한 전통 발효음식 ‘된장’에 대해 알아본다. 또 ‘아기실험실’에서는 퍼즐실험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과제수행능력에 따라 느끼는 수치심과 자부심에 대해서 살펴보고 아이들의 자부심을 키워주는 지혜로운 칭찬과 격려의 기술을 제시한다.   ●진실게임(SBS 오후 8시55분) 신년특집 1탄 진짜 혼혈인을 찾아라! 한국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놀라운 외모의 주인공들. 새까맣고 시꺼먼 가봉 웅가붕가, 비웃음이 주특기인 귀족가문의 젠틀맨 영국 에드워드 2세, 초록 눈의 수줍은 그리스 소녀 젬마 등 이국적인 외모의 주인공들이 출연한다. 이중에서 단 한 명의 진짜 혼혈인을 찾아본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25분) 지난해 5월 우주개발 진흥법을 제정, 공포하고 우주개발 중기계획을 수립했다. 우주시대의 본격 개막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한 셈이다. 올해 우주인 배출사업에 따르면 4∼5월경 최종선발 뒤 러시아 가가린 우주인센터로 보내지게 된다. 고흥 우주센터 건립, 로켓과 우주탐사선, 우주선 생활을 되짚어 본다.   ●특선다큐멘터리(MBC 오전 11시) 한옥에서 담장은 외형적인 구획과 엄폐의 목적을 가짐과 동시에 구획을 연결하고 확장하며, 기운의 순환을 유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막힘과 트임을 통해 기의 순환을 이루고 집밖을 구획하며 더 큰 의미로는 자연과의 단절이 아닌 연장을 이루어내는 담장. 담장을 향한 애정 섞인 시선을 따라가 본다.   ●별난여자 별난남자(KBS1 오후 8시25분) 해인은 호텔 건을 숨긴 채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한다. 하지만 해인의 마음을 모르는 석현은 해인과 함께 결혼 준비를 한다. 나라는 재옥에게 종남이 스스로 게스트를 그만두라고 하지만 재옥이 만만치않게 대응하자 당황한다. 해인은 석현 몰래 계약한 혼수들을 하나씩 취소하기 시작한다.   ●걱정하지마(KBS2 오전 9시) 미연은 선우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화가 나 뺨을 때린다. 그리고 더 이상 회사에 나올 필요 없다며 선우를 해고해 버린다. 호칭 때문에 홍주는 은새가 밉기만 한데, 영자가 홍주와 은새의 방을 서로 바꾸라고 하자 대놓고 은새를 구박한다. 은새도 지지 않고 대들면서 두 여자의 대결이 불꽃을 튀기기 시작하는데….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블랙홀/김미정 등장인물 광식 정애 남자 가인 등을 들고 있는 아이 인철 그 밖의 배우들 각 에피소드들의 시간적 배경은 같다. 에피소드 1 전체 무대는 1,2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2층은 오랜 병원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병실의 내부가 있다. 병실에는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침대가 있고 침대를 바라보며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 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양끝으로는 줄을 연결해서 빨래를 걸어 놓았다. 한쪽에는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고 그것은 병원 비상계단의 모습이다. 침대 옆에는 인공호흡기와 심장모니터기가 놓여져 있다.1층은 어느 산동네를 연상케 하는 배경들이 있고 계단의 정반대쪽에는 지하철 입구의 표시가 그려져 있다. 계단의 앞쪽으로는 벤치가 있고 그 벤치 옆에는 어느 노숙자가 놓고 간 듯한 신문지들과 소주병들이 나뒹군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 얼핏 들으면 기차소리와도 같은 규칙적인 소리.2층의 무대가 조금 밝아지면서 기차소리는 심장 모니터기의 소리로 바뀐다.2층의 무대가 완전히 밝아지면 모니터의 소리는 잦아들고 보호자용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광식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 밖에는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리창을 닦는다. 유리창을 닦다가 소주를 꺼내어 마신다. 광식의 앞에는 먹던 중이었던 김치그릇과 밑반찬 그릇들 그리고 밥그릇이 있다. 나머지 두 침대는 비어있다. 광식:(입맛을 다시며)거 참 맛있겠네. 저 양반 저거 세상을 아는 양반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 한 병 사오는 건데.(혼잣말로)거 혼자만 잡숫지 말고 나눠 먹읍시다.(먹던 밥을 계속 먹는다.) 남자가 유리창을 두드리더니 소주병을 내민다. 광식:한 잔 주시게요?아이고 그럼 나야 고맙지요. 유리창 남자가 소주를 따르는 시늉을 한다. 광식이 술잔을 받는 시늉을 한다. 광식:(마시는 시늉)원샷! 캬! 안주는? 안주도 줘야지. 남자가 씩 웃는다. 광식:사람 참 싱겁소. 남자도 하!웃는 모양. 그러고는 유리창을 닦는다. 광식:하, 취한다.(침대의 이불을 젖히니 아이가 반듯이 누워 있다. 광식이 아이의 몸을 옆으로 돌려서 등을 문지른다)우리 딸입니다. 예쁘죠?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이 예수님 귀 빠진 날이래요. 뭐 대단한 양반인지는 몰라도 병원 전체가 들썩들썩 합니다. 우리 병실 환자들은 모두 외출을 나갑디다. 세상을 구원하신 독생자 그리스님인지 놈인지 덕분에 오랜만에 조용하고 좋수.(등을 문지르다가 손을 동그랗게 하고 두드린다.)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둘이요, 두부장수 두부를 판다고 달달달, 셋이요, 새 각시가 빨래를 한다고 달달달. 광식이 부르는 노래의 반주와 함께 빨간 등을 든 여자아이가 등장해서 1층의 무대를 돌아다닌다. 아이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가만히 서서)아빠!일곱은 뭐라고 그랬죠? 남자가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유리창을 두드린다. 광식이 쳐다본다. 남자가 손가락 일곱 개를 유리창에다 댄다. 광식:일곱이요. 일본 놈이 순찰을 돈다고 달달달! 아이:아!(아이가 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를 돌아다니다가 퇴장한다.) 광식:(아이의 등에 베개를 대주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우리가 언제 한 번 본 적이 있죠?(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글씨를 쓴다.‘나 몰라요?’큰 소리로 입 모양이 보이게)초등학교 어디? 난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공주에서 살다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서울로 이사 왔는데…. 고향이 공주?아닌가?아무튼 형씨 인상 한 번 좋수다. 어쩌다 이런 일…. 뭐 오해는 마슈. 위험하니까. 이런 일 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잘 될 거요. 인상 보면 알지.(아이를 쳐다보며)우리 애는 십 년째 이러고 누워 있어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거든.(사이)원무과에서는 석 달에 한 번씩 청구서가 나옵니다. 일년 만에 집 날리고 벌써 팔 년 짼데 뭐가 남았겠습니까?지금은 월세 낼 돈도 없어서 병원에서 살아요. 뭐 그런 얘기를 밥 먹으면서 하냐고 그러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게 현실인걸. 만날 울고 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넘기는 거죠. 하루의 끝은 웃으면서 보내려고 해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죠.(한숨을 쉬며)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울화가 치밀어요.(조금 작은 소리로)이건 형씨한테만 하는 말인데요. 처음에는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더니 딱 일년이 지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길어야 삼년이겠지. 웃기죠?딱 일년 만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우리 마누라가 알면 난리 날 겁니다. 긴병에 효자 없죠?맞습니다. 부모라면 벌써 포기했을 겁니다. 자식이니까 붙들고 있는 겁니다.(큰소리로)진짜 나 몰라요?(한참의 사이 후 고개를 숙인다. 어깨를 들썩인다. 다시 한참의 사이를 두고 고개를 든다.)제길, 소주 한잔에 취했네. 다 잘 될 거요.(사이)그거 하면 하루 얼마나 줍 니까? 남자가 유리창에다 손가락을 대고는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더니 칼을 꺼내어서 줄을 끊는다. 순식간에 남자가 사라진다. 광식:어?(광식은 잠시 아무 움직임이 없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찾는다.)씨!지가 왜 죽어. 죽을 놈이 누군데.(한참 만에 전화를 찾는다. 떨리는 목소리로)저 여기 13층인데요.(사이)네?병원(사이)한영병원요. 사람이 떨어졌어요.(사이)아니 안이 아니고 밖인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면…유리창을 닦는 사람인데…. 인상이 좋고….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고…. 저 위 동네에 사는…. 헉!(갑자기 입을 막는다. 전화를 놓친다.) 광식이 정신없이 병실을 빠져나가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 머리를 벽에다 반복해서 박는다. 무언가 모를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가 미친 듯이 웃는다. 한참 만에 다시 병실로 돌아온다. 아이를 바라보고 유리창 밖을 바라본다. 두 손바닥을 유리창에다 댄다. 이제부터는 모든 행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아이의 호흡기 전원을 끈다. 호흡기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멈춘다. 침대 위 아이의 몸이 위로 한 번 뛰었다가 털썩 내려앉는다. 심장모니터의 박동소리가 완전히 멈춘다. 광식의 몸이 털썩 밑으로 내려간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광식의 손바닥 자국이 드러난다. 소리:2005년 12월25일 서울의 모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명을 유지하던 15세 김모 양의 아버지가 아이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김모 씨는 병원 소각장에서 아이의 신발을 태우다가 붙들렸습니다. 김모 양은 지난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 이후로 계속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왔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이의 목숨마저 끊어버리게 된 김모 씨는 현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씨의 다른 가족으로는 아이의 어머니 최모 씨와 8세의 아들이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아내 최모 씨에 의해 경찰에 신고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날 김모 양의 병실 밖에서는 병원의 유리창을 닦는 강모 씨의 추락사가 있었습니다. 강모 씨의 주머니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이 있었고 리프트의 한 쪽에는 분골함으로 보이는 상 자에 하얀 재가 반쯤 들어 있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층 들뜬 분 위기의 한 쪽에는 이런 어두운…. 암전 에피소드 2 빗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진다.2층 무대의 소품들은 여전하다. 정애가 지하철 입구를 통해 밀고 다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등장하고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그냥 그 자리에 선다.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서 닦는다.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애가 있는 곳으로 온다. 정애:(남자를 힐끗 보더니)크리스마스에 눈이 안 오고 비가 오네요. 남자가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도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남자를 바라보며)묘한 기분이 들어요. 남자:…. 정애:(천천히 고개를 돌리며)나 좀 봐 주책이야.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 정애:(가방에서 칫솔을 꺼낸다. 혼잣말로 연습한다.)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공부하시느라 살림하시느라 일하시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십니까. 오늘 제가 가지고 나온 물건은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건강 칫솔입니다. 이 건강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 인준을 받은 칫솔모를 사용한 칫솔로서 여러분의 이와 잇몸의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서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도 칫솔모가 상하지 않아 칫솔을 자주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남자를 쳐다보며)한영병원 1002호에 입원해 있는 가인이를 아시죠? 제 딸이에요. 남자:(그제서야 고개를 돌려서 정애를 본다) 정애:그동안 잘 지냈어요? 남자:…. 정애:당신, 많이 늙었네요. 남자:…. 정애:먹고 살만 하시면 칫솔 두 개만 사주세요.5천원이에요. 이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를 인정받았어요. 그게 뭔지 아시죠? 남자가 주머니에서 5천원을 꺼내서 정애에게 준다. 정애가 남자에게 칫솔을 준다. 정애:우리 가인이는 저 혼자 이빨도 못 닦아요. 그래서 칫솔도 필요 없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대 가운데로 간다. 뒤돌아서 정애를 바라본다. 남자:봉천동 산27번지에 사는 소영이는 어제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며칠 전에 돌에 깔려서 죽었거든요. 그 아이도 이제 칫솔은 필요없을 겁니다. 정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가인이는 오래오래 살길 바랍니다. 정애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옷을 잡고 흔든다. 남자와 정애의 몸싸움. 슬프고도 정열적인 음악이 흐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다.2층 병실로 검은 옷을 입은 조폭이 등장한다. 쇠방망이를 들었다. 조폭:으메 씨벌, 병실 한 번 좋구마잉, 으메 씨벌, 돈 빌려준 놈은 지 엄니 병원비도 없어서 집구석에서 다 돌아가시게 생겼는디 돈 빌려간 놈은 지 자식을 번듯하니 이런 큰 병원에다 모셔두고 있어 잉?니들이 사람이여?개, 돼지만도 못한 것들 아녀 이것!씨발!(방망이를 한 번 내리친다) 정애:병원비가 없어서 사채를 썼어. 갚은 이자만으로도 원금을 까고도 남는데 이 새끼들이 이자가 한달만 밀려도 병실로 찾아오네. 아이의 아빠가 작업복을 입고 1층으로 등장한다. 같은 복장의 배우들이 방망이를 들었다. 광식:이 집은 재개발 지역 내에 있습니다. 나 난 이, 이렇게까지 하긴 싫어요. 어서 어서들 나가세요. 안, 안 그러면 가만 두지 않겠어. 어, 어서 나가!셋을 셀 거야. 하나!둘!씨발 나가요!셋!(방망이를 치켜든다.) 배우들이 같이 치켜든다. 남자:봉천동 산 27번지 재개발 지역.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 조폭:울 엄니도 몇 년째 똥오줌 받아내고 있다니까. 니 자식만 자식이고 울 엄니는 늙었응께 고만 돌아가시라 이거여 뭐여!잔말 말고 돈 내놔!안 그러면 자식이고 뭐고 없응께. 인철이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등장한다. 남자와 정애는 본격적으로 춤을 춘다. 광식:인철아!이 자식 여기 있었구나. 나 좀 살려주라!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난 못 하겠다. 내가 그 돈은 꼭 갚을게. 인철아. 나 좀 놔 주라. 내 이 손으로 우리 엄니같은 노인네 허리를 치고 머리를 잡고 집에다 불을 지르고 그랬다. 야!인철아!나 좀 ! 인철:아직 먹고 살 만한가 보구나, 니가. 알아서 해. 광식:야, 우리가 불알친구 아니냐. 이 자식아. 인철: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생각해. 자식을 생각하라고. 광식:인철아. 나 이제 이 짓 못하겠다. 나 좀 봐주라. 인철:야 이 자식아. 일할 사람은 많아. 너 당장 돈 갚을 수 있어? 광식:내가 벌어서 갚을게. 인철:오다가 떨어져서 말이야. 니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도 곤란해져. 이쪽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알지? 광식:그래도 난, 난 못해. 인철:이 자식아. 그럼 돈을 가져와. 광식:으으으으으! 인철:쉽게 생각해. 아이의 호흡기 소리가 거칠어진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2층 병실의 조폭과 1층의 광식과 다른 배우들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정애와 남자가 무대를 빙글빙글 돈다.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정애:있는데 안 주는 것 아닌데. 조폭:그려? 갚을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아줌니 아직 탱탱하구마잉. 남자:일곱 살 난 딸이 집 마당으로 뛰어들다가 돌에 깔려 죽었네. 정애:그럴게요, 그럴게요, 제가 가서 일해 드릴게요. 빚만큼 일해 드릴게요. 제발 가주세요. 조폭:오메,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는데 괜히 힘써 부렀네. 현란한 조명이 무대 전체를 채우고 이어서 공사장의 먼지 같은 희뿌연 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무대에 탬버린 소리가 울린다. 연기가 걷힌다. 화려한 옷을 입은 정애가 탬버린을 치고 있다. 정애는 노래를 부른다.2층의 유리창 밖으로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골함에서 하얀 재를 허공에 뿌린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에피소드 3 웨딩마치 흐르면서 무대가 밝아지면 2층의 무대에는 하얀 천이 내려와져 있다. 무대의 곳곳에는 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단들이 있고 단위에 사람들이 둘씩 앉아 있다. 그들은 모두 광식과 정애다. 첫번째 단 광식:오늘은 입질이 영 시원찮네. 정애:아이 재미없어. 광식:그러게 왜 따라왔어. 정애:집에 있어도 재미없어. 광식:그러셔?가인이는? 정애:아까부터 곯아 떨어졌어. 텐트 치고 잔다고 좋아하더니. 당신은 낚시가 그렇게 좋아? 광식:그러엄. 정애:우리보다도? 광식:그러엄. 정애:치, 그럼 왜 결혼했냐? 평생 혼자 낚시나 하고 살지. 광식:니가 결혼해 달라고 하도 쫓아 다녀서 할 수 없이 했다. 정애:뭐야?내가 언제? 광식:물고기 머리냐? 정애:하이구 그러셔?그래서, 그래서 후회해? 광식:글쎄에. 정애:이이가 정말.(광식을 꼬집는다.) 광식:아야!조용히해. 물고기들 다 도망간다. 정애:똑바로 말하란 말야.(또 꼬집는다.) 광식:아야. 왜 이래 마누라. 똑바로 말하면 잡아먹으려고? 정애:뭐야? 광식:하하하. 두번째 단 정애:방송국에서 우리 가인이를 찍어간대. 광식:그래?방송국에서 어떻게 알고? 정애:간호사들이 편지를 써 줬대. 광식:정말? 세번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정애: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광식:가끔씩 눈을 맞추고 울기도 합니다. 정애:가인아. 어서 일어나서 엄마랑 밖에 나가 놀아야지. 광식:(얼굴을 찌그러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운다.) 정애:그럴 땐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럼 가인이가 곧 일어날 것 같아요. 광식:(정애의 등을 두드린다.)두 시간에 한 번씩 체위를 바꿔주고 등을 이렇게 두드려 줘야 합니다. 정애:가래도 뽑아줘야 하고요. 낮에는 어머니가 와 계시고 밤에는 우리가 교대로 하죠. 낮에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정애와 광식의 역할을 바꾸어 정애가 광식의 등을 두드린다. 광식:가장 필요한 거는 역시…. 정애:(얼른)아이의 병원비를 석 달에 한 번씩 계산해야 해요. 셋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세번째 단 정애:밑 빠진 독에 물붓기지. 벌써 통장이 바닥났어. 광식:인수가 걱정이야. 정애:왜? 광식:장모님이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 정애:그래서? 광식: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줬는데, 아이가 이상했어. 정애:이상해? 광식:자장면을 먹다가도 눈을 깜빡하고 얘기도 잘 하지 않고 그저 눈만 깜빡거렸어. 정애:하도 오랜만에 보니까 낯설어서 그랬겠지. 광식:그게 아니야. 정애:그럼,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광식:장모님이 그러는데 신경증 증세가 있대. 정애:뭐? 광식:우리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래.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가인이가 그렇게 되고…. 아무리 장모님이 신경 써 줘도. 정애:그래서 엄마가 잘 못 돌봐서 그런단 거야? 광식:이 사람이!누가 그렇대? 정애:그럼 뭐야, 그럼 뭐냐고. 광식:으이구, 왜 억질 부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정애:몰라. 정말 미치겠다. 다른 배우들이 세번째 단을 쳐다본다. 네번째 단 광식:당신 저녁마다 어디를 나가는 거야. 정애:내가 말했잖아. 친구 식당일 도와준다고. 광식:당신 정말! 정애:어서 밥이나 먹어. 광식:…. 정애:유리창 닦는 아저씨가 죽었어. 광식:뭐? 정애:집이 재개발돼서 다 부숴지고 식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그랬대. 광식:그래서, 죽었어? 정애:줄을 끊었어. 광식:다, 당신이 봤어? 정애:아니, 들었어. 깡패들이 와서 집을 다 부쉈대. 참 기분이 묘해. 그 아저씬 우리 가인이가 바깥세상을 잘 볼 수 있게 유리창을 깨끗하게 잘 닦아줬는데. 광식:…. 정애:불쌍하다. 그치?그런 거 보면 우리만 힘든 것도 아냐. 가인이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광식: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어울리는 말이니? 정애:왜 이래?오늘?짜증이 컨셉트야? 광식:힘들겠다. 자기는. 정애:새삼스럽게 왜 이래. 광식:밤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정애:뭐? 광식:…. 정애:어, 어떻게 알았어? 광식:더럽다. 정애:누가? 광식:내가. 정애: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당신이 사채만 안 썼어도. 광식:당신이 다른 남자들 앞에서 웃고 있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쏠려. 정애:그럼 가서 일억만 벌어와. 광식:제길! 정애:당신이 신체 포기각서도 썼다며. 콩팥하나 떼어줬는데 이번에는 뭘 주려고?눈?간?심장?그럼 우리 가인이는?당신이 죽으면 가인이도 죽어. 광식:개새끼들한테 돈을 빌리는 게 아니었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애:허풍 떨지 마. 광식:뭐? 정애:어렵지 않아. 그냥 노래만 불러. 광식:거기가 그런 데냐?노래만 부르는 데냐고. 정애:정 못 믿겠으면 따라와서 보면 되잖아. 광식:꿈에도 생각 못했어. 당신이…. 정애:아까 어머니가 호박죽 끓여 오셨던데 먹을래? 광식:…. 정애:총각김치도 있어. 광식:개새끼. 정애:애 듣는 데서 왜 자꾸 욕을 하고 그래. 광식: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 병신이! 정애:(광식의 뺨을 친다.) 광식:인생이 억울하다. 정애:…. 광식:…. 정애:가인이가 다 들어. 세 단의 배우들이 일어나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하얀 천을 내린다. 침대위의 아이가 호흡기를 단 채 침대에 앉아있다. 빨래가 매달려 있는 줄 사이에는 등이 여러 개 걸려 있다. 등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정애의 얼굴 몽환적이 된다. 무대에는 등의 불빛만이 있다. 정애:이상하지. 유리창 아저씨가 우리 병실 앞에서 하얀 재를 뿌리는 꿈을 꿨어. 그게 우리 가인이가 죽어서 태운 재 같아서 가슴이 저려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당신 얼굴이랑 똑같이 생긴 거야. 광식:그 사람. 자기 아이가, 무너지는 집에 깔려서 죽었어. 정애:어떻게 알아? 광식:나도 꿈을 꿨어. 둘이서 장난삼아 주거니 받거니 소주 한 잔 하는데 그 사람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거야. 초등학교 동창인가 중학교 동창인가 물어보려는 참에 줄을 끊더라. 그러고 나니까 생각이 나는 거야. 죽은 그 아이를 많이 닮았더라. 내가 그 사람을 닮고 죽은 아이가 가인이를 닮고 ……. 정애:꿈을 꾸는 것 같다가 일어나보면 꿈이랑 별 차이가 없는 현실이 돌아와. 광식:내가 거기 있었어. 아이가 죽을 때 내가 거기 있었어. 죄책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배우들이 등 앞에 서있다. 하나의 등에 하나의 광식과 정애. 두 사람이 조금 더 몽환적인 상태가 된다. 정애: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아. 광식:꿈에서 보면 우리의 머리맡에 등이 하나씩 걸려 있어. 정애:예쁘다. 광식:등이 하나씩 꺼져. 정애:슬프다. 배우들이 등을 차례로 끈다. 광식:가인이 머리위의 등은 아직 켜져 있어. 정애:다행이다. 광식:(두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다)나는 꺼진 내 등을 부여잡고 울어. 당신 등을 부여잡고 울어.(울음을 터트린다.) 정애:부모란 게 그런 거야. 자식이란 게 그런 거야. 광식:저기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많이 희미해진 등들이 있네. 정애:그건 누구의 등일까? 광식:인수. 정애:저게 우리 인수 등이야?어머, 정말 빨갛고 작은 등이네. 광식:그 아이, 그 아이 아빠. 정애:어쩜, 저렇게 예쁜 등을 가진 아이였어. 광식:(손을 원을 그리며 돌린다.)나는 가인이의 등을 꺼. 정애:어?그럼 안돼. 광식:천천히, 조금씩 심지를 줄여.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배우가 가인이의 등을 끈다. 앉아있던 아이의 눈이 무섭게 커진다. 호흡을 거칠게 쉰다. 그러다 점점 잦아든다. 앉은 채로 숨을 멈춘다. 정애가 광식의 목을 조른다. 남아 있는 등들이 무대를 비춘다. 숨을 멈춘 가인의 눈이 등불처럼 떠져 있다. 암전. 에피소드 4 1층 무대의 한곳에 햇빛처럼 조명이 드리우고 광식이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광식의 그림자가 무대 전체에 비추어지면서 광식의 외로움이 극대화된다. 정애가 계단을 통해 내려와서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간다. 소복을 입고 있다. 광식의 그림자에 정애의 모습이 겹친다. 정애:(허공에 손을 대본다.)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뭐라고 그러지? 광식:메리 크리스마스. 정애: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냐? 광식:알면서 왜 물어봐? 정애:어서 일어나서 이리로 와. 집에 가야지. 광식:왜 이래? 당신이 이쪽으로 와야 해. 병원으로 가는 길은 이쪽이야. 정애가 광식의 쪽으로 걸어오다가 멈춘다. 정애가 당황해하며 멈춰 서서 양쪽을 바라본다. 정애:어디로 가지?가인이가 죽었는데. 광식:(놀라며)무슨 소리야?가인이가 죽어? 정애:균에 감염이 돼서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 누가 때리지 않았어도 온몸에 멍이 들고 입과 항문으로 피가 줄줄 나왔어. 당신이 없는 동안에 가인이가 죽었어. 지금 가면 볼 수 있어. 광식:(가슴을 쥐어짜며)아! 정애:죽는 건 너무 순간이라 처음엔 나도 믿을 수가 없었어.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옷을 입히고 당신을 기다렸어. 오늘쯤 당신이 병원으로 올까봐 이리로 왔어. 광식:우리한테 집이 있었나? 정애:가인이를 보내려고 집을 구했어. 며칠동안만이라도 있을 수 있었어. 오늘 나가야 해. 주인이 죽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당장 나가라고 그러는데 며칠만 봐달라고 빌었어. 광식:난 꿈을 꾸는 것 같아. 정애:다른 병실 아이도 죽었어. 아이 아빠가 호흡기를 껐어. 뉴스에도 나왔어. 그 아이 아버지는 잡혀 갔어.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아. 아니 잘 모르겠어. 지난 8년이 꿈인지, 아니면 지금이 꿈인지. 광식이 운다. 그림자가 흐느낀다. 정애의 몸에 겹쳐져서 두 사람의 흐느낌이 된다. 광식:장례비는? 정애:아이 옷하고, 염할 것 하고, 화장터 가서 화장할 것 하고 집세 내고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이 시간이 흘러감을 알게 해준다. 그림자가 점점 작아진다. 광식: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정애:차내에 계시는 승객 여러분, 여기를 잠시 봐 주십시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은 한달만 써도 칫솔모가 쉽게 닳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로는 치석까지 제거되지 않습니다. 광식:둘이요, 두부장수. 정애:여기 새로운 칫솔이 나왔습니다. 몇 달을 써도 칫솔모가 손상되지 않는 칫솔입니다. 이를 닦으면 부드러운 칫솔모가 이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가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줍니다. 광식:낙원으로 갔니? 정애:이를 닦는 동안 여러분을 낙원으로 데리고 가줄 칫솔이 두개에 오천원입니다. 광식:정말 하루저녁이 꿈같다. 아이들이 죽고 어른들은 자살하고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 같아. 정애:하얀 옷을 입어서 니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럽고 숨소리는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의 모든 소음을 덮어주었어. 엄마는 꿈을 꾼다. 니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아빠를 위로해주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선하게 해주는 꿈을……. 죽은 이들이 등불을 들고 등장한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 당선소감 “수술후 벅찬 소식… ‘이런게 인생이구나’ 느껴” 갑자기 배에 기형종이 생겨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직후 당선 소식을 들었다. 통증과 전신마취 후의 몽롱함 속에서 들은 가슴 벅찬 소식이었다.‘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대전여민회’라는 여성운동단체의 연극 소모임 ‘돼지꿈’에서 활동을 해 왔다.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여성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연극’이라는 것이 사람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최고의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막연히 연극에 대한 동경만 가지고 있던 나를 연극판으로 이끌어주고 몇 년을 한결같이 믿어준 대전여민회의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진연 언니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와 같이 몇 년을 울고 웃으며 연극을 했던 모든 돼지꿈 단원들과도 술 한 잔 하면서 기쁨을 나누고 싶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단 몇 평의 무대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김상열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 대전대의 모든 교수님들과, 같이 스터디했던 동료들, 그밖에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고 평을 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개인이나 가족의 병이 아닌 사회의 병으로 인식해 같이 치료할 날을 바라며 당선 소감을 마친다. 김미정 ●약력 1971년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대전대 문예창작대학원 수료 대전여민회 문회위원장(연극모임 ‘돼지꿈’ 연출 및 극작 활동) ■ 심사평 “꿈·현실 넘나들며 존재의 불가사의 부각 돋보여” 신춘문예에도 유행은 있는가 보다. 올해 응모작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사를 하면서 그 작품이 그 작품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개성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의식과 관념이 과잉되어 작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작품들, 고통의 아우성만 보여주고 고통의 근원을 성찰하지 않으려는 엄살과 감상(感傷)덩어리의 작품들, 무뇌아적 형식실험에 진부한 소재를 안이하게 결합한 작품들, 존재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보이려는 도살의 욕망은 보이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은 보이지 않는 작품들 등. 개성이나 독창성의 기준을 떠나 극작의 기본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하려고도 해보았으나 단편희곡이 지녀야 할 덕목을 지닌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소한 소재를 의미심장하게 구성해내는 능력, 압축적이면서 오랜 울림을 줄 수 있는 내공, 존재의 심연을 깊고 섬세하게 응시하는 통찰력을 지닌 신인을 만날 수 없었다. 정말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 독창성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신인을 기대했다. 그 이유는 대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등단과 함께 사라져가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이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끝을 내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미정의 작품과 박재원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다. 박재원의 희곡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라운드(surround), 다시 말해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형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삶의 조건에 대한 중심인물의 대응이 자폐적이라는 지적 또한 면할 수 없었다. 김미정의 ‘블랙홀’은 공간, 인물, 사건의 혼재와 병치, 꿈과 현실의 넘나듦을 통해 존재의 불가사의한 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연극 공간의 활용과 극적 이미지의 연결이 돋보였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와중에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철리 김태웅
  • [박은영의 DVD레서피] 외면할 수 없는 씁쓸한 ‘사랑주의보’

    [박은영의 DVD레서피] 외면할 수 없는 씁쓸한 ‘사랑주의보’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에는 부서질 듯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연인이 등장한다. 황금 외투를 두른 남자는 애인의 뺨에 얼굴을 묻었고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여자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았다.클림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히는 이 그림은 그러나 어쩐지 비극으로 느껴진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남자에게 호소라도 하는 것처럼 무릎을 꿇은 여자의 모습은 처연하고 한 발자국만 더 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연인들의 자세는 위태롭다. 사랑에 비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비극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한 기재로는 비극이 그만이다.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끈을 놓을 수 없는 남자나 배우자의 불륜을 알고 오히려 그 상대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는 남녀의 운명은 어떨까. 올해 남녀주연상을 휩쓴 ‘너는 내 운명’은 평범한 농촌 총각과 다방 여종업원의 얘기다. 농촌 총각 석중과 한 몸이 된 듯한 황정민의 열연과 코스모스처럼 팔랑거리는 전도연의 밝은 에너지는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보여 준다. 그런가 하면 ‘외출’의 배용준과 손예진은 영화의 일부로 움직이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절제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내,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다는데도 폭발하는 대신 지방 병원의 오래된 나무의자처럼 가만히 서서 목만 멘다. ●너는 내 운명 감독, 배우, 스태프 여섯 명이 참여한 음성해설에서 통속이 사랑과 통한다는 진심 어린 해석을 들을 수 있다. 노인의 사랑에 이어 또 한번의 진국 로맨스를 빚어낸 박진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세상의 편견에 저항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런 감독의 의도는 꽤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는데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공이다. 주연은 물론 조연과 단역까지 명연기를 펼친 배우들의 활약은 올해 개봉된 영화 중에서도 단연 빛난다. 전국 8개 도시와 마을을 순회해서 완성한 마을 전경은 자연광 중심으로 투명하고 정감 있게 표현되었으며 DTS 사운드에서 재생되는 전도연의 깜찍한 노래도 돋보인다.●외출 허진호 감독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감독과 촬영감독, 프로듀서가 함께 진행한 코멘터리에는 왜 NG인지 영문도 모른 채 수많은 테이크를 반복해 찍어야했던 스태프들의 불만이 은근히 배어 있다. 그러나 영상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허진호식 세심함의 미덕을 확인할 수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장면 장면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서정적인 스코어와 작은 소품들이 내는 바스락거림, 배우들의 차분한 대사가 어우러져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었다. 삭제장면,NG장면, 인터뷰, 메이킹 필름, 삼척을 다시 순례해가며 담아낸 상당량의 부가영상은 영화에 대한 궁금증들을 풀어 주기에 충분하다. DVD칼럼니스트·mlue@naver.com
  • 홍콩경찰, 한국시위대 600명 연행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서울 김상연기자|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저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국 농민·노동자 시위대가 홍콩 경찰에 맞서 충돌을 벌이다 강제 연행됐다. 17일 오후 4시(현지시간)부터 10여시간 동안 홍콩 도심에서 격렬한 반세계화 시위를 벌이던 한국 시위대 600여명은 18일 전원 연행됐다. 이날 오후 10시30분부터 한국시위대 중 여성 152명은 석방됐다. 이들은 대부분 전국 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으로 경찰을 폭행하거나 기물을 파손한 사례가 거의 없어 무혐의로 방면됐다. 해외에서 한국인들이 대규모로 현지 경찰에 체포된 것은 처음이다. 연행된 시위대 600여명은 홍콩섬 완짜이 부근에서 WTO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다 강경진압에 나선 경찰에 포위된 전농과 한총련 중심의 농민과 대학생들로 알려졌다. 홍콩 경찰은 단순 가담자는 즉결심판에 넘겨 처리하지만 나머지는 구속, 기소 등 사법처리하겠다는 강경 대응 방침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사법처리에 따른 한국과 홍콩당국과의 외교분쟁도 우려된다. 홍콩 경찰은 한국 시위대가 허가 구역을 벗어난 만큼 시위 전체를 불법이라면서, 경찰에 각목을 휘두르며 대항하거나 공공시설물을 파손시킨 시위자에 대해선 사법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 민중투쟁단 등 시위참가단체 관계자들은 18일 “홍콩 경찰이 연행자 조사 과정에서 옷을 모두 벗기고 이를 거부하는 연행자의 뺨을 때리는 등 인권침해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연행 과정에서 경찰이 호송차 내에서 반항하는 일부 시위자들을 집단 구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홍콩 경무처는 19일까지 연행자들에 대한 구속 여부를 결정할 것을 지시했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600여명의 한국인이 연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홍콩 당국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이규형 외교부 제2차관을 19일 홍콩에 급파할 예정이다.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모닥불/우득정 논설위원

    그 시절 마을 뒤편 산 끝자락을 잘라낸 외진 곳은 겨울철 아이들의 단골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시래기국에 꽁보리밥 한그릇을 후딱 비우곤 놀이터로 몰려들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모두가 물기 젖지 않은 솔가지, 솔방울, 솔잎을 두 손 가득 들고 왔다. 그러곤 솔 향기짙은 모닥불 주변에 모여 어제 했던 잡담을 이어갔다. 벙어리장갑조차 얻어 챙기지 못했던 아이들은 갈라터진 손등과 칼바람에 실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난 뺨을 불 위에 대고 연신 문질렀다. 반질반질해진 소맷자락에 흘러내리는 콧물을 쉴 새 없이 닦으면서. 누구도 점심시간이 됐다는 말이 없다. 슬그머니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면 점심을 먹고 왔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그래도 놀이터엔 이따금 행운이 찾아들기도 했다. 지난가을 산비탈을 일구어 고구마 농사를 지었던 아제가 또래 아들놈을 앞세우고 주먹보다 실한 고구마 여남은개를 들고 나타난다. 재만 수북한 잔불 위로 고구마를 올리곤 생소나무 가지를 꺾어 덮으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군고구마가 만들어진다. 입가가 온통 숯검정으로 변해도 그날은 행복했다. 수은주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던 날 버스 정류장 건너편 공사장의 모닥불이 기억 너머에서 끄집어 내준 어린시절의 한 토막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北의식 엉거주춤한 정부

    북한인권국제대회가 개막된 8일 정부의 자세는 ‘엉거주춤’했다. 북·미간 금융제재 문제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북한은 범죄정권’ 발언으로 북측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정부 때리기’ 공세도 이어져 양쪽 뺨을 다 내놓고 있는 신세다. 정부는 최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워크숍, 실무회의 등에서 북한인권대회를 6자회담 진전의 주요 난제로 꼽을 정도로 노심초사했다는 후문이다. 북한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제이 레프코위츠 미 북한 인권특사의 면담 요청도 정부로선 ‘뜨거운 감자’.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정동영 장관에 대한 레프코위츠 특사의 면담요청을 거절하는 대신, 고경빈 사회문화협력국장이 특사를 만났다. 겉으로 밝힌 이유는 국장급인 특사의 격(格)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외교부의 경우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아세안(ASEAN+3)회의 출장을 떠났고, 유명환 제1차관이 특사를 9일 오전 만난다. 조찬이 아닌 ‘티타임’으로, 장소도 정부청사가 아닌 외부에서 만나기로 해 공식적 모양새를 피하려는 기색이다.8일 레프코위츠 특사는 천영우 외교정책실장과 만나 “북한 인권 문제는 한국정부에도 매우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고 천 실장은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에 공감하지만 목표를 이루는 방법에서 유연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정책이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공개적인 요구보다 우선할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이 인권문제 제기를 체제전복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공개적인 대북 인권개선 요구는 남북관계에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8일 인권대회 만찬에는 외교부 최성주 군축심의관이 참석했으며 통일부 당국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9일 회의에는 김문환 외교부 인권사회과장이 ‘참관’한다.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박경서 인권담당대사 등은 참석하지 않는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임해리의 色色남녀] 내겐 너무 센 그녀

    요즘 방송에서는 ‘원 나잇 스탠드 one night stand‘를 낯선 남녀가 하룻밤 동안 몸을 섞고 “안녕!”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데, 다분히 낭만적으로 윤색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원 나잇 스탠드’는 누구의 인생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사고 내지는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동창 중에 ‘원 나잇 스탠드’하다 자존심에 줄이 쫘악 나간 남자가 있는데 자칭 ‘선수’라는 친구의 얘기인즉 이렇다.-내가 얼마 전 친구 부친상 때문에 강릉에 가게 됐거든. 사정이 생겨 나 혼자 18시발 강릉행 고속버스를 탔어. 그런데 쌈빡한 미인이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거야. 아니 안 그래도 애인은 안 키운지 오래됐지, 주말에 남 장례식에나 가는 내 신세가 참 갑갑했는데 말야. 그리고 예전부터 ‘복 없는 과부는 봉놋방에 누워도 고자 옆에가 눕는다.’고 버스든 기차든 타기만 하면 꼭 내 옆 자리는 남자였다니까. 어쨌든 약간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녀 옆에 앉았는데 차가 흔들릴 때마다 내 허벅지에 스커트 자락이 스치니까 자꾸 마음은 콩밭으로 달려가는 거였어. 그래서 대충 2시간 가까이 작업 멘트를 날리며 친화감을 조성했지. 그녀는 이목구비도 오목조목하고 목소리도 조용한 것이 딱 내 타입이었던 거야. 그녀도 내게 호감을 갖는 것 같았어.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내 가슴 속까지 비추는 듯했어. 그래서 작심을 했지.‘그래, 오늘 밤은 반드시 경포에서 당신과 보내리라!’ 마침 차가 휴게소에서 멈추기에 같이 내려 커피도 먹고 담배도 한 대 피우려는데 그녀가 자기도 한 대 달라고 하데. 담배도 맛있게 피우더라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콧노래를 부르며 오랜만에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 걸 느꼈지. 어쨌든 터미널에서 헤어지면서 만나기로 약속을 받아냈어.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달려갔지. 대충 조의를 표하고 친구들에게는 바빠서 서울로 바로 올라간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상주(喪主)인 친구가 그렇게 바쁜데 와주어서 고맙다고 내 손을 꼭 잡는 거 있지. 나는 정신없이 경포로 달려갔지. 그리고 그녀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인생과 사랑을 얘기하며 와인을 마셔댔지. 그런데 그녀가 주종을 스카치 위스키로 바꾸자고 하면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거 있지. 그렇게 정신없이 마시고는 아마 관광호텔인가로 갔었지. 그러고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쨌든 스위트룸인가 하는 곳으로 가서 대충 샤워도 했던 것 같고….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별이 반짝이는 거야. 그녀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세차게 내 뺨을 갈겼던 거지. 도대체 무슨 이유냐고 물었더니 냉소적인 눈빛으로 내리깔면서 나더러 “힘이 없으면 매너라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 거야. 그러고는 옷을 입고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니까. 사실 내가 긴장도 많이 하고 술도 짬뽕해서 그렇지 평소의 내 실력이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다음 날 아침에 카드명세서를 보고 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60만원 넘게 그었는데 결과는 낯선 여자에게 따귀 맞은 게 전부였으니. 아니 제대로 해보기라도 했으면 원통하지나 않지. 너희들 ‘원 나잇 스탠드’ 절대 꿈도 꾸지 마라! 모든 남녀의 사랑과 인연법은 모범 답안이 없다. 단 하룻밤의 만남으로 만리장성을 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섹스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가든 사랑을 확인하고 섹스를 하든 중요한 것은 당신의 선택과 책임이다.성칼럼니스트 sung6023@kornet.net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흔히 고음(高音)을 잘 내는 사람을 ‘신이 내린 목소리’에 비유한다. 테너에게 고음은 생명 그 자체다. 또 고음을 위해 생명을 걸기도 한다. 세계적 태너도 고음 앞에 무릎을 꿇는 경우도 많고, 고음에 도전하다 죽는 경우도 더러 있다. 테너 임웅균(51)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성악가로 정상에 오를 때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대학시절 찬송가의 높은 ‘라’음을 내다가 숨이 콱 막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심청전’ 연습 도중 ‘농부가’에서 또한번 아찔한 경험을 했다. 임 교수는 요즘에도 여전히 고음을 낸다. 공연장에서는 물론 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렇다. 특히 학생들에게 야단칠 때면 음악원 전체가 쩌렁쩌렁 울린다. 주위에서 “성악가는 목소리를 아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목소리를 강철처럼 단련시키고 싶어 그런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인다. 지난 주 음악원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소문대로 쩌렁쩌렁했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펄쩍펄쩍 신나서 뛰기도 했다. 임 교수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정신건강 지킴이’로 위촉돼 정신건강 전령사로 또다른 역할에 나섰다.“나의 건강은 가족의 건강이며 나아가 한민족의 건강이 아니냐.”면서 노래로 정신건강을 지키고 알리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라며 크게 웃는다. 이어 대뜸 “내가 (국회)출마하면 어떻겠소, 할 일이 꼭 있거든요.”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국 60개도시에 사랑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청소년과 미혼모를 위한 재활프로그램, 즉 세계 최고의 휴먼센터를 설립하는 거지요.”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퇴학당하기 일보 직전에 휴먼센터에서 보름 동안 재활프로그램을 거쳐 퇴학여부를 결정하자는 것. 이를 위해 매년 18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끝냈다고 했다. 자기 적성과 자아를 파악한 사람은 결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휴먼센터가 이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리나라는 교과목이 너무 많아요. 학생들 가방이 그렇게 무거운데도 어디 노벨상 하나 제대로 나오나요.6,7개 과목으로 팍 줄여야 해요. 그리고 책가방을 왜 들고 다닙니까. 책은 학교에 보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CD로 공부하면 돼요. 왜 그 흔한 CD 제작을 안하는 것인지 답답해요.” 임 교수는 정계나 재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장소를 불문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피가 끓는 다혈질의 사나이기에 정 안되면 국회진출이라도 해서 그런 일을 꼭 이루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공연장 밖에서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일.3년전부터 학교폭력대책 국민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사랑의 공책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들의 캐리커처와 메시지를 담은 공책 5만부를 소년 소녀 가장이나 결식아동들에게 보내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다. 또 2년 전에는 어린이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다는 얘기가 나오자 68개 어린이단체 공동대표의 자격으로 국무총리실에 찾아가 다짜고짜 담판을 지어 원점으로 되돌리게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오른손 문화에서 양손문화로 바뀌어집니다.30대 이상은 대부분 오른손을 쓰지만 지금의 청소년과 20대는 양손을 쓰거든요. 컴퓨터 자판도 그렇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다 양손으로 휙휙 날리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청소년은 어느 때보다 정말 중요합니다.” 임 교수는 또 유학시절 유상근 전 명지대 이사장의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회고한 뒤, 한 사람의 투자로 이렇게 성악가와 교수로 성장해 수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 않으냐고 자신했다. 따라서 재벌들은 우리 사회의 불우이웃과 청소년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벌들은 따지고 보면 농민과 서민들이 물건을 사 주니까 재벌이 된 거 아니냐면서 우리 농산물이 무너지면 암 발생 등 만병의 근원이 생기기 때문에 농촌 지원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한참만에야 음악얘기가 나왔다. 인간은 음악과 스포츠 두가지만 있으면 살 수 있다면서 “발가벗은 목욕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아세요? 작곡 시 노래 무용 등 네가지뿐입니다.”고 했다. 시나 무용도 음악이 있어야 하고 무용 역시 결국은 체육이 아니냐는 것. 예로부터 음악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기에 사람은 음악을 들어야 과격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밀양아리랑을 멋들어지게 부를 때 하얀손수건을 꺼내는 이유를 물었다.“다윗창법을 쓰지요. 다윗은 노래로 신과 대화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목소리가 어린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어린이들은 고음에서도 또박또박 소리를 내면서 목이 잘 쉬지 않지요. 그래서 아 이게 바로 벨칸토구나 하는 것을 알았지요.”라고 했다. 임 교수의 성악적 자질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숙대 성악과에 입학 등록을 한 어머니는 임신을 하는 바람에 수학을 포기했고, 이때 낳은 아이가 바로 임 교수. 아버지는 일본 규슈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고교 교사로 있었으나 여섯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곧 실패했다. 임 교수는 가난한 살림에 피아노를 배울 수도 없었고 음악성적도 별로였다. 초등학교 5학년 음악시간때 너무 크게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선생님한테 뺨을 맞았다. 음악점수는 ‘양’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그랬다. 중2때 음악선생님한테 “성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기가 막히게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후 ‘고성방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울 뚝섬 동네 밖에서 노래를 부르면 마을 사람들이 ‘웅균이가 온다.’고 했다. 학창시절 공부실력은 별로였다. 경기중학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고교 역시 1,2차에 거푸 떨어져 대구로 내려갔다가 우여곡절끝에 명지고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랐다. 고3때 육사를 지원, 군인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만류와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성악을 하게 됐다. 7개월 동안 집중적인 레슨끝에 연세대 성악과에 수석 합격했다. 대학때에는 문화촌 달동네에 살면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머니의 치료비를 충당했다. 물로 배를 채우고 무대에 오르기 일쑤였다. 결국 달동네 생활 3개월 만에 장티푸스에 걸린 것. 병원비가 없어 작은형의 대영백과사전을 가져다 팔아 겨우 해결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3년 동안 화곡고 음악선생으로 있다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고음의 벽을 뚫고 음악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돈이 없어 궁리 끝에 유관순 기념관에서 독창회를 열었다.370만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부인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세계적인 성악가를 배출한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2년간 공부했다. 기라성 같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음반을 구해다 틀어놓고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최대한 흉내를 내면서 발성을 연구했다. 또 마리아 칼라스의 뮤직코치로 유명했던 안토니오 토니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루치아노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심사위원인 파바로티로부터 “목소리가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85년 11월 귀국,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시작했다. 이듬해 3월 연세대 강사로 채용됐고,1년 뒤 ‘KBS콘서트홀’이라는 프로에 단골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임 교수를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열린 음악회’.93년 10월 첫 출연하면서 ‘두만강’‘타향살이’‘밀양아리랑’ 등 클래식과 대중가요, 민요를 오가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지식인이 침묵을 지키는 경우는 두가지, 즉 완전한 낙원이거나 아니면 아무 희망이 없는 사회일 때 그렇지요. 하지만 둘 다 아니라면 웅변이 곧 금입니다.” 요즘에는 실학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공부한다. 이유에 대해 역사는 말 잘하는 사람을 예의 주시해 왔으며 실사구시 차원에서 하고 있다고 껄껄 웃는다.“임진왜란때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 6만,7만명을 끌고 갔는데 돌아온 것은 6000여명밖에 안돼요. 나머지는 외국의 노예로 다 팔아 넘겼어요.” ■ 그가 걸어온 길 ▲1955년 서울 출생 ▲75년 명지고 졸업 ▲75년 연세대 성악과 수석 입학 ▲79년 연세대 성악과 학사졸업 ▲79∼81년 군입대 ▲81년 화곡고 음악교사 ▲83년 이탈리아 유학,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과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수학(석사) ▲85년 귀국 ▲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부교수, 성악과 과장 역임 ▲2002년 5월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공동대표 ▲2005년 10월 서울시 정신건강 지킴이 위촉 ▲그외 로마 밀라노 등 이탈리아 17개 도시, 뉴욕 워싱턴 애틀랜타 등 미국 19개 도시 순회연주. 오페라 ‘사랑의 묘악’ 등 국내 30여회 공연 ■ 주요 상훈 만토바 국제콩쿠르 2위, 비오티 국제콩쿠르 메리토상,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성악가상(95년),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2000년) ■ 음반 선경 한국가곡 4,5집(CD), 독집음반 사랑하는 마음(99년), 태너 임웅균의 클래식 가요(2001년) km@seoul.co.kr
  • [오늘의 눈] 마음이 ‘콩밭’에 있는데…/이천열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당초 예상한 대로 국민중심당과 자민련이 통합에 합의했다. 국민중심당을 주도하고 있는 심대평 충남도지사가 그럴듯한 수사로 신당 창당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지역 패권주의의 폐해를 고치고 극복하는 밑거름이 되는 신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충청권 등지에서 회자되는 ‘도로 자민련’이란 비아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만큼 창당의 의미와 명분이 상당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다. 신당이 앞으로 어떤 정치세력과 손을 잡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참여인사 상당수도 심 지사 본인이 탈당하기 전에 몸 담았던 자민련 의원과 당원들이다. 행정수도 선정과 행정도시 건설 반대활동이 있을 때마다 “지역분할과 갈등을 조장한다.”면서 비난을 하던 심 지사가 이제는 이에 앞장서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역주의 타파를 갈구해 온 국민들의 여망을 또 한번 짓밟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심 지사가 신당 창당에 나서면서 충남도 조직과 직원의 공직기강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도 산하기관에 있는 공무원 출신 임원이 창당작업에 참여하고, 일부 간부들이 지방선거에서 국민중심당 공천을 받겠다며 뛰쳐나갔다. 일부 현직 간부들도 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일이 손에 잡힐 리가 만무다. 공직기강도 문란해져 저잣거리에서나 있을 법한 공무원의 추태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8일 밤 충남도 모 계장이 만취해 식당 여종업원의 뺨을 때리는가 하면, 다른 계장은 성인오락실에서 “700만원을 잃었는데 절반을 주지않으면 불법 영업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경찰에 입건되기도 됐다. 바로 ‘레임 덕’ 현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심 지사가 만에 하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현직의 프리미엄을 최대한 누리려고 사퇴를 늦추고 있다면 제발 그만 접기를 당부한다. 조직관리가 이 지경인데 “임기를 채우는 게 도민에 대한 도리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더이상 설득력이 떨어진다. 도지사라는 자리가 도나 도민과 무관한, 개인적 정치활동에 치중하라고 혈세로 적잖은 월급과 판공비, 관용차를 주면서 뽑아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천열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sky@seoul.co.kr
  • 한국 취재진 구타당해

    |파리 함혜리특파원|파리 교외지역 소요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취재진이 현지 청년들에게 구타당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6일 오후(현지시간) 파리 외곽 북동쪽의 클리시-수-부아 거리에서 취재에 나섰던 동아일보 금동근 특파원이 북아프리카계 청년들에게 방화 현장을 묻다가 뺨을 한차례 맞았다. 금 특파원은 “이 바람에 안경이 떨어져 알이 깨졌으나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며 “청년들은 카메라 가방까지 빼앗으려 했으나 그들 중 한 명이 말리는 바람에 현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5일 오후엔 파리 북쪽 외곽의 오베르빌리에에서 전날의 방화 현장을 취재하고 귀사하던 KBS 취재진이 현지 청년들의 공격을 받아 취재 보조원 김모(31·여)씨가 얼굴과 머리를 구타당했다.다행히 주변에 있던 사복 경찰이 달려와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았다. 타박상을 입은 김씨는 입원 치료를 받고 6일 오전 퇴원했다.lotus@seoul.co.kr
  • 허무맹랑 로맨틱 코미디에 물렸나

    허무맹랑 로맨틱 코미디에 물렸나

    탤런트 최진실이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 처한 억척 주부 맹순이로 열연 중인 KBS 수·목드라마 ‘장밋빛 인생’이 대박 드라마의 기준인 시청률 40%를 넘어섰다. 지난 6일 14회 방송분에서 전국시청률이 40.7%(TNS미디어코리아 기준)를 기록한 것. 올해 시청률 40%를 넘어선 드라마는 MBC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애정의 조건’을 합작한 김종창 프로듀서와 문영남 작가가 ‘장밋빛 인생’을 만들고 있다.‘애정의 조건’에서 이혼했다 재결합한 채시라-이종원 부부 이야기를 뚝 떼어내면 이번 드라마의 골격이 된다. 그만큼 식상한 스토리이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속된 말로 ‘지지리 궁상’이다.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고 가족 뒷바라지만 했던 중년 주부가 남편은 바람 피고, 설상가상으로 위암까지 걸렸다. 남편은 뒤늦게 참회하며 돌아온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현실적인 캐릭터를 바탕으로 시청자가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신파 코드를 십분 활용했기 때문이다. 로맨틱코미디의 허무맹랑한 캐릭터에 물린 시청자들은 자신을 닮은 맹순이에 공감하게 되고, 이후 그가 처하는 상황을 두고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듯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고 있다. 특히 배우들의 열연이 뻔한 설정의 한계를 극복하게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최진실을 보자.‘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벗고,‘억척’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또, 만나면 뺨이라도 때려주고 싶을 만큼 바람난 남편 반성문 역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손현주가 없었다면 이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에도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드라마 주시청자층인 40∼50대 주부들의 경험과 기대가 드라마의 캐릭터와 겹쳐지며 예상 밖으로 몰입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스피드에 빠진걸 굉음에 빠졌남

    스피드에 빠진걸 굉음에 빠졌남

    바람과 같은 스피드와 뿜어져 나오는 굉음을 느낄 수 있는 ‘2005 BAT GT 시리즈’ 6전이 오는 11일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다.6전은 각 클래스의 상위 랭커들에게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왜냐하면 지난 5전을 거치면서 각 클래스별 1위와 2위의 점수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우승을 향한 각 선수들의 승부욕도 높아져 가고 있다. 또한 이번 6전에는 일본의 드리프트레이싱팀을 초청해 묘기에 가까운 드리프트 이벤트가 열려 스피드에 굶주린 국내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줄 예정이다. 케이엠알씨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kmrc.co.kr ●수족관엔 못난이 3형제가 꼬리를 쳐요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생김새는 물론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성격까지 꼭 닮은 못난이 삼형제 멍텅구리, 울프피시, 괴라도치가 나타났다. 꼼치와 함께 못생긴 물고기의 대명사로 알려진 ‘멍텅구리’는 무뚝뚝하고 미련하다 하여 뚝지, 보통은 도치라고 불리는데 강원도 앞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강원도 토박이 바닷물고기다. 캄캄한 어둠 속 심해에 보금자리를 잡는 ‘울프 피시’. 생김새가 험상궂고 성격 또한 포악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괴도라치’는 외국이름처럼 들리지만 멸치, 갈치, 꽁치처럼 ‘치’자 돌림의 한글이름. 이 녀석들은 머리, 뺨, 목 부분에 나뭇가지 모양을 한 돌기들이 뾰족뾰족 나있고, 입술은 상당히 두꺼워 음흉스러운 생김새가 특징이다.(02)6002-6200,www,coexaqua.co.kr ●경남 함양 가을 머금은 숲으로… 생명의숲국민운동은 오는 24일 경남 함양 함양읍 상림의 숲으로 여행을 떠난다.1100여 년 전 함양 태수였던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을 가로지르던 위천수의 범람을 막고자 둑을 쌓아서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들었다. 당시는 숲을 대관림이라고 불릴 정도로 장관이었던 함양의 상림에서 숲기행을 하고 각종 민속놀이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신청은 16일까지. 회원은 2만5000원, 비회원은 3만5000원이다.(02)3673-3236 ●오포바이 매니아 모여라 바이크 전문 포털 사이트로서인 ‘바이커즈’(www.bikers.co.kr)가 오픈했다. 보통 바이크를 중고거래를 하는 사이트가 아닌 순수 커뮤니티를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로 바이크 마니아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블로그, 지식인, 포토앨범 등 많은 카테고리를 두어 자신만의 바이크를 마음껏 뽐내거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만들어져있다.
  • [마광수의 섹스토리] (15) Foot Fetish

    [마광수의 섹스토리] (15) Foot Fetish

    벽을 보도록. 발 노예야, 내 발을 숭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때까지 구석에 가서 서 있어라!” ‘발 페티시(Foot Fetish)’ 클럽의 여주인 ‘지나’는 빨간 코트를 벗으면서 남자에게 명령한다. 지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남자는 여인이 걸친 무거운 비단 천, 숨겨진 긴 발톱, 하이힐의 은근한 힘을 연상한다. 다시 지나가 그에게 말한다. “너는 내 발을 숭배할 자격이 없다. 안 그런가? 나의 불쌍한 노예야.” 남자는 부르르 몸을 떨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이한 마조히즘의 쾌감에 잠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저의 여왕님. 저는 여왕님의 발을 숭배할 자격이 없습니다.” 남자는 벌써 널찍한 방 구석에서 몸을 움츠리며 즐거운 공포에 젖어있다. “야, 발의 노예야. 너는 이제부터 착하게 굴어야 한다. 내 친구들 앞에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도록 해라.” 남자는 그저 그렇게 생긴 보통 사람이다. 보통 키에 보통 체중, 고급 미용실에서 만진 듯한 산뜻한 헤어스타일, 투명색 매니큐어를 칠해 말끔하게 다듬어진 손톱, 나이는 마흔 서너살쯤…. 남자는 사타구니에 꽉 끼는 검은 가죽 팬티를 입은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다. 코트를 벗어젖힌 지나는 아름다운 살결의 여성이다. 검은 색 니트 캣슈트(손목에서 발목까지 가리는, 몸에 꽉 끼는 여성용 운동복)가 탄력있는 몸매를 매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나는 허벅지까지 오는 윤기 나는 비닐 부츠를 신고 있고, 귀에는 무거운 은제(銀製) 귀고리를 달고 있다. 코트를 의자 위에 던져놓은 지나는 핸드백에서 스웨이드 채찍을 하나 꺼낸다. 그리고 채찍으로 노예의 뭉툭한 고환 부근을 때리면서 계속 욕설을 퍼붓는다. “발 노예야, 이번 주일엔 어땠지? 내가 시킨 걸 다 했나?”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노예는 아주 공손한 음색으로 겸손히 묻는다. “내가 너에게 선물로 준 나의 하이힐에 너의 페니스를 비비면서 매일마다 마스터베이션을 했냐 이 말이야.” “예, 그렇게 했습니다. 여왕마마께서 시키신 일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너는 내 말을 잘 듣는 노예냐?” 이렇게 말하면서 지나는 남자의 어깨를 채찍으로 내려친다. 남자는 아픔으로 몸을 떤다. “자,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할 테냐?” 이렇게 말하면서 지나는 남자의 등을 세게 채찍질한다. 그러고서 다시 덧붙인다. “발 노예, 네가 얼마나 착하게 굴었는지에 대해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 “예, 여왕님, 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럴만한 가치조차 없지요.” 지나는 남자한테서 몇발자국 떨어져나와 발을 벌리고 선다. 그리고 양손을 허리에 얹는다. 실내는 조용하다. 차량들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을 닫아둔 상태이다. 공기를 가르는 채찍소리와 지나의 목소리 이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강력하면서도 교양이 있고, 그리고 명령하는 투의 지나의 목소리 이외에는……. 지나는 다시 웅크리고 있는 남자에게 명령한다. “돌아서서 나한테로 기어와라.” 말씨이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지나를 향해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와 그녀의 발 바로 앞에서 멈춘다. 바로 눈 앞에 부츠를 신은 지나의 오른쪽 발이 있지만, 남자는 수줍어 어쩔 줄을 모른다. 지나의 발 끝이 남자의 뺨에 닿는다. 남자의 페니스가 발기한다. “핥아라.” 지나는 발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남자에게 말한다. 남자는 지나의 반짝거리는 비닐 부츠에 혀를 댄다. 그리고 혀로 신발을 광택나게 닦기라도 하듯이 길고 넓게 부츠를 핥는다. ‘발 페티시스트(Foot Fetishist)’의 유형에는 세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발 숭배하기이다. 그들은 여자가 신발을 신은 채든 벗은 채든 발을 핥고 발에 키스하는 데서 오르가슴을 느낀다. 그 다음은 짓밟기. 굽 높은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남자의 몸뚱어리 위를 걸어다니거나 짓밟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세번째는 ‘거녀(巨女) 콤플렉스’ 실연하기. 거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남성은 숫자가 좀 적다. 그들은 상대방 여성이 거인(巨人)이고 자신을 난쟁이라고 생각하며 상대가 자기를 밟아죽이는 상황을 연기하고 싶어한다. 남자는 지나의 부츠를 오랜 시간동안 핥고 빨다가 드디어 자기의 몸뚱어리를 짓밟아 달라고 애원한다. 지나는 엎드린 남자의 등 위에 서서 사정없이 뾰족한 굽으로 짓밟는다. 그때 남자의 페니스에서 정액이 분수처럼 솟구쳐 나온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지나는 부츠를 벗고서 맨발을 드러낸다. 그런 다음 남자에게 명령한다. “이제 내 발의 냄새를 맡아라!” 그리고 이어서 덧붙인다. “발에 코를 대고서 진짜로 냄새를 맡는 거다.” 남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고, 지나는 의자에 앉아 있다. 남자는 지나의 발에 입술을 갖다댄다. 지나의 발냄새를 깊숙이, 그리고 허겁지겁 들이마시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이젠 발을 문질러라.” 지나가 말한다. 지나의 발은 갸름하고 발가락이 길다. 다소 짧은 새끼발가락을 빼고 나머지 발가락들은 엄지발가락만큼 길며 발톱들에는 빨간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지나의 발을 문지르는 동안 남자는 가끔씩 신음소리를 낸다. 얼굴에는 성적 흥분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지나는 남자에게 문지르는 것은 이젠 됐다고 말하면서, 엄지발가락 하나를 부드럽게 남자의 입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남자는 숨죽여 흐느낀다. 남자는 계속해서 열심히 여자의 발가락을 빤다. 남자는 헐떡거리면서 숨을 몰아 쉬며 신음한다. “난 잠깐 쉬고 싶다.” 지나는 남자의 입에서 발을 빼며 말한다. 남자의 얼굴에서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 드러난다. 그리고 뜨거운 갈망의 표정도 드러난다. 시간이 잠시 흐른 뒤, 지나는 남자의 음낭 주변을 그물스타킹으로 묶는다. 그리고 남자가 지나의 부츠를 공손하게 신기고 있는 동안 그의 귓전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남자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다. 지나는 빨간색 코트를 입는다. 남자가 지나에게 두툼한 돈을 지갑에서 꺼내어 준다. 정중한 자세로……. 남자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집에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남자의 아내는 남편이 발 페티시스트라는 것을 모른다. 오랫동안 정상체위의 섹스만 해왔기 때문이다. 남자는 식사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든다. 물론 아까 음낭에 매고 온 스타킹을 풀어 자신의 책상 서랍 속에 고이 보관한 뒤의 일이다. 남자는 아내와 인터코스를 하면서 아까 가졌던 지나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페니스가 차츰 발기되어 온다. 남자의 아내는 펠라티오조차 하기를 거부하는 ‘숙녀’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삽입성교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남자는 머릿속으로 지나의 긴 뾰족 부츠와 발 냄새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그러자 점점 더 또렷하게 그녀의 발 모양과 냄새가 머릿속에 떠올라온다. 그의 페니스가 드디어 아내의 질 속으로 들어간다. 남자는 아까 지나가 자신을 엎드려놓고 발로 밟아줬던 기억을 쥐어짜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기억은 잠시뿐, 그의 페니스는 서서히 오그라들고 만다. 그의 아내가 조금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남자는 삽입성교를 포기하고 침대 머리에 비스듬히 기댄다. 그러고는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문다. 아내가 남편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한다. “여보, 우리 큰 병원의 섹스클리닉에라도 가봐요. 당신의 성기능이 아무래도 이상해요.” 남자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려 준다. 그러면서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아까 봤던 지나의 긴 비닐 부츠와 송곳 같은 굽이 오르락거린다. “내일은 돈을 더 줘 봐야지…. 그러면 더 오랫동안 나를 밟아줄지도 몰라….” 그는 이렇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긴 한숨을 몰아쉰다. 아내는 남편의 심정을 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녀도 답답한지 담배를 한 대 피워문다. 마광수는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알 카에다 “런던테러 우리가”

    |런던 연합|알 카에다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지난 7월7일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가 알 카에다의 소행이었음을 처음으로 밝히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가하는 국가를 겨냥한 테러 공격이 계속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알 자와히리는 1일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 자지라가 방영한 비디오테이프에서 이같이 주장했으며, 이 테이프에는 런던 지하철 자살폭탄 테러범 4명중 한명으로 알려진 모하마드 시디케 칸도 나와 서방세계를 위협하는 발언을 했다. 알 자와히리는 런던 테러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뺨을 때린 것”이며 “뉴욕과 워싱턴,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것처럼 전투를 적의 문전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의 정책에 대한 보복으로 서방세계에 “더 많은 재앙을 안겨주겠다.”고 위협했다.이어 “그들이 우리들 나라에 피가 강물처럼 흐르도록 했으므로 우리는 그들의 나라에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칸은 강한 요크셔 악센트로 “우리가 믿는 것을 위해 모든 걸 버렸다.”고 말하고 서방 국민들이 테러 공격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알 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자와히리, 이라크내 알 카에다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에게 감화를 받았다고도 밝혔다. 이어 “우리가 안전을 느낄 때까지 당신들(서방 국민)이 우리의 목표가 될 것”이며 “우리 국민에 대한 폭탄 공격과 가스 공격, 투옥, 고문을 그만둘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03일 TV 하이라이트]

    ●시대의 초상(EBS 오전 11시30분) 평범해 보이는 일본인. 이 남자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철권으로 페루를 통치했으며 헌법을 뜯어고쳐 가며 장기집권을 했던 후지모리이다. 지금은 망명정객이 되어 일본에서 살고 있다. 부패, 납치, 살해 혐의로 인터폴 수배명단에 올라있는 그가 페루를 떠난 뒤 처음으로 대외 인터뷰에 응했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20분) 중후하고 정교한 멋으로 변신한 초콜릿 공예, 화려함과 투명함을 자랑하며 보석처럼 빛나는 설탕공예, 먹기조차 아까울 만큼 귀엽고 깜찍한 수제 쿠키까지 달콤한 음식들의 기상천외한 변신, 그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예술세계를 소개한다. 또 한려수도 뱃길을 따라 펼쳐진 남해안의 보석 거문도를 찾아간다.   ●사랑찬가(MBC 오후 7시55분) 조용히 새한과 이야기를 나누던 순진은 쉽게 말을 걸고, 선물도 하면서 마음을 강요했던 새한에 대한 오해가 서서히 풀림을 느낀다. 둘 사이에 신뢰하는 마음이 생긴 사실을 확인한 새한은 순진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청혼을 한다. 청혼까지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순진은 가슴이 먹먹하고….   ●실제상황 토요일(SBS 오후 6시) 채원이의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채원이의 모든 응석을 받아 줬다. 그러나 채원이가 예쁘고 귀여운 손자지만 바른 아이로 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 부모와 함께 노력하기로 한다. 채원이는 점차 천사같은 모습의 귀염둥이로 변신한다. 하지만 은근슬쩍 다른 방법으로 욕을 하는 채원이의 또다른 문제점이 발견된다.   ●박준형의 청년불패(KBS1 오후 1시45분) 화재 진압에서부터 교통사고 구조, 동물 구조는 물론 잠긴 문을 따는 일까지 119대원들은 이제 우리 생활 속 만능 해결사로 통한다.119구조대는 매년 높은 경쟁률을 어야할 만큼 인기직종으로 부상하고 있다.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해 사명감이 있어야만 하는 직업 119대원들의 일상을 따라가 본다.   ●위험한 사랑(KBS2 오전 9시) 세진은 강제와 함께 찬의 친아버지 집 앞으로 가 찬을 데려오며 그의 뺨을 때린다. 찬의 친부는 다음 날 세진의 집에 찾아와서 찬이 부모가 또 이혼하게 하는 꼴은 못 보게 하겠다며 소리를 지른다. 정현은 수완에게 만약 인공수정이 성공적이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자고 말하나 수완의 의지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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