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CBS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DMZ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132
  • 룰라 “‘전설’ 남기보다 ‘존재’하고 싶어” (인터뷰)

    룰라 “‘전설’ 남기보다 ‘존재’하고 싶어” (인터뷰)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설’이 아닌 ‘존재’하는 룰라를. (김지현)” 90년대 ‘전설’로 남아있던 그들, 룰라가 돌아왔다. 10년 전, ‘날개 잃은 천사’, ‘3! 4!’, ‘비밀은 없어’ 등 주옥 같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가요사(史)의 한 켠으로 사라진 이름… ‘룰라’가 되살아났다. 수학여행 때 룰라의 전매특허인 ‘엉덩이춤’ 한 번 안춰본 이가 어디 있으랴. “얼마전 대기실에서 소녀시대를 만났는데, 한 친구가 눈물을 글썽하며 다가오는 거예요. ‘저도 수건 쓰고 엉덩이춤 췄어요’라고 고백하더라고요. 기분이 묘했죠.(채리나)” 옹기종기 모여앉은 네 사람 ‘김지현, 채리나, 고영욱, 이상민’ 가운데에 자리하고 나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신이 났다. 룰라가 반가운 이유, 바로 ‘실존하는 추억’이기 때문이다. ◆ “1위 아닌, 10대에게 알리려 나왔다” ’룰라 =1위’라는 공식은 5년이란 활동기 동안 단 한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때 아름답다고. 아이돌 그룹의 홍수 속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없었을까. ”솔직히 그런 얘기 많이 들었죠. 룰라가 예전만 같을 것 같냐고. 그런데 저희는 1위를 하기 위해 다시 나온게 아니거든요. ‘룰라’가 낯선 친구들, 이를테면 10대들에게 저희의 존재를 알리는게 첫번째 목표였습니다.(채리나)” 걱정은 기우였다. 노련미가 돋보였던 컴백 무대는 “역시 룰라!”라는 호평을 이끌어냈고, 룰라를 처음 접한 중고생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이들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어느덧 ‘조카뻘’이 된 중고생 팬들의 함성 소리는 룰라 전원의 가슴을 고동치게 했다고. ”열다섯 쯤 되어 보이는 여중생이 다가와 ‘언니, 저 룰라 너무 좋아요. 앨범도 살거예요’라고 얘기하는데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거에요.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며 ‘고마워. 꼭 가져와. 사인해줄게’라고 말하고 있었죠. (김지현)” ”컴백 날, 멤버들과 축하파티를 갖고서 집에 와 인터넷을 켰어요. 나쁜 얘기라도 ‘룰라’에 대한 평가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싶었죠. 우연히 어느 블로그에서 한 소녀가 올린 글을 보던 중 왈컥 눈물을 쏟아 버렸죠. ‘나는 오늘 인기가요에서 룰라라는 그룹을 처음 봤다. 역시 레전드라는 단어가 붙을 만한 그룹이었다’고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채리나)” ◆ 룰라란? ‘기.억.의. 보.물.창.고’ 역대 가요계에는 이름 자체가 수식어가 된 몇몇의 그룹들이 있다. 데뷔 15년차 국내 혼성그룹의 대표 브랜드가 된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아, 그 표현이 좋았어요. 룰라는 ‘기억의 보물창고’라고요. 룰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 노래에 얽힌 추억으로 마법처럼 되돌아가는 힘이 있대요. 지금도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에서 저희 노래를 불렀다는 분들의 사연을 들으면 마음이 뿌듯해져요. (고영욱)” 룰라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동료 및 후배 연예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녀시대 부터 왕년 최고의 음악 프로그램 ‘가요 TOP 10’의 MC 손범수 아나운서에 이르기 까지, 이들의 컴백은 연예계 안에서 더욱 ‘핫 이슈’로 통했다. ”’3!4!’ 무대에 함께 서기 전, 대기실에서 소녀시대와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자신들의 앨범 CD라며 9명이 빼곡하게 정성스런 글을 남기더라고요. 그중 태연의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룰라 선배님, 뼈 속까지 빱니다’라고요. 너무 고마웠죠. (채리나)” ”라디오에서 저희 ‘고잉 고잉’을 듣고서 동료 분들이 전화가 폭주했어요. 안재욱 씨는 ‘룰라 아직 죽지 않았어!’, 붐 씨는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의 곡이다. CD 직접 사겠다’고요. 참, 손범수 씨 부부는 ‘가요 TOP 10시절, 룰라는 최고였다. 룰라가 다시 나와서 너무 기쁘다’고요. 큰 힘이 되죠. (김지현)” ◆ ‘고잉고잉’은 맛배기? 히든카드, 따로 있다 약 10년만에 선보이는 신곡이기에 룰라는 타이틀곡 선정에 그 어느 때 보다 어려움을 겪었다. ’변화’와 ‘본연의 색 유지’라는 기로에 선 룰라는 ‘고유의 색을 잃지 않은 변화’를 택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곡이 ‘고잉고잉’. ”고잉고잉은 기존 룰라의 색보다 좀 더 힘 있고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곡이에요. 룰라다움을 잃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강렬하고 빠른 비트로 10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곡을 먼저 선보이고 싶었어요. 또 저와 영욱이만 가능한 룰라표 랩을 보여드릴 수 있었고요. (이상민)” 예상은 적중했다. 그야말로 호평일색. 젊은 연령층의 음악 트렌드를 정통한 ‘고잉고잉’ 첫 방송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베테랑 다운 무대 연출에 컴백 전 맴버들을 괴롭혔던 부정적인 시선들도 모두 잠재워졌다. ”무대를 보고 혹평이 사라졌어요. 너무 기뻤죠. 하지만 히든카드는 따로 있어요. 일부러 후반부에 더욱 힘을 싣어주며 ‘빵’ 터뜨리려고 숨겨 둔거죠.(웃음) 바로 후속곡 ‘같이 놀자’에요. 정말 룰라스러운 음악과 퍼포먼스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줄 거예요. 기대해도 좋아요. (고영욱)” ’전설’보다 아름다운 그들의 도전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엄마와 읽는 동화] 귀신 거울/조영희

    [엄마와 읽는 동화] 귀신 거울/조영희

    대형 슈퍼마켓 통조림 코너의 한쪽 기둥에는 길쭉한 거울이 붙어 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춰 볼 수 있는 멋진 거울입니다. 멋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통조림을 고르다가도 거울 앞에 우뚝 멈춰 섭니다. 그러고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 보다가 흐뭇한 얼굴로 돌아섭니다. 엄마를 따라온 아기들은 거울을 때리며 장난치는 걸 좋아합니다. 늦은 오후, 소은이가 슈퍼마켓에 들어옵니다. 소은이는 묵직한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습니다. 피아노 학원에 수학 학원, 영어 학원, 미술 학원, 논술 학원, 그리고 다시 영어회화 학원에 갔다가 한자 학원까지 모두 들르려면 책만 해도 예닐곱 권은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소은이는 빵과 과자가 있는 선반에 즐겨 갑니다. 크림이 잔뜩 든 빵이나 부드러운 초코 과자를 고릅니다. 저녁밥 대신입니다. 여러 학원을 도느라 저녁밥을 따로 챙겨 먹을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색다른 걸 먹어 볼까?” 그래서 고른 것이 땅콩크림빵입니다. 냉장고에선 땅콩크림빵에 잘 어울리는 콜라를 꺼냈습니다. “으악!” 통조림 선반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습니다. 소은이도 빵과 콜라를 양 손에 들고 뛰어갔습니다. 길쭉한 거울 앞에 운동복 차림의 아저씨가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왜 그러세요?” 귤색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뛰어왔습니다. “심장마비인가?”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수군거렸습니다. 소은이는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저기, 거울에, 귀, 귀, 귀신이…….” 아저씨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거울이 어쨌다고요? 귀신, 뭐라고요?” 직원이 아저씨의 입에 귀를 바싹 갖다 댔습니다. “거울 속에 귀신이 나타났어요.” 아저씨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직원이 피식 웃었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이구먼.”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떴습니다. “저걸 보란 말이오!” 참다못한 아저씨가 직원의 얼굴을 양 손으로 잡아 거울 쪽으로 돌려 주었습니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모두 거울을 봤습니다. 거울 속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운동복 아저씨의 모습도, 직원의 모습도, 주변에 모인 그 어떤 사람의 모습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슈퍼마켓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 가게 밖으로 뛰어나가는 사람, 경찰서에 전화를 거는 사람, 귀신이 나타났어도 필요한 건 사야 한다며 계산대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소은이가 서 있는 쪽에서는 거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귀신이라고?’ 소은이는 슬금슬금 거울 쪽으로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거울 앞에 선 순간, 소은이의 눈에 낯선 아이가 보였습니다. 보라색 옷에 보라색 화장을 한 아이였습니다. 소은이는 보라색 아이의 눈을 보았고, 보라색 아이는 소은이의 눈을 보았습니다. “얘야, 위험해.”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소은이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소은이는 이때 빵과 콜라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룻밤이 지났습니다. 슈퍼마켓 정문에는 못 보던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안전하고 깨끗한 우리 슈퍼마켓을 앞으로도 많이 이용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가게 안은 무척 한가합니다. 손님보다 직원이 많아 보일 정도입니다. 소은이는 오늘도 빵을 사기 위해 가게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빵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소은이는 보라색 아이를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였지만 눈빛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거울이 보입니다. 지금 소은이에겐 거울의 옆면만 보일 뿐입니다. 소은이는 가방을 고쳐 멥니다. 그러고 거울로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좋습니다. 아직은 거울 앞면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은이는 딱 한 걸음을 남겨두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제는 얼른 피해서 괜찮았지만 나쁜 귀신이면 어떡하지?’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귤색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계산대 주위에 몰려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땐 계산대로 뛰어가면 될 거야.’ 소은이는 가방 끈을 꽉 쥐고 숨을 크게 들이켭니다. 눈을 꼭 감고 발을 크게 내딛습니다. 왼쪽으로 몸을 돌리고 슬며시 눈을 뜹니다. 거울 속에 있는 것은 보라색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소은이가 보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거울 속엔 노란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소은이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접었습니다. 거울 속의 할머니도 똑같이 했습니다. 소은이는 거울에 좀 더 가까이 갔습니다. 할머니도 소은이에게 다가왔습니다. “할머닌 누구예요?” 할머니는 소은이의 입 모양을 따라할 뿐, 소리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소은이는 손을 뻗어 거울을 만졌습니다. 그저 차가운 거울일 뿐이었습니다. 소은이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이 어딘가 소은이를 닮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소은이와 닮은 얼굴이라 무섭지 않았나 봅니다. 거울을 톡톡 두드려 보았습니다. 거울 속의 할머니도 거울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의 모습이 흐려지더니 다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젊은 남자가 보였습니다. 이 남자도 소은이를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소은이의 얼굴이 발그레해졌습니다. 미래의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엔 어떤 것을 보여줄 건가?’ 다시 한 번 거울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이번엔 어제 소은이를 가게 밖으로 끌고나갔던 아주머니가 보였습니다. 거울은 소은이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소은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다시 톡톡. 아주머니의 모습이 사라지고, 거울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톡톡. 변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톡톡. 그대로였습니다. 톡톡. “그만 좀 해!”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피곤하다고. 피곤해.” 거울 속에 보라색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아!” 소은이는 짧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아직 달아날 정도로 나쁜 일이 일어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곳은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야.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보라색 아이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서 있는 폼도 매우 삐딱했습니다. “너 같은 장난꾸러기 때문에 더 피곤하고 말이야. 어제는 요만한 아기가 두들겨대더니 오늘은 너니?” 소은이는 발을 움찔했습니다. 보라색 아이가 가까이 올 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하긴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이런 곳에 걸린 나의 운명을 탓해야지.” 보라색 아이는 팔짱을 낀 채 통조림 선반에 기댔습니다. 그러고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궁금한 게 있어.” 소은이가 오랜 침묵을 깼습니다. 겨우 용기를 냈지만 목소리는 모기 소리보다 작았습니다. 뭔가 잘못 말하면 마구 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뭔데?” “넌 누구야?” 보라색 아이가 피식 웃었습니다. “보고도 몰라? 거울이야.” “그런데 왜 이상한 걸 보여줘? 거울이면 나를 보여줘야지.” “피곤해서 그래. 용량 초과라고. 누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겠어.” 보라색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아까 보여준 건 뭐야? 내 앞날이야?” “아까 뭐?” 보라색 아이는 눈을 한 번 치켜뜨고는 크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하하하! 너의 앞날이냐고?” 소은이는 기도하는 사람처럼 두 손을 모았습니다. “처음 보았던 할머니는 윗동네에 사는 할머니야. 보통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데, 요즘은 통 보이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어. 그때 마침 네가 나타나서 잘못 보여준 거지. 실수한 거야.” “그래…….” 소은이는 왠지 시무룩해졌습니다. “두 번째의 젊은 남자는 이곳 직원이야. 저길 봐.” 보라색 아이가 가리키는 곳엔 정말 그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손님이 없어서 매우 따분해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본 사람은…….” “나도 알아.” “그래, 그뿐만이 아니야. 하루에도 수 천 명이 내 앞을 지나가. 나는 그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했다가 다시 보여주는 거야.” 보라색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잿빛이 섞인 보라는 더욱 슬퍼 보였습니다. “이젠 지쳤어. 새로운 얼굴을 기억하기는커녕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조차 헷갈릴 지경이야.” 보라색 아이는 거울 속에 있는 통조림 선반 위에 사뿐히 올라앉았습니다. 소은이는 보라색 아이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은이도 날마다 새로운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느라 바빴기 때문입니다. “도와주고 싶어.” “네가 어떻게?” 보라색 아이가 코웃음을 쳤습니다. 솔직히 소은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전부 다 잊어버리면 되잖아. 컴퓨터를 포맷하듯이.” 겨우 생각해낸 방법이었습니다. “네 눈엔 내가 컴퓨터로 보이니?” 보라색 아이는 소은이의 말이 우습기만 했습니다. “기억을 털어낼 만한 방법이 없을까?” 소은이는 보라색 아이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털어낸다……, 털어낸다…….” 골똘히 생각하던 소은이가 갑자기 청소도구를 파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소은이는 그곳에서 가장 큰 총채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걸로 뭘 어쩌려고?” “잘될지 모르겠어.” 소은이는 양손으로 총채를 잡고 먼지를 털듯 거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거울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마치 먼지가 되어 거울 밖으로 떨어져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담임선생님도 보이고, 가장 좋아하는 친구도 보이고, 이 근처에 산다는 유명한 연예인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엄마도 보이고, 마침내 소은이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소은이의 모습은 총채로 아무리 두드려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보세요?” 거울을 톡톡 두드려 봅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보라색 아이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사라도 해둘걸.” 소은이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기억을 모두 털어내고 즐거워할 보라색 아이를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집니다. 학원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왠지 학원을 모두 빼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 학원을 아홉 군데나 다니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의 작은 머릿속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이에겐 비어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어있는 시간은 창조를 위한 시간입니다. 아이가 빈 시간을 충분히 갖길 바라며 이 글을 썼습니다. ●작가약력 대학교에서 건축공학, 시각디자인 전공. 2004년 중랑구 사이버 신춘문예 ‘풍선 잃은 아이’로 당선.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책을 돌려주세요’로 당선. 대전일보 신춘문예 ‘강에 사는 고래’ 로 당선. 단편모음집 ‘수선된 아이’, ‘지난밤 학교에서 생긴 일’ 등.
  • 밀 원가↓… 값 내려라-작년 환차손 고려해야

    밀 원가↓… 값 내려라-작년 환차손 고려해야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식품업계가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곧 밀가루 가격을 내리기로 했고, 당초 두 자릿수로 추진됐던 설탕 가격 인상도 한 자릿수에 그칠 전망이다. 최근 농림수산식품부는 농협의 사료 가격 6.4% 인하를 이끌어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음료업계의 가격 담합에 대해 수백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설탕은 한 자릿수 올릴 듯 9일 기획재정부와 식품업계 등에 따르면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대한제분 등 업체들은 이르면 이번주 중 밀가루 가격은 내리고 설탕값은 올리는 가격 조정을 할 예정이다. 정부는 줄곧 업계에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구해 왔다. 국제 밀 가격이 지난해 말 부셸(밀의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영국은 1부셸은 62파운드, 미국은 60파운드)당 611센트에서 지난 7일 489.5센트로 떨어져 18% 이상의 가격 하락 요인이 발생한 데다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수입가격 부담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체들은 “지난해 9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환율 급등으로 발생한 대규모 환차손을 감안하면 인하 여력이 전혀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2000억원가량 환차손이 났다.”면서 “이제 겨우 채산성을 맞추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을 내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정부 관계자는 “업계는 지난해의 환차손을 올해 1·4분기 말을 기점으로 모두 상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업계는 한 자릿수 후반대에서 밀가루 가격을 내리기로 하고 현재 최종 인하폭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당 가격 28년만에 최고” 밀가루와 반대로 업계는 설탕 가격은 두 자릿수 인상을 추진해 왔다. 설탕 원료인 원당 가격이 브라질, 인도 등 주산지의 흉작으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원당 가격은 지난 7일 1파운드당 20.81센트로 1981년 이후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원당 가격이 연초 대비 80%가량 뛰었고 원당이 제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80%) 등을 감안하면 최소 25%의 가격 인상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한 자릿수 이내로 인상 폭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했으며 최근 업계가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농협이 지난 7일 사료값을 평균 6.4% 올리는 등 올 들어 4차례에 걸쳐 20%가량 낮춘 것도 정부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제 곡물 시세가 떨어지는데 사료값은 왜 안 떨어지느냐는 농민들의 불만이 컸던 데다 사료비를 낮춰야 축산물 소비자 가격이 하락한다는 점에서 여러차례 농협에 가격 인하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상승에 영향 얼마나 공정위가 롯데칠성 등 5개 식음료 업체들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여 수백억원대 과징금 부과 발표를 앞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물가가 떨어지고 있지만 생활물가는 다시 올라가는 분위기”라면서 “위법한 행위로 서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데 대해 강한 제재를 가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식품업계는 불만이 많다. 이를 테면 설탕의 경우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5년 29위에서 2005년 372위로 떨어졌는데도 정부가 이런 현실을 무시한다고 주장한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정부는 설탕·밀가루 값을 올리면 다른 식품 가격이 급등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제로 밀가루, 설탕, 식용유 등 3대 품목이 빵·과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41%밖에 안 된다.”면서 “3가지 제품을 모두 20%씩 올린다고 해도 최종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상승 효과는 0.13%포인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태균 이두걸기자 windsea@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퇴근하라고 컴퓨터 끄는 사장님 北 “김정운 지략으로 클린턴 방북” 먹는 조루 치료제 프릴리지 약효는 잭슨자녀 대부 마크 레스터 “패리스는 내 친딸” 탈모 예방하려면 머리 감은뒤 수건 두드려 말려 천년요새서 환경운동 보루로 인천 계양산
  • 63스카이아트 브런치 문화강좌

    ‘63스카이아트’미술관은 9월30일까지 매주 수요일 11시 ‘해설과 함께하는 영화 속 클래식(Classic in cinema)’을 주제로 브런치 문화강좌를 진행한다. 이번 강좌는 관람객들이 클래식이 주제가 되는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문화와 친해질 수 있도록 구성했다. ‘피아니스트’,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이 친근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이 함께하는 클래식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강사는 홍승경 국제오페라단장이다. 강의 중에는 간단한 브런치 메뉴(빵과 커피 또는 주스)가 제공된다. 미술관 입장료(1만 2000원)에 3000원을 추가하면 미술관람과 브런치, 문화강좌를 모두 즐길 수 있다. (02)789-5626.
  • 버튼 하나로 정리 말끔 ‘원터치’ 침대

    버튼 하나로 정리 말끔 ‘원터치’ 침대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고 있는 한 발명품 전시회에 단추 하나만 누르면 청소까지 해결되는 ‘원터치’ 침대가 발표돼 화제다. 단순히 ‘베드’로 이름 붙여진 이 침대는 전기를 에너지로 사용하는 ‘가전제품’이다. 콘센트를 꽂은 후 단추만 누르면 이불정리에서부터 음식물 청소까지 모든 걸 척척 알아서 한다. 이불과 매트리스 밑으로 보이지 않게 설치돼 있는 플라스틱 공기튜브가 ‘원터치 침대’의 핵심 장치다. 튜브에 공기가 들어가면서 이불이 펴지게 된다. 일단 이불을 펴게 되면 침대 양쪽 측면에 설치된 장치가 바람을 불어 음식물 찌꺼기 등을 말끔히 털어낸다. 칠레 등 남미에선 아침 식사를 침대에 조그만 탁자를 펴고 커피, 쥬스를 곁들인 빵과 과자를 먹는 경우가 많아 이같은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이불을 펴고 청소가 완료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분 30초. 비교적 빠른 시간에 비해 침대는 ‘절전형’이다. 물 0.5리터를 끓이는 데 필요한 전기를 사용할 뿐이다. 가격은 89만 페소(원화 약 200만원). 2인용 침대는 이번 주부터 칠레에서 시판된다. 침대 제작사는 “141개 국가에 특허를 냈다.”며 “수출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데세빌랴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色다른 소주·막걸리 칵테일 한잔 어때?

    色다른 소주·막걸리 칵테일 한잔 어때?

    술은 섞어야 제맛이다. 차는 홀로 마시고 술은 나누어 먹는 법이라서, 섞지 않으면 뭔가 빠진 것 같다. 양주와 빈번하게 만남을 이루던 맥주는 외환위기(IMF) 이후 혼자 남나 했더니 대표적 서민주인 소주라는 더없이 훌륭한 짝을 만났다. 맥주는 너무 싱겁고 소주는 다소 독하다고 느낀 이들에게 ‘소·맥’은 간이 딱 맞는 술로 사랑 받고 있다. 술을 섞는다는 것이 정신줄을 빨리 놓게 하는 위험스러운 행동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때가 언제였는지. 제대로 잘 섞은 술은 다양한 사람들이 처음 만난 낯선 자리의 ‘감정 도수’를 올려 어색함을 날려버리는 ‘묘약’으로 대접 받는다. 평소 온갖 주류와 음료를 섞어가며 최상의 궁합을 찾기에 여념이 없는 이름 난 바텐더들이 모인 자리를 찾았다. 소주, 맥주, 막걸리를 색다르게 변신시킨 이들의 비법을 살짝 소개한다. 무더운 한여름밤, 피서지는 꿈도 못 꾸고 ‘방콕’하는 신세의 처량함과 짜증을 시원하게 날릴 만하다. ■내 맘대로 섞어 마시는 하우스 칵테일 제조법 ①▶데킬라 선라이즈가 부럽지 않다 소주의 알싸한 뒷맛을 낚아채는 홍초의 새콤달콤함. 건강 음료로 자리 잡은 마시는 홍초와 소주를 섞으니 맛도, 모양도 ‘데킬라 선라이즈’가 부럽지 않다. 소주를 1/2잔 채우고 홍초 1/5잔을 천천히 따라 주는데, 홍초가 잔 하단에 깔리면서 붉은 띠가 둘러쳐지는 모양이 신비로움까지 자아낸다. 맑은 빛깔의 소주를 마시다 피 같은 홍초와 입맞춤을 하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은 ‘블러디 키스(Bloody Kiss)’. ②▶예쁜 자태에 먼저 취한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에 붉게 깔린 홍초가 환상적인 맛과 자태를 자아낸다. 소주 1/2잔과 맥주 1/2잔을 넣은 뒤 홍초 1/4잔(소주잔)을 천천히 넣어준다.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홍초가 아래로 깔리며 붉은 노을이 지는 듯한 형상을 연출한다. 절대 잔을 흔들어 혼합하지 말 것. 특유의 맛과 모양이 사라진다. 달콤한 끝맛으로 소주와 맥주의 씁쓸한 맛을 없애줘 여성들이 선호할 만하다. 이 술은 식초와 술이 어우러진 연못이라는 뜻의 ‘초주연’. 달콤함에 취해 여러 잔 먹다가 ‘초주검’이 될 수도 있다. ③▶내가 뭔지 아무도 모를걸! 경기불황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는 막걸리. 이토록 고급스럽게 변신할 수도 있다! 막걸리 90㎖, 사과 요구르트 90㎖, 설탕 2 큰술과 적당량의 얼음을 믹서에 넣고 갈아준다. 하얀 눈처럼 변한 막걸리를 소복하게 잔에 담아내니 여성들이 즐겨 먹는 ‘피나콜라다’ 저리 가라다. 이름하여 ‘11월의 입맞춤’. 외양만 보면 누가 이걸 막걸리로 만들었다고 생각할까. 시중에 파는 과일 스무디를 먹는 맛! ④▶젤리 칵테일 먹어봤니?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이란 속담이 무릎을 꿇는다. 커피 젤리는 많이 먹어봤지만 술로 만든 젤리라니! 선홍색 산사춘 젤리에 촘촘히 박힌 녹색의 민트 잎이 어우러진 일명 ‘산사홀릭’에 눈이 먼저 홀린다. 산사춘 1병에 가루 젤라틴 5~7g을 넣어 굳힌 후 숟가락을 떠내 잔에 담는다. 칵테일 제조시 많이 사용하는 과일 시럽인 그레나딘 시럽을 소량 넣어 섞은 뒤 민트 잎으로 장식하면 더욱 그럴싸해 보인다. 그레나딘 시럽은 설탕 시럽으로 대체할 수 있다. 글 사진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촬영협조:배상면주가, 대상 청정원 ■특색있는 안주로 분위기 업! 즐거운 술자리를 만드는 데 맛있는 안주거리도 한몫 한다. 흔하디 흔한 오징어에 땅콩, 과일 안주에서 탈피해 보자. 구하기 어렵고 손질이 까다로운 재료는 필요없다. 우리가 늘 먹어오던 재료로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상중앙식품연구소 조리연구센터의 정윤호 과장이 고정관념을 깨는 솜씨를 부려봤다. ▶달걀 카나페 달걀 5개를 삶아 절반으로 자른 뒤 노른자는 따로 빼낸다. 샐러리 1줄기, 슬라이스햄 3장, 오이 반개, 양파 반개, 당근 반개를 곱게 다져 놓는다. 마요네즈 3큰술에 양겨자, 소금, 후추 적당량을 섞은 뒤 다져 놓은 야채와 슬라이스 햄을 섞는다. 반으로 잘린 달걀 위에 소복하게 쌓은 뒤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 낸다. ▶토마토 두부 카프레세 대형 할인마트가 아니면 구하기 쉽지 않은 모차렐라 치즈 대신 두부로 대체했더니 모양도 그럴싸하고 맛은 한층 더 개운하고 고소하다. 토마토 1개를 모양대로 동그랗게 얇게 썰어 놓는다. 생식용 두부는 토마토 크기에 맞춰 동그란 모양으로 썬다. 접시에 토마토 썬 것과 두부를 차례대로 올리고 발사믹 식초를 뿌려준다. 기호에 따라 바질이나 파슬리 또는 실파 다진 것을 고명으로 올리면 맛도, 보기도 좋다. 빵과 함께 곁들여 ‘브루스케타’라는 일품요리로 연출할 수 있다. ▶소시지 오징어 말이 프랑크 소시지와 오징어가 썩 잘 어울린다. 양파 반개를 곱게 다져서 볶은 다음 곱게 간 돼지고기 100g과 빵가루 1큰술, 달걀 반개를 넣어 섞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오징어 3마리를 몸통을 넓게 펴서 내장을 제거한 후 껍질 안쪽에 칼로 금을 넣어 끓는 물에 데쳐 내놓는다. 데친 오징어를 펴서 안쪽에 밀가루를 살짝 묻힌 후 양념한 돼지고기를 넣어 넓게 편 후 소시지를 넣고 김밥 말듯이 말아준다. 프라이팬에 토마토 소스 또는 케첩 7큰술과 쇠고기 육수 10큰술을 넣어 만 오징어를 넣고 조린다. 먹기 좋게 썰어 접시에 깻잎을 깔고 보기 좋게 담아낸다. 오징어를 데쳐서 사용하지 않으면 오징어가 익으면서 수축돼 내용물이 삐져나올 수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공주형 미술세계] ‘또 하나의 일상’ 展

    [공주형 미술세계] ‘또 하나의 일상’ 展

    현실에도 레시피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리멸렬한 현실은 간수를 부어 두부처럼 단단하게 만든다든지, 무기력한 현실은 베이킹파우더를 넣어 빵처럼 노릇노릇 구워 낸다든지 하는. 현실을 요리한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선 재료를 준비해 보자. 낡은 코트, 네모난 벽돌, 보라색 포도, 녹슨 기찻길, 반짝거리는 술병, 가면을 쓴 여인, 헤드폰을 듣는 남자, 빨간 하이힐, 먹음직스러운 사과, 먹물 젖은 붓. 어떤 재료든 현실에서 가져온 것이면 된다. 재료가 준비되었다면 본격적으로 요리 시작이다. 재료를 지지든 볶든, 끓이든 튀기든 상관없다. 단, 손상과 변형은 금지다. 주재료인 현실의 색과 모양은 물론 향과 질감이 요리 시작 전과 후가 같아야 한다. 오늘의 레시피에는 중점 사항이 있다. 현실을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냉담한 조리 과정과 무미건조한 완성 요리를 지향하는 레시피의 이름이 궁금하다. 포토리얼리즘, 슈퍼리얼리즘, 래디컬리얼리즘, 하이퍼리얼리즘. 다양하고 난해한 여러 개의 이름으로 1960년 미국에서 불리기 시작한 레시피의 한국식 표현은 ‘극사실주의’이다. 대표적인 현실 요리법인 극사실주의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1970년이었다. 있는 그대로 수용된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변용이 있었다. 기계적으로 현실을 접시에 담아 내던 과정에서 금지되었던 인기척이 보태진 것이다. 정지된 현실에 씁쓸한 시선이 더해졌고, 밋밋한 현실에 기침 소리가 실렸다. 한국적 상황에서 퓨전 요리가 된 레시피 극사실주의가 다시금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이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솜씨 있는 젊은이들이 현실 요리의 대가가 되겠다며 속속 출사표를 던졌다. 상상력을 입힌 요리에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가 접목되기도 했다. 이들이 요리한 현실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신선함의 상태가 장바구니 속 시들시들한 내 현실과 달랐고. 생생함의 정도가 구두 끝 풀 죽은 내 현실과 차이가 있었다. 요리의 달인들이 선보인 현실 요리가 반가우면서 헛헛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요리의 달인 48명이 선보이는 현실 요리 70 점이 ‘또 하나의 일상-극사실주의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고 한다. ‘이번 주말에는 남들이 차려 놓은 현실 요리나 실컷 맛봐야겠다.’ 현실을 요리하기는커녕 현실에 요리당하며 정신없이 한 주를 마감하며 마음먹는다. 오랜만에 호사겠다. 폭우와 폭염 사이에서 갈 길을 잃었던 젓가락도.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본관, 8월27일까지. (031)783-8000 <미술평론가>
  • 스파이더맨·헐크·아이언맨…슈퍼 히어로가 몰려온다

    스파이더맨·헐크·아이언맨…슈퍼 히어로가 몰려온다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아이언맨, 판타스틱4, 데어데블. 만화와 영화를 통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마블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들이 한국에 몰려온다.  22일부터 닷새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을 통해서다. 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축제로 도약하려는 SICAF는 마블코믹스전을 비롯해 대중성 있는 다양한 전시를 곁들이며 ‘만화의 바다’로 안내한다. 특히 같은 기간 바로 옆에서 국내외 캐릭터 비즈니스 업체 160여곳이 참여하고 아기공룡 둘리, 뽀롱뽀롱 뽀로로, 뿌까, 스폰지밥, 포켓몬스터 등의 캐릭터들이 뛰노는 서울캐릭터·라이선싱페어가 나란히 열려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마블코믹스 70주년 기념 한국 상륙  마블코믹스는 슈퍼맨, 배트맨 등이 대표하는 DC코믹스와 함께 미국 만화계에서 쌍벽을 이루는 전문 출판사. 국내 첫 전시회라 기대가 크다. 창립 70주년을 맞은 마블코믹스는 DC코믹스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1939년 첫 슈퍼 히어로 서브마리너스를 시작으로 1941년 캡틴 아메리카를 등장시키며 DC코믹스를 따라잡았다. 또 1960년대에 헐크,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엑스맨, 판타스틱4 등을 줄줄이 쏟아내며 미국 만화시장의 50%를 점유하는 회사로 떠올랐다. 슈퍼 히어로를 소개하는 코너 외에도 불스아이, 닥터 둠, 그린고블, 베놈, 마그네토 등 슈퍼악당을 소개하는 섹션과 슈퍼 히어로와 슈퍼 악당들이 크로스오버돼 등장하는 마블유니버스 섹션도 관심이다. 영화화된 작품의 트레일러 상영과 만화책 등 관련 상품 전시도 있다. 스파이더맨 등 슈퍼 히어로들과 함께 하는 사진 촬영은 덤.   ●추억의 한국 만화를 대형 팝업북으로  한국 만화 100년을 기념한 전시도 빼놓을 수 없다. 만화책을 열면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혜성과 백두산 등이 야구장을 배경으로 입체적으로 튀어나온다. ‘장길산’, ‘누들누들’, ‘둘리’, ‘머털도사’ 등 한국 만화 명장면을 담은 대형 팝업북이다. 관객들이 직접 펼쳐볼 수 있는 소형까지 모두 30여개의 팝업북이 마련됐다. 이밖에 평면 이미지까지 합쳐 명장면 180여개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지난해 SICAF 어워드 수상자로 한국 만화 태동기를 장식했던 박기정 작가의 만화 인생 46년을 돌아보는 특별전도 꾸려진다.  신일숙 작가의 ‘리니지’, 이명진 작가의 ‘라그나로크’ 등 대표적인 판타지 작품과 환상적 분위기의 구체관절 인형 20여기가 관객들을 판타지의 세계로 초대하기도 한다. 판타지 만화전이다.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7개국의 만화를 만나며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아시아 만화 재발견전도 있다. 인기 웹툰을 비롯해 박기정 작가의 ‘도전자’, 김형배 작가의 ‘21세기 기사단’, 김원빈 작가의 ‘주먹대장’ 등을 플래시 기법을 활용해 무빙툰으로 만드는 등 새로운 기술과 만화의 결합으로 즐거운 디지털 만화전도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윤태호, 주호민, 홍윤표 등 인기 만화 작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만화포차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60개국 1673편 출품돼 풍성  페스티벌은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도 동시에 펼쳐진다. SICAF의 핵심인 애니메이션 영화제다. 아드만스튜디오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인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 가운데 ‘빵과 죽음의 문제’가 개막작으로 화려한 시작을 알린다.  공식경쟁 부문과 특별초청 부문을 합쳐 역대 최다인 60개국 1673편이 출품됐고,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29개국 167개 작품이 심사위원 및 관객들을 맞이한다.  장편 경쟁 부문은 가수 이적의 소설을 5명의 젊은 감독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제불찰씨 이야기’(한국), 아빠를 찾아 나선 소녀 미아의 모험기 ‘미아와 미고’(프랑스), 아일랜드 전설을 다룬 ‘켈스의 비밀’(아일랜드 프랑스 벨기에),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재해석해 지난해 안시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던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미국), 체코 최초의 3D 애니메이션으로 중세 프라하가 배경인 ‘염소 이야기-오래된 프라하의 전설’(체코) 등으로 압축됐다.  특별초청작 249편 가운데 일본 영화감독 이와이 슌지가 시나리오와 프로듀서를 맡은 SF물 ‘바통’과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이 탄탄한 일본 애니메이션 ‘블리치-페이드 투 블랙’(극장판 3기), 한국 애니메이션의 고전인 ‘똘이 장군’, 1990년대 큰 인기를 끈 ‘머털도사와 108 요괴’ 등도 눈에 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아시아, 빵 나누는 일에 관심 가져야”

    “아시아, 빵 나누는 일에 관심 가져야”

    “해외봉사단의 활동방향은 ‘다함께 잘사는 세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시아 국가들의 국제사회 기여가 더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페루 아마존 지역 세파와 마을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환경·위생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장수진(31) 봉사단원의 일성이다. 세파와 마을은 페루 수도인 리마에서 자동차로 72시간이나 달려야 갈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다. 장씨는 현지에서 봉사하는 한국인은 장씨를 포함, 2명 이다. 장씨는 오지 여행가 한비야씨의 영향을 받아 2007년 KO ICA 해외봉사단에 지원, 그 해 7월부터 페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1년 전쯤 아마존 지역으로 옮겨 여성으로서는 녹록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수돗물은 하루 세번 나와요. 전기도 오후 6~11시에만 들어오고요. 그러나 맑은 공기와 친절한 페루인들 덕분에 이젠 거의 적응했어요.” 장씨는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손씻기와 양치질 등을 가르치고 쓰레기 처리 등 환경·위생 교육도 가르친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르친 내용이 그들의 부모님 등에게 전해질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근처 소규모 마을을 돌며 환경·위생 교육을 진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교육이 질병 예방 등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파와 마을에 위생교육실 겸 도서관을 짓는 게 숙원이다. 그는 “세파와에서 학교를 운영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외부 단체는 스페인 가톨릭교회와 KO ICA 뿐”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국가들의 국제사회 기여 방향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아시아 많은 나라들의 국제사회 기여도는 그들의 경제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동안 ‘빵을 크게 만드는 작업’(성장)을 해왔다면 이제는 ‘빵을 적절하게 나누는 일’(분배)을 해야 합니다. 이때 고려해야 할 것은 도움을 받은 쪽에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을 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릴레이톡톡] 장영란 “신비주의? 가면 대신 선글라스 썼어야…”①

    [릴레이톡톡] 장영란 “신비주의? 가면 대신 선글라스 썼어야…”①

    ‘뿔났어~ 뿔났어~약올리지마, 뿔났어~ 뿔났어~ 장난치지마’ 한번 들었을 뿐인데 후렴구가 귀에 착착 감긴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면 목소리도 익숙하다. 신인가수라는 그녀가 무대 위에 오르자 웃음이 빵 터졌다. “장영란 가수로 데뷔했어?” ‘라니’라는 예명으로, 얼굴 반을 가리는 가면까지 쓰고 나왔건만 시청자들은 그녀가 방송인 장영란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사람들이 아리송하게 여길 거라 생각했어요. 긴가민가해 하실 줄 알았는데 처음 보자마자 알아보시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 눈이 부각됐으니까 알아보시는 게 당연하죠. 제가 동대문으로 쇼핑 갈 때도 눈만 보이게 하고 다 감췄는데도 다들 알아보시더라고요.(웃음)” 장영란은 차라리 선글라스를 쓰는 게 더 신비주의 전략에 성공했을 거라며 깔깔거렸다. “제가 골반이 큰 편이라 어떤 분은 제 골반을 보고 알아보셨다는 분도 계세요. 하하 아무래도 제가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나와서 신비주의가 도무지 먹힐 수가 없었나봐요. 그래도 다행인 건 제가 원래 정극에 출연했었다면 오히려 역반응이 나왔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가면으로 가리고 다른 사람인 척 하겠다고 나선 제가 너무 어설퍼서 ‘너 답고 재밌었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세요.(웃음)” 장영란은 ‘신비주의’ 콘셉트로 다양한 전략을 준비해놨건만 예상보다 너무 빨리 가면을 벗게 돼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일순간 어두워진 그녀의 얼굴로 얼마나 상심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피 바이러스’ 장영란은 이내 밝은 표정을 돼 찾았다. “잠깐이지만 그래도 가면 쓰고 나온 덕택에 이슈가 됐어요. 인터넷에서 검색어 1위도 했고요. 기분이 정말 좋던데요.” 문득 그 많은 음악장르 중에 왜 하필 트로트를 선택했을지 의문이 들었다. 장영란은 “사실…”이라고 운을 뗀 후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맨 처음에는 발랄하고 귀여운 댄스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무실에서 극구 반대하시더라고요. 괜히 더 비호감 되서 안티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요. 사실 저도 가식적인 여가수들 보면 때려주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제가 하면 안 되겠단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슬럼프에 빠진 장영란은 고민 또 고민 끝에 어렵게 소속사에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까지와 또 다른 모습을 위해 가수에 도전해보겠노라고. “정말 제가 TV에 나와도 시청자들에게 더 보여드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 서른 넘어서 남자연예인들에게 무작정 들이대는 것도 싫었고요. 그렇다고 제가 얌전한 것도 어울리지 않잖아요.” 우려했던 것과 달리 회사에서는 장영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줬고 흔쾌히 도와줄 것을 약속했다. 가수데뷔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장영란을 지원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좋은 곡을 받았고 오랜 시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고, 끊임없이 응원해주셨어요. 저는 여타 신인가수들 보다 훨씬 운이 좋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본인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 데뷔했다고 하지만 그 어떤 신인가수가 이토록 ‘라이브 무대’ 준비에 필사적으로 덤벼들 수 있었을까. 장영란은 만사를 제쳐두고 노래 연습에 매진했다. 연습 또 연습… 복식호흡은 다른 사람들 얘기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장영란은 어느 순간 배로 호흡하며 노래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땀 흘리면서 노래 연습을 했어요. 그게 아까워서라도 라이브 무대를 고집하고 있죠. 처음에는 엄청 긴장했는데 이제는 계속 서다보니까 재밌어요. 관객들도 제 실수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던데요.(웃음)”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다이어트 식품시장 급성장

    노출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다이어트 식품 시장이 성수기에 접어들었다. 지난해까지 다이어트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 온 CLA(공액리놀레산)와 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HCA(가르시니아 캄보지아 껍질추출물)의 경합도 본격화되고 있다. CLA는 지난해 500억여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했다. CLA는 홍화씨유 등에 들어있는 리놀레산을 화학적인 방법으로 추출, 생산한 제품이다. 몸속 지방세포를 스스로 파괴하도록 유도해 체지방 세포수를 감소시켜 주고, 체내 세포 속 열 발생 촉진으로 기초 대사량을 늘려 줘 체지방 축적을 억제시켜 준다는 게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밝혀진 CLA의 효능이다. 하루 권장섭취량인 2400~3000㎎을 식후 30분에 섭취하는 게 좋다. CJ뉴트라의 ‘디팻CLA플러스’, 한국암웨이의 ‘뉴트리라이트CLA’, 중외제약의 ‘중외슬림나이트CLA’, 한미약품의 ‘슬림CLA’ 등이 있다. 2006년까지만 해도 100억원대 시장이었던 것이 지난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HCA는 탄수화물 지방 합성을 억제해 복부 피하지방과 내장지방을 줄여주는 데 효과적인 성분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개별인정 소재로 인정받은 뒤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탄수화물 지방 합성을 억제한다는 점이 CLA와의 차별점으로 곡류·면류·빵 등을 즐기는 한국인들의 체형관리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졌다. 건강기능식품 업계 관계자는 “HCA 판매가 막 시작 단계이지만, 홈쇼핑에서 안정적인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면서 “올해 200억원대 이상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루 권장 섭취량이 1500~3000㎎으로 최대 6000㎎을 초과하지 않는 게 좋다. CJ의 ‘디팻가르시니아’, 대상웰라이프의 ‘다이어트 가르시니아’, 한국야쿠르트 플러스엔의 ‘슬림핏 다이어트 가르시니아’, 일양약품의 ‘바디팻 가르시니아’, 풀무원건강생활과 대웅제약이 공동 개발한 P&D ‘슬림업HCA’ 등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다이어트 ‘약’이 아닌 보조제 역할을 하는 ‘식품’이기 때문에 실제로 살을 빼기 위해서는 운동 등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나 천연 추출 원료이기 때문에 특별한 부작용이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관련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 등이 CLA와 HCA의 한계를 의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건강식품협회 김연석 본부장은 10일 “CLA와 HCA관련 원료의 제품은 과학적으로 기능성을 검증받으면서 올해 약 1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죽음·미신 대해부 책 2권

    죽음·미신 대해부 책 2권

    과학이 발달하고 사람들은 점차 이성과 논리성으로 중무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고민을 풀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점쟁이나 영매를 찾고 굿을 벌이기도 한다. ‘전설의 고향’이나 ‘엑소시스트’ 같은 영매·심령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TV시리즈 ‘엑스파일’이나 ‘슈퍼내추럴’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많다. “세상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없어.”라며 냉정하고 합리적인 인간임을 과시하지만, 막상 4와 13이라는 숫자와 마주치면 왠지 기분이 찜찜하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사의 이면, 죽음과 미신을 다룬 책에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죽음에 관한 다큐… 300여가지 사망 원인 담아 일단 경고부터 하고 들어가야겠다. ‘이 책은 무지 흥미롭지만 심장이나 기(氣)가 약한 분들은 적나라한 사진에 깜짝깜짝 놀라고, 자다가 가위에 눌릴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죽음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좋을 ‘파이널 엑시트’(마이클 라고 지음, 이경식 옮김, 북로드 펴냄)에는 무려 300여가지의 사망 원인이 들어 있다. 저자는 뉴욕시경 소속 형사였던 아버지에게 다양한 살인사건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자연히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됐고, 10여년간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의학지식, 통계 등 400개가 넘는 자료를 근거로 이 책을 지었다. 교통사고, 방화, 지진, 익사, 전염병 등은 이 책에서는 평범한 사망 원인이라고 할 정도다. 몸에 좋다는 물이 죽음을 부르기도 한다. 2000년1월 마약검사를 피하려던 한 여성은 13ℓ의 물을 단번에 마셨다가 혈액 속 나트륨 농도가 낮아져 뇌와 폐가 부풀어 올라 죽었다. 맛있는 중국 음식을 먹다가 비명횡사한 사람도 있다. 2003년 뉴욕 퀸스에서 중국 음식을 먹던 남자는 땀을 흘리며 바닥을 뒹굴다 밖으로 달려나가 버스에 치여 사망했다. 표면적인 사인은 무단횡단. 직접적인 원인은 맛을 돋우기 위한 글루타민산나트륨(MSG)으로, MSG가 단백질 합성을 돕지 못하고 반작용을 하면서 뇌와 신경세포에 손상을 입었다. 일명 ‘중국음식 증후군’이다. 고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실소를 자아내는 사례도 있다. 차가 벽에 부딪히면서 터진 에어백 때문에 운전자가 사망했다. 충돌 충격이 크지 않았기에 경찰은 사인을 약물 중독쯤으로 봤지만, 부검 결과 당시 운전자가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이 기도 안으로 들어가 질식해 숨졌다. ‘운전 중에는 막대사탕을 먹지 마시오.’라는 경고 문구를 만들어낸 사건이다. 회색곰을 너무 사랑한 한 남자는 알래스카 카트마이 국립공원에서 회색곰과 여름휴가를 보내려다 그대로 먹혀 곰의 일부가 됐고, 머리가 잘린 채 얼마나 오랫동안 의식을 유지하는지 알고 싶던 18세기 프랑스 과학자는 자신의 몸을 직접 실험 도구로 삼았다. 그 과학자는 단두대에 머리가 잘린 뒤에도 20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머리와 몸이 분리돼도 최소 20초는 뇌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보내는 학교도 안전하지 않다. 미국에서 1992~1999년에 296명이 학교에서 사망했다. 1999년 컬럼바인고교 사건을 비롯해 상당수의 학교에서 172명이 총격사고의 희생자가 됐다. 1981년 자신의 요트로 여행하던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익사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나탈리 우드, 시체가 완벽하게 방부처리된 상태라는 소문이 있는 마릴린 먼로, 죽어 가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남긴 재즈계 거물 등 유명인의 사망도 다룬다. “죽음이 무엇인지 직시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게 저자가 수많은 죽음을 통해 하고 싶어 하는 말이다. 3만원. ●미신도 문화, 그러나 따라 하면 곤란하다 호프만 크라이어가 쓴 ‘독일미신사전’에는 미신을 ‘종교 교리에 근거를 두지 않은 초자연적 힘의 존재와 그 영향력’이라고 정의한다. 보통은 ‘잘못된 믿음’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렇게 넘겨버리기에는 미신의 역사는 길고 공고하다. 이번에 독일 프리랜서 작가 발터 게를라흐가 내놓은 ‘미신사전’(정명순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은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미신의 역사와 종류를 소개한다. 코가 가려우면 새 소식을 듣는다든가(가려움·코), 손바닥에서 미래를 본다든가(손금 보기), 글씨를 쓴 종이나 글자 모양의 빵을 구워 먹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문자 마술), 검은 고양이와 검은 개는 악마의 전령이라 불길하다(검은 고양이)는 미신은 익숙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우주의 힘에 기대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을 예측하려는 바람이 녹아든 별자리는 1960~70년 문화현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정치혼돈에 따른 환멸에 대응하기 위해 전지구적 복리를 지향한 사고의 전환도 점성술에 근거하고 있다. 물고기자리 시대를 버리고, 물병자리의 새 시대를 맞이하자고 주장한 ‘뉴 에이지’이다. ‘마녀’는 미신의 대명사인 만큼 4쪽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마녀는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당대의 강하고 현명한 지식 여성을 일컫기도 했다. 1970년대 말 본격적으로 시작된 페미니스트 운동을 두고 ‘마녀가 돌아왔다.’고 한 것은 마녀 전통의 연장선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민간의학 중 일부는 우습기까지 하다. 부러진 다리에 의자 다리를 부목으로 대면 더 빨리 아물고, 귀통증이 있을 때 교회 탑에 올라가 가장 큰 종에 푸른 분필로 이름을 적으면 낫는다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눈병, 복통, 성병 등을 낫게 하려고 따라 했다가 병이 낫기 전에 죽을 수도 있겠다. 유럽 중심으로 소개돼 있어 한국의 전통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미신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는 데는 도움이 된다. 1만 2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입에도 몸에도 달다… ‘체리의 붉은 유혹’

    입에도 몸에도 달다… ‘체리의 붉은 유혹’

    언제부턴가 여름이면 체리의 붉은 유혹이 시작됐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오동통한 체리를 입안에 넣기는 쉽지 않았다. 고작 접해봤자 통조림의 설탕물 속에 푹 절어 있거나 아이스크림 속에 형체를 알 수 없이 녹아들어 물컹거리던 게 다였는데 요즘은 다르다. 본격 여름이 시작된 지난달 말부터 백화점, 할인마트 등에 체리가 붉게 깔리고 있다. 체리를 재배하는 국내 농가가 많지 않은 탓에 현재 시중에 있는 체리의 대부분은 수입산이다. 세계 최대의 체리 생산지는 미국 북서부의 4개주(워싱턴, 오리건, 아이다호, 유타). 적절한 일조량, 시원한 밤 기온, 기름진 토양으로 날씨에 민감한 체리를 재배하기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전세계 체리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 수입되는 물량의 80%가 이 지역 제품이다. 체리는 종류만 해도 1000종이 넘게 있는데 가장 맛이 좋아 널리 보급되고 있는 것이 ‘빙(Bing)’이란 품종이다. 1800년대 북서부 지역 체리 농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일꾼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먹는 체리도 대부분 이 품종이다. ● 심장질환·뇌졸중 위험 감소와 미용에도 효과 체리는 항산화 성분을 가진 대표적 과일이다. 사과, 딸기, 석류 등 붉은 색을 띤 과일이 거의 그렇듯 강력한 항산화 물질인 ‘안토시아닌’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 성분은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고 혈전 형성을 억제해 심장 질환과 뇌졸중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혈압,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환자들에게 좋다. 체리에 들어 있는 ‘케르세틴’은 폐암 예방에 탁월하며, ‘멜라토닌’은 불면증이나 편두통 완화에 유효하다고 알려져 있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열량도 100g당 약 66㎉로 높지 않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그만이다. 물론 과일답게 피부 미용에도 좋다. ● 녹색꼭지에 단단하고 윤기 흘러야 좋아 체리를 고를 때 세 가지를 본다. 꼭지가 녹색이어야 하고 알이 굵고 단단해야 하고 윤기가 좔좔 흘러야 좋은 것이다. 물렁물렁하거나 갈색 반점이 있는 제품은 피해야 한다. 오래 놔두고 먹을 때는 물기 없이 보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물과의 접촉이 길면 흐물흐물해지기 쉬우므로 잘 씻어서 물기를 깨끗이 제거한 뒤 냉동실에 넣으면 최대 12개월 동안 신선한 상태로 먹을 수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도움말 북서부체리협회 ■ 체리를 색다르게 먹기 ●체리 베리 샐러드 체리와 다른 과일의 조화가 훌륭한 과일 샐러드. 새콤달콤 부드러운 드레싱이 다른 맛을 창조하는 열쇠. 가장 적은 노력으로 체리 등 여러 과일을 근사하고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디저트. 재료 씨를 빼낸 체리 4컵, 블루베리 1컵, 사각으로 잘게 썬 사과 1컵. 허니 라임 드레싱(올리브 오일 2큰술, 라임 주스·꿀 각 1큰술, 저민 박하 2작은술, 소금 약간) 만드는 법 체리, 블루베리, 사과를 큰 볼에 넣고 과일에 드레싱이 골고루 배도록 잘 섞기만 하면 된다. 블루베리 대신 딸기, 파인애플, 오렌지 등 기호에 따라 다양한 과일과 섞어 먹어도 좋다. ●체리 레몬 쿨러 체리를 함께 넣어 끓여 만든 시럽을 차게 식혀 만들어 먹는 주스. 한번 만든 시럽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1주일 동안 먹을 수 있다. 재료 물 3컵, 설탕 1컵, 씨를 빼고 반을 자른 체리 1컵, 레몬주스 1컵, 탄산수 1ℓ, 꼭지 달린 체리 몇 알과 박하잎. 만드는 법 1. 물과 설탕을 작은 냄비에 넣어 잘 섞은 후 반으로 쪼갠 체리를 넣고 센 불에 끓이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5분간 더 졸인다. 2. 상온에서 식힌다. 3. 체리는 건져 내고 시럽만 용기에 담아 밀봉해 차가워질 때까지 냉장 보관한다. 4. 450㏄ 크기의 긴 유리잔에 얼음을 채운다. 5. 레몬주스 1/4컵과 차게 식힌 시럽 1/3컵을 컵에 붓고 탄산수로 채운다. 6. 꼭지 달린 체리와 박하 줄기로 장식해 마무리한다. ●체리 주빌레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맛보던 체리 주빌레를 집에서. 미국인들이 체리를 이용해 먹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체리의 탱글탱글한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다. 재료 설탕 1/2컵, 옥수수녹말 1큰술, 물·오렌지주스 각 1컵, 씨를 뺀 체리 3컵. 바닐라 아이스크림 900g. 만드는 법 1. 설탕과 옥수수 녹말을 잘 섞은 후 물과 오렌지 주스를 혼합한다. 2. 1을 두꺼워지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잘 저으면서 약한 불로 끓인다. 3. 체리를 넣은 후 10분간 끓인다. 4. 상온에서 식힌 뒤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소스처럼 뿌려 낸다. ●스위트 체리 블론디 반죽이 어렵지 않아 초보자도 해볼 만하다.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차와 함께 내면 더욱 그럴싸하지 않을까. 재료 밀가루 1컵, 황설탕 1/3컵, 베이킹파우더 1작은술, 소금 1/2작은술, 식물성 기름 1/2컵, 달걀 2개, 바닐라 오일 1작은술, 씨 빼고 반으로 쪼갠 체리 1컵, 잘게 썬 피칸 1/2컵, 지름 20~21㎝ 원형 파이팬 또는 타르트 팬. 만드는 법 1. 밀가루, 황설탕, 베이킹파우더, 소금, 식물성 기름, 달걀, 바닐라 오일을 그릇에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반죽한다. 2. 골고루 섞였으면 반죽의 반을 빵 구이용 팬에 골고루 붓는다. 3. 반으로 쪼갠 체리에 밀가루 옷을 살짝 입혀 반죽 위에 골고루 뿌린다. 4. 체리 위에 나머지 반죽을 마저 붓고 피칸을 흩뿌린다. 5. 160℃ 오븐에 30~35분간 굽는다. 반죽의 중간 부분을 나무 젓가락으로 찔러 보아 아무 것도 묻지 않을 때까지 굽는다. 6. 차게 식힌 후 16조각으로 나눠 먹는다.
  • [뉴스 다큐 시선] 엄마밥보다 더 맛좋은 짬밥

    [뉴스 다큐 시선] 엄마밥보다 더 맛좋은 짬밥

    건더기 없이 멀건 국, 고춧가루를 적게 쓴 탓에 허연 김치와 깍두기, 튀김옷뿐인 튀김 등 질 낮은 ‘짬밥’은 대한민국 남성들이 떠올리는 안 좋은 기억 가운데 하나다. 그런 군대급식이 달라졌다. 맛과 영양을 고려한 건강식단에 따라 좋은 국내산 재료를 위생적으로 조리해 낸다. 달라진 군대급식 현장에 가봤다. 글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사진 동영상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은 스테인리스 솥과 조리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삽 네 자루에 눈길이 멈춘다. 엄마의 부엌보다 깨끗할 정도로 잘 관리된 이곳은 ‘삽질’과 ‘칼질’에 일가견이 있는 여섯 남자가 400명의 끼니를 뚝딱 만들어 내는 군대식당이다. 경기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위치한 제8보병사단 독수리연대의 독수리식당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지난 4월21일 문을 연 식당은 육군 최초로 유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시스템이 도입된 최첨단 시설이다. 9억 8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400명의 장병들은 전투화에 묻은 흙을 샤워기로 털어낸 뒤 소독을 해야 식당에 들어올 수 있다. 급양담당관과 수의장교가 조리시설의 위생상태를 매일 점검하는 등 관리가 여간 깐깐하지 않다.평화로워 보이는 식당 바깥과 달리 안쪽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건장한 남성들이 조리실에 들어와 각자 맡은 위치에 섰다. ‘완전무장’ 차림이었다. 전투모 대신 망사모를 쓰고 전투복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군화 대신 고무장화를 신은 조리병들은 비장한 표정이다. # 400명 먹을 쌀 80㎏ 삽으로 쓱쓱 씻어 밥 짓고 오늘의 점심 메뉴는 된장국, 감자조림, 게맛살볶음이었다. 조리병들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시작했다. 황인용(21) 상병은 쌀을 씻었다. 들통에 쌀과 물을 쏟아부은 뒤 삽으로 골고루 돌려 젓는다. 황 상병은 “손목의 스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막걸리 색깔의 뽀얀 쌀뜨물이 떠오르면 따라내고 두 번 더 씻는다. 한 끼 식사에 한 가마니(80kg)의 쌀이 사용된다. 씻은 쌀을 50인분 용 솥 5개에 채우고 밥물을 맞춘 뒤 오븐에 넣는다. 황 상병은 “예전에는 네모난 찜기에 밥을 쪄 내서 먹으면 쉽게 배가 꺼지고 맛도 덜했는데 지금은 가스불로 조리해 밥맛이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김기동(21) 상병은 야채를 썰기 시작했다. 가로 1m, 세로 50㎝ 크기의 넓적한 도마가 그의 무대다. 애호박 한 개를 반으로 갈라 반달썰기를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1개를 써는 데 2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김 상병이 오늘 썰어야 할 야채는 게맛살볶음에 들어가는 피망 15개, 된장국에 들어가는 애호박 10개와 두부 1판, 감자조림에 들어가는 감자 50개와 당근 20개다. 이 모두를 써는 데 20분이 걸렸다. 이 정도면 ‘달인’ 수준이다. 김 상병은 “당근이나 무처럼 딱딱한 야채를 썰 때 가끔 손가락을 베이기도 하지만 썰기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전문대 푸드스타일리스트학과를 휴학한 김 상병은 조리병 경력이 벌써 1년 6개월째다. 제대 전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지만 공부를 안 해서 필기시험의 문턱을 매번 넘지 못했다. 그는 “실기는 자신 있는데 이론 공부는 영 자신이 없다.”며 쑥스러워했다. # 튀김실에선 섭씨 200도 넘는 기름과의 사투 조리병 중에서 가장 고참인 장형철(22) 병장은 오는 8월 제대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결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전(煎) 처리 담당이다. 재료를 씻고 썰고 다듬고 껍질을 벗겨 조리하기 쉽도록 하는 게 그의 임무다. 장 병장은 “밥, 국, 튀김, 전처리, 반찬 담당으로 역할을 나누고 3개월마다 한 번씩 교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튀김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한여름에 지름 1.5m 크기의 튀김 솥 앞에 서면 숨이 턱 막힌다고 한다. 20분 넘게 섭씨 200도가 넘는 끓는 기름과 씨름하다 보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장 병장은 “장병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닭튀김, 깐풍기, 탕수육 등 튀긴 고기요리”라면서 “몸은 고되어도 내가 만든 바삭한 튀김을 맛있게 먹어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방 한편에 마련된 튀김실에는 4개의 커다란 솥이 걸려 있다. 설렁탕집에서나 볼 수 있는 크기의 솥이다. 이곳에서는 튀김뿐 아니라 국과 볶음 요리도 한다. 불을 사용하는 공간이라 튀김실의 온도는 섭씨 30도를 넘는다. 게다가 뜨거운 수증기 때문에 흡사 한증막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조리실 막내인 김정수(20) 이병은 능숙한 솜씨로 된장국을 만들고 있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60일 됐다는 김 이병은 “2주 동안 교육을 받은 뒤 처음 만들었던 음식이 된장국이었다.”고 말했다. 국은 쉬운 음식에 속한다. 끓는 물에 멸치, 다시마를 우려내고 된장을 푼 뒤 선임들이 썰어준 재료를 넣기만 하면 된다. 400인분의 된장국에는 된장 10kg과 고추장 1kg이 들어간다. 김 이병은 “된장이 타지 않도록 잘 저어주는 게 포인트”라고 일러줬다. 튀김실 안쪽에서는 고소한 기름냄새가 풍겼다. 곽경태(19) 일병이 제법 모양을 갖춘 게맛살볶음과 감자조림의 간을 보고 있었다. 군인들에게 ‘엄마의 손맛’을 전하기 위해 고용된 민간조리원 김영매(55·여)씨도 옆에서 거들었다. 김씨가 “감자조림이 너무 싱거워. 물이 너무 많잖아. 간장 좀 가져와.”라고 말하자 곽 일병은 “국물에 밥 비벼 먹으라고 일부러 자작하게 한 거예요.”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조리병들은 김씨를 ‘아줌마’라고 부른다. 간을 보는 게 아줌마의 역할이지만 김씨는 재료를 씻고 다듬을 때 손을 보탠다. 그는 “조리병들이 요리는 잘하지만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야채 손질이 어설프다.”고 말했다. # 땀 뻘뻘 1시간이면 요리사 뺨치게 조리 끝 오전 11시쯤 대부분의 조리가 끝나자 조리병들은 휴게실에 모여 앉아 한숨을 돌리고 수다를 떨었다. 땀에 젖은 망사모와 마스크를 벗은 병사들은 영락없이 해맑은 20대 청년들이었다. 장 병장은 “장병들과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 때가 제일 신난다.”고 말했다. 황 상병은 “돼불(돼지불고기), 닭튀(닭튀김), 오볶(오징어볶음), 오삼(오징어삼겹살볶음) 등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조리병들은 메뉴 이름이 길면 줄여 부른다. 일종의 은어인 셈이다. 이들은 하기 어려운 음식으로 ‘괴물밥’을 꼽았다. 김치콩나물밥을 뜻하는 ‘괴물밥’은 조리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장병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잔반이 많이 생긴다. 밥을 한 번 찐 뒤 김치, 고기, 콩나물 등 고명을 얹고 또다시 익혀야 해서 손이 많이 가지만 맛은 그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게 조리병들의 평가다. 군은 한 달에 한 번 급식만족도 조사를 실시한다. 그 결과를 군급식개선회의에 보고하면 급양대(식단을 짜고 식재료를 배분하는 곳)에서 식단에 반영하게 된다. 지난달에는 닭죽, 조기튀김, 쫄면 등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닭죽은 영양보충에 좋고 쫄면은 별미로 좋다는 이유로 선호도가 높았지만 조기튀김은 ‘발라 먹기 귀찮다.’ ‘비린내가 난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 짬밥만 잘 먹어도 동안피부 저리가라! 12시가 되자 바지 춤에 수저통을 찔러 넣은 병사들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각 중대에서 파견된 6명의 취사지원병이 배식에 나섰다. 순식간에 밥과 국, 감자조림이 동이 나 조리병들은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영석(19) 이병은 “어머니에게 죄송하지만 군대밥이 집밥보다 맛있다.”면서 “입대할 때 50kg이던 몸무게가 지금은 58kg”이라고 말했다. 새까맣게 탄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김 이병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오삼불고기와 돈가스다. 지난해 8월 입대한 안준성(21) 일병은 부대에서 알아주는 ‘피부미남’이다. 그는 “꼼꼼한 폼 클렌징과 ‘짬밥’효과가 피부관리의 비결”이라고 했다. 김종도(20) 일병도 군대에 와서 피부가 좋아지고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입대 전에는 오리불고기에 손도 안 댔는데 군대에 와서 그 맛을 알게 됐다.”면서 “때마다 나오는 자장면 등 분식도 별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일병은 ‘군데리아’는 싫다고 했다. 빵, 고기, 치즈, 샐러드, 딸기잼을 따로 배식받은 뒤 조합해 먹는 군대식 햄버거는 영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 신세대 장병의 고기예찬은 그로부터 5분 넘게 계속됐다.
  • 민간에 맡기니 숨은 봉사자 몰려

    민간에 맡기니 숨은 봉사자 몰려

    30일 낮 중구 쌍림동의 자원봉사센터. 지하1층, 지상3층 건물의 센터에는 상담실과 교육실, 프로그램실 등이 갖춰졌다. 1층 상담실 한편에선 20대 남성이 봉사활동 참여를 위해 밝은 표정으로 지원서를 작성했다. 건너편 탁자 위에선 신규 봉사자들이 2시간 기본교육을 마친 뒤 자원봉사수첩과 보람통장을 받았다. 보람통장이란 100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채운 봉사자에게 그만큼 혜택을 돌려주는 제도를 이른다. 봉사자 본인이나 주변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센터에 소속된 봉사자들이 나서 도와주는 방식이다. 서현승 자원봉사센터 팀장은 “봉사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이 어려울 때 다시 도움을 받는 일종의 품앗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일 민간위탁기관으로 재개관한 중구의 자원봉사센터가 봉사활동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다. ●보람통장으로 보람 찾아 센터에 현재 등록된 자원봉사자 수는 131개 단체, 1만 2775명. 개관과 함께 운영자가 중구에서 ‘뉴서울자원봉사은행’으로 바뀌었다. 전문성과 경험을 두루 갖춘 비영리 민간법인에 운영을 넘겨 자원봉사 활동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정동일 구청장의 뜻에 따른 것이다. 다른 자치구가 수년 전 자원봉사센터를 민간에 위탁한 사례는 있지만 최근 직영센터를 민간에 넘긴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센터를 위탁받은 뉴서울자원봉사은행은 순수 자원봉사를 위해 창립된 민간단체다. 이 단체는 동작자원봉사센터와 어린이도서관, 사당청소년문화의집 등도 운영한다. 운영자가 바뀌면서 센터 분위기도 달라졌다. 서 팀장은 “한 달 만에 자원봉사 신청자가 100명 가까이 늘었다.”며 “그동안 숨어서 봉사활동을 하던 사람들을 찾아내 체계적·조직적으로 활동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새롭게 문을 연 자원봉사센터에선 자원봉사자 모집과 교육, 배치 및 지원활동, 홍보, 프로그램 개발 등의 사업을 주로 추진하고 있다. 덕분에 자원봉사자들도 분야별로 세분화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 등 저소득 주민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자는 ‘재가분야’, 다양한 사회복지시설에 배치하는 봉사자는 ‘시설분야’로 나누는 식이다. 이밖에 풍선아트, 집수리 등 특기분야를 살려 봉사하는 ‘전문분야’,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해결을 도맡는 ‘일반분야’ 등으로 구분된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려면 기본 2시간의 교육을 마친 뒤 다시 전문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센터는 장애아동 수발 등 세부분야별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빵굽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 자원봉사센터는 화환 대신 받은 쌀을 지역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것으로 첫 봉사활동의 발걸음을 뗐다.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새마을지회, 교회 등이 보내온 쌀 195포대는 시중 가격으로 800만원에 달했다. 이중에는 지역 독지가가 보내온 쌀 20㎏ 40포대 등도 포함됐다. 사랑의 집수리 봉사활동도 눈에 띈다. 70여명의 집수리 봉사단원들은 번갈아가며 도배·장판교체 등 간단한 작업부터 다소 규모가 큰 집수리까지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이달 중순 이미 묵정동 일대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매주 월요일 장충단경로당 3층에선 제빵 봉사활동이 펼쳐진다. 한사랑봉사단이 빵을 구워 지역 복지시설이나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나눠주고 있다. 신라호텔 등의 조리팀 봉사단은 장충단공원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점심식사도 제공한다. 침뜸 봉사단은 일주일에 1회씩 장충교회에서 출장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정 구청장은 “지역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선 봉사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민간위탁과 기능개편으로 자원봉사 활동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엄마밥보다 더 맛좋은 짬밥

    건더기 없이 멀건 국, 고춧가루를 적게 쓴 탓에 허연 김치와 깍두기, 튀김옷뿐인 튀김 등 질 낮은 ‘짬밥’은 대한민국 남성들이 떠올리는 안 좋은 기억 가운데 하나다. 그런 군대급식이 달라졌다. 맛과 영양을 고려한 건강식단에 따라 좋은 국내산 재료를 위생적으로 조리해 낸다. 달라진 군대급식 현장에 가봤다.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은 스테인리스 솥과 조리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삽 네 자루에 눈길이 멈춘다. 엄마의 부엌보다 깨끗할 정도로 잘 관리된 이곳은 ‘삽질’과 ‘칼질’에 일가견이 있는 여섯 남자가 400명의 끼니를 뚝딱 만들어 내는 군대식당이다. 경기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위치한 제8보병사단 독수리연대의 독수리식당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지난 4월21일 문을 연 식당은 육군 최초로 유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시스템이 도입된 최첨단 시설이다. 9억 8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400명의 장병들은 전투화에 묻은 흙을 샤워기로 털어낸 뒤 소독을 해야 식당에 들어올 수 있다. 급양담당관과 수의장교가 조리시설의 위생상태를 매일 점검하는 등 관리가 여간 깐깐하지 않다.평화로워 보이는 식당 바깥과 달리 안쪽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건장한 남성들이 조리실에 들어와 각자 맡은 위치에 섰다. ‘완전무장’ 차림이었다. 전투모 대신 망사모를 쓰고 전투복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군화 대신 고무장화를 신은 조리병들은 비장한 표정이다. # 400명 먹을 쌀 80㎏ 삽으로 쓱쓱 씻어 밥 짓고 오늘의 점심 메뉴는 된장국, 감자조림, 게맛살볶음이었다. 조리병들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시작했다. 황인용(21) 상병은 쌀을 씻었다. 들통에 쌀과 물을 쏟아부은 뒤 삽으로 골고루 돌려 젓는다. 황 상병은 “손목의 스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막걸리 색깔의 뽀얀 쌀뜨물이 떠오르면 따라내고 두 번 더 씻는다. 한 끼 식사에 한 가마니(80kg)의 쌀이 사용된다. 씻은 쌀을 50인분 용 솥 5개에 채우고 밥물을 맞춘 뒤 오븐에 넣는다. 황 상병은 “예전에는 네모난 찜기에 밥을 쪄 내서 먹으면 쉽게 배가 꺼지고 맛도 덜했는데 지금은 가스불로 조리해 밥맛이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김기동(21) 상병은 야채를 썰기 시작했다. 가로 1m, 세로 50㎝ 크기의 넓적한 도마가 그의 무대다. 애호박 한 개를 반으로 갈라 반달썰기를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1개를 써는 데 2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김 상병이 오늘 썰어야 할 야채는 게맛살볶음에 들어가는 피망 15개, 된장국에 들어가는 애호박 10개와 두부 1판, 감자조림에 들어가는 감자 50개와 당근 20개다. 이 모두를 써는 데 20분이 걸렸다. 이 정도면 ‘달인’ 수준이다. 김 상병은 “당근이나 무처럼 딱딱한 야채를 썰 때 가끔 손가락을 베이기도 하지만 썰기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전문대 푸드스타일리스트학과를 휴학한 김 상병은 조리병 경력이 벌써 1년 6개월째다. 제대 전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지만 공부를 안 해서 필기시험의 문턱을 매번 넘지 못했다. 그는 “실기는 자신 있는데 이론 공부는 영 자신이 없다.”며 쑥스러워했다. # 튀김실에선 섭씨 200도 넘는 기름과의 사투 조리병 중에서 가장 고참인 장형철(22) 병장은 오는 8월 제대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결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전(煎) 처리 담당이다. 재료를 씻고 썰고 다듬고 껍질을 벗겨 조리하기 쉽도록 하는 게 그의 임무다. 장 병장은 “밥, 국, 튀김, 전처리, 반찬 담당으로 역할을 나누고 3개월마다 한 번씩 교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튀김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한여름에 지름 1.5m 크기의 튀김 솥 앞에 서면 숨이 턱 막힌다고 한다. 20분 넘게 섭씨 200도가 넘는 끓는 기름과 씨름하다 보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장 병장은 “장병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닭튀김, 깐풍기, 탕수육 등 튀긴 고기요리”라면서 “몸은 고되어도 내가 만든 바삭한 튀김을 맛있게 먹어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방 한편에 마련된 튀김실에는 4개의 커다란 솥이 걸려 있다. 설렁탕집에서나 볼 수 있는 크기의 솥이다. 이곳에서는 튀김뿐 아니라 국과 볶음 요리도 한다. 불을 사용하는 공간이라 튀김실의 온도는 섭씨 30도를 넘는다. 게다가 뜨거운 수증기 때문에 흡사 한증막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조리실 막내인 김정수(20) 이병은 능숙한 솜씨로 된장국을 만들고 있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60일 됐다는 김 이병은 “2주 동안 교육을 받은 뒤 처음 만들었던 음식이 된장국이었다.”고 말했다. 국은 쉬운 음식에 속한다. 끓는 물에 멸치, 다시마를 우려내고 된장을 푼 뒤 선임들이 썰어준 재료를 넣기만 하면 된다. 400인분의 된장국에는 된장 10kg과 고추장 1kg이 들어간다. 김 이병은 “된장이 타지 않도록 잘 저어주는 게 포인트”라고 일러줬다. 튀김실 안쪽에서는 고소한 기름냄새가 풍겼다. 곽경태(19) 일병이 제법 모양을 갖춘 게맛살볶음과 감자조림의 간을 보고 있었다. 군인들에게 ‘엄마의 손맛’을 전하기 위해 고용된 민간조리원 김영매(55·여)씨도 옆에서 거들었다. 김씨가 “감자조림이 너무 싱거워. 물이 너무 많잖아. 간장 좀 가져와.”라고 말하자 곽 일병은 “국물에 밥 비벼 먹으라고 일부러 자작하게 한 거예요.”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조리병들은 김씨를 ‘아줌마’라고 부른다. 간을 보는 게 아줌마의 역할이지만 김씨는 재료를 씻고 다듬을 때 손을 보탠다. 그는 “조리병들이 요리는 잘하지만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야채 손질이 어설프다.”고 말했다. # 땀 뻘뻘 1시간이면 요리사 뺨치게 조리 끝 오전 11시쯤 대부분의 조리가 끝나자 조리병들은 휴게실에 모여 앉아 한숨을 돌리고 수다를 떨었다. 땀에 젖은 망사모와 마스크를 벗은 병사들은 영락없이 해맑은 20대 청년들이었다. 장 병장은 “장병들과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 때가 제일 신난다.”고 말했다. 황 상병은 “돼불(돼지불고기), 닭튀(닭튀김), 오볶(오징어볶음), 오삼(오징어삼겹살볶음) 등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조리병들은 메뉴 이름이 길면 줄여 부른다. 일종의 은어인 셈이다. 이들은 하기 어려운 음식으로 ‘괴물밥’을 꼽았다. 김치콩나물밥을 뜻하는 ‘괴물밥’은 조리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장병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잔반이 많이 남는다. 밥을 한 번 찐 뒤 김치, 고기, 콩나물 등 고명을 얹고 또다시 익혀야 해서 손이 많이 가지만 맛은 그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게 조리병들의 평가다. 군은 한 달에 한 번 급식만족도 조사를 실시한다. 그 결과를 군급식개선회의에 보고하면 급양대(식단을 짜고 식재료를 배분하는 곳)에서 식단에 반영하게 된다. 지난달에는 닭죽, 조기튀김, 쫄면 등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닭죽은 영양보충에 좋고 쫄면은 별미로 좋다는 이유로 선호도가 높았지만 조기튀김은 ‘발라 먹기 귀찮다.’ ‘비린내가 난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 짬밥만 잘 먹어도 동안피부 저리가라! 12시가 되자 바지 춤에 수저통을 찔러 넣은 병사들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각 중대에서 파견된 6명의 취사지원병이 배식에 나섰다. 순식간에 밥과 국, 감자조림이 동이 나 조리병들은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영석(19) 이병은 “어머니에게 죄송하지만 군대밥이 집밥보다 맛있다.”면서 “입대할 때 50kg이던 몸무게가 지금은 58kg”이라고 말했다. 새까맣게 탄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김 이병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오삼불고기와 돈가스다. 지난해 8월 입대한 안준성(21) 일병은 부대에서 알아주는 ‘피부미남’이다. 그는 “꼼꼼한 폼 클렌징과 ‘짬밥’효과가 피부관리의 비결”이라고 했다. 김종도(20) 일병도 군대에 와서 피부가 좋아지고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입대 전에는 오리불고기에 손도 안 댔는데 군대에 와서 그 맛을 알게 됐다.”면서 “때마다 나오는 자장면 등 분식도 별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일병은 ‘군데리아’는 싫다고 했다. 빵, 고기, 치즈, 샐러드, 딸기잼을 따로 배식받은 뒤 조합해 먹는 군대식 햄버거는 영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 신세대 장병의 고기예찬은 그로부터 5분 넘게 계속됐다. 글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사진 ㆍ동영상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회한/김성호 논설위원

    빵집. 약속장소가 하필 빵집이람. 독일로 건너가 산 지 오래됐다지만…. 50줄의 이방인(?)에겐 영 어색한 자리. 약속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친구는 나타나지 않고. 사방엔 10대들의 재잘대는 소리만 그득하다. 여기저기서 흘깃흘깃 겨눠오는 눈길들. 피곤하다. “냠냠.” “냄냄.” 시선들을 피하다가 만난 앞자리의 대화. 20대 중반 엄마와 2∼3살쯤의 어린 딸. 빵을 먹이며 “냠냠.”을 강요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번번이 “냄냄.”으로 응수한다. 발음탓이려니 했는데 아니다. 생글생글 웃어가며 엄마를 놀린다. 엄마가 소리를 지른다. 벼락처럼 터진 울음. 울릴 것까지야. 아이 엄마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다가 떠올린 선친. 사춘기에 나도 “냄냄.”이었지. 귀찮은 잔소리로만 여겨 굳이 청개구리가 되곤 했으니까. 카투사 복무시절 미군 룸메이트도 그랬지. 한국말 발음을 교정시킨다며 정색하고 다투던 미군 친구. 다 하릴없는 고집뿐인 것을. “냄냄.” 헐레벌떡 들어선 친구에게 장난삼아 건넨 인사말. 오랜만의 대면인데 좀 심했나?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공공요금 원가 내년 4월 첫 공개

    내년 4월부터 전기·가스 등 7~8개 공공요금의 원가가 연 1회 정기적으로 공개된다. 공공요금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높이고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의 원가 절감 노력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물가의 안정적인 관리와 해당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화를 통한 원가 절감을 유도하기 위해 주요 공공요금의 원가 자료를 공개하기로 했다. 밀가루, 설탕, 식용유, 빵, 과자 등 주요 식재료 및 가공식품들의 생산·유통 단계별 가격정보 공개<서울신문 6월13일자 6면>와 더불어 지난 25일 발표된 2009년 하반기 경제운용방향 물가관리 부문의 핵심 정책이다. 공개 대상 품목은 전기와 가스, 수도, 지역난방 등 주요 공공서비스 요금이 우선 포함된다. 여기에 열차와 우편 등 상대적으로 중요도는 떨어지지만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공공요금도 대상으로 삼을 방침이다. 또한 원가 공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협의, 지하철 요금 등의 원가 공개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는 관련 시스템 정비와 협의 등 준비 작업을 거친 뒤 올해 경영 실적에 대한 결산이 나오는 내년 3월에 자료를 받아 4월부터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공공요금 원가 공개가 자칫 공공기관들에 요금을 되레 올릴 수 있는 명분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고유가와 고환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되도록 억제해 왔고, 이에 따라 한전과 가스공사 등의 누적 적자와 요금 인상 요인이 상당히 쌓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공공요금의 실상을 알리고 공공기관의 원가 절감 노력을 유도한다는 원래 목적과 달리 공공기관들이 원가 공개를 통해 ‘우리가 이만큼 요금을 올리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현장인터뷰] 윤다훈 “발전되고 진화된 ‘작업’ 보여줄 것”

    [현장인터뷰] 윤다훈 “발전되고 진화된 ‘작업’ 보여줄 것”

    “10년 만에 다시 본격적으로 걸(girl)들에게 작업해야죠. 10년 전에 보여드렸던 ‘작업’에서 보다 발전되고 진화된 ‘작업’의 진수를 보여드릴 거예요.” 아리따운 여성들에게 추파 던지기를 남발하던 ‘원조 선수’ 윤다훈이 1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윤다훈은 19일 오후 tvN 새 드라마 ‘세 남자’ (극본 목연희 한설희ㆍ연출 정환석) 포스터 촬영현장에서 연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서울신문NTN 기자와 만났다. 10년 전 MBC 주간시트콤 ‘세 친구’에서 ‘작업’, ‘선수’, ‘걸(girl)들’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윤다훈이 업그레이드(?) 된 ‘작업의 명수’로 돌아온다. “솔직히 그때는 미혼이라서 ‘작업맨’이나 ‘선수’이미지가 상관없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은 결혼을 했기 때문에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이에요.(웃음) 하지만 시청자분들은 그 당시 ‘세 친구’가 성장해서 ‘세 남자’로 다시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봐주실 거예요. 현실로 착각하시는 분들은 없을 것이라고 믿어요.” 극중 두 번 결혼에 두 번 이혼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지닌 ‘돌싱’(돌아온 싱글)으로 출연하는 윤다훈은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냈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거예요. 10년 전에는 귀여운 바람둥이였다면 지금은 진정한 사랑을 찾는 사람인거죠. 저는 진짜 사랑이었다고 믿고 결혼했는데 그게 간통이었던 거죠. ‘선수’가 진짜 ‘선수’한테 걸려든 거예요. 그래서 드라마 첫 회 첫 신이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장면이에요.(웃음)” 이번 드라마에서도 코믹연기를 기대해도 되겠냐는 질문에 윤다훈은 자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변을 들려줬다. “그때 제 유행어가 좀 있었잖아요.(웃음) 사실 그게 다 애드리브였어요. 우연히 던진 멘트가 빵 터져서 계속 이어갔던 거죠. 이번에도 그 이상의 상황들과 대사를 기대하셔도 좋아요. 극중 직업이 골프코치인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예요. ‘난 수많은 여성들에게 스윙레슨이 아닌 인생의 레슨을 해주겠다.’는 생각이요. 벌써부터 기대되지 않으세요? 하하” tvN ‘세남자’ 는 7월 18일 오후 11시 첫 방송된다. (사진제공=tvN)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흥행공식’ 깬 가수①] 여름엔 ‘여가수 + 댄스’?

    [‘흥행공식’ 깬 가수①] 여름엔 ‘여가수 + 댄스’?

    ”여름이니까 댄스죠” ”여가수? 섹시야 청순이야?” ”요즘 가수, 예능 안하면 인기 없어요” 가요계에 ‘흥행 공식’이 되버린 고정관념들이 있다. 이 공식들만 철저히 지켜내도 소위 ‘기본빵은 한다’는 것이 가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어떤 공식에도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 독단적 행보로 사랑받고 있는 가요계의 이단아(異端兒)들. 그들의 외고집이 이 시대의 대중에게 통하는 이유를 분석해 본다. # ‘공식①’ 여름 = 여가수 + 댄스 [ Except - 케이윌 ] ’여름 가요계’는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좁혀진다. 여가수, 그리고 댄스. 노출의 계절이 오면 여가수들의 본격적인 ‘몸매 대결’이 시작된다. TV에는 아찔한 의상을 걸친 여가수들이 가득하고 거리에는 빠른 비트의 댄스 곡들이 넘쳐난다. 매년 여름 반복되는 ‘섹시퀸들의 귀환’은 더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여기에 ‘예외’를 남긴 남성 발라드 가수가 있다. 현 가요 상위권 차트 중 유일무이한 ‘발라드 남성’ 가수 케이윌(K.will)이 그 주인공. 지난해 ‘러브 119’로 1위 후보에 오른 그는 올해 ‘눈물이 뚝뚝’과 ‘1초에 한방울’를 내리 히트 시키며 현재 정상권에 머무는 단 한명의 남성 솔로 발라드 가수다. 9년째 음반 제작에 몸 담고 있는 매니저 L씨는 “여름에 남성 가수가 그것도 발라드로 승부를 건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무리수”라며 “케이윌은 아주 흔치 않은 케이스”라고 덧붙였다. 케이윌의 경쟁력에 대해 “여름철 지루하게 느껴지는 정통 발라드를 젊은 감각으로 소화해냈다.”고 설명한 그는 “20대 보컬리스트 중 가장 깊이있는 보컬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도 성공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 [’흥행공식’ 깬 가수 ②, ③]에 계속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