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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이 사라진다] (하) 주민이 지켜낸 울산 장생포

    [마을이 사라진다] (하) 주민이 지켜낸 울산 장생포

    한국의 포경(고래잡이) 전초기지였던 울산 남구 장생포. ‘경찰서장 할래, 고래잡이배 탈래?’라고 물으면 아이들 누구나 “포경선 탈랍니더.”라고 답했다던 어촌이 당시의 면모를 되찾기까지는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21일 아침 찾은 장생포 주민들은 고향을 찾는 설 손님 맞이에 분주했다. 마을 입구에 현수막을 내걸고, 주변 청소도 말끔히 했다. 장생포는 60년대 ‘고래해체장’, 80년대 ‘포경선’, 90년대 ‘환경오염 이주’, 2000년대 ‘고래박물관’ 등 수십년간 진행된 온갖 풍상을 견뎌 왔다. ●공해 이주로 주민 10분의1로 감소 주민들이 일손을 잠시 접고 방문객을 맞는다. 80년대 포경선 포수로 이름을 날린 주민 손남수(73)씨는 “장생포는 일본에 고래고기를 수출하게 된 1975년부터 10년 동안 황금기를 맞았다.”고 회고했다. 현금이 넘쳐나던 이 마을에 1985년부터 위기가 닥쳤다. 몇해 전부터 들어선 울산석유화학공단이 주범이다.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싼 공장에서는 매일 매연과 폐수를 내뿜었다. 마을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위협을 받았고 황폐해졌다. 정부는 그해 석유화학공단 주변 장생포, 매암, 여천 등을 ‘환경오염 이주지역’으로 지정했다. 보상작업도 시작됐다. 이듬해에는 상업적 포경까지 금지됐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 터전과 생계수단이 한 순간에 날아갔다. 주민들은 동요했고, 하나 둘 마을을 떠났다. 전성기 때 1만 5000명에 이르던 인구는 90년대 들어서면서 1500명으로 줄었다. 10분의1로 급감한 것이다. 마을은 흉물스러운 폐가로 넘쳐났다. 살길을 찾아 마을을 떠난 것은 주로 젊은이들이었다. 전 장생포발전협의회장 정두열(59)씨는 “노인들은 자녀들과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별 수 없었다.”고 당시의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젊은이들은 ‘옥상에 빨래도 못 널고, 썩어 가는 항구에 무슨 희망이 있느냐.’고 항변하며 도회지로 떠나갔다. ●환경감시 초병으로 나선 마을 주민들 마을을 살리는 것은 고스란히 남은 주민들의 몫이었다. 대책위를 만들고 하루에 한 번씩 행정기관을 찾아 “환경오염 이주지역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민들이 조를 짜 공단을 돌면서 환경오염 감시활동도 벌였다. 주민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턱없이 높은 이주 보상금을 불러보기도 했다. 전 청년회장 고정구(45)씨는 “주민들에게 마을을 떠나더라도 전출 신고를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도 했었다.”고 말했다. 8년여간 지속된 주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주민들 목소리는 울산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울산 시민들은 ‘이주지역 제외·상업포경 허용’을 요구하는 탄원서에 너도나도 서명해 정부와 국회 등에 전달했다. 1993년 이 마을은 이주지역에서 풀렸다. ●국내 유일의 고래 문화 툭구로 지정 이주지역에서 해제되고도 주민들의 생계는 포경 금지조치로 여전히 어려웠다. 그물에 걸리거나 죽은 고래고기를 팔아 생계를 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활동으로 마을은 다시 유명세를 탔다. 울산시와 남구는 ‘고래마을’이 뜨자 2000년대 들어 장생포의 고래문화·관광사업에 발벗고 나섰다. 고래박물관은 2005년 문을 열었고, 이듬해 고래연구소가 개관됐다. 지난해에는 장생포 일대가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됐다. 오는 4월 국내 첫 해양 고래관광 사업도 본격 닻을 올린다. 요즘 고래박물관에는 하루 1000여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공단 주변이 깨끗해지자 관광객과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김두겸 남구청장은 “장생포는 옛날 고래잡이 항구에서 이제는 고래 문화·관광지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면서 “올해 고래관광선 출항을 시작으로 고래마을·분수광장·생태연구센터·테마공원·컨벤션센터 등 고래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선씨 종부 ‘350년 간장’ 인터넷에 팔았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나 뉴타운이 애물단지가 된 이유 또 다른 철거민들…세운상가 떠난 이들의 겨울 “나도 힘깨나 썼지만 요즘같은 폭력 국회는…” 29년만에 벗은 ‘간첩 누명’
  • 미니 마을의 애환

    “주민 수가 적고 마을이 멀다는 이유로 엄청난 가설비를 요구하는 바람에 전기도 못 쓰고 있습니다.” 강원 춘천시 사북면 인람리 주민 김재복(56)씨는 주민 수가 적어 불편한 게 없느냐고 묻자 “한전에서 전기 가설비로 5000만원을 요구한다.”고 분통부터 터뜨렸다. 이 마을에는 4가구가 산다. 춘천호에 둘러싸여 뱃길만 열려 있는 마을에서는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켠다. 주민들은 호수를 사이에 두고 계절별로 두 집 살림을 한다. 육지속의 섬과 같다. 인터넷과 발달된 교통수단으로 국내외를 넘나드는 요즘의 최첨단 세상과 딴판이다. 김씨는 “제일 불편한 것은 생필품을 사고 시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려면 수십리 길을 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미니 마을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2가구가 사는 화천군 상서면 김병희(45)씨는 “전기 공급이 안돼 한겨울에도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면서 “남들 다 좋아한다는, 반딧불과 별을 보고 자연과 함께 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 배르미마을은 7가구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해가 지면 암흑천지로 변한다. 도로사정도 나빠 자동차 진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 ‘집으로’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충북 영동군 상촌면 궁촌2리에는 15가구 25명이 모여 산다. 10년 전만 해도 100가구였으나 마을 사람들의 도회지 행렬이 줄을 이으면서 이처럼 쪼그라들었다. 생필품을 사려면 버스 정류장까지 2.5㎞를 걸어 나간 뒤 8㎞ 떨어진 읍내까지 버스를 타야 한다. 경북 군위군 고로면 학성2리 용하마을은 면소재지에서 6㎞나 떨어져 있지만 버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10가구 25명이 사는 이 마을 이장 한광희(58)씨는 “면사무소 한번 가려면 큰 맘 먹을 만큼 불편하지만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을 버릴 수 없어 이러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청양군 대치면 홍성길 면장은 “주민이 없어 마을 자체에서 하던 일을 면사무소가 대신 해주고 있고, 집집마다 노인 한두 명만 살아 전화연락도 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전국종합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서울 세운상가·광명6동 철거 이후 떠나지 못하는 그들

    서울 세운상가·광명6동 철거 이후 떠나지 못하는 그들

    “우리가 떠나지 못하는 것은 갈 곳이 없고 살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철거로 지난해 11월 터전을 잃은 서울 종로3가 세운상가의 상가세입자들은 근처 대체상가인 세운스퀘어에서 망해가는 상점만 바라보고 있었다. 경기 광명6동 재개발지역 세입자들은 비닐하우스에서 한겨울을 나고 있었다. 세운상가에서 400m가량 떨어진 세운스퀘어에서 완구점을 운영하는 이모(47)씨는 지난해 11월 세운상가 4동 중 현대세운상가 1동의 철거가 시작되면서 서울시가 마련해 준 이 곳으로 이사왔다. 세운스퀘어는 유동인구가 거의 없어 오후 6시쯤이면 문을 닫는다. 6층 건물에 88개 상가가 옮겨왔지만 에스컬레이터도 가동되지 않는다. 2012년까지 영업하는 나머지 3개동도 철거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옮긴 상가에선 두달에 고작 40만원 수입 이씨가 받은 이주보상금은 1500만원 남짓. 서울시는 이주비와 3개월치 수입만 보상했다. 이씨는 “밖에서 보면 상가인지도 모르는 곳에 우리를 보내고 녹지화 공사를 시작했다.”면서 “사람보다 무조건 개발이 우선이던 1970년대와 무엇이 다르냐.”고 말했다. 컴퓨터 가게를 운영하는 강정호(42)씨는 “이곳에 온 뒤 두달간 40만원 벌었다.”면서 “대학생 용돈도 안 되는 돈을 버는데 절망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상인 추모(57)씨는 “80년에 가게를 살 때 권리금과 보증금이 1억 4000만원이었는데 지난해 2000만원만 보상받았다.”면서 “시는 법대로 했다고 하니 힘없는 우리로서는 강경대응 말고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는 “세운상가 세입자들에게 향후 장지동 유통단지 상가를 분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가세입자들은 “장지동의 경우 7평 점포의 분양금이 2억 5000만~6억원에 이를 전망”이라면서 “우리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말했다. 광명6동 재건축 사업으로 쫓겨난 박모(35)씨 등 철거민 8명은 4개월째 철거된 집 인근의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월세 세입자였던 이들은 임대아파트를 요구하면서 철거에 맞섰고, 재건축 조합은 소송으로 이들을 강제 퇴거시켰다. 그리고 변호사 비용이 들었다며 1인당 500만~1000만원에 이르는 월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아이들 친척집… 아빠는 4개월째 비닐집 투쟁 세입자들은 한 집이 헐리면 아직 철거되지 않은 다른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반복하다 결국 지난해 10월 모두 쫓겨났다. 아침에는 동사무소 인근 수도에서 물을 받고, 전기장판 대신 담요를 두르고 잠을 잔다. 빨래는 동사무소 화장실에서 한다. 권모(57·여)씨는 지난 5일 고혈압 발작으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지만 비닐하우스 생활을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최모(44·여)씨는 “임대아파트가 없으면 어차피 갈 곳이 없다. 삶의 터전이 이곳인데 한푼도 없이 어디로 간단 말이냐.”고 되물었다. 글 사진 유대근 임주형 조은지기자 dynamic@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선씨 종부 ‘350년 간장’ 인터넷에 팔았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나 뉴타운이 애물단지가 된 이유 “나도 힘깨나 썼지만 요즘같은 폭력 국회는…” 29년만에 벗은 ‘간첩 누명’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 설원천국 한라산 윗세오름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6) 설원천국 한라산 윗세오름

    제주에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새해 첫날부터 서설(瑞雪)이 내렸다. 새해 첫눈은 예로부터 길조로 여긴다. 한라산은 강원도 대관령과 울릉도 나리분지 못지않은 다설 지역이다. 11월 중순에 내리기 시작한 눈은 이듬해 3월까지 내리면서 쌓인다. 그래서 제주 어느 곳에서나 눈을 머리에 인 한라산을 볼 수 있고, 그 품에서 설국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제주의 겨울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몇 차례 없을 정도로 따뜻하지만, 1950m 높이의 한라산은 툭하면 폭설이 쏟아진다. 2005년 12월과 이듬해 1월 사이에는 무려 2m 20㎝의 기록적인 적설량을 보이기도 했다. 폭설이 내린 뒤 맑게 갠 한라산 풍광은 히말라야와 알프스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1시간 이어지는 ‘눈부신 터널´ 한라산의 등산 코스는 크게 두 가지. 성판악~정상~관음사 코스와 어리목~윗세오름~영실 코스가 그것이다. 그 중 눈길을 걷기에는 정상 코스보다 한라산의 풍만한 허리를 따라 도는 윗세오름 코스가 좋다. 이 길은 전체적으로 완만해 산행 부담이 없고, 온통 하얀 눈나라 속에서 악마의 성처럼 솟구친 백록담 화구벽의 경이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등산로 들머리인 어리목 광장(970m)은 겨울철이면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하는 모습은 언제나 흐뭇하다. ‘세계자연유산‘이라고 적힌 거대한 간판 뒤에서 산길이 시작된다. 한라산의 가장 큰 가치는 다양하면서 독특한 생태계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4000여 종의 식물 가운데 1800여 종이 한라산 자락에서 자란다. 한라산 특산 식물만 무려 70여 종이니 그야말로 희귀 식물 자원의 보고다. 숲이 우거진 산길로 들어서면 눈꽃 터널이 시작된다. 이 터널은 사제비동산까지 1시간가량 이어진다. 앞에 가던 사람들이 스틱으로 눈 쌓인 나뭇가지를 건드리자 머리 위로 눈폭탄이 떨어진다. 깔깔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눈밭을 구른다.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유독 특이하게 생긴 나무가 나타나는데, 나이가 오백 살이 넘은 송덕수(頌德樹)다. 제주에 흉년이 들면 이 물참나무가 열매를 떨어뜨려 백성들이 굶어 죽는 것을 면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조금 더 다리품을 팔면 갑자기 나무들이 사라지고 시야가 뻥 뚫린다. 사제비동산(1428m)이다. ●‘악마의 성´ 같은 백록담 화구벽 사제비동산에 들어서면 한라산은 수고했다는 듯 사제비약수를 내놓는다. 달콤하게 목을 축이고 다시 30분가량 평탄한 길을 따르다 보면 눈 덮인 구상나무숲이 나타난다. 눈보라를 온몸으로 두들겨 맞고도 의연하게 서 있는 구상나무들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 뒤로 백록담 화구벽의 웅장한 풍경이 드러나면 우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풍경이 제주 10경 가운데 7경인 녹담만설(潭晩雪)이다. 백록담에 눈이 덮여 장관을 이루는 경치는 이곳 만세동산(1606m)에서 보는 것이 으뜸이다. ●선작지왓 눈꽃 장관 만세동산부터 윗세오름대피소까지는 평지와 다름없다. 백록담 옆으로 저마다 독특한 생김새를 자랑하는 민대가리오름, 장구목, 어슬렁오름, 윗세오름 등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윗세오름대피소(1700m)에 도착한다. 이곳 대피소가 어리목 코스의 종점이다. 대피소에서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하산은 영실 방향으로 잡는다. 윗세오름을 오른쪽으로 끼고 크게 돌면 샘터가 나온다. 이른 아침에 노루들이 목을 축인다고 해서 노루샘이다. 노루샘부터 병풍바위까지는 만세동산처럼 시원한 설원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선작지왓이다. 봄여름으로 털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으로 펼쳐지는 곳이다. 뒤를 돌아 보면 풍만하게 살찐 윗세오름과 방애오름이 보기에 좋다. 두 봉우리의 빵빵한 곡선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한라산을 깔고 앉아 한 발은 제주도 앞바다의 관탈섬에, 다른 발은 마라도에 얹고 빨래를 했다는 설문대할망의 엉덩이가 떠오른다. 설문대할망이 소변을 보자 땅이 파이면서 우도가 만들어졌다니, 제주 옛 사람들의 상상력은 참으로 통 크다. 병풍바위에서 급경사를 내려오면서 눈을 뒤집어쓴 영실기암을 구경하고, 분위기 그윽한 아름드리 적송 지대를 통과하면 산길은 끝이 난다. 한라산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토록 부드러운 눈길을 걸을 수 있을까. 어리목 광장에서 윗세오름대피소까지 4.7㎞ 2시간, 대피소에서 영실까지 3.7㎞ 1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산악전문작가 # 가는 길과 맛집 김포·청주·부산 등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부산·완도 등에서 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한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공단은 2월8일까지 금·토·일, 공휴일에 제주고~어리목 구간에 무료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시간은 08:00~17:00. 문의 (064)713-9950. 제주시 노형동의 흑돈가(064-747-0088)와 서귀포시 상예동의 쉬는팡가든(064-738-5833)은 흑돼지로 소문난 맛집이다.
  • 박용하 ”일본활동 중 우울증 시달려”

    박용하 ”일본활동 중 우울증 시달려”

    돌아온 ‘한류스타’ 박용하가 방송에서 지난 일본 생활 중의 아픔을 털어놨다. 2008년 SBS 드라마 ‘온에어‘의 까칠한 PD 이경민 역으로 5년 만에 브라운관에 돌아왔던 박용하. 하지만 그가 한국 드라마에 재기하기까지 남몰래 흘렸던 눈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4일 방송되는 MBC ‘네버엔딩 스토리’에서는 한류스타 박용하의 솔직담백한 모습을 담아낸다. 진행자인 나경은 아나운서가 만난 박용하는 소박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직접 손빨래를 하고 있었으며 옷장에는 티셔츠 2장과 외투 2벌뿐이었다. 박용하는 지난 5년 동안 일본에서 ‘배우’가 아닌 ‘가수’로서 활동하며 성공의 발판을 닦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거듭해 왔다. 싱글 앨범 8장, 스페셜 앨범 2장을 내며 한국 가수 최초로 4년 연속 골든디스크상을 수상했다. 한류스타 중 최초로 부도칸에서 콘서트를 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일본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박용하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며 “우울증과 자괴감 속에 큰 아픔을 겪은 세월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박용하의 소소한 일상과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진 MBC ‘네버엔딩 스토리’는 14일 오후 6시 50분에 방송된다.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세탁기 언제 돌려봤는지도 몰라요”

    시내버스가 하루에 6차례밖에 다니지 않는 오지 가운데 한 곳인 충북 제천시 봉양면 공전1리 건너담마을. 이곳 주민 50여명은 요즘 겨울가뭄으로 물이 나오지 않아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용천수를 물탱크에 받아 나눠 쓰고 있는데 가뭄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12월6일부터 1주일에 두번씩 소방서의 급수지원을 받고 있다.8일 마을입구에서 만난 건너담마을 3반장 안병동(52)씨는 물 얘기를 꺼내자 “짜증만 난다.”고 말했다.안씨는 “소방서도 다른 업무가 있는데 계속해 물을 갖다 달라고 하기도 이제는 미안하다.”며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씨는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 아들 놈은 개울을 건너 10분 정도 걸어 고모집에 가서 세수를 하고 학교에 간다.”며 “늦잠이라도 자면 세수도 못 하고 학교에 간다.”고 했다.물이 끊겨 웃지 못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마을 사람들은 비누칠을 하고 샤워를 하는 도중에 물이 나오지 않아 정신이 없었던 경험을 한두 번씩은 다 겪었다. 축사청소와 같은 허드렛일을 위해 파놓은 지하수를 하는 수 없이 먹는 집도 있다.서울에 살다 전원생활을 위해 3년전 이곳에 정착한 김종만(63)씨는 다가오는 설이 걱정이다. 김씨는 “명절에 10여명의 가족들이 우리집에 오는데 그때까지 물이 안 나올까봐 걱정”이라며 “물 때문에 명절도 지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최경희(60)씨는 밀린 빨래를 보여주며 “세탁기를 언제 돌렸는지 모르겠다. 여러 집이 한꺼번에 물을 쓰는 저녁 때가 되면 물이 꼭 안 나온다.”고 짜증을 냈다. 최씨는 “집집마다 식구가 많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건너담마을은 가뭄이 있을 때마다 상습적으로 물이 끊기는 곳이다. 몇 차례 제천시에서 수도공사를 해준다고 했지만 여전히 계획에 머물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가뭄에다 용천수와 탱크를 연결하는 관이 노후화돼 물이 새나가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제천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불황속 희망 찾는 70년대 생활체험

    불황속 희망 찾는 70년대 생활체험

    살림살이가 IMF 외환위기 때 못지 않게 어려워진 요즘, 불황의 고통을 향수로 달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EBS ‘리얼실험 프로젝트 X’는 6일부터 3주간 매주 화요일 오후 7시50분 ‘그때 그 시절, 다시 보는 1970년대’를 방송한다. 2009년 서울에서 참가자 9명이 1970년대 생활 체험에 도전했다. 제작진은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1970년대 생활을 체험해 보면서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지만 정이 있었던 그때를 돌아보고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2009년 서울에서 1970년대를 재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재개발 열풍으로 대부분의 1960~1970년대 가옥들이 철거된 데다, 남아 있다 해도 내부를 양식으로 개조한 곳이 적지 않아 마땅한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제작진은 서울 구석구석을 10여일을 헤맨 끝에 마포구 염리동에서 적합한 장소를 발견했다. 이후 1970년대식 각종 소품과 의상 등을 준비하는 데 또 다시 2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윤화섭(48)·우상문(50)씨 부부는 1970년대 초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든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고생스러웠지만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된 그 시절을 경험하고 싶어 실험에 지원한 이들 부부는 1970년대식 생활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둔 정영진(42)·진은자(35)씨 부부는 어렴풋이 1970년대를 기억한다. 이들은 방학을 맞은 두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실험에 지원했다. 하지만 석유 화로에 밥을 해 먹는 데서부터 손빨래까지 모든 것이 불편하다. 실험을 시작하며 학원을 가지 않게 된 아이들도 처음에는 놀 수 있다며 좋아했지만 컴퓨터와 게임기가 없는 생활에 점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또한 대학생 염가혜(22)씨와 김은주(22)씨는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대를 경험해 보고 싶어 실험에 참가했다.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한 방을 쓰기로 한 두 사람은 옛날식 집 구조와 각종 소품 등 1970년대식 생활이 모두 신기하고 재밌을 뿐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1970년대로 변신한 이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추운 마당에서 밥을 해 먹고 씻어야 하는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최근 1970년대에 대한 향수가 늘고 있는 것은 경기 침체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인간미가 살아 있던 따뜻한 시대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이주헌의 캔버스 세상]위작 왜 만들어지나

    [이주헌의 캔버스 세상]위작 왜 만들어지나

    연세의료원에 기증된 ‘떡 만드시는 어머니’가 위작 시비에 휘말렸다. 법정에서 진위를 가리게 된 ‘빨래터’에 이어 또 다시 박수근이라는 이름이 도마에 올랐다. ‘떡 만드시는 어머니’는 여러 기관으로부터 기증을 거부당한 전력이 있는 등 강한 위작 의혹을 받고 있어 앞으로 본격적인 감정 절차를 밟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 미술 시장이 커갈수록 우리는 이런 위작 시비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 위작 사례도 많이 나타나게 된다. 위작은 왜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위작이 만들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공할 경우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위작이 많이 떠도는 작가는 피카소와 달리, 샤갈 등 작품 값이 매우 비싸고 유명한 작가들이다. 물론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룬 대가들의 걸작을 모방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성공하면 이에 따른 ‘보상’이 크므로 이런 위조 노력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이런 예술작품뿐 아니라 비싸고 희소한 모든 것에는 위조물, 곧 ‘짝퉁’이 존재해 왔다. 돈을 목적으로 한 것을 제외하면,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 주지 않는 전문가들과 세상에 대한 위작자들의 보복심리가 위작을 만드는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위작 사건으로는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조해 나치에 판 ‘판 메헤렌 사건’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네덜란드 화상 판 메헤렌은 베르메르의 국보급 걸작을 적국에 팔아넘긴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판 작품이 진품이 아니며 직접 위조한 가짜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문제는 일부 전문가들이 오히려 이를 믿지 않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는 것. 과학적 검사로도 위작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자 판 메헤렌은 교도소에서 공식 입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달에 걸쳐 베르메르의 위작을 제작했다. 재료의 성분까지 베르메르가 활동했던 17세기 것으로 변조시켜 놓은 정교한 위작이 탄생하자 전문가들은 그때 가서야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 결과 나치와의 내통 혐의가 기각되고 미술품 위조 혐의만 인정되어 판 메헤렌은 징역 1년의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외에 미술사에 기록된 유명한 위작 사건으로는, 가짜 중세 조각들을 만들어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판 알체오 도세나 사건, 가짜 로렌초 메디치 부인상을 만들어 루브르 박물관에 판 바스티아니니 사건 등이 있다. 모두 전문가들마저 완벽하게 속여 넘겼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위작은 분명 미술시장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감정 기술의 발달과 함께 예술작품의 가치를 돈이 아니라 정신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사회 전체적으로 더욱 커지도록 우리 모두 애쓰는 길밖에 없다. <미술평론가>
  • [깔깔깔]

    ● 공처가의 고민 초췌한 모습의 공처가가 의사를 찾아갔다. “선생님.며칠째 악몽에 시달려요.” “자,진정하고 꿈 내용을 말해보세요.” “매일 밤 10명의 아내와 사는 꿈을 꾸거든요.정말 미치겠어요.”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그게 왜 악몽이죠?좋을 것 같은데….” “뭐라고요?그럼 선생님은 10명의 여자를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 본 적 있으세요?” ● 술취한 할아버지 시골길에서 취한 노인이 비틀거리고 있는 것을 본 젊은이가 얼른 달려가서 말했다. “할아버지.제가 좀 부축해 드릴까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괜찮아.저기 제멋대로 흔들리는 산이나 부축해 주어라.”
  • 연세의료원 기증 박수근 그림도 위작?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박수근(1914~65년)의 그림이 또다시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유화 ‘떡 만드시는 어머니’ 가 29일 연세의료원에 기증되면서 의혹이 불거졌다.법정공방이 진행 중인 ‘빨래터’에 연이어 도마에 오른 셈이다.문제의 작품은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절구 찧는 모습을 그린 30호(53×91㎝)짜리다.아트딜러로 활동 중인 정준씨는 29일 연세의료원에 작품을 기증하면서 “1945년작으로 추정되며 보관상태가 양호해 감정가액이 7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면서 위작 논란과 관련해 “작품의 시료를 채취해 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정씨는 “기증은 나의 생명이며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명지대 국제미술과학연구소 최명윤 소장은 “올 여름 기증의사를 타진받은 한 미술관의 의뢰로 해당 작품의 감정을 시행했다.”면서 “X선 형광분석기기로 촬영한 결과 박 화백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주장했다.시료 없이도 위작 판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특히 최 소장은 “시장터 모습이나 아이를 안은 소녀의 모습은 최소한 1950년대 이후에 나올 수 있는 도상이다.60년 이상된 그림으로는 절대 볼 수 없다.”고 말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눈이 자주 뻑뻑? 환기 좀 하세요!

    눈이 자주 뻑뻑? 환기 좀 하세요!

    겨울이면 안구건조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난다.안구건조증은 눈물 생성량이 부족하거나,눈물막의 구조가 불안정한 경우 또는 눈물의 증발이 많은 환경에서 눈 표면이 건조해지는 질환이다. 안구건조증이 오면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안구가 뻑뻑하고 자극이 심해 충혈이 잘된다.대한안과의사회 이헌일 학술이사는 “안구건조증은 생활습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질환인 만큼 평소 눈물을 마르게 하는 생활습관을 개선하고,증상이 심할 때는 적절한 치료를 받아 증상의 악화를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안과의사회 전문의들이 말하는 ‘겨울철 안구건조증 예방수칙’을 알아본다. ●실내온도 18도,습도는 60% 건조한 실내 공기는 안구건조증의 주요 원인이다.눈물의 증발속도가 빨라지면서 눈을 감싸고 있는 눈물막이 얇아져 건조함을 느끼는 것.따라서 실내에서는 가습기를 사용해 습도를 60% 정도로 유지하는 게 좋다.만약 눈이 심한 건조함을 느낀다면 별도의 개인용 가습기를 사용하거나 젖은 빨래,어항이나 잎이 넓은 화초를 활용하면 습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실내 쾌적하게 하루에 3회 이상 환기를 추운 겨울에는 환기 횟수도 줄게 마련이다.하지만 실내의 오염된 공기가 눈을 지속적으로 자극,염증을 유발해 만성적인 안구건조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특히 사무실 같은 밀폐된 공간은 천장이나 바닥,벽,사무기기 등에서 배출되는 유해물질 때문에 오염도가 더 심하다.하루에 3회 이상 환기를 시켜 실내 공기를 쾌적하게 유지해야 한다. ●히터 바람이 눈에 직접 닿지 않도록 겨울철 실내에는 종일 난방기가 작동되는 경우가 많다.난방기가 가동되는 실내의 습도는 여름의 절반 이하로 떨어져 안구건조증 위험을 높인다.난방기구의 사용시간을 적절히 분배해 실내온도를 18도 정도로 유지하는 게 좋다.히터 바람을 얼굴에 직접 쐬는 것은 금물.바람이 눈에 직접 닿으면 눈물의 증발이 빨라져 쉽게 안구건조증을 유발한다. ●50분마다 10분씩 눈을 감아라 컴퓨터 작업이나 독서처럼 눈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눈 깜박임이 줄어 눈물 분비가 원활하지 않다.건조한 실내에서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하는 경우라면 50분마다 10분씩은 눈을 지그시 감고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작업 중간에 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여 주는 것도 도움되지만 이때 너무 강한 힘으로 눈을 감으면 오히려 눈물의 배출을 증가시켜서 건조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또 컴퓨터 모니터를 시선보다 15도가량 낮게 설치하면 안구 노출면적을 줄여 눈물 증발을 줄일 수 있다. ●콘택트렌즈는 안구건조 부추겨 콘택트렌즈는 안구표면을 넓게 덮어 정상적인 눈물막 형성을 방해하고,재질 자체가 수분을 흡수할 수 있어 안구건조를 부추긴다.또 렌즈를 장기간 사용하면 안구표면에 염증을 유발,건조증이 더욱 심해지기도 한다.따라서 안구건조증이 문제라면 가능한 한 렌즈보다 안경을 착용하는 게 좋다.안경은 눈에 직접 가해지는 외부 자극을 줄이고,차고 건조한 바람을 막아준다. ●눈이 건조할 땐 스팀타월 마사지를 날씨가 건조할수록 충분한 수분을 섭취해 주면 좋다.1일 8잔 이상이면 충분하다.가벼운 눈 마사지도 안구건조증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다.눈 주변부나 관자놀이 부위를 가볍게 마사지하거나 상하·좌우로 눈운동을 해주면 좋다.이때 안구를 직접 압박하지는 말아야 한다.따뜻한 스팀타월을 5분 정도 눈 위에 올려놓는 눈 찜질은 눈가의 지방샘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증상이 심하면 적절한 치료 받아야 인공눈물은 일시적으로는 건조함을 해소하지만 근본적으로 안구건조증을 치료해 주지는 못한다.또 남용하면 방부제 때문에 눈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하루에 인공눈물을 3∼4회 넣어야 할 정도로 증상이 심하다면 병원을 찾아 전문의 진단을 받는 게 좋다.만약 눈의 염증이 원인이라면 안구건조증 치료제를 사용해 염증을 억제하는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도움말:대한안과의사회 이헌일 학술이사
  • [주말탐방] 재한 몽골인 학교를 가다

    [주말탐방] 재한 몽골인 학교를 가다

    낮 12시30분.조용하던 지하1층 식당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멀리서 아기종달새의 재잘거림 같은 청명한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금세 남색 조끼에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줄을 서기 시작한다.“야호 오늘 육개장이다!아줌마 저 국물 많이 주세요~”라며 1학년 자야(7)가 소리친다.급식을 타갖고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속닥거리기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하며 밥을 먹는다.그런데 잠깐.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가만히 들어보니 한국어가 아닌 몽골말이다.한국어와 몽골말을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 친구들은 재한몽골학교에 다니는 몽골 사람이다.한국 땅에 살지만 몽골인의 정체성과 문화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한 문화가 다른 문화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공존하는 진정한 다문화를 배우는 아이들이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재한몽골학교는 몽골 노동자 자녀들에게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1999년 12월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의 도움으로 설립됐다.선교회 건물 구석에서 8명의 학생과 함께 시작한 학교는 2004년 12월30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외국인학교로 인가를 받았다.2005년 7월 1회 졸업생을 시작으로 지난해엔 3회 졸업생을 배출했다.그동안 이곳 재한몽골학교에는 약 350명의 몽골 노동자 자녀들이 거쳐 갔으며 지금도 8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한국인들 편견에 아이들 피해의식도 커져 이곳 재학생의 90%는 이주노동자,주재원 등의 자녀로 오래 머물지 않고 곧 떠나는 아이들이다.고작 10%만 입학식과 졸업식에 모두 참여하게 된다.곧 떠나는 아이들의 절반 정도는 부모가 불법체류자 신분이다.한국에서 쫓겨날까봐 걱정하고 최저임금 받아가며 일하느라 바쁜 부모들은 도저히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다.게다가 일반 초등학교에서 잘 적응할 리 없는 아이들에게 재한몽골인학교는 단순한 배움의 장을 넘어서서 포근한 쉼터 같은 존재다.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1시20분.1~3학년이 모여 공부하는 교실에 갔다.16명이 한 방에 모여 몽골어로 책읽기 수업을 하고 있다.저학년은 한국말 수업을 하지 않고 몽골어를 익히는 데 주력한다.아이들은 몽골 현지에서 쓰이는 몽골어 교재를 읽거나 따라 쓰기를 하고 있고 담임인 뭉근체첵 선생님은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 하나하나가 틀리지 않고 잘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한다.풍경은 여느 초등학교 교실과 다르지 않다.교실 벽에는 세계전도와 칭기즈칸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고,문에는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붙여져 있다.‘인사를 잘합니다,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냅니다,게임기는 학교에 가져오지 않습니다’ 같은 정겨운 문구가 쓰여 있다. 돌뭉흐(7)와 인드라(9)는 집과 학교가 멀어 학교 근처의 어린이집에서 생활하고 있다.아무리 사감선생님이 엄마처럼 돌봐준다고는 하지만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울 나이다.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지내니 엄마 아빠 생각이 많이 나지는 않는다고 둘은 입을 모아 말한다.돌뭉흐는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서 10시40분에 학교에 도착해요.세수하고 책가방 챙기는 건 모두 나 혼자 해요.다 입은 옷은 세탁기에 넣고 빨래도 해요.”라고 말하며 꽤나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인드라는 몽골에서 태어나 3살 때 한국에 왔다.몽골 사람인 엄마가 한국인 아빠와 재혼해 한국에 오게 된 것.늘 바쁘게 일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한국 문화를 많이 접해볼 일은 없었다.그래도 학교에 다니기 전에는 한국어 학원에 다니는 등 나름의 노력은 하고 있다.요즘 한창 태권도에 맛을 들인 인드라는 “태권도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라며 태권도 품새를 제법 그럴듯하게 흉내내보였다. ●한국어·영어·IT등 수준별 분반 수업 오후 2시5분에 5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3학년인 따시까(10)와 2학년인 푸랩수랭(8)은 교실을 박차고 나와 합주 수업에 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서둘렀다.따시까는 1~3학년 교실에서 가장 나이가 많지만 거꾸로 키는 그 반에서 제일 작다.호르몬 계통에 문제가 있어 키가 많이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매일 사탕과 비슷한 약을 먹어야 한다고 따시까는 말했다.지난해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따시까는 몽골에서 태어났는데,천호동에서 식당일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왔다.아직 한국말이 서툰 따시까는 “몽골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어” 학교 오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일반 초등학교에서라면 작은 키 때문에 ‘왕따’가 됐을 법도 한데,친구들이 자기를 놀리는 일은 그다지 없다며 따시까는 배시시 웃는다. 그런 따시까의 옆에서 “전 얘 조금만 놀려요.”라며 장난스럽게 웃는 푸랩수랭은 밝고 활발한 성격으로 학급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한국인인 아버지와 몽골인인 어머니를 두고 있는데,아버지는 푸랩수랭이 4살 때 하늘나라에 가셨다.혼자 남은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푸랩수랭을 키운다.몽골에 계신 할머니와는 연락하지 않는다.마냥 밝을 것만 같았던 푸랩수랭은 엄마 얘기를 하자 눈물을 글썽인다.“나중에 크면 꼭 의사가 돼서 우리 엄마 아픈 데 고쳐줄 거예요.”라고 말하는 푸랩수랭에게서 결 고운 마음씨가 느껴진다. 재한몽골학교에서는 한국어와 몽골어 외에 영어,수학,몽골역사와 몽골윤리 등의 필수과목과 음악,미술,과학실험,태권도,IT교육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몽골 두 나라 교육과정상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교과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8명의 몽골인 전담교사와 20여명의 한국인 교사들로 구성된 교사진은 몽골학생들의 학력과 한국어 수준을 감안하며 수준별 학습을 하고 있다.몽골어로 진행되는 몽골어와 수학의 경우 몽골 현지와 동일한 교재를 사용해 학생들을 나이에 맞게 학년별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어와 영어,IT 등 한국어를 사용하는 수업은 학생의 수준에 맞춰 분반 수업을 한다. ●한국·몽골 교류 가교역할 기대 매주 수요일에는 특기적성 수업이 있다.사물놀이,태권도,연극 등 각자 좋아하는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다.학교 근처의 한 빌라에서는 사물놀이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7학년 할리온(12)과 6학년 엥흐차츠랄(11)을 비롯한 6명이 특기적성 강사인 유병례 선생님과 장구를 치며 박자를 맞춰보고 있었다.“덩 쿵따쿵/덩 쿵따쿵/덩 따쿵따/쿵 덩아” 학생들은 선생님과 함께 ‘길군악’ 장단을 맞춰보고 있었는데 3초도 채 되지 않아 장단은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무수한 소음으로 흩어지고 말았다.선생님이 장단을 제대로 치는 학생에게는 초콜릿을 주는 등 유인책을 마련했지만,절묘한 리듬감을 요하는 장구는 학생들에게 어렵기만 하다.장구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처음 배우게 됐다는 할리온은 “어렵지만 재미있다.앞으로도 계속 장구를 치고 싶다.”고 했다.한국 국적이 없는 부모님 때문에 이번 학기가 끝나면 몽골로 돌아가야 한다는 엥흐차츠랄은 “몽골에 가도 장구를 치고 싶은데…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며 진지한 표정으로 선생님에게 자문을 구한다. 재한몽골학교는 학생들에게 ‘몽골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강애 교감은 “몽골어와 한국어,영어 등 최고의 교육을 통해 이 아이들이 몽골로 돌아갔을 때 각 분야의 리더가 되고,또 한국과의 가교를 잇게 하는 것이 우리 학교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이나 몽골,어느 한 쪽의 문화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사는 몽골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체화하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일부 한국인의 편견과 몽골 어린이들의 피해의식이 겹치면서 재한몽골인학교의 이런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재학생들이 몽골인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면서도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하는 것이 재한몽골인학교의 남은 과제다. 글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이강애 교감 인터뷰 “한국 정부 지원 없어… 재정적 어려움 가장 커” 재한몽골인학교가 여느 외국인학교와 다른 점은 몽골이라는 작은 나라의 학생들을 교육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편견은 심하고 재정은 열악하다.재한몽골인학교의 이강애 교감은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어도 결국은 돈 문제에서 어려움에 부닥친다.”면서 작은 외국인학교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학교 운영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재정인가. -아이들 수업비가 점심값을 포함해 한 달에 6만원이다.기숙사에 사는 아이들은 하루 세 끼를 제공하는데도 한 달에 8만원이다.부모가 노동자이거나 실직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어려운 아이들에게 수업료를 도저히 많이 받을 수 없다.몽골인 입장에서는 한국에 아무나 오는 것이 아니다.수입은 이렇게 적은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후원자들의 사정도 나빠졌다.2004년 인가를 받은 후 한시적으로 특별교부금을 지원받았지만 우리 학교는 서울시에서 지원받는 예산도 없다.지금 아이들이 컨테이너 박스를 교실 삼아 공부하고 있는데,그걸 바라보는 게 너무 안타깝다. →재학생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이다.주변 초등학교와 중학교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며 놀리거나 무시하는 일이 잦다.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나는 왜 몽골에서 태어났을까.”라며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겉보기에는 한국인과 다른 점이 거의 없으니 몽골인임을 감추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그러나 우리는 “너희들이 몽골인임을 항상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몽골에 보탬이 될 사람임을 믿기 때문이다. →가장 보람있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당연히 아이들이 잘 자라주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졸업한 친구들이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무사히 진학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 가장 기쁘다.1990년대까지만 해도 몽골 근로자들은 짐승같은 취급을 받았고 이들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그러나 몽골 근로자들의 상황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보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양천구,방학중 청소년 자원봉사 특별행사 마련

    양천구는 겨울방학을 맞은 청소년을 위해 다양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2일 양천구에 따르면 겨울방학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따뜻한 동화(冬話) 만들기’로 정했다.오는 29일부터 내년 2월6일까지 9개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먼저 ‘생명의 모자 뜨기’는 큰 일교차로 체온 유지를 못해 죽어가는 아프리카 신생아들에게 보내 줄 털모자를 만든다.학생들이 집에서 틈틈이 털모자를 만들어(최대 2개) 프로그램 운영기간 내에 자원봉사센터로 내면 된다.털모자 제작키트는 인터넷 등을 통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생명의 모자 뜨기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린다는 취지뿐 아니라 학원 수업 등 시공간 등에 제약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딱’ 맞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 또 구의 대표적인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사랑의 빵 나누기’도 겨울방학 중 청소년들과 함께 진행한다.제빵 자격증이 있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빵을 만들어 저소득 소외계층에 직접 배달한다.빵을 만든다는 새로운 경험과 함께 어려운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다.이 프로그램은 재료비로 5000원을 받는다. 온가족이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경기 김포시에 위치한 사회복지시설에 부모님과 함께 방문해 청소·빨래 등 봉사활동을 하는 ‘온가족이 다함께’는 내년 1월 한 달간 두번 열린다. 이 밖에 청소년들이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인식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 기본교육도 한다.그동안 기본교육을 수강하지 않았던 청소년이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또 저소득 홀몸 노인들을 위한 케이크 배달,행정봉사,지하철 역내 캠페인 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했다.참가 신청은 자원봉사센터(2644-4750)로 하면 된다. 이경섭 주민생활지원과장은 “이번 프로그램은 겨울방학 중 청소년들이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나누는 기쁨과 실천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위작 시비 박수근 ‘빨래터’ 법원 간다

    미술품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이 위작 논란에 휩싸여온 박수근(1914~1965) 화백의 유화 ‘빨래터’의 감정을 법원에 신청하기로 했다.서울옥션은 18일 “‘빨래터’와 함께,서울대의 과학 감정 때 비교 대상으로 사용된 박수근의 ‘고목과 여인’,‘빨래터’의 당초 소장자인 존 릭스가 박수근 작품이 놓여 있는 방에서 찍은 사진 원본 등에 대해 법원 감정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빨래터’는 지난해 5월 서울옥션에서 45억 2000만원에 거래된 뒤 지난해 12월 미술 전문 격주간지 ‘아트레이드’가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진위 논란이 불거졌다. 서울옥션은 올해 1월 아트레이드 측을 상대로 명예훼손 등에 따른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법원 감정은 담당 재판부가 내년 1월12일까지 양측으로부터 재감정 방식에 대한 의견을 받아 추가 과학감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동방신기, 카리스마 벗고 ‘일상모습’ 화보 출간

    동방신기, 카리스마 벗고 ‘일상모습’ 화보 출간

    5인조 남성그룹 동방신기의 일상적인 모습이 화보로 담겨 눈길을 끈다. 최근 동방신기는 패션잡지 ‘싱글즈’와 1박 2일의 밀착 파파라치 화보 촬영을 진행,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무대 밖의 모습을 팬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화보 촬영은 활동곡 ‘주문-미로틱’과 ‘롱 넘버’를 통해 부각됐던 강렬한 남성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동방신기의 천진난만한 일상 모습을 담는데 주력했다. ’싱글즈’ 측은 멤버 유노윤호,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최강창민이 소파에서 낮잠을 자거나 빨래를 하고, 음악을 듣는 등 평범한 소년으로 돌아간 동방신기의 꾸밈없는 모습을 담아내는데 주력했다. 화보를 제작한 관계자는 “화보 촬영이었지만 쉬는 듯한 느낌을 담아낸 촬영이었기 때문에 동방신기 역시 편안한 분위기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 스텝들까지 즐겁게 만드는 동방신기에게 제작진의 칭찬이 자자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동방신기 리얼리티 화보 ‘동방신기 OFF stage’는 ‘싱글즈’ 1월호 별책으로 함께 출간된다. 사진 제공 = ‘싱글즈’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가산동 주민센터 자원봉사, 무의탁노인 빨래 도와드려요

    금천구의 가산동주민센터가 거동이 불편한 관내 저소득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행복나눔 빨래터’를 운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가산동주민센터는 지역 독지가들로부터 세탁기와 건조기 등을 기증받아 주민센터 안에 ‘행복나눔 빨래터’를 설치,이달부터 새마을부녀회·적십자·자원봉사캠프 등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세탁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세탁서비스는 매주 1회 자원봉사자들이 순번제로 무의탁 노인들을 수시로 방문해 말벗도 돼 주고,세탁물도 수거해 세탁한 뒤 집까지 배달해 주는 맞춤형 복지서비스다. 노년의 외로움에 거동까지 불편한 노인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세탁서비스를 자원한 봉사자들은 “독거 노인들이 깨끗이 빨아놓은 세탁물을 받아보시고는 매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예전의 나와 다른 모습으로 언젠가 남자대회 출전 재개”

    “예전의 나와 다른 모습으로 언젠가 남자대회 출전 재개”

    “눈 감고 귀 막고 그저 연습만 했어요.하구(그리고)‥·,이젠 대회 많이 나가구,우승도 많이 하구 싶어요.아픈 건 싫어요.” 2주 전 퀄리파잉스쿨 공동 7위로 미여자프로골프(LPGA) 무대에 서게 된 미셸 위(19·나이키골프)가 그 동안의 속앓이를 털어놨다. 지난 12일 2년 만에 한국을 찾아 할아버지인 고 위상규 서울대 명예교수의 장례식에 참석한 위는 16일 기자들과 비공식으로 만난 자리에서 “5년 전만 해도 그냥 (공을) 두들겨 팰 만큼 어린애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더 영리해졌다.”면서 “옛날과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되고 싶다.”며 먼 길을 돌아온 LPGA 투어에서 정식 멤버로 뛰게 될 각오를 밝혔다. ‘1000만달러의 소녀’로 화려하게 프로 무대에 데뷔했지만 첫 대회 실격과 무리한 남자대회 출전,그리고 손목 부상으로 2년 만에 ‘망가진 소녀’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터.그러나 위는 지금 자신의 말대로 한껏 성숙해지고 영리해진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는 “(부진으로) 진짜 고생 많이 했다.아픈 손목이 변명이 될까봐 더 열심히 쳤는데 그럴수록 손목이 더 안 좋아졌다.”면서 “몸은 물론,마음까지 많이 힘들었지만 그동안 학교 공부와 운동 모두 열심해 했다.옛날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고 다부지게 말했다.새해 소망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가능한 한 많이 LPGA에 출전하는 것.그러나 그는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남자대회에 다시 출전하겠다.”면서 “마스터스는 어릴 적 골프채를 잡을 때부터 꿈꿔왔던 것”이라고 말해 적절한 시기에 ‘성대결’에 다시 나설 것임을 내비쳤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의 고등학교 후배로 스탠퍼드대 3학기째인 위는 “(대학)팀 선수들과는 달리 내겐 학업에 관해 어떤 예외도 없기 때문에 공부와 운동을 함께 하기가 매우 힘들다.”면서 “하지만 골프 연습과 수업 등 촘촘하게 짜 놓은 시간표에 충실한 덕에 지난 학기에는 버디(B학점) 1개를 제외하곤 전부 이글(A학점)을 받았다.”고 자랑했다.“기숙사 생활 초반에는 커피물을 끓이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주전자를 통째로 넣는 실수도 저질렀지만 이제는 손빨래도 직접 할 정도로 익숙하다.”며 자리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위의 장타는 어디로 갔을까.연습 라운드에서 세운 최장타는 392야드,공식 대회 최고 기록은 340야드다.위는 “이제 거리보다는 정확도와 일관성이 더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퀄리파잉스쿨 때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굉장히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230야드 세컨드샷을 한 번에 그린에 올리는 대신 레이업으로 두 번에 잘라치는 등 무리하지 않는 경기로 주위를 깜짝놀라게 했다.그러면서도 위는 “그때 (끊어치려니)진짜 답답했다.하지만 퀄리파잉스쿨이니까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고 넉살을 피웠다. “합격 직후 신인 오리엔테이션에서 신지애(20·하이마트)와 양희영(19·삼성전자)과도 인사를 나눴다.”는 위는 “내년에는 정말 훌륭한 신인들이 많다.”면서 “소렌스탐이 은퇴해 슬프기도 하지만 정말 기대된다.”며 웃었다.위는 오는 24일 성탄 전야를 불우 아동들과 함께 보낸 뒤 26일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빨래터’ 진위 또 미궁속으로

    위작 논란에 휩싸여온 박수근(1914~1965) 화백의 유화 ‘빨래터’의 진위가 가려지지 않았다.서울대학교 기초과학공동기기원은 12일 빨래터를 진품으로 판정했던 이 연구원 소속 윤민영 정전가속기연구센터장을 해임했다.“최종 검증 절차가 끝나지 않은 예비 분석 결과를 공개해 혼란을 야기하고 이 과정에서 서울대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의 신뢰를 손상시켰다.”는 게 이유였다.그러나 진위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연구원 이인성 원장은 “지난 7월 예비 결과와는 차이가 있지만 연대 해석은 과학자들의 계산 방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어 어디까지나 참고치일 뿐”이라고 말했다.공동기기원은 수정된 최종 결과 보고서를 분석 의뢰자인 서울옥션측에 발송했으며 해당 자료의 공개여부는 서울옥션의 결정에 달렸다고 설명했다.서울옥션 관계자는 “보고서에서는 17세기부터 1954년까지 4개 구간 중 어느 구간이 가장 가능성 있는 구간인지 확답하기 어렵다고 쓰여 있었다.”면서 “이번 조사에서도 제작연대가 최소한 1950년대를 넘어서지는 않는 것으로 밝혀진 만큼 오히려 진품일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명지대 최명윤 교수는 “이번 보고서는 방사성탄소성분비에 대한 기초 데이터 값 자체의 조작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것이 문제”라며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빨래터는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형인 박연구(64) 삼호산업 회장이 서울옥션 경매에서 구입했으나 진위 논란이 일자 지난 10월 초 서울옥션 측에 되넘긴 것으로 지난 4일 확인됐다.문소영 박창규기자 symun@seoul.co.kr
  • 토 달고 살지 말지어다!

    토 달고 살지 말지어다!

    어느 일요일, 동네에 사는 후배가 아침 댓바람부터 우리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간밤에 부부싸움을 한바탕 하고 쫓겨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후배는 ‘스위트홈’ 구현의 비결을 물어왔습니다. 저는 담백하게 다음과 같이 노하우를 전수했습니다. 사랑하는 아우야! 결혼생활을 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특히 휴일엔 가사가 많고 오랜 시간 부비고 있기에 충돌을 피할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 노하우란 한마디로 ‘토 달지 말기’다. 일요일 오전 내내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다가도 우리 집 박 여사가 청소할 테니 일어나라고 하면 잽싸게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가 논다. 일어나라는 명령에 미적대거나 “이따가 하면 안 될까?” “조용히 좀 하자” 등의 쓸데없는 토를 다는 것은 명랑한 결혼생활을 저해하는 금기 사항이다! 일요일은 분리수거 날이다. 티브이에서 아무리 중요한 장면이 상영되더라도 우리 집 박 여사가 정리를 끝내고 “분리수거 가자!”고 외치면 5분 대기조처럼 발딱 일어나 따라가야 한다. 이 역시 미적대거나 “딸들아, 너희들이 가면 안 될까?” “다음 주에 모아서 내자” 등의 말을 내뱉어선 안 된다. 또 일요일에 특별한 외식 계획도 없이 집에서 세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경우 ‘삼식이’라 불린다는데, 마누라께서 라면을 끓이는데 불경스럽게도 “웬 라면?”이라든가 “라면이 왜 불었어?” 또는 “계란 안 넣나?” 등의 군소리는 금물이다. 일요일에 먹는 모든 반찬은 무조건 대장금이 한 것보다 맛있다고 자기최면을 걸어야 한다. 좀 더 달라는 요청도 밥 먹다 말고 왔다갔다 하게 되니 되도록 하지 말아라. 물은 셀프! 먹고 난 밥그릇은 손수 싱크대로 나르는 것이 만수무강의 지름길이다.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지난주에 잘못한 일이 있거든 만회할 특별 찬스가 있다. 바로 빨래 개키기다. 베란다에 널은 빨래를 조용히 걷어다가 대충 개켜라! 나중에 박 여사가 다시 개키더라도 일단 그 행동이 중요한 거다! 이상 오늘의 기본교육 끝!
  • [굿모닝 닥터] 기저귀 차는 어르신들

    어느 날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가 병원을 찾았다.자식들과 떨어져 시골에서 홀로 농사를 짓는 분이었다.그는 평소에 변을 참지 못하고 실수하는 경우가 많아 기저귀를 차고 산다고 했다.이제 농사도 힘에 부치고 자식들과 같이 살아야 할 처지가 되어 걱정이 크다고 했다.“며느리에게 기저귀 갈아 달라는 것을 시키기가 미안하고,기저귀 빨래까지 시킬 것을 생각하니 창피해 죽을 맛”이라는 것이었다.이웃 중에 변을 참지 못하고 실수하는 한 아주머니가 수술을 받고 좋아졌다기에 망설이다 겨우 용기를 내 병원을 찾아온 것이었다. 용변 생각이 들어 화장실에 가려고 해도 화장실에 가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변이 새는 것을 ‘변실금’이라고 한다.일반인 상당수가 어렸을 때 갑자기 변의를 느껴 미처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한두번 팬티에 변을 지리는,두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괄약근이 약해 그럴 수도 있다.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화장실에 가겠다는 말을 부끄러워 하지 못하다가 그만 실수를 하는 것.그러나 이 불쾌한 실수들이 무의식적으로 반복된다면 이것은 추억이 아니라 고통이 되고 만다. 변실금은 신경손상으로 인해 항문을 오므리는 근육이 마비를 일으켜 생길 수도 있고,직장이탈 등의 병으로 인해 생기기도 한다.치질을 치료하는 약물주사를 잘못 사용하면 항문 조직이 썩어 변실금이 생기기도 한다.그러나 가장 흔한 사례는 수술이나 분만,외상 등으로 생기는 변실금이다. 특히 심한 ‘치루’ 수술 후 괄약근이 손상돼 변실금이 나타나기도 한다.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은 나이가 들면서 변실금이 의외로 쉽게 생긴다.가정에서 분만했거나 병원분만을 했더라도 심한 회음부 손상을 입었다면 변실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그 할머니는 시골에서 6남매를 낳으셨다고 했다.옛날이라 집에서 분만을 했고 셋째는 난산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검사 결과 회음부 손상으로 인한 변실금이었다.수술로 회복이 가능한 상태였다.너무 오랫동안 괄약근을 쓰지 않아 근육 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섬유화’와 ‘퇴화’가 진행됐다면 수술을 받아도 결과가 썩 좋지 않을텐데 다행히 그 할머니의 수술 경과는 좋았다. 그는 “이젠 한시름 덜었다.”며 기분 좋게 퇴원했다. 외과의사의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종균 송도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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