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48)20세기의 마지막 필화사건들
서울 올림픽의 해였던 1988년,한국 문단에는 두 필화사건이 창작의 자유를압박했다.하나는 주인석의 희곡 ‘통일밥’이었고,다른 하나는 이기형 시인의 실록 연작시집 ‘지리산’이었다.
김건원과 서울대 연극회원들의 도움으로 주인석이 지은 희곡 ‘통일밥’은한국 현대사를 축약시킨 전 13장의 다분히 실험적인 작품이었다.1988년 6월4∼8일까지 서울대 총연극회 제30회 정기 공연작이었던 이 희곡은 대학가의인기 상승에 힘입어 같은 해 8월 4∼7일까지 연세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재공연 되었는데 바로 다음날인 8일 작가가 구속 당했다.
장시우와 그의 아들 해방,손자 동민 3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한 분단의 아픔과 8·15부터 1988년까지의 민족사를 ‘통일밥’은 투시하고 있다.해방의 혼란 속에서 노동자 자치운동을 하다가 감시를 피해 본의 아니게 월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장시우,그로 말미암아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갖은 수모를당하는 남한의 식구들이 팽팽하게 긴장미를 고조 시키다가 1984년 대홍수 때 북한 적십자사가 보내온 쌀로 ‘통일밥’을 짓는 것으로 남북의 동질성을강조한 이 작품은 다분히 전위적이다.
문제가 된 것은 해방 직후에 내걸었던 인공기였는데,이미 알려진대로 이 때의 ‘인공기’와 북한의 그것은 다른 것일 뿐만 아니라,장식용 소품으로 등장했다는 점 등으로 주인석은 9월 23일 기소유예로 석방,‘통일밥’ 필화는막을 내렸다.
원로 시인 이기형의 ‘지리산’은 ‘실록 연작시’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들을 취재하여 부각시킨 점이 돋보여 1988년 12월에 초판이 나오자 매진,재판에 돌입했는데 당국의 압수 수거 조처를 받았다.이어 출판사에 대한 수색이 진행되더니 1989년 2월 방송 뉴스로시집 ‘지리산’을 의법 조처하겠다고 예고한 뒤 아침출판사 정동익 사장을구속하고는 고령의 이기형 시인은 불구속 기소했다.해방 직후 이승만 정권의 오류를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춘 이 연작시는 법정으로부터 정부가 선언한각종 통일 정책과 국가보안법 처벌은 무관하며,표현의 자유라 할지라도 체제 전복에 이용 당할 여지가 있는 작품은 용납하지 않는다는요지의 유죄 인정으로 시인과 발행인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지리산은 아마 한국 필화사 중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산일 것이다.1989년 4월 오봉옥 시인은 장시 ‘붉은 산 검은 피’(실천문학사,전2권)를 펴냈다.1930년대의 항일투쟁부터 1946년 10월 항쟁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이 장시는 “젊은 시인답지 않은 기량의 완숙함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최원식)거나,“남한 노동자 계급의 독자성을 견지하려는 힘과 주류적 혁명전통의 영향력을 확대 부식하고자 하는 힘 간의 갈등·충돌의 문예적 반영”(김명인),혹은 “일제 말기에서 해방 직후까지 민족의 생활상을 여실하게 그려낸 뛰어난 대서사물”(최유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이 시집 역시 필화로 가는 과정은 비슷하여 처음에는 수거,판금조치가 내려졌다가 서서히 출판사를 조여가며 구속,기소의 단계로 들어선다.
실천문학사 사장 이문구,주간 송기원,그리고 시인 오봉옥을 각각 충청도,서울,광주에서 도주의 우려라는 이유로 전격적으로 동시에 연행한 것은 1999년 2월 22일.송기원과 오봉옥은구속,이문구는 불구속으로 기소됐다.오봉옥과이문구는 제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송기원은 ‘민중교육’지 사건누범 기간이라 6개월의 실형을 언도 받았다.
마지막 하나의 필화가 남았다.그것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지금 기소중인 이 작품은 아마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한국문학의 마지막 필화가 될 것이다.
[任軒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