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가문의 쓴소리/조성기 지음
선비의 일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수기(修己), 치인(治人), 그리고 입언(立言)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두에 부족함이 없을 때 우리는 그를 군자라 부른다. 일찍이 조선의 문신 허균은 이렇게 썼다.“군자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채워 뒷사람에게 남기는 것이다.” ‘채워진 사람’, 곧 된사람이 선비요 군자라는 얘기다. 도가 흔들리고 원칙이 도전받는 시대, 우리는 더욱 선비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론 자상하고 때론 근엄했던 조선의 선비들이야말로 참다운 인생의 스승이다.
‘양반가문의 쓴 소리’(김영사 펴냄)는 작가 조성기(55·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의 저작 ‘사소절(士小節)’을 우리 시대에 맞게 풀어쓴 책이다.
정조 때의 문인 이덕무는 서자 출신이지만 박학다식하고 시와 문장이 뛰어나 젊어서부터 많은 저술을 남겼다.‘사소절’은 도덕과 예절이 무너져 사회가 피폐해져가는 당대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쓴 일종의 수신서. 사소절이란 문자 그대로 선비의 작은 예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당시 선비란 이상적인 인간의 전형이었던 만큼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덕무는 ‘사소절’ 첫 머리에서 “작은 행실을 조심하지 않으면 결국 큰 덕을 허물게 된다.”는 ‘서경’의 한 구절을 인용, 책의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시대의 이상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존재였던 선비. 그들은 고상함과 비속함, 남루한 현실과 고매한 이상, 체면과 실리 사이에서 고뇌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다. 책에 나오는 사례들은 조선 선비의 흥미진진한 생활 풍속을 시시콜콜한 데까지 보여준다.
이덕무는 모든 화의 근원인 ‘말’에 대해 유난히 많은 말을 하고 있다. 비록 내가 아는 이야기라도 상대방이 신나게 말하고 있으면 끝까지 들어주는 상청기경(詳聽其竟)의 예를 지킬 것, 말은 자상하되 요점을 알 수 있도록 명료하게 정상간(精詳簡)의 원리를 따라 할 것, 아랫사람을 부를 땐 섬장(纖長, 가늘고 긺)하고 번폭(煩暴, 번거롭고 사나움)한 어투를 피할 것…. 그런가 하면 절불가수답(切不可酬答)이라 해 절대로 대답해선 안 되는 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음란하고 문란한 음설(淫),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기산(譏), 살기가 감도는 원한의 말 등은 들어도 못들은 척, 무관심한 척 상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조선의 선비는 거울도 멋대로 보지 못했다(?). 이덕무는 남자는 모름지기 옷과 관을 바르게 하는 정의관(整衣冠)과 남을 바라보는 태도를 존엄하게 하기 위한 존첨시(尊瞻視), 이 두 가지 경우 외엔 거울을 봐선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거울을 보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표정을 연습하는 행위에 대해 구역질이 난다고 쓴 것을 보면 당시 남자들이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이 흔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덕무는 결혼한 신랑을 거꾸로 매다는 풍습에 대해서도 매섭게 비판한다. 조선시대에는 신랑의 발을 매달고 때리는 괘각타박(掛脚打撲) 풍습이 널리 행해졌다. 한국전쟁 때 미군이 어느 마을에 들어갔다가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걸 보고 빨갱이로 착각해 총으로 쏴 죽였다는 일화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이덕무는 이런 해프닝을 버려야 할 비루한 풍습으로 규정한다.
책은 주도에 관해서도 친절한 지침을 내린다. 그 중 하나가 축미가기(蹙眉呵氣)다. 축미는 이마를 찌푸리는 것을, 가기는 숨을 크게 토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독한 술을 마신다고 민망하게 이맛살을 찌푸리며 ‘카아’같은 소리를 내선 안된다는 것이다. 술을 마신 뒤 혀로 입술을 핥는 설략순(舌掠脣), 술자리에서 술맛이 안좋다느니 안주가 시다느니 짜다느니 품평하는 품산함(品酸 ),‘원샷’하듯 급하게 마시는 질음(疾飮) 등도 모두 진정한 술꾼이라면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본격소설과 고전재해석 작업을 병행해온 조 씨는 “‘사소절’은 생활 속의 작은 예절들이 무너져가는 요즘 정말 필요한 책임에도 주목받지 못했다.”며 “책 속의 명구들을 하루 하루 묵상하듯 되새겨보면 믿음직한 인생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1만 2900원.
김종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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