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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네티즌 “‘기부천사’ 문근영을 본받자”

    中네티즌 “‘기부천사’ 문근영을 본받자”

    배우 문근영의 기부에 대해 일부 악성댓글과 ‘빨갱이 핏줄’ 등의 글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중국 네티즌들은 ‘본받을 만한 훌륭한 행동’이라며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근영은 최근 ‘사랑의 열매’에 총 8억 5000만원을 기부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개인 기부자로 확인되면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군사 평론가 지만원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빨갱이 가문을 명문 가문으로 선전하는 일”이라고 주장했고, 이 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네티즌들이 악플을 올리면서 때 아닌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소식이 중국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중국 네티즌들은 “문근영의 선행에는 이유가 없다.”며 문근영을 옹호하는 분위기다.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닷컴’(baidu.com)에 개설된 문근영 관련 게시판에는 문근영의 기부와 관련된 각종 소식들이 발 빠르게 전달되면서 네티즌들의 ‘칭찬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아이디 ‘明來也’의 네티즌은 “문근영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올렸고 또 다른 네티즌 ‘梦牵蓝水’는 “홍콩과 대륙에도 문근영 만큼 돈을 많이 버는 배우들이 있지만, 누구도 문근영처럼 하지는 않는다.”며 자국 배우들에게 충고를 건네기도 했다. 또 “천사가 따로 없다. 중국 연예인들도 그를 본받아야 한다.”(”オov沋er恩熙), “문근영을 비방하는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선행에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문근영을 지지한다.”(付临春)며 응원했다. 한편 문근영의 기부 논란에 대해 소속사 측은 “색깔 논쟁 등은 자연스레 수그러들 것”이라며 “특별한 대응을 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중권 “아주 앙증맞은 지만원 어린이”

    진중권 “아주 앙증맞은 지만원 어린이”

    “지만원씨의 상상력이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합니다. 개그계에서 바짝 긴장해야겠어요.”  대표적인 진보 논객인 진중권 중앙대 교수가 “배우 문근영 선행은 빨치산 선전용”이라고 주장한 보수논객 지만원씨를 꼬집었다. 진 교수는 18일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 ‘간첩들의 암호 신윤복 코드?’란 제목으로 “지씨의 글은 70년대에 반공 초등학생이 쓴 글을 보는 듯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갑자기 ‘신윤복’이라는 인물이 사회에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좌빨(좌익 빨갱이)이 있다는 지씨의 발상은 아주 앙증맞다.”며 “이 분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앙증맞아지시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지씨를 ‘지만원 어린이’라고 지칭한 진교수는 지씨의 발상이 반공주의가 일으킨 사회적 강박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씨의 다채로운 망언 중 ‘광주 망언’ ‘김구 망언’이야 이념적인 문제가 걸려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여동생’이라 불리며 선뜻 내놓기 어려운 거액을 기부한 문근영씨까지 굳이 빨간색 배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못 견디는 (지씨의) 집요함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근영의 선행이 때아닌 색깔론으로 번지면서 보수·진보세력간 공방이 가열될 전망이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지만원 “난 문근영 악플 진원지 아니다” 익명의 ‘기부 천사’ 알고보니 문근영 MB-이재오 만났나? 안 만났나? 내일도 ‘코트에 바바리’…바람도 ‘쌩쌩’  
  • [신경림 누항 나들이] 죄가 의심스러울 때는 벌은 가볍게

    [신경림 누항 나들이] 죄가 의심스러울 때는 벌은 가볍게

    몇해 전 파리에 갔을 때다. 서너 명이 피켓을 들고 서 있어서, 동행한 유학생에게 그 피켓에 써 있는 글귀의 뜻을 물었더니 사회주의 이상의 지평은 없다 뭐 그런 뜻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프랑스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저 정도라고 감탄하기를 잊지 않았다. 나는 그 학생이 최근의 우리 사정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한 마디 했다. 우리도 저 정도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미 누리고 있다고. 그 예로 나는 인사동 술집에서 김정일 장군이 내려오면 서울이 눈물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들었다. 아무도 헛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고발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터로,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튼튼해졌다는 증좌가 아니고 무엇인가. 오랫동안 외국에 나와 공부하고 있는 그 젊은이는 불과 20여년 전 정부를 비판하거나 월북한 작가의 책 한 권을 간직하고 있다가 빨갱이로 낙인 찍히던 우리 현실을 구체적으로는 알고 있지 못했다. 이 말을 하면서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적어도 자유나 민주주의에 관한 한 서구나 미국에 대하여 우리가 기죽을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나는 제법 큰 소리를 쳤다. 이제 이 큰소리가 쑥 들어가게 됐다. 사실 한 전직 교수의 돈키호테적 행각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은 사회주의가 총체적으로 몰락하고 베일에 가려졌던 북한의 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마당에 그의 주장에 동조할 사람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듯 안보의식이 해이해서가 아니라는 소리다. 죽은 것도 살려서 소중하게 쓰는 것이 학문일진대 그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 해독을 끼치리라는 주장은 말 그대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나치를 아는 것도 중요한 것은 그 이론에서도 우리가 배울 바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과 행동을 새삼스럽게 묵은 서랍 속에서 꺼낸 서류를 들이대며 규제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그만큼 후퇴시키겠다는 경고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여간첩 사건은 좀 웃기는 얘기 같다. 간첩 하면 우리 머리에는 독침을 들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건 엉성하기 짝이 없다. 공작원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도 낮에는 사로청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니, 밀봉교육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엄격한 공작원 교육을 알바로 받았단 말인가. 누구를 살해하려 하다가 도저히 살인을 할 수가 없어 포기했다는 계획이며,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행각도 어딘가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지를 않는다. 마치 우디 앨런의 코미디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재미는 있지만 실감이 가지 않는다. 옛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왔다가 친구들 앞에서 무언가 큰소리를 치고 싶었다. 결국 그는 북과 내통을 하는 사상가로 행세하면서 돈도 뜯어 쓰고 술도 얻어 마시다가 마침내 한 친구의 고발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구속이 되고서도 그는 한동안 스스로 북한에 동조하는 공산주의자로 행세했지만 사실이 탄로나면서 반공법으로 겨우 1년을 살고 나왔다. 여간첩 사건 보도를 보면서 문득 이 사람이 생각나는 것은 웬일일까.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생각을 퍼뜨리거나 국가의 기밀을 나라 밖에 파는 사람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일은 당연히 당국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안보는 튼튼할수록 좋다는 주장에도 결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재미로 늑대요 하고 외쳐 동네 사람을 끌어내다가 진짜 늑대가 나왔을 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만드는 어리석음이 세상에 드물지 않게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죄가 의심스러울 때는 벌은 가볍게 주고 공이 의심스러울 때는 상을 후하게 준다.”라는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의 낡은 아포리즘도 한번쯤 되새겨 볼 때다. 시인 신경림
  • “땅 못내놔” 친일파 후손들 대반격

    친일재산을 환수하는 특별법이 제정된 지 2년 반이 지났다. 순순히 땅을 내놓을 듯했던 친일파의 후손들은 최근 ‘땅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이의 신청이 81.5%에 이른다. 현재 국가에 귀속된 친일파의 땅은 환수 대상 토지의 절반을 웃돈다. SBS ‘뉴스추적’은 친일파 후손들의 반발에 삐걱거리고 있는 재산환수 실태를 집중 조명한다. 친일파 땅을 산 제3자들이 겪는 고충도 함께 들여다본다. 광복절을 맞아 마련한 프로그램 ‘8·15특집-위대한 유산 친일파의 반격’은 13일 오후 11시5분에 방영된다. 최근 한 친일파 후손은 192개 필지, 최소 300억원대의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일제시대 조선인 가운데 최고 작위인 후작의 후손인 그는 “조상이 한일합병에 기여하지 않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아니다.”라며 승소를 장담하고 있다. 자작의 후손이라는 또다른 사람은 “귀족이었다고 친일파로 낙인찍는 것, 친일파라고 해서 재산을 환수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재산조사위는 ‘빨갱이’이고 특별법은 위헌”이라고 비난한다. 친일파가 아니라며 법정 투쟁에 나선 이들. 취재진은 일본 현지 취재에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할 자료를 입수했다.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 129명의 50년 전 녹취록이 그것이다. 구식 릴 테이프 418개에는 총독부가 기억하는 훌륭한 조선인들의 친일 행각과 비화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일본인 관료들이 이완용, 송병준, 박영효, 윤덕영 등 귀족을 포함해 친일파 20여명을 극찬하는 내용도 볼 수 있다. 한편 친일파의 후손도 아닌데 억울한 처지에 빠진 사람도 있다. 연천의 한 농민은 빚까지 내서 땅을 샀다. 하지만 그 땅은 일제시대 귀족의 땅이라는 이유로 1년 만에 국가에 귀속됐다. 그가 정부를 비난하는 사이, 친일파는 땅 판 돈을 챙겼다. 이같은 제3자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엇갈리고 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촛불 100일 ] (하) 전문가 대담

    [촛불 100일 ] (하) 전문가 대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에서 표출된 촛불을 인위적으로 끄려하면 절대 꺼지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불신의 문제를 치유하지 않으면 또 다른 이슈를 통해 다시 불거질 것이다.” 서울신문사와 공동으로 ‘촛불 100일’을 기획한 인터넷정치연구회 소속 교수들이 시리즈를 마감하는 좌담에서 내린 진단이다. 이들은 “촛불 집회를 무조건 억압할 것이 아니라 촛불에서 표출된 국민의 힘을 오히려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면서 “이제 모두가 모여서 촛불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촛불 백서’를 만들자.”고 힘주어 말했다. 박현갑 서울신문 기획탐사부 부장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는 류석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국제행정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좌담회는 4일 오후 서울신문 편집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촛불집회는 과거와 어떻게 달랐나. ●장 교수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2004년 탄핵 관련 촛불시위를 거치며 촛불은 계속 진화했다. 계층도 다양화되고 자율성도 커졌다. 이번 촛불집회는 정부와 기존 정당들이 제도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면 생활정치도 운동 의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윤 교수 앞서 두 번의 촛불집회는 이념적으로 진보적 성향이 뚜렷했고 기존 운동권과도 밀접하게 연결됐다. 그러나 올해 촛불집회는 탈이념, 탈정파적이었다. 운동을 진행하는 방식 역시 중심세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졌다. 배후세력이라는 것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이런 특색이 기존의 촛불집회와는 다르다. ●류 교수 이른바 ‘롱테일(long tail)정치’ 시대다. 소수가 다수를 이끄는 게 아니라 길거리의 군중들이 소수의 권력을 흔들어 버렸다. 더군다나 이 롱테일 군중이 원자화되지 않고 네트워킹되어 있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촛불집회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 ●류 교수 대차대조표가 뚜렷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과제는 분명하다. 변화된 환경에 대한 인식과 이에 따른 대처방안 강구가 시급하다는 점이다. 이번 집회를 통해 기존 정치권이나 언론 등의 매개집단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여기에 대처하지 못하면 제2의 촛불집회는 언제든지 일어날 것이다. ●장 교수 이번 촛불집회의 키워드는 ‘신뢰’다. 촛불집회는 이념이나 정파싸움이 아니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운영자들에 대한 불신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당지지도는 여전히 한나라당이 1위다. 대통령 지지도가 10%대로 추락했지만 야당 지지도가 올라가지도 않았다. 이를 보면 국민들이 기존 정치를 불신하면서도 대의제를 극복할 마땅한 장치가 없다보니 일정한 기대심리는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대의제의 딜레마인 셈이다. ●류 교수 학계에서도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정당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과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의 줄기가 있었는데, 결국 바람직한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 모든 것을 대의제로 수용하려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의제를 대체할 다른 장치에 대한 구상을 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국민들의 분출하는 요구를 제도가 수용 못하지 않나. 이명박 정부 들어 여대야소가 만들어졌고, 특히 처음으로 개헌세력도 생성됐다. 이런데도 의회에 맡겨라 하는 게 옳은 것인가. 의회정치의 한계가 있다. ●윤 교수 촛불집회를 통해 얻은 소득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한국 대의제는 물론 정당·언론 등 매개집단들이 극명한 한계를 보였다. 또 하나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롱테일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소통방식을 통해 나오는 여론을 어떻게 대의제에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하지만 제도권에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류 교수 운동권도 마찬가지다. 광우병 대책회의도 집회를 이끌어 나가는 게 아니라 따라가기에도 바쁘다. 그쪽도 집회 현장에서 무엇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촛불 민심이 반영되지 않았는데. ●류 교수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각 가정에서 정치적인 의사소통이나 대화가 부족했을 가능성이다. 중·고생들이 촛불 바람을 먼저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이 부모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했다. 두 번째로 투표에 참여해 봤자 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무력감 내지는 참여효용이 없다는 판단에서라고 본다. ●윤 교수 참여 효능감 측면에서 봐야 한다. 국민들은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이 있어 투표로 내 의사를 표출해도 그것이 변화를 가져온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차라리 온라인에서 본인들의 의견을 올리는 것이 참여의 경험과 효능감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더이상 투표가 정치참여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아닌 것이다. 또 국민들은 지난 10년 동안 모든 사회문제를 이념 문제로 환원하는 이념갈등에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점은 앞으로 약해질 것으로 본다. ●류 교수 이번 촛불집회가 단순히 편가르기의 장이 아니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현상을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당시 분열구조는 우리보다 심했다. 상대방을 빨갱이라 부르고 미국의 적이라고 몰아붙이기까지 했다.1970년대 전반까지 계속된 이런 갈등 속에서 미국 의회는 68혁명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게 된다.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68혁명에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이 잘못됐다. 우리가 분열세력이라고 몰아붙였던 이들을 건전한 방향으로 수용해 이들의 순수와 열정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써야 한다.”고 평가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이때와 매우 유사하다. 우리도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이 모여 왜 촛불집회가 일어났고 집회의 핵심 의미가 무엇이었는지,2008 촛불집회에 대한 최종 보고서인 ‘촛불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현상을 규명하고 사회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장 교수 나는 이번에 촛불집회에 참가한 10대들이 투표권을 가질 5년 뒤쯤이 궁금해진다. 촛불집회는 청소년들의 정치활동에 관한 한 실험적 장이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독자적으로 정치집회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올해 5월∼8월 청소년 정치집회가 6차례나 열렸다. 광우병과 교육자율화는 물론이고 공기업 민영화에 교육감선거 투표권까지 다양한 의제가 나온다. 이 세대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틀에 갇혀서 자력갱생에 허덕이는 ‘88만원 세대’와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류 교수 다음번 대선과 총선이 있는 4∼5년 뒤엔 지금 10대가 유권자로 들어온다. 그때 이들을 수용하는 장치를 만들지 못하면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제도권을 뛰쳐나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짜로 대의제의 위기가 된다. 지금의 10대는 옛날과 전혀 다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5년 뒤 우리나라 정치는 망가진다. ▶정부와 국민간 미래지향적 소통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류 교수 촛불집회가 일어난 근본 원인은 아날로그 정치와 디지털 정치가 서로 접점없이 부딪친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광우병에 대한 기본적인 팩트를 제시하는 등 나름대로 대응하려 했으나 홈페이지를 열어놓고 기다리기만 했지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면서 논쟁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이것이 단순히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이냐, 정부의 의지냐가 문제인데 둘 다였다고 본다. ●장 교수 세계적으로 정부가 ‘다운사이징(규모 축소)’되지만 다뤄야 할 의제는 많아졌다. 정부가 모든 사안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니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해당사자가 모두 참여해 결정을 내리는 수평적인 네트워크의 개념이다. 시민도 공동의 정책결정자이니 함께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명박 리더십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일견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래도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수직적인 거번먼트(government)가 수평적인 거버넌스로 이행돼 왔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 버렸다. 국민들을 공동의 정책결정자로 이해해줘야 한다. 그게 이명박 정부에서 볼 때 비효율적인 패러다임으로 보이더라도 그것을 수용해야 한다. 또 청와대 블로거나 신문고 등 정부가 구축한 소통공간을 거버넌스를 구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류 교수 소통공간 얘기를 하셨는데, 예를 들어 서울시는 천만상상 오아시스나 희망제작소 등이 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의 효능감이 상당히 좋다. 근데 기존의 정부가 마련한 공간을 보면 넌 떠들어라, 난 간다 이러면 다음번에 안들어간다. 다음번에 욕이나 하고 나오고.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공간을 진정성 있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 교수 미 백악관 사이트만 봐도 국민들과의 대화를 여러 패턴으로 한다. 실시간 채팅을 한다. 백악관만 해도 사실상 게시판이 없는데. 우리는 순전히 게시판 문화다. 게시판이 온라인 공간 소통이나 토론을 망쳐 놓는다고 본다. 전부 진정성 없이 겉무늬로만 여론 수렴하고 참여를 활성화시킨다. 이런 게 오히려 온라인을 망쳐 놓았다고 본다. ▶정치권에서는 인터넷 규제나 야간집회 허용 등 상반된 입법 움직임이 있는데. ●류 교수 ‘여론 사이드카’등의 정책 얘기를 들으면 정부가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네티즌들은 다음 아고라에서 댓글 삭제하면 구글이나 유튜브 등으로 ‘사이버 망명’을 한다.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이 기술적으로 존재한다. 입법자보다 누리꾼들이 더 잘 안다. 이러니 누리꾼들이 볼 때 기가 막힌 거다. ●장 교수 모든 미디어는 표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진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다만 인터넷이 다른 미디어와 다른 것은 메시지 생산자가 아니라 일종의 컨버전스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인터넷에 대한 정부 규제는 일반적으로 다른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과 다르다. 특히 인터넷은 다른 미디어와 함께 방송통신위의 규제를 받는다. 이번에도 보면 방송통신위에서 댓글 삭제 압력을 가하지 않나. 방송통신위 자체가 정부기구인데 정부기구가 인터넷에 직접 명령권을 행사하면서 규제하는 경우는 드물다. ●윤 교수 온라인 문제를 규제·처벌 등 부정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즉 온라인은 이렇게 작동해야 한다는 모델을 보여줘야 한다. 외국 사례를 보면 굉장히 다양한 온라인 토론 사례가 있다. 토론을 관장하는 사회자와 토론의 규칙이 필요하다. 양쪽 시각을 고루 반영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외국은 온라인 토론을 하는 장치와 제도와 룰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청와대든 포털이든 게시판이라는 공간만 주지 책임지고 잘 운영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포털의 책임도 있다. 포털은 대개 플랫폼만 제공하는 것뿐이라고 얘기하는데 요즘 가장 중요한 것이 플랫폼이다. 네이버나 다음 등은 사이버 공간을 진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최소한 다음 아고라에 있는 수많은 게시판 중 하나라도 모델 케이스로 운영한다면 네티즌도 그렇고 정치권에서도 그렇고 배움이 가능할 것이다. ▶촛불집회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류 교수 촛불을 인위적으로 끄려고 하면 꺼지지 않는다. 근본적인 불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촛불은 다시 나올 것이다. 불신의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 ●윤 교수 촛불을 정치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촛불의 민심이 상시적으로 정책결정과정 등에서 투입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장 교수 이번을 기회로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존하는 불확실한 정치구조가 아니라 안정적인 정치구조를 만들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한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이기 때문에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 것은 아니다. 특정 리더십에 온 사회가 의존하는 대통령제의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헌법개정 논의가 필요하다. 정리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촛불과 진보의 앞날] “네티즌과 어울려 즐겁게 놀아라”

    진보는 왜 늘 엄숙하고 진지할까. 저항인 동시에 놀이의 현장이기도 했던 촛불시위는 진보도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전직 시민운동가 세 명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재미있게 진보하기’ 방법을 들어봤다. 요청에 따라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시민운동가도 ‘스타 논객’ 될 수 있다” 10년 넘게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J씨는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운동가는 많아도 토론에 참여하는 시민운동가가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라면서 “시민운동가도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논객’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 시대 진보운동이 만나야 할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인터넷 공간에서 네티즌들과 어울려 노는 것 자체가 진보진영이 추구하는 ‘진보’ 가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J씨는 “개인 차원에서 즐겁게 참여하는 논객으로서의 활동이 시민운동가뿐 아니라 시민단체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보가 엽기발랄한들 어떠하리” H씨는 현재 대학 부설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는 전직 인권운동가다. 그는 “진보도 엽기발랄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서태지와 ‘진보’를 연결시킨 자동차 광고 카피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보의 이미지가 활개를 칠 때 진보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빨갱이, 체제전복세력, 친북 또는 종북세력’으로 연결되는 어이없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시민단체들이 각자의 주제를 갖고 인터넷 생중계를 시도해보자.”고 제안한다.“여성단체는 여성의 눈으로, 청소년단체는 청소년의 눈으로 광장에 모인 시민들, 광장에 모이지 않은 시민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자.”는 것이다. ●“삼팔선은 그만 지키자” 7년 가까이 시민운동을 하다 정부 위원회에서 일하는 S씨는 “시대는 생동감 넘치는데 진보진영은 구태의연하다.”면서 “무겁고 엄숙해야만 권위가 선다는 생각을 버리고 정책적 반대를 위한 퍼포먼스만 할 것이 아니라 일상에 찌들고 지친 시민들을 웃고 행복하게 해줄 ‘쌩쇼’라도 해 보자.”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아니면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자가당착적인 의식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씨줄날줄] 40년만의 화해/임태순 논설위원

    1894년 12월 전남 장흥군 석대뜰앞. 한때 기세등등하던 동학농민군들이 이 곳까지 밀려와 정부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다. 변변한 무기도 없던 농민군은 신식총을 가진 일본군과 관군에 대항하다 전멸당했다. 농민군들은 앞서 장흥성을 점령하면서 부사와 관리, 주민 등 97명을 죽였다. 농민군이건 관군이건 후손들의 입장에선 조상들이 죽었다는 점에선 서로가 피해자였다. 후손들은 각각 ‘의(義)’와 ‘충(忠)’을 내세우며 서먹서먹하게 지내다 지난 2004년 8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서로 화해했다.110년 만이다. 특별법으로 농민군과 그 후손들의 명예가 회복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태영호 간첩단’사건에 연루됐던 전북 위도 주민들이 오늘 40년 만에 화해의 시간을 갖는다. 이들이 다시 손을 잡게 된 것은 ‘간첩’과 ‘밀고자’라는 누명이 벗겨졌기 때문. 전주지법 정읍지원은 어제 1968년 태영호에 승선, 강제 납북됐다 풀려난 뒤 간첩으로 몰린 선원들과, 강압에 의해 허위자백을 한 이웃 주민들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고문과 가혹행위에 의해 조작된 인권유린사건이라고 조사한 것을 근거로 했다. 이 사건 연루 주민들 역시 서로가 피해자였다. 선원들은 북으로 끌려간 것도 억울한데 ‘빨갱이’로 손가락질 받았다. 허위진술을 한 주민들도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것에 치를 떨었다고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말했다. 27년간 복역했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1994년 대통령이 된 뒤 과거의 범죄를 고백하면 처벌하지 않는 화해의 정치를 펼쳤다. 가해자였던 백인들도 인종차별정책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용서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 나간다면 마음의 평화만 깨질 뿐”이라며 “용서해야 평화를 찾고 행복에 이른다.”고 했다. 태영호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은 법정에서 “상부의 지시로 수사했으나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어두웠던 시대와 화해하기 위해선 이제 위에서 지시한 사람들의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진보신당 난입·당원 폭행 HID 2명 영장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일 진보신당 당사 입구에서 “언론매체에서 특수임무수행자회 비하발언을 한 진중권 나오라.”며 현판을 부수고 당원들을 폭행한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HID) 사무총장 오모(48)씨와 회원 김모(27)씨 등에 대해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이 단체 이사 박모(45)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1명을 수사 중이다. 조사 결과 오씨 등 2명은 전날 오후 10시20분쯤 영등포구 여의도동 진보신당 당사 앞에서 복도에 있던 소화기를 던져 진보신당 간판을 부수고 이에 항의하던 당직자 최모(51·여)씨 등 8명을 “빨갱이들”이라며 주먹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에서 뒤늦게 달려온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와 마주치자 진 교수의 뺨과 어깨를 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들은 경찰에서 “진 교수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단체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다녀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진보신당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심야에 공당의 당사를 난입한 점, 수행자회 사무총장이 이를 주도한 점, 승합차로 5인이 조직적으로 이동한 점, 경찰의 현장 출동 이후에도 위해를 가한 점에 비춰 이를 ‘백색테러’로 규정한다.”고 밝혔다.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노회찬 “與, 이권 미끼로 HID 폭력 방조” 의혹제기

    노회찬 “與, 이권 미끼로 HID 폭력 방조” 의혹제기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지난 1일 진보신당 당사에 난입,기물을 파손하고 당원을 폭행한 오모(48)씨와 김모(27)씨가 속해있는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HID)가 “한나라당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한나라당 배후 의혹을 제기했다.노 대표는 이들의 연행 과정에서 보인 경찰의 미온적인 태도와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이 제출한 HID 이권사업 보장법안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3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HID회원들의 당사 난입을 막던 당원 8명이 부상을 입었고,이중 2명은 중상으로 영등포 병원에 입원 중”이라며 “그 외에 당사 현판이 파괴되고 사무집기들이 손상을 입었다.”고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노 대표는 HID회원에게 폭행을 당한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상태를 묻자 “심각한 상해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경찰이 바로 옆에 있는 상황에서 얼굴을 수 차례 주먹으로 맞았다.”고 답했다.그는 또 진 교수의 신변이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진 교수를 지목해서 폭행을 시도했다는 점과 난입 다음날 HID가 진보신당 당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지겠다고 한 점 등을 미뤄볼 때 진 교수에 대한 물리적 위협이 예견되고 있어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사건 당시의 상황에 대해 노 대표는 “오후 10시 20분에 HID 사람들이 난입을 해서 폭행하기 시작했고,이를 만류하던 남성 당원들도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며 “신고한지 30분이나 지나서야 경찰이 출발했다.”고 전했다.이어 “경찰서와 당사 사이의 거리를 놓고 보면 10분 안에 도착해야 마땅한데 30분이나 지나서 도착했고,출동한 경찰이 첫 마디는 ‘정당 간의 싸움에 개입하기 싫다.’였다.”고 말한 뒤 “우리 남성 당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폭력을 방지하고자 개입했는데 경찰은 ‘이 사람들(HID 회원들),건드리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라며 손을 놓고 있었다.”며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을 비판했다. ‘진 교수가 평소 자신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간 것’이라는 HID측의 해명에 대해 그는 “밤 10시가 넘어서 무단으로 침입한 것 자체가 정상적인 항의 절차를 밟은 거라고는 볼 수 없다.”고 강조한 뒤 “항의를 하려면 공문을 보내거나 책임자를 만나자고 요청한 뒤 자기 뜻을 전해야 하는데,밑에서 망을 보고 소화기를 던져가면서 난입한 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노 대표는 연행된 HID 사무총장 오모씨가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에서 안보특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고 말하고 다닌 것에 대해 “오씨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며 “오씨는 그 사실을 계속해서 과시하고 다녔다.난입 현장에 떨어진 (오씨의)수첩에서 ‘대통령님 힘내세요.저희들이 있잖아요’,‘촛불 뒤에 용공빨갱이 세력이 있다.’라고 쓴 메모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대통령에 대한 과잉충성이 현 시국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HID가 대통령과 연관이 있다고 암시를 주면서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하고,무단으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비난하며 “경찰 수사를 봐도 과거 경력과 집권당과 연관성 등을 강조하면서 비호를 받은 것은 사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는 사안마다 개입해서 사설폭력단처럼 활동해 왔는데 왜 한 번도 경찰이 제지를 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한 뒤 “HID가 대천 해수욕장 경비용역을 체결하고 모 쇼핑몰의 특정 이권사업에도 강압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노 대표는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이 HID의 수익사업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법안을 최근 제출했다.”고 밝히며 “(한나라당이)이권을 미끼로 사용해 이들의 폭력행위를 방조하거나 용인해 온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 배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끝으로 “한나라당은 이번 정치테러와 연관성이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며 “한나라당은 관계가 있든 없든간에 태도를 분명히 하고,또 온갖 폭력을 주도하고 있는 조직의 수익사업을 보장하는 법안을 제출했는지 해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진보신당 당사 난입 사건에 대해 통합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야당은 책임자 처벌과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지만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된 언급을 일체 하지 않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화물연대 파업] 민노총 새달 2일 릴레이파업

    [화물연대 파업] 민노총 새달 2일 릴레이파업

    민주노총은 6월 촛불집회,7월 총파업이라는 단계별 일정을 잡았다. 당초 파업돌입 시기가 6월말 또는 7월초로 거론되던 데 비하면 늦춰 잡은 것이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파업 시기를 7월2일로 정한 까닭에 대해 “20일 총파업에 들어가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광우병 대책회의가 20일 대규모 시위를 계획했고 화물연대와 건설노조가 파업중인 상황에서 전체의 흐름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일정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가 파업을 사실상 부결시킨 데 이어 17일 건설기계노조가 파업을 철회하면서 민주노총의 파업 집중력 약화는 불보듯 뻔하다. ●對정부 전면투쟁 공식화 따라서 총파업 전에 촛불집회와 연계해 시간을 벌면서 파업 동력을 최대한 높여보겠다고 계산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에 들어가기 전인 이달 말까지를 ‘대규모 촛불집회 결합’ 기간으로 정해 의제별 집중 공동 행동을 벌이기로 했다. 국민대책회의가 ‘48시간 국민비상행동’을 벌이는 오는 20∼22일에도 별도의 일정 없이 대책회의와 행동을 함께 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현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을 공식화한 셈이다. 각 산별에 파업 및 총력투쟁의 구체적 전술과 계획 등을 25일까지 총연맹에 제출토록 했다. 이어 민주노총은 2일 총파업의 여세를 3일 주력부대인 금속노조의 임·단협 파업에 몰아주는 전략을 세웠다. 공공운수연맹과 보건의료노조 등 산별노조의 파업도 뒤따를 예정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파업이 사회적인 파급력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총파업 1차 찬반투표에서 70.3%가 찬성했다고 했지만 노동부는 전체 조합원을 대비할 경우 30%대에 불과, 사실상 부결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민주노총의 주력부대인 현대자동차노조마저 사실상 파업을 부결한 결과는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투쟁 동력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이석행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규약상 투표 조합원의 과반이 찬성하면 파업은 통과되고, 현대차는 금속노조에 속하고 금속노조는 14만 조합원 가운데 8만여명이 파업에 찬성했기 때문에 투표는 가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파업´ 여론 역풍 가능성 하지만 쇠고기 문제라는 국민건강, 검역주권 문제를 활용해 노동계 이슈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신은종 단국대 교수(경영학)는 “그동안 준비해온 이명박 정부와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현장 조합원들이 정치성 파업으로 받아들인다면 파업 동력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현대차노조의 사실상 부결도 이런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차 노조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이번 기회에 정치파업 사슬을 끊어버리고 산별탈퇴하자.”라는 내용의 반발성 글들이 올랐다. 민주노총 홈페이지에도 “우리의 생존권이 걸린 처절한 요구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글들이 올랐다. ●여수경찰서장 ‘빨갱이´ 발언 파문 한편 김두만 전남 여수경찰서장이 유관기관장들과 화물연대 파업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화물연대를 ‘빨갱이’에 비유해 물의를 빚고 있다. 김 서장은 파문이 커지자 해명서를 통해 “발언의 배경이 어찌 됐든 화물연대를 빨갱이로 비유한 것은 화물연대 관계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물러섰다. 이동구 김승훈기자 yidonggu@seoul.co.kr
  • [열린세상] 정략은 접고 민생을 보라/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열린세상] 정략은 접고 민생을 보라/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을 둘러싼 네티즌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인터넷 사이트에 개설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에는 며칠 만에 30만여 명이 서명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 미니홈피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이 단시간에 10만 명 이상 접속하면서 사실상 폐쇄되었다. 국회는 이 문제의 논의를 위해 7일부터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하였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합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얼마 만에 보는 여야 간의 합의 모습인지 모르겠다. 청문회를 갖는 것까지는 합의했지만 과연 그 청문회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사실 의문이다. 쇠고기 논쟁이 격해지면 친미, 반미 공방으로 변질될 것이고, 이는 다시 이념논쟁으로 확전되어 결국 ‘빨갱이’와 ‘수구꼴통’ 간의 진흙탕 싸움이 될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정권 하에서 많은 쟁점들이 이런 식으로 변질, 확전되었다. 국가보안법은 말할 필요도 없고, 정치이념과는 별 상관도 없는 스크린 쿼터제나 천성산 터널공사까지도 빨갱이와 수구꼴통 대결로 귀결되었다. 이러다 보니 사회적 합의는 애당초 기대할 수도 없었다. 이같이 왜곡된 갈등구도에 대한 근본적 책임은 패거리 정치에 길들여진 정치권에 있다. 주요 쟁점 사안마다 소위 당론이라는 것을 정하여 의원들을 옭아매니 자연히 여야 갈등은 세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여당이 한 편이고 야당이 맞상대가 되어 으르렁거리고 있으면, 이번에는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이들 편싸움에 가세하고, 결국 온 나라가 양단이 나는 형국이 반복되었다. 사안을 세밀히 살피고 조목조목 따져 가며 해결점을 찾아 보려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정파 간의 죽고살기식 싸움이 있을 뿐이다. 어차피 당론이 정해지고 거기에 맞서기란 불가항력이니 의원들도 쟁점을 들여다 보며 합의점을 찾기보다는 상대를 누를 수 있는 정략 짜기에 골몰하게 된다. 이 와중에 민생은 사라지고 정파싸움과 세 대결만 남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편싸움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우선 매사 청와대와 여당이 한 목소리를 내어 야당에 맞서는 세 싸움의 틀을 깨야 한다. 대통령제 하에서 국회가 해야 할 본연의 기능은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당은 청와대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어엿한 국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야당의 허물과 빈틈 찾기에만 고심할 것이 아니라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그러자면 여당 의원들이 소신을 갖고 자기 판단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당론과 달리 야당 의원들과 한 목소리로 청와대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합의했더라도, 그리고 당 지도부가 이에 동조하더라도, 본인의 소신에 따라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정당의 권력구조 하에서 그런 의원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자신들의 공천 여부가 당 지도부의 손아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누가 자칫 다음 선거의 공천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데 지도부 뜻에 반해 ‘아니오!’라고 외칠 수 있을까? 의원들의 자율성이 지켜지고 국민의 대표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공천제도가 반드시 확립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무한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정쟁구도를 깰 수 있다. 부질없는 이념대결로 점철된 17대 국회였지만, 쇠고기 협상 청문회에서만큼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 어차피 절반 이상의 의원들은 다음 국회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당론에 얽매이지 말고, 당 지도부 눈치도 보지 말고, 오직 무엇이 국민을 위한 일인지만을 생각하면서 소신껏 판단하고 행동하길 바란다. 그것이 상생의 정치를 위한 첫 걸음이다. 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 美 의료보험을 까발리다

    美 의료보험을 까발리다

    약지와 중지가 잘려나갔다. 중지를 붙이는 데 6만달러, 약지를 붙이는 데 1만 2000달러가 든다. 당신의 선택은 뭔가. 릭은 약지를 택했다. 왜냐. 그게 더 싸게 먹히니까. 릭의 아내는 울먹이고야 만다.“사람의 몸에 돈을 매기다니요….” 마이클 무어(54) 감독의 신작 ‘식코’(Sicko·새달 3일 개봉)는 이렇게 시작한다.‘볼링 포 콜럼바인’에서는 교내 총기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까발리고,‘화씨 9/11’에서는 부시행정부의 외교정책에 화살을 날린 감독의 전적(?)을 보면 이번 영화도 만만치 않을 거란 짐작이 든다. 이번에 마이클 무어가 저승사자를 자처한 주제는 미국의 민간 의료보험체계다. 감독은 자신의 홈페이지(MICHAEALMOORE.COM)에서 의료보험의 피해를 입은 사람의 메일을 공개적으로 받았다. 메일은 무서운 속도로 답지했다.24시간만에 3700건, 일주일만에 2만 5000건의 이메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감독은 일갈한다.“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다. 매년 1만 8000명의 미국인은 죽을 테니까.” 실제로 연간 의료보험 지출이 2조달러인 미국에서 보험이 없어 1만 8000명이 죽어나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맘대로 되나. 엄마는 딸을 눈앞에서 잃고,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속수무책으로 맞는다. 병원비를 못 내는 환자들은 쓰레기처럼 길가에 버려진다. 보험에 가입된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배후에는 ‘목숨 놓고 돈 먹기’에 바쁜 민간 보험사들이 있다. 이들의 뒤를 닦아주며 자기 배 채우기 바쁜 의회도 있다.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면 바로 ‘빨갱이’ 취급받는 곳이 바로 아, 그 이름도 찬란한 민주주의의 나라 아메리카다. 그런데 이 감독, 그 와중에도 웃기는 재주 있다. 장엄한 ‘스타워스’ 배경음악과 함께 A부터 Z까지 보험 부적격 질환을 나열하는가 하면, 영부인 시절 전국민 의료보험제를 외치던 힐러리를 ‘섹시∼’하다며 추앙한다. 킬킬거리다가도 ‘제도’ 때문에 삶이 산산조각난 사람들을 내세워 웃음기를 싹 가시게 하는 재주도 있다. 내부 고발자들은 평범한 미국인들의 눈물에 확신을 더한다. 보험 판매원은 말한다.“부적격 통보할 때마다 마음이 아파 일부러 전화를 못되게 받아요.” 보험사의 의학 심사위원인 리나 피노는 내부 고발로 양심 선언을 했다.“환자를 죽이고 불구로 만드는 더러운 제도를 고발합니다.” 환자도 모르는 병력을 찾아내는 기업해결사는 말한다.“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거죠. 모든 것은 이윤 극대화 때문이에요.” 그들은 하나같이 ‘참 못할 짓’이었다고 토로한다. 캐나다, 영국, 프랑스, 쿠바까지 쫓아다닌 감독. 끈덕진 취재로 사례만 200여개를 채집한. 그의 말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답은 요원하다.“환자를 대하는 더 좋은 제도가 있고 서로에게 더 잘할 수 있는데, 우리는 뭐가 잘못 돼서 그렇게 못하는 걸까.” 그리고 이건 이제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그래서 ‘식코’의 예고편은 ‘will be soon’(곧 개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get well soon’(곧 쾌차하시길)이라고 말한다. 정말이지 모두들 더 좋은 제도 아래에서 쾌차하시기를.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한국 추상미술의 맥 짚어보기

    한국 추상미술의 맥 짚어보기

    북악산 등산로의 가을 정취까지 덤으로 만끽할 수 있는 운치 만점의 전시가 있다. 지난 9일부터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 마련된 ‘신사실파 60주년 기념전’.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장욱진 이중섭 백영수 등 한국 근대미술을 주도한 6인의 작품이 회고전 형식으로 선보인다. 신사실파란 모든 그림을 사실에 기초하되 표현에 있어서는 추상이나 구상에 구애받지 않고 그리자는 미술 동인들의 모임.1947년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등 3인이 첫 동인전을 개최하면서 출발했다. 여기에 장욱진 이중섭 백영수가 가세하면서 6인 동인이 됐던 것. 이들이 한국 추상미술의 발판을 다졌던 셈이다. 이번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매우 풍성한 전시다. 김환기 작품 15점, 유영국 22점, 장욱진 20점, 이규상 4점, 이중섭 9점, 백영수 13점 등 모두 81점이 선보인다. 이들의 활동내용을 따로 설명해 주는 사진과 전시 리플릿 등 자료도 50여점이나 된다. 이중섭의 ‘소’, 장욱진의 ‘독’, 김환기의 ‘피난열차’ 등 한국미술의 교과서 같은 유명작들이 포함됐다. 이들 가운데 현재 유일한 생존자는 백영수(85) 화백. 그가 들려주는 당시의 일화는 한국 추상미술 태동기의 역사 그대로이다.“나는 일본을 떠나 1948년 서울 화신백화점에서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과 함께 첫 전시회를 가졌다. 당시 화가들은 소공동의 플라워, 명동의 동방싸롱 등을 배회했고 명동의 돌체다방에서 매일 만나 얼굴을 맞대었다. 3회 전시 때 장욱진과 유영국은 작품에 붉은색을 많이 써 빨갱이로 의심돼 정보부로 소환되기도 했다. 그때 그 그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중섭이 얻어먹은 찐빵이 미안해 주인에게 유화를 줬는데 그게 장독대 뚜껑으로 사용됐으니 그림들이 잘 보관될 형편이 아닌 시기였다.” 지난 77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백 화백은 이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100여 차례의 전시회를 여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무엇보다 남아 있는 작품이 거의 없는 이규상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이중섭·백영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개인 소장자가들에게서 빌렸다. 환기미술관 채영 학예연구원은 “한국 추상미술의 맥을 짚어 보고 이를 발판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자 기획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내년 1월13일까지.(02)391-7701.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외환위기10년 그리고 미래] 해고 좌절딛고 막걸리공장 사장 우뚝

    [외환위기10년 그리고 미래] 해고 좌절딛고 막걸리공장 사장 우뚝

    외환위기 만 10년.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사장님이 한 순간에 노숙인 신세가 됐고, 평범한 사람들은 직장에서 쫓겨났다. 재기에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상처가 너무 깊어 재기할 기운조차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누구는 부지런하고 누구는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게 아니었다. 외환위기를 겪은 두 사람의 인생역정을 통해 양극화 현상을 짚어 봤다. “한국 전통술이 프랑스 와인보다 더 뛰어난 술로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이 꿈입니다. 이제 작은 발걸음을 뗐을 뿐이지요.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차근 차근 극복해 나갈 겁니다.” 10년 전 외환위기로 직장 생활을 그만 둔 박상기(41)씨는 막걸리 제조업체 ㈜우리술 사장으로 새출발했다. 경기 가평군에 있는 이 업체는 설립 당시 한달에 2000만원씩 적자를 냈으나 지금은 연 매출 25억원에 2억∼3억원의 흑자를 내고 있다. 박씨는 “큰 좌절 끝에 조그만 성공을 거두고 있다.”면서 “외국인들이 어설픈 한국말로 막걸리를 찾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월급쟁이에서 노조 위원장으로 그는 1993년 대학 졸업 후 지금은 없어진 재벌기업 계열사인 D생명에서 평범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충격은 평범한 영업 직원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몰았다. 회사는 고통분담을 강요하며 직원들과 상의도 없이 임금 삭감과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그는 “당시 특별히 회사 상황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면서 “급여 체계가 상여금 위주로 돼 있어서 직원들이 받은 타격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박씨만 해도 연봉의 40%가 깎였다. 직원들은 노조를 만들었고 박씨는 위원장이 됐다. 노조에 참여한 직원들은 극심한 탄압에 시달렸다. 그는 “회사는 절대 노조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집에 전화해 ‘남편이 빨갱이 활동을 하고 있다.’고 협박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밥 먹듯이 했다.”면서 “회사 창고로 나를 납치해 반성문을 강제로 쓰게 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노조를 무력화시킨 뒤 회사는 “회사를 그만두면 노조를 인정하겠다.”고 회유했고 이미 지칠대로 지친 그는 1999년 말 ‘자의반 타의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물론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블랙 리스트’에 올라 동종 업계에선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 일자리 자체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가평에서 막걸리공장을 하던 처남이 2000년 말 대리점을 서울에 냈는데 그때부터 2002년까지 제가 그걸 맡아서 하게 됐죠.” ●막걸리공장 사장, 고생문 활짝 봉고차를 타고 동네 가게마다 다니면서 막걸리를 팔았다. 기존 업체들이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험도 없는 사람이 거래처를 뚫기가 쉽지 않았지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전 직장 동료들과 학교 동창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거래처를 넓혀 갔다.2003년 10월에는 함께 돈을 모아 ㈜우리술 법인을 만들었고 처남한테서 경영권을 넘겨 받았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설립 당시 한달에 2000만원 정도씩 적자를 냈다. 자산보다 빚이 더 많았다. 원료를 외상으로 사게 돼 웃돈을 줘야 했고, 원가가 높아지니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는 “직원들 월급 주기도 힘들었고 빚독촉 전화에 엄청나게 시달릴 정도로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서울에 있던 전셋집도 처분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여전히 힘들지만 희망을 꿈꾼다 “그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품질 향상에 주력하면서 납품업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협조를 구했습니다. 발품을 팔아 대형 할인점에 물품을 납품하게 되고 2005년에는 수출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엔 10만달러어치를 수출했고 올해는 20만달러를 예상하고 있지요.” 박씨는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양극화가 너무 심해졌다.”고 우려했다. 특별취재팀
  •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 “간첩누명 씌운 정부 책임져야”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 “간첩누명 씌운 정부 책임져야”

    “죄없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면 (정신 이상이 생겨)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4일 ‘송씨 일가 간첩사건’은 정보기관의 반인권적 간첩조작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리자 피해자 송기복(74·여·서울 관악구 신림1동)씨는 “이제야 진실이 밝혀졌지만 지난 25년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 신광여중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그는 1982년 3월 아버지 송창섭씨에게 포섭당해 간첩활동을 했다며 안전기획부(현 국정원)에 끌려가 4개월간 감금을 당한 채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는 “당시 미술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안기부 직원이 수업 시간에 들이닥쳐 ‘아버지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며 끌고 갔다.”면서 “안기부에서 수사관이 손을 뒤로 묶은 뒤 욕을 하고 허리띠로 폭행하며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 석방된 뒤에도 한동안 자다가 일어나 ‘나는 아니다.’라고 외치는 등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치를 떨었다. 당시 안기부는 6·25때 충북도 인민위원회 상공부장으로 활동하다 월북한 후 남파된 그의 아버지 송창섭씨가 서울·충북을 거점으로 25년간 간첩 활동을 하며 기복씨와 그의 어머니 한경희씨, 동생 기수씨 등 자식까지 포섭해 간첩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안기부 밀실에서 4개월간 불법 구금돼 구타와 고문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주변 친구들도 ‘빨갱이’라며 등을 돌렸다. 공군 중령이었던 남편은 그 해 7월 강제 전역됐다. 남편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진실 규명을 위해 뛰어 다니다 2002년 진실 규명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편이 숨을 거두며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누구보다 건강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것이 유언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제야 간첩 누명은 벗었지만 고문과 거짓 재판으로 우리 가족에게 간첩혐의를 씌웠던 장본인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을 맺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최인호 산문집 ‘꽃밭’

    최인호 산문집 ‘꽃밭’

    작가의 속살을 잘 벼린 칼로 저미면 거기에서는 어떤 색깔의 피가 배어날까. 또 그 피에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 모를 일이지만 작가 최인호에게서는 혈관 속에서 자유롭게 뒤섞인 무지갯빛 피가 솟고, 그 피에서는 ‘남경(南京)사향’의 냄새가 풍길 것 같다. 꼭 그렇기야 할까만, 소설에서는 어지간한 감수성이 아니면 작가의 육취(肉臭)를 맡기가 쉽지 않다. 소설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상상의 얼개로 풀어내는 가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근작 최인호의 산문집 ‘꽃밭’(열림원 펴냄)은 그의 살냄새가 물씬한 노작들로 꾸며져 눈길을 끈다. 작가가 육친의 정을 느낀다는 화가 김점선의 사실적이면서 고졸한 밑그림과 함께. ●화가 김점선이 소박한 삽화 그려 우리 문단에서 최인호만큼 성(聖)과 속(俗)을 자유자재로 넘나든 이야기꾼도 흔치 않다. 언젠가는 신성의 속곳을 들추더니, 또 언젠가는 속물의 뱃구레를 걷어차 왕창 오물을 토하게 하는 식이다. 그는 자신의 무지갯빛 피 속에서 가장 순정한 색만 가려 책 이름을 ‘꽃밭’이라고 붙였겠지만 책이 오로지 순정만 담은 것은 아니다. 암 투병 중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워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라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일화를 끌어다대더니 ‘한때 녀석과 나는 색줏집에서 만년필인가 시계인가를 맡기고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을 마신 후 할 줄도 모르는 뽀뽀를 끝내고 비내리는 툇마루에 앉아서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을 함께 물끄러미 바라본 적도 있었다.’며 저어한 고백까지도 주저하지 않는다. 잡스럽되 결코 추하지 않아서 인간적이고, 고고하되 낯설지 않아서 더 우뚝한 그의 문학세계가 글편에 오롯하게 담겨 있다. ●극우파 이시하라에 “자폐의 창호지를 찢어라” 일갈 흔히 최인호를 일러 힘겨운 세상 일에서 한 걸음 비켜선 작가라고들 말한다. 정말 그럴까.‘Yes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편에서 그는 일본 문단의 기린아였으면서 극우 정치인인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를 향해 “이제는 자폐의 창호지를 찢고 한마디하시라.”고 일갈한다. “한국은 일본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한국은 귀하가 쓴 소설 ‘완전한 유희’에 나오는 정신병에 걸린 여인처럼 집단적으로 윤간을 당했습니다. 또한 36년간이나 일본의 군국주의에 귀하의 소설 ‘처형실’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처럼 집단 린치를 당하고 말과 이름을 뺏기고 꽃다운 처녀들은 정신대란 이름으로 창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8·15광복으로 해방은 되었으나 남북으로 나뉘어 아직까지 이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이 패전하였다면 일본이 마땅히 독일처럼 두개의 국가로 나뉘어야지 어째서 당사국이 아닌 한국이 두개의 분단국으로 나뉘어야 했던가요.” ●‘선정적 방송´ 신랄하게 비판 조선 세종연간에 살았던 유생 최한경의 ‘반중일기’에 실렸으되,‘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임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노랫말의 연원을 훑는 그의 산문정신은 동서와 고금을 가르지 않는다. 파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TV를 켤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에서는 무차별적 선정주의로 치닫는 요즘 방송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가 하면,‘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씨가 제일이고 그 다음이 나’라며 음식을 빨리 먹는 식습관까지 낱낱이 털어놓고 있다. 확실히 그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공산주의여, 제국주의여, 체제여, 반체제여, 전라도여, 경상도여, 이승만이여, 박정희여, 김일성이여, 빨갱이여, 볼셰비키여, 양키즘이여,38선이여, 핵폭탄이여, 이제 그만 가라.’고 그는 말한다. 정말이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윤이상 선생 한국에 묻히길 원했다”

    40년 만에 모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부인 이수자(80) 여사는 12일 “남편과 함께 살았던 독일 집을 기념관으로 꾸밀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또 “윤 선생이 특별한 유언은 남기지 않았지만 평소 고국에 묻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면서 국내로 이장할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 여사는 이날 딸 윤정(57)씨와 함께 기자들을 만나 “윤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는 집을 팔까도 생각했지만 그곳에서 많은 작품을 써 언젠가는 기념관으로 꾸미려고 보존해 왔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그러나 한국에 묻히도 싶다는 윤 선생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윤 선생의 유해를 독일 현지 묘지에 안장할 때 이장하지 않는다는 계약 내용이 들어 있어 현실적으로 이장 절차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정씨는 “아버지의 미발표곡은 현악4중주 제2번”이라면서 “악보에 ‘가족만을 위해’라고 써있어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제 공개 여부를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여사는 “윤 선생은 ‘빨갱이’가 아니라 불행하게 산 위대한 예술가”라면서 “통영에 세워진 동상에 윤 선생을 험담하는 낙서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정말 가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이 여사는 “남과 북을 모두 드나드는 입장인 만큼 쓸데 없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고 거듭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앞으로는 방한 기회가 자주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인혁당 유족 이영교씨 “배상금으로 추모사업 벌일 것”

    “고교생이던 큰 아들은 ‘빨갱이’라는 놀림에 세 차례나 전학다녔고, 두 아들은 장성한 뒤에도 신원조회에 걸려 취업조차 못했습니다. 전 화병에 시달렸어요.” 32년간 긴 악몽을 꾸었던 것일까.21일 법원이 1975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배상을 판결한 뒤 고(故) 하재완씨의 미망인 이영교(70)씨는 “돈을 얼마나 받든 남편의 목숨과는 바꿀 수 없다.”면서 “(국가의 항소 없이) 이번 판결로 종료되길 원하며 배상금으로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주축이 된 사단법인을 만들어 추모사업 등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판결 직후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날 배상판결은 올해 초 재심에서의 무죄판결에 이어 유족들에게 정신적·물질적 피해회복을 의미한다. 이씨는 “앞서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간 국정원(전 중앙정보부)조차 남편이 고문을 당했고, 인혁당사건은 조작됐다고 인정해 명예회복은 됐다.”면서 “괴로웠던 지난날을 더이상 돌이켜 보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그저 사법부가 이제야 제 구실을 다했다는 게 좋고, 앞으로 이런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간첩가족’으로 낙인찍힌 30여년의 삶은 이씨의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켰다. 참기름 행상 등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덕분에 고혈압과 불면증, 관절염까지 잔병치레를 이어왔다. 최근에는 무릎관절치환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당시 15살,3살이던 두 아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함이 앞선다. 이제 47살,35살 장년으로 장성했지만, 두 아들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쓴 채 취업조차 할 수 없었다. 이씨는 “큰아들이 판결 뒤 ‘죽이지나 말지 돈은 무슨 돈이냐.’고 하더라.”며 잠시 울먹였다. 이씨는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사업회 운영계획은 이미 유족들 사이에 합의가 됐으며, 국민들이 통일을 위해 힘쓰다 누명을 쓰고 죽은 남편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여생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열린세상] ‘광주 모독’은 끝나지 않았다/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열린세상] ‘광주 모독’은 끝나지 않았다/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그해 봄, 나는 아주 이상한 경험을 했다. 어느 날인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어디선가 저벅저벅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이게 뭐지? 가만히 누워 귀를 기울였다. 나는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너무나 겁이 나서 이불을 꼭 움켜잡고, 누운 채 눈을 내리깔고, 숨 죽이고 있었다. 환청은 점점 더 커져서 현실처럼 생생해졌다. 그리고 이윽고 방안 가득히 시커먼 군홧발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들은 방안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내가 덮은 이불까지 올라와 마구 짓밟고 돌아다녔다. 환상은 조금 뒤 사라졌다. 그러나 너무나 생생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이게 뭐지? 이게 뭐야? 하면서 혼자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그해 5월, 이상한 소문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신문과 방송은 어떤 진실도 전해주지 않았다. 광주에서 ‘빨갱이’의 사주를 받아 날뛰는 ‘폭도’들을 우리의 씩씩한 계엄군이 진압해 질서를 되찾았다는 것이 그들이 전해준 소식이었다. 그러나 진실은 서서히 터져나왔다. 끔찍하고 무서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모두들 겁에 질렸다. 그리고 나는 내가 본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내 방에까지 소식을 전한 것은 어느 죽어가던 억울한 영혼들이었을까? 군홧발에 밟혀 짓이겨진 어떤 육체가 그 비명을, 한 무능력한 시인의 영혼에게 전달한 것일까? 광주는 내 시의 원체험 같은 것이다. 내가 본 환상이 광주에 관한 소문을 듣기 전인지 후인지도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전이라고 내 기억은 말하지만, 어쩌면 후인지도 모른다. 의식에 분명하게 남은 것은, 그 환상을 본 것이 꿈에서가 아니라, 의식이 뚜렷한 상태에서였다는 것, 그리고 광주에 관해 접한 모든 공식정보가 거짓이라는 것을 내가 매우 육체적인 방식으로 확신했다는 것, 그리고 그 확신이 개인적으로는 그 환상을 매개로 했다는 것, 그뿐이다. 무려 27년이 지나서야 이제 겨우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만들어졌다.‘화려한 휴가’에서 주인공인 택시기사(김상경 분)는 단지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죽어 간다. 잘 연출된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해한다. 그 장면이 과장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런저런 정치적 부비트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겨우 감독이 건져낸 비정치적인 대사 한마디, 그 한마디에 결국 영화의 모든 메시지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 집중이 그 장면을 미적으로 불균형하게 과장된 것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사실, 나는 좀 더 본격적인 진실 접근을 원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폭력 장면이 실제로 광주에서 저질러진 폭력에 비해 지극히 순화된 양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그 일을 저지르고 권력을 잡은 자가 지금도 버젓이 살아 영화를 누리고, 그 세력의 당사자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막강한 파워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광주의 의미를 폄하하는 논리가 얼마나 가짜 논리인지 하는 것들을 다루어주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려한 휴가’를 만들어 준 분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한다. 광주에서 ‘폭도’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이 영화가 많이 진혼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화려한 휴가´가 택한 접근 방식 덕택에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가 이 참혹한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진실에 접근하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 그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최상의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영화를 보면서 결국 나는 입술을 깨물며 통곡하고 말았다. 참을 수 없는 회한과 고통이 핏줄을 떨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체 어디에?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피들은 대지 위에서 울부짖는데, 아직도 그 사건으로 권력을 찬탈한 세력은 막강하기 짝이 없다. 광주의 모독은 끝나지 않았다. 광주는 지금도 모독당하고 있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시인
  • [열린세상] 무슨 사연이 있겠지/김형태 변호사

    [열린세상] 무슨 사연이 있겠지/김형태 변호사

    지금은 고인이 된 신부 한분이 생각난다. 키는 작달막한데 막힘이 없이 시원시원한 분이었다. 미사가 끝나기 무섭게 긴 겉옷을 훌렁 벗어 둘둘 말아 놓고, 부리나케 마당으로 나와 담배 피워 물고 신자들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격의 없이 나누곤 했다. 어느날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차 몰고 가다가 위험하게 끼어드는 이들을 보면 당장 “야 이 자식아, 운전 똑바로 해.” 욕을 해주고 싶다가도 꾹 참고 유행가 한 소절을 부른단다.‘무슨 사연이 있겠지.’ 그동안 국가보안법, 사형제도, 사학법,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서로 간에 간극이 너무 크고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 그 사안들 자체의 문제보다 어쩌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비정규직이 2년을 넘으면 정규직으로 올려야 한다는 내용의 비정규직보호법이 지난 1일 발효되었다. 이랜드 계열 대형마트 뉴코아 등은 2년이 넘은 비정규직 노동자 500명에 대한 계약을 해지했다. 회사 쪽은 해고도 마음대로 안 되고 임금도 매년 올려주어야 하는 부담을 안기 싫다는 입장이다. 노동자 입장에선 ‘월 80만원짜리 고된 일자리나마 식구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냐.’였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 기업의 40%가 2년마다 새로운 사람을 쓰겠다는 것이고 41%는 직군을 분리해 무기계약으로 계속 고용,18%는 완전 정규직화하겠다고 답했다. 이윤을 남기는 것이 기업의 유일한 생존 이유이자 조건이라는 주장도 일면 타당하긴 하다. 그러나 이윤 추구에 더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흐름이 유엔과 유럽, 미국 등지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규직·비정규직·실업자 세 부문 사이에 구조적인 갈등이 존재한다. 일자리가 제한되어 있어 비정규직 자리가 정규직 자리로 바뀌면 실업자들은 그나마 비정규직으로 일할 기회가 줄어든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서 차별을 없애면 기업주들은 정규직 임금을 줄이거나 아예 고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국가와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문제 해결의 근본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가능하면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주나 고용안정 및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를 바라는 비정규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때문에 자신들의 몫이 줄어들까 걱정하는 정규직, 그리고 비정규직 상태로나마 서로 돌아가며 일자리를 나누기를 원하는 비고용실업자, 마지막으로 노동정책을 집행하는 국가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다른 집단의 처지를 고려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꼭 필요하다. 옳고그름을 따지는 일을 떠나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각자의 이해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우리 사회는 한단계 질적인 도약을 할 수 있다. 이달 초 사진작가 이시우씨가 미군기지·지뢰밭 등을 사진 찍다 국가보안법으로 재판을 받았다. 그를 빨갱이, 간첩이라고 욕하는 70대 노인 50여명이 방청석 앞자리를 가득 메웠다. 옥중단식을 40일간 했던 그는 이랬다. “저를 단식으로 이끈 깊은 슬픔은 제 생을 바쳐 최선을 다해온 일이 누군가에겐 상처와 위협과 무기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빨갱이라고 부른 심정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익에 의한 좌익 학살뿐 아니라 좌익에 의한 우익 학살 실상을 보았고 그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떤 사상과 논리도 그 아픈 죽음의 기억을 치유할 수 없고 그 한과 슬픔을 눈물과 감동으로 부둥켜안지 않고서는 역사의 화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이해를 가진 우리도 저 신부님처럼 상대에게 화날 때마다 읊조려보자.“무슨 사연이 있겠지.”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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