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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과 그림자
    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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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0)숨겨진 하천을 찾아서(下)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10)숨겨진 하천을 찾아서(下)

    DMZ는 그가 품고 있는 수많은 옥수(玉水)로 인해 ‘생명의 땅’이란 칭호를 얻을 만하다.뭇 생명의 근원은 물에서 비롯되니 DMZ를 흐르는 물길은 곧 생명길일 터이다.또한 존재 그 자체만으로 자유와 평화를 웅변하는 것이 DMZ의 하천들이다.155마일 겹겹이 둘러쳐진 철책선도,DMZ 곳곳에 박혀 있을 지뢰도 사람과 들짐승의 통행은 막았으나 물길 앞에선 속수무책 무장이 해제될 뿐이지 않는가. ●춤추듯 꿈틀대는 역곡천 취재팀은 탐사기간 DMZ의 크고 작은 물길과 샘을 여러번 만났다.대부분 만남의 청을 넣고 찾아간 것이지만 때론 예고없이 그들 스스로 흔연히 나타나주기도 하였다.그들은 DMZ의 낮밤을 저 홀로 고적하게 흐르거나,그것이 싫증나면 임진강이니,북한강이니,남강이니 하는 큰 강물에 저를 실어보낸다. 임진강의 여러 지천 가운데 강원도 철원의 역곡천은 숨가쁘도록 꿈틀대며 제 몸집을 놀린다.무어 그리 흥에 겨운지 남과북의 철책선을 춤추듯 월남하며,월북하는 기막힌 모습을 연출한다.51년 전 유혈이 낭자했던 백마고지를 옆에 껴안고 남으로 치닫다 북으로 빠지는가 싶더니 발길을 돌려 남으로,그리고 다시 뒤틀어 북으로 흐르다 마침내 임진강의 품에 안긴다. 취재팀은 철원군 육군 ○○사단 관할의 용강수문에서 역곡천을 만났다.6월의 햇볕이 내리쬐는 길가엔 꿀풀이 왕성하게 번식하더니 현무암이 성벽처럼 둘러선 역곡천변은 번식력 좋은 달뿌리풀이 터를 잡고 있다.바위 언덕 위로는 초본류와 신갈나무 군락지가 빼곡히 들어서 고라니같은 포유류에게 더없이 훌륭한 서식환경을 선사하고 있다.안내장교는 “역곡천을 따라 걷다보면 수달도 종종 눈에 띈다.”고 일러준다. 용강수문 북쪽 너머의 역곡천 물길 한가운데 자리잡은 바위 위에 마침 솥뚜껑만한 자라가 목을 길게 뺀 채 일광욕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다.등짝 길이가 못돼도 40∼50㎝는 족히 될 듯싶다.녀석은 사람이라는 천적이 사라진 덕에 제 몸집을 저리도 크게 키워냈을 것이다.눈길을 돌려 북쪽 먼 데를 바라보니 멀리 대마리 평원에 고라니 한 마리가 고고하게 서 있었다. ●사미천·세월천·멸공천,그리고 사천 경기도 연천군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남으로 내려오는 사미천도 꼭 뱀이 기어가듯 꼬불꼬불 굽이쳐 흘렀다.꾸구리와 납자루,누치,참마자,돌마자,피라미,쉬리 등이 채집 그물망에 쉴새없이,그것도 무더기로 올라왔다.원체 적응력이 좋아 수질에 상관없이 어디서고 서식하는 피라미를 빼고는 모두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어종들이다.북쪽에 자리잡은 사미천은 올 봄 하나의 귀한 생명을 살렸다고 한다.지난 4월 북에서 발생한 거대한 산불이 남을 향해 넘실대며 넘어오자 우리 군이 불길을 잡기 위해 맞불을 놓았을 때다. “DMZ 안에서 오갈데 없이 위기를 맞은 고라니 한 마리가 사미천에 풍덩 몸을 던졌지요.불이 잦아들 때까지 물위로 얼굴만 내놓은 채 몇시간을 버티더군요.사미천이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30년을 군인으로 지내온 노병은 “DMZ가 아니고선 볼 수 없는 광경”이라며 신난 듯 설명을 이어갔다. 어디 이뿐일까.사미천을 비롯한 DMZ의 모든 하천들은 이곳 생태계의 자궁과도 같다.짐승의 갈증과 허기를 언제든 달래주고,물고기와 곤충이 낳는 알을 따스하게 품어주며,팍팍한 땅에 숨결을 불어넣어 습지를 형성하고,그리하여 새 생명들을 수없이 잉태하고 양육해 오지 않았는가. 취재팀이 둘러본 경기도 연천과 파주 일대의 멸공천·세월천,그리고 고성군의 사천도 그랬다.혹여 지뢰를 밟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취재팀이 수백m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피라미 떼,올챙이 떼들은 멸공천 물속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며 저들의 생(生)을 힘차게 노래했다.하천변에는 밤사이 목을 축였음직한 고라니의 발자국이 선명히 찍혀 있고,몇마리인지 셀 수조차 없는 형형색색 물잠자리도 제가 태어난 멸공천을 고운 날갯짓으로 수놓았다. 남방한계선 수문 아래의 세월천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팔뚝만한 어름치 세 마리가 힘차게 유영하고,민물새우와 쌀미꾸라지도 지천으로 발견됐다. 통일전망대 인근에서 바다로 빠져드는 사천은 또 다른 맛을 안겨준다.동해안으로 흐르는 하천에서만 볼 수 있는 버들가지가 어렵잖게 발견되고,하류 쪽에는 바다와 민물하천을 오가는 회유성 어종인 은어와 칠성장어가 살고 있다.시민환경연구소 안병옥 박사는 “하천 위로 동해선 도로가 지나가고,군사작전 도로를 내느라 흙탕물이 많이 생기는 등 위협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건강한 하천생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천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전문가 칼럼 사미천은 임진강의 지류이다.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흘러내리다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에서 임진강과 합류한다.남방한계선 철책 바로 아래에서 본 사미천은 예상보다 물이 그다지 맑지는 않았지만,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었다.하천 수심은 20∼30㎝지만 이미 강바닥 공사까지 마친 상태였다.하천변에는 홍수예방을 위해 돌망태로 만든 제방이 꽤나 높게 세워져 있다. 강바닥이 자갈로 구성된 수역에서 채집된 어류는 대부분 꾸구리와 쉬리였다.특히 꾸구리의 치어들은 투망을 걷어 올릴 때 그물 사이를 눈부시게 튀며 빠져나갔다.이 수역에서 우점종인 잉어목 잉어과 어류인 꾸구리는 입수염이 4쌍이며 매우 납작한 체형이다.산란기는 4∼6월이며,주로 수서곤충을 섭식한다.물 흐름이 매우 빠른 여울에서만 서식하는 한국 고유종으로,오직 한강과 임진강,금강에서만 출현한다. 최근 수질 오염과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강바닥 공사로 인해 여울이 사라지면서 서식처를 위협당한 꾸구리는 급격히 개체수가 감소하면서 환경부 보호대상 어류로 지정되어 있다.일반적으로 꾸구리는 대부분 여울에서 반두를 이용해야만 겨우 몇 개체 정도 채집되는 어류다.하지만 이곳 사미천의 여울에선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서일까,한번 던진 투망에 20∼30개체가 손쉽게 채집되었다. 쉬리 역시 최근 하천 공사와 수질오염으로 인하여 개체수가 많이 감소하는 추세다.하지만 우리나라 전역에서 물이 깨끗하고 여울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쉽게 관찰할 수 있는,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물고기이다.쉬리의 몸은 가늘고 긴 날씬한 체형이다.4∼5월 산란기에는 물이 빠르게 흐르는 여울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돌 밑에 알을 붙인다. 남방한계선에서 한참을 남쪽으로 물러나 다시 사미천의 어류들을 채집하였다.물의 흐름이 약해지면서 강바닥에 진흙과 자갈이 깔려 있는 곳에서는 더욱 다양한 어류들이 출현하였다.피라미,줄납자루,참중고기,중고기,돌고기,줄몰개,돌마자,참마자,누치,모래무지 등과 이들을 잡아먹는 꺽지와 쏘가리가 관찰되었다.사미천은 제방공사로 인해 비록 본연의 제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지만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서식하고 있어 자연의 생명력과 파괴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최승호 박사 ·전북대 생물다양성연구소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9) 숨겨진 하천을 찾아서(上)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9) 숨겨진 하천을 찾아서(上)

    금강모치,열목어,쉬리,어름치,갈겨니,버들가지…. DMZ 깊은 계곡에 속살을 숨기고 흐르는 하천은 생태계의 보고(寶庫)다.수십년 동안 사람의 간섭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진화해 온 덕분이다.이들 하천 가운데 강원도 인제군 성내천의 생태는 특히 압권이다.미확인지뢰 지대여서 남방한계선 철책선(수문)에서 하천을 따라 20여m 정도만 조사할 수 있었지만 다양한 서식 환경과 희귀어류 10여종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열목어의 집단 서식지가 발견되는가하면 금강모치와 쉬리,어름치 등이 취재팀의 채집 그물망에 수시로 올라왔다.성내천은 아직까지 생태전문가들의 발길조차 닿지 않은,DMZ 인근의 대표적인 ‘숨겨진 하천’이다. ●성내천은 물고기의 보물창고 성내천금강모치의 유영(游泳)은 장관이었다.7∼8㎝쯤 자그마한 몸집이지만 담황색 빛깔이 다부진 인상을 준다.등쪽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은빛·금빛 반점들이 햇살에 반사돼 마치 금강석을 뿌려 놓은 듯하다.번식기를 맞은 한떼의 금강모치가 여울의 자갈 위를 휘젓고 노니는 모습에 경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금강산 계곡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에 금강모치로 이름지어졌다고 한다.하지만 눈부시게 반짝이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심산유곡에서만 서식하는 우리나라 고유어종으로 개체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귀한 물고기다.그래서 더욱 애착이 가는 걸까.얼룩배기 지느러미를 달고 은색과 흑갈색,오렌지색의 번쩍이는 비늘로 치장한 쉬리도 많이 발견됐지만 금강모치의 단아하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자태에는 비할 바 못된다. 두타연에서도 발견된 열목어도 쉽게 눈에 띈다.몸에 얼룩얼룩 흑갈색 점을 붙인 한 뼘 이상 됨직한 녀석들이 남방한계선 철책 수문 아래 물길을 따라 유유히 오가는 폼이라니…. 성질 급한 냉수성 어종의 특성 때문이겠지만 채집 그물망에 잡혀 펄떡이는 녀석들의 싱싱함에서 DMZ 물고기의 자유분방함이 배어 나온다.긴장 속에 경계근무에 나서는 얼룩무늬 복장의 우리 장병들의 모습이 열목어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수문을 경계로 하천 상·하류의 작은 소에는 40∼50㎝짜리 큼직한 열목어들이 서식하며,해가 지면 어슬렁어슬렁 나들이를 나옵니다.” 초병들의 귀띔이다.녀석들은 아마 그 큰 덩치로 성내천 물속 세계를 평정하고 있는가보다. 성내천에는 이밖에 냉수성 어종은 아니지만 새코미꾸리,배가사리,가는돌고기,모래무지,돌매자,꺽지 등도 채집된다.수문 주위에는 이런저런 물고기들이 어우러져 말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다.그만큼 서식 환경이 다양하고 좋다는 증거다. 하천의 폭은 10m에 불과하지만 물살이 빠른 곳과 느린 곳,여울지는 곳,물길이 머물며 소를 이룬 곳,깊은 곳과 얕은 곳이 고르게 있다.바닥도 모래와 자갈,바위층으로 다양하다.오염되지 않은 물속 자갈과 바위 밑에는 날도래유충과 잠자리유충,강도래유충,플라나리아 등 물고기 먹잇감들이 너댓마리씩 붙어 기어 다닌다.유충의 개체 밀도는 일반 하천보다 2∼3배는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더구나 하천변에는 가래나무와 신갈나무가 물속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물고기들이 번식하고 살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짝짓기철 물고기 사랑행위로 시끌 건강한 하천 속에는 산란기를 맞은 물고기들의 움직임도 바쁘다.6월 중순,취재팀이 하천을 찾은 시기가 짝짓기 철이다보니 채집되는 물고기 가운데 배가사리와 모래무지는 주둥이가 하얗게 변하며 튀어나오는 2차 성징을 보였다.떼지어 요란스레 짝짓기하는 금강모치를 비롯해 주둥이를 흉물스레 바꾸면서까지 짝짓기에 나선 물고기들로 6월의 성내천은 그렇게 시끌벅적했다.물고기들만의 천국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DMZ내 군사분계선을 따라 동으로 흐르다 남쪽으로 물길을 잡은 성내천은 제4땅굴이 하천 밑바닥을 아리게 뚫고 지날 때도 숱한 어종들을 품고 말없이 그렇게 남으로,남으로 흘렀으리라.성내천 곳곳에 상흔처럼 남아 있는 녹슨 지뢰와 포탄 껍질 그리고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두꺼운 철문을 훌훌 걷어내고 물고기들이 좀 더 자유롭게 남북을 오가는 날은 언제쯤이면 올 것인가. 인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전문가 칼럼 성내천은 소양호로 유입되는 인북천의 지류로,길이가 고작 4㎞ 남짓한 매우 작은 하천이다.을지전망대에 올라 북녘 산하를 굽어보니 멀리 물 흐름은 보이지 않지만 성내천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내천에서는 갈겨니,쉬리,모래무지,금강모치,참종개,꺽지,열목어,가는돌고기,새코미꾸리,배가사리,그리고 어름치 등의 11종이 채집되었다.짧은 시간에 좁은 공간에서,그것도 하천 최상류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풍부한 개체수다. 군인들의 말에 의하면 미유기의 서식도 추정되었으나 채집을 하진 못했다.직접 포획한 11종 가운데 쉬리와 금강모치,참종개,꺽지,가는돌고기,새코미꾸리,배가사리,어름치 등 8종은 한반도 고유어종이다.고유어종(endemic species)이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한반도)에만 살고 있는 물고기를 말한다.특산종이란 말을 쓰기도 하지만 고유종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 특히 금강모치,어름치,배가사리는 한강과 금강의 최상류에서만 극히 제한적으로 서식해 왔다.어름치와 배가사리는 금강에서는 이미 절멸되었으며 어름치는 최근 인공 부화를 통한 복원을 시도하고 있는 실정이다.검은색 줄무늬가 특이한 어름치(천연기념물 제259호)는 산란철에 알을 보호하기 위해 자갈을 물어다 산란탑을 쌓는 독특한 습성을 갖고 있다. 그 외에도 새코미꾸리는 한강과 낙동강에서만,가는돌고기는 한강에서만,금강모치는 한강 상류와 동해안으로 흐르는 하천의 상류 그리고 금강의 상류인 덕유산 계곡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어종이다.금강모치는 버들치와 유사한 종이나 등지느러미에 검은색 반점이 있고 몸 측면에 황금색(주황색) 세로줄이 있어서 차이가 난다.물속으로 들어가 금강모치를 보면 찬란한 그 빛깔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이처럼 우리나라 고유어종이면서 한 지역에 극히 제한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종들은 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담수어류는 하천이라는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만 서식하고,물줄기를 따라서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물고기 종들의 분포와 다양성은 지질사적인 측면뿐 아니라 생물학적 자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로 활용된다. 어떤 지역의 높은 생물 다양성은 잘 보전된 생태계의 질적인 면을 반증한다.한반도에 얼마 남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성내천 보전의 필요성이 더욱 높은 이유다. 심재환 서강정보대학교수
  • [자문위원 칼럼] 레저저널리즘의 새 지평 열자/박상건 서울여대 겸임교수

    레저는 우리 삶의 실핏줄이다.찌든 육신의 노폐물을 여과하는 통로이다.그런 면에서 주5일 근무제는 아주 중요하다.방송 프라임타임 시간대가 바뀌고 종교계에도 변화가 이는 등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한 카드회사가 20대 젊은이를 상대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좋은 회사의 기준을 ‘직원들 레저생활을 얼마나 잘 챙기느냐.’에 두겠다는 답변이 많았다.소비자 역시 앞으로 제품 하나를 고를 때도 선진국처럼 근로자가 얼마나 쉬고 생산한 제품인가를 확인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러나 상당수의 언론은 주5일제와 관련,기업주에 쏠림현상을 보이면서 레저가 마치 ‘생산성 저하’의 바이러스인 양 보도한다.이런 언론의 행태는 마치 보도내용이 사실인 양 대중에게 주입시켜 메시지를 침투시키는 이른바 탄환이론(Bullet Theory)이 되어,청년실업 15%대에 무슨 주제 넘치는 소리냐는 편협한 여론에 함몰된다.공론에 빗장이 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레저분야 유망직종을 소개하고 레저산업에 대해 긍정적 전망을 하면서도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대립을 유독 부각하는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s)적 보도태도는 언론의 역기능이다. 이제는 가족,이벤트,여행,스포츠 등 다양한 레저문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정립하고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에 대한 공론이 필요하다.레저보도 준칙 마련과 보도 프레임도 뒤따라야 한다.○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년 전통의 맛있는 집이 있다면서 전화번호와 음식 사진을 싣는 천편일률적인 레저기사와 관련단체 자료를 그대로 베껴서 생긴 잘못된 전화번호,유인도로 변한 섬을 무인도로 보도하는 등의 오보도 바로잡아야 한다.또한 레저공간의 공급자인 농어촌에 대한 보도도 개방문제와 농민 시위 등 사건중심의 경향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금 농촌은 많이 변했다.0.1㎜에 못 미치는 쌀눈의 영양분을 그대로 살려 인삼 값과 맞먹는 쌀을 생산하는가 하면 오리나 참게를 논바닥에 풀어 짓는 유기농,우리 포도로 세계적 와인 만들기 등과 잘 조성된 테마관광마을은 이국적이기까지 하다.이런 현장에서 하룻밤 묵고 돌아오는 레저생활은 체험 학습뿐 아니라 도농간 교감확대,경제와 문화를 동시에 견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신문 7월3일자의 ‘홀로 문화 전도사-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김정운 교수’기사는 레크리에이션 개념에서 못 벗어난 레저의 개념을 확장시켜 주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또 ‘부동산 시장 주5일제 특수 기대 부푼다’(7월5일자) 제하의 기사는 위축된 주택시장의 새로운 활로를 농어촌으로 확대한 정보이자,일반 부동산 기사들이 투자를 부추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공정성도 돋보였다. 한편 “2만달러 시대를 열자면서 정작 그런 밥상을 만든 사람들은 배려하지 않는다.”고 질타한 이화여대 이공주 교수의 ‘열린세상’(7월29일자),‘주5일제를 빨리 정착시켜 삶과 일의 질을 끌어올리자’라는 현대건설 이지송 사장의 ‘CEO 칼럼’(7월5일자) 등과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주강현의 觀海記- 바다에 살어리랏다’ 등 기획연재물은 레저저널리즘의 단초와 탐사저널리즘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사람과 사회’란도 사건중심에서 탈피하여 각진 사회를 치유할 가족문화와 휴머니즘,자연중심 레저문화 비중을 높여줄 것을 바란다.그것은 향토지 서울신문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길이기도 하고 산천초목과 인간향기가 동시에 가득 밴 레저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길이기도 하다. 박상건 서울여대 겸임교수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8) 생태계의 小우주, 습지의 재발견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8) 생태계의 小우주, 습지의 재발견

    탐사활동이 어느덧 중반을 넘은 6월12일 낮,취재팀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운금리 야산을 올랐다.산 기슭엔 엔진이 모두 제거 된 중형 미군 트럭이 녹슨 채로 방치돼 있었다.벌집처럼 뚫린 수 백군데 총상으로 성한 데라곤 없었다.앞 유리창마저 기관총과 소총 세례로 거미줄처럼 갈라졌다.초여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었지만 인적없는 곳에서 트럭은 음산한 괴물같은 모습이다. 이곳엔 취재팀이 탐사기간 중 찾아낸 내륙 습지 가운데 생태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습지가 펼쳐져 있다.트럭은 민통선 내에서도 민간인 출입이 철저하게 금지된 민통선 사격장내 피탄용 타깃이었다.수십년 동안 습지 위론 포탄과 총알이 금속성 굉음을 내며 과녁을 향해 날았을 테고,습지에 터잡은 개구리와 잠자리는 그때마다 머리를 물속으로 박고 몸을 떨었을 것이다. 습지는 ‘Danger-불발탄 위험지역’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경고판을 문패삼아 300여평 모나지 않은 사각형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상수리나무·아카시나무·신나무·버드나무 군락과 산딸기가 자라는 야산을 양 옆에 끼고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깊이 50㎝ 남짓한 습지 수면엔 개구리밥이 떠 있고,줄·고랭이와 함께 부들·창포·갈대·수련 등 수생식물이 절묘한 배치를 이루고 있다.습지에 한발을 디디고 올챙이와 소금쟁이·잠자리를 살피고 있는 사이 습지옆 풀숲에서 까투리 한마리가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날아 올랐다. 이 지역 관할 육군 OO사단 관계자는 “꾀꼬리·호반새·뻐꾸기·딱따구리 등 조류는 물론이고 산돼지와 고라니·산토끼 등이 많이 모여산다.”면서 “6월 하순부터 늦여름까지는 요즘은 잘 찾아보기 힘든 반딧불이가 집단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광경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탐사대장인 김귀곤 서울대 교수는 “더 할 나위없는 완벽한 생태공원 그 자체”라면서 탄성을 질렀다.자칭타칭 ‘습지 마니아’인 그는 쉴 새 없이 경탄할 뿐이었다.그러나 습지를 포함한 인근 지대는 온통 ‘불발탄 지역’이어서 취재팀은 발걸음을 쉬 내딛지 못했다. 탐사대는 이곳 습지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토리사격장 내에 있다는 사실을 철책 출입문을 되돌아 나온 후에야 확인했다.파주시 파평면 금파리의 임진강 북진교를 넘어 민통선으로 들어선 뒤 비포장 군사도로를 달리다 차량을 잠시 세우고 야산 소로길을 따라 들어간 곳이 바로 스토리사격장이었던 것이다.사격장에 둘러쳐진 철책 출입문 팻말을 다시한번 유심히 보았다.‘대규모 대포 및 소총사격지역’이란 문구가 한글과 영문으로 나란히 적혀 있다.미군 관계자에게 전화를 넣으니 “불발탄 투성이라 출입할 수 없는 곳인데 어떻게 들어갔느냐.”며 경계를 하면서도 “사격장 경계지역 안쪽으로 그런 습지가 여러 곳 있다.”고 말했다. 주변 여건으로 미뤄 그가 말하는 습지의 상당수는 오랜 세월 경작이 포기된 전답이 습지로 변한 곳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김귀곤 교수는 “미군에 의해 출입통제된 곳이니 민통선 지역내 비무장지대인 셈”이라며 “반드시 사격장내 다른 습지도 조사해야 하고 사유지라면 매입해 ‘생태계의 소우주’를 눈으로 보는 교육장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희망은 당장 현실화하기엔 어려운 실정이다.스토리사격장은 본래 우리 정부가 땅주인의 동의와 보상도 없이 미군에 공여한 땅이고,사격장내 출입경작을 일부 허용해 왔으나 미군과 주민사이의 마찰과 안전을 이유로 지난해 사유지 모두를 정부가 매수했다.미군은 이곳에 총연장 5.4㎞의 철책을 세우는 공사를 불발탄 제거작업과 함께 시작했다.미군측은 고라니·멧돼지 등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철책을 따라 50m에 한 곳씩 설치하기로 했지만,환경단체에선 인공구조물에 워낙 의심이 많은 야생동물들이 통로 이용을 기피해 사격장이 군사적 용도로만 쓰여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철책이 세워진 이후 ‘마음놓고’ 계속될 사격 훈련에 동물이든 습지든 온전하리란 보장도 전혀 없다. 탐사대는 스토리사격장 외에도 강화도 북부 해안 구등곶 등대 인근과 연천군 중면 횡산리,강화대교 하류 3㎞ 지점 해안도로 옆,임진강 지천인 연천의 사미천 하천변 등 DMZ 인근 지역에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는 내륙습지와 여러번 마주쳤다.김귀곤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엔 국제적으로 인정된 습지가 20곳을 넘지만 서해∼한강하류∼임진강하류∼사천을 따라 이어지는 남방한계선 주변에도 학술적으로 가치있는 다양한 미확인 내륙습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된 것만도 소중한 성과”라고 말했다. 연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전문가 칼럼 DMZ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습지는 우리의 자연유산이면서 문화유산이다.이처럼 DMZ 습지가 자연자원과 문화유산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DMZ에는 희귀 동·식물과 그들의 서식처가 있다.생물다양성이 풍부하며 독특한 지질학적 특징물과 수려한 자연경관도 있어 세계자연유산의 지정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계(視界)청소를 위한 화공작전이나 자연적으로 발생한 산불이 지나간 계곡에는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51년 동안의 생물학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역사경관이 습지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그야말로 역사의 흐름이 자연에 배어져 나타나는 문화자원이 된 것이다.DMZ에서는 양구 대암산 용늪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이탄지로 추정되는 곳들이 발견된다.수 백년 혹은 수 천년 이상 썩은 식물의 뿌리와 줄기,잎,꽃과 종자가 쌓인 습지들이다.그래서 이탄지는 수 백∼수 천년 전의 환경생태를 파악하고,당시의 기후나 문화 등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땅이다.평야지의 묵논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소택형 습지는 농경문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경관도 연출하고 있다. 습지는 생명의 원천이다.DMZ를 찾는 겨울철새인 두루미와 재두루미,그리고 여름철새인 왜가리와 백로류와 같은 물새류의 주요 서식처는 습지이다.멧돼지·고라니·산양과 같은 대형포유류의 서식처도 직·간접적으로 습지와 연결되어 있다. 귀중한 유산이 된 이들 DMZ 습지의 가치가 국·내외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왔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는 가운데 이 같은 귀중한 습지가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사라져 온 것도 사실이다.따라서 이제는 DMZ의 ‘습지 총량유지’ 정책이 요구된다.DMZ 내에 있는 전체 습지의 면적을 더 이상 소실시키지 않고,관리해 나가기 위한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이를 위해서는 DMZ의 습지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현황 조사와 유형 분류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 세계유산이나 유네스코 접경 생물권 보전지역 혹은 람사사이트로 지정,관리토록 하자.습지는 유역 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DMZ 5대 강에 대한 습지 통합관리를 통해 남북 환경협력의 계기를 만들어 보자. 김귀곤 서울대교수 환경생태계획학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8) 생태계의 小우주, 습지의 재발견

    탐사활동이 어느덧 중반을 넘은 6월12일 낮,취재팀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운금리 야산을 올랐다.산 기슭엔 엔진이 모두 제거 된 중형 미군 트럭이 녹슨 채로 방치돼 있었다.벌집처럼 뚫린 수 백군데 총상으로 성한 데라곤 없었다.앞 유리창마저 기관총과 소총 세례로 거미줄처럼 갈라졌다.초여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었지만 인적없는 곳에서 트럭은 음산한 괴물같은 모습이다. 이곳엔 취재팀이 탐사기간 중 찾아낸 내륙 습지 가운데 생태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습지가 펼쳐져 있다.트럭은 민통선 내에서도 민간인 출입이 철저하게 금지된 민통선 사격장내 피탄용 타깃이었다.수십년 동안 습지 위론 포탄과 총알이 금속성 굉음을 내며 과녁을 향해 날았을 테고,습지에 터잡은 개구리와 잠자리는 그때마다 머리를 물속으로 박고 몸을 떨었을 것이다. 습지는 ‘Danger-불발탄 위험지역’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경고판을 문패삼아 300여평 모나지 않은 사각형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상수리나무·아카시나무·신나무·버드나무 군락과 산딸기가 자라는 야산을 양 옆에 끼고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깊이 50㎝ 남짓한 습지 수면엔 개구리밥이 떠 있고,줄·고랭이와 함께 부들·창포·갈대·수련 등 수생식물이 절묘한 배치를 이루고 있다.습지에 한발을 디디고 올챙이와 소금쟁이·잠자리를 살피고 있는 사이 습지옆 풀숲에서 까투리 한마리가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날아 올랐다. 이 지역 관할 육군 OO사단 관계자는 “꾀꼬리·호반새·뻐꾸기·딱따구리 등 조류는 물론이고 산돼지와 고라니·산토끼 등이 많이 모여산다.”면서 “6월 하순부터 늦여름까지는 요즘은 잘 찾아보기 힘든 반딧불이가 집단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광경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탐사대장인 김귀곤 서울대 교수는 “더 할 나위없는 완벽한 생태공원 그 자체”라면서 탄성을 질렀다.자칭타칭 ‘습지 마니아’인 그는 쉴 새 없이 경탄할 뿐이었다.그러나 습지를 포함한 인근 지대는 온통 ‘불발탄 지역’이어서 취재팀은 발걸음을 쉬 내딛지 못했다. 탐사대는 이곳 습지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토리사격장 내에 있다는 사실을 철책 출입문을 되돌아 나온 후에야 확인했다.파주시 파평면 금파리의 임진강 북진교를 넘어 민통선으로 들어선 뒤 비포장 군사도로를 달리다 차량을 잠시 세우고 야산 소로길을 따라 들어간 곳이 바로 스토리사격장이었던 것이다.사격장에 둘러쳐진 철책 출입문 팻말을 다시한번 유심히 보았다.‘대규모 대포 및 소총사격지역’이란 문구가 한글과 영문으로 나란히 적혀 있다.미군 관계자에게 전화를 넣으니 “불발탄 투성이라 출입할 수 없는 곳인데 어떻게 들어갔느냐.”며 경계를 하면서도 “사격장 경계지역 안쪽으로 그런 습지가 여러 곳 있다.”고 말했다. 주변 여건으로 미뤄 그가 말하는 습지의 상당수는 오랜 세월 경작이 포기된 전답이 습지로 변한 곳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김귀곤 교수는 “미군에 의해 출입통제된 곳이니 민통선 지역내 비무장지대인 셈”이라며 “반드시 사격장내 다른 습지도 조사해야 하고 사유지라면 매입해 ‘생태계의 소우주’를 눈으로 보는 교육장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희망은 당장 현실화하기엔 어려운 실정이다.스토리사격장은 본래 우리 정부가 땅주인의 동의와 보상도 없이 미군에 공여한 땅이고,사격장내 출입경작을 일부 허용해 왔으나 미군과 주민사이의 마찰과 안전을 이유로 지난해 사유지 모두를 정부가 매수했다.미군은 이곳에 총연장 5.4㎞의 철책을 세우는 공사를 불발탄 제거작업과 함께 시작했다.미군측은 고라니·멧돼지 등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철책을 따라 50m에 한 곳씩 설치하기로 했지만,환경단체에선 인공구조물에 워낙 의심이 많은 야생동물들이 통로 이용을 기피해 사격장이 군사적 용도로만 쓰여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철책이 세워진 이후 ‘마음놓고’ 계속될 사격 훈련에 동물이든 습지든 온전하리란 보장도 전혀 없다. 탐사대는 스토리사격장 외에도 강화도 북부 해안 구등곶 등대 인근과 연천군 중면 횡산리,강화대교 하류 3㎞ 지점 해안도로 옆,임진강 지천인 연천의 사미천 하천변 등 DMZ 인근 지역에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는 내륙습지와 여러번 마주쳤다.김귀곤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엔 국제적으로 인정된 습지가 20곳을 넘지만 서해∼한강하류∼임진강하류∼사천을 따라 이어지는 남방한계선 주변에도 학술적으로 가치있는 다양한 미확인 내륙습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된 것만도 소중한 성과”라고 말했다. 연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전문가 칼럼 DMZ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습지는 우리의 자연유산이면서 문화유산이다.이처럼 DMZ 습지가 자연자원과 문화유산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DMZ에는 희귀 동·식물과 그들의 서식처가 있다.생물다양성이 풍부하며 독특한 지질학적 특징물과 수려한 자연경관도 있어 세계자연유산의 지정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계(視界)청소를 위한 화공작전이나 자연적으로 발생한 산불이 지나간 계곡에는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51년 동안의 생물학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역사경관이 습지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그야말로 역사의 흐름이 자연에 배어져 나타나는 문화자원이 된 것이다.DMZ에서는 양구 대암산 용늪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이탄지로 추정되는 곳들이 발견된다.수 백년 혹은 수 천년 이상 썩은 식물의 뿌리와 줄기,잎,꽃과 종자가 쌓인 습지들이다.그래서 이탄지는 수 백∼수 천년 전의 환경생태를 파악하고,당시의 기후나 문화 등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땅이다.평야지의 묵논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소택형 습지는 농경문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경관도 연출하고 있다. 습지는 생명의 원천이다.DMZ를 찾는 겨울철새인 두루미와 재두루미,그리고 여름철새인 왜가리와 백로류와 같은 물새류의 주요 서식처는 습지이다.멧돼지·고라니·산양과 같은 대형포유류의 서식처도 직·간접적으로 습지와 연결되어 있다. 귀중한 유산이 된 이들 DMZ 습지의 가치가 국·내외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왔음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는 가운데 이 같은 귀중한 습지가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사라져 온 것도 사실이다.따라서 이제는 DMZ의 ‘습지 총량유지’ 정책이 요구된다.DMZ 내에 있는 전체 습지의 면적을 더 이상 소실시키지 않고,관리해 나가기 위한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이를 위해서는 DMZ의 습지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현황 조사와 유형 분류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 세계유산이나 유네스코 접경 생물권 보전지역 혹은 람사사이트로 지정,관리토록 하자.습지는 유역 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DMZ 5대 강에 대한 습지 통합관리를 통해 남북 환경협력의 계기를 만들어 보자. 김귀곤 서울대교수 환경생태계획학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7) 두타연의 물안개

    ‘쏴아아…,찌르르‘ 강원도 양구군 민간인통제선을 가로질러 금강산 장안사를 향해 오르는 길은 폭포와 이름모를 풀벌레,새소리 화음이 절묘하다.포연이 사라지고 사람의 인적이 끊긴지 51년.한국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풀 한 포기 온전히 남지 않았던 곳이 울창한 밀림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양구에서 장안사까지 걸어서 반나절이면 족했던 그 길은 맑게 흐르는 수입천을 따라 왕성한 생명의 숨소리로 가득하다. 비포장 초입 길섶부터 신갈나무 군락지가 눈이 멀게 뻗어 있고 철책선을 앞두고 중간쯤에 이르면 두타연 폭포가 시원스레 물길을 가른다.폭포와 물안개 속에 떠있는 바위마다 돌단풍과 물이끼가 파랗게 수를 놓았고 검푸른 소(沼)에는 열목어,금강모치,쉬리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냉수성 어종이 터 잡은지 오래다. ●열목어 등 냉수성 어종 천국 용틀임치며 폭포를 만드는 물길 덕분에 물 속 용존산소가 풍부해 물고기가 살기에는 그만이다.주변에 나무가 울창하고 습지가 잘 발달해 있어 곤충 등 먹잇감이 풍부한 것도 물고기가 살기에 더없이 좋다. 두타연 일대는 휴전 직전까지 밀고 밀리던 격전지로,모든 것이 초토화된 이후 새롭게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어서 전문가들의 관심이 큰 곳이다.전쟁 이후 사람들의 간섭 없이 만들어진 2차 식생지역으로 신갈나무,개박달나무,물푸레나무,느릅나무,신나무,찔레나무 등이 밀림처럼 빼곡하다. 다래나무 덩굴까지 어우러져 멀리서 보면 수입천을 따라 형성된 숲 전체가 뭉게구름처럼 몽실거린다.하천가에서 우점종(優占種·일정 범위 안의 식물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종)이 된 활엽수가 독특한 식생을 이룬 모습이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잘 자라는 소나무는 바위가 많은 주변지역으로 밀려나 초라하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신갈나무 활엽수림 군락지 형성 산등성이와 암벽 지역마다 군락을 이룬 신갈나무는 하천변 모래에까지 씨를 날려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주고 있다.1∼2㎝ 크기의 앙증맞은 신갈나무 작은 새싹들이 발그스레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다.두타연 상류 오목오목 파인 바위그릇마다 물참나무 도토리 껍질이 수북하다.다람쥐와 청설모 등 작은 포유류가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타연에서 수입천 물길을 따라 북쪽으로 구불구불 1시간쯤 걸었을까….한약재로 귀하게 쓰이는 황벽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염료로 쓰이거나 위장병에 특효이다 보니 이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희귀나무가 되어버린 종(種)이다. 이곳 두타연에서는 지뢰가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며 자연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폭포 옆 습지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오리나무·신나무가 자라고,평지에는 초창기 군부대에서 심었을 아까시나무가 씨앗을 날려 울창하다.초본류는 원추리와 돌단풍,나리,오이풀,그늘사초,산거울 등 우리 주변에서 낯익은 것들이 대부분이다.갈대를 닮은 달뿌리풀이 게릴라 전법으로 물가를 찾아 뻗어나가며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습지에는 ‘큰방울새란(蘭)’ 서식 ‘큰방울새란’처럼 흔치 않은 종도 발견된다.두타연 부근 지 바위 틈에 네댓 송이씩 올망졸망 자라는 큰방울새란은 수줍은 여인의 모습 그대로다.7∼8㎝ 안팎의 가녀린 몸에 새끼손톱만한 두세 개의 작은 잎새를 달고 진분홍의 꽃술을 연분홍과 흰색 꽃잎으로 감싸며 함초롬히 피어낸 한 송이씩의 꽃이라니….여린 몸집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짙다.환경오염이 안된 청정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난이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두타연 인근,수백미터는 족히 넘게 발달된 습지는 건강한 하천을 유지시켜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생물들의 중간 완충지대로 각종 미생물과 곤충이 있고 강도래,날도래 등이 서식하며 물고기의 풍부한 먹이 서식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길따라 두타연 상류로 이어진 물줄기 돌웅덩이마다 올챙이가 떼지어 퇴적된 나뭇잎 사이로 숨바꼭질한다.육식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면서 건강한 하천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수입천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너럭바위와 돌을 타고 흐르며 붉은색,청색,녹색으로 알록달록 기막힌 장관을 연출한다.두타연의 열목어처럼 수입천을 거슬러 금강산 장안사를 돌아보는 그날은 언제나 올는지….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전문가 칼럼 두타연은 산골 중에서도 산골이다.동해를 막고 서 있는 향로봉(1296m),마산(1052m),설악산(1708m)의 산줄기를 넘고,인북천을 건넌 다음에도 매봉(1290m),가칠봉(1242m),대암산(1304m)을 넘어야 볼 수 있다.서해의 기운은 이보다 더 멀리 있다.연백평야를 지나 임진강을 건넌 다음,한북정맥을 넘어서 북한강을 건너고,어은산(1277m) 백석산(1142m)을 지나야 비로소 두타연에 이를 수 있다. 두타연은 불교식 이름에서 풍기듯 주변 경관도 신비롭다.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의 신비함은 말할 것도 없고,깎아지른 듯한 암벽에서 수직으로 자라는 소나무,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물결을 고르고 있는 웅덩이,그리고 이어지는 여울과 소의 반복….이런 조건은 두타연을 우리나라에서 냉수성 어종의 물고기들이 가장 다양한 곳으로 만들었다.금강모치·쉬리·배가사리·돌상어·새코미꾸리·미유기·꺽지 등과 같은 한국 고유종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륙의 변천사를 말해주는 열목어도 많다.특히 중간에 있는 낮은 폭포는 두타연 상류와 하류의 물고기들을 나누는 경계가 된다.열목어 등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종류는 상류에서도 발견되는 반면 작은 어종은 하류에서만 발견된다. 이렇듯 폭포와 못이 어울리며 키워낸 많은 어류는 물까치와 같은 새들도 불러모은다.큰방울새란 등 아름다운 난초가 자라는 습지도 다양한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붉은배새매(천연기념물 323호),까막딱다구리(천연기념물 242호)도 날아든다.하지만 두타연은 주변 산세가 험해 뭇 생물들의 난잡한 접근은 금한다.어떻게 보면 산이 아니라 거대한 암벽으로 병풍을 쳐놓은 듯하다.이와 같은 경관 조건은 오지로서의 지리 조건과 함께 다양한 생물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다.산양(천연기념물 217호)의 피난처가 되고,독수리 부리를 닮은 암봉에서는 독수리(천연기념물 243호) 가족들이 놀다 간다.또한 이 부근에는 숲 속을 날아다니는 포유류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호)도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또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해,벌써 양구군에서는 해마다 다양한 이벤트로 두타연을 소개하는 행사를 벌인다.하지만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훼손하면 차라리 소개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두타연을 살리는 지혜로운 대안을 기대해 본다. 신준환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7) 두타연의 물안개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7) 두타연의 물안개

    ‘쏴아아…,찌르르‘ 강원도 양구군 민간인통제선을 가로질러 금강산 장안사를 향해 오르는 길은 폭포와 이름모를 풀벌레,새소리 화음이 절묘하다.포연이 사라지고 사람의 인적이 끊긴지 51년.한국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풀 한 포기 온전히 남지 않았던 곳이 울창한 밀림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양구에서 장안사까지 걸어서 반나절이면 족했던 그 길은 맑게 흐르는 수입천을 따라 왕성한 생명의 숨소리로 가득하다. 비포장 초입 길섶부터 신갈나무 군락지가 눈이 멀게 뻗어 있고 철책선을 앞두고 중간쯤에 이르면 두타연 폭포가 시원스레 물길을 가른다.폭포와 물안개 속에 떠있는 바위마다 돌단풍과 물이끼가 파랗게 수를 놓았고 검푸른 소(沼)에는 열목어,금강모치,쉬리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냉수성 어종이 터 잡은지 오래다. ●열목어 등 냉수성 어종 천국 용틀임치며 폭포를 만드는 물길 덕분에 물 속 용존산소가 풍부해 물고기가 살기에는 그만이다.주변에 나무가 울창하고 습지가 잘 발달해 있어 곤충 등 먹잇감이 풍부한 것도 물고기가 살기에 더없이 좋다. 두타연 일대는 휴전 직전까지 밀고 밀리던 격전지로,모든 것이 초토화된 이후 새롭게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어서 전문가들의 관심이 큰 곳이다.전쟁 이후 사람들의 간섭 없이 만들어진 2차 식생지역으로 신갈나무,개박달나무,물푸레나무,느릅나무,신나무,찔레나무 등이 밀림처럼 빼곡하다. 다래나무 덩굴까지 어우러져 멀리서 보면 수입천을 따라 형성된 숲 전체가 뭉게구름처럼 몽실거린다.하천가에서 우점종(優占種·일정 범위 안의 식물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종)이 된 활엽수가 독특한 식생을 이룬 모습이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잘 자라는 소나무는 바위가 많은 주변지역으로 밀려나 초라하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신갈나무 활엽수림 군락지 형성 산등성이와 암벽 지역마다 군락을 이룬 신갈나무는 하천변 모래에까지 씨를 날려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주고 있다.1∼2㎝ 크기의 앙증맞은 신갈나무 작은 새싹들이 발그스레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다.두타연 상류 오목오목 파인 바위그릇마다 물참나무 도토리 껍질이 수북하다.다람쥐와 청설모 등 작은 포유류가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타연에서 수입천 물길을 따라 북쪽으로 구불구불 1시간쯤 걸었을까….한약재로 귀하게 쓰이는 황벽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염료로 쓰이거나 위장병에 특효이다 보니 이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희귀나무가 되어버린 종(種)이다. 이곳 두타연에서는 지뢰가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며 자연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폭포 옆 습지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오리나무·신나무가 자라고,평지에는 초창기 군부대에서 심었을 아까시나무가 씨앗을 날려 울창하다.초본류는 원추리와 돌단풍,나리,오이풀,그늘사초,산거울 등 우리 주변에서 낯익은 것들이 대부분이다.갈대를 닮은 달뿌리풀이 게릴라 전법으로 물가를 찾아 뻗어나가며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습지에는 ‘큰방울새란(蘭)’ 서식 ‘큰방울새란’처럼 흔치 않은 종도 발견된다.두타연 부근 지 바위 틈에 네댓 송이씩 올망졸망 자라는 큰방울새란은 수줍은 여인의 모습 그대로다.7∼8㎝ 안팎의 가녀린 몸에 새끼손톱만한 두세 개의 작은 잎새를 달고 진분홍의 꽃술을 연분홍과 흰색 꽃잎으로 감싸며 함초롬히 피어낸 한 송이씩의 꽃이라니….여린 몸집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짙다.환경오염이 안된 청정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난이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두타연 인근,수백미터는 족히 넘게 발달된 습지는 건강한 하천을 유지시켜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생물들의 중간 완충지대로 각종 미생물과 곤충이 있고 강도래,날도래 등이 서식하며 물고기의 풍부한 먹이 서식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길따라 두타연 상류로 이어진 물줄기 돌웅덩이마다 올챙이가 떼지어 퇴적된 나뭇잎 사이로 숨바꼭질한다.육식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면서 건강한 하천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수입천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너럭바위와 돌을 타고 흐르며 붉은색,청색,녹색으로 알록달록 기막힌 장관을 연출한다.두타연의 열목어처럼 수입천을 거슬러 금강산 장안사를 돌아보는 그날은 언제나 올는지….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전문가 칼럼 두타연은 산골 중에서도 산골이다.동해를 막고 서 있는 향로봉(1296m),마산(1052m),설악산(1708m)의 산줄기를 넘고,인북천을 건넌 다음에도 매봉(1290m),가칠봉(1242m),대암산(1304m)을 넘어야 볼 수 있다.서해의 기운은 이보다 더 멀리 있다.연백평야를 지나 임진강을 건넌 다음,한북정맥을 넘어서 북한강을 건너고,어은산(1277m) 백석산(1142m)을 지나야 비로소 두타연에 이를 수 있다. 두타연은 불교식 이름에서 풍기듯 주변 경관도 신비롭다.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의 신비함은 말할 것도 없고,깎아지른 듯한 암벽에서 수직으로 자라는 소나무,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물결을 고르고 있는 웅덩이,그리고 이어지는 여울과 소의 반복….이런 조건은 두타연을 우리나라에서 냉수성 어종의 물고기들이 가장 다양한 곳으로 만들었다.금강모치·쉬리·배가사리·돌상어·새코미꾸리·미유기·꺽지 등과 같은 한국 고유종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륙의 변천사를 말해주는 열목어도 많다.특히 중간에 있는 낮은 폭포는 두타연 상류와 하류의 물고기들을 나누는 경계가 된다.열목어 등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종류는 상류에서도 발견되는 반면 작은 어종은 하류에서만 발견된다. 이렇듯 폭포와 못이 어울리며 키워낸 많은 어류는 물까치와 같은 새들도 불러모은다.큰방울새란 등 아름다운 난초가 자라는 습지도 다양한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붉은배새매(천연기념물 323호),까막딱다구리(천연기념물 242호)도 날아든다.하지만 두타연은 주변 산세가 험해 뭇 생물들의 난잡한 접근은 금한다.어떻게 보면 산이 아니라 거대한 암벽으로 병풍을 쳐놓은 듯하다.이와 같은 경관 조건은 오지로서의 지리 조건과 함께 다양한 생물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다.산양(천연기념물 217호)의 피난처가 되고,독수리 부리를 닮은 암봉에서는 독수리(천연기념물 243호) 가족들이 놀다 간다.또한 이 부근에는 숲 속을 날아다니는 포유류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호)도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또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해,벌써 양구군에서는 해마다 다양한 이벤트로 두타연을 소개하는 행사를 벌인다.하지만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훼손하면 차라리 소개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두타연을 살리는 지혜로운 대안을 기대해 본다. 신준환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6) 5000년의 진화, 용늪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6월5일 강원도 양구군 대암산 7162부대 초소.초병의 섬뜩한 경고를 받으며 탐사대는 “사고로 죽어도 내 책임”이라는 골자의 서약서를 작성했다.서울신문 DMZ 탐사 일정의 첫 기점인 대암산 용늪에 들어가기 위한 ‘통과의례’였다.용늪은 국내 유일의 ‘고층습원’ 지역으로 1997년 3월 람사협약(세계습지보호조약) 습지로 등록된 곳이다.그 특이한 생태환경 때문에 ‘생태계의 보고’ ‘자연사 마이크로 필름’ 등 찬사가 잇따랐다.DMZ 일대에 대한 각종 탐사나 생태조사 대상지로 빠짐없이 지목되는 곳이기도 하다.용늪을 첫 탐사지로 선정한 이유도 어쩌면 절반쯤은 그 ‘유명세’ 때문이었다.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최대 2m깊이 이탄층 5000년 역사 민간인의 접근이 통제되는 초소에서부터 거의 한 시간 동안 비포장 군사도로를 덜컹대며 올라갔다.하지만 용늪의 첫인상은 실망감 그 자체였다.물이 조금 고인,작은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늪지 주변에 잡풀들이 빽빽이 차 있는 광경이 그리 신통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동행한 주광명 양구생태식물원 박사가 “한창 때인 7월 중순∼8월 중순 무렵에 왔으면 상당히 화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한 발짝 한 발짝 늪지로 다가서자 그 특별함이 발끝에서부터 전달돼 왔다.용늪에 들어가는 길목에서부터 깔아놓은 목판 길이 묘한 감촉을 주었던 것.시험삼아 발을 굴러보니 스펀지처럼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한다.목판 밑의 이탄층(泥炭層) 때문이다.늪지대 초입부터 보았던 40∼50㎝ 높이의 올록볼록한 갈색 토층.이 이탄층이야말로 ‘고층습원’ 지역을 구성하는 중요요소다. 고층습원의 이탄층은 바늘사초 등 습지식물들이 낮은 온도 등의 이유로 미생물 분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계속 쌓이기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진다.1년에 기껏해야 1㎜쯤 쌓이는데,용늪 이탄층의 깊이는 곳에 따라 최대 2m에 달한다고 한다.용늪 이탄층의 나이는 4500∼5000살 정도로 추정된다.이 이탄층으로 인한 산성토양에 연평균 4도 안팎의 낮은 기온,높은 습도 등이 겹쳐져 용늪이라는 특수한 생태환경을 만들어냈다. ●한국 특산종만 10여종 자생 2004년 원주지방환경청 자료에 따르면,용늪에는 현재 복숭아순나방붙이 등 234종의 곤충과 비로용담 등 191종의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한국에서만 자라는 금강초롱 등 한국특산식물도 10여종 발견됐다.용늪은 이런 특수성을 인정받아 1973년 7월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 246호),1989년엔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탐사대는 이날 용늪에서만 자생한다는 비로용담을 비롯,이즈음 제철을 맞은 제비동자꽃,끈끈이 주걱,개통발 등 20여종의 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곳곳에서 야생동물들의 흔적도 많이 발견됐다.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난 멧돼지들이 식물뿌리 등을 찾아 땅을 파헤치는 바람에 생태계 훼손이 우려될 정도라고 한다.이곳 백두산부대에서 2년여 근무한 성길제 병장은 “순찰하다 보면 주로 멧돼지,족제비,고라니,산양 등이 발견된다.”면서 “도롱뇽,가재 등 늪지에 사는 양서류도 많다.”고 귀띔했다. 한편 최근 들어 학계에서는 반만년에 걸친 용늪의 역사가 이대로 끊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용늪에 대한 인위적 훼손 탓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위기요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2000년대 들어와 늪지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도랑을 통한 지하수 및 지표수의 유출속도가 점점 빨라져 용늪의 자연육지화가 진행되고,여기에 주변 관목림들이 늪지대로 침입하면서 늪의 육화(陸化)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주광명 박사는 “도랑 주변 땅이 물길에 의해 무너지면서 도랑 폭이 점차 넓어지고,늪에 침투한 관목류가 물을 빨아들이는 ‘펌핑효과’도 육화를 가속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용늪 한가운데까지 들어선 버드나무 등 관목류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정부도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원주지방환경청 곽성근 계장은 “이탄층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늪 주변을 목책으로 둘러싸기도 하고,물살 속도를 줄이기 위해 마대자루를 깔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자연적으로 도랑이 자꾸 생겨나고 있어 현재와 같은 소극적인 방책으로는 ‘대세’를 막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5000살 용늪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실상 앞에서 우리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자연적인 육화 현상인 만큼 그대로 두는 것이 생태계의 순리를 따르는 것인지,아니면 더 이상의 육화를 막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인지 중지를 모을 때다. 양구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전문가 칼럼 양구 대암산 용늪은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다.5000년 동안 발달된 이 이탄지 일대에는 희귀종인 끈끈이주걱과 우리나라 특산종인 금강초롱과 같은 식물은 물론,무당개구리 등 각종 양서·파충류가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늪의 바늘사초와 식충식물인 통발군락 가운데에서 어린 철쭉이나 신갈나무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습지에서 썩어야 할 목본류 종자가 썩지 않고 그곳에서 발아,싹이 터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소위 육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늪의 수문학적 과정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용늪의 환경생태적 지속성이 위협받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파주의 장단반도 습지와 동해선 철도와 도로 구간의 습지 등 여러 습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그만큼 인간의 간섭이 없을 것이라고 여겨져 왔던 생명의 땅도 알게 모르게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용늪의 유지 관리를 놓고 ‘보전생태학’적 시각과 ‘복원생태학’적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보전생태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들의 보전과 복원에 관심을 갖고 이들 개체수의 증진을 주된 목표로 삼는다.반면,복원생태학자들은 서식처를 강조한다.직접적인 종의 복원 차원을 넘어서 생물종이 서식하는 장소 혹은 공간에 대한 복원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이다.물론 보전생태학자나 복원생태학자 모두 궁극적으로는 생물다양성의 증진을 꾀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접근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용늪의 환경생태적 지속성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접근과 과학적 기법의 적용이 필요하다.보전과 복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아울러 용늪과 그 주변 지역의 수문학적 순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지속가능한 관리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DMZ를 보전만 하자고 할 때가 아닌 것 같다.람사사이트로 지정된 용늪과 같은 가치있는 습지들이 DMZ에는 무수히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습지들의 중요성이 파악되기도 전에 사라질 수 있으며,지속적인 위협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따라서 보전과 함께 생태적인 복원을 통한 적극적인 관리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김귀곤 서울대 환경생태계획학 교수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6) 5000년의 진화, 용늪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6) 5000년의 진화, 용늪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6월5일 강원도 양구군 대암산 7162부대 초소.초병의 섬뜩한 경고를 받으며 탐사대는 “사고로 죽어도 내 책임”이라는 골자의 서약서를 작성했다.서울신문 DMZ 탐사 일정의 첫 기점인 대암산 용늪에 들어가기 위한 ‘통과의례’였다.용늪은 국내 유일의 ‘고층습원’ 지역으로 1997년 3월 람사협약(세계습지보호조약) 습지로 등록된 곳이다.그 특이한 생태환경 때문에 ‘생태계의 보고’ ‘자연사 마이크로 필름’ 등 찬사가 잇따랐다.DMZ 일대에 대한 각종 탐사나 생태조사 대상지로 빠짐없이 지목되는 곳이기도 하다.용늪을 첫 탐사지로 선정한 이유도 어쩌면 절반쯤은 그 ‘유명세’ 때문이었다.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최대 2m깊이 이탄층 5000년 역사 민간인의 접근이 통제되는 초소에서부터 거의 한 시간 동안 비포장 군사도로를 덜컹대며 올라갔다.하지만 용늪의 첫인상은 실망감 그 자체였다.물이 조금 고인,작은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늪지 주변에 잡풀들이 빽빽이 차 있는 광경이 그리 신통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동행한 주광명 양구생태식물원 박사가 “한창 때인 7월 중순∼8월 중순 무렵에 왔으면 상당히 화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한 발짝 한 발짝 늪지로 다가서자 그 특별함이 발끝에서부터 전달돼 왔다.용늪에 들어가는 길목에서부터 깔아놓은 목판 길이 묘한 감촉을 주었던 것.시험삼아 발을 굴러보니 스펀지처럼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한다.목판 밑의 이탄층(泥炭層) 때문이다.늪지대 초입부터 보았던 40∼50㎝ 높이의 올록볼록한 갈색 토층.이 이탄층이야말로 ‘고층습원’ 지역을 구성하는 중요요소다. 고층습원의 이탄층은 바늘사초 등 습지식물들이 낮은 온도 등의 이유로 미생물 분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계속 쌓이기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진다.1년에 기껏해야 1㎜쯤 쌓이는데,용늪 이탄층의 깊이는 곳에 따라 최대 2m에 달한다고 한다.용늪 이탄층의 나이는 4500∼5000살 정도로 추정된다.이 이탄층으로 인한 산성토양에 연평균 4도 안팎의 낮은 기온,높은 습도 등이 겹쳐져 용늪이라는 특수한 생태환경을 만들어냈다. ●한국 특산종만 10여종 자생 2004년 원주지방환경청 자료에 따르면,용늪에는 현재 복숭아순나방붙이 등 234종의 곤충과 비로용담 등 191종의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한국에서만 자라는 금강초롱 등 한국특산식물도 10여종 발견됐다.용늪은 이런 특수성을 인정받아 1973년 7월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 246호),1989년엔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탐사대는 이날 용늪에서만 자생한다는 비로용담을 비롯,이즈음 제철을 맞은 제비동자꽃,끈끈이 주걱,개통발 등 20여종의 식물들을 볼 수 있었다. 곳곳에서 야생동물들의 흔적도 많이 발견됐다.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난 멧돼지들이 식물뿌리 등을 찾아 땅을 파헤치는 바람에 생태계 훼손이 우려될 정도라고 한다.이곳 백두산부대에서 2년여 근무한 성길제 병장은 “순찰하다 보면 주로 멧돼지,족제비,고라니,산양 등이 발견된다.”면서 “도롱뇽,가재 등 늪지에 사는 양서류도 많다.”고 귀띔했다. 한편 최근 들어 학계에서는 반만년에 걸친 용늪의 역사가 이대로 끊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용늪에 대한 인위적 훼손 탓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위기요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2000년대 들어와 늪지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도랑을 통한 지하수 및 지표수의 유출속도가 점점 빨라져 용늪의 자연육지화가 진행되고,여기에 주변 관목림들이 늪지대로 침입하면서 늪의 육화(陸化)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주광명 박사는 “도랑 주변 땅이 물길에 의해 무너지면서 도랑 폭이 점차 넓어지고,늪에 침투한 관목류가 물을 빨아들이는 ‘펌핑효과’도 육화를 가속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용늪 한가운데까지 들어선 버드나무 등 관목류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정부도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원주지방환경청 곽성근 계장은 “이탄층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늪 주변을 목책으로 둘러싸기도 하고,물살 속도를 줄이기 위해 마대자루를 깔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자연적으로 도랑이 자꾸 생겨나고 있어 현재와 같은 소극적인 방책으로는 ‘대세’를 막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5000살 용늪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실상 앞에서 우리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자연적인 육화 현상인 만큼 그대로 두는 것이 생태계의 순리를 따르는 것인지,아니면 더 이상의 육화를 막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인지 중지를 모을 때다. 양구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전문가 칼럼 양구 대암산 용늪은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다.5000년 동안 발달된 이 이탄지 일대에는 희귀종인 끈끈이주걱과 우리나라 특산종인 금강초롱과 같은 식물은 물론,무당개구리 등 각종 양서·파충류가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늪의 바늘사초와 식충식물인 통발군락 가운데에서 어린 철쭉이나 신갈나무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습지에서 썩어야 할 목본류 종자가 썩지 않고 그곳에서 발아,싹이 터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소위 육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늪의 수문학적 과정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용늪의 환경생태적 지속성이 위협받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파주의 장단반도 습지와 동해선 철도와 도로 구간의 습지 등 여러 습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그만큼 인간의 간섭이 없을 것이라고 여겨져 왔던 생명의 땅도 알게 모르게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용늪의 유지 관리를 놓고 ‘보전생태학’적 시각과 ‘복원생태학’적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보전생태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들의 보전과 복원에 관심을 갖고 이들 개체수의 증진을 주된 목표로 삼는다.반면,복원생태학자들은 서식처를 강조한다.직접적인 종의 복원 차원을 넘어서 생물종이 서식하는 장소 혹은 공간에 대한 복원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이다.물론 보전생태학자나 복원생태학자 모두 궁극적으로는 생물다양성의 증진을 꾀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접근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용늪의 환경생태적 지속성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접근과 과학적 기법의 적용이 필요하다.보전과 복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아울러 용늪과 그 주변 지역의 수문학적 순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지속가능한 관리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DMZ를 보전만 하자고 할 때가 아닌 것 같다.람사사이트로 지정된 용늪과 같은 가치있는 습지들이 DMZ에는 무수히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습지들의 중요성이 파악되기도 전에 사라질 수 있으며,지속적인 위협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따라서 보전과 함께 생태적인 복원을 통한 적극적인 관리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김귀곤 서울대 환경생태계획학 교수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5) 고라니의 DMZ 살이

    민통선·비무장지대(DMZ) 고라니들의 일상은 ‘평화’와 ‘불안’이 교차한다.인적이 떠난 단절된 환경 속에서 눈에 띄는 천적도 없고,주변 산야의 풍부한 물과 나무뿌리 등 널린 먹이는 여느 곳 고라니들이 부러워할 만하다.그러나 지뢰와 불발탄에 희생되거나 ,연례행사처럼 매년 봄 계속되는 비무장지대의 산불에 쫓기는 등 그네들이라고 고초를 겪지 않는 건 아니다.남방한계선 철책 인근 남쪽에 자리를 잡았거나,간혹 수로 아래 철책 구멍을 통해 남쪽으로 넘어온 녀석들은 농부들의 농작물을 탐내다가 올무에 희생되고,농로와 작전로를 지나는 차에 치여 비명횡사하기도 한다. ●자동차에 뛰어들어 비명횡사 6월11일 낮.강원도 화천군 오작교 하류 2㎞ 지점 북한강 상류에 어미 고라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폭 100여m의 강변 모래밭,토종자라가 90도 가까이 곤두서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웅덩이 옆을 지나 껑충거리는 특유의 몸짓으로 오작교 방향을 향해 강을 따라 5분여를 유유히 달리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라니는 수영을 잘하니 녀석도 수영하러 나왔던가 보다.이 고라니는 탐사대에 DMZ 야생 고라니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가장 오래 드러내 보인 녀석이다.탐사대는 탐사기간 동안 거의 매일 고라니를 1∼2마리씩 목격했다.그러나 미확인 지뢰지대 풀숲에서 ‘두두둑’ 소리를 내며 불쑥 등장해 아취형 등짝만을 보여주고 달아나거나,강변 억새 숲속에서 쉬고 있다 풀잎을 가르며 순식간에 달아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6월10일 임진강 초평도 너머 장단반도의 서부전선 이중 철책 사이에서 목격된 고라니는 500여m 남짓한 구간을 동서로 왔다갔다 배회하는 행동을 반복했다.남방한계선 너머 북쪽에서 살다가 철책을 넘어와 길을 잃은 녀석으로 보였다. 영어로 물사슴(Water Deer)이라 불릴 정도로 물과 친숙한 고라니는 DMZ에서도 대부분 호수나 강변 숲에서 목격됐다.경기도 연천 필승교 남방한계선 임진강 철책 하류 100여m 풀숲의 고라니는 임진강가의 갈대숲을 터전으로 삼았다. 강화도 북부 해안의 창우리에서 본 어미와 새끼 2마리의 고라니 모자는 묵논 습지를,파주 스토리사격장내 풀숲을 갑자기 뛰쳐나와 탐사대를 놀라게 한 고라니는 미군 사격장내 피탄지점 자연습지를 터전으로 삼고 있었다. 고라니 서식밀도는 6·25전쟁 이전에 비해 한동안 현저히 줄었다가 생피를 마시고 보약재로 쓰려고 성행했던 밀렵을 엄격하게 단속한 이후 근년들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개체수가 늘고 특히 DMZ에선 흔한 짐승이다.그래서인지 멸종위기종이 돼 버린 산양 등과는 달리 고라니의 습성에 대한 집요한 연구결과를 찾기는 힘들다. 지난달 6일 밤 마을앞 도로에서 고라니를 차로 쳤다는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이장 김동일(42)씨는 “마을 사람들도 가끔 고라니와 부딪치는데 녀석들이 모두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향해 달려든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그러나 전방부대 장병들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경기도 연천의 DMZ 철책담당 중대장은 “10㎞ 순찰로를 밤중에 한번 돌면 보통 10여마리를 목격한다.군용 손전등을 가까이 들이대면 놀라서 얼어붙은 듯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몸길이 1∼1.2m의 왜소한 체격에 등이 휘어 때론 옹졸해 보이기조차 하는 고라니는 위험에 처하면 마냥 줄행랑을 놓는 ‘소심하고 아둔한 약자’다.먹이를 저축하거나 겨울잠을 자지 않으므로 겨울은 시련의 시기다.인가도 경작지도 없는 비무장지대 고라니에겐 특히나 잔인한 계절이다.DMZ 장병들은 폭설이 심한 겨울엔 배고픔과 추위에 지쳐 숨진 고라니를 가끔 목격한다. ●논·밭 망쳐 농민들과 ‘원수지간’ 탐사가 진행되던 6월초 남북이 서로 철책에 설치된 선전방송용 대형 스피커와 전광판을 철거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소음과 야간 불빛에 시달리던 고라니에게도 좋은 소식일 것이다.그러나 민통선 지역을 출입하는 농민들과 고라니는 불행하게도 ‘원수지간’이 되어간다.벼와 콩 등 밭작물의 새순을 잘라먹거나 논 군데군데 자리를 차지하고 눌러앉는 고라니의 등쌀에 농민들은 정부가 피해를 보상하라고 아우성이다.툭하면 논두렁을 무너뜨리고 가을에 볏단을 짓밟곤 하는 멧돼지에 대한 불만만큼이나 크다.고라니는 ‘겁쟁이’ 노루보다도 작고 약하지만 인적없는 땅 DMZ에서 꿋꿋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노루나 사슴보다 더욱 번성해 가고 있다.우리에게 “인간과 자연의 공존한계는 어디인가.”를 되물으면서…. 화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전문가 칼럼 겨울철에도 눈이 말끔히 치워진 길을 따라 민간인통제선 지역으로 들어서면 길 옆 눈이 쌓인 곳에 야생동물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멧돼지를 비롯해 노루나 고라니가 대부분이지만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다.어쩌다 산양의 발자국이라도 만날 때면 기쁨은 더욱 커지고 발자국을 따라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다.그나마 나라 안에서 야생동물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은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뿐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따라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남북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씩 물러남으로써 넓이가 6400만 평에 이르는 드넓은 비무장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군사분계선은 서쪽으로 한강 하구의 교동도에서부터 판문점을 지나 중부지방의 철원,양구,인제와 동해안의 고성에 이르는 248㎞ 길이로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민간인통제구역은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으로부터 지역에 따라 5∼20㎞ 밖에 그어진 민간인통제선 안의 지역을 말하며 비무장지대 일대의 군 작전 및 군사시설보호와 보안유지를 목적으로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는 구역이다. 휴전 이후 사람들의 간섭을 덜 받음으로써 어느 정도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은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야생동물만 보더라도 남한 지역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짐작되는 반달곰,표범,여우와 같은 종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멸종위기종인 산양을 비롯한 수달의 흔적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먹이를 찾아 산을 오르는 멧돼지와 노루,고라니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겨울철이면 강원도 고성 오소동과 고진동 계곡에서는 산양이 무리지어 나타나 군인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겨울을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자연 상태에서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생태계의 건강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몸담아 살아가고 있는 곳의 자연은 야생동물의 모습은 그 흔적조차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건강함을 잃었고 우리들의 삶도 아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야생동물이 살 수 없는 땅은 우리네 인간들도 살 수 없다.야생동물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만이 우리들에게 가냘픈 희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박그림 설악녹색연합대표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5) 고라니의 DMZ 살이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5) 고라니의 DMZ 살이

    민통선·비무장지대(DMZ) 고라니들의 일상은 ‘평화’와 ‘불안’이 교차한다.인적이 떠난 단절된 환경 속에서 눈에 띄는 천적도 없고,주변 산야의 풍부한 물과 나무뿌리 등 널린 먹이는 여느 곳 고라니들이 부러워할 만하다.그러나 지뢰와 불발탄에 희생되거나 ,연례행사처럼 매년 봄 계속되는 비무장지대의 산불에 쫓기는 등 그네들이라고 고초를 겪지 않는 건 아니다.남방한계선 철책 인근 남쪽에 자리를 잡았거나,간혹 수로 아래 철책 구멍을 통해 남쪽으로 넘어온 녀석들은 농부들의 농작물을 탐내다가 올무에 희생되고,농로와 작전로를 지나는 차에 치여 비명횡사하기도 한다. ●자동차에 뛰어들어 비명횡사 6월11일 낮.강원도 화천군 오작교 하류 2㎞ 지점 북한강 상류에 어미 고라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폭 100여m의 강변 모래밭,토종자라가 90도 가까이 곤두서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웅덩이 옆을 지나 껑충거리는 특유의 몸짓으로 오작교 방향을 향해 강을 따라 5분여를 유유히 달리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라니는 수영을 잘하니 녀석도 수영하러 나왔던가 보다.이 고라니는 탐사대에 DMZ 야생 고라니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가장 오래 드러내 보인 녀석이다.탐사대는 탐사기간 동안 거의 매일 고라니를 1∼2마리씩 목격했다.그러나 미확인 지뢰지대 풀숲에서 ‘두두둑’ 소리를 내며 불쑥 등장해 아취형 등짝만을 보여주고 달아나거나,강변 억새 숲속에서 쉬고 있다 풀잎을 가르며 순식간에 달아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6월10일 임진강 초평도 너머 장단반도의 서부전선 이중 철책 사이에서 목격된 고라니는 500여m 남짓한 구간을 동서로 왔다갔다 배회하는 행동을 반복했다.남방한계선 너머 북쪽에서 살다가 철책을 넘어와 길을 잃은 녀석으로 보였다. 영어로 물사슴(Water Deer)이라 불릴 정도로 물과 친숙한 고라니는 DMZ에서도 대부분 호수나 강변 숲에서 목격됐다.경기도 연천 필승교 남방한계선 임진강 철책 하류 100여m 풀숲의 고라니는 임진강가의 갈대숲을 터전으로 삼았다. 강화도 북부 해안의 창우리에서 본 어미와 새끼 2마리의 고라니 모자는 묵논 습지를,파주 스토리사격장내 풀숲을 갑자기 뛰쳐나와 탐사대를 놀라게 한 고라니는 미군 사격장내 피탄지점 자연습지를 터전으로 삼고 있었다. 고라니 서식밀도는 6·25전쟁 이전에 비해 한동안 현저히 줄었다가 생피를 마시고 보약재로 쓰려고 성행했던 밀렵을 엄격하게 단속한 이후 근년들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개체수가 늘고 특히 DMZ에선 흔한 짐승이다.그래서인지 멸종위기종이 돼 버린 산양 등과는 달리 고라니의 습성에 대한 집요한 연구결과를 찾기는 힘들다. 지난달 6일 밤 마을앞 도로에서 고라니를 차로 쳤다는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이장 김동일(42)씨는 “마을 사람들도 가끔 고라니와 부딪치는데 녀석들이 모두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향해 달려든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그러나 전방부대 장병들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경기도 연천의 DMZ 철책담당 중대장은 “10㎞ 순찰로를 밤중에 한번 돌면 보통 10여마리를 목격한다.군용 손전등을 가까이 들이대면 놀라서 얼어붙은 듯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몸길이 1∼1.2m의 왜소한 체격에 등이 휘어 때론 옹졸해 보이기조차 하는 고라니는 위험에 처하면 마냥 줄행랑을 놓는 ‘소심하고 아둔한 약자’다.먹이를 저축하거나 겨울잠을 자지 않으므로 겨울은 시련의 시기다.인가도 경작지도 없는 비무장지대 고라니에겐 특히나 잔인한 계절이다.DMZ 장병들은 폭설이 심한 겨울엔 배고픔과 추위에 지쳐 숨진 고라니를 가끔 목격한다. ●논·밭 망쳐 농민들과 ‘원수지간’ 탐사가 진행되던 6월초 남북이 서로 철책에 설치된 선전방송용 대형 스피커와 전광판을 철거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소음과 야간 불빛에 시달리던 고라니에게도 좋은 소식일 것이다.그러나 민통선 지역을 출입하는 농민들과 고라니는 불행하게도 ‘원수지간’이 되어간다.벼와 콩 등 밭작물의 새순을 잘라먹거나 논 군데군데 자리를 차지하고 눌러앉는 고라니의 등쌀에 농민들은 정부가 피해를 보상하라고 아우성이다.툭하면 논두렁을 무너뜨리고 가을에 볏단을 짓밟곤 하는 멧돼지에 대한 불만만큼이나 크다.고라니는 ‘겁쟁이’ 노루보다도 작고 약하지만 인적없는 땅 DMZ에서 꿋꿋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노루나 사슴보다 더욱 번성해 가고 있다.우리에게 “인간과 자연의 공존한계는 어디인가.”를 되물으면서…. 화천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전문가 칼럼 겨울철에도 눈이 말끔히 치워진 길을 따라 민간인통제선 지역으로 들어서면 길 옆 눈이 쌓인 곳에 야생동물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멧돼지를 비롯해 노루나 고라니가 대부분이지만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다.어쩌다 산양의 발자국이라도 만날 때면 기쁨은 더욱 커지고 발자국을 따라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다.그나마 나라 안에서 야생동물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은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뿐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따라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남북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씩 물러남으로써 넓이가 6400만 평에 이르는 드넓은 비무장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군사분계선은 서쪽으로 한강 하구의 교동도에서부터 판문점을 지나 중부지방의 철원,양구,인제와 동해안의 고성에 이르는 248㎞ 길이로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민간인통제구역은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으로부터 지역에 따라 5∼20㎞ 밖에 그어진 민간인통제선 안의 지역을 말하며 비무장지대 일대의 군 작전 및 군사시설보호와 보안유지를 목적으로 민간인 출입을 제한하는 구역이다. 휴전 이후 사람들의 간섭을 덜 받음으로써 어느 정도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은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야생동물만 보더라도 남한 지역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짐작되는 반달곰,표범,여우와 같은 종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멸종위기종인 산양을 비롯한 수달의 흔적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먹이를 찾아 산을 오르는 멧돼지와 노루,고라니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겨울철이면 강원도 고성 오소동과 고진동 계곡에서는 산양이 무리지어 나타나 군인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겨울을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자연 상태에서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생태계의 건강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몸담아 살아가고 있는 곳의 자연은 야생동물의 모습은 그 흔적조차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건강함을 잃었고 우리들의 삶도 아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야생동물이 살 수 없는 땅은 우리네 인간들도 살 수 없다.야생동물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통제구역만이 우리들에게 가냘픈 희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박그림 설악녹색연합대표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4) 창공의 자유, 저어새를 찾아서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4) 창공의 자유, 저어새를 찾아서

    새란 새는 ‘학섬’에 죄다 모인 것 같았다.섬 동쪽 가장자리를 반쯤은 덮다시피하며 빼곡히 앉아 있다.여럿이 어우러져 춤 추듯 창공을 오르내리기도 한다.군무(群舞)가 가히 장관이다.푸덕이는 날갯짓 소리,쉼없이 지저귀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뭍으로 전해져 온다.‘뱀섬’엔 뱀은 보이지 않고 새와 새소리만 그득할 뿐이다. ●유도에 나타난 저어새 학섬이라고도,뱀섬이라고도 불리는 유도(留島)는 경기도 김포와 북한의 개풍군을 양옆에 껴안고 흐르는 한강 하구에 동그마니 떠있다.유도는 이렇듯 새들이 머무르는 쉼터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일 게다.1996년까지 인근 주민에게조차 있는 듯,없는 듯 여겨져 왔지만 그해 여름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해병대 안내장교는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 온 북한 소가 이 섬에 닿아 서너달 꼼짝없이 갇혀 지냈다.결국 우리 군이 ‘유도 상륙’을 북한에 통보한 뒤 구출해냈다.”고 설명한다.김포·강화 북부의 한강은 남북한 어느 쪽도 맘대로 드나들지 못하는,서로의 발이 묶인 곳이다.비록 휴전선은 그어지지 않았지만 삼엄하긴 뭍의 비무장지대(DMZ)와 마찬가지다. 6월 8일 아침 나절,김포 북부의 해병대 ‘유도소대’ 막사를 돌아 초소 앞으로 다가섰다.꼬불꼬불 길게 이어진 철책선이 발치에 엎드리면서 시원스레 시야가 트이고,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난생 처음 들어보는 새들의 합창에 귀마저 대뜸 열렸다.400m 남짓 떨어진 유도에서 보내오는 소리다.와글와글인지,지절지절인지 걸맞는 의성어가 떠올려지지 않는다.그저 오묘할밖에….초병들의 관측용 대형 망원경을 받아들었다.지천으로 깔린 새들이 비로소 형체를 갖추며 눈에 들어온다.족히 수천마리는 됨직하다.가마우지,백로,왜가리,괭이갈매기….새떼들이 너나 구별없이 한데 모여 섬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서울 도심을 벗어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들 어느덧 눈에 익숙해진 녀석들이다.몇분이나 지났을까,망원경이 ‘행운’을 포착했다.여느 것들과는 모습이 한결 다른,낯선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익살로 감춘 비장미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였다.하나,둘,셋… 녀석들은 유유히 섬 주위를 활강하면서,바윗돌 위에 우뚝 선 채로,부리를 맞부딪칠 것처럼 서로를 가까이 한 채,그렇게 10여마리나 발견됐다.‘유도에서 저어새를 볼 수 있다.’는 사전정보를 챙기지 못한 취재팀으로선 전혀 뜻밖의 만남이었다.녀석은 익살스러운 구석이 있다.주걱 모양의 긴 부리 생김새가 그렇고,이름 또한 재미 있다.부리를 좌우로 저어,저어가며 먹이를 잡는 통에 붙여졌다.예전엔 가리새로도 불렸다.조상들 눈에는 주걱부리가 쟁기로 비쳤던 모양이다. 하지만 녀석은 해학으로 비장미를 가렸을 뿐이다.세계를 통틀어 고작 1200여마리 정도만 생존해 있을 뿐이다.나라 안팎의 멸종위기종 조류 목록에 어김없이 이름이 오른 희귀종이다.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10년 이내에 멸종될 확률이 80% 가량”으로 진단하기도 한다.‘근본적으로’ 위태로운 삶을 부지하고 있는 저어새가 최후의 번식처로 삼은 곳은 강화 남부지역과 석도,볼음도 등 서해바다 무인도와 그 일대에 펼쳐진 강화갯벌(천연기념물 419호)이다.이곳을 삶터로 택한 이유는 뭘까. “저어새는 20㎝ 정도의 긴 부리를 물속에 집어넣어 좌우로 흔들면서 먹이를 낚아챕니다.그러기 위해선 물 깊이가 비교적 얕은 갯벌이나 강어귀가 적당하지요.광활한 강화갯벌과 서해 무인도(비무장지대 일대)는 그런 점에서 생존환경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무엇보다 개발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상대적으로 덜 진행되었으니까요.”(환경운동연합 김경원 국장) 이를테면 남북간 군사적 대치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것이 저어새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한번 더 뒤집으면,지구상에서 가장 번창한 종(種)인 사람이 저어새를 절박한 처지로 몰아갔다는 얘기다.김 국장의 설명은 이어졌다.“저어새는 아직도 미지(未知)의 대상입니다.몇살까지 사는지,어떻게 번식하는지 생태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지요.저어새 보호에 대한 인류의 책임은 남북한이 가장 크게 떠안아야 마땅합니다.공동 생태조사 등 남북간 환경협력이 절실합니다.” 녀석들이 지금처럼 한반도의 외진 구석뿐 아니라 더 넓은 창공을 자유롭게 누비는 날을 고대해 본다.‘시한부 생명’이란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 채로…. 김포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전문가 칼럼 생태학적으로 비무장지대의 심벌을 꼽으라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능선에는 신갈나무와 소나무요,골짜기에는 버드나무·신나무·오리나무가 어울려 사는 습지라 할 것이다.그리고 이곳저곳에 밀려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아까시나무.이렇듯 비무장지대는 하나의 얼굴로 다가오지 않는다.신갈나무와 소나무는 군사 활동의 결과로 삐뚤빼뚤 왜소한 모습이지만,습지는 기름지고 넓게 자리잡고 있다.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된다지만 외래식물인 아까시나무도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은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이렇게 보면,자연과 인간의 영향력이 극단적으로 교차되는 자리,이것이 비무장지대의 모습이다. 동물 중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고 널리 분포하는 것은 고라니다.그런데 고라니가 비무장지대에 이렇게 많다는 것은 숲이 울창해야 할 곳이 훼손되고 풀밭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한편으론 비무장지대와 인접지역의 수계(水系)에는 우리나라 민물고기의 고유종과 희귀종이 많다.이는 그만큼 골짜기를 따라서는 자연성이 크게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비무장지대는 자연적인 곳만은 아니고 군사활동과 같은 광범위한 인간의 영향 아래 자연의 힘이 살아나는 자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비무장지대는 이 외에도 피난처의 역할도 한다.민통선 이남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저어새나 산양도 비무장지대에 오면 제법 볼 수 있다.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산양의 힘차게 뻗은 뿔보다 무서움을 타는 듯한 큰 눈망울이 먼저 보이는 건 이런 까닭일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으로는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비무장지대는 신화의 시대에는 소통의 자리였고,삼국시대에는 외세를 막아야 할 울타리이면서 동시에 밖으로 뻗어 나가야 할 통로였다.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수도가 바뀌는 축이었으면서도,국가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지금은 자연을 지킬 울타리이면서 남북이 소통해야 할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비무장지대의 모습은 곧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훼손이 진행되면서도 자연이 살아나는 자리는,역사적인 흐름과 자연적인 계통을 모르고는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는 배운다는 자세가 중요하다.역사와 자연 앞에 물어보자.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막아야 할 것인가? 신준환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 전문가칼럼

    생태학적으로 비무장지대의 심벌을 꼽으라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능선에는 신갈나무와 소나무요,골짜기에는 버드나무·신나무·오리나무가 어울려 사는 습지라 할 것이다.그리고 이곳저곳에 밀려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아까시나무.이렇듯 비무장지대는 하나의 얼굴로 다가오지 않는다.신갈나무와 소나무는 군사 활동의 결과로 삐뚤빼뚤 왜소한 모습이지만,습지는 기름지고 넓게 자리잡고 있다.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된다지만 외래식물인 아까시나무도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은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이렇게 보면,자연과 인간의 영향력이 극단적으로 교차되는 자리,이것이 비무장지대의 모습이다. 동물 중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고 널리 분포하는 것은 고라니다.그런데 고라니가 비무장지대에 이렇게 많다는 것은 숲이 울창해야 할 곳이 훼손되고 풀밭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한편으론 비무장지대와 인접지역의 수계(水系)에는 우리나라 민물고기의 고유종과 희귀종이 많다.이는 그만큼 골짜기를 따라서는 자연성이 크게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비무장지대는 자연적인 곳만은 아니고 군사활동과 같은 광범위한 인간의 영향 아래 자연의 힘이 살아나는 자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비무장지대는 이 외에도 피난처의 역할도 한다.민통선 이남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저어새나 산양도 비무장지대에 오면 제법 볼 수 있다.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산양의 힘차게 뻗은 뿔보다 무서움을 타는 듯한 큰 눈망울이 먼저 보이는 건 이런 까닭일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으로는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비무장지대는 신화의 시대에는 소통의 자리였고,삼국시대에는 외세를 막아야 할 울타리이면서 동시에 밖으로 뻗어 나가야 할 통로였다.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수도가 바뀌는 축이었으면서도,국가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지금은 자연을 지킬 울타리이면서 남북이 소통해야 할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비무장지대의 모습은 곧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훼손이 진행되면서도 자연이 살아나는 자리는,역사적인 흐름과 자연적인 계통을 모르고는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는 배운다는 자세가 중요하다.역사와 자연 앞에 물어보자.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막아야 할 것인가? 신준환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4) 창공의 자유, 저어새를 찾아서

    새란 새는 ‘학섬’에 죄다 모인 것 같았다.섬 동쪽 가장자리를 반쯤은 덮다시피하며 빼곡히 앉아 있다.여럿이 어우러져 춤 추듯 창공을 오르내리기도 한다.군무(群舞)가 가히 장관이다.푸덕이는 날갯짓 소리,쉼없이 지저귀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뭍으로 전해져 온다.‘뱀섬’엔 뱀은 보이지 않고 새와 새소리만 그득할 뿐이다. ●유도에 나타난 저어새 학섬이라고도,뱀섬이라고도 불리는 유도(留島)는 경기도 김포와 북한의 개풍군을 양옆에 껴안고 흐르는 한강 하구에 동그마니 떠있다.유도는 이렇듯 새들이 머무르는 쉼터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일 게다.1996년까지 인근 주민에게조차 있는 듯,없는 듯 여겨져 왔지만 그해 여름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해병대 안내장교는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 온 북한 소가 이 섬에 닿아 서너달 꼼짝없이 갇혀 지냈다.결국 우리 군이 ‘유도 상륙’을 북한에 통보한 뒤 구출해냈다.”고 설명한다.김포·강화 북부의 한강은 남북한 어느 쪽도 맘대로 드나들지 못하는,서로의 발이 묶인 곳이다.비록 휴전선은 그어지지 않았지만 삼엄하긴 뭍의 비무장지대(DMZ)와 마찬가지다. 6월 8일 아침 나절,김포 북부의 해병대 ‘유도소대’ 막사를 돌아 초소 앞으로 다가섰다.꼬불꼬불 길게 이어진 철책선이 발치에 엎드리면서 시원스레 시야가 트이고,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난생 처음 들어보는 새들의 합창에 귀마저 대뜸 열렸다.400m 남짓 떨어진 유도에서 보내오는 소리다.와글와글인지,지절지절인지 걸맞는 의성어가 떠올려지지 않는다.그저 오묘할밖에….초병들의 관측용 대형 망원경을 받아들었다.지천으로 깔린 새들이 비로소 형체를 갖추며 눈에 들어온다.족히 수천마리는 됨직하다.가마우지,백로,왜가리,괭이갈매기….새떼들이 너나 구별없이 한데 모여 섬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서울 도심을 벗어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들 어느덧 눈에 익숙해진 녀석들이다.몇분이나 지났을까,망원경이 ‘행운’을 포착했다.여느 것들과는 모습이 한결 다른,낯선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익살로 감춘 비장미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였다.하나,둘,셋… 녀석들은 유유히 섬 주위를 활강하면서,바윗돌 위에 우뚝 선 채로,부리를 맞부딪칠 것처럼 서로를 가까이 한 채,그렇게 10여마리나 발견됐다.‘유도에서 저어새를 볼 수 있다.’는 사전정보를 챙기지 못한 취재팀으로선 전혀 뜻밖의 만남이었다.녀석은 익살스러운 구석이 있다.주걱 모양의 긴 부리 생김새가 그렇고,이름 또한 재미 있다.부리를 좌우로 저어,저어가며 먹이를 잡는 통에 붙여졌다.예전엔 가리새로도 불렸다.조상들 눈에는 주걱부리가 쟁기로 비쳤던 모양이다. 하지만 녀석은 해학으로 비장미를 가렸을 뿐이다.세계를 통틀어 고작 1200여마리 정도만 생존해 있을 뿐이다.나라 안팎의 멸종위기종 조류 목록에 어김없이 이름이 오른 희귀종이다.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10년 이내에 멸종될 확률이 80% 가량”으로 진단하기도 한다.‘근본적으로’ 위태로운 삶을 부지하고 있는 저어새가 최후의 번식처로 삼은 곳은 강화 남부지역과 석도,볼음도 등 서해바다 무인도와 그 일대에 펼쳐진 강화갯벌(천연기념물 419호)이다.이곳을 삶터로 택한 이유는 뭘까. “저어새는 20㎝ 정도의 긴 부리를 물속에 집어넣어 좌우로 흔들면서 먹이를 낚아챕니다.그러기 위해선 물 깊이가 비교적 얕은 갯벌이나 강어귀가 적당하지요.광활한 강화갯벌과 서해 무인도(비무장지대 일대)는 그런 점에서 생존환경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무엇보다 개발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상대적으로 덜 진행되었으니까요.”(환경운동연합 김경원 국장) 이를테면 남북간 군사적 대치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것이 저어새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한번 더 뒤집으면,지구상에서 가장 번창한 종(種)인 사람이 저어새를 절박한 처지로 몰아갔다는 얘기다.김 국장의 설명은 이어졌다.“저어새는 아직도 미지(未知)의 대상입니다.몇살까지 사는지,어떻게 번식하는지 생태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지요.저어새 보호에 대한 인류의 책임은 남북한이 가장 크게 떠안아야 마땅합니다.공동 생태조사 등 남북간 환경협력이 절실합니다.” 녀석들이 지금처럼 한반도의 외진 구석뿐 아니라 더 넓은 창공을 자유롭게 누비는 날을 고대해 본다.‘시한부 생명’이란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 채로…. 김포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3) 멧돼지를 기다리며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3) 멧돼지를 기다리며

    민간인들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155마일 철책선 주변은 멧돼지들의 천국이다.어디를 가나 멧돼지 떼가 무리지어 다니고 최전방 초소는 먹이를 찾아 드나드는 단골집이다.십수년 전만 해도 초소 주변의 멧돼지는 부대 회식용으로 심심찮게 이용됐다.지휘관들에게는 쓸개가 인기였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요즘엔 장병들과 잔반을 나누며 공생하는 사이가 됐다.멧돼지는 먹이를 얻고 군장병들은 처치 곤란한 잔반을 해결할 수 있어 좋다.잔반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멧돼지들과 장병들은 한가족이나 마찬가지다.잔반을 놓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고 조금 늦어지면 쓰레기통을 뒤집어 놓으며 투정까지 부린다.어쩌다 외지인이 찾아 얼쩡거릴 때면 낯가림을 하느라 서너시간씩 숲속에 숨어 나타나지도 않는다.그 좋은 먹성에 배고픔까지 참아가면서… 시력은 좋지 않지만 냄새와 청각으로 정확하게 외지 손님을 가려내 경계하는 폼새는 영락없이 우리 장병들에게서 눈치껏 배운 노하우일게다.덩치가 워낙 큰 데다 짙은 회색의 짧은 털을 빗자루처럼 세우고 다녀 장병들 사이에서는 ‘황소 멧돼지’ ‘시커먼스’로 더 잘 통한다. 이같은 공생관계가 이어지면서 번식력 좋은 멧돼지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그동안 정확한 서식밀도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DMZ 주변 대형 포유류 가운데 고라니·너구리와 함께 가장 많은 개체수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중동부전선 최전방 초소 두 곳을 찾아 멧돼지 가족과 장병들 사이의 어우러진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까치와 친구하는 백암산 멧돼지 “……” 6월의 뙤약볕을 이고 침묵 속에 얼마를 기다렸을까.섭씨 32∼34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와 시큼한 잔반 냄새,파리·모기떼,각종 벌레들이 몰려와 괴롭힌다.일어서고 앉기를 수십번.3시간은 족히 기다렸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하루 세끼 거르지 않고 나타나 배를 채우던 녀석들이 별일이다.외지인의 냄새를 맡은 것이 분명했다. 잔반 놓은 곳에서 10여m 떨어진 시설물 뒤에 몸을 숨겼지만 영리한 멧돼지들은 넘어가지 않았다.1차 신경전은 취재팀의 완패다.결국 후퇴를 결정하고 10여m 더 물러나 또다시 기다림에 들어갔다.20∼30분쯤 지났을까.숲속에서 ‘쉭∼ 쉭∼’대며 나타난 녀석은 멧돼지라기보다 차라리 아프리카 코뿔소쯤으로 보인다.초병들이 들려준 ‘황소 멧돼지’가 나타난 것이다.치켜든 엄니와 머리 꼭대기부터 등짝 중간쯤까지 빗자루처럼 솟아 있는 짙은 회갈색 억센 털이 멧돼지의 위용을 대변해 주고 있다.서너살 이상으로 추정된다. 경계를 풀지 못해서인지 가족은 남겨두고 수컷만 나타나 ‘쩝쩝’대며 정신없이 먹어 치운다.배고픔이 대단했던 모양이다.멧돼지와 함께 토실토실 살이 오른 들고양이,까치,까마귀,꿩들까지 떼지어 들락거리며 잔반을 쪼아댄다.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서로 먹는 일에만 열중이다. 까치들이 등을 타고 놀아도 멧돼지는 개의치 않는다.전방 초소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동물들간의 또다른 교감현장이다. 초소 조리병인 조용석(23) 상병은 “어쩌다 잔반을 주지 않으면 부대주변 쓰레기통을 몽땅 뒤집어 놓고 땅을 파헤치는 등 저지레를 쳐 귀찮아도 꼬박꼬박 줘야 한다.”며 설명이 신난다. ●멧돼지 가족의 장유유서(長幼有序) 7월 첫날,오락가락하는 빗줄기 속에 또다시 멧돼지 기다림이 이어졌다.금강산을 오가는 차량들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155마일 동해안 마지막 율곡부대 초소에서도 멧돼지는 장병들과 한가족이다.웅웅거리는 동해선 공사소음이 들리고 차량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어서 멧돼지들의 낯가림은 더욱 심한 것 같다. 먹이를 놓는 장병들과 함께 있으면 스스럼 없이 찾아오는 녀석들이 외지인들만 있으면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군복으로 갈아 입어도 마찬가지다. 점심때부터 저녁무렵까지 족히 너댓시간 잠복하면서 또 얼마나 기다렸을까.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카메라 장비를 챙기며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두두두두‘ 한떼의 멧돼지 가족이 숲속을 질주하며 나타난다.모두 7마리,대식구다.수컷 한마리가 나타나 주변 상황을 돌아보고 사라진 지 족히 2시간도 넘은 뒤였다.먹이를 찾아 나타난 가족들 대부분은 숲속에 남아 있고 가장 연장자인 듯한 녀석이 먹이를 독차지하고 먹기 시작한다.새끼들이 먹이 주변에 나타나 얼씬거리면 씩씩거리며 혼쭐을 낸다.그렇게 배를 채운 덩치 큰 수컷이 거드름을 피우며 물러나자 암컷이 찾고 이어 새끼들이 나타나 얼마남지 않은 잔반을 게걸스레 먹어 치운다.먼저 먹겠다고 서로 주둥이를 밀어대며 쟁탈전도 대단하다. 원시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멧돼지 가족들 사이에도 가족사랑과 질서가 고스란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최전방의 멧돼지들은 이렇듯 장병들과 어울려 독특한 생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철원·고성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전문가 칼럼 비무장지대(DMZ)는 여러 가지 야생생물을 지탱해 주는 서식처다.멧돼지,산양,고라니와 같은 야생동물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들의 진화과정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DMZ는 소멸되어 가는 야생생물의 보호처 혹은 유전자 보관소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이같은 역할이 가능한 이유는 서식처의 상호 관련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서식처란 어떤 생물이 사는 장소나 공간을 말한다.우선 1년 중 일부기간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자원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먹이와 물,은신과 휴식,그리고 번식을 위한 짝짓기 공간과 비번식 기간 동안의 활동공간도 갖춰져야 한다. DMZ 남방한계선 철책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화천 오작교와 안동포 철교사이의 북한강 상류 습지를 탐사하던 중 멧돼지와 마주쳤다.물 마시러 내려온 멧돼지였다.우리 탐사단을 본 멧돼지는 강변습지와 개망초 초지를 지나 숲 속으로 홀연히 도망쳤다.사진기자와 나는 멧돼지를 사진에 담고자 한참을 쫓아갔으나 허사였다. 그러나 귀중한 소득이 있었다.평소 궁금해했던 멧돼지의 이동통로와 서식처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개망초군락이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어 멧돼지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맞아떨어진 것이다.먹을 물을 제공하는 강과 유사시에 숨을 수 있는 갈대·버드나무 군락과 덤불숲,그리고 먹이가 되는 개망초군락 뿌리를 비롯해 번식·휴식의 활동무대인 산림 등 멧돼지의 서식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멧돼지의 행동권은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처음에는 4∼8㎞,때로는 30㎞ 이상도 걸어서 돌아다닌다.DMZ 철책선이 멧돼지의 행동권 확보에 장애가 됨은 물론이다.멧돼지는 최소 생존개체군 이상이 살도록 해주어야 그 서식장소에서 멸종이 안 된다.반대로 적정 개체수를 넘을 때는 서식처의 네트워킹을 통해서 인접지역으로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이것은 근친교배를 막는 중요한 길이기도 하다.멧돼지도 철책선을 넘어 오가는 남북통일의 그날을 고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식처는 다양할수록 좋다.산림과 초지·습지 그리고 호수와 강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DMZ 통합 서식처 보전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비단 멧돼지뿐만 아니라 DMZ에서 생명의 고리를 이어가는 모든 생물종들의 안정적인 서식을 보장하기 위해서다.이같은 계획의 수립은 서식처 다양성에 바탕을 둔 종(種)구성의 변화에 관한 연구·조사자료에 바탕을 두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울대학교 환경생태계획학 김귀곤 교수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전문가 칼럼

    비무장지대(DMZ)는 여러 가지 야생생물을 지탱해 주는 서식처다.멧돼지,산양,고라니와 같은 야생동물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들의 진화과정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DMZ는 소멸되어 가는 야생생물의 보호처 혹은 유전자 보관소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이같은 역할이 가능한 이유는 서식처의 상호 관련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서식처란 어떤 생물이 사는 장소나 공간을 말한다.우선 1년 중 일부기간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자원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먹이와 물,은신과 휴식,그리고 번식을 위한 짝짓기 공간과 비번식 기간 동안의 활동공간도 갖춰져야 한다. DMZ 남방한계선 철책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화천 오작교와 안동포 철교사이의 북한강 상류 습지를 탐사하던 중 멧돼지와 마주쳤다.물 마시러 내려온 멧돼지였다.우리 탐사단을 본 멧돼지는 강변습지와 개망초 초지를 지나 숲 속으로 홀연히 도망쳤다.사진기자와 나는 멧돼지를 사진에 담고자 한참을 쫓아갔으나 허사였다. 그러나 귀중한 소득이 있었다.평소 궁금해했던 멧돼지의 이동통로와 서식처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개망초군락이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어 멧돼지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맞아떨어진 것이다.먹을 물을 제공하는 강과 유사시에 숨을 수 있는 갈대·버드나무 군락과 덤불숲,그리고 먹이가 되는 개망초군락 뿌리를 비롯해 번식·휴식의 활동무대인 산림 등 멧돼지의 서식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멧돼지의 행동권은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처음에는 4∼8㎞,때로는 30㎞ 이상도 걸어서 돌아다닌다.DMZ 철책선이 멧돼지의 행동권 확보에 장애가 됨은 물론이다.멧돼지는 최소 생존개체군 이상이 살도록 해주어야 그 서식장소에서 멸종이 안 된다.반대로 적정 개체수를 넘을 때는 서식처의 네트워킹을 통해서 인접지역으로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이것은 근친교배를 막는 중요한 길이기도 하다.멧돼지도 철책선을 넘어 오가는 남북통일의 그날을 고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식처는 다양할수록 좋다.산림과 초지·습지 그리고 호수와 강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DMZ 통합 서식처 보전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비단 멧돼지뿐만 아니라 DMZ에서 생명의 고리를 이어가는 모든 생물종들의 안정적인 서식을 보장하기 위해서다.이같은 계획의 수립은 서식처 다양성에 바탕을 둔 종(種)구성의 변화에 관한 연구·조사자료에 바탕을 두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울대학교 환경생태계획학 김귀곤 교수 ˝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3) 멧돼지를 기다리며

    민간인들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155마일 철책선 주변은 멧돼지들의 천국이다.어디를 가나 멧돼지 떼가 무리지어 다니고 최전방 초소는 먹이를 찾아 드나드는 단골집이다.십수년 전만 해도 초소 주변의 멧돼지는 부대 회식용으로 심심찮게 이용됐다.지휘관들에게는 쓸개가 인기였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요즘엔 장병들과 잔반을 나누며 공생하는 사이가 됐다.멧돼지는 먹이를 얻고 군장병들은 처치 곤란한 잔반을 해결할 수 있어 좋다.잔반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멧돼지들과 장병들은 한가족이나 마찬가지다.잔반을 놓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고 조금 늦어지면 쓰레기통을 뒤집어 놓으며 투정까지 부린다.어쩌다 외지인이 찾아 얼쩡거릴 때면 낯가림을 하느라 서너시간씩 숲속에 숨어 나타나지도 않는다.그 좋은 먹성에 배고픔까지 참아가면서… 시력은 좋지 않지만 냄새와 청각으로 정확하게 외지 손님을 가려내 경계하는 폼새는 영락없이 우리 장병들에게서 눈치껏 배운 노하우일게다.덩치가 워낙 큰 데다 짙은 회색의 짧은 털을 빗자루처럼 세우고 다녀 장병들 사이에서는 ‘황소 멧돼지’ ‘시커먼스’로 더 잘 통한다. 이같은 공생관계가 이어지면서 번식력 좋은 멧돼지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그동안 정확한 서식밀도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DMZ 주변 대형 포유류 가운데 고라니·너구리와 함께 가장 많은 개체수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중동부전선 최전방 초소 두 곳을 찾아 멧돼지 가족과 장병들 사이의 어우러진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까치와 친구하는 백암산 멧돼지 “……” 6월의 뙤약볕을 이고 침묵 속에 얼마를 기다렸을까.섭씨 32∼34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와 시큼한 잔반 냄새,파리·모기떼,각종 벌레들이 몰려와 괴롭힌다.일어서고 앉기를 수십번.3시간은 족히 기다렸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하루 세끼 거르지 않고 나타나 배를 채우던 녀석들이 별일이다.외지인의 냄새를 맡은 것이 분명했다. 잔반 놓은 곳에서 10여m 떨어진 시설물 뒤에 몸을 숨겼지만 영리한 멧돼지들은 넘어가지 않았다.1차 신경전은 취재팀의 완패다.결국 후퇴를 결정하고 10여m 더 물러나 또다시 기다림에 들어갔다.20∼30분쯤 지났을까.숲속에서 ‘쉭∼ 쉭∼’대며 나타난 녀석은 멧돼지라기보다 차라리 아프리카 코뿔소쯤으로 보인다.초병들이 들려준 ‘황소 멧돼지’가 나타난 것이다.치켜든 엄니와 머리 꼭대기부터 등짝 중간쯤까지 빗자루처럼 솟아 있는 짙은 회갈색 억센 털이 멧돼지의 위용을 대변해 주고 있다.서너살 이상으로 추정된다. 경계를 풀지 못해서인지 가족은 남겨두고 수컷만 나타나 ‘쩝쩝’대며 정신없이 먹어 치운다.배고픔이 대단했던 모양이다.멧돼지와 함께 토실토실 살이 오른 들고양이,까치,까마귀,꿩들까지 떼지어 들락거리며 잔반을 쪼아댄다.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서로 먹는 일에만 열중이다. 까치들이 등을 타고 놀아도 멧돼지는 개의치 않는다.전방 초소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동물들간의 또다른 교감현장이다. 초소 조리병인 조용석(23) 상병은 “어쩌다 잔반을 주지 않으면 부대주변 쓰레기통을 몽땅 뒤집어 놓고 땅을 파헤치는 등 저지레를 쳐 귀찮아도 꼬박꼬박 줘야 한다.”며 설명이 신난다. ●멧돼지 가족의 장유유서(長幼有序) 7월 첫날,오락가락하는 빗줄기 속에 또다시 멧돼지 기다림이 이어졌다.금강산을 오가는 차량들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155마일 동해안 마지막 율곡부대 초소에서도 멧돼지는 장병들과 한가족이다.웅웅거리는 동해선 공사소음이 들리고 차량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어서 멧돼지들의 낯가림은 더욱 심한 것 같다. 먹이를 놓는 장병들과 함께 있으면 스스럼 없이 찾아오는 녀석들이 외지인들만 있으면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군복으로 갈아 입어도 마찬가지다. 점심때부터 저녁무렵까지 족히 너댓시간 잠복하면서 또 얼마나 기다렸을까.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카메라 장비를 챙기며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두두두두‘ 한떼의 멧돼지 가족이 숲속을 질주하며 나타난다.모두 7마리,대식구다.수컷 한마리가 나타나 주변 상황을 돌아보고 사라진 지 족히 2시간도 넘은 뒤였다.먹이를 찾아 나타난 가족들 대부분은 숲속에 남아 있고 가장 연장자인 듯한 녀석이 먹이를 독차지하고 먹기 시작한다.새끼들이 먹이 주변에 나타나 얼씬거리면 씩씩거리며 혼쭐을 낸다.그렇게 배를 채운 덩치 큰 수컷이 거드름을 피우며 물러나자 암컷이 찾고 이어 새끼들이 나타나 얼마남지 않은 잔반을 게걸스레 먹어 치운다.먼저 먹겠다고 서로 주둥이를 밀어대며 쟁탈전도 대단하다. 원시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멧돼지 가족들 사이에도 가족사랑과 질서가 고스란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최전방의 멧돼지들은 이렇듯 장병들과 어울려 독특한 생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철원·고성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2) ‘진객’과의 황홀한 만남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2) ‘진객’과의 황홀한 만남

    이 무슨 조화일까….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눈앞의 실존(實存)이 상식을 거부한다.그만 턱하니 숨도,말문도 막힌다.녹색 잎사귀에 얹힌 선명한 하늘색 몸통이 카메라 줌을 당기듯 눈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보호색으로 가리기는커녕 녀석은 너무나 또렷한 대비로 자기를 돋을새김했다.‘하늘색 청개구리’는 반항아적 기질의 그다운 방식으로 제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하늘색 청개구리와의 만남 6월8일,탐사 나흘째.전날 강화도 해안을 누빈 두 대의 취재차량은 강화대교를 넘어 김포 월곶면 일대로 향했다.강화도와 김포 북부를 가로질러 서해로 빠지는 한강은 강이되 강이 아니다.서해의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타며 매일같이 바닷물과 몸을 섞는,이른바 기수역(汽水域)이다.남북이 이념으로 자기 정체성을 내세우며 반세기 넘도록 갈라서 있지만 이곳 한강의 민물은 바다의 짠물을 한껏 포용하며 넉넉한 통일을 이루었다. 이런저런 사념에 빠진 사이 어느덧 보구곶리를 지난 차량은 용연동으로 접어들었다.차량이 끼∼익하고 선다.탐사대장인 김귀곤(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가 또 뭔가를 발견했나보다.가장 연장자지만 호기심은 누구보다 큰 그다.비포장 군사도로 길가에 20평이나 됨직한,김 교수가 애호하는 습지가 펼쳐져 있다.허벅지까지 웃자란 풀숲을 헤치며 조심스레 발길을 내딛는다.발바닥에 딱딱한 감촉이 전해진다.여느 곳에서 봐 온 습지와 달리 물기가 많지 않다.‘이곳엔 별 게 없겠는걸….’ 그러나 단견이었다. 무성한 녹색의 물질경이 잎사귀 사이로 뭔가가 눈에 박혔다.개구리다.그런데 몸도,다리도 온통 진한 하늘색이다.착각한 게 아닐까.그러나 눈 질끈 감고 머리 한번 흔들고 나서 봐도 역시 개구리다.하늘색도 변함없다.잡아야 하나,사진부터 찍어야 하나….놀라움에 겨워 판단하지 못하는 사이 옆에 선 사진기자는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녀석은 5분여를 그렇게 미동도 않고 포즈를 취했다.흥분을 감추지 못한 탐사대원들은 쉼없이 경탄했지만 녀석은 오불관언에,태연자약 그 자체다.한치 흐트러짐없이,하늘을 닮으려는 듯 고요히 우러르며 하늘빛 제 모습을 연출할 뿐이다.작동을 멈추었던 사고작용이 비로소 돌아간다.몸통은 2㎝ 남짓,손가락 두 개 마디에도 못미친다.청(靑)개구리다.그것도 하늘색 청개구리. ●“확률 추정이 불가능한 희귀종” 청개구리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10여종의 개구리 가운데 몸집이 가장 작다.다리를 길게 뻗어봐야 기껏 5㎝ 안팎이다.그러나 정력에 넘치는 울음소리는 여느 개구리보다 크다.보호색도 가장 잘 활용한다.본래 색깔의 명암을 조절하는 정도에 그치는 다른 개구리에 비해 녀석은 주위 환경에 따라 제 빛깔인 녹색을 갈색이나 회색으로까지 변모시킨다. 녀석을 사로잡아 인근 해병대 용연동 소대의 화단으로 옮겼다.울음보가 없는 암컷이다.밤새 경계근무를 하고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 초병들도 하나둘씩 모여든다.그래도 녀석은 발바닥의 빨판을 잎사귀에 힘껏 고정시킨 채 신기한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뿐이다.“청개구리가 왜 하늘색입니까?” “청개구리가 아닐 지도 모르죠?” 그러나 답변이 궁했다. 탐사대는 전문가에 맡겨 녀석의 정체를 좀 더 파악하기로 했다.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청개구리와는 다른 새로운 종,혹은 청개구리의 변종일 수도 있지 않을까….전화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온 국립환경연구원 생물자원과 서재화 박사도 “이런 색깔은 처음 본다.”고 말문을 열었다.청개구리는 현재 서울대 수의학과로 옮겨져 유전자 분석 중에 있다.최종 결론은 아니지만 ‘유전자 염기서열 변이로 인한 돌연변이 청개구리’로 잠정 분석됐다. 종(種)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돌연변이가 나타날 확률은 100만분의1의 정도이다.서 박사에게 “(녹색의)청개구리가 하늘색으로 발현될 확률계산이 가능합니까.”라고 물었다.“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그건 추정이 아예 불가능합니다.다만 검은색을 내는 멜라닌 색소의 결핍으로 인한 백화(白化)현상이 여러 종에서 발견되곤 했는데 이보다는 하늘색 청개구리가 발현될 확률이 더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어떻든 확률을 떠나 희귀종인 것만은 틀림없죠.” ●‘환경변화의 카나리아’ 다음 탐사지로 발길을 돌렸다.그러나 녀석에 대한 생각은 하염없이 꼬리를 문다.‘잡혀도,잡히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꼼짝않고 자리를 지키던 두둑한 배짱은 특히 인상적이다.다른 개구리처럼 달아날 능력이 없는 건 아닐텐데,왜 굳이 저를 드러내려 했을까. 물과 뭍에서 사는 개구리는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환경지표종이다.깨끗한 물에서만 알을 낳는데다,폐와 피부로 함께 호흡하면서 물과 공기의 오염물질을 흡수한다.변온동물이라 기온변화에도 민감한데,겨울잠뿐 아니라 기온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여름잠을 잔다고도 한다.“그래서 개구리를 일러 ‘지구환경변화의 카나리아’라고 부릅니다.카나리아가 일산화탄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듯 수질과 지구온난화 등 환경변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합니다.청개구리는 날씨가 조금만 습해도 울어대는데,다른 개구리보다 환경변화에 더 민감한 편이죠.”(서재화 박사) 하늘색 청개구리는 누군가에게,혹은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며 출현한 건 아닐까.끝없는 개발로 치닫는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것일 수도,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라는 소중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녀석은 오는 2006년 환경부가 개관하는 국립생물자원관에 표본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 금단의 땅…역동하는 생명 자연생태계 최상위의 포식자,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곳에서 DMZ 생물들은 비로소 자유롭다.자연이 부여한 천명(天命)을 끝까지 사는 녀석들도 있을 테고,천적의 습격으로 비명(非命)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어떠한들 어떠랴….사람이 빠진 먹이사슬 구조는 이미 그네들에겐 최상의 안락한 환경이 아닌가.강화도 북성리 야산 계곡에서 만난 가재(왼쪽 위)는 1급수 깨끗한 물에서 더없이 평화롭다. 몸통에서 뻗어나온 집게는,녀석에겐 자랑스러운 무기이겠지만 보기에 앙증스럽기만하다.참게(왼쪽 아래)는 강화도 북부 해안의 군사도로 길섶도 훌륭한 서식처로 삼고 있었다.몸통 군데군데 말라붙은 진흙이 매끈한 물속의 모습보다 더 살갑게 다가온다.취재팀의 눈앞에서 마지막 숨을 토하던 능구렁이(오른쪽)는 뭔가에 찢긴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120㎝ 가량의 녀석은 강화도 북성리 야산의 숲 언저리에서 발견됐다. 김포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전문가 칼럼 비무장지대는 신비롭다.신화의 저편에 있는 동굴처럼….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군인 외에는 아무도 가볼 수 없는 곳.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50년 넘게 숨겨진 비경이라는 생각에 일단 처녀림·원시림이라고 치부한다.이번에 나타난 하늘색 청개구리도 여태껏 아무도 보지 못했던 생물이니 ‘신화의 메신저’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를 인공위성으로 조사해 보면 산림이 뜻밖에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우리 주변에 있는 산림도 그렇게 울창하다고 느껴지지 않지만,비무장지대의 숲의 양은 대략 그것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그동안 북한이 불을 놓으면 남한은 맞불을 놓고,서로 감시하기 위해 시계(視界)청소를 한 결과다. 그렇다고 비무장지대가 생태적으로 가치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비무장지대는 한국동란의 휴전과 동시에 철조망으로 겹겹이 싸여 사람은 물론 짐승도 맘대로 오갈 수 없었다.남방계 생물과 북방계 생물이 함께 서식하는 한반도의 허리부분이 완전히 가로막힌 채 50년 이상 격리돼 있다는 것은 생물·지리학적인 특성이나 생물의 이동성향을 감안할 때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현상이다.과거에 군사활동의 결과로 산불이나 시계청소가 이루어졌지만,이는 오히려 다양한 생태경관을 형성하여 진귀한 식물과 곤충,새와 짐승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기회인자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무장지대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정말 특이한 생태계다.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비무장지대는 처녀림이거나,원시림이 아니라 ‘특이한’ 생태계다.가볼 수 없는 비경이라는 그리움이 만든 막연한 신비감보다는 제대로 알아도 정말 신비로운 것이 바로 비무장지대의 진면목이다.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아픔이 생물 다양성의 보고(寶庫)가 되었다는 아이러니는,어미 말을 거꾸로 따르다가 무덤마저 잃을까봐 목놓아 울어야 하는 청개구리의 처지와 닮았다. 하늘색 청개구리가 나타난 것은 상서로운 일이다.우리의 손발이 묶임으로써 이런 귀한 생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자연보전과 자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또한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느끼게 한다.남북은 역사 이전에 신화를 공유하고 있었다.이제 우리는 이런 신화의 메신저를 맞이하여 비무장지대에 대한 남북공동조사를 이끌어내고,환경공동체로서 통일의 기초를 다지는데 나서야 한다. 신준환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전문가 칼럼

    비무장지대는 신비롭다.신화의 저편에 있는 동굴처럼….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군인 외에는 아무도 가볼 수 없는 곳.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50년 넘게 숨겨진 비경이라는 생각에 일단 처녀림·원시림이라고 치부한다.이번에 나타난 하늘색 청개구리도 여태껏 아무도 보지 못했던 생물이니 ‘신화의 메신저’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를 인공위성으로 조사해 보면 산림이 뜻밖에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우리 주변에 있는 산림도 그렇게 울창하다고 느껴지지 않지만,비무장지대의 숲의 양은 대략 그것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그동안 북한이 불을 놓으면 남한은 맞불을 놓고,서로 감시하기 위해 시계(視界)청소를 한 결과다. 그렇다고 비무장지대가 생태적으로 가치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비무장지대는 한국동란의 휴전과 동시에 철조망으로 겹겹이 싸여 사람은 물론 짐승도 맘대로 오갈 수 없었다.남방계 생물과 북방계 생물이 함께 서식하는 한반도의 허리부분이 완전히 가로막힌 채 50년 이상 격리돼 있다는 것은 생물·지리학적인 특성이나 생물의 이동성향을 감안할 때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현상이다.과거에 군사활동의 결과로 산불이나 시계청소가 이루어졌지만,이는 오히려 다양한 생태경관을 형성하여 진귀한 식물과 곤충,새와 짐승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기회인자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무장지대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정말 특이한 생태계다.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비무장지대는 처녀림이거나,원시림이 아니라 ‘특이한’ 생태계다.가볼 수 없는 비경이라는 그리움이 만든 막연한 신비감보다는 제대로 알아도 정말 신비로운 것이 바로 비무장지대의 진면목이다.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아픔이 생물 다양성의 보고(寶庫)가 되었다는 아이러니는,어미 말을 거꾸로 따르다가 무덤마저 잃을까봐 목놓아 울어야 하는 청개구리의 처지와 닮았다. 하늘색 청개구리가 나타난 것은 상서로운 일이다.우리의 손발이 묶임으로써 이런 귀한 생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자연보전과 자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또한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느끼게 한다.남북은 역사 이전에 신화를 공유하고 있었다.이제 우리는 이런 신화의 메신저를 맞이하여 비무장지대에 대한 남북공동조사를 이끌어내고,환경공동체로서 통일의 기초를 다지는데 나서야 한다. 신준환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2) ‘진객’과의 황홀한 만남

    이 무슨 조화일까….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눈앞의 실존(實存)이 상식을 거부한다.그만 턱하니 숨도,말문도 막힌다.녹색 잎사귀에 얹힌 선명한 하늘색 몸통이 카메라 줌을 당기듯 눈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보호색으로 가리기는커녕 녀석은 너무나 또렷한 대비로 자기를 돋을새김했다.‘하늘색 청개구리’는 반항아적 기질의 그다운 방식으로 제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하늘색 청개구리와의 만남 6월8일,탐사 나흘째.전날 강화도 해안을 누빈 두 대의 취재차량은 강화대교를 넘어 김포 월곶면 일대로 향했다.강화도와 김포 북부를 가로질러 서해로 빠지는 한강은 강이되 강이 아니다.서해의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타며 매일같이 바닷물과 몸을 섞는,이른바 기수역(汽水域)이다.남북이 이념으로 자기 정체성을 내세우며 반세기 넘도록 갈라서 있지만 이곳 한강의 민물은 바다의 짠물을 한껏 포용하며 넉넉한 통일을 이루었다. 이런저런 사념에 빠진 사이 어느덧 보구곶리를 지난 차량은 용연동으로 접어들었다.차량이 끼∼익하고 선다.탐사대장인 김귀곤(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가 또 뭔가를 발견했나보다.가장 연장자지만 호기심은 누구보다 큰 그다.비포장 군사도로 길가에 20평이나 됨직한,김 교수가 애호하는 습지가 펼쳐져 있다.허벅지까지 웃자란 풀숲을 헤치며 조심스레 발길을 내딛는다.발바닥에 딱딱한 감촉이 전해진다.여느 곳에서 봐 온 습지와 달리 물기가 많지 않다.‘이곳엔 별 게 없겠는걸….’ 그러나 단견이었다. 무성한 녹색의 물질경이 잎사귀 사이로 뭔가가 눈에 박혔다.개구리다.그런데 몸도,다리도 온통 진한 하늘색이다.착각한 게 아닐까.그러나 눈 질끈 감고 머리 한번 흔들고 나서 봐도 역시 개구리다.하늘색도 변함없다.잡아야 하나,사진부터 찍어야 하나….놀라움에 겨워 판단하지 못하는 사이 옆에 선 사진기자는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녀석은 5분여를 그렇게 미동도 않고 포즈를 취했다.흥분을 감추지 못한 탐사대원들은 쉼없이 경탄했지만 녀석은 오불관언에,태연자약 그 자체다.한치 흐트러짐없이,하늘을 닮으려는 듯 고요히 우러르며 하늘빛 제 모습을 연출할 뿐이다.작동을 멈추었던 사고작용이 비로소 돌아간다.몸통은 2㎝ 남짓,손가락 두 개 마디에도 못미친다.청(靑)개구리다.그것도 하늘색 청개구리. ●“확률 추정이 불가능한 희귀종” 청개구리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10여종의 개구리 가운데 몸집이 가장 작다.다리를 길게 뻗어봐야 기껏 5㎝ 안팎이다.그러나 정력에 넘치는 울음소리는 여느 개구리보다 크다.보호색도 가장 잘 활용한다.본래 색깔의 명암을 조절하는 정도에 그치는 다른 개구리에 비해 녀석은 주위 환경에 따라 제 빛깔인 녹색을 갈색이나 회색으로까지 변모시킨다. 녀석을 사로잡아 인근 해병대 용연동 소대의 화단으로 옮겼다.울음보가 없는 암컷이다.밤새 경계근무를 하고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 초병들도 하나둘씩 모여든다.그래도 녀석은 발바닥의 빨판을 잎사귀에 힘껏 고정시킨 채 신기한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뿐이다.“청개구리가 왜 하늘색입니까?” “청개구리가 아닐 지도 모르죠?” 그러나 답변이 궁했다. 탐사대는 전문가에 맡겨 녀석의 정체를 좀 더 파악하기로 했다.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청개구리와는 다른 새로운 종,혹은 청개구리의 변종일 수도 있지 않을까….전화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온 국립환경연구원 생물자원과 서재화 박사도 “이런 색깔은 처음 본다.”고 말문을 열었다.청개구리는 현재 서울대 수의학과로 옮겨져 유전자 분석 중에 있다.최종 결론은 아니지만 ‘유전자 염기서열 변이로 인한 돌연변이 청개구리’로 잠정 분석됐다. 종(種)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돌연변이가 나타날 확률은 100만분의1의 정도이다.서 박사에게 “(녹색의)청개구리가 하늘색으로 발현될 확률계산이 가능합니까.”라고 물었다.“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그건 추정이 아예 불가능합니다.다만 검은색을 내는 멜라닌 색소의 결핍으로 인한 백화(白化)현상이 여러 종에서 발견되곤 했는데 이보다는 하늘색 청개구리가 발현될 확률이 더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어떻든 확률을 떠나 희귀종인 것만은 틀림없죠.” ●‘환경변화의 카나리아’ 다음 탐사지로 발길을 돌렸다.그러나 녀석에 대한 생각은 하염없이 꼬리를 문다.‘잡혀도,잡히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꼼짝않고 자리를 지키던 두둑한 배짱은 특히 인상적이다.다른 개구리처럼 달아날 능력이 없는 건 아닐텐데,왜 굳이 저를 드러내려 했을까. 물과 뭍에서 사는 개구리는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환경지표종이다.깨끗한 물에서만 알을 낳는데다,폐와 피부로 함께 호흡하면서 물과 공기의 오염물질을 흡수한다.변온동물이라 기온변화에도 민감한데,겨울잠뿐 아니라 기온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여름잠을 잔다고도 한다.“그래서 개구리를 일러 ‘지구환경변화의 카나리아’라고 부릅니다.카나리아가 일산화탄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듯 수질과 지구온난화 등 환경변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합니다.청개구리는 날씨가 조금만 습해도 울어대는데,다른 개구리보다 환경변화에 더 민감한 편이죠.”(서재화 박사) 하늘색 청개구리는 누군가에게,혹은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며 출현한 건 아닐까.끝없는 개발로 치닫는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것일 수도,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라는 소중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녀석은 오는 2006년 환경부가 개관하는 국립생물자원관에 표본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 금단의 땅…역동하는 생명 자연생태계 최상위의 포식자,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곳에서 DMZ 생물들은 비로소 자유롭다.자연이 부여한 천명(天命)을 끝까지 사는 녀석들도 있을 테고,천적의 습격으로 비명(非命)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어떠한들 어떠랴….사람이 빠진 먹이사슬 구조는 이미 그네들에겐 최상의 안락한 환경이 아닌가.강화도 북성리 야산 계곡에서 만난 가재(왼쪽 위)는 1급수 깨끗한 물에서 더없이 평화롭다. 몸통에서 뻗어나온 집게는,녀석에겐 자랑스러운 무기이겠지만 보기에 앙증스럽기만하다.참게(왼쪽 아래)는 강화도 북부 해안의 군사도로 길섶도 훌륭한 서식처로 삼고 있었다.몸통 군데군데 말라붙은 진흙이 매끈한 물속의 모습보다 더 살갑게 다가온다.취재팀의 눈앞에서 마지막 숨을 토하던 능구렁이(오른쪽)는 뭔가에 찢긴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120㎝ 가량의 녀석은 강화도 북성리 야산의 숲 언저리에서 발견됐다. 김포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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