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스스로 생각하고 사는가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북극 빙하가 녹고,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결정적인 원인을 늘어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탄소 배출을 제한하고 태양열 같은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는 데 온갖 돈을 쏟아붓는다. 과연 이런 행동은 옳은 방향인가.
사랑에 빠진 상대가 멍청이인 것을 알지만 헤어나질 못하는 여성이 있다. 이성이 자리한 대뇌피질은 “녀석을 차버려!”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감정 중추인 변연계는 소리친다. “그래도 저이는 진짜 귀엽잖아!” 결국 그냥 사귄다.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면서. 그런데 이게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의 소비를 촉진하는 힘이었다면, 어떤 상관관계로 풀어낼 수 있을까.
●보고 듣는 대로 믿는 현대인 꼬집어
독일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학자’로 불리는 빈스 에버르트는 끊임없이 묻는다. 인간이 지금처럼 생활한다면 수년 뒤 지구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환경론자의 히스테리는 정당한가. 진정 친환경 제품을 이용하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을까. 휴가철에 여행가방을 들지 않고, 해외로 벗어나지 않는 독일인은 삶의 지평을 넓힐 수 없는 것인가. 유전자 변형 토마토를 생산하는 기업은 인류의 건강에 해악을 저지르고 있는가.
비만이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면서 꼭 벗어나야할 ‘악의 축’으로 규정한다면, 다이어트 팁을 ‘먹는 양을 줄이고 운동해라.’가 아닌 ‘다른 부모를 찾아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에버르트는 이런 질문들은 던지고 다소 황당하면서도 유머스럽고 기발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네 이웃의 지식을 탐하라’(조경수 옮김, 이순 펴냄)를 완성했다.
“여러분은 스스로 생각합니까.” 책 첫머리부터 저자는 뜬금없이 질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인용하며 그럴싸하게 ‘당연하지. 생각하지 않는 그 순간은 나 자신은 내가 아닌거야.’라는 대답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생각하고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생각’은 ‘언제 천장 페인트칠을 했더라?’거나 ‘괴델의 정리가 뭐였지.’라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판단과 주장을 만들어내는 사고 행위이다. 하지만 정보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인간은 그 사고를 대체로 ‘아웃소싱’한다. 확인되지 않는 소문과 각종 음모론, 감언이설 등에 접하며 사고의 오염을 겪는다. “인간은 특별히 잘 듣지도 못하고, 냄새를 잘 맡지도 못하고 털도 별로 없으며, 날카로운 발톱이나 맹수같은 이빨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토끼만큼 증식했다. 수레바퀴와 천연두 백신을 발명했고 심지어는 전기로 창문을 올리는 장치마저 고안해냈다. 사고는 우리의 진화적 지위이다. 그런고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토록 적다는 사실이 나는 매번 놀랍다.”
저자는 책을 통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들은 대로 되풀이하며, 본 대로 믿어버리는 무감각에 강력한 전기 자극을 주어 사고 세포를 되살리고자 한다.
●논리적이면서도 유머 가득한 풍자
앞서 말한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구 역사를 보면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 않았을 때도 이미 엄청난 기온 변화가 있었다. 1만 5000년 전 빙하가 녹은 것은 네안데르탈인들이 고기를 불에 구워먹기 시작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 탓이 아니다. 기후 변화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이산화탄소만 꼽을 수는 없다. 사실 기후 연구도 결코 정확한 과학이라 하기 힘들다. 저자는 세계 기후 보고서 13장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기후 모델은 연계된 비선형적인 카오스적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기후 시스템의 장기적 예측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환경 오염이 안전한 수준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험에 가입할 때든, 세상을 구할 작정이든, 어떤 경우에도 간과하기 쉬운 세목을 꼼꼼히 읽어라.”는 저자의 말은 영향력있는 학자들의 말이라도 비틀어보고 따져보는 과정을 가져보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기, 종류, 추가사항 등을 캐묻는 커피 주문이 귀찮아도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저자는 “평범한 일상에서는 결정권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뭔가 결정한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유로 80센트를 내고 얻는 것은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빈스, 톨, 프라푸치노, 캐러멜, 로우팻, 디카페인’으로 규정되는 자아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책은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 기발한 전략으로 가득하다. 물론 과학자답게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논거로 주장을 뒷받침한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정작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잊어버린 엘 고어 같은 사람들이 짜증난다.”거나 “전 재산을 침대 밑에 보관하고 빨리 돈을 꺼내줬던 할머니가 홈뱅킹의 최초 형태” 등 톡톡 튀는 내용으로 재미를 더한다. 마치 해학 넘치는 시사 스탠딩 쇼를 글로 옮겨놓은 듯. 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