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현영이가 만난 하느님
정 회 옥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모두 내립니다.현영이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마지막으로 내리려던 운전기사님이 현영이를 봅니다.
“넌 왜 내리지 않니?”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는 종점이라 모두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타야 한단다.”
현영이가 내린 곳은 한번도 와본 적이 없는 큰 호텔 앞이었습니다.반대편에는 바다가 보였습니다.학교가 끝난 뒤 버스를 탔지만 오늘은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현영이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버스가 돌고 돌아 다시 집 앞까지 데려다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옳은 생각이 아닌 모양입니다.엄마가 걱정하실 겁니다.그 생각을 하니 서둘러 집을 찾아야겠습니다.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영 떠오르지 않습니다.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봅니다.친구들과 뽑기도 하고 게임을 하느라 200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방파제 위에 섰습니다.바다는 온통 파랗습니다.그리고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부분은 눈이 시려서 볼 수가 없습니다.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부릅니다.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다에 눈을 돌렸을 때입니다.
“넌 누구니?”
현영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누구냐니까?”
거대한 몸집을 한 바다가 조금 화가 난 듯 다시 묻습니다.
“나,나는 최현영.초등학교 1학년이야.”
“그런데 혼자 여기까지 온 거야?”
“응,그렇게 됐어.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아.”
“그래,집은 어딘데?”
“초원 청아 아파트.너 혹시 모르니?”
“글쎄,잘 모르긴 하지만…….초원이니까,아마 풀이 많고 산 가까이에 있지 않을까?”
“그래,맞아.난 가끔 집에서 가까운 산에 올라 가곤 했단다.”
현영이는 기뻐서 말했습니다.
“아함.”
바다가 큰 소리로 하품을 합니다.
“미안해.도와주지 못해서.난 지금 너무 졸려.이른 아침부터 이곳까지 밀려왔거든.잠시 쉬어야겠어.난 또 해가 질 무렵 다시 반대쪽으로 이동을 해야 해.안녕.”
바다는 그렇게 말하고 잠잠해졌습니다.현영이는 혼자가 되었습니다.점심도 먹지 못했습니다.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바다는 좋겠습니다.혼자가 아니고 모두 같이 있어서 집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바다의 말이 생각나 현영이는 아래쪽으로 걸어갑니다.
한참을 걸었습니다.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픕니다.잠시 현영이는 길옆에 걸터앉았습니다.엄마의 말이 생각납니다.
“학교가 끝나거든 한눈 팔지 말고 곧장 집으로 와야 한다.”
어떡하죠? 오늘은 곧장 집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너무 멀리 와 버렸으니까요.잠시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생각이 눈물로 변했습니다.눈물 몇 방울이 땅위에 똑똑 떨어졌습니다.
“아얏,비가 오나 봐.”
정말 작은 소리였습니다.주위가 조용하지 않았다면 현영이는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눈을 아래로 향했습니다.좀 전에 떨어트렸던 눈물이 조그만 동그라미를 만들었습니다.그리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개미를 발견했습니다.
“개미야,뭐하니?”
현영이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비가 오려나 봐,서둘러 집에 가야겠어.난 비가 싫어.”
“그건 내 눈물이야.비는 오지 않아,내가 도와줄게.”
현영이는 개미를 마른 땅 위로 옮겨주었습니다.
“고마워.그런데 넌 왜 여기서 울고 있니?”
개미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습니다.
“난 집을 잃어버렸단다.버스를 탔는데 너무 멀리와 버렸어.”
“그랬구나.”
“너 혹시 초원 청아 아파트가 어디 있는지 알겠니?”
“미안해.나는 거의 땅에 붙어 있어서 땅위에 있는 물체를 잘 알아보지 못한단다.그리고 눈도 좋은 편이 아니야.하지만 멀리 왔다면 온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될 것 같구나.”
“그렇구나.”
“난 서둘러 집에 가야겠어.어두워지면 집을 찾기가 곤란하거든.”
개미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가버렸습니다.현영이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개미의 말처럼 하는 것이 집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큰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습니다.망설이는데 바람이 휙 불어옵니다.아직 바람이 찹니다.
“어떡하지.”
현영이는 걱정스레 혼자 말을 했습니다.그 말을 스쳐가던 바람이 들었습니다.
“뭘 어떡해?”
차가운 바람이 현영이 곁에 머물자 갑자기 몸이 떨렸습니다.
“미안해.내가 아직 차갑게 느껴지지.그러나 네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단다.”
바람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고마워.난 집을 잃어버렸단다.도무지 집을 찾을 수가 없어.”
“안됐구나,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바람아,너는 안 가본 곳이 없지?”
현영이가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럼,초원 청아 아파트가 어디 있는지 아니?”
“글쎄,우리는 한 곳에 머물지 않아.그리고 우리가 옮겨 다니는 속도는 굉장히 빠르단다.너도 알 거야.특히 여름철 태풍은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바다를 건너기도 해.미안해,도와주지 못해서.”
“아니야,괜찮아.”
“빨리 집을 찾았으면 좋겠다.날이 어두워지기 전에,안녕.나도 바빠서 같이 있어줄 수가 없구나.”
바람이 윙 소리를 내며 지나갔습니다.또 현영이는 혼자가 되었습니다.점심도 먹지 못했습니다.그래서 더 춥게 느껴집니다.
집 생각이 납니다.엄마는 현영이가 올 무렵 점심을 차려놓고 기다립니다.아마 엄마도 걱정이 되어 밥을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갑자기 엄마가 몹시 보고 싶습니다.엄마는 승용차로 학교를 데려다 주겠다고 했습니다.그러나 현영이는 친구들과 놀고도 싶고,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싶어 엄마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아빠는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십니다.아빠의 몸에서는 한약 냄새가 납니다.아빠는 한의사입니다.가끔 쓴 한약을 안 먹겠다고 버둥대는 현영이를 꼭 안고 어르십니다.약을 잘 먹으면 놀이공원에 데려간다든지 아니면 맛있는 갈비를 사주겠다고 말입니다.
현영이는 눈을 꼭 감고 못 이기는 척 받아먹습니다.최대한 아빠의 애를 태우면서.그러나 현영이는 아빠가 든든합니다.빨리 집에 가고 싶습니다.
4월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가 짧습니다.벌써 주위가 어둑어둑해집니다.현영이는 조바심이 납니다.기억을 더듬어 버스가 왔던 길을 생각해 봅니다.두 길 중 한 길이 분명합니다.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살필 걸 그랬습니다.간신히 한 길을 택했지만 조바심만 날 뿐 확실하지 않습니다.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얘,넌 누구니? 힘이 없어 보이는구나.”
현영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그러나 아무도 현영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나야,어둠이.”
“응?”
“어둠이라구.”
“벌써 어두워지는구나.”
“지금은 그래도 덜 어두운 편이야.저쪽에선 더 까만 애들이 준비하고 있단다.”
어둠이 반대편을 가리키며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어떡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난 집을 잃어버렸단다.”
“큰일 났구나.조금 있으면 더 어두워질 텐데.”
“넌 혹시 초원 청아 아파트를 아니?”
“초원 청아 아파트?”
“응.그곳이 우리 집이야.”
“그런데 넌 왜 여기까지 왔니?”
어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합니다.
“난 버스를 타고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닌단다.엄마가 그 학교가 더 좋다고 그곳까지 보냈거든.”
“엄마들의 욕심은 그렇지.그런데?”
“오늘은 다른 생각을 하다가 내릴 곳을 지나쳤어.난 버스가 돌아서 다시 우리 집까지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그런데 종점에서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도 내리게 됐어.그리고 여기까지 걸어서 왔어.”
“저런 고생이 많았구나.그러나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을 찾아야겠다.밤은 낮과는 달라.사람의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의 차이지.밤에는 나쁜 마음이 더 강해져.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그냥 있으면 안돼.나를 따라와.”
현영이는 어둠이 이끄는 대로 몇 발자국 움직였습니다.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좋겠어.잘 봐.”
어둠이 말했습니다.현영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분이 좋겠어.이 분은 옷차림은 조금 허름하지만 마음이 착해 보여.침착하게 물어봐.넌 학교도 다니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야.”
“고마워.”
어둠이 빙그레 웃습니다.
“빨리 서둘러.”
어둠이 현영이의 등을 떠밉니다.현영이는 용기를 냈습니다.
“저,아주머니.제가 집을 잃어버렸거든요.초원 청아 아파트를 아세요?”
“그럼,알고말고.나도 거기 근처에 산단다.그동안 고생했겠구나.”
아주머닌 정말 어둠이 말대로 마음씨가 착한 분이었습니다.
“자,이 버스를 타면 된단다.그리고 아줌마랑 같이 내리면 돼.”
“고맙습니다.”
“아이고,인사성도 바르구나.”
주머니가 활짝 웃었습니다.벌써 집에 도착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많이 기다렸을 엄마가 생각납니다.빨리 엄마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얼마나 갔을까요.그동안에도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내렸습니다.사람들은 표정이 없습니다.아마 피곤한 모양입니다.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아니면 눈을 감고 있습니다.
“여기야.이젠 내리면 된단다.”
현영이는 눈에 익은 동네가 보이자 가슴이 뛰었습니다.버스에서 내려 다시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어서 가거라.엄마가 많이 기다리시겠다.”
한참 동안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현영이는 달려가다 몇 번 이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이제 아주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그 곳에는 어둠이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어둠이 씨익 웃어 줍니다.
현영이도 한 번 웃어주고 달렸습니다.엄마와 아빠가 기다리는 집으로.
“딩동”
“누구세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바로 나옵니다.
“엄마.”
“현영아.정말 현영이구나.하느님 감사합니다.”
엄마는 그동안 몇 차례나 밖으로 현영이를 찾아 다녔습니다.그리고 조금 전에 집에 들어와 경찰서에 전화를 했습니다.
“집을 잃어버렸으면 전화를 해야지.그럼 엄마가 데리러 갔을 텐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면 쉽게 집에 올 수 있었겠지만 아마 바다나 개미,바람과 어둠이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겠지요.
“그냥,물어서 왔어요.”
집에 돌아온 현영이는 안심이 되면서 피곤해졌습니다.아빠도 일찍 들어왔습니다.온 가족이 모였습니다.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자리에 든 현영이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엄마는 분명 하느님이라고 했습니다.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느님은 만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고마운 분들은 많습니다.바다,개미,바람,어둠이,아주머니.모두 다 고마운 분들입니다.
집과 숨바꼭질을 한 현영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 끝 -
■당선 소감
겨울,바람 끝에 칼이 숨어 있다.회색의 거리로 나왔다.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기웃거렸다.누군가 나를 봐주었으면 했을까.그것은 나름대로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였다.수많은 사람들이스쳐 지나갔다.그들은 표정이 없는 얼굴로 옷깃을 꼭꼭 여민 채 빠른 속도로 내 곁을 지나쳤다.
맥없이 또각또각 걸음을 옮기는데 가는 눈발이 발길을 잡았다.하늘을 보았다.가는 눈발이 함박눈으로 변했다.순간 같은 곳에서 많은 시선을 보았다.
일시에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향했다.그들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보았다.곧이어 수없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욕심이 생겼다.저 눈 같은 동화를 써 봤으면.
잠시 여유를 가져 보자.무심히 스치는 것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간절히 말을 걸고 싶어 하는지.나 또한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우리는 모두 현대라는 빠르고 거대한 틀 속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보고 싶은 분들이 많다.조그만 가능성을 발견해 주셨던 배봉기 교수님,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광주 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그리고 나보다 더 가슴을 졸였을 가족들,같이 했던 문우들,세상 밖으로 끌어내 주신 심사위원님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약력 1959년 광주 출생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최종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김혜정의 ‘청새리상어의 눈물’,김희진의 ‘휘파람새를 아세요?’,윤숙희의 ‘풍경’,최지혜의 ‘손수레에 넣어준 사랑’,정회옥의 ‘현영이가 만난 하느님’ 등 다섯 편이었다.이들 작품은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어서 당선작 결정에 고심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먼저 ‘손수레에 넣어준 사랑’은 지문보다 대화에 의존한 문장이 불안하고 전체적으로 응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풍경’은 소재가 진부하고 주인공 보현이가 밤길을 걸어 종소리를 찾아오는 부분에서 작위성이 드러난다는 이유로,‘청새리상어의 눈물’ 또한 실어증을 앓던 어린이가 말을 하게 되는 부분에서 작위성이 느껴져 오히려 감동이 반감되었다는 이유로 먼저 논의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남은 두 작품을 두고 고심한 결과 ‘현영이가 만난 하느님’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휘파람새를 아세요?’는 군더더기 없는 치밀한 문장과 소설적 완결성을 보여주어 앞날이 크게 기대되는 작품이었다.그러나 동화라기보다는 소년소설에 가깝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당선작 ‘현영이가 만난 하느님’은 잔잔한 일상 속에 내재돼 있는 동심을 발견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어떤 소중한 감동을 동화의 본질이라고 볼 때,이 작품은 그 본질에 성큼 가까이 다가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집을 잃은 어린이가 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바다와 개미와 바람과 어둠에게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는 데서 맑은 샘물과 같은 동심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낙선자에게는 격려를,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드린다.
조대현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