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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570)-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6)

    儒林(570)-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6)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6) 눈치가 빠른 정철로서는 절묘한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었다. 율곡이 파락호의 가랑이 사이를 개처럼 기어간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고, 그렇다고 유생의 기세도 녹록지 않아 쉽사리 물러설 태세가 아니었으므로 유건을 벗어 유발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상호 원만하게 마무리하자는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율곡이 그렇다고 제 손으로 유건을 벗을 수는 없는 노릇. 더구나 검은 유건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발부(身體髮膚)중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칼을 가리는 유일한 보호막이 아닐 것인가.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정철은 율곡에게 다가가 손을 올려 율곡의 유건을 슬며시 벗기려 하였다. 율곡이 물러서며 반발하려 하자 정철은 빙그레 웃으며 눈을 끔쩍끔쩍하였다. 정철의 눈짓은 자존심이 상해도 잠깐만 그대로 있어달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보시게나.” 율곡의 유건을 벗기자 큰 상투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 무렵 율곡은 머리를 깎지 않고 그대로 길러 선 채로 머리를 빗을 만큼 기르고 있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전해오는 야사에 의하면 율곡에게 글을 가르쳤던 어숙권(魚叔權)은 율곡이 금강산에서 하산한 이튿날 찾아와 문안인사를 올리자 무엇보다 율곡이 삭발을 하였는지의 여부를 알고자 억지로 관을 벗겨 머리카락을 확인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관을 벗기자 길게 늘어진 머리가 몇 척이나 되어 어숙권이 손뼉을 치며 크게 기뻐하였다는 사실이 같이 글을 배운 동문 이붕상(李鵬祥)의 목격담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무렵 율곡은 결혼을 한 성인이었으므로 머리털을 끌어올려 잡아맨 전형적인 상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네가 율곡이 한때 머리를 깎고 석씨의 문중에 빠져 중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보다시피 유발하고 어른 주먹만한 상투가 있지 않은가. 그러니 성인들의 신위가 모셔진 문묘에 드나든다 한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정철은 호방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율곡을 향해 눈을 끔쩍끔쩍하였다. 정철은 16세에 당시 거유였던 김인후(金麟厚)에게 학문을 배우고, 뒤에는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에게도 글을 배워 도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가까이하던 천부의 풍류기질 때문에 평생 반목의 대상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낸다. 그러할 때마다 율곡은 직접 나서서 정철을 변호해 주었고, 정철 역시 율곡을 아끼는 친구로서의 의리를 잊지 않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율곡이 정철에게 보낸 몇 편의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정철이 호남의 외직으로 떠나려 하자 율곡은 ‘가엾기도 해라. 오늘 밤의 저 달이 서로 헤어져 먼 곳으로 떠나게 하니(隣今夜月 相送到天涯)’라고 이별을 슬퍼하였고, 정철의 집을 방문하여 함께 술을 마시다가 ‘시선을 마주치니 맑은 생각 엉키고(擊目凝淸思)’란 오언율시를 지은 것으로 보아도 두 사람의 우정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청사(淸思)를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각별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새광고] 키스처럼 ‘산뜻한’ 아이스크림

    ●빙그레 ‘끌레도르’ 에피소드를 통해 아이스크림의 ‘산뜻한 맛’을 강조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남자 손님이 들어와 아이스크림을 집는다.“끌레도르? 이거 어떤 맛이에요?”하고 묻자 판매원인 임수정이 갑자기 남자의 볼에 “쪽!”하고 키스 세례를 한다.“이 산뜻한 맛이 말로 되니?”라는 그녀의 마음 속 독백. 이어 남자는 블루베리 끌레도르를 들고 와 “이건 어떤 맛이에요?”하고 능청스럽게 물어본다.
  • [공직초대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산사나이 4인

    [공직초대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산사나이 4인

    일년 열두달 가운데 열달을 산중에서 보내는 사나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산은 일터이자 놀이터이기도 한, 삶의 터전이다. 산에 살고 산에 죽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듯싶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 능선 한 가운데쯤 자리잡은 해발 1340m 벽소령 대피소. 국립공원관리공단 소속 우동제(44) 대피소장과 허성(32), 이성우(31), 박종규(27)씨가 근무하고 있다. 마침 산불예방을 위한 통제기간(3월1일∼5월15일)이어서 탐방객의 발길은 끊어진 상태다. 휘이∼잉 불어오는 거센 바람소리만 그득할 뿐이다. 고적감 그 자체. 우 소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근무한 지 20년이 지났다. 한때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도 잠깐 근무했지만 지리산 품으로 되돌아왔다.“드넓은 지리산이 그리워서…”라고 했다. 이성우씨도 비슷하다. 서울 강남의 조경회사에서 근무하다 “산이 좋아서” 이곳 오지생활을 택했다. 허성씨는 산중 생활 2년째, 그리고 막내 박종규씨는 이제 막 보름이 지난 신출내기다. 할 일은 많다. 입산이 통제된 요즘엔 성수기에 대비해 시설물을 보수·점검하는 일에 매달린다. 나무로 지어진 대피소 건물이 비바람에 훼손되지 않도록 화창한 날을 골라 외벽에 기름칠하는 것도 큰 일이다. 탐방객이 쓰는 이불을 빠는 것도 이 즈음이다. 수백채의 이불을 꾸러미로 만들어 놓으면 헬기로 날라 산아래에서 세탁한다. 등산로를 돌며 바람에 날려온 비닐봉투나 담배꽁초 같은 쓰레기 청소 역시 빠지지 않는 일과다. 그래도 요즘엔 쓰레기가 한결 줄었단다. 우 소장은 “탐방문화가 참 많이 좋아졌다.10여년 전만 해도 쓰레기를 줍느라 종일 땅만 보고 걸었을 정도”라고 했다. 성수기엔 몸도 마음도 덩달아 바빠진다. 탐방객 이부자리 정리부터 시작해 실내 청소를 하는 데만 꼬박 3시간 넘게 걸린다. 오후는 고달픈 시간의 연속이다. 밀려드는 탐방객에게 숙소를 배정해 주고, 간이매점에서 이런저런 물품을 팔거나 때때로 벌어지는 탐방객들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기도 한다. 산이 좋아서 선택한 근무지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치밀 때도 있다. 과음으로 술 주정을 부리는 탐방객 탓이다. 허성씨 말처럼 “술 마시고 잠도 못자게 하면서 행패를 부릴 때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을 정도”지만 그래도 참고 지낼 도리밖엔 없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조난당한 탐방객을 구조하는 일이다. 구조요청은 해질녘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데, 사유도 갖가지다. 발목을 접질렸거나, 하산길에 힘에 부쳐 탈진하는 사례가 많다. 탐방로가 좁아 여럿이 달라붙을 수 있는 들것 사용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몇 시간동안 업은 채로 험한 산길을 내려 갈 수밖에 없다. 무릎이 저리고 땀이 쏙 빠지는 일이지만 보람은 크다. 조난객과 인연을 쌓아가기도 한다. 미혼인 허성씨는 “지난해 구해준 여성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연락이 온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맥빠지는 ‘구조요청’도 있다.“랜턴이 없다.”거나 “건전지가 다 떨어졌다.”는 사람들이다. 할 수없이 장비를 갖춰 출동하지만,“기본장비도 갖추지 않고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허탈할 뿐”이다. 우 소장은 “매표소에서 되돌려보내기는 하지만 아무런 장비없이 굽높은 구두를 신고 오는 여성들도 있다.”면서 “지리산은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전문 산악인도 안심할 수 없는 곳”이라며 철저한 사전준비를 당부했다. 이들이 산아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은 열흘에 이삼일이 고작. 나머지는 고스란히 산에 바쳐진다.“외롭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하나같이 빙그레 웃음만 되돌려보낼 뿐이다. 글 사진 지리산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얼굴은 푸짐 행동은 느릿 ‘소시민의 표상’ 이·두·일

    얼굴은 푸짐 행동은 느릿 ‘소시민의 표상’ 이·두·일

    “무능력하고 소시민적인 가장 역할만 주어진다고 해도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연기해요.” 요즘 생활은 정말 ‘월화수목금금금’이다. 중견 연기자 이두일이 그렇다. 만 20년에 접어든 연기 인생에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MBC 일일연속극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에, 주말엔 KBS2 ‘인생이여 고마워요’에 나온다. 게다가 KBS2 어린이드라마 ‘641가족’(월∼목)에도 출연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청자와 만나는 셈이다.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스케줄이 고되다. 지난해 수술 받았던 무릎이 버거울 정도다. 어쩌다 보니 드라마 3개가 겹치게 됐으나 “무리한 스케줄이 절대 자랑은 아니에요.”라며 손사래를 친다. 1986년 연우무대 아동극 ‘꿈꾸러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초연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방송과 영화로 주무대를 옮긴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주로 조역이나 단역 신세였다. 당당한 주연으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도 다른 캐릭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주변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메인 캐릭터를 도우며 작품을 풍성하게 만드는 게 천성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형사 역이, 영화 ‘무사’에서 지산 스님 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연이은 작은 역에 속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마흔 살이 됐을 때 (전업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려 했는데 그때 너무 바빠서 까먹었다고 웃음을 터뜨렸다.“게을러서 그런지 그냥 하게 됐네요.”라고 던지는 말에 삶에 대한 무던함이 묻어났다. 푸짐하고 둥글둥글한 인상에다가 느릿느릿하고 나지막한 목소리 때문일까. 그가 주로 맡고 있는 캐릭터는 소심하나 마음만은 따뜻한 소시민적 가장이다. 능력으로 따지면 ‘루저’(loser), 즉 낙오자다. 그래서 극중에서 구박도 많이 받는다. 우리시대 중년 남성들의 또 하나의 ‘내모습’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IMF 때는 부도가 나서 처가살이하는 가장 역할만 연달아 3번이나 했어요.”라는 그는 “개인적으로는 소시민적 연기가 재미없다.”고 고백한다. 국내 방송이 확인된 캐릭터만 계속 주어지는 풍토라 아쉽다. 하지만 소시민적 캐릭터가 우리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고, 자신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든 대변된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외모 때문인지 극중에서 웃겨야 하는 역할이 많이 들어오는데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연기할 수 있는 게 소시민적 가장이라고 빙그레 웃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친 김에 무능력한 소시민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파헤쳐보고 싶다고도 했다. 연기와 실제 모습과 닮았느냐고 물었더니,“외향적이지 않은 것, 속으로 삭이는 것은 비슷하지만 드라마처럼 심하지는 않아요. 무난한 편이에요.‘사랑은 아무도 못말려’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최상급’으로 무능력한 것 같아요. 허허허.”라고 답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정말 행복한 거죠.”라는 이두일은 96년 중반 MBC 예능 프로그램 ‘환상여행’에 고정적으로 출연하며 악독하고 야비한 극단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시절이 다소 그립다고 한다. 그는 “표현 수위가 자유로워지거나 소재가 다양해지면 배우 영역이 커질 텐데 하는 생각도 있어요.”라면서 “사람도, 세상도 달라지니까 언젠가 다른 역할의 기회가 있겠죠?”라고 변신에 대한 욕심을 내비쳤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신상품]

    ●해태음료는 아미노산을 함유한 음료 ‘아미노업’ 브랜드에서 칼로리가 없는 ‘아미노업 칼로리 제로’를 출시했다. 일본에서 다이어트 기능성 성분으로 활용되는 ‘L-카르니틴’을 추가하고 칼로리를 0으로 떨어뜨렸다고 업체측은 말했다.240㎖ 캔은 700원,350ℓ 페트병은 1000원.●웅진식품은 ‘제주 한라녹차’를 출시했다. 제주 한라산 해발 500㎙의 청정지역에서 자라 품질이 좋은 녹차 잎을 우려냈다. 씁쓸하지 않고 깔끔한 뒷맛이 강점.330㎖들이 페트병 가격은 1000원.●농심은 쌀로 면을 만들어 깔끔한 맛이 나고 소고기와 야채로 국물을 내서 담백하고 시원한 ‘쌀 국수 포들면’을 내놓았다. 숙주, 양파, 파, 청양고추 등 건더기도 푸짐하게 들어있다고 농심은 소개했다. 봉지면은 106g에 1500원이고 용기면은 85g에 1700원이다.●동원F&B에서 황다랑어를 사용한 ‘참치 살코기 장조림’과 돼지고기 안심으로 만든 ‘손으로 만든 장조림’을 내놓았다. 메추리알, 꽈리고추, 가평산 잣을 넣었다. 중량 115g, 가격은 2100원이다.●한국P&G에서 ‘녹차성분 함유 페브리즈’를 새롭게 선보였다. 섬유 속 냄새ㆍ세균 제거해주고 녹차 특유의 향으로 상쾌한 느낌을 준다. 업체측은 한국화학시험연구원으로부터 안전인증(항균분야)을 획득해 아이들 이불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370㎖ 5000원선.●빙그레는 칼로리를 낮춘 ‘바나나맛우유 라이트’를 출시했다. 지방의 함량을 1.5%로 낮췄다. 용기는 기존 바나나맛 우유와 같은 항아리 모양으로 만들었다.240㎖,900원.   ●LG생활건강은 모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고급 샴푸와 린스 ‘엘라스틴 플래티넘’을 시장에 내놓았다. 제품은 모근-모발-모끝의 3중케어 시스템을 채택한 것이 특징. 비타민B 유도체 등이 모근을 튼튼하게 하고, 식물성 콜라겐 성분이 모발조직을 보호하며, 키토산 성분이 모끝의 갈라짐을 방지한다고 회사측이 설명했다. 모근 케어·염색 손상용·민감성 샴푸와 린스는 각 600g에 9500원.(080)023-7007●남양유업은 국내 최초로 초유 단백질 우유인 ‘뼈건강 연구소 206’을 내놓았다. 제품은 초유 단백질 성분인 GP-C를 사용, 조골 세포를 증가하게 하고 골밀도를 높인다. 뼈의 신진대사를 돕도록 칼슘 흡수를 촉진시키는 폴리감마글루탐산과 비타민D도 보강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가격은 600∼2250원.(02)2010-6575●한국리복은 신발 내 공기압을 단계별로 조절 가능한 최첨단 패션 러닝화 ‘펌프 로뮬러스(Pump Romulus)’를 내놓았다. 제품은 신발 뒤쪽의 스마트 밸브를 이용, 공기가 주입되지 않는 0단계부터 신발이 발에 가장 잘 맞는 7단계까지 착용자가 원하는 공기압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천천히 걷는 운동부터 빠른 속도로 달리거나 격렬한 댄스 등 착용자의 활동에 적합한 공기압을 선택할 수 있다. 가격은 14만 9000원.(080)3443-7321●뉴발란스는 혁신적인 충격 흡수 소재인 아부조 이엑스가 사용된 ‘W891WC’ 러닝화 시리즈를 내놓았다. 제품은 충격을 완화시켜 척추와 무릎 부상을 예방해 휘트니스 클럽이나 공원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초보 러너에게 적합하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오렌지색과 노란색 러닝화는 러닝복과 외출복에 감각적으로 코디할 수도 있다. 남성용은 하늘색과 검정색 2개. 가격은 10만 9000원.●농심켈로그는 국내 최초로 장 건강에 좋은 ‘프리바이오틱이 들어간 콘 푸로스트 바이오 장’을 출시했다. 제품은 쌀·통밀·옥수수 등 몸에 좋은 통곡식에 하루에 필요한 9개 비타민과 미네랄, 유산균을 증식시켜 준다. 프리바이오틱은 유산균과 같이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돼 장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성분이다.380g(4500원),580g(5650원).
  • [오늘의 눈] ‘웃음바이러스 전도사’ 가는 길에/김미경 문화부 기자

    1980∼90년대를 주름잡던 코미디언들이 언제부터인가 TV에서 사라졌다. 세대교체뿐 아니라, 코미디풍이 빠른 템포의 공개개그 형식으로 바뀌어 중년 코미디언들이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11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풍자개그의 대부 김형곤도 그랬다. 80년대 ‘공포의 삼겹살’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등 히트작을 통해 시사개그를 선보였지만 그에게 TV는 제약이 많았다. 그래서 ‘할 말을 하기 위해’ 연극판으로 눈을 돌린 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98년에는 ‘여부가 있겠습니까?’를 시작으로 국내 최초로 스탠딩코미디의 장을 열었다. 중년층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본격 성인코미디에 도전한 것이다. 지난해 말 스탠딩코미디 제4탄 ‘엔돌핀코드’ 공연에 앞서 그는 같은 제목의 책을 펴냈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정치와 성(性) 등에 대한 풍자뿐 아니라 ‘웃음이 경쟁력이다.’라는 모토 아래 국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묘안을 담았다.‘웃음 조기교육’‘웃음의 날 제정’‘대통령 유머특보제’‘웃음경영과 유머구역’ 등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은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인터뷰때 만난 그는 “전국민이 동참하는 ‘빙그레 방그레 벙그레’운동을 펼치고자 한다.”면서 “이렇게 할 일이 생겨 운동도 열심히 해 몸무게를 30㎏이나 뺐다.”며 중년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런 그가 꿈을 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이 더 크다.‘엔돌핀코드’ 공연장에서 그는 2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음과 인생을 나눴다. 공연수입금은 백혈병 어린이 돕기에 내놨고,‘범국민웃기운동본부’ 설립을 위한 서명도 받았다. 서울공연 직후 지방에도 웃음 바이러스를 퍼뜨리러 간다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성인조크의 대중화, 스탠딩코미디 도입, 돈 안 쓰는 선거를 위한 무소속의원 출마, 트랜스젠더쇼의 관광상품화 등 용감함으로 무장한 그의 선구자적 활동이 떠올랐다. 온 나라에 웃음 바이러스를 전파하겠다는 그의 뜻을 앞으로 잘 이어가는 것만이,13일 가톨릭의대에 시신을 기증한 그가 웃으며 눈을 감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열린세상] 안창호 선생 추도와 눈물/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님은 왜 오지 않으시나요.´ 아무리 참으려 해도 어찌할 수 없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기 때문이다. 도산선생에 대한 추모의 노랫말이 서정적이기도 하고, 비창과 같은 곡조 탓도 있지만, 도산의 삶에 대한 연민과 오늘의 참담한 현실이 기가 막혔던 까닭이다. 지난 3월10일 선생의 서거 68주년을 기념해 도산묘소 앞에 가득 늘어선 대통령, 총리를 비롯한 각계 지도자들의 조화가 당신께 어떤 위로가 되겠는가. 위로는커녕 이 한심한 나라의 상태를 보고 ‘어리석은 지도층과 백성을 어찌할꼬’하며 개탄을 하였을 것이다. 살아 생전에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과 조국의 혁명을 위해 싸웠던 도산에게 독립운동진영의 일부는 평안도 촌놈이라고 깔보고, 진보를 자처하던 세력들은 당신의 종합적인 운동방략을 준비론이요, 민족개량주의라고 매도했다. 또 이승만파는 공산주의자라고 모함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당신은 모든 것을 참고 속으로 삭였다.‘대한의 독립과 조선의 혁명’을 위해서 난징과 베이징, 만주벌판으로 그들을 찾아가 함께 손잡고 통일해야 무장독립운동도, 외교전도, 교육도, 국내공작도 가능하다고 설득하고 그들을 언제나 앞세웠다. 그러니, 그 속이 어찌 썩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일제의 마수에 사로잡혀 옥고를 치를 때 도산은 이미 일곱 가지 병에 걸려 있었다. 그런 몸으로 당신이 온몸과 온맘을 던져 사랑했던 한반도와 겨레 곁을 떠날 때는 어떠했던가? 일제의 철저한 통제로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겨우 몇 사람만이 참석해 경찰과 헌병의 감시 하에 망우리 묘소에 묘비와 묘비명 하나 없이 쓸쓸히 묻히셨다. 당신이 돌아가신 뒤 일제치하에서 무실역행과 충의용감의 정신으로 인격혁명을 다짐했던 당신의 제자들은 일제에 굴복해 당신의 묘소 앞에 엎드리지 못하고, 남산의 신궁에 참배했으니 어찌 편히 눈을 감으실 수 있었을까? ‘낙심하지 마오, 일제는 힘에 부치는 싸움을 벌였으니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바대로 몇 년 뒤 꿈에 그리던 ‘잃어버렸던 옛나라’를 되찾았다. 그러나 국토가 두 동강이로 쪼개지고 동족끼리 살육전을 펼치는 증오의 시절을 보냈으니, 이 또한 당신께서 염원한 새로운 복된 나라, 빙그레 웃는 훈훈한 사회와는 너무도 먼 세상이었다. 그래도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도, 독재와 싸워서 민주화의 기적도 가까스로 만들어 세계15위의 경제력을 키웠으나, 주도면밀하셨던 당신의 눈으로 보면, 오늘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하실 것이다. 나라의 중심이 없고, 선거철마다 망국적인 지역정서를 선동하고, 달콤한 교언영색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서 집권한 이후에는 권력의 단맛에 취해 국민의 눈물을 잊어버리기 일쑤가 아닌가. 민주화운동을 한 당신의 후예들이 정권을 잡으면 세상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냉엄한 국내외정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 실정은 어떤가. 나라의 지도층이 정신적으로 썩고 문드러졌으니 나라꼴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네탓 남탓만 하고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으니 국민들이 마음을 둘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당신은 대한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쳐 일할 인물을 키워 그들이 신성단결해야 새로운 복된 나라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나의 눈물은 도산이 서거하신 지 68년이나 지난 오늘까지 당신이 꿈꾸었던 새로운 복된 나라는커녕 두 동강이 난 국토조차 통일하지 못하고 있고, 당신이 만드신 흥사단이 100여년이 다 돼 가는데도 조국과 겨레의 중심에 서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다. 우리의 다짐이 헛되었다는 말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왔단 말인가. 가까스로 눈물을 추스르고 ‘선생이시여! 고이 눈을 감으소서. 우리들이 분투노력하겠나이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추도식장을 나왔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 구대성 컴백 5년만에 친정 한화복귀

    ‘좌완 특급’ 구대성(37·뉴욕 메츠)이 5년 만에 친정팀 한화로 복귀했다. 프로야구 한화는 1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으로 아시아 라운드에 참가중인 구대성과 올시즌 1년간 연봉 55만달러(5억 3400만원)에 계약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화는 메츠와 합의에 따라 이적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로써 구대성은 지난 2001년 오릭스 블루웨이브(현재 오릭스 버펄로스) 유니폼을 입고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이후 미국프로야구 뉴욕 메츠를 거쳐 5년 만에 국내 팬들 앞에 다시 선다. 1993년 빙그레(현 한화)에 입단한 구대성은 7년간 통산 61승58패,151세이브, 방어율 2.79의 빼어난 성적을 냈다. 특히 96년에는 18승3패 24세이브, 방어율 1.88로 맹활약, 다승 구원 방어율 등 투수 3관왕에 오르며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는 3∼4위전에서 일본의 ‘괴물 투수’ 마쓰자카와 선발 맞장에서 완투승으로 한국에 첫 동메달 안겼었다.2000년 시즌 후 오릭스에 입단한 구대성은 데뷔 첫 해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7승9패,10세이브를 올렸지만 부상에 발목을 잡혀 2002년 5승,2003년 6승에 그쳤다. 일본 4년간 통산 성적은 24승34패, 방어율 3.88. 지난해 메츠에 입단, 빅리거의 꿈을 이룬 구대성은 한·미·일 프로야구 마운드를 모두 밟았지만 33경기에서 승패없이 방어율 3.91에 그친 뒤 방출 대기조치 통보를 받았다. 한화는 전천후 등판이 가능한 구대성의 가세로 ‘어게인 1999’를 재현할 태세다. 불방망이가 자랑이지만 그동안 마운드가 불안해 약체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베테랑 송진우 정민철, 신인 특급 유원상과 유현진, 부상에서 회복한 권준헌 송창식 등이 구축한 마운드는 돌풍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지금 전남에선] 영광군 김춘호씨의 서울대 자식농사記

    [지금 전남에선] 영광군 김춘호씨의 서울대 자식농사記

    아파트 공사장 인부생활 6개월째인 김춘호(53)씨. 농사를 짓다가 지난 여름부터 아들 학비를 벌려고 발을 들여놨다. 고향인 전남 영광군 군남면 장고마을에 있는 아내 이연순(47)씨와 큰 아들 지수(20·고3), 둘째 문수(19·고2)가 눈에 밟힌다. 고향 농사는 논·밭 합쳐서 1800평 남짓. 지난해 논 750평에 방울토마토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빚을 내 들인 돈은 5000만원. 수확을 앞두고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렸으나 한상자에 3000∼4000원으로 값이 떨어져 잠이 안온다고 아내가 말한다. 지난 2일. 그가 처음 세상에 태어나 보람을 느낀 날이다. 오후 울먹이는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지수 아빠, 지수가 서울대에 합격했어.” 지수가 서울대 특기자전형에 떨어졌으나 이번에 농어촌특별전형에 붙었다. 아들이 보고 싶었다. 부랴부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영광읍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택시비를 아끼려 10㎞쯤 떨어진 마을까지 걸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그는 감짝 놀랐다.“장고마을 김춘호·이연순의 자, 지수군 서울대 합격, 축”이란 플래카드가 내걸린 것이다.20m 사이를 두고 6개나 더 있었다. 자꾸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평생 일벌레처럼 땅만 파며 살아온 밑바닥 인생의 과거지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집앞 비밀하우스에 들어서자 아내는 엎드린채 웃자란 토마토 줄기를 따고 있었다.“고생했어, 지수 엄마.”라며 등을 토닥였다. 아내 눈가에 이슬이 맺히더니 금세 어깨가 들먹였다. 그렇잖아도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였다. 하우스 안쪽에서 일손을 돕던 아들에게 “장하다. 지수야.”면서 힘껏 껴안았다. 품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자란 아들. 쳐다볼 만큼 키도 훌쩍 자라 있었다. 친구이자 이장으로 동네에서 가장 젊은 고인주(53)씨가 찾아와 “동네잔치라도 해야 한다.”고 북돋웠다.60여 가구가 사는 동네가 생긴 이래 가장 좋은 일이 생겼다며 좋아했다. 그는 읍내에 나가 큰 맘 먹고 쇠고기 두근을 사왔다. 좋아하는 소주도 2병이나 샀다.“야, 한잔 해라.” 첫잔을 고맙다는 뜻으로 아들에게 부었다. 대작을 하면서 아들이 그렇게 커보일 수가 없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곁에 있던 아내도 고마웠다. 오른 손으로 아들, 왼손으로 아내 손을 잡자 모두가 빙그레 웃었다. 아들은 꿈이 수학교수라고 했다. 그는 변변하게 부모 노릇을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아들이 30명도 안되는 시골 초·중학교를 다닐 때도 참고서 한권을 못사줬다. 명문인 장성고에 특별장학생으로 갈 때도 그냥 보냈다. 그런데도 아들이 서울대 자연대(수리과학부)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서른 한살에 결혼해 3년 만에 본 아들이었다.“건강하고 착하게 자라준 것 만으로도 고마운데…” 그는 산더미처럼 일감이나 많았으면 하며 오늘을 산다. 영광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아침을 먹자] 7남매의 가장 언니께 작은 보답

    구혜진(31·여) 저는 칠남매의 막내둥이입니다. 제일 큰언니와 나이 차이가 열 다섯살이 나지요. 언니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는 늘 바쁘셨거든요. 엄마를 대신해 밥을 챙겨주고 집안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제게 언니는 참 무서운 존재였어요. “너 한번만 더 칭얼거리면 밥 안 줄거다.” 엄마는 이런 말을 가끔 하시면서 아이들을 토닥이셨어요. 하지만 언니는 칭얼거리는 순간부터 밥공기를 사정없이 가져가 버리곤 했지요. 저는 ‘큰언니가 얼른 시집을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니는 결국 동생들을 위해 공부도 포기한 채 공장으로 취직을 해 서울로 떠났습니다. 당시엔 언니가 왜 어디로 갔는지 몰라 마냥 즐거워만 했어요. 게다가 언니가 간 뒤로 우리 집은 하루가 다르게 윤택해졌어요. 까까머리 오빠의 삭아빠진 양은 도시락이 로봇무늬 새 도시락으로 바뀌고, 코흘리개인 내 밥공기에 더많은 더운밥이 올랐죠. 넷째언니의 헌 몽당연필은 새연필로 금방 바뀌었습니다. 몇 년 뒤 언니는 강원도 강릉에서 형부와 결혼을 했습니다. 언니의 안정과 행복감도 잠시뿐이었어요. 형부가 실직을 해 강원도 평창의 목장으로 떠나야 했어요. 언니는 어린 두 조카들을 데리고 그 오지 산골에서 소를 돌봤습니다. 키도 크고 누구보다 하얀 피부를 가졌던 언니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어요. 하얀 이만 보일 정도로 피부가 새까맣게 탔습니다. 하루는 제가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언니가 두 조카와 찾아와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전 주위시선을 먼저 살폈습니다. 시커멓고 초라한 옷차림 때문이었죠.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누구란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언니와 두조카의 실망한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왜 그때 “우리 언니와 조카들이에요.” 하면서 안아주지 못했나 하는 후회를 이제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고 키워준 동생인데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지금은 다행히 언니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어요. 이제 저는 가장 다정한 친구로서 언니곁에서 그 빚을 갚고 싶어요. 아침밥 한끼로 언니의 사랑에 보답하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이나마 언니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김춘호(48·여) 22일이 팔순이 다 되어가는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입니다. 두 분만 사시는데 몸이 편찮으십니다. 식사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는데 생업에 매달리느라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합니다.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결혼 기념일 아침에 깜짝 파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맛있는 도시락을 가지고 가서 부모님이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서해경(43·여) 시댁 어른들과 합친 뒤 제가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시어머님은 퇴근이 늦는 며느리를 위해 정성들여 상을 차려 놓으신답니다. 힘드시니까 그러시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어머님은 “내 자식이 못나 고생하는데 이 정도 못하겠냐.”며 절 눈물나게 하십니다. 아침에도 제가 일어나서 밥을 챙기면 어느 새 나오셔서 절 방안으로 들이미십니다. 어머님을 위한 아침을 챙겨 드리고 싶습니다.
  • [길섶에서] 배춧국집/이목희 논설위원

    서울 무교동 뒷골목에 가면 조그마한 배춧국집이 있다. 서너평 식당이 소박하기 그지없다. 주방도 따로 없다. 동그란 간이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벽을 보고 식사해야 한다. 일흔을 넘긴 아주머니가 내놓는 식단은 한가지. 강원도 무공해 배춧국에 절음식 같은 나물반찬과 김구이. 밥을 된장에 비벼먹느냐, 그냥 먹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꽤나 이름을 날렸던 집이다. 여러 신문·잡지·TV가 맛집으로 소개했다. 점심시간이면 한참 줄을 서야 식사차례가 돌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든 듯했다. 인근의 북어국집, 된장찌개집, 추어탕집이 리모델링을 하고부터였다.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는 허름한 것이 정겹다. 젊은이들은 다른 모양이다. 옛 정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새로 단장된 식당을 찾는 게 인지상정인가. “내부수리를 한번 하시지요.” 합장하며 맞는 아주머니에게 안타까움을 전했다.“우린 변하지 않는 게 좋다우.” 빙그레 웃는 아주머니 대신 아저씨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때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다.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겠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무교동 ○○○빌딩 맞은 편으로 건너와….” 찾아오는 길을 설명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아직은 호기롭게 들렸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儒林(53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0)

    儒林(530)-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0)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0) 그러나 율곡은 노승이 갈긴 한 방망이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면서 크게 할(喝)하여 말하였다. “이미 말에 표현이 있으면 그것이 곧 대상의 경계가 되거늘 그것이 어찌 본체라 하겠습니까.” 율곡은 노승이 말하였던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것이 진여(眞如)의 본체라오.’라는 말을 붙들고 늘어진 것이었다. 즉 색이니 공이니 진여니 하는 것의 말의 표현은 결국 공허한 말장난의 경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 율곡의 반격이었다. 그러고 나서 율곡은 직격탄을 날린다. “…만약 그렇다면 유가의 묘한 것은 말로써 전해질 수 없는데, 불가의 도는 문자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 안에 있다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율곡의 직격탄은 부처가 남긴 말에서 비롯된다. 어느날 부처는 영산에 앉아서 설법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꽃잎이 눈처럼 흩어져 내렸다. 허공에서 흩어져 내린 꽃은 연꽃. 설법도중에 부처는 갑자기 말을 끊고 한 송이 꽃을 주워 들고 가만히 여러 대중들에게 그 꽃을 보일 뿐이었다. 이 장면은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라고 하여 이를 흔히 불가에서는 선의 시원점으로 삼고 있다. 그 자리에 모였던 수천의 대중들은 갑작스러운 부처의 침묵과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꽃 한 송이를 들어올린 부처의 뜻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 있었는데, 유독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가섭존자의 ‘파안미소(破顔微笑)’를 본 순간 부처는 자신의 가르침이 문자나 교리로가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제자에게 전해졌음을 깨닫게 되었으며,8만의 설법으로도 표현해 낼 수 없는 진리, 즉 부처의 마음을 가섭존자가 그대로 이어받았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고사성어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말. 이때 부처는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의 말을 남기는 것이다. “나에게는 더할 수 없는 바른 진리의 가르침 ‘정법안장(正法眼藏)’과 끝없는 진리의 자유로운 경계 ‘열반묘심(涅槃妙心)’, 모든 것이 있으면서도 또한 모든 것이 없는 불변의 진리인 ‘실상무상(實相無相)’과 오묘한 불법으로 들어가는 깊고 묘한 길 ‘미묘법문(微妙法門)’, 그리고 문자나 경전의 가르침과 같은 글자로 표현될 수 없이 오직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오묘한 진리인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 있다. 이를 바로 마하가섭에게 전한다.” 부처의 이 말에서 부처의 가르침 이외에 심법(心法)이 따로 전해지게 되었으며, 이를 최초로 전해받은 사람이 바로 마하가섭. 그러므로 불가에서는 마하가섭을 불조법맥(佛祖法脈)의 제1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율곡은 바로 이러한 부처의 수수께끼의 말을 인용하여 노승을 향해 결정타를 날린 것이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칩거 끝내고 다시 풍수 연구 나선 최창조 前서울대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칩거 끝내고 다시 풍수 연구 나선 최창조 前서울대 교수

    “올해는 ‘호랑이 똥침’을 꼭 줘야 합니다.” 한 풍수의 대가가 간절하게 내뱉는 말이다. 웅비하는 한반도를 소망하는 마음이 담겼다. 그렇다면 ‘똥침’의 위치는 어디일까? 원래 ‘풍수가’는 지관(地官) 또는 지사(地師)라고 하며 하늘과 땅의 이치를 통달한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예부터 나라의 도읍을 정하는 일이나 집안 가족의 묏자리와 집터를 정할 때 유명한 풍수가의 자문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정치 또는 사업에 야망을 둔 사람들은 풍수이론에 근거해 조상의 묏자리를 옮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관계인사들 또한 진급을 앞두고 이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수맥이 밑으로 흐르는 곳에 거처하면 온갖 병이 생긴다는 이론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명산이나 좋은 묘터, 명당으로 소문난 터는 여전히 높은 값에 거래된다. 이처럼 풍수는 첨단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우리 일상과 상당히 밀접해 있다. 삶이란 논리보다는 이해와 느낌으로 살아간다는 이치에서다. 최창조(56) 전 서울대교수. 풍수학자이면서 우리나라의 풍수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한국의 풍수지리’ 등 관련 단행본만 10여권 냈다. 행정수도 이전 논란때 ‘천도불가론 아홉가지 이유’를 발표, 주목을 받았다.1992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시절 “풍수도 학문이라고 가르치냐.”라는 비아냥이 나오자 타고난 결백성으로 그냥 문을 박차고 홀가분하게 나와버렸다. 이후 칩거하다시피 지내다 얼마전 ‘풍수잡설’‘닭이 봉황되다’라는 책을 발간하는 등 풍수연구에 다시 나섰다. 한 단계 더 득도한 스님처럼. 설날 직전, 서울 신도림역 인근에 위치한 최씨 자택(아파트)을 찾았다. 근황도 궁금했고 또 풍수학적으로 우리나라는 올해 어떤 형국인지 묻고 싶어서였다. 최씨는 아파트단지 입구까지 마중나와 해맑은 소년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선생님, 언제 이사 오셨죠?” “봉천동에서 살다 온 지 꼭 2년 됐습니다. 처음에는 경기도 과천을 생각했으나 가격을 맞추다 보니 여길 선택했지요.” “그렇다면 풍수 고수가 정한 자리여서 당연히 명당이겠네요?” “명당은 마음속에 있지요. 수맥만 아니라면, 사랑해주면 자연 명당이 됩니다. 조용하고 아주 살기 좋아요.” 바로 옆에 대형 할인점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최씨는 “저것 덕분에 아파트값이 올라가 주민들이 좋아하니 아마 명당자리인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빙그레 웃는다. “아파트에도 풍수가 있나요?” “묘터나 집터잡기에는 (풍수가)일상사가 됐지요. 상식선을 벗어나지 않으면 됩니다. 수맥을 제외한 사랑과 믿음이 가는 곳이면 되지요.” 또한 남향이면서 햇볕이 들고 주위에 산이 있으면 아파트로서는 좋은 곳이라고 했다. 아울러 모든 풍수가 현장 위주여야 하듯 집을 살 때에도 직접 발품을 팔아 주위를 꼼꼼하게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귀띔해 준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올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 국토는 호랑이가 잔뜩 웅크리고만 있어요. 이놈을 깨워야 합니다. 똥침을 주어 깜짝 놀라게 해야지요. 그래야 웅비합니다.” “똥침의 위치는 어딘가요?” “영일만쪽이지요. 그 일대에서 남쪽까지는 풍수학적으로 금계포란(金鷄包卵)형입니다.” “알을 품은 금닭인가요?“ “예, 맞습니다. 그 아래로 바다건너 제주도가 바로 금란(金卵), 즉 금닭의 알이지요.” 최씨의 이론을 해석하면 그동안 영남일대에 여러 인물들이 나왔지만 이치에 맞는 똥침을 제대로 주지 못해 아직까지 웅크린 형국이라는 것. 따라서 올해 한반도가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제주도는 비록 똥침과는 거리가 멀지만 ‘금닭의 알’로서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씨는 “제주도는 정말 살기좋은 자연의 혜택을 받았지요. 특별자치도가 되면 타도 사람들은 아마 입도료를 내야 할 걸요.”하면서 웃는다. 화제를 돌렸다. 정재계 인사들과 흥미로운 일화에 대해 슬쩍 물었다. 정계쪽에는 별로 관심없지만 일부 재계 인사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다음은 최씨가 들려주는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과의 일화. 92년 여름 최씨가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둔 직후였다. 최 회장 측근에서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최씨는 ‘산소 자리나 봐달라는 것이겠지.’ 하면서 거절했다. 며칠 후 손길승 SK그룹 경영기획실장실 사장과 김수길 부사장이 서울 봉천동 집으로 불쑥 찾아왔다.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이루어졌다. 최씨가 술 몇잔을 들고 나서 “최 회장이 왜 나를 보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손 사장은 “우리는 사업하는 사람으로 물건을 파는 입장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사람은 키도 작고 영어도 잘 못한다. 때문에 우리의 우수한 것을 돕겠다는 게 최 회장의 뜻이다.”고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최씨가 “그렇다면 명분을 주시오.”라고 했다. 손 사장은 이에 “좋은 생각이 있다. 한달에 한번 사장단 회의가 있으니 그때 강연을 하면 되지 않겠소.”라며 거듭 제안했다. 결국 최씨는 얼마후 SK그룹 사장단 회의장에서 ‘풍수일반론’을 강의했고 최 회장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나는 풍수를 안 믿는다. 하지만 그냥 순수하게 돕고 싶다.”는 말로 최씨를 설득했다. 그래서 한달 300만원을 받기로 하고 1년 동안 연구계획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후 충북 보은 등 지방에 칩거허면서 풍수관련 연구를 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와도 인연이 있다. 하루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불러 청와대에 들어갔다. 관계자는 북악산 요새와 청와대 경내의 오래된 정자를 치워도 되느냐고 물었다. 최씨는 “풍수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문화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이어 침식된 산, 양쪽으로 노출된 암반, 파인 계곡 등의 지세(地勢)를 보아 청와대는 원래 사람이 살던 땅은 아니었다고 귀띔했다. 이로부터 얼마후 경내의 일본식 건물이 철거되고 요새화 작업으로 파인 곳곳을 깨끗이 메웠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최씨는 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집터와 관련된 소문에 휘말리기도 했다.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둔 직후였다. 대통령 관저가 북악산의 기맥을 압박하고 있어 좋지 않다는 주장을 해온 최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은 풍수학상 좋지만 노 대통령의 자택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 괘씸죄로 서울대 교수직에서 잘렸다는 것. 이에 대해 최씨는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없는데 일본인 노자키 미쓰히코(오사카시립대 교수)가 쓴 ‘한국의 풍수사들’(94년 출간)이란 책에서 우연히 접해 알게 됐을 뿐”이라고 했다. 최씨는 평소 북악산이 주산(主山)이 아니기 때문에 독불장군형이라고 주장해 왔다. 좌로 인왕산, 우로 둔덕이 둘러치고 전방으로만 확 트여 있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대통령으로서는 자연스럽게 독선과 자만감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울러 2004년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 풍수학적으로 불가한 여덟가지 이유를 내놓는 등 중대 사안 때마다 이래저래 자의반 타의반 엮여져 왔다. 서울 출생인 그가 풍수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경기고 재학 시절. 우연히 망우리 공동묘지에 찾아가면서였다. 시인도 있고 독립투사도 있으며 정치범으로 사형당한 사람의 무덤이 있는 그곳에 가면 왠지 평등을 느꼈고 평정심을 얻었다. 이때 한 중년 사내를 만나 풍수를 배우면서 최면처럼 빠져들었다. 그래서 서울대 지리학과에 진학했고 교수시절에도 항상 현장 위주의 풍수학을 강조해 왔다. 요즘 건강을 다시 찾은 덕분에 관악산 등 주변 산을 찾아 땅과의 대화를 나누는 재미를 만끽한다. “이제는 땅을 보면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전에는 경험과 이론을 동원해 땅을 해석하려 했지만 지금은 만나는 순간 어떤 느낌을 갖지요. 땅을 사랑하려면 정을 주어야 합니다.” 주말매거진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0년 서울 출생 ▲68년 경기고 졸업 ▲73년 서울대 지리학과 졸업, 동대학 석사(91년) ▲77년 경북대 지리학 강사 ▲79년 전남대 지리교육과 강사, 국토개발연구원 주임연구원 ▲81∼88년 전북대 지리교육과 교수 ▲88∼91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92년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삼성생명 자문위원 ▲주요 저서 풍수에 대한 지리학적 해석(78년), 한국의 풍수사상(84년), 풍수사상에서 본 통일한반도의 수도입지선정(89년), 터잡기의 예술(92년), 한국의 풍수지리(93년), 땅의 눈물 땅의 희망(2000년), 풍수잡설(2005년) 등 15권.
  • 儒林(52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9)

    儒林(529)-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9)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9) 따라서 율곡의 시에는 노승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내 말에 노승은 긍정하지 않은 채 한참을 말이 없었다.” 침묵을 지키던 노승이 다시 화제를 바꾸어 율곡에게 묻는다.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다.’란 말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노승의 질문은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인용하였던 말. 부처가 제자인 사리불에게 ‘사리불이여, 물질(色)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라고 설법한 내용에서 유래된 유명한 구절이었다. 즉 불가에서는 ‘유형의 만물을 색이라 칭하고, 만물은 모두 인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본래 실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공과 다름이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이었던 것이다. 이에 율곡은 대답한다. “이것 역시 앞의 경계일 뿐입니다.” 율곡의 대답은 색이니, 공이니 따지는 것도 앞에서 말하였던 실리(實利)가 아니라 공허한 말장난, 즉 경계를 따지는 일이라는 공격이었다. 율곡의 이 말을 들은 노승은 다만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을 본 순간 젊은 율곡은 다시 투지를 불러일으켜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스님께 내가 묻겠습니다.‘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닿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란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색입니까, 공입니까.” 율곡의 말은 시경에 나오는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닿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鳶飛戾天 魚躍于淵)’란 말에서 인용한 것. 이 시를 두고 공자의 제자인 자사(子思)는 중용에서 ‘솔개는 하늘을 날고 있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놀고 있지만 하늘과 연못의 상하는 결국 하나로 이것을 구분하는 것은 다만 말에 지나지 않는다.(言其上下察也)’고 설명하였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노승은 다시 묻는다.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것이 진여(眞如)의 본체라오. 이 오묘한 진리를 어찌 유교의 시경에 비교할 수 있겠소이까.” 노승이 말하였던 진여(眞如). 불교의 진실여상(眞實如常)에서 나온 말로 곧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실체로서 평등하고 무차별한 절대 불교진리를 감히 유가의 시경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노승의 준엄한 질책이었던 것이다. 즉 색은 형상과 색채를 가진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현상계를 가리키고, 공은 일반적으로 현상계에서 서로 관계하며 변화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불변의 어떤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상계란 모두 색과 공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참된 진리인 진여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상계를 초월해 있다. 그것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어서 말이나 글로 경계 지어 표현할 수 없는 진여(眞如), 그 자체인 것이다. 그 진여를 어찌 유교로서 감히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노승이 갈긴 한 방망이였던 것이다.
  • [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아빠의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최지운

    내일은 아빠와 제가 함께 시험을 보아요. 옆집에 사는 언니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워드프로세서 시험이 있거든요. 그런데 창피하게도 아빠는 저보다 급수가 낮은 3급을 본답니다. 저는 2급을 보는데 말이에요. “알트(Alt)키와 엔(N)키를 함께 누르면?” “새 문서가 펼쳐지지.” “인쇄할 때 누르는 단축키?” “아빠를 무시하니? 알트키 더하기 P키잖아.” “이건 모를 걸. 컨트롤(Ctrl)키와 브이(V)키를 동시에 누르면?” “어, 뭐더라. 오려두기인가?” “붙이기잖아, 아빠. 어떻게 나보다 더 몰라.” 솔직히 저는 아빠가 틀리길 바랐어요. 그래야 우리 선생님처럼 아빠에게 혼낼 수 있거든요. 아빠는 제가 수학 시험에서 20점을 받아 선생님에게 혼날 때처럼 잔뜩 움츠린 표정으로 절 바라보고 계셨어요. 그걸 보곤 겉으론 화가 난 척했지만 속으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엄마는 제 20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받아도 언제든 웃으시며, “다음엔 잘 하거라.” 라고 자상하게 말씀해주세요. 저도 감히 어머니 흉내를 내어 보았어요. “내일 시험은 잘 보세요, 아빠.” 아빠는 웃으시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절 ‘던킨 도너츠’ 매장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한 개씩 틀릴 때마다 도너츠 한 개씩 사주기로 했거든요. 그 날 전 도너츠 5개를 먹고도 4개나 더 남겼답니다. 아빠는 컴퓨터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세요. 저는 컴퓨터로 밤마다 친구들과 만나 ‘카트라이더’도 하고 컴퓨터로 일기도 쓰고, 컴퓨터로 재미난 만화도 보는데 말이에요. 이메일도 없으세요. 언제는 아빠 회사 부장님께 급하게 보내야 하는 서류라며 저보고 타이핑해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마침 ‘카트라이더’가 잘 되고 있어서 루찌를 한참 벌어들이고 있는 참이었는데 말이에요. “어떻게 나보다 컴퓨터를 더 몰라?” 이렇게 화를 내고 말았어요. 그런데 정작 아빠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계시는데 오히려 엄마가 절 크게 나무라셨답니다. “좋아, 나도 세미 따라 이번에 시험 보겠어.” 아빠가 워드프로세서 시험을 보기로 결심하신 건 한 달 전쯤이에요. 제가 컴퓨터반 친구들과 시험을 보겠다고 했더니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였어요. “여보, 부장님께 또 소리 들으셨어요?” “자꾸 나보고 컴맹이라고 놀리잖아. 반드시 따서 부장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거야.” 그래서 그 날부터 아빠는 저의 학생이 되었어요.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는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덕분에 도너츠는 배가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답니다. 아빠는 저보다 한 시간 일찍 시험을 보세요. 그래서 저와 헤어져 먼저 시험장에 들어가셨어요. 아빠는 제 또래 아이들과 함께 앉아 제 앞에서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두 손가락으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계시겠지요? 그래도 시간 안에 다 치고 나오셔야 할 텐데. 그런데 시험장을 나오시는 아빠의 표정이 밝아요. 시험을 잘 보신 모양이에요. 안타까워요. 도너츠를 더 이상 얻어먹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 아빠가 부장아저씨께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기쁘답니다. 아빠는 자격증을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세요. 그리고 수시로 열어보면서 흐뭇해하신답니다. 이젠 귀찮게 메일 보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아요. 제 컴퓨터에서 문서를 친 다음 아빠의 이메일로 보내신답니다. 며칠 전부터는 저한테 ‘카트라이더’도 배우셔서 PC방에서 함께 게임을 하기도 해요. 친구들은 그런 저를 부러워한답니다. 친구 아빠들은 게임한다고 화부터 내신대요. 비록 아빠랑 같이 하면 질 때가 더 많지만요. 전 아빠랑 게임할 때가 제일 즐겁습니다. 늦은 밤, 아빠가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오셨어요. 아빠는 술을 잘 못 마시는데 말이에요. 엄마도 놀라서 물어보셨어요. “왜 이리 많이 마신 거예요? 무슨 괴로운 일 있으세요?” “나만 살아남았어, 나만. 다 잘렸어.” 그리곤 엉엉 우셨어요. 한 번도 저한테 우는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없는 아빠였거든요. 엄마가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 인사 때 아빠의 부하직원들이 다 잘리셨대요. 아빠만 유일하게 빠지셨구요. 아빠는 미안한 마음에 직원들과 못 마시는 술을 실컷 마셨대요. 한동안 아빠의 표정엔 먹구름이 가득했어요. 저랑 PC방에 같이 가지도 않으셨어요. 예전엔 혼자 ‘카트라이더’를 해도 재밌었는데 아빠랑 같이 한 뒤론 혼자하면 무지 재미가 없어요. 그러다 아빠가 문방구에서 엽서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엽서를 사서 갖다드리자 하루 종일 거실에서 엽서를 쓰시고 계셨어요. “아빠, 밥 먹어.” 아빠가 식사하시는 틈을 타 전 몰래 식탁에서 빠져나와 거실로 향했어요. 아빠가 엽서에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쓰시는지 궁금했거든요. 무척 낡아 보이는 만년필 옆으론 제가 사온 엽서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어요. 맨 위에 있는 것을 펴보았어요. ‘진대리, 그동안 수고 많았네. 어딜 가든 대진물산과 동료들을 잊지 말고 하는 일마다 번창하길 빌겠네. 그동안 고마웠고 또한 미안하네.’ 다른 엽서들도 내용이 다 비슷했어요. 받는 사람의 이름만 달랐구요. 그래서 고생하시는 아빠를 도와드리려고, “아빠, 내가 컴퓨터로 대신 쳐줄까?” 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아빠는, “아니, 나도 이젠 칠 수 있는 걸.” 하고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맞아요, 아빠도 당당히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 제가 그만 깜빡했어요. 그래서 대신 아빠가 쓴 엽서를 학교 앞에 있는 우체국에 갖다드리기로 했어요. “어머나, 글씨가 참 예쁘네. 정말 너희 아빠가 쓰신 거니?” 엄마가 주신 용돈을 저금할 때 자주 찾아가는 우체국 언니가 아빠의 엽서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글씨를 잘 쓰신 건가? 잘 모르겠지만 아빠를 칭찬하는 말이라 기분이 좋아서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아빠가 이러니 너도 글씨가 참 예쁘겠다. 니 얼굴처럼.”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제 노트를 보여주며 물어보았어요. “엄마, 나도 아빠처럼 글씨 예쁜 거야?”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좀 더 정성껏 써야 되겠구나.” 속상했어요. 우체국 언니가 아빠 글씨 칭찬해 준 것처럼 엄마도 내 글씨를 칭찬해주기를 바랐거든요. “엄마, 나도 어떻게 하면 아빠처럼 글씨 예쁘게 쓸 수 있어?” “너도 아빠처럼 연필로 글을 써보렴.” “그러면 나도 잘 쓸 수 있어?” “그럼.” 그날 전 아빠한테 일기장을 사달라고 졸랐어요. 그래서 아빠는 마시마로가 귀엽게 웃고 있는 스프링노트를 사 주셨어요. 전 거기에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왜 컴퓨터에다 안 쓰니?” “나도 아빠처럼 예쁜 글씨를 쓸 거야. 아빠도 옛날처럼 다시 펜으로 써.” “그럼 부장아저씨한테 혼나.” “부장아저씨 되게 못 됐다.” 아빠는 말없이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밝게 웃으셨답니다. 최지운
  • [인사]

    ■ 행정자치부 ◇국장급 전출 △전라북도 기획관리실장 安世景◇팀장급 전보△상훈팀장 權鍵周△정부청사관리소 관리총괄과장 張尙英■ 산업자원부 ◇과장 승진△감사담당관 安成準△기술표준원 관리과장 丁東福◇서기관 전보△감사담당관실 金鎭鳳△총무과 全元男△아주협력과 李完城△자원정책과 文東珉△에너지관리과 梁元暢△석유산업과 文愼鶴△가스산업과 崔英洙△지역혁신지원담당관실 李英烈△수송기계산업과 金成實△조사총괄과 柳星羽△가격조사과 李容澈△총괄정책과 鄭鍾榮△대외경제위원회 파견 신희동 ■ 환경부 ◇과장급전보 △수질보전국 유역제도과장 李盛漢△전주지방환경청장 金洛斌◇4급승진 △자연보전국 자연자원과 柳泰喆△자원순환국 자원순환정책과 鄭鍾善■ 해양수산부 ◇국장급 승진 △울산지방해양수산청장 朴鍾國◇과장급 전보△정책홍보관리실 행정법무팀장 柳在亨△대산지방해양수산청장 韓寬熙◇파견(4급)△국민경제자문회의 李熙永◇해양안전심판원(2급상당)△중앙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 曺柄龍△인천지방해양안전심판원장 曺永大■ 법제처 ◇부이사관 전보 △법제정책팀장 林松鶴◇서기관 전보 △경제법제국 법제관 金昌範△사회문화법제국 〃 金聖雄△행정심판관리국 사회복지심판팀장 李相勳△행정법제국 趙容晧◇서기관 파견 △국회법사위 崔榮燦△KDI국제정책대학원 林奎鴻■ 국가인권위원회 ◇본부장 △인권정책 박찬운△행정기획 안종철△인권교육 나영희◇팀장 △인권상담센터 정병춘△홍보협력 이명재△법무감사 김성준△운영지원 유인덕△정책총괄 심상돈△국제인권 오병훈△인권연구 정영선△혁신인사 손심길△재정기획 김성옥△정보관리 구자환△침해구제총괄 김형완△침해구제1 최재경△침해구제2 홍세현△침해구제3 안석모△차별시정총괄 김대철△장애차별 서영호△신분차별 김은미△인종차별 조영호△학교교육 김철홍△공공교육 임송△시민교육 남규선■ 환경관리공단 ◇처장급 승진 △토양지하수사업처장 柳寬熙△영남지사장 宋在德◇처장급 전보 △감사실장 崔一培△전문위원 尹友植△환경기술인력센터장 吳勝鉉◇부장급 승진 △홍보지원실 팀장 金 鍾△기술진흥처 기술진단팀장 白聖基△산업지원처 지구환경〃 崔景植△대기관제처 관제관리〃 金昌旭△환경기술인력센터 〃 金暢會△자원관리사업처 공사관리〃 朴榮浩△BTL사업처 공무지원〃 梁弘奎△상하수도시설1처 공무지원〃 吳世哲△상하수도시설2처 공무지원〃 崔注行△관거시설처 공사관리팀장 崔益焄△호남지사 사업지원〃 文均植■ 대한생명 (지점장) △광명 金容東△강남 李信九△강서 池大贊△안산 柳浩根△평택 溫運漢△남수원 金潤植△인천 李慶根△구미 鄭錦得△수성 崔富燾△대구 林英薰■ 한국생산성본부 ◇승진 △정보화사업본부 본부장 姜其英△LEAN컨설팅사업부장 朴鐘敏△정보화〃 李奎鉉△자격〃 崔相錄△국제협력팀장 姜樹煥△부산경남지부장 車成鎬◇전보△브랜드경영센터장 李東九△호남지부장 尹炳甲■ 푸르덴셜투자증권 (부사장) △리테일사업본부장 許義道■ 한양증권 ◇임원 선임 △이사보 朴桓守■ 조흥은행 △홍보실장 趙重達△준법감시〃 朴基洙■ 상호저축은행중앙회 ◇부서장급 승진 △연수부장 한대호◇차장급 승진△전산본부 계정업무팀장 권한준◇과장급 승진△전산본부 계정업무팀 선임조사역 전회준△금융부 선임조사역 윤복희■ ㈜코스콤 (부장) △기술연구소 辛星煥(차장)△퇴직연금TF팀 金學九△BCP팀 金光烈△총무팀 宋世根■ 헤럴드미디어 (코리아헤럴드) △KH편집국 편집국장 류근하■ 이데일리 (편집국) △보도제작부장(부국장급) 尹斗暎■ 일간스포츠 △경영담당 부사장 권태정■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별정직 1급 신규임용 △일산직업능력개발센터 원장 양수석■ 서울대 △시설관리국 관리과장 姜求道△〃 기술과장 吳錫秀■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崔壽永△북한인권연구센터 〃 林順姬△협동연구 총괄팀장 黃炳悳△통일문제연구협의회 사무국장 孫基雄■ 두산중공업 ◇승진△전무 金河芳 崔鍾日 宋末鎬△상무 朴正容 尹錫源 崔亨熙 姜泰龍 白英振 朴昌秀 鄭萬哲 李常萬 朴在甲 趙寅衡 秋信哲 申容駿 李季夏 ■ ㈜두산 ◇승진△상무 徐一亨 許官萬■ 보령그룹 ◇승진 △이사대우 이문선 차혜리△이사대우 김영인△이사대우 김성수■ 빙그레 △부사장 이건영△상무 박영준 김태영△상무보 권수득 민형식■ 종근당 △전무 기영덕△수석상무 신희종△상무 김창규 안순길 조진성△이사 김주환 김준겸△이사보 이성로 정광희 김춘한 최국환 이성숙 이홍우■ 한국산업기술평가원 △전략기획실장 朴東奎■ TBWA코리아 ◇상무 승진 △제작2팀장 제작전문임원 曺益銘△BMC본부장 朴俊衡△재무지원실장 安智煥■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1급 승진 △경영혁신실장 朴求秉◇2급 전보 △건축실장(직무대리) 金承眞■ 근로복지공단 ◇전보(본부장) △산재심사실장 吳柄敎△경인지역본부장 洪天基△광주지역〃 金鍾允△대전지역〃 高亮培■ 한국소비자보호원 ◇부서장급 △소비자교육국장 오명문△기획관리실장 최용진△정책연구〃 강성진△경영혁신〃 이병주△홍보〃 허정택△감사〃 전효중△소비자정보센터소장 박인용◇팀장급△인사총무 이성식△대외지원 오흥욱△정책개발〃 백병성△교육안전〃 김성천△사이버연구〃 엄기섭△정보통신〃 최은실△자동차〃 신용묵△섬유식품〃 이창옥△일반서비스〃 최영호△교육기획〃 임순욱■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 ◇승진 △광주·전남도회 사무처장 신수의△위탁업무실 부장 안성균△서울시회 차장 이유형△광주·전남도회 차장 홍광희■ 하나로텔레콤 ◇부사장 △사업총괄수석 도미니크A. 고메즈△경영지원총괄 제니스리△유통본부장 崔勝億△기술본부장 金鎭河◇전무△대외협력·경영전략본부장 朴鐘勳△영업본부장 李基丞△기업영업본부장 申奎湜◇상무△강남지사장 李相洙△부산지사장 李奭浩△충청지사장 崔明憲△호남지사장 吳相煥△커뮤니케이션실장 全祥鎭◇상무보△경영관리실장 李仁揆△사업총괄지원실장 蔡忠植△경북지사장 南啓仁△BizHR실장 李鍾暹◇실장△GR실장 李相憲△법인영업 朴甲在△기업사업 餞重仁△인터넷데이터센터장 朴英根◇팀장△회계 金炳實△자금 崔鳳吉△인력개발 曺明根△정책협력 沈官植△강북지사 영업 尹明洙△수도권남지사 기술2 崔昌植△경북지사 기술2 裵祥均△호남지사 기술2 韓昌熙△전략유통 趙聖賢△리텐션 趙聖賢△국제전화TFT 尹敏碩△마케팅전략 金在鏞△그룹영업 金昌孝△금융영업 柳昌鉉△신규영업 盧成九△기업영업3 朴海濬△기업영업관리 金龍燮△별정영업 魏聖旭△기간공공영업 盧承三△기업서비스지원 高永虎■ 대한축구협회 ◇신임 △사업국장 우승련 ◇승진△부장 김진항 송기룡△부장대행 지윤락 이상락 장연환 이원재 이해두■ 국립중앙박물관 △역사부장 고경희△전주박물관장 신광섭△대구박물관장 김정완△김해박물관장 임학종△진주박물관장 권상열■ 현대해상 ◇승진 (상무보)△정보시스템담당 尹龍春(부장)△경남지역본부장 金載益◇전보△CI0 李鍾赫△융자담당 朴完基△경남지역본부장 金甲洙△경인지역〃 金興東△부산지역〃 李동周△손해사정담당 辛南祚△정보시스템부장 金成甫△강원지점장 姜用求△청주〃 金勝球■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전략개발단장 겸 기획조정본부장 직무대리 李長載△전략개발단 지식확산센터장 朴世寅△조정평가단장 李相燁△경영지원부장 黃明求■ 내일신문 △편집국장 申明湜 △편집위원 겸 정치팀장 南鳳佑■ 국민일보 ◇승진 △광고국장직대 변재운 ◇전보 △편집국 경제부장 정진영
  • 儒林(51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2)

    儒林(510)-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2)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2) 검은 비늘에 금빛목걸이를 목에 두른 용이 동해바다로부터 불쑥 날아와 방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신사임당은 이로 인해 율곡의 아명을 ‘현룡(見龍)’이라 하였었다.‘이현룡’이 ‘이이’로 이름이 바뀐 것은 율곡의 나이 11살 때. 그 무렵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중병에 걸려 목숨이 촌각을 다투고 있었는데, 율곡은 조상을 모신 사당에 들어가 아버지대신 자신이 죽도록 해달라고 비는 한편 자신의 팔뚝을 찔러 거기서 나오는 피를 신음하는 아버지 입 속에 흘려 넣었던 것이다. 간신히 기운을 되찾은 이원수는 그 무렵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백발노인을 만난다. 그 노인은 이원수를 향해 ‘당신의 아이는 분명히 이 나라의 큰 유학자가 될 것이요. 그러니 이(珥)라고 바꾸시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이원수가 ‘이 아이는 용을 보고 낳은 아이입니다. 그래서 현룡이라 했는데 이름을 바꾸라니요.’하고 묻자 백발노인은 이렇게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珥)란 귀걸이를 뜻하는데 매우 귀한 것을 말한다오. 그러므로 꼭 이로 바꿔야 하오.” 이로 인해 율곡의 이름은 이현룡에서 이이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율곡은 새벽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꿈속에 나타난 백발노인은 어쩌면 노자의 현신이 아니었을까.” 공자가 예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수만리의 여행을 떠나 주나라로 노자를 찾아갔듯이 이번에는 노자의 현신인 내가 학문의 길을 밝히기 위해서 해동공자인 퇴계선생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인류가 낳은 대성인이자 대사상가였던 공자와 노자의 만남이 세기적인 대사건이라면 철인이자 우리나라가 낳은 대사상가인 퇴계와 율곡의 만남 역시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대사건인 것이다. 비록 2박3일의 짧은 만남이었으나 율곡은 퇴계로부터 받은 지대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을 정도였다. “…내가 학문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사나운 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여 가시밭길의 거친 들에 있다가 방향을 고쳐서 옛길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은 실로 퇴계선생의 계발(啓發)에 힘입은 것이다.” 눈을 뜨는 데는 영겁의 세월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보는 것은 찰나에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율곡이 퇴계를 만난 것이 평생 동안에 있어 2박3일의 짧은 찰나였지만 그 한순간에 자신의 고백처럼 ‘가시밭길의 거친 들에서 방향을 고쳐서 옛길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율곡을 육신적으로 낳은 사람은 그의 아버지인 이원수라 할지라도 율곡을 정신적으로 거듭나게 한 사람은 참스승인 이퇴계,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율곡은 서둘러 안동을 향해 출발한다. 그 길은 율곡에게 있어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는 최상의 선택이었으며, 사나운 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방황하던 질풍노도의 계절에서 발견한 유일의 구명대(救命帶)이자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등대불이었던 것이다.
  • 儒林(50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1)

    儒林(50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1)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1) 일어나 앉은 율곡의 머릿속으로 문득 노자를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던 공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하의 성인 공자도 예에 대해서 묻기 위해 노자를 만나러 그 먼 주나라까지 여행을 떠나지 않았던가. 사마천은 사기에서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남궁경숙과 함께 주나라로 간 공자는 노자를 만나 예에 대해서 물었다.” 일찍이 ‘열 집이 있는 고을이라면 반드시 충성과 신의에 있어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 배우기에 있어서는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자신을 평가하였던 공자. 그러므로 지성이었던 공자도 예에 대해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만리의 여정을 거쳐 주나라의 낙읍으로 간다. 공자는 마침내 노자를 만나게 되자 마차에서 내려 노나라로부터 가져온 기러기 두 마리를 선물로 바쳐 올리고는 ‘예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고 사마천이 기록하였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쓴 ‘자경문’에서 ‘성인(공자)을 본보기로 삼아서 조금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뜻을 세웠던 율곡으로서는 예에 대해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만리의 여정을 불사한 공자를 본받는 것도 지극히 마땅한 일인 것이다. 더구나 퇴계는 해동공자(海東孔子)로 불리던 당대 최고의 철인(哲人). 나 역시 공자의 말처럼 ‘배우기에 있어서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호학지인(好學之人)인 것이다. 물론 공자는 노자로부터 냉대를 받는다. 예를 묻는 공자에게 노자는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를테면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는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제발 그대도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 잘난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란 말일세.” 이처럼 노자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공자. 그러나 공자는 노자로부터 정말 아무런 배움도 얻지 못하였던 것일까. 아니다. 율곡은 머리를 흔들며 생각하였다. 날이 벌써 밝아 어둑새벽이 되었는지 먼 인가로부터 홰를 치며 울어대는 닭의 울음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공자는 노자로부터 수욕(受辱)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이로 인해 자신의 학문을 정립할 수 있었으니,‘공자가 주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돌아오자 제자들이 점차로 많아지기 시작하였다.’는 사기의 기록이 그 증거인 것이다. 더구나. 율곡은 빙그레 웃으며 생각하였다. 나의 이름은 이이(李珥). 사마천은 노자의 신분을 ‘노자의 성은 이(李)씨고, 이름은 이(耳)다’라고 밝히고 있지 않은가. 율곡의 이름은 ‘귀걸이(珥)’를 뜻하고 노자의 이름은 ‘귀(耳)’를 뜻해 의미는 서로 다르더라도 음은 같아 두 사람은 시공을 초월한 동명이인이 아닐 것인가.
  • 되돌아 본 ‘서울in’ 1년

    되돌아 본 ‘서울in’ 1년

    서울인이 또 한해를 접습니다. 비바람이 있어야 순풍의 소중함을 아는 법입니다. 우리네 세상살이처럼 기쁜 소식과 우울한 소식들이 서울인에도 함께 했습니다. 아쉬운 점들도 있지요. 잊지 못할 황당한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면 사정 탓에 기사로 작성하는 것은 무리였지요. 시민들과 부대끼며 서울인을 만든 기자들이 ‘못다한 이야기’들을 한 자리에서 풀어냈습니다. 김기용 한해 동안 서울인을 만들면서 느낀 점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 격이다.’라는 것입니다. 신문지상에 얼굴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던 평범한 시민들이 지면에 등장한 뒤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인간시대’에 실린 금천구립합창단 어머니들은 그전에는 큰 규모의 합창단을 부러워했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예술사진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사진과 자신들의 이야기가 넓은 지면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금천구립합창단은 구 안에서는 유명하지만 소규모의 구립이라는 이유로 기성 언론의 외면을 받아왔습니다. 5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주축이 된 마포구 자전거연합회 기사도 많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할머니’축에 든 분들이 거침없이 페달을 밟는 모습은 무기력에 빠져 있던 비슷한 연배의 어머니들에게 많은 자극을 준 듯합니다. 기사가 나간 뒤 회원가입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송한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와 수도권에 사는 국민들의 삶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실 대한민국 절반의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작은 이야기’라는 이유로 알려지지 않던 우리 이웃들의 사연은 훌륭한 기삿거리가 됩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서울인은 서울이야기를 많이 싣는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격찬하기도 했습니다. 김성곤 의정뉴스가 서울인을 통해 꾸준히 소개되는 것도 하나의 성과입니다.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하반기 들어서는 지역정가도 후끈 달아 올랐습니다. 이에 따라 당연히 의정 뉴스에 대한 수요도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특히 자치구의회나 자치단체별로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돋보였고, 이들 내용은 서울인을 통해 비교적 상세히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의회 홈페이지 개편을 통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된 것도 서울인을 통해 지역 의회와 주민들의 간극이 좁아진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금석 올해 서울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청계천 복원일 것입니다. 서울인을 만드는 서울시청 출입 기자들 역시 올 초부터 청계천을 제집 드나들 듯이 뒤집고 다녔지요. 6월 시험통수를 앞두고 청계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4월이었습니다. 김유영 기자와 청계천 전 구간을 직접 걸으며 취재했습니다.5.8㎞ 구간이 그렇게 길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것도 공사장 먼지를 다 마셔가면서 걷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반나절 남짓 취재를 한 뒤 기자실로 돌아왔을 땐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목구멍에 낀 먼지를 벗겨내느라고 3∼4일은 저녁 때마다 소주에 삼겹살을 먹어야 했죠. 서재희 서울인에 기사가 아닌 ‘얼굴’로 등장한 게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청계천 특집 때였습니다.‘청계천의 연인들’이 주제였지요. 그러나 하필 마감일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겁니다. 당연히 지나가는 연인은 없고, 편집기자는 독촉하고. 독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함께 기사를 쓴 기자와 연인의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얼굴이 찍히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편집기자에게 최대한 작게 내달라는 특별한 ‘부탁’도 잊지 않았죠. 그러나 신문이 나오자 어안이 벙벙해지더군요. 사진이 한 페이지를 꽉 채워서 나간 겁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한 책자 ‘청계천 풍경’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새로 사귄 애인이냐.’‘이제 시집은 다 갔다.’는 등 기사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당황스러웠지만 모두 지면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을 하니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계천을 취재하기 위해 열번 넘게 전 구간을 오가며 빠진 살도 하나의 소득입니다. 김유영 ‘거리 탐방 서울연가’는 말 그대로 온갖 사람들을 만나며 서울의 골목길을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황당한 일도 많았습니다. 지난 10월에 서울 도심의 한 유명한 거리를 소개하는 기사가 나갔습니다.3주 뒤 카페 여주인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기사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겁니다. 그러나 카페 여주인의 말처럼 ‘팩트’가 틀렸다면 카페의 이름도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반문했더니 말을 흐리는 겁니다. 너무 이상해서 ‘팩트’를 만든 작가에게 확인 전화를 했습니다. 머뭇거리다 “여주인이 옛 여자친구인데 헤어진 뒤 내가 잘 되는 꼴을 못 봐서 언론사마다 전화를 하고 있다.”고 털어놓는 겁니다. 어이 없는 일이었죠. 이두걸 신촌을 취재할 때 일입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이대로 넘어가는 길 사이의 음식점과 카페를 다니는데 30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가 뒤를 쫓아오는 겁니다. 차림새도 멀쩡했지요. 그래서 공손히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신경쓰지마!”라는 위협적인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당연히 “당신 뭐야.”라고 받아쳤지요. 잠깐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이 나선 그쪽이 ‘말발’이 딸릴 수밖에요. 결국에는 “이런 가게들이 버젓이 영업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라고 말꼬리를 내리면서 슬그머니 가는 겁니다. ‘신촌의 별볼일 없는 어깨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지요. 고금석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도 당연히 서울인의 취재 대상입니다. 최근에 서울의 달동네를 취재할 때입니다.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상계동 노원마을을 찾았습니다.‘사랑의 김치 나누기’ 행사에서 만든 김치를 함께 배달했지요. 보일러 땔 기름이 없어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담요를 둘둘 감은 채 누워있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특히 할머니가 사회복지사들에게 “너희들이 추우면 안되는데….”라면서 연신 손을 잡고, 저를 보면서 “도련님, 김치 갖다줘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잊지 못하시더군요. 눈물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 동네는 철거예정 지역이라 도시가스를 시공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분들이 오히려 난방비로 10만원 이상 쓰는 모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인이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입니다. 정은주 서울인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도 취재거리를 만납니다. 어느날 지친 몸으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버스 운전사가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군요.‘절 아세요.’라는 눈빛을 보냈죠.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까지 두른 아저씨는 그저 미소만 보이셨어요. 뒤에 앉아 지켜봤더니 아저씨가 올라오는 모든 승객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일부 승객들은 낯익은 지 “네, 별일 없으시죠?”라고 되묻곤 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싶어서 버스 번호와 회사 연락처를 적어서 내렸지요.10월7일자 ‘대중교통 환골탈태’는 그렇게 작성됐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취재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왜 나를 취재하느냐.”라고 묻는 거예요.“나는 신문에 나올 만큼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거죠. 취재하는 것보다, 왜 기삿거리가 되는지 설명하는 게 더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김기용 서울인의 커버 기사는 특히 각 자치구들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결과적으로 주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다룬 자치구의 인터넷 방송 실태는 아직 인터넷 방송을 개국하지 못한 자치구들에 좋은 자극을 줬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인터넷 방송을 운영해야 하는지와 필요한 예산 규모 등에 대한 기초 자료 제공, 인터넷 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환기 등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이동구 유통면과 의회면을 주로 담당해왔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한결 여유로왔던 느낌입니다. 예정된 기사나 지면은 어떤 일이 있어도 책임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맡은 바를 100% 이상 해준 덕분입니다.‘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용어가 새삼 서울인 제작에 맞아떨어진 한해였습니다. 서재희 내년에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은 듯합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성공시대’ 코너가 사라져 아쉽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물론 ‘인간시대’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신선함은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네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자는 서울인의 본래 취지를 되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송한수 만만찮은 작업이지만 어렵게 취재한 결과물들인데 꼼꼼하게 다시 살펴볼 시간이 없어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금석 시민기자제가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고 1년여만에 사실상 문을 닫은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일반 시민들과 기존 언론과의 괴리와 격차를 결국 좁히지 못한 듯합니다. 주민과 쌍방향 의사소통을 더욱 활발히 할 수 있는 서울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시도해야 할 제도라고 봅니다. ●‘되돌아본 서울in´ 방담 참여자 김성곤차장·이동구·송한수·이두걸·김유영·정은주·김기용·고금석·서재희(이상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 “아침을 먹읍시다” 현대인의 건강 챙기기 “정말 당첨됐나요?” 서울신문과 CJ㈜가 펼치는 ‘아침을 먹자’ 건강캠페인을 진행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당첨자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를 확인할 때면 대부분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집니다. 누군가에게 깜짝 선물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매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침도시락을 배달하는 이벤트는 CJ 홍보팀 직원과 점심을 먹다가 갑작스레 기획됐습니다.CJ가 두부시장에 막 진입해서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때였지요. 오피스타운 주변에 아침먹을 곳을 소개하는 연재기사를 준비한다고 했더니, 아침도시락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함께 진행하자고 제안하더군요. 이후 햄스빌, 신선CM, 햇반 등이 추가로 참여했습니다. 아침을 먹자 게시판을 오픈하자마자 도시락을 보내달라는 사연이 쏟아졌습니다. 자신보단 남편과 가족을, 이웃을 걱정하며 아침도시락을 신청했습니다.‘임신으로 몸이 무거워져 아침을 차리지 못합니다.’‘아토피 피부염으로 밤새 뒤척이는 아이를 돌보다 남편을 그냥 보냅니다.’‘출퇴근 시간도 길고, 혼자 자취해 아침밥을 건너뛰기 일쑤예요.’ 객지에서 생활하는 딸, 아이들을 대신 돌보는 시어머니, 홀로 사는 친정어머니, 늦깎이 대학생인 올케 등 바쁘게 살아가는 가족이 아침밥을 챙겨먹기를 기원했습니다. 고맙고 안타까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도 전해졌습니다. 아이를 자식처럼 돌보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위해, 고교입시를 준비하는 딸 친구를 위해, 나라를 지키는 총각 군인을 위해, 정신지체아동과 노숙자를 위해 캠페인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연이 밀려드니 당첨자를 선정하는 일이 더욱 어려웠졌습니다. 사연을 하나하나 읽고, 여러 명이 의논하며 매주 당첨자를 뽑았지만, 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은 계속됐습니다. 아침도시락이 배달되는 날, 현장을 찾아가 취재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사진기자가 요청하면 프로처럼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어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경기도 구리시 한 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선생님이 준비한 깜짝 선물로 고3학생들은 어린아이 마냥 기뻐했습니다. 햄스빌 베이컨 도시락이라 더욱 인기가 많았죠. 그러나 도시락 수가 정해있다 보니 저와 사진기자는 남들 먹는 모습만 지켜보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배가 얼마나 고프던지….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깔깔깔]

    ●수고비 미국의 어느 광산촌에서 광산주가 자기 금고의 암호를 잊어버려 직원들에게 줄 현금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는 근처에 있는 교도소 죄수 가운데 금고 전문 털이범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얼마후 그 죄수가 교도관과 함께 나타났다. 죄수는 금고의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리며 귀를 대고 소리를 듣더니 금고 문을 거뜬히 열었다. 광산주는 고마워 어쩔 줄을 몰라하며 말했다. “정말 고맙소, 수고비로 얼마를 지불하면 되겠소?” 그러자 그 죄수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지난번에 열었을 때는 15만달러를 손에 쥐었습니다만….”●난센스 퀴즈 문 : ‘기러기’는 거꾸로 해도 ‘ 기러기’ 다. 그럼 ‘쓰레기통’을 거꾸로 하면? 답 :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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