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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록 게이트] 건교부 규칙 개정 40일만에 서울시 시설 변경 결정

    [김재록 게이트] 건교부 규칙 개정 40일만에 서울시 시설 변경 결정

    유통 관련 연구시설만 들어설 수 있는 땅에 현대기아차의 R&D(연구개발)센터 증축허가가 서울 양재동에 난 것을 두고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요체는 업무용 공간이 필요한 현대기아차가 자동차 R&D센터 건립을 빌미로 사옥 건축허가를 받아냈다는 것. 27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현대기아차가 들어서 있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은 상업지역이기는 하지만 유통시설지구로 묶여 있다. 증축을 하더라도 유통시설이나 유통 관련 연구시설만 들어설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현대기아차 R&D센터는 명목이 자동차 관련 연구시설인데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채 유통 관련 R&D센터로 건축허가가 났다. 특히 증축 허가가 나기 6개월여 전에 유통시설지구에 연구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건설교통부의 규칙’이 개정된 데 이어 40여일만에 ‘서울시의 도시계획시설 변경 결정’이 이뤄지고, 이후 5개월 만에 증축 허가가 났다. 이 일련의 3단계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현대기아차의 전방위 로비 때문’이라는 의혹이 파다하다. 실제로 건교부는 지난 2004년 12월3일 유통업무시설 용지에 유통 관련 연구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도시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건교부의 규칙 개정에 이어 서울시는 2005년 1월15일 도시계획시설 변경을 해줬다. 유통시설지구에 자동차 관련 연구시설이 들어서고, 이 건물이 21층짜리 연면적 1만 9000여평의 큰 빌딩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도시계획위원회를 거치지 않았다. 이와 관련, 김호섭 서울시 시설계획과장은 “‘유통관련 연구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는 건교부의 규칙이 변경된 만큼 ‘경미한 변경’에 해당돼 변경허가를 내줬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어 같은 해 4월29일 증축 허가를 내줬다. 대부분의 건축허가는 구청 소관이지만, 높이 21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10만㎡(3만 300평)를 넘는 건축물의 경우 서울시가 건축허가를 내주기 때문이다. 건교부 도시정책과 양장헌 사무관은 “그 지역에는 유통 관련 연구시설이 들어가야 하는데, 자동차 관련 연구시설은 일반연구시설로서 유통업무와는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사옥은 현재 2만 5000여평 규모로 170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올 연말 증축이 끝나 1만 9500여평이 늘어나면 전체 면적은 4만 4500여평에 달하게 된다. 그동안 현대기아차는 양재동 사옥이 비좁아 증축하려 했지만, 수도권에서는 R&D시설 외에는 신·증축이 안된다는 수도권 과밀규제 원칙에 따라 증축을 못했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외국인 관광객 위해 언어·교통지원 절실

    종로와 청계천 일대가 서울관광특구로 지정돼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코스로 발돋움할 터전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27일 종로와 청계천 일대를 ‘종로·청계 관광특구’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서울 세종로 광화문빌딩에서 숭의동 네거리에 이르는 3.54㎞ 주변 16만 3000평이다. ‘종로·청계 관광특구’는 1997년 이태원, 명동·남대문(2000년), 동대문 패션타운(2002년)에 이어 서울에서 네 번째다. 상인들은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종로·청계 관광특구는 테마별로 8개 구역으로 나눠진다.▲광화문은 문화예술축제 ▲관철동은 젊음의 거리 ▲관수동은 관광기념품 ▲장사동은 전기·전자제품 ▲예지동은 귀금속 ▲종로 5가는 광장시장 ▲종로6가는 동대문시장 ▲창신동은 문구·신발을 주제로 하고 있다. 특구에는 한글과 외국어로 된 각종 안내 지도, 관광 팸플릿, 휴식공간 등 내·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각종 편의 시설이 설치된다. 종로구는 이미 관철동 삼일교 앞에 관광안내소를 신설했다. 또 청계천로에 간이화장실 2곳을 만들고, 재래시장 화장실 13곳을 전면 개·보수했다. 종로·청계 관광특구 발전협의회 장병학 회장은 “경복궁과 청계천, 인사동과 대학로를 잇는 종로가 관광·상업 중심지로 발돋움할 것”이라면서 “축제와 더불어 서울의 관광자원을 아우르는 관광코스도 개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이용익 관광환경팀장은 “관광특구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얻은 것만으로도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다른 특구처럼 축제 등을 개최하면 시가 해마다 1억원을 지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관광특구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대문, 명동 등 기존 특구 상인들은 “영업시간 제한이 풀리면서 관광특구라고 해도 이점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특색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에선 지역특성에 맞는 관광 기반시설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동대문운동장에서 옷가게를 하는 이모(49)씨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시간은 밤인데 관광안내소는 저녁에 문을 닫아버린다.”면서 “말이 통하지 않아 애태우는 외국인 관광객을 봐도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고질적인 교통체증도 개선점으로 꼽았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동대문운동장 일대를 ‘차없는 거리’로 지정하고, 횡단보도를 설치, 외국인이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교통체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명동 관광특구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나왔다. 김재훈 사무국장은 “특구 지역에 대한 면세, 감세 혜택 등 실질적 지원방안이 필요하다.”면서 “서울시가 준비하고 있는 지역육성 계획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家

    1981년 이후 30위권에 들었던 건설업체 가운데 대주주의 변동 없이 시공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업체는 풍림, 대림 등 8개뿐이다. 나머지 업체는 주인이 바뀌었거나 30위권 밖으로 밀려났거나 아예 공중분해된 경우도 있을 정도다. 국내 건설산업의 한 획을 긋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기업 보국 신념으로 창업 국내 건설업 20위권으로 성장한 풍림의 뿌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창업 초기부터 다른 기업과 달리 바깥에 기업을 알리기보다는 내실에 충실한 경영을 했기 때문이다. 풍림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대림산업과 뿌리를 같이한다. 대림산업의 창업주이자 사장이었던 이석구(작고) 선대 회장이 1960년 군별 공사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작은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2군 업체인 풍림산업(전신·전일기업·1954년 설립)을 인수, 오늘날 풍림으로 키웠다. 이석구 창업주는 1939년 20대 후반에 목재상인 ‘부림상회’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림산업과 풍림산업의 모태가 됐다. 이석구는 사업이 번창하면서 경기도 시흥(현재 군포 산본)의 지주이자 외삼촌(이규응)으로부터 사업 자금을 빌려쓰는 대신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둘째 아들(재준), 즉 외사촌 동생과 함께 사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부림은 이 때부터 두 사람의 노력으로 나날이 번창했고 해방 후 1947년 상호를 대림산업으로 바꾸면서 건설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 창업주의 기업 이념은 ‘기업보국(企業報國)’이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채 고통스러워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민족과 나라를 살리는 길은 사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기업의 성장을 통해 국가를 살리자는 기업가 정신이 투철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1962년 과로한 탓에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대림산업의 경영권을 내놓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결국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만다. 이후 대림산업 경영권은 함께 일하던 이재준 사장이 맡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무위·무심경영으로 풍림 육성 이석구 창업주의 기업정신은 맏아들 이필웅(64) 현 풍림산업 회장이 물려받았다. 이 회장은 63년 선대 회장이 경영하던 대림산업에 입사, 경리일을 배우면서 기업인이 된다. 군대를 다녀온 뒤 대림산업에 다시 입사, 영업부에 배치돼 경영수업을 착실히 쌓기 시작했다. 이 때의 경험이 훗날 풍림산업의 최고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풍림은 당시 경제개발 붐을 타고 각종 공사를 따내면서 커왔다. 해외공사를 활발히 펼치는 동시에 경영관리와 조직정비를 통해 기업을 현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초기 대림산업의 공사를 하청받는 형태에서 벗어나 어느새 중견건설사로 우뚝 성장했다. 풍림의 제2창업은 이필웅 회장이 대림산업 부사장을 역임한 것을 끝으로 1981년 7월 풍림이 대림으로부터 완전 분리, 독립경영을 하면서 시작됐다. 본래 선대 회장이 창업한 대림산업은 동업자인 이재준 사장에게, 창업주의 맏아들인 이 회장은 계열사로 있던 풍림을 맡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이 풍림산업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그를 중심으로 한 경영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경영 쇄신을 단행, 국내외 조직을 개편하고 관리 인원을 줄이는 한편 전문 하도급 업체를 육성하는 등 공사 전문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풍림에도 위기는 찾아왔다.2차 석유파동에 이은 경제불황, 이로 인한 건설수요 급감은 풍림의 수주 신장률을 꺾는 치명타를 입혔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져 낙찰률이 떨어졌고, 자금조달 능력 부족으로 민간 공사 및 자체 사업 진출은 더디기만 했다. 해외공사 역시 다른 건설사와 마찬가지로 일감 수주가 어렵고 적정 이윤 확보가 쉽지 않아 무턱대고 진출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1986년 경영 쇄신에 들어간다. 본사 유사 조직을 통폐합하고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경영의 효율성을 올리는 동시에 원가 절감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직접 관리인을 줄이는 대신 협력업체를 키워 공사 전문화를 유도했다. 동시에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등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풍림으로 성장하게 된다.86년 4월에는 강남 테헤란로의 명물 풍림산업 사옥을 준공한다. 풍림빌딩에는 최근까지 특허청이 입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허청 빌딩으로 더 유명했다. 최근에는 이 건물 주변으로 고층 빌딩이 빼곡히 들어서고 복잡해져 찾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테헤란로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풍림의 성장 동력에는 이 회장의 경영 마인드가 크게 작용했다. 그는 기업을 지혜와 자제심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 경영의 리더는 조직이 잘 운영되도록 작용하고, 최대한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철학을 지녔다. 바로 ‘무위(無爲)와 무심(無心)의 경영’이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도전과 성취 욕구가 강한 인재들이 몰려들었고 어려운 시기를 맞아 조직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힘이 됐다. 이 회장은 현재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 중이며, 동생 이필승(56) 풍림산업 사장과 지난해 승진한 장남 이윤형(35) 상무가 그를 돕고 있다. 이 사장은 83년 3월에 풍림산업 자금부에 입사해 이후 경리·자재·총무·기획실 등을 두루 거쳐 99년 1월 사장으로 취임한 전문 경영인이다. 현재 풍림은 향후 50년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새로운 선택의 시점에 서 있다. 우선 풍림은 철저한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통해 안정적 성장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우수 인재 확보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핵심 기술 확보 등에 매진하고 있다. 민간 건설 시장 위축, 최저가낙찰제 확대 등으로 공공시장 수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틈새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자체 보유 부동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개발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오히려 땅 소유 부담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높은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워 수익성 있는 민간 발주 아파트 공사를 적극 수주할 방침이다. 해외건설은 엑슨 모빌이 발주한 러시아 항만 접안시설 및 부대시설 공사와 쉘이 발주한 가스 파이프라인 가압공사 진출을 계기로 해외사업을 강화할 채비를 갖췄다. ●두꺼운 인맥, 단출한 혼맥 이 창업주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따랐다. 풍림을 거쳐간 이재순, 이면훈, 허필은 사장 등이 창업주와 함께 초창기 대림과 풍림을 키운 전문 경영인들이다. 술은 한 모금도 못했지만 술자리에는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건설업 특성상 술자리도 자주 참석해야 하던 시절이었지만 술 한 모금 못하면서 영업에는 귀재였다고 한다. 공사를 따내기 위해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 등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건설업의 과당 경쟁 풍토를 정비하고 건설업 발전을 도모하는 등 국내 건설산업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한 인물로 꼽힌다. 또 해야 할 일을 쌓아두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부림상회 시절 주문이 들어오면 이 창업주는 소달구지에 목재를 가득 싣고 직접 배달을 가기도 했다. 소달구지 직접 모는 사장으로 통할 정도로 소탈하고 일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그는 사람 다루기를 잘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사장이라고 할 정도로 앞에서 뛰었다. 형제가 많지만 가족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한정됐다. 풍림산업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으로는 이 사장과 장남 이 상무가 전부다. 부지런함은 가족들에게 그대로 물려줬다. 이 회장이나 이 사장이 현장을 자주 찾고 새로운 사업 구상과 투명경영 추구는 사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금도 매일 역삼동 사옥으로 아침 일찍 출근해 주요 업무를 직접 챙길 정도다. 이 사장 역시 아침 7시면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이 회장의 집안은 형제 자매가 10명인 대가족이지만 혼맥은 단출하다. 다른 기업과 달리 굳이 정계·재계 집안과 결혼을 고집하지 않았다. 대부분 집안 어른 소개로 평범한 집안과 혼인했다. 주변 사람들은 풍림의 단출한 혼맥을 놓고 한국 건설업계의 초석을 다지며 50년 이상 성장한 회사답지 않게 복잡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이 회장의 큰 누이 필선씨는 일반적인 가정의 자녀 임대철씨와 결혼했고, 바로 윗누이 역시 평범한 가정의 권철주씨와 혼인했다. 매부들이 서울 공대 출신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관련 기업에 근무했을 정도다. 셋째인 이 회장도 중매로 결혼했다. 이영자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이었다. 이 여사는 몇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달리했는데, 임직원들이 모두 아쉬워한다. 임원들을 직접 집으로 불러 떡국을 끓여줄 정도로 자상하고 가정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여사를 사별한 뒤 장현덕(47) 여사와 재혼했다. 이 회장은 자식들 결혼 역시 일상적인 가정의 자녀들과 맺어줬다. 큰딸 정민씨는 이동한씨와 혼인했다. 이동한씨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국내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 근무하던 중 반 중매 반 연애결혼했다. 국내 굴지의 회사 자녀이지만 결혼식은 조용하게 치렀다. 두 아들 역시 결혼 과정이 평범하고 소리나지 않는다. 큰 아들인 윤형(35)씨는 한양대를 나와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MBA 과정을 밟던 중 알게 된 오유진씨와 연애결혼 했다. 유진씨의 부친은 고려대 교수이다. 작은아들 주형(34)씨는 지난 2001년 말 역시 미국에서 유학 중 만나 사귄 최수현씨와 결혼했는데 사돈 집안은 평범한 가정이다. 이런 풍토는 이 회장의 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필승 사장은 대학때 사귄 평범한 집안의 딸 강환량씨와 연애결혼에 골인, 가정을 꾸렸다. 나머지 동생들 역시 본인이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등 보기 드물게 단출한 혼맥을 유지하고 있다. chani@seoul.co.kr ■ 젊은 아이디어의 산실 ‘영 보드’ 눈길 풍림산업은 젊은 기업으로 통한다. 군더더기가 없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조직을 재정비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변신했기에 가능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획기능을 강화, 각 부문별 경영전략 모색을 통한 신속한 의사소통과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기획담당 제도와 ‘Young Board(청년경영자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2001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기획담당 회의는 각 사업부(본부)의 부·차장급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평소 현업을 수행하며 교육을 받거나 정보를 수집하고, 격월 1회 정도 전체 임원회의에서 부문별 시장동향, 부문별 전략 등을 브리핑한다. 이들이 브리핑한 내용은 임원들이 즉시 검토,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풍림의 청년경영자회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데 대리, 과장급 10여명 정도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이들은 평소 현업을 수행하며 업무 관련 아이디어나 회사경영에 건의할 사항을 준비해 매달 1회 자체회의를 연다. 회의 결과는 사장과 면담을 통해 직접 건의하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년경영자들은 차세대 경영자가 되기 위한 경영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또 고아원, 장애인시설 등 방문 등 회사의 자원봉사활동을 주도적으로 펴나가고 있다. 이필승 사장은 “기획담당 제도와 영보드회의 활성화로 열린 경영을 추구하고 의사결정이 빠른 경영 풍토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풍림산업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고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지난 50여년 오직 한 길, 건설에만 매달려온 풍림산업. 작은 묘목이 모여 울창한 수풀을 이루듯 풍림은 건설업계 20위, 매출액 1조원대의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 이름은 목재회사를 시작으로 한 부림상회(富林商會)와 연결된다. 인천 부평역 앞에서 작은 가게를 얻어 문을 연 부림상회는 이후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인 풍림산업과 대림산업으로 발전,‘풍요로운 울창한 숲(豊林)’을 이루고 있다. 초기 기업가들이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던 것과 달리 풍림은 오직 건설 전문기업으로 한 우물만 파고도 그룹 건설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곁눈질하지 않고 건설만 고집하다 보니 회사가 대그룹으로는 성장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몸집 부풀리기에 치중한 기업들이 힘없이 쓰러진 것과 비교해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 ‘엄격한 경영수업’ 풍림의 家風 풍림가는 엄격한 경영수업으로 유명하다. 장자 중심으로 경영권을 물려주고, 여자 형제의 경영참여를 허락하지 않는 것도 다른 기업과 다르다. 몸소 뛰고 정도를 고집하는 것이 가풍(家風)이자 사풍(社風)이다. 창업주 본인이 주문받은 물건을 직접 배달하고 현장을 확인한 뒤 작업을 지시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대림산업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도 일감을 따내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국내외 건설현장을 직접 밟았다. 창업주 자신이 검소하고 한눈 팔지 않았을 뿐 아니라 2세,3세 역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회장 역시 대림산업에 입사, 경리 업무부터 배웠다. 이후 각 분야에 근무하면서 경영인의 자질을 키웠다. 특히 풍림산업을 이끌면서 국내외 현장을 누벼 국내 대형 업체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런 경영수업은 3세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장남인 이 상무가 보다 체계화된 기업에서 일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바로 풍림에 입사시키지 않고 삼성전자와 대림산업에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도록 했다. 호랑이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바위 밑으로 떨어뜨리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또 선진 경영기법을 배우도록 미국 시러큐스대로 유학을 보내 MBA 과정을 밟도록 했다. 이후 풍림에 입사한 뒤에도 다양한 업무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개발사업부에서 경영수업을 받던 이 상무는 지난해 승진하면서 조달본부 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는 구매·계약 업무를 총괄하면서 건설업의 모든 과정을 두루두루 꿰뚫어보고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다. 경영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고, 최고경영자 역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깨달으라는 뜻이다. 풍림 관계자는 “지난해 이뤄진 이 상무의 승진도 경영 수업을 착실히 쌓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필승 사장도 조카인 이 상무의 경영수업에 대해 “엄격하게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아야 기업을 이끌 수 있고, 탈이 없는 것”이라며 “(엄격한 경영수업이) 풍림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chani@seoul.co.kr
  • 론스타 ‘먹튀’전 시간벌기

    국세청이 스타타워 빌딩 매각차익에 대해 부과한 추징금 1400억원에 대해 론스타가 불복, 심판청구를 낸 것은 한국 철수에 앞서 시간을 벌려는 ‘먹튀전략’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국세청이 심판청구에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에 따른 시세차익과 함께 추징금을 완납하지 않고 한국을 빠져나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24일 국세심판원에 따르면 국세기본법은 심판청구가 제기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판결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조사관 1명당 일주일에 2.5건의 청구를 담당하는 심판원의 인력 사정을 감안하면 청구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오는 데에는 5개월 이상이 걸린다. 론스타가 지난 14일 심판청구를 냈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이르면 6월14일, 늦으면 8월14일쯤 나온다. 외환은행 매각은 5월 말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국세청의 추징금 부과가 적법하다는 판정이 나오더라도 그 시점은 일단 론스타가 한국을 떠난 뒤일 가능성이 크다. 심판청구가 제기되면 국세청의 실질적인 과세 조치는 심판원의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유예된다. 다만 국세징수법에 따라 국세청은 조세확보 차원에서 납세자의 재산을 압류할 수 있다. 국세징수법은 ‘세금 체납자가 독촉장이나 납부최고서를 받고도 완납하지 않으면’ 재산을 압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압류 대상에는 최저생계비만큼의 봉급과 제사 등에 필요한 재산이 제외된다. 그래도 압류재산을 처분하려면 추징금이 적법하다는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이같은 재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론스타에 대한 과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추징금 부과 대상인 론스타의 ‘펀드3’은 스타타워를 판 뒤 이미 청산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조세조정법이 통과돼 외환은행 매각차익에 원천징수할 수 있고 환급 여부는 나중에 가려야 한다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스타타워와 외환은행 매각의 주체가 동일인이냐는 것이다. 론스타는 펀드의 투자자가 다르고 투자 대상도 부동산과 주식인 만큼 동일인일 수 없다는 근거에서 심판청구를 냈다. 하지만 정부와 세무당국은 스타타워와 외환은행의 매각 주체가 다르더라도 최소한 론스타코리아에 과세할 수 있는 방안까지 검토하기 시작했다.한편 역삼세무서에 접수된 심판청구는 서울지방국세청에 이관돼 국세청의 입장과 청구인의 의견을 첨부, 국세심판원에 이첩된다. 의견첨부에만 한달 정도가 걸린다.심판원은 이첩된 사건을 상임 및 비상임 심판관 2명씩 4명으로 구성된 심판부에 무작위로 배정하고 여기서도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16명으로 구성된 합동심판부에서 다수결로 확정한다. 추징금이 적법하다고 판단되면 론스타는 정기금리를 웃도는 가산금까지 내야 한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론스타, 차익 4조5천억 세금은 0원

    론스타, 차익 4조5천억 세금은 0원

    국민은행이 23일 미국계 사모펀드(PEF) 론스타가 보유하거나 행사할 수 있는 외환은행 지분 64.62%를 주당 1만 5400원(총 6조 4179억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우선협상대상자에 공식 선정됐다.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과 론스타의 앨리스 쇼트 부회장은 이날 여의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식 인수의향서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국민은행은 다음주부터 4주간 정밀실사를 한 뒤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다. 본계약 체결 후 45일 내에 인수대금을 지급하기로 해, 감독 당국의 승인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5월 말쯤 모든 매각작업이 끝날 전망이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에 투자한 지 3년도 안돼 환차익을 포함해 최대 4조 5000억원의 차익을 얻게 됐다. 투자액 대비 3배 이상의 ‘대박’을 터뜨린 론스타의 쇼트 부회장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규 미비와 미국과의 조세조약상 뚜렷한 과세 근거가 없어 론스타는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고 철수할 가능성이 크다. 론스타는 3년 전 외환은행 지분 50.53%를 주당 4245원에 매입, 총매입원가는 1조 3832억원이었다. 이를 주당 1만 5400원에 넘기면 5조 181억원이 된다. 독자적으로 3조 6349억원의 차익을 올리게 된다. 여기에다 코메르츠방크와 수출입은행 지분 절반 정도를 시가보다 싸게 사서 정상가로 매각할 수 있는 콜옵션(매수청구권)을 활용하면 6199억원을 추가로 얻는다. 그동안 원·달러 환율이 210원가량 급락한 데 따른 환차익 2460억원도 추가된다. 주당 1만 5400원은 시장의 예상치보다 높은 금액이어서 ‘국부유출’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외환은행 주가는 1만 3000원 안팎에서 형성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1만 4000원대에서 가격이 정해질 것으로 예상해 왔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김기홍 수석부행장은 “주당 가격을 산정하는 기준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을 1.76배로 적용했다.”면서 “과거 한미은행 매각시의 1.95배, 제일은행의 1.89배에 비해 낮아 결코 비싸게 샀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용산 주상복합타운 변신

    남산 기슭 힐튼호텔 옆에 이 호텔과 비슷한 높이의 호텔과 오피스빌딩 등 2개 고층빌딩이 들어선다. 또 용산구 국제빌딩 주변에 20∼40층 규모의 고층빌딩들이 신축된다. 서울시는 22일 제6차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고 이같이 의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위원회는 중구 남대문로 5가 653 일대 양동구역 제4-2·7지구 6150평에 대한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안을 수정 가결했다. 종전에는 용적률 440% 이하, 높이 79m 이하로 호텔만 지을 수 있었지만 이번 결정으로 용적률 540% 이하, 높이 86m 이하의 숙박·업무시설을 건설할 수 있게 됐다. 이 땅은 옛 필코리아 건물이 있던 자리로 힐튼호텔 소유다. 힐튼호텔은 이곳에 20층짜리 장기투숙자용 비즈니스호텔과 18층짜리 오피스빌딩 등을 건립할 계획이다. 하지만 남산 기슭에 20층 안팎의 빌딩 2개 동을 건설할 경우 힐튼호텔(23층)과 함께 남산의 경관을 가릴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위원회는 또 용산구 한강로3가 63일대 국제빌딩 주변 특별계획구역 도시환경정비(도심 재개발)구역 지정안을 수정 가결했다. 이에 따라 이 일대 9만 1278평에는 향후 재개발시 40층 3개 동,33층·26층·23층·21층 1개 동 등 모두 7개 동의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27일 광고윤리대상 시상식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회장 조병량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장)는 27일 오후 2시 한국관광공사빌딩 상영관에서 ‘제3회 대한민국광고윤리대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수상작은 다음과 같다.▲대상=삼성생명 ‘인생은 길기에 캠페인(TV)’▲TV부문 우수상=KT ‘원더풀코리아 캠페인’▲라디오부문 우수상=교보생명 ‘마음에 힘이 되는 말 한마디 캠페인’▲인쇄부문 우수상=SK텔레콤 ‘새로운 대한민국 이야기’.
  • [Zoom in서울] 시민들 “새청사대신 공원으로”

    [Zoom in서울] 시민들 “새청사대신 공원으로”

    ‘헐고 나니 딴 생각이 드네요.’ 서울 태평로와 무교동이 훤해졌다. 지난 17일 옛 서울시청사 철거작업이 마무리돼 뒷마당이 빈터로 변해 시야가 탁 트인 것이다. 우중충하던 뒷골목이 살아나고, 서울광장 쪽에서 무교동, 태평로, 광화문 쪽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아예 새청사를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성급한 기대도 나온다.“건물 하나 없어졌는데 이렇게 달라지네요. 시청사 다른 곳에 짓고, 이곳을 공원으로 놔두면 좋겠어요.” 시청 뒤편에 사무실이 있는 H사 윤모(41) 부장의 얘기다.5층짜리 건물 하나 철거로 주변이 밝아지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실제 주변 빌딩들의 조망이 좋아지고, 뒷골목에는 빛이 스며들었다. 대표적인 곳이 시청∼코오롱빌딩∼서울파이낸스빌딩에 이르는 골목이다. 좁고 시청사에 가려 조망이 좋지 않고 바람이 통하지 않아 우중충하기만 했다. 시청 마당이 개방되면서 이 공간은 공무원과 인근 회사원들의 휴식장소로 변했다.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며 봄볕을 맞는 모습이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시청사 부지는 모두 3700여평. 본관건물을 빼면 2800여평이 마당이다. 그대로 두면 ‘좁고도 넓은’ 공원이 생기는 셈이다. 그러나 한 공무원은 “철거해 놓고 보니 훤하고 좋지만 새청사 건립을 그만둘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신청사는 지난 17일 조달청을 통해 공개경쟁 입찰이 이뤄졌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림산업, 롯데건설 등이 각각 4개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가했다. 참가가 예상됐던 GS건설은 빠졌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각사의 설계도를 건네받아 오는 4월7일 기술심사(100점 가운데 45점)를 해 그 결과를 조달청에 넘기게 된다. 조달청은 이 심사결과를 받아서 가격(35점),PQ심사(입찰자격사전심사·20점) 등을 합쳐서 낙찰자를 결정하게 된다. 낙찰자가 결정되면 오는 5월10∼15일쯤 착공할 예정이다. 따라서 ‘서울공원’의 수명은 길어야 두달가량이다. 새청사가 건립되면 현재의 본관은 등록문화재로 보존된다. 현재 남아 있는 서관은 철거되고 시민들의 보행로로 개방된다. 시청과 서울신문 사옥과의 샛길 위로 무지개다리를 놓아 신호등을 거치지 않고 건널 수 있을 전망이다. 새청사는 지하4층에 지상 21층안과 22층안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된다. 연면적 2만 6635평규모로 시청부지 동쪽에 지어진다. 대신 태평로 쪽은 5층 이하 건물이 들어선다. 덕수궁이 있어서 층고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지하는 지하철 1호선과 연결되며, 주변빌딩과의 연결도 유력시된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레저+α] 아∼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져요

    63빌딩은 입체 영화인 아이맥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특별 이벤트인 ‘아이맥스 투어’를 오는 3월25일과 4월8일·22일 세차례 마련했다. 아이맥스 탐방단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영사실을 직접 방문하여 아이맥스 영화용 필름 및 영사기, 음향 장치 시스템 등을 자세하게 살펴보며 국내 최대의 스크린을 가지고 있는 63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영화도 관람한다. 매회 선착순 25명이며 홈페이지(www.63.co.kr)에서 신청을 받는다.
  • [대우건설 인수 누가 뛰나] 삼환기업

    [대우건설 인수 누가 뛰나] 삼환기업

    건설 외길 60주년을 맞는 삼환기업은 올해를 재도약의 원년으로 정하고 대우건설 인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조 1000억원, 당기순익은 650억원이었다. ●건설전문가들 태스크포스팀 구성 창업자인 최종환 명예회장의 장남 최용권 회장의 인수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다.70,80년대 건설명가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대우건설 인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태스크포스팀은 내부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종합조정실 인원 10여명이 매달리고 있다. 노정량(60) 사장이 사령탑이다. 단국대 건축학과 출신으로 금호건설을 거쳐 80년대 초반 삼환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몸담고 있다. 국내 현장소장 상무, 건축사업본부 전무, 부사장 등 현장관리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대우건설 인수 이후 삼환과의 시너지 창출에 힘을 쏟고 있다. 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절친한 사이였다. 우직하고 겸손하면서도 판단이 빠르고 예리하다는 평이다. 현장 반장은 박상국(54) 상무가 맡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80년 삼환에 입사, 현장 관리부장, 비서실장, 유럽지사장, 종합조정실장 등을 거쳤다. 관리·재무쪽에 능통하다. 재무투자자들을 만나 투자를 끌어내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삼환그룹 계열사 관리, 재무, 전략기획 등 입사이후 계속 기획실에서만 근무해온 박상원(42) 이사는 박상국 상무를 지원하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 회계법인 삼일 등 자문사와 함께 실사 평가, 시너지 평가 등 내부 관리에 전념하고 있다. ●외환銀등 4곳서 1조원 투자 3조원의 ‘실탄’을 확보한 상태다. 삼환기업-삼환까뮤가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그룹 자체 유동화 가능 자금이 1조원이 넘는다. 외환은행을 비롯해 국내 4개 투자기관으로부터 1조원의 투자를 약속받아 놓았다. 우정사업본부, 군인공제회, 국민연금, 교원공제회 등과도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50%+1주’이든,‘주식 72% 전량 매각’이든 자신 있다는 표정이다. 매각 주체인 자산관리공사에서 어떤 식으로 매각할 것인지 입장을 정리해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삼환기업 관계자는 “대우건설 인수 이후 상생을 위해 어떤 경영 전략을 펼칠 것인지가 중요하다.”면서 “대우는 해외건설도 강하지만 국내 주택 분야에서도 지명도가 높은 만큼 삼환의 재도약을 위한 파트너로 적격”이라고 말했다. 삼환은 국내 오피스빌딩 시공분야에서는 명성이 높지만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은 탓에 국내 주택 부문에서는 성과가 저조하다. 해외건설의 경우 대우건설과 4개국에서만 사업이 겹치고 각각 14개국씩 다른 시장을 갖고 있어 M&A할 경우 28개국으로 시장이 확대된다는 설명이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명품 건축물’ 그의 기술서 나온다

    ‘명품 건축물’ 그의 기술서 나온다

    그의 손을 닿으면 명품이 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김대중 부장은 건축구조설계부문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마스터(명장)’로 꼽힌다.20년간 건설기술 연구에 매달려온 김 부장이 걸어온 길을 보면 명장으로 불릴 만하다. 삼성건설이 시공한 국내외 내로라하는 굵직한 건설 현장마다 김 부장의 기술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 교통센터, 기흥반도체, 탕정 LCD 등 구조설계 및 현장에서 김 부장의 기술은 빛났다. 원가 절감과 공기 단축은 물론 자체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슬라이딩 공법, 반도체 구조설계 기술, 프레임 기술개발 등 고난도의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김 부장의 기술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UAE 두바이 타워 프로젝트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세계적인 설계자 이치노헤가 그의 기술을 인정, 버즈 두바이타워 설계에 리프트업(Lift-up) 공법을 적용했다. 세계적으로 초고층 구조기술 기반을 마련하고 기술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것이다. 김 부장은 20일 삼성건설로부터 건축구조설계부문 ‘마스터’로 선정돼 임원급 보상 및 정년 이후에도 계속 근무할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한때 18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30대 재벌그룹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외환위기(IMF)와 함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인희, 동양물산 등 5개만 남은 미니그룹으로 축소된 게 오늘날의 벽산이다. 출자전환된 채권단의 주식을 되사들여 창업주 가문이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벽산의 주력사는 벽산건설이다. 전체 매출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때문에 벽산 사람들은 그룹이라는 표현 대신 건설 전문업체라는 표현을 쓴다.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GS가문·박정희 대통령 등과 혼맥 형성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 2녀중 장남 김희철(69) 벽산건설 회장은 경기고 3학년이던 16세 때 미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15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한 달에 2∼3통씩 집으로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인 고 김인득 창업주는 틀린 한자를 교정해 보내주는 등 자식 교육에 애착을 보였다. 김희철 회장도 기대에 부응해 미국 퍼듀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학 석사·MIT대와 퍼듀대에서 각각 원자력공학 석·박사학위를 땄다. 이어 미주리주 롤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1969년 정부의 해외우수인재 유치 계획에 따라 과학기술처 1급 연구관으로 초빙돼 귀국했다. 김희철 회장은 1965년 김인득 창업주의 3남이자 김 회장의 동생인 김희근(60)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과 김 명예회장의 경기고 동창인 허광수(60)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제의로 삼양통상 고 허정구 회장의 장녀 허영자(66)씨를 만났다. 허광수씨의 누나인 영자씨는 이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미 노스웨스턴대 불문학과 석사 과정을 밟다 다음해 시카고에서 김 회장과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은 1971년 건축자재 생산업체였던 ㈜벽산의 전신인 제일스레트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벽산 경영에 참여했고,1982년 그룹 부회장으로 오르면서 사실상 경영을 도맡았다. 하지만 김인득 창업주가 세상을 뜬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IMF 위기를 맞아 선친이 키운 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벽산은 3세 경영 체제에 안착했다. 김희철 회장의 장남인 김성식(39) ㈜벽산 대표이사 사장은 ㈜벽산페인트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 마케팅 학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보스턴 컨설팅에서 일하다 2001년 1월 ㈜벽산 전무로 입사했다. 지금은 부도로 쓰러졌지만 80년대 말 주택사업을 활발히 펼쳤던 ㈜동신 박승훈 회장의 장녀 박성희(36)씨를 학교 선배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의 차남 김찬식(37)씨는 주력사인 ㈜벽산건설에서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다. 경영지원실장(전무)으로 내부 살림을 챙기고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에서 MBA를 땄다. 한 살 아래인 장현주(36)씨를 대학(이대 동양학과)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연애 결혼했다. 장씨의 아버지 장경환(74)씨는 포항제철 전무이사, 삼성중공업 사장 등을 거쳐 포항제철(현 포스코) 경영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장녀 김은식(35)씨는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나온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77) 전 재불 한국문화원장의 차남인 첼리스트 양성원(39·연세대 기악과 조교수)씨와 결혼, 음악가 집안을 꾸렸다. 이들의 결혼은 양가 어머니들의 오랜 친분으로 맺어졌다. 김인득 창업주의 차남인 김희용(64) 동양물산 회장은 미 인디애나주립대 출신으로 1987년부터 그룹의 모태이자 농기계전문업체인 동양물산 사장으로 취임,2001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고 박상희씨의 딸 설자(61)씨와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설자씨는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처제이기도 하다. 이로써 벽산가 혼맥은 경제계 뿐 아니라 고위 정치권과 닿는 계기가 됐다. 장남 김희철 회장가와 차남 김희용 회장은 2004년 주식 교환을 통해 사실상 독립경영 체제를 갖췄다. 김희철 회장 집안이 벽산건설과 ㈜벽산 등을, 김희용 회장 집안이 동양물산 지분을 갖는 것으로 구도를 정리했다. 김희용 회장의 장남 김태식(33)씨는 동양물산 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딸 김소원(28)씨도 동양물산에 몸을 담고 있다. 셋째 아들인 김희근(60) 회장은 지금은 정리된 벽산건설의 해외부문을 담당하는 등 줄곧 건설을 책임지며 벽산건설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미 마이애미대 출신으로 IMF 위기를 맞아 건설에서 손을 뗐고 지금은 계열분리된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 직함만 갖고 있다. 벽산건설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한 사기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미 LA에 살고 있지만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귀국해 수사를 받고 있다. 김희근 명예회장측은 당시 대출은 만기연장이 대부분이어서 사기 혐의는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 이윤우 전 그린파크 회장의 4녀인 이소형(58)씨와 결혼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녀인 김숙희(66)씨는 피혁전문 무역업체인 천마를 운영하는 정영현(72) 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막내 딸 김연숙(57)씨는 원영종(59) 화인계기주식회사 대표이사와 사이에 치성(28)·치열(26) 두 형제를 두고 있다. ●고 김인득 창업주…소문난 근검절약가 고 김인득 창업주는 경남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었지만 계절에 따라 포목상 일을 겸해 형편은 어렵지 않았다. 고향에서 보통학교(칠서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3수 끝에 열 네살이 되던 해에 마산상고에 입학했다. 성적이 좋아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농구·탁구·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운동도 잘했다. 남선주산대회에서 1등을 했고 서화전시회에 출품하면 항상 상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첫 직장은 1934년 봄 입사한 마산금융조합. 예금 권유부터 연체 독촉까지 항상 1등이란 팻말이 따라다녔다.‘남과 같이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철학은 이때부터 생겼다. 당시 월급 28원을 받던 그는 10년동안 1만원(현재 1억원)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워 9년간 8900원을 모았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숙직을 자청, 숙직비를 모았고 출장 갈 때면 새벽에 일어나 목적지까지 걸어가면서 출장비를 아꼈다. 투철한 절약정신만큼 가족 사랑도 깊었다.“1932년 1월11일 양가 부모와 일가친척의 축복 속에서 17세 신랑과 18세 신부는 결혼을 했어요. 신랑이 장남이라 결혼시켜 어린 5남매와 큰 살림을 맡기실 작정을 하신 모양이었어요.17세 신랑은 키도 크고 헌칠했어요. 결혼후 남편은 3년을 학생 신랑으로 지내고 저는 신랑 없는 시집살이를 했어요.” 고 김인득 창업주의 부인 고 윤현의 여사는 김 창업주의 첫 인상을 ‘벽산 김인득 선생 회갑 기념-남보다 앞서는 사람이 되리라’란 책을 통해 이같이 회고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동생인 고 김재동씨도 같은 책에서 창업주를 두고 애처가 중의 애처가라고 평했다. 평상시에도 “부인이 무슨 낙이 있겠어. 내가 아내의 종이 돼야지…”라고 말하며 부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 김인득 창업주는 일제 치하였던 만큼 기술자나 사업가가 아니면 한국인은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43년 진주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긴다.1949년 무역업을 하기 위해 상경했는데, 당시 외국 무역이나 한다는 사람들은 으레 호텔에 머물며 식사도 고급으로 하는 등 허세를 부리기 일쑤였지만 김인득 창업주는 삼류여관에 머물며 국밥 외엔 다른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택시는 타지 않았고 걷거나 전차·버스를 이용했다. 모두가 멋쟁이 양복을 빼고 다녔지만 농구화나 군화를 신고 다녔으며 그나마 구두 뒷굽이 빨리 닳는다며 바닥에 말발굽 ‘징’을 박아 신고 다녔다. 호주머니에 쓸데없이 돈을 넣고 다니지 않았으며 필요한 돈만 명함꽂이에 넣어 다닐 만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극장의 제왕’서 건자재·건설업으로 비약 부산 동아극장 지배인으로 일하다 6·25가 발발한 1950년 피란갔던 부산에서 오늘날 벽산의 효시인 동양흥산(현 동양물산주식회사)을 창업한다. 외국영화를 수입해 전국 영화관에 공급하는 일과 수입·무역업이 주종이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당시 오락시설로는 극장이 전부인 시절이었고 동양물산은 외화의 60%를 수입했다. 중앙극장, 단성사 등 서울 주요 극장을 비롯해 부산 대전 대구 진주 등 전국에 100여개에 달하는 극장 체인을 형성, 극장 재벌로 부상하며 50년대 말 흥행업 왕좌에 올랐다. 산업의 본질은 생산업이라 여긴 김인득 창업주는 60년대 들어 ‘사업보국’을 내걸며 흥행업에서 점차 손을 떼고 제조업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단성사와 반도극장(현 피카디리) 등을 판 돈으로 1962년 9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현재 ㈜벽산)를 인수한 것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회사는 일제 당시 일본 아사노 스레트의 서울 공장으로 1929년 출범했지만 당시 부실화되어 개점 휴업상태인 회사였다. 인수 직전 9개월까지 실적이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주인이 바뀐 뒤 3개월간 6000만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어 60∼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시작된 전국적인 농어촌개량작업으로 슬레이트 사업은 번창일로를 맞는다. 이후 건자재 생산업체인 오늘날의 ㈜벽산으로 자라났다. 1964년 1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에 건설사업부를 발족하면서 건설업을 본격화했다.1968년 시공능력 33위에서 1971년에는 11위에 오를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서 같은 해 1월 한국건업주식회사로 떨어져 나와 지금의 벽산건설로 성장했다. 그룹의 모태인 동양물산은 고구마 절단기 등 농기계 생산업체인 ‘한국이기공업주식회사’(1964년)와 한국경금속(1968년)을 인수하면서 새 전기를 맞는다. 동양물산은 지금도 경운기 등 농기계와 스푼 등 양식기를 만들면서 과거 명맥을 잇고 있다. 1973년 스레트공업사 내 페인트공장을 신규 착공하면서 시작한 페인트 사업도 그대로 있다.1999년 구조조정과 함께 벽산화학㈜에 합병됐다 2001년 벽산페인트로 거듭났다. 이로써 벽산그룹은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 동양물산,㈜인희 등 5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IMF때 대대적인 구조조정 그룹명 벽산은 고 김인득 창업주의 아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60년대말부터 회사를 끊임없이 인수·합병하는 등 사세를 키워카며 통일성을 위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유통 금융 방송 지하자원개발 등 전체 18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IMF이후 구조조정을 겪으며 현재 5개로 줄었다. 1976년 설립한 건축내외장제 제조사 벽산산업개발㈜은 1998년 그룹 경영합리화 계획에 따라 ㈜인희에 합병됐다.㈜인희는 영화산업에 애착을 가졌던 김인득 창업주가 1952년 중앙극장을 세우면서 설립했던 회사. 영상산업회사로 키우기 위해 비서실내에 신규 영상 사업팀까지 두고 챙겼었지만 지금은 발코니 확장과 일부 건자재만 만들며 ㈜벽산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1985년 벽산쇼핑㈜을 통해 유통업에 진출했지만 1999년 3월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매각했고,1989년 인수한 정우개발㈜,㈜동부해양도시가스 등 정우 계열사들 역시 1999년 정리했다.1991년 유신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업도 본격화했지만 1998년 대출금 마련을 위해 팔았고,㈜한국케이블TV 전남동부방송을 설립해 종합유선방송(SO)사업도 손을 댔지만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했다. 대부분의 그룹 사옥도 처분했다. 그룹 40주년 출범과 함께 서울역 앞에 지었던 시가 1100억원 연건평 900평 규모의 그룹 사옥인 ‘벽산 125빌딩’을 포함해 퇴계로 ‘인희빌딩’ 등이 모두 넘어갔다. 벽산 125빌딩은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씨의 마지막 작픔으로 유명하다. 전주 백화점, 안양 벽산쇼핑, 부산 남포동 복합상가빌딩 등 유통 사업 관련 부동산도 함께 정리했다. ●3대를 잇는 기독교 사랑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2녀중 막내딸 가족을 제외하면 지금도 매주 일요일 오전 고 김인득 창업주 때부터 다니던 인사동 승동교회에 나가 예배를 들이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김인득 창업주가 6·25때부터 승동교회에 나갔고 장남 김희철 회장도 같은 교회 장로를 지낸 바 있다.3세인 김성식 ㈜벽산 대표이사 사장도 술·담배를 일절하지 않고, 매사 성경이 판단의 기준이 될 만큼 신앙이 깊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벽산의 기독교 사랑은 가족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무식은 물론 창립기념식 등 모든 공식행사가 예배로 시작되는 ‘기독교문화’ 회사다. 국내 처음으로 직장예배를 도입한 기업으로 창립 초창기인 1956년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첫 직장예배 이후 매주 금요일 아침 8시30분(일부 계열사는 다름)부터 1시간은 본사와 각 공장, 지점, 현장별로 직장예배를 보고 있다. 기독교를 통해 임직원을 통합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평이다. 벽산건설이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가 무분규로 일관, 회사 살리기에 힘을 합했던 것도 기독교 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jhj@seoul.co.kr ■ 오뚝이 정신으로 일군 ‘벽산 56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33절)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손자인 김성식 사장이 맡고 있는 ㈜벽산은 최근 수년간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이며 끊임없이 M&A 위협을 해온 창투사 아이베스트와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아이베스트가 구주 매출을 통해 벽산 주식 100만주를 주당 1만 5000원에에 팔고 나간 뒤 주가가 1만 1000원대까지 빠지면서 아이베스트는 시세 차익을 얻은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를 입어 벽산에 대한 개미들의 원성이 높았다. 특히 벽산은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아이베스트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는 등 양측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립해왔다. 이처럼 수년간 벽산을 괴롭혀온 아이베스트가 최근 대주주의 우호 지분을 자청하면서 두 회사간 구원(仇怨)관계가 일단 봉합된 상태다. 벽산그룹은 56년을 헤쳐오면서 고난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내실을 다져온 기업이다. 1998년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간 분규없이 한마음으로 대처했던 혼연일체는 지금도 업계의 귀감으로 회자된다. 벽산건설의 경우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과 맺은 목표보다 50%가량 많은 244명이 명퇴했다. 자진해 나간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남은 직원들은 상여를 전액 반납해 떠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대주주도 4대1 감자를 단행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덕택에 2000년 회사가 흑자로 전환됐고 2002년 말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은 풋백옵션을 행사, 출자전환된 채권단 주식을 2004년 되사면서 회사를 되찾았다. 이에 앞선 지난 1992년 7월. 당시 재계 25위이던 벽산건설은 자사가 시공한 신행주대교가 준공 4개월을 앞두고 붕괴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규명되면서 대대적인 이미지 실추와 함께 영업정지, 단자사 여신 동결 등 악재가 뒤따랐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인명 사고가 없어 복구공사비 200여억원 등을 전액 부담, 재공사를 맡아 결자해지로 매듭지었다. 여전히 우환은 끊이지 않는다. 벽산건설 임원 2명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각각 회사돈 수십억원을 빼돌려 부동산 구입과 주식투자 등에 쓴 혐의로 조사를 받는 등 집안 단속 문제가 붉어져 조사 중이다. 벽산건설 관계자는 “주택 사업 이외에 토목공사 등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면서 “무엇보다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위축됐던 직원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다.”고 말했다. 벽산그룹 5개 계열사의 2005년 기준 총 매출은 1조 2500억원이며, 이중 벽산건설의 매출이 전체의 61%를 차지한다. jhj@seoul.co.kr ■ 벽산을 만든 전문 경영인들 벽산그룹은 올해로 56년을 헤쳐오면서 가장 훌륭한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사 부회장을 지낸 정종득(65) 목포 시장을 꼽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의 일등 공신으로 지목되는 정 사장은 서울대, 산업은행, 쌍용을 거쳐 1983년 벽산건설에 이사로 입사 1994년 사장이 되면서 워크아웃의 시작과 끝을 지키는 등 벽산과 고락을 함께해온 인물. 특유의 인화력과 결단력으로 조직을 이끌며 대주주인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과 호흡을 맞췄다는 평이다.2005년 5월 시장 출마를 위해 부회장으로 위촉된 뒤 당선과 함께 회사를 떠나 지금은 공직자로 일하고 있다. 김재우(62) 아주그룹 부회장은 1997년 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기에 앞서 ㈜벽산 사장에 취임해 3년 만에 경영을 정상화시킨 능력을 인정받아 아주그룹에 스카웃된 인물. 삼성물산 출신으로 2005년까지 ㈜벽산 부회장 등을 지내며 ‘누가 우리회사 망한다고!!’‘거봐!안 망한다고 했지!!’ 등 벽산 구조조정 성공사례들을 책으로 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광주고·건국대 출신의 신광웅(63) 신동아건설 사장도 벽산건설 출신이다. 한신공영을 거쳐 지난 1995년부터 2004년 6월까지 벽산에 적을 둔 바 있다. 벽산건설 부사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한편 지난 2004년 뇌물수수죄 재판중 또다시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 감옥에서 자살했던 고 안상영 전 부산시장도 벽산건설에서 부회장직을 수행한 바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서양순 ‘꽃과 여인’展 서울갤러리서

    중견 서양화가인 서양순의 ‘꽃과 여인’전이 21일부터 26일까지 서울 태평로 1가 프레스센터빌딩 1층 서울갤러리에서 열린다.이번 전시는 ‘꽃과 여인’이란 테마에 오랫동안 탐닉했던 작가가 10년 만에 갖는 개인전. 회화의 가장 흔한 소재라는 점 때문에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작업의 한계를 벗기 위해 섬세하면서도 중량감 있는 그만의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스케치한 풍물화들도 선보인다.(02)2000-9736·7.
  • 65층짜리 유엔센터빌딩 송도국제도시에 짓는다

    경제자유구역인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유엔기구와 국제 공공기관이 입주할 ‘유엔센터 빌딩’이 건립된다. 인천시는 17일 송도국제도시에 유엔기구 등이 입주할 65층짜리 유엔센터 빌딩을 민간자본을 유치해 오는 2009년까지 건립키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유엔센터 빌딩을 고도 및 층수 확보가 쉽고 도시계획 입안이 유리한 송도매립지 7공구에 건립키로 하고, 사업비 4900억원은 민간자본을 유치하기로 했다. 센터는 지하 4층, 지상 65층(높이 295m)에 연면적 4만 7000평 규모로 유엔 산하기구와 국제 공공기관이 사용할 사무실과 호텔, 쇼핑시설 등을 갖추고 주거가 가능한 자족형 복합시설로 건립할 예정이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주말화제] 여야 ‘신지정학 게임’

    [주말화제] 여야 ‘신지정학 게임’

    ‘용산을 얻는 자, 서울을 얻으리라?’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로 꼽히는 용산 개발 문제를 두고 정치권에서 파격적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있다.2008년까지 평택으로 옮기는 용산 미군기지 터 115만평의 활용 방안이 핵심이다. 제안들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상당부분 정치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일부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친환경적이고 체계적인 개발을 경쟁적으로 주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용산의 난개발을 막는 효과가 기대된다. 용산발 ‘신지정학(新地政學) 게임’이 빚어내는 역설이다. 우선 서울시장을 꿈꾸는 후보들이 적극적이다. 열린우리당에서 서울시장 후보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계안 의원은 최근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용산 미군기지 터가 역사적으로 몽골군과 청나라, 일본군이 진주한 곳이기에 나라의 상징인 청와대를 이전, 민족의 자존심을 되살리자는 주장이다. 용산 미군기지 터 115만평 가운데 9만평은 전쟁박물관,2만 4000평은 미 대사관 부지,20만평은 국방부 용지로 활용하되 남은 90만평에 청와대를 이전하자는 것이다. 대신 청와대의 많은 부지를 녹지와 공원으로 조성, 시민들에게 돌려주자고 제안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해온 같은 당 민병두 의원은 용산을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특구와 같이 개발, 서울의 성장 동력으로 삼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개발 가능한 공간이 충분하므로 녹지 비율을 30% 정도로만 지키고, 나머지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푸둥과 같이 개발하자는 얘기다. 그는 미군기지 터 등을 포함,180만평을 공원 등의 생태공간으로 만드는 안을 제시했다.77만평은 완벽한 통신서비스가 제공되는 유비쿼터스 업무지구로 조성, 영화·방송·정보기술(IT) 등 지식기반 미래산업을 유치하자고도 했다. 아파트 16만 3400가구 공급 구상도 발표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 뛰어든 맹형규 전 의원은 용산 미군기지 터에 한양 도성과 6조거리를 복원하고, 발해 상경과 고구려 국내성의 축소판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같은 당 홍준표 의원은 용산·강남·여의도·상암 등 4곳을 부도심 국제비즈니스 거점으로 개발하겠다는 내용의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강남과 용산을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교를 만들고 다리 위에는 음식점·카페 등 위락시설을 만들어 국제적인 볼거리로 조성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서울을 관통하는 녹지축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진 의원은 북한산-종묘-남산-용산-한강을 연계하는 남북 녹지축을 만들겠다는 정책 제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이전 부지는 녹지와 시민근린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용산을 실리콘밸리로 개발하자는 안도 있다.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한나라당 소속 권문용 전 강남구청장은 용산 미군기지 터는 모두 공원으로 조성하되 주위에 외국 명문대학 분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미국의 UCLA나 UC버클리 같은 캘리포니아주립대 계열의 대학, 다시 말해 ‘UC용산’을 유치하는 청사진을 제시, 실현 가능성이 주목된다. 용산이 지역구로 한때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했던 한나라당 진영 의원은 용산 미군기지 터에 들어설 예정인 용산민족역사공원을 미국의 센트럴파크와 같이 문화·테마공원으로 만들 것을 주장한다. 전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야외공연장과 문화콘텐츠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당 소속 서울시장 후보에게 보탬이 되겠다며 “용산을 국제금융센터로 만들자. 난개발을 막고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 민간과 정부 합동으로 ‘용산개발공사’를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전광삼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서울 봄나들이 ‘베스트5’

    서울 봄나들이 ‘베스트5’

    ‘봄의 유혹에 빠져봅시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서울 도심이 봄꽃으로 새단장을 했다. 회색 빛 도시는 따뜻한 봄 햇살을 받아 크고 작은 생명이 움트고 있다. 거리는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 튤립, 철쭉 등 형형색색의 봄 꽃들이 화려한 꽃 길을 만든다. 도심은 어느새 꽃 향기로 가득하다. 이번 주말부터는 본격적인 봄 꽃의 유혹이 시작된다. 어린이대공원과 서울대공원은 봄꽃축제 준비에 들어갔다. 청계천과 서울숲, 여의도 공원, 한강시민공원 등에도 봄 기운이 완연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봄꽃이 예년보다 1주일 가량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다. 특별한 산책을 자극하는 봄. 시민들이 도심에서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도록 ‘가족 봄나들이 베스트 5’를 선정했다. 이번 주말에는 묵은 기운을 훌훌 털고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봄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시청팀 ■ 서울숲과 청계천 “우리가 발걸음을 떼는 순간 머리에서 발끝까지 변화가 시작되지요. 혈류 속도가 상승해 몸속 지방이 분해되고 산소공급으로 두뇌활동이 활발해집니다. 걷기는 비용이 들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운동효과가 뛰어납니다.” 지난 11일 서울 숲 탐방객 안내소 앞.‘마사이족처럼 걸어라.’의 저자인 성기홍 박사가 ‘걷기 예찬론’을 펼친다. 서울숲∼청계천의 6.2㎞ 구간에서 마련되는 ‘걷기 전문가와 함께하는 생태탐방’에 참여하는 시민 100여명이 봄나들이에 나섰다. 콸콸 흐르는 시냇물을 지나 서울숲이 내려다 보이는 보행육교. 고라니, 사슴, 토끼가 반긴다. 생태연못에는 청둥오리와 오리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모두 봄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성 박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마사이족은 천연 흙길 위에서 하루 3만보 이상 걸으면서 건강을 유지합니다. 이들의 걸음걸이는 부드러운 흙 위를 맨발로 걷는 것처럼 발바닥을 굴리듯이 발을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현대인의 무릎·관절 통증의 중요한 원인도 딱딱한 인공적인 바닥을 걷는 것입니다.” 드디어 한강이 보인다. 바람이 다소 거세지만 답답한 도심에만 있어서인지 강바람이 오히려 반갑기만 하다. 한강에 맞닿은 중랑천을 따라 쇠오리, 고방오리 등 겨울 끝자락을 쥐고 있는 철새들이 눈에 띈다. 청계천이 합류되는 지점에서는 어른 키만한 물억새 갈대숲이 나온다. 청계천 입구인 버들습지에서는 청계천 자연해설가에게 이 곳에서 사는 물고기와 철새 등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서울시는 이처럼 3월 한달동안 서울숲∼청계천 구간에서 매주 토·일요일에는 ‘걷기전문가와 함께하는 생태탐방’을, 매주 화·목요일에는 ‘숲해설가와 함께하는 생태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날씨가 푸근해져도 한강변이라 바람이 불기 때문에 턱 끈이 달린 모자와 음료수·초콜릿 등의 간식을 챙겨가면 좋다. 참가신청은 서울시 자연생태과 홈페이지(sanrim.seoul.go.kr)에 하면 된다. 문의 6360-4623.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어린이대공원 꽃샘추위가 한풀꺾인 지난 14일 오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다. 정문에 들어서자 지루했던 겨울의 이별을 고하는 따뜻한 봄기운이 반겼다. 가족단위 나들이 객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어린이대공원은 수도권 최고의 상춘명소. 공원 곳곳에는 봄꽃축제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16일부터 개장시간이 늘어나 아침 9시부터 매일밤 10시까지 문을 열고, 다음달 1일부터는 봄꽃축제가 개막된다. 유모차대여소를 지나 분수대에 이르자 노란 팬지가 반겼다. 주위에는 오랜만에 만난 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붐볐다. 유모차대여소는 정문과 후문에 있는데 1일 대여료는 3000원이다. 식물원으로 가는 길에 늘어선 벚나무에는 파란 새싹들이 꿈틀거리며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347종의 식물이 전시돼 있는 식물원에 들렀다. 선인장과 파리지옥, 끈끈이주걱을 비롯해 각종 분재, 할미꽃과 수선화, 나리 등 야생화가 봄을 실감케 한다. 동물 막사에도 봄이 왔다. 겨울을 보낸 원숭이와 타조, 낙타 등 각종 동물들이 따스한 봄볕을 쬔다. 생태연못 인근에는 야간개장 첫 주말인 18일부터 펼쳐질 ‘추억의 동춘서커스’ 천막 공연장 설치로 분주하다. 한국곡예협회 주최로 열리는 행사에서는 16가지 묘기가 연출된다. 봄꽃축제는 다음달 1일 시작된다. 오후 8시 개막 불꽃놀이쇼와 마칭밴드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공원 곳곳이 꽃탑과 꽃벽, 토피어리 등으로 꾸며진다. ●이용시간 개장시간은 오전 9시∼오후 10시, 이용요금은 비수기(11∼3월,7∼8월)는 성인 900원, 청소년 500원, 성수기(4∼6월,9∼10월)는 성인 1500원, 청소년 1000원. ●가는길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어린이대공원역에서 내려 1번출구로 나오면 정문과 만난다.5호선은 아차산역 4번 출구로 나와 후문을 이용하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주차요금을 따로 내야하는데 10분당 300원이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childrenpark.or.kr)참조.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양재동 꽃시장 드넓은 화원이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에선 아름다운 꽃과 화초가 사시사철 만발한다. 봄기운이 감도는 계절에는 향기로움이 더한다. 꽃향기에 이끌려 2만 2000여 평을 돌아보면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꽃들을 수없이 많이 만난다. 아이들과 손잡고 나오려면 식물도감을 먼저 살펴보자. 책에서 본 꽃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양재 화훼공판장’은 생화 도매시장, 분화 온실, 화환, 자재 판매장으로 나뉜다. 생화 도매시장에는 장미와 튤립, 프리지어, 국화, 안개, 백합 등이 가득하다. 색깔이 다른 장미만 10종류가 넘는다. 차곡차곡 쌓인 꽃이 탐스럽다. 오색빛깔과 향기에 취해 시장구경이 지루하지 않다. 다만 도매시장이라 한 송이씩 팔지 않는다. 상인들이 바빠 나들이 가족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바닥에 물기가 많으니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소매상은 유통센터 지하에 있다. 꽃으로 화환과 꽃바구니를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시중보다 20∼30% 저렴하다. 장미를 하트 모양으로 꽂은 바구니가 앙증맞다. 분화 온실에는 꽃봉오리를 품은 화분이 놓여있다. 아네모네, 시네나리아, 주리안, 미키로즈, 베고니아, 미니장미 등이 봄을 알린다. 대부분 이름표가 없어 아이들과 맞히기 놀이를 해도 좋다. 선물로 2000원짜리 화분도 선물하고. 주의할 점은 함부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난(蘭)은 빛에 예민해 카메라 플래시에 잘못 노출되면 시든단다. 생화 시장과 분화 온실이 일요일에 문을 닫기 때문에 일요일보다는 토요일에 방문해야 볼거리가 많다. ●이용시간 ▲생화시장=월∼토, 새벽1시∼오후 3시 ▲분화온실=매일 오전 7시∼오후 7시 ▲화환:매일 오전 6시∼오후 8시 ▲자재:매일 오전 7시∼오후 7시 ▲가동과 나동은 격주 일요일 휴무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양재역 7번 출구(성남방면)→성남·과천방향 버스→양재동 꽃시장하차. ▲버스 청색 간선버스= 140,400,470,471 ▲녹색 지선버스= 4312,4421,4422,4423,4424,5411 ▲노랑 마을버스=서초20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여의도공원 국회의사당과 방송사, 증권사 빌딩 등 고층 건물이 즐비한 여의도. 따뜻한 봄날 가족과 함께 나들이 오기 좋은 장소는 아닌 것 같지만 다소 삭막한 도심에 나들이에 안성맞춤인 여의도 공원이 있다. 여의도 공원은 6만 9435평의 대형 공원으로 자연 생태의 숲과 문화의 마당, 잔디 마당, 한국전통 숲으로 나눠져 있다. 자연 생태의 숲은 자연 생태계를 그대로 재현한 숲이다. 가운데 연못이 있고 주변에 차례대로 습지와 초지, 숲으로 이어진다. 습지엔 물억새 등 수생식물이 살고 숲 속엔 쑥부쟁이 등 야생화는 물론 조팝나무 등 키 작은 나무, 소나무와 참나무 등 키 큰 나무가 함께 어우려져 있다. 숲 속으로 들어가는 산책로가 있어 맑은 날 연못 가까이 있으면 도심 한 가운데이지만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숲에서 나와 아스팔트에 농구장 등이 있는 문화의 마당을 지나면 잔디마당이 나온다. 낮은 언덕으로 이뤄진 잔디밭이다. 마당 한 가운데 연못이 있고 잔디밭엔 푸른나무도 있지만 많은 갈잎나무가 있어 봄에 파릇파릇 피어나는 신록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다음 코스는 한국적인 전통이 물씬 나는 한국전통의 숲. 원두막과 오솔길, 시냇물, 팔각정 등 꼭 시골 고향에 온 것 같다. 나무도 철쭉과 꽃창포, 팔매나무 등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만 심어져 있다. 역시 가운데 연못이 있고 연못가엔 팔각정이 있는데 둘은 참 잘도 어울리는 그림이다. 공원의 다른 연못과는 달리 8마리 오리가 있어 전체적으로 한 폭의 한국화다. 공원의 외곽을 도는 길이 2.4km의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있다. 이 외에도 지압보도와 야외공연장, 어린이 놀이터, 세종대왕 동상 등 볼거리 즐길거리가 즐비하다. 공원 중간마다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11개 있어 큰 공원이지만 쉽게 출입할 수 있다. 자전거 대여료는 시간 당 1인용과 아동용은 3000원.2인용은 6000원. 한편 공원 인근에서 다음달 8∼15일에 벚꽃 축제가 열린다. 벚꽃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서강대로∼국회 뒤∼파천교로 이어지는 여의서로(윤중로) 등 7㎞ 구간. 이 중 1.7㎞ 구간은 축제 기간 차량도 통제된다.8∼12일엔 불꽃놀이, 고적대와 군악대. 기마대의 퍼레이드, 남사당패 놀이, 사물놀이 등 각종 문화행사도 열린다. ●이용시간 온종일 개방한다.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3번 출구에서 5분거리.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에서 5분거리에 있다. ▲청색 간선버스=461,753,360은 공원 앞.503은 맞은 편 전경련 회관 앞 하차. ▲녹색 지선버스=6621,6630은 공원 앞.5013,5618,5629,5711,5713은 전경련 회관 앞 하차. ▲빨강 광역버스=9409는 공원 앞 하차 공원에 주차장이 없어 승용차를 이용하면 여의도의 다른 곳에 주차해야 한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선유도 공원 양화대교 중간에 있는 선유도 공원도 시민들의 봄나들이 코스로 손꼽힌다. 여기는 정수장 건축물을 재활용해 만든 국내 최초의 환경생태공원이다. 먼저 한강을 가로지르는 무지개 모양의 선유교가 있다. 이 다리는 약간 흔들리지만 안전하다. 원래 흔들리도록 만든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선유교전망대에 이르고 앞에 북한산과 인왕산이 펼쳐지며 이 산들을 중심으로 서울의 산세를 느낄 수 있다. 가깝게는 망원동의 한강시민공원이, 멀게는 남산에 N서울타워가 보인다. 강 너머 서울의 모습이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공원안으로 들어가면 양쪽에 나무와 풀이 우거진 약 3m폭의 산책로가 죽 이어진다. 풍경화나 사진 속의 한 장면처럼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걷다 보면 억새풀과 백철쭉 등 작은 나무가 혹은 계수나무와 살구나무, 산벚나무 등 큰 나무들이 나온다. 미루나무를 등지고 벤치에 앉으면 연인과 함께 오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이 곳에는 과거 정수장 건축물을 재활용해 다양한 수생식물을 키우고 있다. 수질정화원은 가래와 노란어린연꽃 등 많은 수생식물들이 물을 오염시키는 물질인 유기물과 인, 질소 등을 뿌리로 흡수해 물을 정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또 수생식물원에서는 백련과 갯버들, 금불초 등 낮은 물가에서 자라는 수생식물들의 생장과정을 볼 수 있다. 시간의 정원은 이끼원, 고사리원, 푸른 숲의 정원, 초록벽의 정원 등 정원을 주제별로 나눈 곳이다. 섭씨 25도쯤 되는 비닐하우스 안에 수생식물이 있는 온실에선 물질경이와 자라풀, 애기부들 등 열대지방의 수생식물과 멕시코 소철과 석류, 오죽 등 남부지방의 상록식물을 볼 수 있다. ●이용시간 매일 오전 6시∼오후 12시 ●가는 길 ▲지하철 2호선 당산역 1번 출구에서 1.3km. 걸어서 15분 ▲지하철 2·6호선 2,8번 출구에서 1.3km. 걸어서 20분 ▲청색 버스=602,604번을 타고 선유도공원에서 하차. ▲녹색 지선버스=5714번을 타고 합정역 8번 출구인 양평한신아파트에서 하차. 승용차를 이용하면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에서 양화대교로 진입, 양화대교 북단에서 남단으로 진행하다가 양화대교 중간정문을 이용, 양화지구 주차장에 주차해야 한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상가·빌딩·사무실도 2008년 통합과세

    이르면 오는 2008년부터 상가·빌딩·사무실 등도 주택처럼 토지분과 건물분이 합해진 가격이 공시되고, 관련 세금도 이 가격을 기준으로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상가·빌딩·사무실에 대한 보유세 부담과 상속·증여세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상가·빌딩·사무실에 대한 통합과세를 위해 내년에 관련법을 개정,2008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건설교통부에서 통합가격산정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으며 통합과세는 이르면 2008년, 가격산정과 공시 방법에 따라서는 2009년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서울의 문화재] (2) 관상감 관천대

    [서울의 문화재] (2) 관상감 관천대

    연일 따뜻한 날이 이어지다가 얼마 전 꽃샘추위가 한바탕 시위를 하고 물러났다. 성급하게 봄옷을 꺼내 입은 많은 사람들은 “날씨는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기상예보는 예나 지금이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조선 전기에도 기상을 예측하는 왕립천문기상대인 서운관이 있었다.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과학을 중시한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파괴돼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관상감 관천대뿐이다. 따라서 이 유물은 과학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하지만 이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한 곳인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 관상감 관천대를 찾아서 현재 서울에 조선시대 관천대는 2개밖에 남지 않았다. 각각 서울 종로구 계동과 창경궁에 있다. 지난 13일 계동에 있는 관상감 관천대를 찾았다. 계동 현대사옥 마당에 있다. 따라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5분 거리다. 버스를 이용하면 지선버스 1012번, 간선버스 151,162,171,172,272,601번 등을 승차한 뒤 창덕궁 정류장에서 내린다. # 관상감 관천대와 만나다. 정문에 들어서면 앞에 현대빌딩이 있다. 오른쪽 방향으로 건물의 끝에 탑처럼 생긴 관상감 관측대가 눈에 띈다. 아주 큰 돌로 만들어져 있다. 웅장한 느낌이다. 가까이 가 보니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바로 앞에서는 찍기 어려울 정도다. 사실 관천대는 4m 정도밖에 안 됐지만 관천대 밑에 높이가 25cm인 큰 돌을 여러 개 쌓고 잔디를 깐 뒤 그 위에 올려져 있기 때문에 더 높아 보인다. 돌을 쌓아 놀린 총 높이는 3m 정도나 됐다. 따라서 관천대 꼭대기는 7m쯤 되는 셈이다. 관천대를 높은 곳에 올린 이유는 좀 더 높은 곳에서 하늘을 관측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 유물은 현재 있는 곳보다 약간 동쪽 언덕에 있었는데 23년 전 이 곳에 옮기면서 원래의 높이에 맞췄다고 한다. 관천대에 직접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관천대 밑에 쌓아 올린 돌들의 높이가 버스보다 더 높아 난감하다. 그러나 주위를 살펴보니 오른쪽 측면에 관천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가까이서 보니 3개의 돌덩이를 모두 8칸에 걸쳐 쌓아올리고 그 위에 받침대를 올렸다. 관천대의 높이는 4.2m이고 가로 세로 폭이 각각 2.8m,2.5m라고 한다. 꼭대기 높이는 현대빌딩의 3층 높이와 비슷하다. 따라서 맨 위에 무엇이 있는 지를 보기 위해서는 현대빌딩 4층에서 봐야 했다.4층에 올라가 창을 통해 보니 맨 위에 사각기둥이 있었다. 관측기구를 올려놓고 천체를 관찰하던 곳이다. # 아는 사람 거의 없어 다시 내려오자 한 현대차 직원이 관천대 앞 안내판을 보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직원들이 이 유물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맨날 지나다니지만 대부분 직원들이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근 한 고등학교의 드라마 촬영지엔 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가까이 있는 문화재는 모른다.”면서 “정문 앞과 건물 뒤편에도 이 곳의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문이 있는데 거의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문 앞과 건물 뒤에 가 보니 조선 말 이 곳은 고종의 사촌형인 이재원이 살던 계동 궁터였고, 건물 뒤편은 조선시대 외교문서를 관장하던 승문원터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갑신정변 때 고종이 사촌 형 집으로 피신온 적도 있다고 적혀 있다. # 알면 더 보인다. 관상감 관천대 말고 창경궁에도 관천대가 있다. 하지만 창경궁의 관천대는 조선 숙종 때 만들어졌다. 따라서 세종 때 만들어진 관상감 관천대의 역사가 더 깊다. 세종은 천문의 중요성을 알고 소간의와 해시계, 물시계 등 많은 천문기기를 발명하고 동양 최대 시설을 갖추었는데 관상감 관천대는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 관천대가 관상감 관천대라고 불리는 이유는 조선 전기 천문과 지리 측후 물시계와 관련된 일을 하던 서운관의 관상감에 속했던 관천대이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에 서운관은 경복궁과 북부 광화방 두 곳에 있었다. 현재 이 관천대가 있는 장소가 옛날 광화방 서운관이 있던 장소다. 그때의 기록에 따르면 관천대 위 중앙에 십자선이 그어져 있는 관측용 대석의 방위는 353도로 진분 방향에서 7도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자북과 방향이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관천대 구조물의 방위는 6도로 진북방향에서 동쪽으로 6도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따라서 대석의 남북선에서 13도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다. 관상감 관천대는 1982년 사적 제296호로 지정됐다. 글 사진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지방선거에 모두 걸어 결과에도 책임지겠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 의장은 16일 “(후임 총리 인선은) 노무현 대통령이 시간을 갖고 좀 검토하겠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날 오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신문에는 하마평이 나오지만 현재 그런 단계는 아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의장은 “언론의 관심은 사람에게 맞춰져 있지만 사람에게 맞추는 단계가 아니라 (노 대통령은) 분권형 국정운영과 책임총리를 전반적으로 검토해 보고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지를 고심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어떤 총리 후보를 내놓아도 야당은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총공세를 펼 것이어서 당으로선 부담이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대통령은 원칙을 중시하는 분이어서 (총리 인선에) 지방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의장은 “다음주부터는 개각을 통해 물러난 분들의 사표가 정리돼 한 분씩 국민에게 선보이겠다.”고 말해 다음주 중 지방선거 차출 장관의 잇따른 입당을 예고했다. 이어 5·31 지방선거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반반은 돼야 한다.”고 답했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론에는 “지금까지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던져서 지방선거를 돌파할 것이며 자신도 있다.”고 피력했다. 또 고건 전 총리의 연대 거부에 정 의장은 “차이점을 확인했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문화단신] ‘전곡리 유적’ 국제학술대회

    한양대 문화재연구소는 16일 서울 배재정동빌딩 세미나실에서 ‘전곡리 구석기 유적의 지질형성과 연대에 관한 새로운 진전’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배기동 한양대 박물관장, 일본 도시샤대 하야시다 아키라 교수 등 한·중·일 고고학자들이 참여,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의 지질형성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다.전곡리 선사유적지는 1978년 발견돼 국가사적으로 지정됐으며, 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 이와 함께 전곡선사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인 경기도는 17일 경기도 문화의전당에서 ‘세계선사박물관 운영사례 및 발전방향 모색’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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