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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오상준 지음, 시간여행 펴냄, 228쪽, 1만 5000원)책은 저자가 골프를 통해 만난 인연, 꿈, 열정, 세상에 대한 시각을 녹였다. 건축가이자 골프 코스 설계가의 눈으로 본 골프 코스에 대한 디테일한 소개도 담았다. 골프 성지 순례를 하며 경험한 각 골프 코스의 설계 특징과 설계자의 의도, 자연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그곳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발전하게 됐는지 역사·문화까지 배경지식을 함께 제공한다. 또한 홀마다 지형의 특징을 알려주고 그에 따른 플레이 방법을 소개한다. 특히 골프 코스와 주변 자연환경, 지형의 특징 등 다양한 사진과 함께 직접 그린 스케치도 담았다. 신격호의 도전과 꿈(오쿠노 쇼 지음, 오현정 옮김, 나남 펴냄, 264쪽, 3만 5000원)50년간 롯데 신격호 회장의 파트너로 일한 일본인 건축가 오쿠노 쇼는 책에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된 롯데의 대표적 건축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 신격호의 업무 스타일과 잘 알려지지 않은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1970년대 서울의 중심이 된 소공동 롯데타운, 세계 최대의 실내 테마파크인 잠실 롯데월드, 그리고 오늘날 서울의 랜드마크가 된 123층 초고층 빌딩 롯데월드타워가 롯데 창업자 신격호 회장의 용기와 도전을 상징하는 프로젝트들이라고 말한다. 442 시간 법칙(하태호 지음, 중앙경제평론사 펴냄, 268쪽, 1만 5000원)책은 스페이스X 일론 머스크와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의 시간 관리 방법을 살펴봄으로써 더욱 효율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시간을 지배하는 주체자로서 누구나 성공적인 자기 인생을 관리할 수 있도록 비법을 제시한다. 또한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442전략’을 제시한다. 이른바 주 단위로 4개 항목(업무·자기 계발·개인 용무·취침)에서 각각 42시간씩 사용하는 것. 하루 단위로 구분하면 6시간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하면 된다. 지금, 당신이 사랑해야 할 이유(김인수 지음, 연인M&B 펴냄, 296쪽, 1만 5000원)대한민국 현역군인이자 시인, 수필가로 활동 중인 인산 김인수 장군의 코로나 이후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유와 성찰, 사랑과 위로의 쉼이 있는 감성 편지들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자연, 사람, 사랑, 성찰의 4개 파트로 구성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뚝섬경마장 명맥 잇는 기마경찰… 시민들에게 친근함 주는 게 임무죠”

    “뚝섬경마장 명맥 잇는 기마경찰… 시민들에게 친근함 주는 게 임무죠”

    “경찰기마대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2월 25일 수도관구 경찰청이 서울 종로 수송동의 이마빌딩 자리에 들어서면서 경찰관 90명과 말 100필로 발족됐어요.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서울시 경찰국 기마경찰대로 편제됐고요.”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일대 레트로풍과 딴판인 색다른 분위기의 서울경찰기마대에서 만난 박상근(60·경감·홍보담당관실) 기마대장은 경찰기마대가 성수동에 자리잡은 내력을 알려준다. “도심에서 말을 관리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뚝섬경마장이 위치한 성수동으로 이전하게 된 것이죠. 성수동은 그때만 해도 서울의 변두리이자 허허벌판이었거든요. 뚝섬경마장이 과천으로 이사 가고, 승마장이 있었던 자리는 서울숲으로 변했지만 서울경찰기마대만 남아서 뚝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가 의전이나 문화 활동을 수행하고, 관광특구지역의 순찰을 임무로 한다. 올해로 창설 74주년을 맞았고 성수동으로 이전한 지도 48년이 됐다. 기마순찰 같은 현장치안 활동이 폐지되면서 경찰관 6명, 일반직 공무원 2명, 말 14필로 단출하게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3·1절 100주년 기념식을 비롯, 국제행사가 열렸을 때 맹활약했다. 광화문이나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를 말과 함께 순찰할 때면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올 때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올해 정년을 맞은 박 대장은 “매년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경찰명예 소년단을 모집해서 말과 함께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운용했다. 경찰 본연의 임무보다는 시민들에게 친근한 경찰상을 제공하는 게 주 역할이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 김희병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국민연금, 알리안츠 그룹과 2.8조 조인트벤처 펀드 결성

    국민연금공단은 알리안츠그룹과 해외 부동산 투자 확대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고 29일 발표했다. 공단에 따르면 알리안츠그룹은 자산 운용 규모가 약 990조원에 이르고 전 세계 70여개국에 진출한 세계 최대 보험사 중 하나다. 특히 부동산 부문 투자액이 99조원으로 이는 단일 기관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이번 계약에 따라 국민연금과 알리안츠그룹은 약 2조 8000억원(23억 달러) 규모의 조인트벤처펀드에 절반씩 비율로 참여하며, 중국·호주·일본·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국 도시의 업무용 빌딩 및 물류·주거시설 등 핵심 부동산에 투자할 예정이다. 안효준 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글로벌리더그룹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다양한 투자 경험을 공유하고 상호 역량을 강화하면서 우량 투자 기회를 선점하는 등 기금의 장기적 수익 제고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미주·유럽 등 안정적인 선진국 위주 투자와 함께 성장성 높은 아시아 주요 선진국과 이머징시장으로의 진출을 확대하는 등 해외 투자처 다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풍경을 끌어안고, 이야기를 끌어내다

    풍경을 끌어안고, 이야기를 끌어내다

    마리오 보타라는 건축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내가 건축 공부를 시작했던 1979년쯤 ‘A+U’라는 일본의 건축잡지를 통해서였다. 보타는 1943년생이니 그때 그의 나이 36세였을 게다. 카데나초와 리바 산 비탈레의 주택들과 모르비오 인페리오레 학교가 실렸는데, 매우 기하학적으로 간결하고 정연하면서도 자연과의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그의 건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루이스 칸, 르코르뷔지에와 일했고 스카르파에게 수학했다는 보타의 작품들은 그 세 명의 분위기가 묘하게 융합된 이미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후 그가 발표하는 일련의 주택 시리즈는 연이어 세계 건축계를 강타하며 최고로 주목받는 건축가가 됐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그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건축가였다. 1980년대 내가 프랑스 파리에서 건축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보타는 최고의 관심을 받으며 활약의 범위를 넓혀 가고 있었다. 프랑스 샹베리의 문화센터를 시작으로 프랑스 에브리의 대성당, 스위스 루가노의 고타르도 은행과 바젤의 팅글리 미술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었다. 그를 위시해 ‘티치노 학파’라고 불리는 일련의 건축가들이 유럽의 건축계를 열광시키고 있었다. 80년대 후반 파리에서 마리오 보타의 강연회에 참가했던 적이 있었다.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찬 청중의 열기는 뜨거웠으며, 강연 후에는 그와 일해 보고 싶다며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온 젊은 건축가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사무실에 그렇게 찾아가서 일할 기회를 가졌다는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소문으로 떠돌며 건축학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했었다.1987년경 파리 벨빌 건축학교에서 조직한 ‘티치노 건축투어’에 참가해 1주일 동안 티치노의 건축가들을 찾아 볼 기회가 있었다. 보타를 비롯해 루이지 스노치, 아우렐리오 갈페티, 리비오 바키니 등의 건축물을 둘러보면서 티치노에 오랜 건축의 전통과 문화적 풍토가 있어 왔음을 알게 됐다. 이 여행은 나의 건축가로서의 일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지어진 건물이 주변의 대지와 어우러지며 보여 주는 엄청난 힘이었고, 잘 지은 건물의 장인적 완벽함에서 풍겨 나는 아우라와 그것이 주는 감동이였다. 그때 나는 건축 이론과 역사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좋은 건물을 ‘짓는’ 것으로 귀결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나 역시 건물을 실제로 ‘짓는’ 건축가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마음속 깊이 새겨 두게 되었다. 1989년도로 기억한다. 교보생명의 신용호 회장이 오랜 노력을 통해 마리오 보타를 한국에 초청했고, 그 프로젝트에 참여할 건축가를 찾고 있었다. 당시 파리에서 일하고 있던 내가 연결됐고 면접 후 함께 일하기로 결정되면서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마리오 보타 부부를 만났다.보타는 일과의 대부분을 건축에만 집중한다는 사람이었으며, 실제로 건축주와의 미팅, 식사, 현장 방문 등 공식일정을 제외하고는 호텔방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든지 개인적인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보생명에서 보타를 초청한 이유는 부산에 교보빌딩을 설계하기 위해서였다. 보타는 그 사이트를 방문하고 업무협의를 마친 뒤 돌아갔다. 나 역시 파리로 돌아왔고 교보와 보타 사이의 연락 업무를 담당하며 월 1회씩 루가노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방문해 프로젝트 협의를 진행하게 됐다. 보타 사무실은 설계를 시작했고 몇 차례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몇 달이 흘러 갔지만 프로젝트는 쉽사리 진척되지 않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보고받은 신 회장은 내게 적극적으로 보타 사무실에 합류할 것을 독려했고, 결국 보타 사무실에 합류하여 부산 사옥과 서초동 사옥의 두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게 됐다. 스튜디오 보타에 도착했을 때 보타는 실장 역할을 하는 마우리치오 펠리와 인사를 시키고는 비어 있는 책상을 찾아서 여기서 작업하라고 한 뒤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작업 도구들을 챙기고는 여기저기 물어 물어 사무실 내부에 있는, 이 프로젝트와 관계 있는 자료들을 모두 파악했다. 며칠인가 지나서 드디어 보타가 나타났다. 그는 태연하게 마치 매일 보았던 것처럼 그동안의 진행 상황을 들여다보고는 코멘트하고 스케치도 하면서 첫 미팅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스튜디오 보타에서의 일은 시작됐다. 프로젝트는 한 달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됐다. 보타는 매우 직관적이고 핵심을 바로 짚어 가지만 또한 새로운 비전을 찾아내기 위해서 수많은 시도를 반복하는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을 지나며 프로젝트는 아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해 가기도 했다. 드디어 두 프로젝트가 1차적으로 마무리돼 가면서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약간 흥분할 정도로 좋은 제안들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보타도 매우 흡족해했고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도 모두 와서 둘러보고는 감탄을 연발했다 그 두 가지 안을 들고 한국으로 향해 신 회장을 만났다. 그분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가만히 두 프로젝트를 응시했다. 그분의 손이 약간 떨리고 있다고 느껴졌다. “음, 역시 좋아…. 이 두 프로젝트 모두 진행해야겠어.” 그렇게 1991년 교보생명 서초동 사옥과 부산 사옥의 설계가 시작됐다. 나는 약 1년 정도를 예상하고 스위스 루가노의 스튜디오 보타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됐다. 루가노는 매우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시였고 사무실 직원들도 매우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으며 일은 흥미롭게 진행됐다. 사무실의 최고참 마우리치오가 내게 귀띔했다. “프로젝트가 완료되기까지는 아마도 길고 긴 시간이 걸릴 거야.” 그의 말대로 대구 동성로 사옥과 서울 상계동 사옥이 추가되고, 특히 서초동 사옥이 우여곡절을 거치게 되며 4년을 보타 스튜디오에서 보내게 됐다. 그의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다. 티치노와 이탈리아 북부의 문화와 건축을 알게 되고 보다 친숙해질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보타와 함께 일하면서 나는 알게 모르게 그의 스타일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마리오 보타’ 이외의 도서는 ‘금지’돼 있었다. 직원들은 보타 특유의 언어에 익숙해 있었고 ‘마리오라면 어떻게 할지’를 추정하며 작업들을 진행했다. 심지어 마리오가 직원들에게 상당한 여지를 주는 것 같아도 프로젝트를 마칠 때면 모든 것이 항상 그의 뜻대로 돼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들려왔다. 그는 직원들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하도록 여지를 주면서도 끊임없이 그의 생각들을 발전시켜 갔고 본인이 만족할 만한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프로젝트를 끌고 갔다. 보타의 건축은 뚜렷한 형태 언어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언어가 구사된 그의 건축은 항상 그만의 뚜렷한 개성을 지닌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프로젝트들은 또한 그 대지와 프로그램들과 연결되어 매번 다른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그에게는 루이스 칸과 르코르뷔지에, 그리고 스카르파라는 스승이 있었고, 그는 이 셋의 탁월함을 자신의 건축 세계에서 조화롭게 펼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 역시 루이스 칸과 르두, 팔라디오 등에 대한 학창시절의 관심과 공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지만 보타의 건축을 이해하고 함께 일하면서 맥락을 같이할 수 있었고 좋은 소양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1995년 이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무실을 시작했다. 2005년인가 리움 관계로 서울을 방문한 보타와 재회하고 서울대에서 있었던 강연을 듣게 됐다. 보타와 그의 건축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에게 그 강연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내가 그의 사무실을 떠난 후 10년 사이 그는 건축 관련 미디어의 시야에서는 약간 멀어진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프로젝트들을 계속하며 여전히 마리오 보타라는 뚜렷한 특색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감탄과 경의를 되새기게 된 계기였다. 2011년 6월 이상각 남양성모성지 신부가 마리오 보타와 성당 설계를 진행하기를 원했다. 현장과 마스터플랜에 관한 자료들을 보내고 보타와 통화했다. 보타는 평소와는 달리 즉석에서 동의하고 8월 20일 성지를 방문했다. 10월 14일에는 이미 1차 제안이 도착했고 이어서 설계 계약이 이루어졌다. 최초의 요구사항은 3000석 수용 가능한 성당이었다. 보타는 경사면을 이용하고 지하에 위치하며 높은 두개의 타워가 있는 안을 제안했다. 그리고는 또 그 특유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2011년 8월 사이트를 처음 방문한 후 2014년 9월 설계를 마무리하기까지 3년에 걸쳐 거의 1~3개월마다 13회에 걸쳐 계획안을 발전시켜 왔다. 2014년에는 예산 문제로 3000석을 1200석으로 축소해야겠다는 신부님의 설계변경 요구가 있었다. 보타는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동조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안해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공사는 장학건설이 담당했다. 2017년 4월 1일(보타의 생일이기도 하다) 착공해 2020년 5월 공사가 완료됐다. 풍경 속에서 마치 땅에서 솟아난 듯 그 대지와 융합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진화를 거듭하는 보타의 저력을 보여 주는 강력한 작품이 긴 숙성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언덕에 자리잡은 성당을 바라보면 가슴 깊이 뜨거움이 느껴진다. 과정을 함께하며 보낸 긴 시간과 우리의 노력과 열정이 벽돌 한 장 한 장에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최근에 준공한 디어스 사옥은 마리오 보타를 닮지는 않았으나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과 또 ‘팔라디오’라는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작업이다. 그 장소의 특성과 자연의 빛, 그리고 공간의 깊이와 풍부함, 간결함과 강렬함, 질서와 변이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메타포를 지닌 공간적 장치’이다. 디어스 사옥으로 2019년 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것은 ‘짓는’ 건축가에게 큰 격려가 됐다. 건축가 한만원
  • [세상의 밑변] 삼성 상대 ‘부당해고 사과’ 받아낸 두 사람의 투쟁 이야기

    [세상의 밑변] 삼성 상대 ‘부당해고 사과’ 받아낸 두 사람의 투쟁 이야기

    “김씨 지키려고 노동자와 연대 뜻 이뤄 자부심” ‘삼성해고노동자공대위대표’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어떻게든 살아 삼성의 잘못을 고치고 싶었다”25m 높이 CCTV 철탑서 355일 농성 노동자 김용희씨‘철탑 위 인간 새.’ 세상은 355일간 서울 강남역 한복판 25m 높이의 폐쇄회로(CC)TV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한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61)씨를 이렇게 불렀다. 새둥지 같은 좁은 공간에서 김씨는 사계절을 보냈다. 김씨가 기습적으로 철탑에 오른 건 지난해 6월 10일 새벽 5시. 김씨가 95년 노조를 설립하려 한다는 이유로 2차 해고된 지 24년째 된 때였다. 당시 김씨는 삼성생명 빌딩 앞에서 부당해고에 대한 사과와 복직 요구를 위한 노숙 투쟁을 2년째 이어 오고 있었다. 단식투쟁도 여러 번 한 상태였다. 최근 서울신문과 만난 김씨는 “철탑에 오르기 일주일 전부터 단식을 시작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잠이 오지 않더라”면서 “철탑에 오른다면 다시는 살아 내려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삼성과 이미 싸워 봤기에,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철탑은 목숨을 건 김씨의 최후의 방법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달 29일 힘겨운 투쟁 끝에 삼성과 합의하고 지상에 발을 디뎠다. 철탑 위 김씨는 물론 지상에서 김씨를 위해 애쓴 동지들이 일군 승리였다. 서울신문은 김씨와 임미리(53)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를 만나 고공농성과 그 이후에 대해 들었다. 임 교수는 지난 4월 중순부터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대표직을 맡아 삼성과 막판 협상을 했다. ●진료 받으면 투쟁현장 못 갈까봐 병원 안 갔다 고공농성 해제 뒤 만난 김씨는 말끔했지만 야윈 얼굴을 가리진 못했다. 철탑에서 내려온 김씨는 바빴다. 전국 투쟁사업장을 찾아 연대 투쟁을 했고, 전태일 열사 묘역도 참배했다. 김씨는 “철탑에 홀로 있을 때 너무 외로웠다. 내려오자마자 전국에서 외로이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면서 “철탑 위에서 힘들 때마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삼성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렸지만 김씨는 “한 번 병원에 가면 그 뒤로 다시 투쟁 현장에 나서지 못하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철탑 위에서 수차례 곡기를 끊었다. 식사를 제대로 못 해 건강이 악화했다. 공황장애와 난청도 얻었다. 김씨는 25년간의 투쟁에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고 돌아봤다. 김씨는 1982년 삼성항공 창원 1공장에 입사했다. 1989년 경남 지역 삼성계열사 노조설립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1991년 1차 부당해고를 당했다. 1994년 복직됐지만 노조설립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년 만에 또다시 해고됐다. 김씨는 “인생을 통째로 바쳤다. 30대 초반에 해고돼 61살이 되어서야 끝났다”며 “올바른 정의가 배척당했다는 삶에 대한 분노가 때때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김씨의 희생은 삼성을 움직였다. 임 교수는 “김씨의 생명을 지키려는 여러 동지들의 연대로 삼성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게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삼성과의 협상 내용은 비공개 사안이다. 다만 삼성은 공개사과문에서 “김용희님은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그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며 “회사가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그보다 앞선 대국민 사과에서 경영권 승계 논란, 노사 문제 등을 사과하고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씨와의 고공농성 해제 합의는 그 구상의 첫 성과로 평가된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고공농성 초반에는 국회의원들이 김씨를 찾아오는 등 사회적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 덕분에 삼성과 몇 차례 협상을 위해 만났지만 양측의 간극이 커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철탑 위 김씨는 지쳐 갔다. 그러다가 지난 3월 임 교수가 김씨의 부탁으로 공대위에 합류하면서 삼성과의 협상 테이블이 다시 마련되기 시작했다. 임 교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김용희라는 노동자의 생명을 한시라도 빨리 구하려면, 김씨가 살아 내려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는 말처럼 다른 어떤 대의보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함께한 이재용씨 배척한 듯 해석돼 내게 상처 임 교수는 김씨의 고공농성을 외면하는 국내 언론 대신 외신에 적극 알렸고, 철탑 밑으로 내려올 수 없는 김씨를 대신해 이 부회장 집 앞 등에서 농성을 이어 갔다. 동시에 4월 말부터는 삼성과 협상안을 주고받으며 양측 이견을 조율했다. 임 교수는 “중간에 삼성의 연락이 잠시 끊겼을 땐 ‘김씨의 생명을 인질로 삼고 협상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고 회상했다. 기다림과 협상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임 교수는 “삼성 측의 지연이 의도적인 게 아니라 노사협상의 경험이 없느 데서 오는 서투름과 관료주의적 문화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협상에 나선 삼성 측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철탑 위 김씨가 보여 마음이 불편해 창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임 교수는 “삼성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노사 관계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일각에선 김씨의 투쟁을 곱게 보지 않는다. 김씨가 처음 고공농성을 시작했을 때 함께한 해고노동자 이재용씨에 대한 협상이 함께 이뤄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철탑 아래에서 김씨의 투쟁을 도왔던 이씨는 협상 타결 약 두 달 전 투쟁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김씨와 임 교수 모두 이러한 지적을 알고 있다. 김씨는 “이씨가 고향으로 내려간 사실을 철탑 위에서 뒤늦게 알았고 이후 삼성과의 협상에서도 이씨 문제 역시 의제로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잘되지 않았다. 그것이 이씨를 배척한 것으로 해석돼 일부 동지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내게도 상처”라고 했다. 함께 연대한 하성애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김씨와 이씨는 투쟁 방식에서도, 삼성과의 협상 요구 조건에서도 차이가 있었다”면서 “이번에 이씨 문제까지 해결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지만 그것이 김씨를 비난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했다.●연대 경험, 선례 되길… 동지 위해 힘쓸 것 김씨와 임 교수는 모두 “이번 승리가 앞으로의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임 교수는 “앞으로 직접적으로 투쟁에 뛰어드는 것은 다시는 없을 일이겠지만, 이번 투쟁은 우리 자신도 ‘오합지졸’이라 불렀을 만큼 노동운동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의 연대로 이끌어 나갔다”면서 “이 연대의 경험이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긴 투쟁 끝에 땅을 밟은 김씨 역시 ‘연대’를 먼저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철탑 아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 문제보다 삼성 암보험 문제가 먼저 해결되길 기도하고 기도했다. 부끄러워서 암 환우님들과 눈을 못 맞추겠다. 과천 철거민 문제에도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간 철탑에 있던 김씨를 아래에서 자기 일처럼 챙긴 보암모(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와 과천 철거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김씨는 자신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동지들의 연대와 애정, 관심 덕에 나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나 역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처럼 힘들게 싸우는 동지들을 위해 힘쓰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355일간 고공투쟁 이야기’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막판 협상 이끈 임미리 교수 인터뷰

    ‘355일간 고공투쟁 이야기’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막판 협상 이끈 임미리 교수 인터뷰

    삼성 상대로 부당해고 사과 받은 두 사람의 투쟁 이야기‘철탑 위 인간 새.’ 세상은 355일간 서울 강남역 한복판 25m 높이의 폐쇄회로(CC)TV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한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61)씨를 이렇게 불렀다. 새둥지 같은 좁은 공간에서 김씨는 사계절을 보냈다. 김씨가 기습적으로 철탑에 오른 건 지난해 6월 10일 새벽 5시. 김씨가 95년 노조를 설립하려 한다는 이유로 2차 해고된 지 24년째 된 때였다. 당시 김씨는 삼성생명 빌딩 앞에서 부당해고에 대한 사과와 복직 요구를 위한 노숙 투쟁을 2년째 이어 오고 있었다. 단식투쟁도 여러 번 한 상태였다.최근 서울신문과 만난 김씨는 “철탑에 오르기 일주일 전부터 단식을 시작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잠이 오지 않더라”면서 “철탑에 오른다면 다시는 살아 내려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삼성과 이미 싸워 봤기에,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철탑은 목숨을 건 김씨의 최후의 방법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달 29일 힘겨운 투쟁 끝에 삼성과 합의하고 지상에 발을 디뎠다. 철탑 위 김씨는 물론 지상에서 김씨를 위해 애쓴 동지들이 일군 승리였다. 서울신문은 김씨와 임미리(53)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를 만나 고공농성과 그 이후에 대해 들었다. 임 교수는 지난 4월 중순부터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대표직을 맡아 삼성과 막판 협상을 했다. 김용희 “나홀로 투쟁하는 동지들 돕겠다” 고공농성 해제 뒤 만난 김씨는 말끔했지만 야윈 얼굴을 가리진 못했다. 철탑에서 내려온 김씨는 바빴다. 전국 투쟁사업장을 찾아 연대 투쟁을 했고, 전태일 열사 묘역도 참배했다. 김씨는 “철탑에 홀로 있을 때 너무 외로웠다. 내려오자마자 전국에서 외로이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면서 “철탑 위에서 힘들 때마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삼성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렸지만 김씨는 “한 번 병원에 가면 그 뒤로 다시 투쟁 현장에 나서지 못하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철탑 위에서 수차례 곡기를 끊었다. 식사를 제대로 못 해 건강이 악화했다. 공황장애와 난청도 얻었다. 김씨는 25년간의 투쟁에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고 돌아봤다. 김씨는 1982년 삼성항공 창원 1공장에 입사했다. 1989년 경남 지역 삼성계열사 노조설립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1991년 1차 부당해고를 당했다. 1994년 복직됐지만 노조설립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년 만에 또다시 해고됐다. 김씨는 “인생을 통째로 바쳤다. 30대 초반에 해고돼 61살이 되어서야 끝났다”며 “올바른 정의가 배척당했다는 삶에 대한 분노가 때때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임 교수 “성역 같던 삼성 이겼다는 자부심” 김씨의 희생은 삼성을 움직였다. 임 교수는 “김씨의 생명을 지키려는 여러 동지들의 연대로 삼성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게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삼성과의 협상 내용은 비공개 사안이다. 다만 삼성은 공개사과문에서 “김용희님은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그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며 “회사가 그 아픔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그보다 앞선 대국민 사과에서 경영권 승계 논란, 노사 문제 등을 사과하고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씨와의 고공농성 해제 합의는 그 구상의 첫 성과로 평가된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고공농성 초반에는 국회의원들이 김씨를 찾아오는 등 사회적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그 덕분에 삼성과 몇 차례 협상을 위해 만났지만 양측의 간극이 커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철탑 위 김씨는 지쳐 갔다. 그러다가 지난 3월 임 교수가 김씨의 부탁으로 공대위에 합류하면서 삼성과의 협상 테이블이 다시 마련되기 시작했다. 임 교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김용희라는 노동자의 생명을 한시라도 빨리 구하려면, 김씨가 살아 내려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는 말처럼 다른 어떤 대의보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임 교수는 김씨의 고공농성을 외면하는 국내 언론 대신 외신에 적극 알렸고, 철탑 밑으로 내려올 수 없는 김씨를 대신해 이 부회장 집 앞 등에서 농성을 이어 갔다. 동시에 4월 말부터는 삼성과 협상안을 주고받으며 양측 이견을 조율했다. 임 교수는 “중간에 삼성의 연락이 잠시 끊겼을 땐 ‘김씨의 생명을 인질로 삼고 협상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고 회상했다. 기다림과 협상의 줄다리가 계속되면서 임 교수는 “삼성 측의 지연이 의도적인 게 아니라 노사협상의 경험이 없느 데서 오는 서투름과 관료주의적 문화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협상에 나선 삼성 측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철탑 위 김씨가 보여 마음이 불편해 창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임 교수는 “삼성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노사 관계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김용희의 투쟁은 계속된다 일각에선 김씨의 투쟁을 곱게 보지 않는다. 김씨가 처음 고공농성을 시작했을 때 함께한 해고노동자 이재용씨에 대한 협상이 함께 이뤄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철탑 아래에서 김씨의 투쟁을 도왔던 이씨는 협상 타결 약 두 달 전 투쟁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김씨와 임 교수 모두 이러한 지적을 알고 있다. 김씨는 “이씨가 고향으로 내려간 사실을 철탑 위에서 뒤늦게 알았고 이후 삼성과의 협상에서도 이씨 문제 역시 의제로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잘되지 않았다. 그것이 이씨를 배척한 것으로 해석돼 일부 동지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내게도 상처”라고 했다. 함께 연대한 하성애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김씨와 이씨는 투쟁 방식에서도, 삼성과의 협상 요구 조건에서도 차이가 있었다”면서 “이번에 이씨 문제까지 해결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지만 그것이 김씨를 비난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했다.김씨와 임 교수는 모두 “이번 승리가 앞으로의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임 교수는 “앞으로 직접적으로 투쟁에 뛰어드는 것은 다시는 없을 일이겠지만, 이번 투쟁은 우리 자신도 ‘오합지졸’이라 불렀을 만큼 노동운동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의 연대로 이끌어 나갔다”면서 “이 연대의 경험이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긴 투쟁 끝에 땅을 밟은 김씨 역시 ‘연대’를 먼저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철탑 아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 문제보다 삼성 암보험 문제가 먼저 해결되길 기도하고 기도했다. 부끄러워서 암 환우님들과 눈을 못 맞추겠다. 과천 철거민 문제에도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간 철탑에 있던 김씨를 아래에서 자기 일처럼 챙긴 보암모(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와 과천 철거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김씨는 자신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는 “동지들의 연대와 애정, 관심 덕에 나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나 역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처럼 힘들게 싸우는 동지들을 위해 힘쓰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여의도 회사 밀집 지역서 확진자 잇따라 발생해 ‘초긴장’

    여의도 회사 밀집 지역서 확진자 잇따라 발생해 ‘초긴장’

    서울 관악구 왕성교회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여파로 여의도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면서 일대 회사들과 국회의사당이 주시하고 있다. 27일 서울 자치구에 따르면 이날 확진 판정을 받은 20대 여성이 서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바로 앞에 있는 한국기업데이터(여의도동 15-23) 건물 지하 1층의 한 회사 사무실에서 지난 23~25일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여성은 25일부터 잔기침과 인후통 등 증상이 나타나면서 26일 영등포구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영등포구는 이 여성의 구체적인 동선과 접촉자 등을 보건당국과 함께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관악구 주민인 이 여성은, 왕성교회와 관련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26일에는 국회의사당역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현대캐피탈빌딩(여의도동 17-7)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이 건물의 현대카드 전산실에서 23~24일 파견근무를 나온 30대 남성이 26일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 남성은 24일부터 기침과 근육통 등의 증상이 있었고, 25일 관악구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이 확진자 역시 관악구 주민으로, 왕성교회 관련 감염으로 추정됐다. 두 확진자 모두 출퇴근 시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을 이용했다. 영등포구는 이 지역 일대에서 26~27일 방역 작업을 벌였다. 확진자들이 근무한 건물들은 국회의사당 바로 앞 의사당대로변에 있으며, 지하철역까지 끼고 있어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다.확진자들이 인근 식당이나 카페 등 밀폐돼 있으면서도 마스크를 벗게 되는 공간을 방문했다면 인근 기업이나 국회의사당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왕성교회 집단감염 등으로 관악구 등에서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역학조사 작업이 전보다 지체되고 접촉자 통보도 늦어지고 있어 방역당국의 우려가 크다. 방역당국과 관할 자치구들은 “확진자들과 근무지 등 동선이 겹치고 증상이 조금이라도 나타날 경우 즉시 인근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아 달라”고 당부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하동 섬진강문화재첩축제 7월 23~26일

    하동 섬진강문화재첩축제 7월 23~26일

    경남 하동군은 여름 대표 축제인 올해 제6회 ‘알프스하동 섬진강문화재첩축제’가 다음달 23~26일 백사청송(白沙靑松) 하동송림과 섬진강 일원에서 열린다고 25일 밝혔다.(사)알프스하동 섬진강문화재첩축제추진위원회는 지난 23일 회의를 열어 올해 축제개최 시기와 슬로건, 축제 기본방향 등을 확정했다. 올해 축제 슬로건은 ‘힐링(Healing)! 알프스하동! 찾아라! 황금재첩’으로 정했다. 축제 기간은 지난해 보다 하루 늘었다. 축제추진위는 ●전통 재첩잡이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추진과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문화관광축제 기반 마련 ●섬진철교∼섬진교 축제 공간 확대를 통한 프로그램 다변화와 가족단위 관광객 체험 프로그램 확대 ●섬진강을 활용한 체류형 관광과 휴(休)의 여름 대표 힐링축제 등을 올해 축제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이같은 기본 방향에 맞춰 대표·재첩·공연·수상·모래·연관행사 등 35개 프로그램을 4일간 진행한다.군은 섬진강 전체를 아우러는 하동지역 특색있는 종합관광 축제로 개최해 알프스 하동의 이미지를 드높이는 글로벌 축제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군에 따르면 알프스하동 섬진강문화재첩축제는 2020~2021년 정부지정 문화관광 예비축제에 올랐다. 하동군은 섬진강문화재첩축제를 5년안에 정부지정 문화관광축제에 선정되는 것을 목표로 육성·발전시켜나가겠다고 밝혔다. 개막식 행사로 군 특수 비행팀 블랙이글스 에어쇼에 이어 ‘하동 전통 재첩잡이’ 섬진강문화 재첩축제 주제공연, 불꽃놀이 등 다양한 축하행사가 펼쳐진다. 축제 첫날 특별 행사로 하동송림공원 입구에 조성된 알프스하동 하모니파크 개장식도 열린다. 재첩 프로그램으로는 ‘황금재첩을 찾아라’, ‘전통 재첩잡이 체험’, ‘재첩모형 알까기’, ‘도전, 재첩 무게를 맞춰라’, ‘젓가락으로 재첩 빨리 옮기기’ 등이 진행된다.공연 프로그램은 개막축하쇼, 하동청년회의소의 치맥페스티벌, 군민 화합한마당 가요제, 제9회 정두수가요제, 플라잉보드쇼, 보디빌딩 및 뷰티바디 시범경기 등이 마련된다. 시원한 섬진강에서 즐기는 수상프로그램으로 물놀이장 및 워터슬라이드, 바나나보트, 제트보트 타기 등을 매일 진행한다. 강 주변에서는 전국 모래조각 경진대회, 재첩요리 경연대회, 숲속 영화관 상영, 모래 미끄럼틀 타기, 야간카페 등이 열린다. 축제기간 연관 프로그램으로 D-Sports 코리아 마스터스리그 드론대회, 전국생활체육 복싱왕 대회, 씨름대회, 영호남 사회인야구 최강전 등이 개최된다. 녹차꽃빵 판매관, 지리산 공기캔 홍보관, 재첩판매장, 특산물판매장, 향토음식관, 알프스푸드마켓존, 각종 체험부스 등 부대행사를 비롯해 볼거리·체험거리도 풍성하다. 이수영 축제추진위원장은 “코로나19 예방 정부 방침에 따라 감염병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축제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비접촉 시대 주목받는 생체인식 기술, 얼마나 발전했을까?

    비접촉 시대 주목받는 생체인식 기술, 얼마나 발전했을까?

    행정안전부는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디지털 정부혁신을 앞당긴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모바일 신분증 도입과 온라인 교과서 확대, 국민비서 도입 등으로 비대면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비접촉 서비스의 수요가 급증하며 비접촉 생체인식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사실 홍채나 얼굴 등을 인식하는 기술은 이미 개발됐지만 정확도나 인식 속도 등의 문제로 대중화의 급물살은 타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할 수 있는 주요 기술로 떠오르면서 IoT(사물인터넷)나 AI(인공지능) 등 4차산업혁명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보안시장 역시 PIN 번호와 카드키 등 기존 방식에서 사용자의 신체적 특징을 활용한 생체인식 방식으로 가파른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비접촉 생체인식 기술로는 얼굴(안면) 인식, (손바닥)정맥 인식, 홍채 인식, 지문 인식 등이 있으며, 최근 두 가지 이상의 인식 기술을 활용한 멀티 생체인식 방식으로 편의성과 보안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크루셜트랙’은 2017년 설립한 이래 비약적인 기술 발전과 더불어 생체인식 기술 분야를 선도하며 주목받고 있다. 비접촉 방식의 복합 생체인증의 세계 최초 특허를 보유한 크루셜트랙은 안면과 홍채, 지문, 장정맥의 4가지 생체정보를 복합으로 인식한다. 0.5초 이내에 사용자 식별과 정보를 처리하는 신속성을 갖춘 ‘BACS 시리즈(BACS Quattro, BACS Duo, BACS 스마트도어 등)’를 출시, 세계 최대 규모의 보안 전시회인 ‘ISC West’에서 2017년과 2019년에 ‘올해의 신제품’수상하며 제품의 혁신성과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또한 일본과 미국, 독일, 중국, 멕시코, 싱가포르, 홍콩 등 해외에서도 러브콜을 받아 17개국 100여 곳에 제품을 설치했으며, 지난 3년간 국내외에서 2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해 글로벌 생체인식 기술을 선도할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크루셜트랙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사의 100% 비접촉 생체인증 솔루션 BACS 시리즈에 대한 문의와 주문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라며 “차량 및 운전자 관리 분야, 스마트 빌딩 & 팩토리 산업으로 기술력을 확대해 2022년 매출 1억불 및 상장을 목표로 한다”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워서

    우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워서

    여행지에서 하룻밤 머물면 그곳이 더 잘 보인다. 야경까지 좋다면 금상첨화다. 한국관광공사가 7월에 가볼 만한 곳을 선정했다. ‘야간여행’이 테마다. 낮과는 사뭇 다른 매력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들이다.①달빛 아래 누리는 고궁의 정취-수원 화성행궁 경기 수원 화성행궁은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곳이다. 고즈넉한 고궁의 정취를 즐길 수 있게 야간에도 개장한다. 봉수당은 실내에 부드러운 빛이 어려 신비로움을 더한다. 낙남헌 앞에는 환한 보름달을 형상화한 ‘달토끼 쉼터’가 있다. 숲속에 들어앉은 미로한정 부근에서는 가지런한 궁궐 지붕과 현란한 도시 불빛이 어우러진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수원 화성도 밤이면 화려하게 변신한다. 도심을 감싸는 5.5㎞ 성곽에 조명이 들어와 더 웅장하다. 화성행궁을 등지고 서면 오른쪽에 아기자기한 공방거리가, 왼쪽에 나혜석 생가터가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화성행궁 건너편에 오랜 명성을 이어온 수원통닭거리가 있다. 다만 수도권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두 곳 모두 한시적으로 휴관 중이다. 개장 일정을 확인한 뒤 찾는 게 좋겠다. ②백제로의 시간 여행 ‘부여 궁남지·정림사지’ 백제의 세련미와 애잔함이 가득한 충남 부여 궁남지와 정림사지는 한여름 야경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곳이다. 궁남지는 백제 왕실의 별궁 연못이다. 백제 무왕 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여름에는 치렁치렁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흩날리고, 거대한 습지에서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연꽃이 핀다. 밤이면 연못 안 포룡정 일대에 조명이 들어와 반짝반짝 빛난다. 정림사는 백제 성왕이 사비성(부여)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그 중심에 세운 사찰이다. 인적이 뜸한 밤에 조명이 켜진 정림사지는 적막하고 고요하다.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9호) 아래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석탑이 우주와 소통하는 듯 신비롭다. 드라마 촬영 명소인 서동요테마파크,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보낸 무량사, 많은 연인이 인증 사진을 남기는 가림성(성흥산성) 사랑나무 등도 둘러보자. ③열대야 잊어 ‘안동 월영교·낙동강 음악분수’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도시’ 경북 안동은 야경도 남다르다. 올해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야간 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린 월영교는 전통미가 아름다운 야경을, 역동적인 낙동강음악분수는 현대미가 두드러진 야경을 선보인다. 월영교는 길이 387m, 너비 3.6m 목책 인도교다. 밤이면 경관 조명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주말에는 분수를 가동해 시원함을 더한다. 월영교에서 자동차로 5분쯤 가면 낙동강음악분수를 만난다. 화려한 조명과 레이저, 음악이 어우러진 분수 쇼가 여름밤 무더위를 씻어 준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도 많다. 월영교 인근의 안동민속촌은 안동댐 수몰 지역의 고택을 옮겨 온 곳이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머물 때 종종 찾았다는 영호루, 세계적인 그라피티 아티스트 심찬양 작가의 작품으로 다시 주목받는 신세동벽화마을은 낙동강음악분수와 가깝다. ④한여름 밤의 피크닉 ‘강진 나이트드림’ 전남 강진에 가면 여름밤의 로맨틱한 여행이 기다린다. 버스를 타고 강진의 인기 여행지를 둘러보고, 지역민이 참여하는 공연도 즐기는 ‘나이트드림’이다. 출렁다리로 유명한 가우도를 산책하고 저녁엔 읍내 사의재에서 마당극을 관람한다. 다양한 등장인물 모두가 지역민이다. 배우와 관객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한바탕 춤판을 벌인다. 마지막 목적지 세계모란공원에서 여름밤의 피크닉이 시작된다. 닭강정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지역 예술가들이 준비한 야외 공연을 관람한다. 지난봄 동백꽃이 흐드러졌던 정약용 유적에는 짙푸른 녹음이 내려앉았다. 유적 내 다산초당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백련사가 보인다. 강진만생태공원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에 눈도, 마음도 시원스럽다. ⑤감미로운 유혹 ‘통영 밤바다야경투어’ 미항(美港) 경남 통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경 여행지다. 통영관광해상택시를 타고 밤바다를 돌아보는 ‘통영밤바다야경투어’는 통영의 밤을 책임지는 최고의 선택이라 할 만하다. 도남항에서 출발해 통영운하를 따라 강구안과 충무교, 통영대교를 지나 도남항으로 돌아온다. 투어 시간은 50분 남짓. 입담 좋은 항해사가 들려주는 통영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금~일요일, 공휴일에 운항한다. 10인 이상 예약하면 평일에도 야경투어를 즐길 수 있다. 야경으로 만난 통영 앞바다를 한눈에 담고 싶다면 통영케이블카가 정답이다. 옥상전망대와 스카이워크가 마련된 상부역사에서 미륵산 정상까지 산책로가 조성됐다. ⑥화려하고 짜릿한 ‘부산 송도·초량이바구길’ 부산의 여름밤을 즐기고 싶다면 송도해수욕장이 제격이다. 해변 동쪽에 조성된 송도구름산책로는 출렁이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경험을 선사한다. 밤이면 송도구름산책로가 주변 야경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부산의 대표 도보 여행 코스인 초량이바구길도 밤에 가면 색다른 재미가 있다. 약 2㎞ 이어진 골목을 걸으며 부산의 근현대사를 엿본다. 초량이바구길의 명물인 168계단에 올라가면 옹기종기 모인 집과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한 빌딩이 근사한 야경을 선사한다. 아케이드가 설치된 시장 안에 먹거리가 많다. 암남공원은 청량한 숲길과 푸른 바다를 동시에 누리는 힐링 포인트다. 6월 초 암남공원과 동섬을 잇는 송도용궁구름다리가 개통됐는데, 벌써 부산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글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 “아프면 쉬세요” 안내하는 콜센터 직원, 아파도 출근했다가 확진

    “아프면 쉬세요” 안내하는 콜센터 직원, 아파도 출근했다가 확진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4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전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선유동 이레빌딩에 위치한 공단 콜센터 직원 30대 남성 A씨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건물 7~9층은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서울센터가 입주해 있고, A씨는 9층에서 근무했다. 이곳엔 층별로 약 130명의 상담사가 근무하고 있는데, 이들은 코로나19 관련 1339 상담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A씨는 지난 16일 기침과 인후통 증상을 느꼈다. 16일 당일은 예정된 연차를 썼고, 17~18일은 미리 계획하지 않은 연차인 ‘사고연차’를 썼다. 사고연차는 상담사 개인 평가와 인센티브, 팀 평가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증상이 호전됐다고 생각하고 19일 출근해 정상근무했고 집에서 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인 22일에도 출근했다. 그러나 출근한 직후 몸이 좋지 않자 팀장에게 보고하고 구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진단검사를 받았다. 해당 콜센터는 현재 폐쇄된 상태로 해당 건물은 방역을 실시했다. 콜센터 직원 전원은 인근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자택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논평을 내고 “(코로나19) 1339 상담을 하면서 몸이 안 좋으면 집에서 쉴 것을 안내하는 상담사가 정작 본인이 아플 때에는 눈치가 보여 상담전화를 받으러 나가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새 광화문광장 내년 8월 완공 로드맵… 박원순 대선 세몰이하나

    새 광화문광장 내년 8월 완공 로드맵… 박원순 대선 세몰이하나

    朴시장 “시기 연연 안 해… 착공 무기 연기” 각계 의견 듣고 올해 2월에 수정안 내놔 5월 간부들에 “흔들림 없이 조속 추진을” 市 새달까지 교통평가·규제심의 끝내기로서울시가 정부와 시민단체, 주민 반발로 무기한 연기했던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을 오는 8월 공사 발주를 시작으로 내년 8월 완공하는 로드맵을 마련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식 대선 출마 전에 광장 재조성을 끝내 ‘대선 세몰이’에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22일 서울시 도시재생실의 ‘새로운 광화문광장 현안 사항 보고’에 따르면 광장 동측(교보빌딩·KT빌딩 쪽) 도로는 8월 초 공사 발주, 9월 착공, 12월 완공 예정이다. 광장 서측(세종문화회관 쪽)은 12월까지 문화재 발굴 조사를 마무리한다. 7~9월은 보도구간, 9~12월은 도로구간을 발굴 조사한다. 오는 12월부터 내년 8월까지 9개월간 광장 재조성을 한다. 1단계로 12월부터 내년 4월까지 광장 남측인 세종대로 사거리~세종문화회관 약 300m 구간을, 2단계로 내년 4월부터 8월까지 광장 북측인 세종문화회관~정부서울청사 약 150m 구간을 재조성한다. 시는 로드맵대로 추진하기 위해 다음달 말까지 교통영향평가와 교통규제심의를 모두 마칠 계획이다. ●역사광장 백지화… 예산 1229억→700억으로 서울시는 2018년 4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세종대로 왕복 10차로를 6차로로 줄여 광장 면적을 현재보다 3.7배로 넓히고, ‘역사광장’과 ‘시민광장’을 만드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 시민단체, 인근 주민들이 소통 부족, 교통대란 등을 지적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박 시장은 지난해 9월 “사업 시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사업 착공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후 시민 속으로 들어가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었다. 의견 청취를 토대로 지난 2월 수정안을 내놨다. 사직·율곡로를 없애고 역사광장을 조성하려던 당초 계획을 백지화했다. 사업이 축소돼 예산도 당초 1229억원(역사광장 742억원·시민광장 487억원)에서 약 700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대선 출마하려면 내년 12월 9일 전 사퇴해야 시 안팎에선 그간 박 시장의 대선 지지율에 영향을 미칠 3대 요소로 제로페이 흥행 여부와 미세먼지 대책 효과 유무, 새 광화문광장 조성이 꼽혀 왔다. 소상공인 카드 수수료 제로(0)를 내세운 제로페이는 전국적인 관심을 끌며 카드사 수수료 인하를 견인했다. 전국 최초로 도입한 ‘미세먼지 시즌제(계절 관리제)’도 지난해 12월~올 3월 초미세먼지(PM 2.5) 평균 농도를 전년 동기보다 20% 낮추는 데 기여했다. 남은 건 광화문광장 재조성뿐이다. 박 시장의 완공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박 시장은 지난달 말 간부들에게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을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계획에 따라 행정 역량을 집중해 조속히 추진해 달라”고 지시했다. 박 시장이 2022년 3월 9일 치러질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내년 12월 9일 전까지 물러나야 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선거일 90일 전에 사퇴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 재조성은 박 시장에게 약(藥)이 될 수도,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완공 뒤 시민 눈높이를 충족한다면 공사 기간 초래된 교통 불편은 일소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계천’ 같은 효과가 대선 국면에 재현되겠지만, 기대 이하라면 박 시장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영상 제출하세요”...보디빌딩대회도 온라인으로 개최

    “영상 제출하세요”...보디빌딩대회도 온라인으로 개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보디빌딩대회’가 진행된다. 22일 대한보디빌딩협회는 “코로나19로 지쳐있는 선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새로운 형식인 ‘온라인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라며 “비대면 방식으로 개최해 일반인들이 직접 온라인을 통해 대회를 지켜보도록 했다”고 밝혔다. 보디빌딩협회가 준비하는 ‘2020년 코로나19 예방 집콕 온라인보디빌딩대회’는 선수들이 직접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신의 동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예선이 시작된다. 촬영본은 오는 29일까지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뒤 협회 공식 메일로 동영상 및 SNS 업로드 캡처본 등을 제출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임플란트 또는 액상주사를 사용해 근육 또는 신체의 자연적인 형태를 변형하는 것을 할 수 없도록 금지된다. 오일 사용도 실격처리된다. 참가 자격은 2020년도 선수등록을 마친 전문 선수다. 일반부(5체급), 고등부(2체급), 대학부(2체급), 남자 피지크(2체급), 여자 보디피트니스(2체급), 여자 비키니 피트니스(2체급)로 나누어 진행된다. 오는 29일까지 동영상을 올리면 인기도(좋아요)로 종목별 상위 8명을 선발해 결선에 나설 자격을 준다. 인기도가 동률이면 협회에서 심사해 결선 진출자를 결정한다. 종목별 상위 8명을 대상으로 7월 4일 오후 1시부터 유튜브 ‘리얼빌더송기석’ 채널을 통해 결선이 치러진다. 결선은 선발된 종목별 선수 8명의 동영상을 협회에서 4명씩 나눠 편집해 이를 5명의 심사위원이 유튜브 중계로 심사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보수단체 선점에…28년 만에 수요시위 자리 옮긴다

    보수단체 선점에…28년 만에 수요시위 자리 옮긴다

    “수요시위 장소 선점한 것은 처음” 28년 동안 매주 옛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수요시위가 보수단체의 위치 선점으로 자리를 처음 옮기게 됐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보수단체 자유연대는 오는 23일 자정부터 7월 중순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집회 신고를 해둔 상황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정의기억연대는 돌아오는 수요일인 24일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원래 장소 대신 남서쪽으로 10m가량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 무대를 만들고 시위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연대의 반대 집회는 평화의 소녀상 근처에서 열린다. 최근 자유연대 등이 종로경찰서 인근에 상주하면서 매일 자정이 되면 집회 신고를 하는 터라 이런 상황은 한동안 이어질 것 전망이다.수요시위는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에 앞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회원 30여명이 1월 8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서 연 집회를 시초로 한다. 이후 28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매주 수요시위가 열렸다. 2011년 12월 1000번째 수요시위를 기념해 평화의 소녀상이 들어섰고, 2015년 7월에는 일본대사관이 건물 신축을 위해 뒤편 빌딩으로 이전하는 등 주변 모습은 조금 달라졌지만 시위는 수요일 정오마다 열렸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자발적으로 집회를 열지 않았던 경우 정도를 제외하면 수요시위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지 않은 일은 없었다. 이 일대 집회·시위 신고를 담당하는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수요시위 장소를 다른 단체가 선점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 같다”고 말했다.두 집회 사이 완충지대 확보할 듯 경찰 관계자는 “집회 신고가 잘 중재되지 않고 있다. 두 집회 사이에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등 현재는 최대한 마찰을 방지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자유연대 등이 공공조형물인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한다는 발언을 하고 있어서 종로구에서 시설 보호 요청을 해 왔다. 일단 자유연대 측에 소녀상에서 1~2m 떨어져 집회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분간은 경찰이 소녀상 주위를 일종의 완충지대로 비우는 방식으로 현장을 통제하고, 소녀상 양쪽 옆 공간에서 정의연과 자유연대 등이 각각 집회를 여는 형식이 될 전망이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테일러상회’ 이야기

    [근대광고 엿보기] ‘테일러상회’ 이야기

    일제강점기 서울에 ‘테일러상회’라는 무역업체가 있었다. 사무실이 서울 태평로, 현재의 한화손해보험빌딩 자리와 조선호텔 맞은편인 현재의 한국은행 후문 쪽 두 곳에 있었는데 태평로 사무실은 앨버트 테일러가, 조선호텔 앞 사무실은 앨버트의 동생 윌리엄 테일러가 운영했다. 테일러상회는 자동차, 시계, 축음기, 타자기, 샤프 연필 등을 수입해 판매하고 골동품도 매매했으며 영화를 배급하는 일도 했다. 위의 광고는 테일러상회가 수입한 미국 시보레 자동차 광고다. 윌리엄이 자동차 판매를 전담한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입자동차 딜러인 셈이다. 윌리엄은 시보레뿐만 아니라 포드와 제너럴모터스의 차종들도 취급했다. 당시 일본에는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진출해 부품을 가져와 조립하는 녹다운방식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했다. 일본에서 생산된 자동차가 조선에 수입된 것이다. 서울 서대문 돈의문 박물관마을에는 테일러상회 전시실이 있다. 형제는 무역업으로 돈을 벌어 조선호텔 옆에 빌딩 몇 채도 사들여 소유했다. 앨버트 테일러는 금광 기술자이던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1917년 한국에 들어왔다. 입국 직전에 결혼한 부인도 함께 왔다. 앨버트는 나중에 함남 안변 음첨골에서 금광을 경영했다. 서울에서 AP통신 통신원으로도 일하던 앨버트는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아들을 출산한 부인 곁에 있다가 독립선언서를 간호사들로부터 얻어 손에 넣게 된다. 앨버트는 구두 굽에 선언서를 숨겨 갖고 나와 윌리엄에게 건넸고 윌리엄은 일본으로 가서 형이 쓴 기사에 덧붙여 송고했다. 앨버트는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도 취재 보도했다. 앨버트 부부는 1923년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딜쿠샤’라는 이름을 붙인 2층 저택을 지었다. 그러나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한 뒤 서울에 거주하던 서양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거나 가택에 연금시켰다. 앨버트 부부도 수용 생활을 한 뒤 1942년 미국으로 추방당했다. 광복이 되자 앨버트는 한국으로 오려고 수소문했는데 도중에 1948년 미국에서 사망했다. 윌리엄은 일제의 압박을 피해 만주로 나갔다가 광복 후 입국해 딜쿠샤에 살다가 집을 팔고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딜쿠샤는 2005년에야 앨버트가 살았던 집으로 확인됐고 앨버트 가족의 사연도 알려졌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난 아들 브루스 테일러는 2006년 한국을 방문해 딜쿠샤를 찾았다. 그도 2015년 세상을 떠났다. 딜쿠샤는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서울시가 막바지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LG전자 채용비리’ 수사 경찰, 자료 확보에 난항

    ‘LG전자 채용비리’ 수사 경찰, 자료 확보에 난항

    14시간 압수수색…다중 보안망 걸림돌LG전자, 인사·채용 자료 임의제출 거부LG전자 채용비리 혐의를 수사하는 경찰이 인사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에 필요한 채용 관련 자료 파일에 접근하려면 이중, 삼중의 보안을 풀어야 하는데다 LG전자 측이 임의제출에도 협조하지 않고 있어서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1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서울 중구 LG서울역빌딩에 있는 LG전자 한국영업본부 인사팀과 마포구 상암동의 LG CNS 사무실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지난달 15일에도 같은 장소를 1차 압수수색해 부정채용 대상자의 이력서와 채점표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부정채용 대상자 명단 등을 찾으려고 14시간 동안 2차 압수수색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추가 자료 확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파일 하나하나에 이중, 삼중의 암호가 걸려 있어 수색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LG전자 측과 일정을 조율해 오는 22일쯤 압수수색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2차 압수수색에 앞서 LG전자에 인사팀 평가자료 등을 자발적으로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해 추가 압수수색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 2013~2015년 LG전자 임직원이 청탁을 받고 합격선에 못 미치는 일부 지원자를 부정 채용한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11일 LG전자 전직 사장 A씨를 입건하고, 지금까지 이 회사 인사팀 관계자 10여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경찰, 채용비리 혐의 LG전자 2차 압수수색

    경찰, 채용비리 혐의 LG전자 2차 압수수색

    경찰이 18일 채용비리 혐의와 관련해 LG전자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날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서울 중구 LG서울역 빌딩에 있는 LG전자 한국영업본부 인사팀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 중이다. 신입사원 채용기준, 평가 서류, 연도별 채용인원 등 인사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LG전자에 해당 자료를 임의제출하도록 요청했지만, LG전자가 이를 거부해 다시 영장을 발부받았다. 앞서 1차 압수수색에서는 인사팀이 부정채용한 직원을 정리한 명단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당국은 임직원 수명이 개입해 10여명이 부정채용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복숭아털, 까슬거려 싫으신가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복숭아털, 까슬거려 싫으신가요

    내 작업실 바로 옆에는 작은 복숭아밭이 있었다. 복숭아가 익어 가는 이맘때면 주변에 늘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퍼졌고, 나는 그 향기가 좋아 부러 그곳을 지나쳐 작업실로 왔다. 복숭아밭 주인은 복숭아가 다 익는 7월이면 내게 까만 봉지를 쥐여 줬다. 멍이 살짝 들어 판매가 어려운 것이라며 “생긴 건 이래도 맛은 있다”는 말과 함께. 봉지를 열면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퍼지고 그 안엔 분홍빛이 살짝 든 복숭아 여덟 알 정도가 있었다. 그것은 며칠 안에 금세 먹어 치울 만큼 달콤한 맛이었다. 그 복숭아는 털이 참 많아 씻으려고 손에 쥐면 유난히 까슬거려 물로 여러 번 문질러 닦아야 했다. 겉이 반지르르해진 복숭아를 껍질도 까지 않고 베어 물며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하던 시절. 나는 매년 여름이면 그때를 추억한다. 몇 년 전 신도시가 들어서며 복숭아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거대한 빌딩이 우뚝 서 있다.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과일 유통 일을 담당하는 학교 선배를 만나 과일 이야기를 하다가 그 복숭아밭 이야기를 꺼냈더니, 선배는 그 복숭아에 털이 유난히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 줬다. 유통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털이 빠지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사람들이 털 많은 복숭아를 싫어하기도 하고,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꽤 많기 때문에 포장할 때 복숭아털을 최대한 털어 주거나 표면을 장갑 낀 손으로 닦아 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복숭아밭에서 갓 딴 복숭아에 털이 유난히 많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소비자의 기호가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털이 없는 천도복숭아와 달콤한 털복숭아의 장단점을 보완한 품종도 육성되고 있다. 도시 원예식물의 형태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변해 가는데, 사람들이 복숭아의 털을 싫어하니 복숭아라는 과일은 이제 점점 털이 없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2년 전 농촌진흥청에서 육성한 신품종 복숭아 ‘유미’를 그리면서 복숭아의 털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복숭아는 우리가 먹기 전 보는 복숭아보다 표면에 털이 많아 그 털이 표면의 색을 뽀얗게 만들어 아무리 진하게 채색해도 생각하는 것만큼 뚜렷한 색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지에 달린 복숭아 그대로를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복숭아에는 왜 털이 있는 것일까, 이 털은 기존에 그렸던 다른 식물들의 털과 얼마나 다른 역할을 하는 걸까 고민했다. 학자들은 복숭아털이 곤충과 물로부터 열매를 보호한다고 말한다. 복숭아는 다른 과일에 비해 껍질이 현저히 얇다. 오렌지, 사과, 수박 모두 복숭아에 비할 수 없고, 이것은 복숭아가 다른 열매에 비해 동물로부터 공격당하기 쉽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달콤한 과육을 먹으려 얇은 과피를 찢고 들어오는 곤충으로부터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복숭아는 얇은 껍질과 함께 밀생하는 따가운 털도 갖게 됐다. 또한 털은 열매의 수분 손실을 막아 주고 열매가 비에 젖지 않도록 한다. 복숭아는 따뜻한 중국 남부 지역에서 역사가 시작됐고, 이러한 건조한 환경에서 복숭아털은 내부 수분 손실을 막아 열매의 수분 함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 비가 와도 털이 표면장력을 높여 빗물이 흡수되는 것을 막아 열매가 젖어 썩지 않도록 한다. 게다가 유통업자들은 복숭아에 털마저 없었다면 유통 시 더 쉽게 손상될 거라고 이야기한다.식물을 그리다 보면 수많은 형태의 털을 만난다. 털은 계속 만지고 싶을 만큼 부드럽거나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따갑기도 하고, 10㎝에 가깝게 길거나 아주 짧기도, 온몸에 밀생하거나 특정 부위에 집중되기도 한다. 식물마다 털이 존재하는 이유는 형태만큼 제각각이지만 대개 털은 식물을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작년에 그렸던 섬노루귀는 온몸에 흰 털이 밀생하는데, 이 털은 바람이 많이 부는 섬에서 바람에 대한 저항성을 높여 준다. 복숭아의 털이 내게 주는 따가움, 까슬거림이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은 안쓰러움, 가여움이란 감정으로까지 번진다. 식물의 형태는 언제나 그들의 살아온 역사를 말해 주기에 나는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며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게 나는 복숭아의 털마저 좋아하기로 했다. 며칠 전 마트에서 올해 처음 출하한 비닐하우스 재배 복숭아를 만났다. 이제 복숭아의 계절이 시작됐다. 따가운 털을 움켜쥐어야 비로소 달콤한 과육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복숭아라는 과일을 먹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아닐까 싶다.
  • “변화의 공간… 광주정신은 ‘갱번문화’가 밑바탕”

    “변화의 공간… 광주정신은 ‘갱번문화’가 밑바탕”

    “광주정신은 ‘신창동’서 비롯” 주장 오늘 ‘AI 문화 콘텐츠 포럼’서 연설“‘광주 정신’은 조석으로 변하는 ‘갱번(강변) 문화’와 뿌리가 맞닿아 있습니다.” 이윤선(57)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5·18민주화운동과 접목된 광주 정신이 선사시대 정착촌인 광주 광산구 ‘신창동’에서 비롯됐다”고 이색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 전문위원은 “광주 등 남도인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영산강 상류권 신창동은 상고시대엔 강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은 땅으로, 밀물과 썰물이 매일 반복되는 ‘변화’의 공간이었다”며 “신창동은 이 지방의 대표 갱번이고, 이곳에 삶의 터전을 둔 사람들은 매일 변화하는 환경을 체득하며 살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곳 일대의 자연환경은 ‘주역’을 빌려 말한다면 ‘대대(待對)의 공간’”이라며 “삶 속에 변화가 내재화하면서 영구한 주인도, 영구한 종도 인정하지 않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광주 정신과 맞닿았다”고 주장했다. 신창동은 지석강, 극락강, 황룡강 등으로부터 영산강 줄기를 따라 지금의 다도해에 이르는 공간의 총체라고 덧붙였다. 광주 정신은 순환하지 못하고 정체된 것들에 대한 바로잡기 정신과 통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는 광주 정신을 ‘혁명’이란 용어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동학, 광주학생독립운동, 4·19, 5·18로 이어지는 광주 정신의 밑바탕은 갱번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위원은 트로트계의 톱스타로 도약한 ‘송가인 신드롬’을 판소리와 씻김굿, 당골(무당) 등 남도의 전통문화에서 뿌리를 찾았다. 그는 “송가인은 트로트 테크닉인 꺾기의 달인”이라며 “송가인의 꺾기는 진도 무악(씻김굿)의 대가인 고 박병천의 ‘시김새’와 통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창동과 송가인의 노래 바탕에 흐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내고 재구성하는 게 인공지능(AI) 기술이고, 이를 아시아문화 담론의 화두로, 인류의 근간을 독해하는 기술로 확장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18일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지원포럼’ 주최로 전일빌딩 245에서 열리는 ‘AI 문화 콘텐츠 포럼’에서 이런 내용의 주제발표를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이 AI 기술을 활용해 설화·전설 등을 ‘킬러 콘텐츠’로 육성하기 위해 마련한 포럼이다. 전남 진도가 고향인 이 위원은 어려서부터 농악, 북춤 등을 익히면서 전남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목포대에서 민속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특히 섬과 민속, 민요 등 전통문화 연구에 몰두해 왔다. ‘순칭록과 진도 풍속’ 등 10여권의 저서를 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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