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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남부시장 빈 점포 무료임대

    대구의 한 전통시장이 불황 탈출을 위해 빈 점포 무료임대 사업에 나서 호응을 얻고 있다. 대구 남부시장 상인연합회는 이달 초 시장 안에 방치됐던 빈 점포 45곳의 임대수입을 포기하고 무료로 내놓자 20일 만에 40개 점포가 계약, 개점 준비에 들어갔다고 21일 밝혔다. 1년간은 무료이고 다음 1년은 한 달에 4만~5만원 정도의 관리비만 받을 계획이다. 상인연합회가 이런 파격적인 조건을 내놓은 것은 십수년째 침체 일로를 걷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획기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박종석 남부시장 상인연합회장은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시장 인근에 대형 소매점이 들어서면서 전통시장을 이용하던 손님이 많이 빠져나가 시장이 위축됐다.”며 “상인들도 속속 시장을 떠나면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수년째 비어 있는 점포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말했다. 상인연합회는 빈 점포를 청소하고 지역 미술대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건물 외관에 그림을 그려 산뜻한 모습으로 바꿔 놓았다. 행정기관도 지원에 나섰다. 대구 남구는 개점 예정 가게에 간판을 무상 지원하고 상점가 주 통로 140m 구간에 비가림 천막을 새로 설치, 손님들의 편의를 돕기로 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서울 남산 등 7곳에 예술 창작공간

    서울 남산 등 7곳에 예술 창작공간

    올 하반기 예술인과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창작공간이 서울 남산 등 7곳에 문을 연다. 서울시는 8일 개관하는 남산예술센터를 비롯해 연말까지 총 7곳에 ‘서울시 창작공간’을 조성한다고 7일 밝혔다. 이에 따라 빈 상점이나 문 닫은 공장, 옛 관공서 건물 등을 예술가를 위한 창작·교류의 공간과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 향유 장소로 활용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우선 남산 옛 드라마센터를 리모델링해 ‘남산예술센터’로 재탄생시켰다. 이곳에는 지하1층·지상2층·연면적 2186㎡(480석)의 공연장과 지상4층에 위치할 연면적 892㎡ 규모의 예술교육관이 조성됐다. 19일 개관하는 ‘서교예술실험센터’는 행정동 통·폐합으로 빈 마포구 옛 서교동사무소를 새로 꾸며 만들었다. 실험센터는 앞으로 홍대 문화콘텐츠의 생산·유통 네트워크를 잇는 중추적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전시장 1개와 스튜디오 4개, 다목적발표장, 공방 및 휴게공간 등이 들어선다. 신당 지하상가의 빈 점포를 리모델링한 ‘신당창작아케이드’에는 20㎡ 안팎의 창작공방 40개, 전시실(76㎡) 1개, 공동작업장(101㎡) 1개가 조성된다. 공예를 중심으로 사진, 미디어, 북아트 등 소형 예술작품 전시공간으로 꾸며진다. 금천구 독산동에 자리잡을 ‘금천예술공장’은 오는 9월 선보인다. 인쇄공장을 매입해 새단장한 것으로, 국내외 예술가들의 교류와 협업을 지원한다. ‘연희문학창작촌’은 연희동의 옛 시사편찬위원회 건물을 되살린 공간으로, 도심 속 숲에 자리한 문학의 산실이 될 예정이다. 부지 7309㎡에 건물 4개동이 들어선다. 집필실 20개와 다목적홀 2개뿐 아니라 야외에 산책로와 야외 이벤트 공간이 마련된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유서 “화장해라.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23일 오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이날 오후 5시 39분 부산대 병원을 떠나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운구된다.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약 40분 뒤 봉하마을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 전문이 공개됐다. 노 전 대통령은 사저를 나서기 26분 전인 오전 5시21분 컴퓨터 한글 파일에 마지막으로 저장한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화장해라.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오래된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빈소는 봉하마을에 마련될 예정이다.유족들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봉하마을 진입로가 좁아 고민했지만,유족과 문재인 전 비서실장 등 참모진이 상의해 빈소를 봉하마을에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유족과 김경수 비서관,문재인 이병완 전 비서실장,윤원호 전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위원장 등은 장례식장에 모여 가족장으로 할 것인지,정부의 국장 제안을 받아들일지 여부 등을 논의 중이다.유족들은 오후에 장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오전 9시25분쯤 부산대병원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을 확인한 직후 실신했던 권양숙 여사는 4시간여 만인 오후 2시쯤 의식을 되찾아 병원 11층 특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다음은 유서 전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책을 읽을 수도,글을 쓸 수도 없다.너무 슬퍼하지 마라.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미안해 하지 마라.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화장해라.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오래된 생각이다. 경찰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오전 5시45분쯤 경호원 한 명과 함께 사저에서 나왔다.노 전 대통령은 사저에서 나오기 26분 전에 사저 안의 컴퓨터에 이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가 노 전 대통령을 근접 경호한 경호관의 보고를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 도착한 직후 경호원에게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경호원이 “가져올까요?”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가지러 갈 필요는 없다.”고 막았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바위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서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이 말이 경호원이 노 전 대통령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노 전 대통령은 이후 곧바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이 시각이 오전 6시40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부엉이바위’는 사저 뒤편에서 경사 40도 정도의 비교적 가파른 언덕 위에 있다. 해발 100여m 높이이고 사저와의 직선거리는 200여m다. 한편 이운우 경남경찰청장은 23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과 관련해 “사건 현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것으로 보이는 등산화 한쪽과 피 묻은 상의를 발견해 수거했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이날 긴급 브리핑에서 수사 진행 과정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힌 뒤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사람은 이병춘 경호과장이며,아직 수사 초기 단계여서 이 과장의 진술은 확보된 게 없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사고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적절했는지,이 과장이 막을 수 없었는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청장은 또 노 전 대통령 시신의 부검 여부에 대해서는 “유가족 및 검찰과 협의해 결정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서 발견 경위에 대해서는 “유서는 이날 오전 5시10분쯤 컴퓨터 바탕 화면에 떠 있었으며,사고 이후 비서관에 의해 발견됐고 유서는 출력돼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에게 건네졌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양산 부산대병원 건물 부속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으며,앞서 허기영 부산대 법의학 교수 정재성 변호사 등이 입회해 검시한 결과 두개골 골절 및 다발성 장기 손상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때 실신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권양숙 여사는 이날 병원 귀빈(VIP)용 병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나우뉴스팀 nasturu@seoul.co.kr [관련영상] ☞ 충격과 비탄속 노 전대통령 시신 봉하마을에 ☞ 경찰, 盧 추모집회 봉쇄…시청역 ‘충돌’ ☞ ’부엉이 바위’ 어떤 곳이길래 ☞ 봉하마을 임시 분향소 조문 잇따라…일부에선 몸싸움도 ☞ 서울도 노 전대통령 추모 열기…‘촛불’ 켜졌다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고개드는 지구촌 테러위협

    프랑스·영국 등에서 ‘제2의 9·11사태’가 빚어질 뻔하는 등 지구촌을 겨냥한 테러 위협이 다시 고개들고 있다. 알카에다 대원 2명이 영국, 프랑스를 목표로 테러 모의를 한 혐의로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됐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지난해 불법이민자들을 이탈리아로 밀항시킨 혐의로 이미 옥중에 있던 이들은 전화로 파리 외곽의 드골 공항과 영국에 대한 공격을 논의했으며, 항공기를 이용한 ‘9·11’식 테러를 시도할 셈이었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용의자들은 유럽 내 알카에다 잠복 세포조직의 주요 일원으로 알려졌다. 이중 바삼 아야치(62)는 프랑스 시민권을 가진 시리아 이맘(이슬람 성직자)으로 ‘알카에다의 살아있는 전설’인 말리카 엘아루드의 멘토 역할을 하는 등 알카에다의 ‘정신적 지주’라고 신문은 전했다. 다른 용의자 라파엘 젠드론(33)은 이슬람교로 개종한 프랑스인으로 이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할 무장대원을 모집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국에서는 테러 기도 혐의를 받고 있던 용의자들이 잇따라 유죄판결을 받았다. 마이애미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이날 알카에다와 공모해 미국 최고층건물인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 마이애미의 연방수사국(FBI) 본사를 폭파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5명에 대해 유죄평결을 내렸다. 검찰은 이들이 오사마 빈 라덴과 연계해 ‘미국과의 성전’을 벌이려 했다고 주장해 왔으나 변호인단은 ‘날조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뉴욕 맨해튼연방법원도 이날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오리건주에 무장대원 훈련 캠프를 설립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레바논 출신의 스웨덴 남성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재래시장서 문화도 팝니다”

    “재래시장서 문화도 팝니다”

    “전통 재래시장에서 문화도 팝니다.” 강원 강릉시 주문진수산시장(조감도)과 종합시장, 건어물상가에 상설 극장과 전시실 등 문화공간을 만들어 손님맞이에 나선다. 강릉시는 23일 대형 할인매장이나 백화점, 인터넷 쇼핑몰에 밀려나고 있는 주문진의 전통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6월까지 각종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극장과 갤러리 공간을 만들어 개방한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국비 등 6억원을 들여 시작돼 현재 마무리공사가 한창이다. 시장 옥상 빈 공간(20㎡)에는 미니극장을 만들고 있다. 주문진의 대표어종을 소재로 한 작품을 공연하거나 전문공연팀을 초청, 항상 이벤트행사를 펼친다. 상인들도 배우로 직접 참여하는 상인극단을 만들어 홍보 활동에 직접 참여한다. 6월까지 회원모집을 마친 후 시장의 각종 축제나 거리, 이벤트때 공연할 계획이다. 짜투리공간에는 컨테이너를 이용한 갤러리를 만들어 각종 특산물 등을 상설 홍보하게 된다. 28일까지 단장을 끝낼 예정이다. 고객들에게 사진과 팸플릿, 동영상 등 홍보물을 한눈에 보여주며 구매를 돕게 된다. 상인들을 대상으로 서비스와 마케팅교육도 강화하고 주민과 고객이 직접 참여해 해양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주기적으로 갖는다. 이와 함께 주문진시장을 알리는 각종 홍보 책자와 달력,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한다. 시장 소식과 각종 행사정보를 알리는 시장신문 ‘펄떡이는 주문진’도 지난달 창간준비호에 이어 본격적인 발행에 나선다. 재래시장의 건물 외벽과 진입로, 점포내·외부 등에 환경디자인적인 시각작업을 펼쳐 깔끔한 시장 이미지도 살린다. 건어물 가게의 차양막 디자인도 새롭게 단장하고 간판도 정비할 계획이다. 특히 주문진시장을 주제로 한 다큐식 홍보연상물을 월별로 만들어 UCC 자료로 활용한다. 주문진 전통 재래시장의 문화사업을 알리는 첫 행사로 24일부터 26일까지 수산시장 옆 가설 굿당에서 풍어제를 연다. 풍어제는 동해안 어촌마을에서 주로 행해지는 마을굿으로 풍어와 풍농, 마을의 안녕, 가족의 건강 등을 기원한다. 강릉문화원 관계자는 “문화를 콘텐츠로 삼아 기존의 수산시장과 다른 문화·경제적 가치 창출을 이뤄내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5080] 아름다운 노후를 위하여]③ 마지막 보루, 부동산

    [5080] 아름다운 노후를 위하여]③ 마지막 보루, 부동산

    노후 부동산 투자는 안정성이 생명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기 때문에 손실이 생길 경우 회복력은 ‘0’에 가깝다. 자칫 잘못하다 땅값 폭락이라는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다. 특히 부동산은 금융상품처럼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지 않아 섣불리 손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몇 가지 원칙만 지키면 안정적인 부동산 운용도 가능하다. 노후에 관심 가질 만한 임대·매입 등으로 어떻게 하면 부동산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알아 보자. ●노후엔 임대하라 노후에는 임대수입만큼 힘 적게 들이고 큰 수익을 올릴 만한 것도 없다. 단, 임대에도 요령이 있어야 한다. 자금이 부족할 경우에는 소형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구매해 임대하면 위험부담이 적어서 좋다. 소형일수록 임대료가 저렴해 세가 잘 놓이고 월세일 경우에도 회수율이 높기 때문. 특히 저금리시대라 전세를 줄이고 월세의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게 좋다. 또 섣불리 부동산을 매입하기보다 소유하고 있는 주택을 리모델링하는 게 실속있다. 겉보기에는 낡은 주택일지라도 내부 구조를 개조해 활용가치를 높여 임대하면 적은 돈을 들이고도 반짝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자금이 넉넉하고 약간의 위험 부담을 무릅쓸 수 있다면 다가구주택이나 상가를 매입하는 게 좋다. 특히 전철 역세권에 위치해 있다면 금상첨화. 상가 하나로 한달에 임대료로만 200만원에 가까운 소득도 거뜬히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노후에는 가급적이면 소형 임대를 권장한다. 규모가 큰 대형 임대 부동산은 입주자의 자금 부담이 커서 세가 잘 놓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도 펀드처럼 장기 투자로 부동산도 펀드처럼 장기 투자해야 한다. 부동산은 갑자기 치솟았다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치는 증시와는 다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침체기와 호황기는 어지간하면 3년은 간다.”고 말한다. 또 정부나 지자체가 계획하는 건설사업들은 대부분 계획에서부터 완공까지 5~10년 정도의 긴 기간에 걸쳐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그 기간 지역에 들어서는 업체에 따라 건설 전·후 부동산 가격은 달라진다. 계획할 때 별 볼일 없었던 부동산 가격이 완공과 함께 인근에 대형 마트와 지하철역이라도 들어서면 순식간에 뛸 수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격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단, 부동산 투자는 인내와 끈기 뿐만 아니라 경기의 회복세를 잘 파악하는 안목도 필요하다. 현재 10억짜리 아파트 한 채가 5년 후 20억짜리가 될 수도, 5억으로 반토막 날 수도 있으니 항상 주의깊게 시세 현황을 살펴 봐야 한다. 특히 노후에는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부동산의 특성상 한 종목에만 큰 규모로 투자하기보다 여러 종목에 작게 투자해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락할 때 투자하는 역발상 투자 부동산 침체기에는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팔려는 사람이 늘어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 사람들은 가격이 떨어지면 더 떨어지기 전에 팔려고 하고, 오르면 더 오르기 전에 사려고 한다. ‘한 번 떨어지고 나면 다시는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때가 기회다. 주식은 한 번 불량주로 낙인 찍히면 회복하기 쉽지 않지만, 부동산은 재개발 등으로 한 때 불량주였어도 언제든지 우량주가 될 수 있을 만큼 차별이 없다. 때문에 “떨어지면 오를 일만 남았다”라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여기선 경기가 언제 회복될 것인가를 점치는 게 포인트. 1년 안에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면 최근 하락폭이 컸던 아파트의 분양권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경기가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 계속 상황을 지켜보는 편이 낫다. ●전원주택은 가깝고 소박하게 노후에 전원주택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전원주택을 마련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은 ‘가깝고 소박하게’다. 땅값이 싸다고 해서 무턱대고 먼 시골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 도시에서 멀수록 주택을 되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되팔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도 그렇게 녹록지 않다. 전원생활 경험이 없는 은퇴자들은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얼마 못 가 도시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병원이 멀고 각종 편의시설이 없어 불편하다. 주변에 주민이 적어 노후 외로움도 견디기 힘들다. 게다가 의욕이 넘쳐 지나치게 화려하게 지었다가는 후회는 두 배가 된다. 전원주택이 비싸기까지 하면 되팔기란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전원주택은 교통이 편리하고 되팔기도 좋은 도시 근교가 좋다. 막연한 동경심은 금물. 헐값에 팔아치워도 후회하지 않도록 적은 돈으로 작고 소박하게 지어야 한다. 특히 전국 20만호에 달하는 빈 농가들을 잘 이용하면 값싼 전원주택을 장만할 수 있다. 집을 꾸밀때는 손자, 손녀를 위해 집 근처에 작은 텃밭하나쯤 마련해 두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 “노후에는 안정된 수익이 창출되는 부동산에 눈을 돌려야 하는데 그 중에서는 부동산을 매개로 하는 주식형 금융 상품이나 펀드를 권장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은퇴자의 부동산 활용법 당장 생활비 급할 땐 종신형 역모지기론… 다주택자 6월前 처분해야 세부담 적어 당장 생활비가 급한 은퇴자라면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주관하는 종신형 ‘역모기지론’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60세 고령자들이 자신의 소유주택을 담보로 제공하고 사망시까지 노후생활 자금을 연금형식으로 대출받는 제도다. 2007년 7월부터 제도가 시행됐다. 가입자 본인과 배우자는 사망시까지 정해진 월 지급금을 받기 때문에 종신생활비를 보장받는다. 주택금융공사는 매달 지급되는 생활비를 가입자 사망 후 주택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회수한다. 처분한 주택가격이 대출금보다 작아도 부족한 금액을 가입자나 상속자가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일반 은행에도 역모기지론 상품이 있지만 일정기간까지만 대출을 해주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종신형 역모기지론은 나이가 많을수록, 주택가격이 높을수록 연금지급액이 많아진다. 다만 담보대상 주택은 9억원을 초과하지 않아야 되고 부부가 모두 만 60세 이상이면서 1가구 1주택으로 전세나 근저당 설정이 되어 있지 않아야 가입할 수 있다. 대출금리는 변동금리로, 3개월 만기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에 1.1%를 가산해 결정한다. 현시점에서는 약 3.5% 수준이다. 여기에 주택가격의 2%는 환급되지 않는 ‘초기 보증료’로 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연금을 지급받는 동안에는 전·월세 계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재 등으로 주택이 소실되거나 부부 모두 1년 이상 거주하지 않는 경우에도 연금지급이 중단될 수 있다. 주택금융공사 주택연금부 박성재 팀장은 “사망시 대출금을 정산하는 종신형 상품이기 때문에 본인의 건강상태를 잘 고려해 가입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대출 지급액도 1년마다 일정액이 증가하는 증가형, 감소하는 감소형, 고정인 정액형 등 다양하기 때문에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주택 보유자라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만만치 않다. 특히 서울지역에 사는 소득이 없는 은퇴자라면 더욱 그렇다. 세부담이 걱정돼 꼭 부동산을 처분해야 한다면 과세 기준일인 6월1일 이전에 처분하는 것이 좋다. 잔금처리와 등기까지 모두 6월 이전에 마쳐야 한다. 물론 양도소득세가 걱정될 수 있다. 이때는 저렴한 외곽지역 전세를 구하고 기존 주택은 전세나 월세 임대를 통해 세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있다. 1가구 1주택자는 3년 보유, 2년 거주 기준을 채우면 양도세가 면제된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실전! 부동산 임대 노하우 대학가 23년 된 단독주택 개조…원룸 6가구서 月300만원 수입 ‘5080 세대’는 재테크 수단으로 부동산만큼 믿음가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웬만한 중산층이라면 은퇴할 즈음에는 적어도 자기 집 한 채씩은 갖고 있을 정도다. 부동산으로 은퇴 이후를 안락하게 보내는 사연을 들어봤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사는 전모(65)씨는 살고 있는 집의 터를 이용해 부동산 임대업을 시작했다. 전씨는 지하철역 근처에 지은 지 23년 된 허름한 단독주택을 갖고 있었다. 자녀들이 모두 결혼한 뒤 부인과 적적하게 지내던 와중에 원룸 임대업을 생각해 냈다. 다행히 주변에 대학가가 가까워 원룸을 하기에 최적의 입지였다. 건씨는 연면적 290㎡에 하나당 36㎡짜리 원룸 6가구를 들였다. 기존 단독주택을 원룸으로 바꾸더라도 다가구주택으로 허가가 나기 때문에 별도의 변경 절차는 없었다. 집을 짓기 위해 1억 5000여만원을 들였지만 매달 월세로 얻는 수익이 300만원가량 된다. 전씨는 “60대에 한 달에 300만원 이상 버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원룸을 관리하다 보니까 힘이 저절로 생긴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홍모(61)씨는 10년 전 여윳돈으로 경기도 광주 시골 마을에 3층짜리 낡은 상가건물을 7억에 사뒀다. 근처에 철물 공장이 있고, 인구도 많지 않은 동떨어진 곳이라 아내와 가족 모두가 만류했다. 현재 건물 인근 마을이 아파트촌으로 바뀌었지만 시세는 구매할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래도 홍씨는 후회하지 않는다. 애당초 홍씨는 돈 벌기 위해 상가를 구매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퇴 후에 고향인 경기도 광주에서 살면서 세를 받기 위한 노후 대비책이었다. 그는 “10년 동안 꾸준히 세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앞으로 20년은 더 받을 수 있다.”고 만족해 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초등생 성추행교사, 성폭력치료 강의 받아야” 눈 감고 돈 벌던 국내포털 사면초가 불황 속 휴대전화 통화는 ‘뚝’ …문자는 ‘쑥’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럽던 사투리가 문무대왕함 덴마크 商船 구하기 25분
  • [Zoom in 서울] 2015년 상암에 640m빌딩 선다

    [Zoom in 서울] 2015년 상암에 640m빌딩 선다

    2015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세계 두 번째 높이로 세월질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랜드마크 빌딩의 윤곽이 드러났다. 첨탑을 포함한 높이가 640m에 달하며 아랍에미리트의 ‘버즈 두바이’(높이 800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건축물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30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서울랜드마크 컨소시엄’과 빌딩 건립사업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서울라이트’(가칭) 빌딩의 조감도를 발표했다. ●올 9월 공사 시작 9월에 착공되는 이 빌딩은 지하 9층, 지상 133층 규모(연면적 72만 4675㎡)로 건립된다. 우리의 기술과 자본으로 건설되고, 총사업비로 3조 3000억원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최상층인 133층(540m)에 들어서는 전망대는 버즈 두바이의 124층 전망대보다 높아 개성은 물론 맑은 날은 중국까지 관측이 가능하다. 최상층 위에는 100m 높이의 첨탑이 들어선다. 서울시는 108~130층에는 6~8성급 호텔이 들어서 중국 상하이 국제금융센터의 파크하야트호텔(79층~93층)이 지닌 세계 최고층 호텔 기록을 뛰어넘는다고 설명했다. 또 85~107층에는 가족 호텔, 46~84층에는 공동주택, 9~45층에는 사무실, 1~8층에는 쇼핑몰과 컨벤션센터가 조성된다. ●최고 등급 친환경 건축물 특히 이 건물은 서울시 친환경 인증등급 중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등급’의 미래형 건축물로 건립된다. 세계 최초로 대나무처럼 건축물의 가운데가 완전히 비어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휘어지는 강도가 3배 증가된다. 지진이나 바람의 진동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돼 초고층 건물의 구조적 안전성을 보완한 것이다. 가운데의 빈 공간 때문에 지면과 최상층의 기압 차를 이용한 자연환기와 풍력발전이 가능하다. 반사경을 활용, 자연채광이 가능해 낮에 전등을 켜지 않아도 된다. 지열과 건물 벽면의 태양광 발전으로 에너지도 절감한다. 저층부 옥상을 녹지화해 단열효과를 내고, 건물 외부에 자동환기창을 설치해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등 에너지 절약형으로 한다. 건물외관은 한국 전통가옥의 창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패턴으로 구성된다. ●생산유발효과 11조원 기대 서울시는 초고층 빌딩 건립사업을 통해 고용 8만 6000명을, 생산유발 11조원의 경제효과를 기대했다. 지난해 6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컨소시엄에는 최대 출자자인 한국교직원공제회를 비롯해 한국산업은행, 하나은행, 농협중앙회, 중소기업은행, 우리은행, 대우건설 등 23개사가 참여한다. 오 시장은 “DMC 랜드마크 빌딩은 서울의 매력을 한층 높이는 동시에 서울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성매매 靑행정관’ 케이블업체서 접대 의혹 옆집오빠형-사수형-카리스마형…최고의 리더는? 행안부 ‘인권위 축소’ 왜 강행했나 군산 주꾸미, 이때 놓치면 1년을 후회 “제주도 부속섬? 안 가봤으면 말을 마세요”
  • 안산 돔야구장 재추진

    안산 돔야구장 재추진

    세계적 금융위기 여파로 무산 위기에 놓였던 경기 안산시의 국내 첫 돔구장(조감도) 건설사업이 본격화된다. 안산시는 문화복합돔구장과 관련한 용역 결과 3만석 규모의 돔구장과 구청사, 상업시설, 주상복합아파트를 동시에 건립할 경우 상당한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본격적인 개발사업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시는 이달 말까지 최종 용역 결과를 받아 의회 공유재산관리계획 승인(4월), 사업자 공모(7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10월), 특수목적법인 설립(11월) 등의 절차를 거쳐 내년 3월 문화복합돔구장 건설에 착수할 계획이다. 문화복합돔구장은 현재 빈터로 남아 있는 초지동 안산종합운동장 바로 옆 시가화 예정부지 36만㎡ 가운데 19만 7000㎡에 들어선다. 돔구장은 이 중 6만㎡에 연면적 15만㎡(3만석 또는 3만 2000석) 규모로 건립되고, 1만 5000㎡에는 연면적 2만 8000㎡ 규모의 공공청사 건물이 들어서 단원구와 보건소가 입주한다. 초등학교와 공원도 함께 들어선다. 돔구장 사업자는 단지 안에 최고 59층 높이의 주상복합아파트 9개 동, 2700가구와 백화점 등 6만 3000㎡ 규모의 상업시설을 건립한다. 돔구장을 포함한 복합단지 개발에는 총 1조 3000억원이 투입된다. 용역 보고서는 3.3㎡당 아파트 분양가가 1100만원, 공사비가 380만원 소요된다고 가정할 경우 3만석 규모의 돔구장을 건설해도 157억원의 이익이 발생하며, 분양가가 1200만원으로 오르면 657억∼887억원의 이익을 예상했다. 시는 돔구장 건설 후 프로야구단은 물론 각종 콘서트와 전시회, 광고, 임대 등을 적극 유치하면 건설 후 5년이면 운영 수지를 흑자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는 2007년 현대컨소시엄과 돔야구장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으나 세계적인 금융 위기와 관련법 저촉 등 악재로 양해각서를 공식 파기했다. 시 관계자는 “용역 결과 타당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시가 설립한 공기업인 안산도시개발과 민간사업자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는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유치한다는 구상이다. 일본은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에 6개의 돔구장을 보유하고 있어 WBC 아시아지역 예선을 1회 대회부터 유치하고 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SPECIAL 편지]고흐의 편지는 영혼의 소리다

    [SPECIAL 편지]고흐의 편지는 영혼의 소리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외로움’의 상징이다. 우선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해 불만이 컸다. 그리고 고독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고독을 스스로 초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고독을 초대한다’는 표현이 어색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의 족적을 보면 그는 분명히 고독 때문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고독을 즐긴 듯한 느낌을 풍기고 있다. 그는 또한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그가 살던 집을 한 번 들러보면 알 수 있다. 나는 2002년 5월, 칸영화제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그 당시 문화관광부 오지철 기획관리실장(현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함께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 손우현 원장의 안내로 고흐가 살던 집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아주 작은 마을, 파리가 다섯 마리만 날아다녀도 시끄럽다고 불평할 정도로 조용한 마을의 길가에 있는 2층짜리 목조건물이 그가 살던 하숙집이다. 삐걱거리는 목조건물 층계를 올라가면서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구석방이 그가 묵고 있던 곳이다. 두 평이나 될까? 오른쪽에 작고 낡은 싱글침대가 있고 왼쪽 구석에 아주 조그만 사각 테이블과 의자가 가구의 전부이다. 너무 작은 방이다. 몸 하나 뉘일 곳만 있으면 되지 큰 방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하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화구 하나 제대로 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방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을까? 왼쪽으로 난 창 밖으로는 그가 늘 산책했고, 화구를 들고 와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는 언덕이 보인다. 나는 그 언덕에 올라가 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평범한 밭길이다. 그러나 고독한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친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언덕길 모습은 그의 그림 속에 많이 등장한다. 그가 살던 집도 자기 것이 아닌 셋방이고, 그 방 아래에는 작지만 포근한 식당이 있다. 그곳에서 고흐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도 고흐가 앉아서 식사했다는 바로 그 의자에 앉아서 와인을 곁들여 점심식사를 했다. 이게 무슨 행복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공연히 씁쓸해지기도 했다.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그는 편지를 많이 썼다고 한다. 고갱에게도 쓰고, 다른 친구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편지를 썼는데 주로 자기 동생 테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내용은 대체로 작품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안부나 물어보는 정도의 편지가 아니라 자신이 보는 세상을 그림과 함께 글로도 쓰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은 자신이 원할 때 그렸지만 편지는 의무적으로 썼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후세 사람들이 자기의 생활과 발자취를 더듬어서 기념관을 만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것을 무덤에 있는 그가 알고 있다면 그는 지금쯤 외로움을 접을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더욱 더 외로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쓴 상당수의 편지 원본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친구는 결국 ‘편지’였다고 볼 수 있다. ‘해바라기’를 통해 자신이 찾고자 하는 태양을 봤다면 그는 편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1,100편이 넘는 그림을 그렸지만 그는 그림보다는 편지를 쓰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동생 테오가 답장을 하지 않으면 곧바로 짜증 나는 내용으로 편지를 쓴 것을 보면 분명하다. 귀를 잘라도 해결이 되지 않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을 편지가 대신 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그가 살던 집을 가본 사람이면 느낄 수 있다. 진실로 가난한 생활을 한 고흐는 자신의 그림을 팔겠다고 나선 동생 테오에게조차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그 편지 속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그것은 화가에게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것 같단다”라고 쓴 이 편지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고뇌를 볼 수 있고, “자살하는 것보다는 유쾌한 삶을 사는 것이 낫다”라며 고독과 싸움을 하기도 했다. 자살하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고 강조한 그가 왜 자살을 택했을까? 궁금한 대목이다. 그는 죽기 직전에 유난히 편지를 많이 썼다. 1890년에 37세의 나이로 권총자살을 한 그는 88년과 89년 사이에 편지를 몰아쳐서 썼다. 왜 그랬을까? 고독 때문이다. 편지를 그는 가장 큰 친구로 삼았다. 그리고 그림에서 표현 못한 자기 감정을 편지에서 마음껏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여섯 점의 해바라기로 작업실을 꾸며볼 계획이다. 황금이라도 녹여 버릴 것 같은 열기, 해바라기의 느낌을 다시 얻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고흐의 편지 中 그는 상당히 많은 편지에서 해바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는 그림에서 고독을 느끼고, 편지에서는 위안을 받은 것이 아닐까? 죽기 바로 직전까지 편지 쓰기를 멈추지 않은 것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글 속에는 고독과 불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도 있고, 연민도 있다. 가족에 대한 걱정도 있고 친구에 대한 우정도 있다. 고흐의 작품을 보기 전에 편지를 한 장이라도 읽고 나서 보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의 편지는 자기 작품의 해설서와도 같다. 스스로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고,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는 절대로 정신질환자가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그의 편지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이 편지의 힘이다. 글 정홍택 기획위원
  • 경기 6개 경찰서 상반기 문연다

    2014년까지 연차적으로 열 예정이었던 경기도내 6개 경찰서의 개설 시기가 올 상반기로 앞당겨진다.경기지방경찰청은 2010년부터 2014년 사이 문을 열 예정이던 용인서부, 안양만안, 하남, 부천오정, 동두천, 의왕 등 6개 경찰서를 오는 6월 말 연다는 목표 아래 임시청사 부지 또는 임대 대상 건물을 물색해 경찰청에 보고했다고 23일 밝혔다.경찰은 “지난 20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조기 개설을 건의했고, 이 대통령이 ‘당장 관계기관과 협의해 해결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의왕경찰서는 고천동의 빈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청소년수련원 일부를 임대하는 방안을 마련했고 동두천서는 옛 동두천교육청을, 안양만안은 옛 안양경찰서를 리모델링할 방침이다. 용인서부와 하남은 상가 건물을 임대하고, 부천오정은 경찰서 부지 옆 나대지에 가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경기경찰청은 6개 경찰서 임시청사 예산으로 300억원 이상이 소요되고 경찰관은 1200여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찰청과 행정안전부, 기획예산처 등 관계기관은 경기경찰청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24일 실무 협의를 갖는다. 경기경찰청은 이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해 4월4일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화성서부경찰서를 조기에 열었으며, 이후 강력범죄와 교통사고가 각각 19%, 54% 감소했고 절도범 검거율은 74%나 높아졌다.현재 경기도내에는 모두 35개 경찰서가 운영 중이며, 31개 시·군 가운데 의왕과 하남, 동두천 등 3개 시에는 경찰서가 없다.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빈병 1500만개’로 만들어진 이색 사원

    “공병으로 만들어진 사원에서 소원을 빌어보세요.” 빈병으로 만들어진 타이의 한 사원이 해외 언론에 소개되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백 만개 병의 사원’(the Temple of a Million Bottles)이라 불리는 이 사원은 방콕에서 400마일 떨어진 시사켓(Sisaket)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사원에 거주하는 승려들이 지난 1984년부터 모아왔던 빈 병으로 만들어진 이 사원에는 맥주병을 비롯한 총 1500만개의 병이 소요됐다. 타이 정부가 빈병 모으는 것을 도왔으며 호수위에 지어진 주(主)사원 외에도 화장터와 승려들의 기도실, 화장실 그리고 여행객들을 위한 객실 등 크고 작은 건물들이 세워졌다. 이 사원의 건축에 가장 많이 쓰인 병은 ‘하이네켄’의 초록색 병과 타이 대표 맥주인 ‘Chang’등이며 일부 벽화는 병뚜껑으로 만들어져 이곳을 찾는 많은 신도들과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저마다의 무늬와 색이 고스란히 보존된 채 건물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병들은 위생적이고 청소가 쉽다는 장점이 있어 승려들에게도 만족을 주고 있다. 한 승려는 “우리는 현재도 빈병을 모으고 있으며 아직 남아있는 빈병이 꽤 많다.”면서 “더 많은 ‘유리병 사원’을 증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친환경 건축물로 인정받은 이 사원은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남대문 시장 침체 늪 벗어나 첨단 쇼핑타운으로

    남대문 시장 침체 늪 벗어나 첨단 쇼핑타운으로

    동대문시장에 이어 남대문시장도 첨단 쇼핑타운으로 새롭게 단장된다. 서울시는 열악한 쇼핑환경으로 인해 침체의 늪에 빠진 남대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오는 11월까지 65억여원을 들여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펼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동대문시장과 함께 국가대표 재래시장인 남대문시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패션·액세서리 상권을 주도했지만 이후 노후화된 쇼핑시설과 낙후된 서비스, 동대문시장의 경쟁력 강화 등으로 인해 빈 점포가 급증하는 등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시는 지난 1월 ‘남대문시장 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한 데 이어 3~6월 실시설계를 거쳐 11월까지 재정비사업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우선, 숭례문 앞의 남대문시장 주출입구에 있는 쓰레기 임시수집장을 지하공간으로 들여보내는 대신 지상에는 ‘만남의 장소’가 될 만한 광장을 조성키로 했다. 특히 이 광장 주변 건물의 벽을 활용해 ‘벽천 분수’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시장 내 중앙길 등 5개 도로에 난립한 노점상을 거리 중앙에 배치하고 양쪽에 보행로를 확보해 쇼핑객들의 편의를 높이기로 했다. 아울러 거리 좌우의 전신주를 지중화하고, 시장 안의 가로를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해 안전하고 여유있는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건물주들에게 용적률·건폐율 인센티브를 줘 낡은 건물의 리모델링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동시에 시장 상가를 뒤덮은 옥외 광고물을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 간판으로 개선할 방침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방치’ 옛 청주지검·지법 문화공간 활용 줄다리기

    ‘방치’ 옛 청주지검·지법 문화공간 활용 줄다리기

    “용도 폐기된 국유재산을 꼭 돈내고 써야 하나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주민들과 정부가 빈 건물로 방치된 옛 청주지검 청사와 청주지법 청사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주민들은 문화활동 공간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청주시에 무상으로 양여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부는 용도 폐기된 국유재산이라도 돈을 내고 매입하거나 임대료를 내고 써야 한다며 주민들의 요구를 일축한다. 청주시가 매입하면 되지만 소요재원이 300억원 정도나 돼 엄두를 내지 못한다. 1970년 수곡동 93-1 3만여㎡ 부지에 각각 4층건물로 건축된 청주지검 청사와 청주지법 청사는 38년간 쓰이다 지난해 6월 청주지검과 청주지법이 산남동에 신청사를 마련해 떠나면서 빈 건물이 됐다. 검찰과 법원이 한꺼번에 떠나면서 인근에 있던 50여개의 변호사·법무사 사무소들이 산남동으로 집단 이주, 청주지역 법조타운이던 이 일대는 순식간에 죽은 동네가 됐다. 윤성수(38)씨는 “빈 상가가 즐비해 밤이 되면 동네를 돌아다니기가 섬뜩할 정도”라며 “장사가 안 돼 문을 닫는 식당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호 수곡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청주지검과 청주지법이 아무런 대책없이 수곡동을 떠나는 바람에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정부가 공공기관을 이곳으로 옮기든지,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건물을 무상 양여하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무상양여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작성해 4만 50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며 “국유재산 총괄관리청인 기획재정부로 소유권이 넘어오는 절차가 마무리되면 탄원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관련 규정과 수곡동 부지의 가치 때문에 무상양여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국유재산과 이광기 서기관은 “국유재산관리법 44조1항에 ‘국유재산을 지자체가 공공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무상양여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의미”라며 “시행령에 명시된 9가지 양여조건에도 이번 경우가 부합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서기관은 “국가가 소유한 토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쓸모없는 땅”이라면서 “수곡동은 중앙부처 관련기관이 입주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서 땅과 건물을 정부가 갖고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수곡동이 지역구인 민주당 오제세(청주흥덕갑) 의원은 정부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자치단체의 재정부담을 줄이고 비축된 국유재산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무상양여가 절실한 상황에서 규정 타령만 하며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 의원은 “‘무상양여를 할 수 있다.’는 애매한 문구가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정부가 지자체나 주민들 입장에서 법을 해석한다면 문제는 쉽게 풀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정부나 자치단체는 모두 공적업무를 하는 한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서로 돈을 주고 부동산을 거래하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라며 “국회 상임위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정부가 관리도 하지 않은 채 청사를 방치할 경우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 이용되는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40년 사랑방’ 동네목욕탕

    [뉴스 다큐 시선] ‘40년 사랑방’ 동네목욕탕

    겨울이 다 지나도록 세상은 너무 춥다. 철거민 참사, 연쇄살인…. 온몸이 시리도록 각박해진 세상풍경이 서글프다. 절절 끓는 온돌 바닥과 따뜻한 얘기가 있는 사랑방이 더욱 그리울 때다. 하지만 우리 곁 사랑방이던 동네 목욕탕은 대부분 사라졌다. 푹푹 찌는 한증막 안에서 듣던 옆집 아들 결혼 소식도, 온몸이 녹아내리는 열탕 속에서 주고받던 아낙들의 안부인사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24시간 사우나, 불가마 찜질방이 들어서면서 동네 목욕탕은 외면당한 지 오래다. 팍팍한 세상, 사우나와 찜질방 열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더 훈훈한 동네 목욕탕, 그 역사 깊은 사랑방을 찾아가 시린 몸을 녹여 봤다. 글ㆍ사진·동영상 강병철 조은지기자 bckang@seoul.co.kr ‘목욕합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40년 넘게 서울 종로구 계동을 지켜온 ‘중앙탕’ 낡은 간판에 불이 켜졌다. 새벽 5시20분. 이발사이자 종업원인 박희원(59)씨가 1층 현관을 열고 부지런히 비질을 하며 영업준비를 시작한다. 1층 여탕과 2층 남탕을 오가며 탕에 물을 튼다. “남탕이나 여탕이나 다를 게 없어요.” 박씨는 자연스럽게 여탕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낡은 파이프에서 콸콸콸 힘차게 물이 쏟아져 나온다. 뜨거운 기운이 금세 탕 안에 가득차며 목욕탕 특유의 냄새가 확 피어오른다. 박씨는 텅 빈 여탕을 가로지르더니 물 온도를 잰다. 그의 손이 온도계였다. 물을 휘휘 몇 번 젓던 박씨는 온수 수도꼭지를 더 돌린다. 28년간 이 일을 해온 그의 손은 손님들이 좋아하는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 탈의실 바닥은 뜨끈뜨끈하다. 어젯밤 깨끗이 빨아놓은 주황색 수건들은 뽀송뽀송 말랐다. 박씨는 방바닥에서 바싹 마른 수건들을 걷어 욕탕 입구에 올려놓는다. 손님 맞을 채비를 마쳤다. ●서울 종로 ‘중앙탕’ 1968년 개업 모습 그대로 새벽 5시40분. 첫 손님이 왔다. 눈 뜨자마자 목욕바구니를 들고 나온 동네 할머니다. 박씨는 “매일 이 시간에 오시는 분이에요. 수십년 한결같은 아침 단골들이 계시니 빨리 문을 열어야죠.”라고 한다. 목욕비는 4000원, 손님들은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툭 던지고 들어간다. 외상손님도 있다. 한 아주머니가 집에 지갑을 놓고 왔단다. “아이고, 이따가 드릴게.”라는 한마디에 무사통과다. 서로 집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사이라 돈 떼먹을 리는 만무하다. 6시쯤 문을 밀고 들어선 한 손님이 박씨에게 슬그머니 2000원짜리 김밥을 건넨다. “운동 갔다 오는 길에 샀는데 잡숴보셔.” 하지만 한 줄 김밥 중 박씨 입으로 들어가는 건 반도 안 된다. 하나 둘 오는 손님마다 박씨는 김밥 한 알씩을 권한다. 눈인사만 던지고선 탈의실로 급히 들어가는 손님도 있었다. ‘월간 이용권’을 끊어서 다니는 손님이다. “한 달 동안 목욕탕을 마음대로 쓰는 건데, 매번 계산하는 것보다 1000원이 싸다.”고 박씨는 귀띔한다. 이 목욕탕 손님 중 10여명이 자기집 목욕탕처럼 쓰고 있다. 정액권 손님들은 목욕탕표나 신분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아침 8시. 날이 밝을 때까지 이렇게 왔다 간 손님은 10여명이었다. ●가족 같은 손님이 모이는 사랑방 최위희(94) 할머니를 모시고 온 손녀 홍영주(26)씨가 먼저 들어간 엄마 목욕비라며 한 명분을 더 계산하고 들어갔다. 최씨 할머니 3대는 김이 그득한 탕 속에 나란히 몸을 담갔다. 할머니와 손녀는 벌써 20년 넘게 이곳을 찾고 있다. 홍씨는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이곳으로 목욕을 다닌 터라 찜질방은 오히려 불편하다고 했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자신이 손녀인 양 홍씨에게 목욕을 맡긴다. 멋모르고 여탕을 뛰어다니던 손녀는 어느새 할머니 등을 밀어줄 만큼 든든하게 자랐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사우나나 찜질방도 많지만 홍씨는 이 목욕탕을 최고로 친다. 다른 목욕탕은 불편하고 여기 와야 내 집처럼 편안하단다. “할머니랑 엄마랑 이곳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성격도 둥글둥글해졌어요. 여기가 우리집 여자들의 사랑방인 셈이죠.” 오전 11시. 5년간 폐암으로 병원생활을 하던 남편이 3일 전 세상을 떴다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어제 삼일장이 끝났다고, 그동안 씻지도 못했다고 먼저 말을 텄다. 탈의실에 앉아 있던 아낙들은 “살리려고 그렇게 애쓰더니 안됐네. 약한 사람이 고생 많았어.”라며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위로를 보탠다. 낮 12시10분. 사우나에서 수다 떨던 아주머니 셋이 탈의실 평상에 벌거벗은 채로 모여 앉았다. 냉장고에 음료수가 가득 차 있지만 따로 냉커피를 타 마신다. 공짜 커피를 곁들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김정미(45)씨는 “매일 오다시피 해요. 낮에 시간 보내기도 좋고. 탕 안에서 둘이 얘기하는데 거들면서 끼어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니까요. 찜질방에선 어디 그러기 쉬운가.” 손님들끼리 어울려 밥솥에 점심을 지어먹기도 한다. ●“단골손님들 때문에 문 못닫아요” “지난해 12월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적잖이 놀랐어요.” 목욕관리사(때밀이) 이정단(55·여)씨의 말이다. “서울 시내에 아직까지 이렇게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니…. 손님들이 변치 않고 찾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죠. 손님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평일엔 20~30명쯤, 주말에는 50명 정도 오세요. 여긴 모녀끼리 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때밀이 값요? 때만 밀면 1만 5000원, 전신마사지하면 4만원, 할머니들이 한 번 밀어보고 나면 손맛이 있다면서 계속 찾으시네요.” 목욕탕 사장 담란향(66·여)씨는 “이사 가도 목욕은 이곳으로 오는 손님이 꽤 된다.”고 했다. 한때 장사가 잘 안 돼서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손님 중 열에 여섯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 계속 운영하고 있다. 어떤 손님은 목욕비로 1만원을 받아도 좋으니 절대로 없애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목욕탕을 찾은 소병룡(77)씨는 “예전엔 욕조 갖춰 놓은 집이 어디 있었나. 지금이야 집마다 샤워 시설이 있지만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가야 몸도 풀리고 제대로 ‘목간’했다는 기분이 들지.”라고 말했다. “개업했을 때부터 계속 다녔지. 찜질방에서 가끔 아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동네 목욕탕처럼 재밌지는 않지. 누가 죽었다더라는 소식도 듣고, 이런저런 사연 듣는 재미에 다니는 거라네.” 4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목욕탕은 주인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유지비, 매출액 안따지고 장사한 지 오래” 한때 목욕탕 운영은 ‘동네 재벌’의 상징이었다. “한창 손님이 몰릴 땐 옷장이 부족해서 바구니에 옷을 담아놓고 손님을 받았어요.” 담 사장은 그때가 눈앞에 생생하다. 20대 젊은 나이에 목욕탕을 시작해 서른 여덟에 남편과 사별, ‘때 돈’을 벌어 아들 셋, 딸 둘을 혼자 키웠다. 그때 두 살배기였던 딸이 지금은 마흔이 넘은 아줌마가 됐다. 1970년대만 해도 중앙탕 반경 500m 주변에 목욕탕 6곳이 더 있었다. 그러던 것이 24시 사우나, 대형 찜질방에 밀려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해 결국 이곳 하나만 남았다. 한때 일요일엔 400명 넘게 손님이 몰리곤 했지만 이젠 휴일에도 많아야 50여명 선이다. “낙원상가 쪽으로 대형 찜질방들도 생겼고, 서울 외곽으로 목욕 원정 가는 손님들도 생겼어요.” 동네 터줏대감 자리를 찜질방에 넘겨주는 속내가 편하지만은 않다. 동네 목욕탕 장사로 목돈을 만지는 시대도 지났다. 400환으로 시작했던 목욕비는 지난해에야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더 올리라는 손님도 있지만 그러면 찜질방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논리 때문에 차마 올리지 못한다. 낡은 수도꼭지, 깨진 타일 그대로의 시설이지만 손님들이 개의치 않기에 믿는 구석도 있다. “물세는 한달에 40만~50만원, 기름은 난방유를 때는데 한 드럼에 15만원 정도 하나? 사실 한 달에 몇 드럼 들어가는지도 잘 몰라요. 그런 거 따지지 않고 운영한 지 오래 됐어요. 한 달 매출액도 따지지 않고 장사하는데요 뭐. 어쨌든 마지막 손님이 끊길 때까지 이 사랑방을 지킬 거예요.” 동네 목욕탕은 오늘도 정과 인심의 김을 모락모락 피운다. ■ 목욕탕 변천사 사람은 씻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씻는 방법은 늘 변해 왔다. 1970년대는 동네 목욕탕의 전성기였다. 온수 샤워 시설을 갖춘 집이 드물었고 목욕탕을 가는 건 빼먹지 말아야 할 ‘주기적’ 행사였다. XX탕, OO탕, 단출한 이름으로 동네마다 몇 개씩 있는 목욕탕은 일요일 아침이면 손님들로 북적였다. 목욕탕을 나서는 아이들 손에는 빨대 꽂힌 요구르트가 들려 있고, 입구에서 여탕으로 들어간 아내와 엄마를 기다리는 풍경도 익숙했다. 80년대 들어 시내 중심가를 필두로 ‘사우나’ 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핀란드 사우나라 불리는 건식사우나를 비롯해 습식사우나, 폭포식 냉탕 등의 시설을 갖춘 고급 목욕탕이 들어섰다. 동네 목욕탕도 하나둘 시설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회사원들은 피로를 푼답시고 점심시간을 이용, 사우나에 드나들며 땀을 뺐고 벌건 얼굴로 오후 근무를 시작하곤 했다. 90년대, 목욕탕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목욕탕은 갖가지 모습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맥반석, 옥사우나는 물론 참숯, 한방쑥, 황토, 녹차를 이용한 시설이 등장했다. 서비스도 보강하면서 정부의 1회용품 사용규제가 있기 전까지 비누, 수건은 물론 칫솔, 샴푸 등도 무상 제공됐다. 수면실, 헬스실을 갖춰 덩치를 키웠고 24시간 영업은 기본이 됐다. 2000년대엔 찜질방 시대가 열렸다. 남녀가 버젓이 함께 모여 땀을 빼는 찜질방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황토방, 보석방, 얼음방은 물론 노래방, PC방, 헬스방, 마사지방까지 더해진 대형 찜질방은 기업 형태가 됐다. 고작해야 2층 건물이던 동네 목욕탕은 ‘종합오락 찜질방 빌딩’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용산사망자 아들 “아버지가 테러범?” 공개된 정조의 ‘299통 편지’ 비밀은 9급 공채에 30대가 몰린다 현인택 ‘동문서답’ 청문회 화왕산 억새 태우다 4명 사망 고3 시기별 수능 전략 제주女교사,1~2일전 살아있었다
  • 위험건축물 조기 철거 가능해진다

    서울 노원구가 불합리한 제도 개선에 나서 속속 결실을 맺고 있다. 9일 노원구에 따르면 2007년 5월에 건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재개발 예정지구에서 위험시설물을 조기에 철거할 수 있게 됐다. 개정 내용은 재개발구역에서 붕괴 등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건축물의 경우 관리처분계획 인가 전이라도 건축물 소유자의 동의와 시장·군수의 허가를 얻어 건축물을 철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철거로 인해 토지 등 소유자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주지 않고, 신규 아파트 분양 대상의 자격을 유지시켰다. 종전에는 건물 붕괴위험이 있어도 신규 아파트의 분양권 때문에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이번 법령 개정으로 빈 집 등 재난 발생의 위험이 높은 건축물은 시기에 관계없이 철거가 가능해졌다. 노원구는 2007년부터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느꼈던 불합리한 법과 제도 130건을 발굴, 민간단체와 연계해 개선 노력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호적과 주민등록부 불일치에 따른 ‘효율적인 호적정정제도’ 개선 등 모두 21건의 법령이나 제도 개선을 이끌어 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40년 사랑방’ 동네목욕탕

    겨울이 다 지나도록 세상은 너무 춥다. 철거민 참사, 연쇄살인…. 온몸이 시리도록 각박해진 세상풍경이 서글프다. 절절 끓는 온돌 바닥과 따뜻한 얘기가 있는 사랑방이 더욱 그리울 때다. 하지만 우리 곁 사랑방이던 동네 목욕탕은 대부분 사라졌다. 푹푹 찌는 한증막 안에서 듣던 옆집 아들 결혼 소식도, 온몸이 녹아내리는 열탕 속에서 주고받던 아낙들의 안부인사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24시간 사우나, 불가마 찜질방이 들어서면서 동네 목욕탕은 외면당한 지 오래다. 팍팍한 세상, 사우나와 찜질방 열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더 훈훈한 동네 목욕탕, 그 역사 깊은 사랑방을 찾아가 시린 몸을 녹여 봤다. 강병철 조은지기자 bckang@seoul.co.kr ‘목욕합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40년 넘게 서울 종로구 계동을 지켜온 ‘중앙탕’ 낡은 간판에 불이 켜졌다. 새벽 5시20분. 이발사이자 종업원인 박희원(59)씨가 1층 현관을 열고 부지런히 비질을 하며 영업준비를 시작한다. 1층 여탕과 2층 남탕을 오가며 탕에 물을 튼다. “남탕이나 여탕이나 다를 게 없어요.” 박씨는 자연스럽게 여탕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다. 낡은 파이프에서 콸콸콸 힘차게 물이 쏟아져 나온다. 뜨거운 기운이 금세 탕 안에 가득차며 목욕탕 특유의 냄새가 확 피어오른다. 박씨는 텅 빈 여탕을 가로지르더니 물 온도를 잰다. 그의 손이 온도계였다. 물을 휘휘 몇 번 젓던 박씨는 온수 수도꼭지를 더 돌린다. 28년간 이 일을 해온 그의 손은 손님들이 좋아하는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 탈의실 바닥은 뜨끈뜨끈하다. 어젯밤 깨끗이 빨아놓은 주황색 수건들은 뽀송뽀송 말랐다. 박씨는 방바닥에서 바싹 마른 수건들을 걷어 욕탕 입구에 올려놓는다. 손님 맞을 채비를 마쳤다. ●서울 종로 ‘중앙탕’ 1968년 개업 모습 그대로 새벽 5시40분. 첫 손님이 왔다. 눈 뜨자마자 목욕바구니를 들고 나온 동네 할머니다. 박씨는 “매일 이 시간에 오시는 분이에요. 수십년 한결같은 아침 단골들이 계시니 빨리 문을 열어야죠.”라고 한다. 목욕비는 4000원, 손님들은 꼬깃꼬깃 접은 지폐를 툭 던지고 들어간다. 외상손님도 있다. 한 아주머니가 집에 지갑을 놓고 왔단다. “아이고, 이따가 드릴게.”라는 한마디에 무사통과다. 서로 집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사이라 돈 떼먹을 리는 만무하다. 6시쯤 문을 밀고 들어선 한 손님이 박씨에게 슬그머니 2000원짜리 김밥을 건넨다. “운동 갔다 오는 길에 샀는데 잡숴보셔.” 하지만 한 줄 김밥 중 박씨 입으로 들어가는 건 반도 안 된다. 하나 둘 오는 손님마다 박씨는 김밥 한 알씩을 권한다. 눈인사만 던지고선 탈의실로 급히 들어가는 손님도 있었다. ‘월간 이용권’을 끊어서 다니는 손님이다. “한 달 동안 목욕탕을 마음대로 쓰는 건데, 매번 계산하는 것보다 1000원이 싸다.”고 박씨는 귀띔한다. 이 목욕탕 손님 중 10여명이 자기집 목욕탕처럼 쓰고 있다. 정액권 손님들은 목욕탕표나 신분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아침 8시. 날이 밝을 때까지 이렇게 왔다 간 손님은 10여명이었다. ●가족 같은 손님이 모이는 사랑방 최위희(94) 할머니를 모시고 온 손녀 홍영주(26)씨가 먼저 들어간 엄마 목욕비라며 한 명분을 더 계산하고 들어갔다. 최씨 할머니 3대는 김이 그득한 탕 속에 나란히 몸을 담갔다. 할머니와 손녀는 벌써 20년 넘게 이곳을 찾고 있다. 홍씨는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이곳으로 목욕을 다닌 터라 찜질방은 오히려 불편하다고 했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자신이 손녀인 양 홍씨에게 목욕을 맡긴다. 멋모르고 여탕을 뛰어다니던 손녀는 어느새 할머니 등을 밀어줄 만큼 든든하게 자랐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사우나나 찜질방도 많지만 홍씨는 이 목욕탕을 최고로 친다. 다른 목욕탕은 불편하고 여기 와야 내 집처럼 편안하단다. “할머니랑 엄마랑 이곳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성격도 둥글둥글해졌어요. 여기가 우리집 여자들의 사랑방인 셈이죠.” 오전 11시. 5년간 폐암으로 병원생활을 하던 남편이 3일 전 세상을 떴다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어제 삼일장이 끝났다고, 그동안 씻지도 못했다고 먼저 말을 텄다. 탈의실에 앉아 있던 아낙들은 “살리려고 그렇게 애쓰더니 안됐네. 약한 사람이 고생 많았어.”라며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위로를 보탠다. 낮 12시10분. 사우나에서 수다 떨던 아주머니 셋이 탈의실 평상에 벌거벗은 채로 모여 앉았다. 냉장고에 음료수가 가득 차 있지만 따로 냉커피를 타 마신다. 공짜 커피를 곁들여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김정미(45)씨는 “매일 오다시피 해요. 낮에 시간 보내기도 좋고. 탕 안에서 둘이 얘기하는데 거들면서 끼어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니까요. 찜질방에선 어디 그러기 쉬운가.” 손님들끼리 어울려 밥솥에 점심을 지어먹기도 한다. ●“단골손님들 때문에 문 못닫아요” “지난해 12월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적잖이 놀랐어요.” 목욕관리사(때밀이) 이정단(55·여)씨의 말이다. “서울 시내에 아직까지 이렇게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니…. 손님들이 변치 않고 찾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죠. 손님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평일엔 20~30명쯤, 주말에는 50명 정도 오세요. 여긴 모녀끼리 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때밀이 값요? 때만 밀면 1만 5000원, 전신마사지하면 4만원, 할머니들이 한 번 밀어보고 나면 손맛이 있다면서 계속 찾으시네요.” 목욕탕 사장 담란향(66·여)씨는 “이사 가도 목욕은 이곳으로 오는 손님이 꽤 된다.”고 했다. 한때 장사가 잘 안 돼서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손님 중 열에 여섯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 계속 운영하고 있다. 어떤 손님은 목욕비로 1만원을 받아도 좋으니 절대로 없애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목욕탕을 찾은 소병룡(77)씨는 “예전엔 욕조 갖춰 놓은 집이 어디 있었나. 지금이야 집마다 샤워 시설이 있지만 더운 물에 몸을 푹 담가야 몸도 풀리고 제대로 ‘목간’했다는 기분이 들지.”라고 말했다. “개업했을 때부터 계속 다녔지. 찜질방에서 가끔 아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동네 목욕탕처럼 재밌지는 않지. 누가 죽었다더라는 소식도 듣고, 이런저런 사연 듣는 재미에 다니는 거라네.” 4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목욕탕은 주인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유지비, 매출액 안따지고 장사한 지 오래” 한때 목욕탕 운영은 ‘동네 재벌’의 상징이었다. “한창 손님이 몰릴 땐 옷장이 부족해서 바구니에 옷을 담아놓고 손님을 받았어요.” 담 사장은 그때가 눈앞에 생생하다. 20대 젊은 나이에 목욕탕을 시작해 서른 여덟에 남편과 사별, ‘때 돈’을 벌어 아들 셋, 딸 둘을 혼자 키웠다. 그때 두 살배기였던 딸이 지금은 마흔이 넘은 아줌마가 됐다. 1970년대만 해도 중앙탕 반경 500m 주변에 목욕탕 6곳이 더 있었다. 그러던 것이 24시 사우나, 대형 찜질방에 밀려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해 결국 이곳 하나만 남았다. 한때 일요일엔 400명 넘게 손님이 몰리곤 했지만 이젠 휴일에도 많아야 50여명 선이다. “낙원상가 쪽으로 대형 찜질방들도 생겼고, 서울 외곽으로 목욕 원정 가는 손님들도 생겼어요.” 동네 터줏대감 자리를 찜질방에 넘겨주는 속내가 편하지만은 않다. 동네 목욕탕 장사로 목돈을 만지는 시대도 지났다. 400환으로 시작했던 목욕비는 지난해에야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더 올리라는 손님도 있지만 그러면 찜질방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논리 때문에 차마 올리지 못한다. 낡은 수도꼭지, 깨진 타일 그대로의 시설이지만 손님들이 개의치 않기에 믿는 구석도 있다. “물세는 한달에 40만~50만원, 기름은 난방유를 때는데 한 드럼에 15만원 정도 하나? 사실 한 달에 몇 드럼 들어가는지도 잘 몰라요. 그런 거 따지지 않고 운영한 지 오래 됐어요. 한 달 매출액도 따지지 않고 장사하는데요 뭐. 어쨌든 마지막 손님이 끊길 때까지 이 사랑방을 지킬 거예요.” 동네 목욕탕은 오늘도 정과 인심의 김을 모락모락 피운다. 사람은 씻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씻는 방법은 늘 변해 왔다. 1970년대는 동네 목욕탕의 전성기였다. 온수 샤워 시설을 갖춘 집이 드물었고 목욕탕을 가는 건 빼먹지 말아야 할 ‘주기적’ 행사였다. XX탕, OO탕, 단출한 이름으로 동네마다 몇 개씩 있는 목욕탕은 일요일 아침이면 손님들로 북적였다. 목욕탕을 나서는 아이들 손에는 빨대 꽂힌 요구르트가 들려 있고, 입구에서 여탕으로 들어간 아내와 엄마를 기다리는 풍경도 익숙했다. 80년대 들어 시내 중심가를 필두로 ‘사우나’ 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핀란드 사우나라 불리는 건식사우나를 비롯해 습식사우나, 폭포식 냉탕 등의 시설을 갖춘 고급 목욕탕이 들어섰다. 동네 목욕탕도 하나둘 시설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회사원들은 피로를 푼답시고 점심시간을 이용, 사우나에 드나들며 땀을 뺐고 벌건 얼굴로 오후 근무를 시작하곤 했다. 90년대, 목욕탕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목욕탕은 갖가지 모습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맥반석, 옥사우나는 물론 참숯, 한방쑥, 황토, 녹차를 이용한 시설이 등장했다. 서비스도 보강하면서 정부의 1회용품 사용규제가 있기 전까지 비누, 수건은 물론 칫솔, 샴푸 등도 무상 제공됐다. 수면실, 헬스실을 갖춰 덩치를 키웠고 24시간 영업은 기본이 됐다. 2000년대엔 찜질방 시대가 열렸다. 남녀가 버젓이 함께 모여 땀을 빼는 찜질방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황토방, 보석방, 얼음방은 물론 노래방, PC방, 헬스방, 마사지방까지 더해진 대형 찜질방은 기업 형태가 됐다. 고작해야 2층 건물이던 동네 목욕탕은 ‘종합오락 찜질방 빌딩’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色&空 사진 한 장에 담았죠”

    “色&空 사진 한 장에 담았죠”

    “너는 달나라에서 왔니?” 세계적 사진 출판사 ‘아파추어(Aparture)’의 편집장인 멜리사 해리스는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포토 페스티벌 작가 리뷰에서 한국의 사진작가 김아타(金我他·53)의 사진작품을 보더니 외마디 비명처럼 이렇게 외쳤다. 상이군인·스님·남자 등을 투명한 큐브에 넣어 나체로 웅크린 채로 찍은 ‘박물관 시리즈’ 였다. 미국 사진의 살아 있는 역사로 알려진 해리스는 김아타의 작품에 흥분해 웃고, 농담하고, 전시회도 열고 사진집을 내자고 제안했다. 그 때가 2001년이었다. 그러나 김아타의 사진집이 나오기까지는 4년이 더 걸린다. 그 무렵 김아타는 박물관 시리즈에서 ‘온 에어 프로젝트’로 이동해, 자신의 더나은 성장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정체성 표현한 작품 ‘인달라’ 해리스의 안목대로 김아타는 탄탄하게 성장했다. 2005년 아파추어에서 박물관 시리즈 도록을 냈고, 2006년 6월에는 뉴욕 세계사진센터(ICP)에서 아시아 작가로는 유일하게 개인전을 개최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해 미국 일간지들에 대서 특필됐고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 아트 컬렉션을 비롯해, 휴스턴 박물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이 작품을 사갔다. 그 김아타가 2009년 6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53회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초대작가로 초청돼 팔라초 제노비오에서 전시를 하게 됐다. 한국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활동무대를 넓혔고, 이제 전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순간이다. 김아타가 베니스비엔날레 이사회 및 디렉터 대니얼 반바움이 승인한 특별초대작가로 선정된 결정적 작품은 각 도시의 정체성을 표현한 ‘인달라’였다. 인달라는 세계 주요 도시들, 파리·워싱턴·로마· 모스크바·프라하 등 9개 도시에서 그 도시를 표현할 수 있는 1만장의 사진을 찍어 각 도시를 표현하는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한 작품이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사진을 상상해 보라. 어떤 것이겠는가. 맞다! 상상한 대로 1만장 사진 하나하나에 맺혀 있었을 어떤 형상도, 어떤 존재도, 어떤 색깔도 맺혀 있지 않다. 뿌연 회색만이 대형 사진에 가득할 뿐이다. 다만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분주함과 화려함, 고단함에 따라 잿빛은 짙어지거나 옅어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낙엽은 가만히 있는데 밟는 내가 아파” 인달라 시리즈는 어찌 보면 2002년부터 시작된 ‘온 에어 프로젝트’의 개념이 확대된 느낌이다. 역시 세계 주요 도시, 즉 뉴욕·파리·워싱턴 등에서 한 커트에 노출시간을 8시간이나 주었다. 거리의 건물이나 나무 등은 그대로지만, 그토록 오래 노출을 열어 두면 분주하게 오고 가는 사람이나 자동차들은 모두 사라진다. 건물만 살아남은 텅빈 도시의 거리처럼 사람과 자동차는 그저 회색의 분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즉 김아타의 사진 작업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이다. 그의 이름 자체처럼 말이다. 나는 나(我)이기도 하고 남(他)이기도 하다. ‘낙엽은 가만히 있는데 밟는 내가 아프다.’는 그의 말은 그래서 와닿는다. 오는 6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인달라 시리즈를 중심으로, 온에어 프로젝트 등이 전시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클림트의 황금빛 비밀’展 유디트 등 110여점 전시

    ‘클림트의 황금빛 비밀’展 유디트 등 110여점 전시

    세계 미술 아트숍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아트 포스터의 하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다. 황금빛이 물결치는 환상적인 분위기에서 여자는 두 눈을 꼭 감고 환희에 빠져 검은 머리 남자의 키스를 받고 있다.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단박에 빠져들 만큼 사람들은 이 ‘키스’를 좋아한다. 특히 연인들에게는 놀라운 호소력을 발휘한다. 키스를 비롯해 클림트의 그림은 에로티시즘 농도가 짙지만 우아해 품격을 잃지 않고, 여기에 황금빛까지 찬란하니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클림트의 작품을 그림책에서만 아니라 직접 볼 수 있게 됐다. 2일 개막해 5월1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4관에서 ‘클림트의 황금빛 비밀-토털아트를 찾아서’ 전시가 열린다. ‘유디트’ 등 유화 40여점과 드로잉과 포스터 원본 70여점, ‘베토벤 프리즈’ 등 대표작 110여점이 전시된다. ●화려한 색채로 시선 꽉… 해외 마지막 전시회 이번 전시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국립미술관을 비롯해 세계 11개국 20여개 미술관에서 작품을 빌려왔고, 개인 컬렉터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벨베데레 국립미술관은 한국 전시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해외 전시를 계획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어, 빈이 아닌 도시에서 클림트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 물감이 너무 얇게 발라져 있고 금세공하듯 물린 금박들이 해외 전시여행을 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전시에서 ‘키스’도 볼 수 있겠다고 좋아해서는 안 된다. 유감스럽게도 ‘키스’는 전시되지 않는다. 키스는 건물에 부착돼 이동할 수 없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모와 지혜로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론을 죽여버린 유대인의 영웅 ‘유디트’를 팜므파탈로 표현한 작품 ‘유디트와 홀로페론’이나 ‘아담과 이브’, ‘아기’ 등의 작품으로 키스의 향기를 느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번 전시는 회화와 건축, 미술과 실용 등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예술을 하나로 결합시키려 했던 클림트의 토털아트를 경험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그는 파리에서 인상파가 득세하던 시절에, 순수미술보다는 건축·공예·실용미술 등이 결합된 미술세계를 추구했다. 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하는 진보적 작가들과 1897년부터 ‘빈 분리파’를 결성해 토털아트 활동을 이끌었다. 토털아트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7개 회화로 구성된 베토벤 프리즈도 이번에 전시된다. 베토벤 프리즈는 건축, 회화, 공예, 음악 등 각각의 예술 분야가 베토벤을 주제로 통합된 작품이다. ●회화·건축, 미술·실용 융합 토털아트의 진수 사실 토털아트적인 경향은 클림트 그림을 최근까지 대중성은 높지만, 예술적으로 높게 평가받지는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됐다. 풍부하고 화려한 장식성뿐만 아니라, 실용성의 강조는 당대의 흐름과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클림트가 황금색을 남발하고 강한 장식성을 가진 것은 귀금속 세공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자란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말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관람료가 19세 이상 성인의 경우 1만 6000원대로 대폭 상승했다는 것이다. 대형 해외 미술관들의 국내 전시 관람료가 최근까지 1만 2000원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무려 30% 인상됐다.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원화의 가치가 하락한 탓이라고 해도 씁쓸한 대목이다. (02)334-4254.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상수원 관리지역 지원비 줄줄 샌다

    상수원 관리지역 지원비 줄줄 샌다

    #사례1(전남 장흥댐 상류). 1억원가량을 빚 진 A씨는 6년 전 지은 양옥집을 지난해 1억 3000만원을 받고 환경부 산하 영산강유역환경청에 팔았다. A씨는 빚을 갚고 남은 돈을 합쳐 같은 마을에 부인의 이름으로 다시 집을 지어 이사했다. 그가 판 집은 곧바로 헐렸고 나무가 심어졌다(사진 위). 건축허가는 지자체에서 내줬다. #사례2(순천 주암댐 상류). 보성군 복내면사무소 직원인 B씨는 2007년 9월 율어면 문양리에 밭 25㎡(8평)를 33만원에 샀다. 이장 등의 동의서를 받아 1994년 5월에 산 것처럼 계약서를 꾸민 뒤 지난해 수변구역 주민지원사업비 70만원을 타냈다가 발각됐다. 지난해 이렇게 돈 욕심을 냈다가 적발된 공무원이 보성군에서 48명이나 됐다. 보성군에서만 돈 수령자가 1660명에서 2280명으로 늘면서 주민지원비가 85만원에서 70만원으로 줄자 기존 수령자들이 진정을 제기해 들통이 났다. ●한쪽은 헐고, 한쪽은 짓고 상수원 관리지역에서 주민지원사업비가 허술한 법망 밑으로 줄줄 새고 있다. 이 돈은 모두 물을 마시는 주민들이 낸 물 이용부담금에서 나온다. 전남 서남부 9개 시·군에 먹는 물을 대는 전남 장흥군 유치면 장흥댐. 댐 상류인 유치면 원등리는 2002~2003년 수몰 이주민들이 옮겨와 새로 생긴 마을이다. 당시 수몰민들은 보상금을 쥔 터라 다들 무리해서 집을 지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당시 주민들이 땅값과 건축비 등을 합쳐 보통 7000만원에서 1억원 이상 들여 집을 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돈벌이가 별로 없는 일부는 2000만원 주택 융자금과 생활비 부담 등으로 빚에 몰려 집을 팔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 마을 한 주민은 빈 땅을 가리키며 “여기에 있던 중국집 상가 건물은 농협 빚 때문에 경매에 들어갔는데, 민간인이 경락받은 뒤 영산강유역환경청에 팔아 5000만원가량 이문을 남겼다는 말이 돈다.”고 증언했다. 다른 주민은 “저기 저 노래방 간판이 달린 2층 상가건물(사진 아래)도 영산강유역환경청에서 사들였는데, 곧 헐릴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빚에 쪼들린 주민 3명도 매입신청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일러줬다. 이 때문에 주민들 한쪽에서는 보상 형평성에 의문을 달면서 주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일부 주민들이 유치면사무소로 찾아와 “왜 멀쩡한 건물을 뜯도록 내버려 두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최경석(46) 장흥군의원은 “원등리에 하수종말처리장이 설치돼 있어 수질오염은 큰 문제가 안 된다.”며 “주민들이 판 건물을 군에서 사들여 수몰민 전시관 등으로 재활용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지번 한 곳에 소유자가 90여명 주민지원비를 둘러싸고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흥 유치면의 한 마을 주민들은 필지별로 소유자를 3명에서 93명까지 늘려 모두 23필지에 대해 주민지원사업비를 신청했다. 관련법에서 토지소유자이면서 현지 주민이어야 지원 대상에 해당된다는 규정 때문이다. 1심에서는 주민이, 2심에서는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승소했다. 이 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몇해 전 주암댐 수계인 순천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축사를 보상받은 뒤 인근에 부인 이름으로 다시 축사를 짓는 일이 벌어져 빈축을 사기도 했다. 영산강유역환경청에서는 맑은 물 보전 차원에서 상수원 보호구역과 주변지역에서 오염원인 논과 밭, 집과 축사, 공장 등을 주민지원사업 명목으로 해마다 사들인다. 이 사업은 댐 주변마을 주민들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원되는 마을발전기금과는 별개다. 영산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보상받은 주민이 집을 다시 짓더라도 10년 안에는 이를 매입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개인별 거래에는 제재수단이 없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이 2003~2008년 사들인 토지는 순천과 장흥 등 전남도내 8개 시·군, 22개 읍·면에서 1235건에 1269억원에 달했다. 올해도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주민지원사업비로 전남도내 8개 시·군에서 9515명에게 135억여원을 지원한다. 한편 지난해 상수도요금 고지서에 첨부해 거둬들인 물 이용부담금은 광주와 전남도 등 19개 시·군에서 649억원이었고, 올해(t당 170원)는 713억원이다. 글 사진 장흥·보성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선씨 종부 ‘350년 간장’ 인터넷에 팔았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나 뉴타운이 애물단지가 된 이유 또 다른 철거민들…세운상가 떠난 이들의 겨울 “나도 힘깨나 썼지만 요즘같은 폭력 국회는…” 29년만에 벗은 ‘간첩 누명’
  • [만나고 싶었습니다]‘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만나고 싶었습니다]‘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을 기억하시나요. 1973년 9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 소속으로 전남 장흥·강진·영암·완도에서 당선된 황호동(73) 의원. 110㎏에 180㎝의 거구인 그는 이듬해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에 국회의원 신분으로 역도 선수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그해 서울신문은 9월 6일자 1면 기사에서 “역도 슈퍼 헤비급 黃鎬東선수(국회의원)가 132.5㎏으로…은메달을 보탰다.”고 보도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국제대회 선수로 뛰었던 일이나, 메달을 딴 것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 황 전 의원을 전직 국회의원들의 사랑방인 서울 을지로 헌정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그를 만나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국회의원 역도선수가 된 배경부터 물었다.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김택수 당시 대한체육회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북한이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는데, 아무래도 북한과 메달 한두 개를 놓고 순위경쟁을 할 것 같으니 선수로 뛰어달라는 얘기였지요.” 역기를 놓아버린지 10년이 넘었고, 아시안게임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도 김택수 회장에게 “진작에 말하지 그랬느냐.”고 말하는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출전 결심이 서 있었다. ●슈퍼헤비급 체중 통과하려 맹물 엄청 마셔 황 전 의원은 출전을 하려던 이유에 대해 “내 의지를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선수생활을 그만둔 10년의 세월과 젊음을 뛰어넘어 국제경기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삶의 도전이었던 것이다. 결심은 했지만 국회의원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고 하면 “미쳤나 보다.”는 말을 들을까 봐서 친한 대학 선배 한 명에게만 출전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는 38세의 노장 역도선수는 태릉 선수촌으로 들어갔다. 유신헌법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할 무렵 야당 의원이 정부 측의 요청에 덥석 응했다면 이상한 눈길을 받았을 터. 그는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다 TV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나오자 욕설을 하면서 “왜 또 나왔어?”라고 소리를 지르는 강한 야당성향을 보여줬다. 그리곤 그의 모습은 두 차례나 선수촌에서 며칠씩 사라졌다.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있는 남산에 끌려갔다 왔던 것이다. 짧은 기간에 가장 어려운 것은 훈련의 강도 보다 몸무게였다. 슈퍼헤비급에 출전했지만 훈련을 해도 몸무게는 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에서 몸무게를 재기 몇시간 전부터 맹물을 엄청나게 마시고 간신히 통과했다. 그리고 은메달을 땄다. 한국대표팀은 금메달 16개·은메달 26개로 4위, 북한은 금메달 15개·은메달 14개로 5위였다. 냉전이 한창일 당시였기에 남북 승부 결과는 국민적 관심사였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역도로 다져진 그는 당시로서는 거구였다. 그래서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중인 1956년에 ‘고려대 덩치’ 4명에 선발됐다. 4명은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호에 투입됐다. 하지만 신익희 후보가 선거를 불과 10일 남기고 유세 도중 돌연 숨지면서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그의 큰 덩치는 국회의원이 돼서도 인기를 누렸다. 여야 대치가 있을 때면 전면에 나서달라는 요구는 그에게 돌아왔던 것이다. 1972년의 10월유신으로 8대 국회가 해산되고 실시된 총선에서 탄생한 9대 국회에서는 극심한 유신반대 투쟁이 벌어졌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개헌 추진을 위한 대여 강경투쟁 노선을 선택했다. 공화당은 국회(현 서울시의회) 건물 문을 걸어잠그고 운영위를 열어 야당이 발의했던 개헌특위구성결의안 폐기를 시도했다. 복도에 몰려 있던 신민당 의원들은 “황호동 의원 어디있어?”라고 찾았다. 불려나간 황 의원은 회의장 문짝 아래 위를 두 손으로 잡고 틀었다. 그가 문을 틀어놓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이가 틈 사이로 손을 넣어 문고리를 열었다. 문을 부수지 않고도 회의장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의안 폐기가 선언되고 난 뒤였다. 해머와 소화기가 등장한 35년 뒤의 18대 폭력국회 장면을 보면서 소감이 어땠을까. 그는 “요새 정치 싸움은 치열해요. 무슨 시장 깡패들도 아니고….”라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에는 나를 김두한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나는 비폭력주의자였어요. 김영삼 총재 시절에 여야가 부딪치기는 했지만 의자에 앉아서 말로 싸웠지, 저런 폭력은 쓰지 않았어요. 지금 야당이 너무 지나치다고 봐요.”라고 혀를 찼다. 그리고는 “매우 저질 국회요. 대통령에 국회 해산권이 없으니까 국회가 자진해산해야 할 판이오.”라고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여야 대치때 선봉섰지만 난 비폭력주의자 개헌특위구성결의안이 폐기되자 김영삼 총재는 가두시위를 벌이고 청와대까지 쳐들어가자고 했다. 그때 황 의원이 나서 “바깥에 경찰이 쫙 깔려 광화문에도 못갈 판에 무슨 청와대를 가느냐.”고 반대했다. 주변에서 “기운 센 사람이 왜 반대하느냐.”는 핀잔이 쏟아졌지만 황 의원은 “기운이 세니까 반대한다.”고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에는 야당 내에서도 파벌 대립으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1975년 신민당 옥천·보은·영동지구당 개편대회에서 나선 이용희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중앙당에서 최형우 사무차장이 파견됐다. 최 사무차장은 현지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국회 내에서는 폭력이 없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이철승 계보였던 그는 호남출신이면서 김대중보다는 김영삼을 지지했다고 한다. 국회의원 유세장에 갔더니 연설대 위에 김대중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달라는 메모가 올라와 있었다. 그는 메모 요구대로 하기는커녕 김대중 욕을 실컷 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10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황 전 의원은 인터뷰를 마친 뒤 헌정회 사무실을 나서면서 “지금 국회는 너무 사납다.”면서 “참을성을 키워서 국회와 국회의원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어떻게 지내시나요 1주에 3일 신장투석… 정부 지원금으로 생활 황호동 전 의원은 몇년째 투병 중이다. 신장기능에 문제가 생겨 1주일에 3일을 병원에 가서 투석치료를 받는다. 그래서 인터뷰 날짜도 병원에 가지 않는 날로 잡았다. “건강은 어떠시냐.”는 질문에 “한번에 피를 4㎏씩 투석하고 나면 어지러워서 계단에서도, 길에서도 넘어지기 일쑤요.”라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슈퍼헤비급 은메달리스트여서 장미란 선수를 연상하면서 인터뷰에 나갔지만 황 전 의원은 ‘키 큰 전직 의원’ 모습이었다. 한때 어른 허리만했다는 팔뚝은 여느 70대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병과 싸우느라 약간 지쳐보였지만 목소리는 정정했다. 요즘도 하루에 담배 한 갑 반을 핀다고 했다.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일반 병원에 다녔지만 요즘은 종교단체에서 투석을 하기 때문에 돈은 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돈 얘기가 나오자 황 전 의원은 “집이 워낙 좁아서…. 응접실이 없어서 손님을 집으로 오라고 하지를 못해요.”라고 했다. 나이 등을 감안해서 자택으로 인터뷰를 가겠다던 기자를 굳이 말리고 헌정회 사무실을 고집했던 데 대한 해명인 셈이다. 전남 강진 갑부였던 조부로부터 140여평의 불광동 주택 등 부동산 몇 채를 물려받았지만 남은 것은 30평짜리 아파트뿐이라고 했다. 정부 예산에서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100만원으로 생활을 한다. 이 가운데 자신의 용돈은 20만원, 나머지 80만원으로 부인과 함께 생활을 한다. 생활비가 적지 않으냐고 하자 “우리 사회와 경제가 어느 상황인데, 이 정도면 고마워해야지요.”라고 손사래를 친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생활하는 박영록 전 국회 부의장의 사정에 비하면 자신은 낫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가 10대 국회에서 낙선하고 나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 정치규제에 묶여버렸다. 그 뒤에 그는 정치계를 떠났다. 떠난 이유를 물으니 “돈이 없어서….”라고 했다. 그의 국회의원 시절에는 낭만과 멋이 있었던 듯했다. 국회의원 시절 월급을 타는 날이면 당시 국회의사당 부근의 무교동 다방에는 대학 후배들이 그득했다고 한다. 월급봉투를 들고 다방에 들어가서 후배들과 만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월급을 나눠주다 보면 월급 봉투는 금방 비어버렸다. 때로는 집으로 찾아오는 후배들을 빈 손으로 보내지 못해 용돈을 쥐어줬다고 했다.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 73세 ▲ 전남 강진 출생 ▲ 강진 농고 졸·고려대 경제학과 졸 ▲ 9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전남 강진·장흥·영암·완도) ▲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 발기위원 ▲ 신민당 중앙당 청년지도국장 ▲ 체육훈장 백마장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선씨 종부 ‘350년 간장’ 인터넷에 팔았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나 뉴타운이 애물단지가 된 이유 또 다른 철거민들…세운상가 떠난 이들의 겨울 29년만에 벗은 ‘간첩 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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