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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가라’로 인기 얻었던 큐오큐 시우, 간경화 투병 끝 사망

    ‘떠나가라’로 인기 얻었던 큐오큐 시우, 간경화 투병 끝 사망

    ‘QOQ’ 출신 시우(37·이상훈)가 간경화 투병 끝에 숨졌다. 5일 유족에 따르면 이상훈은 1년여간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 4일 오후 8시30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 2002년 5인조 그룹 큐오큐(QOQ) 멤버로 데뷔했다. 1집 앨범 ‘떠나가라’라는 곡을 히트시키며 이름을 알렸고, 당시 뮤직비디오에 배우 최민수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데뷔한 해 차량이 전파되는 교통사고로 팀은 해체됐다. 고인은 이후 2007년 쿨라피카라는 예명으로 복귀했고, 2010년에는 매직 플로우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후에도 작곡, 작사 작업을 이어가며 음악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빈소는 강동성심병원 장례식장 1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 오후 1시다.
  • ‘좋은데이’ 소주 무학그룹 최위승 창업주 별세

    ‘좋은데이’ 소주 무학그룹 최위승 창업주 별세

    경남 지역의 소주인 ‘좋은데이’를 생산하는 종합주류기업 무학의 창업주 최위승 무학 명예회장이 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0세. 최 명예회장은 1932년 경남 고성군 대가면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어렵게 자라던 중 17세에 ‘성공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 주류 회사에 곡식을 납품하는 대리점을 운영했다. 33세가 되던 1965년 마산에서 무학을 창업했다. 1973년부터 2008년까지 회장으로서 무학을 이끌었고 2008년부터 지금까지 명예회장을 맡았다. 고인은 생전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마산상공회의소 10~12대 회장(1979~1988년), 대한적십자 경상남도 회장(1989~1995년), 민주평통자문회의 경남도 부의장(1995~1998년), 경남지역발전협의회 이사장(1998~2020년) 등을 지내며 지역사회 발전에 앞장섰다. 유족은 정우, 재호(무학그룹 회장), 동호(MH에탄올 부회장), 정호(용원컨트리클럽 부회장), 한겸씨 등 4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창원 에스엠지연세병원 장례식장 302호에 마련됐다. 장례식은 회사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오는 5일이다. 영결식을 마친 후 고인은 경남 고성군 대가면 선영에 영면한다.
  • 80년대 풍미한 DJ 백형두 지병으로 별세

    80년대 풍미한 DJ 백형두 지병으로 별세

    1980년대 라디오 디제이(DJ)로 활약한 방송인 백형두가 세상을 떠났다. 77세. 1일 유족 등에 따르면 고인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다 전날 오전 1시쯤 별세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 교내 방송반에서 활동하고 미군 방송국에서 일하기도 했다. 1968년부터 시보네 뮤직홀, 심지다방 등에서 DJ와 MC로 일하다 1970년대 초 부산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DJ로 발탁됐다. 특히 1979년부터 MBC FM 라디오 ‘아침의 행진’ DJ를 맡으며 유명해졌다. 당시 김광한·배한성·이종환 등과 함께 최고 DJ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1987년까지 300 0회 넘게 ‘아침의 행진’을 진행했던 고인은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MBC에서 1981년 방송연기상 특별상, 1988년엔 공로상을 받았다. 1990년 TBS 교통방송 개국 때는 ‘출발 서울대행진’ 진행을 맡았고, 1994년부터는 ‘길따라 노래따라’, 1998년에는 ‘밤과 음악 사이’를 이끌었다. 1997년 부산교통방송 방송보도부장, 2002년 원주교통방송 방송심의실장을 지냈다. 유족은 딸 수임·수희씨와 동생 형오씨 등이 있다. 빈소는 동국대 일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 2일 오전 6시.
  • 1980년대 라디오 디제이 백형두 별세

    1980년대 라디오 디제이 백형두 별세

    1980년대 라디오 디제이(DJ)로 활약한 방송인 백형두(77)가 세상을 떠났다. 1일 유족 등에 따르면 고인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다 전날 오전 1시쯤 별세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백형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는데, 학창시절 교내 방송반에서 활동하고 미군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기도 했다. 1968년부터 시보네 뮤직홀, 심지다방 등에서 DJ와 MC로 일하다 1970년대 초 부산MBC ‘별이 빛나는 밤에‘ DJ로 발탁됐다. 특히 1979년부터 MBC FM 라디오 ‘아침의 행진’ DJ를 맡으며 유명해졌다. 당시 김광한·배한성·이종환 등과 함께 최고 DJ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1987년까지 3000회 넘게 ‘아침의 행진’을 진행했던 고인은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MBC에서 1981년 방송연기상 특별상, 1988년엔 공로상을 받았다. 1990년 TBS 교통방송 개국 때는 ‘출발 서울대행진’ 진행을 맡았고, 1994년부터는 ‘길따라 노래따라’, 1998년에는 ‘밤과 음악 사이’를 이끌었다. 1997년 부산교통방송 방송보도부장, 2002년 원주교통방송 방송심의실장을 지냈다. 유족은 딸 수임·수희씨와 동생 형오씨 등이 있다. 빈소는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장례식장 16호실, 발인 2일 오전 6시다.
  • 안병만 前교육과기부 장관 별세

    안병만 前교육과기부 장관 별세

    원로 교육·행정학자인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3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안 전 장관은 1941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 기획조정처장과 대학원장을 거쳐 제5대 총장(1994년)과 제7대 총장(2002년)을 지냈다. 고인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전부터 정책자문을 맡았고 초대 국무총리 후보 물망에도 올랐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해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었고, 그 해 8월 장관으로 임명돼 2년 1개월 동안 재임했다. 2006년 교육계에 헌신한 공로로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박정희씨와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3일 오전 8시 30분.
  • 안병만 전 교과부 장관 별세

    안병만 전 교과부 장관 별세

    원로 교육·행정학자인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3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안 전 장관은 1941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명지대 행정학과 전임강사와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1975년부터 한국외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외대 기획조정처장과 대학원장을 거쳐 제5대 총장(1994년)과 제7대 총장(2002년)을 지냈다. 고인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전부터 정책자문을 맡았고 초대 국무총리 후보 물망에도 올랐을 정도로 가까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하나로 합쳐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었고, 그 해 8월 장관으로 임명돼 2년 1개월 동안 재임했다. 교과부 장관 재임 시절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여러 정책을 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시 EBS 강의 반영 비율을 기존 30%에서 70%로 올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명박 정부의 보수적 교육철학에 반대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해 가입 교원 명단 공개, 시국선언 교사 중징계 등으로 극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장관을 그만둔 뒤에는 2011년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2018년 한미교육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 교육계에서 일했다. 2006년 교육계에 헌신한 공로로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정부론’, ‘한국선거론’, ‘현대한국정치론’ 등이 있다. 유족으로 부인 박정희씨 사이에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일 오전 8시 30분.
  • [속보] 개그맨 신동엽 부친상…슬픔에 잠겨

    [속보] 개그맨 신동엽 부친상…슬픔에 잠겨

    개그맨 신동엽이 31일 부친상을 당했다. 슬픔에 잠긴 신동엽은 장례를 위해 내일로 예정된 ‘미운 우리 새끼’ 녹화를 미뤘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에 차려질 예정으로 상주로는 장남 경기도농아인협회 회장 신동진과 차남 신동엽이 있다. 신동엽은 지난 2월 KBS2 ‘불후의 명곡’에서 요양병원에 모신 아버지를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 이재용, 인텔 CEO와 회동… 세계 1·2위 ‘반도체 협력’

    이재용, 인텔 CEO와 회동… 세계 1·2위 ‘반도체 협력’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30일 시스템반도체 1위 미국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양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만남은 세계 ‘반도체 공룡’의 경영적 결합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당시 강조한 ‘경제안보동맹’의 민간 실행인 동시에 이 부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를 앞당기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 부회장이 방한 중인 겔싱어 CEO를 만나 ▲차세대 메모리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PC 및 모바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노태문 MX사업부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등 삼성전자 사장단이 배석해 분야별 릴레이 회의를 진행했다.삼성전자와 인텔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매출 1, 2위를 다투는 경쟁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에서 823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94조 1600억원)의 매출을 올려 79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인텔을 제치고 1위에 오른 바 있다. 두 기업의 협력은 무한 경쟁 관계에서 반도체 시장 ‘미래 개척의 동반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데이터 저장장치 중심의 메모리 최강자인 삼성전자는 중앙처리장치(CPU) 기술의 표준이 된 인텔과 손잡고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인텔과 오랜 기간 메모리와 CPU 간 호환성 테스트를 하는 등 미래 개척을 위한 긴밀한 협력을 이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계는 지난 8월 가석방 이후 잠행을 이어 오던 이 부회장의 최근 활발한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과 외빈 초청 만찬에 참석한 데 이어 지난 17일엔 서울 용산구 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대사관에 마련된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지난 20일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캠퍼스를 방문했을 당시에는 이 부회장이 직접 양국 정상을 안내했고, 지난 2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대회에서는 전날 삼성이 5년간 450조원 투자를 결정한 것을 두고 “목숨 걸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목숨 걸고 투자한다”던 이재용, 바이든 이어 인텔 CEO 만났다

    “목숨 걸고 투자한다”던 이재용, 바이든 이어 인텔 CEO 만났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30일 시스템반도체 1위 미국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양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세계 ‘반도체 공룡’의 경영적 결합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당시 강조한 ‘경제안보동맹’의 민간 실행인 동시에 이 부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를 앞당기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삼성전자는 이날 이 부회장이 방한 중인 겔싱어 CEO를 만나 ▲차세대 메모리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PC 및 모바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노태문 MX사업부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등 삼성전자 사장단이 배석해 분야별 릴레이 회의를 가졌다. 삼성전자와 인텔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매출 1, 2위를 다투는 경쟁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에서 823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94조 1600억원)의 매출을 올려 79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인텔을 제치고 1위에 오른 바 있다. 두 기업의 협력은 무한 경쟁 관계에서 반도체 시장 ‘미래 개척의 동반자’로 전환을 의미한다. 데이터 저장장치 중심의 메모리 최강자인 삼성전자는 중앙처리장치(CPU) 기술의 표준이 된 인텔과 손잡고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인텔과 오랜 기간 메모리와 CPU간 호환성 테스트를 하는 등 미래 개척을 위한 긴밀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계는 지난 8월 가석방 이후 잠행을 이어오던 이 부회장의 최근 활발한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과 외빈 초청 만찬에 참석한 데 이어 지난 17일엔 서울 용산구 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대사관에 마련된 고(故)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지난 20일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캠퍼스를 방문 당시에는 이 부회장이 직접 양국 정상을 안내했고, 지난 2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대회에서는 전날 삼성이 5년간 450조원 투자를 결정한 것을 두고 “목숨 걸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 별세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 별세

    1980년 신군부에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았던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29일 오전 10시 급성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79세. 고인은 196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맡았다. 이듬해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투쟁을 이끌다가 구속, 제적됐다. 1980년 복적했으나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로 인한 예비검속에 걸려 군에 연행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내란수괴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2년 12월 성탄절 특사로 풀려난 그는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신군부의 고문 수사를 폭로했고 1994년 5월에는 전두환 등 신군부 35명을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로 고소하며 법적 처벌을 이끌었다.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1987), 이철규사인규명대책위 공동의장(1989), 광주 남구청장(1999) 등을 지냈다. 유족은 부인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과 두 아들이 있다. 빈소는 광주 금호장례식장에 마련됐다.
  • 정동년 5.18재단 이사장 별세

    정동년 5.18재단 이사장 별세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29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9세. 5·18기념재단은 “정 이사장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오전 10시쯤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고인은 1943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64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그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굴욕 외교’라고 지적하며 반대 투쟁을 이끌다가 구속, 제적됐다.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전남대에 복적했으나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로 인한 예비검속에 걸려 군에 연행됐다. 육군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간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내란수괴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2년 말 성탄절 특사로 석방돼 1984년 전남대에 두 번째로 복학, 그해 가을 학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1983년 5·3 인천사태 주동자로 구속돼 다시 3년간 옥살이를 했다. 1989년에는 조선대생 이철규 사인 규명과 관련돼 또다시 구속되는 등 30∼40대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다. ‘87년 체제’ 이후에는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5·18광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등을 역임하며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명예 회복 등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99년 광주 남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행정가로 변신한 그는 2002년 지방선거 당시 광주시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빈소는 광주 금호장례식장에 마련됐다.
  • ‘웃찾사’ 개그맨 임준혁, 자택에서 사망…42세

    ‘웃찾사’ 개그맨 임준혁, 자택에서 사망…42세

    개그맨 임준혁(42)이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28일 유족에 따르면 임준혁은 전날 오후 늦게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유족은 고인이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은 없었다고 전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8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8시다. 임준혁은 2003년 MBC 14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SBS ‘웃찾사’ 시즌1과 시즌2에도 출연하며 개그맨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특히 개그맨 강성범과 함께 진행한 코너 ‘LTE 뉴스’에서는 앵커로 활약하며 속 시원한 시사 풍자로 사랑받았다. 최근에는 음악 예능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5에 출연해 JK김동욱, 김건모, 임창정 등 유명인들의 성대모사와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20일 가수 겸 배우 일민, 오정태 등과 프로젝트팀으로 음원 ‘사랑의 뺏지’를 발매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 ‘경관의 피‘·’스토브 리그‘ 배우 이얼, 암투병 끝 별세

    ‘경관의 피‘·’스토브 리그‘ 배우 이얼, 암투병 끝 별세

    영화 ‘경관의 피’,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 각종 작품에서 활약한 배우 이얼(58)이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26일 소속사 스타잇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얼은 식도암으로 투병하던 중 이날 오전 숨졌다. 고인은 드라마 ‘스토브리그’(2019)에서 만년 꼴찌 야구팀 드림즈의 야구감독,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에서는 주인공 서예지의 아버지, ‘보이스4’(2021)에서는 송승헌과 다양한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과장 등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왔다. 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2003), ‘82년생 김지영’(2019), ‘경관의 피’(2022) 등에 출연해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빈소는 서울의료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8일 오전 9시다.
  • ‘한국의 이소룡’ 신일룡 간암으로 별세…향년 74세

    ‘한국의 이소룡’ 신일룡 간암으로 별세…향년 74세

    ‘한국의 이소룡’이라 불리며 홍콩 영화계에도 진출했던 배우 신일룡(본명 조수현, 74)이 26일 간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1948년생인 고인은 197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이조괴담’으로 데뷔해 큰 키에 서구적 마스크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드문 근육질 몸매로 액션 연기를 소화해 이소룡(영어이름 브루스 리)의 대역으로 홍콩에도 진출했다. 1973년 ‘섬개구리 만세’로 청룡영화상 신인연기상을, 1976년 ‘아라비아의 열풍’으로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고인이 출연하고 이두용 감독이 연출한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4)는 칸영화제에 초청된 첫 한국영화다. 1986년 영화 ‘황진이’에 출연한 이후 연기 활동 대신 사업에 매진했다. 음식점·주점·카지노 사업을 하다 말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호두파이 체인을 열었다. 최근엔 피자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지난해 간암 발병 이후 투병 생활을 하다가 이날 오전 8시 11분 세상을 떠났다. 가수 조정현 씨의 친형으로, 유족으로 부인 채희종 씨와 딸 여진 씨, 아들 인준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장지는 분당메모리얼파크다.
  • 서양화가 김관수 별세…향년 70세

    서양화가 김관수 별세…향년 70세

    서양화가 김관수(70) 화백이 24일 별세했다.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고인은 1980년대 ‘타라(TA-RA)’ 그룹의 주축으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벌였다. 백지 상태를 뜻하는 라틴어 ‘타불라 라사’를 줄인 타라 그룹은 1980년대 중반 대표적인 젊은 현대미술 작가 그룹으로 경희대 동문으로 구성됐다. 고인은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아 1988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받기도 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도 없을 때 주최 측에서 본전시 참여 작가로 선정한 매우 중요한 현대미술가”라고 김 화백을 소개했다. 미술계에 따르면 고인은 2000년대까지 국내에서도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국내보다 러시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벌여왔다. 빈소는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202호에 차려졌다. 발인은 27일 오전 6시다.
  • 조현철·매드클라운 형제 부친 조중래 명예교수 별세

    조현철·매드클라운 형제 부친 조중래 명예교수 별세

    교통공학 전문가인 조중래 명지대 공과대학 교통공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 70세. 고인은 교통공학 분야 전문가이자 환경운동가다. 배우 조현철과 래퍼 매드클라운(본명 조동림)의 아버지이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의실현 법조인회를 만든 인권운동가 고 조영래 변호사의 동생이기도 하다. 조현철은 지난 6일 열린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아빠,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라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5시 30분.
  • 김정은, 현철해 관 직접 운구

    김정은, 현철해 관 직접 운구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사망한 현철해 인민군 원수의 시신이 든 관을 직접 운구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 위원장이 전날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영구발인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가장 존경하던 혁명 선배이며 우리 군의 원로였던 견실한 혁명가를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금치 못하시며 고인의 영구를 메고 발인하시였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현 원수의 빈소를 찾아 눈물을 흘린 데 이어 이번에는 고인의 관을 직접 메고 관 위에 흙을 끼얹는 등 예우를 다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북한 김정은, 현철해 조문하며 ‘울먹’

    북한 김정은, 현철해 조문하며 ‘울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사망한 김정일 체제의 군부 핵심 현철해 원수를 조문했다. 김 위원장은 20일 4·25문화회관에 마련된 현철해 인민군 원수의 빈소를 찾아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전했다. 김 위원장은 “수십 년간 위대한 수령님을 결사옹위하는 투쟁에서 무비의 영웅성과 희생성을 남김없이 발휘했다”면서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영도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면서 우리 장군님의 그림자가 되여 인민군대를 오직 수령의 령도만을 받드는 충실한 혁명적 무장력으로 강화발전시키는 성업에 헌신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철해 동지를 잃은 것은 우리 당과 군대, 인민에게 있어서 보상할수 없는 손실”이라고 추모했다. 김정은은 고인의 유해를 바라보며 비통한 표정을 짓더니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고, 묵념 뒤 돌아서면서는 눈물을 훔치는 장면도 조선중앙TV 화면에 담겼다. 그는 직접 현철해의 국장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극진한 예우를 갖췄다. 현철해는 노동당에서 정치국 위원, 중앙위 위원, 중앙군사위 위원 등을 맡은 군부의 핵심 인물로 김정일이 군부를 장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정일 체제에서 김정은의 후계자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
  • 정래혁 前 국회의장 별세

    정래혁 前 국회의장 별세

    9∼11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래혁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5시 14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97세. 1925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해방 후 1948년 특별 7기생으로 육사를 졸업한 뒤 육군본부 작전과장으로 6·25 전쟁을 맞았다. 대구 후퇴 시절 박정희 대통령과 앞뒷집에 살며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1년 5월∼1962년 7월 상공부 장관으로 일했다. 1961년 서독을 방문해 공공차관 1억 5000만 마르크를 얻어 냈고, 1962년 5월 화폐개혁에도 관여했다. 1970년 국방부 장관에 기용됐지만 1971년 실미도 사건으로 옷을 벗었다. 이후 제9·10대 총선에서 서울 성북구(민주공화당)에 출마해 당선됐고, 1981년에는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전남 담양·곡성·화순 지역구에서 11대 의원에 당선됐다. 11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1983년 국회의장에서 물러난 뒤 민정당 대표 시절 지역구 라이벌 문모씨의 ‘투서 사건’으로 부정 축재자로 몰려 재산을 뺏기고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 부인 주숙씨와의 사이에 4남 1녀(정채하·정영준·정영하·정희숙·정진하씨)가 있다. 빈소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 한국 석탄자원 확보 공헌한 정창희 명예교수 별세

    한국 석탄자원 확보 공헌한 정창희 명예교수 별세

    한국의 석탄자원 확보에 크게 기여한 지질학자 정창희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15일 별세했다. 102세. 한국 지질학의 초석을 놓은 고인은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와 일본 홋카이도제국대를 졸업하고, 상공부 중앙지질광물연구소 지질과장을 지낸 뒤 1952년부터 서울대에서 강단에 섰다. 대한지질학회 회장, 유네스코 국제지질연맹 국제지질대비프로젝트 한국위원장을 지냈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1960년부터 오랫동안 활동했다. 정 명예교수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지질학 체계를 한국 현실에 맞게 바꿨다. 대표적인 탄광지역인 강원도 삼척탄전, 영월탄전 및 충청북도 단양탄전에 대해 석탄 자원을 함유하는 후기 고생대 퇴적층인 평안누층군에 대한 연구를 집중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한반도 상부 고생대 지사를 해석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운암지질학상, 대한민국학술원상 저작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나열·나현씨와 딸 나희·나미씨, 사위 김호철·장유진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8일 오전 8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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