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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별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별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지난 26일 밤 별세했다. 94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은 이 할머니가 전날 오후 9시 44분 분당 A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27일 밝혔다.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944년 일본 군대가 주둔한 중국 만주로 강제로 끌려가 위안소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고초를 겪었다. 1993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이 할머니는 수요시위에 참가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섰다. 이 할머니는 2013년 8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승소 판결을 받아 냈다. 빈소는 광주 경안장례식장. 발인은 29일 오전 8시.
  • ‘논스톱4’ 예학영, 24일 사망…뒤늦은 비보 충격

    ‘논스톱4’ 예학영, 24일 사망…뒤늦은 비보 충격

    모델 겸 배우 예학영이 24일 오전 사망했다. 향년 40세. 고인의 빈소는 경기 안양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에 차려졌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한 지인들이 모여 슬픔 속에 예학영을 떠나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예학영의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장지는 경기 광주 시안가족추모공원에 마련됐다. 예학영은 2001년 서울컬렉션으로 데뷔했다. 강동원, 공유, 주지훈 등과 함께 톱 모델 반열에 올라 주목받았다. 이후 시트콤 ‘논스톱4’, 영화 ‘해부학 교실’, ‘아버지와 마리와 나’, ‘바리새인’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전향했다. 2009년에는 마약류인 켄타민, 엑스터시 등을 밀반입하고 투약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받고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2011년 엠넷 ‘세레나데 데작전’, 2012년 tvN ‘코리아 갓 탤런트2’ 서울 지역 예선에 출연하며 활동을 재개했으나 2019년 서울 용산구 소월로 인근에서 술을 마신 채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별세···남은 생존자 10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별세···남은 생존자 10명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별세1944년 중국 만주로 끌려가 고초“힘든 생활 속 수천만원 장학금 기부”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 생존자 10명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지난 26일 밤 별세했다. 94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은 이 할머니가 이날 오후 9시 44분 분당 A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27일 밝혔다.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944년 일본 군대가 주둔한 중국 만주로 강제로 끌려가 위안소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고초를 겪었다. 1993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이 할머니는 수요시위에 참가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섰다. 이 할머니는 2013년 8월 다른 피해자 할머니 등과 함께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승소 판결을 받아 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여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의기억연대는 “이 할머니는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본인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으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수천만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하셨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10명으로 줄었다. 빈소는 광주 경안장례식장. 발인은 29일 오전 8시.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하늘의 대동여지도 그리겠다던 신병문씨 인도에서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하늘의 대동여지도 그리겠다던 신병문씨 인도에서

    한국인 50세 남성이 인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15m 아래로 추락하는 과정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26일 그 나라 언론들에 의해 전해졌다. 인도 매체들은 횡액을 당한 남성의 이름을 ‘신병문’이라고 모두 표기했다.  연합뉴스가 유족과 지인들의 전언을 통해 2011년부터 모터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전국 곳곳을 촬영해온 사진작가 신씨가 성탄을 하루 앞둔 오후 2시(현지시간)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메흐사나 지역에서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사진을 찍던 중 추락해 세상을 떠났다고 27일 전했다. 구자라트는 매년 1월 14일 국제 연 축제가 열리는 지역으로 연말에도 연을 날리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은 현장에서 나일론 연줄이 발견됐다며 패러글라이더가 연줄에 감기면서 추락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전했다. 유족은 “(고인이) 하늘에서 인도의 염전을 찍는 데 관심이 있었다”며 “이번에는 다른 촬영을 하려고 인도에 갔다”고 말했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고인은 창원고, 경북대 지리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생 때부터 사진 촬영에 관심을 둬 ‘한국의 발견-우리 삶과 문화, 풍경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주제로 사진을 찍다가 2011년부터는 개인 비행 장비인 모터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에서 본 우리 땅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주제로 촬영해 왔다. 2009년 11월 목포에서 부산까지 남해안 바닷길 2000㎞를 따라가며 찍은 사진을 화보 ‘우리나라 해안여행:두바퀴로 바닷가로’(2010)에 담았고, 2010년 공동 사진 에세이 ‘사진은 감동이다’를 펴냈다. 이듬해부터 찍은 항공사진은 ‘비상-하늘에서 본 우리 땅의 새로운 발견’(2013, 엔타임), ‘하늘에서 본 새로운 양평’(2015, 엔타임) 등에 담았다. 수림문화재단 공모전 대상, 온빛다큐멘터리상 대상 등을 받았다. 2020년 ‘EBS 한국기행’에 출연했다. 우리에게 같은 방송 ‘세계테마기행’에 자주 출연해 낯익은 동료 사진작가 유별남씨는 “고인의 핸드폰에는 늘 그 지역의 일출·일몰 시각과 바람 상태 등 기록이 떠 있었다”며 “모터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 상업용 사진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은 건 고인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 블로거는 “사진으로 대동여지도를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대한민국 최다 비행, 최장 시간 비행을 기록하고 가장 많은 항공 사진을 찍었는데 하필 머나먼 타국 인도에서 더 먼 길을 떠났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 고인의 시신은 한국 대사관 등의 도움을 얻어 29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빈소는 창녕 영산요양병원에 마련됐는데 다음날부터 조문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발인은 31일. 055) 536-9090한편 신씨의 패러글라이더는 사고 날 오후 5시 30분쯤 카디 근처 비삿푸라카디 마을의 학교 운동장에 추락했다. 마지막까지 툭 트인 곳을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약 15m 높이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며 신씨는 의식이 있는 채로 병원에 후송됐으나 치료 받던 중 끝내 숨을 거뒀다. 추락 과정에 심한 부상을 입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는데 추락 쇼크로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이 사인으로 추정된다. 인도 매체들은 신씨의 추락 직후 모습을 찍은 사진을 무분별하게 게재하고 추락 순간을 담은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현지인들이 빙 둘러 구경하는 가운데 관리들이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그를 살펴보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있었다.
  • 천상으로 쏘아올린 난·쏘·공

    천상으로 쏘아올린 난·쏘·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잘 알려진 조세희 작가가 25일 저녁 숙환으로 별세했다. 80세. 고인은 1942년 8월 20일 경기 가평에서 태어나 보성고,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돛대 없는 장선’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난쏘공’ 문학작품 첫 300쇄 등단 이후 잡지 기자 등으로 활동하며 소설을 쓰지 않고 있다가 1975년 ‘칼날’이라는 작품으로 문학계로 돌아온 고인은 ‘뫼비우스의 띠’, ‘은강노동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 12편의 연작을 엮어 1978년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출간했다. 산업화 시대의 그늘에서 고통받던 도시 빈민의 삶을 그린 ‘난쏘공’은 1996년 100쇄를 찍고 2000년 출판사를 옮겨 속간돼 2005년 12월 200쇄를 돌파했다. 2007년 9월에는 발행 부수 100만을 넘었고 2017년에는 문학작품으로는 처음으로 300쇄를 찍었다. 대중의 성향에 맞춘 출판물이 100만부나 300쇄를 넘어서는 일은 적지 않았지만 ‘난쏘공’처럼 진지하고 심각한 문학작품이 그 같은 기록을 세운 적은 거의 없다. ●카메라 들고 노동현장 기록 고인은 1983년 소설집 ‘시간여행’과 1985년 사진 산문집 ‘침묵의 뿌리’를 냈으며 1991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하얀 저고리’를 잡지에 연재했지만 연재 이후 책으로 내지 않아 미완의 작품으로 남겼다. 이후 고인은 새로운 소설을 쓰는 대신 1997년 사회 비평지 ‘당대비평’ 편집인을 맡기도 했다. 또 카메라를 들고 노동자와 농민 등의 집회 현장을 찾아다니며 방대한 분량의 사진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오는 28일.
  • 진보 경제학 ‘거목’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진보 경제학 ‘거목’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 진보 경제학자인 학현(學峴)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별세했다고 서울사회경제연구소가 25일 전했다. 95세. 1927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5년 서울대 상대의 전신인 경성경제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서울대 졸업 뒤 28세인 1955년부터 1992년까지 모교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변 교수는 강단에서 분배경제학 등을 가르친 진보 학자였으며 1960년 4·19 혁명에 참여하고 1980년 서울대교수협의회장으로 시국 선언에 앞장섰다 해직당한 참여형 지식인이었다. 해직 시절이던 1982년 설립한 ‘학현연구실’은 이후 서울사회경제연구소로 확대 개편됐다. 그를 따르는 학현학파는 성장 일변도 한국경제의 구조에 소득 재분배라는 진보적 개념을 도입했고, 진보 정권인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활약했다. 노무현 정부 때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문재인 정부 때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학현학파로 꼽힌다. 유족으로 아들 기홍씨와 딸 기원·기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작가 조세희 별세…80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작가 조세희 별세…80세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대중에 잘 알려진 소설가 조세희가 2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80세. 도서출판 이성과힘 관계자는 이날 “조세희 작가가 오늘 지병으로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1942년 경기 가평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와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 ‘돛대 없는 장선(葬船)’이 당선돼 등단했으나 10년 동안 소설 작품을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1975년 ‘칼날’을 발표하며 다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고인은 ‘뫼비우스의 띠’,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등 단편 12편을 묶은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1978년 출간했다. 고인의 대표작이기도 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장이네 가족을 통해 산업화의 그늘에 신음하는 도시 하층민의 삶을 그렸다. 올해 7월까지 320쇄를 돌파한 이 책의 누적 발행 부수는 약 148만 부에 이른다.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차려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두 아들이 있으며 발인은 28일이다.
  • 매년 5·18 고발 만평 그린 ‘나대로 선생‘ 이홍우 화백 별세

    매년 5·18 고발 만평 그린 ‘나대로 선생‘ 이홍우 화백 별세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미나리 여사’,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 등 네 컷 연재만화로 세상을 풍자한 시사만화가 이홍우(李泓雨) 화백이 23일 오후 5시 10분쯤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73. 지난 9월 코로나19에 확진된 뒤 합병증으로 장기간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다. 유족은 “‘나는 죽을 때까지 나대로였다’, ‘후회 없이 멋지게 살았다’는 말씀을 남겼다”고 했다.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개성중 1학년 때 부산 ‘국제신보’에 투고한 독자만화가 당선되면서 신문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시사만화가의 꿈을 안고 서울로 유학, 서라벌고에 다닐 때부터 여러 신문과 학생 잡지에 만화를 실었고, 1967년 서라벌예술대 2학년 때 대전 중도일보에 ‘두루미’를 그리기 시작해 1973년 이 신문이 폐간될 때까지 연재했다. 같은 해 전남일보로 옮겨 ‘미나리 여사’를 그렸다. 1980년 5월 20일 이 신문에 글자 한 자 없는 이색적인 네 컷 만화가 실려 눈길을 붙들었다. 마지막 칸에 주인공 ‘미나리 여사’가 소주를 앞에 놓고 담배를 피워 문 채 울고 있고, 옆에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을 뿐이었다. 고인은 당시 전남일보 서울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2019년 5월 ‘신동아’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최승호 전남일보 편집국장으로부터 “지금 광주에서는 계엄군의 만행을 기록한 모든 기사가 휴지통에 들어가고 있다. ‘미나리 여사’를 통해 은유적으로 이 상황을 전달할 방법이 없겠느냐”는 전화를 받고 이 네 컷 만화를 그렸다고 했다. 그리고 매년 5월이 되면 5·18 민주화운동을 만평으로 그렸다. 고인은 그 뒤 스포츠동아 ‘오리발’을 거쳐 1980년 11월 12일부터 김성환(1932∼2019) 화백의 ‘고바우 영감’ 바통을 이어받아 동아일보에 ‘나대로 선생’을 연재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무작정 상경해 김성환 화백의 전시회를 찾아 만난 적이 있었다. 지만 해마다 5월이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만화를 실었다. ‘나대로 선생’은 2007년 12월 26일 제8568회로 마무리될 때까지 만 27년간 연재되며 1991년 당시 6공 정부를 6신(외교 굽신, 경제 망신, 치안 불신, 정책 등신, 날치기 귀신, 국민 배신)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1986년 보도지침에 따라 보도가 금지됐던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폭력 사건을 “맞고 나니 눈앞에 별이 번쩍번쩍하더군”이라고 묘사한 만화를 실었다가 보안사에 끌려가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 건국대 시위 때 학생 1290명이 구속되자 그는 수북이 쌓인 낙엽을 치우고 돌아오니 다시 낙엽이 쌓여 있는 내용의 만화를 그렸다. 시위대를 잡아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란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1997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를 다루며 “대쪽 집안이라 속이 비어 몸무게가 안 나간다”고 그려 항의를 받았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1992년 통일국민당 대선 후보 시절 얼굴의 검버섯을 빼 달라고 이 화백에게 매달리기도 했다.그의 풍자가 그대로 현실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16대 국회에서 자민련이 17석으로 교섭단체를 못 만들자 “3명 꿔오면 되지”라고 그렸는데, 그해 말 실제로 국민회의 의원 3명이 자민련으로 이적했다.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삼팔선’(38세도 선선히 사표를 받아준다) 등 유행어도 남겼다. 2011년 한국대학신문 인터뷰를 통해 “나는 독자와의 약속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열로 인해 하루에 7∼8번 다시 그리는 일이 있더라도 연재를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시사만화가로 살아오면서 독자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마감에 쫓기느라 하루에 담배를 3갑 피웠던 일화는 유명하다. 2007년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적이 있고,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 만화영상학과 교수·석좌교수, 한국시사만화가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미스앵두’(1979), ‘오리발’(1987), ‘문민아 너 어디로 가니’(1995), ‘재롱이 만화일기’(1996), ‘나대로 간다’(2007) 등 저서를 남겼고, 제1회 고바우 만화상(2001), 동아일보 ‘동아대상’(2007), 제16회 대한언론인상 공로상(2007)을 받았다. 최근까지 스카이데일리에 시사만화 ‘도두물 선생’을 그렸다. 유족은 부인 이경란씨와 사이에 아들 상민 시공사 만화팀 편집자, 딸 지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강사가 있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6일 오전 8시 10분. 070-7816-0349
  • 김백준 前 총무기획관 별세

    김백준 前 총무기획관 별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렸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22일 오전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별세했다. 82세. 고인은 1977년 현대그룹 계열사인 국제종합금융으로 이직하면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 전 대통령이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후보 경제특보를 맡으며 보좌했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대통령 총무비서관을 거쳐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총무기획관을 지냈다. 고인은 이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당시 뇌물 방조 혐의는 무죄로 판단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정순씨와 자녀 형찬·형석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17호, 발인은 25일 오전 7시 30분.
  • 유물론 독자적 비판… 원로철학자 이영호씨 별세

    유물론 독자적 비판… 원로철학자 이영호씨 별세

    ‘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서양철학과는 다른 독자적 철학 연구에 몰두했던 이영호 전 한양대 철학과 교수가 지난 20일 밤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86세. 고인은 1936년 2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고 재학 중 이수병, 김금수 등과 함께 ‘암장’ 그룹을 만들어 사회과학 공부를 했고 이후 서울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나왔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때 부산에서 같이 체포됐던 이들 중 김금수 전 노사정위원장은 지난 10월 작고했다. 고인은 공주사대 강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한때 노점에서 고구마, 계란을 팔고 국수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한양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구의 실존주의, 칸트, 헤겔의 철학을 연구하던 경향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철학을 연구해 주목받았다. 그는 종교 비판을 담은 ‘소외된 삶과 표상의 세계’, 기존 관념론과 유물론의 문제점을 지적한 ‘반유론’, 세계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민중적 삶의 실천 양식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담은 ‘인식과 실천’, 자주적 역사 인식을 추구한 ‘역사, 철학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퇴임 후에는 경남 진해 바닷가에서 유자 농사를 지으며 ‘하늘 향기’라는 유자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빈소는 경남 창원시 한마음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3일 오전.
  • 권영세 장관, 탈북민 빈소 조문…“보호시스템 바꿀 것”

    권영세 장관, 탈북민 빈소 조문…“보호시스템 바꿀 것”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10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탈북민 보호시스템 개선 의지를 강조했다. 권 장관은 21일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탈북민 여성 김모씨의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권 장관은 조문록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다. 이어 상주 역할을 하는 정인성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등 관계자들과 만나 애도의 뜻을 표했다.권 장관은 조문을 한 뒤 “김씨가 사망한 사실을 한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것은 틀림없이 문제가 있는 부분”이라며 탈북자 지원 시스템을 확실하게 바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탈북민들은 식물로 치면 뿌리가 완전히 넘어와 이식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탈북민들의 국내 정착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라면서 “물질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탈북민 지원 업무를 통일부 본부와 하나원, 남북하나재단, 하나센터 등이 나눠 맡고 있는 데 대해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40대 탈북민 김씨는 지난 10월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백골 시신으로 발견돼 허술한 사회 안전망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김씨는 탈북민 상담사로 활발히 활동했지만 2017년 상담사를 그만두고 연락이 끊겼다. 이후 겨울 옷을 입은 채 발견돼 지난 겨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 원로 철학자 이영호 전 한양대 교수 별세

    원로 철학자 이영호 전 한양대 교수 별세

    ‘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서양 철학과는 다른 독자적 철학 연구에 몰두했던 이영호(사진) 전 한양대 철학과 교수가 20일 밤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86세. 고인은 1936년 2월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고 재학 중 이수병, 김금수 등과 함께 ‘암장’ 그룹을 만들어 사회과학 공부를 했고 이후 서울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나왔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 때 부산에서 같이 체포됐던 이들 중 김금수 전 노사정위원장은 지난 10월 작고했다. 고인은 공주사대 강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한때 노점에서 고구마, 계란을 팔기도 하고 국수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한양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구의 실존주의, 칸트, 헤겔의 철학을 연구하던 경향을 거부하고 자주으로 철학을 연구해 주목받았다. 그는 종교 비판을 담은 ‘소외된 삶과 표상의 세계’, 기존 관념론과 유물론의 문제점을 지적한 ‘반유론’, 세계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민중적 삶의 실천 양식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담은 ‘인식과 실천’, 자주적 역사 인식을 추구한 ‘역사, 철학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퇴임 후에는 경남 진해 바닷가에서 유자 농사를 지으며 ‘하늘 향기’라는 유자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빈소는 경남 창원 한마음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3일 오전.
  • ‘1세대 방송 분장사’ 박수명씨 별세

    ‘1세대 방송 분장사’ 박수명씨 별세

    1958년부터 40여년을 연극과 방송 분장을 개척하고 분장차를 처음 만든 박수명 전 MBC 미술센터 상무가 1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4세. 1938년 만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용산고, 국학대(고려대로 통합) 영문학과를 다녔다. 국립극장 연극인 양성소에서 연출을 공부하다 분장으로 방향을 돌려 1964년 KBS 무대과에 들어갔다. 1969년 MBC로 옮겨 1000여편의 드라마 분장을 맡았다. 옛 왕비와 상궁들의 머리 모양을 직접 고증했고, ‘제1공화국’ (1981∼1982)에서 배우 최불암을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변신시키는가 하면 ‘생인손’(1986)에서 한애경을 소녀에서 90대 노파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퇴직 후에도 일손을 놓지 않았고, 후학을 양성했다. 빈소는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02)6986-4456.
  • 연극·드라마 300여편 출연 원로연극인 김성옥 별세

    연극·드라마 300여편 출연 원로연극인 김성옥 별세

    배우 겸 연극연출가 김성옥 전(前) 극단 신협 대표가 16일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1935년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중·고등학교를 거쳐 1962년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창극 ‘적벽가’ 조연으로 데뷔해 1960년 연극 ‘수업’으로 연극배우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었다. 1966년과 1973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1963년에는 연극 ‘화랑도’를 연출하며 연출가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1966년 영화 ‘예라이샹’(夜來香)의 단역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했고, 1968년 TBC 동양방송 특채 탤런트로 선발돼 TV 드라마 연기자로서도 활동했다. 배우로서 연극 ‘만선’, ‘베니스의 상인’, ‘고도를 기다리며’ 등 100여 편에 출연했다. 드라마 ‘임꺽정’, ‘태조 왕건’, ‘왕과 비’, 영화 ‘창공에 산다’, ‘난파선’, ‘돌아온 님아’ 등까지 합치면 생전 3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극단 ‘산울림’ 창립동인이자 드라마센터와 국립극단 창립 멤버인 고인은 극단 ‘신협’(新協) 대표도 맡았다. 말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목포시립연극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며 고향의 문화예술 발전에 헌신했다. 사업가로도 활동한 고인은 생전에 연극과 영화, 드라마 출연 외에도 전자회사 대표이사와 건설회사 런던지사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김대중 정부 시절 환경부 장관을 지낸 연극인 부인 손숙 씨와 3녀 등이 있다. 빈소는 전남 목포 봉황장례문화원 2층 VIP실이고, 발인은 20일 10시 30분이다. ☎0504-1360-1205
  • ‘손숙 남편’ 배우 김성옥 별세…‘태조왕건’ 등 300편 출연

    ‘손숙 남편’ 배우 김성옥 별세…‘태조왕건’ 등 300편 출연

    배우 겸 연극연출가 김성옥이 87세의 일기로 작고했다. 1935년생인 고인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중·고교를 거쳐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창극 ‘적벽가’ 조연으로 데뷔해 1960년 ‘수업’ 무대에 서며 연극 배우로서 발돋움했다. 1963년엔 연극 ‘화랑도’를 연출하며 연출가로서 활동했으며, 1966년엔 영화 ‘예라이샹’의 단역으로 스크린에도 데뷔했다. 1968년엔 TBC 동양방송 특채 탤런트로 선발돼 TV 드라마 연기자로서도 활동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안티고네’, ‘햄릿’, ‘세일즈맨의 죽음’, 드라마 ‘임꺽정’, ‘태조 왕건’, ‘왕과 비’, ‘제국의 아침’, ‘제4공화국’, ‘삼국기’, ‘내일은 사랑’, ‘아름다운 그녀’, ‘용의 눈물’, 영화 ‘막차로 온 손님들’, ‘창공에 산다’, ‘상해 임시정부’, ‘울기는 왜 울어’, ‘용서받지 못할 자’ 등 생전 300여편의 작품에서 열연했다.연극·영화·드라마 300여편 극단 산하·실험극장·산울림의 창립 동인, 국립극단 창립 멤버로 활동했고 극단 신협 대표를 지냈으며 우석대 연극영화과 초빙교수, 목포시림연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1966년과 1973년에는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사업가로도 활동한 고인은 생전에 연극과 영화, 드라마 출연 외에도 전자회사 대표이사와 건설회사 런던지사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김대중 정부 시절 환경부 장관을 지낸 연극인인 부인 손숙 씨와 3녀 등이 있다. 손숙은 과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남편 김성옥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남편은 그 당시 아주 잘 나가는 배우였다. 그 사람 연극에 반했고, 어린 나이에 처음 사랑에 빠져서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빈소는 전남 목포 봉황장례문화원 2층 VIP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0일 10시 30분이다.
  • 노옥희 울산교육감 별세…오찬 중 심장마비 증세

    노옥희 울산교육감 별세…오찬 중 심장마비 증세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8일 갑작스럽게 작고했다. 향년 64세. 8일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노 교육감은 이날 낮 12시 25분쯤 울산 남구 한 식당에서 지역 기관장 오찬 모임에 참석해 식사 도중 심장마비 증세로 갑자기 쓰러졌다. 노 교육감은 쓰러진 직후 병원으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낮 12시 53분쯤 사망판정을 받았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 노 교육감의 빈소는 울산시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노 교육감은 울산 첫 여성 교육감이자 진보 교육감으로 당선돼 재선까지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58년 경남 김해 출생으로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부터 울산 현대공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아끼던 제자가 손목이 절단되는 산재사고를 당한 것을 계기로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86년 한국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명의로 발표된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직됐고,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울산지부 1·2대 위원장을 지내는 등 교육과 인권 등 사회운동에 매진하다가 1999년 울산 명덕중 교사로 복직했다. 노 교육감은 2002년 울산시 교육위원에 출마하려고 퇴직했고, 선출되면서 2006년까지 교육위원을 지내면서 교육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2006년과 2010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소속으로 울산시장에 출마하기도 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이후 노 교육감은 울산에서 보수교육감이 20년 수장을 맡으면서 교육이 추락했다고 판단에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 교육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고, 올해 6·1 지방선거에서도 다시 시민의 선택을 받았다. 임기 동안 노 교육감은 부패와 비리에 관련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강력한 근절 대책을 도입하면서 울산 교육계의 청렴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또 고교 전면 무상 급식, 신입생 교복비 지원, 초등학교 입학준비금 지원 등 적극적으로 교육복지 확대에 힘썼다. 지난 9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시·도 교육감 직무수행평가에서 2위에 오르는 등 매번 최상위권에 랭크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시교육청은 이날 이용균 부교육감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 중이다.
  • 이재용 회장 중동행… UAE 대통령 만날 듯

    이재용 회장 중동행… UAE 대통령 만날 듯

    삼성전자가 이르면 5일 사장단 인사를 시작으로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을 연이어 단행할 예정인 가운데 이재용 회장이 4일 중동 출장길에 올랐다. 지난 10월 27일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첫 해외 출장으로, 큰 틀의 인사 작업을 마친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해외 네트워킹 가동 등 글로벌 경영에 나서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방문을 위해 출국했다. 이번 출장과 관련한 자세한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회장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을 만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또 오는 9일 7개월 만에 방한하는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와도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이번 중동 출장은 UAE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 프로젝트와 관련해 삼성의 협력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해 보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UAE는 석유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2010년 혁신 프로젝트 ‘UAE 비전 2021’을 수립해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아부다비는 180억 달러를 투입해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인 ‘마스다르시티’를 건설 중이다. 삼성은 5G와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현지에 새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그동안 UAE 정재계 주요 인사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는 앞서 지난해 12월에도 3박 4일간 UAE 출장을 다녀온 바 있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왕세제 신분 때부터 매해 겨울 기업인들과 정계 원로 등을 아부다비로 초청해 사교 모임 겸 비공개 포럼을 개최해 오고 있으며, 이 회장은 지난해 출장 중 이 포럼에 다녀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당시 귀국길에 “아부다비에서 조그만 회의가 있었다”면서 “전 세계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와서 전 세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각 나라나 산업들에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들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한 바 있다. 이 회장은 2019년 2월 UAE 출장에서 당시 왕세제였던 무함마드 대통령을 만난 것을 인연으로 계속 관계를 다져 왔다. 무함마드 대통령도 같은 해 방한해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생산라인을 견학하기도 했다. 당시 이 회장은 무함마드 대통령과 5G 이동통신과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또 올해 5월 세상을 떠난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 전 UAE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할리파 전 대통령은 무함마드 대통령의 형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서 주요 사업부장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유임시키면서 사업부 실·팀장을 맡고 있는 고참 부사장들을 대거 교체한다. 한종희 부회장(DX부문장)과 경계현 사장(DS부문장) 등 두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는 한편 사장급인 각 사업부장도 대부분 자리를 지킬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 인사에 앞서 부사장급 임원 수십 명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는 점에서 이 자리를 30~40대를 포함한 부사장 승진자들이 대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퇴직 대상자 개별 통보 때 상당수가 1964년 이전 출생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전자 조직이 한층 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위기 상황을 ‘안정 속 쇄신’ 인사를 통해 극복하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 배우 염동헌 투병 중 별세… “연기 사랑했던 모습 기억”

    배우 염동헌 투병 중 별세… “연기 사랑했던 모습 기억”

    배우 염동헌이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일 소속사 스타빌리지엔터테인먼트는 “배우 염동헌씨가 지난 2일 오후 11시 50분쯤 투병 중 별세했다”며 “연기를 사랑하고 열정적이었던 고인의 모습을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1968년 강원 속초에서 태어난 고인은 동국대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1994년부터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연기 활동을 해왔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2008), ‘공주의 남자’(2011), ‘더킹 투하츠’(2012), ‘피노키오’(2014) 등에서 단역과 조연을 거쳤고, 가장 최근에는 JTBC ‘공작도시’(2021)에 출연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원자력병원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후 12시, 장지는 인천가족공원이다.
  • 尹, 장쩌민 전 중국 주석 분향소 조문...“한·중 간 다리 놓은 분”

    尹, 장쩌민 전 중국 주석 분향소 조문...“한·중 간 다리 놓은 분”

    윤석열 대통령이 2일 고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을 조문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에 마련된 장 전 주석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윤 대통령은 헌화와 묵념으로 장 전 주석을 추모한 뒤 싱 하이밍 주한중국대사에게 “작년 노태우 전 대통령 그리고 올해 장쩌민 전 주석까지, 한·중 두 나라 간 다리를 놓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후대가 잘 이어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에 싱 하이밍 대사는 “한중 관계를 보다 진전시키도록 많이 도와달라”고 화답했다. 윤 대통령은 조문록에 ‘한중 수교를 비롯해 양국 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영면을 기원하며, 유가족과 중국 국민에게 깊은 애도와 추모의 뜻을 표합니다’라고 적었다. 윤 대통령은 중국 측의 방침에 따라 조문단을 보내지 않는 대신에 직접 분향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조문에 앞서 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앞으로 1992년 한중수교를 포함한 고인의 기여를 평가하고, 우리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유가족과 중국 국민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는 조전을 보냈다고 이 부대변인이 전했다. 장 전 주석은 지난달 30일 9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주한중국대사관은 지난 1일 장 전 주석 빈소와 조문록을 마련했다.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소장을 접견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햄리 소장과 한미 관계와 북한 및 국제 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윤 대통령은 “유력 싱크탱크인 CSIS가 한미 관계에 관한 연구와 이해 제고를 위한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같은 노력을 지속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이 부대변인이 밝혔다. 햄리 소장은 “워싱턴 내에서 한국의 글로벌 중추 국가 비전과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지지가 확고하다”면서 “한미 동맹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윤 대통령의 역할과 노력에 전폭적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햄리 소장은 또 CSIS 차원에서 한미동맹 발전에 기여가 이뤄지도록 계속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접견에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와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가, 대통령실에서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이 배석했다.
  • 살인누명 재미교포 무죄 이끈 3선 유재건 전 의원 별세

    살인누명 재미교포 무죄 이끈 3선 유재건 전 의원 별세

    미국 유학 중 살인 누명을 쓴 재미교포 이철수씨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끌어낸 혜천 유재건 전 의원이 1일 별세했다. 85세.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도 지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 성북갑에 출마해 당선됐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3선에 성공했다. 유족은 부인 김성수씨와의 사이에 2남 1녀(유승영·수화·대현)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오는 5일 오전 발인을 거쳐 미 서부 추모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02) 3410-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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