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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미 장례식장…펑펑 울어버린 조카 한상진

    현미 장례식장…펑펑 울어버린 조카 한상진

    해외 촬영 도중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급히 귀국한 배우 한상진이 눈물을 쏟아냈다. 한상진은 7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수 고(故) 현미(김명선)의 빈소를 찾았다. 그는 촬영차 미국에 머물던 중 이모인 현미의 부고를 접하고 곧장 귀국길에 올랐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직항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귀국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예고도 없이 세상을 떠난 탓에 장례식장에서 이모의 사진을 마주하게 된 한상진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현미의 첫째 아들 가수 이영곤과 부둥켜안고 엉엉 울며 슬픔을 토해내는가 하면 어머니를 잃은 그의 손을 꼭 붙잡기도 했다. 지난 4일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현미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장례는 미국에 머물던 두 아들이 귀국하면서 7일 오전 10시부터 치러지고 있다. 오는 11일까지 5일간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수될 예정이며, 장례위원장은 대한가수협회 감사인 서수남이 맡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10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 이낙연, 장인상으로 8일 일시 귀국…이재명 사법리스크 속 야권 시선 쏠려

    이낙연, 장인상으로 8일 일시 귀국…이재명 사법리스크 속 야권 시선 쏠려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인상을 치르기 위해 8일 급히 귀국한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인한 민주당 내홍의 불씨가 남은 상태에서 이 전 대표의 귀국에 야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귀국 직후 자택에 짐을 풀고 곧바로 빈소인 삼성서울병원으로 이동해 상주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 전 대표는 장인상을 치른 뒤엔 열흘가량 국내에 머무를 예정이나 정치 활동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 장인 빈소엔 다수의 정·재계, 정관계 인사들이 조문할 전망이다. 이재명 대표 등 현 민주당 지도부 또한 빈소 조문을 예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표의 경선 상대였다. 이 대표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공론화된 건 대선 경선 당시 이 전 총리가 적극적으로 의혹 제기를 하면서 비롯됐다. 이 대표의 거취와 이 전 총리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에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은 지난달 ‘이낙연을 출당시키라’는 청원을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 올리는 등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이 전 총리는 여전히 사법 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의 대안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6월 미국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반도 평화와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한편 이 주제와 관련된 강연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해 강연했고 올해 2월에는 조지워싱턴대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현실적·실용적 접근’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전 대표는 이달 초에는 캘리포니아주립대 LA캠퍼스(UCLA)를 방문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현실적이고 실용적 접근’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4월 중 덴버, 필라델피아, 뉴욕, 휴스턴 등에서 강연하고 6월쯤 독일 튀링겐대, 베를린대 등에서 강연한 뒤 같은 달 귀국할 예정이다. 특히 그동안 정국 현안에 대해 목소리 내는 것을 최대한 자제해왔던 이 전 대표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낸 국내 정치 현안 관련 메시지를 잇따라 내 정계 복귀에 시동을 거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 내 대표적 ‘지일파’로 알려진 이 전 총리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한일정상회담 논란과 관련해 “미심쩍었던 두 차례 만찬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기에 일본 측의 망발이 잇따라 나오느냐”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22일에는 “한일관계가 회오리를 일으켰다.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의 취약성과 양국 정부의 한계를 드러내며 새로운 위기를 조성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전 대표의 이번 귀국으로 민주당내 비명(비이재명)계가 다시 결집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최근 인적 개편을 통한 쇄신작업을 진행하고 강성지지층인 소위 ‘개딸’에게 자제를 촉구하면서 당의 단합이 강조되고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로 촉발된 비명계의 불만도 어느 정도 수그러든 양상이다. 이 전 대표의 당내 입지가 예전 같지 못하다는 지적도 남는다.
  • “심부름 다녀오니…” 현미 마지막 목격한 팬클럽 회장

    “심부름 다녀오니…” 현미 마지막 목격한 팬클럽 회장

    고(故) 현미의 임종을 지켜본 팬클럽 회장이 그를 회상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지난 4일 자택에 쓰러져 있는 현미를 처음 발견한 팬클럽 회장 김우일씨는 이데일리에 “대우그룹 창업주인 고 김우중 회장의 부탁으로 조용히 현미를 보필하고 있었다”며 “현미가 30여 년 전 김우중 회장의 노래 연습을 시켜줬다. 그 인연으로 김 회장이 저에게 ‘사기를 당해 삶이 힘들어진 현미 선생님을 돌봐달라’ 부탁하셔서 인연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현미를 처음 만났을 당시 사기로 인해 어렵게 지내고 있었다. 엉망인 상황이었다”며 “2년 전쯤 청소를 하다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는데 사기를 당하신 상태라 의료 보험도 없으셨다. 당시 제가 병원에 보증을 서서 수술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현미의 영화를 제작 중이었다고 밝힌 김씨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일대기를 영화 시나리오로 완성했다. 지난해 ‘남북이산가족’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저작권 등록까지 마쳐 두었다”며 “영화 말미에 직접 출연하시기로 했는데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시게 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임종 순간을 떠올리며 “현미가 아침에 우유를 먹고 저에게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아달라면서 심부름을 시켰다”며 “그렇게 다녀왔는데 선생님이 부엌 옆 쓰레기 버리는 베란다에 쓰러져 계셨다. 지병은 없으셨다. 설거지하시다가 심정지가 와서 엎어지신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현미의 빈소는 7일 중앙대학교 장례식장 특실 1호에 마련된다. 두 아들 모두 미국에서 지내고 있어 빈소 마련이 늦어졌다. 장례식은 대한협회장으로 거행되며 5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오는 11일 오전 10시다.
  • 군 복무 아이돌 부친상… 다급히 빈소로 향해

    군 복무 아이돌 부친상… 다급히 빈소로 향해

    아이돌 온앤오프 효진의 아버지인 김모씨가 6일 별세했다. 육군에서 군 복무 중이던 효진은 부친상 비보를 접한 뒤 다급하게 부대에서 나와 빈소로 향하고 있다. 그는 도착하는 대로 빈소를 지킬 예정이다. 고인의 발인은 오는 8일 오전 예정이며, 효진은 장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할 것으로 전해졌다.
  • 신동준 전 의원 별세

    신동준 전 의원 별세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신동준 전 의원이 지난 4일 경기 평촌 한림대성심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3세. 1930년 11월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고인은 만주에서 학교를 졸업한 뒤 1955년 당시 민주당에 들어가 유진산 의원의 보좌관, 신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당시부터 신익희 의원 등의 비서로 있었던 유치송씨와 친했다고 고인의 유족은 전했다. 유족으로 부인 조한길씨와의 사이에 2남 1녀(신광섭·신지영·신유섭) 등이 있다. 빈소는 평촌 한림대병원, 발인 6일 오전 10시.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전날도 노래, ‘밤안개’처럼 스러진 현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전날도 노래, ‘밤안개’처럼 스러진 현미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정말로 ‘밤안개’처럼 스러졌다. 방송에도 나와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대중에게 비쳤고, 전날에도 대구 노래교실을 다녀와 “조금 피곤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전언이다. 4일 오전 9시 37분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김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73) 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급히 근처 중앙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고 말았다. 곁에 누군가 있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변을 당했다. 현미는 1938년 평양에서 8남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평양에 거주하다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와 피난 생활을 했다. 외가로 피신하는 과정에 어린 두 여동생과 헤어졌다가 48년 만인 1998년에야 중국으로 건너가 동생 가운데 한 명과 상봉했다. 현미는 이 아픈 체험을 2020년 이산가족 고향체험 가상현실(VR)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 나이로 스무살 때인 1957년 음악인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미8군 무대를 통해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지만, 일정을 펑크낸 여가수의 대타로 마이크를 잡아 가수가 됐다. 현미는 이때부터 그를 눈여겨본 작곡가 고(故) 이봉조와 3년간 연애한 뒤 결혼했다. 다만 이들은 법적 부부는 아니었다. 현미는 1962년 발표한 데뷔 음반에 수록된 ‘밤안개’로 큰 인기를 누렸고, 남편 이봉조와 콤비를 이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연이어 히트곡을 발표했다. 대표곡 ‘밤안개’는 전설적 재즈 가수 냇 킹 콜의 노래 ‘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It‘s A Lonesome Old Town)을 이봉조가 번안한 것이다. 현미와 이봉조는 라디오에서 원곡을 듣고 감명받아 우리말 가사를 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이나 흥을 애잔하거나 정겹게 부르던 당시 신민요나 트로트와 달리 이봉조의 곡은 근대적 ‘개인’의 감성을 더 풍부한 음계로 표현했고, 현미의 음색은 전통적인 여자 가수 관념을 벗어난, 저음의 허스키하면서도 울림은 컸다. 녹음할 때 마이크에서 두세 발자국 떨어져 녹음할 정도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요즘 들어도 ‘밤안개’는 세련된 도회미를 풍긴다. 한명숙, 최희준 등과 어울려 스탠더드 팝의 효시로 통하는 이유다. 제부 한순철씨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라고 했다. 이씨의 중혼 사실이 알려져 대중이 자신을 불행한 여성으로 보는데도 “그래도 남편 때문에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여전히 존경한다”고 밝혔다. 질박한 평안도 사투리로 “거 주말에 평양냉면 먹으러 가자우”라고 했고, “외롭지 않으시냐 물으면, 잠 잘 자고 용변 잘 보면 잘 사는 인생이라고 늘 말씀하셨다”고 했다. 음악평론가 박성서는 “현미의 평생 신조는 ‘무던하게 살기’ ‘되도록 많이 이해하기’ ‘남 앞에서 울지 않기’였다”고 적었다. 1974년 이봉조와 갈라선 뒤 노래교실을 열었다. 스타 가수는 잘 하지 않는 일이었다. 방송에서는 ‘건강하게 나이 먹는 스타’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아직도 열 살 어린 남성 팬들이 만나자고 줄을 선다”고 자랑하는 일도 숱했다. 그는 200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오게 되면 할 것이다.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모습”이라고 음악 활동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현미는 이봉조와 아들 둘(이영곤·영준)을 뒀다. 장남 이영곤은 과거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80년대 ’사랑은 유리 같은 것‘으로 유명한 가수 원준희가 현미의 둘째 며느리다. 현미는 가수 노사연과 배우 한상진의 이모이기도 하다. 빈소는 서울 중앙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며 발인 일시와 장지는 상주들이 귀국하는 대로 정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원로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 별세

    원로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 별세

    원로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이 3일 오후 병환으로 별세했다. 93세. 1930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인상주의의 선구자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장남이며 2006년 별세한 오승윤 화백의 형이다. 조선대 미술과를 졸업한 1957년부터 1960년까지 국전에서 4년 연속 특선하며 31세에 추천작가가 됐다. 한국 명산을 찾아다니며 제작한 ‘한국의 100산’, 한국과 중국·일본 등의 주요 건축물을 그린 건축회화 등 연작을 남겼다. 대한민국 예술원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1992년과 2011년에 각각 옥관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6일 오전 9시.
  • 갑작스레 하늘로 떠난 ‘밤안개’

    갑작스레 하늘로 떠난 ‘밤안개’

    ‘밤안개’로 유명한 원로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4일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 85세. 경찰과 가요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7분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고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7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미는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난 현미는 한국전쟁 중에 남한으로 내려왔다. 1951년 1·4 후퇴 당시 평안남도 강동에 있는 외가로 피란을 가다가 어린 두 동생과 헤어져 이산가족이 됐다. 1957년 주한 미8군 무대를 통해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다가 한 가수의 대타로 마이크를 잡았다. 당시 현미를 눈여겨본 작곡가 이봉조는 ‘밤안개’(1962)를 선물했고 이후 이봉조와 콤비를 이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연이어 히트곡을 내놓았다. 2018년 평양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현미는 동생들과 상봉했고 2020년 이산가족이 가상현실(VR)로 고향을 체험하는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했다. 고인은 15년 전 데뷔 50주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하고, 목소리가 안 나올 때 은퇴하겠다”며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모습”이라며 음악활동에 대한 의욕을 내비친 터라 안타까움을 더한다. 경찰은 지병 여부와 신고자, 유족 등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빈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 ‘밤안개’ 실향민 1세대 가수 현미 별세…향년 85세 (종합)

    ‘밤안개’ 실향민 1세대 가수 현미 별세…향년 85세 (종합)

    실향민 1세대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5세. 경찰과 가요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7분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김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7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1938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현미는 1·4 후퇴 때 평안남도 강동 외가로 피난을 가면서 어린 두 동생과 헤어졌으며 부모, 다른 6남매와 남쪽으로 내려왔다. 현미는 1998년 9월 중국 장춘에서 여동생 중 한명인 길자(길순으로 개명)씨를 만난 바 있다. 2000년 코미디언 故남보원씨와 중국 베이징에서 조선민항 편으로 평양에 들어가 여동생들과의 재상봉을 기대했으나, 북한 측의 사정으로 고향땅을 밟아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현미는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2020년 이산가족 고향체험 VR(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현미는 1957년 그 당시 음악인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미8군 무대를 통해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지만, 일정을 펑크낸 어느 여가수의 대타로 마이크를 잡으면서 가수가 됐다. 현미는 이때부터 그를 눈여겨본 작곡가 고(故) 이봉조와 3년간 연애한 뒤 결혼했다. 1962년 발표한 ‘밤안개’로 큰 인기를 누렸고 남편 이봉조와 콤비를 이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연이어 히트곡을 발표했다. 현미는 지난 200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할 것이다.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 모습”이라고 음악 활동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은 고인의 지병 여부와 신고자인 팬클럽 회장과 유족 등을 조사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빈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원로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 별세

    원로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 별세

    원로 서양화가 오승우 화백이 3일 오후 병환으로 별세했다. 93세. 1930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인상주의의 선구자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장남이며, 2006년 별세한 고 오승윤 화백의 형이다. 조선대 미술과를 졸업한 1957년부터 1960년까지 국전에서 4년 연속 특선하며 31세에 추천작가가 됐다. 1993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을 받았다. 1992년 옥관문화훈장을, 2011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부터 13년 동안 한국의 명산을 찾아 다니며 제작한 ‘한국의 100산’ 연작 등이 대표작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주요 건축물을 그린 건축회화, 십장생을 주제로 한 작품 등 시기별로 주제가 있는 연작을 남겼다. 2011년 전남 무안군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고인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목포자연사박물관, 오승우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조선대 등에 여러 차례 작품을 기증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6일 오전 9시.
  • 손흥민 외조부상…영국서 비보 접해

    손흥민 외조부상…영국서 비보 접해

    국가대표 공격수 손흥민이 가슴 아픈 소식을 전했다. 지난 1일 강원일보는 이날 손흥민의 외조부가 별세했다고 전했다. 고인의 빈소는 강원도 춘천시 호반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3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춘천안식공원이다.
  • 원로 언론인 윤임술씨 별세

    원로 언론인 윤임술씨 별세

    윤임술 일경언론문화재단 이사장이 2일 별세했다. 100세. 1923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3년 일본 릿쇼대 불교학과를 중퇴했다. 1945년 국제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1955년 국제신보 편집부국장, 1956년 연합신문 편집부장, 1958년 세계통신 편집부국장, 1960년 한국일보 편집위원, 1964년 조선일보 편집부국장, 1965년 신아일보 편집국장, 1972년 신아일보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1973년 신문연구소장, 1975년 신문회관 부이사장, 1981∼1986년 초대 한국언론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유족은 며느리 이미옥씨와 손녀 윤기숙·윤기원씨, 손자 윤영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7호실. 발인 4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시안공원묘원. (02) 3410-6907.
  • 원로 언론인 윤임술 일경언론문화재단 이사장 별세

    원로 언론인 윤임술 일경언론문화재단 이사장 별세

    윤임술 일경언론문화재단 이사장이 2일 별세했다. 100세. 1923년 경남 창원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3년 일본 릿쇼대 불교학과를 중퇴했다. 1945년 국제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1955년 국제신보 편집부국장을 거쳐 1956년 연합신문 편집부장, 1958년 세계통신 편집부국장, 1960년 한국일보 편집위원, 1964년 조선일보 편집부국장, 1965년 신아일보 편집국장, 1972년 신아일보 편집주간을 맡았다. 1973년 신문연구소장을 지낸 뒤 1975년 신문회관 부이사장, 1981∼1986년 초대 한국언론연구원장을 지냈다. 1985년 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 1986∼1988년 부산일보 사장, 1996년 일경언론문화재단 이사장, 1997∼2003년 조선일보 사료연구실 고문, 2004년 대한언론인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일보 사료연구실 고문으로 있을 때에는 1883년 한성순보부터 20세기 말까지 한국 신문사 사설을 묶은 ‘한국신문사설선집’ 편찬을 주도했다. 이밖에 ‘한국언론인물지’, ‘한국신문백년지’, ‘한국신문통감’ 등을 편찬했다. 유족은 며느리 이미옥 씨와 손녀 윤기숙·윤기원 씨, 손자 윤영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7호실. 3일 오후 3시 대한언론인회 추도식을 한 뒤 4일 오전 7시 30분 발인한다. 장지는 시안공원묘원. (02)3410-6907.
  • 안산 화재로 숨진 나이지리아 4남매 발인

    안산 화재로 숨진 나이지리아 4남매 발인

    지난 27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한 빌라에서 일어난 화재로 목숨을 잃은 나이지리아 국적 4남매의 발인이 31일 치러졌다. 이들의 발인식에는 같은 나이지리아 국적 주민과 국제학교 친구 등 80여명이 참석해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아이들의 장지는 함백산 추모 공원에 마련됐다 이날 오전 안산시 군자장례식장 1층 발인실에는 화재로 세상을 떠난 4남매의 영정이 나란히 놓였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추모 예배에는 시민 50여명과 안산 나이지리아 공동체 주민, 숨진 아이들과 함께 국제학교들 다니던 친구들이 참석했다. 상복을 입은 아이들의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고, 휠체어에 탄 채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예배 진행을 지켜봤다 예배는 이들 부부를 대신해 피해지원대책위원회를 결성, 빈소 마련을 도운 박천응 안산다문화교회 목사의 집례로 진행됐다. 박인환 화정감리교회 목사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항상 약자들이 위험에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도 “우연히 발생한 희생이 아니라, 이 사회 속에서 약자가 처한 비극”이라고 강조했다. 주한 나이지리아 대사관 관계자들도 추모 예배에 참석해 고인들의 마지막 넋을 기렸다. 나이지리아 국적 주민들은 영정 앞에서 아프리카 전통 추모곡을 함께 부르며 숨진 아이들을 애도했다. 추모곡은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며, 이승에서 잘 살아준 고인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예배에 참석한 한 나이지리아 국적 주민은 “아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한국에 있는 모든 나이지리아인이 깊은 슬픔에 빠졌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7일 오전 3시28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한 3층짜리 빌라 1층 A씨의 집에서 불이 났다. 이 화재로 집 안에 잠자던 A씨 부부의 11세·4세 딸과 7세·6세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는 A씨 부부와 자녀 5명 등 모두 7명이 있었는데, A씨 부부가 두살 배기 막내를 대피시킨 뒤 거센 불길 탓에 다른 자녀들은 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독수리타법’으로 녹색 포털 지킨 수호신, 푸른 들판(綠野)으로 영원히 떠나다

    ‘독수리타법’으로 녹색 포털 지킨 수호신, 푸른 들판(綠野)으로 영원히 떠나다

    Q: “산타 할아버지 나이는 몇 살인가요?”A: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조광현옹이 네이버 지식iN에서 주고 받은 문답네이버 ‘지식인(iN)’에서 ‘녹야(綠野)’라는 활동명으로 2004년부터 지난해 11월 10일까지 수많은 답변을 남기며 ‘지식인 할아버지’로 불린 조광현옹이 27일 오후 10시쯤 87세를 일기로 서울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9일 전했다. 경기 김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복고,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1962년부터 1995년까지 서울에서 개인 치과 의원을 운영했다. 고인의 부인인 고 늘샘 권오실(1936~2022)씨는 1980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서예부문)에서 대상을 받고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까지 지낸 서예가다. 2020년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옹은 2004년부터 네이버 지식인에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활동을 중단한 2022년 11월까지 조옹이 단 답변 약 5만 3000여개에서 질문자에게 채택된 답변은 전체 답변의 70%가 넘는다. 고인은 네이버가 답변수와 답변채택률에 따라 부여하는 등급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호신’ 등급이었다. 조옹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에 네이버 파워지식IN상을 받았다. 고인이 ‘지식인 스타’로 불린 건 단지 답변 건수나 등급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옹은 본업인 치과 관련 지식과 국민학교 입학 전에 한자 4000자를 외우며 기른 한문 실력 등 풍부한 교양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고인 특유의 여유와 위트, 평생 체득한 인생의 지혜까지 함께 어우러져 네티즌들로부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고인은 고령의 몸을 이끌고 네티즌들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했다. 시력이 크게 손상된 탓에 두 개의 돋보기를 겹쳐 보며 ‘독수리타법’으로 답변을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키보드 앞엔 수건으로 직접 제작한 손목보호대를 놓고 사용했다. 안방 침대 바로 옆에 컴퓨터를 놓고 자다가도 일어나서 답변을 달았다. 고인이 어려움을 겪을 때 팬들이 응원하며 그를 도왔다. 2018년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조옹이 건강 문제로 2017년 2월과 2018년 10월 활동 중단을 선언하자 이에 아쉬워한 팬들은 그의 복귀를 바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내 조옹은 키보드 앞에 다시 앉았다. 같은 보도에 따르면 조옹의 팬들은 고인의 부인 권오실씨가 요양원에 입원한 이후 혼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는 소식에 반찬과 간식을 보내며 응원했다. 그는 생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답을 모르는 질문을 받으면 공부해서라도 답변한다고 했다. 조옹은 인터뷰에서 “이 나이가 돼도 모르는 건 알고 싶다. 내 공부하려고 사전도 찾아본다. 스스로 알아본 건 안 잊힌다. 이렇게 지식을 늘려왔다.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다면 초등학생이어도 은인이다. 내 선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고인은 1985년 제7회 치과의료문화상, 1994년 제2회 서울치과의사회 공로대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30일 오전 6시 15분.
  • 조카 돌보며 화목했던 가족···고모 빈소엔 울음소리만

    조카 돌보며 화목했던 가족···고모 빈소엔 울음소리만

    경찰이 자신을 훈계하던 고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중학교 1학년생 A(13)군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병원에 응급입원시켰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28일 살인 혐의로 체포한 A군에 대해 응급입원 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A군은 형사 미성년자로 석방 대상이지만 보호자에 인계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러한 조치를 했다. 정신건강복지법을 보면 응급입원 기간은 공휴일을 제외하고 3일 이내로 제한된다. 경찰에 따르면 A군은 전날 피해자가 집에서 태블릿PC로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하자 홧김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A군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A군 고모의 빈소에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간간이 조문객들이 오고갔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찾아온 유족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 고모, 동생과 함께 살던 A군은 지난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고모의 보살핌을 받았다. A군의 고모는 발달장애가 있는 A군을 친자식처럼 돌본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에서 만난 유족은 “A군의 고모와 수시로 통화를 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장애인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따보라고 권유했더니 바로 자격증을 취득할 만큼 고모가 A군을 품에 안고 열심히 키웠다”며 “며칠 전이 A군 할머니의 제삿날이었어서 가족들이 더 슬퍼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웃 주민들 역시 이 가족이 “평소 화목한 모습이었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10년 넘게 가깝게 지냈다는 한 이웃 주민은 “고모가 매일 A군을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헌신적으로 키웠다”며 “A군 역시 온순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근 고모가 ‘A군이 사춘기가 온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제 이 사건 이전까지 A군 가족과 관련된 사건이 경찰에 접수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 성남시의회, ‘2023년 1분기 모범시민 표창수여식’ 개최

    성남시의회, ‘2023년 1분기 모범시민 표창수여식’ 개최

    성남시의회(의장 박광순)는 27일 시의회 로비에서 1분기 모범시민 표창 수여식을 개최했다. 성남시의회는 남다른 사명감과 헌신적인 봉사정신으로 지역사회 발전의 초석이 된 시민들 가운데 공적심사위원회의 면밀한 심사를 거쳐 각 동별 1명씩 총 50명을 선정해 분기별로 모범시민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수정⁃중원구, 분당구 별로 총 2회에 걸쳐 수여식을 진행했다. 수상자를 비롯한 시의원, 축하객 등 50여 명이 참석했으며 내빈소개, 표창패 수여, 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됐다.이날 박 의장은 “이번 수여식은 남다른 사명감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솔선수범해오신 시민분들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마련한 자리”라며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올해는 성남시 승격 50주년이 되는 해이며, 경기도장애인체육대회 및 경기도종합체육대회가 성남시에서 개최되는 만큼 앞으로도 시민 여러분들의 활발한 활동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 4·19혁명 주도 서울대 학생… 윤식 전 의원 별세

    4·19혁명 주도 서울대 학생… 윤식 전 의원 별세

    4·19혁명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윤식 전 의원이 지난 24일 대장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83세.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0년 3·15 부정선거 직후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회장으로 서울 시내 각 대학과의 연합시위를 기획했다. 고인은 동기생 이수정 전 문화부 장관에게 명문으로 꼽히는 ‘서울대 문리대 학생 일동’ 명의의 4·19 선언문을 쓰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4·19혁명 후인 1960년 11월 서울대 민족통일연맹을 결성해 ‘남북한 서신 교환’ 등을 주장했다가 1961년 징역 10년형이 확정된 뒤 이듬해 형 면제로 출소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숙희씨와 아들 정주씨, 딸 지은씨, 며느리 정선아씨 등이 있다. 빈소는 강남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7시 30분. (02)2019-4001.
  • “고 이윤기 작가의 첫 독자이자 의논 상대” 부인 권오순씨 별세

    “고 이윤기 작가의 첫 독자이자 의논 상대” 부인 권오순씨 별세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번역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겸 번역자 고 이윤기(1947∼2010)의 부인 권오순 여사가 25일 새벽 3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69세. 1954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고인은 젊을 때 동양화를 그린 화가였다. 잡지 ‘학원’사에 근무할 때 기자로 활동하던 이씨를 만나 1978년 결혼했다. 처음 만나 가까워진 뒤로 늘 이씨의 작품을 가장 먼저 읽어준 독자였고 의논 상대였다. 딸 이다희씨는 “아버지는 작품 아이디어가 있으면 늘 어머니와 의논하셨다”며 “아버지는 어머니가 없었으면 소설을 못 쓰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페이스북에 “이윤기, 권오순님의 과천댁은 항상 개방되어 동료들을 초청, 온갖 주제를 놓고 토론과 술판을 벌였다. 그때 온갖 뒷바라지를 한 분이 권오순 여사”였다고 적었다. 최 이사장은 “23년 전 이윤기, 권오순 여사와 함께 가까운 동료 부부가 그리스, 로마, 튀르키예 여행을 다닌 후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몽골 그리고 피스엔 그린보트를 타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환경을 위한 항해’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유족으론 아들 이가람씨와 딸 이다희씨, 사위 유광용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8호실, 발인은 27일 오후 2시, 장지는 수원 연화장이다.
  • 김용철 전 대법원장 별세

    김용철 전 대법원장 별세

    제5공화국 마지막 대법원장을 지낸 김용철 전 대법원장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99세. 고인은 1924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50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49년 제3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1957년 대구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지법·서울고법 판사, 서울민사지법·서울형사지법·서울고법 부장판사, 춘천지방법원장을 거쳐 대법원 판사(현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등을 지냈다. 1986년 제9대 대법원장에 취임했으나 2년 뒤 소장판사들이 전두환 정권에서 활동한 사법부 수뇌부의 사퇴를 요구했던 이른바 ‘2차 사법 파동’의 여파로 사임했다. 대법원장 땐 즉결심판을 개선하고, 전산실을 설치해 등기사무와 소송사무 전산화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전 대법원장은 일제강점기에 법률 교육을 받지 않고 대법관이 된 첫 법조인이다. 청조근정훈장(1979년), 수교훈장 광화대장(198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5년)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강동구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7일,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유족으로는 사위 최성준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이 있다. 장례는 법원장으로 치러진다. (02)440-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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