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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순에도 ‘충만한 사랑’ 노래한 시인, 별이 되다

    구순에도 ‘충만한 사랑’ 노래한 시인, 별이 되다

    19번째 시집까지 1000여편 전해종교적 경건함·지상의 사랑 연결신달자 시인 등 많은 제자 길러내“만년의 저문 날에도 깨닫고 감동” 구순에도 마르지 않는 시심(詩心)으로 ‘충만한 사랑’을 노래해 온 김남조 시인이 10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96세.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8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재학 중 연합신문에 시 ‘잔상’, 서울대 시보에 시 ‘성수’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첫 시집 ‘목숨’(1953)을 시작으로 ‘사랑초서’, ‘바람세례’, ‘심장이 아프다’ 등 다양한 시집을 펴냈다. 가장 최근 출간한 19번째 시집 ‘사람아, 사람아’까지 1000여편의 시를 독자들에게 안기며 “종교적 경건함과 신성 탐구, 그것을 지상의 사랑으로 연결하고 결속하는 상상력”(유성호 문학평론가)을 펼쳤다. 1951~1953년 마산 성지여고, 마산고, 서울 이화여고 교사를 지낸 시인은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신달자 시인 등 많은 문인들을 길러냈다. 한국시인협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등을 지냈다.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 대한민국예술원 문학 부문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만해대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다. 아흔 셋이던 3년 전까지 시집을 펴낸 시인은 “시가 써지지 않는 기간은 삭막하고 목마른 시간”이라며 시를 향한 열정을 내려놓지 않았다. 2017년 18번째 시집 ‘충만한 사랑’을 펴내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면 자꾸만 마음속에서 시심이 일어나고, 또 시구가 떠올라서 시 쓰기를 멈출 수 없다”고 토로했다. 2013년 17번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를 펴냈을 때는 “오래된 풍금이 처음의 낭랑함은 잃어도 낡으면서 깊어지듯, 노년에 이르러 느끼는 감도(感度)는 더 깊고 간절하다”고 했다. 시인의 남편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조각가 김세중(1928~1986)씨다. 남편과 살던 서울 효창동 자택을 2015년 50억원의 사재를 털어 문화예술공간(예술의 기쁨)으로 재탄생시켰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녕(김세중미술관 관장)·석(화가)·범(설치미술가)씨, 딸 정아(가천대 명예교수)씨 등이 있다. 장례는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21호에 차려졌으며 11일 오전 23호실로 옮긴다. 발인은 12일, 장지는 경기 양주 천주교청파묘원이다.
  • 시 1000편 남긴 ‘사랑의 시인’ 김남조 별세

    시 1000편 남긴 ‘사랑의 시인’ 김남조 별세

    구순에 이르러서도 마르지 않는 시심(詩心)으로 ‘충만한 사랑’을 노래해 온 김남조 시인이 10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96세. 1927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8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재학 중 연합신문에 시 ‘잔상’, 서울대 시보에 시 ‘성수’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첫 시집 ‘목숨’(1953)을 시작으로 ‘사랑초서’, ‘바람세례’, ‘심장이 아프다’ 등 다양한 시집을 펴냈다. 가장 최근 출간한 19번째 시집 ‘사람아, 사람아’까지 1000여편의 시를 세상에 전한 고인은 “종교적 경건함과 신성 탐구, 그것을 지상의 사랑으로 연결하고 결속하는 상상력”(유성호 문학평론가)을 독자들에게 안겨줬다. 1951~1953년 마산 성지여고, 마산고, 이화여고 교사를 지낸 시인은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신달자 시인 등 많은 문인 제자들을 길러냈다. 한국시인협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을 지냈다.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6년 대한민국예술원 문학 부문 예술원상, 1998년 은관문화훈장, 2007년 만해대상, 2017년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다. 그는 2017년 18번째 시집 ‘충만한 사랑’를 펴내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면 자꾸만 마음속에서 시심(詩心)이 일어나고, 또 시구가 떠올라서 시 쓰기를 멈출 수 없다”며 시를 향한 무한한 열정을 토로한 바 있다. 그는 “나는 만년의 으스름 저문 날을 살면서도, 보고 느끼고 깨닫고 감동하는 바에서는 변함이 없다. 삶의 본질, 그 의미심장함과 이에 응답하는 사람의 감개무량함, 살아가면서 더디게 성숙되어 가는 경건한 인생관, 이 모두 오묘한 축복이며 오늘 우리의 감사이자 염원이다”고도 했다.2013년 17번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를 펴냈을 때는 “시가 써지지 않는 기간은 삭막하고 목마른 시간”이라며 “어느 때인가 그림자처럼 시가 잡히면 몇 달간 몇 편을 쓰게 되는데 젊을 땐 그게 반갑고 같은 키에서 손을 덥석 잡는 심정이었는데 이젠 노쇠에서 오는 고달픔에 시가 나의 초상화처럼 뼈마디 마디마다 아파온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오래된 풍금이 처음의 낭랑함은 잃어도 낡으면서 깊어지듯, 노년에 이르러 느끼는 감도(感度)는 더 깊고 간절하다”며 “지금에야 들리는, 소리를 낮춘 밀어들이 있어” 시를 엮는 동력이 된다고 했다. 시인의 남편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김세중(1928~1986) 조각가다. 고인은 남편과 함께 살던 서울 효창동 자택을 2015년 50억원의 사재를 털어 문화예술공간 ‘예술의 기쁨’으로 재탄생시키며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품었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녕(김세중미술관 관장)·석(화가)·범(설치미술가)씨, 딸 정아(가천대 명예교수)씨 등이 있다. 장례는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21호에 차려졌으며 11일 오전 23호실로 옮긴다. 발인은 12일, 장지는 경기 양주 천주교청파묘원이다.
  • 탈북 국군포로 한병수씨 92세 일기로 별세…尹대통령 조화 보내

    탈북 국군포로 한병수씨 92세 일기로 별세…尹대통령 조화 보내

    6·25전쟁 때 북한에 끌려가 반평생 고초를 겪다가 탈북한 국군포로 한병수 씨가 8일 별세했다. 92세. 9일 국방부와 사단법인 물망초에 따르면 한씨는 스무살이던 1951년 12월 육군 8사단 21연대 3대대로 입대했다가 정전협정 체결을 눈앞에 뒀던 1953년 6월 포로가 돼 북한에 끌려갔다. 함경남도 단천에 거주하며 강제노역을 했으며 2002년 6월 탈출해 중국을 거쳐 국내로 귀환했다. 유족의 요청으로 고인의 성명은 공개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고인의 빈소에 조화를 보냈으며,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이날 오전 직접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돌아가신 국군포로 네 분의 영전에 모두 조화를 보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후 지금까지 국군포로 80명이 귀환했으며, 고인의 별세로 이제 국내에 남은 탈북 국군포로는 11명으로 줄었다. 국방부는 “앞으로도 귀환 국군포로들의 공적에 합당한 예우와 처우를 다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빈소는 경기 안산 한도병원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11시다.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
  • 하늘로 떠난 ‘멕시코 4강 신화’ 승부사

    하늘로 떠난 ‘멕시코 4강 신화’ 승부사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박종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7일 오후 별세했다. 85세. 1938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춘천고, 경희대를 졸업한 박 전 감독은 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60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청소년대회 우승 멤버였지만 스타 선수는 아니었다. 선수 은퇴 뒤에는 지도자, 국제심판으로 활동했다. 1970년대 중반 약체팀이었던 전남기계공고의 지휘봉을 잡아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지휘봉을 잡은 서울시청팀 역시 여러 차례 국내 무대 정상에 올려놓았다. 1980~83년 20세 이하(U20) 청소년대표팀을 맡아 두 차례 세계 대회에 참가했다. 특히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는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한국 축구를 전 세계에 알린 순간이었다. 당시 한국은 기동력과 패스워크로 해외 언론으로부터 ‘붉은 악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한국 축구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의 유래가 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 여러 차례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하다가 1996년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6으로 진 뒤 대표팀에서 퇴진했다. K리그에도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1989년 신생 프로팀인 일화 천마(현 성남FC)의 감독을 맡으면서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1993년부터 K리그 3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2001년 창립한 한국여자축구연맹의 초대 회장을 맡아 여자축구 발전에 힘쓰는 한편 2002년 창단한 대구FC와 2013년 첫발을 내디딘 성남FC의 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박 전 감독은 걸출한 지도력에 더해 스파르타식 훈련으로도 유명했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강압적인 지도 방식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안익수 전 FC서울 감독, 신태용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 고정운 김포FC 감독, 이상윤 전 건국대 축구부 감독 등이 박 전 감독의 조련을 거쳐 스타가 된 제자들이다.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 ‘멕시코 4강 신화’로 ‘붉은 악마’ 한국 축구 알린 박종환 감독 별세

    ‘멕시코 4강 신화’로 ‘붉은 악마’ 한국 축구 알린 박종환 감독 별세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박종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별세했다. 85세. 대한축구협회는 8일 “박종환 원로가 전날 오후 별세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1938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춘천고, 경희대를 졸업한 박 전 감독은 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60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선수 은퇴 뒤에는 지도자와 국제심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 전 감독은 1970년대 중반 약체팀이었던 전남기계공고의 지휘봉을 잡아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자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지휘봉을 잡은 서울시청팀 역시 여러 차례 국내 무대 정상에 올려놓았다. 박 전 감독은 1980∼1983년 20세 이하(U-20) 청소년대표팀을 맡아 두 차례 세계 대회에 참가했다. 특히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는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한국 축구를 전 세계에 알린 순간이었다. 당시 한국은 기동력과 패스워크로 해외 언론으로부터 ‘붉은 악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한국 축구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의 유래가 됐다. 박 전 감독은 1990년대 중반까지 여러 차례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하다가 1996년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6으로 진 뒤 대표팀에서 퇴진했다. 1989년에는 신생 프로팀인 일화 천마(현 성남FC) 감독을 맡아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1993년부터 K리그 3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2001년 창립한 한국여자축구연맹의 초대 회장을 맡았고, 2002년 창단한 대구FC와 2013년 첫발을 내디딘 성남FC의 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 전북도, 전국 최초 ‘도민 헌혈의 날 선포’...7000명 헌혈 릴레이 돌입

    전북도, 전국 최초 ‘도민 헌혈의 날 선포’...7000명 헌혈 릴레이 돌입

    - ‘도민과 함께 생명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전라북도’라는 주제로 선포식 진행 -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 김관영 전라북도 도지사 등 주요인사 참석전라북도와 전북혈액원은 4일 전북도청 대회의실에서 전국 최초로 ‘도민 헌혈의 날’을 선포하고, 오는 25일 ‘전북 도민의 날’까지 7000명 헌혈을 목표로 헌혈릴레이를 시작했다. 이날 선포식에는 김관영 전라북도와 국주영은 도의장, 서거석 교육감, 헌혈릴레이에 함께 하는 전북대, 원광대, 전주대 등 주요 대학교의 총장, 전주상공회의소 회장과 행사를 후원하는 기업대표, 다회 헌혈자, 봉사원 등 200여명,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과 장예순 부회장, 조남선 혈액관리본부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선포식은 식전공연(전북대학교 현악 4중주), 축하 공연(가수 요요미), 오프닝 영상, 국민의례, 내빈소개, 헌혈선언문 낭독, 인사말과 축사, 선포식 퍼포먼스, 강원석 홍보대사의 헌시 낭독 및 액자 전달, 생명트리 희망 메시지 달기 등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는 저출생, 고령화로 헌혈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불어 나누는 삶, 나눌수록 커지는 삶’의 가치를 실천하는 건전한 헌혈문화를 조성하고, 생명나눔 운동을 우리사회 전반으로 확산해 나가고자 전북도와 대한적십자사가 뜻을 모은 것이다. 특히 전북도는 전국 최초로 ‘도민 헌혈의 날’을 선포하고, 도 단위의 대대적인 헌혈릴레이를 추진하는 등 ‘헌혈로 실천하는 생명나눔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에 나섰다. 오는 25일까지 진행되는 헌혈릴레이는 전북도청을 시작으로 14개 시·군, 전북 소재 대학교, 기업체와 전북 도민 등 7000여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전북도의 전국 최초 ‘도민 헌혈의 날’선포와 대대적인 헌혈릴레이 추진을 계기로 헌혈을 통한 생명나눔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건전한 헌혈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및 관계기관들과 협력해 나갈 예정이다.
  • ‘박카스의 아버지’… 제약업계 거인 잠들다

    ‘박카스의 아버지’… 제약업계 거인 잠들다

    ‘박카스의 아버지’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이 3일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강 명예회장은 1927년 경북 상주에서 고 강중희 동아쏘시오그룹 창업주의 1남 1녀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1959년부터 부친의 뒤를 이어 42년간 동아제약에 몸담았다. 강 명예회장이 1961년 개발한 피로 해소제 ‘박카스’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수출되며 동아제약을 줄곧 국내 제약 업계 선두 자리에 올려놓는 발판이 됐다. 특히 고인은 ‘생명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경영 현장을 진두지휘하면서 의약품 선진화에 힘썼다. 1994년 국내 최초 임상시험용 의약품 아드리아마이신 유도체 항암제 ‘DA125’를 보건복지부로부터 승인받았고, 국내 최초이자 세계 네 번째 발기부전 치료제인 ‘자이데나’와 당뇨병 치료제인 ‘슈가논’ 등을 개발해 국산 신약 발전을 이끌었다. 경기 안양에 현대식 공장을 준공해 1985년 국내 제약 업계 최초로 우수 의약품 품질·관리 기준(GMP) 시설을 인증받고, 1977년 업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로 기업 부설 연구소도 설립했다. 인재 확보도 중시해 업계 최초로 경기 용인에 인재개발원을 세워 사원 교육을 제도화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쏘시오’(Socio·사회)라는 단어를 기업명에 넣어 1994년 동아제약그룹을 동아쏘시오그룹으로 바꿨다. 1987년에는 사재를 출연해 수석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장학 사업과 평생 교육 사업 등을 후원해 1900명 이상의 장학생을 배출했다. 201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을 맡는 등 산업계 기술 개발 활동을 지원한 점 등을 인정받아 2002년 과학기술 분야 최고 훈장인 창조장을 수훈했다. 특히 1993년 신기술 인정(KT마크) 제도를 마련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제약 산업 경영인으로는 최초로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기도 했다.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경련)는 이날 류진 회장 명의의 추도사를 통해 고인에 대해 “재계를 대표해 사회적 책임과 소명을 다한 경제 지도자”라며 “생명 존중과 나눔의 정신, 청년같이 뜨거웠던 기업가 정신은 우리 경제계의 소중한 유산”이라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다. 유족으로는 자녀 정석·문석·우석·인경·영록·윤경씨가 있다.
  • ‘박카스의 아버지’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 별세

    ‘박카스의 아버지’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 별세

    ‘박카스의 아버지’인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이 3일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1927년 경북 상주에서 고(故) 강중희 동아쏘시오그룹 창업주의 1남 1녀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난 강 명예회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1959년부터 동아제약에서 일했다. 그가 1961년 개발한 피로 해소제 ‘박카스’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수출되면서 동아제약을 줄곧 국내 제약 업계 선두 자리에 올려놨다. ‘생명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의약품 선진화에 힘썼다. 1994년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내 최초 임상시험용 의약품인 아드리아마이신 유도체 항암제 ‘DA-125’를 승인받고, 국내 최초이자 세계 네 번째 발기부전 치료제인 ‘자이데나’와 당뇨병 치료제 ‘슈가논’ 등 신약 개발을 이끌었다. 경기도 안양에 현대식 공장을 준공해 1985년 국내 제약 업계 최초로 GMP(우수 의약품 품질·관리 기준) 시설을 인증받고, 1977년 업계 최초로 기업 부설 연구소도 설립했다. 업계 최초로 경기도 용인에 인재개발원을 세워 사원 교육을 제도화하는 등 인재 확보도 중시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사회’라는 의미가 담긴 ‘쏘시오’(SOCIO) 라는 단어를 기업명에 넣어 1994년 동아제약 그룹을 동아쏘시오그룹으로 바꿨다. 1987년에는 사재를 출연해 수석문화재단을 설립, 장학 사업과 평생 교육 사업 등을 후원해 1900명 이상의 장학생을 배출했다. 제약 산업 경영인으로는 최초로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기도 했다. 201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산업계 기술 개발 활동을 지원한 점 등을 인정받아 2002년 과학기술 분야 최고 훈장인 창조장을 수훈했다. 유족으로는 자녀 정석·문석·우석·인경·영록·윤경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고, 발인은 오는 5일 오전 6시 30분이다. ☎ 02-2072-2020.
  • ‘12만 유튜버’ 억달이형 사망… 사과 영상 마지막으로 남긴 채

    ‘12만 유튜버’ 억달이형 사망… 사과 영상 마지막으로 남긴 채

    유튜버 억달이형(본명 김태우)이 사망했다. 향년 38세. 억달이형은 지난 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1984년생인 고인은 12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다. 개그맨 김형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웹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등 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슬기로운 숙소 생활’에서 건달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고인이 약 두 달 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안녕하세요 억달이형입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마지막으로 올렸다. 최근 지인을 폭행한 사건으로 질타를 받았고, 이에 대한 사과 영상을 올린 것이다. 고인은 영상에서 “감추지 않고 숨기지 않겠다. 친구와 제수씨에게 진심으로 정말 죄송하다. 말로만 하는 반성이 아니다”라며 “각별한 친구와 사소한 시비가 있었고 그리하여 상황이 있었으며 그 결과 다툼이 있게 됐다. 자괴감이 정말 크다”고 고백한 바 있다. 고인의 사망 소식에 네티즌들은 “잘못은 잘못이고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었지만 힘듦의 무게가 얼마나 컸으면 그리 허망하게 가시나. 명복을 빈다”, “죽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주변에 알아주는 사람만 있었어도…”, “강하게만 보였던 사람이라 이렇게 허무하게 떠난 것이 뭔가 마음이 더 아프다” 등 댓글로 추모했다. 고인의 빈소는 오산장례문화원 30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4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화성 함백산추모공원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먼나라 이웃나라’ 김영사 창립자 김강유 회장 별세

    ‘먼나라 이웃나라’ 김영사 창립자 김강유 회장 별세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제작한 출판사 김영사의 창립자 김강유(76) 회장이 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영사 관계자는 “3~4일 전부터 지병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으며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1947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한 김 회장은 성균관대 불어불문학과와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에는 형제인 경섭·충섭씨와 함께 출판사 김영사를 세웠다. 문학, 인문, 에세이 등 다양한 책들을 발간했으며 1989년 김우중 회장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출판계에서 입지를 굳혔다. 1989년부터 제자인 박은주 전 김영사 대표이사에게 경영권을 맡겼다. 박 전 대표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먼나라 이웃나라’ ‘정의란 무엇인가’ 등 베스트셀러를 양산해 회사의 몸집을 불렸다. 김 회장은 2014년 경영 일선에 복귀했으며 박 전 대표는 돌연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법적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고인은 2022년 불교 수행 단체인 재단법인 여시관을 설립,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저서로는 ‘행복한 마음’ ‘행복한 공부’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강휘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월 3일 8시, 장지는 용인 선영이다.
  • ‘소록도 천사’ 마가렛 할매 오스트리아서 88세로 선종

    ‘소록도 천사’ 마가렛 할매 오스트리아서 88세로 선종

    소록도에서 40여년간 봉사했던 ‘소록도 천사’ 마가렛 피사렉 씨가 지난 29일(현지시간)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한 병원에서 오후 3시쯤 급성 심장마비로 운명했다. 시신은 생전 고인의 뜻을 받들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의대에 기증한다. 고흥군은 30일 ‘소록도의 천사, 작은 할매’라 불리던 마가렛 피사렉 선종에 대한 애도문을 발표하고 아픔을 함께 했다. 마가렛 피사렉은 폴란드 출생이다. 마리안느 스퇴거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원했다. 지난 1966년부터 2005년까지 40여년간 사랑과 헌신을 다해 한센인들을 보살펴 그들에게는 단순한 간호사가 아니라 따뜻한 이웃이고 엄마이자 천사였다. ‘마가렛’과 ‘마리안느’ 두 간호사는 나이가 들면서 몸 상태가 나빠지자 2005년 11월 “섬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편지를 남기고 조용히 소록도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함께 돌아갔다. 마가렛은 귀국 후 요양원에서 지내며 단기 치매 증상을 겪었으나, 소록도에서의 삶과 사람들은 또렷하게 기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오랜 세월 보수 한 푼 받지 않고 한센인들의 간호와 복지 향상에 헌신한 공을 기려 마리안느와 마가렛에게 1972년 국민훈장, 1983년 대통령표창,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여했다. 소록도 주민들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한국을 떠난 후에도 선행을 기렸다. 국립소록도병원은 이들이 살던 집을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의 집’으로 명명하고 보존하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은 2016년 개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이들에 대한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과 함께 두 간호사를 모두 초청했다. 마리안느 간호사는 당시 소록도에 다시 올 수 있었지만, 마가렛은 건강상 이유로 오지 못하고 결국 운명했다. 고흥군은 이날 (사)마리안느와 마가렛과 함께 공동 애도문을 발표하고 소록도 나눔연수원에 애도 현수막을 게시했다. 추후 장례 일정과 절차가 결정되면 비문과 조화, 빈소 등 장례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추석명절을 맞아 두분을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머물고 있는 (사)마리안느와 마가렛 임원들을 통해 장례와 조문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공영민 고흥군수는 애도문을 통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평생 한센인을 위해 헌신했던 마가렛의 숭고한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군민 모두의 마음을 모아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 추석 명절 3일 남았는데…‘우영우’ ‘더글로리’ 배우 모친상

    추석 명절 3일 남았는데…‘우영우’ ‘더글로리’ 배우 모친상

    배우 윤진성이 추석 명절을 3일 앞둔 26일 모친상을 당했다. 고인의 빈소는 전남 강진군삼림조합추모관에 차려졌다. 발인은 오는 28일이다. 윤진성은 슬픔을 삼키며 빈소를 지키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윤진성의 올해 나이는 53세다. 그는 전남 강진군 출신으로 국민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를 졸업했다. 윤진성은 연극 무대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연기파 배우다. 그는 넷플릭스 ‘더 글로리’,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유명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윤진성은 ‘더 글로리’에선 무당,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선 동그라미 엄마 역을 소화했다. 현재는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 촬영에 매진하고 있다.
  • “경부고속도로 재원 마련”... 서봉균 전 재무부 장관 별세

    “경부고속도로 재원 마련”... 서봉균 전 재무부 장관 별세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재원 마련에 힘쓴 서봉균 전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별세했다. 97세. 1926년 대구에서 태어난 서 전 장관은 경북고, 미국 휘튼 칼리지, 하버드대 대학원(MBA)을 졸업한 뒤 미국 제1연방준비은행에서 조사역으로 일했다. 1955년 상공부 공정과장, 민의원(국회) 부흥분과 전문위원을 지냈다. 짧은 기간 서울대에서 강사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1958년 대전방직 부사장을 지낸 뒤 1964년에 38세의 나이로 재무부 차관에 올랐다. 1966년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 1966년 외환은행 초대 행장도 역임했다. 이어 곧바로 재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사위인 조동일 국제자동제어연맹(IFAC) 회장은 “재무부와 외환은행에서 일하면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차관을 도입한 것을 늘 자부하셨다”고 전했다. 1968년 농업협동조합 중앙회장을 맡은 서 전 장관은 영세 농가의 고리 사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9년 7월 농협끼리 서로 돈을 빌려주는 ‘상호금융’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또 하나로마트의 전신인 생활물자사업을 시작해 1970년 1월 전국 최초로 경기 이천에 장호원농협 연쇄점을 개점하는 데 역할을 했다. 이후 공인회계사회장 등을 지냈고, 1979년부터 1985년까지 금융통화운영위원도 역임했다. 1979년부터 1985년까지 금융통화운영위원도 역임했다. 서 전 장관은 저서 ‘한국통화 신용정책’, ‘한국 농업의 개발전략’을 남겼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금탑산업훈장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서원석(순천향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씨와 딸 서지윤·서지원씨, 사위 조동일(서울대 공대 명예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2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02)3410-6917.
  • 고목에 꽃피운 ‘연기 거봉’ 변희봉 떠나다

    고목에 꽃피운 ‘연기 거봉’ 변희봉 떠나다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원로배우 변희봉(본명 변인철)이 18일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과거 완치 판정을 받았던 췌장암이 재발하면서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1966년 MBC 성우 공채 2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방송 드라마로는 ‘제1공화국’(1981),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1985), ‘찬란한 여명’(1995), ‘허준’(1999) 등 선굵은 작품에서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를 시작으로 봉 감독의 영화 7편 중 4편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도 끌어올렸다. 배우 송강호와 함께 봉 감독 작품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두 배우는 ‘살인의 추억’(2003)에서 호흡을 맞췄고 ‘괴물’(2006)에서는 부자 관계를 연기했다. 고인은 ‘옥자’(2017)를 통해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칸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70도로 기운 고목 나무에 꽃이 핀 기분”이라는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봉 감독은 그를 ‘기생충’(2019)에 캐스팅하려 했지만 건강 악화로 출연하지 못했다.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로 제2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을, ‘괴물’로는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제9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남자연기상, 제51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20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권위의 정부 포상인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 발인은 20일이다.
  • 배우 노영국 KBS 드라마 출연 중 비보…심장마비 사망

    배우 노영국 KBS 드라마 출연 중 비보…심장마비 사망

    KBS 2TV 주말드라마 ‘효심이네 각자도생’에 출연 중이던 배우 노영국(본명 노길영)이 18일 별세했다. 75세. ‘효심이네 각자도생’ 측은 이날 “오늘 새벽 고인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48년생인 고인은 1975년 MBC 공채 탤런트 7기로 데뷔해 ‘수사반장’(1975), ‘여명의 눈동자’(1991), ‘제국의 아침’(2002), ‘대왕 세종’(2008) ‘태종 이방원’(2021) 등에 출연했다. 지난 16일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효심이네 각자도생’에서는 대기업 회장 역할로 출연 중이었다. 제작진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추속 대처를 논의 중이다. 빈소는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0일이다. 유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가족 친지들과 동료 선후배들이 참석해 조용히 치를 예정이다.
  • 배우 변희봉, 투병 끝 별세… 췌장암 완치 후 재발

    배우 변희봉, 투병 끝 별세… 췌장암 완치 후 재발

    향년 81세… 영화 ‘괴물’ 등 다수 작품 출연 배우 변희봉(본명 변인철)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18일 유족에 따르면 변희봉은 이날 췌장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고인은 췌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암이 재발해 투병하다 끝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1942년생인 고인은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1965년 MBC 2기 공채 성우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방송 드라마로 발을 넓힌 고인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약했다. 드라마 ‘제1공화국’,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 ‘여명의 눈동자’, ‘왕과 비’, ‘마녀유희’, ‘솔약국집 아들들’,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 등과 영화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 ‘공공의 적’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다. 1985년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로 제21회 백상예술대회 TV부문 인기상을 받았고, 2006년 ‘괴물’로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고인은 2018년 방송된 tvN 예능 ‘나이거참’에 출연해 앞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출연을 앞두고 받은 건강 검진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았던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방송에서 “‘미스터 션샤인’ 작가님, 감독님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라며 “출연을 제안 받고 ‘아직도 내가 쓰일 곳이 있더라’는 생각에 건강 검진을 받았다. 그때 췌장암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고인은 대중문화 각계에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0일 오후 12시 30분이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 윤종신, 전미라와 가슴 찢어지는 소식 전했다

    윤종신, 전미라와 가슴 찢어지는 소식 전했다

    가수 윤종신이 가슴 아픈 소식을 전했다. 윤종신의 소속사는 “윤종신이 12일 부친상을 당했다. 현재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발인은 오는 15일 오전 7시다. 또 장지는 창원 천자봉공원이다. 윤종신의 아내인 전미라는 13일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아버님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쉬세요. 평소에 건강하셨던 분이어서 이번 여름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어요. 거기에는 아픔도 고통도 없으실 거예요”라고 전했다. 이어 “어머님 손 붙잡고 만나고 계세요. 마지막 아주 고통스럽지 않았던 것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버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주신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윤종신은 1990년 가수 015B 정규 1집 ‘텅 빈 거리에서’ 객원보컬로 가수 데뷔했다. 윤종신은 이듬해 1991년 솔로 1집을 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너의 결혼식, 오래전 그날, 환생 등 독자적으로 적잖은 히트를 기록했다. 정규 4집부터는 작사, 작곡뿐만 아니라 프로듀싱도 겸했다. 이후 5집부터는 작품 주의 싱어송라이터로 완연히 거듭났다. 객원보컬로 시작하여 프로 작곡가, 작사가로 인정받은 가수다.
  • ‘관정교육재단’ 1.7조 기부 이종환 전 삼영 회장 별세

    ‘관정교육재단’ 1.7조 기부 이종환 전 삼영 회장 별세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설립자 이종환 전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13일 오전 1시 48분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100세. 1925년 3월(호적상 1924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고를 졸업한 뒤 1944년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를 2년 수료했다. 그 후 학병으로 끌려가 소련·만주 국경과 오키나와를 오가며 복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이후 사업에 투신해 1958년 삼영화학공업 주식회사를 창업했고, 현재는 삼영중공업(주) 등 10여개 회사를 거느리는 삼영그룹으로 발전시켰다. 2002년 4월 30일 설립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 지금까지 쾌척한 재산액은 1조 7000억원에 달한다. 2014년 600억원을 기부해 서울대 관정도서관을 헌정하면서 서울대 사상 최대 기부액을 기록했다. 고인은 별세하기 3주 전인 지난 8월 말까지 장학재단을 직접 챙기고 산하 기업들의 생산영업을 지휘했다고 회사 측이 전했다. 관정재단 장학생은 1만 1500여명에 이르고, 박사학위 취득자도 750명에 달한다. 고인은 이런 공으로 2009년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수훈했고, 2021년에는 제22회 4·19문화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 장남 이석준 ㈜삼영 대표이사 회장 등 2남 4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15일 오전 8시 30분.
  • 이상훈 전 국방장관 별세

    이상훈 전 국방장관 별세

    냉전이 종식되던 1980년대 후반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이상훈 전 장관이 11일 별세했다. 90세. 13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1933년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경기고등학교에 재학하다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 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55년 소위로 임관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맹호부대(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26연대 1대대장으로 참전해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고인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사 11기 동기였지만 군내 사조직 ‘하나회’ 일원은 아니었다.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1983~85년)으로 근무한 뒤 예비역 대장으로 예편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국방부 장관으로 일했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재향군인회장, 국가원로자문회의 상임의장 등으로 활동했다. 유족으론 배우자 안정숙 여사와 아들 웅희·장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이며, 발인은 14일 오전 7시다.(02-3010-2000)
  •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부른 원로가수 곽순옥 별세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부른 원로가수 곽순옥 별세

    남북이산가족 상봉 주제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의 원곡을 부른 원로가수 곽순옥이 지난 12일 향년 91세 일기로 별세했다. 1951년 미8군 가수로 데뷔한 고인은 분단의 슬픔과 이산가족의 애타는 심경을 그린 1960년대 영화 ‘남과 북’의 주제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불러 큰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은 1964년 라디오 연속극 ‘남과 북’의 주제가로 쓰이며 처음 알려졌고, 동명의 영화에도 삽입됐다. 당시 영화가 크게 흥행하며 노래도 함께 인기를 모았으며 이후 패티김, 문주란, 장사익 등 여러 가수가 다시 부르며 오랜 기간 사랑받았다. 특히 패티김이 부른 버전은 1983년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주제가로 쓰이며 ‘국민가요’로 떠오르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장례식장 20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4일 오후 3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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