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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주 ‘의로운 소’ 할머니 품으로

    세간에 화제를 불러온 경북 상주시 ‘의로운 소’ 누렁이가 숨진 뒤 생전 자신을 남달리 사랑했던 할머니 곁으로 돌아갔다. 순수 한우 혈통인 누렁이는 지난 11일 오후 8시40분쯤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 임봉선(여·73)씨 외양간에서 일생을 마쳤다. 자연사한 소의 나이는 20세. 사람으로 치면 60대이다. 상주시는 12일 ‘의로운 소 장의추진위원회’를 구성,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치 사람이 죽은 것처럼 장례의식을 치렀다. 염, 입관, 발인제를 거쳐 차량으로 만든 꽃상여와 달구지로 장지인 사벌면 삼덕리의 상주박물관 인근 시유지로 운구, 하관과 봉분제 등을 거쳐 안장됐다. 무덤은 의우총(義牛塚)으로 명명됐다. 소의 무덤은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유적화하고 소의 일생에 대한 기록을 향토 민속사료로 남기는 한편 소가 살았던 곳을 현장교육장으로 꾸미기로 했다.‘의로운 소’ 누렁이는 지난 1994년 자신을 남달리 사랑해 주던 이웃집 김보배(당시 85세) 할머니가 사망하자 우사를 뛰쳐나와 2㎞ 이상 떨어진 산소를 찾아 눈물을 흘린 뒤 빈소까지 들렀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상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미녀삼총사’ 김형은 끝내 하늘로

    ‘미녀삼총사’ 김형은 끝내 하늘로

    TV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미녀삼총사’로 인기를 끌었던 개그우먼 김형은(26)씨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투병을 하다 10일 끝내 숨졌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교통사고로 목뼈가 탈골돼 지난달 26일 7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던 김씨가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과다출혈로 인한 심장마비로 이날 오전 1시쯤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달 16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리조트에서 예정된 공연을 위해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이동하던 중 승합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1981년생인 김씨는 동국대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6시. 고인의 시신은 화장된 뒤 경기도 고양시 청아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개그우먼 김형은, 심장마비로 끝내 사망

    개그우먼 김형은, 심장마비로 끝내 사망

    촉망받는 개그우먼 김형은의 죽음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실력과 끼를 겸비한 차세대 개그우먼으로 인정받던 터라 그의 죽음이 안기는 충격은 더 크다. 김형은은 지난 2003년 SBS 공채 개그맨 7기 대상으로 연예계 입문해 TV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동료 개그맨 심진화, 장경희와 함께 ‘미녀삼총사’ 코너를 이끌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미녀삼총사’란 이름으로 가수를 결성하고 음반 ‘운명’을 발표한 뒤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음반에서 김형은은 수준급 가창력을 선보여 다시 한 번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16일 오후 공연 참석차 강원도 용평리조트로 향하던 중 때마침 내린 폭설로 강릉방향 영동고속도로에서 타고 있던 승합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대형 교통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뒷자석에 앉아 잠을 자던 김형은은 빠르게 방어하지 못해 함께 탔던 장경희, 심진화보다 부상이 심각했다. 사고로 목을 크게 다쳐 전신마비가 우려된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지난달 26일 7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고, 이후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해왔다. 회복을 바라는 주위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10일 오전 1시경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김형은의 한 측근은 “수술 이후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잇고 있었지만 며칠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빈소는 치료를 받아오던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다.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 “어머니께 우승으로 보은” ‘아시아 홈런킹’ 이승엽 애끊는 사모곡

    “나의 성공만을 위해 어머니는 모든 것을 내던지셨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아시아 홈런킹’ 이승엽(31·요미우리)이 애절함으로 밤새 눈물을 삼킨 탓에 7일 눈이 빨갛게 부은 채 조문객들을 일일이 고개숙여 맞았다. 이승엽은 뇌종양으로 5년간 투병해오던 어머니 김미자(58)씨를 지난 6일 새벽 1시30분쯤 하늘나라로 보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결혼 5주년이라 그의 슬픔은 배가됐다. 이승엽은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귀국한 뒤 대구에서 훈련 중이라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승엽은 “천국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지난해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우승하는 것이야말로 어머니에게 가장 큰 보은”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2남1녀의 막내인 이승엽은 어머니의 유별난 사랑 속에서 한국야구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컸다.1995년 고향팀인 삼성 유니폼을 입은 뒤 성장을 거듭,1999년 한 시즌 56홈런으로 아시아 홈런킹에 등극했다. 세상사는 ‘호사다마’다.2002년 1월 이승엽이 아내 이송정씨와 신혼 여행을 떠났을 때 고인은 병원에서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이후 세 차례 수술을 했지만 기억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등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각계의 조문도 잇따랐다. 이승엽의 전 소속 구단인 일본프로야구 롯데 마린스도 신동빈 구단주 겸 롯데그룹 부회장과 구단 임직원 명의로 조화를 보냈다. 현 소속팀 요미우리와 코리안 메이저리거 맏형 박찬호(34)도 조화를 전달했다. 전날 선동열 감독을 비롯한 삼성 선수단이 빈소를 찾는 등 7일에도 많은 야구인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일본 언론도 이승엽의 어머니 사망과 애절한 사모곡을 보도했다. 스포츠호치는 이날 인터넷판으로 ‘지난해보다 좋은 성적을 남기겠다.’는 제목으로, 산케이스포츠 온라인판은 ‘우승을 어머니의 묘 앞에 바치겠다.’는 제목으로 슬픔에 빠진 이승엽의 새로운 각오를 실었다. 스포츠닛폰도 이승엽이 땅을 주먹으로 치면서 통곡했다고 전했고, 닛칸스포츠도 이승엽의 고인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보도했다. 빈소는 대구 동구 파티마병원 장례식장 5층 귀빈실(053-956-4445)이며, 발인은 8일 오전 9시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부고] 이석영 前 중기청장 별세

    이석영 전 중소기업청장이 숙환으로 6일 별세했다.59세. 이 전 중기청장은 1948년 경북 성주 출신이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13회에 합격, 공직생활을 했다. 산업자원부 기획관리실장, 차관보를 거쳐 2002년 중기청장에 올랐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병옥(푸르덴셜생명보험 부사장) 여사와 2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0일 오전 7시. (02)3410-6915.
  • 백남순 北외무상 사망

    백남순 北외무상 사망

    북한 백남순 외무상이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전했다.78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날 사망한 백 외무상의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고 이 통신은 소개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평양발 기사에서 백 외무상이 2일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의 대남 전문가로 알려진 백 외무상은 1929년 양강도에서 태어나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을 맡아 대남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백남준’이라는 가명으로 1990년 9월부터 남북고위급회담에 정무원 참사실장 자격으로 계속 참가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남북고위급회담 정치분과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1998년 9월 외무성 외무상으로 임명됐다. 백 외무상은 지난해 7월 싱가포르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백남순 프로필

    ●출생지:양강도 삼수 ●학력:김일성대학 졸업 ●주요 경력 -50년대 후반 당 여러부서에서 지도원,과장 -68년 국제부 부부장 -74∼79년 폴란드 주재 대사 -80년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83년 8월 외국문출판사 사장(업무상 과실로 좌천),기자동맹 부위원장 -84년 9월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상무위원,당 통일전선부 부부장.남한 수재시 북한 적십자회 대표로 수재물자 인도차 판문점 대성동 마을 방문 -89년 통일전선부 부부장.2월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대표단장(1,3,5,7차 때 서울 방문) -90년 1월 조평통 서기국장 겸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7월 남북고위급회담 회담 합의문 서명.10월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94년 6월 정무원 책임참사.6월28일 남북최고위급회담을 위한 부총리급 예비접촉 북측대표.7월 남북한최고위급회담 실무절차협의를 위한 대표접촉 대표 -96년 1월 조평통 서기국장 경질 -97년 9월 외무상 -99년 2월11일 중국대사가 주최한 김정일의 57회 생일축하연 참석,연설.3월17일 방북 그리고리 카라신 러시아 외무차관과 회담.5월 3일 김영남의 중국 방문 수행 -2000년 1월1일 김영남의 새해맞이 주북 외교대표 면담 배석.3월 9일 이임 만영상 중국대사 면담.3월18일 방중,18일 당가선 외교부장과 회담,20일 주용기 총리 예방.4월17일 김영남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회담 배석.7월19일 김정일과 푸틴과의 정상회담,공동선언문 조인식 및 환영연회 참석.7월20일 김정일과 함께 푸틴 공항 전송.7월26일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참가중 이정빈 외무와 회담 일본,태국,캐나다,중국,러시아,호주 외상등과도 연쇄 회담(29일까지).10월23일 조명록과 방북한 미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의 환담 배석.10월24일 올브라이트장관 면담.11월14일 방북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과 회담. -2001년 1월10일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원 위한 친선모임 마련.3월 1일 하워드 발로치 초대 북한주재 캐나다 대사(중국 주재 대사로 북한주재 겸임) 면담.9월 4일 방북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간 회담에 배석.10월29일 북한주재 러시아대사가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과 관련해 마련한 연회 참석. -2002년 1월17일 신임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마련한 신년모임 참석.2월6일 북한주재 쿠바대사가 김정일의 생일 즈음해 마련한 연회 참석. 2월 7일 북한주재 베트남대사가 김정일의 생일 즈음해 마련한 연회 참석 2월 9일 북한주재 중국대사가 김정일의 생일 즈음해 마련한 연회 참석.2월28일 김영남의 태국 및 말레이지아 공식 방문 수행.3월28일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동행.4월 9일 김일성 90회 생일 맞아 쿠바 대사가 마련한 연회 참석.5월 2일 천득렁 베트남 주석 평양도착 영접.김영남과 천득렁주석과의 환담 배석.5월23일 이종욱(李鍾郁) 세계보건기구(WHO)사무총장 당선자에 축전 보냄.8월 8일 방북한 왕의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6자회담 문제 협의. -20004년 3월23일 방북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 5월 1일 방북 인도네시아 외상과 회담 6월28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 참석차 자카르타 도착 7월 1일 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 예방 7월 1일 남한의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회담 7월 1일 일본의 가와구치 외상과 회담(조-일 평양선언 이행 의지 재확인 및 일련의 문제 의견 교환) 7월 2일 미국의 파월 국무장관과 회담 7월 2일 남한의 반기문 장관과 2차 회담 7월 2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자카르타)참석 7월 4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 8월 5일 자크 디우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 면담 8월13일 빌 라멜 영국 외무차관에게 ‘양강도 대폭발’은 수력발전소 건설 위해 산 하나를 계획적으로 폭파한 것이라고 밝힘 12월14일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 주최 연회에서 연설 12월16일 북-캄보디아 수교 40돌 기념 연회에서 연설 05년 1월12일 커트 웰든(공화.펜실베이니아) 미국 하원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하원대표단(11~14일 방북) 접견 1월25일 평양주재 중국대사관 직원초청 신년연회에서 연설(김형준 동석) 1월27일 안드레이 카를로프 대사 등 러시아대사관 직원들과 신년모임에서 연설 2월 2일 북한 주재 시리아대사관 주최 김정일 63회 생일기념 친선연회에서 연설 2월 4일 북한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관 주최 연회 참석 2월14일 북한 주재 이집트대사관 주최 김정일 63회 생일 축하연회에선 연설 외무성 주최 북한 주재 외교대표들과 국제기구 대표들 초청 연회에서 연설 2월16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전화통화 갖고 6자회담 조기 개최 등 북핵문제 논의 2월18일 외무성 주최 평양 주재 유럽국 외교대표 초청 친선모잉에서 연설 3월28일 이임인사차 방문한 북한 주재 이집트 대사와 환담 5월 5일 북한주재 가봉공화국 엠마뉴엘 음바 알로 대사와 회동 5월19일 북한주재 이집트 신임 대사 하티르와 회동 5월21일 란사나 콩테 기니 대통령의 특사인 파시네 뚜레 예방 받음 5월28일 솜사왓 렝사왓 라오스 외무장관과 면담 7월11일 아서 설즈버거 2세 뉴욕타임스 회장 접견 7월12일 마리게리타 보니베르 이탈리아 외무차관 일행 면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과 회담 및 연회서 연설 7월23일 라오스에서 열리는 제12차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차 출국(김영일 전송) 7월24일 칸타티 수파몽콘 태국 외무장관과 회담(방콕) 7월25일 탁신 태국 수상 면담 7월28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남북 외교장관 회담(라오스),공동보도문 발표 캄타이 시판돈 라오스 대통령 예방 솜사왓 렝사왓 라오스 외무장관과 회담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과 회담 7월29일 제12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 참석(라오스),연설함 캐나다와 인도네시아 외무장관과 유럽연합(EU) 공동의 대외 및 안보정책담당 고위대표와 만남 7월30일 분냥 보라칫 라오스 총리 예방 8월 2일 제12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 참석뒤 귀국(김영일 마중) 8월18일 플랭클린 그래험 목사의 특별보좌관 면담(김정일에게 보내는 선물 대신 수령) 8월27일 태국 칸타티 수파몽콘 외무장관과 회담,북-태국 외무성간 협상 및 협조에 관한 양해문 조인(김영일 배석) 8월29일 방북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과 회담 항일전쟁승리 60돌 기념 중국대사관 주최 연회에서 연설 태국 칸타티 수파몽콘 외무장관 일행 위한 연회에서 연설 9월 1일 짐 리치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미 의회대표단 면담 9월13일 북-쿠바 수교 45돌 기념 연회(평양)에서 연설 9월22일 누룰라흐 한 파키스탄 신임대사와 환담 9월28일 베트남 외무성 부상인 웬 푸 빙이 김정일에게 전달하는 선물 대신 받음 10월 7일 부임 인사차 예방한 바시르 할리파 아부 자나흐 평양 주재 리비아 ‘인민사무소’ 비서와 환당 10월13일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관 주최 수교 57돌 기념 연회(대동강회교단회관)에서 연설 10월20일 프리드리히 루드비히 뢰르 신임 주 북한 독일대사의 예방받고 담화 10월27일 북한 주재 스웨덴 신임 대사 면담 11월 3일 로만 이바슈케비츠 주북 폴란드 대사 면담 11월 6일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차관 면담 11월16일 신임 캄보디아 대사 면담 12월14일 제임스 모리스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 면담 12월19일 이임 인사차 예방한 팔레스타인 대사 면담 12월22일 북한 주재 중국 대사관 주최 외무성 관계자 초청 연회에서 연설 12월29일 쿠바혁명 47돌 기념 외무성 주최 연회에서 연설 06년 1월24일 카를로프 대사 등 러시아 대사관 관계자 초청 외무성 주최 신년연회에서 연설 1월26일 외무성과 중국대사관간 신년 친선모임에서 연설 2월 4일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한반도 특사인 나나 수트레스나 일행 면담 및 연회에서 연설 2월 7일 북한 주재 시리아 대사관 주최 김정일 생일 기념연회에서 연설 2월21일 북한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 주최 김정일 생일 축하 연회 참석 2월27일 이타르-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북 제재가 지속되는 한 6자회담은 불가능하다’고 말해 3월 2일 테이즈 왈리아 신임 세계보건기구(WHO) 북한 주재 대표의 신임장 받음 3월 9일 무하마드 샤흐타 조로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사 면담 3월16일 싱가포르 외무부 대표단(단장 외무성 제2상임비서) 면담 존 에버라드 신임 영국대사 면담 4월13일 북한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관 주최 김일성 생일 기념연회 참석 4월20일 북한 주재 리비아 대사관 주최 연회(대동강외교회관)에서 연설 5월17일 시예드 하미드 알바르 말레이시아 외무장관과 회담(김영일 배석) 5월23일 5월30일부터 6월6일까지 8일간 리자오싱 외교장관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다고 류젠차오 외교부 대변인이 발표 30일 고려항공편으로 베이징(北京)에 도착,8일간의 중국 방문 일정 개시(김영일 전송) 도착 당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국무원 총리와 면담,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의 회담 6월 1일 광둥(廣東)성 방문 2일 중양성(鍾陽勝) 광둥성 상무부성장 면담 3일 광둥성 선전시의 줘친루이(卓欽銳) 부시장 면담(우저우五洲 호텔) 5일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면담 7월 6일 나나 수트레스나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 면담 및 환영 연회에서 연설 7월24일 시리아 대사 주최 북한과 수교40주년 맞이 기념연회 참석 7월25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출국 7월27일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 말레이시아 총리 예방 7월28일 시예드 하미드 알바르 말레이시아 외무장관과 회담 8월 1일 싱가포르 리 센 룽 총리와 회담 8월 2일 나단 싱가포르 대통령과 회담 8월10일 이임 인사차 방문한 우둥허(武東和) 북한주재 중국대사와 환담 9월20일 류샤오밍(劉曉明) 신임 북한주재 중국대사와 회동 07년 1월 3일 사망.김정일,고인 빈소에 조화 보냄 온라인뉴스부
  • [부고] 유양수 前교통부장관

    유양수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이 지난 1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84세.1923년 광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5·16쿠데타가 나자 가장 먼저 지지 입장을 취했다. 리핀·오스트리아·사우디·바레인 등 16년간 대사를 거쳐 1979년 교통부 장관과 동력자원부 장관, 석유개발공사 이사장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4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02-730-6611). 유족으로는 부인 김재화(성공회대 명예교수)씨와 2남1녀.(02)2072-2091.
  • 후세인 사형 이후 두 표정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의 처형으로 이라크가 혼돈의 늪으로 더욱 깊이 빠져드는 양상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1일(현지시간) 각각 “후세인 사형집행은 이라크의 새로운 불길한 시작을 알리는 것”,“부시는 나라(이라크)를 세우는 게 아니라, 망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AP와 BBC 등 외신들도 2일 후세인 전 대통령에 대한 절차를 무시한 처형과 처형 과정에서 드러난 집권 시아파의 수니파에 대한 정치 보복이 이라크내 종파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진단하면서, 격화되는 이라크 분위기를 보도했다. ■ 성난 이라크 특히 처형 순간 시아파 참관인들의 후세인 조롱은 큰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참관인들이 후세인에게 정적(政敵) ‘무크타다’를 연호하고 후세인의 마지막 신앙 고백이 끝나기 전에 교수형에 처해 버린 ‘보복전’이 수니파들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2일 후세인의 가짜 관과 사진을 받쳐든 수백명이 사마라의 시아파 사원에 몰려들어 출입구를 부수고 ‘시아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다. 이 사원은 지난해 2월 수니파가 폭탄 테러를 가한 이후 피의 보복전을 불러온 민감한 장소다.AP는 저항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니파 주민들은 후세인 처형 이전까지는 시아파 군인들이 공격을 해도 공개적으로 종파 분쟁에 나서는 것을 피했지만,“이젠 전면에 나서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바그다드 북부 수니파 지역에선 수백명의 시위대가 여기저기 운집해 ‘보복’ 구호를 외쳤고, 일부는 양을 도살해 제단에 올린 뒤 후세인의 ‘바트당’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1일(현지시간) 이라크 경찰은 바그다드에서 수니파 저항세력에 의해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온 몸에 총알이 박혀 숨진 40명의 민간인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 알제리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이라크인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라크 정부는 이날 후세인 처형 동영상 유포로 인한 파문이 커지자 일부 사형집행인이 어떻게 휴대전화를 사형장으로 몰래 들여왔는지, 교수대 위에 선 후세인을 조롱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말 잃은 부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처형 이후 말을 아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의 연말 휴가를 마치고 1일 워싱턴으로 귀환했다. 그는 곧바로 부인 로라 여사와 함께 미 의사당에 마련된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빈소로 조문을 갔다. 이어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에서 포드 전 대통령의 부인 베티 여사를 만나 위로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조문을 한 부시 대통령의 발걸음도 가볍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포드 전 대통령은 타계하기 전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와 만나 “이라크전은 실수”라고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들어 이라크와 관련해 말을 매우 아끼고 있다. 지난 30일 후세인 처형 직후에도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세우는 과정에서 중대한 이정표”라는 내용의 성명만 발표했을 뿐이다. 후세인 처형과 같은 중요한 ‘이벤트’가 벌어졌는데도 TV 앞에 서거나 기자들과 만나지 않았다. 그는 오는 23일 의회에서 국정연설을 할 예정이다. 미 언론들은 그 이전에 부시 대통령의 새로운 이라크 정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새 이라크 정책의 중요한 부분인 이라크 추가 파병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dawn@seoul.co.kr
  • [부고]

    ●최남철(전 현대증권 대표)씨 별세 은석(Alpha-Pac Japan 이사)씨 부친상 김재훈(현대증권 과장)씨 빙부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6시 (02)3010-2293●윤주현(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씨 별세 이광주(한국은행 국제국장)씨 상배 29일 미국, 빈소 서울아산병원, 발인 5일 오전 8시 (02)3010-2000●이철재(전 강원보일러 부사장)씨 별세 수영(통일부 인사기획팀장)씨 부친상 2일 서울대병원, 발인 4일 오전 7시 (02)2072-2022●장동훈(전 대한손해보험협회 전무)씨 별세 준(미국 거주)씨 부친상 최성호(엔에치엔 이사)씨 빙부상 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4일 오전 6시 (02)3410-6916●이성구(대원반도체 부장)윤구(자영업)씨 부친상 김기철(전 KBS 영상제작국장)김재수(키스트 책임연구원)씨 빙부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9시 (02)3010-2240●최병의(자영업)씨 모친상 김종태(구세군 상계영문 담임사관)씨 빙모상 최준묵(녹십자 홍보팀장)현묵(조선일보 기자)씨 조모상 2일 충주의료원, 발인 4일 오전 8시30분 (043)841-0381●오관수(교보증권 둔산지점 차장)씨 부친상 2일 대전 유성 성심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30분 011-9814-8709●양옥교(전 통일중공업 상무이사)씨 별세 준성(선문대 전산운영팀장)준태(기산텔레콤 경영기획실장)준호(교보생명 강서중앙지점장)씨 부친상 2일 건국대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2)2030-7901●구본빈(시그마D&I 사장)본업(승비건설 〃)본중(현대자동차 과장)본언(현대자동차 아산생산관리부 차장)씨 부친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2)3010-2238●남원희(국회 행정자치위원회 행정실장)태희(평화정밀)씨 부친상 2일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발인 4일 오후 1시 (02)849-9050
  • 생존한 대원군 맏며느리 李씨마마

    생존한 대원군 맏며느리 李씨마마

    무엇이 비운(悲運)인가? 파란 많은 근세사(近世史)속의 이왕가(李王家)와 함께 「마지막 전하(殿下)」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종지부를 찍어버렸을때, 옛 왕가의 제일 높은 마마 노락당(老樂堂) 李씨(87·대원군(大院君)의 맏며느리=완흥군(完興君)부인)는 「만사가 귀찮다…」고 손을 저으며 자리에 누워버렸다.「뉴스」의 유궁(幽宮)처럼 언제나 육중한 문을 굳게 닫아버린 운현궁, 그 안방 노락당에 잠입, 처음 공개하는 이 모습. 만인지상(萬人之上)이던 이왕가, 그중에도 옛 왕족들의 「안방」에서는 왜 늘 「뉴스」의 촉각을 피해왔을까? 관심을 둔 기자들이 해방 이후부터 줄곧 사양의 「안방마마」들에게 신경을 썼지만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어낸 일이 없었다. 더욱이 이은(李垠) -> 이구(李玖)씨의 낙선재 신관(新舘)쪽 현대파(現代派)보다 고종(高宗)황제의 생가(生家)이며 대원위 대감이 팔도강산을 호령했던 운현궁(蕓峴宮)쪽은 너무 깊숙해서 안방잠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대원위 대감의 맏며느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어? 「감춰진 사실」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그때마다 말못할 감회를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5월2일 하오 2시. 신문사 취재차에 고종황제의 손자며느리 한 분을 태우고 운현궁 옆 여도 골목에 멀찌감치 차를 세웠다. 운현궁에서 신문사차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이면 대문간서부터 「출입(出入)사절」을 당할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차 안에 앉은 채 기회를 노리기 1시간 30분. 대원군이 거처하던 사랑채 노안당을 거쳐 뒤채의 이노당(二老堂 -여기엔 대원군의 애손(愛孫) 이준용(李俊容)공의 부인 이씨가 기거했음), 이씨마마가 계시는 노락당에 들어갈때까지 좀처럼 집안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나선재에서는 한참 영친왕(英親王)의 빈소가 벌어져 붐비는데 유궁(幽宮)같은 운현궁 안은 쓸쓸하고 조용할 뿐이다. 노락당 이씨는 마지막 전하 이은씨의 부음을 듣고 슬픔에 잠겨 두꺼운 요 위에 누워 계셨다. 방안은 약 5평. 잉어가 그려진 두폭짜리 병풍 하나와 조그만 의자가 몰락한 왕가의 현실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을뿐, 덩그맣게 큰 집안에 가난이 엿보인다. 무조건 이씨 마마에게 큰절부터 올리고 방 가운데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동안 이씨 마마를 위로하기 위해 80객 노부인 2,3명이 소복을 하고 찾아왔다가 돌아갔지만 이분들이 누군지는 알 길이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운현궁 이씨마마는 당신에게 출입하는 사람이나 친구의 이름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싫어하신다고 한다. -마마, 기념으로 사진 한 장만… 『이제껏 내 사진을 밖에 찍어 내보낸 일이 없소. 안 찍겠소』 -그러나 이왕가 에서는 어제 마지막 전하까지 가셨습니다. 마마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한 장만… 『내 늙은 얼굴을 찍고 싶지 않소』 그러나 대원군의 맏며느리이며 고종황제의 형수가 되는 이씨 마마가 「70년대 서울」의 공기를 오늘날까지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모로 따지든 「기록」이 될만 하다고 몇 번이나 간청했다. 뒷날을 위해서 당신의 모습을 한번만 「카메라」에 담자고 해도 거절. 나중에는 조카 며느리와 죽기전에 기념사진 한 장 찍어둔다는 전제밑에 반승낙을 한다. (이 때 모시고 있던 부인들이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이씨마마에게 귀띔했지만) 이씨마마는 영친왕의 죽음, 자신의 앞일등 알 수 없는 노후를 생각했음인지 심경변화를 일으켜 「사진만 찍는다」 고 일어나 앉아 머리에 빗질을하고 나더니 하얀 광목저고리를 위에 입는다. 「플래시」를 눌러 사진을 찍었다. -요즘 무슨 음식을 즐겨 잡수십니까? 『미음』 한마디 하고서는 다시 요 위에 몸을 뉘며 『기사는 절대 쓰지말라』고 입을 봉해 버린다. -대원군이 살아 계셨을 때 운현궁에 시집을 오셨죠? 『……』 -요즘 나도는 시아버님 대원군의 모습이나 민비(閔妃)의 모습은 틀린 데라도 혹시 없읍니까? 『……』 묻는 기자를 물끄러미 누워서 쳐다볼 뿐 모두들 묵묵부답(黙黙不答). -저희들이 누군줄 아십니까? 『처음보는 얼굴들인걸』 -영친왕 이은 전하를 마마가 처음 보신 것은? 『여섯살 때 내가 무릎 위에 안고 있었소』 -오늘의 느낌은? 『만사가 귀찮소!』 벌써 이동안에 기자(記者) 잠입을 눈치채고 바깥채에 누가 연락했는지 방안으로 불쑥 들어와 「카메라」를 노려 보는 사랑채 남자일꾼(?)은 사뭇 시빗조다. 『누구냐?』 『무슨일로 여기까지 들어왔냐?』 잠입 불과 7분. 할수없이 뜰안으로 이씨 마마에게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뛰어 나왔다. 이렇게 운현궁을 비롯한 왕족 주변이 미묘하게 「차가운」데는 몇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의친왕(議親王) 이강(李剛)공의 아들간에는 무슨 일에선지 「차가움」이 감돌고 운현궁 쪽에서는 억대가 넘는 재산관리를 놓고 왕족간에 뒷공론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영휘원(永徽園)의 엄비(嚴妃) 무덤에서는 몇 년째 시제(時祭) 한번 못올리고 있으며, 어느 고종황제의 손자는 방 한칸조차 없어서 사당(祀堂) 「시멘트」 바닥 위로 쫓겨나서 잠을 자고 있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날아가는 새를 쳐다보기만 해도 죽지를 떨었다는 운현궁의 10년세도. 오늘날은 방한칸 없이 내쫓겨 비운의 몰락을 울고 있는 왕족들. 마마 이씨의 심정은 지금 어떨까? 산하(山河)가 함께 울 만한 슬픔이, 이야기가, 목격담이, 이면사(裏面史)가 이뤄진 뜰안에 살면서도 입을 열지 않으니 어쩌랴.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 정동열 前의전수석비서관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을 40여년간 보좌했던 정동열 전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이 지난달 30일 지병인 다발성 골수종양으로 별세했다.74세. 정 전 비서관은 최 전 대통령이 1960년대 중반 주 말레이시아 대사로 있을 때 발탁, 최 전 대통령이 외무장관을 맡던 1967∼1971년에 외무장관 비서관을 지냈다. 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있을 때(1979∼1980년) 대통령 의전수석을 각각 역임했다. 족으로 송록규(73) 여사와 딸 유진(36)씨가 있다. 빈소는 혜화동 서울대병원. 발인은 3일 오전 7시.(02)2072-2027.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부고] ‘12·12 저항’ 김진기 前 육군 헌병감 별세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당시 신군부에 저항하다 강제 예편된 전 육군본부 김진기(예비역 준장) 헌병감이 지난 2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4세. 신군부는 1979년 12월12일 밤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불법연행에 따른 저항을 막기 위해 고인과 정병주 당시 특전사령관,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서울 연희동의 한 요정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정 전 총장의 연행사실이 연회 도중 알려지면서 신군부에 저항했던 고인 등은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이듬해인 1980년 강제 예편됐다. 고인은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1979년 10월27일 새벽 국방부에서 체포하기도 했다.1949년 평양제일고를 졸업한 고인은 육군 헌병대대장, 육군본부 헌병감실 차감, 국방부 조사대장 등을 역임했으며 예편 후에는 한국토지공사 이사장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010-2221-8404), 유족으로는 부인 김신자 여사와 1남 2녀. 발인은 30일 오전 9시, 장지는 국립 대전현충원이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문정식 前 축구협회 부회장

    1950∼60년대 국가대표를 지낸 문정식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25일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대한중석, 제일모직 선수로 대표팀에서 뛴 문 전 부회장은 1960년 아시안컵축구대회 우승 당시 멤버였고 76년과 84년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96년 일본 오이타 감독,97년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에 이어 2004년까지 축구협회 부회장을 맡아 헌신해 왔다.1990년대 초반에는 초창기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유족은 배혜석(70) 여사와 1남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11시.02)3010-2294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儒林(757)-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 (14)

    儒林(757)-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 (14)

    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 (14) 지팡이를 짚고 마당을 거닐고 있다가 자공을 보자 ‘어째서 이토록 늦게 왔느냐.’고 하소연하는 공자의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다. 사랑하는 아들과 두 제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깊은 병에 들어있는 독거노인으로서의 공자의 고독을 처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장면인 것이다. 이때 공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태산이 무너지는도다. 철주는 부러지는도다. 철인이 시들려는도다. (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 많은 학자들은 공자의 마지막 임종게가 공자가 스스로를 철인(哲人)이라고 표현할 리가 없으므로 후대의 가필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공자가 노래를 끝마치고 나서 자공에게 말하였던 내용을 보면 공자가 설혹 자신을 태산과 철주, 그리고 철인으로 비유하였다 하더라도 교만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사기에는 공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유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하에는 오랫동안 도(道)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나를 종주(宗主)로 떠받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하(夏)에서는 유해를 입관하면 동쪽 계단 위에 두고, 주(周)에서는 서쪽 계단 위에 두고, 은(殷)에서는 당상(堂上)의 동서 두 기둥 사이에 두는데, 어젯밤 꿈에 보니 내가 동서 두 기둥 사이에 놓여 있고, 공물(供物)이 그 앞에 갖추어져 있었다. 나의 조상은 은나라 사람이다.” 자신의 조상이 은나라 사람이므로 은나라의 장례법대로 동서 두 기둥 사이에 유해가 안치될 것이라는 공자의 유언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며, 마침내 동서 두 기둥 사이에 묻힐 것임을 예언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사기는 간략하게 공자의 죽음을 전하고 있다. “···그로부터 이레 뒤에 공자는 죽었다. 나이는 72세로 노의 애공 16년 4월 기축일(己丑日)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짤막한 사기의 기록과는 달리 예기 ‘단궁(檀弓)’ 상편에는 죽음을 맞은 공자의 모습을 보다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공자의 마지막 노래를 들은 후 자공은 슬픔에 젖어 종종걸음으로 공자의 방으로 들어가며 말한다.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들은 앞으로 무엇을 우러를 것이며, 철주가 부러지고, 철인이 시들어버린다면 우리는 한편으로 무엇을 의지해야하는 것입니까.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병이 깊어 마음이 약해지신 모양입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말하였다. “사야, 오는 것이 어찌 그리 더디냐. 옛날 하나라 사람들은 동쪽 섬돌 위에 빈소를 차렸는데, 이는 마치 죽은 이가 손님을 대하는 주인노릇을 하려는 것이었다. 은나라 사람들은 양편 기둥에 빈소를 마련했으니 손님과 주인사이에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주나라 사람들은 서쪽 섬돌 위에 빈소를 만들었으니, 이는 마치 죽은 이가 손님으로 있듯이 하려는 것이었다.”
  • 궁중음식 무형문화재 황혜성씨 별세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인 조선왕조 궁중음식 명예보유자인 황혜성 선생이 14일 낮 12시30분쯤 노환으로 별세했다.86세. 1920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부터 30년간 조선왕조의 마지막 주방상궁인 한희순 선생으로부터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은 뒤 궁중음식 연구와 전승에 힘써 왔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조선왕조궁중음식 보유자, 올해 8월 조선왕조궁중음식 명예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숙명여대, 서울대, 명지대, 한양대, 성균관대 등에서 후진 양성에도 애썼다. 장녀 한복려(59·궁중음식연구원장)씨와 차녀 복선(57·한복선식문화연구원장)씨도 요리연구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장남 용규(48·지화자 대표)씨와 3녀 복진(54·전주대 문화관광대학장)씨도 관련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이조 궁정요리 통고’ ‘궁중음식’ ‘생활요리’ ‘한국의 미각’ 등을 남겼다. 국민훈장 목련장,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지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선영이다. 발인 16일 오전 6시. (02)3410-6915.
  • 대안교육가 채규철씨 별세

    사회복지운동과 대안교육에 평생을 헌신한 채규철 ‘두밀리 자연학교’ 교장이 지난 13일 오전 1시45분쯤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69세.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1년 장기려 박사와 함께 국내 의료보험운동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청십자 의료협동조합’을 설립했고 ‘사랑의 장기기증본부’ 창립이사로 참가했다.1986년부터는 대안학교인 ‘두밀리 자연학교’ 교장을 지냈다. 고인은 1968년 10월 자동차 사고로 얼굴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ET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장애인 복지운동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정희(56)씨와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6일 오전.(02)3010-2265.
  • 태양금속공업 한은영 명예회장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을 이끌어온 한은영 태양금속공업 명예회장이 1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91세. 평북 영변 출신인 고인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현 태양금속공업의 전신인 태양자전거기업사를 설립했다.자전거부품으로 시작한 태양금속은 현재 자동차용 고장력볼트 등을 생산하는 냉간종합단조생산업체로 성장했다. 고인은 모든 종업원과 그 가족은 회사의 가족이라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상생경영을 실천했다.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전에 직원 의료비를 지원했다. 유족으로는 애삼(태양테크 회장), 우삼(태양금속공업 회장), 달삼(한국골프장경영협회장), 정삼(현양 회장), 미영(여성발명가협회 회장)씨 등 4남 1녀가 있다.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이며 발인은 14일 오전 7시30분 서초성당.(02)3010-2631.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故김형칠선수 눈물의 귀국

    |도하(카타르) 임일영특파원·서울 이재훈기자| 도하아시안게임 승마 부문에 출전했다 불의의 낙마사고로 숨진 김형칠(47) 선수가 10일 오후 7시50분쯤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02-3010-2295)에 안치됐다. 태극기에 씌워진 김 선수의 갈색 관이 빈소에 들어가자 김 선수의 어머니 마정례(74)씨는 고인의 영정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마씨는 “사고장면을 TV로 수차례 봤는데 비통하고 슬픈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국립묘지에 안장돼 명예가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망인 소원미(41)씨, 딸 민지(11)양과 아들 민섭(10)군 등은 믿기지 않는 듯 울먹이다 소씨는 결국 탈진해 쓰러졌다. 삼성전자승마단, 마사회 후배 선수 등 70여명의 조문객이 승마복을 입고 고인의 영정을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인천공항에서부터 고인을 운구해온 김 선수의 형 성칠씨는 “무엇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의미도 잘 모르는 어린 조카 아이들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 선수의 충북승마협회 후배 이재문(29)씨는 “항상 열심히 하던 분이며, 승마인들에게는 별과 같은 존재였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선수의 시신은 이날 오후 6시쯤 카타르항공편을 통해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장례식은 오는 14일 대한올림픽위원회장으로 치러진다. 앞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도하 선수촌에 설치된 임시 분향소에서 정현숙 선수단장과 안덕기 대한승마협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제사를 올렸으며, 하마드 종합병원에서 입관절차를 가진 뒤 고인의 시신을 고국으로 떠나보냈다. 개회식 성화 점화자였던 카타르 승마선수단 주장 셰이크 모하메드 알 타니(18) 왕자는 공항 귀빈실에서 유족을 직접 배웅했다. 선수촌 국제지역엔 도하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말을 탄 기수 형상의 대형 깃발에 ‘김형칠씨,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Hyung Chil KIM in memory)’라고 새겨 놓았다. 카타르는 셰이크 아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국왕의 지시에 따라 사고가 난 크로스컨트리 코스 8번 장애물 지점에 추모비를 세울 예정이다.argus@seoul.co.kr
  • 이회삼 유니온회장 타계

    ‘마지막 개성상인’으로도 불리는 이회림 옛 동양화학 창업주의 동생인 이회삼 유니온 회장이 9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87세. 고인은 지금의 동양제철화학 전신인 동양화학을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특히 1976년 계열사인 유니온 사장에 오른 데 이어 1991년부터 이 회사 회장직을 맡아 왔다. 유니온은 백시멘트(하얀색 시멘트)를 생산하는 업체다. 유족으로는 아들인 이건영 유니온 대표이사 사장 등 6남매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 발인은 13일 오전 8시.(02)2072-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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