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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김주열 사진’ 특종 허종씨 별세

    자유당 독재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숨진 채 발견된 김주열(당시 17세)군의 사진을 처음으로 보도했던 전 부산일보 기자 허종씨가 22일 오전 6시쯤 별세했다.85세. 고인은 부산일보 마산주재 기자로 1960년 4월11일 마산시 중앙부두 앞 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숨진 채 떠오른 김주열군의 사진을 찍어 다음날 신문에 보도함으로써 4·19혁명의 결정적 계기를 만든 언론인이다. 이 사진은 국내만이 아니라 외국 통신사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됐다. 고인은 마산문화방송 보도부장, 마산시사 편찬위원 등을 역임했고 제1회 마산시민상을 수상했다.빈소는 마산시 자산동 마산의료원 신관 1호실이며, 발인은 24일 오전 8시.(055)249-1400.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고] ‘진보당 사건’ 최후 생존자 정태영씨

    ‘진보당 조봉암 사건’의 마지막 생존자인 정태영씨가 지난 2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7세. 193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그는 26살에 독립운동가 죽산 조봉암을 만나 진보당에 가입했다.진보당에서 청년 조직 확대를 담당했던 그는 1958년 1월 ‘북한에서 교육받은 당 이론가’로 몰려 국가변란 혐의로 조봉암 등과 함께 전격 체포됐다.3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출소한 그는 4·19 직후 혁신계 및 3선 개헌 반대특위 등에 참여하는 등 평생 진보정당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고려대 정책과학대학원과 건국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고인의 저서로는 ‘조봉암과 진보당’(1991),‘한국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역사적 기원’(2006)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4일 오전 8시다.(02)590-2538.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부고] 강길수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강길수(康吉秀) 서울대 명예교수가 21일 오전 9시 숙환으로 별세했다.87세. 교육행정학자인 고인은 연세대와 서울대에서 교수를 지냈고 한국교육행정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11대,13대 국회의원을 지낸 부인 이윤자(전국주부교실중앙회장)씨와 딸 용진·용선·용미씨, 사위 김원정(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교수)·이상일(한양금속 대표)씨가 있다. 장례는 한국교육행정학회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다.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례미사는 오전 9시 서울 청담동 성당에서 열린다. 장지는 천안 공원묘지(02)3010-22 92.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부고] 김룡연 北 인민군 차수 사망

    북한 혁명 1세대인 김룡연 인민군 차수가 92세로 사망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일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차수는 김일성 항일 유격대에서 연락병으로 활동했고 북한정권 수립후에는 1992년 군 대장에 이어 1998년 차수에 올랐다. 또 1967년 제4기부터 2003년 제11기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2006년 90돌 생일상을 보내는 등 혁명원로로 예우했다. 김 차수의 사망 일자와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정일수 선생 별세

    일본제국 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중국에서 광복군 등으로 활동했던 애국지사 정일수(鄭一洙) 선생이 19일 오후 6시30분 대구보훈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4세. 정 선생은 1924년 대구에서 태어나 1944년 광복군 제1지대 제1지구대에 입대해 독립운동을 했다. 정 선생은 1945년 한·미 합동 기갑반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 충칭(重慶)에 도착, 대기 중 광복을 맞았다. 정부는 정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대통령표창을,1990년 건국훈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덕순(82)씨와 1남3녀가 있다. 빈소는 경북대학병원 영안실(053)420-6141. 발인은 21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부고]암투병에도 끝까지 강단 지킨 고려대 송석헌교수

    [부고]암투병에도 끝까지 강단 지킨 고려대 송석헌교수

    간암 진단을 받고도 끝까지 강단을 지킨 고려대 통계학과 송석헌 교수가 15일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46세. 1985년 고려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송 교수는 독일 도르트문트대에서 통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1995년 덕성여대 조교수로 처음 강단에 오른 뒤 2002년부터 모교인 고려대에서 제자 양성에 힘써 왔다. 송 교수는 불과 13년 남짓한 교수 경력 동안 선형모델, 패널회귀모형, 금융 통계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에 무려 60여편의 학술논문을 게재하는 등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여 대표적인 소장 통계학자로 인정받았다. 간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송 교수에게 전해진 것은 2학기 강의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던 지난해 10월 중순쯤. 당시 건강검진 결과 ‘앞으로 4개월 가량 남았다.’는 간암 말기 진단이 내려졌으나 송 교수는 시한부 투병 생활에도 강의를 포기하지 않고 남은 2개월 동안 강단에 올라 생애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미영씨와 두 아들 진우·재우군이 있으며 빈소는 고려대 안암의료원 영안실 30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02)921-2899. 김정은기자 jekim@seoul.co.kr
  • [부고]동성제약 창업주 이선규 회장 별세

    [부고]동성제약 창업주 이선규 회장 별세

    염색약 훼미닌과 정장소화제인 정로환으로 유명한 동성제약의 창업주인 송음(松陰) 이선규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4세. 일제시대 궁부약국 직원으로 의약품과 인연을 맺은 고(故) 이 회장은 지난 1957년 동성제약을 창업했다.1960년대 패션염모제 훼미닌을 개발해 동성제약을 헤어컬러 업체로 성장시켰다.1972년에는 대표 배탈·설사약으로 자리잡은 정로환을 국내에 처음으로 보급했다. 동성제약은 고 이 회장의 장례를 회사장으로 치른다.19일 오전 10시30분 충남 아산공장에서 영결식을 가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남복희씨와 3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5시.(02)3010-2230.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하늘에서라도 맘껏 노래하렴”

    “하늘에서라도 맘껏 노래하렴”

    “혜진아, 하늘나라에서라도 맘껏 노래 부르렴.” 실종된 지 70여일만에 암매장된 채 주검으로 돌아온 이혜진(10)양의 영결식이 17일 오전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모교인 경기 안양시 명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900여명의 전교생이 참여해 행사 내내 분위기는 숙연했다. 이윤형 교장은 추모사에서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던 혜진이가 이제 우리 곁을 영영 떠나기 위해 학교로 돌아왔다.”며 “어린이들에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어른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 대표인 혜진이의 단짝 친구 조미주양은 “너와 함께 뛰놀던 공원, 교실, 운동장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교실에는 아직도 네 사진이 그대로 있는데…. 너만 없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노래를 좋아해 가수가 꿈이던 혜진아. 부디 하늘나라에서라도 맘껏 노래부르며 행복하게 지내.”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혜진이 영정을 들고 영결식에 참석한 가족들은 반 친구들의 헌화와 묵념이 이어지자 슬픔이 북받치는 듯 서럽게 울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작업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수염이 자란 모습으로 참석한 혜진이 아버지는 혜진이 동생인 둘째 딸의 손을 꼭 잡은 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통곡과 실신을 반복하면서도 동생의 빈소를 지켰던 혜경양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이제 범인 잡혔다니까 부디 편히 갔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영결식에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우예슬(8)양의 친구들도 참석,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가족들은 영정을 들고 혜진이가 실종되기 전까지 공부했던 4학년 3반 교실과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새로 배정했던 5학년 3반 교실을 들렀다. 영결식을 마친 이 양의 시신은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한 뒤 안양시립 청계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안양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이제 편히 떠날 수 있겠구나”

    “아이고 아이고 혜진아, 널 이렇게 만든 놈이 붙잡혔단다.” 16일 밤 안양 초등학생 실종·피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에 경기 안양 메트로병원에 차려진 이혜진(10)양의 빈소에서는 울분과 통곡이 이어졌다. 온종일 정신을 놓다시피 한 이양의 어머니 이달순(41)씨는 용의자가 검거됐다는 소식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가슴을 치다가 끝내 딸의 영정을 끌어앉고 쓰러졌다. 이씨는 딸의 영정을 붙들고 “아이고, 혜진아…. 미안하다, 미안해. 이 엄마가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라며 쉰 목소리로 딸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그는 “범인이 붙잡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우리 딸은 살아 돌아올 수 없는데, 이제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라고 울부짖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막내딸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려 애쓰던 아버지 이창근(46)씨도 “내가 이 파렴치하고 악마 같은 놈의 면상 좀 직접 봐야겠다.”며 그동안 참았던 울분을 터뜨렸다. 빈소를 함께 지키던 조문객들은 “혜진이가 하늘에서 도운 듯하다.”며 “이제 혜진이를 편히 하늘나라로 떠나보낼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또 용의자가 이웃에 살던 사람이라는 얘기에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면서 “예슬이만이라도 꼭 살아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이양과 함께 실종된 우예슬(9)양의 어머니 윤희란(35)씨는 주위 사람들을 붙잡고 “예슬이, 예슬이는 어디 있나. 꼭 살아 있어야 하는데. 예슬아”라고 울부짖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윤씨는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그저 우리 예슬이만 살아 있으면….”이라며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안양 김병철·서울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부고] 이해성 한양대 명예총장 별세

    한양대학교 제7대 총장을 지낸 이해성 교수가 1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80세. 고인은 1957년 한양대학교 공대 건축과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공대학장,1989년 한양대 총장을 거쳐 명예총장으로 재직해왔다. 한국건축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서울특별시 남산 시립도서관’,‘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등의 건축물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옥선씨와 아들 이상훈(영국 유학중)씨. 빈소는 한양대 병원 영안실 8호실, 발인 15일 오전 9시.(02)2290-9442.
  • 시간강사들의 ‘감춰진 죽음’

    시간강사들의 ‘감춰진 죽음’

    국내 대학의 부당한 대우에 좌절해 미국에서 유서를 남기고 숨진 여성 강사 한경선(44)씨 이외에도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간강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학들이 쉬쉬하기 때문에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씨의 사망 보도(서울신문 3월7일자 10면)가 나가자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빈소가 차려지는 등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한달 12시간 수업에 고작 37만원” 7일 한국비정규교수노조에 따르면 2003년부터 서울대에서는 3명의 시간강사가 숨졌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한 명의 죽음뿐이다. 김동애 교수노조 교원법적지원쟁취 특위위원장은 “2006년 독문과 강사가 자살했고, 지난달에는 불문과 강사가 학내 화장실에서 자살했지만 대학 측은 쉬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는 “학과 내에서 얘기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로 합의했다. 숨진 강사의 부모들도 원했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경우 전임교원은 1751명, 계약직 강사는 1330명에 이른다. 동료강사들도 계약해지의 공포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씨가 근무했던 충북 충주의 K대학 관계자는 한씨의 사망 원인을 심장마비라고 단정했다. 그는 “가족들도 심장마비라고 말했다.”면서 “지난달 작성한 사표가 연구실에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지가 미국 경찰과 한인회, 유족 등을 취재한 결과 자살이 거의 확실했다. 시간강사들은 “도대체 몇명이나 더 죽어야 교원으로 인정해 주겠냐.”고 울부짖었다. ●강사 교원 인정법안 이번 회기 지나면 자동폐기 비정규교수노조는 국회 앞에서 138일째 ‘교원지위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촉구하며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통합민주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이 각각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자동폐기될 판이다.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각 대학에서 시간강사의 수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30∼50%에 이르지만 이들의 인건비는 교직원 전체 인건비의 3∼10%에 불과했다. 서울 S대에 근무하는 강사 심모씨는 “한 달에 12시간 수업하고 37만원을 받는다.4대보험은 당연히 꿈도 못 꾼다.”면서 “조교에게 전화오면 그 학기에 수업이 있고, 안 오면 없는 것이어서 학기 초가 무섭다.”고 말했다. 서울 W대의 강사 황모씨도 “외국박사와 한국박사 구분 없이 연봉은 1500만원 선이다.”면서 “강사를 오래 하면 경력을 인정받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다고 치부돼 교수임용에 불리하다.”고 전했다. ●15일 미국 현지에서 추모제 한편 비정규교수노조는 이날 국회 앞과 각 대학에 빈소를 차렸다. 미국 텍사스 현지 교민들은 오는 15일 추모제를 치르기로 했다. 한씨가 유서에서 부당하게 강사 계약을 해지당했다고 언급한 동료 임모(44)씨는 당시의 힘든 상황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본지에 보내왔다. 임씨의 편지에는 한씨와 함께했던 힘들었던 1년간의 기록이 적혀 있다. 임씨에 따르면 K대에 2006년 생긴 강의전담교수는 말 그대로 수업만 하는 강사다. 학교 측에서는 연구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강사의 입장에서는 연구할 시간을 허락받지 못하는 셈이다. 임씨는 “한씨와 내가 교수 2명으로부터 모독을 당했지만 재계약권한을 가진 교수라서 항의조차 못했다.”고 전했다. 이경주 서재희 김정은기자 kdlrudwn@seoul.co.kr
  • [부고] 한환진 전 대법관 별세

    [부고] 한환진 전 대법관 별세

    한환진 전 대법관이 5일 새벽 순천향대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92세. 한 전 대법관은 1941년 일본 교토대를 졸업하고 1942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1945년 평양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지법, 서울고법 판사 등을 거쳐 1955년 대법관 직무대리,1960년 대법원 판사를 지낸 뒤 1961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1973∼1981년 다시 대법원 판사를 역임했고, 이후 한양합동법률사무소, 법무법인 광화문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했으며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청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선호(순천향대 의대교수)·창호(압구정 Y&B의원 의사)씨와 딸 인숙·명숙·옥숙씨가 있고, 사위로는 박의철(로얄관광 회장)·양승우(안진회계법인 대표)·김시현(NYU 의대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리 시안공원이다.(02)798-1421.
  • [부고] 원로 국악인 성경린옹 별세

    [부고] 원로 국악인 성경린옹 별세

    원로 국악인이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관재(寬齋) 성경린(成慶麟)씨가 5일 오후 경기도 분당 보바스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97세. 국립국악원장(1961년)을 지냈고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지휘 보유자로 지정된 고인은 1986년부터 현재까지 국립국악원 사범으로 재직했다.1911년생인 고인은 1931년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를 졸업해 아악부원 아악수와 아악수장, 아악사를 지냈으며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국악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국악계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예능 보유자로 ‘조선시대 마지막 무동’으로 불렸던 심소(心韶) 김천흥(金千興ㆍ1909∼2007)과 고인을 궁중음악 보존이라는 한길을 걸어온 큰 어른으로 여겨왔다. 고인은 2000년 국악진흥 발전에 공이 큰 후학들을 위해 1억 700만원을 ‘관재 국악상’ 기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고인은 서울시 문화상(1960)과 대한민국 문화포상(1963), 대한민국예술원상(1968), 대한민국 모란장(1972), 은관문화훈장(1990), 방일영 국악상(1998)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조선음악 독본´ ‘조선의 아악´ ‘한국의 무용´ ‘한국음악논고´ 등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아들 탁연(미국 거주), 딸 정희(주부)씨 등 3남4녀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3호실. 발인은 7일 오전 10시.(031)787-1503.
  • 수원, 정원형태 자연장(葬) 조성

    경기 수원시는 4일 영통구 하동 수원연화장 내 유택동산 6300㎡에 3만위 정도의 자연장(自然葬)을 할 수 있는 정원 형태의 자연장지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연장은 화장한 유분을 수목이나 화초, 잔디 주변이나 밑에 묻어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장묘방식이다. 이달 말 착공해 오는 5월 완공할 예정인 자연장지에는 잔디장, 연못장, 산골장 등 세 가지 방식의 유분(遺粉) 안장공간과 정자, 분수, 산책로, 물레방아, 어울림마당 등 추모객들을 위한 편의공간이 들어선다. 사업비는 국·도비와 시비 4억원이 투입된다.자연장지에는 비석이나 표지석 같은 개별적인 표시를 할 수 없으며 추모의식은 추모광장이나 추모대를 공동으로 이용해야 한다. 2001년 1월 개장한 수원시 연화장은 5만 6612㎡ 부지에 승화장(화장로 9기), 장례식장(빈소 14실), 추모의 집(납골당 3만위), 유택동산(산골장) 등 종합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현대식 시설과 주민 공동경영 등을 통해 모범적으로 운영되면서 연간 1000여명이 견학을 다녀간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부고] ‘노장사상의 대가’ 동양철학자 김충렬 교수 별세

    동양철학의 원로 학자인 김충렬 고려대 명예교수가 4일 오후 별세했다.77세.김 교수는 국립타이완대학 철학과를 나와 중국문화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문화대학과 경북대, 계명대, 고려대, 연세대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중국철학회와 동양철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화랑무공훈장과 문화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노장 사상에 심취해 만학으로 박사 학위를 마친 그는 국내 동양철학계의 석학으로 불리며 한국의 노장철학을 중국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후학 양성에도 힘을 써 그의 가르침을 받은 국내외 교수가 50여명에 이른다. 도올 김용옥을 동양철학으로 인도한 학문적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87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자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며 관철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선언해 주변을 놀라게 한 일로도 유명하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은 7일 오전 8시, 장지는 강원도 문막 선영.(02)927-4404.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부고] 임항준 전 대법관 별세

    [부고] 임항준 전 대법관 별세

    임항준 전 대법관이 지난달 29일 새벽 캐나다 토론토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9세. 임 전 대법관은 1943년 경성법학전문학원을 졸업하고 48년 사법요원양성소를 수료한 뒤 대전심리원 심판관을 시작으로 전주지법원장, 대구지법원장 겸 경북선관위원장, 서울형사지법원장, 대구고법원장 등을 거쳐 73∼80년 대법원 판사를 지냈다. 고인은 81년부터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해 활동했으며,5∼6년 전 아들이 사는 캐나다로 건너갔다. 유족은 아들 지호(개인사업)씨와 딸 지영·선영·선희·은경씨, 사위 김헌무 변호사(전 수원지법원장), 조덕규 전 건설공제조합 이사장, 장유호 일본 게이오대 의대교수, 박만 변호사(전 수원지검 성남지청장)가 있다. 빈소는 캐나다 토론토에 마련됐으며 발인 예배는 4일 오전 10시 토론토 영락교회에서 열린다.(02)537-5656.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부고] 엄기표 전 의원 별세

    [부고] 엄기표 전 의원 별세

    제8대 국회의원을 지낸 엄기표 전 의원이 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85세.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엄 전 의원은 국정교과서 상무를 거쳐 1971년 제 8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경남 하동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화랑무공·충무·광복 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엄욱진 울산방송 편성팀장 등 2남3녀. 발인은 4일 오전 11시. 빈소는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02)3410-6903.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부고] ‘마지막 제헌의원’ 김인식옹

    유일한 생존 제헌국회의원이던 김인식옹이 지난 2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95세. 고인은 16세 때인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해주고보에서 퇴학을 당하고, 중국의 고교 과정을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45년 광복 이후 고향인 해주가 공산당 치하로 들어가자 남하해 대동청년단 서북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1948년 제헌 국회의원 당선 후에는 친일파 숙청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국가보안법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1990년대에는 대한민국건국회 회장, 이북 출신 국회의원회 회장,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동지회 회장 등을 지냈다. 매년 제헌절 행사 때마다 기념사 낭독을 도맡았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영결식은 28일 오전 10시 국회헌정기념관 대강당.(02)2072-2022.
  • [부고]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 별세

    [부고]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 별세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이 25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74세. 김 전 회장은 2006년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식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오던 중 병이 악화돼 지난해 12월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김 전 회장은 동아일보 창업자 인촌 김성수 선생의 손자로 중앙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30여년간 신문 경영 일선에서 언론 창달에 이바지해왔다. 동아일보에 입사한 뒤 광고, 판매, 총무국 등 여러 부서에서 근무했으며 85년 부사장으로 승진해 87년 발행인을 맡았다. 이어 89년 사장,93년 회장,2001년 명예회장에 취임했다. 한국신문협회 회장, 한국디지털교육재단 이사장, 일민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99년부터 2005년까지는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을 맡았다.91년에는 교육·문화·언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고인은 김대중 정권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 2001년 1월 명예회장직과 이사직 등 동아일보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 차남 김재열 제일모직 상무, 장녀 김희령 일민미술관 실장 등 2남1녀가 있다. 이한동 전 총리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사돈이다. 빈소가 마련된 고려대 안암병원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심대평 대표, 이한동·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다녀갔다. 영결식 및 발인은 28일 오전 9시 자신의 호 화정(化汀)을 딴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다.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선영.(02)921-2899.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정해안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정해안 선생 별세

    애국지사 정해안 선생이 25일 오전 1시 충남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 자택에서 별세했다.85세. 금산 출신인 고인은 1940년 항일결사조직 ‘시장친우계’를 조직해 항일 투쟁을 벌였다. 대통령표창,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이정자씨와 3남4녀. 빈소는 금산읍 백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041)751-2099.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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