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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이필선 전 의원 별세

    이필선 전 국회의원이 19일 오전 8시6분 지병으로 별세했다.81세. 광주 출신의 고인은 5,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신민당 최고위원, 자민련 부총재,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희 여사와 아들 석우·석현, 딸 승신·승은·지은씨 등 2남3녀. 빈소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 21일 오전 7시.(032)787-1512.
  • [주말탐방] 미술관을 움직이는 ‘그녀’들…오해와 진실

    [주말탐방] 미술관을 움직이는 ‘그녀’들…오해와 진실

    대한민국에서 ‘오해’와 ‘진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직업 하나를 꼽아보자. 힌트. 누가 뭐래도 그들은 ‘미술관의 꽃’이다. 어지간히 눈치없는 사람도 이쯤하면 무릎을 치겠다. 그들의 이름인 즉 큐레이터(curator)이다. 큐레이터가 전시장의 마스코트라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까만 정장 차림으로 우아하게 눈인사를 보내오는 그들의 자태는 오가는 관람객들에겐 더러 ‘로망’으로 꽂힌다. 덮어놓고 환상부터 불러일으키는 주체란 대목에서 많은 이들에게 ‘미술’과 ‘큐레이터’는 동의어로 다가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해가 많다. 무엇보다 그들 세계의 실상은 화려한 이미지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사실! 여차하면 (미술관)벽에 못질까지 해야 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밥먹듯 밤샘… 기획력 못지않게 체력도 갖춰야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박윤정씨. 지난 17일 ‘프랑스 디자인의 오늘’전을 개막하기까지 근 열흘동안 그는 거의 초주검 상태로 살았다. 전시가 개막되고서도 며칠동안은 연일 야근을 했으니 제시간에 끼니를 챙겨먹는 건 사치. 이번 전시를 오픈하기까지는 첫 기획에서부터 꼬박 1년이 걸렸다. 전시에 참여한 프랑스 대표 디자이너 4인을 섭외하고 그들의 어떤 작품을 들여와야 하는지 선정하는 등의 업무가 모두 그의 책임 아래 진행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전시가 임박하면 밥먹듯 밤샘작업을 해야 하고, 급할 땐 벽에 못도 박아야 한다는 말이 빈소리가 아니다.”는 그는 “큐레이터가 기획력 못지 않게 갖춰야 할 덕목이 체력”이라고 말했다. 소소하게 오프닝 손님맞이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까지 그의 몫일 때가 많다. 작품의 위치를 일일이 정하는 건 물론이고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해 전시장의 조명과 온도, 습도까지도 신경써야 한다. 말 그대로 1인 10역.“백조 가면을 쓴 ‘노가다’”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큐레이터란 미술관과 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는 물론, 전시를 기획하는 전문인력을 일컫는다. 국공립미술관에서 이들은 ‘학예사’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바로 짚고 넘어가야 할 일반적인 오류. 작품판매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상업화랑에는 큐레이터가 없다. 미술관이 아닌 상업화랑에서 작품 및 전시를 관리하는 이들은 엄밀히 ‘갤러리스트’라고 구분해서 불러야 맞다. 지금의 국내 상황에서 큐레이터에게 주어진 업무는 딱히 선을 긋기가 어려울 만큼 잡다하다. 전시의 전체 얼개를 잡는 기획업무는 기본. 도록 만들기, 작가 섭외, 작품 선정,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거는지 전시장 세팅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떠맡아야 한다. ●미술관에는 큐레이터만 산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열에 아홉이 갖고 있는 ‘중대한’ 편견. 미술관에 큐레이터 말고 또 다른 명함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미술이 소수계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빠른 속도로 보통사람들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최근 몇년새 미술관 사람들의 업무영역도 발빠르게 다양화, 세분화하고 있는 추세”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말이다. 전시장을 움직이는 손은 알고보면 여럿이다. 우선, 에듀케이터. 전시의 교육적 기능을 전담하는, 미술관의 빼놓을 수 없는 전문인력이다. 전시의 전체 컨셉트를 잡아 기획하는 일이 큐레이터 몫이라면, 관람객들에게 전시 작품에 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짜는 역할몫은 에듀케이터에게 있다. 미술관을 움직이는 손은 또 있다. 관람객 편에서 보자면 누구보다 살뜰히 피부에 와닿는 도움을 주는 현장가이드.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동행하며 작품정보를 자세히 들려주는 주인공은 큐레이터가 아닌, 이름하여 ‘미술품 전문해설사’다. 이들이 국내 미술관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박선민 사무장은 “기존의 ‘도슨트’가 무보수 자원봉사 개념이어서 전문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립미술관들이 이들을 채용키로 했다.”면서 “일반 관람객들이 거부감없이 미술관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이들의 역할이 결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칭 미술팬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자리이기도 하다.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사업의 하나로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제도라는 사실.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하진 않으므로 은퇴 교사나 예술학을 전공한 미술애호가라면 미술관 채용정보를 꼬박꼬박 챙겨볼 필요가 있다. ●왜 ‘그녀’들만? 까만 정장이 유니폼? 그래도 물음표가 찍히는 몇가지. 미술관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째서 열에 아홉은 여자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홍익대 예술학과,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대구 가톨릭대 예술학과 등 큐레이터의 주요 산실들에 남자 예술학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큐레이터 하면 떠오르는 빼놓을 수 없는 이미지가 또 까만 정장이다. 정장, 그것도 검은 색을 챙겨입어야 하는 규칙은 물론 없다.“전시를 ‘문화 서비스’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다 무엇보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돋보이게 하려면 근무자의 복장이 튀지 않아야 하는 데 암묵적 동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세상을 통째로 미술에 감염시켜라” ‘갤러리 앤 더 시티’ 도시를 통째로 ‘미술관 블랙홀’ 속으로 풍덩 빠뜨리는 게 일상의 목표인 사람들.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는 세상을 미술에 감염(?)시키는 즐거움으로 사는 여자 넷이 날마다 뭉친다. 스물아홉 살 동갑내기인 황정인 수석 큐레이터와 우선미 큐레이터, 미술품 전문해설사 조영은씨. 그리고 한살아래인 에듀케이터 윤희은씨다. “전시 시작하기 보름 전쯤이면 몸이 열이라도 모자라요. 전시 인쇄물을 만들고, 편집 디자인도 최종 점검하고, 또 디스플레이할 작품도 들여와야 하거든요.” 황 큐레이터가 홍익대 예술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지금의 미술관에 들어온 건 2003년.‘큐레이터 밥’을 먹은 지는 햇수로 5년째다. 서울시립미술관 교양강의를 나갈 정도로 야무진 그는 “조금씩 변화하는 작가들의 세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는 즐거움, 잠재력 큰 무명작가들을 발굴해내는 재미가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최고 매력”이라며 웃는다. 미술관의 자체 전시를 기획하는 그와 호흡을 맞추는 건 동갑내기인 우선미 큐레이터. 미술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공부한 우씨는 외부 기관과 연계하는 공동전시 기획을 맡는다. 이처럼 사비나미술관은 국·공립 못지 않게 체계적 인력을 구성하고 있는 곳으로 몇손가락 안에 든다. 지난해 11월 국내 사립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미술품 전문 해설사를 채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전문해설사 1호가 된 조영은씨. 영국 버밍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디자인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술디자인 역사를 더 공부했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로 몇달 일하면서 일반 관람객들의 미술 궁금증을 현장에서 풀어주는 작업이 기대 이상으로 매력있었다.”는 그는 자원봉사 개념의 도슨트가 꾸준히 재교육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 내심 안타까웠다. 그런 차에 문제를 보완한 전문해설사를 뽑는다는 공고에 반색하며 지원서를 냈다. 하지만 현장의 그녀들 눈에 미술관으로 걸음한 관객들은 다 고울까. 솔직히 꼴불견도 있다. 국사 선생님이 되려 박물관 강좌를 듣다 미술관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는 에듀케이터 윤희은씨.“미술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방식으로 끌어내기 위해 영어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시장을 그저 영어학원쯤으로 인식하는 젊은 엄마들은 보기 딱하다.”고 털어놓는다. 예술의 향취를 발견하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술관을 아이의 체험학습장 삼는 부모들의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는 데 모두가 입을 모은다. 업무 영역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희망사항은 신기하게도 닮은꼴이다. 예산부족으로 지금의 미술관들이 엄두도 못내는 작업들을 10년쯤 뒤에는 꼭 해보는 거다.“지금으로선 큐레이터들에겐 전시 목록 말고는 남는 게 없어요. 땀흘려 기획한 전시를 국내용으로 그치지 않고 해외 교류전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국내 작가들과 작품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연구소도 운영했으면 좋겠고….” 황 큐레이터의 욕심이 끝날 것 같지가 않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황장연 선생 별세

    일제시대 항일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황장연 선생이 16일 오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5세.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경기공고를 졸업한 뒤 일본 육군 조병창에서 근무 중이던 1943년 3월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고려재건당을 조직하고 무기 공급 책임을 맡았다. 황 선생은 이듬해 일본 육군 조병창에서 무기를 밀반출해 상해 임시정부 연락원에게 인계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광복과 함께 석방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황인기 씨 등 2남 3녀가 있다. 빈소는 미국 LA 자택. 발인은 20일 오전 9시(현지시간).LA 글렌데일 공동묘지.
  • [부고] 김재일 동산불교대 이사장

    불교계 재가 포교단체 동산반야회를 창립한 김재일 동산불교대학 이사장이 18일 서울대병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60세. 김 이사장은 1982년 조계종 산하단체로 동산반야회를 창립한 뒤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불교회관을 설립, 일반인 대상의 불교 교리강좌를 열며 포교활동을 계속해 왔다.1992년 설립한 동산불교대학에 불교 미술, 불교 한문학, 다도학, 사찰음식 문화학 등 불교 교양과목을 개설해 5000여명이 이곳을 거쳐 갔다. 유족으로 부인 전연화씨와 아들 동선, 딸 수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일 오전 8시.(02)2072-2022.김성호 문화전문기자kimus@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이희남 선생 별세

    일제치하에서 철도학교 학생 신분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애국지사 이희남 선생이 16일 오전 별세했다.83세. 강원도 회양 출생인 이 선생은 서울 철도종업원양성소 전기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 1941년 7월 동료들과 항일독립투쟁을 모의하는 한편, 수십차례에 걸쳐 총독정치를 비판하는 등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이듬해 1월 서울 용산경찰서에 체포된 뒤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지난 1995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부인 김정숙 여사와 3남3녀. 빈소는 서울보훈병원 장례식장 5호. 발인은 18일 오전 7시30분,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02)478-0499.
  • [부고] 김채윤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한국 사회학계의 원로인 김채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16일 오전 6시 별세했다.77세. 경남 거창 출생인 고인은 40여년간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한국 사회계층 연구의 개척자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았다. 고인은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과 대학원장, 한국사회학회장을 지냈으며 퇴임 후에도 KBS 이사장과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병반씨와 김동준 충북대 교수, 김경인 한성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8일 오전 6시30분, 장지는 경남 거창군 거창읍 선영. (02)2072-2011.
  • [6·10 촛불집회] 박원석 대책회의 상황실장 동행기

    [6·10 촛불집회] 박원석 대책회의 상황실장 동행기

    연일 계속되는 촛불문화제 현장과 기자회견 화면 등을 통해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38) 공동상황실장. 촛불문화제가 이처럼 커지게 된 데는 그의 힘도 컸다. 지난달 6일 국민대책회의가 발족된 뒤 박 실장은 ‘한·미 쇠고기 수입 재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100만 촛불대행진’이 열린 10일 박 실장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오전 7시30분 ‘100만 촛불대행진’의 날이 밝았다. 매일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는 박 실장은 7시30분에 일어났다.3시간 남짓밖에 못 잤지만, 긴장한 탓인지 몸은 금세 졸음을 떨쳐냈다. 지난 9일 아침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이 끝난 9일 새벽, 그는 아침 6시에 라디오 인터뷰를 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5일부터 8일까지 한숨도 못 잤던 박 실장은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전화벨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다행히 다른 실무자가 인터뷰를 대신해 방송사고를 면했다. ●오전 9시 박 실장이 종로구 통인동 국민대책회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는 우선 행사 준비를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실무자들을 깨웠다. 자리에 앉은 지 5분이나 지났을까.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었다. 경찰이 광화문 주변을 컨테이너로 막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요즘 경찰이 청와대 지키느라 음주단속할 여력도 없다고 하던데, 국민들의 의사표현을 막으며 대낮부터 교통을 혼잡하게 하는 것은 과도한 국비낭비 아닙니까.” ●오전 11시50분 회의가 시작됐다. 국민대책회의는 기획팀, 자원봉사팀, 인터넷팀, 조직팀, 홍보팀, 그외 각 시민사회단체 실무자들로 구성돼 있다. 박 실장은 실무진 20여명과 언론 보도와 인터넷 여론을 체크했다. 주로 촛불집회와 국민대책회의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촛불대행진을 어떻게 꾸릴지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고루 들을 수 있도록 자유발언자 섭외를 놓고 심도 있게 토론했다. 의견대립이 생겨 회의 참석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의견조율은 박 실장의 몫이었다. 점심식사 시간에도 촛불문화제 얘기만 오갔다. ●오후 2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분신 자살한 이병렬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박 실장이 유족들에게 “모든 장례 절차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하자 유족들은 연신 “고맙다.”며 박 실장의 손을 꼭 잡았다. 박 실장의 눈시울이 젖었다. 오후 4시가 되자 박 실장은 광화문으로 향했다. 벌써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었다. ●오후 7시 드디어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박 실장은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무대에 올랐다. 구름처럼 모인 시민들의 끝이 안 보일 정도다.“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21년 전 6·10항쟁의 기운으로 오늘 기어이 정부의 재협상 발표를 끌어 냅시다.” 다양한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촛불은 강물로 흘렀고, 들불로 타올랐다. “국민들의 높은 민주의식과 열망을 느끼며 매일 감동했어요. 대학 졸업 후 계속 시민사회운동을 해 왔지만 시민의 잠재력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거든요. 민주주의의 큰 흐름을 다시 일궈낸 2008년 6월10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부고] 민주당 박홍수 사무총장 별세

    [부고] 민주당 박홍수 사무총장 별세

    심장마비로 쓰러져 중태에 빠졌던 박홍수 통합민주당 사무총장이 10일 오후 5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박 총장은 지난달 13일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쓰러진 뒤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동안 박 총장은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왔다. 이날 오후 심장이 멎어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협상 타결 직후부터 쓰러지기 직전까지 민주당 내 협상무효화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박 총장은 청문회 준비를 진두지휘하며 과로를 거듭해왔다. 그는 이번 쇠고기 협상을 놓고 “정부가 미국에 내준 것은 우리의 자존심”이라고 맹공을 폈었다. 장관 시절 자신의 부하들을 공격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고 주변은 분석했다. 지병이 악화된 시기도 지난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도하개발어젠다 협상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을 때 부터였다. 박 총장은 당시 급하게 귀국해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문제 등 농업시장 개방 협상 전면에 서며 격무에 시달렸다. 이후에도 경남 남해에 머무는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여의도 오피스텔에서 생활했다. 박 총장은 경상대를 졸업한 뒤 남해에서 마을 이장을 시작으로 농민운동에 투신해오다 한국농업인중앙회장과 농업신문사 사장 등을 지냈다.17대 국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를 지내다 지난 2005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농림부장관을 역임했다.16번째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결원이 생길 경우 1순위 국회의원 후보였지만, 끝내 18대 의정활동을 못하게 됐다. 민주당은 “박 총장이 지난 3월 당 사무총장에 임명된 이래 당의 재건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는 헌신적 활동을 해왔다.”면서 “주위의 우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당과 국민을 위한 일에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진 강행군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 오늘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안타까움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고 애도했다. 장례는 민주당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손학규·박상천 민주당 대표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며 장지는 남해로 결정됐다. 유족은 부인 최호숙(52)씨와 1남3녀. 발인 14일 오전 10시.(02)2227-7550.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쇠고기 분신’ 이병렬씨 사망

    지난달 25일 전북 전주 코아백화점 앞에서 ‘정권 타도’를 주장하며 분신한 이병렬(42)씨가 9일 오전 숨졌다. 한강성심병원에 따르면 전신 3도 화상으로 화상범위가 90%가 넘은 이씨는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피부이식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분신 15일 만인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사망했다. 담당의사는 “지난 7일부터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됐다.”면서 “독균이 여러 장기에 침투해 기능을 망가뜨리는 패혈증 등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장지 결정 등 모든 장례 절차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위임했으며, 대책회의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빈소를 차리고 5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이씨의 둘째형 용기(45·인천시 남구)씨는 “바로 밑의 동생이라 평소 애정이 남달랐다.”면서 “어제 동생을 면회했을 때만 해도 가족들을 알아보는 것 같아 다소 안심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전북 정읍에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2006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2008년 공공노조에 가입하는 등 노동운동에 적극 참여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촛불집회에 참가해 오다 지난 5일 새벽 서울시청 앞에서 분신한 김모씨는 현재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책임감 강했는데…”

    “책임감 강했는데…”

    “책임감이 강했는데….” 6일 자살하려던 20대와 함께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부산경찰청 특공대원 전성우(36) 경장의 빈소가 차려진 부산의료원 장례식장은 종일 숙연했다. 현충일을 맞아서인지 무거운 분위기는 더했다. 전 경장은 헤어지자는 여자 친구를 때린 뒤 자신의 집이 있는 4층 빌라 옥상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던 인모(26)씨를 설득하다 5일 10여m 아래로 떨어져 인씨와 함께 숨졌다. 전 경장은 1997년 10월 순경으로 경찰에 들어온 뒤 크고 작은 작전을 수행하면서 부산경찰청장상 등 많은 상을 받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부산경찰청은 6일 전 경사를 1계급 특진시켰다. 영결식은 9일 오전 10시 부산경찰청 야외 주차장에서 거행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고] 천주교 최재선 주교 선종

    천주교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을 지낸 최재선 주교가 3일 오후 4시46분 노환으로 선종했다.96세. 고인은 한국 천주교 성직자 중 최고령이었다. 경남 울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38년 사제로 서품됐다.1957년 초대 부산교구 교구장에 임명되어 1973년 은퇴했다.1975년 한국외방선교회에 이어 1984년 한국외방선교수녀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빈소는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6일 열린다.(051)629-8750.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송파구, 의료 복지 빈틈 채운다

    송파구는 30일 아산병원, 경찰병원 등 지역 내 의료서비스 기관과 저소득층의 장례 비용을 30∼60% 할인해주는 장례서비스 지원 협약식을 갖는다고 28일 밝혔다. 이에 따라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동장 추천을 받은 저소득 주민은 아산병원에서 빈소를 사용할 때 비용의 60%를, 경찰병원은 빈소사용료·안치료·영결식장 사용료의 30%를 할인받을 수 있게 됐다. 또 장례 서비스가 필요할 경우 구청 사회복지과나 동사무소에 전화하면 병원 구급차가 직접 가정으로 찾아간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전국에서, 기타 저소득층은 서울·경기·충청·강원 등에서 구가 운영하는 기존 장의차량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문정1동 주민센터는 최근 인애가보생한방병원·송파의원과 자매결연을 맺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한부모가정·차상위계층·장애인·결식아동 등 지역 저소득가정 241명을 위한 무료 외래진료, 방문진료, 차량지원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앞서 풍납1동은 서울의료원과 함께 매월 20여명의 독거노인가정을 방문해 진료하고, 연 2∼3회 지역주민 무료진료 서비스를 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주민을 위한 다양한 복지서비스 기회를 마련하고 취약 계층에 신속하고 탄력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을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류재혁 선생 별세

    일제시대 항일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류재혁 선생이 27일 별세했다.97세. 충북 옥천 태생인 류 선생은 1939년 7월 일본에 부응하는 기사를 게재한 친일 관료 최병협 옥천군수에게 협박문을 제작해 보내는 등 항일운동을 펼치다 체포돼 1년5개월 여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지난해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발인은 29일 오전 9시30분,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3묘역, 빈소는 대전 을지병원 (010)7522-8298.
  • [부고] 오정명 경희학원 명예이사장 별세

    [부고] 오정명 경희학원 명예이사장 별세

    오정명(吳貞明) 학교법인 경희학원 명예 이사장이 26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87세. 오 명예 이사장은 학교법인 경희학원 설립자인 조영식 박사의 부인으로 그동안 사단법인 서울오페라단 이사, 재단법인 국제밝은사회재단 이사, 학교법인 경희학원 이사 등으로 활동해 왔다. 고인은 평양이 고향으로, 일본 도쿄 나카노구 호리고시고등학교 가정과를 졸업한후 중국 문화학원 명예철학박사 학위와 호쿠리쿠대학 명예약학박사 학위 등을 받았다. 지난 1961년에는 재단법인 고황재단 이사를 시작으로 1963년 고황재단 이사장,1965년 동양의과대학 행림학원 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장례는 학교법인 경희학원 학원장으로 치러지며, 빈소 및 분향소는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평화의 전당, 국제캠퍼스 중앙도서관 3층 대회의실, 광릉캠퍼스 모의국무회의실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30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 선영. 유족으로는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조인원 경희대학교 총장 등 2남과 조여원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장, 조미연씨 등 2녀, 사위 독고윤 아주대 경영학부 교수, 구자명 LS 니코동제련 대표이사 부회장이 있다. 문의 (02)961-0002∼3.
  • [부고] ‘산장의 여인’ 가수 권혜경씨

    [부고] ‘산장의 여인’ 가수 권혜경씨

    가요 ‘산장의 여인’으로 널리 알려진 가수 권혜경(본명 권오명)씨가 25일 오후 1시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77세. 강원도 삼척 출생인 권씨는 19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전속 가수 3기로 발탁,57년 음반 데뷔곡인 ‘산장의 여인’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라디오 드라마 ‘호반에서 그들은’의 주제가 ‘호반의 벤치’와 59년 개봉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 ‘동심초’의 주제가를 불렀다. 그러나 인기를 얻은 직후인 59년 심장판막증 판정을 받은 데 이어 후두암 선고까지 받으며 줄곧 병마에 시달려 왔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고인은 50여년 동안 전국 교도소를 돌며 수백 차례의 위문공연과 강연으로 재소자들을 격려해 수인들 사이에서는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된 고인은 최근 교통사고까지 겹쳐 며칠 전부터 중환자실에서 투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충북 청주시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9시.(043)291-4444.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백옥순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백옥순 선생 별세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백옥순 선생이 24일 별세했다.95세.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백 선생은 무장투쟁을 위해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자금모금 및 연락체계 구축 등의 특수훈련을 받고 국내에 잠입했다. 백 선생은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남편인 고(故) 김해성 선생도 광복군에 입대해 중앙전시간부훈련의 ‘한청반(韓靑班)’을 수료했다.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 대통령표창,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손자 김창인, 김창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보훈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6일 오전 8시.011-441-4028(김창인).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부고] 피아니스트 백낙호씨 별세

    원로 피아니스트 백낙호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가 22일 오전 6시55분 성남 중앙병원에서 별세했다.79세. 서울대 음대를 거쳐 미국 예일대와 줄리아드 음대에서 공부한 고인은 1949년 첫 데뷔 무대를 가졌고 한국전쟁 중에는 해군교향악단과 베토벤 교향곡 제5번 ‘황제’를 협연하기도 했다. 국내외 무대에서 연주활동을 펼치며 1963년부터 1994년까지 서울대 음대에서 후학을 양성해온 고인은 정진우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국내 피아노계를 이끌어온 증인으로 꼽힌다.유족으로는 부인 이정희씨와 혜영·혜선·정엽(피아니스트)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발인은 24일 오전 9시.(02)590-2540.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부고] 한국 영화녹음 개척자 이경순씨

    한국 영화 녹음의 개척자인 이경순 전 한양 스튜디오 대표가 22일 오전 4시35분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했다.87세.고인은 지난 50년간 한국영화 3500여 편의 녹음을 도맡아왔다.‘춘향전’‘오발탄’‘빨간 마후라’ 등이 고인의 손길을 거친 대표적인 작품이다. 공로로 보관문화훈장,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동아방송예술대학에 평생 모은 시나리오 수천편과 영화 녹음 기계 등을 기증해 ‘이경순관’을 만들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길순씨와 아들 영길(영화 녹음기사), 영용(전 교사)씨가 있다.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30분.(02)2072-2025.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류우익실장, 中지진빈소 조문

    류우익 대통령실장은 20일 오후 서울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에 마련된 쓰촨성(四川省) 대지진 피해자 빈소를 방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류 실장은 조문에 이어 중국대사관 관계자들과 만나 “지진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헤아릴 수 없는 재산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한국 국민을 대표해 깊은 위로와 슬픔을 전한다.”고 말하고 “우리 국민은 중국의 지진피해를 우리 자신의 피해와 아픔처럼 느끼고 있다.”고 위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앞서 19일 중국대사관에 조화를 보내 지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中 쓰촨성에 한국의료팀 파견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서울 박창규기자|한국은 쓰촨 대지진 지역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하기로 하고 중국 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주중 한국대사관이 20일 밝혔다. 한국에서는 119구조대원 44명이 건너가 지난 17일부터 스팡시 잉화 마을의 화학비료 공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신화통신은 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9일(현지시간) 유엔 주재 중국대표부 관저를 방문, 희생자들에게 묵념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반 총장은 방명록에 “중국이 잃은 것은 세계인 대다수가 느끼는 것보다 더 크다.”면서 “국제사회는 엄청난 비극에 맞서고 있는 위대한 중국 인민들의 편”이라고 적었다. 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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