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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김수환 추기경이 최인호 작가에게 던진 수수께끼 같은 화두

    故 김수환 추기경이 최인호 작가에게 던진 수수께끼 같은 화두

    가톨릭 작가 최인호가 김수환 추기경 선종 후 처음으로 월간 <샘터> 4월호(3월 10일 발행)에 게재된 연작소설 ‘가족’을 통해 추모의 글을 발표하였다.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듣고 며칠 내내 눈물을 흘렸다는 작가는 김 추기경과 나눈 마지막 대화를 시작으로 한 일간지에서 기획했던 대담 때의 추억과 얼마 전 자신이 꾼 김 추기경의 꿈을 소개하고 있으며, 언젠가 김 추기경과 함께 천상의 식탁에서 지상에서 미뤘던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글을 맺고 있다 ■ 천상의 점심식사 글 최인호(소설가) 그림 이우범 지난주는 참 많이도 울었다. 일주일 내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흘렸으니 어지간히 많이도 운 셈이다. 나를 그토록 슬픔에 젖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김수환 추기경이다. 살아생전에 추기경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적은 없다. 손꼽아보면 대여섯 번 뵌 것이 고작일 것이다. 한 번은 신문사 인터뷰로, 두어 번은 여럿이서 함께 나눈 식사모임에서, IMF 때는 금 모으기를 하던 서초동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어떤 신문사에서 주최한 미술 전람회장에서. 그때 나는 두 신문에 연재하고 있어 몹시 바빴으므로 관람이 끝나고서 추기경님을 모시고 점심을 하기로 한 자리에 빠지게 되어 “죄송합니다, 먼저 가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추기경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함께 식사를 하지그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무리하면 얼마든지 참석하고 늦게 돌아와 원고를 써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겐 이상하게도 쌀쌀맞은 구석이 있어 추기경님이라도 내 시간을 빼앗을 수 없다는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냉정하게 사무실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왜 함께 식사를 하지그래’라는 말씀은 이 지상에서 추기경님과 나눈 마지막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평범한 인연인데도 일주일 내내 추기경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때 추기경님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섭섭해하시던 그 눈빛. 쓸쓸한 그 눈동자, 그 입술은 내 가슴에 선명히 남아 있다. 언제나 젖어 있던 추기경님의 그 입술, 코에서부터 입까지의 유난히 긴 인중 밑에 언제나 침을 흘리는 어린아이처럼 젖어 있던 그 입술. 그 입가에 항상 번져 있던 미소, 생전에 동료 신부에게 ‘정말 못 해먹겠다’라고 고백하였다던 추기경이라는 성직자의 짐, 그 무거운 십자가, 끊임없이 엿보고 떠보던 지상의 율법학자들과 교묘한 권력자들. 최고의 성직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수도자, 아니 한갓 평범한 평신도로 살아가고 싶어 하셨던 그 모순된 영적 갈등과 시대적 아픔, 수십 년의 불면증(평생 불면을 모르던 나는 최근에야 불면의 고통을 실감하고 있다)과 신경안정제, 그 고통 속에서 피어난 추기경의 천진한 미소들이 떠올라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2003년이었던가. 새해를 맞아 나는 동아일보에서 기획한 새해특집에 추기경님과 대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대담의 첫머리를 나는 이렇게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안에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이다. 비록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디딤돌 위에 고무신이 놓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멀리서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하여도 집안은 평화롭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집의 어른, 우리 시대의 아버지다….” 그때 벌써 추기경님은 6년 뒤 자신의 임종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대담의 마무리를 자신의 간절한 소망으로 맺고 있었다. “…그보다도 내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남은 생 동안 하느님께 얼마나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에요. 이 죄 많은 죄인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받아주실까. 물론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용서해주시는 분이지만, 그래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부끄럽지 않은 영혼으로 서고 싶은데 그것이 걱정이에요. 이 죄 많은 죄인을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셨으면 하는 것이 요즘 소망이에요. 나이와 함께 오는 여러 가지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도 잘 받아들일 만큼 하느님께 모든 것을 위탁하는 것, 그것이 요즘 간절한 기도 제목이지요.” 지난 7월, 두 번째로 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추기경님이 같은 병동에 입원해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찾아뵙고 싶었지만 그 깔끔하시던 분께서 대소변조차 혼자서 해결하지 못할 만큼 쇠약해지셨다는 소식을 듣자 문병을 포기하였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나라도 누군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추기경님이 같은 병동에서 같은 환자로 누워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불면의 밤이면 그분께서도 불면의 고통으로 뒤척이고 계시다는 생각에 얼마나 용기를 얻었던지. 그 지긋지긋한 치료 중에서 내게 찾아온 이 병이 추기경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던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은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부끄럽지 않은 영혼으로 서고 싶은데 추기경님보다도 천 번 만 번 더 깊은 죄인을 과연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실까?’ 그런 간절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지난 2월 16일 밤. 추기경님이 마침내 선종하셨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나는 얼마나 고맙던지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면서 와락 눈물을 쏟아냈다. 거의 동시에 쏟아지는 각종 언론매체의 전화들. 아마도 내가 가톨릭 작가이므로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글을 써달라는 그들의 청탁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추기경님을 위해서 당신도 뭔가 써야 하잖아. 잘 생각해봐.” 아내가 말하자 나는 심각하게 고민을 했고 그리고 일체의 청탁을 거절하기로 하였다. 일찍이 프랑스의 모럴리스트였던 라 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귀중한 사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라 로슈푸코의 날카로운 지적은 진리다. 나는 추기경님을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나 자신을 미화하는 자애심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추기경님은 그날 대담에서 내게 한 가지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던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가장 긴 여행이 뭔지 아세요?”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추기경님은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나 역시 평생 이 짧아 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 도착하기엔 멀었소이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반성과 회개를 통해 조금씩 우리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하느님께 나아가고 예수를 닮아가야 합니다.” 추기경님의 빈소를 찾은 그 많은 사람은 추기경님을 가슴으로 느낀 사람들이다. 살아 계셨을 때는 추기경님의 진면(眞面)을 모른다. 사람의 향기는 죽었을 때야 피어난다. 추기경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이 시대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의 심안心眼을 열리게 한다. 살아 계실 때 추기경님을 만나려면 우리는 혜화동에 있는 주교관을 찾아가야 한다. 추기경님도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 약속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죽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보고 싶으면 우리는 언제든 마음속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고, 그분도 우리를 찾아오실 수 있다. 그것이 죽음의 신비다. 나는 추기경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이러한 신비 속에서 그분을 뵈었다. 그분이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돌아가신 다음다음 날, 정확히 2월 18일 새벽이었을 것이다. 꿈속에서 나는 무엇엔가 쫓겨 복도를 황급히 도망치고 있었다. 복도 끝에 흰 운동화 한 켤레가 있었다. 나는 그 신발을 신고 다시 도망쳤다. 내가 도착한 곳은 다락방. 다락방에는 수많은 성직자가 수도복을 입고 경건하게 앉아 있었고, 내가 들어가자 성직자들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도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고 두 손을 모았다. 뭔가 집중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따뜻한 손이 나타나 내가 수술받은 왼쪽 얼굴을 정확히 두 번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는데 나는 그 손길이 추기경님의 것임을 확신하였다. 생전에 병원으로 수많은 병자를 찾아가 손수 문병하셨던 추기경님이었으므로. 추기경님은 마침내 누군가의 도움 없이 휠체어도 타지 않으시고 이처럼 자유롭게 나를 찾아와 아픈 부위를 어루만져주신 것임을 나는 믿. 는. 다. 대담기사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아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죄 많은 김수환 추기경을 용서하소서. 우리는 인간 김수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요즘 나는 내 서재 앞 벽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초상을 내걸고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언젠가 천상의 식탁에서 그분과 함께 지상에서 미뤘던 점심식사를 하게 될 것을 나는 믿. 는. 다. ‘가족’은 최인호 작가가 1975년 9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잡지 역사상 가장 긴 소설로, 394회까지 매달 한 번씩 한결같이 월간샘터에 연재를 하다가 지난해 6월 암 수술을 받고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잠시 집필을 중단했었다. 월간샘터 2009년 3월호 제395회 ‘새봄의 휘파람’ 편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이번 월간샘터 4월호 ‘천상의 점심 식사’를 통해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을 소재로 삶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족’은 앞으로 월간샘터 2009년 8월호 게재를 기준으로 총 400회에 이르게 된다 [출처] 故 김수환 추기경이 최인호 작가에게 던진 수수께끼 같은 화두|작성자 샘터지기2009년 3월
  • [부고] 연탄가스 중독 치료 윤덕로씨

    윤덕로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명예교수가 1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6세. 고인은 ‘고압 산소장치’를 개발하는 등 평생을 연탄가스 중독 치료에 골몰했으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비행사고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조종사들의 일산화탄소 중독 예방책을 마련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장남인 윤익진 건국대병원 외과 과장과 차남인 윤태진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외과 과장이 있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7시. (02)2030-7902.
  • [부고] 이상철 전 국민은행장 별세

    이상철(李相哲) 전 국민은행장이 13일 오후 1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73세. 이 전행장은 1960년 농업은행 공채로 입행한 뒤 62년 국민은행 창립 멤버로 옮겨 87년 부행장을 거쳐 88년 국민은행장에 올랐으며 97년 국민신용카드 회장을 마지막으로 금융계를 떠났다. 은행장 재임 때 5조 원에 불과하던 수신액을 15조 원으로 늘리고, 고객 수도 1천만 명 넘게 확보하는 등 국민은행이 리딩뱅크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장을 지내던 96년 금융실명제 조기 정착과 저축증대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명자씨와 찬희(CH 인베스트먼트 대표)·수경·태희(방송통신위원회 대변인)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6일 오전 7시. (02)3410-6917.
  • ‘당신이 최고야’ 가수 이창용 자살

    ‘당신이 최고야’를 부른 트로트 가수 이창용(38)씨가 12일 오전 3시45분쯤 경기 고양시 마두동 자신의 아파트 안방 욕실에서 목을 매 숨졌다.경찰은 이날 동거녀(32)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잠겨 있는 욕실 문을 열고 숨진 이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이씨는 이날 자신과 다투고 외출한 동거녀에게 “생을 마감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파트 현관 바닥에는 “채무가 많아서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가 놓여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타살 흔적이 없고 유서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이씨가 사업 실패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빈소는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4일. 이씨는 1992년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가요계에 데뷔했다.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남진·인순이·박상철 3인, ‘故이창용 회고록’

    남진·인순이·박상철 3인, ‘故이창용 회고록’

    못다핀 트로트 가수의 열정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난 故 이창용(38)을 애도하는 물결이 일고 있다. 지난 12일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 특5호실에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으며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동료 트로트 가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다음은 가수 조문객들이 털어놓은 생전 故 이창용에 대한 회고록. ◇ 박상철 “고인, 밝은 가수”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가수 박상철은 동료가수를 잃은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故 이창용 보다 2살 위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서로 밀고 끌어 주었던 트로트계 동료 사이인 박상철은 “갑작스럽게 동료 가수를 잃게 돼 너무 슬프다.”고 심정을 털어 놓았다. 고인에 대해 “밝은 성격이었다.”로 밝힌 박상철은 “하늘나라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인순이 “고인, 실력있는 가수” 침통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선 인순이는 “아까운 후배 하나를 잃었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2일 오후 8시 경 고인의 빈소를 방문한 인순이는 약 30분가량 유족들을 찾아뵌 후 조용히 자리를 떠나려 했다. 고인에 대한 기억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인순이는 “실력 있는 가수였다.”며 평소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나 주변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고 평했던 가수다.”라고 전했다. 이어 인순이는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잠들길 기도한다.”며 빈소를 떠났다. ◇ 남진 “고인, 스마트한 가수” 가수 남진은 故 이창용의 빈소를 찾아 “고인은 스마트한 가수”라며 생전 기억을 털어놨다. 12일 오후 9시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남진은 유가족을 위로한 후 자리를 뜨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문을 연 남진은 트로트 가수 선배로서 바라본 고인에 대해 “스마트한 가수였다.”고 회상했다. ”故 이창용은 노래만 잘 하는 가수가 아니었다.”고 말을 이은 남진은 “고인은 가창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판단력이 빠르고 야무진 친구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들이 많이 힘들텐데 잘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고 주변인을 격려하며 자리를 떠났다. 한편 지난 12일 고인의 빈소에는 트로트 가수 동료인 박상철이 첫 조문했으며 이어 가수 인순이, 진시몬, 남진 등이 방문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故 이창용 고인의 영정

    [NOW포토] 故 이창용 고인의 영정

    12일 오전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트로트 가수 이창용(38)의 빈소가 일산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故 이창용, 전북 전주 안치 예정…홀어머니 의견

    故 이창용, 전북 전주 안치 예정…홀어머니 의견

    12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은 트로트 가수 故 이창용의 유해가 고향인 전라북도 전주에 안치될 예정이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 현장에서 만난 고인의 친척은 “발인은 14일 오전 8시 이며 고양시에 위치한 벽제 화장장에서 화장 된 후 고향인 전주에 유해를 안치한다.”고 밝혔다. 친척은 “고인은 아버지를 먼저 떠나 보내고 어머니만 모시고 있다.”며 “어머니를 포함한 유족들의 의견에 따라 장지를 고향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정확한 장례 일정에 대해서는 “14일 오전 8시 발인식을 마친 후 오전 10시 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에서 화장된다. 이후 유족들만이 동행해 유해를 전라북도 전주로 옮겨 안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12일 새벽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해 발견된 故 이창용에 대해 일산 경찰서 측은 “수사 진행 결과 자살로 잠정 결론 내렸다. 유족에게 시신 인계한 후 검사의 지휘를 따라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수사의 방향을 밝혔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트로트 가수 이창용, 12일 숨진채 발견

    트로트 가수 이창용, 12일 숨진채 발견

    트로트 가수 이창용(38)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창용은 12일 오전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인이 최초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한 측근은 “고인이 사업과 가수 활동을 동시에 병행했는데 요즘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경찰에 알렸다. 고인의 시신은 경기도 일산 백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빈소는 일산백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오는 14일 발인식이 치뤄지며 화장장으로 운구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슬하에 1남1녀가 있다. 1971년 생인 故 이창용은 1992년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2004년 1집 ‘당신이 최고야’를 발매해 트로트계에 입문했으며 2005년 2월 2집 ‘여보’, 2006년 7월 마지막으로 3집 ‘사랑해 말도 못하는’을 발표했다. 사진 = 故 이창용 1집 앨범 사진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상철 “동료 이창용 잃은 슬픔 크다”

    박상철 “동료 이창용 잃은 슬픔 크다”

    가수 박상철(40)이 故 이창용(38)의 빈소를 찾아 찹찹한 마음을 토로했다. 트로트 가수 동료인 박상철은 12일 오후 경기도 일산 백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한 후 기자들과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故 이창용 보다 2살 위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서로 밀고 끌어 주었던 트로트계 동료 사이인 박상철은 “갑작스럽게 동료 가수를 잃게 돼 너무 슬프다.”고 심정을 털어 놓았다. 이어 “하늘나라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 현장에는 못 다핀 트로트 열정을 간직한 채 잠든 이창용을 기리는 트로트 가수들의 추모의 뜻이 전달되고 있다. 일산백병원 장례식장 5호실 입구에는 진아 기획의 대표이자 선배 트로트 가수인 태진아와 박라인기획 소속 트로트 가수 박상철 등의 화환이 줄지어 있다. 화환에는 ‘삼가 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편 故 이창용은 12일 새벽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인이 최초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빚이 많아 괴롭다’는 애용이 포함된 유서가 발견된 점을 미뤄 보아 경찰은 자살로 잠정 결론 내리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유가족에게 시신을 인계한 후 검사의 지휘 아래 사건을 종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NTN 일산(경기)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38세’ 故이창용, ‘채무’에 꺾인 트로트 열정 (종합)

    ‘38세’ 故이창용, ‘채무’에 꺾인 트로트 열정 (종합)

    트로트 가수 故 이창용(38) 씨가 생전 채무로 인한 무거운 빚으로 자살을 택한 것으로 밝혀졌다. 故 이창용씨는 12일 새벽 3시45분께 경기 고양시의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4 용지 4장 분량의 유서를 발견하고 타살정황이 없는 점으로 미뤄 보아 이창용 씨가 채무로 인한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잠정 결론내렸다. 12일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 특5호실에는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으며 유가족 들이 슬픔을 나누고 있다. 생전 트로트 가수 동료였던 박상철이 조문을 다녀간 상태다. 못다핀 트로트 열정을 간직한 채 죽음을 선택한 故 이창용의 마지막 길을 살펴봤다. ◇ 故 이창용, 그는 누구? 1971년 생인 故 이창용은 1992년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2004년 1집 ‘당신이 최고야’를 발매해 트로트계에 입문했으며 2005년 2월 2집 ‘여보’, 2006년 7월 마지막으로 3집 ‘사랑해 말도 못하는’을 발표했다. 최고의 히트곡은 ‘당신이 최고야’로 꼽히며 맛갈스러운 트로트 창법 뿐만 아니라 호남형 외모로 인기를 모았다. 장례식 현장에서 만난 고인의 지인은 “이창용은 손에 꼽히는 유명 트로트 가수는 아니었지만,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었고 실력과 열정만큼에서는 최고였던 가수”라고 그를 회상했다. ◇ 자살 유서 “빚 괴로워” 사건을 수사한 경찰에 따르면 고인은 자택 내 복도에 A4 용지 4장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유서의 내용에는 최근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빚에 대한 심경 토로가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유서에는 ‘빚이 많아 괴롭다. 내 명의 부동산 등을 정리해서 빚을 갚아 달라. 갚고 남은 돈이 있으면 아내와 자식들에 줘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돼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 빈소 풍경, 화환만 즐비… 박상철 조문 애도의 뜻을 담은 화환이 줄지어 도착하고 있는 빈소 현장에는 박상철의 첫 조문 외에 직접 빈소를 찾는 트로트 가수들의 발길은 뜸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트로트 가수 동료인 박상철은 12일 오후 경기도 일산 백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한 후 “갑작스럽게 동료 가수를 잃게 돼 너무 슬프다.”며 찹찹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 수사 진행 방향 “채무 관련 자살로 마무리”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고인이 채무와 관련해 소송이 걸려 있었고 주변인에게 ‘힘들다’는 심경을 자주 토로했다는 진술이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로서는 채무와 관련된 자살이 가장 유력하다고 판단하고 검사의 지시에 따라 사건을 종결지으려 한다.”며 “하지만 유족들의 사인규명 요구가 있을 경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할 방침이다. 가능성은 희미하다.”고 전했다. 한편 장례 일정은 다음과 같다. 오는 14일 오전 8시 발인식을 마친 후 오전 10시 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에서 화장된 고인의 유해는 고향인 전라북도 전주로 옮겨 안치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일산(경기)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졸음운전 버스에 숨진 ‘수학천재’

    ‘수학천재’로 불리던 전남대 백정선(수학과)교수가 10일 자전거로 퇴근하다 졸음운전 버스에 치여 숨졌다. 51세. 백 교수는 이날 오후 6시50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 치과병원 앞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 기사가 졸음운전하던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치였다. 백 교수는 20년 넘게 자전거로 출·퇴근해 왔다. 전남 벌교 출신으로 1977년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창시절 이미 수학천재로 불릴 만큼 탁월했다. 87년부터 전남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해 왔다. 계승혁 서울대 자연대 교수는 11일 “2년 후배인 백 교수와 같이 수학과 조교를 했는데, 그는 해석학 분야 ‘편미분 방정식’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며 “소중한 인재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백 교수와 77학번 동기인 신동우 서울대 교수도 “백 교수는 두뇌가 명석할 뿐만 아니라 주관이 뚜렷하고 정의감 있는 선비형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유족으론 부인 문명희(광주 유덕중 교사)씨와 아들 용주(KAIST대학원), 딸 민경(서울대 화학부)씨가 있다. 빈소는 광주현대병원, 발인은 12일 오전 9시. (062)570-0401.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NOW포토] 故 이창용 빈소, 일산 백병원에 마련

    [NOW포토] 故 이창용 빈소, 일산 백병원에 마련

    12일 오전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트로트 가수 이창용(38)의 빈소가 일산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가수 박상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NOW포토] 가수 박상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수 박상철이 12일 오후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이창용(38)의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가수 박상철, ’동료 잃어 가슴이 아프다!’

    [NOW포토] 가수 박상철, ’동료 잃어 가슴이 아프다!’

    가수 박상철이 12일 오후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이창용(38)의 빈소를 찾은 가운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인순이, ’하늘나라에서는 편히 쉬기를...’

    [NOW포토] 인순이, ’하늘나라에서는 편히 쉬기를...’

    가수 인순이가 12일 오후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이창용(38)의 빈소를 찾은 가운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故이창용 빈소] 조문없이 화환만 즐비…박상철 첫조문

    [故이창용 빈소] 조문없이 화환만 즐비…박상철 첫조문

    故 이창용(38)을 향한 트로트 가수들의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직접 빈소를 찾는 트로트 가수들의 발길은 뜸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 현장에는 못 다 핀 트로트 열정을 간직한 채 잠든 이창용을 기리는 현 트로트 가수들의 추모의 뜻이 전달되고 있다. 영정이 모셔진 일산백병원 장례식장 5호실 입구에는 진아 기획의 대표이자 선배 트로트 가수인 태진아와 박라인기획 소속 트로트 가수 박상철 등의 화환이 줄지어 있다. 화환에는 ‘삼가 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고인의 사망 소식이 보도된지 3시간 후인 12일 오후 2시 현재 빈소를 찾은 동료 트로트 가수는 박상철 뿐이다. ○ 유명 가수 아니었지만, 트로트 열정 대단했다 빈소에서 만난 고인의 한 지인은 “생전 이창용씨가 유명한 트로트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 열정만은 그 누구에게도 못지 않았다.”며 “트로트 주 무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선배 트로트 가수들에게 호평을 받던 가수 였다.”고 회상했다. ○ 화환만 즐비… 동료 가수들 조문 발길 뜸해 반면 고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지 시간이 흘렀지만 화환만 즐비할 뿐 직접 빈소를 찾는 찾는 트로트 가수의 발길이 없어 주변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현재 빈소에는 부인 황모씨와 슬하 1남1녀가 고인을 지키고 있으며 친인척들이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다. 상주는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8시에 치러지고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에서 화장될 예정이다. 한편 이창용은 12일 새벽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인이 최초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빚이 많아 괴롭다’는 애용이 포함된 유서가 발견된 점을 미뤄 보아 경찰은 자살로 잠정 결론 내리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유가족에게 시신을 인계한 후 검사의 지휘 아래 사건을 종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1971년 생인 故 이창용은 1992년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2004년 1집 ‘당신이 최고야’를 발매해 트로트계에 입문했으며 2005년 2월 2집 ‘여보’, 2006년 7월 마지막으로 3집 ‘사랑해 말도 못하는’을 발표했다. 서울신문NTN 일산(경기)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침통한 표정의 인순이, ’믿을수 없어...’

    [NOW포토] 침통한 표정의 인순이, ’믿을수 없어...’

    가수 인순이가 12일 오후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이창용(38)의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남진, ‘후배 가수 잃은 슬픔’

    [NOW포토] 남진, ‘후배 가수 잃은 슬픔’

    가수 남진이 12일 오후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이창용(38)의 빈소를 나서고 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故 이창용 유서 “부동산 정리해 가족들 주길”

    故 이창용 유서 “부동산 정리해 가족들 주길”

    스스로 목숨을 끊은 트로트 가수 故 이창용 씨가 생전 사업의 실패와 무거운 빚으로 인해 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12일 오후 2시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 현장에서 만난 고인의 친척은 “일산 경찰서로 부터 자살 전 남긴 유서 4장이 발견됐다는 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유서의 내용에는 최근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빚에 대한 심경 토로가 있었다.”며 “정확한 유서 내용은 ‘빚이 많아 괴롭다. 내 명의 부동산 등을 정리해서 빚을 갚아 달라. 갚고 남은 돈이 있으면 아내와 자식들에 줘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일산 경찰서 측은 “수사 진행 결과 자살로 잠정 결론 내렸다.”며 “목을 맨 흔적이 뚜렷하고 유서를 남긴 점, 현장이나 주변인 조사를 참조한 결과, 자살로 추정 된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에게 시신 인계한 후 검사의 지휘를 따라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수사의 방향을 밝혔다. 한편 故 이창용은 12일 새벽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인이 최초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1971년 생인 故 이창용은 1992년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2004년 1집 ‘당신이 최고야’를 발매해 트로트계에 입문했으며 2005년 2월 2집 ‘여보’, 2006년 7월 마지막으로 3집 ‘사랑해 말도 못하는’을 발표했다.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8시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에서 화장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일산(경기)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부고] 재불화가 이성자씨 별세

    재불 화가 이성자씨가 9일 새벽(한국시간) 프랑스 현지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때 여성으로서는 극히 드물게 파리로 유학,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했다. 이응노, 김환기 등과 함께 동양적 향취가 담긴 작품으로 현지 화단의 주목을 받은 대표적인 재불 화가였다. 동시대 실존의 부조리와 자폐적 우울증에서 벗어난 미학을 추구하면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2차례나 예술 공로훈장을 받았다. 지난해 4월 창원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이성자의 귀천(歸泉)’전을 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신용석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위원장 겸 인천아시안게임 대외협력위원장, 용학 파리7대학 건축학과 교수, 용극 유로통상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프랑스 투레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3일. (02)542-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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