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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디오 연설 “화합과 통합이 시대정신”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상과 빈소도 화해의 계기를 만들었다.”며 “이 역사적 장면으로부터 화합과 통합이 바로 우리의 시대정신임을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방송된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저는 역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직감한다.”며 “국민들 사이에는 이미 이념갈등이 약화되고 통합의 흐름이 시작되고 있는데 유독 정치만이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도 많이 나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저는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앞으로 국정운영에서 통합을 가장 중심적인 의제로 삼을 것을 천명한 바 있다.”며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이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새로운 민주주의는 대립과 투쟁을 친구로 삼기보다는 관용과 타협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우리가 나아갈 길은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와 합리적 절차를 존중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라며 “이번 계기에 지역과 계층, 이념을 넘어 하나가 돼야 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선진일류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 양극화와 경제적 양극화를 넘어서기 위해 대통령인 저부터 앞장설 것”이라며 “통합을 위해 꼭 필요한 정치개혁도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반드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이 대통령이 ‘화합’과 ‘통합’을 국정운영의 중심 의제로 삼겠다고 밝힘에 따라 이번주나 다음주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청와대 개편과 개각은 ‘화합형 인사’가 중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개각의 핵심인 국무총리의 경우 한승수 총리가 교체되면 화합과 통합의 국정 철학이 잘 드러나도록 ‘비영남 인사’를 후임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와 이원종 전 충북지사, 정우택 충북지사 등 충청권 인사는 물론 김종인 전 의원, 강현욱 전 전북지사 등 호남 인사들도 유력후보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당정간 소통강화와 ‘화합·통합’ 차원에서 친박(친 박근혜) 인사들을 내각이나 청와대에 기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부고] 원로 영화배우 최성씨

    원로 영화배우 최성(본명 최영준)씨가 24일 오전 5시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81세. 1928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허장강, 이해룡, 이대엽, 박노식 등과 함께 1950~70년대 영화계를 풍미한 배우다. 영화에서는 주로 조연으로 출연했다. 1958년 영화 ‘낙화유수’로 데뷔한 이래 ‘오발탄’(1961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 ‘인천상륙작전’(1965년) 등 130여편의 영화에서 연기했다. 또한 ‘연애소설’(2002년), ‘하늘정원’(2003년) 등 2000년대에도 활발한 활동을 벌여 제37회 대종상영화제에서 특별연기상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홍영희씨와 아들 정원(성남아트센터 총무과), 대원(영화배우)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2227-7597. 홍지민기자 coral@seoul.co.kr
  • DJ 서거 정국 뒤 주도권 잡기… 바빠지는 정치권

    DJ 서거 정국 뒤 주도권 잡기… 바빠지는 정치권

    ■ 민생 전환 한나라 “민주 등원을” 공세… 개각 등 靑쇄신 촉각 한나라당이 24일 민주당에 국회 등원을 요구했다. 국상이 마무리된 지 하루 만이다. 박희태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 조문 정국은 끝났다. 민생정국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이 시점에서 여야 대표 회담은 매우 긴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여야 당 대표 회담을 공개 제의했다. 이어 “더 이상 거절할 명분도 없을 것”이라면서 “(이것이)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것이며 우리의 책무”라고 덧붙였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에게 9월 정기국회 의사 협의를 위한 원내대표 회동을 제안했다. 안 원내대표 역시 ‘고인의 유지(遺志)’를 거론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와 국장을 계기로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가 던져졌다고 생각한다.”면서 “국회는 대화와 상생의 자리로 거듭나야 하며 법과 원칙을 지키는 법치의 요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국회에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안치하고 영결식을 마친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당에 ‘당근’도 던졌다. 안 원내대표는 “북한의 이번 특사 조의단이 대통령과 면담에서 과연 정상회담을 거론했는지, 앞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합의한 내용은 무엇인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얘기해야 한다.”면서 지금이라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소집하자고 제안했다. 당은 당대로 조문 정국으로 중단된 ‘민생 탐방’을 재개했다. 박 대표와 최고위원단, 김성조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는 이날 대구를 찾아 경북도청 관계자와 간담회를 갖고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용걸 기획재정부 2차관, 최장현 국토해양부 2차관, 김영학 지식경제부 2차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등 정부 관계자들도 대동했다. 한나라당은 한편으로 청와대가 곧 단행할 예정인 개각과 인적 쇄신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정치인 다수 입각 제의’ 반영 여부와 개각에 따른 여론의 평가가 여당의 동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통합 주력 민주당, 개혁세력 구심찾기… 장외투쟁 지속 고민 민주당이 24일 민주정부 10년의 계승을 강조했다. 민주당 중심으로 개혁세력을 통합해 대여(對與)투쟁 동력을 복원하겠다는 심산이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개혁진영이 배출한 두 분의 대통령님을 모두 보낸 시점에 민주당의 책무가 더 커졌다. 모두 단결해 유업을 받드는 데 한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언’을 소개했다. 고인이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야 4당과 단합하라. 모든 민주시민사회와 연합해서 반드시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문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승리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박 의원은 밝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 지지자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를 결합시키고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롭게 등장한 촛불시민주권세력을 합쳐야 현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를 막을 수 있다.”며 정 대표 체제의 정통성에 힘을 보탰다. 민주당은 25일 삼우제를 맞아 고인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를 찾아 추도 행사를 갖는 한편 27일에는 고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토론회를 연다. 민주정부 10년의 계승자로서 정통성을 대내외적으로 각인시킨다는 복안이다. 이같은 정통성 강화 작업의 배경에는 여권의 등원 압박과 장외투쟁의 명분 상실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당내에서 일고 있는 등원 찬반 논쟁도 이를 반영한다. 여권이 선거제도 개편과 개각 움직임 등을 통해 정국 전환을 꾀하는 마당에,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계속 이어간다면 여론의 반감을 살 공산이 크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아무 소득도 없이 등원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정치컨설팅업체 포스커뮤니케이션 이경헌 대표는 “민주당으로선 주내 출범 예정인 혁신위를 통해 대통합을 꾀하는 동시에 국정감사, 예산 심사 등 호재가 될 수 있는 등원 투쟁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대입 수시모집 전형 주의할 점은 한·미 어린이 국산 애니 ‘뚜바뚜바’ 동시에 본다 서울 마포대교 아래 ‘색공원’ 시민안전 ‘빨간불’ 덜 뽑는 공공기관 더 뽑는 대기업 “은나노 입자, 폐와 간에 치명적” ‘통장이 뭐길래’ 지자체 임기제한 추진에 시끌 경기 앞지르는 자산 급등 거품 논란 ‘휴대전화료 인하’ 이통사 저울질
  • [씨줄날줄] 순애보/노주석 논설위원

    중학교 때 집 서가에 꽂혀 있던 박계주의 ‘순애보(殉愛譜)’를 몰래 읽고 주인공 윤명희의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법에 푹 빠진 적이 있다. 1939년 매일신보에 연재되는 동안 장안의 지가를 올린 소설이다. 얽히고설킨 삼각관계 통속소설이지만 여주인공의 목숨을 건 사랑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훔쳐가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유치찬란하지만, 장년이 된 지금도 순애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마음이 설렌다. 순애보는 동명의 연극, 영화, 노래, 만화의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다. 소설은 1941년 극단 성군(星群)에 의해 극화돼 1950년대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1968년 김수용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윤명희 역을 맡은 윤정희의 열연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2000년에는 이재용 감독이 ‘순애보(純愛譜)’라는 ‘한글 종씨’ 영화를 선보였다. ‘목숨을 거는 사랑’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으로 시대에 맞게 진화했다. 유리상자의 노래 순애보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인기 순정만화 작가들이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그린 연작 단편만화집 순애보 시리즈도 지난 6월 3편이 출간됐다. 순애보(殉愛譜)적인 순애보(純愛譜)라고나 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원과 서거, 그리고 국장을 치르는 동안 우리는 ‘살아있는 순애보’에 눈시울을 적셨다. 김 전 대통령의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이희호 여사의 헌신적인 사랑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병실과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던 단아한 모습에서, 국장이 엄수되는 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에서, 서울광장 연단에 서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전하던 꼿꼿한 대국민 인사에서…. 김 전 대통령의 일기장은 47년 동안 반려자이자 동지로 함께 했던 이 여사의 사랑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김 전 대통령은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이래 최상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라고 썼다. 순애보는 그저 소설이나 영화, 노래가사 속에 존재하는 낭만주의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 곁에 온전히 살아 있다. 이 여사의 존재가 커보인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부고] K-9 자주포 개발 김동수 박사

    한국의 명품(名品) 무기로 손꼽히는 K-9 자주포의 개발 주역이자 국내 육상무기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국방과학연구소(ADD) 제5기술본부장 김동수 박사가 지난 23일 과로로 별세했다. 55세. 24일 ADD에 따르면 김 본부장은 23일 오전 대전 자택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숨졌다. 김 본부장은 최근 ‘하이브리드 전투 차량’ 개발 등 국방 녹색기술 연구기획위원장을 맡아 철야 연구를 해 왔다. 육사 32기 출신인 김 본부장은 1980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 89년 미국 캘리포니아대(UC 샌타 바버라)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 해군대학원 조교수로 재직했다. 1991년 귀국, K-9 자주포 개발외에 한국형 다목적헬기(KMH) 연구 개발에도 참여했다. 지난 2001년 K-9 자주포 수출단장으로 10억달러 상당의 터키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는 공로를 세우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한국 육상무기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김 본부장은 1998년 보국훈장 삼일장, 2003년 대통령 표창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종순(55)씨와 아들 상만(29), 상인(25)씨가 있다. 빈소는 대전 유성선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7시30분. (042)821-3100.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민주화·평화정신 영원히 남을 것”

    여야 정치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3일 민주주의 발전과 남북화해에 대한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일제히 영면을 기원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우리 국민은 위대한 지도자를 보내야만 하는 마음에 슬픔이 크다. 이제 슬픔을 승화시키는 새로운 시작을 함께해야 한다.”면서 “고인의 민주화와 인권,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을 통해 “아쉽고도 아쉽다. 이 이별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고인이 떠나신 지 엿새 동안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확인했다.”면서 “이제 남기신 뜻대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겠다. 더 이상 민주주의와 남북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유지를 받들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핵심 측근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고인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분단 반세기 만에 진정한 화해·교류·협력의 시대를 열었지만 현재는 남북대화가 단절됐다.”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조문단이 빈소를 방문해 남북대화의 물꼬를 두 번째 다시 열게 됐다.”고 언급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서거를 계기로 망국적 지역감정이 해소되고 동서와 남북 화합의 계기가 된다면 고인의 공과가 보다 더 가치있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고인이 호소한 ‘행동하는 양심’을 가슴에 새기고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남북관계가 전진하는 새 희망을 영전에 바치겠다.”며 애도를 표했다.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은 “장례절차는 끝났지만 고인의 뜻인 민주주의 발전과 남북화해는 계속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학계, 종교계, 문화계 및 진보·보수단체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국민통합을 이끌어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르는 등 민주화운동 동지였던 고려대 이문영 명예교수는 “일생 동안 김 전 대통령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행동하는 양심’을 이해하자.”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국민들이 지금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이어가 도덕성과 행동하는 습관을 잊지 않는다면 그의 뜻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는 “김 전 대통령을 보내며 우리는 그가 목숨처럼 여겼던 민주주의와 평화적 남북관계 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쌓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적 통일전략을 초석으로 놓고 현 시대의 의제들을 고민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국제사회에서도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정신적 지주가 떠나가신 것에 비통함을 금치 못하겠다.”면서 “이제 그의 정신을 물려받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보수 성향의 단체들조차 그가 남긴 유산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김 전 대통령은 우리사회의 발전축이었던 민주화를 성숙시킨 지도자”라며 “이 부분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보기 드문 큰 그릇의 지도자였고 IMF 외환위기 등 국가적 절체절명의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지도력을 발휘한 점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총연맹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을 잃은 것은 단순히 한 인물의 죽음이 아닌, 우리사회 한 세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민주화와 남북화해, 경제위기 극복 등에서 그가 해낸 일들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는 서울광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김 전 대통령의 1987년 대선 연설,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귀국 기자회견 등 추모영상이 상영된 후 신형원 경희대 교수가 추모곡 ‘당신은 우리입니다’를 부르자 곳곳에서 시민들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 국악인 오정해씨의 공연과 황지우 시인의 추모시 낭독이 있었다.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지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주현진 박건형기자 jhj@seoul.co.kr
  • [오늘의 눈] 기자 초년병이 본 DJ 서거/오달란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기자 초년병이 본 DJ 서거/오달란 사회부 기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폐렴으로 서울 연세대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뒤 병세가 위중했던 지난 7일부터 서거한 날까지 매일 아침 병원 앞 벤치에서는 ‘현대사 특강’이 열렸다. 김 전 대통령 측의 최경환 비서관이 ‘강사’였고 기자 생활 1~3년차의 사회부 기자 10여명이 ‘수강생’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이 한국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인물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겪은 5번의 죽을 고비, 그 가운데 1973년 도쿄 피랍사건과 1980년 사형선고의 비화를 생생히 전해듣는 것만으로도 기자 초년병들에게는 살아 있는 역사공부가 됐다. 취재를 하며 만난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젊은 기자들이 김 전 대통령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핀잔했다. 한 측근은 “어떤 기자는 신군부가 김 전 대통령에게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한 것을 두고 ‘신군부가 누구예요?’라고 묻더라.”며 실소했다. 1980년 이후에 태어난 기자들에게 현대 정치사는 낯설고 무겁다. 국장이 치러진 6일 동안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훌륭한 역사 선생님이었다. 1987년 평민당 대선후보였던 김 전 대통령이 연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를 들쳐 업은 채 서울 수유리 집에서부터 버스와 지하철을 3번 갈아타며 보라매공원으로 향했다는 중년 여성과 1980년 광주항쟁을 목격한 뒤 김 전 대통령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는 50대 부부의 사연도 마찬가지다. 국회 빈소에서 조문객들에게 근조 리본을 달아주던 30대 여성 자원봉사자는 “서점에 가거나 인터넷 블로그를 뒤져 보라.”고 조언했다. ‘인간 김대중’을 몰랐던 젊은 기자들이 그를 통해 암울했던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게 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일기에서 언급했듯 그의 삶은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해 혼신을 다한 일생이었다. 김 전 대통령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다시 발견한 젊은이들이 늘어날수록 그 노력은 헛되지 않으리라.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오달란 사회부 기자 dallan@seoul.co.kr
  • [사설] 김 전 대통령 가신 길 평화·화해로 기려야

    이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떠나고 우리는 남았다.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기고, 인권을 살찌우고, 얼어붙은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햇살을 안겨다 준 김 전 대통령이 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영면의 길에 들어섰다. 김대중, 그 이름 석자는 역사가 됐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가 있어서 행복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부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는 데 있어서 고인이 이룩한 업적은 실로 지대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외침으로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민주주의의 불꽃을 지켜냈다. 혹독한 외환위기를 맞아 나라가 흔들릴 때 국민을 하나로 묶었고, 장롱 속 금붙이들마저 끌어내며 이룩한 경제 회복으로 다시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분단 한반도에 대화의 물꼬를 텄고, 남북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공영의 대상임을 일깨웠으며, 인류는 그런 평화의 전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며 갈채를 보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권의 숭고한 가치와, 용서와 화해만이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을 힘이라는 가르침을 고인은 안겨주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로 지난 엿새 이 땅엔 용서와 화해, 평화와 사랑의 물결이 넘쳐났다. 동서로는 평생 민주화 동지이자 정적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화해가 이뤄졌고,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손을 잡았다. 남북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의를 받아든 북한 조문단이 빈소를 찾았고, 우리 정부와 막힌 대화의 실타래를 풀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분향소로 신분과 계층을 떠난 조문행렬이 꼬리를 물었지만, 거기에 이념과 지역 대립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고인의 자취가 크고 깊은 만큼 그의 빈자리를 메워야 할 우리의 과제 또한 막중하다. 지역과 이념, 계층의 대립이라는 이 나라 3대 갈등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데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한다. 우선 고인이 평생을 바쳐 극복하려 했던 지역주의의 골을 메워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은 당파를 떠나 지역갈등 극복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말로만 지역주의 극복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를 실천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행정구역 개편과 선거제도 개선 등을 논함에 있어서 이 나라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이념 과잉의 대결구도 또한 극복해 내야 한다. 정치권뿐 아니라 학계와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의 모든 주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식민통치와 남북 분단, 군부통치라는 현대사의 굴곡이 만든 이념의 덫에서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나라가 이념의 굴레에 묶여 주춤거리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도 멀다. 탈이념의 세계사적 조류에서 우리만 퇴행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 친서민 행보를 보다 강화, 빈부 격차에 따른 계층 갈등을 극복하는 데 더욱 매진해야 한다. 기회의 균등과 정의로운 분배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가 하나가 되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인동초가 피워 낸 평화와 화해의 꽃을 이제 우리가 가꿔야 한다. 삼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면을 빈다.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北김기남 “고인 뜻 받들어 할일 많다”

    김기남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비롯한 북한측 조문단은 21일 오후 3시53분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국회에 도착했다. 빈소로 이동하는 중 한 남측 인사가 원동연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에게 “김 위원장님 건강하십니까.”라고 묻자 원 실장은 “잘 계십니다.”라고 답했다. 북측 조문단은 김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조문과 묵념을 한 뒤 빈소 오른편에 서 있던 상주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 비서는 여러 인사들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홍업씨와 가장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북측 조문단은 국회의장실로 이동해 김 의장, 민주당 정세균 대표, 홍양호 통일부 차관 등과 함께 약 1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김 의장이 800 연안호 나포와 관련, “김 위원장이 연안호 어부들에 대해 좋은 지시를 했다고 들었는데 돌아오길 희망한다. 계시는 동안 만나뵐 사람 만나고 편하게 보내시라.”고 말하자, 김 비서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고인의 북남화합과 북남관계 개선의 뜻을 받들어 할 일이 많다. 저희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비서는 “다 먼 길이라 하는데 먼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남북이) 가까운 곳인데…”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 30여명은 오후 3시쯤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조문단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납북자 가족모임 최성용 대표와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성학 대표는 이날 오후 9시50분쯤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들과 만찬을 마치고 나온 김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향해 “김정일은 살인마”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삼성·현대 회장단 등 재계도 조문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삼성·현대 회장단 등 재계도 조문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등 재계인사들도 21일 잇따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 전 삼성 회장은 이날 저녁 9시쯤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함께 국회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이 전 회장은 김 전 대통령 영전에 헌화한 뒤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 전 회장은 이어 빈소를 지키던 박지원 의원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다.”면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앞서 이날 오전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을 비롯한 삼성 사장단도 빈소를 찾았다. 정몽구 회장은 오전 6시45분쯤 임원 9명과 함께 국회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 도착, 영전에 헌화하고 명복을 빌었다. 정 회장은 상주들에게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오전 9시30분쯤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 김성만 현대상선 사장 등 사장단 10여명과 함께 빈소에 도착해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었다. 현 회장은 이희호 여사의 손을 잡고 위로를 한 뒤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빈소를 떠났다. 현 회장은 그러나 북한에서 파견된 조문단을 만날 계획이 있는지, 새로운 대북사업 계획이 있는지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최고경영진 10여명도 이날 오전 빈소를 찾았고 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은 오후에 이인원 정책본부 사장,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 기준 롯데물산 사장, 정황 롯데칠성음료 사장, 좌상봉 롯데호텔 사장 등 주요 계열사 사장들과 함께 도착해 헌화했다. 중국 출장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2일 귀국한 뒤 조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20일 오후 계열사 사장들과 함께 서울광장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조문했다. 김성수 이창구 이영표기자 sskim@seoul.co.kr
  • 玄통일 오늘 北조문단 면담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22일 김기남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비롯한 북측 조문단과 회동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첫 남북 당국간 고위급 회동이다. 이를 계기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개선될지 주목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21일 “현 장관이 22일 오전 북한 조문단을 만날 예정”이라면서 “하지만 정확한 장소와 시간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북 고위급 회동에 따라 800 연안호 선원 석방과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문제 등 현안이 매끄럽게 해결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김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 북측 사절단 6명은 21일 오후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남한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비서와 김 부장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측근이다.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김 비서를 비롯한 조문단을 위해 김포공항으로 영접을 나간 데 이어 김 전 대통령의 공식 빈소인 국회까지 조문단을 안내했다. 홍 차관과 북측 고위급 인사와의 접촉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셈이다. 조문단장인 김 비서 등은 이날 오후 3시53분 국회에 도착,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등의 안내를 받으며 평양에서 가져온 김 위원장의 조화를 헌화했다. 북측 조문단이 가져온 김 위원장의 조화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며 김정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 비서가 분향을 한 뒤 조문단은 같이 묵념을 하며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김 비서는 방명록에 ‘특사 조의 방문단 김기남’ 명의로 “정의와 양심을 지켜 민족 앞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북측 조문단은 조문을 끝낸 뒤 김대중평화센터를 방문,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김 위원장의 조의를 별도로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김 비서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민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 비서는 김 위원장의 이같은 조의 메시지를 낭독하고 이를 이 여사에게 전달했다. 김 비서는 또 이 자리에서 “(남측 인사를) 다 만나겠다. 만나서 얘기하자.”고 남북 당국간 회동에 적극적으로 나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북측 조문단을 접견할 가능성과 관련, “김 위원장의 친서를 갖고 왔거나 메시지가 있을 경우 그쪽에서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대통령이 북측 조문단을) 혹시 만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한편 북측 조문단은 이날 오후 2시쯤 고려항공 특별기 편으로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 직항로를 이용해 오후 3시쯤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종락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고급임대 ‘한남 더힐’ 20대 당첨자 쏟아져 신종플루 우리 동네 거점 병원 어디? 6일 걸려 서울 왔는데… 한국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것 서울 ‘당일치기’ 여행가기 좋은 곳 중·노년들 ‘백수탈출’ 캐머런 신작 ‘아바타’ 끝내줬다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영결식 뒤 동교동 ~ 서울광장 거쳐 오후 6시 영면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영결식 뒤 동교동 ~ 서울광장 거쳐 오후 6시 영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이 2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거행된다. 한 시간여의 영결식이 끝나고 나면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운구차량은 국회의사당을 떠나 곧바로 부인 이희호 여사와의 추억이 깃든 동교동 자택에 들른다. 국민과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시청앞 서울광장 등을 거쳐 오후 6시가 되면 김 전 대통령은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란히 영면에 들어간다. ●청와대 방문 여부 아직 미정 김 전 대통령의 발인식은 영결식이 치러지기 30분 전인 오후 1시30분쯤 국회 본청 앞 빈소에서 진행된다. 국장 영결식은 오후 2시부터 1시간20분 간 진행되며 절차는 국민장과 비슷하다. 단은 국회 본청으로 오르는 계단 하단부에 4단 계단식으로 세워지며 2000여송이의 국화로 장식된다. 최대 5만명 이상이 들어가는 식장에는 장의위원 2300여명을 비롯, 각계 정부초청인사 9000명과 유가족 초청인사 1만 5000명 등 2만 4000명의 자리가 마련된다. 신원확인과 안전 등을 이유로 비표나 초청장이 없으면 영결식장에 입장할 수 없다. 영구차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추도사, 천주교-불교-기독교-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된다. 또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선서 모습 등이 담긴 고인의 생전 영상이 방영되고, 헌화와 추모공연이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3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면 영결식은 끝이 난다. ●유족측 교향악단도 요청 이번 영결식 사회는 남녀평등을 원한다는 유족 측 희망에 따라 조순용 전 청와대민정수석 등 남녀 1명씩 정했으며, 추도사도 추가됐다. 유족 측은 분향·헌화시 군악대, 조악대와 함께 교향악단도 요청한 상태며 추모공연은 1명의 성악가와 어린이합창단이 함께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영결식 준비를 위해 오전 8시부터 국회 출입이 통제되며 임시 분향소가 국회 정문 맞은편 도로에 설치돼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영결식 장면은 공중파 TV 및 식장과 국회 정문, 서울역 등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된다. 영결식이 끝난 3시20분, 운구 행렬은 국회를 빠져 나와 시속 20~30㎞의 속도로 동교동 자택~청와대(협의중)~시청앞 서울광장~서울역 광장~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한다. 유족 측은 자택 다음으로 김 전 대통령이 집무했던 청와대에 가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이동 경로에 있지 않아 정부 측과 협의를 하고 있다. 영정차량은 사이드카 30여대가 앞뒤로 호위한다. 선도차와 영정·영구차가 앞을 달리고 상주차와 유가족차, 장의위원차 등이 뒤를 잇는다. 경찰청이 제공한 차량 4대가 영정차 앞에 대형 태극기(가로 5.4m, 세로 3.6m)를 펼친 채 운구차를 선도한다. ●이희호 여사 “간소하게 치르자” 노제는 열리지 않는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희호 여사께서 간소하게 치르자고 강력하게 말씀하셔서 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현충원에는 오후 6시쯤 도착한다. 김 전 대통령의 안장식은 유가족을 비롯한 동교동계 지인들과 장의위원회 집행위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진행된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국장이후 정국 셈법…민주당 여유만만, 한나라 근심·초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 정국 이후 주도권을 놓고 여야의 물밑 셈법이 치열하다. 국장이 마무리되는 23일 이후 9월 정기국회 등원 문제,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선거제도·행정구역 개편론, 개각과 인사청문회, 10월 재·보선 등 굵직한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9월 정기국회 개회의 주도권은 민주당이 쥐고 있다. 조만간 예정된 개각과 그에 따른 인사청문회는 물론 ‘4대강 예산’ 문제까지 겹치면서 여권을 공격할 수 있는 호재들이 즐비하다. 고인의 ‘의회주의자’ 면모가 새삼 부각되면서 그 뜻을 명분 삼아 국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등원론도 형성되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21일 “장외투쟁을 계속할 수도 있고 의사일정 협의로 일정 기간 명분을 더 쌓다가 국회로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조문정국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확산됐던 친노(親) 신당 논의가 가라앉는 한편 민주세력 전체의 통합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도 민주당으로서는 호재다. 일단 ‘반(反) 이명박(MB)’ 정서의 확산을 위해 국회보다는 사람이 더 많이 모이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빈소에 당력을 집중하는 분위기다. 반면 한나라당은 24일부터 정기국회 일정을 협의하자고 목청을 높이지만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달 초 소속 의원 40여명이 대거 참석한 예산 당정협의는 물론 최근 열린 당 정책위원회 워크숍에서도 ‘4대강 예산’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당내에서조차 4대강에 대한 예산 편중 문제가 거론되자 당 지도부가 기획재정부에 이에 대한 방어 논리를 개발하도록 주문했을 정도다. 4대강 예산은 올해 8000억원에서 내년 6조 7000억원으로 대폭 늘어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 개혁을 화두로 던진 선거제도 개편 문제에서도 여야의 수싸움이 예고되고 있다. 민주당도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만큼 논의가 쉽게 사그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중·대 선거구제를 마뜩잖게 여기는 한나라당의 대응 전략이 주목된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이 대통령이 여러 갈등 구조를 바꿔보자고 선거구제 개편 문제를 내놓았는데 근본적으로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분산된 분권형 대통령제나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월 재·보선도 고비다. 한나라당에선 박희태 대표의 경남 양산 출마 문제로 계파간 이해관계가 불거지면서 내홍을 겪을 수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고인이 ‘남긴 꿈’ 이으려… 끝없는 조문

    그들은 꿈을 찾고 있었다, 잃어 버린 혹은 아련한. 꿈과의 이별을 겨워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 꿈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검은 옷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21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국회 본청 앞.조문객들은 늦더위에 땀을 흘리면서도 차분히 순서를 기다렸다. 국회에 빈소가 마련된 지 이틀 만에 근조리본 2만개와 국화 1만여 송이가 쓰였다. 이들은 빈소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그날이 오면’을 들으며 고인이 남긴 꿈을 생각했다. ●방명록에 다짐 적고 또 적고 조문객들은 빈소 한 쪽에 놓여진 방명록에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다. 고인의 뒤에 남겨진, 민주주의와 통일의 과제를 이어 가겠다는 다짐이 이어졌다. “못다 이루신 통일의 염원을 후손들이 이룩하겠습니다.”, “지난 10년 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돌아갑니다. 앞으로도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더욱 더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가 되겠습니다.”, “대통령님 때문에 숨쉬고 살았습니다. 저의 무임승차가 부끄럽습니다.”, “고귀하신 말씀과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겨레와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남북통일을 이루는 날 인사드리겠습니다.” 한 줄 한 줄, 애틋함이 묻어났다. 오전 11시 10분쯤에는 최재성·백원우·서갑원 의원,임종석·오영식 전 의원 등 386출신 정치인이 합동으로 조문했다. 김영춘 전 의원은 “고인이 이룩한 민주화의 길이 다시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애통해했다.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힘이었는데…” 본청 앞 잔디광장에는 민주당과 국회 도서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등에서 내놓은 고인의 사진들이 전시됐다. 조문객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고인의 생전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 서울에 산다는 강대봉(50)씨 부부는 이희호 여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고인 사진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1980년 5월18일 광주 유혈 사태를 현장에서 목격한 뒤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던 강씨 부부는 “살아 계신 것만으로 힘과 위로였던 큰 산이 무너진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부부는 “그분이 평소 가장 힘주어 말씀하셨던 대로 우리 각자가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평화 통일, 민주주의 정착 등 남은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문 행렬이 길어지자 자원봉사자들도 속속 늘어났다. 지난 19일 고인의 쾌유기원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가 서거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를 시작한 정성희(34·여)씨는 빈소를 국회로 옮긴 뒤에도 고인을 따라 왔다. 정씨는 “재임 시절에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느껴졌다.”면서 “그 분이 퇴임하고 보니 그 가치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한 60대 여성은 조문하러 왔다가 식수를 나눠 주는 자원봉사 일손이 모자른 것을 보고 바로 가방을 내려 놓고 ‘자원봉사’ 비표를 달았다. 지난 13일 병문안 했던 어린이 환경운동가 조나단 리(12)도 이날 고인의 영정 앞에 섰다. 국회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정치인이든, 자원봉사자든, 일반 시민이든 하나 같이 ‘꿈과의 재회’를 꿈꾸고 있었다. 허백윤 오달란기자 baikyoon@seoul.co.kr
  • “국장으로 하는게 당연하고 도리”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국회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를 조문했다. 이 대통령은 분향소에서 헌화 및 분향을 한 뒤 옆에 나란히 서 있던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3남 홍걸씨 등 상주들을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국회 본관 3층 유족대기실을 방문,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조의를 표했다. 이 여사는 “마음을 많이 써주셔서 여러가지로 감사드릴 것이 많다. 국장으로 치르게 해주시고….”라고 고마움을 표시했고, 이 대통령은 “그렇게 예우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건강을 잘 지키셔야겠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한편 김 전 대통령 유족 측은 23일의 영결식은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 국장’으로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23일 오후 2시 영결식이 열리는 국회에는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라도 출입할 수 있다. 하지만 초청장이 없으면 공식 행사장에는 들어갈 수 없다. 이종락 이지운기자 jrlee@seoul.co.kr
  • [사설] 北 조문단 방문, 남북대화도 활짝 열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조문단이 어제 서울에 도착했다.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도착하자마자 국회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김기남 비서와 김양건 부장이 누구인가.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 중의 측근이자,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힌다. 고위급 조문단은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은 북한 당국자들이다. 당일 조문에 그치지 않고 1박2일 체류일정을 택했다. 조문단은 북한이 이명박 정부와의 당국간 대화에 본격 나설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풍향계로 여겨진다. 때마침 북한은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 및 개성공단 등 체류를 제한하는 이른바 12·1 조치를 어제부로 철회했다. 남측 인원들의 군사분계선 육로통행과 북측지역 체류를 원상태로 회복시키기로 한 현대-북한 합의에 따른 후속조치다. 북한의 조치는 일단 남북관계에 변화를 모색하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할 만하다. 북한의 12·1조치나 이번 해제도 모두 북한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생산품 반입이나 원자재 반출이 제때 이뤄지지 못해 물류비용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한다. 3000명 안팎으로 추정되던 공단 상시 체류 인원도 880명으로 제한돼 기업활동에 차질을 빚어 왔다. 정부 당국은 이번 기회에 개성공단을 오가는 길을 일방적으로 막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약속을 북한 측으로부터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이다. 조문단 파견이나 12·1조치 해제가 유화제스처에 그쳐서는 안 된다. 조문단이 고인을 진정으로 기린다면 북한은 당국간 대화에 나서 화해와 협력관계를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조문단의 서울 도착을 계기로 남북 당국간 대화가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이산가족 상봉과 민간 교류도 확대되기를 바란다.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李대통령 “나라사랑 그마음 오래 기억할 것”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李대통령 “나라사랑 그마음 오래 기억할 것”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오전 10시35분쯤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국회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이 대통령은 국회 본청 앞에 도착,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등의 영접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고 김 여사도 검은색 투피스 정장을 입었다. 이 대통령 내외는 곧바로 흰 장갑을 끼고 분향소로 가 헌화와 분향을 한 뒤 애통한 표정으로 묵념했다. 이어 분향소 오른편에 있던 유족들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 문희상 국회부의장, 무소속 정동영 의원, 권노갑 전 의원 등과 악수했다. 이 대통령은 조문록에 ‘나라 사랑의 그 마음 우리 모두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이명박’이라고 적었다. 약 5분간의 조문을 마친 뒤 이 대통령 내외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안내를 받아 국회 본청 3층에 마련된 유족대기실로 이동했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3층 승강기 앞까지 나와 이 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이 여사는 “김 여사님께서도 와 주셨네요. 불편하신데…”라고 예를 갖췄다. 김 여사는 최근 청와대 경내에서 배드민턴을 하다 발목을 삐어 이동할 때마다 다리를 다소 절룩거렸다. 이 대통령은 “(다친 뒤) 오늘 처음 외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뒤 이 여사의 건강을 걱정했고, 이에 이 여사는 “건강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박 의원에게도 “고생이 많다.”고 격려했고, 박 의원은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날씨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어제 비가 와서 걱정했는데 오늘도, 영결식까지도 괜찮다고 합니다.”라고 말한 뒤 이 여사에게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면 잘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김 전 대통령이 국장을 할 만한) 예우를 받을 만한 업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남은 사람의 도리니까.”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박계동 사무총장이 “(영결식에) 외교사절도 많이 온다.”고 말하자 “정부가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입원 전 민주화 동지들과 최후의 오찬

    “하다 못해 벽을 향해 고함을 지르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6월25일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어온 민주화 동지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공개됐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해동(75·전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목사는 21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키면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최후의 오찬’ 당시를 생생하게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즐겨 찾던 서울 신수동에 있는 음식점 ‘거구장’에서 한승헌 전 감사원장,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등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위원들과 오찬을 나누면서 시종 비장한 어조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다고 한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요즘 잘 때 집사람과 손 잡고 기도를 한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나는 늙고 일할 힘도 없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하겠다.”면서 “절대 지지 않는 방법이 있다. 우리가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옳은 건 옳다,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확실히 지는 방법이 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동하라. 투표 바르게 하라. 하다 못해 벽을 향해서 고함을 지르더라도 행동만 한다면 우리는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이 목사는 전했다. 이 목사는 “전에 없이 김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사정을 알아 봤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결정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오뉴월 뙤약볕에 두 시간가량 앉아 계시면서 무리를 했고,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마음의 상처도 컸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한참 동안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쳐다 보면서 “가까이서 지켜 본 그 분은 인간적이고 실력을 갖춘 위대한 분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목사가 그 분과 두 번이나 함께 감옥에 갇혔던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고인이 직접 심은 ‘화합의 소나무’ 운구차 맞아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고인이 직접 심은 ‘화합의 소나무’ 운구차 맞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일 다시 국회를 찾았다. 지난해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이후 1년반 만이다. 그 사이 생과 사는 갈렸다. 이날 국회 앞 마당 대형 국기대에는 조기(弔旗)가 걸렸다. 1967년 제정된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본청 건물 정면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설치됐다. ●98년 대통령 취임때 기념 식수한 소나무 이날 오후 4시30분쯤 운구차가 국회를 들어설 때 국회 잔디광장 한복판에서는 ‘화합의 나무’가 고인을 맞았다. 고인이 1998년 2월 15대 대통령 취임식 직후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기념 식수한 수령 23년생 소나무다. 식수에 사용된 흙과 물은 전국의 명산·명수에서 채집한 것이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온 나라가 하나되는 화합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참배객들은 역경 속에서도 푸르름을 지키는 소나무에서 시련과 질곡을 견뎌온 김 전 대통령의 삶을 떠올렸다. 의회주의자로서 고인과 국회의 마지막 인연을 되새기는 자리이기도 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장을 치르는 국회는 아침부터 분향소 공사로 분주했다. 국지성 호우로 공사가 늦어지면서 당초 예정 시간보다 4시간가량 늦은 오후 4시쯤 공사가 마무리됐다. 분향은 오후 5시쯤부터 시작됐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조문을 마친 뒤 “깊이 애도하는 마음으로 명복을 빈다.”는 짧은 말을 남겼다. 이상득 의원은 “나라를 위해 참 고생만 많이 하다 가셨다.”며 아쉬워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우리나라의 정치 기수이셨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수치 여사 조화… 고은 시인 헌시 바쳐 고인의 오랜 친구이자, 미얀마의 민주투사인 아웅산 수치 여사는 자신이 사무총장으로 있는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를 통해 조화를 보내왔다. 고은 시인은 “당신은 민주주의입니다…민족통일입니다….”라는 내용의 헌시 ‘당신은 우리입니다’를 고인의 영정에 바쳤다. 한편 오후 7시쯤 민주당측에서 고인이 지난 6월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현 정권을 비판한 동영상을 상영하려 하자, 장례 실무를 맡고 있는 행정안전부 측에서 반대하면서 한때 작은 소동이 일기도 했다. 유가족들이 “장례식은 국민 화합과 통합으로 치러야 한다. 특정 정치적인 언행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민주당의 자제를 당부하면서 상황이 정리됐다. 이지운 주현진 김지훈기자 jj@seoul.co.kr
  • 김기남 등 北조문단 DJ 빈소에 헌화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한 북측 사절단 6명이 21일 오후 서울을 방문, 국회에 마련된 빈소에서 조문했다. 북측 조문단은 이날 오후 2시53분쯤 국회에 도착했다. 이들이 도착하자 일부 시민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조문단은 분향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름으로 된 조화를 김 전 대통령 영정 오른쪽으로 옮긴 뒤 영정 앞에 일렬횡대로 서서 묵념했다. 김 비서는 조문을 한 뒤 김 전 대통령 아들인 홍업. 홍걸씨를 비롯한 유족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김원기 전 국회의장, 정동영 의원,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김옥두 전 의원,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 등 약 20명과 악수를 했다. 김 비서는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홍업씨와 가장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홍업씨는 이에 연신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조문이 끝나자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이 김 비서에게 “김형오 국회의장이 차를 한잔 했으면 하신다.”고 말했고, 김 비서는 “그렇게 하시지요.”라고 답했다. 북측 조문단과 김 의장과의 면담에는 정세균 대표, 정세현 김대중 평화센터 부이사장, 홍양호 통일부 차관, 박지원 의원 등이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김 비서는 “환대해 줘서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김 의장이 800 연안호 나포와 관련, “김 위원장이 연안호 어부들에 대해 좋은 지시를 했다고 들었는데 돌아오길 희망한다. 계시는 동안 만나뵐 사람 만나고 편하게 보내시라.”는 말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고인의 북남화합과 북남관계 개선의 뜻을 받들어 할 일이 많다. 저희도 노력하겠다.”고 밝혀 정부 당국과의 접촉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측 대표단은 김 의장 등과 약 30분간 이야기를 나눈 뒤 남측 인사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북측 조문단은 4시 55분쯤 국회를 떠났다. 한편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 30여명은 오후 3시쯤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조문단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6ㆍ25는 남침이다’, ‘겉으로는 조문 핑계, 남북갈등 조장’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북한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으며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글 / 서울신문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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