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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망자의 작별인사/임태순 논설위원

    투병 끝에 숨진 사돈 문상을 갔단다. 50대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등져 아쉬움이 컸다. 빈소 분위기도 무겁고 가라앉아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의외로 차분하고 경건했다. 그 비밀은 잠시 후 밝혀졌다. 빈소 한편에는 고인이 남긴 편지가 확대·복사돼 붙어 있었다. “…여러분들께 받은 사랑과 위로 덕분에 건강할 때는 물론, 긴 투병기간에도 행복했습니다. …죽음은 많은 분들이 이미 간 길이고 또 모두 갈 길이기 때문에 삶을 당연하게 여기듯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사랑하는 사람들, 익숙한 일상과 영원히 헤어진다 생각하면 아득한 느낌인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과의 소중한 인연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고인은 가장 슬퍼할 처와 사랑스러운 딸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리라 생각하니 홀가분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을 격려해 달라는 말로 편지를 맺었다. 깔끔하고 담담하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 이별이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부고] 故 문익환 목사 부인 박용길 장로 별세

    [부고] 故 문익환 목사 부인 박용길 장로 별세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이자 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인 박용길 장로가 25일 오전 1시 30분 별세했다. 93세. 황해도 수안군 출신인 박 장로는 1944년 문 목사와 결혼한 뒤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몸을 바쳤다. 통일맞이·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민화협·통일연대 상임고문과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 명예대표 등을 지냈다. 1995년 6월에 김일성 주석 1주기를 맞아 평양을 방문한 데 이어 2000년 10월에는 조선노동당 창건 55돌 초청 인사로 방북하기도 했다. 2005년 남북 화해 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아들인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박 장로는 문 목사가 그랬듯 각막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목사는 1994년 별세 당시 각막을 기증해 두 명의 환자가 성공적으로 이식 수술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발인은 28일 오전 9시다. 유족으로는 딸 영금씨, 아들 의근(JP모건 시카고 부사장)·성근씨, 며느리 정은숙(성신여대 석좌교수)·김성심씨와 사위 박성수씨가 있다. 장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02)2072-2010.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부고] 허형구 전 법무부 장관 별세

    허형구 전 법무부 장관이 23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85세. 고인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1951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53년 부산에서 검사로 첫발을 뗐다. 1960년에 한옥신·서윤학 검사와 함께 3·15 마산 의거가 공산당의 폭동 선동이라는 경찰의 조작·은폐 시도를 파헤치기도 했다.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등을 거쳐 1981년 제17대 검찰총장에 올랐다. 1988~90년에는 제38대 법무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갑수(80)씨와 아들 병일(그리니치컴 대표)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02)3410-6915.
  • [부고] 영어교육 새 지평… 국보·보물 26점 나라에 바치고

    [부고] 영어교육 새 지평… 국보·보물 26점 나라에 바치고

    지난 1970∼90년대 중·고교생들에게 ‘영어의 바이블’로 통했던 ‘성문영어’ 시리즈의 저자인 송성문(본명 송석문)씨가 22일 오후 4시 30분쯤 별세했다. 80세. 송씨는 2003년 간암 판정을 받은 뒤 8년간 투병 생활을 하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송씨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신의주교원대를 졸업했다. 6·25전쟁 당시 신의주에 들어온 미군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미군 앞에서 중학 영어 교과서를 읽자 미군은 “통역이 되겠느냐. 함께 평양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미군의 통역장교로 일하던 중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을 왔다. 이후에도 국군 통역장교로 근무하면서 영어 검정고시 중등·고등과정에 합격했다. 부산 동아대를 졸업한 뒤 부산고와 마산고, 서울고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안상수 한나라당 전 대표가 마산고 제자 중 한명이다. ●40여년간 1000만부 이상 팔린 시리즈 송씨는 1967년 성문종합영어(당시 정통종합영어)를 펴냈다. 성문각 출판사 사장이 1960년대 중반 송씨를 찾아와 당시 집 한채 살 돈인 200만원을 건네며 “1년 내에 제대로 된 영어 참고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송씨는 때마침 1965년 문교부의 교사 재교육 차원에서 뉴질랜드로 파견됐을 때 모은 영어 교육 자료를 활용해 성문종합영어를 냈다. 이후 성문기본영어와 성문핵심영어로 이어졌다. 이른바 성문영어 시리즈다. 문법과 독해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학생들이 영어 기본을 다질 수 있도록 짜인 성문영어 시리즈는 40여년간 1000만부 이상 팔렸다. 해마다 30여만부가 팔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성문종합영어에 실린 지문이 서울대를 포함한 주요 대학의 본고사에 그대로 출제될 만큼 수준이 높았다. ●30여년 모은 문화재 아낌없이 기증 송씨는 문화재 수집가로도 이름이 났다. 귀중한 고서가 벽지의 초배지로 사용되는 등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해 고서 등의 수집에 나섰다. 30여년간 고서 등 문화재를 모아 국립중앙박물관에 아낌 없이 기증했다. 2003년 대보적경(大寶積經·국보 제246호)을 비롯해 국보 4점과 보물 22점 등의 문화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2003년 문화재 보존에 앞장선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02-3410-6916), 발인은 24일 오전 6시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화순씨와 장남 철(성문출판사 대표)·차남 현(재미)·딸 미선씨가 있다. 장지는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부고] 노태우 오른팔이자 5·6공 ‘특급소방수’ 이춘구 전 의원 별세

    [부고] 노태우 오른팔이자 5·6공 ‘특급소방수’ 이춘구 전 의원 별세

    제11∼14대 국회의원과 옛 민자당 대표를 지낸 지낸 이춘구 전 의원이 20일 별세했다. 78세. 대한민국 헌정회는 이 전 의원이 이날 새벽 숙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직접 사인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군사정권인 5공화국과 6공화국은 물론 김영삼 문민정부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인이다. 육사 14기 출신으로 준장으로 예편한 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직후 국보위 재무위원으로 신군부 세력에 합류, 사회정화위원장을 지냈다. 11대 국회 때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고향인 충북 제천에서 내리 당선돼 4선의 관록을 쌓았다. 고인은 특히 5공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장관을 역임하던 시절 차관으로 일하면서 빈틈없는 업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를 계기로 5공 말 노 전 대통령의 천거로 민정당 사무총장에 전격 기용되면서 여권 실세로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1987년 대선에서는 민정당의 선대본부장을 맡아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다. 이후 5공 청산과 ‘정호용 의원직 사퇴’ 등 정치적 고비 때마다 전면에 등장해 ‘특급소방수’로 불리기도 했다. 고인은 ‘6공 황태자’라고 불린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두고 노 전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한 유일한 여권 인사로, 박 전 장관 처리 문제에 불만을 품고 노 전 대통령 초청 모임에 불참하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1990년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 간 3당 합당에 대해서는 “성급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14대 대선에서 선대위 부위원장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해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도 신임을 받았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1994년에 예상을 깨고 군 출신에다 5·6공 핵심 인사인 고인을 국회부의장에 중용했다. 1995년 민자당 대표, 1996년 신한국당 대표 등을 역임하며 YS 정권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춘자씨와 아들 재용(개인사업), 딸 서영, 사위 권기연(에스에스모터스 대표이사)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 발인은 22일. (02)2258-5971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이춘구 전 민자당 대표 별세

    이춘구 전 민자당 대표 별세

    제 11∼14대 국회의원과 옛 민자당 대표를 지낸 지낸 이춘구 전 의원이 20일 별세했다. 78세. 대한민국 헌정회는 이 전 의원이 이날 새벽 숙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직접 사인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알려졌다. 충북 청원 출신의 고인은 육사 14기로, 준장 예편한 뒤 5·17 직후 국보위 재무위원으로 신군부 세력에 합류, 사회정화위원장을 거친 뒤 1981년 제11대 총선에서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고인은 5공과 6공을 거치며 충북 제천에서 4선을 하며 민정계의 실세로 활동했다. 특히 5공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무장관을 역임하던 시절 내무차관으로 보필하며 신임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1986년 민정당 사무총장에 기용됐다.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평가됐던 그는 1987년 13대 대선 선거대책본부장에 이어 이듬해 노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는 등 6공의 정권인수 작업을 지휘했고 6공이 출범하면서 내무장관에 기용됐다. 고인은 1992년 민자당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14대 대선 당시에도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그 공로로 국회부의장과 민자당 대표를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춘자씨와 아들 재용(개인사업), 딸 서영, 사위 권기연(에스에스모터스 대표이사) 등이 있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 발인은 22일이다. (02) 2258-5971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최동원의 11번’ 영구결번 자격 충분했다

    [스포츠 돋보기] ‘최동원의 11번’ 영구결번 자격 충분했다

    ‘영웅’은 떠났지만 영웅에 대한 추억은 오래 남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아들이 또 그 아들에게 전래 동화처럼 전해지곤 한다. ‘명예의 전당’이나 ‘영구 결번’ 등 인위적 방식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전설’은 이처럼 130여 년 동안 이어져 왔다. 타이 콥,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 루 게릭 등…. 지난 14일 우리의 ‘야구 영웅’ 최동원이 외롭게 세상을 등졌다. 고인을 추모하는 글은 야구 팬사이트 등을 통해 쏟아졌다.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도 애도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15일에도 같은 상황은 계속됐다. 팬들은 극도의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떠난 이를 기리기 위한 후속 조치를 기대했다. 바로 최동원의 또다른 이름인 등번호 11번을 영구 결번으로 남겨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자는 바람이었다. 최동원이 프로 선수 생활 8년 가운데 6년을 보낸 고향팀이자 친정팀 롯데 구단도 이에 부응했다. 다소 머뭇거린 감은 없지 않지만 당연한 조치로 여겨진다. 롯데 장병수 사장은 15일 빈소를 찾아 영정에 헌화하고 유족들을 위로한 뒤 “고인은 롯데의 영원한 에이스”라며 “오는 30일 사직 두산전을 ‘최동원의 날’로 정하고 고인의 업적을 기릴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고인의 등번호 11번을 영구 결번하고 롯데 선수 시절 활약상이 담긴 영상을 특별 제작해 전광판에 상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20여년간 지속돼 온 롯데와 최동원의 ‘불편한 관계’는 최동원이 고인이 된 뒤에야 비로소 해소된 모습이다. 롯데와 최동원의 소원한 관계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동원은 1988년 선수들의 권익 옹호를 위한 단체인 ‘선수협의회’ 창립을 주도하면서 구단의 미움을 샀다. 향후 선수노조로 발전할 것을 우려한 롯데는 그를 주동자로 낙인 찍고 삼성으로 트레이드했다. 최동원은 2년간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쓸쓸히 선수 생활을 접었다. 불세출의 스타였지만 지도자의 길은 더 험난했다. 선수협의회 주동자로 몰려 고향팀에서 버림받은 그를 다른 팀에서 받아 줄 리 없었다. 이후 방송출연, 정치계 등 다른 길을 모색했지만 결국 은퇴 10년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그를 받아 준 곳은 한화였다. 한화 코치로 활동한 5년이 지도자 경력의 전부다. 꿈에 그리던 고향팀 감독은 언감생심이었다. 최동원의 영구 결번 자격은 충분했다. 30년 프로야구사에서 영구 결번의 영예를 안은 선수는 9명에 불과하다. OB 김영신(54번)을 첫 주인공으로 해태 선동열(18번), LG 김용수(41번), OB 박철순(21번), 삼성 이만수(22번)·양준혁(10번), 한화 장종훈(35번)·정민철(23번)·송진우(21번) 등이다. 김영신은 1986년 사고로 숨진 것을 애도하며, 다른 선수들은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최동원은 1984년 무려 27승을 쌓으며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챙겨 롯데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또 롯데 최초의 MVP로 손민한이 MVP를 차지할 때까지 21년간 구단 유일의 MVP였다. 이제 최동원을 추억할 구단 차원의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명예의 전당 등 팬과 야구인을 위한 ‘추억의 장’을 적극 추진해야 할 적기를 맞았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무쇠팔 投魂…천상의 마운드로 ‘부활 등판’

    무쇠팔 投魂…천상의 마운드로 ‘부활 등판’

    한국 프로야구의 큰 별이 또 졌다. 장효조에 이어 또 하나의 ‘전설’이 일주일 새 거푸 50대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지면서 야구계와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다음은 누구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스스로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경종이 스포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음에 꼭 던지겠다” 했는데… 경기 일산병원은 1980년대 프로야구를 풍미했던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이 14일 오전 2시 2분쯤 지병인 대장암으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53세. 고인은 한화 코치로 있던 2007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병세가 호전돼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병세가 다시 악화되면서 요양 생활을 해왔다. 최동원은 지난 7월 22일 목동에서 열린 경남고-군산상고의 ‘레전드 매치’에 경남고 대표로 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다음에는 꼭 던지겠다.”며 투병 의지를 보였다. 고인의 막내 동생인 최수원 KBO 심판은 “최근 의식이 없는 상태였지만 잠시 눈을 뜨면 ‘괜찮다. 괜찮다’고 가족을 위로할 만큼 마지막까지 정신력을 보였다.”면서 “사흘 전부터는 아예 의식이 없었던 탓에 남긴 말은 없다.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의 별세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30여년 동안 ‘절친이자 맞수’로 지내온 이만수 SK 감독 대행은 “어제도 병원에 들렀다. 의식이 없다가 잠시 눈을 떠 알아본 뒤 또 의식이 없어졌다. 새벽까지 걱정으로 잠을 못 잤는데….”라고 침통해하면서도 “50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한 최고의 투수”라고 말했다. ●김경문·정동영 등 각계 조문 지난 7일 ‘타격 천재’ 장효조에 이어 이날 ‘무쇠팔’ 최동원마저 잃은 팬들은 애도의 글을 쏟아냈다. 야구 팬사이트 등에는 “당신은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웅이었다.”, “거인의 심장을 잃었다.”는 등 고인을 추모하면서 롯데 구단이 최동원의 등번호(11번)를 ‘영구 결번’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을 이뤘다. 롯데는 추모소를 사직구장 2층의 자이언츠 박물관에 마련하고 15일부터 조문을 받기로 했다. 고인이 생전에 기증한 유품을 진열하고 현역 시절 영상도 상영할 예정이다. 고인은 현재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모태인 선수회 창립을 주도하다가 롯데에 ‘미운털’이 박혀 1988년 11월 삼성 김시진과 보복성 트레이드됐다. 1990년까지 통산 103승 7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성적으로 은퇴했다. 이후 한화 코치 등으로 활동했으나 그렇게 희망했던 고향팀 감독의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빈소에는 김경문 NC초대 감독, 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 야구·정계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이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 자유로청아공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씨와 군 복무 중인 아들 기호씨가 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부고] ‘영원한 3할 타자’ 이젠 전설로 남다

    [부고] ‘영원한 3할 타자’ 이젠 전설로 남다

    병마와 사투를 벌여온 ‘한국야구의 전설’이 끝내 세상을 등졌다. 그를 떠나보낸 야구계와 팬들의 추모 물결이 온종일 이어졌다. 장효조 프로야구 삼성 2군 감독이 7일 오전 7시 30분 별세했다. 55세. ●근면함 빛나던 타격 천재 장 감독은 올스타 브레이크 전후인 지난 7월 갑자기 살이 빠지는 증세로 서울 삼성의료원을 찾았다가 위암과 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판정을 접하고 동아대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해왔다. 자존심이 강하기로 소문난 장 감독은 치열하게 투병하면서 지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길 싫어했다. 장 감독은 후반기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양일환 2군 투수코치가 팀을 이끌어왔다. 장 감독의 대구상고-한양대 후배인 이만수 SK 감독 대행은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전화해 찾아간다고 했더니 거절했다. 자존심이 센 분이라 후배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단지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역시 고교, 대학에서 함께 뛴 김시진 넥센 감독은 “천부적인 타격 소질도 빛났지만 숙소에서도 끊임없이 스윙하던 근면함이 장효조를 타격의 달인으로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삼성 홈페이지 등 각종 야구 팬사이트에는 “역대 한국 최고의 타자를 잃었다. 그의 스윙은 재능을 넘어 예술의 경지였다.”, “프로야구가 좀 더 일찍 출범했다면 더 많은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이제는 코치로도 영영 볼 수가 없게 됐다니 슬프다.” 등 애도의 글이 봇물을 이뤘다. 다부진 체구(173㎝)에 좌타자인 고인의 위상은 숱한 수식어로도 감지된다. ‘타격의 달인’, ‘타격 기계’, ‘타격 천재’, ‘안타제조기’, ‘영원한 3할 타자’ 등. 특히 ‘방망이를 거꾸로 쥐고도 3할을 친다.’는 말은 그에게서 비롯됐을 정도다. ●통산 타율 .331… 4번이나 타격 1위 실업야구 롯데에서 이름을 날렸던 고인은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심 타자로 우승을 이끈 뒤 1983년 고향팀 삼성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첫해 타율 .369를 시작으로 1985년(.373), 1986년(.329), 1987년(.387) 등 네 차례나 타격 1위에 등극하는 등 1991년까지 무려 8번이나 3할타를 기록하며 명성을 이어갔다. 1989년 롯데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1992년까지 10년간 선수로 활약했다. 961경기에 나서 3050타수 1009안타로 통산 타율 .331은 한국프로야구사의 ‘불멸의 기록’으로 통한다. 지난 7월 잠실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프로야구 30년을 빛낸 10명의 레전드 올스타 중 한 명으로 당당히 뽑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1992년 롯데에서 은퇴한 뒤에는 롯데, 삼성에서 후진을 양성해왔다. 빈소는 부산 동아대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9일 오전이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이제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노동자는 단결해야 삽니다. 하나가 되세요. 하나가 되면 삽니다. 하나가 되면 이깁니다.” 2009년 서울노동자대회 당시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호소하던 이소선 여사의 모습은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설치된 영정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이 여사가 눈을 감은 지난 3일 오후 4시부터 빈소에는 고인을 기리기 위해 정치권과 시민사회 인사, 학생, 시민 등 각계각층에서 찾아온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이 여사와 뜻을 함께했던 진보진영의 인사들이 차례로 방문했다. 빈소가 차려진 지 이틀째인 4일 이재오 특임장관을 비롯해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이부영 전 의원 등 정치인들과 한승헌 전 감사원장, 법륜 스님, 연예인 김제동 등 각계 인사들이 찾아 고인을 기렸다. 이 장관은 “어머니는 자상하고 정이 많고 옳다고 생각하면 흔들리지 않는 분이셨다.”면서 “노동 후배들을 거두고 도망다니면 숨겨 주신 민주화운동의 대모였다.”고 기렸다. 앞서 지난 3일에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빈소를 찾아 “이제 어머니가 투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서 편안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면서 “노동자들이 기 펴는 세상,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이 여사와 함께 오랜 시간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각별한 인연을 소개하며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1970~80년대 암울했던 시기 우리 모든 국민의 어머니셨다.”면서 “영면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희들이 그 동안 그분의 뜻을 받아서 잘했는지 많이 반성이 된다.”고 밝혔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전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도 이 여사의 빈소를 찾았고,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문수 경기지사도 유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전태일 열사를 연기한 배우 홍경인도 빈소를 찾아 “전태일 열사의 인간적 모습을 그리고자 어머니께 많이 여쭤봤었다.”면서 “그때 전 열사와 닮았다고 하시면서 친어머니처럼 대해 주셨다.”고 만남을 기억했다.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도 추모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 여사를 위한 추모 트위터 계정(@sosun0903)이 만들어졌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작은 몸으로 많은 일을 해내셨으면서도 개인적인 욕심이 없으셨다. 이런 분이 진짜 성자다.” “이제 모든 것 산 자들에게 맡기시고 편히 잠드소서.”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부고] 원로 국악인 백대웅씨

    원로 국악인 백대웅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가 13일 오전 5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68세. 국악 작곡 1세대인 고인은 중앙대 음대 학장과 한예종 전통예술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그는 서양식 오선보를 국악에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등 한국음악과 서양음악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7현 가야금을 위한 산조’ 등을 작곡했다. 저술 활동도 활발히 해 ‘한국전통음악의 선율구조’ 등을 남겼다. 1986년 문예진흥원 대한민국작곡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희경씨와 아들 이백(재미 변호사)·딸 이연(고려대 언어연구소 연구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201호이며 발인은 15일 오전 9시. (02)923-444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고]

    ●권기진(전 서울신문 출판본부장)씨 부인상 성하(에버피아 부장)정하(딜로직 조직부장)씨 모친상 7일 중국, 빈소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3410-3153 ●최기완(서울신문 관악지국장)씨 모친상 8일 신길동 성애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844-6942 ●김이경(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차장)씨 부친상 8일 적십자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2002-8479 ●권영진(한나라당 국회의원)영근(연세대 교수)영태(사업)씨 부친상 8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1일 오전 5시 (02)2227-7580 ●고형진(전 신한은행 관리역)씨 모친상 한흥섭(전 한국상업은행 상무이사)김순동(사업)김용운(세무사)홍윤화(현대증권 부장)씨 장모상 8일 고려대안암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923-4442 ●손홍섭(구미시의원)씨 모친상 8일 구미차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54)452-1974 ●박기환(한국예탁결제원 펀드결제팀 파트장)씨 모친상 8일 일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31)900-6953 ●최준식(미국 켄터키대 박사과정)현아(한양대 건축학부 겸임교수)현민(이탈리아 시에나대 교수)씨 부친상 김종원(중산고 교사)씨 장인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3010-2261 ●김정기(코스콤 경영지원부 부부장)씨 부인상 7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2)2001-1093 ●정운준(전 한국외환은행 서소문지점장)씨 별세 형화(JL메디텍 대표이사)씨 부친상 김현철(연세대 중어중문과 교수)한재훈(연세대 경영학과 〃)씨 장인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2)3010-2295 ●김정훈(수출입은행 부부장)씨 장인상 8일 서울 동부병원, 발인 10일 오전 10시 (02)929-5654 ●최충옥(경기대 교수)충웅(전 문화일보 차장)정순(웅진그룹 인재개발원장)충원(공인중계사)씨 모친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20분 (02)3410-6901
  • [부고] 영화음악 작곡가 이철혁씨

    이철혁(본명 이경수) 한국영화음악작곡가협회 회장이 8일 오전 5시 25분 별세했다. 77세. 전남 영암 출생인 고인은 1971년 영화 ‘아름다운 팔도강산’을 시작으로 ‘푸른교실’(1976), ‘감자’(1987), ‘싸울아비’(2001) 등 40년간 400여편에 이르는 영화음악 작업을 했다. 1992년에는 317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해 기네스북 예술장르 부문 영화음악 편에 ‘최다 작곡 기록 보유자’로 등재됐다. 대중가요도 많이 남겼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편곡한 것을 비롯해 최정자의 ‘처녀농군’, 김상희의 ‘빗속의 연가’, 패티김의 ‘추억 속에 혼자 걸었네’, 정훈희의 ‘풀꽃반지’ 등을 작곡했다. 유족은 부인 김희자씨와 2남 1녀. 차남 태규씨는 200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대종상영화제 음향상을 받았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5실. 발인은 10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양평군 팔당공원묘지. (02)923-4442.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부고] 홍인덕 원불교 종사 열반

    [부고] 홍인덕 원불교 종사 열반

    홍인덕 원불교 종사가 7일 노환으로 열반했다. 84세. 1927년 9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55년 원불교에 입교했다. 원불교의 대표적 후원단체인 삼삼회와 보은회를 세워 교단 후원에 앞장섰다. 원불교의 6단계 법위 가운데 대각여래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출가위(종사)에 올랐다. 장례는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러진다. 빈소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30분. 장지 전북 익산시 왕궁면 동봉리 영모묘원. (02)3410-6918.
  • [부고] 신진 극작가 안현정씨

    [부고] 신진 극작가 안현정씨

    차범석희곡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던 신진 극작가 안현정씨가 지난 4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35세. 고인은 23살이던 1999년 ‘어둠 아기 빛 아기’로 제1회 옥랑희곡상을 받으며 등단, 뮤지컬 극본 ‘크리스마스 캐롤’ ‘달콤한 안녕’ 등을 썼다. 2008년에는 남장(男裝)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동성애 문제를 재치있게 풀어낸 뮤지컬 극본 ‘드림 가이’로 제2회 차범석희곡상을 받았다. 빈소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발인 6일 오전 11시. (02)2258-5971.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안현정 요절, ‘막돼먹은… ’ 개막 전 별세 애절함 더해

    안현정 요절, ‘막돼먹은… ’ 개막 전 별세 애절함 더해

    극작가 안현정씨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 안타까움을 남겼다. 지난해부터 충수암 투병생활을 해왔던 안현정 작가가 4일 오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서울 서초구 반포동 )에서 별세했다. 안현정 작가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막돼먹은 영애씨’ 뮤지컬 극본을 집필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개막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 애절함을 더했다. 안 작가는 1999년 ‘어둠 아기 빛 아기’로 옥랑희곡상을 받으며 등단, 2007년 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 2008년 뮤지컬 극본 ‘드림 가이’로 차범석희곡상을 받는 등 1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4호실. 발인은 8월6일 오전 11시. 사진=안현정 블로그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하용조 목사 애도 물결

    하용조 목사 애도 물결

    고(故) 하용조 목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에는 3일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 각계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활짝 웃는 고인의 영정을 보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임태희 대통령실장, 박인주 사회통합수석 등과 함께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 대통령은 조문록에 “목사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남들이 100년 할 일을 60 평생에 이뤘습니다. 우리 모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빈소에는 이용훈 대법원장과 김준규 전 검찰총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이 고인의 마지막길을 함께했다. 또 노사연, 심은하, 최경주, 이영표 등 연예인과 운동선수 등도 조문했다. 하 목사의 장례는 교회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예배는 4일 오전 9시 온누리교회 본당에서 진행된다. 장지는 강원도 문막 온누리 동산이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문화·문서선교 새 장 연 ‘한 알의 밀알’

    문화·문서선교 새 장 연 ‘한 알의 밀알’

    “설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고집스럽게 마이크 앞에 섰던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가 2일 오전 8시 40분 서울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65세. 고인은 전날 새벽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엄숙한 설교의 틀을 깨고 팝, 패션쇼, 심지어 댄스까지 끌어들이며 ‘열린 선교’ ‘문화 선교’ 개념을 도입한 그는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치 목사’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녔다. ●이 대통령 조화… 각계 조문 줄이어 서울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본당 두란노홀에 마련된 빈소에는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조화를 보냈다. 생전의 폭넓은 인맥이 말해주듯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등 종교계 인사들은 물론 배우 엄지원 등 연예인, 기업인, 스포츠 스타들의 발길도 줄을 이었다. 고인은 1946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건국대와 장로회신학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0년 개신교 출판사 두란노서원을 설립했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닉 부이치치의 ‘허그’ 등 일반 독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던 베스트셀러가 여기서 나왔다. 고인의 이름 앞에 ‘문서 선교’ 개척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85년, 서울 한남동 한국기독교선교원에서 12 가정을 모아 놓고 기도를 올렸다. 오늘날 교인 수만 7만 5000명에 이르는 온누리교회의 시작이었다. ‘온 세상을 위한 교회’라는 이름처럼 고인은 해외 선교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저 유명한 ‘러브 소나타’이다. 2007년 일본에서 한류와 선교를 결합시킨 ‘문화 선교’를 시도한 것이다. ●교회 변질 질타… 대선때 MB 지지 논란 2003년에는 비전 ‘29장’(Acts29)을 발표했다. 28장으로 끝나는 사도행전의 다음 장을 온누리교회가 앞장서 실천하자는 의미였다.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운동을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지난해 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개혁이란 결국 본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수를 10년 이상 믿으면 변질되고 교회도 10년이 넘으면 비뚤어진다. 성경으로 돌아가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며 한국 교회를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하지만 2007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며 이명박 당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논란의 복판에 서기도 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동… 간암 투병 왕성한 행보와 달리 그의 별명은 ‘걸어다니는 종합병동’이었다. 대학 때 폐결핵을 앓은 것을 시작으로 늘 병을 달고 다녔다. 1980년대 간암 판정을 받고 소천하기 전까지 암 수술만 일곱 차례나 받았다. 하지만 그는 “건강이 나빠 일을 못한 적이 없다. 다만 한계와 분수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까불지 않게 됐다.”고 말하곤 했다. 지난 5월 17일 트위터에 남긴 마지막 글도 “바쁘다는 것과 피곤하다는 것은 다르다. 의무적으로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에는 바쁘지 않더라도 피곤할 뿐이다.”라는 내용이었다. ●트위터에 남긴 마지막 글 화제 유족으로는 부인 이형기씨와 1남 1녀가 있다. 발인예배는 4일 오전 9시 서빙고 본당에서 열린다.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담임목사,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 김지철 소망교회 담임목사 등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장례위 측은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조화와 조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장지는 강원 원주시 문막읍 온누리동산이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정주영·이어령 세례… 정용진·봉중근 주례

    고(故)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는 유명인사들과의 ‘인연’이 많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숨을 거두기 직전 세례를 해준 이가 고인이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던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외치며 돌연 신자가 돼 나타났을 때도 2007년 7월 하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뒤였다. 이 전 장관은 2일 빈소를 찾아 “목사님은 돌아가셨지만 한 알의 밀알처럼 많은 생명을 살리셨다.”면서 “저도 그중 하나”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 슬럼프에 빠진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에게 힘을 준 일화도 유명하다. 훗날 박 선수는 “인생 마무리를 잘해야 하듯 야구인생도 끝마무리를 잘한다는 심정으로 공을 던지라.”는 하 목사의 조언을 듣고 다시 용기를 냈다고 고백했다. 고인의 주례사를 들으며 결혼한 인사들도 많다. 지난 5월 재혼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봉중근 프로야구 선수가 그 예다. 결혼식 주례는 서지 않았지만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와도 절친했다. 고인과 각별했던 연예인들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조의를 표시했다. 배우 한혜진씨는 “그 사랑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썼고, 작곡가 주영훈씨는 “마지막까지 설교하다가 떠나시고 싶다더니 주일 설교를 마치고 가셨네요. 벌써부터 그립습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부고] 진채호 배설선생사업회 회장

    [부고] 진채호 배설선생사업회 회장

    사단법인 배설(베델)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송암 진채호 선생이 26일 뇌출혈로 별세했다. 84세. 1928년 경남 마산에서 독립운동가 진치언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민족정기수호중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인 배설 선생에 대한 편저 등을 통해 구한말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배설 선생의 생애와 공적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또 배설 언론상을 제정해 정도를 추구하는 언론을 격려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씨와 아들 영수·현우씨, 딸 정행씨와 사위 이용신씨가 있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은 대학병원에 기증할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일병원에 마련됐다. 장례 예배는 28일 오전 7시 30분. (02)901-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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