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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땅의 딸들에 인권 남기고 떠난 ‘대모’

    이 땅의 딸들에 인권 남기고 떠난 ‘대모’

    ‘여성운동계의 대모’인 박영숙(81) 전 평화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이 암투병 끝에 17일 오전 4시 50분 경기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별세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박 전 대행은 해방의 혼란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광주에 정착했다.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공적인 어머니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 운동에 뛰어들었다. YWCA연합회 간사를 시작으로 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등을 거치며 국내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특히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여성 인권 유린사건이었던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때 여성단체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99년에는 우리나라 시민사회의 첫 공익재단인 ‘한국여성재단’을 만들어 이후 아름다운재단과 환경재단 등 국내 공익재단이 줄지어 등장하는 데 기틀을 마련했다. 재야에 있던 박 전 대행은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만든 평민당의 전국구 1번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정치권의 격랑 속에서 정치력을 발휘하며 평민당 부총재와 총재 권한대행,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늘 푸근한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따끔한 충언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평민당 부총재 시절 DJ에게 쓴소리하는 역할을 자주하자, DJ가 “박 부총재는 어떻게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소리만 하느냐”고 하소연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한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안철수재단(현 동그라미 재단) 이사장을 맡아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예비후보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일찍이 환경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을 맡았다. 또 여성재단 이사장 시절에는 ‘100인 기부릴레이’를 주도하는 등 기부문화의 전도사로 활동했다.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릿지 두런두런’을 창립했으며 장학재단 ‘살림이’ 이사장을 맡는 등 사회공헌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비롯해 국민훈장 모란장,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올해의 환경인상’, ‘올해의 여성상’ 등을 수상했다. 1996년 별세한 민중신학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안병무 전 한국신학대 교수가 배우자였다. 여러 자리를 거치며 역할을 다했던 박 전 대행은 평소 주변에 “어떤 일이든 첫사랑을 하듯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행의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02-2227-7550)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 유족으로 외아들인 안재권(45·번역가)씨가 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기간산업까지 ‘甲의 횡포’ 논란

    ‘밀어내기’ ‘일방적 계약 해지’ 등 산업계 전반을 지배하던 고질적 ‘갑(甲)의 횡포’가 공론화되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갑을 관계’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졌던 주유소와 이동통신 대리점들도 잇따라 문제 제기에 나섰다. 전국 자영주유소 대표들의 모임인 한국자영주유소연합회(이하 ‘한자련’)는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A사를 상대로 정원철 한자연 회장의 손해배상 청구 대표소송 3차 공판을 가졌다. 재판의 내용은 2년 전인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자연에 따르면 A사는 “4월 초가 되면 기름값이 많이 오른다”며 주유소들에 재고를 남기지 않고 기름을 가득 채울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실제로 기름값은 정부의 압력으로 지난 4월 7일부터 3개월간 한시적으로 ℓ당 100원씩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주유소들이 상대적으로 기름을 비싸게 사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한자련의 대표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재판이 주목받는 것은 정유업계의 ‘사후정산’ 관행 때문이다. 사후정산은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유가를 정하지 않고 제품을 공급한 뒤 1~2주쯤 지나 가격을 통보해 정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주유소들이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어 가격 협상에서 정유사에 열세에 놓이다 보니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정유사들이 자사 대리점을 늘리기 위해 ‘폴 전쟁’에 나설 때만 해도 주유사업자들은 ‘갑’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주유소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둘 간의 위상이 바뀌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A사는 “유류 제품은 유통기한이 없어 ‘밀어내기’가 불가능하고 사후정산도 하고 있지 않다”면서 “대표성이 없는 일부 주유소들이 갑을 관계와 무관한 재판을 끌어들여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동통신업계 B사 대리점들도 본사 측의 강제 할당 등 횡포가 극에 달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최근 B사 피해자모임은 “B사가 주기적으로 무리한 판매 목표를 설정하고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각종 금전적 불이익과 강제로 권역을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B사가 한 달에 실제로 팔 수 있는 물량의 5~10배까지 매출 목표를 설정한 뒤, 이를 채우지 못하면 판매보조금 지원 액수를 줄이거나 대리점 지위를 빼앗기도 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B사는 이미 법원과 공정위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안을 두고 일부 계약 해지 대리점주들이 (갑을 관계 논란에 편승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한편 전통주 제조업체 배상면주가의 한 대리점주가 본사의 물량 밀어내기 피해를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것과 관련, 전국 중소상인·자영업자 생존권 사수 비상대책협의회는 빈소가 마련된 경기 부천의 한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기업의 고질적인 횡포를 정확히 조사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자 진상규명 대책 모임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부고] 진폐증 석탄광부 돌본, 예방의학 권위자 조규상 교수

    예방의학 분야의 권위자인 조규상 가톨릭대 명예교수가 1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서울대 의과대학을 나온 고인은 1958년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를 시작으로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무원장, 가톨릭대 의과대학장을 거쳤다. 진폐증으로 고통받는 석탄광부들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재해병원을 건립, 산업의학의 기초를 세웠다. 대한의학협회 예방의학회장, 국제산업의학협회 한국대표, 세계보건기구(WHO) 산업보건 자문위원, 아세아 산업보건협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국제 키비탄 한국지부 총재, 가톨릭 맹인선교회 후원회장 등으로 활동해 로마교황청 그레고리오 은성 대훈장을 받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하윤자 여사와 아들 용현(여의도성모병원 비뇨기과 교수), 딸 영자·미자·혜자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영결식은 16일 오전 9시 가톨릭대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가톨릭대 의과대학장으로 열린다. (02)2258-5940.
  • [부고] 진재순 한일건설 회장

    진재순 한일건설 회장이 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76세. 고인은 대우건설의 국내영업 본부장과 국내건설 부문 사장 등을 역임하고 1999년 말 은퇴해 2000년 한일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재직 당시 대우건설의 공공공사 수주 실적을 대폭 개선했고 한일건설에서는 해외사업을 맡아 리비아 진출 등을 진두지휘했다.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과 연세대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명혜씨와 딸 보형(서울대 치과대학 교수), 주원씨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8시. (02)2227-7500.
  • [부고] ‘은율탈춤’ 중요무형문화재 민남순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제61호 ‘은율탈춤’ 명예보유자 민남순씨가 7일 오후 7시 별세했다. 73세. 고인은 1969년 은율탈춤에 입문한 이래 국내외 공연에 참여하고 대학과 사회단체에서 은율탈춤을 보급하는데 앞장서 왔다. 2002년 4월 25일 노승·새맥시·상좌·악사의 탁월한 기예를 인정받아 은율탈춤 보유자로 인정됐고, 지난해 7월 23일에는 명예보유자가 됐다. 은율탈춤은 사자춤·상좌춤·8목중춤·노승춤·영감과 할미광대춤의 6마당으로 구성돼 있으며 다른 탈춤에 비해 양반을 풍자하는 대목을 더욱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빈소는 인천 주안사랑병원이며, 발인은 9일 오전 7시. (032)875-9953.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부고] 의료계 ‘거목’ 박영하 을지재단 설립자

    [부고] 의료계 ‘거목’ 박영하 을지재단 설립자

    우리나라 의료 인재양성에 헌신한 범석(凡石) 박영하 을지재단 명예회장이 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평양 제3중학을 거쳐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고인은 1956년 서울 을지로에 ‘박영하 산부인과의원’을 개원하면서 을지의료재단의 초석을 놓았다. 1967년 ‘재단법인 을지병원 유지재단’을 세워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병원의 공익화를 이끌었다. 1994년엔 일본에서 투병 중이던 프로레슬러 김일 선생을 모셔 2006년 임종 때까지 무료로 진료하기도 했다. 또 1997년 사재 10억원을 털어 장학재단을 설립, 매년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학술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을지의료원은 4개 병원(을지병원·을지대학병원·금산을지병원·강남을지병원)과 2곳의 대학캠퍼스를 가진 교육·의료 재단으로 성장했다. 1999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8년 무궁화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증희 여사와 아들 준영(을지대 총장), 딸 준숙(범석학술장학재단 이사장)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에, 분향소는 대전 을지대병원에 마련됐으며, 8일 오후부터 조문을 받는다. 발인은 10일 오전 8시다. 장의집행위 (02)970-8400.
  • [부고] 남사당놀이 명예보유자 남기환씨

    [부고] 남사당놀이 명예보유자 남기환씨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명예보유자인 남기환씨가 6일 오전 4시 10분 부천 가은요양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73세. 고인은 남사당놀이의 저본을 남긴 남운룡 선생의 아들로 어린 시절 남사당패에서 무동(舞童)으로 시작해 풍물·상모 놀이·인형제작 등 다양한 기·예능을 연마했다. 1993년 8월 2일 꼭두각시놀음·덧뵈기(탈놀이)·풍물의 탁월한 기예를 인정받아 남사당놀이 보유자로 인정됐고, 2008년 7월 29일 고령으로 명예보유자가 됐다. 남사당놀이는 꼭두쇠(우두머리)를 비롯해 최소 40명에 이르는 남자들로 구성된 유랑연예인인 남사당패가 조선 후기부터 1920년대까지 농어촌을 돌며 행했던 놀이다. 빈소는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8일 오전 7시. (032)340-7300.
  • [부고] ‘조규천·규만·규찬 어머니’ 가수 유성희씨

    가수 겸 작곡가 조규천·규만·규찬 형제의 어머니인 가수 유성희(본명 유난옥)씨가 6일 별세했다. 74세. 고인은 1960년대 활발한 활동을 펼친 포크 가수로 ‘삼각산 손님’, ‘열아홉 순정’ 등을 만든 가수 겸 작곡가 나화랑(본명 조광환)씨와 결혼했다. 1960년 남편이 작곡한 송민도 원곡 ‘사랑은 즐거운 스윙’의 리메이크곡으로 데뷔한 그는 이후 ‘내고향’, ‘양산도 부기’, ‘코스모스 피고 져도’, ‘영원히 내 가슴에’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발표했다. 고인은 지난 3일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미국 유학 중이었던 조규찬은 지난 5일 급히 귀국해 고인의 임종 전에 두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세 형제와 딸 윤희·수진씨, 사위 문준기(삼무건설 과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8일 오전 7시. (02) 3010-2293.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부고] 47개월 최장수 육군참모총장 이세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2기)로, 제21대 육군참모총장(1975년 3월∼1979년 1월)을 지낸 이세호 예비역 대장이 28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고인은 1946년 육사 2기로 임관한 이후 37사단장, 28사단장, 육군보병학교장, 육군사관학교장, 6군단장, 주월 한국군사령관, 제3군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또 1969년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취임해 1973년 철수할 때까지 4년 동안 1100여회의 대대급 이상 대부대 작전, 57만여회의 소부대 작전을 지휘했다. 베트남 철수 이후에는 제3야전군 창설 준비위원장으로 야전군을 창설하고 초대 3군사령관을 지냈다. 고인은 1975년 3월부터 1979년 1월까지 47개월간 육군참모총장을 맡아 역대 최장수 총장직 수행 기록을 남겼다. 재임기간 대전차 방어를 위해 토우중대를 창설했고 적 지하갱도 탐지 능력을 보강할 목적으로 시추 장비를 도입했다. 또 교육참모부를 신설하고 예비군 전력화를 완성하는 등 향토 방위력을 강화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태극 무공훈장(1회), 충무 무공훈장(4회), 을지 무공훈장(2회), 화랑 무공훈장(1회)을 수상했다. 육군은 유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고인의 영결식을 30일 오전 10시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조정환 육군참모총장을 장의위원장으로 하는 ‘육군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유족은 오영숙 여사와 3남 2녀.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6시. 고인은 국립 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 안장된다.(02)2258-5940.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고라니 로드킬 막으려다 달려온 차에 치인 경찰관 가로등만 있었더라면…

    고라니 로드킬 막으려다 달려온 차에 치인 경찰관 가로등만 있었더라면…

    다친 고라니가 도로에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뒤에서 달려오던 차량에 치여 순직했다. 이 경찰관은 요양병원에 입원한 홀어머니를 돌보려고 어머니가 있는 지역 파출소 근무를 자원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28일 경기 여주경찰서에 따르면 산북파출소 소속 윤태균(52) 경위는 지난 26일 오후 9시 40분쯤 “고라니가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여주군 산북면의 98번 국도로 출동했다. 윤 경위는 신고자와 만나 다친 고라니를 길가로 옮기고 도로 한쪽에 서서 동료를 기다리던 중 뒤에서 달려오던 차량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당시 가해 차량 운전자 박모(52)씨는 시속 60㎞가량으로 운전, 규정 속도 위반이 아니었으며 음주 운전도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경찰은 사고가 난 시간대의 국도 인근에 가로등이 없어 어두웠던 게 사고의 주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윤 경위는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천식 등을 앓아 인근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홀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1년여 전 산북파출소 근무를 자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동료 경찰관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본거지인) 인천에서 여주까지 넘어와 일할 만큼 효심이 지극했던 경찰이었다”며 애통해했다. 한편 윤 경위는 경감으로 한 계급 추서됐으며, 빈소는 여주읍 오학리의 학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29일 오전 10시 여주경찰서 주차장에서 엄수되며 안장식은 오후 3시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된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부고] 동교동계 거목 ‘사무라이’ 김영배 전 국회부의장

    동교동계 원로로 6선 의원을 지낸 김영배 전 국회 부의장이 2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군사정부와 여당에 대한 의연한 태도와 짙은 눈썹 등으로 ‘사무라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1987년 당시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무렵 신민당에서 당론에 반대하는 내각제 개헌을 주장한 이철승·이택희 두 사람의 제명을 앞장서 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1932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영등포공고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연합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1979년 10대 국회에 당선된 뒤 11대를 제외하고 서울에서만 6선을 기록하면서 입지전적인 정치인으로 불렸다.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김대중 후보 진영에 합류하면서부터 동교동계 거목으로 성장했다. 15대 국회에서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고,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후보 확정 이후 탄탄대로였던 그의 정치인생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단일화협회 소속으로 탈당했으며, 국민경선을 사기극이라고 폄하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03년 1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그해 3월 의원직을 사퇴했다. 고인은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는 일석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장학사업에 힘써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창례 씨와 장남 종수(재현인텍스 소장), 장녀 혜경(주식회사 설악 대표이사), 사위 팽헌수(한국마리나협회 수석자문위원)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이대 목동병원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6시30분. 6·25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한 고인은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된다. (02)2650-2743.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부고] ‘광복군 훈련대장’ 애국지사 전리호 선생

    애국지사 전리호 선생이 지난 2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91세.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4년 1월 일제의 의해 평양42부대 학도병으로 징집됐다. 그해 5월 일본군에서 탈출해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한국광복군훈련반 훈련대장을 지내면서 정보교육을 담당했다. 정부는 1990년 고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광희 여사와 아들 경만·경원씨, 딸 영화·영수·영림씨가 있다. 빈소는 전북 군산 중앙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11시, 장지는 군산 인피면 봉화공원. (063)464-0004.
  • [부고] 독도의용수비대 김영복 선생 별세

    평생을 독도 수호에 헌신해 온 독도의용수비대 김영복 선생이 지난 25일 오후 8시 별세했다. 84세. 담도암을 앓아온 고인은 그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가 영면했다고 유족들이 전했다. 이로써 현재 생존해 있는 의용수비대원은 5명이다. 고인은 6·25 전쟁에서 부상해 1954년 3월 전역한 뒤 울릉경찰서 경찰관으로 특채됐다. 그해 12월 31일까지 독도의용수비대원으로 독도수호 활동을 해 왔다. 1955년부터는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원으로 근무했으며 1961년부터 1974년 10월 퇴직 때까지 울릉도와 독도 해상을 경비하는 화랑호 선장과 정장으로 근무했다. 1996년 공로를 인정받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빈소는 경북 포항 선린병원 장례식장 2분향소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 (054)245-5418.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부고] 한국합섬 창업주 박동식 前 명예회장

    한국합섬 창업자인 섬유업계 원로 박동식 전 명예회장이 지난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78세. 1935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2년 이화견직 공장을 설립하면서 섬유업을 시작했다. 1973년 폴리에스터 직물 수출업체인 이화섬유를 만든 그는 1985년 2월 가공 염색 회사인 이화상사도 세웠다. 국내 최대의 폴리에스터 원사업체인 한국합섬을 설립한 것은 1987년 2월이다. 이 회사는 설립 1년 만에 연매출 1000억원을 기록하고 1988년 11월 수출의 날에 ‘1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노철·노기씨가 있다. 빈소는 대구동산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8일 오전 8시. (053)250-8141.
  • [부고] 남종화의 거두 신영복 화백

    남종화의 거두 신영복 화백이 25일 오전 9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0세. 뇌졸중을 앓고 있던 고인은 이날 오전 작업 중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했다. 유족은 학(성균관대 겸임교수)·혜(섬유예술가)·훈(조선대 외래강사)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광주 동구 서석동 조선대장례식장 제2분향소. 발인은 27일 오전 8시. (062)220-3352.
  • [부고] 이원달 전 코오롱상사 사장

    이원달 전 코오롱상사 사장이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3세. 고인은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의 6촌 동생이다. 창업주 친동생인 이원천 전 코오롱 회장,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등과 코오롱의 초창기 기반을 닦았다. 1958년 코오롱의 모태인 한국나일론에 입사했고, 1972년 자회사인 코오롱상사 사장이 됐다. 한국전쟁 당시 무공훈장을 받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8시. (02)3410-6912.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부고] 독도주민 2호 조준기씨

    [부고] 독도주민 2호 조준기씨

    독도 주민 2호인 조준기씨가 22일 오전 5시 별세했다. 57세로 세상을 떠난 조씨는 2010년 2월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2월 재발하면서 투병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독도 주민 1호인 최종덕(1987년 작고)씨의 사위인 고인은 1981년 10월 최초로 독도로 주민등록을 옮긴 장인에 이어 1986년 7월 독도로 전입해 1994년 7월 고향인 강원 동해로 전출했다. 고인이 실제 독도에 거주한 기간은 1985년 3월부터 1993년 7월까지 8년간이다. 고인은 장인이 사망하고 현재 독도를 지키는 독도 주민 3호 김성도(73)씨 부부가 1991년 11월 전입하기 전까지 독도를 홀로 지켰다. 고인의 독도 사랑은 지독했다. 동해에 정착해서는 생업을 위해 ‘독도노래방’을, 2004년 강릉으로 이사하면서 ‘독도홍합돌솥밥’을 차렸다. 고인은 생전에 독도에 거주하면서 홍보 및 지킴이 활동을 하는 등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국내외에 알리고, 독도기반시설 구축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독도둥이인 아들 강현(28)·딸 한별(23)씨가 있다. 빈소는 동해시 중앙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4일 오전 10시 30분. (033)521-3700.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자살男 구하려다…바다 뛰어든 경찰관은

    자살男 구하려다…바다 뛰어든 경찰관은

    자살하려고 바다에 뛰어든 남성을 구하려다 실종된 경찰관이 마지막으로 딸과 나눈 문자메시지가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정옥성(46) 경감은 지난달 1일 인천 강화경찰서 내가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중 딸(16·중1)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딸은 오후 10시 34분 ‘아빠~~~’라고 문자를 보냈고, 정 경감은 ‘왜 코맹맹이 소리 하이까’라고 반갑게 답했다. 딸은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며 새우를 사달라고 졸랐다. 정 경감은 딸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던지 ‘너 혼자서 드셔요’, ‘주무시겨’, ‘책이나 보시겨’라고 강화도 사투리로 장난스럽게 답했다. 딸은 결국 아빠와 문자로 밀고 당기기를 하다 ‘할머니께 말할거야 새우 먹자고’고 한 뒤 ‘아…찡찡찡’라고 투정을 부렸다. 아기자기한 부녀의 문자 대화는 4분간 이어지다 10시 38분 끝났다. 정 경감은 섬 지역 근무로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딸과 문자로나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정 경감에게 ‘자살 의심자가 있으니 출동 바람’이라는 지령이 내려진 것은 그로부터 30분이 지나지 않은 11시 6분. 정 경감은 서둘러 외포리 선착장으로 출동했고 그곳에서 김모(45)씨를 발견했다. 김씨는 자살을 만류하는 정 경감을 뿌리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정 경감도 김씨를 구하려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실종됐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50일 가까이 진행했지만 시신을 찾지 못해 18일 강화경찰서에서 정 경감의 영결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16일부터 강화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돼 조문객을 맞았다. 경찰은 영결식 후에도 당분간 수색작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정 경감은 1991년 청와대 경호실 지원부대인 서울경찰청 101경비단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한 뒤 22년간 경찰청장 표창 등 27차례에 걸쳐 표창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어머니(69), 부인(41), 2남 1녀가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평소처럼 다정했던… 경찰관 아빠와 딸의 마지막 ‘카톡’

    평소처럼 다정했던… 경찰관 아빠와 딸의 마지막 ‘카톡’

    자살하려고 바다에 뛰어든 남성을 구하려다 실종된 경찰관이 마지막으로 딸과 나눈 문자메시지가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정옥성(46) 경감은 지난달 1일 인천 강화경찰서 내가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중 딸(16·중1)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딸은 오후 10시 34분 ‘아빠~~~’라고 문자를 보냈고, 정 경감은 ‘왜 코맹맹이 소리 하이까’라고 반갑게 답했다. 딸은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며 새우를 사달라고 졸랐다. 정 경감은 딸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던지 ‘너 혼자서 드셔요’, ‘주무시겨’, ‘책이나 보시겨’라고 강화도 사투리로 장난스럽게 답했다. 딸은 결국 아빠와 문자로 밀고 당기기를 하다 ‘할머니께 말할거야 새우 먹자고’고 한 뒤 ‘아…찡찡찡’라고 투정을 부렸다. 아기자기한 부녀의 문자 대화는 4분간 이어지다 10시 38분 끝났다. 정 경감은 섬 지역 근무로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딸과 문자로나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정 경감에게 ‘자살 의심자가 있으니 출동 바람’이라는 지령이 내려진 것은 그로부터 30분이 지나지 않은 11시 6분. 정 경감은 서둘러 외포리 선착장으로 출동했고 그곳에서 김모(45)씨를 발견했다. 김씨는 자살을 만류하는 정 경감을 뿌리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정 경감도 김씨를 구하려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실종됐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50일 가까이 진행했지만 시신을 찾지 못해 18일 강화경찰서에서 정 경감의 영결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16일부터 강화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돼 조문객을 맞았다. 경찰은 영결식 후에도 당분간 수색작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정 경감은 1991년 청와대 경호실 지원부대인 서울경찰청 101경비단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한 뒤 22년간 경찰청장 표창 등 27차례에 걸쳐 표창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어머니(69), 부인(41), 2남 1녀가 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부고] 자기계발 전문가 ‘익숙한 것과의 결별’ 저자 구본형씨

    자기계발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대표가 13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59세. 변화경영전문가와 베스트셀러 작가, 직장인이 가장 만나고 싶은 강연가 1위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고인은 인문학과 경영학을 접목시켜 새로운 경영비전을 제시하는 ‘변화경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1998년 낸 첫 저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개인과 조직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 위기 극복의 길을 찾으라고 강조하면서 국내 서점가에 자기계발서 돌풍을 일으켰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서강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역사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고인은 한국IBM에서 20여년간 근무하고 IBM 아시아 태평양 지역 맬컴 볼드리지 평가관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윤희씨와 두딸이 있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6일 오전. (02)2258-5940.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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