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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범 암살 배후 파헤치지 못한 기자의 늦은 참회록

    백범 암살 배후 파헤치지 못한 기자의 늦은 참회록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수차례 응징해 안두희의 ‘천적’으로 불렸던 권중희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였다. 그는 1970년대 말 이화여대 앞 로터리에서 조그만 기원을 운영했다. 바둑에 한창 재미를 붙일 때라 기원을 자주 찾았는데 말수가 적으면서도 인정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때문에 그가 1992년 안두희를 폭행한 뒤 경찰에 잡혔을 때 평범했던 ‘기원 아저씨’를 떠올리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는 달리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그는 “안두희가 미국으로의 이민을 시도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뒤 13년에 걸친 ‘추적자’의 여정을 시작했다. 어릴 적 ‘백범일지’를 읽은 뒤 김구를 흠모하기는 했지만, 먹고살기도 힘든 판이어서 백범 암살에 관한 진상 규명은 ‘거창한’ 사람들이나 국가기관이 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기관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1983년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홀로 안두희 추적·응징에 나섰다. 민족지도자를 시해했음에도 곧바로 사면을 받고 군 납품업체를 운영해 큰 돈을 번 뒤 군 사단장의 신임 인사를 받을 정도로 교만하게 살아온 안두희에게 비로소 ‘임자’가 등장한 것이다. 권중희는 집요한 추적 끝에 마침내 1992년 9월 23일 안두희로부터 ‘김구 암살의 배후는 이승만’이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전까지 안두희는 “김구 암살은 개인 소신에 의한 것으로 배후는 전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권중희가 당시 기자에게 전해준 안두희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1949년 6월 20일(백범 암살 6일 전) 부대 안에 있는데 장은산 포병사령관실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 가보니 육군본부에서 나온 중위인지 대위인지 위관급 장교가 와 있었는데 장 사령관은 계급이 훨씬 높은데도 굽실거렸다.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의 연락장교 같았다. 경례를 붙였더니 그는 “총장 각하께서 부르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타고온 지프차를 타고 삼각지에 있는 육군본부 참모총장실로 갔더니 채 총장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함께 있었다. 신 장관은 날 보더니 “아, 자네가 포병 사격대회에서 관측장교상을 받은 안 소위지”라고 했다. 그 뒤 채 총장과 신 장관이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가 불쑥 경무대 얘기를 꺼냈다. 채병덕이 “경무대 구경이나 갈까 한다”고 하자 신성모는 “마침 나도 보고할 게 있는데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러고는 나에게도 같이 갈 것을 권했다. 그것이 연극이라는 것을 내가 능히 감지할 정도였다.(안두희를 경무대에 데려가기로 맞춰놓고 실제 안두희 앞에서는 우연히 경무대 얘기가 나온 것처럼 각본을 짜놓았다는 의미) 경무대에 가니 미리 연락해 두었는지 비서가 맞이했으며 곧바로 대통령 접견실로 안내됐다. 신 장관이 “각하, 포병 사격대회에서 상을 받은 안두희 소위입니다”라고 소개하니까 이 대통령은 내 손을 잡으며 “장관으로부터 자네 얘기 많이 들었다”며 정겹게 말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진중한 투로 “높은 사람이 시키는대로 말 잘 들어라”라고 말했다. 나에게 높은 사람이란 지휘계통인 장은산 포병사령관, 채병덕 참모총장 등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에도 이승만으로부터 김구 제거를 의미하는 듯한 말을 2∼3차례 들은 뒤 20∼30분 정도 있다가 나왔다. 그 당시 높은 사람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지시했다. ‘대충 언질만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경무대에서 나오니 퇴근 무렵이었다. 다시 부대로 가서 장은산 사령관에게 보고했더니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거봐 내 말이 맞지”라고 했다. 경무대에 다녀온 뒤 김구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다. 장은산은 내가 막상 암살 결행을 못하자 ‘배후에 거물이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며 여러 차례 회유했다. 결국 “내 말이 맞지”라는 장은산의 말은 “내 말대로 거물이 있지”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대통령이 일개 소위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안두희의 육성 녹음(8시간 분량)이 동반된 이 증언은 백범 암살사를 다시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결정타가 되지 못했다. 안두희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권중희의 폭행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번복했기 때문이다. 권중희는 1995년 기자에게 위의 안두희 진술 내용을 전해주면서 “내가 진술을 받을 당시 처음에 안두희를 때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두희는 한번 말문이 터지자 묻지도 않은 말까지 자연스럽게 진술했다”면서 “경무대 접견실 배치도와 접대받은 차 종류 등 안두희가 당시 정황을 설명한 대목은 실제 겪지 않고서는 도저히 꾸며낼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후 인천 신흥동 안두희 자택을 찾아 진술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그는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아 결국 기사화하지 못했다. 워낙 큰 이슈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 안두희의 뚜렷한 진술이 필요했지만 끝내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안두희는 결국 1996년 10월 자택에서 권중희 추종자인 박기서에 의해 몽둥이로 살해됐다. 안두희의 빈소에는 단 한 명의 조문객도 찾지 않았다. 그의 후처인 김모씨만이 검시 때 잠깐 모습을 비췄을 뿐이다. 권중희는 뜻밖에도 안두희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안두희에게 보약을 먹여서라도 오래 살게 해 역사적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권중희는 안두희가 살해된 뒤에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안두희를 추적하는 동안 조금 있던 재산을 모두 탕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농장의 소우리를 개조해 만든 단칸방에서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지내다 2007년 11월 세상을 떠났다(향년 71세, 본관 안동). 타계하기 3년 전 서울신문사를 찾았을 때 기자가 차비나 하라며 돈을 조금 건넸더니 “늘 이렇게 남에게 신세를 끼치니…”라며 수줍어하던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기자는 권중희 타계 후 부채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가 보여준 치열함의 반쯤이라도 기자정신을 지녔더라면 진실 규명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 때문이다. 기자가 권중희로부터 들은 안두희의 증언을 22년만에 공개하는 것은 김구 암살 배후에 대한 진상규명이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세상에는 권중희를 돈키호테나 테러범 쯤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기자는 그를 진정한 ‘의인(義人)’으로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일관되게 백범 암살사 규명에 진력함으로써 결코 가볍지 않은 증언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역사에 남을 큰 죄를 짓고도 교만하게 살아온 안두희에게 “죄를 지으면 이렇게 괴롭구나”라는 사실을 유일하게 깨우쳐 준 사람이다. 권중희는 지난날 기자에게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까지 설치됐는데 왜 이승만 백범 암살 개입설에는 무관심한지 모르겠다”면서 “아직 진실을 알만한 사람들이 일부 생존해 있으므로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이승만 김구 암살 개입설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들어 성역 없는 과거사 진상규명을 다짐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백범 암살 배후 진상규명을 도외시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직무 유기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AI방역 공무원 故 한대성씨 순직 인정합니다

    AI방역 공무원 故 한대성씨 순직 인정합니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관련 업무를 수행하다 귀가한 뒤 숨진 경기 포천시 축산과 축산방역팀장 한대성(49·지방 6급 수의직)씨의 순직이 인정됐다.공무원연금공단은 지난 2일 연금급여심의회를 열어 한씨의 순직을 인정했다고 6일 밝혔다. 한씨는 지난 6월 23일 AI 관련 업무로 야근을 한 뒤 귀가해 잠을 자던 중 새벽에 가슴 통증을 호소하면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지병이 없던 한씨는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으로 진단받았다. 이와 관련,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5일 오후 페이스북에 순직 인정 사실을 전하며 “일부에서는 자택에서 돌아가셨으므로 순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저는 사망의 장소가 아니라 원인을 중시해야 한다고 지적,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또 “거듭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빈소에서 뵀던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세 따님과 부인, 노모님의 절망적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가족들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다”고 애도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고인이 AI 방역 업무를 맡아 하면서 거의 집에도 가지 않고 쪽잠을 자며 밤낮없이 일했기에 업무와 사망 간에 인과관계가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엄지척 논란’ 손혜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

    ‘엄지척 논란’ 손혜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 논란을 만든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다시 한 번 방송을 통해 사과했다.손 의원은 2일 KBS2 ‘냄비받침’에 출연해 “뭐라고 말씀드릴 거 없이 제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 의원은 “(제가) 긴장의 끈을 놓친 것”이라며 “고 김군자 할머님 빈소에 사람이 없어서 쓸쓸하다는 말을 듣고 페이스북에서 사람을 모아서 20명만 같이 갔으면 해서 갔는데 100명이 넘게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모르는 분들이 오셨는데 3시간 동안 제가 상주처럼 모르는 사람들이랑 인사하고 그랬다”라며 “그러다 (조문객들이) 사진을 찍자고 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했는데 마지막에 10시가 넘어서 깃발까지 다 정리하고 나서 마지막 순간에 사진 하나 안 찍고 있다가 저한테 와준 사람들한테 고맙고 그래서”라며 사진을 찍게된 이유를 설명했다. 손 의원은 “(보좌관에게도) 변명하고 그런 건 절대 하지마라. 설명하려고 하지 마라.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자. 어쨌든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상황이다. 제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 함께 출연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제 손 의원님도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생각하게 됐을 거다. 저는 지금 오래 정치를 했지 않냐. 그런 일이 참 많다. 공인이라는 위치에서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원기, 치악산 산행 중 별세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원기, 치악산 산행 중 별세

    1984년 로스엔젤레스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62㎏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원기가 27일 오후 향년 5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김원기는 27일 오후 강원 원주시 치악산에 오른 뒤 하산하다 심정지로 숨을 거뒀다.함평농고 시절 레슬링에 입문한 김원기는 1983년 국가대표에 발탁돼 1984년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양정모에 이어 한국 역사상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김원기는 1984년 체육훈장 청룡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은퇴했다.이후 삼성생명 보험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으나 2000년 삼성생명을 퇴사한 이후 보증을 잘못 서면서 재산을 탕진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최근에는 전남 함평군 레슬링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이대목동병원 특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31일 오전 8시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원기씨 별세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원기씨 별세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원기씨가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55세.고인은 이날 오후 강원 원주시 치악산에서 아내와 함께 산행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984년 LA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2㎏급에서 한쪽 눈이 퉁퉁 부어오르는 투혼 속에서 금메달을 따 큰 감동을 줬다. 당시 금메달은 대한민국 역사상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양정모(64)에 이은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후 스포트라이트를 뒤로한 채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았다. 빚보증을 잘못 서면서 전 재산을 날리는 시련을 겪기도 했던 그는 2009년 늦깎이로 경희대에서 체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개인 사업을 해 온 그는 전남 함평군 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아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특히 교도소와 경찰청 등을 돌며 자신의 인생 역정을 무료로 강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여 왔다. 빈소는 이대목동병원(02-2650-2741). 발인은 31일 오전.
  • [단독] 강훈 친동생 “형, 돈 아닌 배신감에 괴로워해”

    [단독] 강훈 친동생 “형, 돈 아닌 배신감에 괴로워해”

    “주변 사람에게서 받은 배신의 상처가 컸던 것 같습니다.”<서울신문 7월 26일자 9면>지난 24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강훈 KH컴퍼니 대표의 남동생 강명수(44·회사원)씨는 “형이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치욕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서울성모병원에 차려진 강 대표의 빈소에서 만난 강씨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돈 문제보다 인간적 배신감이 형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커피왕’이라 불리며 승승장구할 때는 여기저기서 치켜세우며 관심을 갖던 사람들이 사정이 악화되자 모른 체하며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씨는 “형이 돈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사람은 아니다”라며 “가족들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돌아가시기 전에 많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워낙 굴곡진 삶을 살았던 터라 이번에도 잘 딛고 일어서리라 생각했다”면서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쓴 것으로 안다. 아무래도 (죽음은) 돌발적인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씨는 “워낙 강직하고 말수가 적은 형이었지만 아들에 대해선 많은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강 대표는 회사 사정이 매우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아들을 만날 때면 내색하지 않고 꼭 용돈을 쥐여 줬다고 한다. 아들(21)도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26일 1차 부검 결과를 통해 타살 흔적이 없음을 확인하고 강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잠정 결론내렸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손석희 “송영길 손혜원 엄지척, 상가에서 저런 사진 처음”

    손석희 “송영길 손혜원 엄지척, 상가에서 저런 사진 처음”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가 송영길, 손혜원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빈소에서 찍은 사진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손 앵커는 25일 비하인드 뉴스 코너를 통해 소개된 이른바 ‘엄지척’ 사진에 대해 “상가에서 저런 사진은 처음 본다. 부적절해 보이는 것은 맞아 보인다”고 말했다. 기자는 “송영길, 손혜원 의원은 이에 대해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밝힌 뒤 빈소라는 점을 망각하고 마지막 가는 길 기쁘게 보내드리자는 봉사자의 뜻을 수렴했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장례문화가 시끌벅적한 것은 있지만, 평생을 받쳤던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웃는 모습과 엄지척 사진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사진에는 두 의원을 포함한 10여명이 장례식장 안 음식을 차린 탁자에 둘러앉거나 서서 환하게 웃는 장면이 담겼다. 논란이 커지자 송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일제 강점기 청산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을 고민해야 할 때 잠깐의 감정에 취했던 저의 부족함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손 의원 역시 “김군자 할머니 문상을 함께 가자는 제 페북 제안에 100분 넘게 빈소에 와주셨다. 아직 못다 푼 한 때문에 안타까움도 많은 자리였으나 그래도 호상으로 장수를 누리신 할머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기쁘게 보내자는 봉사자들의 뜻도 있었다. 빈소에서 여러분과 지낸 오늘 밤은 행복했다. 성숙한 의식의 시민들이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알게 돼 큰 힘과 용기가 생긴다”는 글을 적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빈소서 송영길·손혜원 ‘엄지척’

    위안부 할머니 빈소서 송영길·손혜원 ‘엄지척’

    더불어민주당이 ‘당 기강 해이’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할 때 소속 의원이 26명이나 불참해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을 받더니 이번엔 소속 의원들의 경솔한 행동으로 또 한번 ‘입길’에 올랐다. 송영길, 손혜원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경기 분당차병원 빈소에서 벌인 일탈행동 때문이다. 지난 24일 두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밝은 표정으로 사진 촬영을 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논란이 됐다. 네티즌들은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잔치 기분 내고 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는 등의 댓글을 달며 두 의원을 강하게 비난했다. 논란이 커지자 25일 송 의원은 “‘위안부’를 포함한 일제강점기의 만행에 분노하고 김군자 할머니의 명복을 기리는 모든 분께 큰 상처를 드렸다”고 사과했다. 손 의원도 “장례식장의 추모 분위기에 맞지 않은 엄지 척 제스처를 취한 점은 제가 경솔했다”고 사과했다. 한편 이날 국민의당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알바비(아르바이트 임금)를 떼여도 고발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 정신’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학교급식 노동자 비하 발언에 이어 또 도마에 올랐다. 이 의원은 “알바를 한 적이 있고 월급을 떼인 적이 있다”면서 “사장이 살아야 나도 산다는 생각으로 노동청에 고발하지 않았으며 이런 공동체 의식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논란이 커지자 “노동자가 임금을 체불해도 사장을 생각해서 노동청에 신고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 의식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라고 뒤늦게 해명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송영길·손혜원, 고 김군자 할머니 빈소서 ‘엄지척’ 논란

    송영길·손혜원, 고 김군자 할머니 빈소서 ‘엄지척’ 논란

    더불어민주당 송영길·손혜원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밝은 표정으로 촬영한 기념사진이 25일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한 트위터 이용자는 전날 오후 7시 20분쯤 송영길·손혜원 의원이 경기 성남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의 김군자 할머니 빈소에서 일행과 촬영한 기념사진을 인터넷에 게시하고 “이들 표정 보고…칠순잔치 오셨나”라는 글을 남겼다. 사진 속에서 두 의원은 일행 10여 명과 함께 장례식장 안 음식을 차린 탁자에 둘러앉거나 서서 ‘엄지척’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해당 트위터 글에는 금세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잔치 기분 내고 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뭐 하는지 볼썽사납다”는 등의 비판성 댓글이 달렸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당 측도 논평을 내 비난했다. 김유정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김군자 할머니 빈소에서 벌어진 해괴망측한 상황에 분노한다”며 “두 의원과 함께 민주당 당 차원의 즉각적인 사죄는 물론 국회 윤리위 회부 등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송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김군자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위안부’를 포함한 일제 강점기의 만행에 분노하고 김군자 할머니의 명복을 기리는 모든 분께 큰 상처를 드렸다”고 사과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일제 강점기 청산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을 고민해야 할 때 잠깐의 감정에 취했던 저의 부족함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손 의원은 비판성 댓글에 대해 “천수를 누리신 김군자 할머니를 보내는 마지막 자리를 너무 우울하게 만들지는 말자는 의견들이 있었다”며 “고견은 감사히 듣겠다”고 밝혔다. 앞서 손 의원은 이날 새벽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김군자 할머니 문상을 함께 가자는 제 페북 제안에 100분 넘게 빈소에 와주셨다. 아직 못다 푼 한 때문에 안타까움도 많은 자리였으나 그래도 호상으로 장수를 누리신 할머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기쁘게 보내자는 봉사자들의 뜻도 있었다”며 “빈소에서 여러분과 지낸 오늘 밤은 행복했다. 성숙한 의식의 시민들이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알게 돼 큰 힘과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한편 작고한 김 할머니는 지난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942년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동원돼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해방이 되던 1945년 중국에서 걸어서 귀국한 뒤 1998년부터 위안부 피해자 거주시설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해 왔다. 2007년에는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와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미 하원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야 대표 등 각계각층 조문 이어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는 24일 각계각층의 조문 행렬이 이틀째 이어졌다. 이날 오전 이낙연 국무총리와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빈소를 찾았다. 이 대표는 조문 뒤 빈소를 지키고 있는 이용수 할머니를 위로하며 “오늘 가서 당 입장으로 ‘위안부 합의는 무효다. 파기는 우리한테 책임 있는 게 아니라 일본 측에 있다. 빨리 사과 제대로 해라. 재협상이다’는 뜻을 모으려고 한다”고 했다. 오후에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 등 여야 대표들이 잇따라 조문했다. 추 대표는 이 할머니에게 “반드시 사과드리게 하겠다. 만천하에 ‘잘못했다’라고”라고 말했다. 소녀상 농성 대학생, 시민단체 회원, 시민 등의 조문도 하루 종일 이어졌다. 나눔의 집은 25일 오전 8시 30분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나눔의 집 역사관 앞에서 1시간여 동안 노제를 열 예정이다. 노제 뒤 서울 양재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하고 유해는 나눔의 집 법당에 안치한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수원교구의 은인이었던 김 할머니를 예우하고자 25일 오전 10시 30분 경기 광주시 퇴촌성당에서 천주교 수원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주례로 장례미사를 한다.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이 요안나인 김 할머니는 2년 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며 수원교구에 1억원을 쾌척했다. 인터넷 누리꾼들도 일본 정부의 사과를 끝내 받지 못하고 숨진 김 할머니를 애도했다. 네이버 아이디 ‘doub****’는 “할머니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chek****’는 “할머니 편한 곳에서 편히 쉬세요”라고 애도의 글을 올렸다. 한편 김군자 할머니의 어린 시절 삶을 담은 그림 동화책이 고인의 영정 앞에 헌정됐다. 미술작가들의 모임인 문화살롱 ‘공’이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엮어 시각장애 아이들을 위해 촉각도서로 만든 책이다. 작가들이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3개월간 매주 김군자 할머니를 찾아가 위안부로 끌려갔던 아픈 시기를 제외한 나머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정리했다. 이 작업에 참여한 설치미술작가 문미희(38·여)씨는 “지난해 배춘희·이옥선 할머니 이야기책 등 3권을 전해 드렸고 올해 김군자 할머니 이야기책을 포함한 3권을 기증하려고 했는데 책 나오는 것도 못 보시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李 총리 “위안부 협상 잘못된 것 많아”

    李 총리 “위안부 협상 잘못된 것 많아”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91)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이 총리는 이날 김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과거 할머니들께 굴비를 몇 차례 보내드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 총리는 특히 고인에 대해 “유별나게 기구하신 분임에도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불행한 역사에) 곤욕을 겪은 국민을 위로해 드리고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신 분들께 보답해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빈소를 지키는 이용수 할머니와 나눔의 집 원장 원행 스님, 부원장 효련 스님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 할머니가 위안부 협상에 대해 “용서 못 한다. 본인한테도 물어보지 않고 협상도 아닌 계약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하자 이 총리는 “잘못된 것이 많은 협상이었다”고 위로했다. 이 총리는 또 눈물을 흘리는 이 할머니에게 “ 2015년 협상이 잘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당사자가 수용하지 않은 협상이 무슨 소용 있느냐. 여성가족부 등 부처가 여러 가지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16세 때 중국 지린성 훈춘의 일본군 위안소로 강제동원돼 3년 정도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이 기간 7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 1945년 귀국 이후 김 할머니는 강원도 철원에서 잠시 머물다가 1998년 ‘나눔의 집’(경기 광주시 퇴촌면)에서 생활했다. 최근에 고령으로 건강 상태가 악화해 지난 23일 별세했다. 김 할머니의 사망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후회는 없다” 평생 모은 돈 기부하고 떠난 김군자 할머니

    “후회는 없다” 평생 모은 돈 기부하고 떠난 김군자 할머니

    23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생전에 사실상 전 재산을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아름다운재단은 “김 할머니는 재단의 1호 기금 출연자였다”면서 “할머니는 평생 모은 돈을 장학사업에 써달라며 기부하신 분”이었다고 24일 밝혔다. 재단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아름다운재단이 창립한 직후인 2000년 8월 평생 모은 돈 5000만원을 기부해 ‘김군자할머니기금’이 조성되도록 했다. 김 할머니는 13살에 부모를 여의어 8개월간 야학에 다닌 것이 배움의 전부였을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이에 할머니는 “보육시설에서 자란 대학생들 학비를 지원해달라”며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할머니의 기부 소식이 전해진 후로 17년 동안 많은 시민이 기금에 돈을 보탰다. 김 할머니도 2006년 5000만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올해 7월 현재 김군자할머니기금의 누적 모금액은 약 11억원에 달하고, 기금을 통해 학비 지원을 받은 장학생은 약 25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김 할머니 빈소에는 김군자할머니기금 장학생들의 발길이 잇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 관계자는 “올해 5월 할머니 생신 때 재단 간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할머니는 ‘내 삶이 한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돌아보니 가진 것을 다 줘서 후회는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구라, 아들 MC그리와 고 김군자 할머니 빈소 찾아

    김구라, 아들 MC그리와 고 김군자 할머니 빈소 찾아

    방송인 김구라가 아들 MC그리와 함께 23일 89세로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를 찾았다.24일 1인미디어 미디어몽구는 김 할머니의 빈소를 조문한 김구라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공개했다. 미디어몽구는 “김군자 할머니 빈소에 방송인 김구라 씨도 다녀갔다는 거 알려 드려요. 아들과 함께 왔답니다”라고 전했다. 김구라는 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비하 발언으로 방송 활동을 전면 중단한 뒤 속죄의 뜻으로 나눔의 집을 찾아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매달 기부를 하고, 스케줄이 없을 때면 제철 과일 등을 들고 나눔의 집을 찾으며 할머니들과 각별한 인연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군자 할머니는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모아 아름다운 재단에 1억원, 나눔의 집에 1000만원, 한 천주교 단체에 1억 5000만원 등 장례비를 제외하고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 또 매주 수요 집회에 나가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5일이며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37명뿐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 문 대통령, 고 김군자 할머니 애도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 문 대통령, 고 김군자 할머니 애도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89세로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군자 할머니를 애도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할머니는 16세에 납치당해 중국에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난을 겪었고, 그 후 일본의 전쟁범죄를 증언하고 기부를 통해 남을 돕는 일에 평생 헌신했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였다. 지난 2015년 12월 31일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를 뵀을 때 ‘피해자는 우리’라고 말했던 그 모습을 기억한다. 이제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평안하시라”며 김군자 할머니의 명복을 빌었다.김군자 할머니는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생활하다가 17살의 나이로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동원됐다. 몇 번의 탈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구타를 당해 왼쪽 고막이 터져 할머니는 평생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함경북도 성진으로 가 두만강을 넘었다. 당시 함께 강을 넘던 친구 1명은 강물에 떠내려가 죽는 것을 지켜봤다. 그렇게 죽을 고비 끝에 고향에 돌아와 위안소로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생활했지만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1998년 나눔의 집으로 오기까지 할머니는 혼자 살았다. 할머니는 지난 2007년 2월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하원이 주체한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해방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 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증언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머니는 배상을 받으면 사회에 기부할 계획이었다. 할머니는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모아 아름다운 재단에 1억원, 나눔의 집에 1000만원, 한 천주교 단체에 1억 5000만원 등을 기부한 바 있다. 또 매주 수요 집회에 나가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5일이며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37명뿐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위안부 생존자 37명 평균 91세… 시간이 없습니다

    위안부 생존자 37명 평균 91세… 시간이 없습니다

    불과 2주 전만 하더라도 정정해 보였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91) 할머니가 23일 돌연 세상을 떠나 충격과 함께 안타까움을 던지고 있다. 이로써 현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는 37명으로 줄었다.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는 가운데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 생존자 수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경기 광주 ‘나눔의 집’은 김 할머니가 이날 오전 8시 4분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어제(22일)까지만 해도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운명하셨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 10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다른 할머니들과 함께 “한·일 양국이 2015년 12월 일방적으로 체결한 위안부 합의를 폐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위안부 할머니의 별세는 지난 4월 이순덕(99) 할머니가 운명한 지 석 달여 만이며 올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지난해는 7명, 2015년에는 9명이 영면했다. 1995년부터 매년 5~15명씩 별세하고 있다. 남은 37명 생존자들의 평균 연령은 91세다. 나이가 가장 적은 할머니가 85세이며 96세 이상 초고령자도 2명이다. 85~89세가 19명, 90~95세가 16명이다. 김 할머니는 강원 평창에서 태어나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17세에 중국 지린성 위안소로 끌려갔다. 탈출하다 붙잡혀 구타를 당하는 바람에 왼쪽 고막이 터져 평생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김 할머니는 2007년 미국 의회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해방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증언해 좌중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는 게 소원이었던 할머니는 매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나가는 등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김 할머니는 “떠올리기 싫은 과거를 털어놓고 나면 가슴이 뛰고 악몽으로 잠을 설치지만 살아 있는 한 그리할 것”이라고 말해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제국주의’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김 할머니는 ‘기부천사’였다. 정부에서 받은 보상금 4000여만원 등을 고스란히 모았다가 아름다운재단에 1억원, 퇴촌 성당에 장학금으로 1억 5000만원을 기부했다. 평생의 한을 끝내 풀지 못하고 떠난 김 할머니의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현백 여가부 장관, 남경필 경기지사,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조정래 영화감독, 배우 유지태씨 등이 조문하는 등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영정 양옆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보낸 조화가 나란히 놓였다. 여야 정치권도 일제히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발인은 25일이며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행위예술가’ 정강자 화백 별세

    ‘행위예술가’ 정강자 화백 별세

    국내 1세대 여성 행위예술가로 활약했던 정강자 화백이 23일 별세했다. 75세.대구 출신인 고인은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신전 동인’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예술 작업에 주력했다. 특히 1968년 정찬승, 강국진 등과 함께 서울의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선보인 누드 퍼포먼스 ‘투명풍선과 누드’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국내 첫 누드 퍼포먼스로 기록되는 이 작품에서 당시 26세였던 고인은 직접 민소매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등장해 옷을 찢고 풍선을 터뜨리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했다. 과감한 노출로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남성 중심적인 시대에 맞서 여성의 저항성을 보여 준 작품으로 기록된다. 고인은 이후에도 ‘한강변의 타살’,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 등 기성 문화계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으며 1970년대부터는 평면 회화와 조각 등의 작업에 주력했다. 1977년 싱가포르로 이민을 갔다가 1982년 귀국한 뒤 회화와 퍼포먼스 등 1500여점의 작품을 남기며 왕성하게 활동해 왔다. 2015년 위암 3기 선고를 받았으나 최근까지 내년 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릴 회고전을 준비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 파주 용미리 수목장이다.(02)2258-5940.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강경화 “위안부 합의 검토 후 나아갈 방향 모색”

    강경화 “위안부 합의 검토 후 나아갈 방향 모색”

    ‘화해재단’ 김태현 이사장 사의, 논란 지속… 해산 수순 가능성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3일 2015년 12월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와 관련, “외교부는 합의 내용이나 협상 경과를 좀 더 꼼꼼히 검토해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날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군자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분명히 말씀하셨듯이 국민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분 중 또 한 분이 흡족한 답을 못 얻고 가셨다”고 말했다. 지난달 2일 경기 광주 나눔의집을 방문한 강 장관은 “(당시) 김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런대로 건강해 보였는데 또 한 분 돌아가셨구나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서 일본 정부의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화해·치유재단의 김태현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됐지만 합의 내용과 재단 활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지난 19일 이사회에서 이사장직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단은 조만간 정식으로 김 이사장을 사직 처리할 방침이다. 화해·치유재단은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약 108억원)으로 위안부 피해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면서 당사자 동의 없이 지급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여가부가 화해·치유재단의 사업 내용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데다 이사장까지 사임하면서 재단은 한·일 합의에 따른 피해자 지원 사업을 추가로 벌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차원의 위안부 합의 검증과 향후 대응 방향에 따라 해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단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가 재적이사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재단을 해산할 수 있다. 여가부 장관은 해산을 결정할 때 외교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 화해·치유재단은 여가부 등록 비영리법인이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단 해산 문제와 관련해 “일단 외교부와 논의해야 하고 10억엔이라는 돈을 낸 일본과도 전혀 논의를 거치지 않고 결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이재명 “일본과 제대로 된 협의해 할머니들 한 풀어드려야”

    이재명 “일본과 제대로 된 협의해 할머니들 한 풀어드려야”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빈소를 찾았다.이 시장은 오후 7시 10분께 아내 김혜경씨와 함께 조문을 마치고 나와 “철저한 진상규명을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들의 몫”이라며 “전임 정부의 관련 합의는 위반부 본인에게 고통을 줬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인류 보편 인권 생각에 근거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마침 이번 정부가 재협의, 합의무효와 같은 말을 하고 있어서 일본과 제대로 된 협의를 해서 할머니들 한도 풀어드리고 일본이 군국주의 이름으로 세계인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다른 나라를 불행에 빠뜨린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유가족 위로하는 강경화 장관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유가족 위로하는 강경화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3일 오후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빈소를 찾아 2015년 위안부 합의 내용을 꼼꼼히 검토해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이날 오후 8시 5분 빈소를 찾은 강 장관은 조문하고 나서 취재진에게 “(지난달 2일) 나눔의 집에 가서 봤을 때 김군자 할머니는 휠체어 타고 있었다. 그런대로 건강해 보였는데, 또 한 분 돌아가셨구나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한일정부의 위안부 합의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이 분명히 말씀하셨듯이 국민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분 중 또 한 분이 흡족한 답을 못 얻고 가셨다”며 “외교부는 합의 내용이나 협상 경과를 좀 더 꼼꼼히 검토해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군자 할머니 빈소 찾은 배우 유지태…붉어진 눈시울

    김군자 할머니 빈소 찾은 배우 유지태…붉어진 눈시울

    배우 유지태가 23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빈소를 찾았다.빈소를 찾은 유지태 씨는 “할머니들과의 인연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마련한 위안부 할머니 기금 마련 행사가 계기가 됐다”고 짧게 밝힌 뒤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는 붉어진 눈시울로 할머니의 영면을 빌었다. 김군자 할머니와 인연은 2006년 아름다운 재단이 마련한 위안부 피해자 기금 마련 행사가 계기가 됐다. 유지태는 당시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모아 1억원을 재단에 기부하는 김 할머니 모습을 보고 감동해 이후 수시로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과 시간을 보냈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모은 전 재산 2억5000여만원을 모두 사회에 기부하고 떠났다. 10년 넘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선행을 이어온 유지태는 2012년에는 위안부 피해자 김화선 할머니 별세 소식을 촬영 중에 듣고 당일 바로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의 영면을 기원했다. 2011년 배우 김효진과 결혼할 때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예식장에 초대하는 등 기쁠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늘 할머니들과 함께했다.2013년에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숨결’ 홍보에도 정성을 쏟았다. 광화문에 있는 민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되는 이 영화를 알리기 위해 100명분의 티켓을 구매해 관객을 초대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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