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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폐암으로 사망한 故 신성일의 빈소

    [서울포토] 폐암으로 사망한 故 신성일의 빈소

    4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한 배우 신성일(81) 씨의 빈소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2018.11.4 사진공동취재단
  • [서울포토] ‘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 별세

    [서울포토] ‘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 별세

    4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한 배우 신성일(81) 씨의 빈소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2018.11.4 사진공동취재단
  • 신성일 별세, 3일 전 방송서 건강한 모습 ‘안타까워’

    신성일 별세, 3일 전 방송서 건강한 모습 ‘안타까워’

    故 신성일의 생전 마지막 모습에 누리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김수미 편에는 2017년 폐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인 신성일이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신성일은 건강이 호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지인들을 식사 자리에 초대한 김수미는 신성일과의 과거를 회상했다. 당시 두 사람은 영화 ‘잔류 첩자’의 촬영 중이었다. 김수미는 “대본에는 없는데 옷을 다 벗으라고 하더라. 반나절 동안 촬영을 못했다. 그때 선생님이 ‘신혼 여행 갔다 온 새색시에게 갑자기 벗으라고 하면 벗겠냐. 오늘 촬영 접자’고 무마시켜 주셨다”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일이 가장 고마운 일 중 하나다”고 전했다. 이에 신성일은 “신인 배우들은 항상 제 가까이에 있다 보니까 내가 보호를 안 하면 해 줄 사람이 없다. 내가 그 자리를 떠날 때까지 만큼은 보호해줬다. ‘그러지 말라. 오늘 찍지 말라’고 촬영을 펑크낸 것”이라고 후배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수미는 “화면에서만 보던 선배님이 감독에게 내 편을 들어준 것”이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한편 신성일은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춘 지 3일 만인 4일 새벽,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배우 신성일 별세, 엄앵란-강석현-강석화 유족들에 이어진 관심

    배우 신성일 별세, 엄앵란-강석현-강석화 유족들에 이어진 관심

    ‘한국 영화의 큰 별’ 배우 신성일이 별세하면서 그의 아내인 엄앵란과 아들 강석현, 강석화에게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강석현은 영화배우 겸 연출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6년 영화배우로 데뷔했고, 1990년 제14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다. 배우로 활동할 당시 강석현은 아버지 신성일과 닮은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돈황제’, ‘안개 속에서 2분 더’ 등과 드라마 ‘오남매’ 등에도 출연했던 그는 2002년 이후 연기 활동을 중단하고 사업가로 변신했다가 2009년 ‘돌아온 일지매’ 등을 제작하는 드라마·영화 제작자로 거듭났다. 엄앵란은 과거 방송에서 MC가 막내딸 강수화의 미모와 언변을 칭찬하며 “연예계 쪽으로 더 밀어주셨으면 좋았겠다”고 하자 “한집에서 둘을 밀어주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아들을 미는 바람에 얘가 빛을 못 봤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은 바 있다. 한편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전남의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왔으나 오늘(4일) 새벽 2시 25분 향년 81살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국 영화의 큰 별’ 배우 신성일 별세, 아내 엄앵란 그리움 드러내

    ‘한국 영화의 큰 별’ 배우 신성일 별세, 아내 엄앵란 그리움 드러내

    ‘한국 영화의 큰 별’ 배우 신성일이 오늘(4일) 새벽 2시 25분 향년 81살의 나이로 별세했다. 故(고)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전남의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신성일은 1960∼19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배우로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이후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숱한 히트작을 남겼다. 유족으로 부인인 배우 엄앵란(82)과 1남 2녀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신성일의 투병 생활은 지난 3월 20일 MBC ‘사람이 좋다’를 통해 전해졌다. 신성일은 방송에서 아내 엄앵란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그는 병문안 온 딸 강수화에게 “둘러보고 엄마를 설득해서 여기 오게 해”라고 했다. 강씨가 잠옷을 선물하자 “네 엄마를 만나는 시간은 잠옷 입었을 때밖에 없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신성일이 암 선고를 받던 날 엄앵란이 병원비를 부담했다고 한다. 엄앵란은 올해 초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신성일이 초라하게 죽을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특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병원비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톱스타들이 초라하게 죽었던 옛날 시대에 살았다. (신성일은) 그렇게 죽으면 안 된다”며 마지막 애정을 드러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배우 신성일씨 폐암으로 타계…한국 영화사 최고 스타

    배우 신성일씨 폐암으로 타계…한국 영화사 최고 스타

    ‘은막의 스타’ 신성일씨가 4일 오전 2시 25분 폐암으로 타계했다. 81세. 신성일 측 관계자는 이날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이사장이신 영화배우 신성일께서 4일 오전 2시 반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전남의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 전날 오후 한때 고인이 별세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단지 위중한 상태로 전해져 오보인 것으로 정정됐다가 결국 몇 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60~19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국민적 스타 배우였다. 본명은 강신영이지만 고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신성일’을 주로 썼고, 이후 본명을 표기해야 하는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앞두고 예명과 본명을 모두 살린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신성일씨는 생후 사흘 만에 부모의 이사로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 1966년 건국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 신상옥 감독, 김승호 주연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고인은 1964년 ‘맨발의 청춘’으로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숱한 히트작에 출연하며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남자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다작이 성행했던 시대적 특성을 감안해도 신성일씨는 출연 작품 수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 데뷔 이후 500편이 넘는 다작을 남겼다. 1963년 한 해에만 ‘청춘교실’ 등 21편에 출연했으며, 1964년에는 ‘맨발의 청춘’ 등 32편, 1965년 ‘흑맥’ 등 34편, 1966년 ‘초우’ 등 46편 영화에 출연했다. ‘안개’ 등 51편 영화에 출연한 1967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한 해였으니, 이해 제작된 한국 영화는 총 185편이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기록적 다작 속에서 생명력 있는 행군을 펼친 것은 한국 영화사에서 그 예를 찾기 불가하다”며 “기록적 출연 편수야말로 그 스타성 증거”라고 평했다. 명성만큼이나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대종상영화제 공로상, 부일영화상 공로상 등 수없이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영화 관련 단체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1979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1994년에는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을 지냈다. 2002년에는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았다. ]1993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1997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2000년 경희대 대학원 사회학과를 수료했다. 대구과학대학 방송연예과 겸임교수, 계명대 연극예술과 특임교수를 맡아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며,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 인터뷰집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등의 저서를 남겼다. 고인은 영화계 성공을 발판으로 정계에도 진출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서울 마포·용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으며,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그러나 삼수 끝에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이 그의 조카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공식 활동은 지난달 초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이었다. 그는 부산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이장호 감독, 배우 손숙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전찬일 평론가는 “신성일은 투병 와중에도 그가 아니면 소화해내기 힘들 파격적 의상과 환한 미소로 부산영화제 개막식을 빛냈다”면서 “부산영화제 개막식 주인공을 단 한 명 꼽으라면 단연 신성일이었다”고 평했다. 영화계에서는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화인장을 거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영화인 단체 대표들이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국영화인단체총연합회 지상학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 부인 엄앵란 씨와 장남 석현·장녀 경아·차녀 수화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4호실에 차릴 예정이었으나 23호실로 옮겨졌다. ☎ 02-3010-2000(대표번호)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영화배우 신성일 폐암 투병으로 위독…사망설은 오보

    영화배우 신성일 폐암 투병으로 위독…사망설은 오보

    영화배우 신성일이 폐암으로 위독한 상태다.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요양병원에서 투병해왔으며 지난달 다른 의료기관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왔다. 병세가 좋지 않아 3일 한때 사망보도가 쏟아지기도 했으나 이는 오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신성일 가족이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빈소로 예약하면서 오후 8시쯤부터 사망설이 돌았다. 그러나 이후 신성일의 호흡이 돌아오면서 장례식장 예약도 취소됐다. 신성일은 투병 중에도 지난달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는 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 후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수많은 흥행작을 남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하점연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자 하점연 할머니 별세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점연 할머니가 26일 오전 6시 8분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7세. 나눔의 집에 따르면 하점연 할머니는 경상남도 하동 출신으로 1922년 태어났다. 15살되던 1936년 봄에 일본 오사카에 사는 언니네 아이들을 돌봐주러 갔다가 이웃 한국인 아줌마가 데려다준다고 해서 따라 나간 곳이 한 공장이었다고 한다. 이후 할머니는 대만,하이난섬,홍콩,중국,광둥,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등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겪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4월 부산으로 귀국해 서울 강서구에서 살다가 2016년 5월부터 나눔의 집에서 생활을 해왔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빈소는 서울 강서구 공항동 중앙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진선미 여성가족부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점연 할머니의 사망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진 장관은 “올 들어 벌써 여섯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을 떠나보내게 되어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라며 “여성가족부는 하점연 할머니를 포함한 모든 피해자분들의 명예·존엄 회복을 위해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정책 추진에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하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27명으로 줄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나는 작품 지키는 묘지기”…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 별세

    “나는 작품 지키는 묘지기”…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 별세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고,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예언자가 없더라도 이제는 고유한 죽음을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남의 작품에 대한 평을 쓰는 자신을 ‘묘지기’로 비유했던 문학평론가가 갔다. 1세대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25일 오후 7시 30분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한국문학의 산증인인 고인은 평생을 한국문학 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일에 몰두했다. 수십년 간 쉬지 않고 문예지에 발표된 거의 모든 소설 작품을 잃고 월평(月評·다달이 하는 비평)을 썼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30여년간 교편을 잡으며 내로라하는 국문학자, 문학평론가, 작가 등 수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쉼없이 읽고 쓰고 가르치는 인생이었다. 그렇게 남긴 학술서와 비평서, 산문집, 번역서만 무려 200여 권에 달한다. 1936년 경남 진영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1955년 서울대 사범대 국어과에 입학해 같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 ‘현대문학’에 평론 ‘문학방법론 서설’과 ‘역사와 비평’이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그는 생전에 “글을 쓰고 싶어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중도에 작가의 꿈을 접고 국문학 연구에 빠져들었다”며 ‘겁도 없이 청무밭에 뛰어든 흰나비꼴’이었다고 스스로를 회상했다. 고인은 여든이 넘어서도 꾸준히 소설 작품을 읽고 월평을 써 후배 평론가들의 귀감이 됐다. 특히 오직 작품만으로 평을 쓴다는 원칙을 고수해 작가들에게 존경받았다. 당대 현장비평을 담은 ‘우리문학의 넓이와 깊이’, ‘우리 소설의 표정’, ‘현대 소설과의 대화’, ‘소설과 현장비평’, ‘우리 소설과의 대화’, ‘혼신의 글쓰기 혼신의 읽기’ 등을 냈다. 그는 한국 근대문학사의 이광수·염상섭·김동인·박영희·임화·이상 등의 문학 활동을 비평적 전기 형태로 정리해 널리 알려졌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염상섭 연구’, ‘임화 연구’ 등이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 좌익 문인단체인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연구하고 ‘한·일 근대문학의 관련양상 신론’, ‘한국근대문학양식논고’, ‘한국근대문학사상사’ 등 문학사에 관한 연구서도 냈다. 200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으며, 예술원 문학분과 회장을 지냈다. 대한민국황조근정훈장(2001)과 은관문화훈장(2016)을 받았다. 현대문학신인상, 한국문학 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편운문학상,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학술 부문), 청마문학상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27일 오후 5시에 추모식을 한 후 28일 오전 7시 발인한다. 유족으로는 부인 가정혜씨가 있다. 유족은 조화와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하점연 할머니 별세…생존자 27명으로 줄어

    위안부 피해자 하점연 할머니 별세…생존자 27명으로 줄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인 하점연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은 26일 오전 6시 8분 하점연 할머니가 별세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강서구 공항동 중앙장례식장에 마련된다. 나눔의 집에 따르면 하점연 할머니는 15살되던 1936년 일본 오사카에 사는 언니네 아이들을 돌봐주러 갔다가 한국인 이웃이 데려다준다고 해서 따라나간 곳이 한 공장이었다고 한다. 이후 할머니는 일본의 반인륜 범죄로 인해 대만, 하이난섬, 홍콩, 중국, 광둥,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등에서 위안부 피해를 당했다. 25살 때, 즉 해방 이듬해인 1946년 4월 부산으로 귀국해 서울에서 살다가 2016년 5월부터 나눔의 집에서 생활을 해왔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하점연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27명으로 줄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1세대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 별세

    1세대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 별세

    국문학 연구 대가이자 1세대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25일 별세했다. 82세.평생 한국문학 역사를 연구한 고인은 ‘한국문학의 산증인’으로 불릴 정도로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근대문학에서 시작해 한국문학 연구의 현대적인 기틀을 닦았으며 독보적인 학문적 성과를 이룩했다. 그가 쓴 학술서, 비평서, 산문집, 번역서 등 저서는 200여권에 달한다. 1936년 경남 김해군 진영읍 사산리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사범대 국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교수로 2001년까지 30여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발 빠르고 폭넓고 깊이 있게 읽어내고 비평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문학평론가로 기록된다. 수십년간 쉬지 않고 문예지에 발표된 거의 모든 소설 작품을 읽고 월평을 썼다. 2000년까지 100권을 내 이듬해 교수 정년퇴임 때 ‘김윤식 서문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황조근정훈장(2001)과 은관문화훈장(2016)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창호 KBS 전 아나운서 별세, ‘TV쇼 진품명품’ 진행자 출신

    이창호 KBS 전 아나운서 별세, ‘TV쇼 진품명품’ 진행자 출신

    이창호 전 KBS 아나운서가 어제(2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24일 오전 이창호 전 KBS 아나운서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 이 전 아나운서는 오랜 시간 지병을 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1943년생인 그는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 1969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중계방송을 맡기도 했다. 특히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TV쇼 진품명품’ 등 진행자로 유명한 이 전 아나운서는 편안한 진행 실력으로 시청자 사랑을 받았다. 한편 이 전 아나운서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 발인은 내일(26일) 오전 9시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창호 전 KBS 아나운서 별세

    이창호 전 KBS 아나운서 별세

    이창호 전 KBS 아나운서가 2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5세. KBS 2TV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와 ‘TV쇼 진품명품’ 등을 진행한 고인은 88서울올림픽 중계방송을 맡는 등 대중에게 친숙한 방송인으로 활약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정원씨와 자녀 이주현·정훈·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 “25년간 가정폭력 시달린 엄마, 결국 살해당해”

    “25년간 가정폭력 시달린 엄마, 결국 살해당해”

    “아빠 협박에 결혼… 수차례 살해 위협”“어머니는 25년간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수차례 살해 협박 끝에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살해된 이모(47)씨의 딸 김모(21)씨는 24일 양천구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씨의 빈소에서 터져 나오는 슬픔을 억누른 채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김씨는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빠는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다. 사형을 선고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딸 김씨에 따르면 아버지 김모(48)씨의 폭력은 25년 전 시작됐다. 이씨는 헤어지고 싶어 했으나 “헤어지면 죽여버리겠다”는 흉기 협박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만 했다. 폭력은 계속됐지만 딸을 위해 이씨는 폭력을 견디고 또 견뎠다. 2015년 2월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온 이씨는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한 아버지 김씨에게 얼굴을 심하게 얻어맞았다. 당시 18살이던 딸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아버지 김씨는 연행된 지 하루 만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이씨는 이혼 소송을 냈고 그해 9월 남남이 됐다.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 김씨가 끊임없이 찾아와 모녀는 4년 동안 6차례나 이사를 거듭했다. 2016년 흉기를 들고 찾아왔을 때 아버지 김씨는 또 경찰에 연행됐으나, 보복을 두려워한 이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풀려나고 말았다. 아버지 김씨는 평소 딸에게 “엄마 죽이고 나서 감옥에서 6개월만 살다 나오겠다”는 말을 했다. 또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이씨의 주변을 맴돌며 동선을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김씨는 이씨가 아침 일찍 수영장에 간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렸다가 이씨를 살해했다. 흉기는 현장에 그대로 두고 도주했다. 딸 김씨는 “아버지는 엄마를 죽인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날 잡아가라는 뜻으로 흉기를 두고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4일 아버지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가정폭력 혐의로 신고된 사실이 있다”면서 “철저한 계획범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이창호 전 KBS 아나운서 별세…‘TV쇼 진품명품’ 등 진행

    이창호 전 KBS 아나운서 별세…‘TV쇼 진품명품’ 등 진행

    이창호 전 KBS 아나운서가 2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75세. 고인은 경기도 광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 1969년 KBS에 아나운서로 입사하면서 방송 생활을 시작했다. KBS 2TV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와 ‘TV쇼 진품명품’ 진행을 맡았으며 스포츠 캐스터로도 활약하며 오롯이 방송에 매진했다. 88올림픽 때 중계방송을 맡는 등 편안하면서도 진중한 진행과 친근한 이미지로 시청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KBS 아나운서 실장을 맡아 동료·선후배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정원씨와 자녀 이주현(개인사업)·정훈(현대산업개발 부장)·이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 02-3010-2000.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참혹한 살인으로 비극적 결말 맺은 ‘25년 가정폭력’

    참혹한 살인으로 비극적 결말 맺은 ‘25년 가정폭력’

    “엄마 죽이고 감옥서 6개월이면 나온다고 해극악무도한 아빠 사형시켜 주세요” 靑청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25년간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수차례 살해 협박 끝에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살해된 이모(47)씨의 딸 김모(21)씨는 24일 양천구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이씨의 빈소에서 터져 나오는 슬픔을 억누른 채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앞서 김씨는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빠는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다. 사형을 선고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김씨에 따르면 아버지 김모(48)의 폭력은 25년 전 시작됐다. 이씨는 김씨와 헤어지길 원했으나, 김씨가 “헤어지면 죽여버리겠다”며 흉기로 협박해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해야만 했다. 결혼 이후에도 김씨의 폭력은 계속됐다. 하지만 이씨는 아이들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견뎠다. 2015년 2월 김씨는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온 이씨가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하고 이씨의 얼굴을 심하게 때렸다. 당시 18살이었던 딸은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김씨는 경찰에 연행된 지 하루 만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이씨의 ‘합의이혼’ 요구를 김씨가 거절하자 이씨는 이혼 소송을 냈고 결국 그해 9월 이혼했다. 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모녀는 4년 동안 6차례 이사를 거듭했지만, 김씨는 이씨와 딸이 사는 집을 수소문해 끊임없이 찾아왔다. 2016년 김씨가 흉기를 들고 찾아왔을 때 이씨는 김씨를 타일러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식당 주인에게 눈빛을 보내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이 김씨를 연행했으나, 이씨는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경찰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했고 김씨는 또 풀려났다. 김씨는 평소 딸에게 “엄마 죽이고 나서 감옥에서 6개월이면 나올수 있다”는 말을 했다. 또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이씨의 주변을 맴돌면서 동선을 파악하고 살해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씨가 아침 일찍 수영장에 간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씨의 아파트 앞에서 기다렸다가 이씨를 살해했다. 흉기는 현장에 그대로 두고 도주했다. 딸 김씨는 “아버지는 엄마를 죽인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날 잡아가라는 뜻으로 흉기를 두고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4일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24일 “김씨는 과거 가정폭력 혐의로 경찰에 신고된 사실이 있다”면서 “철저한 계획범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독도 주민’ 김성도씨 세상 떠났다

    ‘독도 주민’ 김성도씨 세상 떠났다

    독도 유일 민간인 김성도씨가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9세.경북도 등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오전 1시 20분쯤 지병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숨졌다. 김씨는 지난 9월부터 투병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1965년 3월 독도에 거주한 첫 주민 최종덕(1925∼1987)씨와 함께 1970년대부터 독도에서 전복 등 수산물을 채취하며 생활하다 1987년 최씨가 지병으로 숨지자 1991년 11월 아내 김신렬(82)씨와 함께 주소를 아예 독도로 옮겼다. 2007년 4월에는 독도 개항 이후 처음으로 독도리 이장에 임명됐으며, 2009년 3월엔 포항세무서 울릉지서로부터 독도 1호 사업자등록증을 받았다. 김씨는 1997년부터 매년 독도 주민으로 주민세를 납부해 왔으며, 독도 동도 선착장에서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국세(부가가치세)도 내왔다. 수입을 많이 올린 2014년, 2015년, 2018년 3년에 걸쳐 전년분 국세 8만~14만원을 냈다. 독도 거주민이 국세를 냈다는 것은 주민(住民)화를 통한 독도 영유권 강화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지난해 5월 19대 대통령선거 당시 독도 동도 임시 투표소에서 거소투표를 하는 등 각급 선거 때마다 독도에서 주권 행사를 했다. 2008년 2월 17대 대통령 취임식에 독도 주민대표로 초청받아 참석했다. 베트남전 참전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23일 오전 6시, 장지는 대전현충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1남 2녀가 있다. 경북도 등은 김씨의 독도 생활을 위해 매월 생계비 70만원과 이장 수당 20만원, 숙식비 일체를 지원해 왔다. 원창호 경북도 독도정책과장은 “김씨는 2006년 우리 정부의 독도 유인화 정책에 따라 독도 서도 주민숙소에 입주했으며,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독도 수호에 앞장서 왔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히말라야 참변’ 이재훈 대원 모교 부경대 명예졸업장 받는다

    네팔 히말라야 등반 도중에 참변을 당한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대원 이재훈(24) 씨가 모교인 부경대의 명예 졸업장을 받는다. 부경대는 김영섭 총장이 17일 오후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부산 수영구 서호병원을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에게 명예 졸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김총장은 “휴학한 뒤에 히말라야 원정대원으로 떠났다가 사고를 당한 고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명에졸업장을 수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2012년 부경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가 이번 학기에 휴학하고 원정대의 식량과 의료 담당 대원으로 참여해 히말라야로 떠났다. 대학 산악부에서 등반 활동을 시작한 이씨는 부산학생산악연맹의 재학생 회장까지 지냈다. 2015년 전국체육대회 산악경기에 남자대학부로 참가해 우승하기도 했다. 원정대는 지난달 28일부터 네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 구르자히말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현지시간 12일 해발 3500m에 차려진 베이스캠프에서 사고를 당해 5명 모두 사망한 채로 발견됐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부인 떠나보낸 박지원 의원…“여보 잘 가. 미안했고, 잘못했고, 사랑해”

    부인 떠나보낸 박지원 의원…“여보 잘 가. 미안했고, 잘못했고, 사랑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부인 이선자씨의 사망 소식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하면서 부인에게 “여보 잘 가. 미안했고, 잘못했고, 사랑해”라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박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제 아내 이선자 미카엘라가 2018년 10월 15일 오후 1시 5분 하늘나라로 갔다”면서 “하늘나라에서 편히 지내길 기도한다”고 애통한 마음을 드러냈다. 고인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고, 성애병원으로 옮겨 지금까지 치료를 받아 왔다. 이후 박 의원은 고인과 보낸 시간들을 추억하는 글을 남겼다. 사흘 전인 지난 12일 부부는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지난 12일 금요일 아침 9시. 성애병원에서 아내에게 ‘오늘 과천(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밤늦게까지 국감(국정감사)하고 마지막 KTX나 고속버스로 ‘금귀월래’(금요일 지역구로 갔다가 월요일에 상경)할게. 토요일 목포에서 남북정상회담 보고대회도 하고 광주 등 행사가 많아. 일요일 성당, 교회, 절에 예배하고 올라올게. 괜찮지?’ ‘네’하고 제 손을 꼭 잡아 주며 가벼운 미소, 아내와 나눈 대화가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고인은 3주 전 박 의원의 손을 잡고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그랬던 것처럼 열정적으로 하고, 그 대신 이젠 두 딸만을 위해 살아요”라고 말했다고 박 의원은 전했다. 이후 고인은 지난 주말 동안 병세가 악화됐고, 이날 눈을 감았다. 박 의원은 “아내에게 미안하고, 잘못했고, 사랑했다”면서 “두 딸, 두 사위, 손자, 곧 태어날 손주랑 아내를 그리며 살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특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7일 오전 10시.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조인성, 故 정다빈 언급 “당시 너무 미안해서 빈소도 못 가”

    조인성, 故 정다빈 언급 “당시 너무 미안해서 빈소도 못 가”

    배우 조인성이 고인이 된 배우 故 정다빈을 추억했다. 8일 방송된 ‘MBC 스페셜’은 ‘청춘다큐 다시, 스물-뉴 논스톱’ 2부로 꾸며졌다. 과거 MBC 시트콤 ‘뉴 논스톱’에서 호흡을 맞췄던 박경림, 조인성, 장나라, 양동근, 김정화, 이민우, 정태우 등 배우들은 이날 16년 만에 재회했다. 이날 ‘뉴 논스톱’ 멤버들은 2007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 정다빈을 그리워하며, 그가 안치된 추모 공원을 찾았다. 배우 김정화는 “언니네 엄마도 얼마나 안고 싶고, 만지고 싶을까”라며 눈물을 보였다. 정태우는 고인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를 회상하며 “‘설마’,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또 조인성은 “당시 너무 미안해서 빈소를 갈 수 없었다”며 “너무 몰랐다는 게 미안했다. 그래도 마지막 길에 인사를 전했다”고 덤덤하게 털어놨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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