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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고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 빈소

    [포토] 고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 빈소

    9일 고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모습.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 지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이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지난 7일 오후 송파구 법조타운의 한 건물에서 투신해 숨졌다. 연합뉴스
  • 백낙환 인제학원(인제대학교·백병원) 전 이사장 별세

    백낙환 인제학원(인제대학교·백병원) 전 이사장 별세

    한국 의료계의 큰 어른인 인당 백낙환 박사(92)가 7일 오전 5시 22분 서울백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92세. 1926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백병원 창립자이며 당대 최고 명의인 큰아버지 백인제 박사의 뜻에 따라 경성제국대학 예과(서울대 의대 전신)에 진학하면서 외과의사가 됐다. 6·25 전쟁 중 백인제 박사와 아버지 백붕제 변호사가 납북되자 유산처럼 남겨진 백병원 재건을 위해 1961년 백병원 3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천신만고 끝에 서울백병원 재건에 성공하며 1979년 부산백병원을 비롯해 1989년 상계백병원, 1999년 일산백병원, 2010년에 해운대백병원을 개원했다. 현재 전국 5개 백병원에서 3500여 병상, 연 450여만명을 진료하는 의료기관으로 발돋움했다. 1979년부터 1998년까지 백중앙의료원 의료원장과 1989년부터 2000년까지 인제대학교 총장, 2000년부터 2014년까지 학교법인 인제학원 이사장을 역임하며 병원과 학교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또 1984년 대한병원협회 회장(22~23대)과 대한외과학회 회장(37대), 한국병원경영학회 초대 회장, 대한소화기병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의료계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백 박사는 경영자뿐만 아니라 당대 외과의사로도 이름을 떨쳤다. 우리나라 최초로 소아 선천성 거대결장에 대한 ‘스완슨 수술법’, ‘골반내장전적출술’을 시행하는 등 의사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백 박사는 교육자이기도 했다. 1979년에는 큰아버지의 또 다른 꿈이었던 인제대학교도 세워 의료뿐만 아니라 교육 발전에도 앞장섰다. 인술제세·인덕제세 창립이념을 실천하며 학교법인 인제학원을 성장시키는 등 인제대학교와 백병원이 오늘에 있기까지 평생을 교육, 의료, 사회봉사에 헌신했다. 민족 선각자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자 제2대 서재필선생 기념사업회 회장과 성산 장기려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거쳐 2008년 도산 안창호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했다. 복십자후원회 및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의 대표를 맡았다. 민족정신 함양에 공헌한 공로로 1983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200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2010년 보훈문화상과 제14회 부산흥사단 존경받는 인물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숙란 여사와 아들 계형, 도형(숭실대 철학과 교수), 딸 수경, 진경(인제대학교 멀티미디어학부 교수), 며느리 엄인경, 김혜경(인제대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 사위 전병철(인제대학교 나노공학부 교수)씨가 있다.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진행된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월 10일 오전 9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지다. 02-2072-2011.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송현섭 前 국회의원 별세

    송현섭 前 국회의원 별세

    송현섭 전 국회의원이 5일 별세했다. 81세.송 전 의원은 성균관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제12대 국회 때 민한당 전국구(현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13·15대 국회에서도 전국구 의원으로 선출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랑씨와 자녀 정우·민정·민수·수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1호실이며 발인은 8일 오전 6시. 장지는 전북 정읍시 칠보면 선영.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수요집회와 함께한 ‘영정’ 우리 곁 떠난 김순옥 할머니

    수요집회와 함께한 ‘영정’ 우리 곁 떠난 김순옥 할머니

    일본군 성노예 피해 생존자 26명뿐 ‘돈벌이’ 속아 中으로…2005년 귀국 피해 규명 앞장…“이젠 고통 멈추길”오랜 기간 능욕의 세월을 참고 견뎠던 일본군 성 노예 피해생존자 한 분이 또 세상을 떠났다. 5일 김순옥(96) 할머니가 오전 9시 서울아산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정부가 2015년 한일합의로 출범시켰던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고 공식발표한 지 딱 2주 만이다. 올해 들어서만 할머니 6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남은 생존자는 26명뿐이다. 이날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64차 일본군 성 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는 김 할머니의 영정이 함께했다. 집회에서는 할머니의 뜻을 기리겠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참가자들은 “소녀의 짓밟힌 청춘은 우리 가슴속에 되살아난다”, “고통의 눈물을 멈추고 이제는 해방의 기쁨을 누리세요”라고 외치며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했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겨우 일곱 살 나이부터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열여덟 살이 되던 1940년 공장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소문에 속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으로 훌쩍 떠났다. 그러나 김 할머니가 도착한 헤이룽장성 석문자 위안소에서 그는 속절없이 성 노예 피해를 당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종전이 찾아와 해방된 이후 김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중국인과 혼인해 중국 둥닝에 정착했다. 이후 한국정신대연구소, 나눔의 집 등이 수년간 김 할머니의 국적 회복을 위해 노력한 결과 2005년 결국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해 나눔의 집에 입소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김 할머니는 밝은 성격으로 수요집회를 비롯해 위안부 피해 규명 활동에 늘 앞장섰다”면서 “다음 세대가 이 문제를 잊지 않도록 교육을 계속해 나가기를 바라셨다”고 회상했다. 김 할머니의 활약은 눈부셨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수요시위 및 증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2013년에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민사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또 주한 일본 대사관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가한 스즈키 노부유키와 피해 할머니들을 비하한 일본 록밴드 ‘벚꽃 난무류’, 그리고 소설 ‘제국의 위안부’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박유하를 고소했다. 이날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김 할머니의 사망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진 장관은 “지난 10월 나눔의 집에 방문해 김 할머니를 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별세 소식을 접해 무척 마음이 아프다”면서 “여가부는 피해자 한 분 한 분을 더 성심껏 보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7일,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전국에 낡은 배관 686㎞,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

    난방온수 사용 급증하면 압력 높아져 2007년 이후 파열 80%가 노후화 때문 한파주의보가 내린 지난 4일 오후 8시 41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에서 발생한 온수공급용 배관 파열사고는 30년이 다 된 낡은 배관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5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난방온수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뜨거운 물이 27년 된 낡은 강철배관에 가득 차 공급되면서 압력이 높아져 용접 부위에 금이 가 터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일산·분당 등 1991년에 만들어진 1기 신도시에서는 온수공급용 배관 파열사고가 연례행사처럼 발생한다. 백석동에서는 2016년에도 같은 사고가 일어났으며, 분당에서도 지난 2월과 3월 2차례 있었다. 모두 다 1㎝ 두께의 배관 노후화로 확인됐다. 지역난방공사 조사결과 2007년 이후 전국에서 발생한 난방배관 파열사고 약 30건 중 80%가 배관 노후화가 원인이다. 경기도가 지난해 2014∼2016년 발생한 도로 지반 침하 240건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도 같다. 4건 중 3건이 낡은 상·하수도관 때문으로 분석됐다.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날 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열수송관 현황‘에 따르면 공사가 관리하는 열수송관 총 2164㎞(2열) 중 32%인 686㎞가 20년 이상 된 것으로 조사됐다. 공사는 2009~2012년 성균관대 산학협력단이 진행한 열수송관 기대수명 연구결과를 근거로 열수송관의 기대수명을 공급관 40년, 회수관 50년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20~30년이 지난 배관에서 지속적으로 사고가 발생하자, 지난해 12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내년 말 완료 목표로 장기사용 열수송관 건전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반이 약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장석환 대진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백석동 일대는 과거 농경지였고 한강과 가까우며 지하 수위도 높아 지반이 변형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파열사고 현장과 사망자 빈소를 찾은 뒤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번 사고를 계기로 위험한 곳은 긴급점검을 해서 우선 1주일 내에 조치하고, 문제가 되는 배관 686㎞ 전체를 한 달간 정밀 진단을 하겠다”며 “1998년 이전부터 쓰는 열 수송관의 경우 당시에는 연결고리 탐색을 하는 공법이 적용되지 않아 대부분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김순옥 할머니 별세…생존자 이제 26명

    ‘위안부’ 피해자 김순옥 할머니 별세…생존자 이제 26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순옥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별세했다. 97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은 5일 오전 9시 5분 김순옥 할머니가 영면하셨다고 밝혔다. 나눔의 집에 따르면 김순옥 할머니는 20살 때 공장에 취직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 ‘석문자’ 위안소에 끌려갔다. 해방 이후 생계를 위해 중국인과 혼인, 중국 둥닝(동녕)에 정착했다. 2005년 여성부, 한국정신대연구소, 나눔의 집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 나눔의 집에 들어와 생활해 왔다. 이후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수요시위 및 증언 활동에 적극 나섰다. 2013년에는 일본 정부에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민사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밖에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자행했던 스즈키 노부유키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비하한 일본 록밴드 ‘벚꽃 난무류’, 책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 고소 등에 참여하며 성노예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적극 활동했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김순옥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6명으로 줄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위안부 피해 김순옥 할머니 별세…생존자 26명으로 줄어

    위안부 피해 김순옥 할머니 별세…생존자 26명으로 줄어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은 5일 오전 9시 5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순옥(사진)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7세 김 할머니의 별세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6명으로 줄었다. 나눔의 집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20살 때 공장에 취직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 ‘석문자’ 위안소에 끌려가 피해를 봤다. 해방 이후 생계를 위해 중국인과 결혼하여 중국 둥닝(동녕)에 정착했다. 2005년 여성부, 한국정신대연구소, 나눔의 집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 광주 나눔의 집에 들어와 생활해왔다. 이후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해 수요시위 및 증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3년에는 일본 정부에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민사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한 스즈키 노부유키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비하한 일본 록밴드 ‘벚꽃 난무류’, ‘제국의 위안부’ 책의 저자 박유하 교수를 고소 소송에 참여하는 등 ‘성노예’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지는 광주시 퇴촌 나눔의 집 이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김순옥 할머니 별세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진 장관은 “지난 10월 나눔의 집에 방문해 할머니를 직접 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별세 소식을 접하게 돼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고 여가부 측이 전했다. 이어 “이제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중 생존자는 단 26분으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피해자 한 분 한 분 더욱 성심껏 보살필 것”이라며 “모든 피해자분의 상처치유와 명예·존엄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진 장관은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을 위로할 예정이다. 여가부는 장례 비용도 지원하기로 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김희선 부친상 “‘나인룸’ 촬영 중 위독..숙환으로 별세”

    김희선 부친상 “‘나인룸’ 촬영 중 위독..숙환으로 별세”

    배우 김희선(41)이 부친상을 당했다. 김희선의 부친 김홍근 씨가 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층 22호에 마련됐으며, 외동딸인 김희선과 그의 남편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고 소속사 측이 전했다. 발인은 3일 오전 6시 40분이며, 장지는 경북 상주시 선산이다. 소속사 관계자는 “김희선이 tvN 드라마 ‘나인룸’ 촬영 중에도 부친이 위독하셨는데 작품이 끝나고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민중미술 대표 평론가 김윤수 前국립현대미술관장 별세

    민중미술 대표 평론가 김윤수 前국립현대미술관장 별세

    盧정부 시절 연임… MB때 해임 수난도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평론가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29일 별세했다. 82세. 경북 영일 출신의 고인은 서울대 미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3∼1998년 ‘창작과 비평’ 발행인 겸 대표를 지냈으며, 1984∼2001년 영남대 미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전국민족미술인연합 의장 등을 지냈다. 고인은 1970~19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진보적 문화예술 운동을 조직하는데 앞장섰다. 1975년에는 김지하 시인의 ‘양심선언’ 배포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이화여대 미학과 교수직에서 해직되기도 했다. 고인은 1980년대 추상주의에 맞서 민중미술가들에게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 김정헌·신학철·임옥상 등 현대 민중미술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평론으로 조명해왔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재직해 한 차례 연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2008년 11월 임기를 10개월가량 남겨놓고 해임됐다. 마르셀 뒤샹 작품 ‘여행용 가방’을 사면서 규정을 위반했다는 명목이었지만 대법원에서 해임 무효 판결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현대회화사’(1975), 번역서로는 존 버거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1984), 허버트 리드의 ‘현대회화의 역사(1991) 등이 있다. 장례는 민족예술인장으로 치러진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고 박불똥·백낙청·백기완·강요배 등 진보진영 인사들이 장례위를 구성했다. 유족으로는 동생 김익수(영남대 명예교수)와 부인 김정업(상담심리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월 2일 오전 9시 30분. (02)2072-2091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서울시 국가유공자 4대 보훈수당 2배 인상

    서울시 국가유공자 4대 보훈수당 2배 인상

    독립유공자 74% 월 소득 200만원 안돼 내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맞아 추진 고덕강일지구 등 임대주택 공급 확대서울시가 국가유공자를 지원하는 보훈수당을 인상한다. 임대주택 추가 공급, 장례 지원, 공영주차장 이용료 감면 등 다른 지원 서비스도 강화한다. 시는 이런 내용을 담은 2기 서울시 보훈종합계획을 29일 발표했다. 서울에 사는 보훈대상자는 11만 7393명이다. 시에 따르면 독립유공자의 74.2%는 월 소득이 2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시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 생활안정, 예우강화, 보훈단체 활동 지원, 보훈 인프라 확충 등 4개 분야에서 16개 과제를 추진한다. 우선 유공자 생활안정을 위해 보훈수당 인상과 임대주택 추가 공급을 추진한다. 내년 1월부터 조례 개정을 거쳐 4대 보훈수당 월 지급액을 2배 인상한다. 현재 보훈수당을 받는 대상자는 4만 1045명이다. 65세 이상 참전유공자에게 주는 참전명예수당과 4·19, 5·18 민주화유공자 및 특수임무유공자에게 주는 보훈예우수당은 월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인상한다. 애국지사에게 주는 보훈명예수당, 저소득유공자에게 주는 생활보조수당은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오른다. 임대주택 공급도 늘린다. 지난 1기 종합계획 당시 155호를 공급한 데 이어 강동구 고덕강일지구(310호), 강서구 마곡지구(51호), 송파구 위례지구(56호) 등에 모두 417호를 추가로 공급한다. 또 독립유공자 본인 또는 유족에게 연 2회 지급하는 위문금 대상도 선순위자 1명(1900명)에서 2020년부터 직계유족 전체(1만 7000여명)로 확대한다. 이 밖에도 70세 이상 국가유공자가 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료를 80%까지 감면해 주고, 저소득 국가유공자 사망 시에는 ‘서울시 공영장례서비스’를 통해 빈소, 인력·장례물품 등을 지원한다. 국가유공자 의료비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병원은 현재 중앙보훈병원 1곳에서 9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내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라는 의미가 있는 해인 만큼 유공자와 유족을 위한 정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북한 개방되면 월드옥타 회원들이 北제품 전세계로 수출...이런 날이 빨리 오길”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북한 개방되면 월드옥타 회원들이 北제품 전세계로 수출...이런 날이 빨리 오길”

    하용화 신임 월드옥타 회장이 말하는 취임 각오“북한에 대해서는 우리 한인 무역인의 할 일이 아주 많을 겁니다. 지금도 합법적인 범위에서 북한과 생활필수품 교역을 하는 우리 교포들이 많습니다. 북한이 개방되면 국가나 대기업이 주도하는 중공업이나 큰 규모를 빼고 가내 수공업 내지 경공업 분야에는 우리의 역할이 자주 클 겁니다. 우리도 여기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일하는 분들을 통하면 북한 내부 소식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대나 역할에 비해 우리 조직이 너무 과소평가돼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국을 제외한 전세계 74개국 146개 도시에 지회를 두고 있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의 하용화(62) 신임 회장의 포부다. 그는 지난달 월드옥타 회장으로 뽑혀 11월 1일부터 2년 임기가 시작됐다. 세계 금융의 ‘전쟁터’인 미국 뉴욕에서 굴지의 보험중걔회사인 솔로몬 보험그룹을 이끌고 있다. 회사 창립 25주년 행사를 미국 프로야구 뉴욕 메츠 홈구장 경기를 스폰서하면서 성황리에 열기도 했다. 지난달 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제23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 참석차 귀국한 하용화 회장은 빠듯한 일정 속에서 출국 직전 가까스로 인터뷰에 응했다. “1986년 영어 공부하고자 도미70군데 원서 넣어도 취업 실패7년간 가방들고 나가 보험 팔아곰팡이 피는 반지하서 생활했죠” 그는 “뉴욕에서 기업을 운영하며 먹고 살만하고, 월드옥타 회장까지 됐으니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맞습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제 이름이 ‘물하(河), 용용(龍), 될화(化)’이니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이름대로 증명됐지요.” 그의 고향은 충남 부여군 세도면으로 ‘오지’로 치부된다. 경기대를 마치고 ‘영어 회화’를 익히고자 미국으로 넘어갔다. “안병욱 교수님의 특강을 들었습니다. 21세기에 살려면 세 가지 즉 운전면허, 컴퓨터, 영어회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영어회화 한 3개월 하면 될 줄 알고 1986년 1월 미국에 넘어왔는데…. 남들은 1년 반 만에 마치는 MBA를 4년이 걸렸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으니.” ‘어떻게 미국에서 사업을 크게 일구게 됐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하 회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 “1986년 미국에 올 때 아무 연고도 없었습니다. 롱아일랜드대학에서 MBA를 마친 한국 동문 대다수는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경기도 좋았고.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집안 형편상 돌아가지 못하고 …. 입사원서를 미국 회사 70군데에 넣었습니다. 영주권이 없으니 다 떨어지고, 마지막에 보험회사에서 ‘일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해 성과가 좋으면 ‘그린 카드’(영주권을 지칭)를 받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그래서 들어가 일한 거지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1992년 설립한 솔로몬보험연간 1억달러 수신고 기록‘100대 중개사’ 진입 목표동남아인 보험가입 권유하면?” 미국에서의 사업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처음엔 한 7년 동안 가방 들고 한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보험을 팔았던 거죠. 사람을 많이 알게 되고, 바닥을 다졌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한계는 분명하죠. 그래서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이탈리아인, 중국인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죄송하지만, 한국에서 동남아 출신 사람이 찾아와 ‘보험 가입하라’고 하면 들겠습니까. 미국은 그게 가능한 나라입니다. 아시아인인 이 얼굴로 가능합니다.” 그의 회사는 직원 70여명 정도지만 연간 수신액이 지난해 기준 1억달러(한화 1126억원 상당)를 넘었다고 한다. 직원당 약 15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을 한 셈이다. 미국에 보험 중개사가 수십만개 회사가 있지만 그는 회사를 ‘100대 중개사’에 진입시키는 것이 목표다. 회사 직원의 절반 이상이 비(非)한국인, 수신고를 올리는 이들의 95%가 미국인이다. 지난해 5월 창립 25주년 기념행사를 뉴욕 메츠 홈구장인 플러싱에서 가진 것과 관련해 하 회장은 ‘쿨’하게 이야기 했다. “예약만 하면 다 가능합니다. 시구도 할 수 있고요. 직원들 사기는 굉장히 올라갔습니다.” “버핏, 5만달러 주면서 만찬 초청주빈 테이블서 농담도 교환버핏, 돈 잘 쓰는 철학 보여줘다양한 사람 만나는 게 버킷리스트” 초창기 미국 생활을 이야기해 달라는 말에 하 회장은 “보험 가입하라고 명함을 건네면 그 자리에서 제 명함을 쓰레기통에 넣는 사람도 봤습니다. 곰팡이 핀 반지하에서 살기도 했고 …. 처음엔 한인들을 중심으로 만났지만 나중에 세계 각국의 사람을 다 만났습니다.” 그러다 1992년 솔로몬보험 회사를 설립했다. 그 회사가 성장해 미국 재계가 주목하게 되면서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런 버핏(88)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2015년 6월 하 회장에게 5만달러(약 5600만원)를 주면서 만찬에 초청하기도 했다. 버핏은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은 보험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손꼽히는 중개사 최고경영자(CEO)이자 뉴욕한인회장이었던 그를 초대한 것이었다. ‘워런 버핏 회장과의 만남 뒷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하 회장은 “버핏 회장과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금언이 되는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버핏 회장은 자신의 버킷리스트 첫 번째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꼽았습니다. 기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음미해볼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언이 필요할 때 누구를 찾느냐’고 질문하니 그는 ‘당신보다 나은 점이 있는 사람과 어울리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들려줬습니다. 자신은 사람을 만나는 것, 특히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첫번째 버킷리스트이고, 거래가 크면 클수록 만족도가 높아진다며 직접 투자하는 것을 권했습니다. 취직하면 처음엔 다른 사람을 위해 돈 벌어주고, 다음엔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돈을 벌어주지요. 마지막엔 돈이 돈을 벌어들입니다. ” ‘기부 왕’인 버핏 회장은 돈을 쓰는 철학에 대해서도 하 회장이 전해줬다. “버핏 회장은 ‘돈을 버는 건 자신 있지만 돈을 잘 쓰는 것은 어렵다’고하더라며 돈을 잘 쓰는 사람에게 자신의 재산을 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가 말하는 돈을 잘 쓰는 것은 경로당이나 고아원 같은 불우이웃 시절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쓰면서도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것’이라고 하 회장은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런 결과로 버핏 회장은 5개의 비영리 재단을 만들었다고 봤다.하 회장은 버핏을 만나면서 만찬 비용을 낸 것이 아니라 “인센티브로 5만달러를 받았다”고 자랑스럽게 그리고 살짝 말했다. “초청을 받은 저는 왕복 항공권과 숙박권뿐만 아니라 그가 소유한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백화점 상품권도 받았습니다.” 매일 신문 6~7개를 읽는 버핏 회장은 또한 유머가 굉장히 뛰어났다고 그는 기억했다. 그가 들려준 유머다. “내 친구 존이 귀가 안 들린다고 이야기하길래 내가(버핏이) 친구랑 같이 주치의를 찾아갔지요. 병원 의사는 나랑 친구를 몇 걸음 떼어 등을 돌리고 서 있으라고 한 뒤 나에게 궁금한 것을 친구에게 물어보라고 했어요. 내가 ‘GM 주가 어떻게 돼?’를 여러 번 갈수록 큰 소리로 외쳤던 겁니다. 아무 소리도 안들려 의사에게 ‘친구 존이 정말로 귀가 먹었나보다. 내가 큰 소리로 몇 번이나 물었는데도 답이 없다. 큰일이야.’고 하자, 의사는 ‘사도 괜찮다며 친구는 다 답을 했다.’라고 했죠. 하하. 실제로 대화해보니 버핏 회장은 잘 듣고, 대답도 잘 하시더라고요.” 그는 재외동포 중심의 경제단체인 월드옥타가 그 역할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옥타 위상의 재정립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해외 750만 동포의 경제 중심 단체로서 모국과의 동반성장을 추구하고, 4세대까지 내려간 동포들에게 정체성을 일깨우고 무역실무를 가르치는데 방점을 찍겠다고도 했다. “지난달 창원에서 열린 행사에서 수출 계약금이 6200만달러(약 700억원)였습니다. 수출대국 한국에선 ‘그게 무슨 큰 도움이 되겠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수출해보지 못한 작업 기업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출이라는 큰 발을 내디딘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중국이 처음 개방했을 때 전세계 화상(華商)들이 중국 물건을 보따리 장사로 수출했던 것처럼 머지않아 월드옥타 회원들이 한상(韓商)으로서 북한 제품을 수출할 것이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에 최근 이와 관련된 조직을 정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 제품을 우리가 수출하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우리 월드옥타 회원들은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그가 장밋빛 성공 가도만 달렸을까. 참척(慘慽)의 고통에 대해서도 되풀이되지 말자는 뜻에서 담담히 털어놨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이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숨겨 가족끼리만 (장례를) 하려고 했죠. 그래서 실명 대신 ‘H’씨로 보도됐는데 뉴욕지역의 유력 신문이 ‘전 뉴욕한인회장의 딸 투신 자살’이라고 1면 톱으로 보도한 거예요. 그 신문 사장과 ‘x새끼, x새끼’하고 전화로 싸워봤자 이미 다 터져버린거죠. 어쩔 수 없이 빈소를 차리니 조문객이 1200명이 오신 거예요. 부의금이 10만달러였는데 이를 어쩔까 고민하다 3개월이 지나 조문객들을 모아 논의했지요. 그때 마음의 병도 생명을 다투는 병이니 경각심을 주자는 의견이 모였고 그래서 2014년 딸의 이름을 따서 정신건강 비영리단체인 ‘에스더 하 재단 설립했습니다. 자살이나 우울증과 같은 심리 문제에 대해 상담과 소통, 치유 등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적절한 치료를 병행하지 않고 운동과 햇빛이 좋다는 인터넷 이야기는 미친 짓이란 걸 절절이 깨달았습니다.” “갑작스러운 딸 죽음 불행에이름 딴 ‘에스더 하 재단’ 설립한류 열풍에 동포들 자긍심 높아해외 우리 유물 알기 운동도 계획” 이 재단을 만들고서도 뒷말이 많았단다. “재단을 알려야겠기에 처음엔 ‘아이와 사연’ 있는 한국 가수들을 초청해 공연도 했지요. 그랬더니 ‘딸을 팔아서 가수 부른다’고 수군수군했습니다. 이젠 많이 알려졌고, 많은 이들이 재단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어 더는 가수들을 초청하지 않습니다. 또 재단에 연간 20만달러 정도 소요되는데 제가 절반쯤 냅니다만, 재산을 빼돌리려고 재단을 만들었다는 등 뒷말들이 많았는데, 이젠 조용해졌습니다. 진심이랄까 진정성이 통했던 거죠. 지난달 25일엔 뉴욕의 그레이터플러싱 상공회의소로부터 ‘동네 영웅(Neighborhood Hero) 상을 받았습니다.” “딸 아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다”고 하자 하 회장은 “처음엔 지옥이었습니다. 사회생활에 무척 바빴던 저는 가정에 소홀했다는 회한, ‘머리가 이상하다’는 딸의 말을 무시하고 강하게 푸시했던 무지, 서로 ‘당신 탓’이라며 원망과 비난으로 끝없는 부부 싸움, 학교를 그만두고 술만 마시며 나이트클럽만 전전한 딸, 아무런 말도 않고 안으로만 들어갔던 아들 … 모든 게 엉망이었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죠. 이런 것을 극복하는데 기독교 신앙의 힘이 컸죠. 부의금을 재단의 시드머니로 삼았습니다. 재단을 잘 운영해 한 명의 목숨이라도 건지는 것이 21살, 대학교 2학년 때 간, 가슴에 묻은 딸을 기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가족의 상처를 다시 건드릴까봐 쓰지 말까 생각하다 비슷한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해서 기사화했다. 그도 이런 부분을 기사화하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이같은 그의 아픔과 치유 스토리는 미국 보이스오브아메리카(VOA)에 ‘딸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지난 9월 29일 심층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해외 동포들이 요즘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다고 한다.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K-팝과 한국 음식, 한국 문화 등 한류 열풍에 힘입은 것이다. “한국 문화가 세계화되면서 현지에 있는 우리 문화재 내지 유물에 관심도 높아진 거죠. 당장 무슨 환수운동을 벌인다기보다는 우리 유물이 어디에 어떤 게 있는지 파악하고, 현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 문화재가 한국 것이라고 후세들에게 알려주는 거죠. 그런 것을 통해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정체성도 일깨워주는 것도 우리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해외 동포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면 그곳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다시 한번 찾아가보고 조사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해외 취업 ‘전쟁터’라는 각오로아이들 연약하게 키운 부모 책임” 한국의 실업률과 관련해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하 회장은 “청년들이 국내에서 취업이 어려우니 외국에 눈을 돌리는데, 그게 해외는 도피처가 아니라 ‘전쟁터’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전쟁터에 나간다는 마음의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고 말하며 잠시 쉬었다. “한국 청년들, 소위 말해서 스펙은 무척 좋습니다. 자격증도 많고 토익 점수도 900점대로 아주 높고…. 그러나 인재를 뽑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것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이거나 아주 특이한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찾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취직을 하겠다고 하면 환상을 깨야 합니다. 미국만 해도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전쟁터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영국·일본 등 선진국만 찾습니다만 이런 나라에는 야심만마난 전세계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나라입니다.”하 회장은 쓴소리를 이어갔다. “한국의 부모가 자녀를 연약하게 키운 책임이 큽니다. 자라면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아이들이 험한 데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베트남의 경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합니다. 몇 년 열심히 투자하면 저보다 몇 배나 더 큰 부를 일굴 수 있을 겁니다. 베트남 등 동남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이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 좋은 기업, 많은 연봉을 주는 곳만 찾으니 이런 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류 열풍에 한국 문화에 대한 수요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한국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호텔리어, 헤어·의상 디자이너 등등에 수요가 아주 많습니다. 행운이라는 것은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만났을 때 생기는 것이지 하늘에서 곶감 떨어지듯 하는 건 아닙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민중미술 대표 평론가’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별세

    ‘민중미술 대표 평론가’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별세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평론가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경북 영일 출신으로 서울대 미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3∼1998년 ‘창작과 비평’ 발행인 겸 대표를 지냈으며, 1984∼2001년 영남대 미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전국민족미술인연합 의장 등도 지냈다. 고인은 1980년대 추상주의에 맞서 민중미술가들에게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재직해 3년 임기에 한 차례 연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임기를 10개월가량 남겨놓고 2008년 11월 해임됐다. 마르셀 뒤샹 작품 ‘여행용 가방’을 사면서 규정을 위반했다는 명목이었지만 대법원에서 해임 무효 판결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발인은 12월 2일이다. (02)2072-2091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김현미 “코레일, 안전사고 조치 미흡…기강해이 성찰해야”

    김현미 “코레일, 안전사고 조치 미흡…기강해이 성찰해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잇따르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열차 안전사고와 관련해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하고 사고 발생 이후 조치가 매우 미흡했다”고 질타했다. 김 장관은 코레일의 철도 안전관리 체계를 점검하기 위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고 국토부 자체 감사를 병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 장관은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13개 산하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기관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난 현 시점에 우리 스스로가 관행에 익숙해지고 관성적인 업무태도를 갖게 된 것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업무 추진과정에서 말실수를 한다거나, 기강이 느슨해져서 안전 관리 등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특히 김 장관은 코레일 오영식 사장에게 최근 발생한 오송역 인근 단전사고 및 도색 작업자 사망사고를 언급하며 “최근 1주일 동안 6차례나 고장과 사고가 발생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국토부 장관으로 부임하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바로 철도 선로작업 도중 돌아가신 분의 빈소였다”며 “철도 안전관리 시스템을 확실하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고 예방이 우선이지만 사고 이후에도 신속한 복구와 안내를 통해 이용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표준화된 대응 매뉴얼 마련을 촉구했다. 김 장관은 최근 발생한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사고와 관련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측에 “비주택 거주자가 가전제품과 가구를 구입해야 하는 부담으로 공공임대 입주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 만큼 이들을 위한 세심한 지원방안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와 관련해서는 “신규채용과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부정 채용은 없었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공정한 임용이 이뤄지도록 내외부 통제를 강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지난 7월 이후 4개월 만에 열린 이번 공공기관장 간담회는 ‘군기잡기’ 성격이 강했다. 김 장관은 “각 기관장은 정부와 각 기관 간에 사전에 확정되지 않은 사항이 공개됨으로써 정책 혼선을 야기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달라”고 덧붙였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한국 제지산업의 선구자’ 별세

    ‘한국 제지산업의 선구자’ 별세

    한국 제지산업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종대 유한킴벌리 초대회장이 지난 27일 별세했다. 향년 85세.고인은 1967년 유한양행 제지기술 부장으로 입사했고 1970년 유한킴벌리 창립을 주도했다. 고인은 ‘뽀삐 화장지’, ‘미용티슈 크리넥스’를 국내에 처음 도입해 출시했다. 자녀로는 이석우(사업)·재우(주식회사 키친스토리 이사)씨와 ‘빅마마’로 알려진 요리연구가 이혜정씨가 있다. 대한여성성의학회 회장 고민환씨가 사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8시, 장지는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 02-3010-2230.
  • [부고] 언론 개혁 매진한 김승수 전북대 교수

    [부고] 언론 개혁 매진한 김승수 전북대 교수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2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59세.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영국 레스터대 대학원 등에서 언론학을 공부한 김 교수는 평소 언론경제학에 근거한 미디어산업의 소유구조와 독과점 시장 흐름에 대해 연구해왔다. 한국방송학회 부회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 한국언론정보학회장(2010~2011년) 등을 역임했고, 지난 2000년 ‘조선일보 기고와 인터뷰를 거부하는 지식인’ 1차 선언에 참여하는 등 언론개혁에도 적극 목소리를 냈다. 빈소는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6일 오전 9시다. 유족으로는 부인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와 아들 김민성씨, 딸 김민지씨가 있다. (02)797-4444.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부고]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별세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2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59세.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영국 레스터대 대학원 등에서 언론학을 공부한 김 교수는 평소 언론경제학에 근거한 미디어산업의 소유구조와 독과점 시장 흐름에 대해 연구해왔다. 한국방송학회 부회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 한국언론정보학회장(2010~2011년) 등을 역임했고, 지난 2000년 ‘조선일보 기고와 인터뷰를 거부하는 지식인’ 1차 선언에 참여하는 등 언론개혁에도 적극 목소리를 냈다. 빈소는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6일 오전 9시다. 유족으로는 부인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있다. (02)797-4444.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유해진 오늘(24일) 부친상, 슬픔 속 빈소 지켜..26일 발인

    유해진 오늘(24일) 부친상, 슬픔 속 빈소 지켜..26일 발인

    배우 유해진의 부친상 소식이 전해졌다. 24일 유해진 소속사 화이브라더스 측은 “유해진이 오늘(24일) 부친상을 당했다. 발인은 26일”이라고 전했다. 유해진은 슬픔 속에 빈소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청주 성모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한편, 유해진은 최근 영화 ‘완벽한 타인’에 출연한 바 있다. 오는 2019년에는 영화 ‘전투’와 ‘말모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원피스’ 상디·세일러문 ‘턱시도 가면’ 성우 김일 별세

    ‘원피스’ 상디·세일러문 ‘턱시도 가면’ 성우 김일 별세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캐릭터 상디의 한국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 김일이 18일 별세했다. 52세. 한국성우협회에 따르면 김일은 이날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1990년 KBS 성우극회 22기로 성우 생활을 시작한 김일은 애니메이션 ‘지구용사 선가드’의 한불새, ‘달의 요정 세일러문’의 레온(턱시도 가면), ‘원피스’의 상디, ‘강철의 연금술사’의 매스 휴즈 등 주로 미소년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 밖에도 외화에서 윌 스미스, 양조위, 성룡, 아담 샌들러 등의 목소리를 담당하곤 했다. 또 SBS ‘도전 1000곡’,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KBS ‘TV쇼 진품명품’ 등에서도 활약했다. 빈소는 인제대학교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0일 오전이다. ☎ 031-910-7444.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장석화 前 13·14대 국회의원 별세

    장석화 前 13·14대 국회의원 별세

    장석화 전 국회의원이 14일 별세했다고 장 전 의원 측이 15일 밝혔다. 73세. 고인은 서울지법 남부지원·서울민사지법 판사, 춘천지법 속초지원장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하다 1987년 통일민주당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서울 영등포갑 지역에서 13대와 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14대 국회에선 국회 노동위원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분인 유춘실씨와 자녀 재원, 성원, 진영씨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 병원, 발인은 16일 오전 10시. 031-787-1508
  • 마지막까지 ‘투혼’… 미소로 남은 사이클 여제

    마지막까지 ‘투혼’… 미소로 남은 사이클 여제

    아시안게임 金 2개… 대표팀 간판 선수 지난주 SNS “버티고 있다” 마지막 의지사이클 국가대표를 지낸 이민혜가 급성골수성백혈병과 2년 3개월 싸우다 지난 12일 오후 4시 세상을 떠났다. 33세. 고인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여자 개인추발 금메달, 포인트레이스 은메달, 개인도로독주 동메달을 땄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도로독주 금메달과 개인추발 은메달,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단체추발 은메달을 목에 건 사이클 간판선수였다. 또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4년 뒤 런던올림픽에도 나서 한국 사이클 최초 메달에 도전했다. 2011년 사이클대상 최우수상, 2016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상했다. 그는 2년 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선수 생활을 이어 가지 못했다.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남자축구 대표팀이 지난 5일 그의 쾌유를 기원하며 성금 1000만원을 기탁했을 때만 해도 세 번째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고 싶다는 꿈을 털어놓았다. 고인은 지난 6일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다시 항암 치료에 들어간다며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되고, 정신을 붙잡아야 한다고 한다. 많이 힘들다. 견딜 수 있도록 버티고 있다”며 마지막 의지를 드러냈었다.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연세장례식장. 발인은 14일 오전 10시 30분.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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