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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박종철 수사, 신창언 헌법재판관 별세

    故박종철 수사, 신창언 헌법재판관 별세

    신창언 전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이 지난 3일 오후 6시 별세했다. 78세. 신 전 재판관은 1969년 서울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지검 형사2부장, 법무부 법무실장, 부산지검장 등을 역임하다 1994년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서울지검 형사2부장 시절인 1987년 박종철씨 고문치사 의혹 사건 수사팀 최고참으로 참여해 고문 경찰 5명을 구속 기소했다. 1996년 헌법재판관 시절에는 ‘5·18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 참여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없으며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실. 발인은 5일 오전 8시 40분이고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이 있다.
  • ‘별들의 고향’ ‘덕이’ 작가 이희우 별세

    ‘별들의 고향’ ‘덕이’ 작가 이희우 별세

    원로 드라마 작가 이희우가 지난 3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80세. 경기 파주 출신인 고인은 1959년 시인으로 등단스크린과 안방극장, 희곡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영화 ‘여자가 고백할 때’(1969)의 각본을 맡아 영화계에 데뷔한 뒤 ‘만종’과 ‘별들의 고향’시나리오를 남겼다. 1970년 서울중앙방송 라디오 드라마 각본을 집필하기 시작해 ‘봄비’, ‘엄마의 방’, ‘며느리 삼국지’, ‘형제의 강’, ‘오남매’, ‘장길산’등 히트작을 썼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차덕신씨와 아들 상현(JTBC 보도제작국 PD)·상록(아이네클라이네 퍼니처 대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6일 오전 5시다.
  • 심정지로 세상 떠난 SK 정재홍 5일 부검 뒤 6일 오전 발인

    심정지로 세상 떠난 SK 정재홍 5일 부검 뒤 6일 오전 발인

    갑작스럽게 심정지로 세상을 떠난 정재홍(33)의 부검과 발인 날짜가 확정됐다. 프로농구 서울 SK 나이츠 구단은 지난 3일 사망한 가드 정재홍에 대한 부검이 5일 진행된다고 밝히며 다음날 오전 6시 10분에 발인한다고 4일 밝혔다. 구단 관계자는 이날 “경찰에서 법적인 사유를 설명하며 유가족을 설득해 내일 부검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아시아 챔피언스컵 대회 때 유난히 밝게 웃던 고인이 어찌 이런 일을 당했느냐며 이 관계자는 페이스북에 사진 몇 장을 올렸다. 지난달 말 고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훈련 도중 사진과 그가 적은 글 ‘하루를 웃지 않고 보냈다면 낭비한 하루다’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정재홍은 지난달 말 연습경기 도중 손목을 다쳤고, 수술을 받기 위해 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다음날 수술을 앞둔 상태였다. 전날 오후 6시쯤 담당 의사와 상담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한 정재홍에게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찾아왔다. 당시 정재홍은 5인실에 입원해 있었으나 주변 환자들은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던 간호사가 의식을 잃은 정재홍을 발견했고 곧바로 3시간 넘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많은 가드 스타들을 배출한 인천 송도고와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8년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한 정재홍은 2012~2013시즌까지 오리온스에 몸 담으며 2013~14시즌부터 두 시즌 인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었다. 2015~시즌 친정팀 오리온으로 돌아와 팀 우승에 힘을 보탠 정재홍은 2016~2017시즌을 마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SK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백업 가드로 활약하며 2017~시즌 SK의 우승에도 일조했다. 사비를 털어 트레이닝을 다녀올 정도로 농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정재홍은 프로 통산 331경기에 출전해 평균 3.6득점 1리바운드 1.8어시스트의 성적을 남겼다. 고인의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7호에 마련됐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정재홍 사망, 생전 원했던 희망은..

    정재홍 사망, 생전 원했던 희망은..

    정재홍 선수의 마지막은 SK나이츠이었다. 지난 3일 오후 정재홍 선수가 34세 젊은 나이에 심정지로 사망해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정재홍 선수는 SK나이츠에서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한 바 있다. 정재홍 선수는 2017년 SK나이츠와 3년 재계약과 함께 보수 2억3000만 원을 받았다. 당시 그는 많은 보수와 함께 재계약을 해서 좋다며 SK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한 바 있다. 정재홍 선수는 특히 팬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수차례 재능기부 행사를 열어 팬들을 초대해 농구 강습을 진행했다. 한편 SK는 3일 “정재홍이 오후 10시 40분쯤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미정이다. SK 관계자에 따르면 정재홍은 지난달 말 연습경기 도중 손목을 다쳤고, 수술을 받기 위해 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수술은 4일 예정이었다. 담당의와 상담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한 정재홍에게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찾아왔다. 간호사가 의식을 잃은 정재홍을 발견한 후 응급 처치를 했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사망했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진 = 서울신문DB 뉴스부 seoulen@seoul.co.kr
  • 정재홍 사망, 일주일 전 SNS 보니 ‘안타까워’

    정재홍 사망, 일주일 전 SNS 보니 ‘안타까워’

    프로농구 서울 SK의 가드 정재홍이 33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SK는 3일 “정재홍이 오후 10시 40분쯤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미정이다. SK 관계자에 따르면 정재홍은 지난달 말 연습경기 도중 손목을 다쳤고, 수술을 받기 위해 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수술은 4일 예정이었다. 담당의와 상담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한 정재홍에게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찾아왔다. 간호사가 의식을 잃은 정재홍을 발견한 후 응급 처치를 했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사망했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재홍은 사망 일주일 전인 지난달 2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A day without laughter is a day wasted. 웃음이 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다”라는 글과 함께 코트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이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8년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한 정재홍은 2012~2013시즌까지 오리온스에 몸 담았고, 2013~2014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인천 전자랜드에서 활약했다. 2015~2016시즌 친정팀 오리온으로 돌아와 팀 우승에 힘을 보탠 정재홍은 2016~2017시즌을 마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SK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백업 가드로 활약하며 2017~2018시즌 SK의 우승에도 일조했다. 정재홍은 프로 통산 331경기에 출전해 평균 3.6득점 1리바운드 1.8어시스트의 성적을 남겼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정재홍, 3시간 심폐소생술에도 끝내 숨져

    정재홍, 3시간 심폐소생술에도 끝내 숨져

    프로농구 SK나이츠의 가드 정재홍이 3일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SK는 3일 “정재홍이 오후 10시 40분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정재홍은 손목을 다쳐 수술을 위해 3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 수술은 4일로 예정돼 있었다. 3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던 그는 갑작스레 심정지를 일으켰다. 병원에서 3시간가량 심폐 소생술을 진행했으나 맥박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사망했다. 동국대를 졸업한 정재홍은 2008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로 대구 오리온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인천 전자랜드, 고양 오리온을 거쳐 2017-2018시즌 SK에 합류했고, 이적 첫해 SK의 우승을 도왔다. 빈소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7호실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프로농구 SK 가드 정재홍 갑작스럽게 심정지로 사망

    프로농구 SK 가드 정재홍 갑작스럽게 심정지로 사망

    프로농구 서울 SK의 가드 정재홍이 갑작스럽게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3세. SK 구단은 3일 “정재홍 선수가 밤 10시 40분쯤 심정지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구단에 따르면 최근 손목 부상으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4일 수술이 예정돼 있던 정재홍은 이날 저녁 식사 후 심정지가 찾아왔고, 3시간 가량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안타깝게 숨을 거뒀다. 고인은 가드의 산실 인천 송도고와 동국대 출신으로 2008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 지명돼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13~2015년에는 인천 전자랜드에 임대됐다가 오리온에 복귀해, 2015-16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일조했다. 2017~18시즌부터 SK 유니폼을 입었고, 역시 SK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힘을 보태며 두 번째 챔피언 반지를 손에 끼었다. 178㎝의 상대적으로 작은 키에 사비로 미국에 스킬 트레이닝을 다녀올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 빈소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7호실이고, 발인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전두환 비자금’ 안무혁 前안기부장 별세

    ‘전두환 비자금’ 안무혁 前안기부장 별세

    안무혁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이 26일 별세했다. 84세. 황해도 안악 태생인 고인은 육사 출신으로 전두환 정권의 국세청장, 안기부장을 역임했다. 14대 국회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후 한국발전연구원 이사장과 이북5도위원회 황해도 도민회장을 거쳤다. 1997년 ‘전두환 비자금 사건’ 재판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방홍자씨와 딸 정희씨, 아들 성완·성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28일 오전 7시 40분, 장지는 경기 파주 동화경모공원.
  • [부고] 신창기씨 장모상, 김덕환씨 모친상, 이원종씨 자녀상, 구재연씨 부친상

    ●신창기(경남 거창군 부군수) 씨 장모상, 26일 낮 12시, 부산시 진구 수병원 장례식장 102호, 발인 28일 오전 8시 30분. 051-853-1024 ●김덕근·김덕순·김덕환(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변호사)·김덕현씨 모친상, 26일 오전 8시46분,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28일 오전 9시15분. 031-219-4571 ●이원종(이코노믹스 기자·전 SBS CNBC 기자)씨 자녀상, 26일 서울성모장례식장 3호실, 발인 28일 오전 8시 45분. 02-2258-5940 ●구재연(세종경찰청 정보계장)씨 부친상, 26일 오후 8시 5분, 충남 보령아산병원 장례식장 2빈소, 발인 28일 오전 8시 30분. 041-930-5632
  • ‘사인 불명’ 탈북 엄마·6살 아들 장례, 통일부 “최대예우 진행”

    ‘사인 불명’ 탈북 엄마·6살 아들 장례, 통일부 “최대예우 진행”

    ‘아사’ 단정 못한다 결론…내사 종결 예정모자 숨진 지 두달만에 부패한 채 발견16개월 밀린 월세, 식품 없어 ‘아사’ 제기통일부 “탈북단체들과 장례 협의 중”“탈북자 정착지원 사각지대 없게 하겠다” 통일부가 집에서 숨진 지 두달 만에 발견된 탈북민 40대 여성과 6살 아들의 장례 절차와 관련해 “고인에 대한 최대의 예우를 갖춰서 진행될 수 있도록 남북하나재단을 중심으로 탈북민 단체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모자에 대한 부검 결과에서 약물과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다만 아사로 단정할 수 없다는 당국의 결론과 함께 내사 종결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은한 통일부 부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부 단체들이 자체적으로 차린 분향소에 통일부가 조화를 보내거나 조문할 계획이 있는지 묻는 말에 이렇게 설명했다. 김 부대변인은 “협의 결과에 따라서 조속한 시일 내에 빈소 설치와 조문, 세부 장례절차 논의 등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경찰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장례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탈북민 단체 등과의 협의에 다소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대변인은 이번 사건이 미흡한 복지정책 때문에 발생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탈북민 정착지원과 관련해서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부처 간에 긴밀히 협의하고 대책을 마련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2009년 하나원을 수료한 탈북민 한모(42)씨는 아들 김모(6)군과 함께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지 두달이 지나 발견됐다. 특히 탈북 모자가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 이들의 아파트에 식료품이 다 떨어져 있어 일각에서는 아사(굶주려 죽음)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들이 최근까지 받은 정부 지원금이 양육수당 월 10만원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빈곤 탈북민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모자의 시신이 심하게 부패된 상태로 발견됐을 당시 16만4000원의 월세가 16개월이나 밀린 상태였지만 그동안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 모자의 집을 찾아간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한씨가 양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동수당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이혼 관련 서류를 요구받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양자 모두 사인 불명이며, 약물이나 독물 역시 검출되지 않았다”면서 “부검 감정과 현장 감식, 주변 탐문 결과 특이사항이 없어 내사 종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서울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고도의 부패 변성이 진행돼 (부검에) 제약이 있으나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 뚜렷한 질병이나 손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국과수 부검 결과 직접 사인이 ‘불명’으로 나왔기 때문에 아사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타살 혐의점이나 자살 정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한국 문단의 증인’ 강민 시인 별세

    ‘한국 문단의 증인’ 강민 시인 별세

    원로 강민 시인이 2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6세.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공군사관학교와 동국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1962년 ‘자유문학’에 시 ‘노래’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전쟁과 분단, 독재로 이어지는 역사를 몸소 겪으며 삶의 애환과 시대의 고통을 노래했다. 시집 ‘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 ‘기다림에도 색깔이 있나보다’, ‘미로(迷路)에서’, ‘외포리의 갈매기’를 내놨고, 올 초 시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를 펴냈다. 윤동주문학상, 동국문학인상, 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 동인지 ‘현실’과 드라마 동인 ‘네오 드라마’에도 참여했다. 고인은 등단 30년 만에 첫 시집을 내고 시력 반세기 동안 단 네 권의 시집만 펴냈지만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걸어다니는 한국문단사’로 불렸다. ‘학원’ 등의 잡지사를 비롯한 출판계에 몸담은 그는 잡지 ‘주부생활’ 편집국장, 금성출판사 상무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지내며 적극적으로 실천문학 운동을 벌였다. 빈소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발인은 24일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한국 문단의 증인’ 강민 시인 별세

    ‘한국 문단의 증인’ 강민 시인 별세

    원로 강민 시인이 2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6세.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공군사관학교와 동국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1962년 ‘자유문학’에 시 ‘노래’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전쟁과 분단, 독재로 이어지는 역사를 몸소 겪으며 삶의 애환과 시대의 고통을 노래했다. 시집 ‘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 ‘기다림에도 색깔이 있나보다’, ‘미로(迷路)에서’, ‘외포리의 갈매기’를 내놨고, 올 초 시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를 펴냈다. 윤동주문학상, 동국문학인상, 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 동인지 ‘현실’과 드라마 동인 ‘네오 드라마’에도 참여했다. 고인은 등단 30년 만에 첫 시집을 내고 시력 반세기 동안 단 네 권의 시집만 펴냈지만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걸어다니는 한국문단사’로 불렸다. ‘학원’ 등의 잡지사를 비롯한 출판계에 몸담은 그는 잡지 ‘주부생활’ 편집국장, 금성출판사 상무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지내며 적극적으로 실천문학 운동을 벌였다. 빈소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발인은 24일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해직 언론인 상징’ 이용마 MBC기자 암투병 끝 별세

    ‘해직 언론인 상징’ 이용마 MBC기자 암투병 끝 별세

    文대통령 “치열했던 그의 삶 기억할 것” 이낙연·박지원 등 정치권 추모 잇따라 내일 오전 MBC앞 광장서 시민사회장2012년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던 이용마 MBC 기자가 암 투병 끝에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기자는 21일 오전 6시 44분 서울아산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해직 기간 발견된 복막 중피종으로 투병한 그는 최근 병세 악화로 치료마저 거의 중단한 상태였다. 전북 남원 출생인 고인은 전주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MBC에 입사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취재하면서 산림보전지역 내 호화 가족묘지 고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감사 등을 보도하기도 했다. 2012년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홍보국장으로서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을 이끌다 해고됐다. 해직 후 국민라디오에서 ‘이용마의 한국정치’를 진행했고 정치학 박사로서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투병 중에도 파업콘서트에 참여해 동료들을 격려하는 등 언론 민주화를 위한 목소리를 냈다. ‘방송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라는 평과 함께 제5회 리영희상을 수상했고, 저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를 펴내 한국 사회와 언론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최승호 MBC 대표이사의 해직자 복직 선언에 따라 2017년 12월 11일 휠체어를 타고 출근하며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일인데 오늘 막상 현실이 되니 꿈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언론은 비판과 감시를 하는 게 본연의 역할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끊임없이 대변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사흘 후부터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더이상 출근하지 못했다. 고인을 두 차례 문병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치열했던 삶과 정신을 기억하겠다”며 “이용마 기자가 추구했던 언론의 자유가 우리 사회의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 되고 상식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애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박지원·표창원·이재정 등 여야 의원들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언론노조도 입장문을 내고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언론개혁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수영씨와 쌍둥이 아들 현재·경재군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MBC는 언론·시민사회단체, 유족과 의논해 23일 오전 9시 마포구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시민사회장으로 영결식을 열기로 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포토] ‘이용마 기자 웃는 얼굴을 뒤로’ 최승호 사장 조문

    [포토] ‘이용마 기자 웃는 얼굴을 뒤로’ 최승호 사장 조문

    최승호 MBC 사장이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이용마 기자 조문을 마친 뒤 빈소를 나서고 있다. 이 기자는 2012년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170일간의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최승호 사장(당시 MBC PD) 등과 해고된 뒤 해고 무효 확인 소송에서 승소해 2017년 복직했다. 연합뉴스
  • “내 꿈 기억해주길” 이용마 기자 별세, 복막암 악화 [MBC 공식입장]

    “내 꿈 기억해주길” 이용마 기자 별세, 복막암 악화 [MBC 공식입장]

    2012년 MBC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후 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이용마 기자가 21일 별세했다. 향년 50세. 21일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따르면 이 기자는 이날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최근 복막암 병세가 악화해 치료를 거의 중단했다. MBC는 2012년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170일간의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이 기자와 최승호 사장(당시 MBC PD) 등 6명을 해고했다. MBC 노조는 이에 반발, 사측을 상대로 해직자 6인의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이후 2017년 12월 취임한 최 사장은 MBC 노조와 해직자 전원 복직에 합의했고, 이 기자를 비롯한 해직 언론인들은 약 5년 만에 MBC로 돌아왔다. <이하 MBC 공식입장 전문> 공영방송 수호에 앞장섰던 본사(문화방송) 이용마 기자가 오늘 (8월 21일) 오전 06시 44분 서울 아산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해직기간 중 발견된 ‘복막 중피종’으로 치료를 받아 온 그는, 오늘 오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50세로 영면했습니다. 1969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난 고(故) 이용마 기자는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및 동대학원을 거쳐 1996년 문화방송 기자로 입사했습니다. 그는 입사 후 본사(문화방송) 보도국 사회부, 문화부, 외교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두루 거쳤습니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취재하면서 한결같이 성역을 두지 않았고,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공고히 자리잡은 기득권 세력에 의한 폐해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특히 특유의 날카롭고 정의로운 시선으로 산림보전지역 내 호화가족묘지 고발 기사,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감사 과정에 대한 밀착취재 등 다수의 특종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홍보국장을 맡았으며,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파업을 이끌다 2012년 3월 5일 부당 해고되었습니다. 해직 기간 중에도 인터넷 방송, 연구와 강의 및 저술 활동 등을 통해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을 꾸준히 이어나갔습니다. 해고 5년 9개월만인 2017년 12월 8일 본사(문화방송)에 복직했고, 12월 11일 마지막으로 출근했습니다. 이날 그는 “ 2012년 3월에 해고되던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오늘이 올 것을 의심해본 적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정당당한 싸움을 했고 정의를 대변했다고 생각해서입니다”라며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일인데 오늘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까 꿈같습니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 그런 꿈. 정말 다시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고 복직 소감을 밝혔습니다. 또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서게 된 건 작년 엄동설한 무릅쓰고 나와준 촛불 시민들의 위대한 항쟁 그게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여기서 있을 수 있을까요”라면서 “언론이 비판과 감시하는 게 본연의 역할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 끊임없이 대변해야 합니다”라고 동료들에게 당부했습니다. 고 이용마 기자는 저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에서 두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나의 꿈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너희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우리는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 그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나의 인생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남기기도 했습니다. 본사(문화방송)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뜨겁게 싸웠던 고 이용마 기자를 기리기 위해 장례를 사우장으로 치를 계획입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수영 씨와 자녀 현재, 경재씨가 있습니다. 빈소와 발인 일정 등은 추후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에이즈 환자 대모’ 고명은 수녀 선종…오늘 서울성모병원서 장례미사 거행

    ‘에이즈 환자 대모’ 고명은 수녀 선종…오늘 서울성모병원서 장례미사 거행

    평생을 국내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데 헌신한 고명은 미리암 수녀가 지난 17일 선종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79세. 고인이 소속된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는 19일 홈페이지 게시글을 통해 고 수녀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렸다. 아일랜드 출신인 고 수녀는 영국에서 간호사 교육을 받은 뒤 1971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전남 목포의 한 종합병원, 제주와 강원 춘천 등지의 의원에서 의료 활동과 교육에 힘을 쏟았다. 이후 성매매 여성과 에이즈 환자 등 사회에서 소외받은 환자들을 돌보는 데 생애를 바쳤다. 고 수녀는 1997년 국내 최초 에이즈 감염인 지원시설인 ‘작은 빛 공동체’를 설립했다. 2005년에는 33년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20일 오전 9시 장례미사가 거행된다. 장지는 춘천 부활성당 추모관.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이정민 진시우 별세, 안타까운 비보..예약 이메일 보니..

    이정민 진시우 별세, 안타까운 비보..예약 이메일 보니..

    작가그룹 옥인콜렉티브로 활동한 이정민(48)·진시우(44) 부부 작가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졌다. 18일 미술계에 따르면 이정민·진시우 작가는 지난 16일 생을 마감했다. 이정민 진시우 작가가 활동하던 옥인콜렉티브는 2009년 서울 종로 옥인시범아파트 철거를 계기로 형성된 작가그룹이다. 철거 위기에 몰린 옥인 아파트에 살던 김화용 작가의 집을 방문한 여러 작가는 버려진 공간과 남은 주민의 삶을 엮은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옥인콜렉티브는 이듬해 4월 출범해 김화용·이정민·진시우 작가를 주축으로 활동했다. 도시재개발, 부당해고, 위험사회 등의 문제를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풀어냈다. 이들은 국립현대미술관(MMCA), 토탈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SeMA), 백남준아트센터 등 국내 유수 미술기관과 광주비엔날레 등을 통해 작업을 선보이면서 당대 컬렉티브 중 가장 두드러진 활동상을 보였다. 지난해 1월에는 국내 최고 권위의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상 최종 후보에 오를 정도로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옥인콜렉티브의 내부 문제로, 지난해 말부터 활동이 어려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할 예정이던 외국 전시도 여러 건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민·진시우 작가는 옥인콜렉티브 활동으로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언급하는 내용의 예약 이메일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부터 이들과 인연을 맺은 박재용 큐레이터는 이 이메일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두 작가는 “2018년도 12월부터 불거진 옥인 내부 문제를 전해 들은 분들에게 의도치 않은 고통을 나눠드려 죄송하다”라면서 “옥인의 전체 운영을 맡아온 저희(이정민·진시우) 방식이 큰 죄가 된다면 이렇게나마 책임을 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더 이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저희 잘못이고 온 힘을 다해 작업을 해왔던 진심을 소명하기에 지금은 허망함뿐”이라면서 “바보 같겠지만 ‘작가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 ‘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미술계는 부부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충격에 빠졌다. 옥인콜렉티브의 작품을 접한 관람객과 동료들은 이들에게 추모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한편 두 작가의 빈소는 따로 마련되지 않았으며, 장례식은 20일 낮 12시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옥인콜렉티브 이정민·진시우 부부 작가 별세

    옥인콜렉티브 이정민·진시우 부부 작가 별세

    작가그룹 옥인콜렉티브로 활동한 이정민(48)·진시우(44) 부부 작가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8일 미술계에 따르면 이정민·진시우 부부 작가는 지난 16일 생을 마감했다. 옥인콜렉티브는 2009년 서울 종로 옥인시범아파트 철거를 계기로 형성된 작가그룹이다. 철거 위기에 몰린 옥인아파트에 살던 김화용 작가의 집을 방문한 여러 작가들은 버려진 공간과 남은 주민의 삶을 엮은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듬해 4월 출범한 옥인콜렉티브는 김 작가와 이·진 부부 작가를 주축으로 활동했다. 도시재개발, 부당해고, 위험사회 등의 문제를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풀어냈다. 이들은 국립현대미술관(MMCA), 토탈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SeMA), 백남준아트센터 등 국내 유수 미술기관과 광주비엔날레 등에서 작업을 선보이면서 당대 컬렉티브 중 가장 두드러진 활동상을 보였다. 지난해 1월에는 국내 최고 권위의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상 최종 후보에 오를 정도로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내부 문제로 같은 해 말부터 활동이 여의치 않아졌고 옥인콜렉티브가 참여할 예정이던 외국 전시도 여러 건 취소됐다. 이·진 부부 작가는 옥인콜렉티브 활동을 통해 함께한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언급하는 내용의 예약 이메일을 보냈다. 박재용 큐레이터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메일에 따르면 이들 부부 작가는 “2018년도 12월부터 불거진 옥인 내부 문제를 전해들은 분들에게 의도치 않은 고통을 나눠드려 죄송하다”라면서 “옥인의 전체 운영을 맡아온 저희 방식이 큰 죄가 된다면 이렇게나마 책임을 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더 이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저희 잘못이고 온 힘을 다해 작업을 해왔던 진심을 소명하기에 지금은 허망함뿐”이라면서 “바보같겠지만 ‘작가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 ‘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작가의 빈소는 따로 마련되지 않았으며, 장례는 수목장으로 치러진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황교안 “文 정부 들어 지원 끊겼냐”…‘탈북 모자’ 빈소에서 망발

    황교안 “文 정부 들어 지원 끊겼냐”…‘탈북 모자’ 빈소에서 망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 모자의 빈소를 찾아 “이 정부(문재인 정부) 들어 탈북자에 대한 지원이 끊겼냐”고 물었다. 이를 두고 마치 현 정부의 탈북자 관리가 미흡한 탓에 모자가 사망한 것처럼 프레임을 잡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 마련된 탈북 모자의 빈소를 방문한 황 대표는 “목숨을 걸고 북한에서 탈출해 자유대한민국에 왔는데 이렇게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해 정말 안타깝다”면서 “한국당은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한 모자가 숨진 지 두 달 만에 뒤늦게 발견됐다. 사인은 아사(굶주려 죽음)로 추정된다. 이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긴급복지지원제도, 한부모가족 지원제도 지원 대상에 해당했으나 미처 신청하지 않아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다. 한 탈북민은 황 대표에게 “(사망한 모자가 생전에) 통일부와 구청, 동사무소 등을 찾았다”고 말하며 “장애 아동을 맡기려 했지만, 남편이 중국에 있다고 하니까 이혼서류를 떼어 오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듣고 황 대표는 “지난 정부 때도 (탈북민 지원이) 그랬냐”고 물었다. 황 대표는 또 북한 주민의 강제북송과 인신매매 등 탈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거론하며 “모두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 아니냐”며 ‘북한 인권법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었지만, 이 정부 들어 북한 인권법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가리산 전투의 주역’ 이병문 예비역 해병대장 별세

    ‘가리산 전투의 주역’ 이병문 예비역 해병대장 별세

    제9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이병문 예비역 해병대장이 15일 오전 별세했다. 90세. 1950년 해병대 소위로 임관한 고인은 6·25전쟁 당시 진주지구, 진동리지구 전투 등에 참전했다. 가리산 전투에서는 해병대 최초 야간공격을 감행해 목표 고지를 점령했고, 이 전공으로 금성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1969∼1970년 해병대 1사단장 재직 기간에 간첩 1명을 생포한 모포리 수색작전과 간첩 2명을 사살한 진전리 작전 등 2회의 대간첩 작전을 지휘했다. 1971년 1월 제9대 해병대사령관으로 취임하며 해병대장으로 진급했다. 해병대사령관이 대장으로 임명된 건 고인을 포함해 제7대 사령관인 강기천 해병대장, 제8대 사령관인 정광호 해병대장 등 모두 3명에 불과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은섭씨와 3남 2녀가 있다. 해병대장(葬)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17일이며, 안장식은 이날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서 거행된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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