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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재진 전 법무부장관, 암 투병 중 별세...향년 67세

    권재진 전 법무부장관, 암 투병 중 별세...향년 67세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전 암 투병 중 별세했다. 향년 67세. 대구 출신인 권 전 장관은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2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거쳐 대구고검장, 서울고검장 등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뒤 62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했으며 퇴임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6시 45분이다. 장지는 경북 예천군 용문면 제곡리 선영이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일제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 이동련 할머니 별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동련 할머니가 별세했다.향년 90세. 7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간암 투병 중이던 이 할머니가 전날 오후 11시 10분쯤 세상을 떠났다. 이 할머니는 전남 나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 교장의 권유로 1944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동원됐다. 그해 12월 7일 아이치현 일대를 강타한 대지진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이듬해 해방을 맞아 10월 귀국했다. 이 할머니는 이후 일본에서 진행된 소송에 참여했지만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해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다고 시민모임 측은 전했다.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평소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고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하지만 한국에서 소송이 시작된 뒤에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의 잘못을 알리는 공개적인 자리에 마스크를 벗고 참가하는 등 명예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할머니가 참여한 미쓰비시 상대 국내 소송은 2012년 10월 광주지법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고 2018년 11월 확정됐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2남 4녀가 있다. 빈소는 광주 구호전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 오전 7시 30분,장지는 전남 나주 선영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이낙연 전 총리, 이천 참사 구설 관련 “제 수양부족이다”

    이낙연 전 총리, 이천 참사 구설 관련 “제 수양부족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지난 5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과 나눈 대화가 논란이 된 것에 대해 결국 직접 사과했다.이 전 총리는 6일 오후 코로나국난극복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한 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것(유가족의 마음)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것은 제 수양부족”이라며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 장제원 의원 등의 비판에 대해서도 “장 의원 등의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좋은 충고해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진행되고 있는 유가족과 당국의 협의가 유가족의 뜻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란다”며 “이번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제도를 개선하는데 저도 민당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 전 총리는 지난 5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 희생자 빈소를 찾았다. 한 유가족이 “이번 기회에 법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 의원님이시니까…”라고 하자 “제가 국회의원이 아니에요”고 답했다. 또 유가족들이 “고위공직자 분들이 오기만 하고 똑같은 의견만 말한다. 대안을 갖고 오지 않는다”고 항의하자 “저의 위치가 이렇다”고 했다. “높은 사람들이 왔다 갈 뿐 구체적 대안을 전해주지 않는다. 이럴 거면 왜 왔느냐”는 유가족들의 불만엔 “장난으로 왔겠느냐. 저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일반 조문객이다”고 맞받았다. “사람 모아놓고 뭐 하는 거냐”는 항의에는 “제가 모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이 전 총리는 한 유가족이 “그럼 가라”고 하자 “가겠습니다”라고 답하고 나서 분향소를 빠져나갔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 전 총리는 너무너무 맞는 말을 너무너무 논리적으로 틀린 말 하나 없이 하셨다”며 “그런데 왜 이리 소름이 돋을까”라고 했다. 장 의원은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유가족과 나눈 대화라니 등골이 오싹하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또 “이 전 총리가 현직 총리 재직 시절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장례식장에서 보인 눈물, 4·3 희생자 추모식에서 눈물을 참으며 읽은 기념사,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보인 눈물을 기억한다”며 “그 눈물들은 현직 총리로서 흘린 눈물이었나 보다. 눈물도 현직과 전직은 다른가 보다”고 비꼬았다. 민생당도 이 전 총리에 대해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우식 민생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 당선인이 조문에서 유가족들과 설전 아닌 설전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며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낙연 당선인의 알맹이 없는 조문으로 유가족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것”이라 평가했다. 다만 “일반 조문객 자격으로 왔으니 분명히 억울할 것”이라며 “유가족들도 조문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당선인이 유가족들에게 대응한 처사는 적절치 못했다”면서 “마치 국무총리 재직시 야당 의원 대정부 질의에서 (했던) 촌철살인의 논리적 답변으로 느껴진다”고 꼬집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김효석 대한석유협회장 별세

    김효석 대한석유협회장 별세

    김효석 대한석유협회장이 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2세. 전남 장성 출신인 김 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4~1998년 중앙대 교수를 지냈다. 이후 16~18대 국회의원을 거쳐 민주당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김 회장은 2017년 11월 제22대 대한석유협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 발인은 4일 오전 10시 30분.
  • 휴가 취소한 문 대통령 마스크 쓰고 곰탕집 찾은 이유

    휴가 취소한 문 대통령 마스크 쓰고 곰탕집 찾은 이유

    1년 만에 청와대 인근 음식점 찾아 자영업자 독려“거리두기 하면서 이제 식당이용도 활발해졌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1일 마스크를 끼고 참모진들과 청와대 인근 식당을 찾아 오찬을 했다. 이천 화재로 인해 당초 예정했던 휴가를 취소한 문 대통령은 정상 업무를 하면서 점심 시간을 이용해 식당을 찾았다. 문 대통령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상황이라 가급적 주변 식당을 이용해달라고 독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오찬에는 노영민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김연명 사회수석,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박복영 경제보좌관 등이 참석했다. 김상조 정책실장, 김현종 안보실 2차장 등은 선약이나 연차휴가 사용 등의 사유로 오찬에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문 대통령과 보좌진들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면서 식사를 했고 식사 중일 때를 제외하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을 이용한 것은 지난해 5월10일 이후 1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금요일에는 청 구내식당 문을 닫는 조치를 이미 취했는데, 코로나19로 음식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제 국내 확진자가 제로인 상황이 됐으니 거리두기를 하면서 식당이용도 활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날 0시 기준 해외 유입을 제외한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는 0명이었고, 이날은 1명이다. 강 대변인은 “징검다리 연휴이니 방역은 철저히 하되, 거리를 유지하면서 식당이용이나 외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식사를 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애초 이날 연차를 쓰고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에 내려갈 예정이었으나 지난달 29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이를 취소하고 정상근무를 하고 있다. 청와대는 노영민 비서실장 등이 화재사고 희생자들의 빈소를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국내 최초 미술 전문기자’ 이구열 평론가 별세

    ‘국내 최초 미술 전문기자’ 이구열 평론가 별세

    화단에서 ‘한국 최초의 미술 전문기자’로 불렸던 이구열 미술평론가가 30일 별세했다. 88세. 1932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서울신문, 경향신문, 민국일보, 대한일보 등에서 미술 전문기자, 문화부장으로 일했다. 1975년 한국근대미술연구소를 만들어 최근까지 근대미술사 연구에 힘썼고, 예술의전당 전시사업본부장과 문화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고인이 평생 모은 자료는 후학들의 연구 발판이 됐다. 2001년 삼성미술관 리움에 4만여건의 자료를 기증해 한국미술기록보존소의 근간을 마련했고, 2015년 4000여건의 미술 자료를 길문화재단 가천박물관에 전달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대미술산고’(1972), ‘근대한국미술의 전개’(1982), ‘근대한국화의 흐름’(1993), ‘나혜석-그녀, 불꽃같은 생애를 그리다’(2011) 등이 있다. 지난해에는 그간 발표했던 원고를 모은 문집 ‘청여산고 1·2’를 펴냈다. 책에는 1971년 서울신문 창간 특별기획으로 허백련, 김은호, 박승무,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등 동양화가 여섯 사람 화실을 순례한 일 등 20세기 미술을 가로지르는 원로의 호흡이 담겼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2일, 장지는 괴산호국원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국내 최초 미술 전문기자’ 이구열 평론가 별세

    ‘국내 최초 미술 전문기자’ 이구열 평론가 별세

    화단에서 ‘한국 최초의 미술 전문기자’로 불렸던 이구열 미술평론가가 30일 별세했다. 88세. 1932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서울신문, 경향신문, 민국일보, 대한일보 등에서 미술 전문기자, 문화부장으로 일했다. 1975년 한국근대미술연구소를 만들어 최근까지 근대미술사 연구에 힘썼고, 예술의전당 전시사업본부장과 문화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고인이 평생 모은 자료는 후학들의 연구 발판이 됐다. 2001년 삼성미술관 리움에 4만여건의 자료를 기증해 한국미술기록보존소의 근간을 마련했고, 2015년 4000여건의 미술 자료를 길문화재단 가천박물관에 전달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대미술산고’(1972), ‘근대한국미술의 전개’(1982), ‘근대한국화의 흐름’(1993), ‘나혜석-그녀, 불꽃같은 생애를 그리다’(2011) 등이 있다. 지난해에는 그간 발표했던 원고를 모은 문집 ‘청여산고 1·2’를 펴냈다. 책에는 1971년 서울신문 창간 특별기획으로 허백련, 김은호, 박승무,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등 동양화가 여섯 사람 화실을 순례한 일 등 20세기 미술을 가로지르는 원로의 호흡이 담겼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2일, 장지는 괴산호국원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9년 3개월 ‘역대 최장수 비서실장’ 김정렴 별세

    9년 3개월 ‘역대 최장수 비서실장’ 김정렴 별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역대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지난 25일 별세했다. 96세.고인은 재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거친 뒤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3개월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다. 1924년생으로 1944년 조선은행(한국은행의 전신)에 입사한 뒤 강제징집돼 일본 히로시마에서 광복을 맞았다. 6·25전쟁에 참전한 뒤 1952년 한국은행으로 돌아와 1차 화폐개혁에 참여했고 이후 1959년 재무부로 옮겨 경제관료의 길을 걸었다. 상공부 장관이던 1969년 ‘3선 개헌안’이 통과된 직후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고인은 회고록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에서 청와대로 불려 간 자신이 “각하, 저는 경제나 좀 알지 정치는 모릅니다. 비서실장만은 적임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이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 아니오.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등이 따뜻해야 정치가 안정되고 국방도 튼튼히 할 수 있지 않소”라고 답했다고 썼다. 이후 중화학공업 육성 등 산업 고도화 정책을 주도했고 산림녹화, 새마을운동, 고속도로 건설, 의료보장제도 도입 등에도 관여했다. 10·26사태 당시에는 주일대사로 근무했다. 유족은 희경·두경(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승경(전 새마을금고연합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준경(전 한국개발원장)씨와 사위 김중웅(전 현대증권 회장, 현대그룹 연구원 회장)씨가 있다.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된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고인의 조카사위다. 김 전 위원장은 26일 아내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함께 조문하며 “중화학공업기획단을 만들어 조선·방위 산업 등을 육성해 오늘날에 이르게 하신 분”이라고 고인을 평가했다. 또 김 전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이 경제정책 전권을 위임했지만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기자들에게 ‘내 얼굴이 TV에 나오면 청와대 출입 불가’라고 말씀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은 28일. (02)3410-6923.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민주화·사회운동에 헌신… ‘반독재’ 선봉에 선 사제

    민주화·사회운동에 헌신… ‘반독재’ 선봉에 선 사제

    동일방직사건 대책위원장 등 활동 유신 철폐 기도회 주도하다 구속도 文대통령 “민주화 운동 대부” 애도 정부, 고인에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민주화와 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이 지난 25일 선종했다. 88세.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애도 메시지를 전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민훈장 모란장’(2등급)을 추서했다. 1932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고인이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은 37세 되던 1969년이었다. 1948년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과 폐결핵 투병 등으로 학업을 중단했고, 뒤늦게 1963년 가톨릭신학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고인은 반평생을 민주화와 사회운동 현장에 있었다. 지역 선교와 신앙 교육 등 본연의 사목 활동을 하면서도 1970년대 후반 동일방직 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 ‘목요회’ 상임대표, 인천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1977년에는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도회를 주도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초대 위원장,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고인에게 몬시뇰 칭호를 내렸다. 몬시뇰은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성직자에게 부여한다. 민문연 이사장 때인 2009년에는 임헌영 민문연 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을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바쳤다. 2018년 12월엔 회고록 ‘따뜻한 동행’을 펴냈다. 사제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현대사 한복판에서 겪은 일들을 담았다. 이후 2년여 투병 생활을 보낸 고인은 25일 0시 5분 영면에 들었다. 빈소는 인천 동구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장례미사는 27일 오전 10시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장지는 인천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문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김병상 몬시뇰 신부님의 선종을 슬퍼한다”며 “또 한 분의 어른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했다. 이어 “신부님은 사목 활동에 늘 따뜻했던 사제이면서 유신 시기부터 길고 긴 민주화의 여정 내내 길잡이가 돼 준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다”면서 “민주화를 위해 애쓰며 때로는 희생을 치르기도 했던 많은 이들이 신부님에게서 힘을 얻었다”고 떠올렸다. 문 대통령은 또한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국회에 와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국미사’를 주재해 주기도 했고, 청와대에 입주할 때 와서 작은 미사와 축복을 해 주기도 했다”며 고인과의 개인적 인연을 소개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9년 3개월 ‘역대 최장수 비서실장’ 김정렴 별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역대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지난 25일 별세했다. 96세. 고인은 재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거친 뒤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3개월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다. 1924년생으로 1944년 조선은행(한국은행의 전신)에 입사한 뒤 강제징집돼 일본 히로시마에서 광복을 맞았다. 6·25전쟁에 참전한 뒤 1952년 한국은행으로 돌아와 1차 화폐개혁에 참여했고 이후 1959년 재무부로 옮긴 뒤부터는 계속 경제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상공부 장관이던 1969년 ‘3선 개헌안’이 통과된 직후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후임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고인은 회고록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에서 청와대로 불려 간 자신이 “각하, 저는 경제나 좀 알지 정치는 모릅니다. 비서실장만은 적임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이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 아니오.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등이 따뜻해야 정치가 안정되고 국방도 튼튼히 할 수 있지 않소”라고 답했다고 썼다. 이후 비서실장으로서 중화학공업 육성 등 산업 고도화 정책을 주도했고 산림녹화, 새마을운동, 고속도로 건설, 의료보장제도 도입 등에도 관여했다. 10·26사태 당시에는 주일대사로 근무했다. 유족으로는 희경·두경(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승경(전 새마을금고연합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준경(전 한국개발원장)씨와 사위 김중웅(전 현대증권 회장, 현대그룹 연구원 회장)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은 28일. (02)3410-6923.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민주화·사회운동에 헌신… ‘반독재’ 선봉에 선 사제

    민주화와 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이 지난 25일 선종했다. 88세.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애도 메시지를 전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민훈장 모란장’(2등급)을 추서했다. 1932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고인이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은 37세 되던 1969년이었다. 1948년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과 폐결핵 투병 등으로 학업을 중단했고, 뒤늦게 1963년 가톨릭신학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고인은 반평생을 민주화와 사회운동 현장에 있었다. 지역 선교와 신앙 교육 등 본연의 사목 활동을 하면서도 1970년대 후반 동일방직 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 ‘목요회’ 상임대표, 인천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1977년에는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도회를 주도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초대 위원장,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고인에게 몬시뇰 칭호를 내렸다. 몬시뇰은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성직자에게 부여한다. 민문연 이사장 때인 2009년에는 임헌영 민문연 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을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바쳤다. 2018년 12월엔 회고록 ‘따뜻한 동행’을 펴냈다. 사제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현대사 한복판에서 겪은 일들을 담았다. 이후 2년여 투병 생활을 보낸 고인은 25일 0시 5분 영면에 들었다. 빈소는 인천 동구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장례미사는 27일 오전 10시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장지는 인천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문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김병상 몬시뇰 신부님의 선종을 슬퍼한다”며 “또 한 분의 어른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했다. 이어 “신부님은 사목 활동에 늘 따뜻했던 사제이면서 유신 시기부터 길고 긴 민주화의 여정 내내 길잡이가 돼 준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다”면서 “민주화를 위해 애쓰며 때로는 희생을 치르기도 했던 많은 이들이 신부님에게서 힘을 얻었다”고 떠올렸다. 문 대통령은 또한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국회에 와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국미사’를 주재해 주기도 했고, 청와대에 입주할 때 와서 작은 미사와 축복을 해 주기도 했다”며 고인과의 개인적 인연을 소개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독립운동 연구’ 윤병석 명예교수 별세

    ‘독립운동 연구’ 윤병석 명예교수 별세

    원로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90세. 고인은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국사편찬위원회 편찬조사실장, 인하대 교수·박물관장·문과대학장,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장, 도산사상연구회장을 지냈다. 근현대사와 독립운동 참여 인물을 연구했으며 특히 미 발굴 사료를 학계에 소개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총리를 지낸 이동휘 자료집 발간을 주도했으며 ‘백범 김구전집’, ‘매헌 윤봉길 전집’ 편찬 위원장도 맡았다.유족으로는 부인 이은순(전 한국외대 교수)씨와 아들 윤현규(삼성전자 수석연구원)·딸 성규(선문대 교수)씨, 사위 김대곤(서울과학기술대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 5시 30분. (02)2258-5940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기생충’ 박명훈, 오늘 부친상...폐암 투병 끝 비보

    ‘기생충’ 박명훈, 오늘 부친상...폐암 투병 끝 비보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박명훈이 오늘 부친상을 당했다. 15일 소속사 에이스팩토리 측은 “금일 배우 박명훈의 아버지께서 별세하셨다”라고 밝혔다. 소속사 측은 “박명훈 배우는 가족들과 함께 슬픔 속에 빈소를 지키고 있다. 박명훈과 가족분들께 따뜻한 위로 부탁드린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덧붙였다. 박명훈의 부친은 폐암 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명훈은 영화 ‘기생충’ 개봉 당시 인터뷰를 통해 투병 중인 자신의 부친을 배려한 봉준호 감독이 극비리에 진행된 ‘기생충’ 스태프 시사회에 아버지를 초대했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박명훈 부친의 빈소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7일 오전 9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보수 원로’ 정원식 前 총리 별세

    ‘보수 원로’ 정원식 前 총리 별세

    총리 때 3차례 방북… 김일성과 면담 전교조 강경 대응 탓 밀가루 봉변도노태우 정부 시절 국무총리로 재직했던 보수 원로 정원식 전 총리가 12일 별세했다. 91세. 신부전증으로 3개월여 전부터 투병하던 정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쯤 세상을 떠났다. 황해도 출신인 정 전 총리는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문화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의 큰 흐름 이후 문교부 장관에 취임한 그는 학원 소요 사태와 교권 침해 행위, 대학의 부정·비리 등에 강력 대처를 천명하는 한편 교사의 노동3권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그는 “교원의 정치 활동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정신에 비춰 인정할 수 없다”며 전교조 인사를 해임하는 등 강경 대응했다. 앞서 1989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창립되자 노태우 정부가 이를 불법 단체라고 선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장관에서 물러난 이후 1991년 5월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다. 같은 해 6월 총리 취임을 앞두고 한국외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가 ‘전교조 탄압 주범 정원식을 몰아내자’ 등의 구호와 함께 학생들이 던진 계란과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봉변을 당했다. 당시 학생 운동권에 대한 ‘패륜적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여론이 급속하게 악화되는 계기가 됐다. 1991년 총리 취임 이후 이듬해까지 세 차례 남북 고위급회담의 수석대표로 방북,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면담했다. 특히 1991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는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와 함께 남북 화해·교류·불가침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듬해 2월 평양에서 열린 6차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체결하는 등 남북대화에 한 획을 그었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민주당 조순 후보에게 패한 뒤 서울대 사범대 명예교수,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했고, 보수 성향의 원로학자들과 함께 활동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5선 지낸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 별세

    5선 지낸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 별세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이 9일 오후 2시 44분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79세. 전북 무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81년 11대 총선에서 민한당 전국구 의원(비례대표)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13대, 14대, 16대, 17대는 서울 중랑을에서 5선을 지냈다. 민주당 사무총장, 제15대 대통령직 인수위원, 민주당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 집행위원장, 열린우리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을 역임했다. 제17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고 행정경제위원장과 한·멕시코의원친선협회 회장 등도 맡았다. 유족은 부인 이정이씨와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일시는 11일 오전 9시다.
  • 남북회담 ‘김정일 대역’ 김달술씨 별세

    남북회담 ‘김정일 대역’ 김달술씨 별세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실전 대비’ 모의회담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상대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역으로 나섰던 김달술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임연구위원이 7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90세. 고인은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들어가 남북협상에 관여했다. 1972∼1978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겸 남북회담 사무국장, 1985년 통일원 남북대화사무국 자문위원, 1992∼1996년 남북회담사무국 상임연구위원을 지냈다. 유족은 부인 박영순씨와 2남 1녀.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9일 오전 8시. 유족들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뇌사 9살 소년 , 7명에 새 삶 선물하고 ‘하늘나라로’

    뇌사 9살 소년 , 7명에 새 삶 선물하고 ‘하늘나라로’

    “내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엄마는 앞으로도 홍준이를 사랑할 거고 평생 기억하고 있을게.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면 네가 오는 거라 믿으며 살아갈게. 사랑하고 고마워.” 제주에 사는 고홍준(9)군이 지난 6일 심장과 간장, 신장 등 장기를 기증해 7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하늘나라로 떠나 주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고군의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것을 또래 아이들에게 주고 간 아들에게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평소 특별히 아픈 곳 없이 건강했던 고군은 지난 1일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갑작스러운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고군은 곧바로 구급차를 통해 이송돼 제주대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5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제주시 화북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고군은 여느 아이처럼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맛있는 과자는 꼭 나눠 먹고 재미난 게임이 있으면 친구들과 함께 즐기곤 했다. 고군의 가족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의로운 아이였기에 고군도 동의했을 거라 생각하며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고군이 기증한 장기는 심장, 폐, 간, 신장, 각막 등이다. 심장과 폐, 간, 신장은 지난 6일 또래 어린이 5명에게 이식됐다. 각막도 조만간 대기자에게 이식될 예정이다. 고군의 장례식장엔 7일에만 300명 넘는 조문객이 찾아와 고군의 명복을 빌었다. 조원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홍준이가 쏘아 올린 생명의 불씨는 7명의 생명을 살렸을 뿐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군의 빈소는 제주시 부민장례식장 지하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 오전 7시 30분이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정 총리 “미국·유럽 보면 우리 의료진 대단…감사와 존경”

    정 총리 “미국·유럽 보면 우리 의료진 대단…감사와 존경”

    의사 사망엔 “깊은 애도…의료인 안전 최선”정세균 국무총리는 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의료인이 숨진 것과 관련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정부는 의료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더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의료체계 붕괴 위기에 직면한 미국과 유럽을 거론하며 의료인들에게 “더할 수 없는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앞서 경북 경산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해온 내과 의사 A씨는 지난 2월 코로나19 확진자를 진료한 뒤 폐렴 증상을 보였고, 이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던 중 3일 숨졌다. 국내 의료인의 첫 코로나19 사망 사례다. 정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연하게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던 의료인이 유명을 달리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며 “자가격리 중이라 빈소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유가족들에게 안타까움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의료인력의 감염 예방 대책에 대해 논의하겠다”며 “의심 환자의 의료기관 출입을 철저히 관리하고, 감염원으로부터 의료인력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의 적시 제공과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는 현장의 의료인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각별히 유의해 관련 대책을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 정 총리는 “지금 이 순간 코로나19와의 전쟁 최일선인 병원, 선별진료소, 생활치료센터에서는 수많은 의료인들이 확진자 치료와 방역 활동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우리가 대구·경북에서의 급박했던 확산세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의료진의 헌신적인 희생 덕분”이라고 강조했다.이어 “대규모 감염의 폭발적 확산으로 의료체계 붕괴위험에 직면한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보면, 우리 의료진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는지 새삼 실감한다”며 “더할 수 없는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회의 직후 A씨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정 총리는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송구함과 함께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애도를 표했다. 정 총리는 이어 이성구 대구시 의사회 회장·장유석 경상북도 의사회 회장과 통화하고 “열악한 여건에서 의료진의 헌신과 노력 덕에 대구·경북 지역 상황이 호전됐다”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밝혔다. 정 총리는 또 이날부터 자가격리 지침 위반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이 강화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자가격리자들이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총리는 “대다수 자가격리자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격리지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일부 소수는 지침을 위반해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고 사회갈등을 야기할 위험마저 있다”며 “관계기관에서는 휴대전화를 두고 외출하는 등의 일탈 행위를 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필요하다면 ICT 기술의 활용도 검토해달라”고 당부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LIG그룹 계열분리 이끈 구자원 명예회장 별세

    LIG그룹 계열분리 이끈 구자원 명예회장 별세

    구자원 LIG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28일 오전 11시 15분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86세. 고인은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이자 창업 동지인 고 구철회 전 LIG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지난해 12월 별세한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이기도 하다. 1935년 경남 진양군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법대와 독일 퀼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락희화학에 입사해 첫발을 내디딘 뒤 럭키증권 사장, 럭키개발 사장, LG금속 부회장, LG정보통신 부회장을 거쳤다. 럭키개발 사장 시절에는 88올림픽 훼밀리타운 아파트와 LG트윈타워 건설을 이끌었다.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이후에는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등 LIG그룹의 경영을 이끌어 왔다. 2012년에는 경영권 유지를 위해 분식회계와 함께 2000억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기소돼 결국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LIG손해보험 매각 후에는 방산 회사인 LIG넥스원의 명예회장직을 맡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돼 가족장으로 조용하게 치러졌다. 발인은 31일 오전 7시, 장지는 경남 진주 선영이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구자원 LIG그룹 명예회장 숙환으로 별세

    구자원 LIG그룹 명예회장 숙환으로 별세

    구자원 LIG그룹 명예회장이 28일 오전 11시 15분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86세. 고인은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첫째 동생이자 창업 동지인 고 구철회 전 LIG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지난해 12월 숨진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이다. 1935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법대와 독일 쾰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락희화학에 입사한 뒤 럭키증권 사장, 럭키개발 사장, LG정보통신 부회장을 거쳤다. 이후 계열 분리와 함께 금융업계에 뛰어들어 LIG그룹의 모태가 됐던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을 이끄는 등 LIG그룹 경영을 이끌었다. LIG손해보험 매각 후에는 방산 회사인 LIG넥스원의 명예회장직을 맡았다. 고인은 언론 등에 많이 노출되지 않고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지만,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기도 했다. 2012년 경영권 유지를 위해 분식회계와 함께 2000억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기소됐고 약 2년의 재판 과정을 거쳐 2014년 7월 24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 판결받았다. 유족으로는 구본상 LIG넥스원 회장과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구지연씨, 구지정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일시는 31일 오전이고 장지는 경남 진주 선영이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하게 치른다”고 말했다. LIG 측은 또 “고인의 유지에 따라 조화와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문상을 위해 방문하는 경우에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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