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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라덴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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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라덴, 사살된 은신처서 5년 살아”

    “오사마 빈라덴은 겁쟁이처럼 굴었고 완전히 혼비백산했다.” 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빈라덴의 최후는 비굴하고 비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빈라덴은 사살된 은신처에서 5년 동안 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5일(현지시간) 폭스뉴스는 지난 1일 빈라덴 사살 작전에 참가한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 빈라덴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네이비실이 들이닥쳤을 때 빈라덴은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AK47 소총과 러시아제 반자동 권총인 마카로프(구경 9㎜짜리) 등 무기 2개와 가까운 문 근처에 서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폭스뉴스, AP통신 등에 따르면 네이비실에 사살당한 5명 가운데 1명만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작전이 이뤄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교전이 이뤄졌다는 백악관의 초기 브리핑과 배치되는 진술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3일에도 “은신처에서 여러 명이 무장하고 있었고 격렬한 저항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미 고위 당국자는 “5명 가운데 4명은 비무장 상태였다.”면서 “작전 당시 총기를 찾고 있던 1명은 초기에 일찌감치 사살됐으며 그 이후에 (다른 이들은)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대원들은 건물 1층에서 남성 1명,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오던 빈라덴의 아들 칼레드를 계단에서 차례로 사살하고 빈라덴의 방으로 진입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빈라덴의 은신처에 최소 6개의 무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NBC 방송은 미군 작전 시간의 대부분이 은신처의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와 휴대전화 등을 수거하는 데 쓰였다고 전했다. 한편 빈라덴과 함께 있다가 체포된 부인 아말 아메드 압둘 파타는 파키스탄 조사관들에게 미군이 공격한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5년간 살았으며, 이 기간 동안 빈라덴이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또 빈라덴은 은신처에서 3명의 부인과 13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는 진술도 나왔다. 이 가운데 8명이 빈라덴의 아들, 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텔레그래프가 파키스탄 군 소식통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美 스텔스헬기 추락은 난기류 때문”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에 투입된 미군 블랙호크 헬리콥터는 당초 알려진 것처럼 기기고장이 아니라 은신처 건물 주변에 형성된 난기류 때문에 추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윌리엄 맥레이븐 합동특수작전사령관은 지난 4일(현지시각) 미 의회 군사·정보위원회에 출석, 블랙호크 헬기는 예상하지 못한 더운 공기와 높은 건물 벽으로 인해 발생한 와류 때문에 고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추락했다고 보고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미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애덤 스미스 의원(민주당) 등을 인용해 5일 보도했다. 이날 작전에 투입된 헬기는 캔터키주 포트 캠벨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육군 제160 특수작전항공연대 소속이다. 맥레이븐 사령관 등의 설명에 따르면 헬기의 회전날개가 만들어내는 정상적인 공기 이동이 벽에 의해 차단되면서 난기류가 형성됐고 이에 따라 세틀링(settling) 현상, 즉 헬기를 띄울 만한 충분한 부력이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스미스 의원은 “기온과 주위 환경 탓에 너무 갑작스럽게 고도가 떨어졌다고 들었다.”며 “기기 오작동이 있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원 군사위원회의 하워드 매키언 의원도 “기계적 결함은 아니었다.”고 했다. 상황을 감지한 조종사는 재빠르게 착륙을 시도했으며 탑승한 네이비실 요원들은 전원 무사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그라운드제로의 침묵, 연설보다 강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9·11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제로’를 방문해 헌화했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파키스탄 은신처에서 사살된 지 나흘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붉은색, 흰색, 푸른색 꽃들로 꾸며진 한 다발의 꽃을 바친 뒤 그 옆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묵념했다. 그러나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 뿐만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이 묵념할 때 진혼곡 같은 음악마저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정적이었다. 이슬람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는 침묵을 택했다. 행사에는 찰스 슈머 상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등 이 지역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재임 시 9·11테러를 겪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초청을 받았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그는 대변인을 통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뉴욕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나와 성조기를 흔들며 오바마 대통령을 환영했다. 헌화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9·11테러 때 15명이 숨진 미드타운의 소방서를 방문해 소방관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곳은 10년 전 그 끔찍했던 날에 비범한 희생을 보여준 상징적 장소”라면서 “진심으로 여러분의 희생에 감사를 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빈라덴 사살에 대해 “우리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빈말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파키스탄의 빈라덴 은신처를 습격한 미군 장병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희생 때문이었다.”며 “그들은 목숨을 앗긴 여러분의 형제들 이름으로 그 작전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맨해튼 제1경찰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그 비극을 잊은 적이 없으며 뉴욕경찰과 긴급구조대원, 소방대원들이 보여준 용기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빈라덴 사살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하겠다고 말했던 것을 한 것”이라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헌화 후에는 9·11테러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비슷한 시간 워싱턴DC의 국방부 건물(펜타곤)에서도 간단한 추도의식이 진행됐다. 9·11테러 때 펜타곤을 타격한 항공기 테러로 189명이 숨진 바 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함께 희생자들을 기리는 헌화를 한 뒤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려 경례를 했다. 바이든 부통령 역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침묵의 헌화였다. 다만 경례를 할 때 진혼곡이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행사장에는 9·11테러 유족은 물론 테러 당시 국방장관으로 재임했던 도널드 럼즈펠드도 참석, 눈길을 끌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특파원 칼럼]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 테러를 저지르고 가뭇없이 사라진 범인을 10년 만에 기어이 찾아낸 정보력이 섬뜩하고, 전광석화처럼 작전을 뚝딱 해치운 군사력이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이 ‘할리우드적 스펙터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국이 오사마 빈라덴의 시신을 처리한 방식이다. 그들은 시신을 물로 씻기고 하얀 천으로 감싼 뒤 이슬람식으로 장례를 치러줬다. 정말 그렇게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했다고 밝힌 게 중요하다. 3000여명의 국민을 죽인 ‘나라의 원수’라면 능지처참해도 분이 안 풀리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 미국은 망자에 대한 예를 갖췄음을 애써 부각시켰다. 람보의 덩치를 가진 나라의 이런 소심한 뒤처리는 반미 감정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에서 나왔을 것이다. 피가 거꾸로 치솟는 그 감성의 상황에서 어쩌면 그토록 ‘드라이한’ 이성적 계산을 할 수 있는지, 나는 미국이란 나라가 소름 끼친다. 어떤 나라의 의사결정이 이성과 감성의 배합으로 이뤄진다고 할 때,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이성의 비율이 큰 판단구조를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의 참혹한 시신 사진이 이슬람권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사진을 (승리의)트로피로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정말 그런 나라가 아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토머스 윌슨 대통령은 “승리 없는 평화”를 주장한다. 미국은 연합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으면서도 후환을 우려해 패전국을 가혹하게 징벌하는 데는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성적 판단은 다른 승전국들에 의해 무시됐고, 이는 결국 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다. 미국은 1848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등을 빼앗을 때도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방식을 구사한다. 전승국이라면 그냥 눈을 부라리며 새 땅을 꿀꺽하면 될 텐데 굳이 멕시코에 돈을 주고 구매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후환의 싹을 잘라 버린 셈이다. 미국은 판단을 내릴 때 머릿속에서 희로애락은 사라지고 딱딱한 계산기만 남는 것 같다. 미국의 ‘이성으로 판단하기’는 역설적으로 지금껏 북한 정권의 생존에 도움을 줘 왔다. 만약 미국이 조금만 더 감정적인 나라였다면 판문점에서 미군이 북한군의 도끼에 맞아 죽었을 때 평양을 폭격했거나, 그보다 앞서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했을 때 베이징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머릿속에 북한 침공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게임이다. 북한은 석유가 나는 금싸라기 땅도 아닌 데다 중국이라는 거구의 후견인이 뒤에 버티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북한은 미국의 ‘이성으로 판단하기’로 인해 치명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때문이다. 최근 미군 수뇌부는 “북한은 5년 안에 미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미사일 개발이 가능하다. 북한은 점점 미국에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다.”는 우려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성으로 사고하는 미국의 이런 우려를 허풍이나 과장, 엄살과 같은 감성적 언어로 해석하면 오산이다. 북한이 핵과 단거리 미사일로 동북아에서 장난치는 것과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이 감성적인 국가라면 ‘설마 북한이 우리한테 쏘겠어. 허풍이겠지.’라면서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을 하는 미국은 단 1%의 확률이라도 미 본토로 미사일이 날아올 것이라는 계산을 내리면 북한을 반드시 손보려 할 것이다. 그때는 중국이건, 어떤 나라건 아무리 반발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미국의 전쟁사는 웅변하고 있다. 벼랑끝 전술은 ‘고위험 고수익’의 매력이 있지만, 단 한번의 아차하는 실수로 파국을 맞는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치명적이다. 이 위험성을 무시했다가 미국한테 사담 후세인도 당했고, 오사마 빈라덴도 당했다. carlos@seoul.co.kr
  • ‘백악관 상황실’ 사진 속 21세기 美정부 변화상

    ‘백악관 상황실’ 사진 속 21세기 美정부 변화상

    참모에게 상석을 내주고 웅그린 흑인 대통령. 테스토스테론이 넘쳐 나는 권력의 중심부를 꿰찬 여성 참모진. 백악관이 지난 2일(현지시간) 공개한 상황실 사진에서 유독 시선을 잡아끈 이 두 장면은 21세기 미국 정부의 변화상 3가지를 단적으로 뽑아냈다. 인종과 여성, 권위의 장벽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오사마 빈라덴 제거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주시하는 미국 국가안보팀(NSC)을 포착한 이 사진은 전 세계 언론 1면을 차지했다. 정치·역사학자들은 사진이 “우리가 넘고 있는 새로운 미국의 지평을 시각적으로 제시했다.”고 평가했다고 CNN이 5일 보도했다. 정계와 군부의 중심부,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결단의 순간에는 항상 남성들만 들끓었다. 하지만 이번 사진은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에 맞선 여성들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뒤편에 서서 고개를 삐죽 내민 낯선 여성의 존재는 세인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신상정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대통령실 대테러국장 오드리 토머슨이었다. 1999년 터프츠대, 2003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하고 40세도 채 안 된 것으로 알려진 이 젊은 여성은 미 중앙정보국(CIA) 글로벌 지하드팀에서 전 세계 알카에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다. 리언 패네타 CIA 국장에게 정기적으로 현황을 보고, 오바마 이너서클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왜 신상이 알려진 게 없느냐는 질문에 토미 비어터 NSC 대변인은 “그전에는 빈라덴을 죽인 적이 없으니까요.”라고 대답, 그녀가 빈라덴 제거 작전의 공신임을 내비쳤다. 460㎡짜리 상황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사진 앵글의 구석에 자리해 있다. 합동특수전사령부(JSOC) 사령관인 마셜 B 웹 준장에게 중앙의 상석을 내준 그는 캐주얼한 재킷 차림에 사진에 나온 누구보다 몸을 낮추고 앉아 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탑건’ 흉내를 내며 수컷 이미지를 과시했던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들과는 180도 다른 자세다. 하지만 이 사진 한장에서 미국인들은 참모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협동의 힘을 믿는 오바마식 리더십과 자기 확신을 읽어 낼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강한 척하지 않아도 강했다.’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당을 도맡았던 흑인에 대한 시각도 바뀌었다. 정치 블로그 ‘잭&질팔러틱스’의 셰릴 콘티는 “흑인은 그간 길에서 피해야 할 깡패였지만 사진에 그런 흑인은 없었다. 이제 백인들은 흑인을 대통령일 뿐 아니라 최고의 수호자로 보게 됐다.”고 말했다. 몸은 굽혔지만 눈빛만은 비장했던 오바마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1승을 거뒀고, 성난 흑인의 이미지를 없애려다 얻은 유약한 이미지까지 걷어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사설] 이슬람 보복테러 차분·정교하게 대비해야

    아프가니스탄 파르완 주에 파견된 한국 지방재건팀(PRT)의 차리카 기지가 그제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시설·장비 손상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올들어 이미 여섯번째 공격을 받은 데다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이 미군에 사살된 직후 일어난 일이어서 우리로서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군인을 비롯한 일반 국민이 이슬람권의 보복테러 대상으로 지목됐을 수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과 이슬람권은 전통적으로 우호관계에 있다. 멀리는 6·25 당시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병해 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대한민국을 도왔다. 이후 1970년대에는 중동에서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우리 기업이 대거 참여해 상생의 협력관계를 만들었다. 그 뒤로도 축구를 비롯한 체육 부문에서 활발히 교류했고, 지난 몇 년 새에는 중동과 동남아·중앙아시아 일대 이슬람권에 한류 붐이 이는 등 이슬람권은 지구촌에서 우리에게 다정한 이웃이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와 이슬람권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우리나라는 본의 아니게 이슬람권의 대척점에 서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면서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돼 참살됐고, 아프간에서 샘물교회 신자들이 탈레반에게 집단 납치돼 피살자가 발생하는 등 비극이 되풀이된 것이다. 이 사건들에서 특정종교가 빌미가 됐다는 사실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는 부분이다. 우리는 이슬람권과 척질 까닭이 하등 없지만 국제적인 세력 판도에서 부득이 대립관계로 치부될 개연성은 있다. 따라서 국내의 이슬람 신자들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등 이슬람 국가·국민과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당장은 현실적인 보복테러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는 만큼 이에는 철저히 대비하되 조용히 진행하여야 한다. 우리는 반(反) 이슬람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슬람권과 관련된 외교정책에는 더욱 정교한 판단을 내려 한국과 이슬람권의 관계가 불필요하게 악화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빈 라덴 살아있다?…빈라덴 닮은 사나이 화제

    빈 라덴 살아있다?…빈라덴 닮은 사나이 화제

    ”오사마 빈 라덴을 보려면 남미로 가라.”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빈 라덴과 외모와 차림새가 흡사한 남자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가변에 주차된 자동차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론도뇨 아스멧이 살아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이다. 알카에다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후 그는 중남미 각국 언론에 남미판 오사마 빈 라덴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가 가변 주차한 자동차를 지키는 곳은 보고타의 중심지라는 산타페 구역. 이곳에서 그는 이미 유명 인사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총을 들고 길을 걷고 있다고 신고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론도뇨가 빈 라덴으로 변신한 건 쌍둥이 무역센터를 허무하게 무너뜨린 9.11테러가 난 다음이다. 언론에 공개된 빈 라덴의 얼굴이 자신과 비슷한 걸 보고 장난삼아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수염을 기르니 정말 얼굴이 비슷해 보였다. 론도뇨는 작심하고 완벽한 변신을 시도했다. 머리에는 터빈을 두르고 군복을 걸쳤다. 손에는 모형소총 AK-47을 들었다. 영락없는 빈 라덴으로 변신한 그는 빈 라덴 차림으로 자동차를 지키러 일터로 나선다. 그는 “빈 라덴이 지키는 곳에 도둑이 있을 리 없다.”면서 “가스총을 갖고 있지만 자동차를 훔치려는 도둑이 없어 (빈 라덴으로 변신한 후)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빈라덴 시신사진 CIA “공개” 백악관 “신중”

    미국 정부가 오사마 빈라덴 사살 사실을 공개한 지 이틀째인 3일(현지시간)까지도 시신 사진 공개 여부를 결론 내리지 못한 가운데 백악관과 중앙정보국(CIA) 사이에 엇박자가 나고 있다. 주검 사진 공개 문제는 이미 작전 계획 당시부터 미 정부 내부에서 논쟁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언 패네타 CIA 국장은 이날 시신 사진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처참한 시체 사진을 공개할 경우 자칫 반미 감정을 촉발할 것을 우려한 백악관은 즉각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런 속에서 CNN 등 미 언론들은 대체로 정부가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사진을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패네타 국장은 NBC 뉴스에 출연해 빈라덴의 사망을 증명할 사진을 “대중에 공개할 것”이라면서 “당연히 나는 그 사진들을 봤고, 사진 분석 결과 그가 빈라덴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핵심은 우리가 빈라덴을 잡았다는 것”이라면서 “나는 전 세계에 우리가 그를 죽였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가 DNA 테스트와 안면인식 기법을 동원해 신원을 확인했다고 했지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의문을 제기하는 등 논란과 음모론이 계속되자 사진 공개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는 백악관은 이에 대해 아직 어떤 결정도 내려진 바 없다고 바로 선을 그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빈라덴의 시신 사진에 대해 “끔찍한 사진”이라면서 “사진 공개 시 강한 분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빈라덴이 왼쪽 눈에 총을 맞아 두개골 일부가 훼손되고 가슴에도 총을 맞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 같은 참혹한 모습을 공개했을 때 빈라덴 추종 세력과 이슬람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도 이날 미 공영라디오 NPR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많은 정보를 미국 국민에게 공개하는 과정에 있으며 신중한 방식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면서 “추가적인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고려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빈라덴이 죽었다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지만 시각적 증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점도 고려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오해를 불러오거나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어떤 것도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은 아니지만 공개할 수 있다는 얘기냐.”는 질문에 “그렇다. 공개할 수도 있다.”고 말해 적절한 시점에 공개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빈라덴 은신처 사진 공개됐다

    빈라덴 은신처 사진 공개됐다

    CNN방송이 5일(현지시간) 미군 특수부대가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한 직후 내부를 촬영한 영상을 확보해 보도했다. 영상 속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인 집안 곳곳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각종 물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작전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CNN은 “빈 라덴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탈출 계획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의 옷속에서 바느질로 숨겨진 500유로의 지폐가 나왔다.”고 전했다. 미중앙정보부 관계자는 “각종 상황을 감안했을 때 빈 라덴이 은신처가 발각되더라도 탈출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빈라덴 최후 순간 비무장”… “가족이 보는 앞에서 총살”

    오사마 빈라덴 사살이 정당했느냐는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당초 발표했던 사살 당시 상황과 전혀 다른 사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처음엔 빈라덴이 여성을 방패막이 삼아 총을 들고 저항했다고 설명했지만 하루 만에 그가 비무장 상태였다고 번복했다. 그런데 이번엔 미군이 빈라덴을 사로잡은 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기름에 불을 부은 형국이 됐다.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 보좌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빈라덴이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 미 해군 특수부대(네이비실) 대원들에게 총격을 가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을 인간방패로 이용한 (치졸한)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불과 하루 뒤 그가 네이비실과 마주한 순간 무기를 지니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빈라덴이 여성을 인간방패로 삼았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설명이 하루 만에 뒤집힌 이유에 대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美 빈라덴 가족 등 16명 체포” 미 정부가 오락가락한 정황을 되짚어 보면, 애초 작심하고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다면 언론의 폭로도 없었는데 스스로 하루 만에 설명을 뒤집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빈라덴에 대한 악감정과 사살을 정당화하려는 의욕이 앞서면서 미국 측에 유리한 쪽으로 정보를 해석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장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사살해야 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카니 대변인은 “가능하다면 그를 생포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상당한 정도의 저항이 있었고, 그곳에는 빈라덴 외에도 무장한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빈라덴이 있던 방에는 무장한 다른 인물이 없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받자 “당시는 매 순간 언제라도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고 특수부대 요원들은 고도의 전문성에 입각해 현장 상황에 대처했다. 빈라덴은 저항했기 때문에 사살된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빈라덴이 어떻게 저항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하면서 “저항할 때 무기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놨다. 백악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애초부터 사살을 목표로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생포했을 경우 재판 등 신병처리 과정에서 국내외에서 논란이 일 수 있고, 빈라덴을 구출하기 위한 테러가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차라리 사살하는 게 속 편하다고 계산했을 법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빈라덴이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관계를 폭로할 것을 우려, 사살했다는 설도 나돈다. 이와 관련, 리언 패네타 CIA 국장은 “우리는 빈라덴이 생포 작전에서 저항할 것으로 보고 처음부터 빈라덴이 사살될 공산이 큰 것으로 가정했다.”고 말해 사살 쪽에 무게를 두고 작전을 폈음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백악관 해명과는 또 다른 증언이 나와 파문을 부채질하고 있다.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는 4일 파키스탄 정보당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군이 빈라덴을 생포한 뒤 가족이 보는 앞에서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일 미군의 작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빈라덴 딸(12)의 진술에 따르면 미군은 1층에 있던 빈라덴을 사로잡은 뒤 가족들 앞에서 사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무장하지 않은 상대방을 사살한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다. 파키스탄 정보당국은 미군이 작전을 종료한 뒤 빈라덴의 은신처에서 시신 네 구를 수습하고 여성 2명과 2∼12세 어린이 6명을 연행했다고 알아라비야는 보도했다. 현지 일부 매체는 파키스탄 당국이 모두 16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관리는 이들 대부분이 빈라덴의 가족으로 현재 이슬라마바드 인근 라발핀디의 군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미군은 이미 빈 라덴과 아들의 시신을 헬기에 싣고 이륙한 뒤였다고 파키스탄 관리들은 전했다. 또 다른 한 관리는 ”은신처에는 벙커나 도피용 터널이 전혀 없었다.“면서 ”세계 최고의 수배 인물이 이런 곳에 살았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정도다.”라고 말했다. ●“은신처에 벙커·터널 없어” 미군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비판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당장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미군 작전은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고 세실리아 말스트룀 유럽연합(EU) 내무담당 집행위원도 빈라덴을 법정에 세웠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의 국제법 전문가인 게르트 얀 크놉스도 2001년 체포돼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섰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빈라덴 역시 법의 심판에 맡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영국 켄트대학의 닉 그리프 교수는 나치 전범들도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며 미군의 작전은 “적법절차를 따르지 않은 초법적인 사살”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서울 강국진기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인간방패/박대출 논설위원

    1945년 4월. 오키나와에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다. 일본은 소년병 1만명을 최전방에 세웠다. 그들은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 갔다. 미군은 인간방패(Human Shield)라고 불렀다. 인간방패란 말이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후 전쟁사에서 공식 용어가 됐다. 하지만 전례는 꽤 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은 소련 민간인 포로들을 앞줄에 세웠다. 스탈린은 단호했다. “적을 돕는 자는 적이다.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 부대도 적이다.” 포로들 역시 인간방패였다. 칭기즈칸은 포로들을 화살받이로 삼았다. 인간방패는 오래된 전술이다. 미군이 영어 표현으로 쓴 뒤부터 공식 용어가 됐을 뿐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강제성을 근간으로 한다. 비인도적이고 반인륜적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발적인 인간방패들이다. 우리 학도병처럼. 한국전쟁에 참전한 학도병은 27만 5200명에 이른다. 군사편찬연구소의 한국전쟁 통계집에 나온다. 학도병은 총알받이를 자처했다. 고대 스파르타와 아테네 전쟁 때도 전례가 있다. 아테네 부녀자들은 손을 묶고 성을 둘러쌌다. 화살받이였다.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다. 자기 희생이다. 상반된 사례는 진행형이다. 보스니아 내전 때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포로를 인간방패로 내세웠다. 탈레반 반군은 파키스탄 주민을 인간방패로 삼았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장갑차에 묶었다. 강제적 사례들이다. 반면 반전 운동가들도 애용한다. 인간방패프로그램(HSP), 이라크 평화팀(IPT) 등은 국제적인 단체다. 그들은 이라크전에서 인간방패로 활동했다. 자발적 사례들이다. “오사마 빈라덴이 부인을 인간방패로 삼았다.” 미국은 이 발표를 하루 만에 뒤집었다. 빈라덴은 비무장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백악관 측은 실수라고 주장한다. 그를 악으로만 몰려다가 곤혹스럽게 됐다. 이 때문에 의혹이 꼬리를 문다. 처음부터 사살을 의도했다는 의문을 낳았다. 국제법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부인이 빈라덴 앞에 선 이유도 확실치 않게 됐다. 강제적인지, 자발적인지. 지난 1월 아덴만 여명작전 때가 연상된다. 특수전 요원들이 피랍 선원 21명을 구출했다. 합참은 모두 무사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석해균 선장은 위독했다. 생과 사를 넘나들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했지만. 무혈 작전을 부각시키려다가 힘이 너무 들어갔다. 과잉 홍보는 효과를 반감케 한다. 괜스레 의혹을 낳을 수도 있다. 솔직하면 탈이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고금의 진리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美·파키스탄 결국 갈라서나

    테러와의 전쟁에서 ‘불편한 동맹’ 관계를 이어 오던 미국과 파키스탄이 오사마 빈라덴 사살을 계기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사살 직후 서로에 대해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이던 양국은 그러나 3일(현지시간) 직접적으로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강한 불신감을 드러내는 등 그동안 깊이 패었던 감정의 골을 여과 없이 내보였다. 파키스탄 정부에 대한 비난의 포문은 이번 작전을 사실상 총지휘한 리언 패네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열었다. 패네타 국장은 이날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파키스탄과의 공조는 작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 애초부터 배제했다.”고 밝혔다. 패네타 국장은 “미 관리들은 파키스탄이 미국의 오사마 빈라덴 체포 작전을 망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말했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도 3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수년씩 빈라덴이 아보타바드에 있는 동안 어떻게 파키스탄 정부에 발각되지 않았는지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파키스탄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궁지에 몰린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 정부에 정면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살만 바시르 파키스탄 외무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패네타 국장의 발언에 대해 “듣기 불편하다.”면서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2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일부 미국 언론은 우리가 빈라덴을 포함해 테러리스트들을 보호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 외교부는 한발 더 나아가 3일 성명을 내고 미국 특수부대가 빈라덴을 사살하기 위해 파키스탄 내에서 군사작전을 편 것은 “승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또 앞으로 미 당국은 이런 일방적인 작전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빈라덴 하드디스크 해독에 수백명 투입

    미국 해군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에서 그를 사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데스크톱 컴퓨터와 노트북, 시디(CD), 서류 등 각종 자료를 다수 노획했다고 CNN 등 외신들이 3일(현지시간) 전했다. 한 미국 관리는 “빈라덴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확보했다는 것이 상상이 가느냐.”면서 빈라덴의 은신처를 ‘정보의 보고’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미 정부는 이번에 확보한 고급 정보를 통해 알카에다에 치명적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군은 노획한 각종 컴퓨터 장비를 아프가니스탄 모처에서 분석 중이다. 한 소식통은 “수백 명을 검토 작업에 투입했다.”면서 “워싱턴 정보 당국은 이번 노획 장비들 때문에 매우 흥분해 있다.”고 전했다. 그는 “10%만 제대로 해독해도 엄청난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한 정보 관계자는 알카에다 조직의 궤멸을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CNN은 익명을 요구한 대테러 관련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빈라덴이 전화나 인터넷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밀사를 통해 외부와 통신을 했기 때문에 시디와 디브이디(DVD) 등의 자료가 기대 이상으로 많은 양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이어 정보 분석의 1차 목표는 테러 준비 상황이나 목표물과 관련한 자료를 찾는 것이고 그다음으로 알카에다 조직의 핵심 지도부를 사로잡을 단서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의문점 7문 7답

    Q:은신처는 어떻게 찾았나. A:미 중앙정보국(CIA)은 오사마 빈라덴의 연락책 한명이 최측근 그룹 안에서도 특별한 지위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를 추적해 지난해 8월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있는 은신처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 연락책을 어떻게 찾아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정보당국이 은신처를 찾는 데 도움을 줬다는 주장도 있다. Q:미군 작전의 목표는 무엇. A: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측근들은 특공대가 받은 지시는 오사마 빈라덴을 생포하거나 사살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전에 대해 잘 아는 미 정부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그가 살해될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고 전했다. 백기를 흔들며 쏘지 말라고 애원하며 비굴하게 항복하지 않는 한 오사마 빈라덴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Q:빈라덴이 저항했나. A:미국 정부는 당초 빈라덴이 살해당하기 전 아내를 방패 삼아 총을 들고 저항했다고 지난 2일 말했다. 하지만 곧 빈라덴이 총을 갖고 있었지만 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 나왔다. 이어 3일에는 “빈라덴이 있던 방에서 빈라덴의 부인이 특공대원에게 덤벼들려 했고, 다리에 총을 맞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이후 빈라덴을 사살했다. 그는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살 당시 상황이 하루 만에 180도 뒤바뀐 셈이다. Q:빈라덴은 총을 몇발 맞았나. A:미국 관리들은 빈라덴이 총상을 신체 어느 부위에 몇발이나 맞았는지 최종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시신 사진을 본 한 관리는 그가 최소 한발은 얼굴에 맞았다고 전했다. 이런 종류의 작전에서 미 해군 특공대의 일반적인 전술은 가슴에 한발을 쏜 다음 머리에 한발을 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빈라덴도 가슴과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Q:빈라덴은 여성 인간방패 이용했나. A: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2일 “은신처에는 가족이 있었고 여성 한명이 있었다. 이 여성은 빈라덴을 보호하는 방패로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 날 제이 카니 대변인은 이 문제에 대해 불확실하다며 사실상 인간방패 발언을 뒤집었다. Q:포로를 확보했나. A:영국 BBC방송은 파키스탄 정보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작전 도중 남성 한명을 생포했으며, 그가 빈라덴의 아들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일부 미국 관리들은 특공대가 현장에서 가져온 것은 빈라덴 사체뿐이라며 보도를 오보라고 일축했다. 미국 관리들은 현장에 있던 빈라덴 가족은 파키스탄 당국에 넘겼으며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파키스탄 당국에 달렸다고 말했다. Q:파키스탄은 작전에 어떤 역할. A:빈라덴 사망 발표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데 파키스탄이 도움을 줬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등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에 이번 작전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 리언 패네타 CIA 국장은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과의 공조는 작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배제했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美 “2인자 알자와히리도 파키스탄에 있다”

    오사마 빈라덴의 사망 이후 알카에다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동선에 시선이 쏠린 가운데, 알자와히리가 파키스탄에 은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미 당국자가 밝혔다. 유력한 차기 알카에다 지도자인 알자와히리는 이집트 출신으로 과격 성향으로 알려져있다. 존 브레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안보·테러담당 보좌관은 3일(현지시간) 공영라디오 NPR과 가진 인터뷰에서 “알카에다의 은신처인 파키스탄 와지리스탄에 알자와히리 등 알카에다 고위 인사들이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더 구체적인 정보가 확보되는 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작전을 동원해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알카에다 고위 인사들을 제거하기 위한 추가 군사작전을 시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브레넌 보좌관은 “우리는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서 입수한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린다.”면서 “우리는 알자와히리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있는지에 확신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美 ‘빈라덴’ 클릭 주의보

    오사마 빈라덴의 사망 이후 그의 죽음을 악용한 각종 인터넷 판촉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인터넷 보안 전문가들은 빈라덴의 사망과 관련된 뉴스를 검색할 수 있는 것처럼 웹사이트를 꾸며 놓고 각종 이벤트 상품에 응모하도록 하거나 엄청난 양의 스팸메일을 쏟아내는 사이버 사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보안 전문회사 캐스퍼스키랩은 “빈라덴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다는 최초 보도가 나간 지 불과 몇 시간 안에 스팸메일 광고와 사기성 검색 웹페이지를 탐지하기 시작했다.”면서 “검색 웹페이지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실제로 뉴스 검색이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돼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분석가 파비오 애솔리니는 빈라덴의 죽음에 대한 새로운 뉴스와 빈라덴의 시신 사진을 제공한다는 검색 웹페이지를 발견하게 되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웹페이지를 클릭하면 바이러스 치료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페이지와 연결되기도 한다. 페이스북에서도 빈라덴을 판촉물로 이용하는 사례가 발견됐다. 빈라덴의 죽음을 축하한다면서 무료 지하철 탑승권과 항공기 티켓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광고 페이지가 등장하는 식이다. 이 페이지는 무료 티켓을 미끼로 개인 신상 정보 입력을 요구하고, 한술 더 떠 이용자의 페이스북 ‘친구’들에게도 이 사이트의 방문을 권유하는 스팸메일이 발송되도록 돼 있다. 인터넷 보안 전문가들은 “주요 뉴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이버 사기 위협이 인터넷 사용자들을 맹습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흔한 속임수와 사기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빈라덴, 유산 한 푼도 못 빼돌려 연줄 이용 자금확보”

    “빈라덴, 유산 한 푼도 못 빼돌려 연줄 이용 자금확보”

    오사마 빈라덴은 미국 특수부대원의 총탄에 최후를 맞기 전까지 철저히 음지에 숨어 살았다. 이 때문에 그를 둘러싼 각종 소문만 무성했다.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 중앙정보국(CIA)조차 그를 쫓는 데 애먹는 사이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는 근거가 빈약한 소문과 억측으로 덧씌워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빈라덴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반박했다. ① 빈라덴은 CIA가 키웠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옛 소련에 맞서기 위해 빈라덴을 지원했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무근이다. 그와 추종자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받거나 훈련받은 적이 없다. 다만 소련에 맞서 빈라덴과 함께 싸웠던 아프간의 무장 게릴라 단체 ‘무자헤딘’은 파키스탄 정보국을 통해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② 개인 재산이 막대한 갑부였다? 빈라덴의 아버지는 건설 갑부 출신으로 빈라덴을 포함한 52명의 자녀들에게 유산을 공평히 나눠 줬다. 그러나 그가 1991년 고향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 파키스탄으로 갈 때 개인 재산을 반출하지 못했고 가족들도 그와 관계를 끊었다. 대신 빈라덴은 자금을 쉽게 모을 수 있는 연줄이 있었던 까닭에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 ③ 1993년에도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했다? 빈라덴이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파 시도에 연루됐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당시 사건을 주도했던 람지 유세프는 독립적으로 테러를 기획했던 셰이크 무함마드를 위해 일했다. ④ 동굴에서 주로 살았다? 빈라덴의 ‘동굴 거주설’은 1990년대 말 그가 선전전을 위해 일부 기자들을 아프간 동부 토라보라 산악지대의 동굴로 초청하면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빈라덴은 동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련된 안락한 거처에서 생활했다는 증거가 많다. 1999년에는 아프간 칸다하르 인근의 복합 주거 시설로 이주했으며 그가 숨을 거둔 곳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있는 3층짜리 고급 맨션이었다. ⑤ 청소년 때 불량배였다? 청소년 때 흥청망청 생활했다는 비난들도 있지만 이에 대한 증거가 없다. 빈라덴은 오히려 진지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었다는 증언들이 나온다. 17세 때 결혼한 그는 경전을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⑥ 신장 질환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전 대통령은 2002년 “빈라덴이 신장 질환으로 숨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장병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190㎝가 넘는 장신인 탓에 척추 질환을 앓은 것으로 전해진다. ⑦ 영국 프로축구팀 아스널의 광팬이다? 빈라덴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아스널의 광팬이며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은 센터포워드라는 주장이 있으나 실제 그렇지는 않았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작전명 ‘제로니모’… 인디언 폄훼 논란

    작전명 ‘제로니모’… 인디언 폄훼 논란

    오사마 빈라덴 사살 이후 축제 분위기에 빠진 미국 사회가 특수부대의 작전명 ‘제로니모 E-KIA’(Enemy Killed In Action)를 놓고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인 의회 관계자까지 나서 “미국 사회 곳곳에 인디언을 폄훼하는 현상이 퍼져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미 상원 인디언 문제 위원회의 로레타 튜엘 자문대표는 3일(현지시간) “미국 원주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던 제로니모의 이름을 미국인의 공적(빈라덴)과 연관 지어 사용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원주민 출신인 그는 “미국 사회에서 원주민의 아이콘이나 문화를 이처럼 부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라면서 “이 때문에 어린이들이 (정서적으로) 황폐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튜엘 자문대표는 5일 상원에서 열릴 인디언 문제 청문회에서 빈라덴 제거 작전명으로 제로니모를 사용한 것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인디언 문제를 다루는 시사주간 ‘인디언 컨트리 투데이’의 칼럼니스트 스티븐 뉴컴도 “많은 인디언에게 존경받는 영웅의 이름을 무례하게 이용했다.”며 비판 행렬에 동참했다. 그는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대통령은 인디언을 적으로 간주하는 200년 된 낡은 전통을 뒤엎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북미 원주민들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황당하고 상처를 입었다.’고 밝히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빈라덴 제거 작전명으로 사용된 ‘제로니모’는 1800년대 미국과 멕시코를 상대로 투쟁했던 전설적인 원주민 부족인 아파치족 추장의 이름이다. 백악관은 작전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제로니모는 빈라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빈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 전체를 칭하는 암호명이며 빈라덴을 지칭하는 암호명은 ‘대박’을 뜻하는 ‘잭팟’이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美·英 경계강화 속 ‘알카에다 보복테러’ 현실화 ?

    [빈라덴 사살 이후] 美·英 경계강화 속 ‘알카에다 보복테러’ 현실화 ?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 이후 알카에다의 보복 테러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2일 밤(현지시간) 외국인 병사 25명이 파키스탄 국경지대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으로 침투하려다 아프간 당국에 의해 사살됐다. 빈라덴 사살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보복공격의 징후가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태국 등 자국 미국시설 경계 수위 높여 아프간 북동부 누리스탄주의 자말루딘 바드르 주지사는 3일 전날 밤 파키스탄 국경 인근의 누리스탄주 바르그이마탈 지구에서 작전을 벌여 중동과 체첸, 파키스탄 등에서 온 외국인 병사 25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바드르 지사는 이번 작전이 테러세력의 보복공격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국경 침입을 통제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면서 “우리는 알카에다와 다른 테러 세력들이 아프간으로 침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알카에다 지도부가 아직까지는 어떤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지만 일부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들도 보복을 다짐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소말리아의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 대변인은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 및 소말리아 기독교인들에게 보복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AP통신이 2일 보도했다. ●소말리아 무장단체 “서방에 공격” 아프간·파키스탄 부족 문제에 정통한 라히물라 유수프자이는 AFP에 “알카에다와 성전의 동맹들, 파키스탄 탈레반 등 연계 조직들은 이번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테러 전문가들은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리와 추종자들이 빈라덴 사후에도 알카에다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보복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수일 또는 수주 내에 테러 조짐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신문은 또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발견된 비밀 문서에 따르면 알카에다가 빈라덴이 체포되거나 사살될 경우 핵무기를 터뜨린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알카에다가 아직 핵무기를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빈라덴의 사살 뉴스는 미리 준비해 놓은 공격 작전들을 개시하라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10년 넘게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후속 테러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은 해외공관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미국인의 해외 여행시 주의를 당부했다.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은 이날 알카에다의 보복 테러에 대비해 “경계 상태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태국과 이스라엘 등은 자국 내 미국 관련 시설들에 대한 경계 수위를 높였다. ●美, 駐파키스탄 대사관 대민업무 중단 특히 빈라덴이 사살된 파키스탄 내에서의 테러 가능성이 높아 그간 알카에다의 공격 대상이 됐던 서방 국가들은 자국민 보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 국무부도 소요사태를 우려해 파키스탄 주재 자국 대사관과 영사관의 대민업무를 무기한 중단하기로 했다. 영국, 호주 정부 등도 전 세계 외교공관에 경계 강화를 지시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중요한 결정엔 미셸이 늘 거부권 지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 윈프리 쇼’에 함께 출연했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2일(현지시간) 방영된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18년간의 결혼 생활과 부부관계, 두 딸을 키우는 재미, 재선 출마 결심과 출생증명서 공개 등에 대해 소개했다. 방송은 미군의 오사마 빈라덴 사살에 앞서 지난달 27일 시카고의 윈프리 제작사 하포스튜디오에서 녹화됐다. 평소 각별한 사이인 윈프리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내년 대선 출마 결심을 굳히기 전에 아내의 의사를 물었느냐고 묻자, 오바마 대통령은 아내를 쳐다보며 “미셸은 이 같은 결정에 대해 항상 거부권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미셸 여사는 “그것(거부권)을 좀 더 행사하도록 해야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18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결혼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됐느냐.”는 질문에는 대답 대신 미셸 여사를 뚫어지게 쳐다봐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됐다. 결혼과 부부관계에 대해서는 미셸이 거들었다. 미셸은 “부부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여야 하며, 서로를 정말 좋아하고 존경해야 한다.”면서 “쉬운 길은 아니다. 살다 보면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가장 소중했던 시간으로 아내와 함께 두 딸을 데리고 메인 주에서 보냈던 휴가를 꼽았다. 윈프리가 출생증명서를 왜 이제서야 공개했느냐고 묻자 오바마 대통령은 “당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뒤 “하지만 내 출생지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이 2년 이상 이어지면서 불필요한 소모전을 끝내고 싶어 출생증명서를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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