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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 주석에게/최평길 연세대 교수(서울시론)

    ◎역사를 거역하는 어리석음 버려야 김일성주석에게. 안녕하십니까? 올해 1990년은 20세기를 정리하고 21세기를 향해 가는 전환기인 90년대의 첫 해입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지 142년,레닌이 혁명한 지 73년,그리고 해방된 북쪽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지 45년,김주석이 6ㆍ25전쟁을 일으킨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공산주의 실험은 끝나 140여년 전에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이론을 제시한 이후,실제로 소련에 적용되기까지는 7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또한 중국 북한 동구공산국가도 사실은 40년의 공산주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극소수 생산수단 소유자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부를 독점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착취당하고 소외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무산자계급이 통치하는 사회로 나아가려는 것이 공산사회 아닙니까? 그런데 인간 나이로 보아 70세가 되기도 전에 이러한 공산사회는 통치차원에서 공산당 우위불가론을 제기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를 실시한 결과 지난 한햇동안 순식간에 동구권 사회주의국가가 모두 공산당 간판을 내려버렸습니다. 더불어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하고 조금은 완화된 사회주의 정당을 창설하였으며 더 나아가 다른 정당도 창설되어 자유 경선으로 정치지도자를 뽑겠다는 의지를 표출하였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다당제 주장이 공산주의 체제내에서 개혁ㆍ개방을 부르짖던 소련ㆍ중국에 역수출되게 되었습니다. 중공업에 의한 군사력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장악하던 소련은 열려진 사회주의 체제의 민주화 기수로 정치적 선제권을 잡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되는 이같은 개혁 공세는 90년에는 중국과 북한이 그 주대상이 될 것입니다. 한국이 제1차 5개년 경제계획을 1961년에 시작할 때만 해도 북한이 경제면에서 한국을 훨씬 앞질렀고 철강생산만 하더라도 북한이 독점하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 현재 북한은 예상 기대목표 1천만t에 6백90만t을 생산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포항제철을 필두로 2천만t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60년대까지만 해도 남반부 혁명 완수라는 공격형 정치심리가,70∼80년대에는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자」는 방어논리로 변질되었고 이제는 북한이 개혁이냐 폐쇄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갈등ㆍ모순의 정치상황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모스크바 북경에 가서 북한에 정통한 정부실무가ㆍ전문가ㆍ교포를 만나보거나 남쪽에온 북한의 시민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면 2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노동당ㆍ정무원ㆍ기업소의 핵심 요원이나 알고 있던 한국 사정을 올림픽을 기점으로 또 어쩔수 없이 북한지도부도 업무상 해외나들이가 잦아지게 되어 이제는 한국이 잘 산다는 것을 함경도 산각벽지 농사꾼조차도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더이상 주민 못속일 것 그리하여 현재 주석의 통치하에 있는 북한의 최대 딜레마는 식량을 위시한 생필품,물자의 절대빈곤과 북한 시민의 남북한 비교인식 시각이 넓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즉 이제는 주체사상,김일성주의 칭송은 선전으로서만 습관화된 반면,우리도 풍요롭고 자유스럽게 잘살아 보자는 욕구표출이 최근 동구 사회주의국가의 민주화와 이를 밀어주는 소련의 입김으로 인해 더욱 상승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키 164㎝에 몸무게 81㎏,당뇨기가 있는 데다가 신장염도 앓고 있으며 그저 영화예술에나 심취하고 있는 인기없는 아들 「친애하는 김정일 비서」 자체도 주민의 욕구 분출과 때를 같이하여 북한 정권승계에서의 커다란 걸림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김일성주석은 1986년 12월의 시정연설에서 아직도 북한은 불완전사회주의 사회에서 완전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극소수 핵심지도부 외에는 모두 가난한 「가난의 평등사회」라는 오늘날의 북한 실정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소련의 개방화 압력,물자의 절대빈곤,부자세습체제의 모순 등은 김일성주석의 정신적ㆍ육체적 건강에 커다란 심려를 끼치고 있으며 더군다나 주석 다음으로 장기집권한 차우셰스쿠서기장의 처형은 큰 타격을 주었으리라 봅니다. 해방되던 해 33세의 청년으로 소련군을 따라 입성한 주석은 그후 빨치산 생활을 청산하였는 바 밀림 속의 도보행군이 도시의 승용차 생활패턴으로 바뀐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자모산별장 근처 인공사육장에서 키운 꿩과 노루를 차에 탄 채 사냥하는 등 안방생활에 젖어있으며 강철의 영장인 당신도 일흔여덟의 나이를 못속이는지 두 다리가 약해져서 보행에 불편이 있고 허리가 아파 여행도 편히 누워갈 수 있도록 기차여행을 즐기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귀가 멀어가고 옛날 같으면 난치병인 귀의 종양제거수술도 동독의 의사를 불러 하였으나 최근에 다시 재발하여 고생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늙으면 하찮은 병도 이래저래 합병증으로 큰 병을 얻게 마련입니다. 티토가 오래 산 것이 5백m 고지에 있는 별장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라며 자모산별장의 침대를 해발 5백m에 위치하게 하고 오곡밥에 깊은 계곡에서 서식하는 생선,반드시 먹기 30분 전에 잡은 육류 등만을 먹고 함경도 호수 밑의 3층별장에서 여름을 지낸다고 해도 늙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습고집도 그만둘 때 아들 정일이나 평일이 모두가 그 수준이라고들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호쾌한 북한 인민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라고 외치게 되면 또 군사분계선에서 근무하는 영롱한 인민군전사마저 한국군이 무서워서라도 김주석과 아들들을 갈아치우는 것이 정치안정에 도움된다며 인민편에 설 때 그 뒤에 오는 불행한 사태는 가히 짐작이 가는 일입니다. 아무리 아들 김정일의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생들을 군요직에 앉힌다고 해도 1백만 대군의 요직을 전부 차지하게 할 수야 있겠습니까? 부디 잘 생각하여 마음과 육신이 쇠잔하고 기억이 몽롱하여 대사를 그르치기 전에 실질적인 남북정상회담도 하고 다각적 교류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면서 자유경선으로 후계체제를 정착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과거에 거세되어 이국땅 소련에 있는 이상조장군,중국에 있는 서휘ㆍ김강같은 혁명동지들을 다시 불러모아 화해하고 즐거운 여생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올해 신년사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방법도 변천되는 현실에 맞게 끊임없이 개선,완성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였는데 김주석 스스로가 부단히 자성하고 개선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새해 문안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 출범한 문화부에의 당부(사설)

    신임 문화부장관의 의욕적인 문화정책 구도가 밝혀졌다. 과연 출중한 말솜씨를 가진 장관답게 현란한 수사와 번득이는 창의가 넘칠만큼 그득한 구상들이 우리를 황홀하게 했다. 오랫동안 물질위주의 「잘살기 운동」에만 골몰해 왔던 우리는 어느날 문득 사막처럼 황폐해진 삶의 주변과 그로인해 재생불량성 질환에 걸린듯한 정신문화의 빈곤을 깨닫고 당황하기에 이르렀다. 잘살되 참으로 사람답게 잘사는 길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으면 경제적 삶이 조금 발전했다 하더라도 아무 뜻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문화부의 출범은 그 깨달음에서 비롯된 합의의 결실이다. 그 문화부를 이끄는 새 장관이 모처럼 찬란한 문화입국의 청사진을 마련하여 의욕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에는 기대와 격려를 보낼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장관답게 용어 하나도 진부하고 낡은 것은 치워버리고 갖가지 새 말을 찾아내고 만들어 냈다. 「까치소리」 「문화주의 새사업 벌이기」 「문화발전 열고개 넘기」 「문턱없이 일하기」 「생색안내고 일하기」 「사심없이 일하기」「이끼입히기」 「두레박놓기」 「부지깽이 되기」 등의 신조어가 난무한다. 화려하게 나열된 이 문화백화들이 번득이는 재능의 소유주인 이어령장관의 즉흥적인 발상에서만 우러난 것이 아니기를 우리는 바란다. 문화부의 발족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충분한 실현성을 검토해가며 기초가 놓이고 토목이 이루어진 진행사업 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달변인 장관이 신들린 듯이 열거하는 「문화운동」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가꾸지 않고 내던져졌던 온갖 문화의 구슬들이었다. 가꾸고 꿰기만 하면 영롱한 본디의 빛을 발휘하여 보석이 될 수 있는 구슬들이다. 「문화부」가 해주어야 할 일은 이 구슬들을 꿰어 보배가 되게 하는 일이다. 미개한 아프리카 신생공화국 정치지도자가 문명국에 나들이를 왔다가,더운물 찬물이 좔좔 쏟아지는 수도꼭지를 보고 탄복하여 귀국하는 짐보따리에 수도꼭지를 몇백개씩 싸가지고 갔다는 일화가 있다. 맑고 깊은 수원이 있고 그것을 소독하고 가열처리해서 꼭지까지 연결하는 상수도시설이 있지 않고는 수도꼭지만으로는 「물」을 형수할 수 없다. 우리가 문화부에 기대하는 것은,풍경 아름다운 계곡에 흐르고 있는 수원의 한 갈래나,까마득한 강상류의 발원의 확인만도 아니다. 또한 주물로 잘 만들어진 수도꼭지나 문명한 나라에서 개발한 신식 물뿌리개가 달린 희한한 세면기만도 아니다. 깊고 풍요하게 담아진 넉넉한 수원과 그 철철 넘치는 생명의 물을 개체의 꼭지에까지 전해주는 상수도시설,수조에 옮겨 적당한 온도로 데워까지 주는 중간과정의 시설들을 이뤄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문화부」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빈집」이 될 우려를 동반하기는 했어도 상당량의 하드웨어도 이뤄져있다. 그런 뜻에서 신임장관이 내세운 「속채우기 운동」은 마땅한 생각으로 보인다. 어디에 어떤 구슬이 내던져져 있고,어디에 어떤 수원의 줄기가 묻혀있는지를 찾아 우선 착실한 개념설계를 하여,있는 것부터 찾아 유효하게 지원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시작부터 어쩐지 너무 화려한 수사를 만난 것만 같아 공연히 부실감이 든다. 이런 노파심을 씻어주는 문화부이기를 기대한다.
  • 정치,그리고 「건달」론/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조계종 종정 성철 큰스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다. 그런 표현이 결례가 된다면 자미롭다거나 그냥 친근감을 갖게 되는 분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우선 그분의 상호부터가 그러하다. 우리같은 속중의 눈으로 보는 그분의 상호는 부처님쪽보다는 나한상에 가깝다. 그래서 보다 친밀감을 갖게 하고 깊은 산속에 은거하며 속세에는 미동도 않는 높은 뜻이 돋보이는지 모른다. 그 성철스님이 문하스님들을 「건달」로 몰아붙이며 야단을 친 일이 있다. 작년 그가 주석하는 해인사의 하안거 해제 때 법문을 통해 『해인사에 건달이 제일 많다』며 『중이면 중값을 해라』고 호통을 친 것이다. 그는 『중들은 공부를 안하고 신도들은 속아서 큰스님인줄 알고 시주를 많이 한다』고 불교계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기실 중들만을 건달로 몰아붙인 것이 아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건달로 본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건달이란 일정한 주소나 직업도 없이 관계없는 일에 잘 덤벼들고 풍을 치며 돌아다닌다는 뜻의 사전적 의미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건달이란 팔부중의 하나­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 살며 제석천의 아악을 맡아보는 신,이른바 건달파를 가리킨다.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만 사르며 공중으로 날아다닌다. 또 서역에서는 배우를 일컫는 말도 된다. 「건달」 풀이가 길어졌는지 모르지만 지난날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란 자기와 무관한 일에 잘 덤비고 풍을 치며 휘젓고 다니는 사람들,이를테면 건달들이나 하는 일로 돼 있었다. 사실이 그런 적도 있었다. 허황된 꿈과 자기도취 속에서 무위도식하며 온통 「민중」이요 「대중」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고 판을 꾸몄다. 그러니까 그들이 일궈내는 정치 또는 정치판은 「건달들의 놀이터」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 당시 한 유수한 정치인이 정치는 백수건달들이나 하는 것으로 스스로 비하했다. 자유당 때에 이어 공화당 정치를 주름잡던 성곤 김성곤의 이른바 「백수건달론」이 그것이었다. 해방 직후 우후죽순처럼 생성 소멸했던 숱한 정당ㆍ사회단체ㆍ정당인ㆍ정치인들 그리고 자유당 때 집권당을 감싸고 위성처럼 기생하던 많은 정당ㆍ단체들과 사람들이 결국 건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그 시절 다른 말로 표현해 정치 브로커라고도 했다. 올바른 정치가 없고 사회가 혼란했을 때는 모리배나 정상배,심지어는 뒷골목의 주먹들마저 정치 브로커를 겸업했거나 아니면 민중을 들고나온 본격 정치꾼들에게 고용되어 건달놀이를 일삼았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 정당이나 정파ㆍ사회단체의 난립은 정치의 빈곤을 뜻하는 것이고 정객의 과잉은 정치의 부재와 결여를 말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섣달 그믐날 자정이 넘도록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며 왜 성철스님의 「건달중」 호통이 상기됐으며,왜 우리의 정치와 정치판을 들여다보며 성곡의 건달 정치론이 뇌리를 스쳤는지 오늘 생각해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지난 일을 청산하자고 이뤄낸 정치의 장을 국민의 한사람으로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적잖은 충격과 당혹감을 느낀 것만은 분명하다. 청산하자는 마당에 왜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하게 보였던가를,다시는 그것을 거론치 말자며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 또한 쉽게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좀더 따지고 보자면 그날의 정치희극 아니 정치비극은 이미 약속된 사항을 이행하지 못하는 뭇정치인들의 무능력과 무책임과 건달적 사고방식에서 이미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청산은 일찍이 국민적 합의였고 정치인들의 실천사항이었다. 그것을 실행하는데 힘이 부쳐 저들끼리는 포기하고 1노3김이라는 「결단회담」까지 가지고 가게 한 사람들은 정확히 말해 건달론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의 국회출석 증언 자체가 아무리 우리 현실정치의 통과의례 일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호위하는 쪽과 마당에 팽개치려는 쪽의 충돌과 해프닝,그로 인한 정회소동은 그처럼 힘들게 마련된 새 출발의 통과의례를 무참한 의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치인들은 증인이 국회를 모독한다고 분개했으나 그들 스스로도 국회를 모독하고 있었다. 지나간 일을 왜 또다시 들먹이는가를 따지는 일은 이 문제에 관한한 무의미하다.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정치 또는 정치판에서 다시는 그런 희비극 같은 장면이 연출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말은 바로 해보자는 얘기다. 전직 대통령의 국회출석 증언 같은 국가적 망신이요 국민적 수치요 개인적인 치욕에 속하는 일은 역사에서 단 한번으로 끝내야 한다는 충정에서이다. 올해에는 그동안 군소정치인들이 그토록 주장하던 대망의 지방자치제가 실시된다. 그와 때를 같이 했음인지 정계개편론도 이미 슬슬 제기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자신의 개인적인 구상으로만 간직해야 할 채 익지 않은 양당제로의 개편론을 드러냈다가 그 즉시로 집권당 대표위원직을 떠난 경우도 있고 조금 낯선 연합공천론도 공개적으로 띄워졌다. 공당의 총재에 의해 내각책임제 개헌론이 제기됐었고 그 무슨 말빠른 생각이냐는 반론도 나왔다. 「정치」와 「건달」이 연결됐던 우리 정치의 과거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어느 한 기간의 과거청산도 역시 역사에 묻히려 하고 있다. 그것을 기점으로 우리의 정치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진정한 보혁논쟁으로 새로 태어나고,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을 벗어나 이념에 기초한 그러한 정치로 재편돼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 그 재편은 이르지도 늦지도 않다. 오는 봄의 지방선거,그 이듬해의 총선거,다시 그 이듬해의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행사가 줄이어 있다. 그 기간이 앞으로 3년이며 3년이란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인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성철스님이 중들을 야단치듯이 국민들로부터 『정치판에 건달들이 제일 많다』거나 『정치인은 정치인 값을 해야 한다』는 질책을 더이상 받지 않기 바란다. 그리고 이것을 새해의 덕담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소망스런 우리 정치의 건달파들이여 다시 한번 힘을 내서 해봐야 할 것 아닌가.
  • 외언내언

    러시아인 아크사코프는 「가족의 기록」을 쓴 사람. 그의 집안에서는 고골리를 숭배했다. 어느날 저녁초대를 받은 고골리는 식사가 끝나자 앉은 자리서 졸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족들은 소리가 안나게 발을 벗고 숨을 죽인 채 옆방으로 가서 그가 깨기를 기다렸다. 그걸 기록 속에 남겨 고골리의 진솔한 면모가 전해지게 되었다. 범상한 사람이라도 기록만 충실히 해서 남기면 대문호를 연구할 자료의 보고를 남기게 된다. ◆1450년부터 1516년까지의 연대기를 남긴 피렌체의 루카 랜드위치는 상인으로 산 시정인이다. 어설픈 지식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일어난 일을 간결하게 객관적으로 기록해두었다. 자기 시각으로 투과시켜 편향될 위험이 없는 기록이어서 후대의 연구가들은 그 연대기를 환영한다. 당시의 피렌체에서 일어났던 종교적 사건들에 대해 기록한 그의 연대기는 지금에 이르러 어떤 사료보다도 긴요하게 취급되는 것이다. ◆왕조 중심의 비교적 수준이 높고 탄탄한 지식층을 지녀온 것이 우리나라지만 사사로운 기록은 빈곤한 편이다.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별로 하지 않는 품성을 우리는 지닌 것같아 보인다. 그 때문에 백성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알아볼 만한 자료가 매우 귀한 편이다. ◆서울신문이 새해 들어 연재를 시작하는 「저상일월」은 드물게 전해오는 「보통사람의 기록」을 대표하는 귀중한 자료다. 1834년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7대 1백50년을 이어온 가족기록이다. 아마도 이렇게 이어진 가족사는 세계에서도 드물 것이다. 이 한 작품으로 빈곤한 기록의 허를 보충한 셈이다. ◆집안일 나랏일,사회사의 명료한 단면이 새겨진 이런 소중한 기록은 진정한 뜻에서 가문을 빛나게 한다. 문맹률이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낮으면서 기록에는 유난히 게으른 우리 후세들을 위해서도 좋은 교훈이 된다. 누구든지 자기 기록을 오래오래 지속해서 남기면 재물보다 소중한 유산이 된다.
  • 미ㆍ일ㆍ중ㆍ소 지도자 신년사

    ◎인류평화ㆍ번영위한 미래 열자 부시/정의와 자유가 실현되는 해로 고르바초프 ▲조시 부시 미 대통령=지난 한햇동안 미국 경제는 강력한 성장을 계속했으며 동유럽에서의 민주주의 이상의 승리와 소련과의 관계개선은 세계평화의 전망을 더욱 밝게 했다. 1990년대는 미국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많은 도전과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자유의 만개를 목도하고 있다. 모두가 빈곤과 폭력ㆍ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에 참여,온 인류가 평화와 번영으로 상징되는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89년은 냉전의 종식을 기록한 해였으나 국내적으로는 민족분규ㆍ파업ㆍ경제난의 심화등으로 얼룩진 어려운 한해였다. 90년은 인류문명에 있어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두는 한해가 되길 희망한다. 우리는 지난해 많은 교훈을 얻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목표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수 있게 됐다. 그 목표들이란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사회주의의 실현,자유와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의 구현 등이며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될 필요성을 극명하게 상기시켜준 동구제국의 개혁이 훌륭한 선례가 될수 있을 것이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 총리=동서진영간 냉전이 종식된데 따라 일본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 몰타회담등 초강국이 대결에서 대화관계로 변화되어가는 것을 환영하며 이같은 국제상황이 아시아와 태평양지역 국가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길 기원한다. 그러나 한반도에 긴장이 상존하고 있고 캄보디아 분쟁이 계속되는 등 특이한 지정학적 특성상 동구권을 휩쓴 극적인 민주화 열풍은 아직 이 지역에 일고있지 않다. ▲강택민 중국 당총서기=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기 위해 대가를 치렀으며 교훈도 함께 얻었다. 사회안정이 이룩되어야만 경제발전ㆍ생활향상등 더 나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 “답변 기대에 못미친 부분 많을것 모두 내책임…약사발도 받을각오”

    ◎전 전대통령 회견 전문 오늘 저녁 기자 여러분도 보셨다시피 청문회장의 분위기가 파탄지경에 빠짐에 따라 증언을 더 이상 못하게 된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연내 과거청산문제를 마무리 짓겠다는 여야 청와대회담의 합의를 존중하는 뜻에서 최대한 협조하려고 했습니다. 못다한 증언을 기자 여러분에게 직접 밝히려 합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더러는 10년 전에 있었던 일로 기억이 희미해진 부분도 없지 않고 자료의 부족때문도 있어서 기대에 어긋난 점이 적지 않을 것으로 압니다. 통치권에 부수된 비밀과 저 개인이 아닌 대통령직에 따르는 권위를 위해,명백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미진한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약 8년 동안에 걸친 통치권 행위 전반을 소상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입니다. 지금 당장 제반 사건을 들추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바람직스럽겠지만 그렇게 하다간 모처럼의 마무리작업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마저 없지 않습니다. 외람됨을 무릅쓰고 말씀드린다면 세계역사상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정권에 대해서도 단시일 내에 그 시시비비를 말쑥히 가려낸 예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부득이 역사의 심판에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일을 등한히 해서도 안되고 지난 일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이며 내일입니다. 지난 과오도 억울한 데 그것에 얽매여 오늘과 내일의 일을 그르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께서 따지실 일이 있으면 저에게 숙제로서 과해주십시오. 회상록이 될지 다른 형식이 될지는 모르나 시간을 들여서 소상하게 구체적으로 제5공화국에 관한 일체의 진실을 밝혀 국민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저는 백담사에서 일년 넘게 기도와 정진의 생활을 하며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기 위해 남을 그르다고 하면 시시비비는 종결될 수 없으니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저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한 일이건 모르고 한 일이건 제가 맡고 있던 그 시대의 일은 전적으로 최고책임자인 저의 책임입니다. 도의적 정치적 사법적 모든 책임을 저에게 물어주십시오. 국민이 내리시는 것이라면 죽음의 약사발도 받을 각오입니다. 제가 태어난 조국을 위하는 한 알의 보리알이 되기 위해서 조국의 땅에서 죽겠습니다. 나의 이 마음은 결단코 변할 수가 없습니다. 외국에 나가라는 권유를 받기도 하고 그렇게 하라는 압력도 있었습니다. 나는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평생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국부적인 존재였던 이승만박사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국의 땅에서 생을 마치게 된 슬픈 사연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분입니다. 그런데도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장기집권을 시도하다가 심복중의 심복이며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사람에게 시해당하는 처참한 불행을 겪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악순환을 이 나라에서 근절해야겠다고 각오하고 그것이 바로 이 나라에 민주주의를 심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집권 7년반 동안많은 나날을 저의 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연희동 정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하며 보냈습니다. 때로는 그러한 제 진심을 믿어주지 않는 불신풍조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또 후진국의 대통령이면 예외없이 해외에 재산을 빼돌려놓고 여차하면 외국으로 나가서 흥청망청 살 것이란 통념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저 스스로 청와대에서 걸어서 나가겠다는 약속을 믿게 하는데 7년반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 마음 속에 간직된 말들을 국민 여러분의 마음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 저의 무능이 답답할 뿐입니다. 저는 지난 80년 대통령이 되기 얼마 전까지도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충직한 한사람의 군인으로서 부과된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제가 숙명이었던지,어려움에 싸여있는 나라를 졸지에 맡게 되었습니다. 걱정과 책임감에 짓눌려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쏟아 휴일도 없이 뛰고 또 뛰었습니다. 그리곤 결국 적막하기 짝이 없는 백담사에 만신창이의 몸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백담사에서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에 지난 일을 돌이켜 보고 또 돌이켜 보았습니다. 경험도 준비도 없이 전연 새로운 사태를 당하고 게다가 의욕만이 앞서고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고 따라서 후회스런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박 대통령의 시해사건은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거니와 그 유신체제를 비판적으로 승계하는 일이 또한 전례가 없었던 일입니다. 이처럼 전례가 없는 새로운 사태의 연속에 대응하는 과정에 있어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자인하고 그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제가 국정을 맡아 있었던 7년 동안에 국민소득이 두배로 늘었다던가 악성 인플레를 잡아 흑자경제를 이룩했다던가,외채를 순조롭게 갚아 국제적으로 나라의 신용을 높였다던가,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 만큼 국력을 배양하고 그 올림픽을 통해 국위를 세계만방에 떨칠 수 있었다든가 하는 사례를 들어 저의 허물을 덮어달라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그러한 업적은 모두 국민 여러분의 합쳐진 위대한 힘이 이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잘못에 대해 가혹한 매질을 가하시더라도 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은 영예로운 일에 제가 여러분과 함께 동참한 일꾼의 하나로 여겨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희망만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중국에 있었다고 하는 옛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마을의 동장이 물이 잘 소통되도록,그리고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마을 앞 도랑을 자기집 머슴들과 함께 깨끗이 치웠더니 마을 사람들이 『당신은 미꾸라지를 다 잡아먹기 위해 도랑을 치운 것이 아니냐』고 비난하고 나서더란 것입니다. 하도 억울해서 동장은 그날 밤 권속들을 데리고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에겐 이젠 도망을 칠 곳도 없습니다. 이미 저는 지난 해에,저를 감옥에 보내서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저의 분명한 뜻을 전한 바 있습니다만 「5공청산」을 위해서라면 감옥에라도 가겠습니다. 다만,저는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으로서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염치를 아는 창피하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국민 여러분이 내리시는 것이라면 죽음의 약사발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런 비장한 각오로 오늘 새벽 백담사로부터 눈덮인 길을 달려와 지금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제5공화국에 대한 책임은 일체 저에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건의한 정책이건,어느 부처에서 집행한 조치이건,대통령책임제 하에서는 당연히 대통령의 책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문제에 매달려 있는 동안에도 세계는 쉼없이 변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희생과 노력끝에 「승천하는 용」이라는 찬사를 받던 우리경제가 지금은 비틀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부녀자들이 마음 놓고 길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치안상태도 어렵다고 듣고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직면해 있는 이처럼 어려운 일들은 국민 모두가 뜻과 힘을 합쳐야만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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