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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컬럼비아대 조지 럽 총장 졸업식사

    ◎“미 공공부채 지난 15년새 5배나 증가/서로 책임전가 말고 미래투자 힘쓰자” 미국 콜럼비아대학의 조지 럽 총장은 17일 졸업식에서 『우리는 기성세대와 젊은층 사이의 책임전가와 불균형이 확산되는 가운데 현재의 소비를 위해 미래를 위한 투자를 저당잡히고 있습니다.그러나 훌륭한 교육을 받은 여러분은 그러한 정형의 틀을 깨는 도전을 해야만합니다』라고 강조했다.다음은 그의 졸업식사 내용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여러분을 축하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응집된 힘과 능력과 상상력이 우리 모두를 돕게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여러분의 앞세대인 우리가 많은 문제들을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으로 이끌어왔기 때문에 더욱 여러분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만들어온 혼란들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문제들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그것은 우리가 직면해 있는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간과되고 있는 것으로 뉴스로도 많이 다뤄진 국가의부채 규모에 관한 것입니다.이 문제들은 추상적이고 개인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인식돼왔지만 사실은 개인으로서든 국민으로서든 우리 생활의 모든 문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1인당 부채 1만5천달러 오늘 대학을 졸업하는 여러분들이 국민학교에 다닐때 미국의 부채는 1조달러에 미치지 못했습니다.19 80년부터 88년까지 단지 8년동안 그 액수는 3배이상 증가했습니다.그후 부채 증가율을 낮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현재 80년의 5배가 넘었고 계속 증가되고 있습니다. 이 놀랄만한 수치를 미국민 1인당 부담액 증가로 바꾸어 말한다면 1980년부터 15년 동안 미국의 부채는 남녀노소 할것없이 1인당 1만5천달러가 증가했습니다. 이같은 지속적인 공공 부채의 축적은 현재의 아주 미미한 저축률로는 감당해낼 수가 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좋은 것입니다.문제는 그 해결을 위한 우리의 접근방법이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방어가 어려운 두가지 책임전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첫째는현재 예산 불균형의 책임을 우리들 가운데 갖지못한 사람들에게로 돌리는 것입니다.그럼으로해서 그들에게 가진 사람들의 사치에 대한 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의 책임전가는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의 방종에 대한 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것입니다.이같은 책임전가를 위하여 현재 사회보장제도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명백한 지표를 제공해줍니다.오늘날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부담자들이 내는 액수보다 훨씬 많이 받고 있습니다.그러나 많은 정치지도자들은 학비 지원이나 점심 보조등 젊은 사람들에 대한 지원만 삭감토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부유층으로부터 빈곤층에의 책임전가,기성세대로부터 젊은층에의 책임전가등 두가지 책임전가는 우리의 국경을 넘어 또 세대를 넘어 확산되고 있습니다. ○부자는 빈자에게 책임넘겨 기성세대와 젊은층 사이의 불균형도 미래 세대로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미래세대에 대한 이익배당으로 남겨지게될 교육과 연구에의 투자 대신에 우리는 후세 세대가 갚게될 빚들만 쌓아놓고 있습니다.미래의 시민사회를 지탱해나가기 위해 낙후된 공공서비스 기반시설을 재구축하는 대신에 우리는 현재의 예산균형을 위한 단기적 획득에 급급해 자산을 팔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현재의 소비를 위해 체계적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를 저당잡히고 있는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이같은 중앙의 공공정책을 형성하고 있는 정형의 틀을 깨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직면한 도전입니다. ○공공정책의 잘못된 틀 깨야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그같은 도전에 잘 맞서 싸울수 있도록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직접 처한 문제들보다 더 큰 장을 여러분 스스로 볼수있도록 교육받았다는 사실입니다.보다 장기적으로 또 보다 깊숙이 볼수 있는 능력은 현재와 미래의 요구 사이에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가시적이고 표면적인 것들을 뛰어넘어 볼수있는 귀중한 능력을 학교생활을 통해 얻었기를 희망하고 기대하는 바입니다.여러분들은 또 오늘과 내일의 요구들을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특화된 전문적 능력을 계발해왔습니다. 나는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 끝맺고자 합니다.여러분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혼란을 청결케 하는것을 도울수 있습니다.여러분은 힘과 능력과 상상력을 갖고 있습니다.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능도 갖고 있습니다.그래서 나는 또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여러분의 뛰어난 재능과 여러분이 받은 훌륭한 교육을 우리들 가운데 갖지못한 사람들의 지원을 위한 도전에 활용해주십시오.동시에 미래를 위한 책임있는 보살핌과 함께 현재의 즐거움을 조화시키는데 활용해주십시오.
  • 여성 12명 입각 “사상최다”/불 새내각 어떻게 짜여졌나

    ◎평균연령 48세로 젊어져… 계파안배 흔적/고용창출·사회복지·유럽통합 추진에 비중 프랑스 시라크의 새 내각은 무엇보다 젊고 혁신적이다.그리고 프랑스의 미래를 고용창출,사회복지,유럽통합등에 내걸었음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새 각료들은 대부분 정치적 무명인사들로 평균연령이 48세다.이는 지난 내각에 비하면 4년이 젊어진 셈이다.이 가운데 최연소는 정부대변인에 임명된 기자출신 프랑소와 바롤린으로 29세.이와 함께 42명 각료명단에서 눈에 두드러지는 현상은 여성이 29%인 12명이나 된다는 점이다.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여성이 등용된 것이다. 또 이번에 새로 마련된 장관직에서 시라크가 중시하는 정책을 알 수 있다.「세대간의 연대」「어려운 이웃들」「통합과 빈곤에 대항」등 이름도 긴 이 세 장관직을 신설한 것은 가족문제,실업자,집없는 사람,빈민,북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등 프랑스에 내재된 사회문제들을 책임지고 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시라크는 이번 내각을 짜면서 정치적 균형을 크게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절반에 가까운 20명은 그의 공화국연합(RPR)에서,나머지 대부분은 중도우파 정당들에서 기용했다.그러나 전총리 발라뒤르 지지자가운데는 5명만 임명됐으며 주로 한직이다. 각료가운데 에르베 드 샤레트 외무장관(56)은 유럽통합론자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유럽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알랭 마들랭 경제·재무장관(49)은 시라크대통령 지지로 일관한 시장경제 신봉자며 프랑스민주동맹(UDF)부의장을 지냈다.그가 내세운 선결과제는 「재정적자와의 투쟁」과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효율적인 대책수립」이다.가장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는 가이 드러트 청소년 체육장관(44).드러트는 지난 76년 올림픽에서 1백10m 허들부문 금메달 수상자다. 시라크의 둘째딸 클로드(32)도 엘리제궁의 공보특보로 취임할 것으로 전해져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클로드는 시라크당선의 일등공신.시라크가 여론조사에서 에두아르 발라뒤르 전총리에게 크게 뒤지고 있던 당시 공개적으로 발라뒤르에게 비판을 퍼부었으며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여론의 향방을 파악해 시라크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았다.프랑스언론은 『클로드는 아버지가 어려웠던 순간에 그를 편안하게 해주면서 단안을 내릴 수 있도록 했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 소득 1만불시대의 신과소비(최택만 경제평론)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소득이 올해말 1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국민소득 1만달러를 경제발전단계에 비쳐보면 성장기와 성숙기의 분기점에 해당된다.경제성장을 투자보다는 소비가 주도하는 경제로 이행되는 단계이다.이른바 「소비주도형경제」가 되면 현재는 불로소득계층과 고소득층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는 과소비가 중산층이하로 확대된다.또 대형 내구소비재를 선호하고 사치품과 일반상품의 개념이 불분명해지며 국산품과 외국산 제품 구별이 희박해 진다.한마디로 과소비가 일반화된다. 그런 현상은 지난 1·4분기 경제동향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대형자동차 출고는 92.3%나 증가한 반면에 소형차는 오히려 16.4%가 감소했다.귀금속과 보석류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배가 증가 했다.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는 외국산 대형 전자제품이 2대 팔려나가면 국산제품은 한대 팔린다고 한다.이 백화점은 가전제품매장 전시품의 70%가 외제이다. 불로소득계층과 고소득층은 외국산 대형 내구소비재를 들여다 놓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주택개조에도열을 올리고 있다.50평형이상 중대형 아파트 내부를 외국산 자재로 꾸미고 가구도 외제만 들여다놓고 있다는 것이다.여기에다 옷치장과 귀금속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들린다.강남 의류상품가에는 값비싼 외국옷들이 즐비하다.손수건 한장에 7만원,스타킹한개에 14만원,잠옷 한벌에 1백50만원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입는 사치」는 어린이에 까지 확대되고 있다.현재 국내에는 이시코시(일본),베베(미국),베네통(이탈리아),오조나(프랑스)등 세계각국의 유명상표 아동복이 속속 수입되고 있다.외산제품은 순모 원피스가 한벌에 15만∼17만원으로 국산보다 4∼5배가 비싼데도 인기가 대단하다. 이같은 신과소비를 조장하고 있는 고소득층과 불로소득계층은 『내돈을 내가 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그러나 그 말에는 두가지의 기본적인 모순이 함유되어 있다.이들의 과소비는 저소득층에게 상대적인 빈곤감을 높여준다.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적 가치를 경시하는 대신 배금주의나 물질주의를 확산시킨다.낭비는 그들 2세의 정신적 가치나 심성까지 황폐화시키고 있다. 또 하나 고소득층의 과소비는 중산층으로 확산되고 심한 경우는 저소득층에 까지 충동적인 구매를 이식시킨다.신 과소비는 무역수지 적자 확대 등 전체 국민경제에도 위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우리가 고소득층 또는 불로소득계층의 낭비적인 과소비를 경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앞둔 우리는 낭비와 과소비를 제거하는 동시에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가 중시되는 진정한 소비문화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새로운 소비문화를 건설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솔선하여 과소비를 극력 억제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고소득층은 스스로 성찰을 통해 소비욕구를 자제하거나 당분간 유보하기를 제의하고 싶다. 신과소비를 억제하는 데 가장 문제가 되는 계층은 다름아닌 불로소득계층이다.이들의 경우 자력에 의해 소비를 줄일 수 없을 정도로 생활자세가 빗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더구나 이들 불로소득 계층 자녀들의 낭비적인 소비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측은 한 생각이 든다.이들은 자동차가 없으면한발짝도 못가는 것으로 알고 유명상표가 붙은 옷이 아니면 입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이들 2세는 「절약」이라는 단어를 모른다.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불로소득계층의 부모들은 그들 2세를 위해서 과소비의 위해를 심도 있게 반성하고 지금부터 자제하는 생활로 돌아가기를 당부한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과소비와 낭비의 습성을 버리지 않는 다면 타력(세무조사·추계과세)에 의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일부 불로소득계층이 뿌리고 있는 물질만능의 천민자본주의적 작태를 2세들에 까지 물려 주어서는 안된다. 정책당국도 1만달러시대의 소비생활을 건전하게 이끄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지금까지 소비억제 차원이 아닌 저축증대와 신과소비억제를 조화시킨 정책의 발굴이 있어야 하겠다.
  • IPI 서울총회/김 대통령 연설

    ◎새로운 국제정보질서 구축 모두의 과제/「더불어 잘사는 지구공동체」의 중추되길 국제언론인협회가 창설된 이래 지난 44년동안 지구상에는 거대한 변화가 있었습니다.전후 세계를 지배하던 동서냉전의 완강한 장벽은 마침내 무너졌습니다.자유와 민주 그리고 인간존엄이 인류보편의 가치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시대가 왔습니다. 나는 언론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이같은 역사의 진보가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나는 국제언론인협회를 중심으로 한 세계언론이 지난 40여년의 세계사에 남긴 지대한 공헌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에서도 언론은 역사발전을 앞서 이끌어 왔습니다.우리는 식민통치와 빈곤,분단과 전쟁,그리고 독재라는 최악의 조건속에서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어 냈습니다.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바로 그 기적의 뒤에는 언론이 있었습니다. 특히 민주화를 이룰때까지 권위주의의 탄압과 고난을 견디어 낸 한국언론의 크나큰 활약이 있었습니다.40여년에 걸친 나의 민주화투쟁에서 한국언론은 언제나 나의 동지이며 후원자였습니다.나자신 언론자유의 쟁취를 민주화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왔습니다.그것은 자유언론이야 말로 민주화의 기초라는 나의 신념에 바탕한 것이었습니다. 83년5월 가택연금중 민주화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들어가면서 나는 「언론자유」를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이 23일에 걸친 단식투쟁은 범국민적인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민주화운동에는 세계 언론의 많은 지지와 성원이 있었습니다.특히 국제언론인협회는 여러차례 한국의 언론탄압을 규탄하고 언론자유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나는 여러분의 지원에 대해 남다른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국민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국제언론인협회 총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극명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서울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라는 국제언론인협회의 이상이 승리를 거둔 현장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세계에는 이미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정보화와세계화의 물결이 「문명사적인 변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언론은 인류 운명에 대하여 중요한 매체가 아니라 결정적 매체가 된 것입니다. 정보화와 세계화의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여 언론이 먼저 세계화되어야 합니다.무엇보다 국가간,지역간 균형있는 정보유통과 공정한 뉴스선정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새로운 국제정보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입니다.그리하여 국제언론인협회가 국가와 지역,민족과 문화를 뛰어넘어 「더불어 잘 사는 지구공동체」를 구현하는 중추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합니다. 한국 역시 문호를 더욱 활짝 열어 세계와 교류하고 협력하기 위한 「세계화정책」을 적극 펴 나가고 있습니다.세계로,미래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에 더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꿈은 아직 휴전선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지상의 마지막 냉전지역인 한반도에는 역사상 유례없는 「정보의 단절」이 반세기나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북간에 흩어진 수백만명의 이산가족들은 서로 생사조차 알지 못하며 편지 한장,전화 한통 주고 받을 수 없습니다.북한 주민은 외부세계와의 차단 속에서 인권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통제와 억압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북한주민의 인권문제는 국제언론인협회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분단을 강요당한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은 역사의 순리입니다.그렇다고 우리가 급격하고도 일방적인 통합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반세기에 이르는 분단사에 비추어 남과 북은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 상호 조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통일을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 체제의 안정과 질서있는 변화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그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북한이 당장 필요로 하는 곡물을 비롯한 원료와 물자를 장기저리로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거듭 밝힙니다. 우리는 남과 북이 함께 번영하는 한민족공동발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한국정부가 북한 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북경제협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뜻에서 입니다.나는 남북한이 서로 협조하여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습니다.그날은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성큼 앞당기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기여하기 시작하는 새 출발의 날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을 찾아왔습니다.오늘의 시점은 세계사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광복 반세기를 맞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도 뜻깊은 전환기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토대위에서 세계화를 추구하는 문민정부의 이상이 바야흐로 열매맺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서울은 여전히 지난 시대의 마지막 긴장이 살아있는 현장이면서 21세기의 세계를 앞서 이끌 동아시아의 중심입니다.바로 이러한 때에 바로 이곳에서 세계 언론의 진로를 논의하고 한반도의 장래를 위해 함께 고뇌하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소득 1만$시대의 사회복지(사설)

    정부는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에 걸맞는 사회복지시책을 추진키로 하고 대책마련에 착수했다.김 대통령은 지난 12일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성장위주의 발전과정에서 소외되어온 이웃에게 정부와 전국민이 따뜻한 관심을 보여야 할 때』라고 전제하고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걸맞는 복지정책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정책당국은 저소득층과 노인복지문제 등에 중점을 두고 사회복지대책을 마련할 것이다.새 복지시책 추진은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기록하고 내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앞두고 있어 시의에도 부합한다.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면 국민들의 복지요구가 분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부가 마련할 사회복지시책은 먼저 영세민·심신장애자·무의탁 노령 계층에 대해서는 정부가 재정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본틀이 꾸며져야 할 것이다.또 지역사회와 민간단체가 심신장애자와 무의탁 노령자를 돕도록 유도하고자원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영세민의 경우는 자활과 자립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이와 병행해서 자녀에 대한 장학제도와 취업기회를 확대,빈곤의 세습화를 막는 일이 중요하다.노인계층의 복지증진은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그 하나는 노령계층의 축적된 경험이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활동기회를 확대하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노인부양의 방안이다.활동기회를 넓혀주기 위해서는 정년연장제가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기업들이 승진과 급여인상에 자율적 제한을 두는 선택적 정년제를 새로 도입,노령계층의 조기퇴직현상을 억제토록 유도하는 것이 소망스럽다. 노인부양문제는 부양가족에 대한 세제혜택(소득세와 상속세감면)을 대폭 확대하는 등 유인책을 강화하여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경로효친 사상에 바탕을 둔 가족중심의 한국형 노인복지체제를 정착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중,「등개혁」 전면 재평가/두곳서 반강택민씨 군파벌 회의설

    ◎시장경제로 소득격차 유발/전통규범 붕괴… 정신적 빈곤/신화통신 【홍콩 연합】 중국 정국이 미묘한 변화를 보이는 가운데 관영 신화통신이 8일 최고지도자 등소평을 간접적으로 비판해 그에 대한 「전면적 재평가의 일환」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9일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8일 『등소평이 제의한 시장경제가 비록 중국 인민의 지지를 획득했다고 하지만 도덕적 기준들의 붕괴에 대해 더욱 많은 불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이 통신은 중국의 사회변천 과정에서 서방이 직면한 『사회규범들의 실종,도덕의 소멸,전통적 가치기준들의 해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정신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 공자의 유교를 부활시키자고 촉구했다. 정통 이데올로기주의자들이 등이 추진해온 시장경제 개혁의 부수적 결과들을 비방한 일은 있었으나 신화통신이 개혁의 부정적 측면들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극히 이례적이라고 포스트지는 지적했다.
  • “식량난 덜고 외화부족 해결하자”/어획고 증대에 안간힘

    ◎수산법 제정… 어부절 맞아 생산력 강화 결의/유류난에 장비 낙후… 출어율 30%선/수산물 생산 매년 급감… 93년 109만t 북한당국이 최근 수산업 생산력 강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의 선전매체들도 최근 자주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3월22일 「어부절」을 맞아 북한의 수산관계자들과 어부들이 『김정일 영도아래 「주체적인 수산업」을 발전시켜 나갈 것을 결의했다』는 보도가 대표적 사례이다. 북측이 최근 수산분야 자원보호를 비롯한 제반산업을 규정하는 수산법을 제정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일 것이다. 이처럼 북측이 수산업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당면한 식량난과 외화부족을 다소나마 완화하기 위한 고육책임은 물론이다. 사실 북한은 수산업에 유리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고 있다.한난류가 교차하는 동해어장에는 명태·청어등 6백여종에 달하는 각종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부유생물이 풍부해 산란장소로 적합하다는 서해 어장에도 조기·민어등 2백50여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최근 어획고는보잘 것 없는 형편이다.이는 산란기 어류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연근해 정착성 어자원이 감소하고 있는 데다 어로장비와 기술이 열악한데 일차적으로 기인한다. 북한은 그동안 군사력 확충에만 심혈을 기울여 오느라 어선 건조실적이 극히 빈약한데다 질적 측면에서도 극히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무동력선을 포함해 전체 보유어선 수가 총4만척에 불과한데다 그나마 15∼20마력급 소형어선이 태반이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극심한 유류난으로 출어일수가 줄어든게 수산업 생산량 감퇴의 주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90년대 들어 출어율이 30%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때문에 북한의 최근 수산물 생산량이 90년 1백45t,91년 1백20만t,92년 1백14만t,93년 1백9만t으로 매년 급감하고 있다는 추정이다. 또 북한당국이 최근 수산업분야의 생산증대를 독려하고 있는 것은 이윤동기가 없는 국영수산으로 어부들의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있는데 따른 자구책의 성격도 강하다. 그러나 외화부족과 유류난이라는 빈곤의 악순환에따른 낮은 출어율이 쉽게 해결될 전망이 없다는 점에서 이같은 노력동원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북한당국도 최근 이점을 의식한듯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하고 있다.이를테면 대일본 수출전략상품인 김 다시마 따위 이외에 게 고둥 등 정착성 어패류의 양식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 외국은·증권사/국내지점 설치 자유화/사무소 전치주의 폐지/오늘부터

    ◎경제적 수요심사도 없애기로/홍 부총리,ADB총회서 밝혀 5일부터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원하는 외국의 은행 및 증권사는 사무소 형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지점을 세울 수 있다.지금까지는 외국계 은행 및 증권사가 국내에 진출하려면 먼저 사무소 형태로 운영한 뒤 2년이 지나야 지점으로 승격시켜 주는 사무소 전치주의를 채택해 왔다. 홍재형 경제부총리는 4일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열리고 있는 제 28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은 금융 및 투자 분야의 세계화를 위해 외국인 투자개방 계획을 당초 계획보다 빠른 속도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그는 또 외국의 증권사가 국내에 사무소 또는 지점을 설치할 때 했던 경제적 수요심사(ENT)도 없앰으로써 진입을 자유롭게 했다고 말했다. 경제적 수요심사는 외국의 증권사가 국내에 진출할 때 사무소 또는 지점의 설치를 허가하기 전 국내 증권회사 및 증권시장의 상황(숫자) 등을 심사한 뒤 판단하는 것으로,외국으로부터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한편 홍 부총리는 ADB의 정책 방향과 관련,역내의 빈곤퇴치와 자연자원 및 환경의 보전을 위해 ADB가 지금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등 사후의 중국­3가지 시나리오/예브게니 바자노프(해외기고)

    ◎ⓛ현지도부 건재… 시장화정책을 계속/②지역·민족 분열… 전국서 소요 잇달아/③러시아처럼 개혁 부진… 경제력 쇠퇴 중국문제 권위자인 예브게니 바자노프 러시아 외무부산하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은 4일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등소평사후 중국의 앞날에 대해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했다.첫째는 현지도부가 상황을 확고히 통제하며 시장화정책을 착실히 수행하는 것이고,둘째는 일대혼란이 일어나 전국이 정치·지리·민족별로 갈가리 찢겨져 소위 천하대란이 일어나는 일이며,마지막으로는 지금의 러시아같이 개혁이 지지부진하며 점차 국력이 쇠퇴해지는 것이다.그중 세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중·러 양국은 미·일등 서방세력에 맞서기 위해 이미 외교·군사적으로 공동전선을 펴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한반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다음은 기고문 내용. 수십년간 실질적으로 룽국을 지배했고 중국의 성공적인 개혁을 설계해온 등소평의 여생이 얼마남지않은 것 같다.그가 죽은 뒤 중국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나는 그의 죽음이 중국과 전세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3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하고자 한다. ▷첫째 시나리오◁ 큰 정치적 변혁을 겪지 않고 지금의 개혁정치가 계속되는 것이다. 현재의 지도부는 이미 상당기간 권력을 장악해왔고 단합돼 있다.이들은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국가를 안정되고 효율적으로 이끌 능력이 있다.이들은 시장경제개혁을 수행하면서 이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상충되지 않게 잘 이끌어왔다. 경제는 점차 늘어나는 외국자본의 진출에 힘입어 성장을 계속할 것이다.비효율적인 국가기업들은 나름대로 실업을 줄이고 사회불안을 줄이는 데 일조하고 다른 사회적불안요인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통제될 것이다. 외교분야에서 중국은 보다 적극적이고 자기주장을 더 하게 될 것이다.경제·안보적인 고려,그리고 대국야망이 합쳐져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주도적 위치를 요구하려 할 것이다.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화된 러시아에게는 국경분쟁에서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이고 러시아극동지역과 시베리아지역엘 중국인 이민을 점점 더 많이 진출시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강대화된 중국은 일본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이 지역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키우는 것을 견제할 것이다.장기적으로는 아·태시장을 놓고 일본과 경쟁을 벌이려할 것이다.미국 역시 중국으로부터 압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이는 쌍무문제에서 뿐 아니라 남사군도문제,대만문제,태평양의 해군문제등 여러 문제를 놓고 중국은 미국과 대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북한은 더 이상 시장화되고 실용화된 중국과 이념적 동지가 될수 없다.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공산정권이 하루아침에 붕괴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으려 할 것이다.국경지대의 불안정을 원치 않고 또한 북한정권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중국은 남한에 대해서도 경제적 이득,정치적 영향력행사를 위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이를 위해 중국은 주한미군의 조기철수를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 강력한 새 국가의 출현을 원치 않기 때문에 한반도의 조기통일실현은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둘째 시나리오◁ 등소평사후 개혁이 중단되고 일대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지도부는 지역·파벌에 따라 갈가리 나누어진다.공산당계급은 신흥자본주의계층과 충돌한다.중원의 국경지대에서는 민족분쟁이 터져나와 안정이 흔들리고 전사회적으로 빈곤계층의 소요가 잇따른다.비효율적인 산업,경작지의 부족,원자재 부족등으로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든다.한마디로 금세기 20∼40년대의 상황이 되풀이 된다. 이 와중에 일부세력이 나타나 러시아에게 개입을 요청한다.또 어떤 세력은 미국의 개입을 요청한다.여기에 덧붙여 일본까지 갖가지 구실을 붙여 개입명분을 찾을 것이다.결국 미·러 중 한 세력이 우세를 차지해 중국은 한동안 이 두 나라중 한쪽의 동맹국이 될것이다.미·러는 중국에서의 대립으로 인해 관계가 악화돼 과거의 적대관계로 되돌아간다.다만 일본의 세력확대를 의식해 직접충돌은 피한다. 한반도에서 중국은 남북한에서 영향력을 상실한다.북한에서는 그 빈자리를 러시아가 채운다.남한은 안보·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미·일에 더 긴밀히 접근하게 된다. ▷셋째 시나리오◁ 단기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군사·경제적으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약세로 빠져든다.반면 미·일은 양면에서 모두 발전을 계속한다.이런 추세는 미·러의 불협화,미·중의 불협화와 맞물려 중·러의 접근을 불러온다.미·러는 유럽정책,옛소연방에 대한 미국정책을 둘러싸고 불화를 빚고 미·중은 인권문제·무역마찰로 관계가 악화된다.이는 실제로 최근 수년간 계속돼온 현상이다.러시아는 자신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서방과의 관계에서 입지회복을 위해 중국에 무기를 공급하고 중국의 대내외정책을 기꺼이 지지하고 있다.중국민의 시베리아·극동 이주를 허용하고 있고 국경·군사문제에서도 양보를 계속해 왔다. 중국 역시 러시아에 대해 유화정책을 계속했다.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외무장관은 현재 러·중관계를 사상최고수준으로 평가하며 이를 자기의 최대업적으로 자랑한다.러·중은 자신들이 미·일에 비해 낙후돼 있다고 느끼는 한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중·러는 유사한 정책을 펴며 협력할 것이다.두 나라는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북한의 대서방 대결정책을 부추길 것이다.러·중은 북한이 외세의 개입 없이 점진적인 개혁을 펴나가는 것을 지지할 것이다.그러는 한편 남한과도 관계개선을 하도록 주문할 것이다.물론 남한에 대해서도 북한에게 유화정책을 펼 것을 권한다.두 나라는 남한과는 경제·정치·군사면에서 협력증진을 계속 원할 것이다.한반도,나아가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주도권행사를 막기위해 두 나라는 남북한이 통일돼 강력한 국가로 탄생하는 것을 지지한다.일보믿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남북한의 통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ADB 총재/“아주에 엔고 악영향” 경고

    ◎환경악화·빈곤타개 촉구/아시아개발은 총회연설/“저축률 제고 시급” 【오클랜드(뉴질랜드) AP AFP 연합】 사토 미쓰오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는 3일 빈곤과 그로 인한 여성 및 어린이의 고통,그리고 환경문제가 개발도상에 있는 아·태지역 국가들에 대한 최대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사토총재는 이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열린 ADB 중앙은행총재 연차총회에 참석,개막연설을 통해 『빈곤의 퇴치가 경제개발의 중심 개념』이라면서 『빈곤은 여성의 지위저하,높은 인구증가율,환경악화와 같은 관심사와 상당히 밀접하게 연관돼있다』고 지적했다. 사토총재는 빈곤과 시장의 실패간에 나타나는 연관관계가 가난한 농촌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곳에서는 어린이를 노동이나 장래 수입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밖에도 멕시코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아시아국가들이 저축률을 높이고 건전한 거시경제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엔고현상이 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도 경고했다.
  • 흑인문화 중짐지 할렘가(브로드웨이 “새바람”:14)

    ◎「블랙르네상스」 부활의 꿈 가꾼다/“범죄·마약·빈곤의 거리” 오명씻기 안간힘/중심가에 22층 국제무역센터 건립도 추진/시인 앤젤루·영화감독 울프 등 고무적 예술활동 『……/밤이 깊어지면 그는 낮은 톤으로 노래하고/별빛이 사라지고 달빛만 남게되면/가수는 노래를 멈추고 잠자리로 가네/그가 낮게 부른 고난의 블루스만이 메아리 되어 귓가를 스치고/그는 바위처럼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지네//』(랭스턴 휴스,「고난의 블루스」 The Weary Blues 중에서) 1920년대 미국 블랙르네상스의 기수로 당대 미국의 최고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랭스턴 휴스는 할렘흑인들의 힘들고 고난에 가득찬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그러나 당시의 할렘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일어섰으며 할렘을 흑인문화의 중심지이자 흑인인권운동의 중심지로 아프리카나 카리브해에서 이주해온 흑인들의 자랑스런 고향으로 만들었다.그래서 할렘은 한때 「세계 흑인수도」라고까지 불릴 정도였다. ○한때 「세계 흑인 수도」로 블랙내셔널리즘의 대부인 마르쿠스 가베이가 1916년 국제흑인진흥회를 만들어 백인과의 투쟁을 선언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운동」(Backto Africa Movement)을 벌여 노예상태의 흑인들에게 자각의식을 불어넣었던 곳이 바로 할렘이다.오늘날 이곳에는 마르쿠스 가베이 파크가 있어 그를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할렘은 범죄·마약·빈곤 등 불안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다.온통 낙서투성이의 거리,퇴락한 빌딩군,지저분한 쓰레기 더미,이곳저곳에 널려있는 홈리스(집없는 걸인)등 같은 맨해튼 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20∼30블록 남쪽의 거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할렘은 지리적으로 센트럴파크의 북쪽끝인 110스트리트로부터 북쪽으로 155스트리트까지를 일컫는다.그 가운데 컬럼비아대학과 세인트 존 디바인성당등이 있는 모닝하이츠라고 부르는 허드슨강변의 언덕지역은 제외된다.또한 피프스(5th)애브뉴를 사이에 두고 동쪽은 히스패닉이 모여살아 이스트할렘 혹은 스패니시할렘이라 부르고,블랙이 모여 사는 서쪽은 웨스트할렘과 센트럴할렘으로 구분된다.브로드웨이는 웨스트할렘을 종주한다.따라서 할렘은 브로드웨이의 또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블랙르네상스의 부활」.이는 21세기를 눈앞에 둔 「할렘」사람들의 최대의 희망이다.할렘을 절망의 땅에서 건져올려 희망의 땅으로 만들려는 할렘사람들의 노력은 생존의 몸부림만큼 절박하게 와닿고 있다.이를 위해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의 노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블랙문화의 정통성을 찾고 그를 보존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그 첫번째 노력은 할렘을 동서로 가르지르는 중심가인 마틴 루터 킹 블루바드(125스트리트)를 무역의 거리로 만들자는 계획이다.이를 위해 그 한복판에 22층 높이,40만 평방피트(1만1천평) 규모의 국제무역센터를 건축한다는 것이다. 뉴욕 & 뉴저지항만청이 올봄 주정부 도시개발공사의 승인을 받아 총8천3백만달러의 예산으로 98년 완공을 목표로 착공할 할렘국제무역센터 내에는 1백개 룸의 호텔과 7백50명 수용의 회의장,전시장,기타 오피스룸등이 최고급 시설로 들어서게 된다.종합유통업체들의 진출도 활발해질 전망이다.할렘국제무역센터 건립추진위의 퍼시 서튼 위원장은 『21세기의 할렘은 희망의 땅으로 이곳 주민 뿐 아니라 미국내 모든 흑인들에게 꿈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있다. ○「블랙문화」 보존 움직임 할렘의 문화적 정통성을 찾기 위한 노력도 아직 크지는 않지만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마틴 루터 킹 블루바드에 위치한 할렘의 대표적 극장인 아폴로극장은 할렘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1914년 백인전용의 오페라하우스로 개관했던 이 극장은 1934년 소유주가 바뀌면서 모든 인종에게 개방됐고 할렘에 흑인들의 이주와 함께 점차 흑인전용극장으로 바뀌게 됐다. 아폴로극장이 매주 수요일 개최하는 「아마추어의 밤」은 어느 최고 극단의 공연보다도 재미 있다.아마추어들이 저마다 특색있는 몸차림을 하고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박수에 따라 평가받는 이 쇼는 수요일밤의 열기로 그득하다.재즈의 원형으로 흑인 전통 대중가곡 형태인 블루스를 비롯,재즈·스윙뮤직·랩·힙합등 온갖 형태의 노래와 춤들이 어우러지는 한마당은 할렘이 생생하게 숨쉬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또한 최근 흑인예술인들의 두드러진 활동도 큰 고무가 되고 있다.93년의 경우 클린턴대통령 취임식에 시인 마야 앤젤루가 축시낭송을 위해 초청된 것을 비롯,영화감독 조지 울프는 토니상을 받았다.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넬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작가가 됐으며 유세프 코무니아카는 시부문 퓰리쳐상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흑인들의 독특한 창조력은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해주기에 충분하다.할렘의 이같은 회복 분위기에 따른 사회안정를 반영하듯 할렘의 범죄율은 최근 3년간 두드러지게 감소했다.지난해의 경우 할렘에서 살해된 사람은 3백50명으로 93년보다 20% 감소를 보였으며 90년의 6백50명 보다는 31%의 감소율을 나타냈다. ○범죄율 크게 줄어들어 한편 할렘의 서쪽을 달리는 브로드웨이는 114스트리트에서 아이비리그의 일원으로 미국 최고의 명문대에 속하는 컬럼비아대학을 만난다.이 대학은 120스트리트까지 계속되며 각 단과대학들이 인근 빌딩에 들어서 있어 넓은 대학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유서 깊은 교회들도 많다.허드슨강을내려다보고 있는 리버사이드처치(122스트리트)는 1930년 설립된 21층의 고딕양식 교회로 2만2천개의 파이프로 이뤄진 세계최대의 파이프오르간으로 유명하다.컬럼비아대학 남동쪽에 위치한 세인트 존 디바인 성당은 1892년 건축을 시작하여 1백년 넘게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 르완다비극의 배경은 식민통치(해외사설)

    르완다도 지금처럼 비극적으로 살지 않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후투족과 투치족은 지난 30년간 부족간의 반목과 외세의 인위적인 조종 결과로 추잡스런 난민 수용소등에서 서로 죽이는 「인종청소」의 대학살을 반복해 왔지만 그 전에는 목가적이진 않더라도 마을단위로 행복하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그것은 아마도 한세기 이전의 시대로 독일인들이 이곳에 상륙하기 이전의 일이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1897년부터 1919년까지는 독일의 동부아프리카 식민지의 일부였고 1차대전이후는 벨기에에 이양됐으며 그후 국제연맹을 거쳐 국제연합의 신탁통치를 받아왔다.중요한 것은 금세기 초부터 어떤 세력이 이곳을 통치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문제는 유럽의 국가들이 이곳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귀족정치를 해왔다는 사실이다.즉 소수 인종인 투치족을 두드러지게 선호한 반면 다수족인 후투족은 피지배계급으로 삼았던 것이다. 벨기에가 르완다에 준 것이라고는 소수 투치족을 특권지배계급으로 하고 다수 후투족은 못배우고 빈곤한 상태로 내버려둔인종차별의 가혹한 계급체계라는 카드뿐이었다.이같은 체계는 한쪽이 다른 쪽을 살해하는데 쓰인다.한세기가 넘는 동안 지속된 식민지 착취와 무관심은 오늘날 르완다가 겪는 참담한 상황을 낳은 원인이 됐다. 르완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못할 짓을 해왔다.후투족은 수백·수천명이 소수 투치족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격을 가하고 돌을 던져왔다.한 후투인은 한번에 9백여명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또 수백명의 후투인들도 투치족이 휘두른 총·칼에 죽었다.이같은 유혈분쟁의 기저에는 외세가 오랜 동안 통치해온데서 기인한 두인종간의 경쟁심이 놓여있다. 지금 르완다는 아제르바이잔이나 보스니아·남부수단·터키와 쿠르드족등의 상태와 같이 돼가고 있다.서방세계는 이들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있으며 화해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놓고 양손을 부여잡고 해결책을 짜내고 있다.그러나 사람들은 『그곳에서 비극이 벌어질 때 유엔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 러 「승전 50년」 행사 법석/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코너)

    모스크바시민들은 지난 29일부터 무려 열흘이 넘는 장기 연휴에 들어갔다.공식휴일은 메이데이휴일인 5월1일,2일과 2차대전 「승전 50주년 기념일」인 5월8일,9일이지만 중간에 끼인 날까지 계속 노는 직장이 태반이어서 그야말로 황금연휴에 젖어든 모습들이다. 연초부터 박차를 가해온 승리의 날 행사준비는 막바지 손질이 한창이다.주요 행사장소는 붉은 광장과 크렘린 옆 마네슈광장,그리고 승리박물관이 새로 들어선 시외곽의 빠끌라나야 고라광장.붉은광장에선 5월9일 4천5백명의 퇴역군인과 사관생도 2천명이 참가하는 군사퍼레이드가 펼쳐진다.클린턴 미국대통령을 비롯,전세계 50여개국 지도자들은 레닌묘위에 마련된 단상에서 이 퍼레이드를 참관하게 된다. 현역군인들이 펼치는 진짜 퍼레이드는 시외곽의 빠끌라나야광장에서 거행된다.체첸전쟁에 대한 국제여론을 감안,서방지도자들 앞에서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이 퍼레이드에는 장갑차,탱크 2백여대와 전투기 70대,1만명의 병력이 참가한다.지난 17일부터 매일 하오6시면 이들 병력과 장비들이 예행연습을 위해 시내로 이동했다가 자정쯤 부대로 되돌아간다. 이 때문에 퇴근시간에 2∼3시간씩 도로가 차단돼 시민들의 불편을 주어왔으나 대낮에 2백여대의 탱크가 시내로 들어가는 장면은 큰 구경거리임에 틀림없다.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또 쿠데타가 난 게 아니냐며 불안해하기도 한다.연휴기간중에는 시내 도처에서 낮에는 브라스밴드행진이 펼쳐지고 밤에는 폭죽놀이가 계속된다고 한다. 옐친정부가 이번 행사에 기울이는 정성은 대단하다.공식적으로 발표된 행사비용이 자그마치 55억루블(1백10만달러).2천여종의 포스터가 거리에 나붙었고 수만장의 국기가 시내를 장식했다.버스,전차들에도 각가지 문양,포스터가 부착됐다.시공보실이 배포한 자료에는 이번 행사의 목적이 『당시 우리 군의 영웅적 행적을 되새김으로써 국민들의 애국심과 조국방위정신을 드높인다』고 적혀있다.국내 정치적인 효과는 물론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사정을 보면 이런 요란한 행사치레는 아무래도 걸맞지 않은 것같다.체첸공화국에서는전투가 계속중이고 월소득 30달러이하의 빈곤계층이 전체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이다.이런 마당에 채무국 지도자들을 우르르 불러 모아놓고 요란한 잔치를 벌인다는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 조작가 문신(이 세기의 인물탐구:73)

    ◎“미래가 기억해야할 위대한 예술가”/우주를 향한 기운응축… 작품마다 생명력 넘실/푸른창공·지평을 배경할때 절묘한 조화 이뤄/유별난 애향심… 지난해 마산에다 「문신미술관」건립 개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왕이며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말없는 조상들의 세계에 파묻혀 속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이 시대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 문신은 그의 문신미술관과 함께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머물러있다. 마산시 추산동 52번지,합포만이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문신미술관에 들어서면 그가 왜 「프랑스의 영광」으로 불리게 됐는지를 한눈에 당장 알아볼수 있게 된다.10여년전 그곳에 들렀을 때만해도 주변은 황폐한 황무지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산마다 온통 작가의 숨결과 손길이 깃들여 추산동 산기슭은 고매한 명작으로 빛나고 있다. ○추산동 기슭에 정착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흑단이나 브론즈나 스테인리스스틸을 막론하고 형체외의 형체와 색채외의 색채를 구사하면서 우주의 섭리에육박하려는 의지가 강하다.수직으로 치솟은 구조는 자연스러운 시메트리를 성립하고 유성과 같은 순환의 동작은 견고한 타원형을 유지하고 있다.원과 고와 직선과 각의 대칭적 조화는 불협화음까지를 화음으로 이끄는 공간적 음률의 시각화라 할 수 있다.그래선지 그의 작품들은 푸른 창공과 바다를 배경으로한 지평선이나 수평선에 서 있을 때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것 같다. 그의 제작노트에 보면 「인간은 엄연한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고 쓰고 있다.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은 현실의 대지에 닻을 내려 확고부동한 영토를 조성한다.예를 들어 서울 올림픽공원에 세워진 「올림픽 88」은 맴돌듯 창공을 차고 오르는 미지에 대한 희망과 설렘과 꿈의 상징일 것이다. 프랑스의 국제예술평론가인 자크 도판은 「이 예술가가 언제나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위대한 독창성」이라고 지적한바 있다.그의 예술의 독창성과 세련미와 영감에 가득찬 천재성으로 인해 「문신은 미래가 기억해야할 예술가」이며 알렉산더 칼더나헨리무어 자코메디의 작품이 저마다 특성이 다르듯 문신의 작품은 그것이 「문신적인 포름」임을 명확하게 과시하고 있다고 단정한다.일찍이 근원 김용준은 「혜성같이 빛나는 문신의 개인전」이란 글에서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우주를 향해 성장하는 기운을 응축하면서 유기적인 생명을 지속시키는 예술작업에 놀랐다」는 내용이 그것이다.그는 또한 「예술가는 흉중에 고고특절한 품성」을 지녀야하며 세파와 척박한 시속기에 타협하지 않는 「문신은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라고 찬사해 마지않았다.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유행이나 허명에 들뜨지 않아 반듯하게 자신의 행동을 지켜왔고 예술원 같은데서 동료작가들이 그의 영입을 권유할 때도 일별하지 않는채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한다는 신념을 지켰다.오죽하면 소설가 이병주씨는 그의 인생과 예술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 격렬한 인간을 말하다보니 나의 말에 빈곤을 느낀다」고 고백했을 정도다.밤낮을 통해 이미 신비의 세계를 구축해놓은 절세의 예술가를 짧은 지면에 거론하는 것은 여간 민망한 노릇이 아니라는 얘기다. ○불서 석공·목수일도 그는 파란의 굴곡이 심한 운명속에서 유목처럼 흘러버리지 않고 자신의 풍모자체를 예술로 만들어버린 천성의 예술가다.예술가가 아니고선 상상할 수 없는 고집과 정열과 기품이 융합되어 어둠속에서도 광명의 존재를 의심치 않았고 곤경에 처한 경우에도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세워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태어날때부터 순탄치 않았으나 예술을 하기 위해 이미 설정해논 배경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는 당연하게 감수하여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다. 그는 일본 규슈의 탄광에서 일하던 문찬이(56년 작고)씨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때 어머니와 헤어져 외롭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열여섯살 되던 해 혼자서 일본에 밀항,구두닦이 극장 포스터붙이기 산부인과조수 영화사잡일등 안해본 일이 없지만 결단코 궁박에 지치지도 않았다.오히려 자신이 나가야할 방향과 내부에 도사린 무수한 광맥을 예지하고 있었고 심재인 흑단을 발견하면서 줄기차게 창작을 잉태시켰다. ○24세 연하와결혼 그 시절 그가 그린 자화상은 목덜미 부분이 벌겋게 술에 취한 색깔이 나타날 정도였으나 주변에서는 이 초상화를 보고 「자신의 화업에만 열중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풍겨나는 자기선언이며 앞날이 보장된 재능의 표출」로 해석해 주었다. 그는 일본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고 해방과 함께 귀국, 주로 서양화·채화로 작품활동을 하다가 좀더 본격적으로 공부한다는 각오로 61년 도불, 처음 3년간은 고성의 보수 수식작업을 맡아 석공 목수 미장이로 일했고 그의 이런 기간은 곧잘 석공 목수를 거쳐 조각가가 된 로댕에 비유되기도 한다. 70년 프랑스 포르­바카레스 야외미술관의 국제심포지엄에서 13m 높이의 거대한 목조각을 선보인 것을 계기로 그는 유럽 각지의 유수한 조각전에 초대되는등 굳건한 형태적인 조형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마산에 정착한 것은 프랑스에서 영구귀국한 80년부터다.유난히 애향심이 강했던 그는 「고향은 멀리 떠나서 살면 더욱 잊을 수 없는 곳」이며 그를 낳아준 고향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미술관건립을 계획,이거대한 작품이 고향의 번영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57세 되던해 5월, 지금의 부인인 최성숙씨와 결혼,서울대미대출신의 그는 노래하는 이미지의 그림을 그리는 동양화가로 그들은 24세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동반자로 낙을 나누면서 미술관 건립에 힘을 합쳐왔다. 지난해 문신미술관의 화려한 개막행사와 함께 서울에서 「문신예술 50년 회고전」을 열때까지 그는 하루 10시간의 작업을 할만큼 건강체로 보였으나 실은 몇년전부터 위암을 앓아왔고 최근 다리를 다쳐 치료받는 과정에서 병이 더욱 악화되어 식이요법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더구나 혼신을 다한 미술관부근에 경관을 가로 막는 아파트공사로 우울할대로 우울해 있다.그리고 고향을 위해 할 수 있었던 보람찬 결실을 서로가 아끼고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이를 무참하게 훼손시킨 것에 실망감과 상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경남대가 그의 미술관건립과 관련,「향토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마산시민들에게 예술적 토양을 제공하는데 공헌」했다는 이유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주는 자리에 그는 휠체어를 타고나와 좌중을 숙연케 했다. 「흙으로 돌아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며 장엄하게 산화하고자 한다」면서 「나의 전생애가 집약된 미술관을 민족예술의 성지로 가꾸고 싶다」는 내용이 그것이다.물론 훌륭한 예술가가 품은 어떤 상념은 한낱 시류에 휩쓸려 소침해 질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널리 자랑해 마지않는 세계적인 예술가다.따라서 그의 거대한 작품은 이미 「결정된 신전」이며 우주를 향해 예술가가 도달해야할 궁극의 목적은 「청명」일 것이다.또 그의 작품은 진흙속에 있더라도 여전히 단엄하고 간경하며 염려하고 정결하다. 자크 도판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미술관은 「매혹적인 거대한 보석」으로 수목같은 싱그러운 숨결과 시적인 서정의 향기마저 흩뿌린다.「미래가 기억해야할 위대한 작가」인 그는 눈을 감으면 이제 우주가 보이는 경지다.결국 별빛같은 그의 작품들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을 이룬 그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머리위에서 눈부신 광휘로 화려하게 빛나는 존재일 것이다. □연보 ▲1922년 마산출생 ▲1938년 도쿄 일본미술학교 졸업 ▲1945년 귀국 ▲1949년 서울 개인전(동화화랑) ▲1961년 도불,파리 라버넬성 수식작업 ▲1965년 일시귀국,홍익대 교수,재도불전(신세계화랑) ▲1967년 파리정착 ▲1970∼72년 프랑스 포르­바카레스 야외미술관 국제심포지엄서 13m의 토템제작,스위스 발르 국제예술시장전,파리 현대미술관 살롱 드메,파리 크라반화랑 개막전등 살롱전 그룹전참가 ▲1974년 서독 함부르크 개인전(맨슈화랑),이탈리아에서 국제야외조각전 ▲1976년 서울 진화랑 초대전,파리 메트르알베르 화랑 개인전 ▲1979년 파리 오를리슈드 국제공항 예술화랑및 서울 현대화랑초대전 ▲1980년 부산 국제화랑 수도화랑초대전,마산문화회관 작품전 ▲1981년 서울 개인전(미화랑) ▲1983년 서울 개인전(신세계미술관) ▲1985년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86년 서울 개인전(예화랑) ▲1987년 회화작품초대전(한국화랑) ▲1988년 88서울 올림픽 예술의 올림피아드 25m「올림픽 88」제작 ▲1989년 동구라파 순회전 ▲1990∼92년 유럽순회 회고전(자그레브 프로스토박물관,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파리 현대미술관,로마 뒤브로브니크), 프랑스 예술문학영주상 ▲1993년 중앙일보미술대전 운영위원 ▲1994년 문신미술관 개관 「불빛 조각축제」, 「문신미술 50년 회고전」(조선일보 미술관) ▲1995년 경남대서 명예문학박사
  • 앤소니 레이크 내셔널 프레스클럽 연설

    ◎“미 리더쉽 지키려면 대가 지불하라”/세계문제 해결 외면하는 신고립주의 발상 위험 미국은 세계적 리더십을 유지하기위해 투자를 하여야 하며 그 대가는 역사를 미국에 유리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앤소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이 27일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 연설에서 주장했다.다음은 그의 연설문 요약이다. 미국에는 지금 단순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그것은 미국이 일방적인 「무장해제」 위기에 놓일지 모른다는 경고다. 미국의 군사력은 물론 여전히 강하다.그러나 지난 50년동안 전세계에서 지도력을 유지하도록 한 다른 외교수단들,이를 테면 빈곤국에 대한 경제적 지원,테러와 마약거래를 막기 위한 정책,국제적 평화유지 등을 폐기해야 할 위기에 놓여 있다. 트루먼 대통령 이후 미 대통령들은 국익증진을 위해 강력한 군사력과 함께 이러한 외교수단을 활용해 왔다.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정책이 강력한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해 있다.그 이유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을 부인하는 좌·우익 신고립주의자들의 공격때문이다.세계사에 대한 우리의 개입정책도 힘을 잃고 있다.한마디로 미국의 지도력이 위기에 처해있음을 보여준다. 신고립주의자들은 소련의 멸망은 미국이 국내문제에만 신경써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핵확산,테러 등 여전히 다른 위협들이 존재하더라도 견고한 미국은 이를 처치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전후 초당세력의 합의에서 생겨났다고 자처하는 신고립주의자들은 미국의 지도력을 찬양하지만 중재의 지도력에는 반대한다.오직 독자적인 행동을 옹호할 뿐이다.그들은 평화도 찬양하지만 평화를 돕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차단한다.또 국가번영도 요구하지만 미국 노동자와 사업을 위한 시장개방을 위한 노력은 거부한다. 미국의 후퇴를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사람들보다 뒷전에서 떠드는 고립주의자들이 훨씬 많다.이들은 미국의 평화·번영,전후 지도자들­트루먼,마셜,애치슨 등의 정통성들을 파괴하려 한다.트루먼 대통령도 당시 고립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그러나 그는 세계2차대전의 경험으로 왕성한 외교정책에투자하는 것만이 다른 재앙을 막는 유일한 길임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트루먼등 전후 대통령은 미국 지도력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유엔과 브레턴우즈체제 등을 창설했다. 그 결과를 보라.지도의 대부분은 민주주의체제로 뒤덮였고 그들은 우리의 강력한 동맹국이지 않는가.지구촌경제는 미국의 직업과 부를 지지하고 있다. 50년간의 교훈으로 볼때 미국 지도체제의 만료시기라는 것은 없다.세계적인 위협들을 물리치는 데는 끊임없는 미국의 개입과 실제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미국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일뿐 아니라 우리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클린턴 대통령이 신고립주의가 팽배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때문이다. 미국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미국인들은 자신의 국가가 앞서나가기를 원하고 있다.그들은 『미국이 국내에서 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외에서 강해야 한다』고 말한 대통령에 동의한다. 또한 많은 미국인들이 외국 지원금으로 과다한 지출을 우려하고 있지만 실제 미국의 총예산 가운데 외국지원금이 1%를 조금 넘는다는 사실을 알면 매우 놀랄 것이다.고립주의자들은 이것도 지불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을 때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상상해보라.▲러시아 미사일은 미국을 향해 발사를 준비할 것이고 ▲우크라이나,벨라루스,카자흐스탄은 핵무기국가를 선언할 것이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거나 ▲수천명의 이민자가 우리 국경을 넘어올 것이다. 고립주의자들이 미정부에 계속 압력을 넣어 모든 지원을 끊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이룩한 일은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미국의 지도력은 이제 사실상 신고립주의자들 주도의 의회가 마련중인 외국지원비 삭감으로 위기 상황에 있다.이는 우리의 핵확산방지노력과 무기감축등의 노력을 위협할 것임이 분명하다.세계를 이끄는 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요구한다.특히 재원을 요구한다. 이제 신고립주의자들의 예산은 몇가지 문제점을 초래할 것이다.우선적으로 ▲핵무기를 제조하려는 국가들을 막을 수가 없게되며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미국의 참여도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북아일랜드,남아프리카,중동등의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도 심각하게 타격받으며 ▲미국상품과 노동자들을 위한 세계시장진출이 어려워져 우리의 생계도 위협받을 것이다. 미국의 돈을 아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고립주의자들은 실은 우물안의 개구리인 셈이다.우리의 원조는 결국 우리에게 몇배로 도움이 돼 돌아왔다.예를 들면 한국은 지금 우리가 30년동안 제공했던 원조액의 3배정도 되는 미국상품을 수입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능동적인 외교정책의 지지를 끌어낸다는 것이 미국에서 한번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역사상 우리는 한번도 고립상태에 있지 않았다.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현대세계에서는 우리가 고립으로 지낼 수도 없다.고립은 논쟁거리도 아니며 선택사항도 아니다. 『돈이 평화의 힘줄』이라고 했던 윈스턴 처칠경의 말은 요즘들어 더욱 절실하다.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위한 희망의 순간이다.세계에서 미국의 지도력은 사치가 아니며 필수적이다.그 대가는 충분히 이익을 남기며 역사의 흐름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끈다.
  • 산업화 열기에 외국기업 밀물(종전 20년 베트남의 오늘:하)

    ◎남북 해안따라 전국에 수출공단 조성/호치민·하노이엔 고층빌딩 우후죽순/가라오케 번창… 부동산투기로 벼락부자 생겨 부동산업자인 호앙 곡 둥씨는 하노이교외의 공원에서 행운의 여신앞에 1백달러짜리 지폐를 올려놓았다.4만달러를 투자한 땅이 10일만에 5만7천달러에 팔려 고마움의 표시로 내놓은 돈이다.바로 옆에서는 오토바이로 2백㎞를 달려온 한 여인이 가라오케 바의 번창을 빌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부자의 꿈은 두 사람의 마음속뿐 아니라 모든 베트남인의 마음을 가득 메우고 있다.베트남 어디를 가든 이들이 보여주는 「비즈니스열기」를 느낄 수 있다. 베트남은 지난 20년동안 「빈곤」과의 치열한 전쟁을 벌여왔다.75년 종전직후 레 두안 당시 당지도자는 앞으로 10년 안에 집집마다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갖게 해주겠다고 호언했다.경제전쟁을 알리는 종소리던 공산당의 약속은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달성되지 못했다.20%선의 실업률과 7천3백만인구의 절반이 넘는 절대빈곤층,2백20달러에 불과한 1인당 국민소득은 그간의 정책난맥상을입증하는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치러야 할 경제전쟁의 험난한 여정을 예고한다. 물론 베트남이 한국과 대만·싱가포르에 이어 말레이시아·필리핀 등지에서 「태풍」처럼 불던 산업화에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86년부터 이른바 「도이 모이(쇄신)」정책을 펴 88년 8백%이던 인플레를 지난해 14%선까지 떨어뜨렸고 국내총생산(GDP)의 2.1%이던 저축률을 16%까지 끌어올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등 나름대로 내실을 다져온 게 사실이다 만성적 자본빈혈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전용공단인 수출가공구(EPZ)를 설치,각종 법률·세제상의 혜택을 주어 외자유치에 나섰다.그 결과 하노이에서 호치민과 메콩 델타의 칸토까지 남북 2천5백㎞에 이르는 선을 따라 들어선 수출가공구(EPZ)는 국토의 모습을 하루가 다르게 변모시키고 있다.일본·독일·미국등 외국기업이 집중적으로 몰려들고 있는 호치민시는 경제수도임을 자임하고 있을 정도다. 국내의 어느곳보다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는 하노이와 호치민에서는 자전거와 식민지시대의 낮은 건물은 「비즈니스」의상징물인 오토바이와 고층사무실용 빌딩으로 대체되고 있다.해방 20주년 기념식이 거행될 호치민시의 기념식장이 높이 치솟은 철제 크레인 바로 앞에 있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길목마다 쌓여 있는 건축자재는 변화하는 베트남의 단면일 뿐이다. 월맹군 탱크가 75년4월30일 대통령궁의 철제문을 넘고 들어올 때 베트남인이 사라졌다고 느껴야만 했던 자본주의식의 「잘 살아보자」는 꿈이 전국 도처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변신의 발단은 8년간의 「도이 모이」정책 탓이다.개방적 경제정책의 채택과 적대국과의 외교관계회복을 계기로 물밀듯이 밀려든 외자는 거의 질식상태에 있던 베트남경제에 숨통을 터주었다. 정부는 1만2천개의 방만한 국영기업에 대수술을 가해 약 4천개로 줄여 재정지출을 감소했으며 87년 마련된 외국인투자법을 90년과 92년 잇따라 개정보완,투자유치에 앞장섰다.또 자동차·발전·철강등 이른바 「전략산업」은 아예 개방대상에 포함시켜 외국기술의 도입을 적극 추진했다.이미 한국과 대만이 자리를 굳힌 전자산업 특히 반도체분야는 아예 포기했다.대신 과거 은밀하게 개발,거래되던 소프트웨어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이같은 정책과 정부와 국민의 단합된 「부의 축적에의 꿈」은 올 3월말까지 총 1백37억달러상당의 외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월 35달러의 값싸지만 눈썰미 있는 노동력은 기술습득을 촉진해 외국인투자가들은 자동차·가전·전자부품등의 합작에도 선뜻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미래지향적 국민성은 과거의 주적 미국을 배우고자 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으며 때마침 지난해 미국의 대베트남 금수조치해제의 바람을 타고 모빌(석유)·비자(신용카드)·시티(은행)등 전업종에 걸친 미국기업의 상륙을 이끌어냈다.특히 과거 미군이 상륙했다는 다낭과 나트랑 사이의 해안에는 미국기업들이 벌써부터 「관광휴양지」 건설을 위한 상담을 벌이고 있어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케 하고 있다. 비록 경제력에서 베트남을 앞질러가고 있으나 인도차이나의 인접국들은 베트남의 잠재력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외국자본과 기술을 등에 업은 초강대국을 물리친 베트남인의 저력과 배우려는 국민적 열의는 단기간에 이들을 앞지를 수 있는 훌륭한 「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반외세론 한계”미·아세안과 관계개선(종전20년/베트남의오늘:상)

    ◎호치민대 미국학강좌 개설 2년째/“자주통일 위업” 민족자긍심 드높아/150만 보트피플·사회­자본주의 접목따른 과제 산적 75년 4월 30일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베트남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미해병 11명을 태운 헬기가 사이공 주재 미국대사관을 떠나는 장면을 끝으로 처절했던 베트남전쟁이 막을 내렸다.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동안 베트남은 수백만명의 보트피플 문제와 이웃 캄보디아 점령으로 국제적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으나 80년대 중반부터 빈곤탈피를 위한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과거의 적(적)미국과도 화해를 이룩함으로써 새로운 모습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다.변화하는 베트남의 어제와 오늘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미국이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과소평가했다』­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 당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주도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방장관은 미국이 베트남전을 비극적으로 마감할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꼽았다.사실 베트남에 있어서 민족주의는 베트남전 당시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수행의 가장 큰 대의명분이었음은 물론 지금까지도 체제유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해방 20주년」을 맞는 베트남에서는 현재 자신들의 위대한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준비가 한창이다.특히 올해는 공산당 창당 65주년,건국 50주년,건국의 영웅이며 해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치민(호지명)탄생 1백5주년등 갖가지 행사가 겹치는 탓에 나라 전체가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호치민 전주석의 대형 초상화가 거리 곳곳에 나붙었으며 붉은색 베트남기와 다채로운 경축 깃발이 하노이와 호치민시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도시를 뒤덮고 있다. 미국이 자신들의 명백한 패배로 끝난 전쟁에 대한 앙갚음으로 전후 19년간 목조르기식 경제제재를 가하는 바람에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면치 못하면서도 베트남인들은 단결된 민족적 의지로 거대한 나라 미국을 물리치고 통일을 이룩했다는 자부심만은 종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갖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민족주의적 열정도 경제난 극복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성 앞에서는 더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같다.지난 86년 12월 6차 공산당대회에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본뜬 「도이 모이」(쇄신)정책을 채택한 것을 계기로 베트남은 국제무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그 결과 경제가 꾸준히 회복되면서 지난해에는 8.9%라는 고도성장을 이룩하기도 했다. 경제개발이 가져다 준 혜택을 실감하면서 베트남인들의 태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베트남인들은 이제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 대해 더이상 적대감을 나타내지 않고있다.도 무오이 서기장 등 베트남지도자들도 과거에 자신들을 괴롭혔던 국가의 국민들에 대해 한결같이 『과거는 과거일뿐 우리는 과거에 얽매일 수 만은 없으며 앞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베트남은 또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있다.아시아·태평양국가들과의 협력강화와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92년 7월 우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지난 78년 12월 캄보디아침공으로 빚어진 적대관계를 청산했으며 중국과는 이미 91년 11월 관계를 정상화했다.이와함께 베트남은 빠르면 올 7월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아세안 외무장관 및 확대 외무장관회담을 계기로 아세안에 가입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베트남은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지난해초 미상원의 대베트남 금수조치 해제결의안 가결을 이끌어낸 데 이어 올해 1월 미국과 상호연락사무소를 개설함으로써 서방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기초를 다졌다.또 과거의 「적」인 미국을 배우려는 새로운 움직임도 나타나 호치민 시립대학에서는 공산정권수립후 최초로 지난해부터 미국학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적극적인 경제개방정책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서구식 다당제 정치개혁을 거부한채 사회주의체제를 고집하고 있다.지난 90년 이후 동구에 밀어닥친 민주화 물결에 대해서도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들이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제대로 사회주의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베트남의 이같은 경직한 태도는 90년 당시 열린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베트남의 옐친」이라고 불렸던 찬 수안 바크라는 개혁파 정치국원을 축출한 이래 일체의 정치개혁 움직임을 용납치않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은 시장경제 도입과 사회주의 노선의 견지라는 부합될수 없는 상반된 국가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개발이라는 국가적 목표가 달성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이와함께 공산화 이후 1백50여만명에 달했던 「보트 피플」은 아직도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남·북간의 경제력 격차에 따른 남북갈등과 자본주의를 이미 경험한바 있는 남베트남인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은 국민통합에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 세계기아인구 7천5천만/세은/2000년엔 13억…빈곤해소대책 시급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매일 어린이를 포함한 7억5천만명이 굶주리고 있으며 현재와 같은 경제상황이 계속된다면 2000년에는 13억인구가 빈곤에 허덕일 것이라고 세계은행이 26일 전망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세계은행은 이날 「빈곤과 기아 감소 전략」이라는 제하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풍요로운 세계에 기아로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오늘날 국제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기아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빈곤을 없애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전제하고 『굶주림,만성 영양부족,특정 영양소 결핍등 모든 형태의 기아는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총생산(GDP)을 각국 경제성장의 척도로 사용하고 있는 세계은행은 93년 현재 세계 2백9개 국가중 총 31억인구를 포함하는 59개 국가가 1인당 GDP 3백80달러이하의 저소득국가로 분류되고 있다고 이 보고서가 밝혔다. 또한 10억인구에 해당하는 69개국이 1인당 GDP 1천4백90달러의 중위권국가로,8억3천4백만명을 수용하는 39개국이 1인당GDP 2만3천1백50달러의 상위권국가로 분류됐다. 저소득층은 식량구입비가 총수입의 85%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은행은 『지속적이지 못한 정부지출,경상수지 적자,중류및 상류층과 도시위주의 막대한 사회지출 불균형』등의 현상을 『비적절한 경제정책』이라고 평가하고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발의로 소위 「구조조정계획」이 실시됐을 때 『각국이 처음에는 저소득층에 대한 이 계획의 효과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 가나안 농군학교/필리핀에 첫 진출

    【춘천=조한종 기자】 가나안 농군학교(교장 김범일)가 필리핀에 농군학교를 세운다. 17일 가나안농군학교는 올해 말까지 아시아 빈곤극복에 동참할 지도자를 양성하고 필리핀 농촌지역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필리핀 북부에 위치한 비나로난시에 가난안농군학교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정부 및 종교단체의 요청으로 설립되는 이 학교는 종교단체에서 기증한 10㏊의 부지에 한번에 1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6채의 건물 1천5백18㎡를 건립할 계획이다.
  • 우리 시대의 여섯가지 신화/마리나 워너 지음·미국 빈티지 북스사

    ◎어린이·여성 등에 대하여 쓴 에세이/다양한 관점서 진실·허구성 들춰내 「일상생활에서 흔히 인용되는 갖가지 이야기들이 세계를 구성 또는 재구성한다」고 저자 워너는 믿고 있다.이 책의 에세이 여섯개는 그런 관점에서 씌어졌다.즉 어린이란 무엇이고 나쁜 사람이란 누구며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규정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저자 워너는 관념상의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영국 시인 키츠에서부터 킹콩,식인행위,여성해방주의를 반대하는 남성간의 연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진실성과 허구를 들춰내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의 「작은 천사,작은 악마」라는 글은 어린이에 대한 현대의 잘못된 신화들을 지적하고 있다.워너는 「어린이에 대한 강렬한 사랑은 현대에 와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의 말을 부정한다.어린이의 순진성과 창조성을 이상화하고 있는 현대적 신화,예를 들면 「오즈의 마법사」 「호밀밭의 파수꾼」등에서는 어른보다 훨씬 나은 어린이가 등장하지만 「파리대왕」이나 일부 영화에서는 어린이의 생기나 부족한 자제력등이 악마화되기도 한다. 워너는 또 우리가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의 존재가 나타나고 우리의 미래상이 드러난다고 전제한 뒤 어린이보호와 학교지원에 인색하며 빈곤한 모자가정이 많은 현실을 우려한다.어린이를 인간 이상이나 또는 이하로 스테레오타입화하는 것은,어른에게 어린이가 직접 의존돼 정신적·육체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과 어른의 미래가 어린이에게 직접적으로 의존돼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일깨운다. 이와 함께 대중매체를 지배하고 있는 「투사의 신화」를 지적한다.텔레비전과 전자오락에서 투사는 괴물을 죽이고 여성을 지배하며 영웅적으로 행동한다.이런 환상적인 투사 이야기는 즉각적인 보상의 효과는 있지만 「살아남는 재주」를 가르쳐주지 못한다.현대에는 가여운 소년이나 꼬마 여우가 힘은 없지만 지능과 기지와 정신력으로 괴물을 이긴다는 이야기,즉 생존기술을 가르쳐주는 이야기는 좀체로 나오지 않는다.워너는영웅과 괴물에 대한 오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새로운 독법으로 읽기를 제시한다.그는 또한 결정론자들의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다양성·가능성·변화를 찾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런던 태생인 저자 마리나 워너는 49세의 여성이며 역사학자및 비평가로서 많은 여성관계 저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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