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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貧]한 달 80만원 벌어 결혼은 무슨… 돈 안 드는 썸이나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貧]한 달 80만원 벌어 결혼은 무슨… 돈 안 드는 썸이나

    서울 노원구의 매입임대주택에서 혼자 사는 남성 A(45)씨는 일찌감치 결혼을 포기했다. ‘가정을 꾸린다면 책임감을 느껴 더 열심히 일하고 돈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겸연쩍은 마음이 들어 고개를 흔든다. A씨는 “내일모레면 쉰인데 모아 둔 돈도 없고 여자를 사귀어 본 경험도 거의 없어 결혼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고 했다. A씨의 한 달 수입은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근로하며 버는 70만~80만원이 전부다. 물론 그에게도 한때 마음이 통했던 사람이 있었다. 20대 후반이었던 1990년대 말 서울의 한 봉제공장에 다닐 때 만난 여공이었다. A씨는 “당시 그 여자에게 300만원이 든 월급 통장을 믿고 맡겼는데 통장을 가지고 도망쳤다”며 “이후 여자를 사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결혼 생각은 없지만 남성적인 욕구가 자연스럽게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A씨는 “종로 쪽에 가면 ‘박카스 아줌마’(남성에게 음료수를 주며 접근해 성매매하자고 꾀는 여성)가 많다”면서 “예전에 2만~3만원을 주고 여인숙에서 관계를 가진 적이 있는데 성매매가 불법인 걸 알고는 참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절대빈곤층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더라도 돈 때문에 제대로 된 예식을 못 한 채 가정을 꾸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B(43)씨는 아내(31)에 대한 미안함을 늘 가슴 한켠에 품고 있었다. 결혼 전 귀금속 업체에서 세공사로 일했던 그는 회사가 갑작스레 도산해 일자리를 잃었다. B씨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데다 벌이마저 끊긴 상황에서 결혼은 남의 얘기로만 들렸다”고 회상했다. 이때 친구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고 마음이 끌려 6개월간 교제 끝에 2012년 혼인신고를 했다. 하지만 부모를 일찍 여읜 데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다는 공통점을 가진 B씨 부부는 조촐한 결혼식조차 할 수 없었다. 특히 세공사로 일하며 고급 혼수용 보석을 다듬었던 B씨로서는 정작 자신의 신부를 위한 반지 하나 맞춰 줄 수 없다는 현실이 서글펐다. 그랬던 B씨는 지난해 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임대아파트 입주민을 위해 마련한 무료 합동 결혼식 지원 대상자로 뽑혀 아내와 전통 혼례를 올렸고 토지주택공사로부터 18K짜리 금반지를 받아 아내의 손가락에 끼워 줬다. 토지주택공사 관계자는 “임대아파트 입주민 중에는 어려운 사정 탓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이들이 많은데 무료 혼례라도 올린 B씨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경기도에 사는 기초생활수급권자 C(35·여)씨는 TV 드라마를 보다가 결혼식 장면이 나오면 서러움을 느껴 채널을 돌린다. 남편과 혼인신고하고 산 지 10여년이 됐지만 아직 결혼식은 따로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최근 “딸이 초등학교에 갔으니 가족 사진이라도 찍자”고 제안했지만 C씨는 “결혼 사진도 못 찍었는데 무슨 가족 사진이냐”며 핀잔을 줬다고 한다. 부부 모두 몸이 불편해 직업 없이 기초생활보장 수급비에 의존해 생활하다 보니 10여년 전 살림을 합칠 때 신혼집은 따로 구하지 못했고 남편이 살던 10평 남짓한 빌라 셋방에 들어가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예물이나 예단, 혼수는 당연히 없었다. C씨가 남편에게 받은 결혼 선물이라고는 은반지가 유일했지만 이마저 피부 알레르기 탓에 끼지 못했다. 다행히 C씨 부부도 B씨 부부처럼 삼성전자 등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말 합동혼례를 무료로 올렸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 사진도 찍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어떤 극빈층 부부는 초등학생인 아이가 ‘엄마, 아빠는 왜 결혼 사진이 없어요’라고 물을 때마다 먹먹함을 느낀다고 하더라”면서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도 가난 탓에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일이 많다. 돈이 없으니 연애조차 사치로 느끼는 ‘스튜던트 푸어’(학생 빈곤층)가 많고 이성 친구를 사귄다 해도 끊임없이 호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야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D(26)씨는 대학 입학 뒤 지금껏 연애를 멈춰 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했던 그이지만 연애는 퍽퍽한 삶 속의 활력소가 됐다. 하지만 넉넉한 자금 없이 여자 친구를 만나는 건 무척 어렵다. 그는 “돈 없이 연애하다 보면 행복의 총합을 계산하려고 하는 공리(功利)주의자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성을 만날 때 들이는 식비, 선물값 등과 이성과 만나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을 대조해 계산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주머니가 빈 날이 많아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데 많은 ‘머리굴림’이 필요하다”면서 “이를테면 ‘썸타는’(정식 교제에 앞서 미묘한 호감을 주고받는 행위) 여자와 데이트할 때는 대학가 맛집에 가 저렴한 와인이라도 한잔하며 분위기를 잡고 싶고 생일날에는 몇만원짜리 귀고리라도 사 주고 싶지만 머뭇거리게 된다”고 했다. 그가 지금껏 주로 연상의 여자 친구를 만난 것도 이런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는 “사회 생활하는 누나들은 내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 밥값을 자주 내고 배려한다”고 했다. 또 다른 ‘스튜던트 푸어’인 E(22)씨도 2년째 연애를 못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애를 반쯤 포기한 상태다. 180㎝가 넘는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 서글서글한 성격까지 ‘경쟁력 있는’ 외모의 소유자이기에 “소개팅해 주겠다”는 친구는 많다. 하지만 E씨는 번번이 거절한다. 그는 “밥값 내야 하는 상황이 부담돼 주선해 준다고 해도 피한다”고 했다. 지난해 초 군에서 전역한 그는 복학을 미룬 채 헬스장 등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어머니가 빚보증을 잘못 서 수천만원대 부채가 쌓인 탓에 스스로 등록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 교수는 “요즘 청년의 연애 문화인 ‘썸타기’는 남성 청년층의 빈곤한 경제력과 관련 있다”면서 “연애를 시작하면 남자가 돈 내는 상황이 많아지는데 금전적 여력이 안 되니까 ‘사귀자’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굴의 노력으로 좋은 이력을 갖춘 극빈층 자녀 중에는 사회적 시선과 자신감 부족 탓에 결혼을 미루는 사례도 있다. 중학교 교사인 F(31)씨는 같은 학교에서 만난 4살 연상의 여교사와 1년간 교제하다가 여자 친구로부터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서울·경기권에 100억원대 건물을 가진 땅부자다. 그녀의 부모는 애초 F씨의 집안이 성에 차지 않았지만 F씨가 서울의 명문 사립대를 나와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 데다 딸의 혼기도 꽉 찬 까닭에 결혼을 승낙했다. 그런데 오히려 머뭇거리고 있는 쪽은 F씨다. 부모가 1억원 넘는 빚을 지고 있는데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가 이 돈을 모두 갚기 어려워 F씨가 월급 일부를 떼어 함께 갚고 있기 때문이다. F씨의 친구 중에는 “여자 친구가 집안도 좋고 마음도 맞는데 결혼을 미룰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채근하는 이도 있지만 또 다른 친구들은 “결혼은 형편이 비슷한 사람끼리 해야 잘 산다”고 막는다. 성인이 되기 전에 준비 없이 덜컥 가정을 꾸릴 경우 결혼생활이 그만큼 위태로울 수 있다. 서울에 사는 싱글맘 G(44)씨는 고교 졸업 직후 남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고 결혼했다. 그 뒤 딸을 한 명 더 출산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려운 살림 탓에 잦은 부부 싸움을 벌이다 12년 전 끝내 이혼했다. 막내딸만 데리고 집을 나온 G씨는 이후 다른 남성과 교제하던 중 아들을 가져 출산했다. 하지만 이 남성과는 결혼하지 않고 헤어졌다. G씨는 “기초생활수급자라 아이 둘을 키우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아이를 지우면 살인이라는 생각에 낳았다”면서 “막내아들의 아버지는 출산 사실조차 모른다”고 했다. 아이의 아버지도 궁핍하기에 말해 봤자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 금천구의 가정지원센터 관계자는 “극빈층 부부는 부부 관계가 틀어져도 당장 생계유지를 위해 상담할 시간이 없어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헤어지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극빈층 중에서도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결혼 생활이 더 큰 도전이다. 인천에 사는 뇌병변 장애인 H(35)씨는 5년 전 친구의 소개로 대학생이던 남편을 만났다. 교제 4개월 만에 아기가 생겼고 이듬해 출산과 함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남편은 결혼 뒤 분노조절장애 증세를 드러내며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몸이 불편한 H씨는 가만히 맞고 있는 것 외에는 반항할 도리가 없었다. H씨는 지난해 끝내 이혼했다. 하지만 남편의 그림자는 여전히 드리워져 있다. 남편이 사채 2000만원을 부부 공동 명의로 빌려 썼던 탓에 이씨는 기초생활수급비에서 돈을 떼어 빚을 조금씩 갚고 있다. 유대근 이두걸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 갈팡질팡 복지부… 시민단체 “장관부터 사과하라”

    보건복지부가 3일 여당인 새누리당과 협의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논의를 재추진하기로 한 데에는 사실 들끓는 여론보다 당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년 6개월간 공들인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공식 발표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돌연 취소한 이후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어도 복지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지난 1일에는 고소득층 건보료는 그대로 두고 저소득층의 건보료만 경감하겠다는 ‘미봉책’을 내놓았지만 “올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부과체계 개편안을 언제 다시 추진할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2일까지만 해도 복지부의 담당 과장은 “기획단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시행할 경우 저소득층의 건보료만 경감하는 것보다 재정 적자가 더 나게 될 것”이라며 개편안 재추진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심지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을 총지휘했던 이규식 위원장(연세대 명예교수)이 “정부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의지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2일 사퇴를 해도, “복지부가 해체하지 않는 한 기획단은 해체되는 게 아니다”라며 ‘의연(?)’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나 원내대표가 바뀐 여당이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중단 등 정책 혼선 문제를 강하게 질타하자 급격히 기류가 변했다. 당에 등을 떠밀려 ‘연내 추진 불가’에서 ‘당정 협의를 통해 결정’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오건호 위원장은 “국민이 필요로 하는 개편안을 하루아침에 중단하고 또다시 번복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복지 행정에 대해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정 협의를 통해 개편안 재추진 결정이 공식화되고 추가적인 시뮬레이션 작업을 거쳐 부과체계 개편 정부안이 나오려면 올해 하반기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건보료 부과체계 기획단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원안이 있지만, 문 장관이 지난달 ‘백지화’를 결정하며 그 이유로 “2011년 자료를 근거로 한 개편안이라 최신 자료로 추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고 밝혀 복지부 입장에선 시뮬레이션을 다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 백영환 정책실장은 “지금 기획단 안 자체도 절대 빈곤층 모두에게 최저보험료 1만 6480원을 걷도록 설계돼 있어 문제가 많다”면서 “기왕 재추진하려면 빈곤계층의 6개월 이상 체납률이 40%가 넘는데, 이런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 보완이 더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울 원유빈 인턴기자 jwyb12@seoul.co.kr
  • 빈곤 청년 月 최대 15만원 지원… 서울시 ‘두배 통장’ 선심성 논란

    서울시가 저소득층 청년을 대상으로 저축액의 일부를 매칭방식으로 지원하는 ‘청년두배통장’을 오는 5월부터 시행한다고 2일 밝혔다. 시 관계자는 “학자금과 월세, 취업난 등으로 노동 빈곤층으로 전락한 청년들이 적지 않다”면서 “청년두배통장은 이들에게 일정 수준의 자산을 형성하게 도움으로써 빈곤탈출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두배통장은 최저 생계비(1인 61만 7281원) 200% 이하인 18세 이상 34세 이하의 청년이 가입할 수 있다. 참가 인원은 1년에 1000명이다. 가입한 청년들이 월 일정액을 저축하면 시가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100%를, 비수급자에게는 50%를 추가로 매칭해 지원한다. 월 적립액은 5만원, 10만원, 15만원 단위다. 적립기간은 최대 3년으로 기초수급자는 최대 1080만원, 수급자 외 저소득층은 최대 810만원을 모을 수 있다. 시는 올해 6억 1000만원, 내년 18억 1000만원,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27억 1000만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재원의 60%는 서울시가 맡고, 나머지 40%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기업 등을 통해 조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충분히 노동이 가능한 청년층에게 돈을 주는 것과 다름없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한 전문가는 “청년층의 경우 노숙자나, 파산자, 장애인, 고령자 등 선별적 지원이 필요한 취약 계층과는 상황이 다르다. 단순히 젊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돈을 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면서 “실업급여와 취업교육 등 다수의 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 등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몇몇에게 지원을 몰아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이사는 “한번 저소득층이 되면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기존 꿈나래통장이나 희망키움통장 등이 정책적 효과를 보고 있는 만큼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나쁠 것이 없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시는 통장사업 참가자의 공정한 선발을 위해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행복e음’ 공적조회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요청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서울신문 특별기획-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당신에게 여가란…

    [서울신문 특별기획-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당신에게 여가란…

    서울신문은 특별기획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제8회 상위 1% 부유층(금융자산 최소 10억원을 포함한 개인 순자산 40억원 이상 & 연소득 1억 5000만원 이상)과 하위 9.1% 절대빈곤층(4인 가구 기준 월소득 166만 8329원 미만)의 여가생활 편을 오늘 보도합니다. 사진은 도준석 기자가 촬영했습니다. 특별기획팀
  • 유일한 낙 TV 시청…전기세 겁나 그나마 짬짬이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유일한 낙 TV 시청…전기세 겁나 그나마 짬짬이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지난해에 큰 맘 먹고 거금 120만원을 주고 3D TV를 샀습니다. 일거리가 없는 날이면 눈을 떴을 때부터 감을 때까지 보는 TV에 ‘사치’를 부린 거죠.” 서울 강북 지역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A(55)씨의 ‘재산목록 1호’는 TV다. 3년간 매달 3만~4만원씩 모은 돈으로 최신 TV를 샀다. 그가 공사판에서 버는 한 달 수입(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사치품’이다. 다른 가구들은 재활용센터 등에서 헐값에 사들이거나 버려진 걸 주워 왔지만 TV는 달랐다. 스포츠뿐 아니라 평소 즐겨 보는 SF 영화도 기존에 쓰던 구형 브라운관 TV 대신 3D TV로 보니 현장감이 훨씬 살아났다. A씨는 “TV가 없으면 딱히 낙이 없고 뉴스라도 봐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 있다”면서 “서너 달 생활비 전부를 TV 사는 데 썼어도 별로 아깝지 않다”고 했다. 놀기 위해서는 돈과 여유가 필요하다. 먹고사느라 고달픈 절대빈곤층에게는 그래서 TV가 유일한 여가 수단인 경우가 많다. 그저 켜놓는 것만으로도 온갖 ‘문화생활’을 브라운관을 통해 간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독거 노인 B(76)씨에 비하면 A씨는 ‘호사스러운’ 축에 든다. B씨는 TV를 보고 싶어도 전기요금 걱정에 손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B씨가 단칸방에서 매일 아침 눈뜨는 시간은 오전 4시. 하지만 딱히 할 게 없다. 아직 밖이 깜깜해 산책할 수 없는 시간이다. TV라도 보고 싶지만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는 처지라 전기비 걱정에 잘 틀지 않는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보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오전 10시쯤 동네 경로당을 찾는다. 거기서 인근 노인들과 어울리며 줄곧 TV를 시청한다. B씨는 “집에서는(공중파만 나와서) 채널이 몇 개 안 되지만(케이블 채널을 갖춘) 경로당 TV는 채널이 많아서 더 볼 게 많다”면서 “저녁 때 집에 오면 밥 먹으면서 TV를 잠깐 보다가 끄고 8시면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경기 광명에 사는 독거 노인 C(83·여)씨는 노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그의 유일한 낙은 TV 시청이다. 하지만 낮 대신 밤에만 본다. 하루 종일 TV를 틀어 놓기에는 전기요금이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C씨는 “오후 6시 이후 3시간이 TV 시청 시간”이라면서 “TV로 영화를 보고 싶어도 (공중파에서는) 늦게 영화를 틀어 주니까 요즘엔 제대로 본 게 없다”고 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빈곤층은 PC방에서 여가를 보내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매입임대빌라에 사는 D(45)씨는 2주에 한 번꼴로 일 없는 날을 골라 PC방에서 ‘게임 데이’를 즐긴다. 보통 한 번 가면 13시간 정도 게임을 한다. 한때 20시간 연속으로 죽치고 앉아 게임에 몰입한 적도 있다. 1만원이면 13시간 정도 게임을 할 수 있어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거나 컵라면 등 간식을 먹어도 2만원이면 하루를 날 수 있다. D씨는 “게임방에서 오락을 하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가 있을 정도로 시간을 보내기 좋다”면서 “게임 도중 채팅에서 만난 사람 소개로 경기 인근 지역에서 일주일 동안 막노동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대다수 빈곤층은 제대로 된 여행을 꿈꾸기 힘들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4년 비수급 빈곤층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에 한 번 이상 2박 3일 이상의 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빈곤층(기초생활수급대상자)은 98.0%로, 전체 가구 평균(22.4%)의 4배가 넘는다. C씨는 평생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없다. 젊은 시절 명절 때 고향인 광주를 오고 간 것 외에는 순전히 여가를 위해 버스 등을 타고 나간 적이 없다. 더욱이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요즘 들어 여행은 꿈도 못 꾼다. 그는 “재작년 노인복지관에서 여는 무료 나들이에 따라 갔다가 몸살이 걸려 꼬박 일주일을 누워 지냈다”면서 “사는 게 심심하고 따분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셈”이라고 했다. 빈곤층 아이들 역시 여행이나 나들이를 쉽게 가지 못한다. 부모가 형편이 안 되는 데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일 때문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짬이 없는 탓이다. 아름다운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 서울 지역 저소득 가정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강에서 역사와 문화 체험을 하는 무료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한강에 처음 와봤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쉽사리 가지 못하는 빈곤층의 약점을 노리는 ‘사기’도 종종 벌어진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빈곤층 E(74·여)씨는 지난가을 황당한 일을 당했다. 낯선 이들이 E씨가 자주 가는 동네 경로당을 찾아 “공짜로 세종시 구경을 시켜 주겠다”면서 전세버스에 오를 것을 종용했다. E씨와 주변 노인들은 의심 없이 따라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내린 곳은 세종시가 아닌 서울 외곽의 허름한 가건물 강의실이었다. 이들은 노인들을 앉힌 뒤 녹용과 옥장판 등을 파는 강의를 4시간 넘게 진행했다. 항의하는 이들에게는 “자꾸 이러면 못 간다”며 윽박질렀다. E씨는 “강의와 호객 행위가 끝난 뒤 차로 다시 경로당에 데려다준 게 다행이었다”면서 “그 이후에는 누가 ‘공짜 여행을 보내 준다’고 해도 절대 안 따라간다”고 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겨우 의식주만 해결하는 수준을 도와주는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층 지원 시스템으로는 빈곤층이 여가라는 걸 누릴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정보 검색’에 능한 빈곤층 중 복지단체에서 지원하는 무료 여행의 기회를 잡은 경우도 있다.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 대상 싱글맘 E(40)씨는 2013년 여름 강원도 속초로 2박3일 휴가를 다녀왔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들과 2살 딸 외에 100일이 갓 지난 막내딸까지 네 식구가 함께했다. 그러나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모 복지재단이 한부모가정 등을 대상으로 주최한 여름휴가 프로그램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주최 측이 숙박과 교통, 식사비 일체를 무료로 제공했다. 앞서 그녀는 지난해 11월에는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이 역시 싱글맘 관련 협회의 후원 덕분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E씨 역시 비행기를 탄 건 처음이었다. E씨는 “아이들을 위해 1년에 한 번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함께 여행을 가려고 한다”면서 “집에만 있는 애들을 생각하면 무료 여행을 갈 좋은 기회가 없을까 여기저기 찾아보게 된다”고 했다. E씨는 미혼모 관련 협회가 여는 ‘부모 교육’ 강의를 20차례 수강하면 제주도 여행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한 덕택에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영화 관람도 빈곤층에게는 쉽지 않다. 노년 빈곤층에서는 최근 수십년간 영화관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례가 수두룩했다. 특히 한창 영화 관람에 맛을 들일 젊은 층이 돈 때문에 참아야 하는 일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그렇다 보니 다양한 방식이 동원된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스튜던트 푸어’ F(27)씨는 밥 먹을 돈을 아껴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 애호가다. 하지만 영화 관람비는 지갑이 가벼운 그에게 큰 부담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대신 스크린을 적게 내거는 군소 영화관에 주로 간다. F씨는 “멀티플렉스는 관람비는 1만원에 가깝지만 단관 극장은 6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면서 “이것조차 부담스러우면 인터넷으로 영화 파일을 공짜로 내려받아 본다”고 했다. SF 영화를 즐겨 보는 G(34)씨도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데 1만원이나 내야 하니 최근 6년간 극장 문턱도 밟지 못했다”면서 “대신 가끔 동대문시장 등에서 복제한 최신 영화 DVD를 5편에 1만원 주고 사서 집에서 본다”고 했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은 예나 지금이나 빈곤 노년층의 놀이터다. 강서구에 사는 H(82)씨도 매일같이 정오쯤 탑골공원으로 출근한다. 공원 팔각정 주변에 자리 잡은 뒤 허리에 찬 소형 카세트 라디오를 들으며 공원을 천천히 산책한다. 팔각정에 앉아서 주변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한 달 소득이 국민연금 40만원에 노인연금 16만원 정도가 고작인 처지라 탑골공원 만큼 ‘경제적인’ 소일거리 공간이 없다. 주변 식당들의 밥값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시키면 6000원 정도면 충분하다. 친구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한두시간은 훌쩍 간다. H씨는 “지하철 요금은 공짜이니 밥값 정도를 빼면 돈이 별로 들 일이 없다”면서 “날씨가 좋을 때는 청와대 앞까지도 놀러간다”고 했다. I(71)씨도 매일 아침 경기도 성남에서 탑골공원으로 나오는 ‘터줏대감’이다. 그는 “밖에서 밥을 챙겨 먹지 않으면 한 달 용돈은 10만원이면 충분하다”면서 “잠실 석촌호수 부근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라고 했다. 봉사 활동으로 여가를 보내는 빈곤 노년층도 일부 보인다. 경기도 광명에 사는 독거 노인 J(82·여)씨는 10년째 지역 노인복지센터 뜨개질 교실에서 다른 노년층을 가르친다. 그녀는 “그냥 놀 바에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는 게 훨씬 보람 있다”고 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세계 분쟁지역 참상 알린 언론인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살해된 일본인 고토 겐지는 민영방송국의 프로그램 하청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1996년에 ‘인디펜던스 프레스’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언론인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 왔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이라크를 비롯해 세계 분쟁 지역의 참상을 영상에 담아 NHK를 비롯한 각 방송국에 제공해왔다. 그가 소형 비디오카메라로 좇은 것은 전쟁에 신음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 타도와 열광하는 시민’이란 기성 언론의 상투적인 관점이 아니라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묘지를 찾거나, 무기를 든 병사의 모습에 떠는 사람들, 전쟁의 부조리 속에서 사는 어린이를 다루는 등 독특한 시각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5년에는 ‘다이아몬드보다 평화가 필요해’라는 책을 펴냈다. 양질의 다이아몬드 산지로 유명한 내전 국가 시에라리온에서 만난 열다섯 살짜리 소년병사 ‘무리아’를 중심으로 전쟁의 부조리를 담담하게 글로 엮어 내 산케이아동출판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재혼한 부인과의 사이에 두 살짜리와 지난해 10월 태어난 갓난아기를 두고 있다. 고토는 자신에 앞서 IS에 억류된 유카와 하루나(IS가 지난달 24일 살해했다고 발표)에 대한 정보를 얻고, IS가 장악한 지역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도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지난해 10월 하순 시리아로 떠난 뒤 실종됐다. 그는 연락이 끊기기 전 남긴 영상에서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리아 사람을 원망하지 않으며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고토의 살해 소식이 알려진 일요일 이른 오전부터 일본 열도는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고토의 어머니 이시도 준코(78)는 1일 성명을 통해 “너무나 참담한 죽음을 두고 말을 할 수 없다”고 애통해하면서도 “지금의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이 없는 사회를 꿈꾸고, 분쟁과 빈곤으로부터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싶어 한 겐지의 유지를 이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고토의 형인 고토 준이치(55)는 “매우 안타깝다”면서 동생의 석방을 위해 노력한 일본 정부에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쿄신문을 비롯한 일본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 도쿄 등 도심지역에 뿌리는 한편 방송들도 정규 뉴스시간을 연장해 유카와에 이어 고토까지 살해한 IS의 잔혹상을 시시각각 보도했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 증세는 부자의 ‘천국행 티켓’ 되어 줄까

    증세는 부자의 ‘천국행 티켓’ 되어 줄까

    부자가 천국 가는 법(法)/폴 크루그먼·뉴트 깅리치 등 지음/양상모 옮김/오래된 생각/160쪽/1만원 금융위기 이후경제성장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빈곤층과 중산층의 소득이 정체된 반면 최상위의 부유층은 예금이자와 주식배당 등으로 거액의 자산소득을 누리고 있다.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통해 적절하게 부의 재분배를 실시하는 것은 현명한 공공정책이자 기본적인 공정성의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부자 증세보다는 감세와 규제 완화로 생산과 고용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세율을 인상하면 노동과 투자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경제성장이 둔화된다는 것이다. 신간 ‘부자가 천국 가는 법(法)’은 캐나다 최고의 공공정책 공개토론인 멍크 디베이트에서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세계적 논객들이 ‘부유층에 대해 증세할 것인가’를 놓고 2013년 5월 30일 토론토의 로이톰슨홀에서 벌인 논쟁을 담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과 전 그리스 총리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는 부자 증세 찬성자로,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과 레이건 대통령 경제고문을 지낸 아서 래퍼는 반대자로 나서 열띤 설전을 벌인다. 래퍼는 부자 증세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래퍼곡선’을 발표한 바 있다. 크루그먼은 래퍼곡선을 비판하면서 부자의 세금을 올려 그 재원으로 빈곤층과 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공공서비스에 투자하고 소비 주도형 경제성장을 달성한다고 주장했다. 파판드레우는 그리스가 재정위기에 빠질 때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도 부유층에 대한 증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반해 깅리치는 “성공할 사람을 어떻게 처벌할지보다는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고, 래퍼는 “세법은 고치고 세율을 낮출 것”을 주문했다. 팽팽한 논쟁을 읽다 보면 마른행주 쥐어짜듯 ‘서민 증세’로 방향을 잡은 우리 정부 관계자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어떤 주장을 펼쳤을지 궁금해진다. 책 제목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예수의 말씀에서 따왔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뉴노멀’ 시대의 사회보장/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고려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열린세상] ‘뉴노멀’ 시대의 사회보장/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고려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언제부터인가 미세먼지로 자욱하고 뿌연 하늘을 보면 암울한 생각부터 떠오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동안 익숙했던 고성장·완전고용을 ‘올드노멀’, 즉 철이 지난 과거의 기준으로 퇴색시키며, 저성장·저소득을 특징으로 하는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국면의 새로운 표준)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어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초저출산과 빠른 인구 고령화라는 또 다른 ‘뉴노멀’이 다가오고 있다. 생산연령층 인구 비중이 높은 ‘인구 보너스’ 기간도 2017년부터는 생산연령인구 감소를 의미하는 ‘인구 오너스’로 바뀐다. 현재 약 660만명인 65세 이상 노인 수가 25년 후엔 1600만명으로 늘어나고, 혼자 사는 65세 이상 노인도 132만명(2013년)에서 343만명(2035년)으로 증가한다. 반면 1980년대 연 7∼8%였던 잠재성장률은 현재 3% 선이며, 2017년 이후에는 2% 선으로 떨어지고, 2050년 이후에는 1% 미만으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심각하다 보니 정부 발걸음도 빨라져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제2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이 70조원(저출산 40조원, 고령사회 30조원)에 달한다. 막대한 재원을 투입했음에도 출산율 제고와 노인빈곤 완화 효과가 크지 않아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저성장 사회에서 취직하기 어렵고 설령 취직한다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월급은 적은데, 집값이 비싸다 보니 결혼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아이 낳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아이가 커서 자신처럼 살 것 같아 아이 낳기를 포기한다는 젊은이도 많다고 한다. 젊은 층 상당수가 미래를 설계하기 힘든 상황에 있다 보니 정부 정책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신년 대토론회에서 젊은 층의 요청 사항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정책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는 곳으로 집중시켜 달라는 것이다. ‘뉴노멀’ 시대에 이러한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회보장 체계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대수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나은 상황에 있는 집단의 이해와 양보가 필요하다. 한정된 예산을 저성장·저소득으로 인해 사회적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 집단(근로빈곤층, 청년실업, 장기실직자 등)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데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는 ‘뉴노멀’ 시대에 부합하는 정책이 들어 있다. 그동안 가입 자격이 없었던 파트타임·단시간 근로자의 사회보험 가입 허용, 실직 기간 동안 정부의 사회보험료 지원, 저소득 근로자의 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회보험’의 대상자 확대가 특히 그렇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대목이 남아 있다. 자신이 보험료 100%를 부담해야 하는 저소득 자영업자, 사회적 위험에 많이 노출된 일용 근로자, 택배 기사와 레미콘 기사와 같은 특수 형태 근로자들에 대한 대책이 없어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마련해야 하는 정부, 특히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입장이 난처한 것 같다. 실타래처럼 복잡한 문제를 특정 정부 부처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려워서다. 저출산·인구고령화 문제에 관한 한 정치적 성향과 이념 차이를 접어 두고 우리가 직면한 현실과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며 정책 효과가 가장 큰 방향으로 기본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저성장·저소득·소득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사회적 취약 계층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뉴노멀’ 시대에 사회적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집단이 우선적으로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소한 20∼30년은 내다보는 비전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개편해야 할 것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작동되는 국가들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스웨덴 연금관리기구 담당자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좋은 사례다. 공정한 업무 수행으로 인해 스웨덴에서 가장 신뢰받는 정부 기관이 국세청이라고 한다. 정부는 신뢰받고, 시민 의식이 몸에 밴 국민은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신뢰받는 정부, 성숙한 시민 의식을 우리의 비전으로 설정하면 어떨까? 이러한 노력을 통해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서울신문 특별기획-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돈 & 몸 그 함수관계

    [서울신문 특별기획-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돈 & 몸 그 함수관계

    서울신문은 특별기획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제7회 상위 1% 부유층(금융자산 최소 10억원을 포함한 개인 순자산 40억원 이상 & 연소득 1억 5000만원 이상)과 하위 9.1% 절대빈곤층(4인 가구 기준 월소득 166만 8329원 미만)의 건강관리 편을 오늘 보도합니다. 사진은 도준석 기자가 촬영했습니다. 특별기획팀
  • 이임 앞둔 정홍원 총리 “나도 대통령께 쓴소리 할 만큼 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27일 개각 대상자들에 대한 검토와 검증이 진행되고 있으며 관련 사안들이 마무리되는 대로 개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을 찾은 정 총리는 개각과 관련해 현임 총리로서 임명 제청권을 몇 명에 대해 행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완구 후임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정 총리의 기자실 방문은 이임 인사 성격으로 이뤄졌다. 이 후보자가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정 총리는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가 문제이며, 나도 (대통령에게) 이야기할 만큼 했다”면서 “대통령께 시중의 소리를 전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상세하게 전하겠다는 의지는 좋은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이유 등에 대한 질문에는 “대통령께서도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만 답했다. 총리실 부패척결추진단의 활동 등 부패 방지 활동에 대해 정 총리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며 청렴정부의 기반 아래서 국민 신뢰와 국정 성과를 얻어야겠다는 것”이라며 “한시적으로 진행되기보다 제도 개선과 공직자들의 의식 변화, 국민 참여 및 사회 체질 변화 등이 이뤄질 때까지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세월호 인양 문제에 대해서는 기술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최종 결과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곤층 문제에 대해선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를 전수 조사하고 있다면서 자활 의지를 키우는 방식으로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복지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논란을 빚은 증세 문제 등에 대해서는 경제가 위축될 수 있어 법인세 부분을 인상하지 않았다면서 그동안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이뤄져 왔다고 언급했다. 퇴임 이후 정계 입문 등을 묻는 질문에는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심사위원장을 다시 하면 잘하겠지만 다시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농담으로 대응했다. 정 총리는 2012년 2월 새누리당의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암 두 번, 치료는 호사…참는다, 앓을 권리 없는 가난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암 두 번, 치료는 호사…참는다, 앓을 권리 없는 가난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없는 살림에 병까지 얻으니 살길이 막막하네요.” 홀로 손자 2명을 키우는 극빈층 장모(66·경기 구리시)씨는 벌써 두번째 암투병 중이다. 2010년 자궁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뒤 인정 많은 병원 원장의 도움으로 겨우 무료 수술을 했는데 최근에는 갑상선암 진단까지 받았다. 다행히 수술할 정도가 아니라 방사선 치료만 받고 있지만 병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걱정이다. “몸을 가급적 움직이지 말고 무조건 쉬라”는 의사의 말을 따르지 못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가난한 살림 탓에 가만히 누워 요양할 여유가 없다. 장씨는 이혼한 둘째 아들이 떠맡긴 초등학생인 손자 2명을 홀로 키워야 한다. 손자들을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 등 나름대로는 교육에도 신경 쓴다. 하지만 5학년인 큰손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보여 손이 더 많이 간다. 세 식구 먹을 밑반찬이라도 얻으려면 복지관에 가야 하는데 65세 이상 노인도 버스 승차비는 내야 해 30분 넘게 걸어 다닌다. 장씨는 “걷다 보면 힘이 빠지고 어지러워 길바닥에 쓰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면서 “남편과 함께 손자를 키울 때는 아등바등 버텼지만 5년 전 사별한 뒤로는 정말 힘들다”고 했다. 장씨의 삶은 ‘질병의 늪’에 빠지면 무기력하게 버티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는 절대빈곤층의 자화상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빈곤층은 중병에 걸려도 가정의 생계를 꾸려야 하기에 노동을 멈출 수 없다. 싱글맘인 박모(40·경기 화성시)씨는 2년 전부터 하혈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증상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매일 3시간씩 녹즙 배달을 해 먹고사는 형편이어서 시간을 내 병원에 갈 여유가 없기도 했다. 건강보험료를 오래 체납해 보험 혜택도 받기 어려웠다. 그런데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고 교회 지인의 권유로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자궁내막증식증’(자궁 내막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는 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박씨를 향해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 이런 몸으로 1년을 버텼느냐”고 혀를 찼다. 하지만 병을 알고도 박씨는 새벽 배달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14살과 7살인 두 딸을 먹여 살려야 하는 엄마로서는 잠시 쉬는 것조차 감당 못할 사치로 느껴졌다. 일을 멈추면 두 딸의 학습문제지 값조차 대줄 수 없기 때문이다. 박씨는 “건강 문제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인지 씻을 때 하수구가 막힐 만큼 머리카락이 빠진다”면서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으면 온몸이 후들거릴 정도로 독해서 먹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싱글맘 정모(30)씨는 4년 전 딸을 낳은 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 했고 출산 3개월 뒤부터 돈을 벌기 위해 곧장 일을 시작했다. 2년 전 어느 날 머리가 핑 돌더니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후송됐는데 병원에서는 부정맥 진단을 내렸다. 정씨는 “몸 상태 때문에 종일 일하기는 어렵고 웨딩홀 뷔페에서 음식을 나르거나 전단지를 돌리는 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들어가는 생활비에 비해 벌이가 적어 카드빚을 2000만원가량 졌다. 돈이 없는데 장애가 있다면 삶은 더욱 퍽퍽해진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이모(42·여·서울 동대문구)씨는 4~5가지 병을 늘 몸에 달고 사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다. 뇌병변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그는 휠체어에 계속 앉아 있다 보니 추간판(디스크) 탈출증이 생겨 2년 전 허리 수술을 받았다. 전동휠체어에 의지하는 탓에 운동은 전혀 할 수 없다. 몸이 아파 배변까지 불편해졌고 이 때문에 식사도 잘 안 한다. 하루하루가 즐거울 리 없다. 벌써 20년째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이씨는 “많은 빈곤층 장애인이 고단한 삶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고, 뇌병변 장애인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아 배변을 참다 보니 비뇨기관에도 문제가 종종 있다”고 했다. 아동의 경우 면역력이 약해 열악한 주거환경이나 영양부족 탓에 건강이 악화되는 일이 흔하다.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류모(5·대구 달서구)군은 알레르기성 비염 탓에 콧물과 기침을 1년 내내 달고 산다. 특히 겨울에는 감기에 수시로 걸려 비염 증세가 심해진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류군의 어머니(35)는 집안이 불결해 병이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돈이 없으니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 가는 건 불가능하다. 일반 주택 2층의 두 칸짜리 셋방은 습기 탓에 곰팡이가 번져 천장까지 얼룩덜룩하다. 욕실은 외풍이 심해 겨울에는 목욕할 엄두를 못 내고 환기를 제대로 시키지 못해 실내 공기도 나쁘다. 싱글맘인 서모(42·서울 영등포구)씨는 초교 4학년인 막내아들의 짓무른 피부만 보면 가슴이 아프다. 아들은 심한 아토피 피부염 탓에 쉴 새 없이 살을 긁는다. 근원 치료를 하려면 일반 식자재보다 1.5배가량 비싼 유기농 채소 등을 사 먹여야 하지만 형편상 마음껏 사기 어렵다. 서씨의 수입은 한 달에 약 50만원 받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운전 아르바이트로 버는 50만원 등 100만원가량이 전부다. 그녀는 “친환경 음식을 먹이고 좋은 로션을 발라 주면 호전될 것 같은데 못해 주니까 미안하다”면서 “건강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 성적을 두고 고민하는 엄마를 보면 부러울 지경”이라고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 중에는 정신건강이 위험수위에 다다른 경우도 보인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박모(47)씨의 14살, 7살배기 두 딸은 간혹 TV를 보다가 발작을 해 엄마를 놀라게 한다. 6년 전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자 빚쟁이들이 수시로 집을 찾아와 독촉했는데 이 장면이 자매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박씨는 “딸들이 TV에서 싸우거나 사람을 죽이는 등 폭력적 장면이 나오면 발작을 하고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집에 오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빨리 병원에 아이를 데려가 심리치료를 시키고 싶지만 매달 50만원가량의 수입으로 간신히 끼니를 때우고 있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김은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저소득층 중에는 아토피 피부염과 비염 등 면역력 약화와 관련된 질병에 걸리는 아이가 많다”면서 “집에 홀로 방치돼 TV만 보다가 ADHD 증상을 보이거나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도 많은 편”이라고 했다. 먹고살기 바쁘고 마음에 여유가 없는 절대빈곤층은 따로 운동이라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저 생활 속에서 짬을 내 걷는 게 운동이라면 운동이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인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의 주민 한모(73)씨는 “근처에 불암종합운동장이 있는데 거길 한 바퀴씩 도는 게 운동의 전부”라고 했다. 경기 부천에 사는 독거 노인 양모(80)씨도 “집에서 복지관이나 동 주민센터를 오가면서 최대한 걸으려고 한다”고 했다. 절대빈곤층은 인스턴트 음식 등 칼로리가 높은 식품을 많이 먹는데 운동량이 적다 보니 살이 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도비만과 당뇨 등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은 편이다. 기초생활수급권이 있는 빈곤층은 병원비·약값 등 의료비 지원을 비교적 폭넓게 지원받는다. 수급권자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과목을 병원에서 진료받으면 자부담금 1000~2000원을 내면 되고 약을 살 때는 500원만 내면 된다. 이 때문에 의료비 혜택을 적극적으로 누리는 수급 빈곤층이 많은 편이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수급 빈곤층 1명이 건강보험으로 지원받는 한 해 평균(2013년 기준) 의료비는 357만원으로 전체 가정의 3~4배 수준”이라면서 “가난할수록 몸이 아픈 사람이 많은 데다 혜택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결과”라고 했다. 반면 얼마 되지 않는 환급금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지 않고 병을 참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1년간 의료비를 쓰지 않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7만 2000원의 건강생활유지비를 ‘환급’해 주는 규정을 노리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모(33)씨는 5살배기 딸을 돌보다가 허리를 다쳤지만 병원에 가지 않았다. 수급권자인 그는 병원에 가도 1000~2000원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씨는 “1년 동안 병원을 가지 않으면 매년 2월 건강보험공단이 몇만원을 환급해 준다”면서 “큰 병이 아니면 병원에 안 가려고 한다”고 했다. 건강보험 혜택을 수급권자처럼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도 돈 걱정 탓에 무료 진료소를 가거나 아파도 참는 게 일상이다. 독거 빈곤층 김모(44)씨는 공사장에서 매달 70만~80만원 버는 게 수입의 전부이고 건강보험료도 200만원이나 밀렸다. 아플 때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마냥 참거나 서울시 등에서 개설한 무료 진료소를 찾는 것 정도다. 그는 “더 늙어서 아플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보험이라도 들어놔야 하지만 당장 급한 게 아니라서 자꾸 미루게 된다”고 했다. ▲ 줄기세포 주사 30회…5억원 돈으로 젊음을 사다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富’] <7>상위 1%의 건강관리 유대근 이두걸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 [사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저소득층이 가난에서 벗어나 중산층 이상으로 신분 상승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어제 발표한 ‘2014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이었던 사람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계층 이동을 한 비중(빈곤탈출률)은 22.6%에 불과했다. 저소득층 4.5명 중 1명꼴로 ‘신분이동’을 한 것으로 8년 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고소득층 4명 중 3명은 여전히 고소득층에 남았다. 특히 고소득층이었다가 저소득층이 된 사람은 0.4%에 그쳐 역대 조사 중 가장 낮았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부자인 사람은 계속 부자로 남고 있다는 뜻이다. 부(富)를 기반으로 한 신분이 계층을 넘어서서 계급이 되고 있다. 부의 양극화와 소득불평등 문제가 세계적인 고민거리로 등장한 지는 오래됐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내년부터 상위 1%가 전 세계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나머지 99%의 재산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 정도도 주요 선진국 못지않게 심각하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중하위층 40%는 전체 소득의 불과 2%를 점유하는 데 그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유력 집안 자제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만들고, 사법시험은 2017년 폐지할 예정으로 있는 게 대표적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막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무고시를 폐지하고 외교 아카데미로 바꾼 것을 놓고도 말들이 많다. 저성장이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부의 쏠림 현상을 막고 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조세제도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고소득자가 세금을 많이 내고는 있지만, 더 내는 쪽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세습형 부자가 넘쳐나는데도 기업을 공개했다고 가만히 앉아서 수조원, 수천억원을 챙기는 재벌 자제가 속속 생겨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연말정산을 놓고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도 결국은 소득불균형과 이를 둘러싼 공정하지 못한 세제라는 판단 때문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도 더 많이 창출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차이를 줄이는 대책도 나와야 한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줄기세포 주사 30회…5억원 돈으로 젊음을 사다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富’]

    줄기세포 주사 30회…5억원 돈으로 젊음을 사다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富’]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사는 중견기업 사장 A(72)씨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남들에게 ‘혈색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지금까지 감기 등 잔병 치레도 거의 안 했다. 체력 역시 웬만한 40대에 뒤지지 않는다. 헬스 등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그만의 건강 관리 비법은 따로 있다. 줄기세포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는 것이다. 그는 한두 달에 한 번씩 부인과 함께 일본 오사카행 비행기를 탄다. 입국장에 도착하자마자 줄기세포 클리닉 관계자가 미리 잡아 놓은 택시를 탄다. 10분 정도 이동해 클리닉에 도착한 뒤 병실 침대에 누워 배양줄기세포 주사를 맞는다. 1억~2억개 정도의 세포를 투여하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해외로 이동해야 하지만 시간 부담은 크지 않다. 오전 9시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다가 오후 4~5시 비행기로 귀국하는 당일치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가 줄기세포 주사를 처음 맞은 것은 4년 전. 친구를 통해 줄기세포 주사 알선 업체를 소개받았다. 한 차례 맞을 때마다 드는 비용은 비행기 요금을 포함해 500만~1000만원 정도다. 배양줄기세포의 개수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A씨 부부는 지금까지 30번 정도 주사를 맞았다. 최근 4년간 부부는 줄기세포 주사 맞는 데만 5억원 가까이 썼다. 하지만 돈이 아깝지 않다. 관절염이 심했던 부인은 주사를 몇 번 맞더니 통증이 싹 사라졌다. 만병통치약까지는 아니더라도 효과는 분명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주변 자산가들에게도 종종 권한다. A씨는 “내가 가는 오사카의 병원에 가면 암 환자도 일부 있지만, 나처럼 아픈 데가 없어도 면역력을 강화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면서 “돈이 있으면 (생존의) 시간까지 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줄기세포 주사 알선 업체 관계자는 “많게는 하루에 30명 가까운 국내 부자들이 외국 병원에서 줄기세포 주사를 맞기도 한다”면서 “요즘은 부유층 사이에서 줄기세포 주사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해외 병원과 자산가들을 연결해 주는 업체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들이 맞는 줄기세포 주사는 혈액이나 골수 등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추출한 뒤 이를 배양한 것이다. 태아의 탯줄에서 추출하는 제대혈과는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 제대혈을 그냥 주입받는 건 합법이다. 하지만 자기 몸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라도 이를 배양해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임상시험에는 일반적으로 4~5년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서는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보다 규제가 약해 줄기세포 주사를 맞기가 훨씬 간편하다는 얘기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배양 줄기세포 주사가 ‘불로초’로 알려지면서 위험성과 높은 단가, 불투명한 효과 등에도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일본 등에서도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앞으로 음성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했다. 상위 1%는 정기 건강검진도 일반인들의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이들이 대표적으로 선택하는 서비스는 VVIP 검진이다. 삼성서울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웬만한 대학병원들이 모두 내놓고 있다. 수도권 지역 중소기업 사장 부인 C(60)씨는 모 대학병원의 프리미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건강검진뿐 아니라 병원 측에서 제공하는 건강 관리 프로그램에 따라 건강 관리를 받는다. 먼저 1년 중 하루를 잡아 집중 건강검진을 받는다. 개인이 직접 검사실을 찾아다녀야 하는 일반적인 건강검진과 달리 20평 크기의 VIP 병실(독방) 안에서 대부분의 검진이 이뤄지는 ‘황제검진’이다. 침대에 누워 쉬고 있으면 간호사가 들어와 혈압이나 혈액 등의 검진을 진행한다. MRI나 CT 등 특수의료 장비가 필요한 검사를 받을 때만 해당 검사실을 찾는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결과가 나오면 1년간 C씨를 담당할 전담 주치의와 간호사를 배정받는다. 이들로부터 전문 상담을 받는 것은 물론 직통 전화번호도 따로 받아 365일 항상 문의를 할 수 있다. 여기에 영양사와 운동 코디네이터 등으로부터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제공받는다. 해외 여행 때 현지에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응급 헬기도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쓰는 비용은 1년에 1900만원이다. 매달 150만원씩 내고 전담 건강관리팀으로부터 의료 서비스를 받는 셈이다. 한 대학병원 VVIP 검진팀 관계자는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110명의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원래 바빠서 건강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자산가들도 부부가 같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의료와 휴양을 결합한 ‘메디컬 리조트’ 형태의 호텔도 제주도 서귀포에 등장했다. W호텔에서는 오전에는 제주 천연수를 이용해 ‘수(水)치료’를 받고 오후에는 의사에게 검진을 받는다. 한라산이 보이는 힐링센터에서는 요가로 몸을 단련할 수도 있다. 미용성형과 항노화 클리닉, 맞춤식 건강증진 프로그램 등도 갖추고 있어 국내 부자뿐 아니라 외국 부자들에게도 인기다. 이 리조트의 회원 가입 보증금은 1억~2억원대다. 상위 1% 부유층은 운동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서울 논현동에 사는 자산가 D(42)씨는 신사동에 위치한 고급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을 한다. 기존 헬스 시설에 종합격투기(MMA), 복싱, 스턴트 액션 등을 함께 연습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유명 무술감독과 방송인이 함께 세운 곳이어서 여기서는 치이는 게 연예인이다. 그는 이곳에서 연예인 트레이너로 유명한 강사로부터 1대1 퍼스널 트레이닝(PT)을 받는다. 비용은 시간당 10만원이다. 일주일에 3번 정도 이용한다. 그가 이곳에서 ‘몸짱’이 되기 위해 쓰는 비용은 한 달에 150만원 정도다. D씨는 “똑같이 한 시간을 운동하더라도 별다른 지도 없이 할 때와 PT를 받을 때의 몸 상태가 확연히 다르다”면서 “운동으로 1년에 차 한 대 값을 쓰지만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C씨도 아파트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에서 1대1 웨이트 트레이닝을 받는다. 역시 한 시간에 10만원, 주 5회를 한다. 한 달에 200만원 정도 쓰지만 만족도가 높다. C씨는 “한때 골프도 배웠지만 체질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면서 “꾸준히 운동을 하는 덕분에 허리와 부인병이 좋아진 것은 물론 취미인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체력도 생겼다”고 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고급 피트니스 클럽도 상위 1% 부유층이 많이 찾는 운동 장소다.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6성급 리조트형 호텔의 피트니스 클럽 보증금은 1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연 500만원의 회원비가 추가된다. 이 클럽은 강남의 ‘젊은 엄마’들에게 인기다. 엄마가 운동하는 동안 자녀를 돌봐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스키, 승마 등 강습도 무료로 시켜주기 때문이다. 인근의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 역시 1인당 보증금 7000만원에 연 회원비가 400만원이다. 이곳은 돈만 있다고 회원이 될 수는 없다. 기존 회원 2명이 추천을 해 줘야 회원 자격이 주어진다. 회원들이 친구 등을 불러 가벼운 파티를 할 수 있도록 장소와 뷔페식 음식도 제공한다.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중소기업 사장 E(53)씨는 “단순히 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라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사람들이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사교 클럽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했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남산 인근 특급호텔 피트니스 클럽도 부유층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클럽은 조지 소로스, 잭 웰치 등 억만장자들이 애용하는 미국 뉴욕의 ‘시타라스 피트니스’와 제휴해 화제를 불렀다. 여기서 제공하는 ‘시타라스 프로그램’은 먼저 고객이 개인 트레이너와의 상담을 통해 프로그램을 정한다. 이후 체형과 신체 특성 등을 상세히 측정한 뒤 이를 기반으로 개인 트레이너가 설계한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이어 운동 효과와 향후 건강관리 계획 등을 조언받게 된다. 청담동에 거주하는 변호사 F(47)씨도 이 호텔 피트니스 클럽 회원이다. F씨는 “4000만원 정도인 보증금을 한 번에 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수영장 수질이나 운동기구의 질이 다른 헬스클럽보다 월등하다”면서 “사람들과 부딪치지도 않고 조용한 편이라 일주일에 2번 정도 가서 운동한다”고 했다. 목동에 사는 자산 50억원대의 교수 G(57)씨는 사이클 마니아다. 그는 완성품 사이클을 사는 게 아니라 전문업체에 의뢰해 고가의 외제 부품을 수입한 뒤 스스로 조립한다. 부품값은 프레임 500만원, 크랭크 200만원, 휠세트 500만원 등 총 1200만원이 넘는다. 스위스(스캇)와 프랑스(마빅) 브랜드들이다. G씨는 “자칫 내리막길에서 체인이라도 끊어지면 큰 사고로 연결되는 만큼 자전거의 질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고 했다. ▲ 암 두 번, 치료는 호사…참는다, 앓을 권리 없는 가난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7>절대빈곤층의 건강관리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저소득층 22%만 빈곤 탈출…역대 최저

    저소득층이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 중산층 이상으로 이동하는 ‘빈곤탈출률’이 역대 최저인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보건사회연구원의 2014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조사에서 저소득층이었던 사람 가운데 중산층 혹은 고소득층으로 이동한 사람의 비중은 22.6%로 조사됐다. 저소득층 4.5명 중 1명만 빈곤 상태에서 탈출한 것이다. 연구원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9차례에 걸쳐 조사를 진행했으며, 모두 5500가구를 상대로 기준연도 대비 당해연도 소득계층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으로 수직 상승하는 경우는 0.3%에 불과했다. 2006년 실시한 1차연도 조사에서 2.5%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아진 것이다. 이처럼 저소득층, 중산층, 고소득층 간 이동이 줄어들고 계층 구조가 더욱 굳어지면서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비율도 상승했다. 2013년 조사에서 75.2%를 기록했던 고소득층 유지비율은 이번 조사에서 77.3%를 기록했다. 중산층과 고소득층 가운데 90% 이상이 2013년에 이어 2014년 조사에도 같은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으로 급락하는 경우는 0.4%에 그쳤다. 이처럼 계층 구조가 고착화되는 것은 고용 형태와 연관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조사에서 임시일용직(계약기간이 1개월 미만)이었던 사람의 83.0%는 여전히 임시일용직이었고, 13.1%는 상용직(계약기간이 1년 이상)으로 고용 형태가 바뀌었다. 상용직 근로자의 92.5%는 고용 형태를 유지했고, 고용주였던 사람의 77.8%도 계속 고용주였다. 원유빈 인턴기자 jwyb12@seoul.co.kr
  • 빈곤층 5명 중 1명 “죽고 싶다”… 구석까지 못 가는 복지 온기

    빈곤층 5명 중 1명 “죽고 싶다”… 구석까지 못 가는 복지 온기

    “지쳤다. 나는 할 만큼 했다.” 지난 24일 지적장애 1급 언니(31)를 보살피다 자살을 선택한 류모(29·여)씨는 한 줄기 빛조차 보이지 않는 팍팍한 현실에 절망했다. 류씨가 살던 대구 봉덕동 원룸은 두 달치 월세(72만원)가 밀렸고, 아르바이트 수입은 넉넉지 않았다. 류씨는 숨지기 전 언니와 함께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음에도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했다. 지난 20일에도 집에서 연탄을 피웠다가 언니가 살려달라며 창가에서 소리치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가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같은 날 서울 신림동에서는 경비원 조모(54)씨가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태워 숨졌다. 조씨는 유서에서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5년 3개월치 추가 수당 900여만원을 받지 못했고, 휴가도 못 갔다”고 회사를 원망했다. 앞서 지난 22일에는 아내의 병시중을 해온 70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목숨을 끊으려 한 사건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소외계층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류씨의 죽음은 지난해 ‘송파 세모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전문가들은 류씨 자매의 비극에서 보듯 정작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에 복지 혜택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송파 세모녀 이후에도 여전한 ‘복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1993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는 9.4명이었지만, 2013년에는 28.5명으로 늘었다. 특히 ‘IMF 구제금융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1998년과 2009년엔 자살률이 전년대비 각각 40.5%, 19.2% 상승했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자살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데 대부분 경제적 이유”라면서 “상대적 빈곤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빈곤층의 채무가 늘고 있으며 이들의 정서적 불안이 높아져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최저생계비 이하 비수급 빈곤층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빈곤층의 20.2%가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2012년 통계청 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자살 충동률이 9.1%로 조사된 것을 고려하면,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립 기회가 있다고 느낀다면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소외계층은 취업도 쉽지 않고, 취업을 하더라도 저임금 비정규직이 대부분이어서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좌절감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안전망’ 확충과 더불어 성공·경쟁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부원장은 “자살 위험군에 속해 있는 소외계층에게는 정신 상담과 함께 긴박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긴급 복지지원 등을 확대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경제 불평등을 줄여나가고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지 않는 한 자살률은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에선 조금만 낙심해도 쉽게 자살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쟁에 뒤처지거나 성공을 하지 않더라도 존엄감을 잃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팍팍한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의 답을 찾다

    팍팍한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의 답을 찾다

    절대적 빈곤은 과거에 비해 줄었다. 하지만 부의 편중과 양극화로 인한 삶의 절박함은 더욱 커져 간다. 물질적 가치가 사람의 가치를 좌우하는 식으로 세상은 피폐해지고 있다. 인문학이 학자와 연구자의 손을 떠나 일반인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는 배경이다.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삶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을 찾는 열망은 더욱 커진다. EBS는 27일 낮 12시 10분 ‘서울인문포럼 2015’ 현장을 담았다. 지난달 14일 열린 제1회 서울인문포럼의 현장 중계다. 김현욱 전 아나운서의 사회와 서울인문포럼 배양숙 집행위원장의 해설이 어우러진 생생한 중계로 인문학의 의미와 함께 사회와 나의 관계성, 인생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 등 근본적 질문이 던져지는 생동감 있는 강연 현장이 공개된다. 특히 소설가 김홍신, 시인 문정희의 뜻깊은 강의는 강연장을 찾은 이들에게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선사한다. 소설가 김홍신은 ‘인생에도 사용 설명서가 있다’는 주제로 강연을 펼쳐 인간에게 주어진 한 번뿐인 인생의 존재 가치와 찬란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한 시인 문정희는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라는 주제와 함께 인문학의 꽃은 문학, 문학 중 최고 보석의 언어는 시임을 언급하며 한국 문학이 가지고 있는 자긍심, 그리고 인문학 정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강연한다. EBS ‘서울인문포럼 2015’는 두 명의 강연자가 전하는 인문학 강의를 통해 희망차고 행복한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줌 인 서울] 혁신교육지구 발표에 희비 엇갈린 자치구들

    [줌 인 서울] 혁신교육지구 발표에 희비 엇갈린 자치구들

    서울시와 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서울형 혁신교육지구의 선정 결과가 발표되면서 자치구들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선정된 지자체는 혁신교육사업을 추진할 동력이 생겼다고 반기는 반면 탈락한 지자체들은 평가 기준과 공정성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시와 시교육청은 지역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강북구 등 11개 자치구를 서울형 혁신교육지구로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사업은 연간 2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혁신지구형과 3억원이 지원되는 우선지구형으로 나뉜다. 혁신지구형에는 강북구와 관악구, 구로구, 금천구, 노원구, 도봉구, 은평구 등 7개 구가 선정됐고 우선지구형에는 강동구와 동작구, 서대문구, 종로구 등 4개 구가 지정됐다. 혁신지구형은 ▲중학교 학급당 학생 수 감축 ▲학교·마을 연계 방과 후 사업 ▲일반고 진로·직업교육 ▲지역 교육공동체 구축 등 4개 필수사업과 개별 특화사업을 벌인다. 우선지구형은 ▲지역 교육공동체 구축 ▲자기주도적 프로젝트 지원 등 필수사업 2개와 자치구 특화사업을 추진한다. 혁신지구에 선정된 자치구 관계자는 “선정된 대부분 자치구가 재정 형편이 어려운 곳”이라면서 “서울의 교육격차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탈락한 지자체는 후유증을 겪을 전망이다. 공모에서 탈락한 A 구청장은 “지역마다 겪는 교육 문제가 다른데 지역 빈곤아동 수를 기준으로 또 다른 줄세우기를 하는 것은 혁신교육의 방향에 맞지 않는다”면서 “지역 교육을 바꿔 보자고 준비한 주민들의 실망감을 어떻게 할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에 선정된 자치구 관계자도 “시와 교육청의 자치구 내부 상황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면서 “일률적으로 20억원짜리 사업을 만들 게 아니라 지역 상황에 맞게 적정 재원을 분배해 더 많은 지역에서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불만 때문인지 시교육청은 “혁신지구를 지속 확대하고 2016년에 추가 지정 공모를 할 것”이라면서 “희망 자치구는 예비 서울형 혁신교육지구로 선정해 내년 공모 시 인센티브를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삼시세끼 3000원… 밥상이 풀밭이다

    삼시세끼 3000원… 밥상이 풀밭이다

    ■ 대한민국 상위 1% 부유층과 하위 9.1% 절대빈곤층의 카트에 담긴 먹거리는 어떻게 다를까. 소득 격차에 따른 식료품 구입 패턴 차이 등을 면밀히 분석한 인터랙티브 기사인 ‘카트 속 다른 세상’을 감상하세요. ☞<카트 속 다른 세상> 보러 가기 클릭 (http://interactive.newsjel.ly/seoulnews) “못사는 집 엄마들은 5000원 넘게 사 가는 일이 거의 없어. 국물 낼 때 꼭 필요한 청양고추 정도나 사 간다니까.” 경기 광명의 한 전통시장 채소가게인 ‘G상회’ 주인 정모(61)씨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많이 사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이곳에는 주변 임대아파트 등에 사는 극빈층 주부들이 장을 보러 많이 온다. 정씨는 10년 넘게 시장통에서 장사하면서 “허름한 옷차림의 주부가 사가는 채소라고는 기껏해야 고추나 값싼 푸성귀 정도”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달았다. 이 가게에서는 800g짜리 무 1개에 1000원, 양파 2㎏에 2000원, 당근 1㎏에 2000원 등 주변 마트보다 싸게 판다. 하지만 극빈층 주부들은 이마저 부담스럽다. 그는 “20일에 한번씩 와서 나물 1000~2000원어치만 사 가는 할머니가 있는데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오시는 모습을 보면 ‘장 봐줄 자식도 없나’ 싶어 한 줌이라도 더 드린다”고 했다. 같은 시간 시장 내 생선가게 종업원이 “동태 한 손(2마리)에 5000원!”이라고 목청껏 외치며 손님을 끌었지만 주부들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한 정육점 주인은 “형편이 어려운 분들은 국거리용으로 돼지고기 뒷다리를 사 가거나 삼겹살을 사는 게 전부”라고 했다. 절대빈곤층의 식탁에서 보기 힘든 대표적 식품은 육류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부 김모(42)씨는 월 90만원인 수급비 중 10만원을 식료품비로 쓴다. 식구 4명(김씨와 남편, 중학생, 고등학생인 두 딸)이 넉넉히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이 때문에 김씨 가족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양을 최대한 불려 네 식구가 함께 먹을 수 있는 반찬을 선호한다. 찌개에 넣는 재료라고 해봐야 김치, 된장 외에 호박, 양파 등이 고작이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고기 반찬을 해 달라”고 투정하지만 빠듯한 살림 탓에 시장에 가도 고기에 손이 가지 않는다.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오는 매달 20일에 삼겹살을 사다 먹는 게 김씨 가족이 누리는 최고의 호사다. 그는 “인근 재래시장에서는 삼겹살 두 근을 마트보다 싸게 1만원이면 살 수 있다”면서 “소고기는 아이들 생일 때 미역국에 넣으려고 1년에 딱 두 번 산다”고 했다. 과일도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식재료다. 독거 빈곤층인 임모(41)씨는 막노동 등으로 매달 80만~90만원을 버는 것이 전부라 과일을 사 먹은 적이 거의 없다. 식당에서 과일 한 쪽을 후식으로 내놓는 행운이라도 만나면 간신히 맛만 보는 수준이다. 임씨는 설, 추석 등 명절에 택배 아르바이트를 곧잘 하는데 과일 선물을 배달하다 보면 먹고 싶은 욕구를 참기 어렵다. 그는 “택배 물품으로 귤박스가 들어오면 살짝 뜯어 5~6개를 빼먹고는 다시 테이프로 붙여 놓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 동작구의 한 마트 관계자는 “혼자 가난하게 사시는 할머니인데 마트에 와 과일을 사지는 못하고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분들도 계신다”면서 “마음이 편치 않아 멍든 과일을 공짜로 드리기도 한다”고 했다. 절대빈곤층에게 ‘외식’이란 단어의 말뜻은 ‘참아야 한다’는 것에 가깝다.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부 윤모(44)씨는 TV 맛집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게 낙이다. 그렇다고 소개된 맛집을 찾아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윤씨는 “비싼 음식을 사 먹을 돈도 없고 차 타고 멀리 나갈 형편도 안 된다”면서 “맛있는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조금 해결되는 것 같다”고 위안했다. 극빈층은 싼 가격을 선호하다 보니 품질이 낮거나 건강에 이롭지 않은 식품을 사 먹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광명시장의 H과일가게 주인은 “사과를 싸게 팔기 위해 흠이 난 ‘하(下)품’을 조금 가져다 놨다”면서 “사과 6~7개를 5000원에 팔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동작구 상도동의 D마트 직원은 “바나나 중 시간이 지나 껍질이 검게 변한(갈변현상) 제품은 원래 판매가보다 2000원 싼 2800원에 판다”고 했다. 빈곤층 고객이 많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G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어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물건을 대량으로 떼어와 가격을 낮춰 20~30% 정도 싸게 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모든 상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저렴한 물건을 떼어 오기 위해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짧게 남은 물건도 들여온다”면서 “물건 자체에 흠이 있지는 않고 상품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법을 어기는 현대판 ‘장발장’들도 있다. 광명시장 내 한 슈퍼마켓은 지난해 매장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를 고화질로 교체했다. 슈퍼 물건을 조금씩 가져가는 좀도둑 탓이다. 슈퍼 직원은 “우리 가게의 좀도둑은 다른 곳과 좀 다르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어린아이가 과자나 음료수를 훔치다 붙잡히는데 이곳에서는 40~60대 성인들이 물건을 몰래 챙기려다 곧잘 적발된다는 것이다. 고작 몇천원짜리 물건을 살 형편이 되지 못해서다. 이 직원은 “하루에 한 번꼴로 인공조미료 등을 훔치려다 걸리는 어른들이 있다”고 했다. 먹거리 취약계층은 방학 기간 아동·청소년들이 대표적이다. 초교 6학년인 고모(12·서울 구로구)양은 다른 또래처럼 방학을 마냥 반길 수 없다. 먹는 문제 때문이다. 학기 중에는 그나마 영양을 갖춘 무상 급식을 점심으로 먹을 수 있지만 방학에는 라면, 과자 등을 주식 삼아 버텨야 한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버는 월 70만~80만원의 소득으로 고양과 부모, 2살 어린 동생이 한 달을 버텨야 해 넉넉히 사 먹을 형편이 못 된다. 고양의 어머니도 아르바이트로 배달일 등을 해 아이의 끼니를 제때 챙겨 주기 어렵다. 고양처럼 방학철 먹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제법 많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김은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부모가 낮시간 집을 비우는 저소득층 아동에게는 지방자치단체가 한 끼에 3000~5500원가량의 음식 쿠폰을 준다”면서 “하지만 시골 아이들은 이 쿠폰을 쓸 수 있는 식당이나 편의점을 찾기 어려워 굶기도 한다”고 전했다. 세심한 건강관리가 필요한 노인도 돈이 없으면 먹을거리를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렵다. 서울 동작구의 달동네인 ‘밤골마을’의 독거 노인 윤모(84·여)씨는 하루 세 끼를 쌀죽으로 해결한다. 아들 2명과는 명절 때도 보기 어렵지만 부양 능력을 갖춘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신청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이 때문에 윤씨의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20만원과 서울시의 지원금 15만원 등 35만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는 마트에서 식재료를 제대로 사 먹기 어렵다. 인근 N교회에서 김치와 무조림 등 밑반찬을 가끔 가져다주는 것을 그나마 죽에 곁들여 먹는다. 윤씨는 “아는 과일장수가 가끔 바나나를 가져다주는데 이 과일을 잘 으깨어 죽에 넣어 먹는 것이 내가 먹는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했다. 장년층 남성도 먹는 문제에 취약하다. 서울의 한 주민센터 관계자는 “특히 50~64세의 혼자 사는 남성이 먹는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65세가 넘으면 복지관에서 밑반찬 서비스라도 받지만, 그 직전 나이대는 전혀 관리대상이 안 된다”고 했다. 이들 남성은 공사장에서 일할 때는 ‘함바집’(건설현장의 간이식당) 밥이라도 먹지만 평소에는 집에서 찬물에 밥 말아 김치를 올려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학생 등 청년빈곤층도 먹는 문제 앞에서 서러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대학 입학 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절대빈곤층으로 추락한 대학생 이모(26)씨는 아르바이트가 끝난 뒤 지쳤을 때 맥주 한 모금이 절실하지만 늘 주머니 사정 때문에 머뭇거린다. 큰 맘 먹은 날에는 을지로 3가의 허름한 맥줏집을 찾아가는데, 그가 시키는 안주는 늘 1000원짜리 ‘노가리’다. 자기 돈으로 ‘치맥’(치킨과 맥주)을 주문하는 것은 꿈도 못꾼다. 이씨는 “친구들에게 자주 얻어먹다 보니 이젠 미안함을 넘어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극빈층 ‘스튜던트 푸어’인 서울의 한 사립대생 정모(24)씨는 두 달에 한 번씩 꼭 헌혈을 한다. 햄버거 교환권이나 영화 관람권을 주기 때문이다. 정씨는 “평소에는 1000~2000원이 아까워 햄버거가 먹고 싶어도 편의점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일이 많다”면서 “가끔 친구들이 5000~6000원 하는 순대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돈 없다고 하기가 자존심이 상해서 난감하다”고 했다. 유대근 이두걸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 [서울신문 특별기획-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당신은 어떤 밥을 먹고 있나요

    [서울신문 특별기획-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당신은 어떤 밥을 먹고 있나요

    서울신문은 특별기획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제6회 상위 1% 부유층과 하위 9.1% 절대빈곤층의 음식 편을 오늘 보도합니다. 사진은 정연호 기자가 촬영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위의 QR코드로 들어가면 빈곤층과 부유층 가정의 식료품 구입 패턴 차이 등을 분석한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 ‘카트 속 다른 세상’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특별기획팀
  • 간장 한병 300만원… 요리가 품격이다

    간장 한병 300만원… 요리가 품격이다

    ■ 대한민국 상위 1% 부유층과 하위 9.1% 절대빈곤층의 카트에 담긴 먹거리는 어떻게 다를까. 소득 격차에 따른 식료품 구입 패턴 차이 등을 면밀히 분석한 인터랙티브 기사인 ‘카트 속 다른 세상’을 감상하세요. ☞<카트 속 다른 세상> 보러 가기 클릭 (http://interactive.newsjel.ly/seoulnews) “요즘 믿을 만한 먹거리가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직접 길러 먹기로 했죠.” 100억원대 자산가인 주부 조모(53·서울 서초구 잠원동)씨 가정은 몇 해 전 청정지역으로 소문난 전남의 한 시골 마을에 밭 2500평(8264.5㎡)을 샀다. 집에서 먹을 채소를 직접 재배하기 위해서다.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남편은 물론 조씨도 평일에는 살림으로 바쁜 탓에 매달 두세 번밖에는 현장에 내려가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농사는 지역 농민에게 부탁했고 대신 밭 일부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조씨는 “배추와 무, 파, 상추, 고구마, 생강까지 계절별 채소를 넉넉히 재배해 우리 가족 4명과 친척, 지인들에게 돌려 함께 먹는다”면서 “형편이 넉넉한 사람 중엔 서울 근교에 텃밭을 사 채소를 직접 길러 먹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상위 1% 부유층은 조씨처럼 채소를 직접 재배하거나 유기농 식품 구입만 고집한다. 금융업계 임원의 부인 박모(55·종로구 평창동)씨는 믿을 만한 먹거리를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음식이 건강으로 직결된다고 보는 그녀는 “시골에서 농장을 하는 지인에게서 친환경 농작물을 매주 한 번씩 주문하고 집에서 요리할 때도 설탕은 전혀 넣지 않고 대신 효소를 쓰는 등 건강하게 먹으려 한다”고 했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이어 주는 생활협동조합(생협)에 가입하는 인구도 늘었다. 아이쿱 생협 관계자는 “2004년 1만 4926명이던 가입자 수가 10년 만에 14.6배 늘어 지난해 21만 8585명이 됐다”면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먹거리 이슈가 터질 때마다 가입자 수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강남구 청담동의 고급 마트인 ‘S 푸드마켓’은 고소득층의 식자재 소비 패턴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이 동네에 사는 주부 박모(52)씨는 매주 한 번씩 이곳에서 장을 보는 단골고객이다. 외아들이 영국 유학 중이어서 중소기업 사장인 남편과 단둘이 사는데도 한번 장볼 때마다 ‘큰 손’이 된다. 꼭 필요한 식자재만 장바구니에 골라 담지만 몇개 짚다 보면 금세 20만원을 넘는다. 유기농이 많은 이곳 제품들은 일반 마트 가격보다 월등히 비싸다. 이곳에서 가장 잘 팔린다는 ‘명품쌀’은 1㎏에 1만 2000원이고 머스크멜론 1통은 4만5000원, 친환경 무 1개는 3100원이다. 보통 마트에서는 일반미 1㎏이 2100원, 머스크멜론과 무는 각각 1만 5000원, 1200원이라는 점에서 2~6배나 비싼 셈이다. 하지만 박씨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유기농인 데다 신선도가 다른 곳에서 파는 식품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기자가 둘러본 S 푸드마켓에는 10알에 1만 2000원 하는 ‘하얀 오골계란’과 1근(600g)에 15만원 하는 ‘파이브(5) 스타 암소한우 꽃등심’ 등 고가 제품이 즐비했다. 특히 명인이 제조했다는 300만원 짜리 씨간장(500㎖)은 가격표를 믿을 수 없어 여러 차례 눈을 씻고 확인했을 정도다. 마트 관계자는 “300만원짜리 간장은 매장의 품격을 보여 주기 위한 상품이지만 명절 때면 실제 사가는 고객도 있다”고 했다. 좋은 음식재료를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강한 조리법을 직접 배우려는 부유층도 많다. 주부 김모(51·송파구 잠실동)씨는 대기업 임원인 남편이 8년 전 당뇨를 앓기 시작한 이후 직접 건강식을 만들고 있다. 유기농 우렁농법을 활용하는 농가로부터 쌀을 직접 구매하는 등 잡곡 6~7개를 섞어 밥을 짓고 채소도 유기농 제품만 고집한다. 이씨는 이마저도 부족함을 느껴 지난해 유명 요리연구가로부터 1년간 채식 요리법을 배웠다. 수강료는 250만원. 김씨는 “워낙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1년 넘게 대기해 어렵게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심기현 숙명여대 교수(전통식생활문화전공)는 “우리 학교 한식조리과정에는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이 참여해 간장, 된장 등 전통 장류 제조법을 배워 가기도 한다”고 했다. 마음이 맞는 주부 4~6명씩 모여 요리연구가 등에게 조리법을 배우는 ‘요리 그룹과외’는 이제 흔한 문화가 됐다. 주부 이모(48·강남구 대치동)씨는 “‘방배동 선생님’, ‘청담동 선생님’같이 주부들 사이에서 유명한 요리연구가가 있는데 주로 이 선생님들의 제자들이 가르친다”면서 “5명이 한번 수업 들을 때 각자 25만~30만원을 선생님에게 드리면 돼서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다. 입맛 까다로운 부유층 미식가는 요리사를 틈틈이 집으로 불러 별미나 반찬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대형병원장의 부인 유모(52·강남구 압구정동)씨는 매주 한 번씩 경남 중소도시에서 손맛 좋기로 유명한 종갓집 며느리를 집에 부른다. 요리를 부탁하기 위해서다. 유씨 가족은 최근 병원이 있는 경남 지역에서 서울로 이사했는데 병원 구내식당에서 일하던 이 여성의 음식 맛을 잊지 못해 상경을 권한 것이다. 요리사가 집에 와 하루 4~5시간 요리를 해주면 10만원을 준다. 이 여성은 유씨가 소개해준 여섯 가정에서 출장 요리를 해주는 것만으로 한 달에 250만원가량을 번다. 유씨는 “종갓댁 며느리답게 궁중요리부터 양반댁 요리까지 못 하는 게 없다”면서 “최근 장어탕을 만들어 줘 친구들에게 돌렸더니 ‘지금껏 맛본 최고의 장어탕’이라며 극찬하더라”고 했다. 해외 ‘로컬푸드’(현지식)의 맛을 국내에서 그대로 즐기려는 상위 1%도 늘고 있다. 대형 백화점의 명품 식품관이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 채소나 과일, 양념류 등을 구비하고 있는 것은 이런 부유층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셜롯(양파 맛이지만 향미가 더 뛰어난 채소)이나 파스닙(당근과 비슷하지만 달콤한 채소), 앤다이브(지중해 연안에서 나는 꽃상추) 등 이름조차 생소한 식자재는 프리미엄 마트의 채소 코너를 널찍이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서울 모 대학의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프랑스 현지의 맛을 살리려면 재료가 중요한데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명품 식품관에 가면 못 구하는 재료가 없다”고 했다. 전 세계의 별미를 찾아 해외 미식 투어를 다니는 부유층 식도락도 많다. 청담동에 사는 주부 박모(42)씨는 지난해 여름 사업가인 남편, 중학생인 아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4박5일간 ‘미식기행’을 다녀왔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레스토랑 평가서인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최고등급인 별 3개를 받은 레스토랑 4~5곳을 도는 게 목표였다. 해외 맛기행 일정을 전문적으로 짜 주는 한 고급 여행사 관계자는 “박씨 가족처럼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가 현지인들만 아는 지역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면서 “부유층엔 ‘식당은 최고급으로만 다니는 대신 호텔은 5성급이 아니어도 좋다’고 주문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외식 문화도 ‘로컬’을 강조하는 트렌드를 따른다. 음식 문화 전문가인 최지아 온고푸드 대표는 “쿠스쿠스(듀럼 밀을 으깨어 매콤한 스튜와 함께 쪄내는 북서부아프리카 음식)나 하몽(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뒷다리로 만든 스페인 햄) 등 각국 현지음식을 합리적 가격에 파는 식당이 부유층 사이에서 인기”라고 했다. 또 중국 음식이나 이탈리아 음식이 먹고 싶다고 단순히 유명한 중식당,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광둥요리나 사천요리를 잘하는 곳, 이탈리아의 시칠리 요리나 로마 요리에 특출난 곳 등을 찾아 세분화된 맞춤형 식당으로 다니는 것도 특징이다. 도곡동에 사는 주부 송모(40)씨는 “TV나 파워블로거가 소개하는 맛집 정보는 믿지 않고 주변 미식가들이 소개하는 음식점을 주로 간다”면서 “너절하게 많은 음식을 내놓는 곳보다 특정 단품 요리를 잘하는 곳이 좋다”고 했다. 대중화된 음식점이 아닌 특정인만 갈 수 있는 ‘폐쇄형 음식점’도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삶을 즐기려는 상위 1%의 생활 방식이 반영된 결과다. 강남의 한 백화점에는 16석의 ‘프라이빗 룸’이 있는데 초청받은 VVIP(극소수 상류층 고객)만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백화점 측은 비싸게는 600만~1200만원에 달하는 최고급 와인과 함께 최고급 요리를 더불어 선보인다. 상위 1% 중에는 ‘먹는 것이 곧 나를 보여 준다’는 식의 과시적 소비를 하는 경향도 엿보인다. 간혹 S 푸드마켓을 찾는다는 주부 오모(46·서초동)씨는 “주변에 수십만원 짜리 올리브오일로 요리하는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지인이 있는데 ‘나는 이런 재료로 요리해 먹는 사람이야’라고 뽐내는 인상”이라고 했다. 유대근 이두걸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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