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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원순표 역세권 개발’ 2030 청년주택에 민간 상업자들 관심 후끈! 이유는?

    서울시가 고밀도 개발과 청년 주거 문제를 한 번에 잡겠다고 지난달 23일 내놓은 ‘역세권 2030 청년주택’에 건설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08년에 추진한 ‘역세권 시프트’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당시 역세권 용적률을 최대 500%로 높여 장기전세주택을 짓는 사업이었는 데도 철저하게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이른바 ‘박원순표 역세권 개발’로 불리는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설명회가 열린 26일 건설사와 금융, 시행사 관계자, 토지주 등 400여명이 몰려 민간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시 관계자는 “당초 160여명 정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2.5배 이상의 사람들이 찾았다”고 말했다.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은 제2·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묶여 있는 역세권 용도지역을 준주거와 상업지역의 용적률(준주거 400%, 상업 680%)을 적용해 고밀도 개발을 허용한다. 시가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사업자는 주거면적 100% 준공공임대주택을 지어야 한다. 임대의무 기간은 8년이고 연 임대료 상승률 5%이어야 한다. 시는 이중 10~25%를 전용 45㎡ 이하의 소형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해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에 주변 시세의 60~80%에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역세권 시프트’와 달리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차이는 용적률이다. 역세권 시프트는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보장했지만,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은 최대 680%로 더 높다. 시 관계자는 “용적률이 올라간 만큼 사업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월세시대의 도래도 흥행에 한몫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월세시대로 전환된 현실을 반영해 큰 장점”이라며 “오 전 시장의 역세권 시프트는 수익모델이 전세의 분양 중심이고, 사업기간이 길어 금융비용이 부담이었다. 하지만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은 월세로 지속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3년 걸리는 행정절차를 간소화해 6개월 이상 사업기간을 단축하겠다는 복안도 서울시는 내놓았다. 2%의 정책금리 제공도 반가운 소식이다. 일각에서는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이 사업자 중심으로 짜였다고 비판한다. A건설사 관계자는 “준공공임대인데 임대료가 비싼 역세권인 탓에 실제 임대공급가격이 저렴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서울시 전체의 월세가 하향하지 않으면 청년주거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변창흠 SH사장은 “역세권 주변의 소형주택의 공급이 늘어나면 월세 하락 등으로 주거비 부담이 줄어들 수 있고, 늘어난 공공임대가 청년 주거빈곤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인성·기술교육 6대4로 가르친다”

    [글로벌 인사이트] “인성·기술교육 6대4로 가르친다”

    적극·긍정적인 생활방식 심는 게 우선 호텔 견학도 어두운 빨래방부터 데려가 “작년 크리스마스 때 받은 초콜릿인데 아까워서 먹을 수가 없어요.” 백년학교 원보(文博) 교장은 냉장고에 잘 보관된 산타클로스 모양의 초콜릿 과자부터 꺼내 자랑했다. 지난해 학교를 졸업해 중국 최고급 호텔인 베이징 힐튼호텔에 취업한 제자가 준 선물이다. 이 제자는 어려서 케이크를 모르고 자라다가 생일날 어머니가 사 온 작은 케이크를 처음 맛봤다. 돈이 없어 큰 케이크를 사오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제자는 베이커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백년학교에 들어와 마침내 꿈을 이뤘다. 원 교장은 “다음달에는 우리 학교에서 결혼 잔치가 열린다”며 또 다른 자랑거리를 늘어놓았다. 암에 걸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제자가 어엿한 기업의 관리자가 돼 같은 학교 출신의 여자 후배와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다. 학교는 졸업생 커플이 탄생할 때마다 결혼 잔치를 여는데, 이번이 세 번째라고 한다. “제자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게 어디 있겠느냐”고 싱글벙글 웃는 원 교장도 사실 서른두 살에 불과하다. 국유기업에 다니던 중 2006년 회사에서 개최한 백년학교 기부금 전달식에 참석했다가 이곳의 교육철학에 감동받아 이직했다. 설립자인 야오리는 주로 외부 활동을 하며 기부금을 그러모으고, 원 교장은 학생들의 교육과 생활을 책임진다. 원 교장은 “인성교육이 60%이고 기술교육이 40%”라고 강조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활 방식을 심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빈곤 가정의 학생일수록 부모들이 미안한 마음에 응석받이로 키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뭐든지 스스로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교육의 첫걸음이라고 원 교장은 소개했다. 백년학교 학생들을 채용한 기업으로부터 “기쁘게 일하는 자세가 좋다”는 평가를 받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교육은 무척 실용적이다. 이를테면 바닥재가 교실과 복도마다 다 다른데, 다양한 재질을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호텔 견학을 가더라도 화려한 객실보다는 어두운 기계실이나 빨래방부터 데려간다. 3년 과정 중 1년 반은 기업체에 나가 실습을 하면서 기술을 배우기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해당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원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한국 기업과 한류 문화에 특히 관심이 많다”면서 “한국의 더 많은 재능기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中 흙수저 청년들 “보통 사람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히 큰 꿈”

    [글로벌 인사이트] 中 흙수저 청년들 “보통 사람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히 큰 꿈”

    가정 형편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 못 해 기술 배우는 비정규 학교 취업률 100% 中 전역 9곳·베트남·앙골라에도 설립 “미래는 희망적일 거라 믿어요. 그런데 제가 그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됩니다.”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의 ‘백년직업학교’(百年職校)에서 만난 주징(朱?)은 자신을 열아홉 살이라고 소개했지만 초등학생처럼 앳돼 보였다. 스무 살 쉬잉(徐瑩)도, 열일곱 창링(常嶺)도 마찬가지였다. 몇 마디를 나누니 이들이 어려 보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비단결처럼 곱고 긍정적이며 소중한 꿈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소년들이 착한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 꿈을 갖는 게 뭐 그리 대단할까마는 이 친구들이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대견해 보였다. ‘빈곤’이라는 힘겨운 굴레에 좌절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년학교는 농민공 자녀들이 다니는 직업학교다. 의무교육 9년을 마친 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으로, 정규 과정의 학교는 아니지만 취업률 100%를 자랑하는 유명한 기술학교다. 여성 자선사업가 야오리(姚莉)가 2005년 베이징에 처음 설립한 이후 중국 전역에 9개 학교가 생겼고, 앙골라와 베트남에도 설립됐다. 중국에서만 800여명의 청소년이 공부와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현재 베이징 학교의 재학생은 86명이다. 졸업생 2500여명이 각 분야에서 백년학교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간쑤성에서 온 주징은 “호텔리어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호텔 관리를 배우면서 틈틈이 메이크업 기술도 익히고 있다. 쓰촨성에서 온 쉬잉은 베이커리를 차리는 게 목표고, 허난성이 고향인 창링은 근사한 중국요리 전문 식당을 내고 싶다고 했다. 세 친구에겐 똑같은 꿈이 하나 더 있었다. 나중에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어린 시절을 혼자 보내야 했고, 이제는 자신이 돈 벌 준비를 위해 멀리 떠나온 이들에게 부모님과 고향은 늘 그리운 대상이다. 이들은 대학 입학을 준비하거나 대학생이 된 또래들을 부러워할까? 창링은 “어차피 각자 갈 길이 다르지 않으냐”면서 “대학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배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쉬잉은 “어릴 적에는 대학에 꼭 가고 싶었지만 지금 이 학교에 만족한다”며 “대학에 간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답했다. 주징은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성실과 책임, 그리고 인생을 배운다”고 말했다. 백년학교 운영의 원동력은 수많은 사람의 기부에서 나온다. 학교로 쓰이는 허름한 빌딩과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사, 통학버스도 모두 기부받은 것이다. 복도에는 기부자들의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한 해 기부자가 1000여명에 이른다. 중국인은 물론 포드, 노키아, DHL 등 수많은 외국 기업 명단도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받은 기부금은 2억 2000만 위안(약 388억원)이다. 투명한 운영을 위해 베이징 시정부, 회계기업 딜로이트, 공산주의청년단 산하 중국청소년기금회로부터 3중의 회계감사를 자청해 받고 있다. 기부의 혜택을 받으며 그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학생들도 매일 1위안(약 176원) 이상 기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지금까지 학생들이 모은 기부금은 115만 위안(약 2억원)으로, 후배들을 위해 계속 적립된다. 기부의 핵심은 역시 ‘교육 기부’다. 수많은 기업이 학생들의 실습을 위해 작업장을 선뜻 빌려준다. 선생님들도 모두 재능기부자다. 11년 동안 500개의 강좌를 개설할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전문가와 교사들이 재능기부에 나섰기 때문이다. 재능기부자들이 곧 선생님이어서 이 학교 선생님은 무려 1700명에 이른다. 이날은 마침 한국 기업 CJ푸드빌이 개설한 커피 수업이 열리고 있었다. CJ푸드빌 소속의 중국인 바리스타가 커피의 역사와 종류를 재미있게 풀어냈고, 학생들은 한마디도 놓칠 수 없다는 듯 꼼꼼히 필기했다. CJ푸드빌은 제빵과 요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해 실습을 시킨다. 이 같은 기부는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CJ 관계자는 “우리가 직접 학생을 가르친 뒤 그들을 채용하면 기업 이미지뿐만 아니라 인력 수급 및 현지 시장 확대에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학교는 기업이 요구하는 강좌를 열고, 기업은 학생을 직접 훈련시키는 상생 모델이 백년학교의 최대 강점이다. 백년학교의 교훈(校訓)은 ‘학주보통인’(學做普通人)이다. “열심히 배워 보통 사람이 되자”는 뜻이다. 학교는 보통 사람이 되기 위해 첫째 신체가 건강해야 하고, 둘째 시비를 가릴 줄 알아야 하며, 셋째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소박해 보일지 모르나 태어나면서부터 가난과 마주한 농민공의 자녀들에겐 절박한 꿈이다. 가난 속에서도 미소와 용기를 잃지 않는 백년학교 학생들이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날 중국은 더욱 강력한 나라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사진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In&Out] 젊은 개발 컨설턴트 양성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자/이병국 전 한국외교협회 국제개발전략센터 이사장·전 수단 대사

    [In&Out] 젊은 개발 컨설턴트 양성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자/이병국 전 한국외교협회 국제개발전략센터 이사장·전 수단 대사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매우 어렵단다.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희망을 포기한 청년들이 안타깝고 이들이 이끌어 갈 우리나라의 미래도 걱정이다.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희망을 다시 되찾아 줄 수 있을까. 그들만 탓할 수 없다. 부모 세대인 우리들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일자리 구하기가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국내 현실은 암담하지만 시선을 국제 무대로 돌려 보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구촌 전체의 사정에 견주어 보면 우리 젊은이들은 이 땅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선택받은 상위 1%에 속한다. 유엔 새천년개발목표(MDGs) 달성 시한이 종료된 오늘날에도 세계 인구 71억명 가운데 8억명 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해마다 630만명의 어린이들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굶어 죽고 있다. 불과 60여년 전만 해도 우리 모습이 이랬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원조를 받는 빈곤국이 아니라 원조를 주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청년들은 신체 건강하고 정신 건전하고 두뇌는 매우 총명하다. 아프리카를 포함해 해외에서 만난 우리 청년들은 능력이 출중했고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길이 보인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무작정 아프리카로 가라고 할 순 없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위험하고 사업도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와 부모 세대가 우선 디딤돌을 놔 줘야 한다.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운영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같은 기관들이 나서 이들을 ‘국제개발컨설턴트’로 양성하는 방법이 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우리 퇴직 외교관들도 기꺼이 오지에서 일하며 체득한 노하우를 ‘재능기부’할 것이다. 우리는 ODA 원조국이라 자화자찬하지만 국제적 위상은 초라하다. 국제 ODA 규모(150조원)가 사상 최대로 확대돼 최근 개발도상국 조달 시장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경쟁은 고조되고 있으나 우리 기업의 수주 노력이나 국제 조달 실적은 매우 저조하다. 반면 우리나라 ODA 프로그램은 수혜국뿐 아니라 해외 원조 역사가 길고 원조 액수도 큰 미국·독일 등 선진국도 주목하고 있어 활용 가치가 높다. 그럼에도 정작 국내에서 이를 평가하고 컨설팅해 줄 수 있는 민간 전문가가 극히 부족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젊고 유능한 개발컨설턴트를 양성하는 일이 급선무인 것이다. 유엔 등 국제기구들은 한국 기업이 컨설팅 분야에서 약하고 현지어 구사 능력 및 유사 분야 실적을 갖춘 인력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상대국 현지 상황과 수요를 고려한 맞춤형 프로젝트를 주문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발전모델’만 강요하지 말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지난 50여년간 추진해 온 선진국들의 원조 형태는 이미 ‘원조 피로 현상’을 보였다. 우리는 이러한 과거의 실패 사례를 거울삼아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한다. 즉 개발컨설팅 육성을 통해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 우리 청년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마련해 주며, 정부가 유엔 지속가능 개발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열린세상] 4·13 총선은 불평등·불공정 사회에 대한 경고다/조인호 데이터엔비욘드 대표이사

    [열린세상] 4·13 총선은 불평등·불공정 사회에 대한 경고다/조인호 데이터엔비욘드 대표이사

    4·13 총선이 이런저런 이유로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온 원인에 대한 분석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다. 필자는 지난 6년의 보수적 기조 아래서 강화된 현재의 사회적 구조에 대한 미래세대들의 불신과 불만이 높아진 20대 선거 참여와 야권 쏠림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이번 선거의 해석에 동의한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우리 세대에 와서 훨씬 더 가속화돼 가고 있는 것은 이미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으로 전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이러한 불평등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구성원들이 다수라는 것이다. 불평등 구조의 고착화와 이에 대한 반발, 갈등 구조의 확산은 한국 사회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국가를 넘어 국제적인 부의 불평등과 빈곤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함으로써 가톨릭 공동체를 넘어 폭넓은 존경을 받고 있다. 파나마페이퍼스는 일부 사회 상류층의 부도덕성의 민낯을 드러내는 동시에 일반인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고착화돼 가는 불평등 구조를 개선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기준이 되곤 하는 것이 자본이다. 재화나 용역의 생산에 사용되는 자산이라는 사전적 정의보다는 축적과 양도가 가능한 자원으로 자본을 이해하는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 자본’, ‘문화자본’과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형성할 수 있게 했다. 사회적 자본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필자가 이해하는 사회적 자본은 자원의 동원이 가능한 인적 연결망의 양과 질이다. 부르디외가 개념화한 문화자본은 문화 취향의 계급적 차별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상징적 자원이다. 이제 불평등은 경제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영역에서 중첩되고 강화되고 있다는 데 합의가 존재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이러한 불평등의 전 생활영역 확산과 고정화는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판단과 직결된다. 공정성도 결과공정성, 형평공정성, 절차공정성, 상호작용공정성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이 가운데 결과공정성은 투입에 따른 결과의 공정성 여부 판단에 근거하며, 형평공정성은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한 공정성 판단 영역이다. 절차공정성은 자신과 관련된 의사결정의 과정과 방법, 수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반면, 상호작용공정성은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쌍방 간 존경과 존엄성의 인정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많은 연구가 구성원들의 조직 및 사회에 대한 만족이 절차공정성과 상호작용공정성에 대한 인식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불공정성의 범위는 결과공정성과 형평공정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미래와 직결되는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가 봉쇄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과 수단의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들은 개인으로서의 존엄을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의사결정의 참여자가 되기보다는 수혜의 대상 혹은 사회적 부담으로 각인되고 있다. 4·13 총선의 결과를 받아 안은 정치인과 정당들은 아마도 조만간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방안들을 쏟아 내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과거처럼 소득 불균형을 완화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불평등의 구조를 개선하거나 구성원들이 느끼는 사회적 소외와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경제적 불평등의 개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분배의 불평등을 내생적으로 가진 사회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상존하는 사회임을 받아들인다면 불평등 구조 개선의 기준과 절차, 협상의 과정에 대한 이해가 의사결정자들에게 구해져야 한다. 또한 그 대상이 되는 개인 혹은 집단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엄을 인정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시 그 출발은 소통이다.
  • 경찰서 오가던 아이들, 이제는 꿈을 던져요

    경찰서 오가던 아이들, 이제는 꿈을 던져요

    학교폭력 가해자·탈북 출신 학생 포함 “사고 치던 과거 잊고 공부도 열심히 하죠” “프로야구 출신 선수들이 와서 가르쳐 주니까 정말 좋아해요. 이제 야구단에 사고 치는 아이들도 없고 학교도 얼마나 열심히 다니는지 몰라요.” 21일 서울 광진구 구의야구공원. 신모(15)군을 포함한 209명의 청소년 야구 선수가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고 들뜬 표정으로 모였다. 이들 중에는 다문화나 탈북, 빈곤 가정 출신 청소년은 물론 학교폭력 가해자로 경찰서를 오가던 학생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날 개막한 ‘2016 서울경찰 청소년 야구단 리그’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청소년 야구단 리그는 2013년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동대문푸르미르’ 야구팀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됐다. 위기 청소년에게 운동을 통한 선도 효과가 나타나면서 성동 위너스, 광진 프렌즈, 종암 아자아자, 관악 두드림, 양천 히어로즈, 송파 드리머즈, 수서 신바람 등이 생겨났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최익성씨가 운영하는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로부터 배트와 글러브 등의 야구용품도 후원받았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 코치와 감독도 재능 기부에 나섰다. 각 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은 야구단을 관리하고 야구 연습장 섭외를 맡았다. 야구를 좋아하던 신군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야구 선수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신군의 담임선생님이 종암 아자아자를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신군은 “경찰관 아저씨 덕분에 야구를 할 수 있게 됐고, 지난해에는 우리 팀이 우승까지 했다”며 “반드시 훌륭한 프로야구 선수가 돼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2선 후퇴론·세불리기… 새누리 세력 재편 ‘점화’

    2선 후퇴론·세불리기… 새누리 세력 재편 ‘점화’

    총선 참패 이후 새누리당의 계파별 세력 재편이 점화됐다. 다음달 3일 당선자 총회에서 선출될 원내대표를 향한 물밑 경쟁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오는 6월 열릴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이런 계파 내부 균열 및 새 인물군 경쟁은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계 모두 총선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가운데 특히 친박계 핵심은 ‘2선 후퇴론’ 협공을 친·비박계 양쪽에서 받고 있다. 유력 당권 주자로 진박 감별사 역할을 했던 최경환 의원, 서청원 전 최고위원이 주로 공세 대상이다. 총선 이후 자중 모드인 최 의원 측 관계자는 21일 전당대회 출마에 대해 “그런 것을 말할 때도 아닐뿐더러 원점에서 고민하며 주변 의견을 듣고 있다”고 전했다. 최 의원은 전날 대구·경북 당선자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총선 책임론에서 한발 떨어진 친박계는 결이 다르다. 부산 4선 고지에 오른 유기준 의원은 “공천 파동의 주역들은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겨냥하면서도 “모든 친박이 석고대죄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며 ‘친박당권론’을 주장했다. 유 의원은 전대 출마 쪽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수도권에서 4선에 당선된 홍문종 의원도 “지금은 당·청이 찰떡궁합이라도 우리끼리는 (일)할 수가 없다”고 여소야대 구도를 지적하며 대야협상론을 폈다. 홍 의원은 원내대표 출마를 검토 중이다. 신박계 5선 이주영 의원의 당 대표 추대론이 나오는 데는 이런 친박계 내부 사정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공천 파동에서 비켜 서 있었던 이정현 의원도 전대 출마를 공식화했다. 4선 정우택, 정진석 의원도 충청대망론을 앞세워 각각 물밑 행보에 나섰다. 비박계 역시 쇄신 주도권 및 김무성 전 대표 이후 당권을 놓고 인물 경쟁에 가세했다. ‘새누리당 혁신모임’ 간사인 황영철 의원은 “공천·경선·선거 과정에서 진박·친박 논리를 펼친 사람들은 당 지도부 선거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며 “당이 정말 변해야 할 것은 친박·비박 프레임(틀)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모임의 하태경 의원도 이정현 의원이 ‘대통령을 비난할 거면 당을 떠나라’고 한 발언에 대해 “진박 시리즈 2탄을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보여질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비박계에선 수도권 5선 중진 정병국, 심재철 의원이 전대 출마에 무게를 싣고 있다. 다만 친박계보다 우위에 서서 당을 이끌기에는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4선 나경원, 김정훈, 김재경, 이군현 의원은 원내대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양 계파 모두 선거 참패의 후유증 속에 쇄신의 뚜렷한 대안이나 우월한 인물군 없이 빈곤의 악순환만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월등하다. 친박계 출신으로 혁신모임에 가담한 이학재 의원은 “반성 없이 또 분파 간 자리 나눠 먹기에만 골몰하면 안 된다. 쇄신 경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3선 중진으로 거듭난 쇄신파가 대안 세력의 한 축을 이룰지도 주목된다. 탈당파의 향후 역할론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해진 의원은 이날 “유승민 의원이 복당해 당 개혁, 국정 쇄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1대1 결연’ 민간 참여 활발… 더 강력해진 동대문 복지

    [자치단체장 25시] ‘1대1 결연’ 민간 참여 활발… 더 강력해진 동대문 복지

    1970년 어느 추운 겨울날, 16살 소년은 상경한 동네 형 주소 하나만 들고 전라남도 나주에서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4남 1녀의 셋째인 그는 ‘농사를 지으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대학도 가고 싶었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가 낮에는 신문을 돌리고 저녁에는 신문보급소 한쪽에서 공부하며 고달픈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얄팍한 침낭에 의지한 채 추운 겨울을 몇 해 보냈다. 낮에 돈 벌고 저녁에 공부하는 청년이 혼자만은 아니었겠지만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1976년 어렵게 부산 동아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지만 1979년 부마항쟁의 주동자로 몰리면서 보안사 지하실에서 36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헌병대와 교도소를 거쳐 다시 사회로 나왔다. 덕분에 대학 졸업까지 12년이 걸렸다. 참담한 심정이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던 사람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1985년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협)의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김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러던 그에게 김 전 대통령이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는 휘호를 써주었다. 동대문과는 당시 최훈 국회의원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었다. 우여곡절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추위와 외로움에 떨던 신문팔이 소년이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의 뜻을 행하며 이제는 37만 서울 동대문 주민을 책임지는 지역 수장이 됐다. 민선 2기에 이어 5기와 6기를 이어가며 동대문 발전을 이끄는 유덕열 구청장이 그 사람이다. ●부마항쟁 소용돌이 속 12년 만에 대학 졸업 허기진 배를 수돗물로 채우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의 고통을 알 수 있을까. 흙수저로 태어나서일까. 유 구청장은 구정의 방점을 ‘복지’에 찍었다. 그는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다. 이는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동대문구청장을 하는 동안은 춥고 외로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주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유 구청장은 민선 2기부터 1대1 희망결연 등 ‘동대문형 복지공동체 보듬누리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실 자치구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이웃 모두를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소외계층을 위해 민관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보듬누리 사업’은 구 직원들과 소외계층 간 결연을 민간으로까지 확대한 ‘희망의 1대1 결연’에 이웃의 복지를 주민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자 꾸려진 ‘동(洞) 희망복지위원회’를 결합했다. 구 직원과 어려운 이웃을 연결한 ‘희망의 1대1 결연’만으로 복지사각 지대를 완전한 해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14개 동별 희망복지위원회를 만들어 지역 자체적으로 각종 현안을 풀어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30~80명 주민으로 구성된 희망복지위원회는 십시일반 자체 기금을 마련해 직접 어려운 이웃의 생활안정과 자립을 돕고 있다. 복지의 그물망이 촘촘해지고 사각지대가 줄었다. 이런 노력으로 보듬누리는 ‘2013 지방 3.0 공모사업’ 대한민국 대표 60개 사업에 선정됐을 뿐 아니라 ‘2012 서울시 희망온돌프로젝트 최우수상’, ‘제9회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대전 복지서비스부문 최우수상’, ‘제1회 지방정부정책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유 구청장은 “다 같이 잘사는 동대문, 누구나 희망을 품고 사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 나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성취도 평가 성적 향상… 교육투자 ‘결실’ 신자유주의 물결이 몰아치면서 우리 사회에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하고 있다. 한번 흙수저는 영원한 흙수저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유 구청장은 빈곤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공교육’ 정상화에서 찾고 있다. 그는 “올바른 교육만이 가정의 행복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이라면서 “지역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청소년을 위한 교육예산을 줄이지 않고 있다. 유 구청장은 “우리 구는 교육지원에 과감한 투자와 관심을 기울인 결과 학생 1인당 지원액이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 다음으로 가장 많다”면서 “학생들의 학력 신장뿐 아니라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각종 방과 후 프로그램 등에 우선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동대문구가 속한 동부교육지원청이 서울시 11개 교육청 중에서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민선 5기 구청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유 구청장은 가장 먼저 교육경비 보조금 지원 범위를 8%에서 10%로 올릴 수 있도록 ‘교육경비 보조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따라서 2010년 68억원이던 교육예산을 2011년에는 112억원으로 두 배가량 늘렸고, 2012년에는 123억원 등으로 점차 늘려갔다. 학생 1인당 지원액 기준으로 서울에서 강남구 다음까지 늘렸다. 그 투자의 결과로 동대문구가 속해 있는 동부교육지원청이 서울시 11개 교육지원청 중에서 3년 연속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교육 으뜸도시로서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무엇보다 학습성취도 평가 결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줄고 보통학력 이상인 학생은 증가하는 등 학생들의 성적이 지속적으로 향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고 싶어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원에 다닐 수 없는 지역 학생을 위해 지역 학원을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돕는 ‘희망드림 스터디 학습나눔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또 학습나눔사업으로 현재 23개 학원에서 70여명의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울러 구 교육비전센터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진로·학습상담 등 전문화된 교육 토털서비스를 제공하고, 동대문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에서는 자유학기제 지원프로그램, 진로탐색과 체험프로그램, 진로동아리, 직업체험페스티벌 등 총 6개 분야 19개 진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청소년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고 있다. ●약령시 한방메카 개발 땐 ‘K의학’ 한류 동력 유 구청장은 동대문의 미래 먹거리 만들기도 고민한다. 사실 복지와 교육도 지역 경제발전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 그는 “2017년이면 청량리역사 주변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고 국내 한방재료의 메카 약령시와 바이오·의료 연구단지인 홍릉 주변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것”이라면서 “꿈꾸던 동대문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속칭 청량리 588 주변에 1970년대 지어진 건물들이 사라지고 호텔과 공연장 등을 갖춘 42층 랜드마크 타워가, 인근 동부청과시장 부지에는 50~59층 4개 동, 1160가구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는 등 대표적인 구도심이었던 동대문구가 변신할 예정이다. 또 오는 12월 한방 공방과 카페, 족욕 체험장 등 다양한 체험 공간 등으로 꾸민 한방진흥센터가 들어설 약령시도 국외관광객을 모으는 동대문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유 구청장은 “케이팝, K푸드 등에 이어 한약과 침술, 뜸 등 ‘K의학’이 한류를 이어가는 힘이 될 것”이라면서 “한방진흥센터가 문을 열면 여행사와 관광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총력전을 펼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1만 3900가구가 들어서는 전농·답십리 재개발 사업은 입주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동대문=낙후지역’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유 구청장은 “45년 전 배고프고 외로웠던 신문팔이 소년의 꿈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면서 “동대문구를 지역주민과 함께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소변으로 전기를? 친환경 연료전지 개발

    소변으로 전기를? 친환경 연료전지 개발

    도시에서 멀고 가난한 곳에서도 전기를 쉽게 사용하는 시대가 머지 않은 듯하다. 과학자들이 소변을 연료로 사용해 전기를 생성하는 친환경 전지를 개발해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배스 대학과 퀸메리 런던 대학, 그리고 브리스틀 바이오에너지센터가 참여한 공동 연구팀은 소변을 먹고 사는 박테리아를 사용해 휴대전화에 전원을 공급할 수 있는 미생물 연료전지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여기서 미생물 연료전지는 미생물을 촉매로 사용해 소변 등 유기물 속 화학 물질을 분해할 때 발생하는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가로·세로가 각각 2.54㎝인 정사각형의 이 연료전지는 제작에 약 1파운드(약 1600원)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저렴할 뿐만 아니라 재사용이 가능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도시에서 멀거나 가난해서 전기를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곳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현재 연구팀은 이 연료전지의 출력을 향상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팀 메이스 배스대 박사는 “재생 가능한 소변 에너지는 훌륭한 아이디어”라면서 “이런 전지는 에너지가 부족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를 이끈 존 슐러 배스대 박사과정 연구원은 “미생물 연료전지는 개발도상국 중 특히 빈곤하고 도시에서 먼 지역에서 훌륭한 동력원이 될 것”이라면서 “‘전기에 접근할 수 없거나 사용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잠재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연구결과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의 질을 즐길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전기화학 분야 학술지 ‘일렉트로키미카 액타’(Electrochimica Acta) 최신호에 상세히 게재됐다. 사진=배스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응급상황의 당신, 타인에게서 도움 받을 확률 2.5%(연구)

    응급상황의 당신, 타인에게서 도움 받을 확률 2.5%(연구)

    누군가 응급상황에 빠졌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확률은 생각보다 매우 낮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팀은 응급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지나가던 낯선 이에게 크고 작은 의료적 도움을 받을 확률은 39명 당 1명, 즉 2.5%로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지난 2011년부터 미국 응급의료서비스정보시스템(NEMSIS)에 기록된 환자 2만 2500명에 대한 데이터를 연구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해당 시스템을 이용하는 의료단체들은 응급차가 출동했을 때마다 사건 개요를 시스템에 기록했는데, 이 기록에는 응급구조팀이 도착하기 전 환자가 행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는지, 만일 받았다면 어떤 종류의 도움이었는지 등의 정보가 포함돼있다. 연구팀은 해당 시스템에서 백인 및 흑인 환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선정, 분석했으며 그 결과 증상 혹은 질병의 종류와 상관없이 긴급 환자가 낯선 이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례는 전체의 2.5%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특히 연구팀이 중점적으로 분석한 것은 데이터에 드러난 백인 환자와 흑인 환자 사이의 격차다. 연구팀에 의하면 백인 환자가 행인에게서 의료적 도움을 받았던 비율은 평균보다 높은 4.2%에 달했으나 흑인 환자는 그 절반보다 낮은 1.8%에 그쳤었다. 인종뿐만 아니라 대상 지역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차이에 따라서도 확률은 달라졌다. 소득이 적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환자는 도움을 받지 못했으며, 인구밀도가 낮고 사회경제 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도움을 받을 확률은 높아졌다. 연구팀에 따르면 시스템에 기록된 응급상황 중에는 특별한 의학적 지식이나 기술이 없어도 환자를 도울 방법이 존재했던 사례가 많다. 이를테면 물을 한 잔 건네거나 환자를 담요로 덮어주는 행동, 상처를 압박하거나 약을 주는 행동 등 기초적인 조치가 취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말한다. 연구를 이끈 에린 요크 콘웰 코넬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는 “알아낸 바에 따르면 행인들이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었던 사고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며 “그러나 실제로 그런 도움이 제공될 확률은 매우 낮았다는 사실 또한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 전했다. 이어 “이토록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도움을 시도했다는 점을 알게 돼 매우 놀랍고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한편, 백인과 흑인 환자들 사이의 차이는, 각 인종이 주로 분포해 있는 주거지역 간 사회적 환경 차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과거 연구들에 따르면 특정 지역의 사회경제적 낙후는 주민들 간의 상호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빈곤이 심하고 주거환경이 불안한 지역의 경우, 지역단체나 교회 등 마을 주민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줄어들어 서로를 알아갈 기회도 자연히 감소하게 된다. 이렇게 주민들이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구성원 중 누군가가 갑자기 위험에 처할지라도 이웃들이 도움을 제공하는 대신 지나쳐버릴 확률이 커진다는 것. 콘웰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경향이 미국 내의 인종 간 전반적 건강 격차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미국 내 인종 사이의 건강상 격차는 다양한 방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이 격차는 매우 극심한 수준이지만, 어째서 그런 간극이 벌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제시되지 않아왔다.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사실이 중요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열린세상] ‘제중원 터’에서 인류 공영을 생각한다/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열린세상] ‘제중원 터’에서 인류 공영을 생각한다/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헌법재판소 뒤뜰에 가면 백송 옆에 ‘제중원 터’라는 돌판이 하나 서 있다. 1885년 미국 선교사 호레이스 앨런이 고종의 윤허를 받아 서양식 병원으로 개원한 제중원 터의 표석이다. 원래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의사 앨런은 미국 공사관의 공의로 서울에 왔다. 앨런의 입국 후 두 달 만에 갑신정변이 일어나 수구파의 대표이며 민비의 조카였던 민영익은 자객의 칼에 맞아 정맥이 끊어져 생명이 위독해졌다. 당시 조선의 의료 수준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됐으나, 조선 조정의 다급한 요청을 받은 앨런이 어려운 외과적 수술 끝에 민영익의 생명을 살려 냈다. 이로 인해 앨런은 고종의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됐고 그의 시의가 됐다. 조선의 열악한 의료기술과 시설을 염려한 앨런은 고종에게 서양식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간청을 했다. 고종 또한 선진 의술의 필요성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이를 허락하고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홍영식의 한성 북촌 집을 하사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탄생한 것이다. 1900년 제3대 제중원장 올리버 에이비슨의 호소를 들은 루이스 세브란스가 2만 5000달러를 기부했고, 그 돈으로 당시 서울역 앞 복숭아골에 2층 벽돌 건물의 병원 겸 의학전문학교가 세워졌다. 이렇게 탈바꿈을 한 세브란스병원은 20세기 초 전국에 새로운 학교와 병원을 설립한 여러 선교사들에게 귀감이 됐다. 36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3년간의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고, 외국 원조 없이는 국민의 생존 자체가 어려웠다. 그 시절을 겪은 많은 분들은 지금도 성탄절 즈음 동네 마당에서 외국인들이 보내 준 스웨터와 전지분유를 받고 좋아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60년 후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 규모에서 세계 11위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 발전을 이룩했으며, 그와 더불어 정치·사회 부문에서도 성숙한 나라가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원조를 받기만 하던 나라가 세계 최초로 빈국 및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원조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서 우리 국민이 항구적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는 28개국의 개발원조위원회 국가 중 16위 정도이며, 국민총소득 대비 23위에 머무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점을 인식해서인지 한국의 공적개발원조 규모를 앞으로 대폭 늘리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에서 국제빈곤퇴치기금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으나 재원 조달 방법을 둘러싼 논란 끝에 입법이 무산됐다. 오늘날 세계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이 연관돼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세계는 경제의 장기 침체와 위기를 겪고 있고, 모든 국가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불균형은 확대되기만 하고 위기는 반복되고 있다. 또한 테러나 메르스에서 보는 것처럼 전쟁·전염병 및 공해 등 재앙은 어느 한 국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한국처럼 대외 의존도와 개방도가 높은 나라는 자기만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세계 경제의 침체가 겹쳐 경제가 어렵고 국민의 삶 또한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조선을 의료와 교육제도를 통해 도와주었던 손길들과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의 생존과 경제발전을 위해 1995년까지 원조를 했던 선진국들을 떠올린다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어느 곳인지 명확해진다. 국회 공청회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당선시키고 재선시키기 위해 국제빈곤퇴치기금을 만들었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며 제중원 터의 표석이 떠오르고 아픈 마음이 드는 것이 비단 나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연금 못 받는 노인 빈곤율 두 배 높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을 받는 노인과 못 받는 노인 간 빈곤 수준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국민연금연구원이 공적연금 수급 여부에 따른 소득수준의 차이를 분석한 ‘공적연금제도와 고령자 고용정책의 보완적 발전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60~64세 고령자 가운데 공적연금을 받는 집단의 상대빈곤율은 14.8%였으나, 공적연금을 받지 않는 집단의 상대빈곤율은 31.4%로 16.6%포인트 높았다. 상대빈곤율은 중위소득(모든 가구를 소득 순으로 줄을 세워 정확하게 중간 위치) 50% 미만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65세 이상 고령자 중에선 공적연금을 받는 집단조차 상대빈곤율이 35.5%였으며, 공적연금을 받지 않는 집단의 상대빈곤율은 60.0%나 됐다. 보고서는 “공적연금 미수급자는 젊은 시절 공적연금 가입 혜택을 받기 어려운 직종에 몸담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당연히 저축하거나 민간연금에 가입하지도 못해 더 빈곤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3년 현재 65세 이상 중 공적연금을 받는 고령자는 모두 230만명으로, 전체 고령자의 37.6%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사적연금이 부족한 공적연금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2009년 기준 사적연금 가입률은 퇴직연금 18.8%, 개인연금 12.2%다. 노동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비정규직과 저소득층은 국민연금은 물론 사적연금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보고서는 “고령자 고용을 활성화해 노인의 소득을 추가로 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독일은 50세 이상인 사람을 고용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고령자 고용정책을 펴 2000년 37.6%에 불과했던 고령자(55~64세) 경제활동 참여율을 2012년 61.5%까지 끌어올렸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호부견자(虎父犬子)…아우렐리우스의 못난 아들 콤모두스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호부견자(虎父犬子)…아우렐리우스의 못난 아들 콤모두스

    ​ '명상록'의 저자 철인 황제 ​수많은 로마 황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아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일 것이다. 그가 남긴 '명상록' 덕분이다. 2000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은 아직도 서점에서 꾸준히 나가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황제 이전에 한 철학자로서 삶과 세상을 관조하는 사색으로 일관한 '명상록'은 역설적이게도 피와 살이 튀는 전쟁터에서 쓴 것이다. ​금욕과 절제를 주장하며 수많은 명언이 담겨 있는 그의 '명상록' 12편은 철학자로서의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으며, 로마 스토아 철학의 대표적인 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고귀한 영혼의 진지한 외침'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명상록의 한 구절을 놓는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자주 품는 생각으로 물들게 마련이다." 40살에 황제에 오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20년 동안 전쟁터를 누비다가 삶을 마감했는데, 틈틈이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은 것이 '명상록'이 되었다. 평화로운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더 많은 저작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철인 황제의 전범 같은 사람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시대와 계급을 잘못 타고난 철학자였다. ​그의 치세 20년 동안 제국의 각 변방에는 끊임없이 병화가 치솟아올랐다. 즉위 초년에 아시아 대륙의 파르티아 제국이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어서 게르마니아, 히스파니아, 북부 아프리카 등에서도 전쟁과 반란의 횃불이 차례대로 타올랐다. 이리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재위 20년은 전진 속에서 지고 샜다. ​그는 자신의 죽음도 군막 안에서 맞았다. 180년 3월 초, 도나우 강변의 군사기지였던 빈도보나(현재의 빈)에서 곧 재개될 2차 게르마니아 전쟁을 준비하던 중 지병이 악화되며 삶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 병을 달고 산 병골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는 유언을 끝낸 후 약과 곡기를 ​일절 끊었다.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회생의 가망이 없는데도 목숨을 연장하는 것은 수치라고 로마인들은 생각했다. 곡기를 끊은 지 나흘 만인 3월 17일 철인 황제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 향년 59세. 생일을 한 달 앞둔 시점이라고 한다. 황제가 된 후 19년을 오로지 전장에서 보냈던 그는 기질과는 참으로 다른 삶을 산, 어찌 보면 불행한 사내였다.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그의 죽음을 끝으로 로마 제국의 전성기는 끝났으며, 어지러운 군인황제 시대가 찾아왔다. 군이 권력을 잡는 시대는 난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 5현제 시대와 군인 황제 시대에 징검다리를 놓은 인물이 바로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콤모두스였다. 그런데 철학자의 아들이 그렇게 천하의 망나니인 줄은 세상 사람들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콤모두스가 즉위 초부터 망나니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크고 작은 실정을 되풀이하는 정도의 암군(暗君)이었는데, 몇 년 뒤 황제의 암살 미수사건이 터졌다. 놀랍게도 주모자는 의타심 많았던 콤모두스가 가장 의지하고 따르던 큰누나 루킬라였다. 사건 연루자들은 모두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고, 루킬라는 카프리 섬으로 귀양갔다가 도착 직후 살해되었다. ​이 사건이 콤모두스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아 잔인하고 의심 많은 사람으로 돌변케 했다. 조금만 의심이 가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모두 죽였다. 유능한 장군과 정치인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자연 민심은 차갑게 식어갔고, 원로원과의 관계도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다. 여기서 마침내 한 사건이 터졌다. 사건이라기보다 이벤트라고 해야 하나? ​콤모두스는 병약했던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는 달리 체격이 건장했고, 무술도 뛰어났다. 프로 검투사와 맞설 정도였다. 그래서 약골이었던 아버지를 경멸하면서, 자기 친아버지는 유피테르 신이며, 자신은 그 아들 헤라클레스의 환생인 '로마의 헤라클레스'라고 떠벌이기까지 했다. ​'타조 머리를 함부로 베지 마라' 그는 자신의 용맹, 호방함을 과시하기 위해 검투 시합에 열중했다. 문제의 이벤트는 콤모두스가 31살 때인 192년 콜로세움에서 있었다. ​ 이날도 콤모두스는 자신의 무술을 뽐내기 위해 원로원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조와 대결하는 시합에 나섰다. 엄청난 덩치의 타조가 콤모두스를 향해 돌진해왔고, 콤모두스의 칼이 한순간 허공을 가르는가 싶더니 타조의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콤모두스는 득의 만면한 표정으로 원로원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씨익 웃었다. 마치 까불면 너희들도 이 타조 꼴이 될 줄 알라는 듯이. ​어찌 보면 섬뜩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이런 사건이 고대 중국에서 일어났다면 분명 다음과 같은 사자성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막참타수(莫斬駝首; 타조 머리를 함부로 베지 마라. 자신의 목이 떨어진다). 콤모두스의 암살은 그로부터 몇 달 뒤인 192년 12월 31일에 결행되었다. 여기에도 또 미스터리가 도사리고 있다. 암살 동기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암살을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모두 황제의 최측근으로, 애첩인 마르키아와 침실 담당 노예, 황제의 레슬링 코치였다. 자객은 레슬링 코치인 나르키소스였다. 욕실에서 목욕하고 있는 황제를 목졸라 죽인 것이다. 세 사람 모두 황제 콤모두스 옆만 지키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위치에 있는 인물들인데 대체 왜 황제를 죽였을까? 원로원이 연루되었다는 증거도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포악한 황제가 언제든 자신들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먼저 선수를 친 것인지도 모르고, 우국지정에서 한 거사였는지도 알 수 없다. 암살 후 이들이 보인 행동을 살펴보면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은 콤모두스가 숨진 것을 확인한 후 지체없이 근위대장을 불러 사태를 설명했다. 근위대장은 역시 그날 밤으로 원로원 실력자들과 협의를 끝내고 후임 황제도 결정했다. 그리고 콤모두스의 주검은 시트에 싸여 황궁 밖으로 조용히 옮겨져 화장도 하지 않은 채 묻혔다. 마치 어떤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는 듯했다. 게다가 암살 모의자 세 사람은 그날 밤 이후로 자취를 감추었다. 어디에도 그들이 처벌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근위대장에게 비밀리에 살해되었는지, 아니면 근위대장의 통행증을 얻어 세 사람의 고향인 그리스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역사에서 완벽히 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콤모두스는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의 손에 자신이 죽임을 당할지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을 때는 주위 사람들과 로마인들이 모두 슬퍼했지만, 콤모두스가 죽었을 때는 눈물 흘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부견자(虎夫犬子·호랑이 아비에 개의 새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콤모두스. 어떻게 보면 철학의 빈곤이 그의 비참한 최후를 예약했다고 할 수도 있다.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자식 농사에는 실패한 셈이다. 원로원은 끔찍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듯이 재빨리 전 황제 콤모두스를 기록말살형에 처하기로 결정했다. 콤모두스가 암살됨에 따라 군대가 실권을 잡아, 로마 제국은 군인에 의해 황제가 옹립되는 '군인황제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콤모두스가 살아 생전에 경멸했던 아버지의 '명상록'에서 다음 한 구절을 읽고 새기기만 했어도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 몫으로 주어진 것들에 적응하고 운명으로 엮여진 사람들을 사랑하라."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中‘금수저 강아지’…온라인쇼핑몰, 람보르기니 소유

    中‘금수저 강아지’…온라인쇼핑몰, 람보르기니 소유

    개인 전용기을 타고, 명품가방을 메고, SNS상에 160만 명의 팔러워를 지녔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이 붙은 쇼핑몰까지 지닌 강아지가 있다. 바로 '중화권 최고의 금수저'로 불리는 왕쓰총(王思聪·28)의 애완견 코코왕(王可可·Cocowang)이 그 주인공이다. 참고로 왕쓰총은 중화권 최고 갑부인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의 외아들이다. 싱가포르에서 초등학교를 보내고, 영국 윈체스터 칼리지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을 졸업한 왕쓰총은 지난 2009년 따렌완다(大连万达) 그룹을 물려받으며 사업을 시작했다.베이징에 사모투자회사를 설립해 개인자산을 8배로 성장시켜 자신만의 비즈니스 제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보유자산은 이미 4조원을 넘어 성공한 청년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다. 거기에 30조 원이 넘는 중화권 최고 갑부인 왕젠린 회장의 유일한 상속자다. 그 왕쓰총의 애완견, 코코왕이 지난 11일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왕쓰총은 코코왕을 위해 화려한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고가의 명품차에 ‘코코왕’이라는 풍선으로 이름을 만들어 띄우고, 두 개의 맞춤 생일 케잌을 준비했다. 또한 전문 애견 온라인쇼핑몰을 ‘코코왕’의 이름으로 개설했다. 이곳에서는 애견용 액세서리, 핸드백 등을 주로 판매한다. 중국에서 코코왕은 이미 ‘공인’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왕쓰총의 개인 만큼 코코왕은 ‘국민 공주견’으로 불린다. 코코왕은 일반 애완견과는 다른 일상을 누린다. 2000만원짜리 애플워치를 양 앞발에 차고, 코코왕 소유의 람브로기니를 타고 다닌다. 또한 SNS상에 본인의 계정을 개설해 160만 명의 팔러워를 거느리고 있다. 물론 운영은 왕쓰총이 한다. 이외 셀 수 없이 화려한 의상, 트랜디한 액세서리, 명품 시계와 명품 허리띠 등 호화로운 사치품들을 보유했다. 휴가 또한 화려하다. 보통 항공기의 퍼스트클래스에 탑승하며, 지난해 11월에는 전용기를 타고 겨울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지난 2월 발렌타인데이에는 주인 왕쓰총으로부터 거액의 지폐 꾸러미를 선물로 받았다. 또한 고가의 명품신발을 신고 산책을 나선 날에는 자신의 SNS에 “오늘 새 신발을 신고 외출했다. 예쁘지? 무슨 브랜드인지 묻지는 마. 너희들은 살 수 없을 테니까”라는 말을 남겼다. 그야말로 일반인도 누리기 힘든 호사다. 해외 언론은 코코왕을 “세상에서 가장 방종한 개’라고 부른다. 왕쓰총은 최근에는 한국 엔터테인먼트에도 손을 뻗쳐 지난해 걸그룹 티아라와 계약을 맺고, 올 초에는 EXID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주변에 수많은 미녀 모델들과의 스캔들로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또한 중국여성들에게는 신데렐라의 꿈을 실현시켜 줄 ‘국민남편’으로 불리며, SNS에 1200만 명의 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생활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심지어 애완견 코코왕이 누리는 호사에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말한다. '개 만도 못한 인생'이라고. 사진=시나위러(新浪娱乐)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WB-AIIB 처음으로 손잡다

    WB-AIIB 처음으로 손잡다

     세계은행(WB)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국제 개발사업 공동 지원을 위해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김 용(사진 왼쪽) WB 총재와 진리췬(오른쪽·金立群) AIIB 총재는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두 기관 간 첫 공동 자금조달 협력을 위한 기본협정(FA)을 체결했다. WB에 따르면 이번 협정은 두 기관의 투자 프로젝트의 공동 자금조달 한도를 개략적으로 정하는 등 올해 공동 프로젝트를 개발하기 위한 길을 닦기 위한 것이다. 지난 1월 중순 공식 활동을 시작한 AIIB는 올해 약 12억 달러(약 1조 4000억원) 규모의 자금조달 사업을 승인할 예정이고, 그 중 WB와의 공동 프로젝트가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WB 측은 덧붙였다. WB와 AIIB는 현재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동아시아 지역의 교통과 물, 에너지 등을 포함한 분야에서 10여 건의 공동 자금조달 프로젝트를 협의하고 있다고 WB 측이 밝혔다. WB는 이번 협정을 통해 조달과 환경, 사회적 보호장치 등 분야에서 자체 정책과 과정에 부합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감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총재는 “이번 협정 체결은 두 기관이 함께 개발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하게 하고, 전 세계적 대규모 기반시설 개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협력 기관과 공동으로 대응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글로벌 다자 개발은행들이 더욱 긴밀히 협력하고 서로의 자금과 경험을 극대화함으로써 전 세계 빈곤층이 가장 큰 혜택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 총재는 “AIIB의 설립 과정에서 WB의 관대하고 시의적절한 지원에 감사한다”며 “다른 분야에서도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장기적이고 결실을 거두는 관계를 이어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데스크 시각] 어느 노부부의 마지막 편지/박찬구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어느 노부부의 마지막 편지/박찬구 정책뉴스부장

    70대 노부부가 세상을 놓았다. 남편은 유서에 ‘암에 걸린 아내의 병세가 좋아지지 않아 같이 가기로 했다’고 적었다. 강변 승용차 안에서 노부부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노부부는 ‘우리는 가족이 없다’며 화장을 부탁하는 종이를 남기곤 10평 오피스텔 거실에서 6개월 만에 발견됐다. 최근 두 달 사이 일어난 일이다. 무엇이 이들을 비극적 선택으로 몰았을까. 낱낱의 사연이야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기까지 이웃과 친지, 주변의 손길이 이들이 닿을 수 있는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회안전망이 이들을 걸러 낼 수 있었다면 노부부의 꼭 잡은 두 손이 덜 외로운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테다. 우리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 통계와 정책 홍보 속에 가린 공동체의 민낯이 얼마나 황량한지 노부부는 우리에게 경고를 보낸다. 죽음을 미화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경계로 삼으려 함이다. 노부부에게서 ‘탄광 속 카나리아’를 떠올린다. 호흡기가 약한 카나리아는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유독가스가 퍼져 카나리아가 노래를 멈추고 쓰러지면 광부는 위기를 알아차리고 서둘러 대피했다. 카나리아가 위험 신호를 보내듯 노부부는 우리 공동체에 사회안전망의 허점과 사각지대를 침묵으로 역설하고 있다. 노부부뿐만이 아니다. 집중 단속의 결과라고는 하지만 아동학대가 줄을 잇고, 취업과 생계의 어려움에 지친 청년과 가장, 부모의 일탈 사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진다. 국가에서 생계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빈곤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이 68만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회안전망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주춧돌 역할을 한다. 복지 선진국에 비해 사회안전망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사회 전반의 인식과 정책적 노력이 절실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양한 궤적을 그리는 사회 구성원의 생애주기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려면 4대보험과 공적부조, 각종 복지사업 등 단계별·수준별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확충돼야 한다. 이는 곧 국가와 사회의 기본 책무라 할 수 있다. 두 바퀴로 굴러가는 우리 사회의 한 축이 시장경제의 발전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양을 조성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공동체의 의제가 제대로 다뤄지려면 무엇보다 정치와 국회의 영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대안을 모색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정치는 여전히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있다. 공동체의 사회적 의제는 종종 정치 투쟁의 소재로 변질되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본질이 희석된다. 구성원의 염원과 기대는 때로 무시되고 배제된다. 시민이 일상으로 겪는 비극적 참상이 ‘정부·여당의 잘못’, ‘야당의 발목 잡기’, ‘부처 간 영역다툼’ 식으로 틀짓기 되다 보니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실질적인 노력과 사회적 타협은 뒤처지는 게 아닌가. 소외된 그늘에서 보내는 경고음을 넋두리나 한탄 정도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단기간에 모든 사각지대를 치유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새로 꾸려질 20대 국회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각지대 해소’라는 과제를 오롯이 직시하고 사회안전망의 틈새를 메워 나가는 데 매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ckpark@seoul.co.kr
  • “강릉은 내 모든 글의 배경이자 원천입니다”

    “강릉은 내 모든 글의 배경이자 원천입니다”

    윤후명(70) 작가에게 1978년은 ‘악전고투의 해’였다. 문학에 대한 갈증과 돌파구 없는 빈곤이 그를 그악스럽게 내몰았다. 1977년 시로 등단했지만 소설가가 되기로 한 그는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지 않으면 제주 바다에 몸을 던질 마음까지 먹었다. 그런 각오로 원고지 앞에 엎어져 소설을 써내려갔다.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 ‘산역’의 탄생 배경이다. 시와 소설의 경계,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윤후명 문학’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가 내년 등단 50주년을 맞아 그간의 문학 여정을 모은 소설 전집(12권·은행나무)을 펴낸다. 그 첫 권인 소설집 ‘강릉’이 최근 출간됐다. 강릉은 그가 뿌리를 내린 출발점이자 귀환점이다. 여덟 살에 강릉을 떠났다가 지난해 11월 강릉 문화작은도서관의 명예관장이 되면서 다시 고향에 자리잡았다. 작가는 62년 만에 돌아간 고향을 무대로 쓴 신작 단편 9편과 등단작 ‘신역’ 등 10편을 이번 소설집에 들여보냈다. “강릉은 소설뿐만 아니라 제 모든 글의 배경이자 원천입니다. 소설가란 유년을 해석하는 사람이거든요. 이번 소설은 강릉의 자연과 역사를 말하며 그곳에 사는 삶들의 뿌리를 우리 민족의 뿌리로 연결하려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62년 만에 다시 돌아간 강릉의 옛날 골목에서 오래전 썼던 낙서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 정도로 발전이 더디다는 얘기죠. 강릉에서의 기억들이 토막토막으로 남았는데 이번 소설은 그 토막 기억들을 연결시키는 과정었지요.” “이 소설집에 다른 제목을 단다면 ‘강릉 호랑이에 관한 소설’일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강릉 호랑이’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강릉 호랑이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 단오제의 주인공으로, 머리 감는 처녀를 물어가 장가를 든 호랑이가 매년 나무로 변신해 처갓집을 찾아온다는 설화가 그 배경이다. “지금까지 해온 문학을 이번 전집에 모으려고 합니다. 강원도는 옛날부터 버려진 땅으로 취급된 고립된 곳이죠. 거기에 제 문학을 심어 뭔가 추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하면 강릉 호랑이입니다. 부잣집 딸이 호랑이에게 물려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옛날 외할머니께도 듣던 이야기예요. 제 문학을 통해 우리 안에 잊혀져가는 세계, 즉 호랑이가 상징하는 북방 민족의 혼, 야성의 힘을 재현해낼 수 있겠다 싶었죠.” 강릉 호랑이를 여러 각도로 비추는 이번 소설집에서는 전작들에서처럼 늘 길 위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강릉을 찾아온 알타이족 음유 시인에게 바다를 보여주며 ‘아름답다’는 말을 전하려 하고(알타이족장께 드리는 편지), 고향 바다의 방파제에 다녀온 뒤 호랑이밥이 되고 머리만 남았다는 처녀의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방파제를 향하여). 하지만 이는 결국 ‘나’로 회귀하는 방황과 탐구, 꿈의 여정이다. 소설 전집은 내후년 완결될 예정이다. “열두 권이지만 결국은 한 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고, 작가가 여러 책을 쓴다 해도 세상은 아름다운 한 권의 책만 얘기하거든요. 그러니 제가 쓰는 모든 소설이 하나의 소설입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중국, ‘휴대폰 번호’ 가격이 무려 15억원!

    중국, ‘휴대폰 번호’ 가격이 무려 15억원!

    “휴대폰 번호 가격이 집 한 채 가격에 맞먹는다고?”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중국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중국 최고가 휴대폰 번호 리스트를 살펴보면, 윈난(云南) 지역의 ‘138-8888-8888’은 가격이 무려 888만 위안(한화 15억8000만원)이다. 중국인들의 어지간한 '8'자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헤이롱장(黑龙江) 따칭(大庆) 지역의 ‘135-5555-5555’ 번호는 2년 전 650만 위안(한화 11억6000만원)에 판매되었다. 휴대번호에서 숫자 ‘5’가 연속으로 나오는 경우는 10만 개 중 하나에 불과하다. 또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8’이 연속 8번 들어간 ‘88888888’번는 쓰촨항공사에서 233만 위안(한화 4억1400만원)에 구매했다. 이 번호는 쓰촨항공의 24시간 핫라인 서비스번호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숫자는 ‘8’, ‘6’, ‘9’ 다. ‘8’은 돈을 번다(发财), ‘6’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된다(六六大顺), ‘9’는 장구하다(长久)는 의미를 각각 지닌다. 이처럼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번호로 조합을 이룬 휴대폰 번호를 전문으로 매매하는 투기꾼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판매대리점이나 휴대폰 주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좋은 전화번호를 대거 사들인 뒤 그때그때 유행하는 숫자나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번호를 고가에 되팔아 차익을 챙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목적에서 이렇게 거액을 지불하고 휴대번호를 사들이는 것일까? 여기에는 중국인들이 목숨만큼이나 중히 여기는 ‘체면(面子)’중시 사상이 저변에 깔려있다. 또한 길조로 여겨지고, 외우기도 쉬운 숫자들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작용한다. 게다가 고객을 끌어들이는데도 도움이 되고, 사업상 소프트파워로 은근히 내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원래 통신주관부서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휴대폰 번호에 가격을 매겨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 더러는 통신주관부서의 승인 하에 운영업체가 휴대폰 번호경매를 실시하기도 한다. 경매 수익금은 대부분 불우이웃이나 빈곤층 학생들을 위해 쓰인다. 2014년 8월8일 차이나텔레콤 정저우(郑州)에서는 177로 시작하는 휴대번호 경매를 실시해 숫자 ‘7’이 7개 연속된 번호를 300만 위안에 판매했다. 워낙 숫자에 민감하다 보니, 중국인들은 휴대폰 번호뿐 아니라 자동차 번호에도 거금을 아끼지 않는다. 상하이 자동차의 ‘88888’번호판 가격은 200만 위안(한화 3억6000만원), 베이징은 150만 위안에 달한다. 종종 차 값 보다 비싼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차들도 있다. 그야말로‘배보다 배꼽이 더 큰’경우지만,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중국인들의 ‘숫자 사치’는 거침이 없어 보인다. <중국 일부 도시의 최고가 휴대폰번호 거래가격> 전화번호 가격 지역13888888888 888万(15억8000만원) 云南13333333333 880万(15억6500만원) 秦皇岛13777777777 700万(12억4500만원) 广西15000000000 450万(8억15만원) 上海13666666666 450万 (8억원) 浙江13222222222 260万(4억6000만원) 江苏13555555555 220万(3억9000만원) 大庆13111111111 188万(3억3400만원) 山西13811111111 120万(2억1340만원) 北京13966666666 100万(1억8000만원) 合肥 사진=따허왕(大河网)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서울 네 집 중 한 집은 나홀로 가구… 2035년엔 30%로

    서울시내 네 집 중에 한 집이 나 홀로 가구인 것으로 조사됐다. 10일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경제’ 3월호에 따르면 2010년 서울의 1인 가구 수는 전체 가구의 24.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35년에는 1인 가구 비율이 3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1인 가구 증가 원인은 여성 경제활동이 늘고 결혼관 변화에 따라 비혼·만혼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기러기 가족과 가족 해체로 인한 독신, 홀몸 노인 증가 등이 복합적 요인으로 지목됐다. 변미리 서울연구원 글로벌미래연구센터장은 “독신이 된 원인에 따라 1인 가구를 구분해야 한다”면서 “월소득 350만원이 넘는 골드족을 비롯해 산업예비군, 불안한 독신자, 실버세대 등 4가지 유형으로 구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골드족은 자발적 선택으로 ‘화려한 싱글 생활’을 즐기는 집단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활동에 적극적이다. 골드족은 관리·전문직종에 종사하고 대졸 이상의 학력과 월평균 소득이 350만원을 넘는다. 산업예비군 1인 가구는 사회적 직업을 갖지 못한 젊은 20∼30대 취업 준비생 또는 비정규직 집단이다. 산업예비군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밥 먹는 문제’이며 현재 이들의 복지가 사회적 화두이기도 하다. 불안한 독신자는 중장년층 이혼율 증가, 기러기 가족 증가, 중장년 실업 문제 등으로 나타난 1인 가구다. 실버세대는 고령화와 남녀 평균수명의 차이에 따라 늘어나는 1인 가구다. 이들은 절대 빈곤 상태인 홀몸 노인과 경제력이 있는 홀몸 노인으로 구분된다. 변 센터장은 “골드족을 제외한 나머지 3종류 1인 가구의 문제점은 ‘빈곤’ 및 ‘사회적 고립’과 관련 있다”면서 “정부가 1인 가구를 위해 주거 안정성, ‘사회적 돌봄’ 서비스, 노인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나무로 돌아와 고마워” 세월호 ‘기억의 숲’ 완공

    “푸르고 예쁜 나무로 다시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와 줘서 고맙다. 사랑해.” “항상 널 가슴에 새기며 기억할게.” 지난 9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약 4.16㎞ 떨어진 임회면 백동리 무궁화동산의 300여 그루의 은행나무 벽에 세월호 희생자에게 보내는 편지와 노란색 리본이 걸렸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1주일 앞둔 이날 할리우드 여배우 오드리 헵번 가족의 제안으로 시작된 ‘기억의 숲’과 ‘기억의 벽’이 완공됐다. ‘기억의 숲’은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천 년을 살아가며 가을마다 노란색 단풍을 물들이는 은행나무로 조성했다. 은행나무 숲 속에 자리한 ‘기억의 벽’은 ‘ㅅ’자 모형의 스테인리스 조형물로,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졌다. 또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글, 헵번의 아들 션 헵번 페러의 숲 조성 제안 배경, 기억의 숲 조성 사업 기부자 명단 등도 담겼다. 벽의 총 길이는 416㎝로 세월호 참사 발생일인 4월 16일 뜻한다. 스테인리스 재질로 제작한 벽의 세 개의 꼭짓점 높이는 476㎝, 325㎝, 151㎝로 각각 세월호의 총 탑승객 수, 단원고 학생 탑승객 수, 일반인 탑승객 수를 상징한다. 기억의 숲은 아동 인권과 빈곤 등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 온 션 헵번 페러가 나무 심기 사회적기업인 ‘트리 플래닛’에 제안했고, 트리 플래닛이 전국민적 모금 운동으로 2억여원의 사업 자금을 마련해 조성했다. 션 헵번 가족도 5000만원을 보탰다. 이날 완공식에는 오드리 헵번의 손녀 엠마 헵번(21)과 손자 아돈 헵번(20), 세월호 실종자·희생자 가족, 트리플래닛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행사는 추모 공연, 기념사, 숲 시설물 소개, 기억의 벽 제막식, 수목에 메시지 걸기, 편지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희생자 김도언양 어머니는 편지 낭독을 통해 “하늘의 별이 된 희생자들의 꿈을 기억하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그날까지 계속 움직일 것”이라며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엠마 헵번은 “1년 전 형용하기 힘든 이 비극을 아주 서서히나마 치유해가길 바라는 마음에 손을 잡아드리고 싶었다”며 “이 숲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굳세지고, 장대하게 자라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참가자도 ‘이런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 세월호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내용 등의 글을 촘촘히 심어진 은행나무에 걸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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