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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두로, ‘성범죄’ 퍼프대디와 ‘한지붕’ 구치소…수감 전 영상서 “굿나잇”

    마두로, ‘성범죄’ 퍼프대디와 ‘한지붕’ 구치소…수감 전 영상서 “굿나잇”

    미군 특수부대에 전격 체포돼 미국 뉴욕으로 압송된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현지 구치소에 수감됐다. 수감 전 마두로는 미 연방 마약단속국(DEA) 사무실에서 이송되면서 스페인어와 영어로 “잘자요”(Good night)라고 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3일(현지시간)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마두로 전 대통령은 이날 밤 뉴욕시 브루클린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구치소에 수감됐다. NYT에 따르면 구치소에서 경계근무 중인 한 경찰관은 구치소 앞에 모인 100여명의 시위대를 향해 확성기를 들고 ‘마두로가 구치소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고 알렸다. 이에 시위대가 베네수엘라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고 NYT는 전했다. 마두로 전 대통령이 수감된 이 구치소는 엽기적인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힙합계 거물 션 디디 콤스(퍼프 대디), 파산한 가상화폐 거래소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 등 거물급 수감자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앞서 미국은 이날 오전 1시쯤(미 동부시간 기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대통령 안전가옥에 육군의 최정예 특수부대인 델타포스와 ‘나이트 스토커’(Night Stalkers)로 불리는 제160 특수작전항공연대를 투입, 마두로 전 대통령 부부를 체포해 대기 중이던 강습상륙함 이오지마함까지 헬기로 이송했다. 이오지마함을 타고 관타나모만에 위치한 미 해군 기지로 이동한 마두로는 이곳에서 미 연방수사국(FBI)이 미리 준비한 미국 정부 항공기로 갈아타고 뉴욕의 스튜어트 공군기지로 이동했다. 스튜어트 기지에서 마두로 전 대통령이 FBI 요원 등 연방정부 당국자들에 둘러싸여 비행기에서 내리고 미국 땅을 밟는 장면이 외신들에 포착됐다. 다시 헬리콥터를 탄 마두로 전 대통령은 오후 7시쯤 뉴욕시 맨해튼에 도착했다. 미국 정부는 마두로 부부를 DEA 뉴욕 지부로 데려갔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검정색 후드티에 모자를 쓴 마두로 전 대통령이 DEA 뉴욕 지부로 보이는 건물 내에서 연행되는 장면을 담은 짧은 동영상이 공개됐다. 이어 백악관의 엑스(X) 긴급대응 계정은 ‘범죄자가 걸어갔다’(perp walked)는 제목으로 마두로 전 대통령이 DEA 뉴욕 지부 건물 안 복도에서 이송되는 영상을 공유했다. 영상 속에서 마두로는 자신을 연행하는 DEA 요원에게 스페인어로 “좋은 밤이에요, 그렇죠?”라고 말한 뒤 영어로 “잘 자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Good night, Happy New Year)라며 짐짓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마두로가 걸어가는 건물 복도 바닥에는 마약단속국 뉴욕 지부를 의미하는 ‘DEA NYD’라고 쓰인 카펫이 깔려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인 2020년 3월 마약 밀매와 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마두로 대통령은 다음주 맨해튼 연방법원 법정에 설 것으로 관측된다. 미 법무부는 당시 공소장을 보완한 대체 공소장을 공개했다. 새 공소장에는 그의 부인과 아들, 베네수엘라 내무장관 디오스다도 카베요 등 가족과 측근도 기소 대상에 추가됐다. 이들은 미국이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콜롬비아의 옛 반군조직 FARC 및 마약 카르텔과 연계돼 수천t의 코카인을 미국으로 반입했다는 게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 ‘체포’ 마두로 부부, 뉴욕 도착했다…“요원들에 둘러싸여 이동”

    ‘체포’ 마두로 부부, 뉴욕 도착했다…“요원들에 둘러싸여 이동”

    미국의 전격적인 군사작전으로 체포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그의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가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CNN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태운 비행기는 이날 오후 4시 40분쯤 뉴욕 스튜어트 공군 주방위군 기지에 착륙했다. CNN 등은 “비행기에서 내린 마두로 대통령은 회색 옷을 입고 수갑을 찬 상태였으며, 검은 옷을 입은 12명 이상의 연방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이동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이날 오전 1시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대통령 안전가옥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했으며, 이들을 헬리콥터로 실어 나른 뒤 대기 중이던 강습상륙함 이오지마에 옮겨 태웠다. CNN은 마두로 대통령이 다음 주 맨해튼 연방법원에 출두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인 2020년 3월 마약 밀매와 돈세탁 등의 혐의로 마두로 대통령을 이미 기소한 상태다.
  • 진에어 여객기 꼬리 부분서 연기… 탑승객 120여명 대피소동

    진에어 여객기 꼬리 부분서 연기… 탑승객 120여명 대피소동

    제주에서 포항으로 향할 예정이던 진에어 여객기에서 연기가 발생해 승객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일 진에어 등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25분쯤 제주국제공항에서 출발해 포항경주공항으로 갈 예정이던 진에어 LJ436편 여객기에서 연기가 발생했다. 항공사 측은 승무원을 제외한 탑승객 12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탑승을 진행하던 과정에서 항공기 꼬리 부분에 전력을 공급하는 보조동력장치(APU) 계열에서 연기가 발생했으며, 이와 동시에 조종석에 경고 알람이 울려 탑승객 전원을 하차시켰다고 설명했다. 진에어 관계자는 “승객 탑승 과정에서 조종석 경고 알람이 울려 항공기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승객들에게 대체 항공편을 안내했고, 출발이 지연되면서 탑승객 전원에게 식사 쿠폰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 여객기 탑승객들은 대체 항공편으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출발이 잇따라 지연됐다. 당초 오후 4시 30분 출발 예정이던 대체편은 추가 지연 끝에 오후 5시 15분쯤 이륙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탑승객 A씨는 “비행기 뒤쪽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봤다”며 “암모니아 같은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항공사 측은 현재 연기 발생 원인에 대해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끊이지 않는 케네디家의 비극… 35세 외손녀 혈액암으로 숨져

    끊이지 않는 케네디家의 비극… 35세 외손녀 혈액암으로 숨져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외손녀인 타티아나 슐로스버그가 30일(현지시간) 백혈병 투병 끝에 별세했다. 35세. 슐로스버그의 가족은 이날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박물관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아름다운 타티아나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망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고인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이자 외교관인 캐럴라인 케네디와 디자이너 겸 예술가 에드윈 슐로스버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고인은 옥스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언론계에 진출해 과학·기후 분야 전문기자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뉴욕타임스(NYT)에서 활동했고, ‘눈에 띄지 않는 소비: 당신이 모르는 환경적 영향’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2021년 12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런던 지하철의 에너지를 활용해 가정에 열을 공급하는 지역 실험에 대해 보도해 주목받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해 ‘뉴요커’에 실린 ‘내 피와의 싸움’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2024년 5월 둘째를 출산한 뒤 희귀 돌연변이를 동반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진단과 함께 1년 미만의 시한부 인생이 선고받다고 밝힌 바 있다. 슐로스버그의 죽음으로 케네디 가문은 또한번 비극을 맞이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1963년 총격으로 암살당했고, 동생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도 1968년 유세 도중 총격으로 숨졌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인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1999년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고인은 앞서 기고문에서는 케네디 가문의 비극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가족에게 끼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적기도 했다. 그는 “나는 평생 착한 학생이 되고, 착한 여동생 되고,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면서 “이제 나는 우리 가족의 삶에 새로운 비극을 더했고, 이를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고 썼다.
  • 언어의 고고학/김세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언어의 고고학/김세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학과 필수모듈인 어학 파트에서 ‘초급 그리스어’를 들을 거라고 말했을 때, 홍은 조금 놀란 듯했다. 당장 졸업 작품부터 준비해도 모자랄 세 번째 학기였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쪽 친구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걸 잘 알지 않느냐고, 차라리 일본어를 듣는 편이 도움이 될 거라고 홍이 종용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겨우 열 명 남짓이었다. 상대적으로 비인기 언어라 그런지 학생 수는 다른 수업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원탁으로 빙 둘러앉은 좁은 강의실에서는 쿰쿰한 곰팡이 냄새와 학생들이 흘리는 땀내가 뒤섞여 불쾌한 냄새가 났다. 교수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어 학습 동기를 물었을 때, 그들 대부분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리스 계통이지만 자신은 그리스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아마 높은 확률로 거짓말일 것임이 분명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아마 수업 하나쯤은 먹고 들어가려는 심산이겠지. 사실 그런 학생들은 생각보다 흔했다. 이쪽은 어머니가 프랑스인이고, 저쪽은 할머니가 러시아인이고, 쟤는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던 삼촌이 루마니아인이래, 하는 이야기는 너무 흔하디흔해서, 그런 일에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조차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다. 곧 교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유일하게 동양인인 내가 그리스어 수업을 들으려는 이유를 내심 궁금해하는 듯했다. 그 호기심 어린 미소에 힘입어, 그럭저럭 교수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을 수도 있었다. 가령, 코흘리개 시절부터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있어 제대로 연구해 보고 싶었다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에 희랍어가 등장한다는, 꽤 그럴듯한 말로 이야기의 물꼬를 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학습 동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였고, 이들에게 그 이유ㅡ‘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을 읽기 위해서’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그 말을 독일어로 제대로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 사람이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 사람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안티고네를 원서로 읽어 보고 싶어서요. 금발로 덮인 두피 곳곳에 희끗한 새치가 돋아난 중년의 교수가 나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턱에 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흥미롭다는 듯 빙긋 웃더니, 다른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이 학생이 아주 ‘야심 찬 계획’(ambitionierten Plan)을 가져온 것 같다는 모호한 농담을 던졌다. 그는 말했다. 그 계획에 이르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그리스 방언을 익혀야 하는지. 현대 그리스어에 대한 배경지식은 물론, 고전 그리스어의 아티카 방언, 이오니아 방언과 아이올리아 방언까지. 소포클레스나 호메로스 같은 작자들을, 화자가 사라진 언어를 읽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아냐면서. 시대와 지역별로 나눈 그리스어의 기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설명 방식은 내 어깨를 점점 짓눌렀다. 마치 모든 학생 앞에서 나의 ‘야심 찬 계획’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이 자리에서 당장 밝혀내겠다는 듯. 그의 눈빛은 이제 처음 드러냈던 조소를 넘어 약간의 경멸마저 내비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내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것, 그 사실에 관해서라면 이미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수업에서 학습 동기를 제대로 밝혔더라면, 어쩔 수 없이 나의 ‘계조모’(Stiefgroßmutter)라고 소개해야 했을, 적어도 내가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아오리스트(Aorist)인 나의 할머니 하나코 씨로부터 말이다. * 시제(Tense)는 시간(Time)과 시상(Aspect)과 함께 작동한다. 할머니의 ‘아오리스트의 필사 노트’는 그렇게 시작된다. * 내가 그 노트를 처음 발견한 것은 라이프치히대학 문창과에서 석사 첫 학기를 보낸 직후였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학기 과제를 제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초봄이었다. 많이 아프셔? 출국하기 전에도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제 쓰러지셨어, 라고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말했다. 또? 엄마는 답하지 않았다. 조금 지친 목소리로 첫 학기도 보냈는데 한국에 한 번 들어와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아무 음악도 영화도 틀지 않은 채 맞은편의 화면을 응시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노란 경로를 따라 비행기 모형이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한반도 오른편에 있는 섬나라를 바라보았다. 문득 홍의 고향인 하코다테와 후추시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궁금했다. 엄지와 검지를 펼쳐 그 사이를 가늠해 보았다. 겨우 손톱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좁은 너비였다. 부모님은 대학에 합격한 후에야 유학에 대한 나의 의지를 인정했다. 엄마는 애초부터 내가 독일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왜 거기까지 가서 또 글을 쓰려고 하냐고. 대체 돈은 언제 벌 셈이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굳이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찬성하지도 않았다. 아마 아버지는 내심 형과 함께 시장의 곡물 가게를 이끌어 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나는 서울로 도망간 형 대신 아버지의 쌀가게 일을 도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얼굴은 생각보다 밝아 보였다. 불과 삼 주 뒤에 죽음이 임박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혈색에,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나중에 병실 복도에서 엄마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날부터, 할머니의 정신이 거짓말처럼 맑아졌다고 했다.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내 뺨을 매만졌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고, 애가 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뱃가죽이 등에 눌어붙었느냐면서. 요 몇 달 동안,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거울에 비춰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손길이 낯설기도 했고 멋쩍기도 했다. 할머니가 그 정도로 내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아 침대 위에 살며시 놓았다. 나는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물어 가는 햇빛이 할머니의 눈동자 속에서 반달 모양으로 일렁이면서 반짝였다. 그녀의 눈 밑에 오랜 세월 동안 자리 잡았을 것임이 분명한 푸르스름한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할머니는 해외 생활은 잘 맞는지, 음식은 어떤지, 앞으로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약간의 시차를 둔 채 차분히 물어왔다. 침묵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잠시 창밖을 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그랬다. 할머니는 서른이 다 되도록 취업하지 않은 나의 처지를 별달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묻는 것은 미래뿐이었다. 그것이 정말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현재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배우고자 하는 문학을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사람은 가족 중에서 할머니가 유일했다. 입원하기 전부터 종일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끼고 살았던 할머니였다. 그녀는 내가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겪지는 않았는지, 왜 라이프치히를 선택했는지, 독일의 문학 수업에서는 정말 그리스 신화들을 중요하게 읽는지, 평소 자신이 궁금해했던 질문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나로서는 평생 장사를 하면서 살아온 외할머니와 동년배임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방향이나 밀도가 전혀 다른 할머니의 목소리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하면서도, 가슴속에서는 그런 지적인 대화를 가족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궁금해진 것들도 많았다. 가령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머니의 시간에 대해. 홍과 같은 나라에서 나고 자랐으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의 발자국-그 삶의 궤적에 대해. 그러고 보니 너 마침 잘 왔다. 한참 동안 질문을 쏟아내던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다고, 혹시 집에서 노트 한 권을 가져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트요? 희랍어 노트 말이야. 요즘에도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계시냐고, 내가 깜짝 놀라 묻자, 할머니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안티고네를 원서로 읽어 봐야 하지 않겠니.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옆에 앉아 있던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지 어서 갔다 오라는 듯 문을 향해 조용히 턱짓했다. 나는 외투를 챙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생긴 노트인데요? 아오리스트. 네? 표지에 아오리스트의 필사 노트라고 적혀 있어. 처음 들어 보는 단어였다. 내가 반사적으로 아오리스트가 무엇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왜 이리 군말이 많아. 일단 가져와. 그러면 다 설명해 주겠다고, 할머니는 힘도 없으면서 내 엉덩이를 팡팡 내려치고는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냈다. 갔다 오면서 밥도 먹고 와. * 아오리스트(Aorist)는 무정시제이다. 아오리스트로 포착된 사건은 완결적으로 제시되며, 문맥에 따라 과거에만 묶이지 않고 다양한 시간으로 퍼져 나간다. α -(아니다) όριστος(규정된, 한정된)는 정해지지 않은(αόριστος)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όριστος는 ὅρος(경계)에 맞닿아 있다. ‘무정’은 ‘부정’(不定)일 수도 있고 ‘미정’(未定)일 수도 있다. ‘부정’(不定)과 ‘부정’(否定)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구별되어야 한다. * 사실 할머니의 일생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고, 그때 우리는 구포시장 근처에 있는 고급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당시는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지도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시기여서, 나는 그 모든 상황이 이상하고 낯설기만 했다.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같은 나이인데도 열 살은 더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와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외할머니에게선 느낄 수 없던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첫인상은 내게 꽤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건 그날, 내가 절반쯤 남겨 버린 짜장면을 할머니가 자신 앞으로 가져가 거침없이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이미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와 배가 부른 상태였다. 조금 전부터 할머니가 내 그릇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갑자기 그릇을 가져가 처음 보는 아이가 남긴 잔반을 거리낌 없이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네가 입이 짧은 모양이구나. 할머니가 조용히 입을 닦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부모님을 바라보자, 아버지가 아무리 그래도 잔반을 드시냐고, 아직 출출하시면 한 그릇을 더 시켜 드리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됐다. 그냥 딱 한 입 정도만 더 먹고 싶었어. 그리고 할미가 손주가 남긴 음식을 먹는다는데. 그깟 잔반이 뭐가 대수냐. 할머니가 반대편 손으로 냅킨을 꺼내 들며 덧붙였다. 이제 가족인데. 당시, 나는 그런 할머니의 행동에 내심 감동을 받았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마 아버지의 남동생 내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 여자가 나이가 어린 엄마를 가족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분위기를 내심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와 할머니 사이의 감정적 거리는 꽤나 오랫동안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할머니는 구포동에 있는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에 홀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분기 보고서를 쓰듯, 의무적으로 식재료를 잔뜩 사서 할머니를 방문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는 의례적인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내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그때가 전부였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나는 그 어색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괜히 할머니의 방안을 둘러보곤 했다. 안방의 벽에는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들 속에서 할머니를 조금씩 알게 됐다.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면서-이제 돈 쓰는 법도 좀 배우세요. 평생 고된 일만 하시고. 저희가 하지 말라고 해도 식당 일에, 식모 생활에… 몸 쓰는 일만 하셨잖아요-그녀의 성격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아들이 용돈을 줘도 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렇게 번 돈의 대부분을 저금하는 사람. 남편의 병수발을 들고, 두 아들이 먹을 반찬을 만드는 데 평생을 보낸 사람. 그러나 정작 두 아들은 일본식 반찬을 학교에 가져가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집에 두고 가고, 먼저 간 남편은 자신을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 일생을 거부당한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 상처받은 사람이 할머니였다. 그래서 가끔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한 시간이 지나 정해진 칭찬의 레퍼토리가 모두 소진되면, 마치 알람 시계라도 설정해 놓은 사람처럼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할머니의 기만당한 삶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들었을 텐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쏜살같이 일어나 집을 나서려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치 아버지의 진심을, 아직 오지 않은 불편한 미래를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머니 인생도 굴곡이 많았지. 아버지는 종종 제사를 지낼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가 친모가 아니라 계모라는 사실, 친모는 아버지를 낳은 지 이 년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그때 들었다. 구포동 할머니는 192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조선으로 넘어와 구포에 정착했다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조선인 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했지만, 불과 일 년 만에 병에 걸린 남편과 사별했다고 했다. 일본인 송환 때 돌아가지 않으신 걸 보면 아는 친척도 없으셨던 모양이야. 우리한테는 아들을 조선에서 키우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셨지만. 하나밖에 없던 아들은 전쟁 중에 죽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스물세 살 때 할아버지를 만난 거라고 아버지는 덧붙였다. 아버지 바람기가 보통이 아니니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 제사상에 할아버지의 영정을 놓을 때마다 아버지는 그 시절이 떠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구포동 할머니를 들이기 전까지 집안에 몇 명이 거쳐 갔는지. 다들 하나 같이 화장이 진한 술집 여자들이었다고 했다. 구포동 할머니는 어린 아버지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은 유일한 여자였다. 다른 여인들처럼 분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산만한 아버지를 따끔하게 혼냈다고. 그래서 아버지는 이 사람이 아니면 싫다고 했다. 다른 여자들은 싫다고. 어머니로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어린 아버지의 고집에, 할머니는 얼마 가지 않아 쌀가게 사모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참 박하게 사셨지. 같이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수군거리지를 않나. 그때만 해도 말을 좀 어눌하게 하셨으니. 대놓고 쪽발이라고 부르는 못된 인간들도 많았어. 나나 동생도 사춘기 때는 참 못됐지. 길가에서 친구들이랑 걷다 어머니를 만나면 일부러 못 본 척하고 피해 다녔으니. 어머니도 숨통 트일 때라곤 가끔 일본인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게 전부셨을 거야. 거기 모임 이름이 뭐랬더라, 부영회였나? 나중에 검색해 보고서야 나는 그 모임의 이름이 ‘부용회’(芙蓉會)라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떼로 별난 할아버지 곁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던 할머니의 삶을, 할아버지의 권유로 이른 나이에 아이를 세 번이나 유산해야 했던 그녀의 인생을 얼마간 가엾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해, 하나코라는 인간에 대해 그 이상의 의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에게 할머니란 그저 어머니, 지극히 언어적인 의미로서의 ‘어머니’일 뿐이었다. * 무정시제 연습 55 지배하다 현재 시제 : 지배하고 있다 과거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고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다 완료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고, 현재에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무정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지만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무정 시제 연습 178 잃어버리다 현재 시제 : 잃어버리고 있다 과거 시제 : 과거에 잃어버렸고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다 완료 시제 : 과거에 잃어버렸고, 현재에도 여전히 잃어버리고 있다 무정 시제 : 나는 과거에 잃어버렸으나,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고, 지금도 잃어버리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과거에 아이를 잃었으나, 그 일은 그때 한 번으로 완결되었고 지금도 잃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만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일이 아니기에 이것은 미완료가 아니다. 과거에 발생한 그 일이 현재에 하나의 상태로 고정돼 있다고 말할 수 없기에 완료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잊지 않는다. 영원히 재현할 수 없다. 늘 불완전한 중얼거림으로 남아 있다. 이 모든 것이 그 死語(사어)로부터 비롯되었다. * 홍과 만난 것은 베를린에서 어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어학원 친구의 소개로 시내에 있는 한식집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홍은 내가 살고 있던 사설 기숙사 근처에 살고 있었다. 한 번 외식을 할 때마다 잔고가 추락하는 독일의 미친 물가 덕에, 우리는 제법 큰 공용주방이 있는 나의 기숙사에서 함께 요리를 하면서 가까워졌다. 홍이나 나나 독일의 행정은 지긋지긋해했지만, 맥주만은 사랑했다. 홍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라는 것, 일본에서 태어나 하코다테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는 것, 일본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얼마간 비참해지기도 했다. 그건 아마 잦은 변화 속에서도 자상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홍의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나의 친부에 대한 의문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친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친가와도 교류가 없었다. 친부는 고등학교 때까지 복싱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을 당한 뒤부터 구포시장의 도축업자로 일했다고 들었다. 내가 다섯 살 때, 심장병으로 죽은 그는 나에게 자랑할 만한 번듯한 직업조차 남기지 않았다. 고집불통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 아들보다는 딸을 원해 내 이름을 중성적으로 지어버려, 늘 사람들에게 나는 남자라고 해명하게 만든 사람. 그것이 내가 엄마에게 들은 친부에 대한 전부였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 해외에 계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읊어 놓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재혼한 뒤부터는 나에게도 번듯한 아버지가 생겼으니까. 나는 새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곡물 사업을 하고 있다는 모호한 말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은근히 조장했다. 친구들과 격투기 시합을 볼 때면 우리 아버지도 복싱을 했었다고 말했고, 식당에서 시킨 소고기가 생각보다 적어 보일 때는 아버지가 축산업을 해서 아는데, 라는 말로 운을 뗐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오류는 있었을지언정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 할머니도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하시지 않았어? 언젠가 홍이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물론 홍은 그 할머니가 혈연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나는 언젠가 그 말을 하려 했다. 때가 되면 홍의 머릿속에서 파편적으로 떠다닐 나의 가족들을 구분 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일본인이셔. 술에 취한 그날에도 그랬다.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서야 아차 싶었지만, 말을 고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야. 그럼 너, 어떻게 보면 일본인 혼혈인 거네?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듯한 그 미소가 좋았다. 그 미소가 나도 모르게 거짓을 사실처럼, 허구를 진실처럼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근데 부모님도 아니고 기껏해야 할머닌데…. 얘 좀 봐. 21세기에 무슨 그런 시대착오적인 발언이야. 피곤함에 지쳐 있던 홍의 눈빛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됐고. 할머니 이야기 좀 더 해 봐. 혹시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 그즈음 홍은 소논문을 위해 일본 여성들의 이주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해명하는 일을 포기했다. 구포동 할머니가 도쿄도 후추시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오랫동안 부용회라는 재한일본인 처들의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사람이었다고 아버지에게 들은 그대로 말했다. 쌀가게에서 나오는 수익을 몇 번이나 빼돌려 해방 후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들의 생계를 돕고, 홀로 이국땅에서 죽은 그들을 위해 손수 장례까지 치러 주는 바람에 할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은 적도 있다고. 그러고 보니 이번에 장례식 끝나고 할머니 노트 가져왔는데. 노트? 무슨 노트? 그게… 할머니가 좀 특이한 분이셨거든. 그리스어 공부가 취미셨어. 나는 서랍 어딘가에 있는 할머니의 노트를 가져왔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에, 엄마가 버리려던 것을 겨우 말려서 들고 왔다고. 구포동 할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썼던 수십 권의 노트들 중 하나라고 했다. εἰ μέν κ᾽ αὖθι μένων Τρώων πόλιν ἀμφιμάχωμαι 만약 내가 여기 머물며 트로이의 도시를 두고 싸운다면, ὤλετο μέν μοι νόστος, ἀτὰρ κλέος ἄφθιτον ἔσται 내게서 귀향은 사라지겠지만, 불멸하는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할머니는 이 부분을 반복적으로 필사하셨어, 라고 나는 말했다. ‘일리아스’의 문장이래. 왜? 그야 나도 모르지. 잠깐 줘 봐. 홍이 할머니의 노트를 들고 가더니 빠르게 뒤쪽의 페이지를 훑었다. 할머니랑은 한국어로 소통했어? 응.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어가 침투해오는 부산식 한국어긴 했지만. 너희 할머니 작가였어? 무슨 소리야? 너 뒷부분 안 읽어 봤어? 그냥 필사노트라 앞쪽만 읽었는데? 홍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노트를 건넸다. 그러고는 마지막 몇 페이지를 다시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에게서 노트를 건네받았다. 그녀의 말대로 뒤페이지에는 앞쪽의 시제 연습과는 달리 꽤 긴 산문이 있었다. 모두 그리스어로 기술돼 있었다. 할머니는 그 위에 일본어로 ‘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이라고 적어 놓았다. 나는 홍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국의 문자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 모든 아오리스트는 언어의 흐름 속에서 소외된 존재다. 그러나 소외되었다는 사실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오리스트는 단일하고 완결된 사건이지만 지속성과 반복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아오리스트는 사라짐이 아니라 한순간의 존재다. 아오리스트는 불멸하는 명성을 추구한다.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것들을 찾아 헤매고, 떠나왔으나 정주하지도 귀향하지도 않으며, 죽었으나 결코 죽음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치 나의 아이처럼. 마치 아이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나처럼. 알 수 없는 것으로 끊임없이 남겨 두려 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영원한 탐구가 가능해진다. 나는 무정시제이다. 나는 한 명의 아오리스트다. * 그리스어 수업은 처참한 성적표와 함께 끝났다. 홍의 말대로 나는 이미 수준급의 그리스어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 틈에서 시간이 갈수록 기가 죽었고, 독일어로 작품을 써내느라 수업조차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날이 잦았다. 그리스어를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졸업작품을 최종적으로 제출한 늦가을부터였다. 홍과는 그즈음을 전후로 헤어졌다. 나는 학업에 뜻이 없었고, 독일에 계속 체류할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홍은 미국에서 박사 유학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이국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깔끔하게 돌아섰던 마지막조차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느껴졌다. 한국에는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아직 잘 모르겠어. 교수님이 졸업 작품을 출간해 보자고 하시는데. 너는 마음에 안 들지? 홍의 즉답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결말 부분을 좀 더 고치고 싶어서. 신중하게 써야지. 홍이 말했다. 너희 할머니 얘기잖아. 나는 그 말에도 잠시 주춤했다. 이번에도 홍의 대답이 곧장 돌아와서는 아니었다. ‘너희 할머니’라는 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일본에서 보고 싶은 게 있어. 겸사겸사 한국도 잠시 가고. 다른 계획은 있어? 그냥 친구들이나 만나겠지. 그간 미룬 성묘도 좀 가고. 홍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건 좀 궁금하네. 뭐가? 너희 할머니가 쓴 글들. 너는 마지막까지. 왜,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그간 미국행 준비로 바빴는지 홍의 얼굴이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아니, 라고 말하면서 홍이 미지근하게 미소 지었다. 그건 너만 알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오래전처럼 화면 속의 경로를 응시했다. 홋카이도와 도쿄. 고료카쿠 타워와 도쿄 타워. 이제 나는 그곳으로부터 밀려나고 있었다. 오쿠니타마 신사와 유쿠라 신사로부터. 내가 한때 가깝다고 느꼈던 공간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소들에 대한 체감까지 사라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웅크려 있던 그 수많은 장소들의 생동감까지 잃고 있는지는. 언젠가 홍과 함께 하코다테시의 도심을 거닐었던 적이 있다. 홍은 유년을 보낸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 했고, 그해 여름, 우리는 홍의 고향인 홋카이도로 떠났다. 홍은 이곳에 올 때마다 자신이 여기서 살았는지 헷갈린다고 했다. 그 시절이 자신에게 정말로 존재했는지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때 이곳을 떠났고, 떠남에 고통을 느꼈지만,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그런 느낌이 있다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그것이 지극히 아오리스트적인 느낌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을 아오리스트적 사고로 접근하니, 그 모든 일들을 아오리스트적 사건으로 남겨 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친모를 잃었고, 그때 그 일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잃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죽은 친부는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때 그 일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기고 있지 않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날,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주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이름 아래에는 ‘손자’라고 적힌 칸이 있었고, 그곳에 내 이름은 없었다. 아버지는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남동생이 기입을 맡았는데 자신이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그래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냐…. 작은아버지란 사람은 여전히 엄마와 나를 무시했다. 나는 그 장례식장 구석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서울에서 몇 년 만에 내려온 형과 마찬가지로 몇 년 만에 만난 사촌 동생이 사람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에겐 애도할 권리조차 없구나. 그런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그 학기에 교수가 기말과제를 내주며 했던 말-이번 학기에는 신화적 원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이 연이어 생각났다. 그때 느낀 박탈감은 이미 완결되었다. 그러나 그 박탈감이 아직까지 어딘가에서 지속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서…. 너는 이야기를 만들지. 그날 병원에서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왜 그러고 싶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창밖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내가 가져다준 노트를 유심히 보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계속 쓰다 보면 잊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누구에게도 고백한 적 없는 진심이었다. 엄마에게도, 한국에서 글을 쓰던 친구들에게도, 라이프치히 학우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심. 변주하다 보면 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자 할머니가 갑자기 나의 손을 덥석 잡아들었다. 그러지 마. 네?…. 나는 당황했다. 그런 신음에 가까운 말을 내뱉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는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그때는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할머니가 나보다 오랫동안 글을 쓴 사람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비록 할머니에게 나는 지극히 언어적인 차원에서의 손자에 불과했지만. 할머니의 글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왜 일본어도 한국어도 아닌 언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평생토록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 사람은 그 부정조차 부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이중부정이 삶을 긍정의 세계가 아니라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비타협의 상태로 남겨 둔다면 어떨까? 미정도 부정도 아닌 그런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왕복운동으로 인해 삶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비록 할머니의 글에 신화와 문법에 대한 오독이 있을지라도, 나는 할머니가 노년에도 조화나 타협을 포기한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머니에게 완료형이 될 수 없는 시제였던 것처럼, 나에게도 예술가 하나코는 완료형이 될 수 없는 시제다. 할머니와 나는 그런 점에서 닮았다. 우리는 현재와의 연결성이 불확실한 아오리스트였다. 어쩌면 그래서 여전히 그리스어를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오리스트를 쓰기 위해. 아오리스트로 말하기 위해. * 나는 무덤이 되고 싶다. 한때 무정시제라는 언어체계였으나 그 야성적인 규칙에서마저 빠져나가 버린, ‘정해지지 않았다’는 규정에서조차 탈출해 버린 야성의 시간이 묻힌, 어느 범박한 무덤*이 되고 싶다. * 후추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에 들러 체크인을 했다. 할머니의 노트를 넣은 백팩을 메고 바깥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식당은 신사 근처였다. 신사 정문에서 본당까지는 꽤나 기다란 돌길이 일자로 뻗어 있다. 홍과 하코다테를 방문했을 때 들렀던 유쿠라 신사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말끔하게 도색된 유쿠라 신사의 도리이와 달리, 이곳의 석조 도리이에는 검은 이끼들의 흔적이 역력했다. 밝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단지 회색빛으로 수수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 길을 따라 양쪽에 늘어선 나무 도리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역의 기둥들은 차라리 무덤가에 꽂힌 묘목들에 가까워 보였다. 할머니의 소설은 이곳, 오쿠니타마 신사의 어둠 축제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곳을 떠났던 어린 할머니와 같은 나이인 여덟 살 소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닌 신사로 들어선 소녀. 그러나 어째서인지 일본식도 한국식도 아닌 안티고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얼굴 위로 노란 등빛이 번진다. 나는 할머니의 소설을 손에 쥔 채 그들의 맞은편에 쭈그려 앉는다. 이곳에는 빛이 없지만 저곳에는 빛이 있다. 그 빛 속에서 소녀는 부모님에게 신사의 전설을 듣는다. 대장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부인의 순산을 기원했던 이곳에는 늘 행복과 결연의 신이 사람들의 운명을 예언하고 있다고. 앞으로 우리 딸은 어떻게 살려나. 그런 물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오로지 어머니와 딸의 대화로만 이루어진다. 마치 미래를 단정 짓듯, 혹은 예언하듯 미래형의 아오리스트로 기술된 이 소설에서 할머니는 미래를 잃지 않는다. 비록 단발성과 완결성으로 끝난 사건일지라도, 아오리스트의 불확정성이 이미 완결된 운명적 사건에 대한 상상을, 그 미래에 관한 끝없는 고투를 가능하게 한다. 그 습작에서 할머니는 농사꾼이었던 남편과 다시 사별하게 된다. 그러나 일 년 만에 헤어지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그를 더욱 극진히 간호했고, 사별하게 될 남편은 무려 일 년을 더 살게 된다. 그 일 년 동안, 할머니는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조선어가 서툴러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분명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할머니는 소설에서도 할아버지와 결혼한다. 시장 사람들에게 쌀가게 사모님으로 불리고, 결국 이번에도 할아버지의 주사에 뺨을 맞고, 결국 이번에도 임신했던 아이를 유산한다. 그러나 유산할지언정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아이와 함께 육 년을 살게 된다. 아이는 여섯 살이 되던 해, 피란길에 장티푸스에 걸려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지만, 그가 죽기 두 달 전,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고향인 후추시에 방문한다. 바로 이곳에 와서 아이와 함께 밤의 축제를, 가부키극을, ‘거대한’(μέγα) 건물과 ‘넓은’(εὐρὺ) 하늘, ‘꺼질 줄 모르는’ (ἄσβεστον) 불빛들을 지켜본다. 어느새 그들이 바라봤던 집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하늘의 풍경도, 그들을 비추었던 불빛도 희미해진다. 시간은 아이를 잃고 하나코 씨를 잃는다. 돌길 한편에 쭈그려 앉아 그들을 바라봤던 나도 잃어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만, 반대로 무언가 분명 거대하게 남을 것이라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하늘을 바라봤던 사람의 심장에 단발성의 고통이 있었고, 그것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넓었는지 미래의 자신은 분명 알 것이라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한때 이곳에서 손을 잡고 있었던 사람들을 밝혔던 불빛, 한순간의 빛과도 같은 그 시간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순간은 꺼지지 않을 것이고, 그 시간은 어느새 내가 될 것이며, 나는 미래에도 이곳에 있다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허수경, ‘꽃핀 나무 아래’(‘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살아온 길이 일테면 자궁 하나/어느 범박한 무덤 하나 찾는 거라면’
  • 박유천, 깡마른 최근 모습 ‘충격’…일본서 “난 행복해”

    박유천, 깡마른 최근 모습 ‘충격’…일본서 “난 행복해”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이 근황을 공개했다. 박유천은 3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함께 “2025년 마지막 날. 마침내 함께 하는 것은 축복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21세기 4분의 1이 지났다”며 “항상 함께, 고마워요”라고 팬들에게 인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박유천이 전시 공간으로 보이는 곳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담겼다. 팔에 새겨진 타투가 눈길을 끈다. 또 다른 게시물엔 하늘과 강, 도심 전경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며 “후지산을 비행”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비행기 안의 조종사는 ‘곧 오른쪽에서 후지산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가 네가 있는 곳일지도 몰라. 난 행복해”라고 덧붙였다. 박유천은 2019년 필로폰 투약 의혹에 휩싸이며 논란에 올랐다. 당시 그는 결백을 주장하며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연예계를 은퇴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검사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왔고 재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은퇴 선언 이후 활동을 재개한 그는 지난해 국세청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또 한 차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박유천은 일본 등 해외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케네디家 또 비극…35세 외손녀, 암 투병 끝에 사망

    케네디家 또 비극…35세 외손녀, 암 투병 끝에 사망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외손녀가 30대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케네디 전 대통령 장녀인 캐럴라인의 둘째 딸이자 환경 전문기자인 타티아나 슐로스버그(35)가 30일(현지시간) 숨졌다고 케네디 도서관 재단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가족 명의의 게시글에서 전했다. 게시글에는 “우리의 아름다운 타티아나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항상 우리 마음에 있을 것”이라고 적혔다. 슐로스버그는 희귀암으로 투병해왔다. 그는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지 62주년이 되던 지난 11월 22일 미 시사주간 ‘뉴요커’에 올린 기고문에서 자신이 지난해 5월 딸을 출산한 직후 희귀 돌연변이를 동반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진단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기고문에서 수영과 달리기 등으로 건강했던 자신이 암 진단을 받은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했으며, 항암치료와 골수이식 등 투병기를 자세히 적기도 했다. 슐로스버그는 케네디 가문의 일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현 보건복지부 장관을 “나와 직계 가족에게는 부끄러운 존재였다”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당계 정치 명문가 출신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RFK 주니어)가 지난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공화당)을 지지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각료로 활동 중인 것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드러낸 것이었다. 슐로스버그의 죽음은 유독 불행한 사건이 많았던 케네디 가문에 또 다른 비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경우 1963년 암살당했고,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도 5년 뒤 유세 도중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 케네디 주니어(JFK 주니어)는 38세였던 1999년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
  • 李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1년…대통령으로서 깊은 사죄·유가족 종합지원”

    李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1년…대통령으로서 깊은 사죄·유가족 종합지원”

    이재명 대통령은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맞은 29일 “어떤 말로도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책무를 가진 대통령으로서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참사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슬픔을 안긴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고 언급한 뒤 “사랑하는 가족과 해외여행을 마치고, 해외에서의 출장과 업무를 끝내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던 179분의 소중한 삶이 순식간에 비극으로 변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는 형식적 약속이나 공허한 말이 아닌, 실질적 변화와 행동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적극 뒷받침하고 여객기 참사의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또한 유가족의 일상 회복을 최우선으로 삼아 심리·의료·법률·생계 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지원을 빠짐없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12·29 여객기 참사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며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희생자 여러분을 기리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책임져야 할 곳이 분명히 책임을 지는, 작은 위험일지라도 방치하거나 지나치지 않는, 모두가 안전한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끝으로 “다시 한번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빈다. 유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재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 유포나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삼가주세요. 재난을 겪은 뒤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는 경우 ☎02-2204-0001(국가트라우마센터) 또는 1577-0199(정신건강위기 상담전화)로 연락하시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이 기사는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하였습니다.
  • 제주항공 참사 ‘셀프 조사’ 논란 속… 최종보고서도 못 쓴 항철위

    국토부 산하 구조에 독립성 논란유족 불신 깊어져 공청회도 무산안전 전담할 ‘항공안전청’ 등 필요‘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됐지만 사고 원인 조사 결과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 조사의 공정성 논란과 함께 조사 주체인 국토교통부 소속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의 조직 개편이 맞물리면서 진상 규명 작업은 내년까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28일 국토부에 따르면 항철위는 총 12단계로 나뉘는 항공사고 조사 절차 가운데 6·7단계인 검사·분석·시험 및 사실조사 보고서 작성 단계를 6개월 넘게 진행 중이다. 지난 4일에는 지금까지 조사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기술적으로 검증하는 8단계 절차인 공청회가 예정돼 있었으나 유족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에 최종 단계로 분류되는 최종보고서 초안 작성(조사 9단계)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조사에 속력이 나지 않는 배경에 항철위의 독립성 논란이 있다. 참사 진상 규명의 핵심은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는 ‘콘크리트 둔덕’을 비롯한 국토부의 공항 시설물 설치·관리 과정 전반을 따지는 것이다. 그런데 국토부 출신 전·현직 관료가 항철위에 포진하며 정부가 ‘셀프 면죄부’를 주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관련자들은 업무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조사의 공정성 논란은 계속됐다. 항철위는 지난 7월 “조종사가 손상된 오른쪽 엔진이 아닌 왼쪽 엔진을 껐다”는 초기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가 유가족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유족들은 항철위를 향해 “조종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콘크리트 둔덕을 만든 국토부의 책임은 축소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항철위를 국토부 산하 조직에서 국무총리실 소속의 독립된 조사기구로 분리하는 절차가 진행되면서 진상 규명 작업은 더 미뤄지게 됐다. 항공철도사고조사법 개정안은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어 본회의에 계류 중이다. 앞으로 항철위는 참사 원인으로 지목된 조류 충돌·항공 운항·기체·공항시설 등 4개 분야에 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동시에 유가족을 설득해 국민 앞에 공표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이행해야 한다. 특히 항공기가 어떻게 조류와 충돌했는지, 엔진이 파손된 상태에서 조종사가 비상 절차를 수행한 상세한 과정과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은 경위를 밝혀내야 한다. 또 비행기록장치(FDR)와 음성기록장치(CVR) 등 블랙박스에 기록되지 않은 시간의 운항 정보와 둔덕이 미친 영향, 충돌 직후 발생한 폭발과 화재의 원인도 규명해야 한다. 정부는 참사 이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방위각 시설’ 교체 작업을 절반가량 완료했다. 항공기의 조류 충돌 예방 강화를 위한 조류 충돌 전담 인력을 늘리는 등 사후 조치도 이행했다. 하지만 ‘항공안전청’을 비롯한 항공안전 전담 기구가 부재한 점은 여전히 문제로 꼽힌다. 국제 항공업계에서 최고 위상을 지닌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36개 이사국 중 미국·영국을 포함한 32개국이 항공안전을 다루는 별도 조직을 갖추고 있다. 권보헌 극동대 항공대학장은 “항공 안전은 항공 시스템, 공항 운영 등 방대한 분야에 걸쳐 있어 상당한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면서 “사고 재발을 막으려면 항공 안전에 대한 전문가가 의사 결정권을 가진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 “바라는 건 그날의 진실뿐… 보상금 노린단 헛소문에 눈물만”

    “바라는 건 그날의 진실뿐… 보상금 노린단 헛소문에 눈물만”

    한 번에 가족 5명 잃은 박인욱씨무안공항 내 천막서 1년째 버텨부인과 두 아들 잃은 김영헌씨는퇴사 후 참사 알리는 래핑 차 순회조사 지연된 채 사고 잔해 그대로1년간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아 “우리가 원하는 건 딱 하나 ‘진실 확인’인데…1년간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천막 생활을 한 이유도 정확한 조사를 요구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보상금을 받으려고 시위한다는 잘못된 소문이 유족들의 상처를 후벼 파고 있습니다.” 1년 전 179명이 목숨을 잃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인 전남 무안국제공항.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오후 공항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 앞으로 유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로컬라이저는 군데군데 부서진 콘크리트 모습을 휑하니 드러낸 채였다. ‘사고 원인 규명 조사’를 촉구하는 만장을 든 이들 뒤로 철제 펜스 곳곳에는 ‘하늘을 훨훨 날아가라’는 의미가 깃든 푸른색 리본 수천 개가 바람에 펄럭였다. 무안공항은 2024년 12월 29일 오전 9시 3분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1년이 지난 이날까지 항공기 운항이 정상 재개되지 않으면서 그동안 초당대 항공학과 학생들의 실습용 경비행기 이착륙만이 활주로를 울렸다. 공항 내부는 적막 속에서 천막 생활을 하는 유가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어요. 지금은 잠깐 관심을 가져주지만 29일이 지나면 다시 잊히겠지요. 제대로 진실이 밝혀질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부인과 딸·사위, 손주 2명 등 5명을 잃은 박인욱(70)씨는 사위의 과장 승진 기념 여행이 그대로 가족과의 이별이 됐다. 그는 사고 이후 1년 동안 공항 2층에 마련된 천막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박씨는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대표일 때 이곳에 찾아와 진상 규명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다 밝혀준다고 해놓고 우리를 이곳에 처박아 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토교통부 장관도 임명 전 ‘직을 걸고 사고조사위원회를 국무총리실로 옮겨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하나도 지켜진 것이 없다”며 “사람들이 우리를 보상이나 많이 받으려고 매도하는 모습에 화도 많이 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매주 서너 차례 광주에서 무안공항을 찾아 유가족들과 아픔을 나누는 김영헌(52)씨도 부인과 아들 2명을 잃었다. 인도에서 4년 동안 일하던 그는 올해 초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귀국했다. 김씨는 지난 11일부터 전남경찰청 앞에서 매일 오전 8시부터 2시간가량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 전남경찰청장 퇴진을 외친다. 경찰의 수사 의지 부족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44명이 입건됐지만 재판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김씨는 “우리가 요구한 진실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최근 광주 군 공항이 이전해온다며 무안공항 활성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며 “공항 재개가 이슈화되면 사고 조사는 뒷전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전남경찰청 전담 수사관도 4명뿐인 것으로 아는데 현재 속도를 봐선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며 “너무 갑갑하고 힘들어서 유가족의 마음을 담아 참사를 알리는 래핑 차량을 몰고 전국을 돌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재 무안공항은 일부 공사 차량과 직원 차량 30여 대만 오가고 있다. 주변 도로에는 ‘기억하라’, ‘12·29 막을 수 있었다. 살릴 수 있었다. 밝힐 수 있다’는 글이 쓰인 수십 개의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며 유가족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 공항 1층 로비에서는 5m 높이로 층층이 쌓아 올린 캐리어 탑이 그날의 무게를 묵묵히 증언하듯 오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달 초 설치된 캐리어 탑에는 ‘캐리어 179: 못다 한 여행의 기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게이트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신발 179켤레와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가방 179개가 거대한 탑을 이뤘다. 꼭대기에 놓인 가방은 못다 한 그들의 여행이 하늘에서나마 편안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가족들이 요구해 하늘색으로 칠해졌다. 환경작업을 하는 한 직원은 “가방이 쌓여 있는 모습에 유가족들이 자주 눈물을 흘리고, 이곳에 온 사람들도 모두 숙연함을 느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유가족들은 28일 공항에서 로컬라이저까지 거리 행진을 마친 뒤 공항 청사에서 종교행사와 희생자 합동 제사를 지내며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의 밤을 보냈다. 이들은 “1주기가 됐지만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며 “진상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겪은 고통이 누군가에게 반복되지 않고, 진실이 은폐되지 않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참사 1주기인 29일에는 무안국제공항 2층 터미널에서 정부 주관으로 공식 추모식이 진행된다.
  • “비행기에서 이렇게 자면 안 된다”…침대처럼 잔다는 수면법에 전문가 경고

    “비행기에서 이렇게 자면 안 된다”…침대처럼 잔다는 수면법에 전문가 경고

    비행기 이코노미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자는 이른바 ‘기내 수면 챌린지’가 확산하고 있다. 좁은 좌석에서도 숙면이 가능하다는 주장과 함께 관련 영상이 빠르게 퍼지고 있지만, 의료진과 항공 안전 전문가들은 건강과 안전 모두에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폭스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틱톡과 인스타그램에는 비행기 좌석에서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올린 뒤, 안전벨트를 다리에 감아 몸을 고정한 채 잠을 청하는 모습이 잇따라 공유되고 있다. 일부 이용자들은 이 자세가 “침대에서 웅크리고 자는 느낌과 비슷해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며 장거리 비행 시 숙면 비법으로 소개하고 있다. 해당 영상들은 수백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빠르게 확산했고, 장시간 비행을 자주 하는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이코노미석에서도 편하게 잘 수 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인플루언서뿐 아니라 일반 승객들까지 따라 하는 모습이 공유되며 일종의 챌린지처럼 자리 잡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정반대다. 장시간 다리를 접은 채 웅크린 자세를 유지할 경우 하체 혈액순환이 저하돼 심부정맥혈전증, 이른바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혈전이 폐로 이동하면 폐색전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신과 전문의 캐럴 리버먼 박사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다리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뒤틀린 상태로 만드는 매우 위험한 유행”이라며 “혈전이 생기기 쉬운 환경을 스스로 조성하는 셈”이라고 경고했다. 다리가 복부를 압박해 소화 기능이 떨어지거나, 심혈관계 부담으로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항공 안전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미국 승무원 노조위원장 사라 넬슨은 “안전벨트는 반드시 허리 아래에 낮고 단단하게 착용해야 하며, 이는 선택이 아닌 규정”이라며 “승무원의 안전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최대 3만 50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직 승무원 재클린 휘트모어 역시 “해당 자세는 기내 안전 규정뿐 아니라 예절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불가피하게 몸을 웅크리더라도 주변 승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한국인 즐겨찾는 일본… 출국세 3배 기습 인상

    한국인 즐겨찾는 일본… 출국세 3배 기습 인상

    일본 정부가 내년 7월부터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해외 출국자에게 부과하는 ‘국제관광여객세’(일명 출국세)를 현행 1인당 1000엔(약 9000원)에서 3000엔(약 2만 7000원)으로 세 배 인상할 방침이다. 27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전날 열린 관계 장관 회의에서 이 같은 방침을 확정했으며, 이는 2019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이번 인상의 표면적인 이유는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인한 ‘오버투어리즘’ 대응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교토 등 주요 도시의 교통 혼잡, 쓰레기 처리, 소음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비용을 수익자인 여행객에게 분담시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내년도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편성함에 따라 부족한 세수를 관광객으로부터 충당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분석한다. 일본 정부는 이번 인상을 통해 2026 회계연도 기준 전년 대비 2.7배 늘어난 약 1300억엔(약 1조 2000억원)의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한다. 출국세는 국적과 상관없이 일본에서 비행기나 배를 타고 나가는 2세 이상의 모든 사람에게 부과되며, 항공권 가격에 자동으로 포함된다. 이번 인상이 시행되면 4인 가족이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지급해야 하는 세금만 약 11만원에 달하게 돼 여행객들의 부담이 작지 않다. 일본 정부는 또한 2028년부터 무비자 입국객을 대상으로 사전 신고를 의무화하는 전자도항인증제도(JESTA)를 도입하고 추가 수수료를 물릴 계획이어서, 일본 여행 문턱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페라리·일등석 타며 “지긋지긋한 가난”…이게 웃긴가요?(Feat. 김동완)

    페라리·일등석 타며 “지긋지긋한 가난”…이게 웃긴가요?(Feat. 김동완)

    최근 온라인 상에 가난을 호소하면서 실상은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는 ‘가난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가난 챌린지는 재력을 과시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글로는 “가난하다”고 토로하는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주로 소셜미디어(SNS) 스레드를 통해 퍼지고 있다. 비행기 일등석에서 라면을 먹으면서 “지긋지긋하다. 라면 먹는 지독한 가난”이라고 적거나 고급 외제차 내부 운전석 사진을 올리면서 “지독한 가난. 기름 넣을 돈도 없어서 오늘도 출근한다”고 하소연하는 식이다. 한 네티즌은 “지긋지긋한 가난. 오늘도 겨우 먹는 한 끼가 컵라면이라니. 언제쯤 이 가난에서 벗어날까”라며 컵라면 위에 오만원권 현금 다발을 쌓아 올린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밥, 라면이 차려진 식탁 위에 고급 외제차 키를 슬쩍 올려놓은 사진도 있다. 가난과 어울리지 않는 상황을 연출해 웃음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지만 빈곤이 지닌 현실적인 고통 등을 외면하고 희화화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룹 신화 멤버 겸 배우 김동완은 자신의 SNS에 “이걸 자조 섞인 농담이라고 하기엔 타인의 결핍을 소품으로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며 “가난은 농담으로 쓰기 힘든 감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도 홀어머니랑 반지하 생활을 오래했다”면서 “늘 걸리는 단어가 가난”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지금도 돈이 없어 삼각김밥 하나를 살지 말지 고민하는 대학생들의 손에 먹고 살기 위한 폰이 쥐어져 있으니 그만하라”고 당부했다. 다수 네티즌들은 “진짜 가난한 사람들 조롱하는 글로 느껴진다”, “가난이 웃음의 소재가 될 수 있나”, “가난은 누군가에겐 평생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다”라며 김동완의 의견에 공감했다.
  • 김동완, ‘가난밈’에 일침…“웃기기 위해 할 수 없는 말들”

    김동완, ‘가난밈’에 일침…“웃기기 위해 할 수 없는 말들”

    그룹 신화의 김동완이 온라인상에서 유행하고 있는 ‘가난 밈(유행·모방 게시물)’을 비판했다. 26일 연예계에 따르면 그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이걸(가난을) 자조 섞인 농담이라고 하기엔 타인의 결핍을 소품으로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난은 농담으로 쓰기 힘든 과정이다. 웃기기 위해 할 수 없는 말들이 있고, 지양해야 할 연출이 있다”고 꼬집었다. 또 “지금도 돈이 없어 삼각김밥 하나를 살지 말지 고민하는 대학생들의 손에 먹고살기 위한 폰이 쥐어져 있으니”라고 덧붙였다. 이에 누리꾼들은 “정말 맞는 말이다”, “불편했던 밈이었다”,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가난 밈’은 “지긋지긋한 가난”, “지독한 가난” 등의 문구를 쓰고 재력을 과시하는 온라인 게시물을 의미한다. 예컨대 기름값이 없다고 하면서 외제차를 몰거나, 라면을 먹지만 비행기 일등석에 앉아 있는 모습 등을 인증하는 식이다.
  • “중국인 친절하고 따뜻해” 반전…日관광객 후기글 화제, 무슨 사연?

    “중국인 친절하고 따뜻해” 반전…日관광객 후기글 화제, 무슨 사연?

    최근 중일 양국 간 정치·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중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한 일본인 여성의 사연이 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일본인 여성 A씨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베이징 여행 중 뜻밖의 사고를 당했다가 중국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국한 사연을 전했다. 평소 한 중국 가수의 팬이었던 A씨는 공연 관람을 위해 베이징을 찾았다가 귀국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척추와 코, 치마 등이 손상되는 중상을 입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낯선 땅에서 막막한 상황에 부닥쳤다. 가장 큰 문제는 병원비였다. A씨는 가지고 있던 신용카드가 병원 결제 시스템에서 승인되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고, 이를 본 현장의 한 병원 직원이 선뜻 나서 A씨 대신 결제 했다고 한다. 이 직원은 A씨에게 “중국에 온 모든 이는 친구”라며 “사고로 힘든 상황일 텐데 나를 친구라 생각하고 부디 무사히 귀국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료진들 또한 번역 앱을 동원해 A씨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했으며 “외국인 환자를 더 잘 치료하기 위해 외국어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중국인들의 말투가 때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의료진은 진심으로 환자를 돌보는 전문가들이었다”고 떠올렸다. 공항 직원들 역시 휠체어를 제공하며 그가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세심하게 배려했다. A씨는 “이것은 업무의 연장이 아니라 인간적인 친절의 표현이었다”며 “국가 이미지나 언론 보도로 인해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었지만, 내가 만난 중국인들은 매우 따뜻하고 친절했다”고 말했다. 해당 사연을 접한 일본 누리꾼들은 “중국인에 대한 편견이 부끄럽다”, “이런 선의가 양국에 널리 퍼지길 바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중국 누리꾼들 또한 “편향된 정보로 서로를 미워하지만, 정작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가장 먼저 돕는 이들은 우리가 ‘적’이라 배웠던 사람들일 수 있다”며 공감을 표했다.
  • “죽은 사람도 태워주나요?”…비행기 탑승했는데 사망 판정 받은 89세女 ‘발칵’

    “죽은 사람도 태워주나요?”…비행기 탑승했는데 사망 판정 받은 89세女 ‘발칵’

    스페인 남부 말라가 공항에서 영국 런던 개트윅으로 향하던 이지젯 항공편에서 89세 고령 여성 A씨가 기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일부 승객들은 “할머니가 탑승 당시 이미 숨져 있었다”고 주장하며 항공사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했다. 21일(현지시간) 더선에 따르면 해당 항공편은 지난 18일 오전 출발 예정이었으나 출발 직전 기내에서 한 고령 승객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승무원들의 판단이 나오면서 이륙이 중단됐다. 응급 구조대와 공항 당국이 기내로 투입돼 확인한 결과 A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개된 목격담에 따르면 A씨는 휠체어에 실려 탑승했다. 주변 승객들은 “할머니의 머리가 축 처져 있고 눈을 뜨거나 움직이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며 “함께 있던 가족이 할머니의 머리를 받쳐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 승객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지젯이 죽은 사람을 비행기에 태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A씨 가족 측은 “할머니가 단지 몸이 좋지 않아 잠들어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고 항공사 직원에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 중 일부는 가족 중 한 명이 자신을 의료인이라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지젯 측은 공식 입장을 통해 “해당 승객은 탑승 전 ‘비행 적합 진단서(Fit to Fly)’를 제출했으며, 항공기 탑승 당시 의료진에게서 생존 상태로 확인 받았다”고 밝혔다. 항공사는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의료 응급 상황으로 판단해 즉각 대응했다”면서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해당 항공편은 약 12시간가량 지연됐다. 항공사 측은 피해 승객들에게 음식 및 음료 쿠폰을 제공했다. 스페인 현지 경찰은 여성의 정확한 사망 시점과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가족들이 당시 노인의 상태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비행기 공기 논란 재점화…‘기름 냄새’는 그냥 불편함일까?

    비행기 공기 논란 재점화…‘기름 냄새’는 그냥 불편함일까?

    항공기 기내 공기가 조종사와 승무원의 뇌 손상, 심장 질환, 정신 건강 악화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항공 안전과 건강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보도에서 항공기 엔진 오일이나 작동유가 공기 공급 계통으로 유입되는 ‘기내 유증기 유입 사고’ 이후, 일부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중증 신경계 질환이나 심혈관계 이상을 겪거나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례들을 집중 조명했다. 기내 유증기 유입 사고는 비행 중이거나 지상 활주 과정에서 엔진 오일·작동유 성분이 공기 공급 계통을 통해 기내로 들어오는 현상을 말한다. 업계와 규제 당국도 이러한 사고의 발생 자체는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장기적 건강 영향과의 인과관계를 둘러싸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보도에 따르면 사고 직후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수주 또는 수개월이 지나서야 이상 징후가 드러났다는 증언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노출 시점과 건강 변화의 연결 고리를 명확히 규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타는 냄새 이후 나타난 공통 증상” 사고 당시 기내에서는 ‘타는 기름 냄새’, ‘더러운 양말 냄새’와 같은 특이한 냄새가 감지됐다는 증언이 반복된다. 이후 일부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두통, 어지럼증, 집중력 저하, 손 떨림, 판단력 약화 등 신경계 이상 증상을 호소했다. 증상은 일시적으로 사라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악화되거나 다른 증상으로 번졌다는 사례도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노출 강도와 개인의 취약성에 따라 증상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신경·심장 질환으로 이어진 조종사·승무원 사례 WSJ은 건강하던 조종사와 승무원이 유증기 유입 사고 이후 운동 기능 저하와 언어 장애를 겪고, 결국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이나 심장 질환 진단을 받은 사례들을 전했다. 일부 조종사는 비행 중 승객 안내 방송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돼 운항을 중단했으며 사망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부검 결과에서는 신경계 염증이나 심장 근육 손상이 확인됐지만, 의료진은 유증기 노출이 사망의 직접 원인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도 배제도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사례가 많았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착륙 과정에서 유증기 냄새가 재차 퍼지자 조종사가 혼미 상태에 빠졌고 동료가 산소마스크를 착용해 위기를 넘겼다는 증언도 소개됐다. 해당 조종사는 이후 심각한 신체 이상을 겪다 사망했으며 사인은 ‘불명’으로 분류됐다. ◆ “패턴은 보이지만, 인과는 미확정” 신경과·심장 전문의와 법의학자들은 WSJ과의 인터뷰에서 “개별 사례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유사한 증상과 경과가 반복되는 패턴은 무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신경 손상이 기분 변화나 충동 조절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 역시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항공기 내 공기 질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장비가 거의 없고, 실제 노출 수준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어렵다는 점이 연구의 한계로 꼽힌다. ◆ 업계, 안전성 주장하며 선 그어 항공업계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은 “기내 공기는 안전하다”며 “독립 연구와 정부 기관의 다수 연구에서 유해 물질 농도는 낮은 수준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공기 공급 시스템 역시 수십 년간 규제 기관의 인증을 받아왔다는 설명이다. 미국 연방항공청도 현재까지는 기내 유증기 유입 사고와 중증 질환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조종사와 승무원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해외 항공편에서는 일반 승객들 사이에서도 비행 중 ‘기름 냄새’나 ‘타는 냄새’를 느꼈다는 경험담이 보고된 바 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일시적인 불편에 그쳤으며, 항공사들은 점검을 거쳐 정상 운항을 이어갔다. ◆ 공포보다 투명한 조사 필요 WSJ은 기내 유증기 유입 사고의 존재 자체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장기적 건강 영향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공포를 키우기보다는 공기 질 측정 장비 도입, 사고 보고 체계 강화, 승무원 건강 모니터링 등 투명한 조사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내 공기의 안전성과 건강 영향을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 ‘캄보디아 도피’ 황하나, 귀국 비행기서 체포…필로폰 투약 혐의

    ‘캄보디아 도피’ 황하나, 귀국 비행기서 체포…필로폰 투약 혐의

    지인들에게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뒤 캄보디아로 도피했던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37)씨가 경찰에 체포됐다. 경기 과천경찰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황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24일 밝혔다. 황씨는 2023년 서울 강남에서 필로폰을 지인 등 2명에게 투약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상태에서 동남아로 도피했다. 캄보디아로 밀입국해 도피 생활을 하던 도중 인터폴 청색수배(소재파악)가 내려졌고, 황씨 측이 최근 경찰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경찰이 체포 절차에 돌입했다. 경찰은 캄보디아로 건너가 현지 영사와 협의한 뒤 황씨의 신병을 인수하고 귀국하는 국적기에서 황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황씨는 이날 오전 7시 50분 한국에 입국해 과천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다. 경찰은 황씨의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 조사가 더 필요하다며,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황씨는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로 알려져 있으며, 한때 그룹 동방신기·JYJ 출신 가수 박유천(39)과 연인 관계로 소셜미디어(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황씨는 2015년 5~9월 서울 자택 등에서 필로폰을 세 차례 투약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9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형을 받았다. 이어 집행유예 기간이었던 이듬해에도 재차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았다. 2022년에는 마약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다룬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마약 중독 재활 치료를 받는 근황을 공개했다. 당시 황씨는 “마약은 위험하다. 피부와 치아 손상은 물론 거울을 보며 ‘내가 왜 이렇게 생겼지’라고 느끼게 된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2023년 재차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후 지난해 동남아로 출국해 도피 생활을 해왔으며, 캄보디아에서 생활하는 그의 근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 “비상구 만지기만 했는데”…비행기 착륙하자 경찰 조사받은 60대, 무슨 일?

    “비상구 만지기만 했는데”…비행기 착륙하자 경찰 조사받은 60대, 무슨 일?

    제주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항공기에서 비상구 손잡이 덮개를 만진 60대가 경찰에서 조사받고 있다. 부산 강서경찰서는 60대 A씨를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2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7일 오전 9시 45분쯤 제주국제공항에서 김해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에어부산 BX8106편 항공기에서 비상구 손잡이 덮개를 손으로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항공기는 김해공항에 착륙해 유도로에서 대기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객실 승무원에게 제지당한 뒤 공항경찰대에 인계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장난삼아 덮개를 손으로 만졌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공기 안에서 승객이 비상구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조작을 시도하는 행위는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다. 항공보안법 제23조(승객의 협조 의무) 제2항은 승객이 항공기 출입문출입문·탈출구·기기의 조작을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승객이 비상구를 강제로 개방하는 사고뿐 아니라 장난삼아 또는 실수로 비상구를 만지는 행위가 끊이지 않아 항공사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4일 인천발 시드니행 대한항공 항공편에서는 한 승객이 항공기 이륙 직후 비상구 손잡이를 조작했다. 승무원이 제지하자 “기다리며 그냥 만져 본 거다. 장난으로 그랬다”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16일 인천발 시안행 대한항공 항공편에서도 한 승객이 운항 중 비상구를 만진 뒤 “화장실인 줄 알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에서는 최근 2년간 승객이 비상구를 조작하거나 조작을 시도한 사례가 14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승객이 비상구를 실수로 또는 장난삼아 만질 경우 승무원이 주의를 주거나 공항경찰대에서 훈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실제로 비상구를 개방하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항공은 운항 중 비상구를 조작하거나 조작을 시도할 경우 예외 없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형사 고발은 물론 실질적 피해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도 검토하는 한편, 해당 승객에게는 탑승 거절 조치까지 취한다는 설명이다. 국회에는 경미한 출입문·탈출구·기기 조작 행위에도 최대 1억원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항공 보안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 이브에 찾아왔던 11세 천사… 4명 살리고 하늘로 돌아갔다

    이브에 찾아왔던 11세 천사… 4명 살리고 하늘로 돌아갔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태어난 11살 아이가 네 명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됐다. 사람을 좋아하고 누군가를 돕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기던 아이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또래들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7일 순천향대 천안병원에서 김하음(11)양이 폐와 간, 양쪽 신장을 기증하고 숨을 거뒀다고 23일 밝혔다. 하음이는 잠을 자다 갑작스러운 두통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고, 뇌수막염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의 적극적인 치료에도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끝내 뇌사 상태에 이르렀다. 가족들은 회복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중환자실 대기 공간에 붙은 장기기증 안내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다시 깨어나기만을 기도했지만 회복이 어렵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서 깊은 고민 끝에 기증을 결정했다. 가족들은 “사람을 좋아하고 언제나 남을 돕던 아이였기에 세상에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그것 또한 하음이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기증받은 누군가가 건강을 되찾는다면, 그것이 남은 가족에게도 작은 위안이 될 것이라 믿었다고 했다. 하음이는 밝고 활달한 아이였다. 춤추는 것을 좋아했고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해 비행기를 타고 여러 나라를 다니는 승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어머니 양아름 씨는 “하음아, 잘 지내고 있어? 너를 먼저 보내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라며 “하늘에서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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