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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태평양 비핵지역/미 협정서명 곧 결정/로드 차관보

    【포트 모르즈비(파푸아뉴기니) 로이터 연합】 미국은 지난 85년 발효한 남태평양비핵지역(SPNFZ)협정에 대한 서명여부를 곧 결정한다고 미국 국무부의 윈스턴 로드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17일 밝혔다. 로드 차관보는 포트 모르즈비에서 열린 남태평양포럼에 참석한 뒤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의 협상을 비롯한 최근의 사태에 비추어 미국은 남태평양비핵지역 협정과 부속 의정서에 대한 서명과 관련해 빠른 시일 내에 최종 결론을 내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드 차관보는 위싱턴 당국이 이 문제를 긴급사안으로 다루고 있다고 전하면서 이는 미국의 입장변화이며 남태평양포럼의 환영을 받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대한해협/영해 12해리 확대 추진/일본과 곧 공식협의 착수

    ◎영해법 개정안 이번 국회서 처리 정부는 현재 3해리로 돼 있는 대한해협의 영해폭을 다른 영해와 마찬가지로 최대 12해리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조만간 일본측과 공식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14일 『정기국회에서 영해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향후 6개월내에 영해법 시행령을 개정할 수 있어 대한해협 영해폭을 12해리로 할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면서 『대한해협 영해확대를 위해 일본측과 협의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방침에 대해 일본측은 자국의 비핵 3원칙등을 이유로 12해리안에 반대하고 있어 우리측이 먼저 12해리로 확대하거나 일본측과 협의를 통해 적절한 영해폭을 정할 계획이라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그는 이어 『일본측도 우리측의 12해리 확대방침에 맞춰 자국 영해를 같은 기준으로 늘릴 경우 대한해협에 공해가 없어진다』며 『이 경우 공해를 이용,이 해협을 통과해온 타국 선박들의 해협통항에 대한 세부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엔해양법은 영해 12해리와 접속수역 12해리등 모두24해리를 관할해역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법협약 37∼39조에는 국제항행에 이용되는 해협내에서는 군함등 모든 선박과 항공기가 방해받지 않고 통과할수 있는 통과통항권과 모든 나라의 선박에 대해 영해에서의 무해 통항권(17조 및 19조)을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영해법 개정안에는 출입국 관리 및 검역등 우리나라 행정·경찰권의 통제를 받는 접속수역을 영해밖 12해리까지 설치하고 접속수역내 불법조업 및 밀수등에 대해 최고 2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 아세안 비핵지대 조약/12월 정상회담때 조인

    【푸케트 교도 연합】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소속 고위 관리들은 13일 동남아시아 지역 비핵지대 조약 입안을 가속화,오는 12월 방콕 아세안 정상회담중에 이를 조인하자는 데 합의했다고 아세안 관리들이 밝혔다.
  • 북,사정 1만㎞ 미사일 개발/「대포동2호」 정보 러시아서 입수

    ◎미 본토까지 공격 가능/2천년께 실전배치 할듯/정보당국 북한이 개발중인 신형 미사일 대포동 2호는 사거리가 최장 1만㎞에 이르러 미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고 2000년쯤 실전배치될 것으로 분석됐다. 10일 정보당국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측으로부터 입수한 북한 지대지 미사일 관련 첩보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평가됐다. 러시아가 한국측에 전달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산음동 미사일 시험장에서 대포동 1호와 2호의 연구·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최근 이 미사일의 엔진시험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당국은 특히 미국의 국방정보당국인 DIA가 컴퓨터 모의실험을 통해 대포동 2호의 사거리를 4천3백∼6천㎞로 추정한 것과는 달리 일부 기술적 문제를 보완하면 사거리가 9천6백여㎞까지 확장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측은 북한이 보완할 기술로 관성항법장치의 안정성 확보,탄두중량 조절,연료분사 장치 개발 등을 꼽았다.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은 16.2m짜리 추진체에 길이 16m의 노동 1호를 얹어 2단으로 추진하면서 추진체에 1천㎏짜리 탄두를 실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북한은 최근 경제난 등과는 관계 없이 대포동 2호와 같은 장거리무기 개발을 서두르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 유사시,주변국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한 전략적 목적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보보고서의 파장/북 「대포동2호」 미 주요현안 대두/예상보다 긴 사거리… 작년말 엔진시험/미사일 기술통제 강화할듯 북한이 새로 개발중인 장거리미사일 대포동 2호의 사거리가 최장 9천6백여㎞에 이를 것이라는 러시아정보당국의 보고서가 한국측에 전달됨에 따라 북한 미사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측은 지난해 2월 북한 산음동연구시설에서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처음 위성식별한 이후 이를 꾸준히 추적한 결과,이 미사일의 개발이 90년초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한편 지난해 12월 1차 엔진시험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미측은 또한 대포동 2호가 최장 6천여㎞정도 사거리를 갖고 있어 태평양의 괌 정도를 위협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측에 전달된러시아측의 정보는 북한 미사일이 몇가지 보완작업을 마치면 유사시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미국의 분석치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미측은 사실 북한에 대해 미사일보다는 핵개발 저지에 우선적으로 힘을 쏟아왔다. 미측이 지난 2년여 동안 북한핵 개발 저지에 진력한 것은 물론 비핵확산체제(NPT)연장을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비록 북한이 핵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공격대상지점까지 실어나를 수 있는 미사일부문에서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미측은 따라서 북한핵 문제가 일단락되면 추후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의 구축을 강조,전략무기 수송수단인 미사일 개발을 제한한다는 일련의 구상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미국이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에 MTCR가입을 강력촉구하고 있는 것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최근 북한 미사일에 대한 사거리추정이 수정될 상황에 놓이게 됨에 따라 앞으로 북한 미사일에 대한 압력수위가 점진적으로 강화될 계기를 맞게 될 전망이다. 또한 미국이 일본 등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구축에도 이번 러시아의 정보분석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일본이 구상하고 있는 TMD는 일본열도안에 적어도 4곳의 레이더기지를 신설,미사일공격이 가해지면 일본 상공에 접근하기 전에 패트리어트나 에린트(ERINT)등 요격용미사일로 장거리미사일을 공중에서 「잡는」 시스템이다. 결국 북한 미사일은 앞으로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 국가는 물론,미국에까지도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될 전망이다.
  • 해외지역 평통 자문회의 개막/58국 1천명 참가

    ◎북 인권 개선·남북대화 촉구 제7기 해외지역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가 이홍구 국무총리를 비롯한 관계장관과 전세계 58개국 해외자문위원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됐다. 이틀간 열리는 이 회의는 ▲한반도 통일문제 대한 기본인식 ▲북한의 개혁·개방노력 촉구 ▲통일 및 대북정책 추진방향 ▲통일을 위한 해외위원 기여방안등을 집중 토의한다. 해외자문위원들은 이날 이총리와 김진현 세계화추진위원장,홍재형 부총리겸 재경원 장관,송영대 통일원차관,이시영 외무차관등 관계장차관으로부터 정부의 세계화추진 및 경제·외교정책 성과와 추진방향 등 국정전반에 대한 보고를 듣고 향후 활동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총리는 이날 축사를 통해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고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인내심을 갖고 기울여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자문위원들은 이번 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북한동포의 인권개선 노력 ▲남북한기본합의서 및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이행 및준수 ▲남북대화와 교류 접촉 및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핵투명성 보장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 프랑스 핵실험 강행(쟁점)

    프랑스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반발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의 핵실험은 유럽안보를 위협할뿐」이라는 비난과 「핵무기는 전쟁 억지력으로 평화에 공헌한다」는 반론이 최근 프랑스 신문에 게재되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독일 하원 인권위원회 위원장인 프라이무트 두베의원이 르 몽드지에 기고한 「핵무기는 더이상 전쟁억지력의 도구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그 반론으로 알렝 쥐페 프랑스총리가 르 피가로지에 기고한 「전쟁 억지력,그것은 평화」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한다. ◎긍정론/알랭 쥐페 프랑스 총리/불 핵 억지력이 유럽안보·평화 보장/신 국제질서 불안정… 새로운 위협 공동 대응해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6월13일 프랑스가 96년말부터 핵실험을 전면 금지하는 협약에 서명할 것이라고 천명했다.동시에 그는 프랑스가 어떠한 유보조항 없이 협약에 서명하려면 프랑스군의 안전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핵실험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이런 결정이 태평양지역과 반핵기구들의 적의에 찬 반응을유발시켰다.더 놀라운 것은 유럽연합(EU)가운데 어떤 우방국들이 보인 입장들이다.놀랍다는 것은 프랑스의 억지력이 프랑스의 독립만을 보장하지 않는 까닭에 있다.그것은 유럽을 위한 목적이고 안보와 평화를 위한 것이다. 지난 89년이후 자유와 민주주의가 유럽과 세계에서 자리잡았지만 평화와 안전성은 자리잡지 못했다.보스니아사태에서 우리는 비통함을 느낀다.어떠한 신국제질서도 냉전과 자리바꿈하지 못했다.우리는 유럽에 새로운 위협이 나타났다는 것을 유럽국가들에게 말해야할 의무를 느낀다.새로운 위협에 직면해 국제안보와 평화는 계속해서 핵억지력의 존재에 근거할 것이다.핵억지력이 유럽 대륙의 평화를 반세기이상 유지시켜 왔다. 핵억지력에 집착한다고 해서 세계 군비축소나 확산금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프랑스는 과잉군비에 참여한 바가 없으며 91년이후에는 핵능력을 15% 감소시켰다.특히 프랑스의 외교나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연합의 외교는 비핵확산조약의 무조건적인 연장을 이뤄내는데 매우 활동적이었다.스스로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이는 순전히 환상적인 가정이다.프랑스는 억지력의 개념에 만족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마지막 핵실험은 가장 견고한 암석의 매우 깊은 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핵실험이 환경과 인구에 어떠한 손실도 입히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과 같이 핵권한도 수반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주변을 관찰하는데 고취돼 있을 것이다.특히 장래 협약을 검증하는 문제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이다.그러나 시라크대통령의 결정은 심사숙고끝에 나온 것이다.국가의 최우선의 이익을 요구하는 통찰력에서 나온 용기있는 행동이었다.프랑스는 핵실험에 반대하는 합창소리에 동참하지 않은 독일과 영국에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두나라 지도자들이 보여준 모범적인 행동은 어쨌든 민주주의는 선동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유럽방위의 장래는 프랑스와 영국의 억지력이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그것은 연대정신과 침착함 가운데서만 전개될 수 있다.나는 최근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들이 반프랑스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알고서 당혹감을 감출수 없다.약40년전부터 시작된 유럽연합의 건설은 많은 진전을 이뤘으며 96년 정부간 협의는 진정한 질적 발전을 가져 올 것이다.프랑스는 안보와 방위의 책임을 버리게 되면 유럽연합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프랑스는 억지력을 확인하면서 평화와 유럽에 봉사하는 것이다. ◎부정론/프라이무트 두베 독 하원 인권위원장/핵무기 더이상 전쟁억지력 아니다/보스니아전 등 민족분쟁 군사력만으로 해결못해 프랑스의 핵실험이 공개적인 토론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그러한 논쟁을 야기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의 핵실험 결정은 잘못됐다.하지만 그의 잘못된 결정을 취소한다 해도 유럽의 위협에 대한 분석과 안보의 필요성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마저 취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드골 전대통령이 취한 막강한 군사력정책은 당시의 냉전이 핵억지력에 토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에서 토론없이 받아들여졌다. 핵억지력의 전략은 정치적인 반대정파도 핵무기를 전쟁에 사용하지 않는다는데 묵계가 이뤄졌다.핵무기가 처음 사용됐던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아주 복잡한 전략의 발전을 가져왔다.대차대조표를 볼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그것은 과잉군비와 잔혹한 대리전을 허용하도록 했다. 오늘날 핵무기확산을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됐다.그 까닭은 핵무기가 유럽을 위협하는 분쟁을 전혀 억제할 수없기 때문이다. 보스니아사태 같은 분쟁은 20세기말이 전쟁과 평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일상생활 사이에서 치욕을 당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하고 있다.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는 바로 인질인 까닭이다.더이상 무기의 전쟁이 아니다.이런 상황에서 유럽은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조치를 갖지 못한다. 강력한 군사력은 알제리의 내전이나 터키 쿠르드족의 민족분쟁을 종결짓지 못한다.독일과 프랑스는 오늘날까지 안보의 필요성에 매우 상반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금세기에 있었던 두차례의 세계대전이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독일은 군사력에 대해 잠재적인 불신을 갖고 있으며 반면 프랑스는 유약한 군대로 패배와 굴복을 해야만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이런 정서상황을 고려하는 일은 정치인들의 의무이다.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도록 발전시키는 것은 그들의 고유 권한이다. 보스니아 다인종의 존재와 회교주의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서유럽의 군사적 위협을 사용하는 시라크의 생각을 그대로 전파하는 일이 독일에서는 어렵다.알렝 쥐페 총리는 외무장관 재임 당시인 지난1월 핵구성요소를 협조체제에 두겠다고 말한바 있다.시라크대통령은 그러나 그러한 전략이 지지를 받지 못하자 이를 취소한 적이 있다.독일은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했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비핵확산의 동기로 인식되고 있다.이런 관점에서 협조체제라는 것은 현시대에 부적합한 군사기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보스니아분쟁에서 나타나는 유럽의 무기력은 군사력이 약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분열에 있다.보스니아전쟁의 교훈은 유럽이 뭉치면 억제력을 가질 수 있지만 분열되면 크로아티아군대보다 약하다고 요약될 수 있다. 새로운 위험도 거기에 있다.우리는 함께 분석해야 하고 위험은 문명사회의 무기력과 연결돼 있다.그리고 비밀 핵무기 격납고에 저장해둔 핵탄두에 의존해서는 안된다.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여야 한다.
  • 평화협정 체제의 전제(사설)

    한미양국이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에 다시 한국군 이석복소장을 임명한 것은 정전체제를 와해시키려는 북한의 기도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한때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를 미군장성으로 교체하는 문제가 검토됐으나 한국군장성이 계속 맡도록 결정된 것은 의미가 크다.북한의 거부가 예상되지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한반도방위의 한국화」는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정부를 배제시킨채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만 획책해 왔고 이를 위해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려는 정치적 공세를 수년간 자행해 왔다.91년 유엔군사령부가 정전위수석대표를 한국군장성으로 바꾼 이후 정전위소집을 거부해왔고 체코와 폴란드를 중립국감독위에서 억지로 철수시켰다.그리고 군사정전위 중국대표의 철수도 관철시킨 바 있다. 북한이 정전체제를 무력화시키려는 속셈은 뻔하다.주한미군철수와 한미안보조약의 폐기를 겨냥한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이다.한마디로 적화통일의 기반을 다져보겠다는 노림수다.우리도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협정의 대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그러나 그 당사자는 남북한이어야 한다.91년 12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남과 북은 정전상태를 남북사이의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따라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간 회담이 선행되어야 하며 남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는 정전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 현 단계의 남북관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대화를 통한 신뢰회복이다.이를 위해서는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김영삼대통령도 광복50주년 경축사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등 남북간의 합의는 존중돼야 함을 강조했다.북한 당국은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한반도 관련의 모든 문제는 남북한 당사자에 의해서만 해결될수 있는 것이다.
  • 통일 외교안보 정책/전문가 대담(문민정부 후반기 과제:2)

    ◎장기적 관점서 교류확대 꾸준히/교차승인 대비 4강외교 강화를/대북정책 국민적 지지기반 넓혀야/정당 지도자간 비공개 협의 제도화를 성급한 낙관주의는 북 개방에 역효과/「북·미 평화협정 주장」 주변국의 변용 수용 경계해야 문민정부는 출범직후의 북핵문제와 김일성사망등 돌출변수들로 해서 능동적 대북정책을 활기 있게 펴나가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대북 쌀지원등 우리측의 끈질긴 평화노력에도 불구하고 북은 당국간 대화를 회피,한반도 상황은 정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바람직한 통일외교 안보정책 추진방향을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과 정용길 교수(동국대 행정대학 원장)의 대담을 통해 검색해 본다. ▲김학준 이사장=광복과 분단 50주년을 맞는 벅찬 기대와는 달리 남북관계는 아직 경색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문민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의욕적인 대북정책을 펼쳤으나 김대통령이 집권 전반기를 마감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오히려 어려운 국면에 빠져들고 있는 인상입니다.근본적으로는 우리의 선의를 다른 방향으로 이용하는 북이 문제라 하더라도 남북관계 전개 과정에서 우리측이 너무 유화적이었다거나 저자세 협상을 했다는 비판이 없지 않은 형편입니다. ▲정용길교수=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점은 인정하지만 대북정책이 혼선을 빚은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특히 성향이 다른 통일부총리가 지난 2년반 동안 5명이나 교체된 것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만큼 일관성을 결여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아울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도 부족했습니다.결과적으로 지난 2년반 동안의 대북정책은 정부의 관계개선의지에도 불구하고 실행과정에서 세련되지 못한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이사장=북한에 대한 안이한 낙관주의가 남북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입장을 약화시킨게 아닌가 생각합니다.북한에 동포로서 무엇인가를 베풀어주고 민족주의에 호소하면 쉽게 호응해오리라고 보는게 문민정부 통일정책의 기본 발상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그러나 북한은 취할 것은 다 취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지않는 녹록하지 않은 존재였습니다.이는 경수로협상 과정과 인공기 강제게양사건,삼선 비너스호 억류사건등을 빚은 쌀 지원 과정에서 여실히 입증됐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대북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 내실화가 어느 때보다 강조되어야 할것 같습니다.키신저는 교수시절에 쓴 「대외정책의 국내구조」에서 『대내적 지지기반이 확고하지 않으면 대외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고 갈파했는데 이는 대북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훌륭한 교훈입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제는 국민과 함께 가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생각 합니다.물론 대북정책 추진시 기밀성과 보안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는 없겠죠.때문에 최소한 국회에서의 비공개 토론이나 정당지도자간의 협의를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 합니다. ▲정교수=동감입니다.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정치의 안정과 남북관계개선,주변국의 지원등 3박자가 제대로 맞아야 한다는 점입니다.북한의 내부사정을 볼 때 당장 통일이이뤄지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국내적으로도 통일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여론이 적지 않습니다.결국 대북정책은 당장의 통일보다 단계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추진돼야 할 것입니다. ▲김이사장=북한당국은 현재 통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기 보다 내심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봅니다.지난 8월초 남북학자 통일학술회의 석상에서 한 북한대표의 발표에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그는 『우리는 독일식 흡수통일도,베트남식 무력통일도 반대할 뿐 아니라 돈으로 상대를 녹여내는 방식도 반대 한다』고 말했습니다.이는 남북경협을 통해 남쪽의 막강한 자본주의가 북한을 변화시켜 체제가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표현일 겁니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더라도 극히 제한된 범위내에서만 진행시킬 것으로 관측 됩니다.따라서 북한을 개혁·개방의 무대로 이끌어내려는 우리측의 노력이 얼마 만큼 빛을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교수=평양은 통일을 두려워하고 서울은 전쟁을 두려워 한다고들 합니다.특히 북한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과정을 보면서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성급한 통일작업 보다는 꾸준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이를 위해서는 독일의 통일방식을 원용할 필요가 있습니다.즉 인적·물적교류를 꾸준히 확대하는 「작은 걸음 정책」이 필요 합니다.통일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차근차근 접근해나가자는 자세가 중요합니다.김대통령이 광복50주년 기념사를 통해 『통일에 대해 환상적인 기대도 성급한 포기도 금물이며 꾸준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남북한 모두 당장 통일을 맞이할 조건이 성숙돼 있지 않다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이사장=현정부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역대정부,심지어 야당지도자들까지도 한건주의식으로 대북 문제에 접근해 과오를 범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습니다.이제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의 속담처럼 북한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지도자나 국민 모두가 흥분하지 말고 참을성 있게 서서히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 ▲정교수=그동안 정부의 통일외교정책 기본틀은 한·미공조관계 속에서 남북관계를 풀자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최근 북한과 미국·일본간 수교문제가 대두되면서 우리가 다소 소외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이는 앞으로 한반도 주변 6개국의 교차승인이 이뤄지면 남북한간에 외교적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예고해 주는 것입니다.지금의 한반도 주변상황은 구한말 때 보다 외교적으로 더욱 어려운 실정입니다.한반도 주변국들은 당시보다 더욱 막강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한반도에 행사하고 있습니다.남북한의 자주적 평화체제 구축노력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합니다. ▲김이사장=최근 들어 한반도문제가 다시 국제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의 자결권이 약화되지 않나 하는 우려를 갖게 됩니다.물론 남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4강의 동시수교가 이뤄지면 평화가 제도적으로 이뤄진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없는 것은 아니겠죠.그러나 남북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남북대화를 다시 시작해 한반도문제를 「한민족화」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정교수=남북한과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간의 교차승인이 이뤄지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기본적으로 평화체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남북한 스스로가 남북기본합의서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등 기존의 남북한 합의사항을 존중하는 자주적 노력이 긴요합니다.그런데도 북한은 핵문제나 쌀선박 인공기게양사건,쌀선박 억류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도적 차원의 협조에 대해서 조차 그 의미를 희석시키려 하고 있어 유감입니다.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이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김이사장=한반도의 새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 기본합의서등 이미 합의한 남북간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문제는 북한이 현정전협정이 남북당사자간이 아닌 북·미간에 의한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현재로선 미국·중국등 국제사회가 모두 이에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앞으로 새로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20여년 동안 지속된 이같은 북한의 주장이 국제사회에 의해 변용 수용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정교수=현정부 전반기의 통일외교정책을 정리해 본다면 선진한국을 건설한다는 목표아래 외교다변화와 경제실리외교를 전개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특히 대북정책에서는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진보와 보수,강·온전략을 병행하는 정책을 구사해 왔습니다.그러나 대북정책이 당장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이는 우리 정책의 혼선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급작스런 변화를 원치 않는 북한 자체에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까닭에 당장 남북관계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우선 통일에 대한 환상을 깨고 국내정치의 안정을 바탕으로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이사장=통일을 중장기적 과제로 본다는 전제하에서 우선 우리 대한민국을 성숙한 민주 복지국가로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통일의 기틀을 다지는 길일 것입니다.아울러 주변 4강외교,특히 중국등 아시아 이웃들과의 외교을 강화하는 것도 통일의 터전을 닦는 첩경이라고 봅니다.
  • “통일주도 역량 배가”/김 대통령 평통개회사

    ◎북 감싸안을 경제력 키워야 제7기 민주평통 자문회의가 지역 및 직능대표 1만3천4백20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가운데 21일 공식 출범했다. 이날 상오 10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7기 평통 출범회의에는 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해 서울지역 자문위원과 지방 및 해외대표 위원 3천6백여명,민선 시도지사 등이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개회사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민족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민족의 진로에 대한 국내외 동포들의 의견이 합치되고 결의가 확고할 때 통일의 문은 더욱 빨리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이제 막연한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과제로 우리앞에 다가온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더욱 키워나가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특히 북한동포의 어려움을 우리 자신의 어려움으로 여기고 통일에 따른 희생과 부담을 나눌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북한이 안정 속에서 하루속히 개방의 길로 나오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촉구하고 『우리도 질서있고 정의로운 모범적인 민주공동체를 만들고 세계 일류의 기술과 경쟁력을 갖춘 선진산업국가를 건설해 북한동포를 충분히 감싸 안을 수 있는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는 「민족발전공동계획」을 적극 추진하고 북한측에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의 성실한 이행,이산가족등 인도주의 문제 해결과 인권보장을 촉구하는등 4개항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 남북기본합의 준수돼야(사설)

    김영삼 대통령이 광복50주년 경축사에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은 평화통일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남북한관계개선과 한반도평화체제구축을 위한 기본원칙을 제시한 것은 심대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김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경축사를 통해 「한민족공동체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을 내놓은데 이어 올해는 「민족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3원칙」을 천명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대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책기조를 재확인했다. 광복50주년을 맞아 획기적인 대북제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우리는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한 구체적인 제의보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개선과 평화통일에 대한 원칙과 좌표를 설정하고 북한도 이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하는 것이 더 큰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김대통령이 제시한 3원칙중 핵심은 「남북한 당사자원칙」이다.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선 남북한 당사자가 나설 수밖에 없고 그때까지는 현재의 정전체제를 유지해야 한다.91년 12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사이의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그런데도 북한은 정전체제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우리 정부는 제외시킨채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만 획책하고 있다.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원한다면 정전협정의 기능을 정상화시킨뒤 우리정부와의 평화협정에 응해야 한다.현단계의 남북관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대화를 통한 신뢰회복과 인적·물적교류를 촉진하는 일이다.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김영삼 대통령도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등 남북의 모든 합의는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남북한은 이제부터라도 당국간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현안들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우리는 북한당국이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되살려 같은 핏줄끼리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적극 나서기를 거듭 촉구한다.
  • 한반도 평화구축 「기본틀」 제시/김 대통령 광복절경축사에 담긴 뜻

    ◎「당사자 원칙」­「주변국 협조」 분명히/비핵화선언 등 기존합의 준수 강조 김영삼 대통령은 광복 50주년 경축사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기본원칙들을 제시했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한 당사자간 협의와 대화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당사자원칙」이 그 첫번째의 것이다.주변국들은 「협조」할 뿐 결코 평화협상의 당사자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선언 등 모든 남북간 합의사항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도 못박았다.이는 6공말 남북간에 이뤄진 합의사항 준수를 김대통령이 처음 강조한 것이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정전 체제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다.우리는 정전협정을 준수하면서 남북한 당사자간 협의에 의해 새로운 평화체제를 모색하자는 입장이다.김대통령은 이같은 우리의 원칙을 다시한번 분명히 했다. 남북 양측의 견해가 팽팽하다.어느 일방의 양보없이는 교착상태 타개가 어렵다.이때 중요한 것은 국제 여론이다.어느 주장이 더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느냐가 관건이다. 그동안 우리는 주로 남북 당사자 원칙만을 강조해왔다.한반도에서 평화가 파괴될때 그 피해자는 바로 7천만 우리 민족임을 고려할때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6·25 참전국인 미국 중국 등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가의 태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김대통령은 북한이 남북 당사자 원칙만 수용하면 주변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추후 협의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2+2」 「2+4」등으로 관련국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의 협의 과정에서 융통성을 갖자는 취지로 이해된다.아울러 최근에 이어졌던 북측의 비우호적 행위때문에 획기적이고 보다 구체적 제의를 담으려던 정부의 의지가 약화돼 대북 메시지가 다소 원칙론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은 김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이 있기 하루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미 평화협정체결」을 되풀이 주장하는 고루한 자세를 보였다.하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의여론에 밀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응했듯 멀지 않은 장래에 남북 당사자원칙을 수용하게되는 상황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통령은 남북문제에 있어 특히 「인내」를 강조했다.쌀회담에서 보듯 북한의 태도는 종잡을수 없다.그에 일희일비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길은 멀어질 뿐이다.줏대를 갖고 일관성있는 정책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새로운 제안보다 기본원칙을 정리하고 기존합의를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한것 같다.쌀회담등에 따른 비판을 흔쾌하게 수용한 결과로 볼수 있다. 한편 김대통령은 연설에서 광복 이후 50년 역사를 절대빈곤의 시대,남북대치와 군사독재의 어둠의 시대로 구분지은뒤 미래를 선진,통일의 시대로 규정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이라고 강조했다.통일을 위해 남북문제 해결과 함께 우리 내부의 화합,그리고 일제 잔재 해소를 역설해 시선을 모았다. 국내 문제와 관련,김대통령은 「일류국가」를 만들기 위해 사회 각 분야가 선진화되고 세계화될것을 촉구했다.특히 정치에 있어 파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국민을 통합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은 시기적으로 보아 특별히 의미있는 언급으로 받아들여 진다.
  • 김 대통령 8·15 경축사/전문

    ◎광복반세기 올해 남북관계 새 장 열길/민족정기 회복위해 총독부 철거 마땅/지속적 개혁… 21세기엔 역사의 전면에 친애하는 국민여러분,북한동포와 해외동포 여러분,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귀빈 여러분. 우리는 오늘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민족사에 새 지평을 열자는 굳건한 결의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지금 우리의 귓전에는 잃었던 국권을 되찾은 기쁨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던 반세기전 그날의 환호가 생생합니다. 우리의 가슴은 온갖 고난을 뚫고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반세기에 대한 깊은 감회로 가득 차 있습니다.다가오는 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시대로 만들자는 굳은 다짐속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선열들의 축복과 7천만 겨레의 기대가 이 자리에 충만해 있습니다. 이 경하스러운 날을 맞아 나는 먼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애국선열들을 추모하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묵묵히 땀흘려 일해 오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7천만 동포 여러분.우리 겨레에게 지난 50년은 가혹한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우리는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해 왔습니다. 우리는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엄청난 비운을 안은채 국가건설의 대장정에 나서야 했습니다.물려받은 빈곤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생존마저 위협받아야 했던 「절대빈곤의 시대」를 헤쳐나와야 했습니다.극단적인 남북대치와 군사독재 아래 민주주의가 질식하던 「어둠의 시대」를 뚫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사슬을 끊던 불같은 투혼과 강철같은 의지로 우리는 분연히 일어섰습니다.불과 한세대 남짓한 짧은 기간에 우리는 가장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제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뛰어올랐습니다. 민주의 씨앗이 싹트기조차 어렵던 그 메마른 땅위에 문민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웠습니다.민족의 자존을 크게 드높이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고히 세웠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의 당당한 중심국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자유와 풍요의 민주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던 선열들의 소망이 마침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 민족의 위대한 저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입니다. 내외동포 여러분.우리의 성취가 이처럼 빛나는 것임에도 우리의 광복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습니다.남북의 민족성원 모두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일 것입니다. 통일의 큰 길을 열기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평화없이는 통일된 조국은 물론 민족의 장래 또한 기약할수 없습니다. 나는 민족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기본원칙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반드시 남북 당사자간에 협의·해결되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킬 책임은 궁극적으로 남북한 당사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관련 국가들의 협조와 뒷받침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 안정과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비롯한 모든 남북간의 합의사항은 존중되어야 합니다.평화의 첫걸음은 신뢰구축이며 신뢰는 서로 약속한 것들을 지키고 실천에 옮기는데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같은 기본원칙을 밝히면서 남과 북이 지금의 정전협정을 준수하는 가운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적절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야말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해가 되어야 마땅합니다.나는 북한이 조속히 안정되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오고 남북간에도 신뢰가 증진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국민여러분께 당부 드립니다.평화통일은 우리 모두의 절실한 염원이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것은 냉엄한 현실의 과제입니다.통일문제에 대해서는 환상적인 기대도,성급한 포기도 모두 금물입니다.꾸준한 인내심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그것이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7천만 동포 여러분.광복 반세기라는 역사의 장을 넘기는 오늘 우리의 눈앞에 새 하늘,새 땅이 열리고 있습니다.우리 민족에게 무한한 희망을 주는 21세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역사의 전면에 나설 아시아·태평양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선조들의 꿈과 후손들의 소망이 담긴 민족의 꿈을 활짝 펼칠 때가 왔습니다.우리는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제 나는 7천만 겨레의 여망을 모아 민족이 나아갈 길을 역사앞에 엄숙히 선언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조국을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일류국가」로 만드는 것,이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민족사적 소명입니다.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위대한 꿈을 실현하는 세기로 만들어 나갑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나라의 각 분야가 선진화되고 세계화되어야 하겠습니다.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고루 확산되어야 하며 한차원 더 높은 발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파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하는 정치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낡은 틀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새 정치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경제 또한 선진경제권에 진입해야합니다.경제의 규모가 더욱 커질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고도화되어야 하겠습니다.또한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고루 나누어지고 삶의 질을 존중하는 경제가 되어야 합니다. 정당한 부가 존경을 받고 분배의 정의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통일에 대비하는 경제역량 또한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진정한 문화국가를 건설해야 하겠습니다.무엇보다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제도와 관행이 확고하게 정착되어야 하겠습니다.정신문화가 존중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실현되는 투명한 사회가 되어야합니다.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자랑스런 민족문화를 꽃피워야 하겠습니다. 셋째,인류와 세계의 발전에 더욱 기여하는 민족이 됩시다. 우리는 지금 역동적인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우리는 평화와 번영의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를 만드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나아가,민족의 웅대한 꿈을 저 넓은 세계무대에서 펼쳐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와 긴밀하게 협력하고당당하게 경쟁해 나가야 하겠습니다.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진정으로 기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역사는 청산과 계승을 통한 창조의 과정입니다.우리는 오늘 옛 조선총독부를 철거하는 역사적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이 건물이 철거되어야만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경복궁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식민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우리의 민족정기를 회복하자는 온 국민의 뜻과 의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옛 조선총독의 관저를 철거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 입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단순히 식민잔재의 외형적인 청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우리 모두의 의식속에 남아있는 그릇된 역사의 잔재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한·일 두나라 관계가 불행했던 과거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건전한 한일관계의 구축은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건전한 반성의 토대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애국선열 등 1천4백여분을 새로 독립운동 유공자로 모셨습니다.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선열들의 애국애족정신은 우리가 이어 받아 후대에 전해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나는 광복 전반세기와 후반세기를 잇는 대통령으로서 역사의 창조적 발전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거대한 문명사적 변혁 앞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지금 안으로는 내실을 다지면서 밖으로는 21세기를 향한 역사의 격랑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더이상 미움과 분열과 갈등으로 소모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미움을 사랑으로,분열을 통합으로,갈등을 조화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나는 오늘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대대적인 특별사면과 복권을 단행하였습니다.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쳐 대규모의 일반사면도 실시할 계획입니다.이는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 국민 모두가 대화합을 이루어 새출발하는 역사적 계기를 만들겠다는 충정에서 내린 결단입니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이후에 이루어진 부정부패 관련자는 이번 조치에서 제외했습니다.이것은 부정부패는 반드시 척결한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제 온 국민이 하나되어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조국과 민족의 앞날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를 통해 위대한 국민만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우리 모두 다시 한번 한민족의 위대한 21세기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을 세계화합시다.변화와 개혁을 힘차게 추진합시다.그리하여 세계의 중심에 우뚝서서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일류국가」의 꿈을 실현합시다. 50년후 광복 한 세기가 되는 그날,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진정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합시다.감사합니다.
  • 남북함께 평화체제 구축하자/김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통일 이루는게 진정한 광복완성/세계중심의 「일류국가」 건설이 오늘의 소명 김영삼 대통령은 15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반드시 남북 당사자간에 협의,해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세종로 광화문앞 광장에서 열린 제50주년 광복절 경축행사에 참석,경축사를 통해 민족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기본원칙으로 남북 당사자간 해결원칙을 제시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비롯한 모든 남북간의 합의사항은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지킬 책임은 궁극적으로 남북한 당사자에 있다』고 지적하고 『남과 북이 지금의 정전협정을 준수하는 가운데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적절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말해 새로운 평화체제를 논의할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관련국가들의 협조와 뒷받침도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남북의 민족 성원 모두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일 것』이라면서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환상적인 기대도 성급한 포기도 모두 금물이며 꾸준한 인내심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우리의 조국을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일류국가」로 만드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민족사적 소명』이라고 말하고 『파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돼야 한다』면서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하는 정치」 「낡은 틀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새 정치」를 역설 했다. 김대통령은 한·일관계에 대해 『건전한 한·일관계의 구축은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건전한 반성의 토대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앞으로의 국정방향과 관련,『우리에게는 더 이상 미움과 분열과 갈등으로 소모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서 『미움을 사랑으로,분열을 통합으로,갈등을 조화로 바꾸어 나가자』며 화합과 포용의 의지를 피력했다. 김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대대적인 특별사면과 복권을 단행한 것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 국민 모두가 대화합을 이뤄 새 출발하는 역사적 계기를 만들겠다는 충정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설명하고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쳐 대규모 일반사면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2

    ◎전화폐허서 교역 13위 경제강국 건설/부·마사태­10·26사건… 박정권 18년 마감­1979년/「민추협」 발족… 민주화운동 본격 점화­1948년/금융실명제·재산공개 등 대대적 개혁조치­1993년 ▷1971년◁ 2월17일 남한의 한필성,북한의 필화 남매가 국제통화로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4월27일 제7대 대통령선거,5월25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7월28일 서울형사지법 판사 39명이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8월23일에는 실미도 특수부대원이 서울로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10월1일 전국에서 장발족 단속이 시작됐다.12월25일 대연각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8월3일 모든 기업의 사채를 동결하는 이른바 「8·3 조치」가 발표돼 기업들이 자금숨통을 트게 됐다.10월17일 유신이 선포,박정희의 장기집권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1973년◁ 8월8일 김대중씨가 동경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강제송환됐다.10월6일 이화여대생들은 쌍쌍파티 중단을 결의했다.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생산량 25% 감축을 결정함으로써 석유파동이 발생,국내경제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1974년◁ 4월17일 박영복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됐다.7월13일 민청학련사건 관련자 이철 유인태 김지하등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박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육영수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졌다.같은 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1975년◁ 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돼 가결됐다.3월17일 서울 면목동 YH무역 여공 2백여명이 신민당사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76년◁ 8월1일 양정모가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해방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다.10월24일 박동선이 로비활동을 펼친 것이 미국에서 문제화됐다. ▷1977년◁ 8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시험송전을 시작했다.9월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11월11일 이리역에서 한국화약의 화약수송열차가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1978년◁ 1월14일 여배우 최은희가 홍콩에서 납북됐다.4월24일 전남 함평에서 고구마 수매부정에 항의하는 농민대회가 열렸다.6월30일 현대아파트 부정분양사건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7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9년◁ 10월7일 박정희를 비난하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됐다.10월18일 부산에 비상계엄령,10월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됐다(부마사태).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부 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12·12사태). ▷1980년◁ 4월21일 사북광업소 광부 7백여명이 어용노조에 반발해 광산촌을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5월31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가 신설됐으며 8월27일 전두환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0월13일 삼청교육 실시가 발표됐다. ▷1981년◁ 1월13일 대학졸업 정원제가 도입됐다.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전두환이 초대 총재로 선출됐으며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관련 피고인 12명의 형량을 확정했으나 김대중은 나중에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됐다.전두환은 2월25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2년◁ 3월18일 고신대생 문부식등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3월27일에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5월7일 대검은 대화산업회장 이철희·장영자부부를 외국환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18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대통령 처삼촌인 이규광등이 구속됐다. ▷1983년◁ 1월11일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방한,한일정상회담을 갖고 40억 달러를 7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3월17일 일본에서 활약중이던 프로기사 조치훈이 기성을 획득,일본 바둑계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했다.5월18일 김영삼 신민당총재는 민주화와 정치활동 피규제자 해금을 주장하며,자택에서 단식에 들어갔다.6월12일 청소년축구대표팀이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다.10월9일에는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이 발생,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등 17명이 사망했다.11월17일 동아건설은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리비아 1단계 대수로 공사를 32억9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1984년◁ 5월18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주도하는 민주화 추진협의회가 발족됐다.22일에는 서울지하철 2호선이 완전개통됐다.9월6일 전대통령은 일본을 공식방문했다.일본의 히로히토 왕은 만찬에서 과거의 한일관계에 유감을 표명했다.9월 북한 적십자가 보내준 수재구호물자를 남한측이 인수했다.미국방송이 의정부에 핵배낭 특수부대가 배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1985년◁ 5월23일 대학생 73명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사과 요구 및 반미구호를 외쳐 충격을 주었다.9월20일 남북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각 1백51명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다. ▷1986년◁4월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신등 시위가 본격화됐다.7월2일 부천에서 시위중 체포된 여대생 권인숙양을 경찰관이 성고문한 사건이 처음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다가 고문사했다.4월8일 김대중·김영삼씨는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13일 전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개헌논의 유보를 발표하고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24일에는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다.6월10일 민정당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대표를 차기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호헌철폐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29일 노대표가 직선제개헌 수용을 밝혔다.12월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 1월14일 문교부는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확정 발표했다.2월25일 노태우대통령이 취임했다.4월26일 13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그 결과 처음으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났다.9월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돼 10월2일까지 계속됐다.11월부터는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됐다.11월23일 전두환전대통령은 백담사로 은둔했다. ▷1989년◁ 3월25일 문익환목사가 방북,김일성과 면담했다.6월30일에는 외국어대 임수경양이 북한에 들어가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다.9월11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1990∼1년◁ 90년2월9일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민자당이 창당됐다.10월1일 한소양국이 수교했다.91년2월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이 발생,이원배등 의원5명과 청와대비서관,정태수 한보그룹 회장등 8명이 구속됐다.12월18일 노대통령은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했으며 같은달 31일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가서명했다. ▷1992년◁ 3월24일 14대 총선이 실시돼 2번째 여소야대가 실현됐다.정부는 6월30일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95년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8월22일 중국과 수교,주변 4강과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12월19일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당선됐다. ▷1993년◁ 김영삼대통령은 2월25일 취임후 공직자 재산공개,군 하나회 숙정,금융실명제 실시등 굵직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이회창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은 6월 율곡사업감사,7월 평화의 댐 감사등 과거비리를 사정했다. ▷1994년◁ 정부의 외교가 북한핵문제 해결에 집중됐다.그 결과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됐다.국내적으로는 구포 열차전복사건,위도 여객선 침몰사건,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아현동 가스폭발사건,성수대교 붕괴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995년◁ 6월27일 역사적인 4대 지방자치선거가 일제히 실시된 결과 수도 서울의 시장에 민주당의 조순후보가 당선되는등 시도지사에 대거 야당 후보들이 당선됐다.4월28일 대구가스폭발에 이어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고가 계속됐다.
  • 김 대통령 「8·15경축사」 뭘 담나

    ◎대북 「새 제안」보다 통일 좌표에 무게/“남북문제 당사자 해결” 기본입장 천명/내부 대단합­지속적 개혁추진도 강조 청와대측은 8·15를 이틀 앞둔 13일까지 김영삼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 경축사 내용을 다듬었다.광복 50주년의 의미를 살린다는 차원에서 신중을 기하는 측면도 있다.북한의 태도가 너무 예측불허로 왔다갔다 하니까 고심하는 대목도 있을 것이다. 청와대측은 김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획기적 대북 제안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북한이 수용태세가 안돼 있는데 어떤 제안을 해봐도 실효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새 제안보다는 광복 50주년을 정리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큰 테두리를 정리할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하는 광복절 경축사의 방향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해방이후 50년 역사에 대한 평가다. 여러 어려움은 있었지만 결국 문민정부를 탄생시켜 민주화를 달성한 것은 국민 전체의 승리라는 점을 지적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관심을 모았던 남북문제에 대한 언급이다. 정부는 당초 김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 정전체제를 남북 당사자간의 평화체제로 바꾸고 미국 중국이 그 내용을 보장하는 이른바 「2+2」방식을 제안하는 것을 검토했었다.그러나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대신 김대통령은 향후 남북관계의 기조와 관련,현 정전체제를 유지해 나가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모색해 나가야 하며 남북간 모든 문제는 남북 당사자간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천명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또 남북 기본합의서를 포함,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 남북간 모든 합의사항도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밝힐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북한이 우리의 쌀 수송선을 송환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런 하나하나 사건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북한 문제를 풀어간다는 생각이다. 셋째,김대통령은 광복50주년의 의미가 결국 통일로 이어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남북화해와 함께 우리 내부의 대화합 필요성도 천명할 계획이다.「8·11 대사면」의 정신을 살려 새출발을 강조할 것 같다. 부정부패 척결,개혁과 변화의 지속적 추진도 경축사에서 다시 천명될 것이다. 또한 한일 관계가 진정한 이웃으로 성숙한 동반자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측이 과거를 진정 속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것으로 전망된다.
  • 핵실험 중단하라/일,중·불에 촉구

    【히로시마 AFP 연합】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 총리는 6일 히로시마 원폭투하 50주년 기념행사에서 프랑스와 중국에 핵실험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50년전 이날 미국의 원폭 투하로 14만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를 상기키 위해 마련된 기념식에 참석,『중국의 최근 핵실험과 프랑스의 핵실험 재개 결정은 극도로 유감스러우며 우리는 양국에 각각 핵실험 중단과 재개결정 철회를 촉구해 왔다』고 말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행사장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운집한 6만명의 일본인들에게 『우리는 앞으로도 이같은 촉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이어 결코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일본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세계가 핵무기 감축을 적극 추진키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조직한 히라오카 다카시 히로시마 시장도 이에 앞서 주창한 「평화선언」을 통해 『즉각적이며 포괄적인 핵실험 금지와 아·태지역에 새로운 비핵지대 수립』을 촉구했다. 히라오카 시장은 『핵무기의 개발및 보유는 인도에 위배되는 범죄』라면서 히로시마 주민들의 「핵무기 없는 세계」에 대한 기원을 재차 대변했다.
  • 피해자 외면한 「미·일논쟁」(오늘의 눈)

    6일은 히로시마 원폭투하 50주년이었다.지금 미국과 일본에서는 원폭투하에 대한 정당성 논쟁이 한창이다.두나라 언론까지 가세한 듯한 이 논쟁을 보고 있노라면 50년이란 시점을 활용,자국이기주의를 앞세운 「명분」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느낌이다.이 명분 싸움에 밀려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원폭피해자들의 권리는 뒷전이라는 인상도 받게 된다. 일본은 원폭의 참혹상을 알려 2차세계대전의 가해자가 아닌 최대 피해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급급하며,미국은 원폭 사용의 당위성을 역설하는데 온힘을 쏟고 있다. 특히 미국은 내부적으로 당시 정책결정론자들이 원폭 투하를 결정한 진짜 이유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지금까지의 정설은 해리 트루먼 당시 미대통령의 말처럼 『전쟁을 끝내고 수백만명의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이다.그러나 일부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꼭 트루먼의 주장같지는 않다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이들의 주장 핵심은 당연히 원폭투하의 불필요성에 모아진다.당시 일본은 몰락 직전에 있었기 때문에 원폭투하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원폭투하를 강행한 이유는 옛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참전용사단체 등의 주장에 힘입어 트루먼의 주장에 동조하는 전통적 견해가 우세하다.수정주의 역사학자인 카이 버드같은 사람은 『역사학자들보다 참전용사들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이 불행』이라고 꼬집고 있다.미국내 상반된 이 두 주장 모두 「역사」를 알리려는 긍정적 노력으로 볼 수 있겠지만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인도주의」 배려는 도외시하고 있다. 일본의 세계유일 피폭국 강조및 침략전쟁 외면 태도도 「인도주의」를 저버리고 있다.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도 6일의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과 비핵의 실현을 거듭 강조했으나 원폭투하를 몰고 온 태평양전쟁의 참상과 피해자들의 비극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원폭투하 50주년」은 전쟁의 양안에 있었던 「강국」 두나라에 새 쟁점을 제기했지만 정작 전쟁의 수렁 속에 갇혔 있던 「민족」들의 아픔에 대한 이해는 가져오지 못한 것 같아안타깝다.
  • 북 핵무기 보유 추진/아태안보 최대 위협/크리스토퍼

    【반다르 세리 베가완 DPA AP 연합】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2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추진이 현재 아시아­태평양지역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안보문제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이어 이날 개최된 아세안확대각료회의(PMC) 연설에서 북한의 핵보유 추진은 핵확산에 따른 보다 광범위한 위협을 부각시켰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과 프랑스가 핵실험을 계속키로 결정한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미국은 내년까지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낼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핵무기통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동남아지역을 「비핵지대화」하는 계획에 더 이상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남사군도 등 지역분쟁 “핫 이슈”/아세안 연례회의 뭘 논의하나

    ◎중·불 핵실험,미­중 관계악화 대상 이번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연례회의의 주안점은 경제보다는 남사군도를 포함하는 지역안보문제에 주어졌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프랑스와 중국의 핵실험 결정과 관련된 핵문제와 함께 대만의 이등휘 총통의 방미로 야기된 미국과 중국의 긴장관계등 지역내 정치·군사적 문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아세안의 역내 안정에 대한 최대 위협요소로 부상한 것이 바로 남사군도 문제다.남중국해의 산호초와 주변 수역으로 구성된 남사군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필리핀·말레이시아·베트남등 영유권을 주장하는 인접국가와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일으켰다. 아세안은 원칙적으로 중국과의 평화적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필리핀이 유엔중재하의 다자간 협상을 통한 해결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은 단독협상만을 고집하는등 문제접근방식부터가 큰 차이를 보여 평행선만을 그어왔던게 사실이다. 이 문제와 관련,지난 28일 아세안의 한 보고서는 중국이 국제법에따른 평화적 협상 용의를 내비쳤다고 밝혔지만 중국의 강경한 자세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중국은 30일 남사군도에 대한 중국의 주권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며 기존 방침을 재확인해 아세안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오는 8월1일부터 열리는 제2차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것을 고려한듯 중국 심국방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다른 나라의 간섭이나 관여에 대항해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아세안지역포럼은 아세안 국가뿐 아니라 한국·미국·일본·호주등 총 18개국이 참석해 아·태지역의 안보등 제반문제를 논의하는 안성맞춤의 자리를 마련할 터인데 중국이 기존의 강경입장을 고수해 아세안이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아세안은 의견을 통일해놓고 있다.이미 역내의 비핵화를 합의해놓고 있는 아세안은 30일 발표한 아세안외무장관 공동성명에서 핵실험문제와 관련,직접적인 비난은 삼갔지만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실시되는 핵실험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 “남북한의 쌀회담 평화향한 큰 진전”/크리스토퍼 미국무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28일 남북한 쌀회담이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향한 『희망적 진전』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장관은 아시아 순방을 하루 앞둔 이날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이 마련한 오찬 간담회에 참석,『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향한 보다 광범위한 대화가 재개되는 것만이 역내 긴장 완화와 궁극적 화해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하고 의미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기본합의에 따른 의무들을 이행하면 미국 및 역내 다른 나라들과 보다 정상적인 관계를 이루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남북 관계에 진전이 없이는 미·북한 관계에 여하한 중요한 개선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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