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비핵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직업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카오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원칙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비하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039
  • 北 핵포기·美 불침략 선언

    北 핵포기·美 불침략 선언

    |베이징 김상연특파원|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은 19일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경수로 문제에 대해 ‘적당한 시기’에 논의키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6개항의 공동성명(joint statement)에 합의했다. 이로써 2003년 8월 이후 6자회담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원칙과 해법 마련에 성공했으며 향후 구체적인 이행조치로 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6개국은 2단계 4차 6자회담 7일째인 이날 낮 12시2분(현지시간)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회담을 폐막했다. 공동성명은 중국측이 제시한 4차초안 수정본을 토대로 한 것이다. 6개국은 A4용지 3장 분량의 공동성명에서 조선(북)측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하고 이른 시일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체제로 복귀할 것을 약속했다. 이와 함께 6개국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공동성명의 합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율된 조치를 취하기로 했으며, 제5차 6자회담을 11월초 베이징에서 열기로 하고 구체적인 개막 날짜는 상호협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경수로 제공문제를 논의하는 적절한 시점이 언제냐.’는 질문에 “북한이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없애고 NPT에 복귀하고 IAEA의 안전조치를 이행할 때”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후속 협상 과정에서 경수로 제공을 둘러싸고 북한과 한·미간에 상당한 진통과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합의문에서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으며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반입하거나 배치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재확인하고 이는 엄수돼야 하고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현재 한국 영토에는 핵무기가 없음을 밝혔다.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미국은 상호주권을 존중하기로 승낙하고 상호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그들의 양자간 정책에 따라 관계 정상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또 북·일 양국은 (2002년 9월17일) 평양 선언에 따라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남은 현안들을 해결한다는 기초에서 양국관계 정상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대북 상응조치와 관련,6개국은 에너지, 교역, 투자 분야에서 양자 그리고 다자 사이에서 경제적 협력을 증진시키기로 했으며 미국을 포함한 5개국은 북한에 에너지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국은 북한에 200만㎾의 전력을 제공한다는 7월12일의 대북 중대제안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6개국은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지속시키기 위한 공동노력을 다짐하고, 직접 당사자들이 한반도에서의 영구 평화체제를 위해 적절한 별도의 포럼을 열어 평화협정 체제를 협상하기로 했다. carlos@seoul.co.kr
  • [북핵 6자회담 타결] 여야 일제히 환영… ‘성실이행’ 주문

    [북핵 6자회담 타결] 여야 일제히 환영… ‘성실이행’ 주문

    6자회담에서의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성명 채택에 대해 정치권은 19일 일제히 환영을 표시했다. 다만 한나라당은 지난 1994년의 제네바 합의가 휴지조각으로 바뀐 전례를 우려한 듯 북한의 ‘성실 이행’을 특별 주문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라는 공동 목표와 이성적인 실리외교의 원칙 아래에서 가능했던 결과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공동성명문에 스스로 서명한 데 대해 국가로서 신용을 실천해야 한다.”면서 “모든 핵을 깨끗이 폐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가입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협정 준수 등 예측 가능한 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와 원칙에 대한 역사적 합의라 평가하며,7000만 겨레와 함께 환영한다.”면서 “한반도 긴장의 원인이던 북핵문제가 해결된 만큼 남북간 본격적인 경협과 균형 발전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공동성명은 최초로 합의한 동북아 평화헌장 성격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한국 외교의 승리”라고 후하게 평가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북한의 핵포기와 안전보장 문제의 일괄 타결은 국민의 정부 이후부터 일관된 우리 정부의 입장이었다.”면서 “모든 참가국들이 회담결과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정부도 한반도 영구평화 보장과 남북 교류 활성화의 청사진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북핵 6자회담 타결] 핵포기·경수로제공 순서 쟁점될듯

    [북핵 6자회담 타결] 핵포기·경수로제공 순서 쟁점될듯

    |베이징 김상연특파원|19일 북핵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이 극적으로 채택된 것은 ‘적대적 해결’과 ‘평화적 해결’의 두갈래 길 가운데 일단 후자로의 진입에 성공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상당기간 서로를 적대시하며 막말을 주고받아온 미국 공화당 행정부와 북한 당국이 나란히 공동성명에 합의함으로써, 싸움보다는 대화가 서로에게 이롭다는 인식을 갖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북핵 폐기와 경수로 제공 특히 북·미간에 타협의 여지가 극히 협소해 보였던 ‘경수로 제공’에 대해 느슨하게나마 합의가 이뤄진 것은 회담 참가국들의 대화 의지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경수로 절대 불가’ 입장에서 물러선 셈이 됐고, 이에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 포기’로 화답한 모양새가 됐다. 북한은 그동안 ‘모든 핵무기와 관련 프로그램 포기’라는 입장을 고수, 핵폐기의 범위를 무기급으로만 한정지으려 했었다. 이밖에 미국은 북·미간 관계정상화와 평화협정 체제로의 전환 추진, 한반도 비핵지대화 등 북한이 핵 폐기의 대가로 요구해온 거의 모든 사항을 합의해줬다. ●경수로 제공=미봉 합의? 하지만 이날 공동성명 내용 중에는 향후 논란의 여지가 될 만한 항목이 적지 않아 ‘미봉 합의’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가장 큰 쟁점인 핵 폐기와 경수로 제공의 ‘선후(先後)’가 공동성명에 명문화되지 못했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폐기한 뒤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이 양측의 주장을 두루 나열하는 데 그친 것이다. 다만 크리스토퍼 힐 미 수석대표는 회담 후 경수로 논의의 적절할 시점에 대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등에 복귀한 후”라고 못박았다. ‘한반도 비핵화’란 지붕을 ‘북핵포기’(북한)와 ‘상응조치’(미국)라는 두 기둥이 떠받치는 설계도를 그렸으면서도, 어떤 기둥을 먼저 세우는지에 대한 설명은 명시하지 않은 형국이다. 따라서 북·미 양측이 앞으로 상대방에 서로 먼저 기둥을 세우라고 다툴 경우 지붕은 끝내 씌울 수 없게 된다. ●향후 과제는 우리 정부가 대북 송전 중대제안과 경수로 제공에 모두 합의해준 것도 논란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중대 제안은 경수로를 대체하는 개념이었는데 경수로 제공과 함께 명시함으로써 결국 이를 위한 납세자인 국민으로부터 ‘이중과세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른 경수로 건설 비용이 35억 달러였고 정부가 대북 송전 비용으로 추산한 비용이 24억 달러 정도인데, 이번 공동선언문대로라면, 모두 60억(6조원)달러 이상이 추가로 필요하게 된다. ‘경수로 건설’이 아니라 ‘경수로 제공’으로 합의한 것도 논란이 될 수 있다. 경수로 제공은 한·미·일 등 관련국이 돈을 갹출해야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등 각국에서 ‘또 경수로에 돈을 대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5차 회담과 실무회담의 앞길은 첩첩산중이나 다름없다. 정부 관계자는 “어렵게 탄생한 옥동자가 건실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양친을 포함한 친인척들의 각별한 양육이 필요하다.”고 빗댔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어차피 완전한 해결책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봤을 때 이번에 어쨌든 큰 윤곽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만족했으면 한다.”고 평가했다. carlos@seoul.co.kr
  • [북핵 6자회담 타결] 조약 빼곤 가장높은 격…법적 구속력 없어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이 산고를 거듭한 끝에 19일 ‘공동성명(Joint Statement)’ 형식의 합의문을 산출했다. 공동성명은 법적 구속력은 없어 옥동자를 낳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종전 회담의 의장요약이나 의장성명보다 격이 높다. 어느 정도 정치적·도의적 구속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합의문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지붕을 ‘북핵 포기’와 ‘상응 조치’가 기둥이 돼 떠받치고 있으며 ‘관계정상화’ 추진이 두 개의 기둥을 뒷받침하고 있는 모양새를 갖췄다. 국제사회의 양자 및 다자회의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체결 이전의 문서로는 의장요약(chairman summary), 의장성명(chairman statement), 공동보도문(joint press release), 공동성명 등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모두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하지만 가장 격이 높은 공동성명의 경우 합의 사항을 어기면 국제사회의 신뢰를 상실하는 것은 물론, 냉엄한 질책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사실상 합의내용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북핵 6자회담 타결] 부시 “北 핵포기선언은 긍정적인 조치”

    |도쿄 이춘규·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서울 임병선기자|2단계 4차 북핵 6자회담이 19일 ‘북한 모든 핵무기 및 핵개발 계획 포기’라는 성과를 낳으며 타결되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포기 선언은 긍정적인 조치”라며 환영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앞으로 합의 이행을 지켜볼 것이며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핵 활동을 끝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고,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다음 회담에서는 북한에서의 진행 상황을 검증할 방법과 합의내용 이행 시점에 대해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즉각 외상 명의의 환영담화를 발표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일본 외상은 담화에서 “달성해야 할 최종 목표를 밝힌 공동성명에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번 회담 결과는 한반도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한 6자회담의 향후 성공 가능성에 대해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공식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중국 외교부는 “공동성명 발표로 한반도 비핵화는 물론 북·미 대결구도가 급속히 와해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낙관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세부적인 협상에 들어가면 북·미간에 더 큰 진통도 있겠지만 한반도 비핵화의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하마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번 합의를 “북한의 안보 우려, 북한 핵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두려움을 모두 감안한 ‘균형잡힌 일괄타결’”이라고 평가한 뒤 가능한 한 빨리 사찰단이 북한에 들어가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6자 회담 참가국 언론들은 공동성명 합의 내용을 일제히 긴급뉴스로 보도하면서 합의 배경과 문제점, 향후 전망 등을 집중 조명했다. 회담 타결을 가장 먼저 전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북한, 모든 핵무기 포기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회담 당사국들이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키로 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날 인터넷판 머리기사로 타결 소식을 전한 뉴욕타임스는 “참가국간 이견을 드러냈던 시한이나 실행 규정이 명확히 언급되지 않아 추후 협상할 부분이 많은 ‘예비적 합의’”로 규정했다. 신문은 북한이 국제 사찰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와 북한에 허용하는 평화적 핵 프로그램의 성격 규정을 놓고 논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공동성명이 예비적 수준이지만 처음으로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라면서 “공동성명 합의는 중국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회담이 아시아에서 중국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은 북한이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AP와 로이터 등 주요 통신들은 각각 “2년이 넘는 협상 끝에 나온 첫 합의”와 “평화적 핵 이용권을 둘러싸고 딴 목소리 나올 우려”라는 엇갈린 시각을 보였다. 아랍권 방송들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알 자지라는 6자회담 대표들이 2년 간의 협상을 끝내고 역사적인 합의에 도달했다고 전했으며, 알 아라비야와 이집트 나일TV 등도 공동성명 합의를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taein@seoul.co.kr
  • [사설] 북핵 타결, 비핵화 실천이 관건이다

    북핵 6자회담이 마침내 북핵 해결의 이정표를 만들어 냈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 재확인, 북한의 조속한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와 핵 투명성 확보, 미국과 한국 등 5개국의 대북 에너지 지원, 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 적당한 시점의 북한 경수로 제공 논의 등이 6자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의 핵심내용이다. 동북아 평화에 크나큰 위협요인이 돼 온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순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우리는 우선 환영의 뜻을 밝힌다. 아울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합의안 도출을 위해 노력한 6개국 협상 대표단과 우리 정부의 적극적 외교 노력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 이번 베이징 공동성명으로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북 중유지원 중단, 북한의 핵동결 해제 선언 등으로 이어지면서 촉발된 2차 북핵 위기는 만 4년만에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잡게 됐다. 이라크전 이후 북핵 문제에 대한 군사적 해결 방안이 미국 내에서 적극 논의돼 온 상황을 감안할 때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베이징 성명은 어디까지나 북핵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성명에 담은 6개항을 당사국, 특히 북한과 미국이 얼마나 철저히 이행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 4차 6자회담의 최대 쟁점은 북한 경수로 제공 문제였다. 여기에는 북한과 미국의 골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북한은 NPT 복귀를 전제로 다른 국가와 대등한 평화적 핵 이용권을 주장했지만 미국은 북한이 여전히 안보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 수단으로 경수로를 가지려 한다고 의심해 왔다. 이같은 불신의 벽을 양측이 넘지 못하는 한 베이징 성명은 또다시 미완에 그친 제네바 합의로 전락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우선 핵 투명성을 철저히 검증받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NPT 복귀와 함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어떤 사찰활동에도 적극 응해야 한다. 과거처럼 어떤 조건도 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 역시 적어도 북핵 해법이 제 궤도에 오를 때까지 대북인권특사 활동 등을 통해 북한 정권을 자극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은 이번 4차 회담 기간 숱한 물밑 대화를 나눴고, 어느 정도 신뢰 회복의 기반도 다졌다. 성명의 합의내용도 중요하지만 이런 신뢰 회복의 모멘텀을 잘 살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북핵 해법을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양측의 전향적 자세를 기대해 본다.
  • [북핵 6자회담 타결] 6자회담 공동성명 전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전반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대의를 위해,6자는 상호 존중과 평등의 정신 하에, 지난 3회에 걸친 회담에서 이루어진 공동의 이해를 기반으로,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실질적인 회담을 가졌으며,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6자는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하였다.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한국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접수 및 배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재확인하고 자국 영토 내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1992년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은 준수, 이행되어야 한다. 북한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타 당사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명하였고,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관한 경수로 제공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데 동의하였다.2.6자는 상호 관계에 있어 국제연합헌장의 목적과 원칙 및 국제관계에서 인정된 규범을 준수할 것을 약속하였다. 북한과 미국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였다. 북한과 일본은 평양선언에 따라 불미스러운 과거와 현안사항의 해결을 기초로 하여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였다. 3.6자는 에너지, 교역 및 투자 분야에서 경제협력을 양자 및 다자적으로 증진할 것을 약속하였다.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연방 및 미국은 북한에 대해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하였다. 한국은 북한에 200만㎾의 전력 공급에 관한 2005년 7월12일자 제안을 재확인하였다.4.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하였다.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6자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 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과 수단을 모색하기로 합의하였다. 5.6자는 ‘공약 대 공약’,‘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하여 단계적 방식으로 상기 합의의 이행을 위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할 것을 합의하였다. 6.6자는 5차 6자회담을 오는 11월 초 베이징에서 협의를 통해 결정되는 일자에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 “현대·北갈등 해소 역할할 것”

    “현대·北갈등 해소 역할할 것”

    제16차 장관급회담의 남측 수석대표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4일 현대아산과 북한간 갈등으로 중단 위기에 봉착한 금강산 관광 사업과 관련,“정부로서 할 몫이 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의 이같은 언급은 민간 차원에서 유지해 온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해 불개입 원칙을 철회하고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 장관은 이날 오후 고려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금강산 관광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갔고 정부의 희생과 지원이 있었다.”며 “북측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중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을 만났는데, 다음날 12일 현 회장이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천명, 정부의 조정·중재 여지가 줄어들게 됐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이날 남북한은 1차 전체회의와 대표접촉을 잇따라 가졌으나 북측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지를 강하게 요구, 공동보도문 초안 조율작업이 진전되지 못했다. 정 장관은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 합의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 베이징에서 진행중인 6자회담에서 공동 문건이 합의되도록 북측의 호응을 촉구했다. 회의에 앞선 환담에서는 “시간을 끌어봐야 우리(남북)에게 이로울 게 없다.”며 핵문제 우선 해결을 강조했다. 정 장관은 또 대북 송전을 골자로 하는 ‘중대 제안’에 대해 “현재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구상”이라면서 북측의 진지한 검토를 촉구했다. 남측은 그러나 평양출발 전 밝혔던 한반도 평화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군사당국 회담 재개를 강조하며 한반도 평화정착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측은 또 평양이나 개성에 남북한 공동의 경제관리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을 제의하고 이를 다음주 열릴 11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평양)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자고 제의했다. 남측이 북한에 경제부문 공동인력 양성을 제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80년대부터 꾸준히 북측에 제기해 온 남북 상주연락대표부를 서울과 평양에 각각 설치할 것도 재차 촉구했다. 남측은 또 8월 제6차 적십자회담에서 요청한 국군포로 1000명, 전시 행불자 500명, 전후 행불자 430명 등 2000여명의 생사 및 주소확인을 우선 시범 실시하자고 거듭 제안했다.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는 기본발언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결박하고 있는 과거의 낡은 틀과 명분, 형식을 버리고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자.”며 “이와 배치되는 법률,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한 것이란 게 남측 회담관계자의 설명이다. 평양공동취재단·서울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北 “경수로 안되면 미군 철수해야”

    |베이징 김상연특파원| 2단계 4차 북핵 6자회담 이틀째인 14일 북한은 미국과 양자협의를 갖고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주장하면서 경수로 문제를 합의문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만일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미국측이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미군 철수 등을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병행하는 등 초강경 입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미국과 한국은 경수로 건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분명히 함에 따라 회담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는 이날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 와 첫 양자협의를 가진 뒤 기자들에게 “북한이 경수로 문제를 제기해와 우리 입장을 분명히 얘기했다.”면서 “오늘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힐 대표는 그러면서 “북한이 기존의 신포 경수로 건설공사를 재개해 달라거나, 새로운 경수로를 지어 달라거나 하는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서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경수로 주장을 펴면서 지난 1차 6자회담때 기조연설을 통해 주장했던 미군 철수와 한반도 비핵지대화 주장을 다시 내놓는 등 초반 대미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다양한 압박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은 이날 평양방송을 통해 미군 철수를 주장했고, 노동신문도 일본의 핵무기 능력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힐 대표는 취재진에게 “중국의 4차 초안이 완벽한 만큼, 합의문은 최소한의 변화로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경수로는 이론적 문제이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문제인데 누가 돈을 대려고 하겠느냐.”면서 “한반도 비핵화가 더 시급한 만큼,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민순 한국 수석대표도 “4차 초안에 기초해 최소한의 변화를 통해 합의문을 채택토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경수로는 다음 단계의 문제이지,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carlos@seoul.co.kr
  • [사설] 北, 새 경수로 요구 명분없다

    베이징에서 재개된 제4차 6자회담이 북한의 경수로 건설 요구에 부닥쳐 주춤거리고 있다. 북한이 신포 경수로가 아닌 새로운 경수로를 6자회담 차원에서 건설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한반도의 비핵화 이후에 논의할 사안이라며 이를 일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어제 있었던 북·미 접촉에서도 양측은 이 문제를 집중 논의했으나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휴회기간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보장 문제에 대해 6자가 어느 정도 의견을 접근시킨 마당에 새로운 걸림돌이 등장한 셈이다. 우리는 북한의 새 경수로 건설 요구가 현 단계에서 명분이 없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북측 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경수로 건설은 각측의 신뢰구축과 결부돼 있으며, 신뢰구축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의 핵심”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반도 비핵화의 핵심이 신뢰 구축에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수로 건설이 신뢰 구축과 결부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신뢰 구축의 길은 경수로 건설이 아니라 북한의 핵 투명성 확보에 있다.2002년 핵 동결 해제 선언과 함께 핵 개발에 나섬으로써 지금의 북핵 문제를 낳은 당사자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핵 투명성부터 다시 확보하는 일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는 선결과제인 것이다. ‘새 경수로’ 요구에 담긴 북한의 의도는 국제사회의 에너지 지원 보장과 미국의 체제위협에 대항할 핵 주권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달라진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통해 경수로 건설 지원이라는 실리를 챙겼던 1994년 제네바 합의 때와는 국제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제네바 합의를 깨고 핵 개발에 나선 마당에 다시 경수로를 달라는 것은 미국에 두 번 속아보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래선 합의가 어렵다. 우리 정부는 이미 북측에 200만㎾의 송전방안을 제시했다. 북한은 경수로 건설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즉각 핵 투명성 확보를 위한 3대 조건을 수용하고 남측의 전력지원 제의에 응해야 한다. 이번이 북핵 해결의 마지막 기회임을 인식해야 한다.
  • 美 “한국제공 전기 사용” 北“경수로 합의문에 포함”

    |베이징 김상연특파원|한달여 만에 재개된 2단계 4차 6자회담이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집요하게 경수로 건설 주장을 펴는 반면 미국은 ‘절대 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려했던 시나리오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이날 미군 철수와 한반도 비핵지대화 등 이미 철회했던 주장까지 다시 들고 나오면서 파상공세를 펴는 등 협상 주도권 선점을 위한 초반 기세싸움을 불사하고 있다. 14일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가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를 만나고 나와 기자들에게 전한 회담 상황은 북·미간 인식차의 현주소를 확연히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힐 대표의 경수로 반대 입장은 노골적이고 분명했다. 그는 “누구도 북한의 경수로 건설을 지원할 의사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경수로 건설에는 수십억달러의 많은 돈과 10년 이상의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북한이 전력을 원한다면 한국이 중대제안에서 제공하겠다고 밝힌 재래식 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좋은 방안”이라며 “이 방식은 시간이 2년반밖에 걸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힐 대표는 특히 “북한은 경수로가 전력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영변에 있는)흑연감속로가 전력 발전에 이용된 적이 있느냐.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 사용됐을 뿐이다.”라고 극도의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오늘은 경수로의 날이었지만, 이번 주가 경수로 주간이 돼서는 안된다.”고 말해, 앞으로 북한의 경수로 주장에 더이상 끌려다니지 않을 것이란 경고를 덧붙였다. 따라서 15일 오후 다시 열리는 북한과의 양자접촉에서 북측이 강경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회담이 파국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은 물론 우리 정부도 경수로 건설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해 북한의 경수로 주장 철회 외에는 타협의 여지가 협소한 현실을 반영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은 합의문에 경수로 문구를 넣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비핵지대화 주장까지 병행하고 있다.”고 복잡한 상황임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처럼 강경 일변도인 양측의 입장차는 초반 기세 선점을 위한 ‘오버 액션’의 성격이 강하다는 관측도 있어 막판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carlos@seoul.co.kr
  • [학술·종교플러스] 북한 인권·민주화 위한 기도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평신도 사도직협의회(회장 한홍순 한국외대 교수)는 오는 15일 오후 2시 명동성당에서 제10회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월례 기도회’를 갖는다. 국방연구원 김태우 박사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6자회담 전망’을, 탈북자 김태산씨가 ‘북한경제 개방과 체제 유지 사이의 갈등’을 주제로 발표한다.(02)727-2513.
  • [오늘의 눈] 추석과 6자회담/김수정 정치부 차장

    “슬금슬금 겁이 난다.” 추석이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최근 수년간 되풀이된 일들을 떠올린 한 기자의 농반·진반 걱정이다. 몇년 사이 통일·외교 분야 기자들은 추석 연휴 직전, 일찌감치 기사 마감을 끝내고 고향집으로 향하던 도중 북한 및 안보 급보로 회사로 차를 돌린 ‘악몽’을 공유하고 있다.2002년의 북한 신의주 특구 발표,2003년 한국의 이라크 파병 등. 북핵 위기가 뭉근하게 고조되고 남북관계가 경색된 지난해 추석은 역설적으로 근래 가장 평화로운 추석이었다. 올 추석은 어떤가. 한반도 평화와 직결된, 너무도 중요한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4차 2단계 6자 회담이 중국 베이징에서, 그리고 남북장관급 회담이 13일부터 16일까지 백두산에서 열린다. 특히 13일간의 줄다리기 끝에 지난달 8일 휴회한 베이징 6자회담은 이번에도 폐회일을 정하지 않은 채 타결을 시도할 공산이 크다. 지난달 회담 때 우리 대표단은 “성공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의 대회까지 열고 참석했다는 후문. 이번에도 그 결의가 지난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4∼5일 안에 핵폐기 범위 등 쟁점이 타결되지 않으면, 대표단·기자들은 추석연휴(17∼19일)를 베이징에서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당초 합의된 날짜에서 북한이 연기를 주장했을 초반만 해도 ‘남북한과 중국이 추석 명절을 챙기기 때문에 12일이 시작되는 주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춘제(春節)가 최대 축제인 중국도, 추석을 기념일 정도로 여기는 북한측도 ‘한가위’ 명절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지난 회담 때 보름 동안이나 취재해야 했던 기자들 사이엔 “프레스룸에 합동 차례상을 차리는 것 아니냐.”는 푸념도 나온다. 바라건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폐기를 위한 대원칙을 담은 공동성명이 속전속결로 타결됐으면 한다. 그리된다면 기자들은 물론, 우리 국민들에겐 얼마나 큰 한가위 선물이겠는가. 그러나 정말 솔직한 바람. 회담이 추석 때라도 제대로 열려서, 성과가 나오는 현장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추석 연휴가 아니라, 어떤 황금 휴가를 베이징에서 보낸들 어떠하랴. 김수정 정치부 차장 crystal@seoul.co.kr
  • ‘아웅산 보복 北폭격’ 소문…워커가 저지했다

    ‘아웅산 보복 北폭격’ 소문…워커가 저지했다

    ●아웅산 보복 막은 리처드 워커 글라이스틴의 후임자인 워커는 직업 외교관이 아니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의 아시아 전공 학자였다. 남부 출신인 그에게는 ‘딕시’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미국에서는 남부 주들을 ‘딕시 랜드’라고 부른다.) 워커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공화당 중진인 서몬드 스트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의 추천으로 임명됐다. 선거 공신인 스트롬 의원은 출신지역의 인물을 주요 포스트에 앉히고 싶어 친구인 워커에게 “어느 자리를 원하느냐.”고 물었고, 워커는 “한국 대사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워커 대사 재임기간인 1983년 미얀마 양곤을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 정권의 아웅산 테러가 발생했다. 워커는 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그를 만났다. 당시 전 대통령이 아웅산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을 폭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워커 대사는 전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보복 공격은 동북아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면서 “그러지 말아달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에 전 대통령은 “이미 보복 공격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6월 항쟁 때 군 출동 경고한 제임스 릴리 릴리 대사는 중앙정보부(CIA) 출신이었다. 릴리는 글라이스틴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선교사가 아니라 사업가였다. 릴리 대사의 재임 중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수십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서 민주화를 요구했다. 당시 전 대통령은 군을 동원해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려 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군이 나서면 파국에 이를 것이란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당시 김경원 주미대사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달라고 백악관에 요청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전 대통령에게 “진압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표현은 매우 정중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전 대통령을 만난 릴리 대사는 편지 내용보다 훨씬 강력한 어조로 전 대통령에게 경고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릴리 대사는 미군 지도부도 레이건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결국 전 대통령은 군을 투입하지 않았다. 그 직후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이 나왔고,87년 대선에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김영삼의 분열로 결국 노태우가 당선됐다. ●한반도 비핵화 추진한 도널드 그레그 그레그 대사도 CIA출신이다. 그는 1970년대 하비브 대사 시절 CIA한국지부장을 지내며 김대중 납치 사건 때 김대중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설명했다. 중국 및 러시아 전문가인 그레그는 1980년대 조지 H W 부시가 부통령일 때 그의 안보보좌관을 지내며 부시와 매우 가까웠다고 한다. 그레그 대사의 주요 임무는 한국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를 철수시키는 것이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레그 대사 본인이 한국에서의 핵 철수 정책을 강력히 지지했다는 것이다. 오버도퍼 교수는 그것이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협상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고, 그 바탕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정책은 기본적으로 노 대통령이 주도한 것이며, 미국은 작은 도우미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진단했다. 북한과 화해하고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과 노무현 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비슷한 점이 있지만 ▲시기와 주변 상황이 다르고 ▲지금은 북핵 문제가 걸려 있는 점이 다르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물론 그레그 대사 시절에도 북한의 핵 문제는 잠재해 있었지만 실제로 표면화된 것은 93,94년이다. ●워싱턴 고위당국자들의 책상을 내려친 제임스 레이니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명한 레이니 대사는 외교관이 아니라 대학교수였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에머리 대학에서 강의하던 그는 같은 주 출신인 카터 전 대통령과 아주 가까웠다. 젊은 시절 주한미군에서 근무했고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한국 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레이니 대사 시절 북핵 문제가 터졌다. 그러나 당시 워싱턴에서는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레이니 대사는 미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을 만나 북핵 문제가 매우 심각한 사안임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전했다. 레이니는 당시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인식이 기대에 못 미치자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심각성을 설파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94년 들어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 미군이 한반도로 향했다. 북한이 유엔 제재에 반발, 군사적 도발을 할지도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였다고 한다. 레이니는 비행기와 선박을 이용, 한국내 모든 미국인을 피신시키려 했다. 일단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매우 위험한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면서 문제가 해결됐다. 카터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평양을 방문해달라는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왔다. 카터가 대통령 재임시 김일성, 박정희와 비무장지대(DMZ) 3자회담을 추진하는 등 북한을 포용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 등이 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레이건과 H W 부시 정부는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면서 카터의 평양행을 원하지 않았다. 북핵 위기의 한복판에서 카터가 평양을 방문한 것은 레이니 대사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목소리 낮았던 스티븐 보스워스 보스워스 대사는 외교관이면서 경제 전문가였다. 주한 미국대사 가운데 실질적으로 경제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인물은 보스워스가 처음일 것이라고 오버도퍼 교수는 평가했다. 경제 전문가인 보스워스 대사 시절 한국이 금융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상황에 들어간 것은 흥미롭다. 보스워스 대사는 외부에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로 키’를 유지했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재임 당시 누구보다 한국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스워스 재임기간인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보스워스를 비롯한 미 당국자들은 공식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에서의 평가와 입장은 사람에 따라 달랐다고 오버도퍼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막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고 그는 전했다. 보스워스 대사는 미국이 클린턴 정부에서 조지 부시 정부로 넘어가면서 대북 정책이 바뀌는 과정도 겪었다. ●부시가 지명한 3명의 주한대사 외교관 출신인 토머스 허버드 대사는 북한과 많은 협상을 벌여온 북한 전문가였다. 허버드는 제네바 협상 당시 미국 대표단에 포함돼 있었고,95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후속 경수로 협상에선 미국 대표단을 이끌었다. 이후 다른 협상으로 평양을 자주 방문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남북관계 전문가인 허버드를 자신의 첫 주한대사로 지명한 것은 논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평양 당국과의 협상이 주요한 한반도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허버드 대사를 포함, 최소한 3명의 주한대사를 지명하는 대통령이 됐다. 오버도퍼 교수는 크리스토퍼 힐 대사와 알렉산더 버슈보 대사 내정자의 인선은 허버드 대사와 달리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했다. 힐과 버슈보 모두 유럽 전문가들이다. 힐은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폴란드와 발칸반도 등 유럽에서 능력을 발휘했고, 버슈보는 라이스처럼 소비에트 전문가로 나토와 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오버도퍼 교수는 힐 대사에 대해서는 “너무 짧은 기간 대사로 일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코멘트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한국에서 힐 차관보의 인기가 높은 것과 관련,“힐 대사의 인기는 대북 협상이 성공적일 경우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힐 차관보는 전임자인 제임스 켈리보다 정부 내에서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부시 대통령이 버슈보 같은 거물을 차기 주한대사에 지명하려는 것은 한국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버슈보가 유능한 외교관이며 그의 역할은 한·미 정부간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오버도퍼 교수는 17년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국제관계 전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1970년대 이래 모든 주한 미국대사와 한국 대통령·외교부 장관·주미 한국대사를 인터뷰한 경험을 갖고 있다. 포병장교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했으며 1993년 기자를 그만둔 뒤 ‘두 개의 한국’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은 미 정부 한국 담당 관료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현재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daw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1981년 ‘걱정 반 기대 반’속에 등장한 20대의 젊은 총수가 사반세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중년의 관록이 물씬 풍기는 회장이 됐다. 재벌가(家)의 어린 도련님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영자로 바뀌었으며, 패기만만하고 저돌적인 성격은 다소 무뎌진 대신 기다림의 여유를 알게 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 25년째. 당시 국내 최연소 10대그룹 총수로, 풋내 나는 젊은이로 알려진 김 회장의 이미지는 싹 가시고, 어느덧 성공한 2세 경영인, 구조조정의 마술사, 의리파 총수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김 회장은 재계에서 2세 경영의 성공적인 착근을 넘어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경영 수완을 보여줬다. 선친인 고 김종희 창업주 때보다 규모면에서 20배 이상의 성장을 이뤘으니 세간의 평가가 그리 터무니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행착오와 시련도 적지 않았다. 또 그의 성공을 시대상황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악연이 있기도 했으며, 생존을 위해 선친의 손길이 잔뜩 묻은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했다. 또 한화의 부활을 알리는 대한생명 인수 때에는 로비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시절에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던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2세 경영인의 실패가 다반사인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이너마이트 김’ “몇십 배가 남는다고 해도 난 설탕이나 페인트를 들여올 달러가 있으면 단 얼마라도 화약을 더 들여올 겁니다. 나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이며, 화약쟁이가 어떻게 설탕을 들여옵니까?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이나 먹고 살거요.”(실록 김종희) 한화그룹(옛 한국화약그룹) 김종희 창업주가 얼마나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집착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들이 선뜻 하려 하지 않는 사업이었지만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화약업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이름보다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통했다. 그가 다이너마이트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인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의 외곬 성격과 경영 방식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확히 터져야 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속성과 닮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리역 폭발사고.“이리역 폭발사고는 창업 이후 가장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었습니다. 선친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룹 전체를 내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부가 당시 이리시 재건에 총예산 130억원을 잡았는데, 한화가 내놓은 돈이 91억원이었으니 선친의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김승연 회장) 김 창업주는 1922년 충남 천안에서 부친 김재민(작고)옹과 모친 오명철(작고) 여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 화약과 첫 인연을 맺었다.1952년 부산 피란 시절에 한국화약을 창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역과 건설, 정유, 기계 등 기간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김 창업주가 손을 댄 회사 가운데 성격이 다른 유일한 기업은 대일유업(현 빙그레)이다. 여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대일유업의 거듭된 적자로 골치를 썩던 정부는 한국화약(현 한화)에 대일유업 인수를 요청했지만 김 창업주는 기간산업이 아닌 탓에 인수를 꺼려했다. 그러나 축산농가가 쓰러지고 있다는 정부의 집요한 설득에 못 이겨 그는 대일유업을 떠안았다. ●김 회장의 뚝심경영 패기만만한 김승연 회장의 뚝심 경영은 1982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 인수와 합작사인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의 경영권 확보에서 시작됐다. 모든 임원들이 당시 한양화학 인수에 반대했지만 김 회장은 혼자서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젊은 혈기로 무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주주인 다우케미칼의 한양화학 철수는 본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지,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가계약으로 협박하던 다우케미칼측을 ‘편지’ 한장으로 저지한 김 회장의 놀라운 협상 전략이 더해지면서 한화는 당초보다 싼값에 한양화학을 인수하게 됐다. 이는 불안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잠재우며 ‘김승연 체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미국 유니언오일사와 합작해 설립한 경인에너지의 경영권 확보에서도 김 회장의 ‘뚝심’은 잘 드러난다. 한화측에 불리한 계약서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김 회장은 유니언오일의 한국 경영진을 대상으로 ‘을사보호조약 같은….’이라는 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5공 시절에 더욱 화려해진다. 명성그룹 5개사를 인수해 콘도를 비롯한 레저산업에 진출했다. 또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을 인수, 유통 분야로의 사업 확장도 꾀했다.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경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장인인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이 전두환 정권의 실세인 탓에 김 회장의 이같은 공격경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일부 있었다. 서 전 장관이 사위인 김 회장의 사업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관측에서다. 91년에는 빙그레와 제일화재가 계열 분리되면서 2세들의 분가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나는 가정 파괴범”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 회장도 외환위기 파고는 쉽게 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계열사를 팔아야만 했다. 그는 매각 금액을 줄이더라도 고용은 100% 승계를 원칙으로 했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으로 50∼60명의 직원이 일터를 잃게 되자 사내 방송에서 “선대 김종희 회장이 한화를 창업한 이래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었다.”면서 “나는 그들의 가정에 많은 고통을 준 가정파괴범이며, 만일 내가 경영을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비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집에 러닝머신을 설치해서 발에 물집이 생겨 터질 정도로 뛰어보기도 했다.”면서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 때문에 체중이 5㎏ 이상 빠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는 정말 회장직에서 물러날 각오로 경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끝나면서 그에게 ‘구조조정 마술사’라는 애칭이 붙었지만 그는 이에 대해 가슴 아픈 별명이라고 했다. 한화는 2000년 동양백화점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대덕테크노밸리 설립,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외환위기 시절 위축됐던 사세를 크게 확장시킨 것이다. 이로써 한화는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과 대한생명의 금융, 한화국토개발과 한화유통이 포진한 유통·레저산업을 3대 축으로 하는 성장엔진을 마련하게 됐다. ●강태영 여사의 외유내강 강태영(78) 여사를 옆에서 지켜본 이들은 ‘조용하지만 강단있다.’고 평한다. 지난해 4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할 때다. 김호연 회장은 이 상에 자부심이 유독 컸다고 한다. 한때 ‘경영자로서 자질이 의심된다.’는 비난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탓이었다. 강 여사는 작은아들의 수상 소식에 들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시상식장을 직접 찾아 격려할 정도였다. 강 여사는 특히 90년대 초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우의가 상했던 탓에 형제가 화목하게 지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주변에선 전한다. 강 여사는 또 남편인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 한번도 생일 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고 한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2003년 어머니가 희수를 맞을 때 온 가족이 뜻을 모아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 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는 강 여사도 김 창업주 생전에 큰 목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묵묵히 내조를 했다고 한다. 두 아들의 평은 한결같다.“어머니는 유교적인 태도를 간직한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김 창업주와 강 여사는 1946년 장남인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룬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차남인 김 창업주가 부친의 강요에 못 이겨 집안간 혼처가 결정난 곳으로 먼저 상투를 틀었기 때문이다. ●백두진 국회의장 부인의 중매로 김 창업주 생전에 치른 혼사는 맏딸 영혜(57)씨밖에 없다. 영혜씨의 남편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차남인 이동훈(57) 전 제일화재 회장이다. 김 회장은 부친 타계 1년 후인 1982년 서정화 당시 내무부장관의 장녀 영민(44)씨를 배필로 맞았다. 영민씨는 당시 김 회장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신부로, 서울대 약대 3학년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김 회장과 영민씨의 만남은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백두진씨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맺어졌다. 서 전 장관과 김 회장 양가를 잘 알고 있는 백의장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결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과 영민씨는 교제를 시작했고,82년 10월에 식을 올렸다. 동생인 김호연(50) 회장도 형이 결혼하자 곧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48)씨를 배필로 맞아 혼례식을 치렀다. 영민씨는 결혼 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약대를 수석 졸업했다. 현모양처 스타일로 자식 뒷바라지에 애쓰며, 바깥 활동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영민씨 친가도 만만치 않은 유력 가문이다. 부친인 서 전 장관은 29세 때 군수를 지냈으며,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민정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정신 전 대검찰청 차장은 서 전 장관의 친동생이며, 고 서정귀 호남석유 사장은 6촌형이다. 영민씨의 조부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고 서상환 장관이다. ●천안의 명문가 김 회장의 방계도 화려하다. 백부인 고 김종철 의원은 전 국민당 총재로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지냈다. 한화 계열사인 한국베어링(현 파그베어링)과 태평물산(현 한화무역)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경영엔 관여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 유성은(83) 여사 사이에 요섭-신연-수연-진연-규연-광연 등 5남1녀를 뒀다. 둘째숙부인 김종식(70) 전의원은 큰형인 김종철 전 총재가 작고하자 선거구인 천안을 물려받아 국회의원을 지냈다. 부인 문영숙(59) 여사 사이에 정연-서연-도연-원필 등 3남1녀를 뒀다. 고모인 김종숙(64) 여사는 미국에서 UC미클릭에서 지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영일(70)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 부사장을 맡는 등 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친인척 가운데 현재 한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는 인사는 김신연 한화폴리드리머 대표가 유일하다. 김 대표는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의 차남이다. ●‘한화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총자산 37조원의 ‘거함’ 대한생명을 이끄는 신은철(58) 부회장은 보험업에 30년을 몸담아온 생명보험업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사내에서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통한다. 취임 직후 대전 영업현장을 방문, 처음 만나는 지점장 20여명의 이름을 외우고, 친근한 선배처럼 대화를 나눠 참석자들이 헹가래를 쳐주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평소 ‘3선(先) 경영’(선견, 선수, 선제)을 강조한다. 사전에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 신속하게 실행하는 조직만이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출신으로 삼선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나왔다. 진영욱(54) 신동아화재 사장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23세의 나이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수재다.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에서 잔뼈가 굵었다.99년 한화증권 사장으로 전격 발탁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한화증권을 우량 금융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2002년 대한생명과 함께 한화 계열사로 편입된 신동아화재를 만성적 적자 구조에서 흑자로 전환시켰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허원준(59)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는 68년 한화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한 이후 줄곧 석유화학 한 분야에 매진한 전문가이다. 엔지니어와 연구실장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쳤다. 외환위기 이후 한화석유화학의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로서 비핵심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으며, 해외 자본을 유치해 재무구조를 향상시켰다. 경남 출신으로 부산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관수(54) 한화국토개발㈜ 사장은 79년 태평양건설 입사 이후 제일화재 총무부장, 한화종합화학 기획실장, 한화석유화학 관리담당 임원, 여천 NCC 관리 임원, 한화건설 기획담당 임원 등 다양한 직무를 수행했다. 그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뿐 아니라 스킨십 경영을 중시한다.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나왔다. 김현중(55) ㈜한화건설 사장은 건축 기사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실전형 경영인’이다.2000년 개발사업 전문가로서 한화건설로 스카우트된 김 사장은 아파트 브랜드 ‘꿈에그린’과 주상복합 브랜드 ‘오벨리스크’를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4년만에 회사 규모를 4배로 키워냈다. 인천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나왔다. 남영선(52) ㈜한화 사장은 78년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해 인사와 총무, 기획 등 관리업무를 두루 거쳤다. 또 그룹 홍보팀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폭넓은 대외 활동과 원만한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충남 출신으로 배재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golders@seoul.co.kr ■ 김승연회장의 자식교육관 “눈에 꿈이 담겨 있지 않으면 산 너머가 보이지 않고, 그 곳에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깁니다.”(김승연 회장) 김 회장은 동관(22)-동원(20)-동선(16) 등 3세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한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체육활동을 오히려 권한다. 이는 선친에게서 받은 자식 교육에서 비롯된다. 김종희 창업주는 평소에 “남자는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워보고 그래야 해. 어차피 될 놈은 무엇을 하든 간에 나중에 제대로 되니까. 남자의 과정은 여자와 다르지.”라고 했다고 한다. 선친의 기대 때문일까. 자식들 모두 수재인 데다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김 회장은 경기고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 드폴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호연 회장도 경기고와 서강대, 일본 히도쓰바시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또 전인교육을 강조한다.“교육 문제는 집사람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어 저는 큰 방향만 잡아줄 뿐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공부뿐 아니라 지·덕·체를 고루 갖췄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바람입니다.” 3형제도 김 회장의 기대대로 공부뿐 아니라 체육과 문화 활동에 관심이 크다. 특히 막내 동선은 취미로 시작했던 승마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지금은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남 동관은 미국 하버드에 재학 중이며, 차남 동원은 예일대, 막내 동선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재계에서 손꼽히는 2대째 미국통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주와 김승연(53) 한화 회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국의 마당발’이다. 그룹 모체인 화약부문이 방위산업과 연관이 많은 데다 창업주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한미군 및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또 김 회장은 한·미교류협회 회장으로서 선친의 인맥을 미국 정계로 더욱 발전시켰다. 부자는 자연스럽게 ‘다이너마이트 김과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로 불렸다. 리처드 워커 전 주한 미국 대사와의 2대(代)에 걸친 약속은 한화 김씨 부자의 미국 인맥 관리를 잘 보여준다. 창업주는 워커 전 대사의 60세 생일 잔치를 한국식 환갑 잔치로 열어주기로 했지만 1981년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이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인 김 회장이 82년에 환갑 잔치를 열어줌으로써 선친의 약속을 지켰을 뿐 아니라 워커 전 대사의 팔순 잔치도 2002년 서울에서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20년 이상의 약속을 대를 이어 지킨 셈이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선친은 1960년 말부터 워커 전 대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워커 전 대사가 두세달 빨리 태어나 워커 대사는 한국의 미풍양속에 따라 자신이 형님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선친은 또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미군사령관과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세 사람은 자주 만났고, 만남의 횟수만큼 우정도 깊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커 전 대사의 아내였던 세니도 모친(강태영 여사)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김 회장은 또 한·미교류협회를 만들어 미국 인맥을 더욱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데니스 헤스터트 하원 의장,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체니 부통령, 얼 포머로이 민주당 의원, 클린턴 전 대통령 등과 꾸준히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인연은 2002년 미국 하원에서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결의서가 통과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클릭 이슈] 北 평화적 핵이용권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여름 북핵 정국을 달구고 있다.13개월 만에 재개된 베이징 북핵 6자회담이 지난 7일 휴회된 뒤 평화적 핵이용 권리가 북·미간 최대의 이견 포인트로 부각됐고 한·미간 이견설까지 번지면서 회담 휴지기 최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23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만나 북측을 설득할 수 있는 신축적인 문구 조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평화적 핵 활동권리는 1992년 발효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는 핵무기 금지 규정과 함께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한다고 돼 있다. 이는 평화적 핵 에너지는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17일 워싱턴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의약용 농업용 산업용 동위원소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따라서 북한 영변에 있는 IRT2000㎿짜리 원자로의 사용 가능성은 열어둔 것이다.IRT2000은 러시아가 기술을 지원한 것으로, 이 시설에선 세슘과 같은 원소에 중성자를 조사시켜,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든 뒤 방사되는 감마선으로 암치료 등 의료용으로 쓴다. 이 감마선은 식품변질을 막거나, 벼종자 품종을 개량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원료로 우라늄을 쓸 경우엔 달라진다. 고농축우라늄(HEU)을 넣고 중성자를 맞히면 핵무기 재처리를 할 수 있는 플루토늄 239로 화학반응을 하게 된다. 영변의 흑연감속로처럼 악성은 아니지만 충분히 무기용 전환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미측은 허용하더라도 순도가 떨어져 핵무기로 만들기 어려운 저농축우라늄(LEU)용으로 전환하고, 사용전 반입 및 사용후 반출 과정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등의 작업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변에 있는 5㎿ 흑연감속로도 북한은 애초 전력공급 및 연구용이라고 했지만 이곳에서 이미 8000개의 폐연료봉을 추출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4차 초안’을 강조하는 이유 우리 정부는 휴회 이후 줄곧 속개되는 6자회담은 공동성명 4차 초안을 근거로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초안에 평화적 핵활동 권리에 대한 미국측의 완화된 입장들이 담겼기 때문이다.4차 초안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IAEA 의무를 수행하면 그 권리도 가진다.”라는 미래형으로 북한의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회담이 북측의 초안 거부로 무산된 이후 “평화적 핵이용 권리는 현 시점에서 주제가 아니다.”는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북한은 전제 없이 평화적 이용권리가 명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지난 5일 “우리는 전쟁 패전국도 아니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핵활동을 할 수 없느냐.”는 논리를 펴고 있다. 북한이 ‘평화적 핵활동권리’를 주장하면서 무엇을 요구하는지가 아직은 모호하다. 김 부상은 지난 13일 CNN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경수로 운영을 통해 핵무기 제조로 이어질 수 있는 핵활동 가능성을 우려한다면 우리는 엄격한 감독 아래 경수로를 운영할 수 있다.”고 밝혀 핵심은 경수로 건설에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고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등 핵무기를 만드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모든 핵 관련 시설을 폐기해야 하고, 따라서 또다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경수로 건설은 허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우리도 대북 송전계획인 중대 제안을 통해 신포 경수로는 종료됐다는 점을 거듭 밝히고 있다. 다만 우리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잇따라 나서 “모든 국가가 갖고 있는 당연한 권리”라며 북측 입장을 세워 주고는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도 ‘NPT 복귀 뒤 신뢰가 쌓인 후’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우리 정부측에 입장을 설명할 때는 “일반론적인 경수로를 의미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측에는 “경수로 ‘실물’을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제네바 핵합의로 건설되다가 2차 핵위기 이후 중단된 신포 경수로 건설을 이야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 관계자는 “실제 북한이 요구하는 핵심이 평화적 핵이용 권리가 아닐 수도 있다.”면서 “핵폐기의 범위나, 안전보장 등의 문제가 핵심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crystal@seoul.co.kr
  • [광복60-미래를 위한 제언] 한·일 두 학자가 보는 양국관계

    [광복60-미래를 위한 제언] 한·일 두 학자가 보는 양국관계

    광복 60주년.1945년 8월15일에서 2005년 오늘 그 60년은 대한민국의 희망과 좌절, 격동, 전진의 대역사이기도 하다. 광복 60주년이 우리 대한민국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지금 이 시기 한반도 평화는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돼야 하는지,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한반도 평화 구축이란 대전제 속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두 나라 국민 모두에게 던져진 과제다. 이런 취지 아래 한·일 두 학자의 인터뷰를 통해 양국 관계의 미래를 위한 제언을 듣는다. 최상용 교수는 주일 한국대사를 지낸 대표적인 지일파(知日派)학자이며, 고하리 스스무 교수는 신진 지한파(知韓派)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최 교수는 직접 인터뷰를, 고하리 교수는 e메일 인터뷰를 했다. ■ 주일대사 역임 최상용 고려대 교수 ▶광복 60주년이 갖는 의미를 정리하면. -우선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갖고 싶다.1945년 광복 이후 3년 의 군정을 거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우리는 자유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선택했고 그 기반 위에 산업화를, 산업화의 태내에서 자생적인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민주화된 시장경제를 구현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하지만 일본의 민주주의는 서구처럼 시민혁명에 의한 자생적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명치유신 이후 약 140년간 서구 민주주의를 학습해 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7년간의 미군의 점령정책이 일본의 민주화를 반석에 올려 놓았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은 분단과 전쟁, 독재, 수많은 희생, 반인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광복 60년 이순(耳順)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냉혹한 국제현실에서 자주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자주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안팎의 자원을 주체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다. 냉전시대엔 서방의 맹주였던 미국이 있었고, 서방체제 안에 편입돼 있으면 안전했다. 이젠 달라졌다. 자주 역량을 발휘한 최근 두 사례가 있다.5년 전 6·15 남북정상회담은 바깥 세력에 의해 강제된 한반도 냉전을 우리 민족의 힘으로 풀어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자주적 역량의 표시로 이를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본다. 지난 1년여 동안 정체된 6자회담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내 조정자 역할도 훌륭했다. 우리는 이제 ‘중견국가’로서의 역량을 갖춰 나가면서 자유와 자주를 기반으로 한반도 평화를 일궈 나가야 한다. ▶한·일관계의 현주소와 미래는. -1965년 국교 정상화 무렵 한·일국민간 교류는 연간 만 명이었다. 지금은 하루 만 명 이상이다. 이 현실을 무게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1998년 한·일 파트너십 정신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과, 이를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갈 것,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를 한국시장에 개방하는 것이 중심내용이었다. 우리와 일본의 문화산업의 격차를 우려해 많은 국민들이 반대했다. 나는 당시 문화 교류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서의 우열의 문제가 아니고,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끊임없는 서로 배우기의 과정이라고 판단하여 찬성했다. 그래서 지금 한류(韓流)가 있다. 한·일 과거사 논쟁에서 항상 먼저 어기는 쪽은 일본이다. 소위 망언인데,6자회담에서 화두가 된 ‘말 대 말’‘행동 대 행동’ 원칙을 기초로 일측에 대응하되, 한·일관계 협력을 위한 큰 틀을 유지하는 게 성숙한 자세가 아닌가 한다. ▶구체적으로 독도 문제 등이 나오면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독도는 실효 지배를 유지하고 내실화하면 된다. 독도는 우리의 천연기념물이다. 우리 정원을 가꾸듯 해야 한다. 관광객, 군인, 경찰이 대거 들어가는 것보다 천연기념물 관련 전문연구원을 상주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관련해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신사에 합사돼 있는 A급 전범이다.A급 전범의 분사, 또는 제3의 추도시설 등 일본의 사려 깊은 조치를 기대하고 싶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미국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패전국 일본의 A급 전범 판단을 한 당사자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일본을 획일적으로 보는 경향에 대해선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부 극우지도자들의 망언으로 일본 전체를 나쁘게 보면, 수많은 친구를 잃는 우를 범한다.4년 전 문제의 후소샤 교과서 채택률이 불과 0.039%였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한류에 마음을 열고 있는 수많은 일본인의 반응을 귀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평균적인 일본 국민에게 정서적으로 호감을 받을 수 있고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지난 베이징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고집, 참가국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본의 위치와 역할은. -이 지구상에서 비핵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이면서 핵을 갖고 있지 않은 일본이다. 인류사상 최초의 피폭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방법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전후 일본은 비핵3원칙을 바탕으로 핵무기를 만들 능력을 충분히 가졌으면서도 만들지 않고 있다. 그런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이런 점에서 비핵 이니셔티브를 위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가해자이자 동시에 원폭을 맞은 피해자이다. 그러나 그 두개 고리가 따로따로 논다. 그 간격을 이을 수 있는 전략도 설명 책임도 없어 보인다. 사실 일본에서의 ‘납치 문제’는 우리나라의 독도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어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6자회담은 목적이 한반도비핵화다. 피폭국가 일본은 최소한 비핵과제와 납치문제를 병행할 수 있는 전략이라도 보여야 한다. 일본은 이번 6자회담을 통해 대 아시아 외교를 소홀히 해 온 대가를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에만 의존했던 안이함이 부른 화(禍)라고 할 것이다. 보통국가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헌법을 바꾸려 하고, 자위대를 강화하려는 ‘전쟁가해국가’ 일본이 아무리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국임을 강조한다 해도 이웃나라가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수정 기자 crystal@seoul.co.kr ■ 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지난 60년간의 한·일관계를 평가한다면. -엇갈림과 협력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 시대에 한국인은 과거사 문제로 대일청구 의식을 강하게 했지만, 일본인은 한반도를 무관심·기피의 대상으로 했다. 박정희 시대에는 양국 정부가 양국간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모색했지만, 국민 차원에서는 상호 이해가 진행되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 시대에는 일본인이 이문화로서의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다. 김영삼·김대중 시대는 역사인식 문제로 갈등이 있는 한편 대중문화 교류가 비약적으로 진행되었다. 노무현 시대는 일본에서는 한류를 통해 호의적으로 한국을 보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외교갈등이란 부정적 측면에서 일본을 보려는 분위기가 있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 해결방안은. -역사적 사실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양국간에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인식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를 모두 일치시키는 것은 꽤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검증할 때 한국에선 일제 식민지 지배를 실행한 장본인이라며 부정적 인물로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본에서는 입헌정치의 기초를 확립한 초대 총리라는 긍정적 측면을 평가한다. 양국 모두 ‘우리 민족은 우수하다.’는 자민족 중심주의적인 역사관을 가르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북한 핵문제 해결 방식은. -북한의 핵무기는 절대로 포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지가 양국 정부와 여론이 어느 정도인지 의문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일본여론은 핵문제보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외교 전쟁도 불사한다.’라고 하는 한편, 핵보유에 관해서는 ‘북한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라고까지 말한다. 양국 국민도 북한 핵문제에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북한에 체제보증을 약속하는 한편으로, 모든 핵보유를 완전하게 포기시킨다고 하는 점에 일·한·미가 완전하게 일치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3국이 대립해도 그걸 북한에 보여주면 안된다. 특히 한국은 북한이 다른 문제로 대일 공동대응을 제안해도 동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에 대한 일본 여론이 악화되면 예상되는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도 이뤄지지 않게 된다. ▶동북아시아에서의 한·일 관계는. -10년 후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양국 지도자는 지금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 많은 듯하다. 특히 중국과 미국 관계가 중요하다. 현재 일본은 ‘미국 중시-중국 경시’, 한국은 ‘미국 경시-중국 중시’의 경향이다. 일본은 좀 더 중국에, 반대로 한국은 좀 더 미국에, 정중한 외교를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류와 한·일 문화교류의 공평성,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제언이 있다면. -지금까지 일본인 중에서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 핵심층은 중년의 여성이었지만, 욘사마 현상 덕분에 지금 중년 여성이 가장 한국에 친근감을 갖는 층이 되었다. 서울신문·도쿄신문 공동여론조사 결과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악화되는데도 과반수의 일본인이 한류현상으로 인해 한국에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한류현상이 없었으면 올해 한·일관계는 더 악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한국측이 경제효과, 국위선양 측면에서만 한류현상을 강조한다는 것이 일본에 전해지면 일본에서 한류현상이 식을 수 있다. 한국은 일본 등 외국 대중문화의 수용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양국 지도자가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두 지도자는 ‘국제 협조형의 애국심’보다 ‘배타적인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계속 대두되고 있는 점을 더 우려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도, 노 대통령도 말을 좋아하지만 내셔널리즘을 자극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게 신경써야 한다. 한·일간의 문제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정부여당의 간부에게는 해임을 포함해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 외교관계가 악화되어도 문화교류나 자치체간 인적교류는 절대로 중단해선 안된다고 지도해야 한다. 일본에서 반한 감정이,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높아져도 양국에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양국 갈등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양국 쌍방에 다양한 원인과 배경이 있다. 한가지 들고 싶은 것은 언론 보도의 문제점이다. 양국 신문과 TV를 보고 있으면 자국민을 자극하는 도쿄발, 혹은 서울발의 보도가 너무 많다. 도쿄 이춘규특파원 taein@seoul.co.kr
  • 반 외교 “北 평화核 한·미 이견 없다”

    반 외교 “北 평화核 한·미 이견 없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서울 김수정기자|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은 마땅한 권리이며 이에 대해 한·미간 시각이 다르다.”고 한 발언과 관련, 우리 정부가 이를 진화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미국도 “이견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그 발언 의도에 대해선 여전히 궁금증이 가시지 않고 있다. 정 장관은 지난 11일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두 차례나 “한·미가 생각이 다르다.”고 밝혔다. 설사 이견이 있더라도 “없다.”또는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는 식으로 에두르는 정부 외교안보당국자들의 수사와는 전혀 딴판이다. 정 장관의 발언은 당연히 ‘한·미 입장 충돌’로 비쳐졌다.6자회담 후속 논의차 베이징을 방문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리자오싱 중 외교부장과의 회담 직후 파문을 의식,“한·미간 이견은 없다.”고 밝혔다. 반 장관은 “북핵 폐기 범위와 평화적 핵 이용권 두가지 문제가 상호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에 대해 한·미간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전체적인 북핵 문제 해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모든 핵을 폐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규정을 이행할 경우 국제적 신뢰도가 조성돼 미래적 평화적 핵이용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반 나절 앞서 애덤 어럴리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우리는 맹방으로서 한반도를 비핵화해야 한다는 공동목표를 갖고 있다.”며 한·미 이견설을 부정했다. 정 장관의 언급에 대해선 “나는 정 장관 입장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미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게 본분”이라며 언급을 회피했다. 6자회담에 참석한 당국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평화적 핵 활동에 대한 한·미간 입장은 ‘이견’을 강조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중국이 제시하고 나머지 나라가 동의한 6자회담 4차 초안에는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IAEA 안전협정 의무를 지면 그 권리도 갖는다.”는 식의 조건부 허용 문구가 들어가 있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오자, 우리 정부는 ‘창의적 모호성’을 발휘, 평화적 핵활동이란 문구를 ‘권리’ 앞에 넣자는 대안을 제시했고 미측도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정 장관이 이견을 강조한 배경에는, 통일부 장관으로서, 또 지난 6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중대제안을 전달한 당사자로서, 북측을 의식한 발언이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북한측 당국자·민간인들이 대거 참가하는 8·15 서울 민족축전을 앞두고, 북한 대신 미국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는 얘기다. 휴회 이후 미국 강경파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한 대미 압박용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선 정 장관의 발언이 오히려 힐 차관보의 6자회담 협상에 불만을 갖고 있던 강경파를 자극할지 모른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crystal@seoul.co.kr
  • “믿을건 南뿐” 김정일뜻 반영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는 북한 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방문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전쟁 당사자로서 상대방 전사자의 무덤을 방문하는 행위는 과거를 씻고 새 출발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적극적 의사표시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6·25 전쟁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남북 당국간 회담에서 거론 자체가 금기시돼 왔다. 때문에 국립현충원 참배 같은 행사는 남북화해 국면의 마지막 수순으로 예견돼 왔다. 따라서 이번 북측의 참배 결정은 아주 뜻밖의 뉴스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이 갑자기 참배 카드를 들고 나온 배경에는 앞으로 상당기간 남한과의 화해협력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중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과의 ‘찰떡공조’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한편 미국으로부터의 체제전복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북한의 현충원 참배 결정은 남북관계 진척의 큰 모티브가 될 것”이라면서 “지금은 남한 밖에 믿을 곳이 없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절박한 심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북핵 6자회담의 와중에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과 관련, 북측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분위기를 잡기 위한 전략의 일환인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간의 틈을 벌리면서 협상에서의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평화체제를 정전체제로 바꿔서 미국의 공격 대상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절실하다.”면서 “참배 결정은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의 경험상 북측의 이런 제스처가 1회성으로 그칠 공산도 적지않다. 남북한간, 또는 북·미 관계 등 국제적 정세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과거의 적대적 관계로 회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큰 방향은 일단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은 편이다. 백학순 교수는 “2000년 6·15 남북관계 개선에 분수령이 됐듯이 북한의 현충원 참배가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정상화에 돌이키기 힘든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심은 남북간의 이런 긴밀한 관계개선이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기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다.남북이 협조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 들 경우 부시 행정부의 대(對)한반도 입지는 일정부분 위축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들이 핵 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자세 불변과 남한 당국의 동조적인 태도에 불만을 표출할 경우 북·미, 한·미간 긴장도가 높아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정국은 극도의 불안에 빠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아시아나 12일 업무 복귀

    아시아나 12일 업무 복귀

    정부가 10일 오후 6시를 기해 25일째 장기 파업 중인 아시아나항공에 극약처방이나 다름없는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이날 과천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의 파업이 국민경제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일상생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어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기로 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정부의 이번 긴급조정권 발동은 이 제도가 1963년 제정된 이후 1969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1993년 현대자동차에 이어 3번째로 12년 만에 발동되는 것이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됨에 따라 현재 파업 중인 아시아나항공 노조원들은 11일 농성장을 떠나 서울로 출발,12일 오전 10시 현업에 복귀하기로 했다. 또한 앞으로 30일 동안 파업이 전면 중지된다. 마지막 협상에 나선 아시아나항공 노사는 이날 정오부터 양측 최종안을 교환하고 교섭을 재개했으나 자격심의위원회 의결권 등 핵심 13개 쟁점과 비핵심 49개 조항 가운데 4개 항목에서 의견 일치를 봤을 뿐 최종 타결에는 실패했다. 특히 노측은 핵심 쟁점 외에 징계 부속합의 등을 요구, 협상이 결렬됐다. 정부는 교섭현장인 충북 청원 초정약수 스파텔에 정병석 노동부 차관과 김용덕 건교부 차관을 파견, 노사 자율교섭을 독려했으나 노사는 타협안 도출에 실패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긴급 투쟁본부대표자회의 및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열어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을 규탄하고 운수연대를 중심으로 연대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도 전면파업에 나서기로 해 노정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위로